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 Suzanne Simard 김다히 사이언스북스 2023.11
목차
한국어판 서문 [ 당신의 어머니 나무를 만나게 되기를 ] …… 9
서문 [ 인연 ] …… 13
1장 [ 숲속의 유령 ] …… 21
2장 [ 나무꾼들 ] …… 53
3장 [ 바짝 마른 ] …… 83
4장 [ 나무로 ] …… 115
5장 [ 흙 죽이기 ] …… 139
6장 [ 오리나무 습지 ] …… 179
7장 [ 술집에서의 다툼 ] …… 221
8장 [ 방사능 ] …… 245
9장 [ 응분의 대가 ] …… 279
10장 [ 돌에다 색칠하기 ] …… 307
11장 [ 미스 자작나무 ] …… 327
12장 [ 9시간의 통근 ] …… 367
13장 [ 코어 샘플링 ] …… 397
14장 [ 생일들 ] …… 429
15장 [ 지팡이 물려주기 ] …… 463
에필로그 [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 ] …… 503
감사의 글 …… 507
참고 문헌 …… 515
수잔 시마드 인터뷰 [ 나의 숲이 간직한 이야기 ] …… 549
도판 저작권 …… 557
찾아보기 …… 558
출판사 서평
숲은 나무들 모음 그 이상의 것임을 밝힌 강렬하고 다채로운 탐구!-《뉴욕 타임스》
시마드 등의 논문은 전 생태계의 에너지 통화인 탄소 상당량이 온대림의 나무에서 나무로, 또 실제로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그들이 공유한 균 공생자의 균사를 통해 이동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북반구의 육지 표면 중 상당 부분을 덮고 있는 숲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주요 흡수원을 제공하기에 숲의 탄소 경제 중 이러한 측면에 대한 이해는 필수 불가결하다. - 데이비드 리드 경, 《네이처》 1997년 8월호 논평
시마드는 치열한 관찰뿐만 아니라 꾸준한 실험을 통해 나무의 비밀을 차례차례 밝혀 왔다. 캐나다 산림청이 소나무 성장을 방해하는 잡목으로 선포한 오리나무가 과연 수분을 빼앗기만 하는지 알아보고자 오리나무와 소나무를 조성한 실험지에서 2주마다 토양 수분 측정 탐침을 꽂아 수분량을 측정하기도 한다. 맨땅 조건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물, 빛, 양분 증가라는 단기적 이득을 장기적 고통, 즉 장기간의 질소 고정 첨가량 감소와 맞바꾸고 있었다. 제초 처리는 빚을 얻어서 빚을 갚는 격이었다. 나무들이 단순히 빛을 확보하는 경쟁 중이 아니라 군집 기능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자작나무에 방사성 동위 원소 탄소-14 표지를 해서 미송으로 이동하는 광합성 산물의 뒤를 쫓기로 계획하고 미송에는 안정 동위 원소인 탄소-13표지를 해 광합성 산물이 자작나무로 이동하는지 추적했다. 미송에서 자작나무로 이동한 탄소와 자작나무에서 미송으로 이동한 탄소를 구별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인간 지능에 기인한 특징이라 여겨 온 것들을 나무에서 발견한 시마드는 나무들이 어떻게 서로를 인지하고 행동 양식을 배우며 적응하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대비하는지,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는지 설명한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어머니 나무가 있다. 어머니 나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나무들을 연결하고 지탱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시마드는 어머니 나무가 숲과 연결되어 있고 가족과 인간 사회가 서로를 양육하는 방식으로 어머니 나무가 숲을 양육함을 증명하는 한편 이와 같은 불가분의 유대가 어떻게 우리 모두를 살아남게 하는지 보여 준다.
한국어판 서문 「당신의 어머니 나무를 만나게 되기를」에서 강조하고 있듯 시마드의 연구진은 자연이 숲을 통해 제공하는 솔루션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2015년 다가올 300년 동안 진행될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어머니 나무를 보호하면서 산림을 관리하면 탄소 흡수원, 생물 다양성, 삼림 재생 능력도 함께 보호되는 현실적인 해결책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9개 기후 지역에서 노목들을 벌채하는 대신 보존하면 탄소 저장량, 생물 다양성, 삼림 재생력이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연구의 결과를 우리 후손들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과학자로서의 독보적인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숲속에서 나고 자란 시마드 가족들의 경험담, 캐나다 선주민들의 지혜를 새삼 깨닫게 되는 일화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저자 본인의 각성이 딸들과 조카들로 이어지는 과정을 감동과 함께 전한다. 16쪽 분량의 컬러 화보와 본문 흑백 사진들은 저자와 가족들, 동료들이 참여한 또 하나의 유산이다. 또한 한국어판 출간에 앞서 감염병 대유행, 기후 변화, 전쟁 등 범지구적 격변에 대해 저자 수잔 시마드와 옮긴이 김다히가 나눈 대화를 한국어판만의 특별 부록으로 「나의 숲이 간직한 이야기」에 수록했다.
나누고, 연을 맺고, 기댈 곳, 나에게 기댈 이를 찾는 나무의 삶은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나와 사뭇 다른 이들을 곁에 두고 나누지 않으면 풀 수 없을 수수께끼가 너무나 많다. 끈기 있게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며 큰 이야기를 들려 준 어머니 나무, 시마드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지구 환경이 나날이 거세게 변해 가 자연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용기가 더없이 중요해질 미래에도 우리에게 나무와 숲과 자연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전해 주시면 좋겠다.- 김다히(옮긴이)
우리는 숲의 아이들이다!
