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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Tomorrow Sex Will Be Good Again

by 이성근 2022. 8. 7.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캐서린 앤젤 지음·조고은 옮김중앙북스2022.08

 

캐서린 앤젤 (Katherine Angel)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젠더 및 정신 분석 등에 대한 글을 쓰는 논픽션 작가이자 학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정신의학 및 섹슈얼리티의 역사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런던 대학교 버벡 칼리지에서 문예창작학을 강의하고 있다.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2021)를 비롯한 앤젤의 저서 습득되지 않은: 가장 말하기 힘든 것, 욕망에 대한 책(2012) 대디 이슈(2019)는 현재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브라질 등에 번역되어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목차

1 동의에 대하여

2 욕망에 대하여

3 흥분에 대하여

4 취약성에 대하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각주

 

책의 주제어

#페미니즘 #욕망 #쾌락 #자율성 #성폭력 #딜레마 #에로티시즘 #인간성

 

출판사 서평

프로이트가 끝까지 풀지 못한 난제,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캐서린 앤젤이 새롭게 반문하다!

과학에서 대중문화까지, 포르노그래피에서 문학까지, #MeToo, 동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까지 거침없이 아우르는 이 우아하고 탐구적인 책에서 캐서린 앤젤은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명확하고 자신 있게 선언해야 한다는 요구와 성폭력의 위험이 상충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을지, 애초에 여성은 왜 꼭 자신의 욕망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복합적인 질문에 새롭고 도발적인 제안을 제시한다.

 

성폭력과 권력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저자는 완벽한 자기 지식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섹스, 쾌락, 자율성에 대한 생각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미셸 푸코가 1976년에 장난스럽게 세상에 선언했던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라는 약속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역설을 제시한다.

 

지금 이 순간, 여성들은 동의자신감 문화라는 이름 아래 묶여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명확하고 자신 있게 선언해야만 한다고 사회로부터 요구받는다. 그러나 성 연구자들은 대개 여성의 욕망은 더디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고, 남성들은 자신이 여성과 여성의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은 여성들에게 이중적인 속박이 되며, 또 스스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명확하게 제시할 수도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들에게 딜레마 상태에 머무르거나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않으며, 여성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의 각 입장이 제시하는 가능성과 한계를 집요하게 살펴본다.

 

캐서린 앤젤은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에서 여성의 욕망에 관한 근본적인 대전제에 도전한다. 도대체 왜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알고, 표현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기대를 받는지 묻는다. 만일 여성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 에로티시즘과 인간성의 핵심이라면, 이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이러한 회의성을 뛰어넘어 우리 모두가 좋은 섹스를 하기 위한 폭넓은 가능성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예스 민즈 예스, 노 민즈 노부터 #MeToo까지

섹슈얼리티, 욕망, 권력에 대한 기존 통념에 맞서는 매혹적이고 예리한 비판

 

최근, 좋은 섹스를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동의consent’와 자신의 몸과 욕망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자기 지식self-knowledge’이다. 동의라는 개념이 최우선으로 군림하는 섹스의 영역에서 여성은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진보적인 의견처럼 들린다. ‘여성의 말을 경청하라. 그러면 성폭력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 것이다.’ 언뜻 자명해 보이는 명제에 캐서린 앤젤은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를 통해 도발적인 반론을 제시한다. 저자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욕구를 알고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애초에 폭력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원을 조사하기 이전에 오히려 여성의 행동에 성폭력을 예방할 책임을 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동의는 정말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싫다를 의미할 때 어쩔 수 없이 좋다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도 결코 반영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의와 욕망 표현은 본질적으로 해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섹슈얼리티와 권력을 이야기하는 논픽션에서 빠지지 않는 사건들이 있다. #MeToo, 브록 터너, 하비 와인슈타인의 사건 등이다. 캐서린 앤젤은 이 책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향에서 이 사건들을 재조명한다. 또한 성 과학부터 대중문화까지 폭넓게 살펴보며 우리 모두가 여성의 욕망에 대해 당연하게 여긴 전제들을 하나씩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진전한다.

 

저자는 사실상 욕망은 형식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법적 계약처럼 명확히 작동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섹슈얼리티는 자신을 확실히 알고 더욱 견고한 주체가 되어야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섹슈얼리티는 자신을 가장 취약한 상태로 노출시키고, 모호함과 불확실성에서 발생한다. 매 순간마다 서로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동의를 확인하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섹스는 항상 자신과 상대의 욕망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계속 협상하고 원하는 것을 모색하는 데에서 그 쾌락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기존까지 생각했던 섹슈얼리티와 권력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책 속으로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그 댐은 무너졌다. 그 뒤로 ‘#MeToo 해시태그가 소셜 미디어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행위는 그 자체로 자명하며 필요선인 일이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집단적인 욕구, 걱정과 분노의 언어로 나타나는 욕구, 진실을 말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근본적이고 공리적인 가치라는 믿음에 말끔하게 맞아떨어지는 이 욕구는 모른 척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MeToo는 여성의 말에 가치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말을 의무화하는 위험까지 감수했다. 1 동의에 대하여 p.19

 

섹스에 대해 반드시 말이 아니어도 긍정적인 동의를 표하는 최소한의 신호를 요구하는 것은 한 사람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며, 침묵이나 저항보다 나은 척도다. 하지만 동의는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에도 이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너무나 거대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 1 동의에 대하여 p. 52

