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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Ecofascism

by 이성근 2020. 9. 8.

에코파시즘 저자 자넷 빌|역자 김상영|책으로만나는세상 |2003.10.

원제 Ecofascism : lessons from the German experience

 

 

자넷 빌(JANET BIEHL)-1963년에 신시내티주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에 다른 학생들이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운동이 과거가 된 때에 뒤늦게 좌파적인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1986년에 머레이 북친이 주도하는 사회적 생태론 연구소(INSTITUTE FOR SOCIAL ECOLOGY: ISE)에 참여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피터 스타우든마이어(PETER STAUDENMAIER)-사회적 생태론자이자 좌파 생태 운동가다. 1989년 이후 사회적 생태론 연구소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위스콘신주 매디슨에 살고 있다. 200불 이하의 수입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주인 있는 빈집을 사용하게 하는 운동을 하고 있으며, 니카라과의 풀뿌리 발전 조직들 및 독일의 급진적 생태 운동 단체인 생태적 좌파(ECOLOGICAL LEFT)와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는 뛰어난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인 이론가로, 아나키즘, 생태 정치, 그리고 우익 사상의 역사 등을 연구하면서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목차

파시스트 생태론 - 나치당의 '녹색 분파'와 그 역사적 전례

피와 대지 신화의 뿌리들

청년 운동과 바이마르 시대

민족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안에서의 자연

정책 원칙으로서의 피와 대지

에코파시스트 강령의 실행

맥락 속에서의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생태론'과 독일 극우파 안에서의 파시즘의 현대화

네오파시스트 '생태론'

민족혁명당원

자유독일노동자당

공화주의자들

민족민주당

독일민중동맹

인지학과 생명 보호를 위한 세계연맹

루돌프 바로 : 순수 독일주의 영성

'갈색 부분'의 해방

사회적 다윈주의 '생태론' : 허버트 그룰

자유의 사회적 생태론

역자 후기

 

녹색성장과 에코파시즘

녹색성장은 생태적 세제개혁에서 시작돼야

 

독일기술을 이끌어왔던 우리의 천재적 지도자는 위대한 환경주의자가 된 지 오래다. 그는 독일문화의 뿌리이자 오랜 꿈이었던 자연과 기술의 종합에 성공했다.” 1941년 독일 잡지 디 쉬트라세에 실렸던 글 가운데 일부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대한 환경주의자는 누굴까? 놀랍게도 아돌프 히틀러다. 채식을 즐기고 담배를 싫어했던 히틀러는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자연을 모든 지혜의 여왕으로 칭송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에도 상당한 호감을 보였으며, 심지어 지구를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과 비슷한 생각을 피력하곤 했다고 한다.

 

히틀러의 경우는 녹색주의가 좌뿐만 아니라 우로부터도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녹색은 어떤 정치색채에도 스며들 수 있다. 좌파이론과 녹색주의가 손을 잡으면 서구 녹색당과 같은 모습이 된다. 위험한 건 극우정당이 녹색으로 분칠하고 나타났을 때다. 특히 인종주의와 녹색 상상력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에코파시즘이라는 괴물을 낳게 된다.

 

녹색성장은 개발주의 변종 의혹

따지고 보면 자연 사랑호전적 인종주의가 비빔밥처럼 뒤섞여 있는 것이 나치의 정치사상이다. 나치는 유기농업을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보호법을 만들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새로운 60년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워낙 느닷없는 일인데다가 알맹이가 없어 국면 돌파용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극우와는 거리가 멀고 인종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행적을 봐서는 그렇다. 따라서 그가 말한 녹색성장 비전이 정치적 동원수단이라는 혐의가 짙다 해도 이를 에코파시즘의 아류쯤으로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문제의식만은 최근 중국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녹색 고양이론에 가깝다. 중국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게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버린 지 오래다. 이제 가장 좋은 고양이는 친환경산업과 같은 녹색 고양이. 녹색 고양이가 아니라면 쥐를 잡기도 전에 먼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녹색성장론은 우리사회가 녹색의 불모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녹색성장과는 극단적으로 배치되는 7.4.7과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전력이 있다. 집권 후에도 기업 프렌들리를 앞세워 환경정책의 전방위적인 후퇴를 예고해 왔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에는 이들 정책을 수정하거나 폐기하겠다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말만 녹색성장이지 사실은 녹색을 가장한 개발주의의 변종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다.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도 문제다. 벌써 녹색성장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녹색성장론자들이 많았던가 싶을 정도다. 대통령 한마디에 정부부처의 장관들이 일제히 대한민국의 녹색희망을 합창하고, 국무총리는 녹색성장이 성공하면 미국과 일본을 일이십년은 앞서 나갈 것이라고 바람을 잡는다. 국민들에게 녹색성장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녹색성장은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술개발이나 에너지원 변화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핵심은 시장으로 하여금 생태적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고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회에서 녹색성장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경향신문

 

오염있는 곳에 세금인식이 우선

따라서 녹색성장은 생태적 세제개혁에서 시작돼야 한다. 생태적 세제개혁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에서 오염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로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도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불도저식 녹색성장은 우리 사회에 에코파시즘의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안병옥 사무총장(환경연합) 2008. 9. 1 경향

 

불교 생명운동 에코파시즘 전락할 수도

도법·수경 스님의 생명 환경운동의 실천은 종교적으로 볼 때 지극히 숭고한 운동이지만, 운동 차원에서 볼때 정치경제적 분석과 실천 부족으로 자칫 에코파시즘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난 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불광연구원(원장 지홍 스님)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한국불교의 생태담론과 생태운동학술연찬회에서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불교계 생명 환경운동의 극복과제를 이같이 밝혔다.

