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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스크랩 또는 퍼온글

"바보야, 문제는 부동산 특권이야"

by 이성근 2017. 1. 25.

 

[기고] 부동산특권 해체와 19대 대통령 선거 프레시안 125

 

기로에 선 대한민국, 방향은 특권 해체에서 찾아야

작년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촛불민심의 목소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존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상식,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가 국가에게 있다는 자유민주주의적 상식이 시궁창에 내던져진 것에 대한 울분과 저항을 넘어 1000만 촛불시민들은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4월이나 5월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시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것을 묻고 토론하고 답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형성'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를 '특권 없는 사회'라고 정리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낡은 질서의 핵심은 '구조화된 특권'이고 새 질서는 이런 특권이 해체된 사회라는 것이다. 특권이 해체되어야 기회균등이 가능하고, 특권이 해체되어야 자유경쟁의 원리가 비로소 작동하며, 특권이 해체되어야 노력의 결과를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특권에는 정치특권과 경제특권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경제특권에 관해서만 논의를 한정해보자. 경제특권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재벌특권이다. 재벌이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시장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것은 재벌특권이 작동한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경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재벌이 시장경제의 최대의 훼방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합뉴스

 

모든 특권의 어머니, 부동산특권에 주목해야

그러나 나는 재벌특권보다 부동산특권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부동산특권은 모든 특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특권은 부동산 특권을 기반으로 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런지 질문해보자.

 

정치특권층의 물적 토대가 무엇인가? 부동산이다. 고위공직자들 혹은 선출직 공무원들 거의 대부분이 고액 부동산 자산가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박정희의 정치특권을 제도화한 '유신'도 부동산특권 위에 세워졌다. 박정희는 자신이 세운 정치특권 체제의 유지비용을 강남 부동산투기를 통해서 조달했다. 정치특권과 부동산특권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가 바로 유신인 것이다. 재벌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상위 1% 기업이 법인 전체가 소유한 부동산의 76%를 소유하고 있고, 재벌 소속인 상위 10대 기업은 법인 전체가 소유한 부동산의 무려 35%나 소유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 재벌의 부동산특권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2008~20146년 사이에 상위 1%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은 546조 원에서 966조 원으로 1.8배 증가했고, 더욱이 상위 10대 기업의 보유 부동산 가격은 180조 원에서 448조 원으로 무려 2.5배나 폭증했다.

'부동산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바로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공화국 앞에 '민주'가 아니라 '부동산'이 붙은 이유는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이 국민 일반이 아니라, 고가의 부동산을 과다하게 소유한 소수의 개인들과 재벌들이기 때문이다. 이 부동산특권을 해체하지 않으면 '민주'공화국은 요원하다.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는다!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는다. 특권이 노리는 것은 바로 불로소득이다. 일하지도 않았는데 소득이 생겼다면, 그것도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특권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노력한 성과를 재벌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가로채는 것은 재벌의 특권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정확히 말해서 토지를 단지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속적으로 소득이 생기는 것 역시 부동산특권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동산특권을 해체한다는 것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부동산특권이 낳은 불로소득의 규모는 대체 얼마나 될까? 토지+자유연구소의 추산에 의하면 2015년 현재 무려 357조 원이나 된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 평균 GDP22.4% 정도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했다. 실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 엄청난 불로소득은 대체 누가 가져간 것일까? 거의 대부분을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한 개인과 재벌이 가져갔다. 우리나라 토지의 경우 1% 인구가 개인토지의 55.2%10%의 인구가 개인토지의 97.6%를 차지하고 있고, ()토지소유세대가 무려 40.1%에 이른다. 주택의 경우에는 무주택가구는 44.0%에 이르고 있고, 다주택자 중 11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가구 수만 무려 37000에 이른다. 무주택자, 땅 한 평 없는 세대에게 부동산 불로소득은 그림의 떡이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점점 가난해진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위계층에 속한 집 없고 땅 없는 서민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의 상당 부분이 상위계층으로 이전되는 통로가 바로 부동산이라는 것이다.

 

부동산특권 해체 방안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대통령 선거가 되어야

그런데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부동산 정책은 주거복지정책에 머물러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세입자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물론 그런 정책들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부동산특권을 해체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주거복지정책은 한계가 매우 크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성남시장이 얼마 전에 발표한 국토보유세(와 토지배당)과 고위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은 의미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부동산특권이 노리는 불로소득을 정조준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토지보유세 만큼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 내지 차단하는 좋은 방안도 드물다. 이 시장이 말한 대로 국토보유세를 신설해서 15.5조 원을 징수하게 되면 부동산특권은 상당히 약화될 것이다.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한 재벌의 영향력도 줄어들 것이다. 환수한 국토보유세 전액을 전 국민에게 배당형식으로 지급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이렇게 하면 95%의 국민이 혜택을 보고 5%만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경제를 짓누르고 있던 높은 땅값도 하향 안정화 되어 일반 시민들의 주거비는 경감되고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은 줄어들고 경제 전체에 활력이 살아날 것이다. 이렇게 특권이 해체되면 그동안 특권에 짓눌렸던 개인과 기업이 살아나고 사회의 역동성도 증진된다.

 

고위공직자 취임 시 투기용 부동산을 백지로 신탁하게 하는 부동산백지신탁제는 또 어떤가? 이 정책이 제도화되면 부동산특권을 지닌 자가 고위공직을 맡을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고, 부동산 정책의 신뢰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정책을 내놓았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동산특권층의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힘을 극복하기 위해선 '부동산특권 해체'가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로 부상되어야 한다. 다른 후보들도 부동산특권을 해체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서로 경쟁해야 한다. 돌아보면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은 어제 오늘이 아니었다. 김영삼 대통령도 임기 초반 "토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세법을 획기적으로 개혁하겠다"고 할 정도로 보유세 강화에 적극적이었지만, 실패했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인 종합부동산세는 보유세 강화에 첫발을 떼는 의미있는 정책이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결국 형해화시켜버렸다. 대다수 사람들이 환영할 부동산백지신탁제는 2005년 지병문 의원(열린우리당)이 입법발의 한 적이 있고, 201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안철수 의원이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아직까지 도입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때는 지금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지금이 적기다. 모든 특권의 어머니인 부동산특권이 사라진 사회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탐욕'은 학습되고, 수단은 복제된다