 

따라서 남성의 욕망은 장려되지만, 동시에 강력히 요구된다. 이성애 남성성의 지평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상황은 절대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남성은 영원히 섹스를 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지속적으로 리비도를 주장하고 정복을 이뤄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들 또한 실패로 몰아넣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불가능한 지평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하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유발하는 바로 그 불안과 수치심의 감정이 생겨난다. 결국 남성은 자기 자신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여성을 혐오한다. 2장 욕망에 대하여 p.111

 

주관적인 것은 부정확하다고 폄하하기 쉽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정확하게도 주관적인 것(사람의 몸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꼈다고 말하는 것)인 영역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섹스야말로 독보적으로 이 영역, 즉 불확실하고 개인적인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역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섹스는 모든 인간 현상 가운데에서도 가장 연구하기 어려운 현상 중 하나다. 섹스는 사람들 사이에서, 맥락 속에서, 그리고 복제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3장 흥분에 대하여 p.135

 

그러나 섹스를 다시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부담은 왜 꼭 여성, 여성의 섹슈얼리티, 즉 우리가 밝혀낸 여성에 대한 진실이 떠안아야 하는가? 왜 여성이, 왜 섹슈얼리티 자체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명백하게 집단적인 현상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가? 3장 흥분에 대하여 p. 148

 

여성의 욕망에 대한 권한은 여성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 주장하고 싶은 유혹 말이다. 그러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든,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든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히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4 취약성에 대하여 p. 152

 

여성들에게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해지라고 촉구하면서, 동의 문화의 지지자들은 그들에게 남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위험한 상태다. 성적으로 욕망하는 여성은 이루어진 소망인 동시에 혐오스러운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남성은 갈망하는 동시에 비판적이고, 흥분하는 동시에 처벌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4 취약성에 대하여 p. 170

 

섹스는 무수한 질문, 표현, 탐구의 행위들로 이루어진다. 왜 반드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야 할까? 왜 남성들이 우리와 함께 탐색해나가기를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 ‘좋다싫다에만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이 바다를 항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서야 우리에게 강렬한 쾌락을 건네줄 수 있는 탐험의 과정이 펼쳐질 수 있다. 4 취약성에 대하여 p. 180

 

동의만으로 좋은 섹스일까?’···‘미투이후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묻다

201712월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자들이 할리우드에서 ‘#MeToo’ 운동 지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7년 전 세계적 ‘#MeToo’ 운동을 촉발시킨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와인스타인은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11건의 성폭력으로 추가 재판을 받고 있어 최대 140년이 선고될 수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투 운동 이후 좋은 섹스의 요건이 된 동의

동의하기 위해선 자신의 욕망을 알고 주장해야요구

당당한 여성;은 강압·폭력 속 동의나 모호함 부정

여성은 왜 항상 자신의 욕망을 알고 주장해야 하나

좋은 섹스를 위한 부담을 여성에게 지우나

 

한국 사회 미투(#MeToo)’ 운동의 상징이 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43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했다. 피해자 김지은씨는 생방송 뉴스에서 안 전 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하면서 미투운동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사권을 가진 절대적 권력자인 도지사와 수행비서, 수직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진 성폭력에도 동의는 피해자의 발목을 잡았다. 안 전 지사 측은 김씨가 학벌 좋은” “주체적이고 결단력 있는 여성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상황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고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같이 위력이 명백한 관계에서도 피해자의 자기결정, 동의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미투시대를 통과하면서 한국 사회 여성들의 섹슈얼리티가 얼마나 위험에 처해 있는지 드러났다. 불법카메라 촬영, n번방 사건 등 이슈를 거치며 젊은 여성들은 성폭력의 위험을 차단하고자 비혼·비출산·비연애·비섹스를 내세우는 ‘4B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사적인 관계, 가족, 직장, 사법체계 안에서 불평등한 남녀의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이상, 안전한 (이성애)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를 원하며 형성해가고 있다. 성폭력의 위험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성애자)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캐서린 앤젤의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치열한 탐구의 결과다. 저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정신의학 및 섹슈얼리티 역사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페미니즘·섹슈얼리티·젠더 및 정신분석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다. 저자는 2017년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로부터 촉발된 미투 운동 이후로 여성의 섹슈얼리티, 나아가 모두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질문한다.

 

미투 이후, 서구 사회에서 좋은 섹스를 하기 위한 요건으로 동의(consent)’ 개념이 강조된다. 여성이 섹스로 나아가는 과정 하나하나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고 동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자기 지식(self-knowledge)’이 필수적이다.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아야 하며,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요구된다.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 최고운영책임자가 20137<린 인(Lean In)> 출간을 기념해 내한해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여성들의 솔직한 사랑과 성을 다뤘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잘 알고 표현해야 한다는 자신감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다.

 

동의하에 가진 나쁜 섹스는 그저 경험일까?