나무의 지능과 숲의 사회에 숨겨진 기후 위기의 해법
‘우리는 회복하기 위해 만들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모 통나무(nurse log)를 따라 한 줄로 늘어선 어린 솔송나무들 곁에 멈춰 섰다. 나는 보모 통나무가 토양의 병원균을 피하게 해 주고 빛을 잘 받기 위한 사다리가 되어 준다고 생각했다. - 본문에서
서문 「인연」에서는 숲에서 자란 개인사가 숲을 탐구하는 필생의 연구와 어떻게 서로 교차하면서 절묘하게 엮이는지를 보여 준다. 캐나다 임업계에서 실무에 투입된 여성 중 첫 세대에 속한 시마드는 남성 위주의 현장에서 겪은 충격과 함께 임업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무를 베서 강물에 띄워 나르던 소박한 가족 사업과는 다른 차원의 거대 산업은 자본의 논리를 좇아 획일적 조림과 벌채로 생태계를 마구 뒤흔들고 있었다.
1장 「숲속의 유령」은 200년 동안 살던 나무를 잘라낸 자리에 심은 묘목을 확인하는 업무를 맡은 갓 스무 살 신입 시절에서 시작된다. 남자아이만큼 아이스하키를 잘할 수 있다고 인정받으려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도착한 조림지에는 묘목들이 말라죽어 있었다. 왜 뿌리가 내리지 못했을까? 시마드 가족이 나무를 베고 새로 심은 묘목들은 항상 뿌리를 내렸는데 말이다. 2장 「나무꾼들」에서 저자는 어른들이 나무 일을 하는 사이 흙을 주워 먹으며 관찰했던 뿌리 끝과 토양의 다채로운 색상을 기억해 낸다.
3장 「바짝 마른」에서는 벌목 허가 한계선을 표시하는 ‘나무 학살자’로서의 괴로움에서 잠시 벗어난 저자가 남동생 켈리가 출전한 로데오 경기를 보러 가는 길에서 딴 버섯들에서 다시금 영감을 얻는다. 버섯에서 흙 속으로 뻗은 균사가 나무 뿌리 끝과 이어져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병든 조림지의 묘목들이 흙에서 영양을 얻을 수 있으려면 매개자, 균근균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벌목 회사를 설득할 수 있을까?
저자와 하이킹을 떠난 대학 시절 친구인 진은 선주민의 전설, 나무에도 인간성이 있다는 믿음을 들려준다. 코스트 세일리시 사람들은 이미 숲 바닥 아래에서 나무들의 연대와 강인함을 지켜주는 진균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다. 4장의 제목 「나무로(Treed)」는 회색곰을 피하려 나무로 기어오른 경험, 그리고 나무에 헌신하고자 하는 새로운 결심을 동시에 담고 있다.
5장 「흙 죽이기」는 동물과 식물을 보호하면서 나무를 수확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임업인이 되려는 저자의 다음 행보로 이어진다. 잡초목 제거 효과를 조사하는 산림청 프로젝트에 투입된 저자는 자유 성장 조림지란 주변 식물을 모조리 제거해 침엽수만 자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조성된 일종의 나무 농장이라는 사실도 모르던 상태에서 실험을 설계하는 방법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생물 종은 자력으로 번창할 수 있을까? 벌목업계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자작나무나 오리나무를 잎갈나무, 시더, 미송과 어떻게 섞어 길러야 건강한 숲을 조성할 수 있을까?
스물여섯 살의 저자는 오리건 주립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며 오리나무의 공생 세균을 연구하기로 한다. 「6장 오리나무 습지」는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 속에 조성한 오리나무 필지에서 수행한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오리나무가 소나무의 경쟁자가 아니라는 발견은 단기적 효과를 강조하는 산림청 및 입업 관계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저자는 발표를 마치고 켈리와 재회한 자리에서 동생과도 냉전을 시작하고 만다. 7장 「술집에서의 다툼」은 숲을 이루는 것이 경쟁인지 협력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다루고 있다. 1980년대 초 소나무 묘목이 다른 소나무로 지하에서 탄소를 이동시킨다는 것을 발견한 데이비드 리드 경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8장 「방사능」에서 자작나무와 미송이 진균을 통해 탄소를 주고받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산화탄소 동위 원소 표지 실험으로 지하 네트워크를 밝혀낼 수 있을까?