 

이도흠 교수는 한국불교의 생명·생태론과 그 실천운동발제를 통해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문수 스님 등 한국불교계 대표적 환경운동가의 활동의 공과 한계를 분석했다. 이 교수의 지적은 불교계 생명 생태운동의 아마추어리즘을 지적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 교수는 우선 도법·수경·문수 스님의 활동의 지평을 분석했다. 그는 도법·수경·문수 스님이 펼친 생명 생태운동 및 평화운동은 국민과 시민운동 진영에 세태적 패러다임과 삶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스님들의 운동은 대중들이 생태론적 패러다임을 갖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다양한 장에서 이를 네트워킹 하며 사회적 실천을 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특히 도법·수경·문수 스님의 활동을 한국불교가 사회적 실천이 부족해 대중으로부터 차츰 외면당하는 상황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위한 보살행의 전범을 잘 보여 주었다새만금 문제, 4대강 사업 등을 중요한 안건으로 부각시키는 한편, 환경과 생명의 문제를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올렸고, 생태론적이고 생명론적인 가치를 확산하는 데 크게 이바지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교수는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에 대해 구글 검색 결과를 인용해 문수 스님의 관련 기사나 글이 수백만 개에 달한다는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속에서도 그의 행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친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도법 스님의 생명공동체 운동에 대해서는 산업사회와 자본제 하에서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타자화하고 소외시키면서 환경오염을 심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안의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고, 과제로는 독립적 재정시스템 마련 원주민과의 완전한 화합 교육 프로그램 혁신 사회적 기업을 통한 경제 자립과 유기적인 도농공동체 완성 진정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의 길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불교계 생명 생태운동의 극복과제도 제시했다. 그는 우선 극복과제로 개인의 깨달음과 시스템 및 체제의 개혁을 종합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 교수는 운동의 방향이 사회 및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로 향하지 않으면 언제든 제국과 자본주의, 토건카르텔의 탐욕에 포획될 수 있다면서 환경파괴, 전쟁과 살생, 착취와 소외를 야기하고 심화하는 것은 구조와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도법·수경 스님의 실천은 종교적으로 볼 때 지극히 숭고한 운동이지만 운동 차원에서는 정치경제적 분석과 실천의 부족으로 자칫 에코 파시즘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새만금, 4대강, 지리산 댐 등 모두 정치적 관점과 장기적인 술책에서 시작됐다면서 생명을 죽이고 갈등과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이 정치적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현장에서 정치적 관점을 포기하는 순간 이미 패배를 상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치경제적 관점과 저항을 수반하지 않는 생명운동은 운동의 순수성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모든 저항을 무력화 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라며 구체적 실천과 저항이 빠진 불교적 대안은 동양의 신비주의나 성현들의 은유놀이에 빨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불교생명생태 운동의 정치적 전략으로 환경보호자의 지방자치단체장 선출 운동을 제시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자들을 지방의회 의원 및 군수로 선출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제시하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개발이 지역주민의 협치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거버넌스 시스템(국정관리체계)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적 전략으로는 개발이익에 현혹되어 이를 지지하는 주민들을 깨어있는 주체로 의식화하고, 토건카르텔 해체방향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장기적으로 생태적 순환이 가능한 도농공동체를 곳곳에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문화적 전략으로는 과도한 욕망이 불행을 야기하고 나누고 배려하고 섬기는 소욕지족의 삶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모든 생활의 장에서 생태론적이고 생명론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상철 11.06.07 / 백제불교회관 / cafe.daum.net/baekje/1v7O/5986

 

총기난사 뒤에 '에코 파시즘' 있다환경보호 내세워 인종주의 정당화

독일 나치시대 때부터 에코 파시즘 형성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논리 정당화 위해 쓰여

지난 4(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쇼핑몰 총격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열렸다. 2019.08.05.

