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춘희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 사회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사회학 박사 과정에 있고 이주, 젠더, 농업 노동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2018년 이주노동자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은 〈이주하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진전을 열었다.
목차
머리말
1장 | 여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일하다 죽게 될까 무섭습니다”
월 2백만 원짜리 돼지우리
‘임시’ 시설에 ‘상시’ 삽니다
2장 | 임금 체불의 나라
임금도 못 받고 쫓겨나는 노동자들
사람 잡는 성실근로자 제도
하루 2시간 공짜 노동
임금 체불 신고액만 1천억 원이 넘는 나라
3장 | 사람 없는 인력
코리안드림을 꿈꾸다
고용허가제의 탄생
4장 | 깻잎밭 여성들
왜 깻잎인가?
이주노동자가 온 후 달라진 풍경
5장 | 합법적 노예 상태와 불법적 자유
‘불법적 자유’의 역설
인력사무소의 세계
6장 | 고립과 폭력에 둘러싸여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7장 | 불법인 사람은 없습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불법 체류자’에서 ‘미등록 이주민’으로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주석
출판사 서평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모를 때 가장 잔인하고 무감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무감한 공모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아팠다.”
_ 최은영(소설가)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의 ‘슬픈’ 이야기
더 나은 인권 사회를 향한 1500일의 여정!
2020년 기준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 31,998명, 사장이 가하는 성폭력을 피해 차라리 미등록 노동자의 길을 택하는 여성 노동자들,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제도와 법, 인종 차별…… 이런 현실에 연루되지 않은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한국인의 기본적인 생활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모를 때 가장 잔인하고 무감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무감한 공모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아팠다. 《깻잎 투쟁기》가 많은 분에게 가닿기를, 그리하여 이 책이 잔인함에 이토록 관대한 이 사회를 변화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_ 최은영(소설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코로나 시대 건강권 문제까지
농업 이주노동자에 관한 최초의 관찰기
《깻잎 투쟁기》는 우리 밥상을 책임지는 농업 이주노동자에 관한 최초의 관찰기로, 캄보디아와 한국을 오가며 이주노동자를 직접 지원하고 이주노동 문제를 연구해 온 연구활동가 우춘희의 첫 책이다. 저자는 ‘한국에서는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지?’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이주노동자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지난 4년여의 치열한 기록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생생하게 그렸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내몰리는 열악한 주거 시설과 임금 체불, 저임금 문제를 비롯한 노동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3장에서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취업을 준비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애처로운 사연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한국의 ‘외국인 고용 제도’(고용허가제)로 농촌에 들어오는지 설명한다. 4장에서는 농장주들에게 전해 들은 젊은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며 달라진 농촌의 분위기를 말하고, 5장에서는 인력사무소에서 알게 된 미등록 이주민(‘불법 체류자’)을 쓸 수밖에 없는 농촌의 사정을 말한다. 6장과 7장에서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성폭력 문제를 비판하고, 코로나 시대에 두드러진 이주민의 ‘건강권’ 문제를 다룬다. 이외에도 최근 들어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 적용(2장)이나 건강보험료 ‘먹튀’ 문제(6장), 이주노동자가 ‘도망’가는 이유에 대한 사회제도적 분석까지(5장),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주노동자의 삶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주노동자들이 전한 이주노동 현장은 참혹했다. 장시간 고된 노동을 강요하며 법으로 정한 최저 시급도 주지 않았다. 몇 달 치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도 많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밭 바로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가 그들의 기숙사였다. 그 안에는 화장실도 없어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했다. 사업주의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이 모든 일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수년째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이야기와 삶이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_머리말에서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_이주노동자가 ‘상시’ 거주하는 ‘임시’ 주거 시설
일렬로 늘어선 비닐하우스 단지, 홀로 차광막을 친 검은 ‘비닐하우스’. 화장실도 없고 곰팡이와 온갖 벌레만 가득한 그 작은 공간에 농업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그것도 매달 수십만 원의 돈을 지불하면서!
우춘희 연구활동가는 직접 보고 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의 실상을 이 책에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집은 대부분 냉·난방장치가 허술한 데다 자연재해를 막아줄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다. 밭 한가운데 외따로 있던 한 비닐하우스 집은 잠금장치가 없어 아무나 들어올 수 있었고, 콘크리트 농수로 위에 그야말로 ‘얹어놓은’ 컨테이너 집은 집 밑에 물이 졸졸 흘렀다. 왕복 2차선 도로 옆에 있던 두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네다섯 평의 컨테이너에는 세 명의 이주노동자가 부대끼며 살면서 매달 75만 원을 냈고, 다 쓰러져 가는 폐가를 대충 고쳐놓아 한겨울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공간에는 다섯 명의 이주노동자가 월세로 2백만 원을 내고 살았다. 저자는 열악하다 못해 끔찍한 주거 시설을 들여다보며 집다운 집에서 살 당연한 권리에 대해 말한다.
