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주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음에도 쉬기로 작정하고 양산 덕계에 잠시 머물고 있는 벗을 찾아가기로 했다. 절집을 전전하던 그가 캠핑카에서 생활한다기에 막내를 데리고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자 함이었다.
봄비 치고는 돌풍까지 동반했던 이틀간의 비가 그친 토요일 아침, 쾌청한 날씨는 캠핑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했다. 하지만 기대는 오후들어 일변한 날씨처럼 실망으로 변했다. 그 시작은 덕계 시내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캠핑에 필요한 식자재를 구입할려고 하는데 그가 좀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어쨌든 라면과 김치, 주류 등을 구입하고 주차해 둔 캠핑카로 이동했다. 막상 마주한 캠핑카는 그의 거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또 조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없었다. 삼겹살이며 해물을 구입하고자 했을 때 지었던 그의 표정이 왜 그런지를 캠핑카는 말해주었다. 게다가 그의 친구까지 합류한 상태가 되어 아들과 알콩달콩 보내려고했던 주말은 사실상 물건너 간 상황이 되었다. 좀 짜증스러웠다. 대관절 이 친구는 왜 날더러 오라고 한 것일까. 단순히 보고 싶고 외로워서 였을까. 마음이 불편했다.
베낭을 차에 두고 숲으로 산책을 나섰다. 모처럼 벼루고 온 나들이었기에 술이 급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산책을 빙자한 정리시간을 친구에게 준 것이지만 내 뜻을 읽지 못한 것 같았다. 예컨데 나는 아들과 간만에 친구를 찾아 왔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귀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는데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상황의 변화는 없었다. 다만 상황의 변화를 기대하고 나선 산책길 아들과 많은 것들을 만날 수있었다. 사실 편백과 리기다 등으로 식재된 인공조림지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식물상이며 동물을 만날 수는 없었다. 다만 건너편 활엽수림은 사정이 달랐다. 다람쥐를 비롯하여 노루가 사면을 오르내렸다. 아들의 눈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피워올리는 꽃도 달랐다. 인공조림지에서는 남산제비가 유일했지만 활엽수림에서는 철죽을 비롯하여 각시붓꽃, 세잎양지,금창초 등이 보였다. 아마도 빛의 영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굴피나무의 새순이다. 아마도 굴피나무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때가 아닐런지 ... 5월이후 잎나고 꽃이 피면 다른나무에 가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다.
두릅나무 어린싹과 이제 막 잎을 내민 참나무류의 앙증맞은 잎은 새삼스리 봄의 위대함을 느끼게 했다.
아들과의 숲 산책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가 내리기 시잣했기 때문이다. 황급히 캠핑카로 돌아와 허기진 아들이 라면을 끓이는동안 잠시 고민을 해야했다. 시간 이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머물 것인지 아님 핑게거리를 찾아 귀가할 것인지 결국 머물기로 했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비는 밤새 내렸다. 달리 어찌해 해 볼 수 없는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덕계 중심가로 내려온 일행은 고기집을 찾아 술을 마셨다. 결코 희망했던 장면은 아니었지만 캠핑카에서의 일박을 그려왔던 아들의 바램도 있고 해서 였다. 추가로 술과 안주거리를 마련해서 캠핑카로 돌아온 시간은 초저녁이었다.
밖에는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벗은 기타를 꺼내어 노래를 불렀다. 나는 취기가 올라 양해를 구한 다음 누워버렸다. 그 바람에 벗의 친구도 일어섰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서로가 초면인 상태에서 내 욕심이 앞선지도 모른다. 촛불이 캠핑카 안을 밝혔다. 정리를 하고 누운 시각이 여덟시 경 침낭을 펴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들이 추울까봐 껴앉고 잤는데 눈을 뜬 것은 새벽 세시경 오줌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난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은 내가 잠든뒤 열한시까지 심심해서 집으로 숫한 문자를 날렸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날이 밝자 말자 다시 숲으로 향했다.
고사가 진행중인 소나무에 한입버섯이 층층이 붙어 있었다.
한입버섯(Cryptoporus volvatus (Peck) sehar)의 크기는 갓 2~10cm, 높이 5~10cm 정도이며, 표면은 황갈색 또는 갈색이며, 광택이 있고, 매끄럽다. 대는 없고 기주에 붙어 생활한다. 갓의 밑부분은 백색 또는 담황색의 피막으로 덮여 관공면이 노출되지 않으나, 나중에 지름 0.5~1cm 정도의 타원형 구멍이 뚫려 외기와 통하게 된다. 포자문은 백색이고, 포자모양은 원통형이다. 순환기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 버섯은 침엽수의 고목, 소나무의 고목 또는 생목의 껍질에 무리지어 나며, 부생생활로 목재를 썩힌다. 200g 정도에 4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는데 한 봉다리를 떼 왔다.
무지개 폭포로 향했다. 천성산 자락 에서 발원한 이 계곡물이 회야강이 된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햇빛을 받아 아름다운 오색무지개를 형성한다 하여 붙여진 무지개폭포는 계곡이 깊고 물이 깨끗할 뿐만 아니라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진 수려한 계곡으로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봄장마로 불어난 계류가 세차게 흘렀다. 계곡의 봄은 바닥부터 온다
낙엽이 수북한 사면에 본격적인 경쟁에 앞서 이 계절을 후딱 살고 가는 꽃들
일테면 얼레지나 바람꽃, 남산제비꽃, 개별꽃 등이 지천에 깔렸다. 지난봄 이 친구들을 만났든가. 기억에 없다. 그래서 반가웠다.
더러는 이미 꽃을 피우고 씨방을 만들기도 했고 더러는 이제 꽃잎을 열 찰나였다.
노루발풀도 조만간 꽃대를 올려 연초록 흰꽃을 피우리라
알록제비꽃류
개별꽃
현호색도 지천에 널렸다. 이곳에서 흔한 이런 봄꽃도 시내 야산으로가면 귀한 꽃이 된다. 서식환경의 변화 때문이리라
박새와 하늘나리 어린싹도 땅을 뚧고 얼굴을 내밀었다. 이 친구들이 꽃을 피울 때 다시 욌으면 좋으련만
싸리나무류의 어린잎들
천성산은 물산이다. 비가 온 탓도 있겠지만 늘 물을 머금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풀들이 이곳에 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지개폭포 하류부의 계곡수변부 나무들은 대부분 이렇듯 바위를 제 몸의 일부처럼 여기며 하나가 된 세월을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 모습 계속 간직할 것이다. 나무와 바위의 서로 다른 조합이 하나가 되어 산다는 것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나무라고 이런 암반류에 뿌리내리고자 했을까 살다보니 껴앉게 되었으리라
벗과 점심을 나눈 후 헤어졌다. 그와의 인연, 80년대 우리는 만나 단짝이 되었고 그후 그는 자유로운 그러나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본인으로서야 아니라고 하겠지만 가끔씩 전화기 넘어 그의 눈믈을 볼 때면 마음이 안스럽다.
아 진달래가 저렇듯 고은 빛깔로 피어 있다.
물은 흘러 어디로가는가
꽃은 피어 어쩌자는 것인가
유난히 복사꽃 화사한 이 봄날
01. Chopin's Nocturn in E Flat, Opu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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