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숙의 집 이야기] 땀 흘려 일해도…한국인의 주거는 왜 암울한 걸까 14. 7.6 한국일보
허름한 집이든 번듯한 집이든 내 집 한 칸 어디 없을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불안하게 집을 찾아 늘 옮겨 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어야 사회 전체가 편안하고 건강해진다.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평균 주택가격 2억 3200만원 근로자 10년 저축해도 내집 마련 요원… 보유율 54%로 뚝
전세도 값 치솟아 맘 놓고 못 구해 현실 도외시한 정책에 소박한 보금자리 꿈은 더 멀어져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가장 낮다. 한국인 자살자는 2012년 기준 10만명당 29.1명으로 OECD 1위이자 평균(12.1명)보다 17명이나 많다. 합계출산율은 1.25명으로 OECD국가에서 꼴찌인 것은 물론이고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집계한 224개국 가운데서도 219위를 차지한다. 현재가 매우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삶은 왜 이처럼 암울한 것일까. 그 중에는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람이 사는 데 기본이 되는 의식주에서 한국사회에 유독 두드러지게 불안정한 요소가 주생활이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땀 흘려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근로소득만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감정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 6월 기준 한국의 평균주택가격은 2억3,200만원. 반면 국세청이 최근 내놓은 근로소득을 보면 근로자 1,926만명 가운데 90%가 1년에 겨우 2,244만원을 번다.(2012년 기준) 한국감정평가원의 자료에 따라 2012년 주택가격으로 비교해본다면 2억3,100만원 선. 근로소득자 대부분이 1년 내내 힘들게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넘게 저축해도 집 한 채를 사기 힘들다는 뜻이다. 근로소득은 2009년에 2,061만원에서 8.9%가 늘어난 것이지만 이 기간 동안 물가는 9.42%나 올랐으니 실질적인 소득은 줄어든 셈. 이 기간에 집값은 6.5% 정도가 올랐다. 2,244만원은 그나마 90%까지 합쳐서 해당되는 금액이고 근로소득자 중 딱 절반에 자리잡은 사람의 연소득은 1,892만원이니 봉급생활자 963만명이 한 달에 155만원도 못 번다는 뜻이다.
집을 못 사면 전세라도 맘 놓고 들 수 있어야 하는데 전세가 역시 2013년 7월에 1억3,200만원이던 평균가격이 2014년 6월에는 1억4,000만원으로 1년 사이에만 800만원이 올랐다. 특히 우리나라 주택에서 가장 흔한 형태인 아파트 전세는 1억5,500만원에서 1억6,900만원으로 1년 사이에 1,400만원이, 전국 인구의 절반쯤이 몰려 사는 수도권 아파트는 1억9,500만원에서 2억 1,500만원으로 2,000만원이 1년 동안 올랐다. 대출이 아니라면 근로소득자 대부분이 아파트 전세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겹게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자가주택 보유율은 1980년 58.6%에서 2010년 54.2%로 오히려 떨어진 상태이다. 집값이 대부분의 근로소득자에게 턱없이 비싼 것도 문제지만 한국의 주택 구성이 실질적인 소득 수준이나 가구 구성과 차이가 있고 점점 더 나빠져가고 있다.
한국의 가구수는 인구증가에 비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인구센서스상 2005년 4,727만명이던 인구는 2010년에는 4,858만명으로 2.8%가 늘어난 반면 가구수는 2005년 1,598만 가구에서 2010년 1,758만 가구로 9.9%나 늘었다. 특히 1인 가구가 급증해서 2005년에는 319만 가구이던 것이 2010년에는 414만가구에 이른다. 5년 사이에 23.9%가 늘어났다. 1인 가구는 30대 이하의 남성과 60대 이상의 여성으로 대다수가 넉넉한 계층은 아니다. 2010년 평균 가구원수는 2.69인으로 이들에게 맞는 집은 방 2개거나 3개인 곳이다.
그런데 한국 주거형태에서 중대형 아파트나 월세 임대가 가능한 원룸은 늘어나는 반면 단독주택은 계속 줄고 있다. 2010년 기준 아파트는 818만채로 모든 주택의 59%를 차지하는 대신 단독주택은 379만채로 27.3%에 불과하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딱 한 가구, 1.0인 반면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가구수는 1.8로 모든 주거형태 가운데 가장 많다. 심지어 6가구 이상이 사는 단독주택도 4.7%(2010년)나 된다.
태백 인제 완주 등과 서울에서 주민들에게 맞는 지역재생사업을 계속해온 건축가 주대관(엑토건축 대표) 문화도시연구소 대표는 “땀 흘려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이들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주거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서울만 봐도 2000년에서 10년 사이에 원룸은 11.5%, 방 4개짜리 주택은 44.4%가 늘어난 반면 방 2개짜리는 10.7%가, 방 3개짜리는 19.2%가 줄었다. 서민가구가 원하는 주택이 사라져간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괴리 때문에 빈 집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늘어가고 있으며 그와 비례해서 ‘서민임대’아파트를 짓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도시개발공사(SH)의 적자가 늘고 있다. 결국 이 적자를 떠받치는 것은 세금이니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 다시 서민부담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그나마 주택가격이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오르지 않으면서 단독주택 중심의 마을을 허물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 재개발이 주춤해진 것은 다행이지만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서 주거불안이 악화될 소지는 여전히 크다. 더구나 현실을 도외시한 서민주택 정책이 실질적인 근로자 가구주들에게는 편안한 주거지를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집 이야기’는 현실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땀 흘리고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성실한 노동계층이 주거불안을 덜 수 있는지 대안과 정책비판 중심으로 다뤄나가겠다.
