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첩대 문건, ‘낙랑클럽 매춘설’에 “근거 없다”
‘김활란의 이대생 성상납’ 근거로 민주당 김준혁 의원이 제시한 문건 분석
미군 장교의 “정사 의심” 정보 보고에 “출처·세부내용 없어” 결론
"낙랑클럽 문건은 미군 방첩대 전 사령관의 개인적 지식과 의견을 따른 것이다." "(낙랑클럽 일부 회원의 매춘설은) 출처 및 세부사항이 알려지지 않았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정)이 '이화여대생 성(性)상납' 발언의 근거로 제시한 미군 방첩대(Counter Intelligence Corps·CIC) 기밀 문건의 내용이다. 시사저널이 CIC 문건을 확인한 결과, 미 방첩대는 사교모임인 '낙랑클럽'의 주 회원이 이대생들이고 일부 회원의 매춘설을 제기한 정보 보고에 대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문건에는 '이대생 성상납' 또는 '성접대'가 직접적으로 명기된 대목도 없다. 앞서 김 의원은 2022년 김활란 전 총장이 미 군정 시기에 이대생들을 성상납에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초대 총장 ⓒ뉴스뱅크
4·10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이대생 성상납' 발언 논란이 재점화하는 분위기다. 이대학당과 이대 동문 등은 김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고, 김 의원은 맞고소했다. 현재 이대에선 온라인 서명운동이 시작되며 불이 붙은 상황이다(시사저널 기사 참조). 시사저널은 김 의원이 지목한 CIC 문건뿐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제시한 국내 논문을 살펴봤다. 이 밖에 낙랑클럽과 관련한 국내 문헌도 참고했다. 그 결과 '이대생 성상납'을 단정 지을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시사저널 최준필
낙랑클럽의 간첩설·공산주의 연계설도 "증거 없다"
'이대생 성상납' 발언의 주요 근거 자료는 미군 방첩대(CIC) 기밀 문건이다. 김준혁 의원이 6월18일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문건이다. CIC 문건은 1996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가 발간한 자료집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자료집 문서 대부분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NARA)에 소장된 문서들이다. CIC는 각국 주요 인물의 신상조사를 기록했다. 공산주의 활동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단체활동도 보고했다. CIC 문건은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정보·첩보 보고서들로 구성됐다. CIC는 당시 한국에 주둔한 미24군단 예하의 정보참모부(G-2)와 함께 양대 정보기관으로 분류됐다.
이번 논란의 쟁점은 '낙랑클럽(Nang Nang Club)'이다. 이는 '미국 CIC 정보 보고서 1편-인물 조사보고서'에서 모윤숙씨와 관련한 사찰 기록에 담겼다. 1편 전체 분량 830여 페이지 가운데 63페이지(659~721면)를 차지한다. 모씨는 여류시인이자 국제펜클럽 회원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정부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씨 부인이기도 하다. 모씨가 중심이 된 단체 '낙랑클럽'이 남한의 사교계를 뒤흔들었다는 것이 문건의 골자다. '이대생 성상납' 주장이 시작된 지점이다.
미 정보기관이 낙랑클럽을 주목한 시기는 1952년 12월부터다. 미 언론사 '데일리 팔로알토 타임즈'가 1952년 9월24일 관련 내용을 보도한 이후다. 기사의 골자는 "(낙랑클럽의) 모윤숙 덕에 이승만 대통령은 주한 유엔군사령부(UNC)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낙랑클럽 회원들이 미군 등과의 파티에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사에선 낙랑클럽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여성 간첩 '마타하리(Mata Haris)'로도 간주됐다.
이를 계기로 미 극동군사령부와 한국 파견대 사이에 여러 통의 전문이 오갔다. 해당 기사가 "소식통을 인용하지 않은(without quoting sources)" 것으로 평가(1953년 1월9일자 전문)되면서 사실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휴전 성립 이후 북진 통일을 주장한 이승만 대통령과 미 정부 간 견해차가 드러난 민감한 시기다.
