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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이전 흔적

감천~두송반도~다대포(2010.05.24)

by 이성근 2017. 6. 23.



 걷기 전 충분한 몸 풀기는  근육의 경직을 예방하고 피로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선거철인지라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후보들은 어디든 모습을 나타내고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청한다.  대부분 이 동네 살지 않는데도 ... 25차 구간은 초장부터 소움과 분진, 보행에 장애가 제법 많은 구간이다.  해안 칠백리 구간 중 대표적 기피 구간이다.  누가 구청장에 당선 될지는 모르지만  후보들에게 구별 갈맷길 협약식을 체결하여 공동의 자원으로 기발할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구 화력발전소 담벼락길을 따라 나아간다.  겨울이면 참으로 삭막한 구간인데 그나마 봄이라 이렇듯 넝쿨장미꽃과 녹색옻으로 갈아 잎은 은행나무 덕분에 걸음이 한결 가볍다.  거기다 날씨가 도왔다.  도심구간 길에 대한 작은 배려만 있다면 7백리 걷기가 훨씬 재미있고 즐거울 것이다.    

 감천사거리로 부터 약 1.08km 지점의 감천 중앙부두다.   

 

감천항은 원양어업의 기지로서 예전에는 감천본동을 ‘불미골’이라 불렀다.  지금의 감천 남부발전(구:화력발전소) 앞 만입을 이루고 있는데 조상들의 선견지명이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 부산항의 잡화부두로서 철재와 냉동창고들이 밀집해 있다.  만의 끝부분은 두송반도와 장군반도가 나란히 달리고 있으며 동서방파제가 두도를 마주하고 있다.

 감천항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외지고 교통이 불편하며,   우범지대처럼 여기고 있다.  항만의 폐쇠성이 그런 인상을 강하게 심어 주고 있다.  마치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방치된 지대인듯

 중앙부두 입구로부터 약 400m 정도가 이렇듯 철망으로 차단되어 있다.  국제항이지만,  취급하는 물품이 어류나 잡화이다 보니  악용될 소지가 많아서 인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되어서는 곤란하다.  인근 주민을 위해서라도  개방을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철조망 넘어 러시아 선적 고깃배에 달린 태극기의 꼴이 말이 아니다. 

YK스틸 공장으로.  예전에 한보철강 터다.  1997년 당시 재계  서열 14위이던 한보그룹의 부도를 발단으로 이와 관련된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가 드러났는데, 일명 한보사태라 부르는  건국 후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한보가 부도를 내면서 불거졌는데, 부실 대출의 규모가 5조 7000억여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여서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것은, 鄭泰守 당시 한보그룹 총회장이라는 한 기업인과 관련하여 천문학적 금액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정계와 관계, 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하면서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는 당시 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金賢哲)과 국가안전기획부 운영차장 김기섭(金己燮) 등 권력 핵심부에 있던 사람을 비롯하여,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 20~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태가 발생하면서 제철소가 있는 충남 당진 지역은 부도 여파로 인해 171개의 영세업소와 외상 거래자들이 빈 손이 되었고, 국가 대외신용도가  급격히 하락해 국가 경제가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하였다 고 한다.  하지만   이는 밝혀진 내용일 뿐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가와 함께 시간 속에 묻혀버렸다. 한편 정씨는 세금체납 랭킹 1위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지난 3년간 정씨의 국세 체납액은 2127억원이라고 한다. 

 감천항만 삼거리다.  우측 YK스틸 공장 벽면에 내걸린 환경보전 슬로건이 주변 환경을 무색하게 만든다.

 안구평 당산나무로서 수령 약 170년 가량의 회화나무인데, 사연이 많다. 지난 1994년 사하구청이 감천항 도로개설을 이유로 나무를 이식하고자 했지만, 지역민들이 이른바 '결사반대'를 통해 지켜낸 나무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 온 당산(堂山)나무와 조상대대로 제사를 지내온 사당에 손을 대면 큰 일 난다"며 마을의 수호신을 훼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사하구청은  하루 수 천 대에 이르는 대형 트레일러의 통행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며 당산과 나무를 이식할 것을 주장하며 주민을 설득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헌데 사하구청이 제시한  통행량의 근거는 무엇으로했으며, 그 출처가 어딘지 궁금하다.  하루 수 천 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비숫한 사례가 을숙도(명지)대교 이다.   개발주의자들이 내미는 그 턱없는 근거들이, 막상 들어서고 나면 절반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 하다.  어처구니 없게도 또 많은 수의 일반 시민들은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사실은 암 것도 없음에도 개발에 손을 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무튼 구평 당산 나무의 존재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곤두박질 치는 토건공화국에 대한 상징목이라 할 수 있다.      

