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표 식물은 소나무 아닌 부싯깃고사리
동아시아 공통종 34개…우리나라 주도 동북아 6개국 1만3천여 종 표준 식물목록 작성
동아시아 공통종인 부싯깃고사리. 잎이 마르면 돌돌 말려 은백색 뒷면이 드러난다. 국립수목원 제공.
남한산성의 돌 틈에는 독특한 이름과 모습의 고사리가 자란다. 봉의꼬리 과에 속하는 부싯깃고사리가 그것이다. 포자가 달린 잎 뒷면은 은백색인데 마르면 돌돌 말려 눈에 잘 띈다. 부싯돌을 쳐 불을 일으킬 때 맞춤한 부싯깃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부싯깃고사리는 남한산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 나아가 몽골부터 대만까지 동아시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서만 산다. 소나무가 한반도가 분포의 중심이고 일본, 중국과 러시아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데 비춰 부싯깃고사리는 소나무보다 동아시아를 지역적으로 더 잘 대표한다.
부싯깃고사리는 동아시아 전역에 분포하지만(왼쪽)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러시아 일부 지역에 자생한다. 국립수목원 제공.
대극과의 일년생 풀인 여우주머니도 동아시아를 대표할 만하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로 전국의 들판과 무덤가 등의 풀밭에서 볼 수 있는데 줄기 아래 줄줄이 달린 주머니 모양의 열매가 앙증맞다.
동아시아 6개국(한국, 일본, 중국 동북 3성과 내몽골, 몽골, 러시아 연해주, 대만)에 공통으로 분포하는 식물은 모두 34종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부싯깃고사리와 여우주머니를 비롯해 수련, 물매화, 오이풀, 둥굴레, 부들 등이 포함된다.
동아시아 대표종의 하나인 여우주머니. 들판과 무덤가 풀밭에 분포한다. 국립수목원 제공.
국립수목원은 9일 지난 8년 동안 동아시아 6개국 12개 연구기관과 함께 이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 이름 약 7만개를 대상으로 같은 종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등의 착오를 고친 결과 정명 1만3089개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국립수목원은 이 목록을 기준으로 동아시아 지역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 100여 종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지역 차원의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에서 식물의 종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곳은 일본과 대만으로 각각 5008종과 4742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2885종으로 몽골 2860종, 러시아 연해주 2457종과 비슷했다. 중국 동북 3성에서는 1462종이 확인됐다.
북반구에 널리 분포하는 습지식물인 물매화의 꽃. 동아시아 공통종에는 물가나 물속 식물이 많다. 현진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일본과 대만에 종 다양성이 높은 까닭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을 포함할 뿐 아니라 고산지대에는 추운 지역 식물도 분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아시아 공통종 가운데는 북반구 추운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석송, 애기사철난, 홀꽃노루발 등 고산식물이 포함돼 있다.
연구에 참여한 길희영 국립수목원 박사는 “아열대에 속한 대만에 북방계 식물이 분포하는 이유는 빙하기 때 남하한 북방계 식물이 해발고도가 4000m에 가까운 고산지대를 피난처로 삼아 살아남았기 때문”이라며 “대만은 면적 대비 식물 다양성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백합과의 둥굴레. 북반구에 널리 분포하는 식물이다. 현진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동물에 국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국경을 넘나들어 분포한다. 이번 조사에서 동아시아에 모두 분포하는 종은 34종이었으며 일본과 대만은 공통종이 924종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과 일본이 436종으로 그다음이었다. 또 식물 분류군별로는 국화과 식물이 1106종으로 가장 다양했고 이어 볏과 729종, 콩과 698종, 사초과 655종, 난과 517종 순으로 나타났다.
국립수목원은 동아시아의 표준 식물목록을 생물다양성 데이터를 무료로 공개하는 국제 정보기구(GBIF)에 올리는 한편 수목원 누리집에 공개할 예정이다. 장계선 국립수목원 디엠지 산림생물자원보전과 연구관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국가 간 합의를 통해 발표되는 식물의 기준목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나무는 바위에서 물을 빨아들인다, 그것도 많이
토양 밑 수십m까지 풍화 기반암의 틈과 구멍에 수분 저장
강수량 27% 머금어 나무에 공급…기후변화 대응 달라져
암반 속으로 뿌리내린 참나무. 얇은 토양층과 지하수층 사이에 있는 풍화 기반암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수원지로 밝혀졌다. 에리카 매코믹 제공.