[민들레] <탐욕의 별>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내세우는 정책

그간 '모극장(공정영화협동조합 모두를위한극장)'에서 격월간 <민들레>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파고르 사람들, 브란트 사람들>(위그 페이렛 아르구스 감독, 2007), <행복의 경제학>(노르베리 호지 감독, 2011), <다음 침공은 어디?>(마이클 무어 감독, 2015)와 같은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세계화'라는 경제적 화두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다큐멘터리의 주제적 경향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창조적으로 표현한 매체"라는 존 그리어슨 감독의 말대로 '세계화'는 인류의 보편적인 현실이며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이야기하고자, 이번에 소개할 작품을 선정하던 중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해 118일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 결과를 두고 많은 분석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중서부의 쇠락한 제조업 지대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지목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주요 공약은 '새로운 보호무역'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그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고용 창출을 이끌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그것이 산업 중심지에서 러스트 벨트로 전락한 이곳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 패권을 쥔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세계화에 대립하는 공약을 내건 부동산 재벌에게 정권을 내주었다는 사실은 무언가 부조리한 느낌이다. 경제적 문외한이라도 트럼프의 보호무역이 미국의 패권을 내려놓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미국의 영향력을 실용적 차원으로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것은 그동안 알면서도 당했던, 예측 가능했던 세계화에서 혼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화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since 1997, 그날 이후로도 끊나지 않는 투기와 탐욕. <탐욕의 별> 스틸컷. Spiral Project

 

다큐멘터리 <탐욕의 별>(공귀현 감독, 2015)은 해외의 투기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계의 변화로 이 영화의 주장과 내용이 앞으로도 유효한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별반 새롭지 않을 수도 있으나, 우리가 쉽게 지나쳐온 상황들을 조목조목 상기시키고 있다. 지난해, 많은 국내 다큐멘터리가 그러한 기조를 유지했다.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나온 것들의 누적이 현재 시국의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미국에 대해 낙관적 결말을 그리지만 동시에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고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마이클 무어 인 트럼프 랜드>(2016)라는 작품의 제작발표회를 했다. 그런 면에서 <탐욕의 별>은 조금 철 지난 이슈를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철 지난 이슈'를 또다시 지나쳐서는 안 된다.

 

부자가 되기 위한 소양, 탐욕

 

 

<탐욕의 별> 포스터. 배우 김의성 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Spiral Project

 

<탐욕의 별>2012년 로 데뷔한 공귀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지난해 4월 개봉했다. 앞선 설명처럼 미국의 금융자본이 한국사회에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였고,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이 방식이 다시금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복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트럼프 이전의 미국의 세계화 전략에 따른 금융자본이 어떤 매뉴얼로 움직였는지 조목조목 분석하는 접근은 마치 자본주의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영화는 2009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경찰특공대와 용역들이 노조원들을 강제 진압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공장 지붕 위로 쫓긴 노조원들은 무참한 폭력에 의해 진압되고, 당시 사태와 관련한 사람들의 증언들이 뒤따른다. 어떻게 이 끔찍한 국가 폭력이 자행되고 용인되는가? 거기엔 어떤 배후가 있을까?

감독은 쌍용자동차 사태의 궁금증을 하나둘씩 파헤치며, 그 뒤에 해외 투기자본 이와 결탁한 대한민국 정부의 관료들과 제도권이 숨어 있었음을 객관적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대한민국 전체를 움직이는 자본의 보편성임을 확인해간다. 꼼꼼한 취재 방식으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소수가 부()를 축적하는 현상의 반대급부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이들은 왜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지를 역설한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경제용어들도 등장하는데, 세세히 설명해가며 관객들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한다. 언뜻 이러한 전개는 '부자가 되는 가이드북'을 보는 듯도 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탐욕'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론스타 사건'이다. 미국의 금융회사인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해 하나은행에 비싸게 되파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기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잘못된 정보 중 하나는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되는 데에 심각한 경영난이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해외 투기자본이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정보가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외환은행은 IMF 당시에도 자체적인 경영 노력으로 그 위기를 잘 넘겼고 이후 안정적 성장세를 보여준, 망할 이유가 없는 회사였다. 그러나 자본 규모를 키우려는 이강원 행장의 욕심이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론스타가 주가를 조작하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회사를 위기에 빠지게 만들어 기업의 가치를 헐값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행동들은 모두 '탐욕'에서 출발한다.

 

당시 국내법상 은행의 매각은 자기자본 비율이 8퍼센트 미만인 경우에만 허용되었으며, 인수하는 당사자도 금융자본에 한해 인정되지만, 론스타 건은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외한은행은 10퍼센트가 넘는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어 인수 자체가 불가능했고 론스타 역시 금융자본이 아닌, 여러 생산업체를 인수한 산업자본이었다. 원칙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이 일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경유착을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진로그룹, 쌍용자동차 등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영화가 주목하는 '탐욕'의 주체는 해외 투기자본인 듯하지만, 사실은 공동정범이 된 한국 사회의 대기업으로 초점이 돌아간다.

 

프레시안

 

진로그룹의 지분을 확보하여 하이트에 되판 '골드만삭스'의 경우는 처음에 진로그룹의 경영컨설팅으로 참여하여 경영정보를 취득한 후, 이를 이용해 진로그룹의 지분 인수를 시작해 결국 도산하게 만드는 악랄함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수많은 정관계 인사가 골드만삭스에 정보를 넘긴 정황이 담겨 있다.

IMF 시절, 어쩔 수 없이 해외자본이 개입된 듯이 포장되었던 경제 상황의 이면에는 타인의 고통으로 자기 이득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자본의 '탐욕'이 숨어 있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골드만삭스와 론스타가 한국에서 했던 짓을 한국의 투기자본이 대만과 다른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탐욕'은 학습되고, 그 수단은 복제되는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현재형 다큐멘터리

그러고 보면, 미국의 전유물인 듯했던 세계화 전략을 이미 한국에서도 습득해 사회 곳곳에 복제하고 있다. 이러한 '탐욕'의 학습은 예상보다 빨리 확산되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이란, 이제 한계에 다다른 지금의 세계화 전략을 복제 불가능한 미국만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재편하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시의적 가치는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닌, 새롭게 조망되어야 할 이슈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는 알면서도 당하고 있으며, 국민은 부정과 축재의 반대급부로 쓸쓸히 남겨졌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사이, 다시 론스타의 이야기, 재벌의 이야기, 기득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이 작품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재형 드라마다. 어쩐지 트럼프의 당선보다도 더 부조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남 땅 투기 원조는 박정희였다 129 한겨레