나무들은 서로 도우며 서로 이어져 있었다. 9장 「응분의 대가」에서 저자가 《네이처》에 투고한 자작나무와 미송의 호혜성에 관한 논문 「야외 서식 외생균근 수종 간 탄소 이동」은 초파리 유전체를 누르고 1997년 8월호 표지 기사로 게재된다.(Simard, Suzanne W.; Perry, David A.; Jones, Melanie D.; Myrold, David D.; Durall, Daniel M.; Molina, Randy (August 1997). “Net transfer of carbon between ectomycorrhizal tree species in the field”. Nature. 388 (6642): 579-582. doi:10.1038/41557) 전 세계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주목받은 연구 결과가 나왔음에도 캐나다 산림청이 꿈쩍도 하지 않자 저자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자작나무와 미송 사이의 경쟁적, 협력적 상호 작용의 강도를 정량화한 실험을 이어간다. 숲속 생물 다양성이 지닌 응집력은 교향악단의 응집력과 같고 과거로부터의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가족 구성원의 응집력과도 닮았다. 10장 「돌에다 색칠하기」는 보여 주기식 사업에 대한 저자의 발언이 신문 헤드라인에 실려 논란이 불거지는 사이 태어난 첫딸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11장 「미스 자작나무」에서는 어린 딸을 떼어놓고 학회장과 조림지 현장을 누비는 저자의 무력감과 투지를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2002년 저자는 산림청을 떠나 첫 강의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영년직 교수가 되었다. 그사이 제초제 양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산림청 재생 정책에 수정이 이루어졌는데 시마드의 연구가 큰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숲의 언어와 지능을 해독하는 사이 결혼 생활의 실타래는 점점 엉켰고, 12장 「9시간의 통근」은 그 고민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이기도 하다. 딸들이 있는 집까지 9시간을 운전해 가야 하는 길목의 미송에 기대 홀로 앉은 저자는 작은 휴대폰으로 새삼스럽게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미송이 암수한그루이니 어머니 나무이자 아버지 나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지만 수잔 시마드 본인의 어머니, 할머니를 떠올리며 어린 나무들을 돌보는 어머니 나무의 존재를 실감한다.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저자의 연구들, 각국 학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13장 코어 샘플링」은 갑자기 찾아온 유방암 판정 과정을 마치 토양 표본을 채취하던 과정과도 같다고 묘사한다. 죽어가는 나무들이 어린 나무들에게 탄소를 전해 준다는 증거를 찾아낸 저자는 딸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14장 「생일들」은 수술을 앞두고도 어머니 나무가 자신의 친족을 인식하는지 연구를 놓지 않는다. 회복 중 가족들과 보내는 순간에도 주목에서 추출한 항암제의 합성 가능성을 떠올리며 나무로부터 받은 모든 것에 보답하겠다는 의지는 더욱 강렬해진다. 15장 「지팡이 물려주기」에사는 저자 본인의 어린 묘목들이 자라나 숲속 실험에 동참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어머니 나무는 자손에게 생명력을 물려주어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도록 돕는다. 변화에 적응하는 유전자를 가진 다음 세대 나무들은 앞으로 다가올 혼란한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회복할 것이다. 숲의 다양성과 적응력을 위해서, 기후 변화에서 살아남은 고목들이 그들의 본원력을 미래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무와 사람이 얽혀 있고, 미래 세대를 위해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려는 선주민의 지혜를 존중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더 많은 이와 나누고자 TED 연단에 나섰고, 그 강연은 영화 「아바타」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점점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저자가 암에서 완치된 후 2015년 시작한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에 함께할 것을 권한다. 이미 그의 연구에 힘입어 자유 성장 정책이 2000년에 수정되었고 숲의 다양성을 장려하려는 임업인들이 나서고 있다.
숲의 미래에 대한 진심 어린 우려에서 출발한 의문은 흙과 나무가 간직한 복잡한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 과학자의 길로 저자를 인도했다. 시마드가 연구하는 생태계의 각 부분처럼 서로 긴밀히 얽힌 그 여정에서 숲과의 인연은 계속 자라나 숲의 지혜에 대한 더 총체적인 이해가 되었고, 나아가 숲의 지혜에 대한 인간의 존경을 다시금 회복할 방법, 자연과의 관계를 치유할 방법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졌으며 다음 세대와 더불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숲에는 회복력이 있다. 건강한 토양과 생식 능력이라는 기본적 유산이 남아 있는 한, 숲이 인간의 착취로부터 회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된 숲에 대한 착취를 멈추고 토양을 황폐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숲이 회복력을 발휘해 지구상에서 건강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생태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에서
《월 스트리트 저널》 선정 올해 최고의 책 10
《타임》, 《워싱턴 포스트》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미송 어머니 나무. 이 나무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연안 우림에서 1세기를 살았다. 근처에 있는 나무들은 미송, 이엽솔송나무, 투야 플리카타이고, 숲 하층부에는 폴리스티쿰 무니툼, 레드 허클베리가 풍성하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 Bill Heath
수잔 시마드의 연구는 사실 우리 독자들에게 익숙할지도 모른다. 2009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30억 달러 가까이의 흥행 성적을 올렸고 한국에서만 1400만 관객을 동원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영혼의 나무’의 핵심적 모티프가 된 것이 이 수잔 시마드의 연구이다. 또한 앤 드루얀의 책뿐만 아니라 제인 구달과 더글러스 에이브럼스의 대담집 『희망의 책(The Book of Hope)』(사이언스북스, 2023년)에서도 나무의 지능을 발견한 시마드를 비롯한 생태학자들의 연구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다. 과학계를 너머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책인 것이다.
https://blog.naver.com/mirrkim/223373592436
책속에서
어머니 나무가 이끌어 주지 못하면 새 숲 연결망은 결코 전과 같을 수 없다. - maisouiP. 389
균근 망에서 두 종의 통합은 단순한 자원 교환을 위한 경로 그 이상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가뭄으로 죽어가는 미송은 온난해지는 기후에 더 잘 적응한 소나무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는데,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미송은 여전히 소나무와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을까? 미송은 소나무에게 새 지역에 스트레스가 있다고 경고할 수 있었을까? 혹시 미송들이 질병에 대한 정보를 소나무에게 보냈을 수도 있다. 409
균근균은 식물과 사활을 건 소통 관계를 구축한다. 이와 같은 동반자 관계에 진입하지 않고서는 진균도 식물도 생존할 수 없다. 내가 찾은 유별난 버섯 세 종류 모두는진균 중 균근균에속하는 자실체였는데, 이들은 토양에서 수집한 물과 양분을 동반자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 낸 당분과 교환한다.P. 107
양방향 교류, 공생. -P. 108
과학자들은 최근에 균근균이 식용작물 생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식물이 접근할 수 없는 희귀한 무기질, 영양분, 그리고 물에 진균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균근 공생이 약 4억5000만~7억 년 전 고대 식물들을 해양에서 육지로 이주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진균이있는 식물 군집에서는 진균의 도움으로 척박하고 식물이 살기 힘든 바위에서도 식물이 영양소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기에 식물이 육지에 발을 붙이고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들은 협력이 진화에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P. 110
레이와 내가 릴루엣 산맥에서 벌채할 곳을 정한 후 오래된 나무들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고, 500년 된 나무에게 내린 사형선고는 아직 내 마음을 떠돌며 죄책감을 들게 했다. P. 135
벌채의 효율성은 자연과 잔인하게 동떨어진것처럼 느껴졌고, 우리가 더 고요하고, 더 온전하고, 더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상들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처사였다.