토양층이 얇은 바위산의 나무들은 왜 가물어도 말라죽지 않을까. 바위틈 깊이 뻗은 뿌리에 그 해답이 들어있다.
우리는 바위에서 물을 짜낼 수 없지만 나무는 그 일을 해낸다. 게다가 어쩌다 가뭄 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암석 수분’이 토양보다 중요한 수원지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리카 매코믹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학생 등은 9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캘리포니아 주만 해도 숲이 기반암에서 뽑아내는 물의 양은 해마다 미국의 인공저수지 전체 물의 양을 넘어선다”고 추산했다. 기반암은 지하수층에 도달하기 전 토양층 아래 수십m 깊이에 이르는 암석층으로 풍화를 받아 가는 틈과 작은 구멍이 많아 이곳에 수분이 저장된다.
양층과 지하수층 사이에는 10m 깊이에 이르는 풍화 기반암층이 놓여 있다. 이곳의 절리와 공극에 고인 수분은 양이 막대하며 식물에 주요한 수분 공급원이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제공.
연구에 참여한 다니엘라 렘페 교수는 “식물학자들은 이미 1세기 전부터 기반암까지 뻗은 ‘뿌리 깊은 나무’를 보고하곤 했지만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며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지면서 기반암은 숲을 이해하는 데 핵심 요인이 됐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렘페 교수팀은 2018년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을 통해 나무가 암석 수분에서 물을 빨아들이며 가뭄 때 거기 의존에 살아간다는 직접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그때 연구자들은 풍화 기반암을 굴착해 암석 수분을 직접 측정함으로써 기반암이 식물 생존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가뭄이 들어 토양이 말라도 풍화 기반암의 수분은 다음 우기까지 아주 천천히 줄어들었다. 풍화 기반암이 저장하는 물의 양은 강수량의 27%에 이르렀다.
렘페 교수팀이 풍화 기반암을 굴착해 식물과 암석 수분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조사하는 모습.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제공.
이번 연구에서는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풍화 기반암이 저장하는 물의 양을 추정했다. 그 결과 숲의 24%가 기반암에서 물을 흡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쩌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숲 생태계 전반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현상이라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캘리포니아 주만 해도 해마다 숲이 기반암에서 흡수해 공기로 뿜어내는 물의 양이 20㎦(200억t)에 이르는데 이는 미국 전체 저수량과 비슷하고 가정 물 소비량의 3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나무가 증산작용으로 공기로 내보내는 수분의 50% 이상이 암석에서 온 것인데, 암석의 수분은 토양보다 최고 10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반암에서 식물이 다량의 수분을 흡수하는 사실이 이제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기후변화 모델에서 식물의 증산량을 과소평가했음을 뜻한다. 또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졌을 때 식물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히 알려면 암석 수분을 고려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기반암에 다량의 수분이 저장되는 현상은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그런데 기후모델에서 이런 사실은 빠져 있다”고 논문에서 지적했다.
인용 논문: Nature, DOI: 10.1038/s41586-021-0376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생태 교란’ 가시상추의 거친 길 위 생존 비결…부모가 물려준 ‘이것’ 덕
가뭄 저항성 높여 도로변에 번성…씨앗 타고 퍼지며 후대에 전달
잎 뒤와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는 외래식물 가시상추는 도로변을 따라 전국에 확산했다. 그 비결의 하나는 씨앗 속에 공생하는 가뭄 저항성 세균으로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요즘 씀바귀나 고들빼기 비슷한 노란꽃을 피우지만 잎 뒤와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하게 달린 가시상추가 도로를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가고 있다.생태계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외래식물인 가시상추가 도로변 등 척박하고 거친 땅에서 살아남는 까닭은 건조한 환경을 견디도록 돕는 세균이 뒷배를 보아주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세균은 가시상추의 씨앗 속에서 검출됐는데 갓털에 매달려 날아가는 민들레처럼 씨앗에 실려 널리 퍼져나간다.
국화과 식물인 가시상추의 꽃. 씨앗은 민들레처럼 갓털이 달려 있어 바람을 타고 퍼진다.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의해 도로를 따라 확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제공.