 

강남 개발은 부동산 버전의 재벌 육성이자 정경유착이었다. 지난 7일 한강을 따라 늘어선 서울 강남구 압구정 일대 아파트와 그 뒤로 펼쳐진 고층빌딩의 불빛들이 밤을 밝히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정희 정권은 허허벌판 강남을 국내 최초의 신도시로 개발했다. 개발은 성공적이었다. 1963~77년 사이에 서울시 전역의 지가는 87배 수준으로 크게 상승했고, 강남지역의 지가는 176배가량 폭등했다. 정권은 앞장서 개발을 밀어붙였다.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새마을운동 잘 살아보세라는 표어처럼, 아파트를 사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신화가 시작됐다. 박정희 정권이 만든 부동산 투기 대열에 올라탄 사람들은 중산층이 됐지만, 그러지 못한 다수에게는 헬조선이 열렸다. 강남발 투기 열풍이 번지면서 전 국토가 투기장이 됐다. 헌법에도 명시된 쾌적한 주거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정부가 이를 돈벌이용 투기 수단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강남 개발은 부동산 버전의 재벌 육성이었다.

 

#아파트 새마을운동

박정희 정권이 강남 개발을 밀어붙임과 동시에 1970~71년 땅 투기로 수백억원의 매매차익을 남겨 대선자금으로 썼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청와대 대선자금 마련을 위한 땅 투기 정황의 중심에 1970~72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윤아무개(88)씨가 있다. 윤씨 뒤를 이어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일했던 고 손정목 서울시립대 교수가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보면, 윤씨는 당시 청와대 지시로 강남구 토지의 2%24만여평을 매매해 18억원(현재가치 약 324억원)의 차익을 남긴 뒤 청와대에 바친 것으로 나온다. <한겨레>는 윤씨를 만나 책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폐쇄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숨겨진 역사의 비밀을 추적했다.

 

윤씨는 1968년 서울 풍납동, 방이동을 올림픽 후보지로 미리 선정한 인물이며, 지금의 강남에 해당하는 영동지구개발계획을 1970년에 세우고 집행한 주인공이다. 서울시 도시계획상에는 1960년대부터 올림픽대회 후보지가 논의돼 왔다. 윤씨는 영동개발계획이 발표되기 11개월 전인 196912, 김현옥 서울시장의 안내로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들른다.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의 집이었다. 정권 실세였던 박 실장은 윤씨에게 강남 땅을 사들여 차익을 본 뒤 바치라고 지시한다. 2주일 뒤 김 시장이 알려준 대로 고태진 제일은행 전무실을 찾아간다.

 

윤씨는 서울시 도시계획과장 신분이던 19701월께 시장실에서 연락이 와서 찾아갔더니 () 당시 제일은행 본점은 신세계 백화점 서편 지금의 제일지점 건물이었다. 고태진 전무실은 서울시장실보다 더 으리으리한 방이었다. 조심조심 찾아온 용건을 말하는 윤 과장에게 고 전무가 책상서랍에서 꺼내준 것은 적금 통장 한 개였다. 원금 3억원짜리였는데 예금한 지 햇수가 많이 지나서 이자가 누더기로 붙어 있었다. 윤씨는 이 자금을 통장 또는 A통장이라 적고 341386983원으로 기록하고 있다. 첫번째 자금공급은 이렇게 시작됐다.”(<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10, 손정목) 이때 윤씨가 고씨로부터 받은 돈의 현재가치는 약 70억원에 해당한다. 자금이 부족할 때는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자 쌍용그룹 창업자를 찾아가 자금을 받았다고 훗날 손정목 서울시립대 교수에게 밝힌다.

 

박종규 지시로 강남땅 되팔아 대선자금 수백억 바쳐

 

#국고 관리자 고태진

울산 상업은행 출신 인물 중 금융인으로 가장 출세한 사람이 고태진씨다. 고씨는 울산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해방 후 1953년 대전지점장, 1957년 진주지점장, 1961년에는 심사과장을 거쳐 부산 중앙동지점장이 되었는데 그에게 행운의 기회가 온 것이 이 무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었던 이후락씨가 울산 출신의 금융인 중 국고를 맡길 인물을 찾게 되는데 이때 고씨가 발탁되었다. 이후락 실장의 지원 속에 제일은행 전무가 되었다.”(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

 

손정목씨는 지난해 588살을 일기로 숨졌고, 고태진씨는 2003년 별세했다. 고씨에 대한 기록을 장성운 울주문화원 이사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지역 역사학자인 장 이사는 울산에 거주하는 고씨의 차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2015년 지역 일간지에 이 내용을 실었다. 윤씨가 청와대 경호실장 지시로 고씨를 찾아가 자금을 받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윤씨는 이 돈을 어떻게 굴렸을까. 윤씨가 강남구 토지의 2%24만여평을 매매해 당시 18억대의 차익을 남겼다고 손씨는 <서울>에 적었다. 이 책은 2003년 발간돼, 올해까지 7쇄를 찍었다. 윤씨가 손씨에게 털어놓은 땅 투기 비화를 언론에 직접 언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윤씨는 1966년 도시계획과장, 19705월 도시계획국장에 오른다. 1974년 서울시를 퇴직하고 쌍용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1981년에는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경주·월성·청도 지역의 민주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것이다. 그는 영동(강남) 지역 개발 경험을 살려 경주를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다시 역사 밖으로 종적을 감췄다.

윤씨가 국장이 된 197011월 영동지구 개발 계획 전모가 발표됐다. 당시 강남은 나날이 과밀화하는 인구를 한강 이남으로 분산하고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해 중앙정부가 적극 나선다는 취지로 개발됐다. 영동 제1지구(472만평)에다 제2지구(365만평)를 합해 서울시가 1972년까지 837만평을 개발하는 데 총 167억원 투입 계획을 세웠다. 60만 인구가 거주하기 위한 새 시가지였다.

