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8년(1616). 세상은 영의정 이이첨(李爾瞻)의 그늘 아래 있었다. 국사가 농락당하고 전횡과 부정이 횡행하던 시절, 한 젊은 유생이 차마 그 꼴을 묵과할 수 없어 상소문(병진소 : 丙辰疏-이이첨 등의 독선과 횡포에 대한 죄를 물어 목을 베고, 그 무리들을 처단하라는 내용)을 올렸다. 어처구니없게도 왕이란 자는 그 상소에 대한 처리를 되레 이이첨에게 맡김으로써 경상도 기장으로 유배를 왔던 이가 있었다. 서른 살 나이의 고산 윤선도였다. 함경도 경원 땅으로 갔다가 1618년 겨울 기장으로 이배되었다. 그 기개가 장하건만, 권력은 터럭만큼도 용납하지 않았다.
회한이 서린 그 팍팍한 길을 따라 걷는다. 기장군청에서 죽성 바닷가까지 십여 리, 아버지는 관직을 파직당하고, 이듬해는 죽음까지 전해졌다. 그렇지만 달려가지 못했다. 한맺힌 세월, 그가 즐겨 찾았음직한 황학대는 이름만 남았다. 예전에 황학대(黃鶴臺)는 뭍과 떨어져 있던 모래해안가의 솔숲 우거진 섬으로 송도라 불렀다. 신앙촌 정문을 돌아 평화롭기 그지없는 원죽마을로 들어서면 죽성천(신천천) 하구가 방파제 사이로 열려 있고, 오징어 덕장에서 폴폴 날아드는 특유의 냄새가 발길을 붙든다. 기장이 동해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해안에 가득한 바위는 누런빛이다.
오솔길 따라서 - 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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