사람들이 목재와 종이를 필요로 하는 한나무 베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숲을 생기 있고 다시 살아날 수 있게 유지하면서 나무를 수확했고 어머니 나무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물질적으로 부유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숲속에서 충만한 평화를 누리며 필요한만큼만 취했으며 간격을 띄워 두어서 나무들이 돌아올 수 있게끔 했다. P. 135
조림지에서 수백여 일을 보낸 후, 또 식물과 묘목이 어떻게 함께 자라는지 살펴본 잡초목 제거 실험 이후로 나는 나무와 풀이 이웃과의 거리를 감지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이웃이 누구인지도 아는 것 같았다. P. 168
뜻하지 않게 균근균을 죽이면 나무도 죽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 P. 175
소나무는 토양이 아니라 균근균 덕분에 오리나무로부터 질소를 받았던 것이다! 마치 오리나무가 소나무에게 직접관을 통해 비타민을 보내 준 것처럼, 균근균이 오리나무 뿌리에 대량 서식한 후에는 균사가 소나무 뿌리를 향해 자라서 식물들을 연결했다.
나는 이 연결 장치를 통해 질소를 잔뜩 가진 부자 오리나무로부터 가난한 소나무로 질소가 농도 기울기를 따라 흘러내려 이동했음을 알아냈다. P. 212
에너지와 자원을 공유한다는 것은 나무들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협동한다는 뜻이었다. 지능형 시스템처럼 지각하고 반응하면서. -P. 275
<네이처>에서는 내 발견을 우드 와이드웹(wood wide web)이라고 칭했고, 봇물이 터졌다. P. 281
하지만 나무의 진균 네트워크는 비가 올 때마다 버섯과 포자를 만들어 내므로 1년 중에도 몇 차례나 자신의 유전자를 재조합할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어쩌면 빠르게 순환하는 진균은 나무에게 변화와 불확실성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P. 315
진균은 탄소 공급원 중 적어도 하나만 살아 있다면 기주가 어떤 종인지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다. 다양한 식물 군집에 투자하는 것이 단 한 종에만투자하는 것보다 위험도가 낮은 전략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일수록 더욱 다양한 종과 연합할 수 있는 진균이 더 성공할 것이다. - P. 316
생태계는 인간 사회와 무척 비슷하다. 생태계와 인간 사회의 바탕은 관계이다. 유대가 강할수록 그 시스템은 더 탄력적으로 된다. - P. 320
즉 우리가 생산적 사회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는가는 다른개인, 다른 종과의 유대가 얼마나 강한지에 달려 있다. 유대의 결과로 발생한 적응과 진화에서부터 우리의 생존, 성장, 번성에 도움이 되는 행동들이 나타난다P. 321
어머니 나무에게서 상생과 협력을 배우다
진균 통한 나무들의 소통 확인한 캐나다 삼림학자
“오래된 나무는 주변 묘목들의 허브이자 어머니”
무차별 벌목과 단일 수종 식재 관행에 일침
나무들은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주변의 다른 나무보다 높은 곳으로 솟아오른다. 땅속에서는 물과 양분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고자 어지럽고 사납게 뿌리를 뻗는다. 인체에 이롭다고 알려진 피톤치드는 나무가 주위의 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내뿜는 독성 물질로, ‘식물’(phyton)과 ‘죽이다’(cide)라는 어원에서 보듯 적대적인 성질을 지닌다. 요컨대 나무의 생장은 경쟁에 기반한다는 것이 오래도록 진화론에 입각한 상식적 설명이었다.
캐나다의 식물학자 수잰 시마드는 1997년 8월 과학 전문지 ‘네이처’ 표지로 실린 논문에서 미송과 자작나무가 광합성 탄소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밝혀 이런 진화론적 ‘상식’을 뒤집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두 수종은 땅속의 진균 네트워크를 통해 물과 양분을 주고받으며 협력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네이처’는 이런 시마드의 발견을 가리켜 ‘우드 와이드 웹’(Wood-Wide-Web)이라고 불렀다. 그보다 몇 년 전인 1989년에 출현한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에 빗댄 표현이었다. 월드 와이드 웹이 전선이나 전파로 연결된다면 우드 와이드 웹은 균근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차이였다.
시마드가 2021년에 낸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우드 와이드 웹으로 대표되는 그의 발견을 중심으로 지은이 자신의 학문 여정과 개인사를 병렬 서술한 책이다.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목재업 가문에서 태어난 시마드는 비록 계절직이긴 하지만 벌목 회사 최초의 여직원으로 취직해 나름대로 가업을 잇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가 맡은 업무는 목재용 어린나무를 심기 위해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는 일이었는데, 멀쩡한 나무를 베어 없애는 업무를 “처형자 역할”이라 표현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그는 그 과정에서 나무뿌리에 거미줄처럼 붙어 있는 균사체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된다. “땅속에 있는 거미줄같이 생긴 균사들이 나무와 식물들을 서로 이어 주면서 전체 공동체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수분을 잡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이 무렵의 궁금증이 발전해 우드 와이드 웹 논문을 낳은 것이다.