[서화숙의 집이야기](2)힘들게 마련한 집, 빼앗지는 마시오713 한국
낙후 지역 개선 위해 70년대 도입 같은 면적에 서너배 많은 집 지어
건설업체를 너도나도 달려들어
지역주민도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높은 분양가에 집 잃고 떠나는 신세
조합 해산하려해도 매몰비용 부담
건설사가 뒷돈 줘 사업 부추기기도 정부는 "민간 일이라서..."수수방관
고만고만한, 오래된 집들이 모인 사당1구역 재건축 지역. 이와 비슷한 마을을 헐고 재건축된 오른쪽 뒤의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들이 파산 위기에 있다. 민간 건설시장에 맡겨 왜곡되어 버린 재건축은 이제 서민들의 집을 지켜주면서 동네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
“영감이랑 리어카 끌고 야채장사 해서 내 평생에 이 집(다세대 주택 반지하) 겨우 하나 마련했어요. 아파트로 재건축을 한다는 사람들이 저한테 ‘이 건물이 3층짜리인데 여기에 25층 올라가면 아파트 한 채를 못 주겠냐’고 해요. 돈 더 안내도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니까 재건축에 동의를 했어요. 그런데 조합 승인이 나니까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해요. 알고 보니까 1억도 넘게 돈을 내야 되는 거예요.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분양신청은 하지도 않았어요. 조합에서도 탈퇴했어요. 그런데도 조합이 그 동안 쓴 돈을 다 물어줘야 한대요. 그 돈이 어마어마해요. 재작년에 서울시에서 조합에 찬성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면 조합을 해산해도 된다고 그래서 이제 살았다 했어요. 그런데 재판에서 뒤집혔대요. 구청에서도 다시 재건축을 하라고 해요. 세상에 빼먹을 데가 없어서 나 같은 사람 집을 빼앗아 먹으려고 하냐고요.”김영애(67)씨.
“76년에 이 동네가 논이었어요. 그때 땅을 사서 집도 직접 지었어요. 대지가 35평이니까 재건축이 될 때 33평형 아파트를 신청하면 1억원은 되돌려 받을 거라고 해요. 그래서 재건축에 동의를 했어요. 그런데 재건축한다면서 우리집을 감정평가하더니 평당 1,230만원이래요. 아파트 조합원 분양가는 1,450만원이고요. 이 동네 땅값이 저 위 언덕도 평당 2,200만원이에요. 4,800만원을 더 내야 이 집보다도 적은 아파트를 얻는다니까 그걸 누가 하겠어요. 처음부터 감정평가액과 분양가를 일러줬으면 재건축 찬성도 안 했지요. 그래서 조합해산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그 길도 막히고 조합이 쓴 돈은 우리가 물어내야 해산이 된대요. 왜요?”오기헌(62)씨.
“나는 노후대책이 이 집 한 채라 아파트에 살 능력이 없어요. 다달이 관리비 나가지 재산세 많이 나오지. 평생 택시운전이 그나마 편한 일이었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한 푼 두 푼 모아서 79년에 30평짜리 단독주택 하나 샀어요. 92년에 주택업자가 돈을 대서 3층 다가구로 올렸어요. 그때는 주택업자들이 다가구에 전세로 들어오는 돈을 빼가는 대신 공사를 해주는 식으로 많이들 개축을 했어요. 이젠 나이도 들고 지병도 있어서 여기 사글세로 먹고 살아요. 당연히 재건축에 반대했지요. 그런데도 여기는 재건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같이 반대한 사람도 아파트 분양해서 생긴 수익에 그 동안 들어간 비용을 다 빼고 집값은 후불로 계산해 준다는 거예요. 여기 바로 옆 동네 아파트가 분양이 안되어서 조합원들이 지금 몇 억씩 빚을 지고 있어요. 파산 신청에 들어갔어요. 여기도 그렇게 안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저처럼 재건축 찬성도 안 한 사람도 집에서 쫓겨나고 집값은 받을지 말지 모른다는 말이잖아요. 서울시에 민원 하면 구청에 하라 하고 구청에 민원 하면 ‘법대로 처리했습니다’이래요. 저희 같은 사람 거리로 내쫓는 게 법대로예요?”유택영(74)씨.
서울 동작구 사당동 164~170번지에 살고 있는 진짜 서민들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임금근로자의 대다수(90%)가, 버는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10.3년을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집을 갖는다는 게 턱없이 어려운 현실(7월 7일자 28면 보도)에서 그나마 집값이 싼 70~80년대에 집을 간신히 마련한 서민들이 집을 빼앗길 위기에 있다. 아파트 건설이라는 호재를 노리는 건설사와 조합, 이를 감싸고 도는 지방자치단체, 허점투성이 재건축 정책 때문이다.
재건축은 낙후된 지역을 개량 개선하기 위해 70년대부터 꾸준히 시행되어온 정책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낙후 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아파트촌으로 바꿔버리는 폭력적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노태우 정부에 들어서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조합을 만들어서 하도록 형식적 절차는 민주화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집값이 치솟으면서 오래된 마을을 헐고 아파트 단지로 바꾸면 한 몫을 볼 수 있다는 현실 때문에 재건축 하면 오래된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허름한 주택이라야 살 수 있는 서민 세입자는 쫓겨나는 양상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가 될 경우 용적률(같은 면적에 지을 수 있는 건물 면적)이 400% 가까워서 똑 같은 면적에 4배나 많은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기대수익을 보고 건설사들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재건축이 가능하게 주택조합 결성을 지원하고 그 후 강제 철거작업과 반대하는 주민들의 퇴거에도 적극 자금을 댔다. 철거에는 ‘용역’이라는 이름의 폭력배들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재건축이 일어나는 구역마다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의 항의가 잇따랐고 살인과 자살, 폭력도 일어났지만 정부는 민간의 일이라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했다. 게다가 재건축조합이 일단 결성되면 무르기가 힘들게 온갖 제약을 부여했다. 초기에는 주민들의 절반만 찬성을 해도 재건축 조합이 결성됐고 조합이 결성된 지역은 개인주택의 증?개축이 금지됐다. 단독주택에 세를 놓거나 하숙을 쳐서 먹고 사는 주민들이 반대를 해도 일단 조합이 결성되면 집을 수리조차 할 수 없게 되니까 울며 찬성을 하거나 동네를 떠나는 수 밖에 없다. 재건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동네 전체가 낙후하고 심지어는 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이 된다. 현재는 주민의 3분의 2 동의로 재건축 조합이 결성되도록 바뀌었지만 일단 조합이 결성되면 무르는 게 힘든 것은 마찬가지. 아파트 건설을 기어코 성사시키려는 아파트 건설업체들의 노력도 집요하다.