 

강남이 서울에 편입된 시점은 19631. 서울 편입 목적이 신시가지 구상만은 아니었다. 서울시가 19661월 초순 강남 개발 구상을 발표했지만 이는 군사적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65년 서울시 인구는 150만명이었는데 다리가 2개뿐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겪은 나라로서, 전시 상황에 국민들이 한강을 건너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문제의식이 팽배했다. 1966119일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착공되면서 땅값이 꿈틀댔다. 3한강교 착공 당시 신사동 일대 땅값은 한 평에 200. 1년이 지나자 1평에 3000원으로 뛰어올랐다. 본격적인 개발은 경부고속도로와 맥을 같이한다. 당시 건설 중인 제3한강교 남단을 경부고속도로 기점으로 한다는 결정이 196711월 떨어진 것. 3년 뒤인 197011월이 돼서야 영동지구 개발 계획이 발표됐다.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70년 강남개발 지휘한 윤씨

개발계획 발표 11개월 앞두고 김현옥 서울시장과 경호실장 집서 만나

강남땅 사들이라는 지시 받아 국고관리고태진 제일은행 전무가

윤씨에 땅 살 종잣돈 든 통장 건네  이후 김성곤 쌍용회장도 자금 대

 

박정희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로 정책을 바꾼 시점은 1973년 말부터다. 이미 투기 광풍이 한 차례 지나간 뒤였다. 그조차도 주거용 토지에 대해서는 세율이 낮았고 조세 중과 대상이었던 토지의 범위는 한정적이었다. “재무부는 투기 억제세에 의한 과세 대상 지역을 확대하고 공제율을 5% 인하함으로 투기를 억제하기로 했다.”(<매일경제> 1973125일치)

 

#1972년 유신을 부른 71년 대선

이 사람(김대중)과 비교해서 국민들이 나를 대접하는 게 겨우 이 정도인가. 민주주의가 역시 약점이 있어. 우리나라 같은 경우 선거 바람이 잘못 불면 엉뚱한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 그랬을 때 과연 이 나라가 일관성 있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할지 의심스러워. 그래서 내가 심각하게 걱정을 해. () 이제 그따위 놈의 선거는 없어.’ 비서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말을 듣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 505~6, 조갑제) 박 대통령의 지독한 불안은 1972년 유신으로 이어졌다.

 

윤씨가 대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4만평을 매매한 시절은, 박정희가 19714월 대선에서 김대중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때다. 박정희는 95만표 차이로 간신히 당선됐다. 윤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해 1212일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으로 찾아갔다.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전직) 공무원으로서 <한겨레>와는 인터뷰하면 안 된다고 했다.

 

윤씨는 인터뷰를 거절하면서도 몇 가지 질문에는 답을 했다. 손 교수에게 투기 거래 문건을 넘겼다는 것과 본인이 정치자금을 조성하다 곤욕을 치렀음을 인정했다. 강남 개발 당시 기억을 책으로 내기 위해 노트에 글을 쓰고 있다고도 했다.

-대선자금이 아닌,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개인 땅 투기였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아니, 아니. 그렇게 소소하진 않아, 그 사람들은. (박종규 살았던 한남동) 유엔빌리지 20평 응접실에는 외국에서 가져온 호피, 도자기 그런 거 꽉꽉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어. 김현옥 서울시장도 군인 출신이니까 제2서울 개발 아주 잘 알아.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 그 사람들이야 워낙 크게 놀았으니까. 김대중이하고 박정희 대통령하고 출마할 때 그때 돈을 안 갖다주는 거야, 장관들이. 박종규(청와대 경호실장)는 영동 개발(로 자금 만들어서 줬는데)인데.”

 

윤씨는 투기를 위한 계약 시 가명을 썼지만, 등기는 가명으로 할 수 없었다. 모든 부동산을 실명으로 등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농지개혁법 규정에 의해 한 사람이 3정보() 이상 농지 소유가 금지돼 있었다. 조아무개, 조아무개의 부인 윤아무개, 박아무개 이름이 쓰였다. 부동산 투기억제에 관한 특별조치 세법이 196711월 법제화됐다. 당시는 등기 이전이 되고 난 뒤 상당한 기간이 경과해야만 거래를 집계해 세금 고지서가 발부됐다. 2, 3년이 지나야 발부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1972년 도시계획국장을 그만둔 뒤에도 세금 문제가 불거졌다.

 

“() 세금 문제도요, 정치해놓고 다 끝나니까 다 책임이 나한테 돌아오는 거예요. 그니깐 처음에는 오정근이가 국세청장 할 때, 그다음에 청와대가 전화해서 (내 앞으로 나온 세금을) 없애버리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청와대가 국세청에) 전화 안 해주는 거야. 나중에 이경식이가, 청와대 비서실 담당(비서실장 보좌관)이 귀찮다고 오지 말라는 거야. 결국 무마는 됐어요.”

아이고, , 아이고, 그래서, 내가 오죽 답답하면 전두환 때 국회의원에 출마했을까. 근데 떨어졌지. (나도) 배신감 들었겠지.”

 

강남은 대한민국 최초의 새도시였다. 박정희 정권은 극비리에 강남 개발을 추진하면서 땅 투기를 통해 정치자금을 마련했다. 725월 반포지구 항공촬영 사진.() 20171월 현재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가기록원 제공

 

#현대차, 한전, 봉은사

한전 부지(79342)를 고액에 매입하게 된 배경이 뭡니까?”(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각 기업 상황에 따라 꼭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라도 투자하는 것입니다. 투자 금액은 상대적인 것이고, 입찰에서 그 정도는 내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정진행 현대차 사장)

대기업 총수 9명이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 참석한 지난해 126, 미르와 케이스포츠재단에 128억원을 낸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정진행 사장이 하태경 의원의 질의에 답했다. 현대차는 쌓아둔 사내유보금 114조원을 특혜성 땅 투기에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였다.

 

논란이 된 한전 부지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윤씨가 등장한다. 한전 부지는 원래 서울 삼성동에 자리한 봉은사가 대대로 소유한 땅이었는데, 1970년 조계종과 윤태진이 계약서를 체결해 한전으로 넘어오게 된다. 윤태진은 윤씨의 가명이다. 현대차는 20149,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감정가의 약 3배인 105500억원에 매입했다. 정부가 1970년 이 땅을 사들인 금액은 53000만원. 정부는 엄청난 수익을 남겼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에 사옥은 물론이고 호텔, 전시장, 공연장 등이 함께 들어서는 개발계획을 세우고 있다.

 

봉은사가 국가기록원을 통해 입수한 상공부의 대외비 문건 상공부 예하 주택조합 대지 해결방안을 보면 상공부 장관이 서울시장에게 매입 의뢰하고 서울시장은 도시계획과장(윤아무개)에게 1970112일 지시하라는 내용이 있다. 윤 과장은 그해 5월 도시계획국장으로 승진한다.