투야 플리카타 어머니 나무와 자손들. 일단 가지에서 뿌리가 단단히 내리면 어린나무는 부모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별 나무로 자란다. ⓒ Jens Wieting
벌목 회사를 거쳐 산림청 소속 연구자로 일하며 균사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를 이어 가던 시마드는 스물여섯 나이에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 석사 과정에 들어간다. 목재용 침엽수를 위해 오리나무나 자작나무 같은 ‘잡목’을 베어 없애는 것이 벌목 회사들의 오랜 관행이었는데, 오리나무나 자작나무가 질소로 토양을 비옥하게 해서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입증하는 것이 시마드의 목표였다. “오리나무는 토양을 풍요롭게 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소나무 생장에 해롭지 않고, 소나무 생장을 보완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납득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런 목표와 사명감이 세계를 뒤흔든 논문을 낳았지만, 그것이 시마드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리나무와 소나무를 연결하며 질소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공통의 균근균 종을 발견했다는 스웨덴의 젊은 연구자의 논문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의 선행 연구를 참조하고 발전시켜 자신의 체계를 완성한다. 게다가 그의 대학 시절 친구 진에 따르면 캐나다의 원주민들은 “숲 바닥 아래에 나무들의 연대와 강인함을 지켜 주는 진균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선주민들의 오래된 지혜를 과학적 연구로 재확인한 셈이다.
“그(과학 탐험) 여정에서 나의 연구와 개인사는 묘하게, 가끔은 섬뜩할 만큼 너무도 정교하게 발을 맞추며 전개되었다.”
책의 서문에서 시마드가 밝힌 대로 그의 삶과 연구 주제는 짜기라도 한 양 영향을 주고받는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두 딸을 둔데다 뒤늦게 교수(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산림학과)로 임용된 그는 일과 양육 사이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느라 고초를 겪다가 이혼에 이른다. 그 무렵 그가 발견한 것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머니 나무’였다. 어머니 나무는 숲에서 가장 큰 나무로, 다른 모든 나무에게 물과 양분을 제공하고 생존의 지혜를 나눠 주는 존재다.
“어머니 나무는 주변에 자리한 모종과 묘목의 중심 허브였고, 다양한 진균 종에서 뻗어 나온 갖가지 색과 무게의 실이 나무들을 겹겹이 튼튼하고 복잡한 망으로 연결했다.”
어머니 나무가 주변 나무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에도 영감을 주었다. 그것은 또 시마드 자신이 두 딸과 맺는 관계와도 다르지 않았다. 오랜 삶의 과정에서 상처 입고 시련을 겪은 어머니 나무는 자신이 축적한 생존 노하우를 어린나무들에게 전해 준다. 나무들은 물과 양분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와 환경에 대한 정보 역시 서로에게 전달한다.
투야 플리카타 할머니 나무. 나이는 1000살로 추정된다. ⓒ Jens Wieting
시마드는 유방암에 걸려 양쪽 유방을 절제하고 힘겨운 항암 치료를 거쳐 완치 판정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 같은 환우들과 자매애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편 여자친구 메리와 새로운 삶을 꾸리기에 이른다. 부상을 당하거나 죽어가는 어머니 나무가 어린나무들에게 에너지와 지혜를 전달하는 모습에서 그가 착안한 것이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mothertreeproject.org)다. 경쟁이 아닌 협동이 식물의 생장 비결이며, 오래된 나무를 생태계의 중심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기후위기 시대에 한층 절박하게 다가오는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오래된 나무들은 흙 속에 어마어마한 분량의 탄소를 숨겨 보존하고 있으며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의 원천이다. 그 오래된 영혼들은 대단한 변화를 겪었고, 이것이 그들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었다. 변화를 거치며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모았고 이 모두를 자손들에게 다 주었다. 보호, 새 세대가 시작할 터, 성장할 토대를 제공하면서.”
숲 가꾸기라는 이름 아래 수령 30년 전후의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벌목하고 있는 대한민국 산림청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조언이라 하겠다./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어머니 나무가 알려주는 것들
나무들, 이끼같은 진균으로 연결… 탄소 등 필요한 영양분 주고받아
‘어머니 나무’ 중심으로 소통-협력
무심코 지나친 아름드리나무가… 숲 지키는 어머니 나무였을지도
숲에선 모두 한가족 ① 미송 어머니 나무. 수령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깊게 고랑이 파인 두꺼운 껍질은 화재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커다란 가지는 굴뚝새, 솔잣새, 다람쥐, 땃쥐 등 새와 야생 동물을 위한 서식지를 제공한다.② 광대버섯으로, 파리버섯이라고도 한다. 소나무, 참나무, 가문비나무, 미송, 백자작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외생균근 관계를 형성해 각종 물질을 주고받는다.③ 나뭇가지에 앉은 흰머리수리. 수많은 생명을 품어내는 숲에서 오래된 나무는 인간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처럼 어린 나무들에 양분과 물을 주며 양육한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Jens Wieting ⓒPaul Stamets
오늘날 우리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속에서 살아간다. 생긴 지 아직 40년도 안 됐지만, 인류 전체를 하나로 엮은 정보의 그물망은 우리가 일하고, 학습하고, 물건을 사고팔고, 여가를 즐기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홀로’가 ‘함께’가 되면, 모든 게 변한다. 공존의 네트워크를 이룩할 때, 세상은 달라진다. 자연은 이미 수억 년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수전 시마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인간에게 월드와이드웹이 있다면 나무에겐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 있다고 주장한다. 숲은 나무들이 따로따로 모인 곳이 아니다. 나무들은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정보망을 만들어 내기 훨씬 전부터 나무들은 신호를 주고받고 메시지를 교환하는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따로 떨어진 듯한 나무들을 연결하는 것은 땅속 경로 체계인 지하의 진균 네트워크다. 진균은 효모, 곰팡이, 버섯 등 스스로 양분을 만들지 못하고, 다른 생물에 기생하는 생물을 말한다. 숲 바닥을 온통 뒤덮고 땅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진균들은 서로 연결돼 끝없이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는다.
