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한겨레 내일
헌법학자 “국정원 선거개입은 이승만 부정선거 현대판” 2013-07-03 미디어오늘
“국가기관이 정권창출의 사적 도구돼 국헌 유린”… “대통령 책임지고 사과해야”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민주주의 위기를 규탄하는 시국선언 등 전국민적 반발이 확산되면서 국가기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론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과는 별개로 국헌을 문란하게 한 ‘현대판 부정선거’라는 지적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가기관이 선거 과정에 개입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은 민주주의 헌법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국정원이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형성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다수 의견에 영향을 받는 유권자들에게 편향적 여론 구조를 만들었으므로 1960년 3·15 부정선거의 현대판”이라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우리의 민주주의의 기준은 사회의식이 발전하면서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3·15 부정선거보다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실제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는지보다 국가기관이 정권 창출을 위해 특정 정치세력의 사적 도구가 된 활동은 공권력으로서의 공정성의 상실이자 헌법 질서의 무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거 공정성의 책무는 우선으로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있고 국정원은 정부조직법상 대통령 소속으로 내각 통제를 받기 때문에 대통령은 비밀기관 문제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드러난 것만으로도 정치적 사과와 함께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정원장에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려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혐의는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국회에서 국정조사도 하겠지만 언론에 보도된 증거나 여러 정황을 봤을 때 국정원 선거개입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는 것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특정 정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국가기관의 권한을 오남용 한 것은 헌법 정신을 위배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모든 국가기관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는데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등 정치활동은 헌법에서 규정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정면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국정원 선거 개입은 하위법상으로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등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며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 법원 판결이 성실히 이뤄져야 하고 국민적 의혹에 대한 입증으로 진실을 밝혀 관련자들을 엄단해야 위헌·위법적인 국가기관 선거 개입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위반한 공직선거법 제9조 1항(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시한 우리나라 헌법 제7조의 정신을 법리적으로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헌법 정신 훼손은 당연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정원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고 댓글을 단 것,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 흘린 것은 공직선거법 등 실정법 위반”이라며 “국가 권력이 스스로 선거 민주주의를 파탄해 헌법에 비춰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업을 어긴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핵심적인 제도로, 비밀리에 활동하는 국가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은 선거 공정성을 해하기 때문에 정치의 핵심인 선거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책임지고 사과하는 것은 당연하고 법적인 책임을 물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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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뉴라이트-<조선>은 이어져 있다" 프레시안-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한국 사회에서 현대사는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졌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현대사의 진실을 아는 걸 원치 않았다. 또한 두려워했다. 그래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움직임을 힘으로 눌렀다. 그런 탄압을 딛고 진실의 문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적잖은 현대사의 실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올해, 역사 문제와 관련해 많은 일이 있었다. 이승만·박정희를 다룬 <백년전쟁> 논란, 한국현대사학회와 역사 교과서 논란, 종합편성채널(종편)들의 5.18 왜곡 방송,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논란, 전두환 추징금 문제까지 굵직한 사안들이 이어졌다.
안병욱 : 그 문제들이 한 축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초기에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을 때 이승만·박정희 등이 나와서 독재를 했다. 권력자들이 법을 벗어나서 사적으로 폭력을 행했고, 그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공권력의 행태처럼 됐다. 그래서 과거에 거의 모든 사람이 민주화 운동과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해 (윤리적으로) 딴죽을 걸 수 없었던 것이다. 유일하게 있었다고 한다면 반공, 국가보안법, 북한 문제와 관련해 자기들의 입장을 변명하거나 이데올로기적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노동권을 내놓고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사람들이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인정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반독재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1987년엔 독재가 없어지면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 사회처럼 갈 것 같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6월항쟁을 기점으로 형식적·제도적 측면에선 분명히 과거처럼 무자비한, 일종의 조폭 같은 국가의 폭력은 상당 부분 없어졌다. 형식적인 법과 제도에 사회가 점차 적응하고 권력을 쥔 사람도 그 틀 내에서 행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제도 밖의 폭력이 아니라 제도 자체에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 힘을 가진 사람과 힘없는 사람들의 대립이 구조화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1987년 이전엔 독재 정권이 없어지면 언론 자유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다수가 상식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지금은 언론 자유가 형식적으로는 있는 것 같지만 아주 교묘하게, 아래로부터 철저히 걸러내는 환경이지 않나. 경제적 측면에서도 1 대 99 사회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제도화돼 있는 구조적인 틀 내에서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요소가 확립돼 있다는 말이다. 지난번 대선을 보면, 적어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 틀에 반발하지 않았다. 여러 통계로 볼 때, 국민의 3분의 1 이상은 그렇게 차별화된 구조를 신념으로, 전적으로 지지하고 그게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구조 속에서 사상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들이 아주 무섭게 우리 사회를 대립과 갈등 구조 속으로 끌고 가고 있다.