 

"나는 에코파시스트다." 지난 351명의 사망자를 낸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은 범행 전 선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8(현지시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미국 엘패소 등 총기 난사의 배경엔 '에코 파시즘(eco fascism)'이 있다고 분석했다. 인구 과잉은 또 다른 환경 파괴라는 생각을 이들 사건의 범인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코파시즘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전체주의다. 에코파시즘의 역사는 매우 뿌리 깊어, ‘나치 독일까지 올라간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당시 나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피와 흙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나치는 농민들에게 조국을 위한 좋은 환경을 위해서는 피(혈통)와 흙을 지켜야한다고 설명했다. 나치는 독일의 아름다운 환경보호를 위해 동물보호법 등을 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조국을 위해서는 외부의 것,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정화해야한다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이는 결국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우생학으로까지 발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많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이처럼 자연보호와 인종 배제사이에서 연관성을 찾아, 인종 차별을 정당화 하려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당화는 극히 위험하며 대재앙을 부른다.

 

실제로 지난 엘패소 사건의 범인은 총기 난사 전 인터넷에 올린 선언문에서 출생률, 출생률, 출생률이라고 강조하며 번식에 실패한 백인을 대체하는 인종의 침략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사람들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더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수질 오염, 플라스틱 쓰레기, 미국 소비자 문화 등의 악영향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20년간 에코파시즘에 대해 연구한 베스티 하트먼 햄프셔대학 명예교수는 크라이스트처치, 엘패소 사건이 에코파시즘의 극단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종말론자체에 대한 위험성도 크다. 하트먼 교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종말론을 쉽게 이용하기 떄문에, 종말론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다고 우려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명예교수인 폴 에를리히는 그들(에코파시스트)은 내가 인종차별과 싸우기 위해 내 일생을 바쳤음에도, 종종 나를 인용하곤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1986년 베스트셀러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의 저자다. 인구 증가의 위험성을 경고한 그의 책이 아이러니하게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차별 정당화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존 크리스텐센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종말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그는 사람들이 해결책이 없다고 느낄 때 심각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뉴시스 김예진 기자 / 2019-08-19

 

툰베리의 분노는 기후위기의 배후인 증오의 정치를 겨눴다

햇볕 아래 가는 게 두렵다. 오존 구멍들 때문이다. 공기를 마시는 것도 두렵다. 어떤 화학물질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빠와 함께 밴쿠버에서 낚시를 나가곤 했다. 몇 년 전 온통 암에 걸린 물고기들을 발견하기 전까지 이야기다. 동물과 식물이 매일매일 멸종되고 있다. 여러분도 내 나이에 이런 걸 걱정했었나요.”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9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욕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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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와 툰베리, 같은 주장·다른 톤

199263. 리우 지구정상회의장에서 12세 캐나다 소녀가 연단에 섰다. 이미 아홉 살 때 어린이환경기구(ECO)를 창립해 활동해온 세번 컬리스-스즈키였다. 또래 친구 3명과 함께 모금운동으로 경비를 마련해 리우까지 날아왔다. 회의장에 당당하게 ECO 부스를 마련했다. ‘어린 환경운동가5분여 차분하고도 야무지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10대 관점에서 본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나는 미래를 위해 싸운다. 미래를 잃는다는 것은 선거에 지거나 증시에서의 몇 포인트와 다르다. 나는 다가올 모든 세대들을 위해, 또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들과 멸종되는 동식물을 위해 여기 왔다.” ‘5분간 세계를 침묵케 한 소녀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서 유포되는 그의 연설 동영상이다.

 

세계가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알리는 소녀의 외침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국제적인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다. 그는 여느 어린 운동가로 언론에 소비되는 것을 거부한다.

 

툰베리는 지난 9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단에 섰다. 어린 환경운동가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으며, 더 이상 어른들에게 호소하지도 않았다. 분노와 절규를 거리낌없이 쏟아냈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알고 있다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어른들, 공허한 말로 자신의 꿈과 어린 시절을 훔쳐간 어른들을 정조준했다. 대량 멸종의 초입에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시종 심각하고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유엔 회의장에 잠깐 들른 트럼프 대통령을 쏘아보는 툰베리의 강렬한 시선이 사진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그를 가장 분노케 한 지도자의 하나는 화석연료 경제를 찬미하면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 터이다. 그에겐 트럼프가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보였을 법하다.

 

비슷한 메시지를 전혀 다른 톤으로 표출한 컬리스-스즈키와 툰베리는 27년의 세월을 두고 축적돼온 세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컬리스-스즈키가 작가인 엄마와 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아빠의 영향으로 집안에서 환경교육을 받았다면, 툰베리는 스스로 온몸으로 예시(豫示)를 깨쳤다. 여덟 살 때인 2011년 기후변화 문제를 처음 접하고 왜 별다른 해결 노력이 진행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3년 뒤 8개월 동안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첫 두 달 동안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중단했다. 10이 줄었다. 의학적으론 선택적 자폐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고독에 잠겨 있던 어린 영혼은 기후문제에 눈을 떴다. 툰베리는 2년 동안 집에서 탄소 발자국(CO2 배출량)’을 줄일 것을 부모에게 요구했다. 완전채식주의자(vegan)가 되어 고기를 먹지 않았고 비행기 탑승도 포기했다. 딸아이의 채근에 오페라 가수인 엄마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해외공연을 포기했다.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12세 캐나다 소녀 컬리스-스즈키. 그는 지금도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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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2세 소녀 컬리스-스즈키