미군 방첩대 기밀문서 전체 사진 ⓒ시사저널 최준필
1953년 8월5일, 결정적 전문이 미 극동군사령부 G-2에 날아왔다. 한국에 파견된 하워드 W. 해리스 대위의 보고 내용이다. 이는 1953년 7월27일 G-2 지시에 따라 미 방첩대 704 파견대의 문서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 내용에는 낙랑클럽 조직 등에 관여한 인물로 모윤숙씨가 거론됐다. 낙랑클럽이 조직된 시기는 1948년 혹은 1949년이라고 판단했다.
목적은 "외국 귀빈과 한국 정부 고위 관료와 군 장성들, 외국 정부의 중요한 사적 대표들을 환대하기 위해"라는 내용도 담겼다. "회원은 주로(primarily) 부산에 있는 이화여대 졸업생 가운데 교양 있고 매력이 있으며 영어를 잘 구사하는 주최자(hostesses)였다"고도 했다. 논란이 된 대목은 이후부터다.
"낙랑클럽의 구성원은 기혼여성, 미혼여성, 근로여성 등으로 구성됐다. 회원은 처음 약 150명이었다. 이후 70~8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회원은 낙랑클럽을 사업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략) 사업상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 관리들과 식사를 하거나 (중략) 낙랑클럽 일부 주최자의 대접 활동이 공식 매춘부(official prostitutes)처럼 손님들과 동거(cohabitiing)하는 것으로 확대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alleged). (중략) 미 정부를 대표하는 미국인 그룹의 한 임원은 조직의 하위 구성원들이 낙랑클럽 회원들과 정사를 나눴다고 의심했다(expressed suspicion)."
미 방첩대는 낙랑클럽의 구체적 활동을 주목했다. 이들이 공산주의와 연계됐을 수도 있다는 것도 이유였다. 그러나 이건 R. 타우쉬 대령은 1953년 9월7일 낙랑클럽의 공산주의와의 연계성이나 회원들의 정보 수집 등 의혹과 관련해 "현재까지 증거가 없다(to date there has been no evidence)"고 판단했다. 일부 회원의 매춘·동거설에 대해서도 "출처 및 세부 사항이 알려지지 않았다(Source and details unknown)"고 밝혔다.
낙랑클럽을 거론한 원 문건에 대해서도 "전 사령관의 개인적 지식과 의견을 따른 것이다(complied from the personal knowledge and expressed opinions of Major Gregory McDermott, former Commander of the 704th CIC Detachment)"고 평가했다. 미 방첩대는 낙랑클럽을 정식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미군 방첩대 기밀문서 주요 부분 ⓒ시사저널 최준필
국내 논문·문헌에도 이대생 성상납 언급은 없어
김준혁 의원은 4월초 국내 논문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임하 성공회대 교수의 '한국전쟁과 여성성의 동원(2007)'이다. 논문에는 "일부의 여성지도자들은 외교와 미군(UN군) 장교들을 위안한다는 명목의 '파티대행업'에 나섰다"며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각료와 유력 인사들의 절대적 지원을 받으며 파티대행업에 나선 여성지도자는 김활란과 모윤숙"이라고 명시됐다. "낙랑클럽을 조직해 여학생 등을 동원해 파티대행업에 나섰다"는 것이다. 김 전 총장에 대해선 "한국전쟁 발발 직후 공보처장에 임명됐다"고도 했다.
다만 이대생 성상납을 언급한 부분은 없다. 되레 "김활란이나 모윤숙에 의해 동원된 젊은 여성들이 파티에서 직접적인 성적 유흥을 제공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아래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이미 사회는 미군(UN군)과 자주 접촉하는 그녀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설명했다. 42페이지 분량의 논문에 등장한 이대생 부분은 이에 불과하다. 논문이 인용한 자료 역시 미 CIC 문건이다.
