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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by 이성근 2023. 1. 13.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전현우 지음, 민음사 펴냄 2022.12

 

: 전현우-서강대학교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자연종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통, 철학 연구자. 과학철학을 연구하던 와중, 대규모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사람들을 매일같이 끌어들이는 교통 시스템의 마력 덕에 본격적으로 교통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거대도시 속에서 이동력을 제공하는 철도망이 어떤 조건 아래에서 존재하고 번창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책인 거대도시 서울 철도를 썼고, 이 책으로 제61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 학술부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에서 교통에 대한 관심을 더 발전시키면서, 앞선 저술에서 누락되거나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 쟁점을 검토하는 새 책을 몇 권 준비 중이다.

 

사고실험, 증거기반의학의 철학, 역학의 철학,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등을 번역했다. 2005년 이후 철도 현장과 데이터,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교통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 인천시청 웹진 아이뷰(i-view)를 비롯해 확장 도시 인천(공저), 세 도시 이야기(공저) 등에 철도를 둘러싼 교통의 세계를 다룬 글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철학과 물리학의 눈으로 교통을 바라보는 방법을 연구하는 한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회원으로 철학이 오늘날의 정교한 지적 분업 체계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성찰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며 기후변화 시대에 철학하기

 

1부 위기에 처한 이동

1장 오늘의 교통 상황

2장 이동하는 인간의 조건

 

2부 자동차에 납치된 도시에서

3장 자동차와 한국 현대사

4장 납치된 걷기 공간

5장 도시를 구하는 방법

 

3부 우리가 찾아갈 길

6장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7장 대지에서의 죽음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서평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을 인류가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한 최근 15. 에너지 변환, 산업, 건물 부문에서의 성과와 달리 교통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OECD 회원국에서 단 2% 감소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교통의 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172%. 절대량에서도, 미래 예측치에서도 교통만은 기후변화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기후위기는 보편적인 의제가 되었지만, 행성 규모의 문제 앞에서 개인은 쉽게 무력해진다. 교통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인다는 목표는 엄존하는 이동의 필요 앞에서 밀려나고 만다. 세계 철도망에 대한 방대하고 집요한 연구로 주목받은 저자 전현우는 본래 전공인 철학으로 이동을 열망하는 마음을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교통, 철학 연구자로서 이동이 삶의 조건이자 운명인 인간의 견지에 굳건히 서서 데카르트와 브뤼노 라투르를, 동양 고전과 진화심리학을, 각종 통계와 연구 보고서를 치밀하게 참조하며 그 자신의 철학을 시도한다.

 

왜 철학이어야 할까? 대지 규모의 위기 앞에서 그 땅 위의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동하는 개인의 조건, 물질과 에너지 흐름, 사회 체제를 함께 파악하고, 인간의 마음에서 교통망, 도시권으로 확장되는 시야를 뒷받침하는 것은 생각의 뼈대로서의 철학이다. 자동차, 비행기, 철도 그리고 우리의 사지라는 교통 기계를 새로운 존재자로 도입하는 형이상학과 이들을 포착하는 인식론을 통해 새로운 윤리학의 길이 열린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게 이끄는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매일매일의 길찾기와 교통수단 탐색을 결코 예전처럼 예사롭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로 녹아내리는 도시,

자동차에 납치된 거리에서

소멸과 파국을 딛고 삶을 지속할 길을 찾다

 

전기차가 대안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저자는 채택하지 않는다. 에너지 소비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나 전력 분배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잊힌 사실에 이 책은 빛을 비춘다. 일상에 비할 수 없는 편리를 제공하는 자동차가 탄소 배출의 주범이라는 것만이 아니다. 이면 도로에서 보행자를 위협하고 길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차량들이 우리의 마음과 삶의 가능성을 지배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한국의 교통망과 도시 체계가 자동차를 중심으로 짜이게 된 현대사를 살펴보며, 저자는 우리 삶의 가능성이 창발되는 걷기 공간이 납치되고 만 현실을 포착한다.