리우 회의서 ‘5분 연설통해 호소

우린 미래 잃기 싫어지켜달라

 

27년 지난 올해 유엔 정상회의서

이번엔 16세 툰베리가 격정 연설

어떻게 감히!내 꿈을 앗아가나

 

정치인들, 보통 사람 호소 외면 탓

·우파 넘어 포퓰리즘 잇단 확산

결국 온난화가 극단주의로 이끌어

 

집 밖에서 환경운동가가 된 것은 불과 2년도 되지 않는다. 기후변화 에세이가 작년 5월 스웨덴 신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의 공모에서 선정되면서부터다. 지난해 여름 스웨덴을 강타한 200여년 만의 폭염과 기근은 툰베리를 활동가로 만들었다. 스웨덴에서만 7월 한 달 동안 60곳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결국 스웨덴 총선을 20일 앞둔 820, 툰베리는 홀로 스톡홀름 의사당 앞 시위를 시작했다. 2주 동안 매일 의사당 자갈마당에 조용히 앉아 행인들에게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어른들이 나의 미래에 똥을 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힌 팸플릿을 건넸다. 동맹휴학도 제안했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페이스북에 사진과 소식을 전했다. 11월 말 스톡홀름에서 테드(TED) 강연을 했고, 다음달엔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연설을 했다. 12월 유럽 270개 도시와 마을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툰베리는 매주 금요일 등교하는 대신 기후변화 시위를 벌이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단체를 만들었다. 올해는 아예 1년간 휴학계를 냈다.

 

툰베리는 파리 협약이 목표로 설정한 섭씨 1.5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늦어도 2020년부터 온실가스 방출을 급진적으로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역시 파리 협약이 설정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40% 감축 목표도 80%로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유엔 회의 참석을 위해 15일 동안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넜다. 뉴욕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 몬트리올로 여행할 때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전기자동차를 제공했다. 툰베리의 외침은 반향이 컸다. 지난해 말부터 툰베리는 각국의 시위를 촉구하고, 독려한다. 행동지침도 내린다. 지난 4월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열흘 동안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단체 지도부에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제안했다. 멸종저항은 옥스퍼드 서커스와 워털루 다리, 마블아치, 자연사박물관 등에서 점거농성을 벌여 11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툰베리 현상의 대척점, ‘증오의 녹색화

작금 포퓰리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좌파건, 우파건 기성 엘리트 정치인들이 세계화에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반이민 민족주의 정서가 넘치면서 정당한 분노와 부당한 증오가 뒤섞였다. 같은 현상이 지구온난화 관련 찬반 양진영에서도 나타난다. 기성 엘리트들이 긴급한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 진영 모두 과격해지고 있다. 기후행동을 요구하는 운동가들은 굼뜨기만 한 민주주의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잠시 민주주의를 접자는 주장까지 제기한다(워싱턴포스트).

 

기온과 해수면이 올라가고 가뭄과 홍수가 많아졌다. 산불도 자주 발생한다. 깨끗한 물이 줄어들고 식량위기가 발생한다. 모두 지구온난화의 결과들이다. 극단적인 환경에 몰리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과격해진다. 지구온난화가 극단주의로 흐를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셰리 굿맨 우드로 윌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예일대 기후커넥션 인터뷰에서 많은 나라에서 기후변화가 사람들 생명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면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려는 투쟁은 사람들을 절박하게 만듦으로써 종교적, 정치적 극단주의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행동의 또 다른 이점은 극단주의 예방이라는 지적이다. 2017년 독일 외교부 산하 연구소가 내놓은 더워지는 세계에서의 반란과 테러리즘, 조직범죄보고서에서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보코하람과 같은 극단주의 테러단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가뭄만이 극단주의를 양산하는 건 아니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와 8월 미국 엘패소의 쇼핑센터에서는 각각 51명과 22명이 살해됐다.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사건의 범인은 아예 환경 파시스트(eco-fascist)’를 자칭했다.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와 함께 인구 과잉과 환경 악화를 범행 동기로 꼽았다. 엘패소 범인은 수질오염과 플라스틱 과소비, 미국의 소비문화가 미래 세대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코 파시즘의 극단적 예들이다. 햄프셔 대학의 베스티 하트만 명예교수는 이를 증오의 녹색화(the greening of hate)’로 명명했다. 증오의 에너지를 분출할 출구를 찾지 못한 인종주의자들에게 지구온난화와 늘어나는 이민자는 좋은 구실이 된다. 이러한 불만과 증오가 언제든지 에코 파시즘이라는 죽음의 칵테일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의 깜찍한 경고 정도로 받아들여졌던 컬리스-스즈키의 연설과 달리 섬뜩하리만큼 거칠어진 툰베리의 표정과 말에서 작금의 변화가 읽힌다. “우리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게 나의 메시지다라는 말로 시작한 툰베리의 유엔 연설은 당신이 어떻게 감히!(How dare you!)”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하며 어른들을 질타했다. 기후행동 반대론자들은 이마저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트럼프는 툰베리와 조우한 뒤 트위터에 밝고 멋진 미래를 기대하는 아주 행복한 소녀 같다. 보기 좋다!”고 비꼬는 데 그쳤지만, 비난자들(haters)의 표현은 더 원색적이었다. 컬리스-스즈키와 툰베리를 함께 묶어 아이들을 이용하는 좌파들의 고질적인 수법이라는 비난과 툰베리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문제 삼는 댓글이 주종을 이룬다.