나무뿌리를 보면, 그 끝에 진균들이 달라붙은 걸 볼 수 있다. 진균은 나무 당분을 이용해 번식하고, 나무는 진균의 팡이실을 활용해 뿌리 범위를 넓히고, 물과 양분의 흡수력을 높여 공생한다. 오랜 연구 끝에 저자는 공생의 범위를 극적으로 확장했다. 나무들이 진균 네트워크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인지하고 소통하며, 행동 양식을 가르치고 배우며,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이다. 나무도 인간 못지않은 지적 생명체인 셈이다.
숲속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가 그 소통의 중심에 있다. 저자는 이를 ‘어머니 나무’라고 부른다. 인간 부모가 아이를 기르듯, 어머니 나무도 어린 나무를 양육한다. 그들은 물과 양분을 보내 어린 나무를 돌보면서, 그들에게 무엇이 득이 되고 해가 되는지,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을지를 가르친다. 가령, 인간이나 해충 등에 상처를 입으면, 어머니 나무는 친족에게 탄소를 더 많이 보낸다. 생명력을 물려줘 친족과 자손이 변화에 대비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 나무를 중심으로 숲속 나무들 전체가 에너지와 자원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시스템처럼 협동하며, 숲 전체의 성장과 재생을 관리한다.
어머니 나무는 숲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 나무를 베어내면 우드 와이드 웹은 많은 것을 상실한다. 어머니 나무가 없을 때, 어린 나무들은 성장이 더뎌지고, 더위나 추위, 해충이나 질병 등을 이기지 못해 쉽게 병들어 죽어간다. 나무들이 환경 변화를 인지하고 서로 경고하며 대처하는 네트워크가 약해지면서 숲 생태계 전체가 엉망으로 변하기도 한다. 지혜를 잃으면 공동체가 무너지듯, 오래된 나무가 없는 숲은 쉽게 파괴된다.
나무와 진균의 공존은 생태계의 근본 지혜를 보여 준다. 종을 넘어서서 관계 전체의 잘 짜인 그물망 속에서만 생명은 생존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유대를 맺고 긴밀히 소통할수록 크게 성장한다. 유대의 힘을 늘려가는 공동체만이 번영한다. 기후 위기 시대, 어머니 나무가 이끄는 우드 와이드 웹은 우리에게 공생의 힘과 가치를 선연히 알려준다
독자서평
사진처럼 찍히는 장면이 있다. 보고 또 보아도 자꾸 잊어버리는 50대의 나를 순식간에 10대로 돌려놓은 사진, 80대 노모의 알몸이다. 투명하게 증발해 버린 왼쪽 유방, 두어 겹으로 출렁이는 뱃살, 탄력을 잃은 피부, 왜소한 다리가 심장에 새겨지는 문신인 양 선명하게 각인된다. 어머니의 왼쪽 팔목이 골절되는 바람에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보게 된 몸이다.
11cm 자그마한 체구로 조각되었다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당신의 몸이 겹친다. 다산의 상징이라는 조각상 말이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육감적인 모습도 아닌데 왜 하필 '비너스'라 부르는지 의아하게 여기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라는 필터를 끼우니 그 이유가 한순간에 이해된다. 한때 날씬했을 몸이 그렇게 변해버린 이유를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포동포동한 몸에 미의 여신이 가당키나 하냐며 고대인의 안목을 의심했다. 가볍게 웃던 기억에 무게감이 더해진다. 더 이상 우습지 않아진다.
셀 수 없는 날들, 나를 씻겨주시던 몸을 난생처음 씻겨드리고 왔다. 그 몸이 지나온 시간을 가늠한다. 수많은 나날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그 몸에, 불완전한 세포를 내내 뱃속에 품어 온전한 생명체로 만들었던 그 몸에, 휘몰아치는 삶의 파도를 감내하며 울타리가 되어주던 그 몸에, 품 안에서 떨어져 나온 지금까지 여전히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그 몸에 '비너스'처럼 적절한 명칭이 또 있을까.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식물계의 비너스가 걸어온 내밀한 삶의 여정을 탐구한 책이다. 동시에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저자 수잔 시마드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거대한 숲을 논하는 대장정에 왜 개인의 삶이 끼어드는가. 간지처럼 끼워지는 저자의 일상이 처음에는 껄끄러웠다. 저자의 가계도를 둘러싼 배경지식까지 굳이 알 일인가. 연구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야 그렇다 쳐도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남편, 친구와의 소소한 관계까지 등장하니 마음이 뾰족해진다.
숲의 삶과 저자의 삶을 병치시킨 이유를 납득하게 된 건 책장 날개의 오른쪽 두께가 점점 줄어들면서이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과 지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나무들의 삶이 호수에 비친 그림자인 듯 닮아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을 채우는 삶의 방식은 적자생존만이 아니었던 거다.