지역 개량은 정부의 책임도 있는 것인데 집값 상승으로 민간에서 활발하다는 이유로 민간에 맡겨두기만 함으로써 지역 개선은 주민의 살 권리가 아니라 시장경제에만 맡겨져 흘러왔다. 재건축이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덤썩 덤벼든 지역주민들의 어리석음도 이것을 부채질했다.
서울지역을 보면 아파트 재건축의 용적률은 한때 250%선으로 떨어졌으나 오세훈 시장 이후 다시 올라가 300%에 이른다. 똑같은 땅에 세 배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 땅값이 평당 2,100만원인 지역이라고 해도 실질적인 땅값은 3분의 1인 700만원이라서 건물 건설비용을 합친다고 해도 1,200만원 선에서 아파트 건설이 가능해진다.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분양가 1,900만원과 비교하면 한 평에서만 남는 돈이 어림잡아 700만원이다. 물론 이 돈에서 기존 주택 철거와 이주비 보상, 아파트 건설은 물론 분양까지 기다리는 동안 들어갈 금융비용, 광고비 등(이하 ‘관리비용’이라 칭한다)을 다 빼야겠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이윤이 보장이 된다. 1만 평짜리 단지라면 3만평의 건물이 나오고 2,100억의 이윤이 잡히니 관리비용을 감안해도 이익이 쏠쏠하다. 재건축을 둘러싼 공무원 뇌물사건이 터졌다 하면 수십억이고 조합장을 차지하려는 이권다툼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것도 그만큼 재건축 이윤이 컸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는 분양까지 금융비용이 적게 들어서 건설업체가 뛰어들더니 부동산 경기가 죽은 다음에는 회사를 굴려야 할 절박감에서, 살아남은 대형건설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재건축을 지원한다. 이래저래 일단 재건축의 ‘덫’에 걸려들면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앞서 말한 사당동 164~170번지는 2010년 8월에 지역주민 243가구 가운데 204가구가 동의해서 조합이 설립됐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아파트가 돈도 안되고 자기 집의 감정평가액으로는 입주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가구가 이탈하며 조합설립 조건인 3분의 2 지지는 진작에 깨진 양상. 그런데도 이미 결성된 조합을 해산할 방법이 없다.
서울시가 2015년 1월까지 한시적으로 ‘주민들 50% 이상이 반대하면 조합을 해산할 수 있다’는 원칙을 2012년에 세워준 덕분에 이 지역 132가구가 조합해산 신청을 했고 동작구청은 2012년 11월에 조합해산(조합설립인가 취소처분)이라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조합측이 이에 맞서 법원에 해산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낸 것. 6개월 내에 마치도록 한 행정소송 1심은 1년 반을 끈 끝에 올 4월에 재건축 조합편을 들어 해산 취소 판결을 내렸다. 해산처분을 요청한 사람들의 서류가 대필이 되었다는 점에서 본인 의사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 이에 대해 조합 해산청구를 요청한 쪽은 “남편이 손가락이 없어서 아내가 써주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글씨를 몰라서 가족이 써준 것을 위조문서 취급한다. 무인(지문날인)은 본인 것이 맞다”고 분개하고 있고 조합측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대신 써준 서류로 조합을 해산하라고 요청한 것이 틀렸다는 걸 법원이 바로 본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조합 해산 청구를 요청한 주민들은 항소심을 제기한 상태이다.
그러나 동작구청은 1심 판결에 따라 이미 6월에 조합에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했다.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면 지역 내 토지나 건축물의 모든 권리자는 사업시행자인 조합의 동의 없이는 토지나 건축물을 사용하거나 수익을 낼 수도 없게 된다. 조합이 재건축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아니라 1심 재판이 끝난 상태에서 조합측 손을 들어준 이유에 대해 동작구청 최인수 도시관리국장은 “변호사 5인에게 자문을 받았는데 소가 번복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들으려고 변호사 5인을 공개해달라고 하자 난색을 표시했다.
재건축이 시행되면 주민들은 아파트 분양에 참여하거나 감정평가에 따른 가격대로 집을 팔고 떠날 수 밖에 없다. 같은 비용으로 이 정도 교통입지에 같은 집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재건축조합이 해산될 경우 그동안 들어간 비용을 해산청구자가 내야 한다는 규정도 반대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 조합측은 2010년 조합 설립 이래 56억원을 썼으니 조합을 해산하면 이를 매몰비용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재건축에 반대하는 이들은 “설계비가 21억원이나 되고 철거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철거계약금만 4억원이 산정되는 등 터무니 없는 비용”이라고 말하고 조합측은 “회계감사를 다 받은 자료이니 문제가 없다”고 맞선다. 그러면서도 조합측은 “재건축을 하게 됐는데 (필요없게 된) 매몰비용이 맞게 산정됐는지 왜 따지느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돈은 모두 재건축 시행사로 선정된 삼성물산이 무이자로 대출해준 비용이라고 조합측은 밝혔다. 건설회사가 뒷돈을 대주지 않았다면 무리한 지출과 그에 따른 부담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노후준비로 자그마한 집 한 채 가진 이들이 평생 땀 흘려 얻은 집을 잃을지도 모르게 됐다. 이게 과연 올바른 일일까.