 

온난화 전쟁의 해방구, 조용한 한국

툰베리의 답은 이렇다. “증오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다른 외양을 들춰낸다면 그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음을 의미한다. 또 당신이 이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스퍼거 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가끔 표준과 다소 다르지만, 조건이 충족되면 그 다름이 슈퍼파워가 된다”(81일 툰베리 트위터).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의 세계적 권위자 토니 애트우드는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며, 정직하고 단호하다. 강한 사회 정의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툰베리는 자신의 증상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말하는 증상이라고도 설명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27년 전 컬리스-스즈키의 주장을 듣기만 했다. 이번에도 듣기만 할 것인지는 그들의 판단이지만 툰베리의 말대로 변화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오고 있다”.

 

유엔 기후주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927일 전세계에서 동시에 열린 기후파업(Climate Strike) 시위에 수백만명이 참가했다. “또다른 행성은 없다(No Planet B)”고 외쳤다. 서울 세종로에도 500여명이 모였다. 뉴욕(32)과 베를린(27), 런던(15)에 비해 다소 조촐했다. 엉뚱한 문제로 진영싸움에 코가 빠진 어른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김진호 경향신문 국제전문기자 2019.10.05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

18~20세기 서양 인종주의 기원 탐구

타자 증오·근절하려는 역사철학 추적

인종주의 이데올로그 국내 첫 연구 성과

한국의 폭민과 인종주의 논리 우려 수준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인종주의는 역사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나인호 지음/역사비평사·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의정서)>1900년대 초 악명 높았던 반유대주의 서적이다. 유대인들의 세계 정복 음모론을 담은 이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탄 위서(僞書)였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국의 자동차 왕헨리 포드(1863~1947)는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심화버전 <국제 유대인>을 출간해 세계적으로 유통시켰다. 움베르토 에코는 해당 위서를 소재 삼아 소설 <프라하의 묘지>를 썼는데, 조작에 참여한 자의 내면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Odi ergo sum)

 

나인호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쓴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은 유대인 세계지배 음모론을 퍼트린 위서 이야기를 시작으로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양에서 나타난 인종사관 및 인종의 역사철학을 다뤘다. ‘인종’ ‘인종주의란 용어 사용 자체를 경계하는 서구 학계의 입장(거다 러너, <왜 여성사인가>)과 달리 나 교수는 인종주의가 서양에서 발원한 증오의 사상이자 체계화된 이데올로기라고 아예 못박고 심층적으로 담론을 분석해 들어간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독일 화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카울바흐가 제작한 그림 <게르마니아>. 칼과 방패로 무장한 게르마니아는 범게르만주의와 제국주의로 급진화한 독일 민족주의를 상징한다. 역사비평사 제공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인종주의의 그 뿌리는 계몽사상에 있고, 서양 주류 철학 사상과 깊게 결부되어 있다. 분석이 너무나 필요함에도 인종주의를 비이성적, 일탈적이라며 회피하는 서양 학계의 경향 탓에 연구가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 증오하는 인간’(호모 오디엔스·Homo odien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타자를 적대시하고 가공할 만한 증오를 내뿜는 인종주의자들을 가리킨다. 그는 헤이트(HATE)혐오라기보다는 증오라고 번역해야 한다인종주의는 인종우월주의 및 인종차별주의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빌헬름 2세가 그린 스케치를 화가이자 카셀 미술아카데미 교수였던 헤르만 크낙푸스가 다듬어 완성한 것이다. 애초 빌헬름 2세의 그림에는 유럽의 민족들이여, 당신들의 가장 신성한 재산을 지켜라!”라는 문구가 달려 있었다. 이 그림은 황인종의 침략을 형상화했다. 독일인 수호천사인 천사장 미카엘이 가리키는 풍경 뒷면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연기 위로 불타오르는 도시를 바라보는 차가운 눈을 가진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 십자가의 수호를 위해 서로 단결하여 불교, 이교, 야만의 침투에 맞서고 있는 유럽 열강들을 대변하고 있다. 역사비평사 제공

 

책은 크게 둘로 나뉜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인종주의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탐구하고 인종주의 담론의 경향성을 살피는 부분과, 인종주의자와 이론을 검토한 부분이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그들은 특히 흥미로운데, 국내외 선행연구가 부족한 인물들이라 낯선 만큼 눈에 띈다. 먼저, 독일의 계몽주의 사상가 크리스토프 마이너스(1747~1810)는 최초의 근대 인종주의 역사학을 정초한 이다. 그는 백인종 우월주의와 식민주의 정당화를 넘어서서 아름다움과 못생김이라는 심미적 기준으로 인종의 위계서열을 만들고 세분화했다. “가장 희고, 혈색 좋고, 우아한 피부는 게르만 혈통이고, 독일 남부 지방은 못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식이다.