경쟁만이 난무하는 듯 보이는 세계에도 따스한 협력은 봄꽃으로 피어난다. 프랙탈인 양 서로 닮은 속성을 발견하며 생명으로서의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한다. 인간과 나무의 삶을 동시에 바라보니 서로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가 무너진다. 숲속 나무들 사이에 경계가 없는 것처럼. 이 나무의 영역, 저 나무의 영역이라 선을 긋는 건 숲의 정체성에 무지한 인간의 잣대일 뿐이다. 다른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니 불편하겠지, 이 나무는 영양분을 일방적으로 빼앗아 갈 거야. 제멋대로 판단하여 도끼를 휘두르고 제초제를 뿌리는 인간에게 나무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나무의 언어를 해석한다는 건 지난한 기다림을 감내하는 일이다. 왜 이곳의 숲은 무성하고 저곳은 황량해지는가. 왜 그곳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찬란하다 순식간에 사그라드는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묵묵히 뻗어나가는 삶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시간을 걸어갈 뿐이다.
비밀의 문을 열어보려는 삼림 과학자 수잔 시마드는 침묵의 언어에 도전장을 내민다. 한 사람의 뜨거운 열정은 종이 한 장 한 장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학자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을 넘어서는 저자의 사랑이 보인다. 숲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도전들이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중간중간 세상의 편견이 가로 놓인 허들 경기에서 장애물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높다.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전류의 속성과 닮아있다. 세상은 방해 요소로 보이는 나무를 당장 베어내거나 제초제를 뿌리면서 단기적인 이득을 취한다. 근시안적인 편견에 여성 과학자를 대하는 편견까지 더해지니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생명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그녀의 싸움이 시작된다.
영어로 제시되어 해석하지도 못할 참고 문헌의 기록을 보며 찡함을 느낀다. 34페이지에 달하는 책장을 천천히 넘겨본다. 연구에 담긴 열정의 땀방울을 가늠한다.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많은 사람의 의지는 거대한 어머니 나무인 듯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낸다.
책 안에 촘촘히 기록된 저자의 글이 종이로 만들어지는 나이테 같다. 삶이 고스란히 찍히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말이다. 나무의 삶에는 지우개가 없다. 바람의 온기와 햇살이 머무른 시간이 화석처럼 남는다. 저자의 삶과 열정, 생명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보니 거대한 숲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한 사람의 의지가 이렇게 숲을 이루었구나.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이 떠오른다. 흑백 애니메이션을 다시 찾아본다. 소설인지 다큐인지 경계가 애매하여 실제로 일어났음 직한, 정확히 말하면 일어났었기를 바라게 되는 작품이다. 볼 때마다 뭉클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안는다.
나무라는 존재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전해주는 이유는 무얼까. 끊임없는 나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나눔이 이루어지는 연결 통로, 저자의 놀라운 발견을 <네이처>에서는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 칭한다. 인터넷 네트워크처럼 나무들이 땅속 세계에서 거미줄처럼 얽힌 채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협력한다는 사실이다.
아카시아 나무들은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경우, 그들만의 소통 방식으로 향기를 퍼뜨려 이웃 나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고 들었다. 서로 다른 종의 나무들은 빛을 두고 경쟁하지만 동시에 탄소를 공유하면서 협력하는 삶을 이어간다. 가문비 나무에서 출발한 저자의 연구는 미송과 자작나무, 오리나무로 영역을 넓혀가다 숲 전체의 연결망으로 확장된다. 그 중심에는 진균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진균은 '진짜 균'이라는 의미로 곰팡이를 가리킨다. 이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으므로 기생 생활을 한다. 균근은 곰팡이의 균사와 식물 뿌리의 상호공생체를 지칭하는 용어다. 균근균은 효모, 버섯을 포함하는 균류의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균근균은 많은 식물종과 공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진균 네트워크는 숲 바닥을 온통 뒤덮으며 모든 나무를 연결한다.거점 나무들과 진균이 만들어 낸 연결점들이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다. 어린나무를 되살려내는 진균 연결 고리의 원천은 저자가 "어머니 나무"라고 칭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모든 이웃을 연결한다.
어린나무는 물론이고, 늙은 나무와도 이어져 있으며 "축삭, 시냅스, 마디 등으로 구성된 정글에서 중추적 고리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식물의 95%는 대부분 균근성이라고 한다. 흙 속에 뻗어있는 뿌리만으로는 생존이 불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촘촘한 균근으로 땅속의 물이 식물의 뿌리에 전달되면, 식물은 그 보답으로 진균에게 영양분의 일부를 건네준다. 완벽한 공생이다.
균근균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 외생균근으로 실처럼 생긴 균사가 식물 뿌리의 표피를 둘러싼다. 식물 세포 밖에서만 존재하고 뿌리의 안쪽까지는 침투하지 않는 균근이다. 둘째, 수지상균근은 나뭇가지 모양으로 뿌리 안쪽까지 뻗는다고 한다. 80% 이상의 육상 식물이 수지상균근균과 공생한다고 전해진다.
나무와 진균의 공생 관계에 나무들 사이의 공생이 더해진다. 홀로 자라는 뿌리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에너지와 자원을 공유하며 다른 나무나 진균과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도 저 혼자 자라지 못한다. 인간이 그러하듯이. 결국 인간 세계처럼 숲 역시 긴밀한 시스템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거다. 저자가 존경스러운 건 이 모든 사실을 사전 지식 없이 오롯이 실험으로 밝혀냈다는 점이다.