컨테이너 두 개가 붙어 있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방, 부엌, 샤워실이 하나씩 있었다.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았고 환기도 전혀 되지 않았다. …… 집 안 곳곳에 온갖 벌레가 우글거렸다. 부엌은 각종 곰팡이가 마치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것 같았다. 관리를 안 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그랬다. 그 공간에서 세 명은 방에서 자고 나머지 두 명은 방이 좁아 부엌 앞 공간에서 잔다고 했다. _21~22쪽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가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본다. 오로지 어떻게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채울지 골몰하며, 일하는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수요와 공급의 숫자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주노동자가 어떤 곳에서 사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일하는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는 하는지, 그 실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_38쪽
깻잎을 먹을 때마다 이주노동자가 생각난다
_하루 종일 1만 5천 장의 깻잎을 따야만 하는 사람들
한국인만 좋아해 먹는다는 깻잎은 이주노동자들의 장시간 고된 노동의 산물이다. 저자가 만난 깻잎밭 노동자들은 한 달에 고작 한두 번 쉬며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그들의 근로계약서에는 하나같이 하루 ‘근로 시간 11시간(휴게 시간 3시간 포함)’이 적혀 있었고, 그로 인해 임금은 최대 8시간만 최저 시급으로 계산해 받았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하루에 깻잎 1만 5천 장, 15상자를 채우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며 노동자들을 닦달했고, 심지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에서 깎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매일 깻잎 15상자를 채우기 위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며 쉴 틈 없이 깻잎을 땄다. 소변을 참아서 방광염에 걸리거나 화장실에 덜 가기 위해서 물을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의 사연은, 우리가 깻잎을 먹을 때마다 이주노동자들의 수고로운 손길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깻잎밭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연락을 받으면 이주노동자들은 일단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오전 6시 30분에 밭에 나가서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깻잎을 따야 1만 5천 장을 딸 수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간단한 빵과 두유를 허겁지겁 먹고 밭에서 걸어서 5~10분 걸리는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 말고는 쉴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다고 했다. _76쪽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사람들
_이주노동자는 어떻게 한국 농촌에 들어올까?
2004년에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한국인이 더는 일하러 오지 않는 곳에 국가가 직접 외국 인력을 선발해 취업을 알선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한국 정부와 고용 협약을 맺은 아시아 16개국에서 한 해 5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온다. 이 책에서는 실제 이주노동자들이 왜 어떤 경로로 한국에 오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저자가 직접 만난 취업 준비생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한국어 학원에 다니며 ‘코리안드림’을 꿈꿨다.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된 이유는 바로 끝 모를 ‘가난’이었다. 줄줄이 딸린 가족들을 부양해야 해서, 어린 나이에 ‘신부대(지참금)’ 때문에 결혼하기는 싫어서,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해 시험에 유리해서……. 저자는 말한다.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보고 그들이 말한 ‘가난’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국에서 일하려면 일단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보파(가명, 30대) 씨는 공장에서 일을 마친 후 한국어 학원에 다녔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캄보디아 사람들이 차린 학원이었는데, 그런 학원들이 공장 주변에 많았다. 공장에서 야간작업을 하느라 학원에 못 가는 날도 있었고, 늦게까지 일하다 가는 날에는 너무 졸려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래도 《너도나도 한국어》 교재를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보고 또 보려 했다. _101쪽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모두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능력시험 성적 유효 기간이 2년이기에 2년 내에 자신을 고용하고 싶다는 사업주로부터 선택을 받아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한국의 고용 센터는 보통 사업주가 신청한 구직 인원의 3배수로 알선하고, 사업주는 센터를 통해 구직자의 정보(키, 몸무게, 성별, 한국어능력시험 점수 등)를 검토해서 선택한다. _103쪽
이주노동자가 온 후 농촌은 어떻게 변했을까?
_농촌 사회를 구성하는 이주노동자 이야기
이 책의 4장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온 후 달라진 농촌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사과 농사에서 깻잎 농사로, 배추 농사에서 깻잎 농사로 바꾼 농장주들의 사연, 20·30대 젊은 이주 여성이 밭농사를 도맡으면서 한국 노인 여성의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 고용주로서 이주노동자를 대하고 관리하는 농민들만의 방식, 시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외국인 음식점과 동남아에서 온 각종 식자재를 파는 시골 마트의 풍경 등 어느 책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국 김미자(가명, 60대) 씨네는 배추에서 깻잎으로 작물을 바꾸었다. ‘깻잎’은 여러 면에서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에게 맞춤인 작물이다. 일단 깻잎 농사는 1년 내내 일거리가 있는 노동집약도가 높은 일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_133쪽
“(200평 기준 깻잎) 비닐하우스 한 동에 보통 3천만 원 정도 매출이 난다고 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우스 여섯 동을 갖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1억 8천만 원 정도 매출이 나겠죠. 여기서 농비, 인건비, 시설 투자비 빼고 나면 절반 정도 이익이 날 거예요. 그런데 농약 값 이런 건 별로 안 들거든요.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요. 하우스 세 동 정도는 (세 명의) 인건비로 나가고, 제 인건비는 나머지 세 동 정도 가져간다고 보면 돼요. 작년(2019년) 같은 경우는 깻잎이 대박 터졌거든요. 이 정도 규모에서 대박 터졌으면 이익이 한 2억 나왔을 거예요.” _137쪽
‘현대판 노예제’가 된 고용허가제
_‘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는 굴레
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고용허가제가 농·어촌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제도이지 “저개발국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이주노동자의 인력만 이용할 뿐 그들이 한국에 정주해서 살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주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촘촘한 규정으로 이주노동자를 옭아매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 것은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쉽게 옮길 수 없게 만들어 사실상 ‘강제 노동’을 시키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다. 이 책에서는 ‘사업장 변경 제한’의 문제점과 각종 폐해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 규정에 관한 2021년 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근로계약 해지에 대한 사업주의 동의를 얻거나 아니면 사업주의 위반 사항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명백한 불법도 입증하는 데 수개월이 걸릴 수 있기에 이주노동자는 되도록이면 사업주의 협조를 얻으려 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사업장 변경 신청 사례(3만 2140건) 중 근로계약 해지 또는 만료로 인한 신청이 전체의 85.6퍼센트(2만 7512건)였다. 사실상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바꾸기 위해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한 셈이었다. _81쪽
그동안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인력만 이용할 뿐 그들이 한국에 정주해서 살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인력’만을 요구한다. 이주노동자의 삶은 ‘영원히 일시적인(permanently temporary)’ 상태이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와서 일을 하지만 여기에서 정착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정해진 기간이 다 되어 비자가 만료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빈자리를 다른 이주노동자가 와서 채운다. _127쪽
‘불법 체류자’라야 노동 조건이 더 좋다고?