독일 계몽사상의 대변자 크리스토프 마이너스(1747~1810).

 

프랑스의 외교관, 작가, 언론인이었던 아르튀르 고비노(1816~1882)는 지배인종인 아리아인의 퇴화가 인류 역사의 종언을 가져올 것이라며 염세적 인종결정론을 펼쳤다. 그는 나치 독일 인종주의 정치학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게르만족 범신론을 주창한 루드비히 볼트만(1871~1907)은 독일 국민의 순종교배로 가장 순수하고 진화한 게르만 인종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르만족 범신론을 주장한 루드비히 볼트만(1871~1907).

게르만 신화의 유포자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1855~1927).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신흥종교 교주로 삼다시피 한,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1855~1927)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게르만 신화의 유포자였다. 그는 서양 역사철학이 주창한 인류의 진보개념을 부정하고 오로지 게르만 인종의 발전과 번영만이 실제 진보라고 보았다. 게르만 인종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담은 책 <19세기의 기초>(초판 1889)1200쪽에 육박했지만 1915년까지 모두 10만권이 팔려나갔다. 전문학자가 아닌 민족주의적 교양시민들과 젊은 청년들이 대거 그의 책에 열광했고, 광팬 중에는 독일제국 황제 빌헬름 2세도 있었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볼트만과 체임벌린에 대한 연구는 이 책의 학술적 성과다.

백인들을 휘감고 있는 몽골인들의 문어발에는 싸구려 노동력’, ‘부도덕’ ‘장티푸스를 퍼트리는 찻주전자’ ‘아편’ ‘뇌물수수’ ‘세관 강도질같은 증오적 표현이 쓰여 있다. 필 메이, ‘문어와 같은 몽골 인종, 오스트레일리아를 움켜쥐다’, , Sydney, 1886. 8. 21. 역사비평사 제공

1940년께 출판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 프랑스어판의 표지. 유대인 세계 정복 음모론을 퍼트린 매우 강력한 가짜뉴스 매체로 기능했다. 이 판본은 유대인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지구를 움켜쥐어 피를 흘리게 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악마로 형상화했다. 역사비평사 제공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 영국의 저널리스트 빅터 마스든이 1923년 러시아어본을 영어로 번역한 판본의 표지다. 영어본 중 이 판본이 가장 많이 읽혔다. 역사비평사 제공

 

19~20세기 제국주의 무한경쟁 시대에 서구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은 우리는 적들의 세계에 포위되어 있다는 관념을 유포시켰다. ‘은 자국 내 급진주의자, 사회주의자, 여성운동가, 이민자, 유대인 등 다양했다. 중국인의 해외 이주로 촉발된 황화론악마적 인종을 탄생시킨 대표적 담론이다. ‘매부리코유대인이 유럽 내부의 적이었다면, ‘찢어진 눈황인종은 외부의 적으로 발명되었던 셈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바로 이 시기에 창궐한 국가 인종주의. 증오 이데올로기로 발전한 이 위기의식은 인종 개량을 위한 우생학적 청사진 및 제국주의적 팽창 계획과 결합되곤 했다. 나 교수는 국가 인종주의 시대에 이르면 공동체 구성원 내부의 누구라도 타자화되고 나아가 증오의 대상으로 희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 소름끼치는 점은 인종주의가 인종 신비주의라는 영성, 종교적 형태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율리우스 에볼라(1898~1974)는 오토 바이닝거의 여성혐오사상, 니체의 초인개념 등을 조합한 영적 인종주의를 역설했다. 그는 인종을 육체 단계, 민족혼 단계, 영적 단계로 구분하며 아리아 로마인(이탈리아인)이 본원적 아리아인의 혼과 영을 갖고 있기에 독일인보다 더 우월하다고 보았다. 유사학문적 외피를 쓴 에볼라의 인종서사는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 등과 함께 네오파시즘의 경전이 되었고, 그는 네오파시스트의 구루로 대접받았다.

 

한나 아렌트(1906~1975)의 개념인 폭민은 불만에 가득찬 인종주의 이데올로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폭민은 전체주의 운동을 지지했던 낙오한 모든 계층의 잉여인간들을 가리킨다. 나 교수는 인종주의 이데올로그들 상당수가 외롭고 우울하고 비사교적인, ‘대타자에 대한 동경으로 자신을 대신할 환상을 좇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도 국가 효율성을 높이고 인종적으로 엘리트를 만들려는 국가 인종주의적 논리가 침투해 있으며, 극우 집회나 가짜뉴스 등에서 지도자를 신처럼 경배하는 폭민적 정서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극우 테리리스트를 영웅시하는 댓글, 이주노동자와 난민 배척, 전라도 혐오의 반유대주의적 언사 등에서 국가 인종주의적 논리를 발견합니다.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환단고기> 추종자들도 저항적 인종주의의 포로라 할 수 있습니다.”