미 대학 여성 신입생 6명 중 1명은 간강 및 강간미수 경험

나쁜 섹스는 불평등의 문제

 

저자는 이를 자신감 문화와 연결시킨다. 자신감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이는 메타의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셰릴 샌드버그다. 샌드버그는 2013년 펴낸 책 <린 인>에서 여성의 자신감, 자기주장을 강조한다. 자신감 문화가 강조되는 순간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가부장제나 뿌리 깊은 성차별이 아니라 여성 개개인의 자신감 부족이 된다. 긍정적 사고에 대한 강조는 자신감 결여나 확신이 없는 상태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취약성을 억누르는 결과를 가져온다.

 

적극적 동의1990년대 미국 강간법(rape law)의 변화와 함께 등장했다. 과거 강간 예방 캠페인이 섹스에 대한 거절 의사를 존중하는 데(No means No) 초점을 맞췄다면, 적극적 동의는 합의와 좋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993년 미국 안티오크 대학은 성범죄 예방정책을 벌이면서 동의란 말로 묻고 말로 답하는 것을 뜻하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수준의 성적 행동에 대해 동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공적 자금을 받는 대학들에 학교 내 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인 타이틀9’을 준수할 의무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자신감 페미니스트들은 일제히 비판을 가했다. 여성의 힘이 아닌 취약성을 강조하며 여성을 욕망이 없는 존재로, 피해자 위치에 가둔다는 취지였다. 살다보면 나쁜 섹스를 할 수도 있다는 것, 여성들은 이를 극복할 수 있고 상처를 털어버리고 강인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쁜 섹스는 그저 미성숙한 시기에 겪은 시행착오에 불과할까? 여성은 성적 어려움, 고통, 불안으로 인해 남성에 비해 더 고통받는다.

 

미국 여성 5명 중 1명은 강간이나 강간 미수를 경험한다.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 중 3분의 1이 여성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대학에 갓 들어간 여성 신입생은 더 심하다. 미국 대학의 1학년 여성은 1학년을 마칠 때까지 6명 중 1명이 강간 혹은 강간 미수를 당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나쁜 섹스그 자체가 성폭력과 깊이 연루돼 있다.

 

저자는 나쁜 섹스는 여성은 성적 활동에서 동등한 행위자가 될 수 없으며 남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만족시킬 권리가 있다는 젠더 규범에서 나온다면서 이는 정치적 문제이며, 쾌락과 자기결정권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겪는 불쾌한 섹스와 강압 및 폭력 문제를 그저 나쁜 섹스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

 

앞서 자신감 페미니즘이 말했듯, 동의 문화는 자신이 원하는 걸 명확히 알고 표현할 줄 아는 당당한 여성을 강조하면서 취약성을 부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폭력, 여성혐오, 수치심 때문에 욕망을 발견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저자는 동의의 개념에서 한발 나아가 욕망의 모호함,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섹스의 윤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의 욕망에 대해 성과학이 어떻게 연구하고 정의내려왔는지를 살펴본다. 영향력 있던 성과학자였던 윌리엄 마스터스와 버지니아 존스는 1950~1960년대 워싱턴 대학의 실험실에서 여성 및 남성 지원자에게 전극을 붙이고 성행위 중인 피험자의 심박수와 체온 등 생리적 과정을 관찰했다. 그들은 여성의 쾌락에서 클리토리스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클리토리스와 오르가슴에 대한 통계를 산출하는 등 여성들의 성적 쾌락을 주요하게 다룬 이들의 연구를 페미니스트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성과학이 찾아낸 여성의 강렬한 성욕은 여성의 의사를 무시하고 남성과 섹스를 해야만 하는 의무의 근거로 쓰이는 역효과도 가져왔다. 이에 남성의 욕망은 본능적이지만 여성의 욕망은 반응적이고 관계적이란 반론이 나온다. 하지만 적절한 맥락 속에서 여성이 흥분하고 욕망이 생긴다면, 설령 여성이 원하지 않을 때조차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 위험이 도사린다.

 

성의학의 발견은 흥미롭고 통념을 깬다. 그런데 살펴볼수록 욕망과 흥분에 대한 연구는 성별 편향적이고 인종차별적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여성의 의사를 떠나 교묘하게 왜곡된다.

 

욕망은 정확하지 않으며 가변적이고 불확실

타인과 나누는 협상과 타협 속에 변화하는 것

모두가 즐겁고 민주적 쾌락을 위한 노력

내일의 좋은 섹스는 계속해서 탐구하고 만들어가야

 

저자는 질문한다. 왜 여성의 욕망을 꼭 알아야 하는가? “섹스를 다시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부담은 왜 꼭 여성,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떠안아야 하는가?”

 

저자는 다시 동의가 간과해버린 취약성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욕망의 다양성과 불확실성, 가변성을 강조한다. 욕망은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정확히 원하는 게 뭔지 모를 때가 많다. 그것은 우리를 취약함의 세계로 이끈다. 욕망할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데, 남성은 취약성에 대한 공포와 부인 때문에 섹스를 여성에 대한 승리로 재구성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섹스와 쾌락으로부터 남성을 소외시킨다. 타인과 함께하는 섹스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미지의 영역이다. 섹스는 누군가의 욕망에 부응하고, 욕망 안에서 서로를 믿고 두려움을 협상하며 이루어지는 하나의 실천이다.

 

책은 사회적 이슈와 대중문화를 언급하며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한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에 가깝다.