정서린 광주과학기술원 박사과정생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가시상추 씨앗 속의 내생세균이 이 식물의 가뭄 저항성을 높여 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교신저자인 광주과기원 진화생태학 연구실 김은석 교수는 “외래종의 생장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들이 씨앗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외래종 씨앗과 함께 이동할 수 있음을 밝혔다”며 “씨앗 내생균이 외래종의 침입 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생태학적 요인임을 제시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978년 김포공항에서 처음 발견된 가시상추는 도로를 따라 제주도를 뺀 전국으로 퍼졌다. 김은석 교수 제공.
사람 몸속에 사는 수많은 장내세균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처럼(▶사람 몸은 사람 것이 아니었네) 식물체 안에도 많은 미생물이 산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식물에서 내생균이 발견됐다”며 ”이들을 이용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능력을 높이는 연구 등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연구가 뿌리, 줄기, 잎 등 식물 조직 내부에 살면서 해를 끼치지 않는 세균에 집중됐다면 이번 연구는 씨앗 속에 사는 세균에 주목했다. 씨앗 안에 세균이 산다면 민들레처럼 씨앗과 함께 갓털에 실려 확산하고 자손으로 대를 이어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확산세를 보이는 외래식물인 가시상추의 씨앗을 조사했다. 유럽 원산의 가시상추는 1978년 김포공항에서 처음 보고된 이래 도로를 따라 제주도를 뺀 전국으로 퍼졌다.
주로 도로변, 방조제, 항구, 빈땅에 많이 분포하는데 건조에 잘 견디고 제초제 저항성도 강해 작물 재배지는 물론 토착 생태계에 큰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2012년 가시상추를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해 모니터링하고 있다.
가시박 씨앗에서 검출한 내생세균 코사코니아 코와니이를 배양한 모습. 김은석 교수 제공.
연구자들은 가시상추 씨앗에서 모두 42종의 세균을 분리했는데 이 가운데 ‘코사코니아 코와니이’란 세균이 건조 저항성을 높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세균을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에 접종한 결과 건조 내성이 느는 것을 확인했다. 주저자인 정서린씨는 “이 세균이 가시상추의 뿌리 근처에 당분의 일종을 분비해 흙 입자를 형성하는데 그 결과 토양의 빈틈이 늘어 수분을 더 잘 간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린 가시상추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씨앗 속 세균 덕분에 땡볕이 내리쬐는 도로변에서 건조 스트레스를 견디며 번성한다. 가시상추는 이밖에도 햇볕이 셀 때는 입자루를 90도 회전시켜 햇볕 받는 면적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과열을 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변에 줄지어 자란 가시상추. 건조를 견디는 능력을 바탕으로 도로와 빈땅, 제방 등으로 퍼져나간다. 김은석 교수 제공.
이번 연구결과는 외래종의 위험성을 평가할 때 내성균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제기한다. 김 교수는 “이제까지 외래 식물의 침입성을 판단할 때 주로 식물의 특성만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앞으로는 그 식물의 씨앗 내생균도 기준에 넣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1-92706-x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무덤, 희귀식물 ‘마지막 피난처
식물원 수준 생물다양성…세계 곳곳서 확인
주검이 토양에 영양분 공급하기 때문 아니다
최고 180년 최소한 교란으로 상태 보전 영향
“난개발로 대부분 절멸위기, 무덤이 식물 살려”
무덤은 보기 힘들어진 작은 초원 생태계이다. 희귀식물이나 토종식물이 무덤 주변에 살아남기도 해 주목받는다. 2016년 3월 13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시립공원묘지 모습. 파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급속한 도시화와 집약농업 때문에 교란되지 않은 자연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자연훼손이 심한 대도시나 농경지 한가운데서도 토종식물과 보기 힘든 희귀식물이 묘지에 터 잡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2000년대 들어 도시의 묘지가 생물 다양성의 핫 스폿임이 여러 도시에서 분명해졌다. 200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이뤄진 한 연구를 보면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식물 종이 분포하는 곳은 당연히 식물원으로 675종이었지만 뜻밖에 두 번째로 다양한 585종의 식물이 묘지 24곳에서 발견됐다.
북미 대초원을 덮었던 키 큰 풀(톨그래스)은 농경지 개발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묘지는 당시의 경관을 타임캡슐처럼 보관한다. 일리노이 주의 60%를 차지하던 톨그래스 초원은 현재 0.01%만 남아있다.