_합법적 노예 상태와 불법적 자유의 역설
2020년 초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으로 각국이 국경을 폐쇄하자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기로 한 노동자들의 입국이 계속 지연되었다. 농업 현장에서는 봄철 파종을 앞두고서 인력 부족이 극심해졌고,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없던 농민들은 ‘불법 체류’ 노동자에게 월급을 더 올려주고 기숙사비를 안 받겠다고 제안하며 노동 조건을 협상했다. 그 결과 ‘합법 체류’ 노동자보다 ‘불법 체류’ 노동자가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 공급이 부족한 노동 시장에서 ‘합법 체류’ 노동자는 과도하게 엄격한 외국인 고용 제도(고용허가제)에 발이 묶였지만, ‘불법 체류’ 노동자는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 노동 조건을 두고 사업주와 협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만난 억압받는 ‘합법 체류’ 노동자와 자유로운 ‘불법 체류’ 노동자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외국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가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합법 체류 자격의 이주노동자는 임금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 …… 반면 체류 기간이 지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합법적’ 체류 기간에 쌓은 전문성과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는 약간의 자유를(그들은 정식 계약을 맺은 상태가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쉽게 그만둘 수 있었다) 토대로 삼아 일손이 부족한 사업주와 노동 조건과 주거 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온갖 제도와 법이 구속하는 노예 상태에 놓이지만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노동자는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서 협상력을 갖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_153~154쪽
“불법이라서 월급을 더 조금 준다? 요즘은 그런 거 안 통해요. 코로나 때문에 (사람 구하기 힘들어져서) 기숙사비 안 받고 월급 160만 원을 줬어요. 그런데 이제 여자는 기본이 180만 원이고 남자는 200만 원이에요. 우리는 기숙사비도 전혀 안 받고 오히려 쌀도 사줘요, 좋은 쌀로. 그런데 지금 사람이 없어서 알아보니까 다른 농가는 우리보다 더 준다는 거예요. 여자는 200만 원, 남자 230만 원에서 최고 250만 원까지 준대요. 부부가 오면 합해서 450만 원에 맞춰준다고 하더라고요.” _157쪽
“건강보험료 ‘먹튀’요? 바빠서 한 번도 병원에 못 갔어요”
_외국인 건강보험료로 돈 버는 나라
건강보험을 든 외국인들이 피부양자 등록을 악용해 세금은 적게 내고 의료 혜택만 받는다는 이른바 ‘건강보험료 먹튀’는 사실일까? 이 책이 전하는 실상은 이와 전혀 다르다.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최근 2018년부터 3년간 건강보험료 재정수지가 매년 증가해 누적 흑자 규모가 1조 원이 넘었다. 저자가 농업 현장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느라 병원에 갈 시간도 없는데 건강보험료를 너무 많이 낸다고 하소연했다. “건강보험료를 좀 내려주세요. 저는 보험료를 제 능력 이상으로 이렇게 많이 낼 수 있는 형편이 못 됩니다.” “저희는 농촌에 살고, 한 달에 2~3번 쉬기 때문에 병원에 갈 시간도 없어서 그냥 약을 사서 먹습니다.”