 

적극적 동의개념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여성이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수용되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갈 길이 먼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의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닌 최소한의 기준임을, 동의의 한계를 넘어 더 많은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열어보인다. ‘더 좋아진 내일의 섹스는 현재에서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 이영경 기자

대항성 선언B. 프레시아도 (지은이),이승준,정유진 (옮긴이)포이에시스2022-07

 

B. 프레시아도 (Paul B. Preciado)-프레시아도는 철학자이자 큐레이터이자 트랜스젠더 활동가다. 파리 8대학의 교수로 신체의 정치사와 젠더 이론을 가르쳤고,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의 독립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였다. 현재 그는 가장 큰 유럽 예술 및 문화 전시회인 도큐멘타 14(Athens and Kassel)의 공공 프로그램 큐레이터다. 2002년에 발간된 대항성 선언은 그의 첫 단독 저서로 퀴어 이론의 고전이 되었다. 그 외 저서로 테스토 정키(2013), 포르노토피아(2014), 천왕성의 아파트(2020) 등이 있다. 그는 현재 젠더와 섹슈얼리티 연구에서 선도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이다.

 

목차

머리말(잭 핼버스탬)

: 우리는 혁명이다! 또는 인공보철의 힘

 

저자 서문

 

1부 대항성 사회

 

대항성이란 무엇인가?

생체정치적 테크놀로지로서의 생식기

대항성 사회의 원칙들

(견본) 대항성 계약서

 

2부 대항성의 역-실천들

 

딜도기술학

실천 : 론 애서의 태양 항문

실천 : 팔을 자위하기

실천 : 딜도-머리를 즐기는 법

 

3부 이론들

 

데리다의 가위: 딜도의 논리

버틀러의 진동기: 섹스 장난감과 인공 성기의 간략한 계보학

머니가 성을 만든다: 여러 성의 산업화

해러웨이의 인공보철: 성 테크놀로지

 

4부 대항성적 독서실행

 

똥구멍에 그걸 하는 더 좋은 방식으로서의 철학에 대해

들뢰즈와 ��분자적 동성애��

딜도

내 사랑 인공보철

 

저자 후기

감사의 말

한국어판 편집 후기

참고문헌

 

출판사 책소개

정신적 폭탄과도 같은 퀴어철학의 고전

프레시아도의 작품은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엄청나게 중요했다. 대항성 선언은 자유분방하면서도 학문적으로 엄격하고, 폭도들을 선동한다. 이 책은 필수다. 당신이 그것에 논쟁하고 싶든, 그것을 채굴하고 싶든, 그 부름에 응답해 트랜스가 되고 싶든 간에, 당신은 이것을 읽고 곁에 두어야 한다.” - 매기 넬슨 Maggie Nelson

 

푸코, 데리다, 들뢰즈, 버틀러, 해러웨이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참조하면서 가족주의, 정신분석, 의학, 산업체계와 경제 시스템이 구축한 그럴듯해 보이는 성 정체성 체계를 해체하고 딜도주의를 대항적 섹슈얼리티로 제시하는 전복적인 선언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의 마이너인 노동자를 보편자로서 프롤레타리아로 만들고 그 코뮤니즘을 위해 공산당 선언을 썼다면, 프레시아도는 이성애 매트릭스의 마이너인 장애인, 트랜스, 간성, 동성애, 비생식(혹은 반생식적 여성과 남성)자들을 보편자로서 항문 노동자로 만들고 그 '육신의 코뮤니즘'을 위해 대항성 선언을 썼다. 물론 이 대항의 무기는 당이 아니라 딜도다.” - 이승준·정유진 (옮긴이)

 

이 책은 페미니즘과 딜도, 레즈비어니즘과 딜도, 정신분석과 딜도, 데리다의 해체 철학·들뢰즈의 횡단성 철학과 딜도, 심지어 포스트 자본주의와 생체정치 권력 시대에서의 딜도를 논한다. 철학적으로 엄격한 설명을 제공하지만, 공상과학적이면서 탐정 소설적이고 블랙코미디까지 곁들어진 멋진 포스트모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반드시 읽어야 할 퀴어철학의 고전!

 

대항성은 태초에 딜도가 있었다고 단언한다. 딜도는 음경에 선행한다. 딜도는 음경의 기원이다.” (B. 프레시아도)

 

섹슈얼리티는 기계, 제품, 기구, 장치, 인공보철, 네트워크,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연결, 에너지 및 정보의 흐름, 차단기, 스위치, , 순환 법칙, 논리 시스템, 설비, 포맷, 사고(재해), 폐기물, 메커니즘, 용법, 일탈 등으로 구성된 테크놀로지이다. 시스템의 블랙박스에 들어가 새로운 문법을 발명할 때가 왔다.”

 

대항성 실천은 저항의 테크놀로지다. 딜도기술학의 목표는 이성애 문화와 퀴어 성 문화 내에서 신체-쾌락-이익-신체 생산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저항 기술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서 딜도는 섹스의 도구일 뿐만아니라 신체의 테크놀로지이자 섹슈얼리티 그 자체다. 프레시아도는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성적 정체성을 해체하기 위해 딜도를 그 중심에 세운다. 모든 성은 그것이 성별로써 구축되기 위해서는 보충적 구성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의학에서 간성 아기의 성별을 결정하는 기준은 보충적 구성성 즉, 성기 모델 이미지(그것은 염색체 결정론적이지 않고 음경에 대한 다분히 자의적인 심미적, 관습적 기준에 의존한다)에 근거한다. 여기서 성기 모델로서의 음경은 자연적 음경이 아니라 인공적 음경이며 테크놀로지로서의 음경이다. 그렇다면 그 극한은 딜도일 것이다. 따라서 딜도는 모든 성별을 구축하는 보충적 구성성이며, 모든 성은 인공보철물적인 것이 된다. 이것이 딜도가 음경에 선행한다는 의미.