서화숙의 집 이야기 3 집은 날리고 남은 건 빚 뿐인 아파트 720 한국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겠다고 한 게 살던 집 잃고 빚만 떠안고, 믿을 수가 없어요.”땅만 내주면 아파트를 준다고 한 주택조합과 컨설팅 회사의 꾐에 넘어가 멀쩡한 집을 잃은 이수 리가 아파트 조합원들은 이게 누구 잘못인지 좀 밝혀내 달라고 호소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452채의 아파트가 작년 가을에 완공됐다. 분양도 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아파트 전체가어둑어둑하다. 불이 들어오는 창이 별로 없다. 175세대만 입주를 했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171번지 일대, 지난 주 기사(7월 14일자 28면 보도)에서 파산 위기에 있다고 난 바로 그 아파트 단지이다. 이 아파트 단지도 고만고만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주택을 가진 지역주민들의 주택조합으로 건설됐다. 그런데 조합원 238 가구 가운데 입주한 집은 65가구 뿐이다. 그나마 처음부터 조합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들어간 집은 45가구. 122가구는 조합이 마구 팔아 넘긴 ‘물딱지’(자격 없는 이들에게 발행한 분양권)여서 정리가 됐고 20가구는 추가로 조합원을 모집하면서 자격을 얻은 이들이다. 조합원으로 시작했으면서도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자식들의 집에 얹혀 살거나 주변에서 방을 얻어 살고 있다.
“33평 땅만 내놓으면 33평형 아파트 한 채를 준다기에 시작했어요. 우리 집이 35평짜리 단독주택이니까 남는 2평은 땅값을 쳐준대요. 2008년인가? 남편 통장으로 1,000만원이 입금됐어요. 평당 500만원이예요. 당시 땅값이 평당 1,200만원인가 그랬다는데 우리가 뭐 아나요? 그래도 새 아파트가 그걸로 생긴다니까 믿었지요. 그런데 공사비가 많이 들었다고 2009년에 분담금을 5,500만원씩 더 내래요. 이상하다 했는데 남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2012년에 분담금을 2억8,700만원을 내라는 거예요. 기가 막혔지요. 그래서 조합이 도대체 어떻게 일을 했냐고 주민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황당한 일 투성이예요. 그래서 조합 집행부도 바꿨어요. 그러면 뭐해요. 전에 조합이 잘못한 책임을 우리가 똑같이 져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못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돈을 낼 수 없으니까 못 들어가는 거예요.”84년에 이곳에 이사왔다는 최연옥(57)씨 부부는 이렇게 해서 아들 넷을 키운 집을 잃었다.
1968년인가, 69년인가 이사온 해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최세완(74)씨는 40평 남짓한 단독주택에 대추나무 감나무를 심고 삼남매를 키웠다. 길 가 집이고 상점도 있어서 최연옥씨보다는 가격을 높이 받았다. “6평 조금 넘는 땅값으로 평당 1.000만원씩 받고 상가권리금 3,000만원은 따로 받았어요. 그럼 뭐해요. 아파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반지하 전세에서 살고 있어요. 아파트만 안 했으면 지금쯤 상점 세(임대료) 받으면서 편하게 살았을 텐데. 전 조합장이 그랬어요. 나만 입다물고 가만히 있어주면 다 해준다고, 도장 좀 찍어달라고. 그 말을 믿었던 게 더 화가 나요.” 최씨는 꼭 이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암이 발병해 수술만 세 차례를 받았다고 했다.
이수 리가 아파트의 과거와 현재에는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의 모든 부조리가 녹아있다. 주민들이 자기 권리를 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주택조합 설립에 도장을 찍어준 게 시작이다. 아파트가 건설되면 돈을 번다고 생각한 이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 책임만 추궁하기에는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이 너무 가혹하다. 조합의 부패, ‘컨설팅사’로 불리는 아파트 건설 사전정지 업체의 부패, 그들의 자금줄이 되어주는 대형건설사의 무책임, 금융업계의 부도덕이 어우러져서 시민들의 주거지를 약탈하는데도 지방정부가 지역주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기는커녕 업자들의 편의대로 움직였다. 주민들은 자기 땅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컨설팅사와 조합의 감언이설이 아닌 진짜 전문가들의 자문은 단 한 군데서도 받을 수 없었다.
6,600여평인 이곳을 아파트 단지로 만들려는 시도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2000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지금은 퇴진하고 전 조합장(김인창)이 구속되어 형까지 선고 받은 이전 주택조합자료에 따르면 2001년에 주택조합이 결성되었다. 7개 건설사가 시행사로 나섰다가 포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7년 7월에 현재의 시공사인 LIG건영으로 확정이 됐다. 2008년 11월에 지역주택조합으로 인가가 났다.
지역주택조합은 재건축조합과 달리 서울에 거주하면서 집은 없는 이들에게 조합 자격을준다.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 제공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집이 있으면서도 이곳 주민들이 지역주택조합을 하게 된 배경은 집들이 너무 깨끗해서 재건축 지역으로는 선정될 수 없었기 때문.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이 땅을 마련해서 짓는 것이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강제할 임대주택 건설의무가 없는 대신 용적률이 좀 낮았다. 조합원들이 집이 없는 세대주여야 하기 때문에 원래 있던 집을 모두 조합에 출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주택조합의 용적률이 재건축조합보다는 낮다고는 해도 200% 가까이 됐고 착공에 들어갔을 때에는 224%로 올랐다. 그러니까 아파트 건설에 들어가는 땅값은 시세의 절반 이하였다. 더구나 33평형 아파트의 실평수는 25.7평이니까 주민들로부터 33평의 땅을 받아서 269%의 용적률로 아파트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거꾸로 계산하면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평당 땅값은 그보다도 훨씬 더 떨어진다는 말. 가령 평당 1,200만원에 땅값을 쳐줬다면 실제로 아파트 건설에 들어간 땅값은 평당 446만원이다. 평당 건설비는 310만원이라 주장했으니 평당 756만원이 아파트를 짓는 데 진짜로 들어간 돈이다. 땅을 시세대로 사들였다고 해도 33평형 아파트를 지은 원가는 2억 4,948만원이다. 그런데도 땅을 무상으로 내준 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만 2억8,700만원을 더 내라는 것이 시공사의 주장이다.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용면에서 땅값이 건설비용보다 훨씬 더 비싼 것을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더구나 용적률을 감안하면 주민들은 89평의 땅을 제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시공사측은 조합이 732억원을 시공사에 빌렸고 시공사 보증으로 빌린 프로젝트파이넌싱(PF) 대출금 900억원까지 받기 전에는 아파트를 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아파트로 들어갈 길이 막힌 것은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합측은 PF 대출을 한 금융업체와 시공사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소송을 냈으나 올 5월 1심 판결 결과 일부 패소했다. 시공사의 채무는 694억원으로 줄었으나 나머지는 인정하라는 것이 재판부 입장이다. 결국 694억원과 PF 대출금 900억원, 미지급 공사비에 연체이자까지 포함해서 2,780억원을 갚아야 아파트를 내주겠다는 것이 시공사 입장이다. 미분양 아파트를 판매해서 갚는다고 해도 1,377억원의 채무는 조합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근 시세보다 높은 분양가에 아파트가 다 분양된다는 보장도 없다.