내국인은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서 보험료가 산정되지만 외국인은 이런 과정 없이 내국인 보험 가입자의 평균을 낸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피부양자 인정 기준도 제한적이다. 특히 농업 이주노동자의 경우, 농장주들이 ‘사업자등록’을 안 한 경우가 많아 직장인가입자 자격을 얻지 못한다. 외국인 고용 제도는 그들에게 장기 거주할 기회를 주지 않는데, 보험 공단에서는 ‘장기요양보험료’를 제외해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는 보험료만큼 합당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을까? 저자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 기본적인 통역 서비스조차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며, 건강보험료 문제가 이주민 혐오로만 소비되는 것을 넘어 ‘이주민 건강권’ 문제로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이주민들은 언어 장벽으로 인해 병원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특히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잘 모르는 데다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 막막해했다. …… 교통과 시간도 문제였다. 일단 농촌 마을에서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보통 하루 반나절은 써야 했기에 쉬는 날이 아니면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만난 농업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병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기보다 그저 고용주에게 부탁해서 약을 사 먹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_199~200쪽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는 직장가입자가 되지 못해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에 의무 가입한다. 직장가입자는 사업주와 보험료를 절반씩 내지만, 지역가입자는 보험료를 모두 부담한다.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가 내는 한 달 건강보험료는 2022년 기준 12~13만 원이다. _205쪽
2020년 기준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노동자 31,998명, 사장이 가하는 성폭력을 피해 차라리 미등록 노동자의 길을 택하는 여성 노동자들,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제도와 법, 인종 차별…… 이런 현실에 연루되지 않은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한국인의 기본적인 생활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모를 때 가장 잔인하고 무감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무감한 공모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아팠다. 《깻잎 투쟁기》가 많은 분에게 가닿기를, 그리하여 이 책이 잔인함에 이토록 관대한 이 사회를 변화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_ 최은영(소설가)
'깻잎 논쟁' 말고 밥상 위 깻잎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라
우춘희가 쓴 책 <깻잎투쟁기>를 읽고
최근 '깻잎 논쟁'이 유행했다. 애인, 나, 내 친구가 함께 밥을 먹는 상황에서 내 친구가 깻잎 반찬을 먹으려고 할 때 붙어 있는 깻잎을 내 애인이 눌러주는 걸 과연 용납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다.
중국산 깻잎과 담배꽁초 A씨가 깻잎을 먹다 뱉어냈다는 담배꽁초의 필터 부분. 제보자 A씨 제공 /연합뉴스/
누군가 깻잎을 떼어주는 게 맞다, 아니다를 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을 때, 진짜 문제는 깻잎을 누가 떼어주느냐가 아니라, 누가 '따고' 있는지, 즉 밥상 위에 올려진 깻잎이 누구의 손을 거쳐 왔는지에 초점을 맞춘 책이 있다.
이주 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우춘희는 깻잎밭에서 직접 일하며 깻잎밭을 비롯한 농업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책 <깻잎투쟁기>에 담아 우리 밥상 위의 인권을 말하고자 한다.
저자가 직접 체험한 농촌의 이주노동 현실
<깻잎투쟁기>는 농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주거, 임금, 고용허가제, 농촌의 현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성폭력과 건강권 등의 문제를 저자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깻잎밭에서 일하며 관찰하고, 직접 인터뷰를 하며 엮은 기록이다.
또 단순히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고령화와 청년층의 이탈로 이주노동자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농촌의 현실도 드러낸다.
책을 읽으며 내가 처음 농촌 '체험'을 했을 때가 생각났다. 대학생 때 갔던 농촌연대활동이었지만, 농사일에 대해서는 '체험'이나 마찬가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일했던 밭은 담배밭과 인삼밭, 고추밭이었다.
담배밭에서는 무더운 여름 끈끈한 액체 같은 것들이 긴팔에 들러붙어 마치 딱풀을 칠해놓은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종일 담뱃잎 옆에 나고 있는 작은 잎들을 떼어냈다. 담배밭에서 일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며 나는 말했다. "내 주변에서 양담배 피면 다 뺏어 던져버릴 거야". 진심이었다.
검은 차광막이 있는 인삼밭에서는 계속 쪼그려 앉아 일해야 했다.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누군가 옆 동네 수박 비닐하우스를 가겠냐고 물었다. 거기는 일이 쉽냐고 했더니, 비닐하우스 안이 너무 더워 하루에 한 명씩 탈진해서 기어 나온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인삼밭에서 성실히 일했다. 하루는 작업반장이 오늘은 조금 쉬운 일을 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간 밭이 고추밭이었는데 고추밭에 줄을 묶는 일이었다. 누가 쉽다고 했나.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농활 마지막 날에는 시내로 나가 함께 농민가를 부르며 가두행진을 했다. 겨우 열흘가량 농사 일을 하고는 농민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농민가를 목청껏 불렀다.
그런데 지금의 농촌은 내가 농활을 다녀왔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 되었다. 이제 농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필수 인력이 되었고, 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인권 보장이 중요한 화두가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를 보라
2020년 겨울, 영하 18도까지 떨어져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포천 지역의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인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 같은 경우이다.
많은 수의 농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은 시내와 떨어진 논밭 가까이에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거주한다고 한다. 그마저도 한 달에 20~30만 원의 기숙사 비용을 내고 말이다.
저자는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들을 둘러보고 "편하게 쉬어야 할 집이라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잠을 자다가 죽을 수도 있는 공포의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저개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컨테이너 집, 비닐하우스 집,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집에서 사는 것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자 인종차별적 착각이라고 비판한다.