                               

 당산나무로부터 약 110m 직진하면 롯데카센터가 있고, 성화원길을 통해 두송반도 임도길에 이르게 된다.  이구간 부터 감천항 주변의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좌측 동양강철사무가구 공장과  우측 (주)한국종합기계 사이로 이동한다.  현재 이길은 야간 통행은 어렵다.

 길은 계속 좌측길을 따라 이어진다.  구평약국 방면으로는 가구공장이 난립해 있다.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조망한 감천항내 경관이다.  (주)모든석유와  물류창고인 세방, 동부익스프레스가 들어 앉아 있다.  십 수년 전 강남조선터 였던 이곳은 특정 폐기물을 불법 매립한 뒤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그대로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행정과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이다 보니  일대의 공간 이용은 심각한 수준으로 방치되고 말았다.   생태산업단지가  일반화되는 추세에 있어,  이곳의 얼굴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고 본다.   

 본격적 임도의 시작이다.  비로소 걸을 맛이 난다. 

 다대포로부터 시작하여 태종대 까지의 해안구간에서는 솔개를 비롯하여 맹금류의 출현을 곧잘 목도한다.  그만큼 사람의 간섭이 적기 때문이다.  

 건너편 장군반도의 끝자락인 암남공원이 두송반도와 나란히 바다로 달려 가고 있다.   

 

두송반도(頭松半島)의 허리 춤이다.  두송산을 정점으로 하고 있는데, 승학산에서 봉화산을 지나 남쪽으로 뻗어내린 두송반도의 끝에 자리잡은 산으로 해발은 95m에 불과한 구릉형 산지이다.  다대포의 자연 방파제로서 동남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대포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자연표지로 이용되기도한다. 조선시대에는 몰운대 금티산과 함께 병선을 만드는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나무의 벌채를 금지한 바 있는 경상좌우영 관할의 봉산으로 지정된 군사상 중요한 산이기도 했다. 다대8경 중의 하나인 두송만취(頭松晩翠)의 무대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푸르름이 다양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낼 정도였으며, 특히 늦은 가을에 해풍을 맞으며, 바라다보는 푸르름이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의 끝에서 금문도와 오리섬을 볼 수 있다.

 숲이 가까이 있어도 여름 한 낮은 제법 땀이 흐르는 길이다.  그렇지만 부산에서 이런 비포장길을 걸을 수 있는 곳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보니 오히려 반갑고 소중한 마음이 생기는 구간이다. 

 25차 시민그린워킹에 참가했던 분 100%가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다.  그리고 의외로 초행이 많았다.

 고개로 넘어서면 1차 길래길이 나온다.

 지도에서는 우측이지만  실제 걸을 때는 죄측길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여기서 부터 다대포 일원을 수시로 조망하며 걷게 된다.  몰운대 앞의 쥐섬과 다대항 입구의 솔섬이 반긴다.

 지금부터 맛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두번째 갈림길에서 오솔길을 따라 이동하면

 암남공원과 두도의 정경을 만나게 된다.  세번째 갈림길까지 500m 남짓한 거리지만 오리나무 숲과 솔숲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걷다보니  불어오는 바람이 발걸음을 경쾌하게 한다.

 세번째 갈림길에서 헬기장까지 1km 남짓(960m) 한 거리다.  이 길 역시 오솔길로 앞서 보다는 숲이 종 조성이 다양할 뿐 아니라  운치 있어 모두들 만족해 했다.

 거기다 길은 구불구불 사행하여 걷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길은 폭 1.5m 정도로 가능한 인위적 간섭이 없는 평탄하면서도 감도는 맛이 있고, 자연성을 잃지 않은 곳이다.   하긴 이런 길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만은  행정은 지나치게 친절하여 곧잘 덧내기도 한다.

 참가자들의 표정이 궃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환하다.

 미안한 일은 그놈의 비 때문에 선두인 (내가) 빨리 걷다보니 여유작작 즐기며 걸을 수있는 기회를 빼앗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다들 어느 정도 비는 대비하고 왔음에도,  역시 지나친 앞선 생각은  항상 조심해고 경계해야 한다. 