반면 조합은 조합이 정식 인가가 나기도 전인 2008년 4월에 컨설팅회사에게 PF 대출을 900억원이나 해줬는데 그 비용이 어떻게 쓰였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건 연대보증인인 시공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택조합은 외형적으로는 조합원들이 비용을 모아 땅을 사고 건설사를 지정해서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조합은 허수아비거나 이권에 관심많은 개인일 뿐이라 속칭 ‘컨설팅 회사’로 불리는 부동산 기획회사들이 주민들을 접촉하고 설득하고 땅을 사들여서 건설을 주도한다. 이때 진짜 비용을 대는 것은 아파트 단지 건설로 이득을 보는 시공사이다. 2008년 4월에 컨설팅 회사인 피엔씨에이원이 대구은행 새마을금고연합회 등으로부터 900억원을 대출할 수 있었던 것도 LIG건설이 보증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돈이 시공사로 들어갔다가 모회사로 옮겨간 후 그 중 694억원이 다시 대출 형식으로 건설비로 투입되었다고 조합원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도 2009년 4월 시공사와 PF 대출이 별개로 되어있는 컨설팅회사의 부채를 조합이 그대로 떠안는 것으로 정관이 바뀌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지역에 현재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데 드는 순비용은 1,128억원 정도이다. 여기서 주민들이 땅을 전부 제공했다고 하면 순수건설비는 462억원이 고작이다. 그런데 땅을 내놓고도 1,377억원의 채무를 나눠 갚아야 자기 아파트 한 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현재 조합원들의 처지이다. 조합인가부터 완공까지 5년, 착공부터 완공까지 3년간의 관리비용을 감안해도 과도한 비용추궁이다. 문제를 일으킨 이전 조합은 땅을 팔지 않겠다는 ‘알박기’ 주민들로부터 땅을 사들이는데 들어간 돈이 많았다고 주장했으나 증거는 없는 상황. 걔중에는 38평을 61억원에 사들였다는 컨설팅 회사의 자료가 있으나 이 돈이 실제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설사 이처럼 알박기 비용을 무리하게 지급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같은 자금은 땅이나 조합원 외에는 실제로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조합에서 나온 돈도 아니고 컨설팅 회사가 자체 조달한 돈도 아니다. 시공사와 대출해준 금융기관에서 나온 돈이다. 그렇다면 그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 감시하지 못한 책임을 조합에만, 주민들에게만 지우는 것이 올바를까.
서화숙의 집 이야기] (4) 서민 집 빼앗기 거드는 정책727 한국
15년 된 건축물이 노후 주택? 재건축 부채질하는 지자체
재건축예정지 '서초 15구역'
주민들 요구로 市 감사 들어갔지만 구청 "반대 30% 미만" 인가취소 안돼
찬성 의견도 45%에 그쳤는데...
아파트 추진서 완공까지 보통 10년
조합들이 시공사 감시해야 하지만 연임 가능한 임원들의 야합 일쑤
주택법은 단지에 공공시설 요구, 제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정부
잘못된 옛날 방식 언제까지 계속되나
서울 서초구청이 재건축예정구역을 풀지 않는 서초15구역의 골목. 도대체 어딜 봐서 노후불량 주택이 많아서 재건축해야 한다는 것일까.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흔히 재건축 재개발로 불리면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 오밀조밀 들어선 동네를 완전히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도시정비사업은 조합, 컨설팅업체, 시공사가 합작하여 반대의견은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조합은 형식적 책임은 가장 많이 지지만 실제로는 전문지식 없는 지역주민이기 일쑤이고 실질적인 사전정지 작업은 이것만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업체가 맡는다. 이런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파트 분양이 완료될 때까지 시공사가 직접, 혹은 금융대출로 책임을 진다.
그런데 이 삼각연대보다 더 어마어마한 주역이 실은 정부이다. 도시정비사업의 인허가는 지방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조합_시공사_컨설팅업체가 아무리 어느 동네를 아파트 단지로 갈아 엎으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만 엄격하게 감시를 하면 지역주민이 억울하게 제 집을 빼앗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동시에 지극히 이기적인 지역주민이 자기 집을 여러 개 지분으로 나눠 팔거나 그 쪼갠 지분으로 최근에 이사 와서 아파트 투기를 하는 걸 막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재건축 재개발 등이 일어나는 지역을 보면 지방정부의 이런 감시 작업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부채질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렇다고 지방정부만 탓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정부 정책이 서민 집 빼앗는 것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법규와 시행령이 그렇고 판례조차 그렇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이수중학교와 이수초등학교 사이 2만4,800평 주택가는 ‘서초15구역’으로 불린다. 지하철 2호선과 7호선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건설업체들이 눈독들일 자리이나 땅값 자체가 워낙 비싸서 요즘 같은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는 수익이 나기도 힘들어 보이는 곳이다. 이 지역은 2011년 10월 주민들이 요청했다며 서울시(실제로는 서초구청)가 재건축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재건축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들어본 적 없다는 주민들이 나서면서 반대운동이 시작됐다.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면서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이 30%가 될 경우 지역해제를 할 수 있었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245명의 서명을 받아 구역 해제동의서를 낸 결과 서울시가 2012년 12월부터 작년 6월까지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는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주민 45%는 찬성, 24.15%는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반대주민들의 요청으로 서울시가 작년 9월부터 주민감사에도 들어간 결과 서초구청이 주민 의견을 직접 묻지 않고 재건축을 원하는 이들만의 의견으로 예정구역 지정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도 재건축예정구역 인가는 취소되지 않았다. 서초구청은 실태조사 결과 반대 의견이 30%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찬성의견이 70%에 크게 못 미치는 45%라는 점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서초구청은 올 2월25일에 전체 주민의 3분의 2가 서명하여 다시 재건축을 요청했다며 ‘주민제안’방식에 따른 재건축 예정지역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재건축을 반대하는 김희정(68)씨는 “남편도 아프고 이 나이에 어디로 가요. 나는 재건축에 목숨 걸고 반대하는 사람인데 처음에 재건축을 요청한 사람들 명단에 우리집이 세 ‘구찌’(세 필지의 주인)로 들어가 있었어요. 반대하는 주민들이 해제동의서를 받을 때 정보공개청구로 구청한테서 재건축을 요청한 주민명단을 받았더니 거기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이게 말이나 돼요?”라고 말했다. 반대운동을 하는 이들은 당시 재건축 요청자로 표시된 사람 중에 130명이 엉터리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현재 그들 중 일부 대표를 뽑아 재건축추진위원들을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혐의로 고발까지 한 상태다. 임명순(65)씨는 “올해 재건축을 제안했다는 사람들 명단도 달라고 했더니 구청에서 개인비밀정보라며 주질 않아요. 그러면 그 명단도 가짜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했다.