낙랑클럽은 '이대생 성상납' 주장의 주된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낙랑클럽 회원이 직접 단체활동을 공론화한 전례도 있다.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전숙희씨다. 1919년생 전씨는 미 군정 시기 통역관을 지낸 인물이다. 수필가로도 활동하며 계간지 《동서문학》을 창간했다. 그는 2005년 출간된 책 《8·15의 기억 -해방 공간의 풍경, 40인의 역사체험》(한길사)에서 낙랑클럽에 대해 "미군들에게 한국을 이해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이를테면 한미친선을 위한 모임"이라고 했다. 아래는 전씨가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낙랑클럽에서는 외국인들을 접대할 때 말도 모르고 매너도 안 좋으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테니까, '한국은 저희가 본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만 사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귀부인도 있고 이런 지식인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활동을 했어요. (중략) 미군들의 파티가 열리면 낙랑클럽 회원들을 초대해요. 그럼 우리는 가서 대화도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 사람들이 으레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췄어요. 댄스파티라는 게 처음에는 낙랑클럽과 미군들이 유행시킨 거죠. (중략) 이야기하고 춤추고 우리끼리 교가도 부르고 그랬어요. 김활란 박사도 오셨죠."
낙랑클럽의 주 회원이 이대생들이라는 대목도 없다. 전씨는 회원에 대해 "적어도 일제시대 외국 유학을 갔다 올 정도의 교육받은 사람들, 또 잘살고 좋은 일도 많이 한 사람들, 그런 집의 부인들을 중심으로 해서 모윤숙씨가 만들었다"며 "미혼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낙랑클럽이 미군과 한국군을 잇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한국군 장교·정치인들이 낙랑클럽의 도움을 받아 미군과 소통했다는 취지다. 전씨는 "미군들은 일본의 속국으로만 알았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 미풍약속 등을 거의 낙랑클럽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4월4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이대 총동창회 회원들이 김준혁 당시 총선 후보자의 망언을 규탄하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활란이 이대생들을 미군 장교에 성상납시켜"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
22대 국회에 입성한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정)은 '역사학자'로 통한다. 특히 '정조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대중에게 친숙해진 계기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김 의원은 JTBC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래스》 등에서 정조 시대 등 역사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하며 얼굴을 알렸다.
김 의원의 연구물에서도 정조 전문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조선후기 정조의 불교정책(1998년)'을 주제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 역시 '조선 정조대 장용영 연구(2007년)'다.
정조 시대에 중점을 둔 저서와 학술 논문도 다수다. 《수원화성: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주니어김영사), 《정조: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웅진씽크하우스), 《정조의 창덕궁 내원(內苑) 군신동행과 연회 정치》(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정조는 왜 화성을 건설했을까?》(내일을 여는 역사) 등이다. 김 의원은 2014년부터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조교수, 부교수를 지냈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 의원의 정치 이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됐다.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문 전 대통령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문화유산콘텐츠발전특위 위원장을 맡은 것이 일례다. 이후 2021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정당혁신추진위원, 경기도당 대변인 등으로도 활동했다.
김 의원을 설명할 때는 수원을 빼놓을 수 없다. 수원환경운동센터 공동대표, 수원시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집행위원장 등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지역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김 의원은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수원시장 예비후보로 나섰다. 당시 최종 경선까지 갔지만 이재준 현 수원시장에게 패했다.
국회 첫 입성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수원정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한 박광온 의원과 당내 경선에서 맞붙어야 했다. 유력 후보로 현역을 꺾으며 출마를 확정지었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김 의원이 2022년 8월 유튜브 채널 '김용민TV'에서 "종군 위안부를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김활란"이라며 "미 군정 시기 이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들에게 성상납시키고 그랬다"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당시 이대 측은 후보직 사퇴 등을 요구했고, 김 의원은 사과했다. 김 의원은 결국 '민주당 텃밭'에서 가까스로 당선됐다.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1.73%포인트에 불과했다(김준혁 50.86%, 이수정 49.13%).
김 의원은 현재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당내에선 '친명계'로 분류된다. 정조 전문가인 그는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를 주제로 한 저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더봄), 《왜 이재명을 두려워 하는가》(더봄) 등이 대표적이다.
(펙트체크)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무엇을 사실을 체크했다는 말인가. 낙랑클럽? 친일 ?