헬기장으로 연결된  임도와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의 임도는 예전에 군작전을 위해 개설된 것이다. 동백나무가 많았는데 숲이 변화한 것인지 뽑아갔는지, 유명했던 동백군락지는  없어졌다.  대신 식재한 동백이 위로하듯 심겨져 있다.

 . 

  헬기장 뒷편 해안쪽으로 내려서면 바다가 품을 열어 준다.   

 몰운대 앞 바다 쥐섬과 경섬이 평화롭게 쉬고 있다.

참으로 뛰어난 풍광이다.  

줌렌즈를  당겨 보았더니 낙동강하구 도요등과 가덕도가 다가선다.  여기서 보는 하구의 모습이 새롭다,

 이제 다시 임도를 따라 다대2동쪽 국제여객터미널로 이동해야 한다.

 2차 갈림길까지 약 1.39km를 이동한다.

거기서 좌회전하여 1km 정도를 산허리를 타고 돌아서 내라면 국제여객터미널 입구와 만나게 된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참 매력있는 길이다.

 좌측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따라가면 길은 이어지되  비탈을 올라야 한다. 하여 우측길을 100m 정도가 오르듯 이동하면 나머지 구간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다대포는 섬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사하구는 부산에서 가장 섬이 많은 곳은 곳이다.   다대포 근처에 있는 섬들만 챙겨보자면

 

금문도: 무인도로서 거북섬이라고도 부른다  ,494 ㎡의 면적에  다대항과 감천만의 경계에 위치

남형제섬: 무인도 부산 최남단으로 육지에 멀리 떨어져 외로이 떠 있는 두 개의 섬이 마치 형제와 같이 생긴 섬이라 한다

동호섬: 무인도로서 몰운대 앞바다에 위치하고 쥐섬의 서쪽에 있다.  2,024㎡의 면적에 달 밤 정취가 뛰어나다 

동섬: 다대포 앞 바다에 있으며 무인도로서 면적은 2,206㎡이다.  쥐섬의 동쪽에 있다. 

모자섬: 면적 3,322㎡의 무인도로 섬의 생김새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 같다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고 있다. 파도의 침식이 강한 외해에 면해 있으며 해식애     및    파식대가 발달해있다. 경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손대 앞에 있다.


목섬: 섬의 면적은 4,760㎡으로 해발 61m의 무인도지만 제법 품이 크다. 몰운대에서 남쪽으로 5.5km 지점에 있으며 상록활엽수 등 해안 식생대가 발달해있다.  다대포 어민들은 남도 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형제섬: 면적 11,352㎡으로 암반으로 형성된 무인도로서 매등의 맹금류와 이동중 중 철새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으며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솔섬: 면적 4,476㎡ 소나무가 많아 솔섬이란 이름이 붙었다. 다대포 입구에 있으며, 갯바위로 이루어 진 섬으로 다대팔경 중 삼도귀범(三島歸帆)의 무대이다. 섬의 명칭에서도  알 수있듯 소나무가 우거져 예부터 다대포의 방파제 역할을 했다. 현재 성창합판 저류장이 이웃해 있다.


오리섬: 무인도로 326㎡의 작은 섬이다.  쥐섬, 솔섬과 더불어 삼도귀범의 무대를 이룬다. 주변에는 두송반도와 화손대, 몰운대, 야망대의 경관이 펼쳐져 있으며,  다대포구에서 아침이면 하얀 돛을 단 배가 바람을 안고 포구로 들어오는 광경은 저녁노을 질 때의 풍경과더불어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쥐섬: 해식애가 발달된 무인도로 53,455㎡ 크기의 갯바위다. 섬의 명칭은 섬에 쥐가 많이 산다고 하여 서도(鼠島)라 불렀다.

팔봉섬: 508㎡ 크기로 무인도다. 다대포 해수욕장과 물운대로 이어지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에서 흘러내린 토사의 퇴적으로 다대포와 연결되어 몰운대로 이어져 있다.