 

이 문건에서 나타나듯이 19701월 이낙선 상공부 장관은 김현옥 서울시장에게 상공부가 이전할 부지를 매입하라고 공식적으로 의뢰한다. 서울시장은 당시 도시계획과장 윤씨에게 비밀리에 매입을 지시했다. “종합청사 건설계획이 누설되는 경우 영동지구 지가의 폭등 등 부작용으로 인하여 서울시의 영동지구 개발계획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윤 과장이 조계종 총무원과 계약을 체결하기 불과 6일 전이었다. 그가 사야 할 땅은 서울에 상공부 건물을 지을 10만평. 흩어진 땅이 아니라, 한데 모여 있는 부지여야 한다. 윤 과장은 봉은사가 대대로 소유한 땅을 주목했다.

 

손정목씨 책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윤 과장은 봉은사 땅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봉은사에 접근한다. 조계종 총무원은 뒤늦게 윤씨의 신분을 알고 상공부 청사건설위원회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윤씨가 애초 계약한 금액은 한 평에 4300, 10만평에 총 43000만원이었다. 상공부가 계약 주체로 바뀌면서 계약금액도 5300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애초 상공부 및 산하기관인 대한석탄공사, 대한광업진흥공사, 한국전력, 포항제철 등이 들어설 부지였으나 계획이 틀어졌다. 한국전력만 1977년 이전 등기를 마치고 19821231일 옮겨왔다.

 

봉은사는 이 부지 매각 건으로 19709월 청와대에 탄원서 한 장을 보낸다. 당시 조계종은 이 땅의 매매 건으로 분란을 겪는다. “존경하옵는 대통령 각하, 1970927일 본 종단은 정부의 요청에 의하여 봉은사 토지 약 10만평을 상공부에 매도하고 총무처로부터 공무원 교육원을 매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하온데 봉은사 토지가 정부에 완전 이전(70. 9.30)된 지금 서울 동부 세무서는 동 매매에 대한 투기 억제세 84,533,700, 과태료 8,453,370, 92,987,070원을 부과하고 이를 납부하지 않는다 하여 천년 고찰인 봉은사의 사사지마저 압류하고 오는 711221일 공매 처분하기로 공고하고 있습니다.”

 

‘XY문건땅 등기부 확인해보니 중앙정보부도 등장

 

#XY문건 속 대치동 쌍용아파트

그가 연희동에 있던 나의 일터에 서류 보따리 하나를 들고 찾아온 것은 1995년 초여름이었다. 그 보따리 안에는 내가 기대했던 용역보고서 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에 전혀 정리가 안 된 채로 뭉쳐놓은 부동산 매매 관련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토지 매입·매각 계약서, 등기부등본, 여러 가지 메모, 서류 납입 영수증 등 강남의 토지 매입 매각과 관련된 서류 중 약 80%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이 서류를 성질별로 나누고 날짜순으로 정리하여 ‘XY문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 윤아무개는 그런 무거운 비밀을 20년이 훨씬 넘도록 혼자의 가슴에만 묻은 채 우스갯소리를 하고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살아온 것이다.”(<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06~107)

 

윤씨가 마지막으로 서울시를 퇴직한 시점은 742.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윤씨가 72년 한직인 한강건설사업소 소장으로 전출되기 전부터 청와대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투기를 한다는 소문이 팽배했다고 손씨는 전한다. 손씨는 윤씨 후임으로 도시계획국장으로 일할 때 대강의 윤곽을 파악했다. 윤씨가 서울시를 퇴직한 지 21년이 지난 1995년 여름, 대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남 땅 투기를 했다며 당시 매매 문건과 메모 등을 들고 서울시립대 교수였던 손씨에게 찾아오면서 박정희 정권의 강남 땅 투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손씨는 이 거래 문건을 ‘XY문건'이라 이름 붙이고 분석했다.

 

현대사학자, 또는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손씨의 책을 다수 인용해 논문 등을 작성했다. 그러나 해당 문건을 보았다거나, 윤씨를 만났다는 이는 없다. 손씨의 유족들도 ‘XY문건'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손씨는 생전에 소유한 책과 기록을 모두 서울시립대에 기증했다. 이 책들은 현재 서울시립대중앙도서관 손정목 문고에 보관돼 있는데 여기서도 XY문건을 찾을 수 없었다.

 

윤씨도 해당 문건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손정목에게) 자료를 넘겼다는 것은 아니고, 달래서 가져갔죠. 그렇게 (책에) 쓸 줄 몰랐죠. 다 가져갔어요. 복사도 안 했지. 그러니까 그 친구는 (문과 출신) 문학가고 우리는 (공대 출신) 기술자고. (둘 다 경주중학교) 고향 친구고.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니까 없어졌다는데, 뭐라 그래? 손정목이 시립대 교수 할 때 찾아가도 없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바보였지, 말하자면.”

 

윤씨가 19702월부터 약 1년간 128000만원을 들여 사들인 강남 땅은 248368. 강남구 전체 면적의 약 2%. 이 땅을 19711월 중순부터 매각했다. 윤씨는 18만평을 매각해 18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마련한다. 당시 서울시가 영동 지구 개발투입자금으로 계획한 167억원의 10%를 넘는 금액이다. 마지막 남은 땅은 65000여평. “이 땅은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에게 넘겨졌다고 책은 윤씨 입을 빌려 기록했다.

 

손씨는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자 전 쌍용그룹 회장인 김성곤씨에게 넘어간 부지 65000여평 가운데 58805평의 지번 목록을 공개했다. 모두 57개의 지번이다. 지번 이전 등으로 확인되지 않은 14개를 제외하고 43개의 폐쇄등기부등본과 구등기를 확인했다. 이 땅의 대다수는 1971~72년 사이에 김성곤이 소유했던 국민학원과 구암학원으로 들어갔다. 매매일도 거의 동일했다. 다양한 지번의 땅들이 72831, 7291일에 집중적으로 거래됐다.

대치동 쌍용 아파트 부지도 이 거래에 포함된다. 현 주소로 대치동 59-6번지와 그 일대에 조성된 대치동 쌍용아파트는 7호선 학여울역과 바로 붙어 있는 역세권 아파트다. 현재 시세는 32평에 약 13억원. 19833~11월에 완공된 아파트로 재건축 기대감이 높다.