고용주들이 이와 같은 생각으로 열악한 주거시설을 제공하고, 정부는 이런 시설을 방관하고 있다. 여름에는 35도가 넘는 더위에, 겨울에는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지기도 하는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열악한 주거시설에서 살게 방관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닌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의 문제 또한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농사라는 일의 특성상 본래 계약된 시간보다 초과 노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 하다.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미흡하고 고용주에 대한 처벌이 미비하니 고용주들의 '배째라' 태도는 소문이 난다. '옆집도 그랬으니 나도 그런다. 뭐가 문제냐?'라고 쉽게 반문하는 고용주들의 질문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그래도 계속되는 문제 제기에 사업주들도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가령 주어진 시간 안에 할 수 없는 일을 끝마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아무리 능숙한 솜씨로 깻잎을 따도 8시간 안에 깻잎 1만 5천 장을 따기는 쉽지 않은데,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실패하면 월급을 깎기도 하며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근로기준법 위에 '고용주의 법'이 있는 것이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다.
밥상 위 깻잎에서 이주노동자를 떠올리자
이 책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임금 체불을 신고한 이주노동자 수와 임금 체불 금액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관계법이나 임금체불을 이유로 고용 허가가 취소된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부의 방관자적 자세를 고의성이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코로나가 터지고 이주노동자들이 입국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농촌에서는 비상 상태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어떻게든 돈을 안 주려고 꼼수를 쓰던 고용주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이주노동자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 됐고,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권에 큰 관심 없던 정부도 방역과 농민들과 이주 인권 단체들의 요구에 그들의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밥상 위에 올라오는 식재료 중 이주노동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될까? TV에는 투박한 농민들의 손만 나오지 이주노동자들의 손은 나오지 않는다. 존재하되 숨겨진 노동. 그렇다고 그들의 인권 문제까지 숨겨질 수는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구걸을 하러 온 것이 아니지 않나.
그들은 그들의 노동을 제공하고, 우리는 그에 맞는 마땅한 임금과 대우를 제공하면 된다. 우리나라 주요 산업의 일부분을 살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그들을 왜 차별하고 억압하지 못해 안달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매년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농민들은 농민가를 부르며 대규모 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제 농업 종사 이주노동자들도 그 자리에 함께해야하지 않을까? 농업인의 일부로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도 크게 함께 울리면 좋겠다는 작은 상상을 해본다.
우리가 밥상 위에 올려진 깻잎을 보며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친구의 깻잎을 떼어준 애인 때문에 흘린 눈물이 아니라, 이 깻잎을 따며 수없이 흘렸을 이주노동자들의 피땀과 눈물이다. 비단 깻잎뿐인가. 이주노동자들 기사마다 달리는 인종차별적 악플들에 함께 분노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깻잎 논란보다는 깻잎 연대가 더 보람차지 않은가.
아차,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산다고 말하는 악플러들에게도 꼭 이 책을 권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 국민들보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모르면 배우면 된다. 일독을 권한다.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ohmynews
“한국은 돈만 중시하고, 우릴 사람으로 보지 않아”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며 나선 이주여성노동자들
“한국 역사에 대한 저의 짧은 지식으로 한 말씀 드릴게요. 한국은 예전에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일본이 한국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하였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지배에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예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방식과, 현재 한국이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 한국분들에게 정말로 미안합니다만, 어떻게 일본이 한국에게 했던 짓을 똑같이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에게 하고 있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 ‘2020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캄보디아 20대 여성노동자 미나 씨의 모습. ©우춘희
캄보디아 20대 여성 미나 씨가 마이크를 잡고 힘주어 말했다. 2020년 4월 26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2020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공동행동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미나 씨가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에서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대할 수가 있냐’고 통렬히 비판한 것은, 강제노동을 시키고,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이주민을 인간으로서 평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한국 정부가 사장님한테 법을 지키라고 할까요?”
2015년, 미나 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고 경기도 여주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을 했다. “하루 8시간 노동, 휴게 3시간, 월급 126만원(시급 5,580원)”이라는 적힌 표준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계약서에는 8시간만 일하기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0시간 동안 일을 했어요. (계약서와 실제 노동시간이 달라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 사람들의 계약서에도 ‘8시간'이라고 적혀있지만 쭉 10시간 동안 일을 해왔어요. 왜 그런지는 모른대요.”
하루에 2시간씩 추가로 일을 하고, 한 달에 이틀 쉬었다. 심지어 미나 씨의 통장에는 약속된 126만원이 아닌 110만원이 입금되었다. “사장님한테 물어봤어요. 왜 110만원 줘요? 사장님이 기숙사비, 쌀, 가스비, 전기세를 공제한다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계약서에는 아무 표시가 없었어요.” 2017년에 숙식비 공제지침이 마련되기 전에는 사업주가 마음대로 숙식비를 징수할 수 있었다.
씩씩하게 이야기하던 미나 씨는 끝내 울먹이며 말했다. “(같이 일하는) 한국인 아줌마가 말해요. 우리 집이 돼지가 사는 곳과 똑같다고요.” 좁고, 더럽고, 햇빛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검은 농막 안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숙소에서 1명당 16만원씩, 6명이서 월세 96만원을 사업주에게 냈다.