김준혁 의원, 미군방첩대 문서 공개하며 "낙랑클럽 매춘부 활동의 명학한 근거“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초대 총장 사자명예훼손'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 군정 시기 김활란 이화여대 전 총장이 운영했던 낙랑클럽에 이화여대 졸업생 등을 동원했으며 일부는 공식 매춘부로 활동했던 기록이 미군방첩대 기밀문서에 남아있다"라며 발언의 근거가 없다는 이화학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한 발언도 아니고 역사학자로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한 발언이 허위사실로 보도가 나오면서 제가 마치 여성 혐오나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매도됐다"라며 "한창 국회의원 선거 기간 중인 4월에 이화여대 동문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선거캠프 앞에서 사퇴 시위를 했는데 상당수가 국민의힘 관계자들이었다. 결국 이는 순수한 동문들의 시위라기보다는 특정 정당의 선거를 위한 모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학교법인 이화학당은 김 의원이 과거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김활란 초대 총장에 대해 "미 군정기 이대생들을 미군 장교에 성 상납시켰다"고 발언한 점을 지적하며 18일 경기남부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화학당은 "김 의원은 사실이 아닌 발언을 통해 김활란 총장과 이화여대 구성원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 국회의원으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여성차별적이고 왜곡된 시각을 바탕으로 이화학당뿐 아니라 전체 여성을 모욕했다"고 비판했다.
더팩트ㅣ국회=배정한 기자
간단하게 보는 김활란 친일행적 : 클리앙
김활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 의 교육 인, 언론 인, 사회운동가, 친일반민족행위자 . 이화학당 졸업생, 이
namu.wiki
‘이대생 성상납’ 논란 둘러싼 양측의 쟁점은?
김혜숙 전 이대 총장 “김활란의 성상납, 문건 어디에도 없어”
김준혁 의원 “매춘부설, 신뢰할 수 있는 등급의 정보”
지난 4·10 총선 기간에 '이대생 성상납' 발언으로 진실 공방을 벌였던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정)과 이화여대가 2차전에 들어갔다. 학교법인 이화학당과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 유족, 이대 동창 등은 명예훼손 혐의로 김 의원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총선 후보 시절 이화여대 동문에게 고개를 숙였던 김 의원은 이번엔 사과 대신 맞고소를 택했다. '성상납'이라는 표현으로 상처를 받은 이대생에게 사과를 한 것일 뿐 자신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화여대 측은 "학자이자 교육자를 자처하는 김 의원이 아무런 근거 없이 여대생 역할을 폄훼했다"고 맞섰다.
논란의 시발점은 김준혁 의원의 과거 발언이다. 김 의원은 2022년 8월 유튜브 채널 '김용민TV'에 출연해 "김활란이 미 군정 시기 이화여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들에게 성상납시켰다"고 발언했다. 김 의원은 김활란이 만든 비밀 사교모임 '낙랑클럽(Nang Nang Club)'을 통해 성상납이 이뤄졌다고 했다. 총장이 제자들의 성을 이용한 대가로 미국의 정보를 얻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배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영부인의 지시와 지원이 있었다고 했다.
김준혁 민주당 의원이 2022년 한 유튜브에서 이대생 성상납 관련 발언을 하는 모습 ⓒ유튜브 캡쳐
"'김활란의 이대생 성상납' 단정 부분 문제 삼는 것"
이대 측은 이를 반박해 왔다.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과 김혜숙 전 이대 총장은 6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모처에서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낙랑클럽은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구호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25~40세 지식인 기혼 여성들의 민간외교 노력의 일환일 뿐, 클럽 내 미혼 여대생의 성상납 등은 없었다는 것이다. 낙랑클럽을 실제로 주도한 인물은 시인 모윤숙씨라고도 했다. 1899년생 김활란과 1909년생 모윤숙은 사제지간이다.
