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세계음악속으로] 대초원의 노래, 후미 창법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 어쩐지 조금 촌스럽고 90년대 광고 카피 같은 문구지만, 아마 회색 도시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한 번쯤 되뇌어봤을 법 한 말이다.
그래, 도시는 언제나 바쁘다. 나무가 헐벗고 기나긴 잠에 빠져들 준비를 하는 이 계절에도 도로는 멈추질 않고, 빛은 끝없이 깜빡인다. 콘크리트의 성채는 갈수록 높아져가고.
도시의 삶은 인생의 스케일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어쩐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떠나고플 때가 있다. 드넓은 평야,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으로.
아시아 대륙의 내륙, 중국의 북쪽이자 러시아의 남쪽인 몽골. 이곳에 있었던 제국은 한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까지 말을 달리며 적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위대한 칸,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다.
몽골은 칭기즈 칸과 몽골 제국 말고도 다른 얘깃거리들이 참 많다. ‘그들은 시력이 6.0이다’라는 소문도 있고, 독특한 모양의 텐트 ‘게르’도 글램핑 등을 통해 알려져서 친숙하다. 몽골 여행을 이미 다녀온 사람들은 전통 요리 ‘허르헉’에 대한 후일담을 내 놓기도 한다.
아, 또 한가지 유명한 게 있다. 오묘한 창법. 한 사람의 목에서 둘 이상의 음이 나는 기묘한 노래들. 바로 ‘후미(Хөөмий, Khöömii)’ 창법이다.
대초원의 노래, 후미 창법
이번 ‘걸어서 세계음악속으로’ 시간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일명 ‘목구멍 노래’, 후미 창법을 함께 들어보자. 여러분을 대초원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 듯한 후미 창법, 그리고 후미 창법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곡 몇 가지를 소개한다.
후미 창법이란?
흐미, 후메이 등으로도 불리는 이 창법은 초원의 바람소리, 산과 강의 소리, 동물의 소리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한 명의 창자(唱者)에게서 두 가지 이상의 음이 나는 것이 특색인데, “우우우~”하는 소리와 “위이이~”하는 소리, “요오오~”하는 소리 등이 한데 섞여 기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몽골인의 조상들은 이 창법을 ‘새들에게 배운 것’으로 여긴단다.
몽골 서부 알타이(Altai) 산맥 지역에서부터 러시아 일부지역(투바 공화국이 목구멍 노래로 유명하다.), 네이멍구(內蒙古)·신장(新疆) 자치구 등지의 사람들이 후미 창법을 공유한다. 이밖에 티벳이나 시베리아 일대,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목구멍의 떨림을 이용해 한 명이 두 개 이상의 음을 내는 창법이 있다.
직접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아무나 이 창법으로 노래할 수는 없으며, 상당한 훈련을 거쳐야만 이와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보통 몽골 일대에서는 남자 가수가 후미 곡을 부르며, 여자는 소수만이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자 가수들 역시 상당히 매력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이번 시간엔 후미 창법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추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소개해드리도록 하겠다.
후미는 주로 조상과 영웅들에 대해 노래하는 데 사용되는 창법이다. 그러나 국가적 행사, 축제나 경사 등이 있을 때에도 불려진다.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날까?
바람소리 같기도, 개구리 소리 같기도, 새 소리 같기도 한 후미. 평야처럼 낮고 드넓은 저음, 새파랗고 청청한 하늘처럼 드높은 고음의 조화가 가슴을 울린다.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에서 이와 같은 소리가 날 수 있을까?
후미 가수들은 성대를 팽팽하게 당겨 저음을 내면서 혀끝과 앞니를 이용해 울리는 소리를 낸다. 이때 두 가지가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 조화를 이룬다. 물론 설명은 쉽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소리를 내기는 어렵고, 상당한 체력이 요구된다.
후미의 소리를 쪼개 분석해보면 100~200Hz의 소리와 2000~3000Hz의 공명음이 있다. 이 두 가지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멜로디가 되는 것이 바로 후미다. 성대와 가성대(보통은 가성대를 벌려 소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나, 후미 가수들은 가성대를 좁힌다)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이 쉽지 않다보니 제대로 후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또, 후미에 통달한 사람은 무려 여섯 가지의 음을 화음으로 부른다고 알려져 있다.
간혹 “오오오~”소리와 “위이이~”소리를 내다가 합쳐지는 것을 보고 “어라? 나 되네?”라며 놀라는 분도 계시던데, 소리를 내는 것 자체는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여기에 가사를 입히고 화음을 넣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노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부분이다. 실제로 후미 가수들은 보통 후미 창법으로 30분~1시간 가량을 쉬지 않고 노래할 수 있단다.
후미 창법의 양식과 기교
후미 창법은 두 가지 양식으로 나뉜다. 저음이 돋보이는 ‘하르히라(kharkhiraa)’와 휘파람 소리가들리는 ‘이세게레(isegeree)’ 양식이 각각 그것인데, 하르히라는 그야말로 낮은 땅의 울림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고, 이세게레는 새가 지저귀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더 두드러진다.
투바 공화국에서는 ‘회메이(xөөмей)’, ‘카르그라(kargyraa)’, 그리고 ‘스긋(sygyt)’ 등의 창법이 있다. 회메이는 투바 언어로 후미 창법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카르그라는 가성대(가짜 성대)를 조여 낮은 음을 내는 소리가 특징이며. 스긋은 높은 음이 돋보인다.
이밖에도 에젱일레르(ezengileer), 보르방나드르(borbangnadyr) 등의 스타일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위 세 가지 창법의 발전 혹은 변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여느 전통음악과 마찬가지로, 후미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츰 사라져가는 추세라고 한다. 애초에 후미는 훈련이 너무 고되기도 하고, 우리의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계승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다만 다행스럽게도 이 매력적인 두 갈래의 노랫소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몽골 포크 밴드 ‘The HU’는 락과 후미, 그리고 몽골 전통 악기를 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상당히 남성적이고 거친 이들의 음악은 유튜브에서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애절한 선율을 내는 몽골 전통 현악기 마두금과 기묘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곡도 있다. Batzorig Vaanchig은 이밖에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 폴로’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드라마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지만… 다양한 몽골 가수들과 연주자들이 참여한 사운드트랙만큼은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위 마르코 폴로 사운드트랙처럼, 몽골을 주제로 한 콘텐츠에는 후미 창법을 활용한 곡들이 자주 사용된다. 비디오게임 ‘토탈워: 아틸라’의 사운드트랙에도 사용됐으며, 게임의 인기를 타고 게이머들에게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투바 공화국의 ‘Kongar-ol ondar’, 그리고 ‘Saidash Mongush’는 자국을 대표하는 회메이 가수들이다.
보통 겨울엔 하늘에 별이 잘 보인다고 한다. 헌데 서울의 밤 하늘은 별 보기가 참 어렵다. 밤 중에 바깥에 나가 앉아있기엔 춥기도 춥거니와, 공기도 나쁘다. 무엇보다도 건물, 가로등 불빛 등이 있어 밤 하늘의 별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실제로 도시에서 별을 보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빛 공해’ 때문이라고 하더라.
언젠가 몽골 대초원에서는 밤이 오면 별은 물론이고 은하수도 볼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온 하늘의 별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서, 아름답기도 하고 무섭기까지 하다고.
한때 세상에서 가장 드넓은 영토를 다스리던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언젠가 꼭 한번 그들처럼 말을 달려 몽골의 대초원과 별들을 올려다보고픈 욕망이 두방망이질 친다. 여러분도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해보시길 바라며, 이번 여행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6S4IyVXnE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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