 

이 아파트 부지의 폐쇄등기부등본과 구등기를 보면, 쌍용건설은 8147, 811229, 8222, 82223일 순차적으로 이 땅을 매입했다. 쌍용건설에 땅을 판 주체는 학교법인 구암학원과 국민학원. 모두 쌍용 김성곤 회장이 사실상 소유했던 법인들이다. 두곳의 공익법인을 통해 땅을 사들여 아파트를 지은 것이다. 두 공익법인이 이 땅을 사들인 시점도 7291일 전후로 같고, 매도인도 박아무개씨로 같다. 박씨는 70111일과 3일 이 땅을 매입한다. 박씨-국민·구암학원-쌍용건설로 이어진 거래는 일사천리로 이어진다.

 

양재동 266-5, 262-6번지 일대 폐쇄등기부등본에는 윤씨의 실명이 등장한다. 1970610일 정아무개씨가 조아무개로부터 땅을 매입하고, 이 땅은 76312일 상공부 산하 남서울 주택조합연합에 넘겨진다. 윤씨는 80310일 다시 이 땅을 매입했다가 불과 9개월 뒤인 801230~31일 임아무개씨에게 넘긴다. 윤씨는 상공부 땅이 임씨라는 개인에게 넘어가는 하나의 다리다. 중앙정보부가 매입한 땅도 확인됐다. 현 주소로 대치동 2번지는 국민학원(7291)-중앙정보부(781127)- 서울특별시(83110)로 넘어갔다. 대치동 쌍용아파트 부지와 양재동 266-5번지 등은 손정목 교수가 책에 기록한 XY문건을 검증 차원에서 확인해본 것이다.

 

#그에게는 강남 땅이 없다

윤씨는 강남에 단 한평의 땅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오랜 기간 입을 다물었다.

 

-청와대 땅 장사에 이용됐다는 것 때문에 억울했을 것 같은데 서울시를 그만두고 그들을 찾아가지 않았나.

“(비서실장) 김정렴, (경호실장) 박종규 안 찾아갔어. 그때, , 운명이라 여겼지. (1971~75년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나를 잘랐겠지.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 아냐. 김종필이 책 안 읽어봤어? (쌍용건설 회장이자 공화당 재정위원장) 김성곤이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한테 와서 빨갱이 (기록을) 지워달라고 했다고. 거기 보면 나와요, 김종필이 김성곤이를 굉장히 싫어했던 거. 김성곤하고 가깝게 지내니까 나를 좌경으로 봤겠죠.” <김종필 증언록>을 보면, 김성곤이 남로당 재정위원이었다고 나와 있다.

 

그는 김종필 국무총리가 자신을 잘랐다고 말하지만, 후임 국장인 손정목씨는 상공부 주택단지용 토지 때문에 윤씨가 72년 도시계획국장에서 한강건설사업소 소장으로 밀려났다고 전한다. 당시 정황은 이러하다. 이낙선 상공부 장관이 김현옥 서울시장에게 상공부 주택단지용 토지를 구입해 달라고 1970년 상호 합의를 했다. 합의 이면에는 상공부 주택단지용 토지를 서울시에서 개발하는 영동 1, 2구획정리지구에 넣어준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197011월 영동구획정리 1, 2지구 계획 내용이 확정발표됐을 때 보니, 합의 내용이 지켜지지 않았다. 윤씨가 구입한 상공부 주택단지용 293766평 가운데 113245평이 구획정리지구에 포함되지 않은 것. 서울시로서는 돌산이었기 때문에 공사비가 많이 들어 구획지구에 넣기 어렵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윤씨는 서울시를 떠나 1974~75년 쌍용건설 이사를 지냈다.

 

나는 뭐, 생활 자체가 (국회의원) 선거 치르고 쫄딱 망했지. 살기도 어려운데 뭐. 손정목이가 () 쓰니까 나도 한번 써봐야 되겠다 싶어서. 정치자금 땅에 관해선 소소한 이야기 많아. 나는 망했어. 쌍용건설 갔던 게 잘못이지. 김성곤이 (박정희 정권에서 7010·2 항명파동으로) 쫓겨나고 1975년 죽고 나니까 (김성곤) 아들이, (내가 아버지) 친구니까. 아버지가 발령낸 사람(인 나를) 바로 쫓아내데.”

 

-도시계획국장으로 지낼 당시 강남 땅을 개발할 때와 지금은 천지개벽일 텐데.

내가 만약 땅 샀다면 (그때) 쫓겨났겠죠. 지금도 후회스러운 것이, 내가 평당 4000원 주고 살 때 제일 먼저 산 땅이 어딘지 알아요? 청주대학교 이사장의 땅을 4000원에 10만평 샀어요.(김준철 청주대 이사장은 1996년 감사원 감사에서 학교 땅 16를 불법 상속하거나 매각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때 산이었어요. 그게 테헤란로의 중심가가 됐어요. 마지막에 병신 같은 이야기할 게요. (사고팔고) 하고 나서, 2000평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건데. 청와대가 땅 남았는 거 없냐고 해서, 없다고 해도 (그들은) 몰라. (그런데) 여기 있습니다 했더니, 쌍용에 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줬어. 그런 관계. 아이고, 그 이야기 하면 울화통이 터져서, 지금도 (강남) 지나가다 보면. 그때 내가 막 모른 척하고 100평이라도 샀으면 먹고살 거 아니에요. 요 꼬라지 해서 여기 먼 데 와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그런 이야기 하면, 하이고, 나 말 시키지 마. 미친다. 그래, 여기까지 와가지고, 꼬라지가 부끄러워서 안 만나려고 한 거야. 강남은 개발을 왜 이렇게 했냐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있는데, 나 갈라요. 미안해. 찻값은.”

 

이후 윤씨에게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윤씨는 만남을 거절했다. 지난해 1221일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손씨의 책 내용을 인용하겠다고 했더니 정치자금과 나는 관계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윤씨와의 이전 대화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고 보도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인터뷰를 싣는다.

 

그는 강남 신화를 설계한 실무자였다. 강남의 교육 자본과 인적 네트워크를 누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입성하려는 풍토와, 아파트를 사고팔아 차익을 누리지 않으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아파트 새마을 운동의 근간을 만들었다. 관권, 금권에다 지역감정까지 동원한 끝에 95만표 차이로 간신히 승리한 717대 대선 정치자금을 만들다 버려진 인물이다. 지금은 강남 땅을 사지 않았던 것을 지독히 후회하는 개인이다. 그는 박정희들을 만들었고, 그 또한 우리 안의 박정희들이다.