설사 명단이 다 진짜라고 해도 주민 전체가 찬성하지 않았는데 재건축이 강행되는 것 자체에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재건축 재개발은 조합원 자격이나 정부 지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지역 주민의 3분2가 동의하면 구역지정이 된다. 법에는 불량주택의 비율이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 노후주택을 판정하는 기준은 지방정부마다 매우 달라서 멀쩡한 구역도 지정이 된다. 앞서 말한 방배동 김희정씨네 집도 98년에 지은 집이다. 원래 재건축은 ‘노후불량 건축물이 50%이상인 지역으로 준공 후 15년 이상 경과한 다세대, 다가구 건축물이 30%이상인 지역’(서울시 도시주거환경 조례)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서초15구역은 서초구의 실태조사에서 노후불량 건축물이 57.78%, 15년 이상된 다세대(다가구) 건축물이 31.44%라는 판정을 받았다. 판정이 공정했느냐는 별개로 이 규정 자체가 문제가 있다. 불과 15년 된 건축물을 노후 불량주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가들은 콘크리트의 수명이 100년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일단 구역이 지정되면 증개축을 못하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으면 떠나야 했다. 과거에는 아파트를 건설하면 큰 이익을 보기 때문에 그 이익에 매달리는 그악스런 소리에 3분의 1 미만인 반대자들이 쫓겨가야 했고 그걸 법규가 나몰라라 했다. 최근 들어 반대하는 이들이 그나마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 손해본다는 이유로 이웃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헌법에 보장된 사유재산권이나 거주이전의 자유를 억지로 포기하게 하는 도시정비법의 근본적인 폭력성은 전혀 문제제기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파트 단지 건설이 더 이상 돈이 되지 않자 빠져 나오려고 해도 일단 구역으로 지정되어조합이 결성되면 빠져 나오는 것은 더욱 힘들다. 착공도 하기 전인데도 조합_시공사_컨설팅 업체가 쓴 돈(매몰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로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이는 지역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계획 단계부터 문제 소지를 안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임과 더불어 서울에서는 더 이상의 재건축 재개발이 허가 나지 않게 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미 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뒤집기가 매우 어렵다.
우선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해 조합과 시공사는 사업비를 계산해서 넣어야 하는데 이때 필수적인 것이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 땅이 확보되어야 아파트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동산 가격을 평가하는 감정평가업체는 지방정부(서울이라면 구청)가 제시하는 2개 업체 중에서 고르는 것이 관행이라 결국 지방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더구나 업체가 땅값을 평가하는 기준은 주택공시지가에 따른다. 주택공시지가는 실거래가의 60~80%선이다. 이렇게 조합원의 재산을 적게 추산해서 사업비가 적게 추산되면 사업시행인가를 받는 것은 시공사로서는 쉬워지지만 사실과 달리 계산한 땅값 때문에 일부 주민은 억울한 보상을 받기도 한다. 완공 즈음에 가면 비용계산이 어긋나 개인분담금이 크게 늘어난다. 문제는 틀린 분담금조차 진작에 제시하고 사업시행 인가를 받는 조합도 드물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아파트가 완공만 되면 일반분양가보다 싸게 받는 조합원들이 올라가는 아파트값으로 이 모든 손해를 벌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결국 모든 부담은 조합원 차지가 된다. 추진에서 완공까지 10년 가까이 걸리는 단계에서 조합이 시공사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조금 나아질지 모르지만 보통은 조합의 인적 구성은 결성되면 완공까지 바뀌는 경우가 거의 없다. 조합 임원은 임기를 2년으로 하고 연임하도록 되어 있는 정관이 악용되어서 계속 연임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 내에서 서로 다른 인력이 서로 견제하고 자정작용을 하는 통로가 봉쇄되어 있다. 심지어 구역 지정 이전에 생겨난 추진위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2010년에 ‘합법하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추진위 때부터 조합으로 이어지는 단일 인력과 시공사가 야합하는 것을 막을 통로는 막혔다.