 

성이 인공보철물적인 테크놀로지로 인식되자 이제 성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성적 정체성은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사회 규범 수행적인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성은 딜도 혹은 그 어떤 다른 테크놀로지 실천을 통해 전이와 변이, 트랜스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딜도 테크놀로지는 우리 몸의 가소성, 어떤 부분이 성적으로 되고 또 어떤 부분이 성적 기관이 되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유동적이고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딜도는 해부학적 기관을 배반한다. 딜도는 촉각을 비롯한 감각적 신체의 확장이자 욕망과 경험의 확장이다. 이것이 바로 딜도 테크놀로지의 전복성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모든 것이 딜도가 될 수 있다. 심지어 모두의 성이 딜도다. “성기는 탈영토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것이 딜도이며, 모든 것이 구멍이 된다.”

 

이 책은 현재 페미니즘 담론 내에서 사이좋게 평행하고 있는 '섹스는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이며, 젠더는 사회 구성적'이라는, 섹스와 젠더가 분리되어 마치 서로의 영역과 영토를 나눠 갖는 것처럼 되어버린 현실에 딜도를 들고 균열을 낸다. 프레시아도는 섹스/젠더의 정체성에 골몰하는 주체들에게 테크놀로지로서의 섹슈얼리티의 중요성과 그 전복적 가능성을 일깨우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딜도다라는 주장은 이 책에서 독자를 가장 신나게 만드는 빛나는 대목이다. 성적 정체성과 생식기 중심성과 이성애 중심성을 넘어설 때까지 성적 쾌락과 신체를 재구성하고 성을 실험하고 행동하자는 주장은 신체 주권을 둘러싼 전쟁을 예감케 한다. 포스트 자본주의의 생체정치는 결국 신체 주권을 둘러싼 전쟁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아도는 성 감별과 성 할당에 개입한 산업과 경제, 지식과 테크놀로지의 역사를 공들여 추적한다. 그 결과 벗겨진 성의 전모는 인구 재생산을 위한 인간의 생식 활동을 목표로 이진화된 성별체계와 이성애 체계를 신체에다 정교하게 고안·디자인하고, 그것을 정상성으로 규범화하고 강제화하는 테크놀로지로 이뤄진 체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딜도 테크놀로지와 같은 테크놀로지의 전복성을 밀어 붙이는 대항성은 반성별주의, 반생식 혹은 대항-생식(예컨대 들뢰즈의 생성과 같은)의 다른 이름이며, 금융자본주의의 총수요를 위해 사육되는 생식농장에서 탈출하여 되찾으려는 신체적 주권과 자율성의 다른 이름이다.

대항성 선언은 페미니즘, 퀴어, 트랜스젠더 정치를 둘러싼 현대적 논쟁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책이자, 포스트 자본주의의 생체정치를 독창적 시각으로 해부하는 21세기 사상의 미래 고전이다.

 

책속에서

이성애든 동성애든 실재론자들은 생체음경biopenis/생체질biovagina 세계의 일관작업대 안에서 성교한다. 성식민주의적 자본주의는 섹슈얼리티를 자동화한다. 성노동(대부분은 무급노동)과 생산성을 증가시키면서도 또한 정치적·경제적 협치governance의 표적이 되는 주류적 성정체성의 생산도 증가시키면서 말이다. 딜도기술dildonic은 성 자동화에 맞서는, 포스트젠더 및 포스트 성정체화 주체의 섹슈얼리티이다. 대항성적 실천의 진정한 목적은 늘 이윤으로 변형되는 육체적 쾌락이나 정체성 생산이 아닌 왕성한 소비, 정동 실험, 그리고 자유에 있다. P. 29

 

레즈비언·게이·양성애·트랜스(LGBT) 정체성 운동의 개혁주의적이고 [사회]통합적인 법적 아젠다에 맞서, 대항성은 욕망과 몸의 관계, 기술과 의식의 관계를 새롭게 배치할 것을 제안한다. 전통적인 민주주의적 수단(투표와 법개정 등)에 의거한 정체성 인정 및 재현 투쟁에 맞서 나는 집단적 성 해방과 성 자치의 새로운 실천을 급진적으로 실험할 것을 제안한다 P. 34

 

사실 딜도의 주변화와 비가시화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다. 레즈비언 페미니즘 문화담론 안에서 딜도는 절대적으로 금기시되고, 게이 관행에서는 딜도의 현존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으며, 트랜스성 공동체와 사도마조히즘 공동체에서는 딜도에 대한 불완전하고 상업적인 정보만이 제공된다. 대부분의 퀴어 이론의 문헌들에서는 딜도에 관한 부재, 소심함, 부끄러움이 있다.P. 95

 

섹스’(1500년경에 로망스어에 도입된)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은 나누다자르다라는 뜻을 가진 세카레secare의 동사변형 세코seco이다. 분리격리분할이 없다면 성은 없다. ‘성을 만들기’=‘성을 죽이기’, 생체정치=시체정치인 것이다. 성차를 설치하는 것은 절단과 분리의 행위다.P. 157

 

 

 

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박성덕 저 | 지식채널 | 201110

당신도 행복을 가장한 결혼생활을 근. . 이 이어가고 있는가!”