“난은 무덤을 좋아해"
장기간 유지되고 교란이 비교적 덜한 묘지가 개발로 사라진 토종식물이나 희귀식물의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묘지에서는 무려 280종의 고등식물이 확인됐다. 도시 전체에 견줘 이 묘지의 면적은 0.1%에 불과하지만 특산식물의 5.5%가 묘지에 살고 있었다.
난은 종종 묘지에서 발견된다. 터키에서는 조사한 묘지 300곳 가운데 208곳에서 난을 확인했는데 이들은 터키 자생란 종의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난은 묘지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1979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묘지에서 처음 발견된 디우리스 속 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최근 중국에서의 조사결과도 나왔다. 공 청 중국 농업대학 연구자 등은 화베이 평원에 있는 허베이 성 취저우의 묘지 199곳을 조사했다. 오랜 농경개발로 자연경관은 거의 없고 밀 경작지가 많은 이곳 주민들은 경작지에 대대로 무덤을 만들어 왔다.
연구자들은 “조사결과 작은 묘지일지라도 지역의 식물 다양성을 보전할 강력한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면적이 2㎡인 한 묘지에서는 12종의 식물이 자랐다. 최대 400㎡ 평균 55㎡인 이들 묘지에서 확인한 식물 종은 모두 81종으로 경작지의 식물 종 34종보다 훨씬 다양했다.게다가 묘지 식물 가운데 절반 가까운 35종은 곤충이 가루받이하는 종으로 상당수가 국화과에 속했다. 이에 견줘 경작지 식물 가운데 충매화는 3분의 1에 그쳤다.
묘지에 식물이 다양한 것은 주검이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최고 6대(18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최소한의 교란만 이뤄지는 상태로 보전됐기 때문이다.
할미꽃은 햇빛이 잘 비치고 건조한 무덤 생태계에 잘 적응한 식물이다. 김진수 기자
연구자들은 “주변의 집약적 농경지와 비교해 반 자연 서식지인 (묘지는) 농촌에서 토착 식물 다양성의 핫 스폿 구실을 한다”며 “묘지의 종은 경작지 밖 식물 종과도 다른 독특한 지역 식물 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또 묘지 식물에서 꿀과 꽃가루를 따가는 곤충은 부근 농가의 과수에 가루받이하거나 해충을 잡아먹는 등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묘지가 농지를 잠식한다고 판단한 당국이 신규 매장을 금지하는 바람에 묘지가 지닌 생태적 가치가 위태롭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대구에 살아남은 애기자운의 비밀
북방계 콩과 희귀식물인 애기자운. 대구의 무덤이 최남단 분포지이다. 김진석,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무덤이 지닌 독특한 미소 생태계 가치가 최근 알려지고 있다.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는 2017년 ‘한국식물생태보감 2-풀밭에 사는 식물’(자연과 생태)에서 “한국의 자연 초원식생을 이루던 식물은 광산개발과 난개발로 대부분 절멸 위기이지만 봉분 문화의 무덤이 그들을 살려내고 있다”며 “무덤이 이들 초원 식물의 임시 거처이자 피난처가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 등은 멸종위기 북방계 콩과 식물인 애기자운이 대구 인근에서 동아시아 최남단 분포지를 이룬 것도 무덤 덕분이라고 2017년 학술지 ‘잔디와 잡초 과학’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이 식물은 중국, 몽골, 러시아 등에 분포하고 한반도에서는 북한이 주요 분포지이다.
1년에 한 두 번 예초와 수시로 이뤄지는 잡초 뽑기, 제초제 살포 등 인위적 간섭에도 무덤은 그곳에만 생존할 수 있는 식물이 따로 있다. 파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러나 대부분의 애기자운이 분포하는 금호강 주변의 구릉 지대 무덤은 최남단 분포지이면서도 북방 분포지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바람길이어서 북풍에 고스란히 노출돼 평균기온이 대구 지역보다 1.7도 낮지만 남향의 해를 잘 받는 입지여서 봄철 잎과 꽃을 피울 수 있다.