 모퉁이를 돌 즈음  대선조선과 다대항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참 얄궃은 일이다. 다대5지구에 연해 있는 롯데 몰운대 캐슬을 이르는 표현이다.  다대포의 몰운대와 아미산은  지난 시절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개발에 반대하여 싸웠던 곳이다.  다대포 아미산이 유의미한 이유는 백두산에서 뻗어져 내린 산줄기가 태백산을 거쳐 낙동정맥과 금정산맥을 거쳐 물운대로 이어지는 한반도 육상 생태계의 시작이자 끝인 동시에 , 해양이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낙동강이 일천 삼백 리를 흘러와 남해와 만나 또 다른 물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움직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절경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공간의 역사적 상징성을 웅변하고 있는 응봉 봉수대 또한 기막힌 사연을 간직함으로써 더없이 소중한 역사교육의 장소이다. 실제 응봉 봉수대는 근대적 통신시설이 발달하기 이전에 외세 특히 왜(倭)의 침략시 가장 먼저 국가적 위기를 알려내는 시설이었다.

 

롯데 캐슬이 들어설 당시  가졌던 생각은  그 절경과 역사적 상징이 자본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철저히 왜곡될 뿐 아니라, 공간이용의 불평등까지 강요 하고 있다고 보았다.  유감이었다.  ( 녹나무 블로그 기고에 보면  '자연녹지 훼손과 정경유착 - 다대·만덕 택지 특혜비리를 말한다' 와 '다대만덕지구 개발이익 챙긴 몸통은?' 그리고 '새로운 불평등, 전망 좋은 아파트에 유감있다.'를 참조하시기 바람니다.)

 이곳에 오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테크를 따라 내려서면  두송중학교와 다대국제여객터미널이 나온다.

 계단을 내려서면 참으로 오랜된 지질사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중생대 말 백악기는 불의 시대였다고 한다. 아직 동해가 열리고 일본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 옛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 들면서 한반도 곳곳에선 화산활동이 맹렬하게 벌어졌다. 경상남북도 일대의 경상분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화산활동이 활발했다. 몰운대, 두송반도, 송도에 걸치는 다대포분지는 이런 지각변동 과정에서 부산항 쪽을 위로 당기고 낙동강 쪽을 끌어내리는 힘이 작용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대포항 건너 바다로 삐죽 뻗어있는 두송반도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백악기 퇴적층은 지금의 아프리카 사바나처럼 건기와 우기가 뚜렷했던 당시의 아건조 기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검붉은 이암은 그 증거인데, 강물에 실려온 진흙이 오랫동안 공기에 노출돼 철 성분이 붉은 산화철로 바뀌었으며, 석회질토양이 만들어졌다. 공룡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또는 식물을 먹기 위해 건조한 범람원의 저지대에 모여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일대는 약 8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범람원지역으로 붉은 이암을 자세히 보면  노란색 또는 흰색의 석회질 덩어리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범람원 식물이 지하수를 빨아들인 뒤 수분만 증발시킨 결과 뿌리 부근에 석회질이 농축돼 생긴 것으로, 건조기후의 또다른 증거이다. 국내에서 이런 칼크리트(석회질 단괴)가 여기처럼 다양하게 나오는 곳은 없다고 한다. 따라서

 

관련 전문가들은  두송반도를 비롯해 몰운대와 송도 해안산책로를 합쳐 도시 지질공원으로 만들면 훌륭한 관광·교육 자원이 될 수 있다며, 각별한 관심을 관계 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하구는 땅 자체가 보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 보물의  가치를 모르고  방치하다 못해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출처: 손문 부산대 지리학경과학과 교수

통일아시아드 공원이다. 2002 부산아시안 게임때 이곳에 북한의 만경봉호가 북한 미녀응원단을 태우고 와서 정박한 곳이다.  그때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인데 천안함 사태가 터졌고,  시방 남북 관계는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정권이 바뀌니 모든 것이 꺼꾸로 가는 것 같다.  서글프고 쓸쓸한 노릇이다.  그냥 대놓고  북한이 저지렀다고  규정했다.  만약 정말 북한의 소행이라면  북한은 치유할 수 없는 불신과 국제적 비난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약 3개월 여 동안의 시간이 경과한 다음  국방부합동조사단이 내놓은 결과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것도 하필이면 6.2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그날 발표했다.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 같고,  함부로  공격을 말하는 극우보수 언론의 논조도 심히 불쾌하기 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제기한 의혹과 의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면서 ,  어설픈 증거로 믿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짓이다.     

약 300m를 직진하면 화장실이 있다.  감천~두송반도 구간에는 이렇다 할 화장실이 없다.  향후 방문객이 증가할 것을 고려하여 빠른시간  간이 화장실이라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에는 제대로 된 화장실과 관리인을 두어 일자리도 만들고 청결도 유지하는 방안이 되었으면 한다.  이곳은 전국 어디에 내 놔도 으뜸인 부산의 해안 갈맷길이다.  