576쪽에 이르는 두께에 비해 실험 내용을 따라가기에는 예상보다 난해하지 않았다. 종종 전문적인 실험 과정이 등장하지만 나무보다는 숲 전체를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다만 '묘목이 찾아낸 붙어서 자랄 토양은~' 처럼 일부 문맥이 어색하며 사소한 오타가 눈에 띈다. 문체에 익숙해지면 점차 나아지지만 매끄럽지 않은 노면을 걷는 듯 시선을 멈추곤 했던 과정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천천히 저자를 따라갔다. 속도를 내려야 낼 수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버섯 이름이 꾸역꾸역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리도 버섯 천지였던가. 느타리, 양송이, 표고, 팽이 등 슈퍼마켓에 널린 버섯은 병아리 오줌이었던 거다. 애주름버섯, 비단그물버섯이 뭔지, 식용인지 독버섯인지 지식백과와 이미지를 찾으며 산책 걸음이 된다.
비글이 야외 변소에 빠져 구덩이 옆 땅을 판 이야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토양의 구조를 떠올린다. 이론적으로만 알던 기반암-모질물-심토-표토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니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통나무에 깔리거나, 통나무 틈에 짓이겨지거나, 통나무를 부수려는 다이너마이트에 손이 날아가거나, 나무 절단용 회전 초커에 손가락을 잃거나, 통나무가 등에 떨어져 허리가 굽거나. 거대한 자연과 마주하는 나무꾼들의 삶이 묘사된 장면에서는 야생의 땀 냄새가 훅 끼얹어지는 듯하다.
나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과정에서는 설계부터 실행 단계에 이르기까지 동료 과학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저자의 탐구 과정을 따라간다. 생물이니 변수가 많아 까다롭지만 그만큼 의미가 큰 작업이리라.
생물의 특성이 많이 알려지기 전, 생물은 흔히 동물과 식물의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동물과 식물의 삶은 흑과 백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듯 보인다.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나무가 아날로그라면 매일 세포가 탈락하고 재생되는 동물은 디지털 생명체에 가깝다. 동물인 나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태어났을 때 지니고 있는 그것이 아니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삶과 인간의 삶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
외생균근의 진균 균사가 풍성하게 붙어 둘러싸인 뿌리 끝 사진을 본다. 땅속에 투명한 튜브를 넣어 뿌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미니라이존트론이라는 기기로 촬영했다는 사진이다. 인간의 피부 아래에서 온몸에 걸쳐 존재한다는 거대 기관이 떠오른다. 유체로 채워져 있기에 피부를 절개하는 순간 허물어져서 결코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이질'이라는 기관이다. 진균 균사와 사이질 모두 생명을 보호하는 방패처럼 든든한 구조이다.
알츠하이머의 신경 연결망과 균사의 연결망을 비유하는 장면을 넘어서니 시야가 확장된다. 발로 딛고 있는 흙이 거대 생명체의 일부로 여겨진다. 지구라는 존재의 뇌 속에 식물 뿌리와 균사가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는 듯이.
생물 다양성을 접하면서 학교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각각의 학급은 모범생과 사랑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분포하는 군집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섞여있는 공간이 숲을 닮아있다. 숲과 더불어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어쩌면 아이들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면서 성숙하는 게 아닐까.
거친 피부를 두른 채 성숙하는 나무를 보며 어머니를 품고 있는 비너스를 연상한다. 청순가련형이나 매끈한 몸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몸통은 군데군데 벗겨지고 패이거나 갈라져 있다. 고스란히 새겨진 삶의 굴곡이 어머니의 그것과 닮아있다. 숲을 만드는 근원, 어머니 나무 위로 나의 어머니가 겹친다.
내 생명의 근원이 사그라드는 걸 지켜본다는 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슬픔을 마주하는 일이다. 이 책에서 본 어머니 나무처럼 나의 어머니도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언젠가는 자연으로 머무시리라. 그게 자연이야, 이게 자연스러운 거야,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심장을 다독인다.
모든 사물에는 언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소립자는 끊임없이 진동하며 소리는 진동이니까. 가청 주파수에 포함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리라. 나무의 언어를 상상하며 드넓은 지하 세계를 그린다. 포슬포슬한 흙 구슬을 얼기설기 꿰어 만든 이불을 덮고 숨 쉬는 공간. 그 안에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생명들이 분주한 삶을 이어간다.
저자는 언급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나무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 아니라 나무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라고. 말 없는 나무의 생을 알아가는 건 인간의 생을 이해한다는 의미일까.
고요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난한 걸음을 지켜본다. 나무의 어머니가 걸어왔고 나의 어머니가 걸어왔으며 어머니로서 내가 나아갈 걸음에 마음이 머문다. 뭉클한 감동이 진균에서 뻗어 나오는 균사처럼 심장에 퍼진다. 묵직한 파문이 인다.
나비종 2024-03-28 공감 (3) 댓글 (0)
나무의 신년사- 정연복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한평생을 지내는 듯한
나의 태평스런 모습
그래요, 나는 뭔가를 이루려고
안달하지는 않습니다.
햇살과 별빛과 달빛
비와 이슬과 서리
바람과 새와 벌레들....
나의 몸에 와 닿는 어느 것이라도
묵묵히 받아들일 따름이지요.
무심(無心)!
이 보이지 않는 힘 하나에 기대어
나는 어제도 오늘도 말없이 살아갑니다.
마치 죽은 듯이
속살 깊이
세월의 주름살 같은
나이테 하나씩 지으며
나는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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