 

아파트 새마을 운동은 계속된다

2부 우리안의 박정희들-아파트 새마을운동

 

요즘 청년들에게 내집 마련은 말 그대로 꿈이다. 30대 직장인이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 아파트 단지를 서성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왜 좋은 거예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지.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좋은 동네에서 살 수 있고, 좋은 동네에서 살면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지.”

좋은 친구들을 사귀면 어떻게 돼요?”

당연 연설문을 직접 안 써도 되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선 개그맨인지 작가인지 모를 유병재가 풍자 코미디를 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너무 맞는 말은 듣기가 불편하다. 채널을 껐다. 서울의 서쪽에 사는 그에겐 이런 조언을 코미디 아닌, 진심으로 해 주는 친척들이 있다. “너 왜 아직도 그 동네 사니?” 고모 (70)씨는 그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씨는 친척들 사이에서 재테크의 여왕이라 불린다. 서울과 경기도에 부동산 11건을 갖고 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재건축 예정 18평 아파트/ 송파구 신천동 상가/ 청담동 28평 아파트/ 경기도 용인 56평 아파트/ 분당 정자동 상가.’ 씨의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2000년에 정년퇴직을 했다. 씨는 지금도 갖고 있는 부동산 전세 만기, 월세 날짜를 매일 부동산 일기에 쓴다.

월세, 전세 만기가 돌아오면 뱅 돌아가면서 돈 회전을 한다. 전세가 1억 올라가면 1억을 또 다른 데 투자하든지 필요한 일에 쓴다.” 일종의 투자 원칙이다. 씨는 젊은 시절 매일 부동산 중개업소에 찾아갔고, 요즘도 한 달에 몇 번은 들른다. “전세가 얼마예요?” “매매가 얼마예요?” 오랜 습관이다.

 

씨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가 본격 개발에 들어가기 전인 1980년대 초반(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한다), 30대 나이에 잠실 주공4단지(200612월 잠실 레이크팰리스 아파트로 재건축됐으며, 26평 아파트 현 시세는 85000~88000만원) 17평 아파트를 2250만원에 샀다. 방이 2, 재래식 화장실 1개인 연탄을 때는 5층 아파트였다. 남편이 월급을 타오면 간신히 먹고살았다. 융자는 1200만원쯤 있었다.

 

지금까지 베드타운으로 발전해온 강동지역은 88년 올림픽 타운 지역 확정에 따라 개발이 급진전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강동지역은 73년 천호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75년 잠실지구 주공, 시영 아파트 착공을 계기로 발전해왔으나 주택 일변도로 개발이 되었고 도로망의 확장이 늦어져왔다.”(<매일경제> 1981102일치)

 

주공4단지에 살았을 때 먼지 폴폴 날릴 만큼 공사 차량이 석촌호수에 드나드는 풍경이 씨 기억에 남아 있다. 30여년간 부동산 거래를 24번 해온 씨의 기억 속에서 어떤 아파트를 몇 년에 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몇 년쯤에 산 것 같다로 설명했다. 아마 씨가 그 아파트를 샀을 때는 ‘88년 올림픽 타운 지역이 확정된 81년 전후가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 씨의 꿈은 이랬다. 서울 가서 수돗물에 세수를 하는 것, 기저귀를 세탁기에 돌리는 것, 서울 학군에 애들을 보내는 것. 씨는 젊은 시절,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전국구로 이사를 다녔다. 월셋집에 살던 씨가 1980년대 초반, 30대 나이에 5층 아파트를 매입한 시절은 잠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뛰었다. 씨는 이 집에서 2년쯤 살다가 250만원을 남기고, 2500만원에 팔았다.

 

1980년대 아파트 개발이 한창인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자료사진

 

당시 전두환 정부는 완화-규제-완화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계속 수정했다. 1980택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는 등 2년간 부양하다가 1983~85년 규제 정책으로 돌아선다. 규제 정책이 먹혔고 한동안 집값은 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집을 안 사고 자가용을 사는 게 유행이었다.

 

재테크의 여왕’ 70대 고모

평범한 직장인 부인이었던 그녀 박정희가 일궈놓은 환상속에

전두환때부터 대출받아 거래 시작 30여년간 24번 매매·11개 소유

규제-완화 반복해도 손해 안봐 전셋값 오르면 그 돈 또 투자

 

재테크의 후손’ 34살 조카

연봉 3600만원 받는 직장인 빌라 1채외 8평 오피스텔 소유

월세로 이자내고 30만원 남겨 촛불 들지만 현실은 집값 걱정

발아래 작은 개미들 딛고 올라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

 

고개 숙이는 아파트값. 아파트값이 내리고 있다. 4·18 부동산 종합대책 등에 영향을 받아 치솟던 아파트값의 오름세가 꺾이고 전 지역에서 내림세로 돌아섰다. 그동안의 상승폭이 워낙 크고 급격했기 때문에 부동산 관계자들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매일경제> 1983422일치)

 

당시 한국인의 주거 트렌드는 꼬마 아파트에서 넓이 25, 높이 12층 이상의 고층, 도시가스로 전환돼 갔다. 잠실 주공4단지에 살던 씨는 1983년쯤 잠실 5단지(1978년 건축, 재건축 추진 중이며 34평 아파트 현재 시세 135000~137000만원)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남편 회사 선배 두 사람이 살던 15층 고층 아파트였다. 연탄을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보일러 아파트였다. 잠실 주공5단지는 민간업체들이 당시 건축하던 12층 고층에서 3층을 더 높이 올린 획기적인 아파트였다. 34, 46평 두개 평형밖에 없는, 중산층의 로망이었다.

 

씨는 2년 전세 계약으로 살면서도 매일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부동산에 들렀다. 한동안 잠잠하던 집값은 하루에 100만원씩 올랐다. 전세 살다가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연탄 아파트로 쫓겨 가는 것 아닐까. 불안했다. 국내 경제 호황과 대통령 선거, 올림픽 특수 등의 국가적 이슈와 맞물려 부동산시장은 날뛰기 시작한다.