미나 씨는 사업주가 부당하게 이주노동자들을 대우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사업주에게 사업장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주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길 수 있다. 사업주는 동의해주지 않았다. 오랜 실랑이 끝에야 미나 씨는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돼지우리 같은 숙소를 주고 월세를 받았던 첫 사업장에서 일한 기간은 3년 10개월이었다.
▲ 미나 씨가 한국에 와서 일하며 겪은 차별과 장시간 노동 강요, 임금체불 등의 문제에 대해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춘희
시민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을 받아, 미나 씨는 결국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고용주를 임금체불 등으로 신고했다. 근로감독관의 조사를 통해 초과근무 때 받지 못한 체불임금과 연차수당을 포함해 3,300만원이 체불되었다는 “체불임금확인원”을 받았다. 그러나 사업주는 이에 대해 지급하기를 거부했다.
2020년, 결국 이 사건은 형사재판으로 넘겨졌다. 4월에는 미나 씨는 비자가 만료되어 곧 출국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임시기타비자(G1)를 발급받아 3개월이 연장되었지만, 결국 미나 씨는 6월에 캄보디아로 떠났다. 체불된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정의로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한국 고용노동부가 사장님한테 법을 지키라고 할까요? 제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사장님이 법을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이주노동자가 일하러 그곳에 왔을 때,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나 씨가 캄보디아로 떠난 후, 작년 6월 말에 필자는 미나 씨가 일했던 농장을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 두 명이 일하고 있었다. 그녀들 역시 하루 10시간 일하지만 8시간의 시급만 받았다. 언제쯤 미나 씨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크메르노동권협회 결성
2011년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캄보디아 40대 여성 쓰레이나 씨도 사업주에 의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고 임금체불 문제를 겪었다. 안산의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이곳에서 만난 다른 노동자들 또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대부분의 농업이주노동자들이 계약서에 적힌 8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10-12시간, 한 달에 이틀 쉬고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조업보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더 심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근로기준법 63조에 있다.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많은 개정을 거쳐왔지만, 63조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르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 받지 않는다. 즉, 사업주는 초과근로 등에 대한 가산수당을 노동자에게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업주가 하루에 12-15시간씩 노동을 강요해도 불법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하루 10시간, 한 달에 두 번 쉬는 관행이 이어져오고 있다. 2014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러한 근로환경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를 인정하고, 노동부 장관에게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2021년 현재까지 바뀐 것은 없다.
▲ 크메르노동권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쓰레이나 씨.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직면한 차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협회 내 이주노동자 쉼터를 관리하며 입소자들을 지원한다. ©우춘희
쓰레이나 씨는 고용센터와 노동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구인의 정류장과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 2013년 “크메르노동권협회”를 만들었다. 쓰레이나 씨는 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처우 문제를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정말로, 저는 집회에 가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일 때문에 바빠서 집회에 딱 세 번 빠졌고요. 그것 외에, 몇 년 동안 집회에 모두 참석했어요. 마이크를 잡으면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는 정의로운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그 뒤로 임금체불을 비롯해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쓰레이나 씨에게 연락을 해왔고,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한국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사진을 찍어 증거를 확보하고, 사업주가 소리를 지르면 녹음을 하고, 꼼꼼하게 노동시간을 기록하라고 조언했다. “중요한 것은 증거를 모아서 나쁜 사장님을 신고하면 노동자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거예요.”
9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면서 많은 불의와 문제점을 보고 들은 쓰레이나 씨가 강조했다. “사장님들은 돈만 생각해요. 한국 사회는 돈만 우선시합니다. 옆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까먹나 봐요.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이주노동자를 많이 무시합니다. 이곳에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 문제는 심각해요. 우리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특히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쓰레이나 씨는 이렇게 당부했다. “미등록노동자들도 임금체불 문제를 많이 겪습니다. 사장님은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월급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사람이 일하기 싫어하는 곳에 미등록노동자들이 가서 일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불법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낯선 땅에서 무서웠어요. 외롭고, 춥고, 힘들었어요”
캄보디아 30대 여성 딴 쏘푼 씨는 2013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질문을 했고, 쏘푼 씨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외국인노동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정감사에서 발언한 것이었다.
▲ 캄보디아 여성 딴 쏘푼 씨는 2013년에 이주노동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정감사에서 발언했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춘희
딴 쏘푼 씨는 2012년에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 가기 전에 서명한) 근로계약서에 이렇게 적혀있어요.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8시간 일하고, 월급 90만원 받아요. 한국 법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 와서 하루 만에 알았어요. 사장님은 근로계약서를 지키지 않아요.”
쏘푼 씨를 비롯한 캄보디아 노동자 두 명과 중국인 노동자 다섯 명이 함께 전남 담양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딸기와 토마토를 땄다. “새벽 3시에 사장님이 우리 방에 와서 말해요. ‘일어나, 일 시작해.’ 새벽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해요. 잠을 잘 못 자요. 살이 빠져요. 친구가 말해요. ‘우리 계속 일하지 마요. 이렇게 계속 일하면 죽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월급도 다 안 줬어요.”