 

도시 문제와 지역 간의 격차, 교통 계획을 아우르는 해법으로 이 책이 내놓는 방안은 확장된 걷기 공간으로 도시를 재편하는 것이다. 확장된 걷기 공간이란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를 걸어서 움직일 수 있고, 이 걷기를 돕는 수단으로 철도를 중심으로 한 공공교통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차 없는 뚜벅이도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책 속으로

이 책에서 나는 기후위기 시대의 철학을 시도한다. 새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고, 이 존재자를 알아보는 방법, 이 존재자의 가치를 현실에 구현할 방법까지 제시해야 할 것이다. 존재자의 도입을 형이상학, 이들을 알아보는 방법을 인식론, 가치를 구현할 실천법을 윤리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런 총체적인 시도에 관심이 있다면 그는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득 시도는 수사적으로도 적중해야 한다.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다가 날이 새거나, 문제의 존재자를 확인하기 어렵다거나, 가치가 모호해 보인다면 갈 길 바쁜 사람들은 모두 제 갈 길로 떠나가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괜히 끌려왔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 하기란 욕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기후가 문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후 문제는 21세기의 남은 시간 동안 수습해야 하며 그다음 수백 년 이상 관리해야 할 우리 행성의 문제다. 나는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문제가 철학사를 지배했던 몇몇 문제만큼이나 무수한 방식으로 변주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 속에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출장길까지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들어가며중에서

 

이동이라는 인간의 운명은 계속될 것이다. 이동할 필요가 극적으로 줄어들 리도 없다. 그러나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이동량, 특히 승용차와 비행기의 이동 거리 절대량을 실제로 줄여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내일의 출근과 모레의 출장, 주말의 여행을 위해 제한된 구매력과 시간을 희생해 탄소 저감에 나서라고 할 여지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들 질문 앞에서 이동의 위기는 더욱 깊어진다. 일상의 질문과 교과서적인 답 사이에 심연이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초래한 원인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다. 특히 이곳 한국에서는 수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 흔하고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지배자가 있다. 바로 자동차 이야기다.---2장 이동하는 인간의 조건중에서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개통식 치사에서 재무, 기술, 심성의 영역에 있는 혼종을 언급하고 있다. 고속도로의 건설을 위해 재정적으로 원조나 차관을 사용하지 않았고, 기술 면에서도 외국 엔지니어의 기술 지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심성의 측면에서 박정희는 이 고속도로가 민족의 능력시험”10하기 위한 도전 과제였다고 갈파한다. 이것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은 신생 근대국가가 교통 시스템이라는 혼종을 관리할 역량을 스스로 기르기 위한 시험이었다는 이야기다. 교통망 자체를 변형할 역량의 부재가 이 시험을 통해 도전하려는 혼종이었다.---3장 자동차와 한국 현대사중에서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무언가가 아름답다는 판단과 숭고하다는 판단은 사람들에게 그보다 고양된 윤리적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준비 운동과 같다고 보았다. 도시에서 창발되는 질서를 미나 숭고의 자리에, 기후위기를 윤리적 판단의 자리에 집어넣어 보자.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나지만, 그 자신의 이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의미인 창발된 질서는 지구 가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하고, 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반이다. 좀 더 최근의 진단 또한 곱씹을 가치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독일어권의 마을 내부 골목길에 도입된 만남 구역에 주목한다. 도로교통법, 신호등, 교통경찰 등에 의해 작동하는 대로와 달리, 만남 구역에서는 일반적인 속도 제한 이외에는 규정, 교통 표지판, 신호등이 거의 없. 교통은 참여자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관리된다. 여기에서 함부로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려면 교통 참여자들은 배려와 주의의 원칙 그리고 함께라는 원칙을 내면화해야만 한다. 이러한 원칙은 차를 탄 사람보다는 걷는 사람이 많은 골목길의 리듬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속도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조건이 이 만남 구역이다.---4장 납치된 걷기 공간중에서

 