 

<개념사란 무엇인가>(2011)에서 근대적 여성개념과 타자화를 한 챕터로 검토했던 지은이는 이번에는 분량 압박으로 젠더를 교차 분석할 수 없었지만 인종주의자들은 예외없이 여성혐오주의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여성 차별과 인종주의는 지적 친화성이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에코의 소설 <프라하의 묘지>에 나타난 반유대적 인종주의자 또한 여성혐오주의자였다. /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2019-05-10 한겨레

 

생태주의 뿌리에 파시즘이 있다?

스스로의 선의에 대해 의심을 거두는 순간, 파시스트가 된다

» 지구와 생태계, 동물을 사랑하자는 생태주의에 민주주의가 빠지면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 번만이라도 읽은 사람은 이 책을 마음 속에서 영원히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이 세상을 두 번 다시 똑같은 시각으로 볼 수 없다.”는 책이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대가 나올 때마다 어느 시기에 가서는 반드시 찾아내어 읽고 또 읽어야 할 보기 드문 책이라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레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14)에 대한 평이다. 이 책은 1991년 전미 서점상 연합회가 서점이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에 수여하는 제1회 에비상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책은 1991‘(포레스트 카터지음, 김훈 옮김,고려원미디어, 1991)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됐다. 이 책은 환경문제와 자연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포레스트 카터가 악명 높은 미국의 극우 비밀결사단체인 케이케이케이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과 저자에 대한 평가를 바꾸게 되었다.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의 중요성과 인디언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했던 이 책이 자연의 질서를 내세워 인종학살을 합리화했던 저자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의 거짓말이거나 자기변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다시 읽기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 포레스트 카터의 책 원본과 국내 번역본. 그의 본명은 아사 얼 카터(1925~1979) 1950년대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쿠클럭스클랜(KKK) 활동을 했다. 포리스트 카터란 필명으로 1976년 베스트셀러 `작은 나무의 교육'을 냈지만 뉴욕타임스의 폭로로 과거 행적이 드러났다.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 때도 제일 훌륭한 놈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 중 작고 느린 놈을 잡아야지, 그러면 사슴들은 훨씬 더 강건해지고 늘 네게 고기를 마련해 주게 되지.”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유대인과 같은 다른 인종,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학살한 나치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자의 주장에 따른다면 자연의 질서를 가장 현명하게 따랐던 체로키족, 저자가 인디언의 피는 전혀 섞이지 않은 백인인 자신의 혈통을 속이고서까지 가장 닮고 싶고 닮고자 했던, 체로키 인디언이 작고 느린 놈이 되어 도태되었다는 점이다.

 

자연 사랑을 인류 증오로 바꾼 나치

물론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질서라는 저자의 주장은 파시스트의 주장일 뿐 사실도 아니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적자이고, 적자는 환경에 따라 용감한 토끼가 아니라 겁쟁이 토끼이기도 하고, 개체의 생존과는 다르게 종의 생존은 강한 것이 아니라 협동하는 것이 더 적자라는 증거는 차고 넘치게 많다. 저자는 강한 것만이 살 권리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과학적 진실에도 어긋나고 자신의 삶과도 괴리된, 거짓으로 뒤범벅된 자서전 형태의 소설로 남겼다.

 

생태주의 뒤에 숨은 파시스트는 포레스트 카터가 처음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생태주의의 뒤에 파시스트가 숨은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해 모든 사회적 약자, 미래세대 뿐 아니라 다른 생물의 요구를 지원하는, 오늘날 가장 진보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는 생태주의의 뿌리에 파시즘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 나치가 생체실험을 금지하자 실험동물들이 괴링에게 히틀러 식 경계를 하는 풍자화. 1933년 한 잡지에 실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유대인 학살과 전체주의적 광기로만 알려진 나치즘의 철학은 사실 19세기 자연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치즘으로 가는 도로를 포장한 제3제국의 지적인 선도자로 알려진 루드비히 클라제스(1872~1956)인간과 지구라는 글에서 오늘날 생태운동의 모든 주제를 제기했다. 이 글에서 그는 가속화되는 종의 멸종, 전 지구적 환경체계의 균형 교란, 산림의 남벌, 토착민과 야생 서식지의 파괴,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그리고 점증하는 자연으로부터의 민중의 소외를 비난했다. 심지어 만연하는 관광사업의 환경 파괴성과 고래 학살을 비난하고 자연 신비주의자답게 지구를 생태적 총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제기되는 모든 생태 환경적 문제를 한 세기 이전에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인류에 대한 증오로 바꿔 나치독재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생태주의가 생각만큼 참신하거나 진보적인 사상이 아니라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지만 동물의 권리까지 주장하는 생태주의의 뿌리에 파시즘이 놓여있다는 주장은 꽤나 충격적이다. 물론 같은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그 해법이나 가치까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19세기의 문제의식과 해결방법이 21세기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고, 과학기술 지식만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방식 또한 진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적자는 파시즘이 아니라 공론화와 민주주의다.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의 위험성