이들은 하루에 무려 12-15시간 일을 했다. 그런데 받은 월급은 고작 90만원이었다. 2012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4,580원이었지만, 농장주는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을 하며 건강이 나빠진 쏘푼 씨는 다른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을 바꾸지 못한다. 만약 사업주 승인 없이 근무지를 이탈하면, 이주노동자들은 불법 행위를 한 것으로 신고를 당하고 붙잡혀 본국으로 추방당한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기고 싶다는 쏘푼 씨의 말에, 사업주는 윽박지르기부터 했다. “사장님이 크게 말해요. 너네 9년 동안 여기서 일해. 계속 일해. 너 아무데도 못 가. 내가 너 불법 만들어 버릴 거야. 사모님도 우리에게 막 욕해요. 너 나가면 경찰 불러다 잡아서 캄보디아 보낼 거야."
그날 저녁, 쏘푼 씨와 다른 노동자 한 명은 사업장에서 쫓겨났다. 낯선 땅에서 갈 곳이 없는 두 사람은 버스정류장 쪽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무덤도 옆에 있어서 무서웠어요. 작은 정류장에 우리가 있었고, 버스가 우리를 못 보고 지나쳤어요. 우리가 버스를 따라가서 손을 흔들자 버스가 멈췄어요. 운전하는 기사가 여자였어요. 우리가 정말 감사하다, 고맙다고 말하고 터미널에 갔어요. 밤 11시 30분에 안산에 가는 버스표를 끊었어요. 안산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새벽 3시 30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터미널에서 앉아 있었어요. 경찰이 왔다 갔다 했어요. 나와 내 친구는 많이 울었어요. 외롭고, 춥고, 힘들었어요.”
다행히 두 사람은 안산에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까지 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단체활동가들이 동행하여 쏘푼 씨가 일했던 사업장을 찾았다. 사업주는 그녀를 보자마자 경찰에 신고했다. 이윽고 경찰차 5대가 도착하더니 쏘푼 씨를 잡아가려고 했다. “내가 말했어요. 언니(여경), 우리를 왜 잡아요? 우리는 불법한 거 없어요. 우린 잘못한 것이 없어요. 잘못은 사장님이 있어요.” 쏘푼 씨와 활동가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경찰은 돌아갔다.
이후 소푼 씨는 노동청에 가서 사업주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녀는 임금체불액이 470여만원이라고 주장했지만, 고용노동청은 조사 끝에 41만원만 인정했다.
그런 일을 겪은 뒤, 쏘푼 씨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발언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저는 을지로에 있는 고용노동청 앞에서 데모하는데 갔어요. 무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말했어요. ‘사장님이 근로계약서대로 안 해요. 고용센터는 이주노동자를 안 도와줘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을 해요. 우리가 말을 하지 않으면 (한국)사람들은 우리 상황에 대해서 잘 몰라요.”
▲ 체불임금을 끝내 받지 못한 채 캄보디아로 돌아간 미나 씨가 일했던 농장을 다시 찾아가보았다. 캄보디아 여성노동자 두 명이 일하고 있었다. ©우춘희
딴 쏘푼 씨는 2019년, 크메르노동권협회의 새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토요일 저녁 퇴근 후에 안산에 있는 크메르노동권협회에 간다. 이곳은 사업주와 문제가 생겨 갈 곳이 없어진 노동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해준다. 그녀는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해결을 위해 도와준다. 일요일 낮에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는다. 임금체불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타국에서 겪는 쓸쓸함과 불안, 먹먹함을 따뜻한 음식과 함께 삼킨다.
며칠 안 되는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소푼 씨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우리가 서로 돕지 않으면, 우리 노동자들은 더 힘들어요.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해요.”
이후에 올 사람들을 위해 한국 사회가 정의로워지길…
201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왔다. 사업주들로부터 임금체불, 숙소 문제, 성희롱과 성폭력 등을 당해 고용노동청에 가서 조사받는 과정을 동행했다. 언론사에서 취재요청이 오면, 떨리지만 마이크를 꽉 쥐고 한국사회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캄보디아 20대 여성 소팔(가명) 씨가 의정부 고용지청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사회에 바라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
“제가 바라는 것은 노동부에서 정의롭게 조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고용될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춘희 | 2021/03/22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농업노동자들이다’
이주여성 농업노동자들의 국경 넘나드는 삶을 담은 20장의 사진
많은 사람들이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돈 벌려고 온 동남아 외국인’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이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남아’라는 말로, 한 범주로 묶기에는 16개국의 다양한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한국에 옵니다. 이들이 있는 곳 시내에는 어김없이 ‘아시아 마트’가 들어서고, 대형 슈퍼 한쪽에는 아시아 음식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들어서기도 하지요. 이들의 문화는 지역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들의 소비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한국에서 적응해 나갑니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한국사회의 시선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이처럼, 이들은 엄연한 한국사회의 구성원입니다.
2019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캄보디아와 한국을 오가며 찍은 사진 20장을 통해서, ‘이주의 과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4년 10개월까지 한국에 머물게 됩니다. 농번기에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을 하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일이 없기 때문에 본국에 돌아가 1달 정도 지내다 옵니다. 한국에 와서 사귄 같은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외로움을 달래기도 합니다.