얼마 전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들의 황혼이혼이 27.3%로 처음으로 25%의 신혼이혼 수치를 앞질렀다고 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전체 이혼율 중 결혼 후 4년 이내, 그리고 결혼 후 20년 이상 부부들의 이혼율이 전체 이혼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부부들의 가장 큰 이혼 사유는 경제적 이유나 배우자의 부정이 아닌, 바로 성격 차이였다.

 

흔히 알려진 노래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 남이 되듯, 부부 사이는 평생 행복의 척도가 되는 중요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점 하나로도 남이 되어버릴 수 있는 조심스럽고 어려운 관계이기도 하다. 20년 이상을 한 집에서 얼굴 맞대고 살았어도,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조금은 쇼킹한이유로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흔하듯 말이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 부부 사이를 되돌아봐도 애써 겉으로는 평화로운 척하지만, 알고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부부들이 많다. 행복을 가장한 껍데기뿐인 결혼생활에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문제를 드러내 보이기는 두려워 쉬쉬하는 것이다.

 

목차

여는 글 _ 정신과 의사도 피해갈 수 없었던 불화의 고리

 

PART01. 우리는 왜 결혼했을까

만약, 세상에 콩깍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왜 이 사람과 결혼했을까

우리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남편이 옳다, 그리고 아내도 옳다

당신만이 채워줄 수 있는 욕구

결혼이 유일한 탈출구였어요

관계를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

부부 심리 카페 01. 부부 관계의 과학

 

부부는 나름대로 열심히 가정의 평화와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의 차이로 인해 갈등은 점점 심각해진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 답은 애착 유형의 차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안정형은 현재 애착 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면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유형으로 바뀐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관계에 집착하는 유형이다. 애착 대상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적극성을 보이는 몰두형의 전략을 쓰는 것이다. 이들은 대화를 시도하고, 배우자가 자신을 멀리하고 회피하면 공격을 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얻기 위해 애쓴다. 배우자의 적극적인 행동을 원한다.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몰두형은 주로 여자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부부 불화가 지속되면, ‘몰두형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키운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신이 못나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은 커진다. 몰두형은 관계 회복을 통해 안정을 찾기 때문에 애착 욕구가 증가한다.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친밀감을 회복하려 한다. 남편이 도망가는 행동을 취하면 욕구가 좌절되고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그럴수록 자신감을 회복하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해 관계에 더 몰두한다. 배우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신을 밀어내거나 거부하는 단서가 나타나면 금세 폭발한다.

 

부부 불화가 오래 지속되면, 몰두형은 일상생활에서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서들을 찾는 데 열중한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나와 상의를 했는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는가? 아이와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 회식이라며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는 휴일에 가족하고 지내는 것은 귀찮아하고 잠만 자고 있지 않는가? 밤에 TV를 보면서 잠들거나 나와 한 침대에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가?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 달라고 부탁했는데 중간에 눌러서 짜지 않았나? 이야기 좀 하자고 해도 건성으로 듣고 있지 않는가?

 

몰두형의 이러한 생각과 염려는 관계가 회복되면 점차 사라진다. 이때는 남편과의 정서적 친밀감이 예민함을 줄여주는 해독제가 된다. 몰두형은 관계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 배우자에게 공격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부부 갈등이 있을 때 보이는 다른 유형은 회피형이다. 몰두형이 다가가서 적극적으로 회복하려 하는 타입이라면, 회피형은 조용히 안정을 찾고 싶어 한다. 회피형은 몰두형과 달리 갈등이 생기면 나는 문제가 없는데 상대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혼자 있는 것에 안정을 느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회피형은 남자들에게 많다. 회피형은 관계에 갈등이 생기면 회피적으로 반응하여 도망간다. 상대방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 배우자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수록 회피적 성향이 강해진다.

 

회피형들은 일상생활 중에 도망갈 수 있는 찬스를 노린다. 그런 단서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살 수 없을까? 나를 내버려두면 좋아지는 걸 왜 모를까? 회식하는데 왜 이렇게 전화를 하는 거야?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또 잔소리를 해대겠지? 주말엔 좀 쉬게 해주면 안 되나? 내가 말을 들어줘도 잔소리를 계속할 게 뻔해! 나라도 피해야 부부 싸움을 멈출 수 있어! 또 목소리가 날카로워졌어! 얼른 피해야 해! 집안이 하루라도 조용하면 좋겠어! 아내는 내가 친구 만나는 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해.

 

몰두형 아내와 회피형 남편이 한 집에 같이 살면 어떨까? 갈등이 생기면 몰두형 아내는 관계 회복을 위해 공격도 불사한다. 회피형 남편은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어디로든 도망칠 궁리만 한다. 아내는 관계 회복을 위해 다가가고, 남편은 평화를 찾기 위해 도망간다.