생태주의가 나치즘에서 출발했다고 생태주의를 파시즘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태주의자들이 그 뿌리가 나치즘이라는 것을 잊는 것 또한 온당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태론 자체로는 어떤 정치도 규정하지 않아 과거에도 현재에도 파시즘의 좋은 홍보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왼쪽도 아니고, 오른쪽도 아니며 다만 앞쪽일 뿐이다라는 독일 녹색당의 대표적 슬로건이 오늘날의 파시스트인 스킨헤드족을 포함하는 네오파시스트들에게는 자신을 파시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섭하는 호소력 있는 구호로 사용된다.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는 생태주의는 그래서 반드시 스스로의 정치적 지형에 대한 검토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진화생물학이 그 어두운 역사 때문에 연구 단계마다 사회적 영향에 대해 자문해볼 것을 요구받듯이 생태주의도 사회적 의제 설정과 실천의 매 단계마다 폭 넓은 반론을 수용하는 민주적 의견 수렴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이론가라고 칭송받았던 루돌프 바로(1935~1997)가 공동체와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현재의 네오나치즘으로 이어진 것도 생태론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의 생태주의자들에게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바로 에코파시즘:독일 경험으로부터의 교훈’(자넷 빌, 피터 스텐우드마이어 지음, 김상영 옮김, 책으로만나는세상, 2003)이다. 생태주의자이기도 한 저자들이 이 책에서 생태주의자가 빠질 수 있는 파시즘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나치의 어두운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네오나치즘이 스킨헤드 뿐 아니라 선량한,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믿는 시민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위기는 이제는 아무도 의심치 않는다. 기후위기의 대안이 지속가능한 에너지라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방치해둘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조급함도 다 공감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장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면 지역주민의 민원쯤은 좀 건너뛰어도, 절차쯤은 좀 특별하게 대우받아도 된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시설의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기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옳지 않다. 무조건 많이, 무조건 빨리, 민주주의 과정쯤은 생략하는 그 과정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코파시즘이 경고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조급한 선의가 불러오는 파국이다. 스스로를 절대 선이라고 믿는 것, 그래서 민주적 절차 따위는 건너뛰어도 된다고 믿는 것 그것이 파시스트다.

 

혐오 속에 자라나는 전체주의

»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등에서 집회 개최를 금지한 가운데,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가 지난 2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우리나라에서도 파시즘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뉴스에서 파시즘을 목도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을 메운 태극기의 물결과 이견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 갈등은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는 파시즘이다. 한국의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사회갈등이라는 것은 굳이 전문가의 입을 빌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갖고 조금씩 희생하며 지켜낸 코로나 방역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8·15태극기 집회는 이미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 미운털이 된 지 오래다.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극우 파시스트 세력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어떤 합리적 대안에도 음모론으로만 대응하는 불만에 가득찬 태극기부대를 우리 사회의 혐오집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욕구와 불만을 갖고 있는 태극기부대를 하나의 혐오집단으로만 여기는 태도 또한 또 다른 파시즘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를 무조건 적으로 여기는 태도는 꼴사나운 상대의 모습과 닮는 가장 빠른 길이다.

»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린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주먹밥을 받아가고 있다. 점심시간마다 비빔밥을 제공했던 급식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주먹밥으로 바꿨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많은 헌신으로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노인세대는 우리 사회의 가장 가난한 세대이며 노년에 가장 모욕과 혐오를 견뎌내야 하는 세대로 전락했다.우리의 노인 세대가 그들의 부모세대에게 보였던 존경은 고사하고 우리 사회는 노인의 육체적 정신적 쇠락과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남은 가난을 조롱하기에 바쁘다. 사회와 가정, 미디어 곳곳에서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 노인 세대의 분노를 받아낸 곳이 유일하게 태극기부대였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돈과 권력을 탐하는 파시스트의 먹이감이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노인 세대의 분노를 사회가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태극기부대의 막무가내는 사라지지 않는다.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우리사회의 파시즘은 여러 가지 얼굴과 이해를 가진 다양한 집단이다. 파시즘을 다루는 방법은 또 다른 파시즘이 아니라 그 집단 안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이해하고 구별해내서 다르게 대처하는 일이다. 광화문에는 우리 사회가 노인 세대와 빈자, 탈북민을 다루는 불평등에 분노한 태극기가 있고 이를 이용하는 권력과 돈에 미친 태극기들이 있다. 그냥 싸잡아 비난하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절차는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더라도 파시스트를 잡겠다고 파시스트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도 시민사회도 분노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가려듣는 노력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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