옛날엔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것에 대해 박정희 추종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그 이야기, 틀렸다'고 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변했다. 가령 1990년대에 한창 인간 복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한 여론 조사에서 박정희가 '복제하고 싶은 사람' 1위로 꼽혔다. 이에 많은 사람이 요즘 일베에서 5.18 가지고 헛소리하는 것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한 거부감 없이, 과거에 대한 오도된 환상 속에서 박정희나 이승만을 지지할 수 있게 됐다. (1960년) 4.19항쟁의 정점은 군중이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려 파괴한 것이다. 그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린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역사에서도 독재 종식의 정점은 군중이 독재자가 세운 자기 동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건 역사에서 굉장히 큰 상징성과 의미를 갖고 있다. 이미 당시 국민에 의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분명한 역사적 심판이 내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걸 몇몇 사람이 너무나 뻔뻔스럽게 뒤집으려 하고 있다. 헌법에 4.19 계승이 명시돼 있음에도 그렇다. 그리고 그 차원을 넘어 교과서에서 그 모든 것을 반전시켜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건 역사에 대한 반역이다.
이런데도 큰 저항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흘러가면서 사람들 의식 속에서 그런 것들이 맹목적으로 상식처럼 확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올바른 상식이란 측면, 합리적 판단, 역사에서 무엇이 정의인가 하는 가치관의 측면을 놓고 본다면 1987년 이전보다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7.4 한겨레 경향
7.3 한겨레 경향
한겨레 성한용 칼럼] 싸움의 고수와 대한민국 미래 7.3
놀랍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완벽한 승리다. 최경환 원내대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격투기의 고수들인 것 같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싸움의 기술을 체득하고 있다. 상대방의 약점 한 군데를 정확히 포착해 거기만 때렸다. 민주당은 방어에 급급하다가 무릎을 꿇었다.
출발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는 확실한 악재였다. 그런데 댓글 사건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김무성 의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입수 의혹’은 아예 실종됐다. 국회 본회의에서 대화록 열람·공개 요구안이 통과되면서 민주당에 불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엔엘엘 발언 논란’만 남았다. 당분간 뉴스의 중심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대화록 내용과 녹음파일 공개 여부가 될 것이다. 고인이 된 남북 정상의 육성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3일 아침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는 차분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황우여 대표는 장마와 재해 대책 얘기를 먼저 꺼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6월 국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애쓴 야당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대화록 공개 요구를 국민 의혹 해소와 국론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정몽준 의원은 초당적인 국정원 개혁위원회를 만들자고 했고, 이재오 의원은 국정원 국내정치 파트를 해체하자고 했다. 당직자들은 두 중진의 말을 무게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세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귀신들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국정조사는 잘될까? 그럴 리가 없다. 특별위원회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은 권성동 이철우 김재원 정문헌 조명철 윤재옥 김태흠 김진태 이장우 의원이 들어갔다. 국정조사보다는 야당과의 전투를 염두에 둔 진용이다.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철저히 진상 규명을 하되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카더라식의 정치공세에는 적극 대응하여 국정원 국정조사가 또다른 국기문란 사태를 불러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라는 노골적인 주문이다.
민주당의 신기남 박영선 박범계 신경민 전해철 정청래 김현 진선미 의원도 싸움꾼들이다.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다. 여야는 2일 첫 회의부터 격돌했다. 특위는 앞으로도 처절한 싸움터가 될 것이다. 어쩌면 국정조사를 아예 못할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든 대화록 공개로 댓글 사건을 물타기 한 국정원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이번에도 조직 개편을 피하고 존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에 분노한 국민들로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최경환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6월19일 “댓글 사건으로 새누리당이 덕 본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라고 궤변을 폈다.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박근혜 후보의 수행단장을 지낸 사람이다. ‘박근혜의 남자들’이 새누리당 원내사령탑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댓글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통성 시비로 번지는 것을 성공적으로 차단했다. 2일 국회 본회의 대화록 열람·공개 요구안 표결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 한 사람도 반대하거나 기권하지 않았다. 무서운 장악력이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새누리당 지도부는 동화 속의 ‘일곱 난쟁이’를 닮았다. 난쟁이의 임무는 물론 ‘백설공주’를 지키는 것이다.
