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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슬프고 안타까운 날

by 이성근 2019. 8. 5.






-김신영 전

 

멀리 내륙 영동에서

한무리 동창들도 오고

벗하던 지인들도 오고

일가 친척 다 왔네

 

어느 꽃밭에서였든가

영정 속 고인은

꽃 보다 더 환한 미소 짓는데

 

조문객들 눈물이고 침통하다

반겨주던 그 낮빛 목소리

이제 들을 수 없다

 

하마 그리운 이여

올곧은 신랑의 신념

내 것인양 받아들여

헛된 욕심, 유혹 멀리하고

직분에 충실하니

욕됨이 없어 부창부수

더불어 보기 좋더라

 

아시는가 상가집

수백의 조문객들

단호하고 청렴했던 신랑보다

실은

늘 따듯한 미소로 살갑게 대해주던

그대를 좋아했다고

 

그런데 그런데

아무런 귀뜸없이 그리 가면 어쩌냐고

그럼에도 당신은 

꽃밭에서 마냥 웃고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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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마지막으로

생전의 인연들과 만나는 곳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길에서 작별을 고하니

고맙고 감사한 이여

안녕하시라

그대 하늘빛이어라


오홍석 이사장, 나는 그렇게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부른다.  어쨌든 평소 존경해 마지 않는 분이다. 헌데 그는 되려 내가 늘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시의 요직을 두루 거쳤고 마지막으로 일한 곳은 도시공사 사장이었다.  평생을 공직자로 살았지만 여느 공무원과는 달랐다.  직원을 대하는 자세로 인해 평가가 다르다.  예컨데 일 잘하는 부하직원은 팍팍 밀어주고 그 반대는 질타의 대상이었다.  호불호가 분명했다. 그런 그와 하마 20년지기가 되었다. 환경국장 시절에는 우리집에도 몇번 왔었고 아이들과 아내를 늘 기억하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나  공장을 떠나 일반 시민으로 돌아 와 살 때나  한결같은 모습을 견지했다.  


2015년 이사장으로 모셨다.  늘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부산그린트러스트에서  3년 임기를 채운 유일한 사람이다. 지역내 전직 고위공무원으로서 환경단체의 수장이 된 사람은 그가 최초였다.  지역 시민사회의 거부감도 없었다. 그의 평소 행적과 인품을 신뢰했기 때문이고 언론도 이점을 높이 샀다. 


그런데 그 결정, 이사장직 수락의 중심에 고인이 있었다.  그 전에 내 요청으로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다른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지만 환경단체의 수장으로 이름 올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구축되어 있던 익숙한 관계망을 넘어 단체 운영의 재정도 같이 고민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었지만 형수는 부산그린트러스의 존재 이유와 나라는 사람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서로가 가식이 없었다. 


고인의 형제들이 들려준 오홍석 이사장의 이야기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원래 타고난 성정과 평소 관점이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덧붙여짐으로서 역시나로 귀결되는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늘 고인의 조언이 있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를 되묻게 된다. 일례로 그가 도시공사에 있으면서 성과급이란 것을 받게 되었는데 한 일이 없다고 받지 않았다. 그 돈이 적지 않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런 사례는 많다.  자신이 생각해서 아니다 싶을 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늘 양복 주머니에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 욕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실천, 그로 인해 감수해야할 불편과 시선들  그런 남편을 고인은 잘했다고 맞장구 쳐주고 격려했다. 


오이사장은 그런 동반자와 이별한 것이다. 

 


장례와 관련하여 그는 외부 부고 통지를 거부했다. 조용하게 가족장으로 치루려고 했지만 상주의 연락을 받는 지인이 그럴 수는 없다하여 나 또한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그렇다 그 소식이란 것이 황망할 따름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경주 이주의  근황을 확인하고 그들이 만들어 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오기도 했다. 소일 삼아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칼국수집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서 형수는 다쳤던 몸도 회복하고 두 분이서 잘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였다.   

나는 마침 휴가 중이었다.  소식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부고장을 다시 전하는 일과 상가에 앉아 아는 조문객들 안내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퇴직 공무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좀체 가지 않는  영락공원까지 따라 갔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망자에 대한 예의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주검이 불길 속에서 한 줌 재로 되는 시간은 두 시간이 채 못되었다.  대부분의 유족들이 여기서 무너진다. 통곡과  울부짓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고통스러운데 칠성판에 눕혀져 불길속에 타오르는 형국이란 형언하기 힘든 아픔이고 고통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들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삶이 먼지라 했던 말 거짓이 아니었다.

먼 산만 바라볼 뿐이다. 


별 하나

 

황망한 의 단절

슬프하며 보내고 

집에 와서 창밖

외로이 뜬 별 보면서

그 사람인 듯 생각했다

저렇게 별이 되었구나


아름다운 연주곡 모음 -다음블로그 맑은숨결 김영애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