아파트 분양이 잘 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분양이 어려울 때는 실상 시공사도 어렵다. 근본적으로 재건축 재개발이라는 것이 아파트 단지 건설을 허용하는 대신 공공시설을 민간에 떠넘기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단독주택지의 용적률은 150%이다. 이게 재건축 재개발이 되면 220~300%의 용적률을 적용받게 된다. 그만큼 불어나는 면적을 팔아서 사업을 충당한다. 그 이득을 본다는 이유로 주택법은 아파트 단지 내에 온갖 공공시설을 갖추길 요구한다.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어린이집 주민운동시설 도서실 공원 녹지 등은 원래라면 정부가 공급해야 할 공공시설들이다. 동네마다 지방정부가 지어주어야 할 시설을 공동주택의 필수적인 시설로 법(주택건설기준등에 관한 규정)에 명시하고는 민간에 떠넘겼다. 이에 대한 부담은 시공사가 결국에는 조합(주민)에 안겨버리는 방식으로 끝난다. 입주자들 스스로 공공시설을 짓는 격이다. 아파트 단지화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책 <아파트 한국사회>를 쓴 건축가 박인석(명지대)교수는 “공공이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면서 전국에 아파트 단지는 계속 장려되고 그렇게 늘어난 아파트 단지들이 한국인의 의식구조까지 망가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네를 살리고 공공은 공공의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주거지 개선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시미관을 위해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지역의 주거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부터 정부 역할 민간에 떠넘기기까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언제까지 잘못된 옛날 방식을 계속할 것인가.
서화숙의 집이야기](5) 단지라는 쾌락과 위협 813 한국
소통단절·집단이기주의...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가 문제다
녹지·놀이터·상가 등 편리함 많지만 관리사무소 통해 公私문제 처리해
"얼마 이하로는 팔지 맙시다"집값 담합에 건축하자 공개 막고 임대 입주자들 차별 등 부작용
주택단지를 단지화하는 정책이 불씨
주택협동조합 등 대안적 개발도 단지화의 유혹에서 못 벗어나
아파트든 주택이든 단지라는 거대한 사유지 안에서 주민들은 집단이기주의로만 뭉치게 된다. 서울 세곡동 임대주택 단지처럼 소유구조를 바꾸고 일부에서나마 가가호호를 살리면 단지의 단점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1996년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우리 집 아이들은 여덟 살, 일곱 살, 두 살이었다. 겨우 걷게 된 두 살 배기야 생활이 달라진 것이 거주지 탓은 아니겠지만 여덟 살과 일곱 살은 거주지를 바꾸면서 활동이 완전히 달라졌다.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 마당을 팠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멀리 고궁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이 확 줄었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마찬가지였다. 실내에 머물면서 입버릇처럼 “심심해” “놀아줘”하던 것이 사라지고 몸을 써가며 알아서 즐겁게 놀았다.
이건 어린이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일까. 직장을 다니면서 집이 그저 잠자는 공간이기만 하는 어른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일까.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주거공간, 아파트. 면적으로는 2억8,913만평(60.6%)이라서 단독(1억40만평 21.0%) 다가구(4,289만평 8.9%) 다세대(3,055만평 6.9%) 연립(1,138만평 2.4%)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국토교통부 통계)
아파트는 한 채에 한 가구가 들어 살면서 가구별 독립성이 확보된다. 단독 다가구 다세대 연립주택에 비해 최근에 지어진 시설이 많아 깔끔하다. 공간 내 녹지가 많아 보기에 쾌적하다. 놀이터 어린이집 경로당 주민체육시설 모임공간이 단지 안에 자리잡아 또래사교를 즐기기도 좋다. 상가가 단지에 가까이 있어 장보기도 편하다. 관리사무소가 관리를 맡아주고 경비가 보안을 걸러줘서 복잡한 시비를 겪을 일이 드물다. 대신 관리비를 내야 하므로 비용이 더 든다.
일단 외형만 보면 편리함은 많고 불편은 적다. 그러나 저 편리함 속에 모든 문제가 들어있다. 인간사회에서 당연히 겪어야 하는 관계, 그 관계에 따른 시비를 단절함으로써 인간관계를 만드는 소통방식 자체를 잊는다.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난 사례에서 그 대상은 모두 윗집이나 아랫집, 가장 가까이 사는 ‘이웃’이다. 그런데 아파트에서는 가까이 산다는 것이 이웃이 되는 요건이 아니다. 사람끼리 부대끼는 문제를 늘 직접 해결하지 않고 경비와 관리사무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처리해왔기 때문에 주민들은 나와 너가 아니라 나와 제3자였다. 이런 상황이 오래 누적되면서 생겨난 대화방법의 미숙함이 결국 직접 대화를 나눴을 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겨우 층간소음이라는 문제로 이웃을 죽이게 할만큼의 극단적인 감정으로 치닫게 만든다. 모든 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자기가 부리는 고용인을 통해서 이뤄진, 대등한 접촉을 경험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단점은 생각보다 크다.
나와 너의 관계는 없는 반면 수많은 ‘나’들은 비슷한 규모의 재산을 가진 동질성으로 그 동질성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기주의에는 무섭게 뭉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값을 지키기 위한 담합. ‘아파트를 얼마 이하로는 팔지 맙시다’라는 노골적인 공문이 아파트 단지에 붙는가 하면 아파트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는 상식을 벗어난 대응을 한다. 건축하자도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은 공개가 금지된다. 건축문제가 집값 때문에 개선이 안 된다. 7월초에는 토지주택공사가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여 임대아파트로 분양하자 주민들이 임대 입주자들의 이사를 집단적으로 방해하는 일도 일어났다.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임대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통로를 막아서 저소득층이 중산층 단지 내 길조차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심지어는 서울 강서구 어느 학교에서는 같은 학교에 배정된 임대 아파트의 학생들과는 자녀들을 한 반에서 배우게 할 수 없다고 학부모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민간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학생들이 따로 반을 구성한 적도 있다. 재산규모에 따라 사람을, 심지어는 그 소득차이에는 아무 책임도 없는 자녀들까지 차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사고가 얼마나 저급한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버젓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아파트 탓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아파트 탓이라기보다는 아파트의 단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주에도 잠시 언급했듯이 건축가 박인석(명지대) 교수는 아파트 한국사회라는 책에서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 모든 주택지를 단지화하는 주택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단지 아파트가 단지가 가장 많아서 아파트의 문제로 비칠 뿐이라는 것이다.