자동차 지배에 균열을 내고, 자동차 주행거리 그 자체를 더 줄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이 장면은 더 넓은 영역에서 재현되고 도시는 녹아내릴 것이다. 고밀 개발 자체로는 이런 장면을 막을 수 없다. 도표 2의 곡선을 아래로 끌어 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밀도가 유지되더라도 인구당 차량 주행거리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수십 수백 개의 15분 도시 사이를 잇는 광역교통망을 바꾸는 것이 문제의 핵이라고 생각한다. 동력 기관은 결국 이 광역교통망에서 필요하다. 하나의 광역권을 이루고 있는 수십 수백 개의 15분 도시를 자동차 지배 공간이 아닌 방법으로 연결해 내는 것. 이것이 이동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다.---5장 도시를 구하는 방법중에서

 

억울한 죽음이 무엇인지 조명하기 위해, 새 사또가 부임하면 사또 관사에 등장하는 귀신(대개 처녀) 이야기의 구조를 떠올려 보자. 새로 온 사또가 다행히 용감한 사람이어서 자신과 대면할 수 있다면, 귀신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부조리를 설명한 뒤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호소한다. 기막히게도 관료적이지만, 결국 관료는 수단이고 이들의 의무는 부조리한 죽음을 당한 당사자의 감정을 풀어 주는 데 있다. 실제로는 사라져 없어지는 당사자의 감정을 반사실적 상상속에서나마 구현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집단적 합의가 이런 귀신 이야기의 바탕에 있을 것이다. 길은 억울한 죽음을 부르는 공간이다. 지난 30년간 운수사고로 죽은 사람은 총 269775명이다. 길 위에서 도시가 하나 사라졌다. 길을 짓는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죽음처럼 길과 직접 관련된 죽음까지 더하면 그 수는 늘어날 것이다. 분산되어 있어 사람들에게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수는 같은 기간 동안 죽은 777만 명의 사람에 비해서도 4%가량이다.---7장 대지에서의 죽음중에서

 

우리는 자동차가 지배하는 도시에 '납치'됐다

기후위기 시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철도 덕후'이자 과학철학을 전공한 이가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말한다. 전현우의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이동의 위기 탐구>(민음사 펴냄) 이야기다. 그는 전작 <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워크룸프레스 펴냄)에서 도시계획과 공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철도망과 기후위기를 기술적으로 연결해서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식과 상상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이동'이라는 문제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철학하기'에 함께 나서보자고 제안한다.

 

이동성이 주제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이 기후위기 속에서도 자기 손안에 있다고 믿는 기계인 자동차, 비행기, 철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사지라는 이동성의 수단들이 일상과 경험에 직접 연결되는 대표적인 매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매개가 위험 혹은 한계에 처하거나 그 자체가 문제의 원인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다른 한편, 한국에서는 '자동차 지배'라는 현상 자체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동차가 우리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자동차 지배라고 이름 짓고, 자동차 지배가 관철되고 있는 도시에서 우리는 '납치'된 처지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런 납치는 철학의 납치이자 민주주의와 정치의 납치 상태다.

 

그는 한국이 자동차에 납치된 정도는 공공교통 접근이 사실상 차단된 수도권 외곽 난개발 시가지의 거주자 증가 비율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브뤼노 라뚜르의 개념을 이용하여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본격화된 승용차와 도로 중심의 '혼종'(hybrid)이 기존의 철도망 혼종을 밀어내며,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자동차 지배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자동차 전용도로 끝마다 조성된 넓고 혼잡한 주차장에서 주거 공간으로 사람들을 바로 잇는 신도시들, SUV의 소유와 이용이 보편적 삶의 형태가 된 문화. 요컨대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늘어나는 드라이브스루 매장, 고속도로를 통해서만 접근해야 하는 쇼핑몰은 걷기에 바탕을 둔 만남의 장소가 납치를 당한 일례다. 사람들은 도시 속에서 만남을 누리기 위해 더욱 승용차에 의존하게 된다.