또 해마다 1∼2번 예초 작업과 수시로 이뤄지는 잡초 뽑기, 제초제 투입 등 인간 간섭과 지배적인 잔디의 틈새를 파고드는 생존전략도 애기자운이 살아남는 데 기여했다. 연구자들은 “애기자운의 현지 내 보존을 위해 봉분을 포함한 뗏장에 대한 서식처로서의 이해와 적절한 생태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0-80362-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지구 지배하던 침엽수는 왜 활엽수에 밀려났나
수백만년 동안 꽃식물과 경쟁서 밀려…현재도 참나무에 밀리는 소나무
뉴칼레도니아의 ‘화석 침엽수’ 아라우카리아. 중생대 때부터 화석으로 나오던 오랜 나무이다. 중생대 때 지구 대부분을 덮던 침엽수는 현재 전체 종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파비앙 콘다민 제공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바늘잎나무)와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넓은잎나무)는 숲에 사이좋게 서 있지만 둘은 지구 육지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수백만년 동안 장대한 투쟁을 벌인 당사자다. 둘 가운데 지구에서 침엽수는 밀려나는, 활엽수는 득세하는 식물을 대표한다.
침엽수를 포함해 소철과 은행나무로 이뤄지는 겉씨식물은 씨가 겉으로 드러나며 꽃을 피우지 않고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수정한다. 활엽수가 포함된 속씨식물은 꽃을 피워 번식하며 씨가 씨방에 둘러싸여 있다.
겉씨식물이 왜, 어떻게 속씨식물에 육상 생태계 주인의 자리를 내줬는지는 식물학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광범한 화석기록과 식물 유전자의 분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침엽수의 쇠퇴는 꽃 피우는 식물과의 직접적인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다.
꽃가루를 바람에 날리는 침엽수와 달리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은 곤충과 공생을 통해 효과적으로 번식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파비앙 콘다민 프랑스 몽펠리에대 진화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기후변화나 대멸종이 아닌 주요 생물 집단 사이의 장기간에 걸친 경쟁 끝에 흥망이 결정될 수 있음을 이번 연구에서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겉씨식물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3억8000만년 전 고생대 데본기였다. 겉씨식물은 이어 공룡시대인 중생대에 전성기를 맞아 육지를 뒤덮었다. 그러나 중생대 말 백악기에 등장한 꽃 피는 새로운 식물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꽃식물은 백악기 초인 1억4500만년 전 등장한 뒤 급속하게 종을 늘리며 각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연구자들은 “화석과 계통 유전학 증거로 볼 때 속씨식물의 이런 팽창세는 현재도 이어진다”며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한 끝에 한 무리의 생물 집단이 번성하자 다른 집단이 쇠퇴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질시대별 침엽수의 다양성 감소를 부른 요인. 오른쪽 위 그래프는 속씨식물이 등장하면서 급속히 다양성을 늘려 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운데 그래프는 지질시대별 온도, 해수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나타낸다. 붉은 선은 대멸종 사태를 가리킨다. 속씨식물의 번성이 대멸종 사태나 기후변화와 무관하고 한랭기에도 다양성이 줄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파비앙 콘다민 외 (2020) ‘PNAS’ 제공.
연구자들은 침엽수의 멸종률은 백악기 동안 높게 유지됐고 현재도 증가세를 보인다고 밝혔다. 침엽수의 생물다양성 감소는 현재 속씨식물이 30만 종에 이르러 전체 식물 종의 90%를 차지하는 데 견줘 침엽수가 대부분인 겉씨식물은 1000종에 그치며 세계 침엽수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몰려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침엽수는 활엽수에 따뜻하고 살기 좋은 열대지역을 넘기고 활엽수가 살기 힘든 추운 고위도나 고산지대, 척박한 토양에서 근근이 살아남았다. 연구자들은 “온대 북부 산림에서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는 침엽수인 소나무과 식물이 활엽수인 참나무과 식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그 사례”라고 밝혔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 능선에서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지능선 일대를 항공촬영한 모습.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 등 고산 침엽수가 집단 고사해 숲이 회색으로 얼룩져 있다. 서재철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햇볕이 잘 드는 척박한 땅에 자리 잡지만 숲이 우거지고 땅이 기름져지면 참나무류에 자리를 내준다. 또 구상나무를 비롯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눈잣나무 등 북방계 침엽수가 고산지대에 희귀하게 살아남았다.
