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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스크랩 또는 퍼온글

부양, 가족에서 사회로-부모 부양

by 이성근 2017. 8. 4.

부양, 가족에서 사회로]부모 모셨지만 자식에겐 기대기 힘든 낀 세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노인들

 


  

(75)는 부친이 사망하고 홀로 남은 노모를 15년 동안 돌봤다. 지난해 9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모는 수차례 골절 수술 등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다. 입원할 때마다 간병하는 것은 씨와 형제들의 몫이었다. 전형적인 노노(老老) 부양이었다. 씨와 형제들 모두 나이가 들어 간병과 생활보조가 힘들어지자 5년 동안 지방에 있는 민간 요양병원에 노모를 모셨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 덕에 요양병원에 내는 돈은 월 60만원 수준이었고, 그 비용은 형제들과 나누어 냈다.

 

씨에게도 자녀가 둘 있지만 빤한 형편에 할머니 생활비까지 내라고 할 수가 없어서자식들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았다. 지금 그가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다. 10년 전 교직을 퇴직한 그에게는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당장 먹고살기엔 지장이 없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거나 건강이 나빠져 병원 신세라도 지게 되면, 보험도 별로 들어놓은 게 없는데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56)에게는 89세의 어머니가 있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 계약직으로 다른 회사에 재취업한 씨는 형제들과 함께 몇 년 전부터 돈을 모아뒀다. 노모에게 장차 들어갈 병원비와 요양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부상으로 한동안 침상에 누워 지냈고, 그때마다 개인 간병인을 썼다. 매달 간병에 들어가는 돈이 200만원이 넘었다. 직장 다니면서 노모를 돌볼 수 없어, 3년 전에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 후 주말마다 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형제들과 모은 돈은 금세 바닥이 보였다. 결혼을 하지 않은 씨는 자신의 노후에 대해선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퇴직금과 국민연금 등으로 혼자 살고 있지 않을까하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부양(扶養)의 의미는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활을 돌보는 것이다. 민법 제947조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에는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정해놓았다. 지난 세기까지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다. 늙은 부모를 봉양한 뒤에 자신이 늙으면 자식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전통적인 부양의 대물림은 무너졌다. 정부는 지난 19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역할이 사라져가는 시기에 아직 이를 떠맡을 공공의 역할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도, 법적·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하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내놓은 보고서 노인 단독가구의 생활 현황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노인의 자녀동거율은 199454.7%에서 201127.3%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노인 단독가구는 40.4%에서 68.1%로 증가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인 부부 가구는 199426.8%에서 201148.5%, 독거노인은 13.6%에서 19.6%로 늘어났다. 자식세대는 자기들 삶을 꾸리기에도 벅차다. 취업난 등으로 청년층이 돈을 벌기 시작하는 나이는 점점 늦춰지고 있다. 이제 60대에 접어드는 이들의 상당수는 아직 자식들이 자리를 잡지도 못한 상황이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부모의 부양을 책임졌던 마지막 세대이자, 자신의 노후를 자식에게 맡기기 힘든 첫 세대가 됐다.

 

부모 부양과 자식 교육 등에 돈을 쏟아부어야 했던 지금의 노인세대들은 스스로를 위한 노후준비가 돼 있지 않다. 국가통계포털에 나온 가구 특성별 빈곤율을 보면 가구주 나이가 66세 이상인 은퇴연령층의 지난해 시장소득 빈곤율은 65.4%였다. 노인 10가구 중 6~7가구는 임금이나 사업소득 등으로 버는 돈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통계청이 지난 25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55~79세 고령층 중 지난 1년간 연금을 받은 사람 수(5847000)는 전체 고령층의 45.3%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공적연금(국민·사학·군인·공무원·기초연금)과 개인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다. 연금을 받는다 해도 그 액수는 대부분 생활비 수준에 못 미친다. 전체 연금 수령자가 받는 월평균 연금은 52만원에 그쳤다. 수령액이 10만원 미만인 비율도 0.7%였고, 10~25만원 46.8%, 25~50만원 26.2%였다. 연금액수가 월 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 전체의 73.7%였다. 연금을 한 달에 150만원 이상 받는 이들은 8.7%에 불과했다. 가족에서 사회로, 부양의 공공화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 멀고 퍽퍽한 노년이다. 7.31 경향

 

부양, 가족에서 사회로]부양의무자 기준없애 공적 역할 확대

책임은 국가에 있다

 

201287일 경상남도 거제시청 화단에서 (78)가 숨진 채 발견됐다. 화단에는 씨가 마시다 남은 것으로 보이는 독극물과 유서가 든 작은 손가방이 놓여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유서에는 미안하다. 살아가기 힘든데 기초생활 지원금 지급이 중단된 게 원망스럽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씨는 그해 6월 무직이던 사위가 직장을 얻으면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부양의무자인 사위는 월급의 50%를 압류당하는 형편이었고, 대학에 다니는 자녀도 2명이나 있었다.

 

201312월에는 부산에서 (56)가 큰딸의 취직으로 수급자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6년째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씨는 수급자 자격을 잃으면서 졸지에 매달 100만원가량의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19일 공개한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내년부터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2019년부터는 생계·의료급여에서도 소득재산 하위 70% 중 노인·중증 장애인이 포함된 가구에 적용해오던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기로 했다.