 

많은 지자체가 너도나도 빠리의 사례를 좇아 '15분 도시', 즉 편의시설과 필수시설에 도보 등으로 15분 만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동차 지배를 하나도 바꾸지 않거나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이용률이 충분히 높은 무궁화호 편성마저 지역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감편이 이루어진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위해 비자림을 파괴하며 자동차 도로를 넓히고, 서울에서 유일한 보행자 전용지구였던 연세로는 상권 침체를 이유로 다시 자동차를 끌어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동차와 철도 건설 계획은 비용 대비 수익(B/C)이라는 단기적 효과로만 평가되며 기후위기와 같은 분명한 외부 비용마저 간과된다. 저자는 이런 자동차 지배 속에서 대도시는 기후 파국이 없더라도 천천히 침체하면서 죽어갈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도시는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다. 미국의 도시운동가 제인 제이콥스는 서로 다른 크기 및 다양한 용도를 갖는 건물과 셀 수 없는 골목길이 있는 도시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그로부터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너무 과소하지도 과밀하지도 않은 수준의 밀도 속에서 걷기 공간의 확장을 통해 활성화되는 '제이콥스 효과'가 도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꾼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한번 철도망의 잠재력을 강조한다. 역과 버스 정류장은 사람들이 이동수단의 전환을 겪으면서, 자기 발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도시를 창발시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앞서, 철도는 수십개의 도시를 15분 만에 이어줌으로써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때문에 철도는 제한된 공간과 에너지 자원을 공공의 결정을 통해 배분하고 미래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수반해야 하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자동차 지배를 넘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지점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지배라는 납치 상황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저자는 뜻밖에도 '마음'의 정치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는 새로운 삶과 경험을 찾아 이동하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며, 또한 에너지와 기후의 위기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오늘의 교통 상황 속에서 동력기관과 우리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이동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진단을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 압력도 역시 각각의 사람으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분명 각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하며, 교통처럼 개인에게 선택권이 존재하는 영역만큼 이런 변화를 시작하기 좋은 지점은 없다.

 

그래서 그의 현실적 대안은 '온건한' 편이다. 강력한 하방식 규제보다는 외곽 지역의 중산층이 다시 지역 중심지에 접근하게 만들고 지역 내 공공교통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 계기, 즉 철도와 같은 체계적 공공교통망으로 긍정적 효과를 경험하게 하는 일종의 '넛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에서도 기후위기 시대 교통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청했었다. 그런 기대가 일면 순진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근대 유럽의 사회계약 역시 대중 동원과 봉기의 한 결과였음을 환기해본다.

 

"기후위기란 익숙한 것들이 소멸하고 최악과 차악 사이를 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압력이다. 이 압력을 똑바로, 함께 보는 것이 이동의 위기 앞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꼭 밟아야 할 단계다."(21) 이 책을 통해 자동차 납치에서 벗어나는 길을 상상하고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철학하기를 시도하며, 나아가 우리의 삶과 선택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 프레시안

 

힐링의 새로운 키워드, ‘보행

일상에 쉼표를 찍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걷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좀 더 편리하고 빠른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편리함에 매혹되어 흙길을 아스팔트로 메우고 육중한 바퀴가 견딜 수 있도록 더 많은 길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보행자의 길이 좁아지고 아스팔트 도로가 넓어질수록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걷는 것보다 타는 것에 익숙해졌고, 생활 전반의 속도가 빨라졌다. 사방이 자동차로 꽉 막힌 도시는 여유와 활기를 잃어갔고, 시민들의 삶은 더욱더 분주해졌다.

바로 지금, 우리는 걷기를 통한 힐링이 필요하다. 잠시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걸어보자.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거리, 건물, 동네, 사람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삶에 지쳐 무감각해진 마음의 벽을 허물 수도 있다.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같이 걸어 만드는 보행도시야말로 행복도시이다. 보행을 통해 회색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녹색의 생명력과 희망을 찾아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 아닐까.

 

-보행중심도시 조성정책 및 제도 연구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3.10.31.

-보행자길 조성 관리를 위한 보행행태 및 인식 분석 (보도를 중심으로)

한수경 건축공간연구원 2022.04.29.

 

보행권 (步行權) 어떤 곳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권리.

 

페리의 근린주구 개념에서 나온 것임. 페리는 근린주구 내에서는 자동차나 기타 기계의 도움없이 걸어서 모든 필요한 용무를 마칠 수 있도록 계획하고자 했는데, 바로 여기에 적용되는 척도가 보행권이라고 함.

 

이동권 (移動權)이동할 수 있는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