 야망대다.  夜望臺는 다대만의 동쪽 낫개(개 : 밀물이 드나드는 곳)와 다댓개 사이에 있는 언덕을 말한다.  이곳에 올라 밤에 멸치떼를 살피고 바라보는 곳이라 하여 야망대라 하였다. 다대팔경 중의 하나인 야망어창(夜望漁唱)의 현장이기도 하다. 야망대에서 듣는 고기잡이 노랫소리와 아름다운 경치는 가히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라 본다. 그 당시 야망대에서 들었던 고기잡이 노래인 다대포후리소리는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전승, 보존되고 있다. 

 야망대 해수찜질방 안으로 들어서면 다대항으로 넘어가는 골목길이 나온다.

 야망대를 넘어오면 다대항의 갯내음이 물씬 몰려 온다.  부산의 많은 포구가 있지만 다대포구는 포구다운 싱싱함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작은규모의 조선소가 몇 군데 있고, 시장통에는 조업나갔다 온 배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을 싼값에 구할 수 있다. 

포구길을 걷는 맛 역시 다대포가 가진 매력 중에 하나 이다.  수협 공판장 앞을 지나는 참가자들

포구의 끝 지점에 냉동창고들이 입지해 있다.  부덕수산 끝에서 우회전하여 자유아파트 105동 모퉁이에서 다시  좌회전 한다. 

 다대자유아파트 입구에서 약 400m 를 직진하면

 성창합판 정문을 지나 원모텔 모퉁이에서 좌회전 하면  옛날 다대포 1해수욕장을 만나게 된다. 

 원래는 주차된 자가용 터 까지가 바다인데  매립을 하여 확장시켰다.  

 그 길로 심미횟집까지 이동하면  몰운대 레스토랑 곧 몰운대 입구가 나온다.

몰운대는  태종대, 해운대와 더불어 부산의 해안 3대로 알려져 있다. 낙동정맥의 마지막 지점으로 총 면적은 506천㎡ 이다. 부산의 중심으로부터 남서쪽으로 16km 떨어진, 다대곶 동편에 있다. 다대곶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워 일본과 교역하는 주요 해상로로 이용되었으며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島萬戶)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雲)과 운(運)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내부에 지방문화재기념물 제20호 정운공순의비와 지방유형문화재 제3호 다대포 객사 회원관이 있다. 객사 동쪽에는 장운대가 있지만 군사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몰운대 입구 횟집촌 고성횟집에서  바라본 화손대 해안이다.

 이곳 역시 한때 항만개발로 인해 목재부두로 매립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지만 환경운동연합과 지역민이 힘을 모아 지켜낸 곳이다.  해수욕장 입구에 매립백지화 기념비가 있다.  

 만일 이곳이 매립이 되었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때 다대포에 있던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과 횟집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기에 망정이지,   

 물이 빠진 화손대 좌측 해안이다 . 

 멀리 두송반도 세번째 갈림길 아래 대선조선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이고, 그 넘어 영도 봉래산이 건너다 보인다.

 갯바인 솔섬의 한 끝이 드러난 여와 함께 육지와 연결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다대팔경의 한 무대인  삼도귀범(三島歸帆)의 현장이다. ㅡ삼도 사이로 만선으로 돌아오는 돛배의 아름다움(삼도;쥐섬, 고리섬,솔섬)

 화손대를 넘어와 몰운대로 향한다.

 경도이다.

 좌측 부터 동호섬, 뒷편의 목도, 그리고 쥐섬과 동섬을 조망한다.  여기서는 다대팔경 중  몰운관해(沒雲觀海 ㅡ몰운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아름다움)와 화손낙조(花孫落照 ㅡ화손대로 지는 석양의 아름다움)를 볼 수 있다.   

 몰운대로가는 길에 만나는 물웅덩이.

 몰운대에 사는 개구리며, 조류들의 쉼터이자 목을 축이는 장소이다.  이 역시 공존과 배려다.

 

 호젓하게 보이는 몰운대 산책로지만 실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답압이 심하다.

 '침운대'로 내려 선다. 조망이 좋다.

 쥐섬 우측과 동호섬이다.  해식동과 해식애가 발달 해 있어 경치가 좋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혹 그리 부르는지 모르겠다만   바위가 거북을  닮아 일명 거북바위라 부르는 이다.  민간인의 출입은 통제되고 있다.