이들은 김활란 전 총장의 당시 직책(정부 대변인인 공보처장)을 주목했다. 이와 관련해 김혜숙 전 총장은 "정부 대변인 신분으로서 이대생을 동원해 미군에게 성상납을 했다는 주장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낙랑클럽은 미 군정기가 아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조직됐다고 반박하는 등 김 의원의 논리에 모순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김 의원이 제시한 근거 자료도 도마에 올렸다. 미군 방첩대(Counter Intelligence Corps·CIC) 문건과 이를 인용한 이임하 성공회대 교수의 논문이다. 김숙희 전 장관과 김혜숙 전 총장은 이들 문건 어디에도 '김활란의 이대생 성상납'에 관한 내용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이 문제의 소지가 된 '이대생 성상납'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리한 대목만 내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조상호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이 "김활란이 이끈 낙랑클럽은 고급 접대부 호스티스 클럽"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는 "허위사실이자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김혜숙 전 총장은 "CIC 문건은 이승만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던 미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낙랑클럽 간 내통 의혹을 추적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며 "보통의 방첩 활동 보고서는 자료의 가치가 있는지 분기별로 정보를 올리고 수정하는데, 해당 보고는 정보적 가치를 판단해 조사 도중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학자들이 자료에서 드러난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다"고 전제한 김 전 총장은 "그러나 김 의원이 '가부장제적 질서 안에서 여성들의 성이 국가에 의해 이용당해온' 점을 지적하기 위해 (해당 문건을) 이대생 성상납으로 해석한 건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친일 문제로 논점을 흐리지 말고 '이대생 성상납'이라고 단정 지은 부분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 동창 모임 소속인 김숙희 전 장관(왼쪽)과 김혜숙 전 총장이 6월24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한 낙랑클럽 회원이 미군의 情婦' 보도도 나와"
김준혁 의원은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활란 전 총장도 모윤숙씨와 함께 낙랑클럽을 운영한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여성 지도자였던 두 사람이 이화여대생을 클럽의 호스티스(hostesses)로 삼았다는 것으로, 호스티스를 '접대부'로 판단했다. CIC 보고서에는 이와 함께 "(낙랑클럽의) 몇몇 호스티스는 접대의 일환으로 공식 매춘부(公娼·관청의 허가를 받고 매음 행위를 하는 여자) 역할로서 손님들과 동거를 하는 데까지 업무가 확대됐다는 주장도 있다"는 대목이 있다(시사저널 기사 참조).
김 의원은 6월18일 기자회견에서 낙랑클럽 일부 회원의 '매춘부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군 사령부 등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라는 C-3 등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CIC 보고서를 최초 번역한 1995년 '월간중앙' 2월호 표제도 근거로 들었다. 한 낙랑걸이 미군의 정부(情婦·몰래 사통하는 여자)였고, 간첩 혐의로 체포돼 처형까지 당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만약 보도가 오보였다면 이화여대 동문들이 30년 전에 이미 들고일어나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했어야 정상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동안 김 의원은 이대생 성상납을 '아픈 역사'로 규정해 왔다. 김활란 전 총장의 친일 행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정제되지 못한 표현을 썼을 뿐이라고도 했다. 총선 직전인 4월2일에는 "모든 사람에게는 공과(功過)가 있다"며 "친일인사들의 문제가 되는 행적,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성착취를 강요했던 아픈 역사를 (공 못지않게)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양측이 고소·고발을 이어가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화학당과 유족은 6월18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원로 교수들이 주축인 '이화를 사랑하는 동창모임'은 6월20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각각 김 의원을 고발했다. 김 의원은 이화학당과 이대 동창 모임 등을 고소하며 대응했다. 동창모임 측은 이후 무고 혐의로 김 의원을 다시 고발했다. 이대에서는 6월26일부터 온라인에서 김 의원을 규탄하는 취지의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김 의원은 "(시민단체 등의 수사 의뢰로) 경찰이 수사 중인데 추가 고소를 진행한 건 수사기관 압박용이자 의정활동 방해"라고 했다. 그러나 이대 측은 "학교가 선거 기간에 나서면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고발을 감행하지 않았다"며 "선거 이후 동문과 유족들의 요청이 이어졌다"고 맞받았다. "이번 논란으로 학교와 학생들이 큰 상처를 입고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138년 역사가 있는 학교의 명예가 훼손돼 고령의 동창부터 재학생들까지 법적 심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황현필 역사바로잡기연구소 소장은 "(이대생의) 성접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군의 환심을 사기 위해 김활란이 젊음과 미모를 이용한 것은 역사적 사료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대생을 성접대에 이용했다고 (김 의원이) 단정적으로 발언한 건 문제"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정윤경·김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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