 

여기서 부부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개 몰두형 아내의 해결 방식이 남편의 회피 성향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남편의 회피적 해결 방식은 아내의 공격적인 성향을 강화시킨다. 자라가 몸을 움츠리면 새는 부리로 쪼아댄다. 새가 부리로 쪼아대면 자라는 더욱 견고하게 자신의 팔다리와 머리를 감춘다. 그렇게 오래 있다가 밖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조용해지면 자라는 평화가 찾아온 것으로 착각한다. 다시 고개를 내밀고 조심스럽게 새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새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 관계를 통해 정서적인 교류가 일어나야 회복이 되는데 자라는 그렇게 하지 않고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새는 다가오는 자라에게 부리를 들이밀고 이전보다 더 세게 쪼아댄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자라는 깜짝 놀라 다리와 머리를 다시 몸 속 깊숙이 숨긴다.

 

자라는 생각한다. ‘저 새는 나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싫어해.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되겠어. 결국 나만 상처 입게 될 거야. 다음에는 더 꼭꼭 숨는 것이 좋겠어.’

 

새는 어떤가? “자라는 나와 말하는 것을 귀찮아해! 혼자 숨어버리기만 하니 나는 늘 외로워. 무책임한 행동이야. 내가 가만히 내버려두면 우리 관계는 이렇게 끝나고 말 거야. 나라도 말을 해야 우리 관계가 냉랭해지지 않을 거야! 내가 계속 쪼아대면 언젠가는 반응할 거야.”

 

부부가 겪는 불화의 대부분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어떤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아내는 따지고 남편은 도망가는 방식으로 싸운다. 도망가면 더 공격하고, 그러면 더 멀리 도망가는 식이다. 물론 내가 치료했던 부부 중에 몰두형 남편, 회피형 아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는 아내가 몰입하고 남편이 회피한다.

 

몰두형은 대부분의 문제를 극대화시키려 하고, 회피형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남자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죽고 싶다고 말을 하는데도 남편은 왜 그런지 잘 모른다. 부부 세미나에 참여하는 부부들도 대부분 아내가 적극적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아내의 성화에 이끌려서 마지못해 왔다는 듯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부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숨고 싶은 것이다.

 

부부가 불화에서 벗어나려면 몰두형 아내-회피형 남편 증후군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의 부정적인 행동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부부 불화의 가장 큰 원인은 개개인에게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애착 유형의 차이에 있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가 부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안정형으로 가장 이상적인 유형이다. 또한 자기 자신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타인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회피형자신에게는 부정적이지만 타인에게는 긍정적인 몰두형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부정적인 두려움형에 속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러한 관계를 맺는 유형은 결혼 후 부부가 불화를 겪을 때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 없느냐가 결혼생활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 대개 몰두형 유형이 많은 아내들은 남편과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더욱 몰두함으로써 관계를 회복하려 하고, 회피형이 많은 남편들은 평화를 위해서는 자기가 일단 이 자리에서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 모두 화해를 원하지만, 한쪽은 공격하고, 한쪽은 도망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방식은 갈등만 부추기고 서로에 대한 불신만 조장할 뿐이다. 회복을 위한 선택이 오히려 부부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끝도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을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을까. 저자는 그 해답을 정서적 유대감을 회복하는 데서 찾는다. 먼저 감정이 회복되어야 근본적인 부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지 배우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도, ‘힘들었겠구나.’ ‘미처 몰랐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수긍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관계 회복의 첫 단추를 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인 저자의 과거 부부 갈등까지 들추어내며 갈등 이면에 감춰진 부부들의 속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이 책은 피상적인 이론과 대안 없는 위로, 억지 공감을 유도하는 여느 책들과는 다르다. ‘정서 중심적 부부치료라는 검증된 치료법을 통해 실제 수많은 불화 부부들의 관계를 회복시킨 저자는 근본적인 불화의 원인을 설명하고, 상담 사례와 실천 가능한 솔루션을 통해 현실적이고도 명쾌한 답변을 제시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부 불화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꺹제는 배우자가 아니다! 성격 차이나 경제적 어려움, 고부 갈등도 아쾴다! 모르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모르고, 당신 자신을 모르고 관계를 맺는 현명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부, 반평생 함께 살기 위해 알아야 할 8가지

solution 01. 격려와 고마움을 아끼지 말고 표현하라.

누구나 자신을 격려해주고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끼면 그때그때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표현하면 더욱 좋다. 특히 친척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보라.

 

solution 02. ‘부부만의 의식을 만들어 사소한 순간을 기념하라.

만나고 헤어질 때 무덤덤하고 아무런 의식이 없으면 부부 관계는 금세 생기를 잃는다. 부부는 거의 매일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애착 대상과는 헤어짐이 아쉽고 만남이 즐겁다. 이를 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말로 해도 좋고 꼬옥 안아주는 식으로 행동해도 좋다.

 

solution 03. 문제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목소리를 들어라.

상대방의 문제만을 보는 부부는 관계에서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 뒤에 가려져 있는 배우자의 아픔과 욕구를 볼 수 있게 되면 부부 관계에 생기와 활력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애착 욕구를 잘 들여다보고 배우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하면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킬 수도 있다.

 

solution 04. 고통을 극복한 부부는 쓰러지지 않는다.