 

정부 방침은 장기적으로 부양의무자라는 개념을 폐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한국의 민법에서는 부양의무자를 직계가족과 배우자로 명시하고 있다. 개인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은 그 가족임을 법에 적어놓은 것이다. 이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것은 부양의 의무를 가족이 아닌 공적 영역으로 이끌어내겠다는 뜻이다.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은 씨와 씨의 사례에서 보듯 저소득층에게 족쇄로 작용할 때가 적지 않았다. 형편이 어렵더라도 부모와 아들·, 사위·며느리가 있으면 생계·주거·의료급여 등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최소한의 부양책임을 지우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아예 소식이 끊겼거나 왕래가 없는 가족의 존재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2016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상대적 빈곤율은 16%, 상대적 빈곤층은 8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총 1035435가구의 163만명이다. 빈곤층의 20% 정도만이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상당수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5년에 생계를 같이하지 않는 조부모나 손자·손녀를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고, 2015년 아들·딸이 사망하면 사위·며느리를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는 등 꾸준히 조건이 완화됐지만, 당사자들은 전면 폐지를 요구해왔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 모두 이 기준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부양의 책임을 맡는 것은 이제 사회적 흐름이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부모 부양을 가족이 해야 한다는 의견은 30.8%에 불과했고, ‘가족과 정부·사회가 함께 돌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45.5%로 가장 많았다. 더불어 부모의 생활비는 부모 스스로 해결하는 비율이 절반이 넘는 52.6%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도 부양의무자 범위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추세다. 미국에는 이런 기준 자체가 없다. 가족의 유무가 아니라 소득과 재산 기준에 따른 자산조사가 공적 부조를 제공할지 결정하는 최대 기준이다. 부모나 자녀, 형제, 배우자가 있다 해서 국가로부터 생활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식이 강하다. 스웨덴에서는 1978년까지 법률상으로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도록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1956년부터 부모 부양을 자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아왔다. 영국·프랑스·독일에서도 법적인 가족이나 친족이 공공부조 수급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핵가족 중심으로 부부와 미혼 자녀들에게만 부양의무를 부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여유진 기초보장연구실장은 복지선진국들은 기본적으로 노인기초연금이나 공적연금이 잘 보장돼 있어서 부양의무를 따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노인들이 연금만 받아도 빈곤선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노인빈곤율이 청년빈곤율보다 훨씬 낮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은 노령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없애면 급속히 수급자가 늘어날 수 있다이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양, 가족에서 사회로]은퇴 노인 절반이 빈곤외면할 수 없는 모두의 미래 

세대 간 합의 이룰 때

   


한국에선 2015년 기준으로 아동연령층(18세 미만)에서 11.5%, 근로연령층(18~65)에서 11.1%였던 처분가능소득 빈곤율(기준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 비율)66세 이상 은퇴연령층에서는 48.1%로 급속히 증가한다. 3일 국가통계포털에서 볼 수 있는 자료다. 연금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은퇴로 근로소득이 사라지니, 전체 노인의 절반 가까이가 바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노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은퇴 세대를 부양하는 책임은 결국 사회가 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출산·고령화로 노인은 늘고 청장년 숫자는 줄고 있다.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100명일 때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수를 나타내는 노인부양 비율1960년 한국에서 6.8명에 불과했다. 25년 뒤인 1985년에는 6.6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다시 25년이 흐른 2010년에는 2배 이상 훌쩍 뛴 15.2명이 되었고 2015년에는 19.6명으로 늘어났다. 2075년에는 일본을 뛰어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80.1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생산가능인구 다섯 명이 노인 한 명을 먹여 살리고 있지만, 지금처럼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이어지면 2075년에는 청장년 125명이 노인 100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당장 가난을 구제하는 데 돈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돈이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갈지는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이번 정부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데에 48000억원이 필요하다. 소득이 하위 70%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을 각각 10만원씩 올리는 데에 231000억원이 들어간다. 치매안심센터와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처럼 부양과 관련된 사업에 또 18000억원이 투입된다.

        

당장은 감당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 부양 비용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 때문에 세대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부양 문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여유진 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장은 유럽 국가는 젊은 세대가 보험료를 내고 그걸 현재의 노인 세대가 받는 시스템이라며 한국에선 노인들이 과거 그런 보험에 가입해놓지 않았을 경우 혜택을 주지 않는데, 그것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은 빈부 격차가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면서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자녀도 가난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회적 재분배를 통해서 사적인 부양보다는 공적부양의 부담이 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자녀가 없는 노인도 많아지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부양을 받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노인을 어느 가족 세대의 일원이 아니라 사회의 나이든 구성원 중 한 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빈곤율이 50% 가까운 상황에서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제도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지금의 젊은 세대 절반도 나중에는 빈곤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대 갈등이 아니라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노인 세대에게 노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이동욱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도 이를 인정하면서 우선은 기초연금 등을 올려 소득을 보전해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젊은 세대의 눈으로 보면 왜 개인이 준비해놓지 못한 것을 우리가 부담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같이해주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당장 정부가 몽땅 떠맡기 힘든 만큼 책임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남희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형편이 되는 한에서는 가정이 어느 정도 부양을 맡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인들이 손자녀를 돌봐주고 자녀가 용돈을 주는 방식이 잘 작동할 수도 있다외국 학자들도 국가에 모두 기대기보다는 동양의 노부모 부양 전통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시리즈 끝>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박은옥,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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