 

씨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을 사겠다고 했다.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융자를 내도 등기비가 모자랐다. 집주인(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던 집주인을 고아무개 박사로 기억한다)이 등기는 나중에 돈 생기면 하고,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액만 치르면 매매를 하겠다고 했다. 집값은 치솟고, 나중에 사지 못할 것 같아서 주인 말대로 했다. 그리고 1년 뒤 등기를 쳤다. 씨는 그 집을 1986, 3500만원에 팔았다고 기억한다.

 

국가는 규제 정책을 고수했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는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다. 청와대 입성 전 이씨는 강남의 빨간 바지로 불렸다. 부동산 중개소에 나타날 때면 빨간 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전설이었다. 대통령 부인 시절에는 비자금을 관리하던 청와대 김아무개 비서관에게 맡겨 재산을 증식했다고 2004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수사 당시 실토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15년간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 업자는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했다. 분양 계약서를 담보로 막대한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었다. 아파트 골조 공사가 시작되면 다달이 분양대금이 들어왔고, 입주가 시작되면 잔금이 들어왔다. 은행 돈을 마구 빌렸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땅을 사고 또 아파트를 지었다.

 

씨는 86년 잠실 5단지 아파트를 팔고 같은 아파트 다른 동 2년 전세로 들어갔다. 집값은 또 뛰어올랐다. 이러다 거지 신세가 되겠다 싶었다고 한다. 만기도 되지 않았는데 87년쯤 신천동 장미아파트 28평을 2800만원에 샀다. 마침 1990년 부모님에게서 유산 4300만원을 받았다. 씨가 90년대 초반쯤 장미아파트를 팔았을 때 차액이 1억원이 넘었다. 그해 신천동 장미아파트 39평을 22000만원에 샀다. 마흔세살쯤이었다. 그리고 200042000만원에 팔았다. 남편 퇴직을 앞두고 2000년 청담동 현대아파트 27평을 7500만원에 샀다. 매매 22500만원인데, 전세 1500만원을 안았다. 퇴직을 앞두고 공기 좋은 경기도 용인에 내려가기 전 강남에 하나 남겨놓아야겠다 싶었다. 당시 청담동 시세가 의외로 쌌다. 압구정동만 시세가 나갔다. 청담동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8, 전세는 53000만원이다. 퇴직 후 용인에 56평 아파트를 3500만원에 샀다. 지금은 5억이 안 된다.

 

씨가 30여년간 24번의 거래로 재산을 굴려 11개의 부동산을 만드는 동안 정권은 수차례 바뀌었다. 규제와 완화 정책이 반복됐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번복해도 씨는 손해 보지 않는 법을 알았다. 늘 부동산 경기에 민감했고, 팔아야 할 때와 사야 할 때, 팔아야 할 지역과 사야 할 지역을 알았다. “너 왜 그 동네에서 이사 안 가니? 좋은 동네로 이사해야 한다.” 씨는 조카를 만날 때면 조언을 한다. 현실적인 조언이다. 좋은 동네에 살아야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오를 때도 대폭 오른다.

 

씨와 조카는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르다. 조카인 그는 서른네살, 연봉은 3600만원이다. 그는 매주 토요일 촛불 광장에 나간다. 집회가 끝나면 문을 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에게는 대출을 받아 산 다세대주택 외에 오피스텔이 하나 더 있다. 16개월 전 대출을 받아 산 8평 오피스텔이다. 살인적인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과 늘어나는 비정규직과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어진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세를 준 방의 월세가 떨어질까봐 걱정이 된다. 그가 세놓은 방에는 이제껏 세 명의 세입자가 살았다. 첫번째 세입자, 두번째 세입자 모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세번째 세입자 이름은 정아무개다. 휴대전화에는 세입자 정아무개로 저장돼 있다. 첫번째 세입자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45만원, 두번째는 2000만원에 60만원, 세번째는 2000만원에 65만원에 계약했다는 것은 기억한다. 세입자들이 회사를 옮겨서, 좁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몇 개월 만에 방을 비웠고 바뀔 때마다 월세가 올라갔다. 2억원 오피스텔은 대부분 빚을 내서 구입했고 실투자금은 4000만원이다. 세입자는 월급에서 65만원을 그에게 주고, 그는 65만원에서 33만원을 은행에 냈다.

 

그는 중산층이 되기 위해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꿈을 갖고 있다. 언젠가 집값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투기를 못 잡는 국가는 한심한 정부다. 아파트 한 채가 너무 비싼 이유는 한 사람이 여러 채를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앞으로도 정부는 투기를 잡지 못할 것이다. 그는 발아래 사는 작은 개미들을 딛고 위로 기어올라가기로 했다. 아파트 한 채를 사는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실제 거주하지도 않을 방 한 개를 더 매입해서 세를 놓았다. 세를 놓고 보니 염려는 두 배가 됐다. 집값은 떨어지고 월세는 오르기를 기다린다.

 

기어오르려다 자꾸 헛발을 디뎠고 미끄러질수록 발아래 개미 떼들에게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 개미 떼들 무리는 더욱 격렬하게 발버둥 친다. 그는 지금 이 개미 떼들에게 빨대를 꽂고 있지만 자칫하다간 자신이 빨대를 꽂히게 될지도 모른다. 주거 공간이 투전판으로 변해버린 헬조선의 풍경이다.

 

 

귀향길에 둘러볼 내 고향 알짜 아파트 어디17.1.25 한경비지니스

 

[스페셜 리포트 = 설 연휴 재테크]김해·청주·춘천·천안·전주 등에 베스트 분양 물량숨어있어

그냥 명절이 아니다. 민족 최대 명절 설이다. 연휴 기간은 127일부터 30일까지 총 4. 대체공휴일 시행으로 하루 더 늘었다. 이쯤 되면 부동산 투자자들의 눈이 빛난다. 모처럼 시간을 내 눈도장을 찍어 뒀던 분양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하는 부동산 투자에서 현장 검증은 필수다. 검증에 앞서 체크리스트를 뽑아보자.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졌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분양권 전매제한, 1순위 청약 자격 강화와 재당첨 제한, 중도금 대출 보증 강화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을 본격 시행한 결과다. 입주 폭탄에 따른 공급과잉과 금리 인상 우려까지 맞물렸다.

 

과열됐던 부동산 시장은 안정세를 찾기 시작했다. 시장은 이미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가수요가 빠지며 실수요자들의 청약 당첨 확률도 높아졌다. 실수요자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살기 좋은 집을 찾기 시작했다. 명절 연휴 둘러볼 만한 알짜 분양 단지를 지역별로 3곳씩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