다 좋다. 문제는 앞으로다. 국정원 조직을 지금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은 정보기관이 온갖 선거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후진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정원은 이미 생존본능을 갖춘 괴물이다.
아니 그보다도 국정원을 그냥 두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과연 좋은 일일까? 정말 그럴까? 국정원이 언제까지나 지금 여당과 같은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사용자의 선의’로 국정원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지금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은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역사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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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지극히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프레시안 6.25
[김민웅 칼럼] 민주주의의 탈취와 분단체제 냉전논리 가동의 악습
나는 무관하니 문제 삼을 게 없다?
"나는 관련이 없다" 대통령 박근혜의 말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자신의 무관함, 그리고 대통령 당선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은 "국회에서의 논의"로 압축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자신의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라는 민주주의 유린 사태에 대해 전혀 격노하거나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무관하면 아무런 논란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식이다. 공적 사안에 대한 최고 책임자의 자세가 아닐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기초적 인식조차 없다. 자신의 당선에 기여한 부서에 대해 애정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은 대통령의 국기 수호 의무라는 점에서 참으로 위태롭다. 여기서 국기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국정원에 대한 국회에서의 논의"라는 방식은 국정원에 대한 국회의 조사에 대해 정부의 성실한 협력과 국정원 개혁의지가 전제되는 경우 옳다. 그러나 박근혜의 발언은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하기로 했잖아"로 들린다. 아니라면, 의도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된 자신의 회피하기 어려운 책임도 함께 거론하면서 국정원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강조했어야 한다. "정말 박근혜가 당선되기는 한 거야?"라는 의문으로 자신이 혹여 억울한 처지에 놓여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 처리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나와 주어야 했다.
정상회담 발언록 발췌 공개, 박근혜가 승인했는가?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국정원에 대한 여론의 포화가 작렬할 기세를 보이자, 남북 정상회담 발언록을 발췌 공개함으로써 이 사안을 덮으려는 의도가 분명한 국면이다. 더군다나 정상회담 발언록 공개가 어떤 외교적 파장을 불러 오는지 알지 못할 리가 없는 대통령이 이에 대해 일체의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것은 이 나라가 향후 국제적으로 어떤 시선을 받게 될 것인지 암담해질 지경이다.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정원의 행태에 대통령이 관여한 바가 없는가? 국정원은 오직 대통령에게 일차적 책임을 지는 기밀 부서인데 대통령의 승인도 없이 국정원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면 이는 대통령의 무능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의 재가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면 박근혜의 향후 남북관계 정책은 심각한 모순과 위기에 처하고 말 것이다. 당장의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겠다고 제 발목을 스스로 묶은 격이다.
정보기관의 민주주의 교란 행위와 대통령의 침묵
이번 사태의 흐름을 보면, 민주주의 압살을 위해 분단체제의 냉전정책을 동원해왔던 군사정권 시대의 악습을 반복하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가 제기되자 이를 더는 정치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분단 상황에 따른 안보논리로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집권세력의 매우 추잡한 태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제3세계 국가의 민주주의를 파괴한 미국의 "더러운 전쟁(dirty war)"의 아류다.
국정원의 댓글 사건은 단지 댓글 몇 개로 선거 결과가 달라졌으리라는 식의 논리에 따른 문제 제기가 아니다. 댓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더 큰 기획이 드러나지 않았을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댓글사건으로 확인된 결정적으로 중대한 문제는 정보기관이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방식을 교란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이에 대해 일체의 문책과 국정원에 대한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국정원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박근혜의 태도는 국정원의 역할에 대해 이 정부가 어떤 생각과 지침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경악스럽다. 자칫 이는,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럴 경우 결국 박근혜는 국정원에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면허를 주는 셈이 된다.