사랑의 생기를 유지하려면 부부의 노력으로 관계를 회복시켰던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부정적 이야기에 파괴적인 힘이 있듯 긍정적인 이야기에는 건설적인 힘이 있다. 부부가 힘들 때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서 음미하면, 다시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

 

solution 05. 미래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라.

지금 배우자와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주면 좋을지,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라. 그렇게 미래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부부가 서로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solution 06. 부부 중심의 가정으로 재편하라.

부부 중심의 가정을 세워야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부모님께도 효도할 수 있고 자녀도 돌볼 수 있으며, 회사일도 잘할 수 있다. 부부를 중심으로 생활하기로 결정하는 순간부터 부부의 사랑은 생기를 얻는다. 부부가 생기를 얻으면 가정은 늘 활기가 넘친다.

 

solution 07. 사랑을 배우고 배우자를 배워라.

부부 관계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부는 배우자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제가 생기면 배우자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고쳐야 비로소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solution 08. 당연해 보이는 부부의 역할에 감사를 표현하라.

당연하다고 여겨 왔던 일상의 일들에 대해서도 배우자에게 감사를 표현해보라. 감사의 말 한마디가 부부 관계를 강화시키고, 반복적인 일상을 생기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칭찬하고 감사를 표현하면, 부부 관계에도 생동감이 넘치고 긍정적인 감정이 되살아난다.

 

책 속으로

어떤 결정을 할 때 내 의사는 무시해요.”

아이가 태어난 뒤로 아내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면 싸우는 게 싫어서 그 자리를 피합니다.”

도망가는 남편을 보면 말라 죽을 것 같아요.”

 

위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편과 아내의 공통적인 주장이 있다. 상대방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면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내가 배우자에게 최우선이 되기를 원하는데, 자녀, 텔레비전, , , 시댁 등 다른 것이 나보다 우선순위가 되면 부부 관계는 고통에 빠진다. 배우자와 함께 있는 시간을 원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불화의 원인이 된다. 배우자에게 소중한 존재이기는커녕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배우자와의 관계에 위기가 닥치면 한쪽은 싸움을 걸어서라도 관계를 회복시켜보려 하지만, 다른 한쪽은 싸우면 고통스럽고 평화가 사라질 것이 두려워 도망을 다닌다. 한 사람은 회복을 위해 싸움을 걸고, 한 사람은 싸우는 것이 싫다며 도망치기 바쁘다.--- p. 31

 

행복을 추구하는 결혼은 쉽게 좌절하고 만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우리가 바라보는 결혼에 대한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러면 단순히 행복한 생활을 기대하는 막연한 기대 대신 결혼 자체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결혼을 성숙으로 표현한 치료자도 있다. 성숙해지기 위해 겪는 고통을 성장통이라고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인간은 고통 없이는 성숙할 수 없다. , 결혼을 행복이 아닌 성숙의 관점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혼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생활에서 갈등을 겪으면 이를 곧 실패라고 생각한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은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결혼을 자신이 성숙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을 견디거나 이겨낼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불화를 자신이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p.37

 

부부는 서로에게 위로자가 되어주면서 성장하는 관계다. 선물을 사고,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즐겁게 해주기 위해 유머집을 사서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34일 해외여행을 가는 것보다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나누는 것이 부부 관계를 강화시키는 데는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듯 부부 사이도 그렇게 하면 된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듯 부부도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면 된다.--- p.47

 

불화가 심각한 부부일수록 자신의 이성과 감정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배우자가 잘못되었다고 비난한다. 내 주장은 옳고 네 생각은 틀렸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배우자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심하게 자신의 주장을 움켜쥔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배우자의 잘못된 부분을 강조한다. 자신이 부당하게 당한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양보는 곧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부부는 모든 영역에서 차이를 더욱 크게 느끼고, 서로 맞춰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마치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영영 화합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급기야는 서로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이혼도 불사할 거라고, 불화의 원인이 배우자에게 있다고 밀어붙인다.

(중략)

콩깍지가 씌면 상대방의 단점을 보지 못하듯이, 반대로 부부 불화가 길어지면 상대방의 장점을 볼 수 없게 된다. 두 경우 모두 객관성을 잃게 된다.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배우자를 선택하고, 이혼 역시 비슷한 상태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회복되고 나면 자신의 문제와 배우자의 장단점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p.79

 

정서 중심적 부부치료를 할 때 치료자의 초기 역할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감정을 붙들어 부부가 이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부가 각자의 감정을 깊이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때 느꼈던 격한 감정이 어쩔 수 없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준다. 남편이 도망가는 이유도, 아내가 화를 내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라고 공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부부는 서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자를 고치려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남편도 옳고 아내도 옳다. 그럼에도 부부가 서로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부부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격앙된 감정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치료자가 부부 각자가 느낀 격한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태도로 받아주어야 한다. 남편과 아내의 격한 감정이 약화되어야 비로소 부정적인 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p.114

 

배우자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반응을 하는 부부는 사랑하는 감정이 커지고, 친밀감도 높아진다. 이러한 반응을 공동 반응성이라고 한다. 공동 반응성이 큰 부부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잘 표현한다. 배우자의 상처를 달래주고 즐거운 활동을 함께한다. 또한 배우자의 목표를 지원하고, 자기 위주로 반응하기보다는 배우자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