 몰운대와 화손대를 잇는 해안으로.  침식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는장소중의 한곳이다.  원인과 대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곳이다.

 다대포 객사로 가는길.

 

객사는 지방 관리가 대궐을 향해 망배를 드리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사신이 올 때는 숙소로도 사용되던 관청 건물을 말한다. 부산에는 과거 초량왜관 등  여러 개의 객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몰운대의 다대포 객사만 남아 있어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다대포는 예부터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으로 중시되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부산진과 맞먹는 정도의 수군기지가 있었으며, 그 우두머리인 다대첨사의 벼슬도 동래부사와 맞먹는 정3품 당상관일 정도로 국가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던 해군기지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상좌도 7진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다른 진에 비해 두 배의 전선을 갖출만큼 군사적 전략요충지로 자리매김했는데, 이곳에는 전라좌도 녹도만호 출신으로  부산포에서 전투에서 순절한 정운 장군의 순의비가  있다.

 몰운대 입구로 가는 숲길. 

 그 길에 동래부사 이춘원이 선조 40년에  지은 몰운대 란 시가 있다.  매번 느끼는 바지만 참 잘 쓴 시다. 

 

호탕풍도 천만리(浩蕩風濤  千萬理) 호탕한 파도 바람은 천리요 만리

백운천반 몰고대(白雲天半  沒孤臺)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부상효일 차륜적(扶桑曉日  車輪赤)새벽 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상견선인 경학래(常見仙人  驚鶴來)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그 감흥은 오래가지 못힌다.  공사중인 다대포 백사장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좋았던 기분이 급 냉각된다.

 동양최대의 분수며 방사림 조성한다고 한다.   지역민들은 분수대를 마음에 들어 한다만  또  여기에 살지 않고 어쩌다 한번 씩 오는 사람으로서 관점은 다를수도 있다니다만  일대의 지형과 그 형성과정 및 지위에 대한 고려가  배제된 밀어붙이기식 사업이 영 못마땅한 것이다.  

 거기다 최근 들어선 낙조관람 테크는  꼭 이렇게 해야하나 하는 씁쓸함을 뱉어내게 했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보다시피 이렇듯 쓸어진 나무를 살리기 위해 받침대까지 설치한 반면 데크를 설치하기 위해 장애물(나무 등)은 가차없이 베어낸다

 지금 다대포의 해변변은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이 망가졌다.

 예전에는 물이 들면 자연 발길을 돌리고 먼벌치서  몰운대 동쪽해안을 보다 가곤 했는데 이제는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낙조대를 위해 가덕도 넘어로 지는 해넘이를 위해 정작 물운대의 한 부분은 볼상사납게 망가졌다.

 그리고 이렇듯 가차없이 베어냈다.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낙조를 관광자원화 하겠다면서 기준이 없다.   

 그리고 어떤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순환을 가능케 했던 시스템이 낙조대의 등장으로 그 평형이 깨어진 것이다.

10년 이곳은 그물무늬 금게와 붉은발도둑게며 방게와 달랑게들의 서식처였다.  그 친구들은  갑자기 밀려든  토사와 자동차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상황으로 말미암아  다 사라져 버렸다.

 엽랑게만  보였다.

 낙조대며 분수대 , 방사림이 들어서기 직전의 그나마 원형을 보전하고 있을 때의 다대포 해수욕장의 모습이다 .  젖어 있는 모래밭 주변이 이곳 저서생물들의 서식처였고,  해안사구지역이었다. 

 하지만 분수대며 방사림을 조성하기 위해 외부에서 무분별하게 들여온 토사로 인해 모래사구 특유의 식생대는 거의 교란 되어 버렸고,  혼합갯벌의 형태를 띤 해변은 원형을 잃어 버렸다.  참 이기적이다.  사람은 언제든 자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모래해안에 민바랭이며 이질적인 환경의  식물체들이 맘껏 뿌리를 내리고 있다.   

 횡포자 폭력이다.

 25차 시민그린워킹은 이날 오후 3시경 끝났다. 

 아래 지도는 400년 전 다대포 일원 몰운대와 두송반도를 그린 고지도로서   불과 50년 만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다시 50년이 흘러 2100년 경, 이곳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귀한 것을 흔하게 여기고 흔한 것을 귀하게 취급하는 전도된 세상,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하지만  너무도 무책임하다는 생각 지울 수 없다.    

 

It's Now Or Never  Sung By   John Schnei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