대통령에 의한 국기문란 사태
<조선일보>는 25일 사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록 공개와 관련해 "대통령에 의한 국기문란사태"라고 규정했는데, 그것은 사실관계에 맞지도 않고 도리어 대통령 박근혜의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가기관에 대해 문제 삼기는커녕 옹호하고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이는 용납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주권을 지키는 체제다. 정상회담 발언록 공개가 갖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할 여지조차 없다. <조선일보>는 국가 이익이 전제될 경우 발언록 공개가 시기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발언록 공개에 대한 국가 이익을 비롯한 실익 판단은 역사적으로 일정한 시기를 통과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집권세력에게 유리한 것은 언제나 공개대상이 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는 폐해를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 외교 발언록에 대한 공개여부는 국제사회에서 여야의 정쟁대상이 아니라, 이후의 역사에 맡기는 원칙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국정원의 발언록 발췌 공개는 그러한 국제사회의 외교윤리와 원칙 전체에 대한 도전과 위반이며, 우리 외교에 대한 국제적 신뢰에 타격을 입히는 국가이익 훼손 사건이다. 정작 누가 국가이익에 손상을 입혔는지는 이로써 분명해지지 않는가? 그런 기관은 당연히 법적 심판대에 올려놓고 철저한 해부와 변화를 꾀하도록 해야 한다.
공개된 발언록에 대한 치열한 논쟁 필요
한편, 이미 공개된 이상 2007년도 남북 정상회담의 발언에 대한 논란과 평가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왕지사 이리 되었다면 치열한 논쟁이 요구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회담의 중심에는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공동의 평화경제체제를 수립하는 동시에, 강대국 미국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남북 협력체제 강화의지 표명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북방한계선 NLL의 경계선에 갇혀 있는 않은 분단체제 극복 전략의 일환이자 평화체제 건설을 위해 대단히 중대한 구상이자 제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말하는 방식이나 스타일이 갖고 있는 면모에 대한 여러 상반된 평가가 나올 수 있겠지만 결국 핵심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이러한 가치를 지닌 발언과 프로그램을 존재하지도 않은 "NLL 포기 발언"이라는 식으로 왜곡하고, 그 모든 논의의 과정과 내용을 거두절미한 채 최근의 국정원 사태를 막기 위한 방어책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집권세력이 남북관계 해결과 평화의 미래를 만들 능력이 없는 집단임을 말해주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의 이른바 "신뢰 프로세스"라는 것도 단지 과정이라는 의미에 불과할 뿐 그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 프로세스의 단계별 목표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부재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평화협정 체제 논의 공식화해야
지난 6월 21일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평화협정체제와 함께 이루어질 비핵화에 대한 발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북이 꾸준히 전개해온 논리의 확인이다. 지구상 어떤 핵무장 국가도 자신의 핵무장 해체에 조건을 단 적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만이 유일하게 평화협정과 연동된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볍게 간과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북의 비핵화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협정논의만 배제하자고 할 까닭과 근거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물론 북이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실제로 이행하겠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따져봐야 하겠으나 일단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가는 것은 남북 쌍방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전면적인 비핵화가 실천된다면 그 이상 좋을 일은 없다. 아닌가? 이에 더하여, 미군의 주둔에 대해 북이 유엔사의 형식이 아닌 한 더는 문제 삼지 않기로 해석되는 대목도 주시해야 한다. 이는 향후 동북아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갖게 되는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의 제안에 대해 남쪽이 그대로 침묵하고 있게 된다면, 아마도 평화협정 논의 국면에서 또다시 아무런 주도권도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른다.
자충수
민주주의의 유린에서 분단체제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해법을 갖지 못하고 인식의 기본마저 되어 있지 않은 정부라면 그 미래는 우리 모두에게 위기로 돌아오게 된다. 취임 100일은 그 정부의 핵심 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걸 풀어가는 역량이 입증되는 시기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박근혜 정부는 실패하고 있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많다고 여길지 모르나 생각과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오류의 반복이라는 늪에 빠져 임기 내내 허우적댈 것이다. 그리고 더는 버티기 어려워지면 중도에 정상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무책임하고 무능한 집권세력, 아니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참으로 후안무치한 권력과 마주하고 있다. 자신들은 지금 정국의 방향 전환을 위한 수를 제대로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스스로 판 함정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 하다. 그건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 전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란 결국 공학이 우선이 아니라 먼저 정도(正道)를 걸을 때만이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있다. 그걸 알지 못하고 술수를 쓰면 그것은 도리어 자신을 포박하는 그물이 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이다. 뒤로 후퇴할 수 없는 길을 자초하는 권력이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 우리는 이미 적지 않게 보아왔다. "박근혜"라는 이름이 이 운명의 명단에 추가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여전히 방법은 남아 있다.
6.25 내일 6.25 경향
6.24 내일 경향
6.28 경향
7.1 경향 장도리 6.28 6.27
6.26 6.25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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