아파트란 건축법에서 5층 이상인 공동주택을 말한다. 한 동 짜리부터 134개동 짜리(서울 가락시영아파트)까지 그 규모는 다양하다. 주택법상 형태가 아파트든 연립이든 단독주택이든 일정 규모 이상의 단지를 형성할 경우 거기에는 주민공동시설을 넣도록 되어 있다. 박 교수는 60, 70년대에 공영아파트를 단지로 형성하면서 단지개발의 편의성을 알게 된 정부가 결국에는 민간분양에도 단지화를 사실상 장려하면서 아파트 단지가 전국을 휩쓸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단지화가 되면 공공이 공급해야 할 공익시설을 민간이 떠맡는다. 규모는 커질수록 수익은 남는다. 단지마다 관리사무소를 하나씩 두도록 한 법 때문에 소규모 단지보다는 대규모 단지가 환영을 받는다. 관리비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단지는 철도?고속도로?자동차 전용도로, 폭 20미터 이상의 일반도로, 폭 8미터 이상의 도시계획예정도로 분리되지 않은 덩어리여야 하기 때문에 공용도로를 허용할 수 없는, 대규모 사유지로 단지가 구성된다. 인근 임대아파트 주민의 출입을 끊는 것은 그래서 가능하다.
일단 단지가 형성되면 입주민의 동선은 지극히 단순해진다. 외부에서 단지 안으로 들어와 자기집으로 들어가는 단 하나의 길만이 생긴다. 그가 지나가며 보는 풍경, 만나는 일상도 지극히 단조롭다. 이웃과 접할 기회는 희귀하고 아파트 동 사이를 지날 뿐이다. 분양실적을 올리기 위해 원래는 외부공간이 되어야 할 베란다까지 모두 개인공간으로 막아버리게 허용함으로써 개별적인 가가호호란 사라졌다. 단지가 아니라면 고만고만한 소필지들 사이로 숱한 골목이 있고 소필지마다 다른 집이 있고 여러 종류의 가게와 공공시설이 적절히 어우려져서 지나다니는 사람은 매일 다른 풍경, 다른 상황, 다른 사람들과 스치며 각기 다른 매일을 체험했을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일상이다. 그런데 그걸 다 끊어버리는 것이 단지다. 요즘 아파트에서 타운하우스나 단독주택으로 취향이 바뀌는 것이 주택문화의 개선인양 광고하지만 이것 역시 단지로 형성되면 똑 같은 문제를 만들어낸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개인이 직접 책임지지 않는 집단주의, 금전적 이해관계로 뭉치는 배타주의 측면에서 똑같을 수 있다는 말이다.
7월 중순 서울 은평구청 회의실을 빌려 열리는 어느 주택협동조합의 설명회를 들어보았다. 주택협동조합(쿱Coop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쓴다)은 조합원끼리 단독주택을 함께 짓는 것으로 현재의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과거의 주택조합이 시공사 보증으로 은행대출을 받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면 이 주택조합은 자기가 책임지는 돈으로 자기 집을 건설하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막상 들어본 가입 권유 방식은 아파트 단지 경우와 매우 비슷했다. 땅값이 싼 곳에 공동으로 투자해서 단독주택단지를 만들고 그 안에 공동시설을 만들면 그들만의 더 좋은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상 이런 단독주택 단지라면 서울 강남이나 성북동, 경기도 용인의 땅값 비싼 곳에서 오래 전부터 몇 군데가 형성되어 있는데 역시 외부와는 소통을 거절하는 공간이다. 박 교수는 “공동의 이익에만 결사적인 이런 동질적 소집단의 단지가 전국에 많아질수록 바람직한 공동체 의식은 파괴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주거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소필지와 달리 단지는 관리사무소가 지방정부와의 충돌을 모두 대행하면서 입주민들은 모든 것을 개인책임으로 돌리고 정치의식도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아파트를 단지가 아니라 개별적인 가가호호로 만들면 역으로 이 같은 퇴행을 막을 수 있을까. 서울 강남구 세곡동 3단지는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지은 임대아파트이다. 이곳은 중간에 고층이 끼어있지만 1~5층은 베란다를 완전 개방공간으로 만들고 복도를 마주보게 해서 아파트 한 채마다 개성이 살아나고 주민들간의 면대면 접촉이 늘어나게 했다. 1층은 밖에서 바로 집집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가가호호의 특징이 더 살아났다. 밖에다 빨래를 너는 주민을 보니 진짜 사람냄새 나는 공간이구나 감탄이 일었다.
그러나 빨래를 널던 주민 김현정(36)씨는 불만이 많았다. “공간이 뚫려 있고 자연과 함께 하니까 다른 아파트에 살 때처럼 갇혀있다는 느낌은 안 드는 건 좋아요. 그런데 베란다로 눈과 비가 들이쳐서 겨울에는 얼어요. 현관문이 유리라서 겨울에 결로현상도 생기고요. 이 집은 북향이라 해가 덜 들어와요. 집집마다 속옷 너는 것도 다 보이는 건 별로예요.”주아무개(46)씨는 아예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며 건축하자를 고발했다. “이거 봐요. 테이프 하나만 붙였다 뗐는데 페인트가 전부 들고 일어났어요. 시멘트도 다 떨어져서 저기 저기 다 새로 발랐잖아요. 타일도 새로 바른 데 많아요. 작년 겨울에 준공한 집이 이게 말이 됩니까. 마감이 엉망이에요.”반면 송기숙(67)씨는 “단열이 잘되어서 겨울에도 뜨뜻하게 지내지만 연료비가 4만원 밖에 안 나와요. 5층 옥상에 있는 텃밭 농사 지어서 주민들끼리 나눠먹고. 진짜 좋아요.”라고 칭찬했다. 모두들 자기가 겪은 진실을 말한다. 확실한 것은 아파트 주민으로 건축하자를 기자한테 저렇게 적극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일부가 북향이고 시공의 질이 높지 않다는 점은 유감이지만 베란다에 눈비가 들이치고 겨울에 유리문에 결로현상이 생기는 것은 단독주택에는 흔한 일이다.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파트도 설계와 운용에 따라 집단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독립된 개인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불평으로 확실해 보였다.
Ibrahim Ferrer / Quiereme Mu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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