속씨식물이 겉씨식물을 압도한 경쟁력은 어디서 왔을까. 연구자들은 속씨식물의 빠른 성장 전략, 꽃을 통해 곤충과 공생을 통한 효과적인 가루받이, 새로운 화학적 방어 전략 도입, 기후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능력 등을 꼽았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PNAS), DOI: 10.1073/pnas.2005571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국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
기후변화 틈타 전 세계로 퍼져…수많은 꽃이 한 송이 이룬 것도 비결
남아메리카 국화과 고유 속인 쿤트. 신생대 에오세 때 아프리카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해 남아메리카에서 진화한 식물이다. 국화과 식물의 기원지인 남아메리카에서 세계를 한 바퀴 거쳐 다시 돌아온 셈이다. 비키 펑크 제공.
고등식물의 95%를 차지하는 꽃을 피우는 식물 가운데 세계적으로 큰 두 ‘가문’이 있다. 종 수가 많기로 국화과와 난초과 식물이 난형난제하다. 국화과에는 2만5000∼3만5000종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전체 꽃식물의 약 10%에 해당한다.
그러나 얼마나 널리 분포하는지를 따지면, 국화과가 윗길이다. 온난한 곳에 주로 분포하는 난초와 달리, 국화과 식물은 남극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자란다.우리에게 낯익은 많은 식물이 이 무리에 속한다. 다양한 국화를 비롯해 해바라기, 코스모스, 민들레, 백일홍, 엉겅퀴, 쑥, 상추, 취, 우엉, 씀바귀, 달리아, 캐모마일 등이 모두 국화과 식물이다.
이 식물들은 어디서 기원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를 ‘점령’하게 됐을까. 최신 염기서열 해독 기술을 이용해 국화과 식물 약 250종의 유전자를 분석해 이 수수께끼를 푼 연구결과가 나왔다.
브라질 고유의 국화과 식물인 운더리키아 속 식물. 5000만년 전 남아메리카를 떠나 세계로 퍼져나간 국화과 조상 식물과 자매 계열인 옛 국화과 식물이다. 캐롤리나 시니스칼치 제공.
제니퍼 맨델 미국 멤피스대 교수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7월 9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국화과 식물의 기원이 8300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로 거슬러 오르며, 남아메리카가 기원지라고 밝혔다. 또 국화과 식물은 기후변화를 틈타 남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다시 베링 해를 건너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했고,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코스모폴리탄’의 이동 경로를 보였다고 밝혔다.
국화과 식물의 원조는 극지방에도 열대림이 분포할 정도로 따뜻했던 백악기에 남아메리카 남부에 출현했다. 그러나 지구의 기후는 백악기 말 소행성 충돌과 함께 공룡시대가 막을 내리는 대멸종 사태를 겪으면서 한랭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6종 중 5종이 멸종하는 격변에서 살아난 국화과 조상은 춥고 건조해지는 기후에 적응해 다양화했다. 약 5000만년 전 기후 격변 때 이들은 북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신생대 에오세의 지구는 춥고 건조해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은 낮아진 해수면 덕분에 연결됐고, 국화과 식물은 베링육교를 건너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했다. 연구자들은 약 4200만년 전 아프리카의 건조화로 대륙 내부 숲이 초원에 자리를 내주었을 때 이들 식물은 다시 한 번 폭발적으로 다양하게 진화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민들레, 국화, 해바라기, 엉겅퀴 등 현생 국화과 식물의 95%가 이때 생겨났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국화과 식물은 이처럼 지구기후가 춥고 건조해질 때 다양하게 진화해 넓은 지역에 퍼져나갔다. 현재 이들이 많이 분포하는 곳도 사막, 초원, 산악지대 등 건조한 지역이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고려엉겅퀴. 꽃잎 하나하나가 별개의 꽃으로 전체는 꽃송이 하나가 아닌 커다란 꽃다발이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연구자들은 이처럼 국화과 식물이 진화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유로 독특한 꽃의 구조를 들었다. 국화과 식물은 수많은 개별 꽃이 모여 하나의 꽃다발을 이룬다. 국화꽃 한 송이는 꽃잎 수만큼 수많은 꽃이 모인 형태다. 또 국화과 식물은 씨방에 깃털이 달렸는데, 이것이 씨앗이 멀리 퍼지는 것을 돕고 초식동물이 먹는 것을 방해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ennifer R. Mandel et al, A fully resolved backbone phylogeny reveals numerous dispersals and explosive diversifications throughout the history of Asteraceae, PNAS 2019 116 (28) 14083-14088, https://doi.org/10.1073/pnas.19038711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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