언론을 통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 일하는 모습만 주로 접하게 됩니다. 그 단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국경을 넘나드는 삶의 여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어깨에 고단한 희망이 한 줄 걸려있으며,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았습니다.
<1> 프놈펜의 한 의류공장. 많은 청년여성노동자들이 퇴근 후 한국어 학원으로 향한다. (촬영: 우춘희)
1.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에는 중국의 의류공장이나 신발공장, 한국의 의류공장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20-30대 여성들이 일합니다. 이들의 월급은 2020년 기준 최저임금으로 190달러 (약 21 만원)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에, 한국어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일년에 한 번 있는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을 준비하고, 한국으로 이주를 꿈꿉니다.
<2> 트럭에 몸을 싣고 퇴근하는 여성들. (촬영: 우춘희)
2. 프놈펜 외곽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퇴근 풍경입니다. 의류공장이나 신발공장에서 일이 끝나면, 노동자들은 이처럼 트럭에 타고서 퇴근을 합니다. 포장이 되어있지 않는 도로에서는 먼지가 날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스카프로 얼굴을 가려 먼지를 막곤 합니다.
<3> 한국어 학원의 선생님과 학생들. (촬영: 우춘희)
3. 이곳은 한국어 학원의 모습입니다. “땀을 흘리다”, “기운이 없다”라는 단어가 칠판에 적혀있습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선생님 또한 한국에서 배를 만드는 일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4> 캄보디아의 추석, “프춤번” (촬영: 우춘희)
4.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로 캄보디아에는 “프춤번”이 있습니다. 조금 다른 점은 추석이 음력 8월 15일이라면, 프춤번은 음력 8월16일부터 29일까지입니다. 이 때 지옥 문이 열리고, 조상님들이 밥을 먹기 위해 찾아온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7대 조상들을 기리며, 일곱 군데의 절에 찾아가서 조상님들을 위한 음식을 공양합니다. 이 많은 음식은 사람들이 정성 들여 준비하여 절에 공양한 음식입니다.
<5> 프놈펜 국제공항. 이주하는 사람을 배웅하는 가족들 (촬영: 우춘희)
5. 프놈펜 국제공항입니다. 안에는 여권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지인들은 이렇게 문 밖에서 한국으로 가는 노동자를 배웅합니다.
<6> 캄보디아와 한국, 양국의 국기가 붙은 점퍼를 입고 비행기 탑승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 (촬영: 우춘희)
6. 프놈펜 국제공항 안의 모습입니다. 2020년 2월, 한국으로 떠나는 이주노동자들이 탑승수속을 위해 한 줄로 서있습니다. 검은 점퍼 앞 쪽에는 캄보디아 국기와 한국 국기가 조그맣게 붙어있고, 뒤에는 캄보디아어로 “캄보디아"라고 쓰여있습니다. 각각의 가방에는 각각의 사연과 꿈이 담겨있습니다.
<7> 캄보디아 이주여성노동자의 일터 (촬영: 우춘희)
7. 고용허가제를 통해 매년 16개국에서 5만5천명의 이주노동자가 한국으로 옵니다. 2019년 기준, 그 중 캄보디아인은 7,773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네팔 국적의 노동자가 7,088명, 베트남에서 6,471명, 인도네시아에서 6,202명이 입국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전체 6,688명이 입국을 했고, 그 중 캄보디아인은 2,172명으로 압도적으로 그 수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전국의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현장으로 갑니다.
<8> 계약서에는 8시간, 실제 노동시간은 10시간 (촬영: 우춘희)
8. 깻잎을 따는 경우, 보통은 오전 6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5시 30분에 마칩니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지만, 어떤 사업장은 40분만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하루 10시간 일을 하지만, 계약서에는 하루 8시간만 일을 한다고 적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9> 비 오는 노지에서 조심조심 깻잎 수확 (촬영: 우춘희)
9. 비닐하우스 안에서 깻잎을 따기도 하고, 이렇게 노지에서 깻잎을 따기도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깻잎에 빗물에 멍이 들지 않도록 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깻잎의 상품가치가 떨어지면, 가격 또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10> 물 호스 정리 작업. (촬영: 우춘희)
10. 고추밭 수확이 끝나고, 밭에 물을 주기 위해 설치했던 검은 호스를 정리하는 작업도 이주노동자들의 몫입니다.
<11> 드디어 퇴근! (촬영: 우춘희)
11. 고단한 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퇴근입니다! 보통 이주농업노동자들은 하루에 10시간 일을 하고, 한 달에 2번 쉽니다.
<12> 좁고 더운 컨테이너 집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는 여성노동자. (촬영: 우춘희)
12. 이주노동자가 사는 컨테이너 집입니다.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면 화장실이 먼저 보입니다. 그 화장실을 지나서 방문을 열면 왼쪽에는 부엌과 장롱이, 그리고 2-3명이 사는 공간이 나옵니다. 4-5평 남짓 공간에 화장실, 부엌, 방이 있어서 비좁습니다. 더운 7월에 선풍기로 생활하는 것이 답답하여 에어컨을 놓아달라고 했지만, 사장님은 알았다는 말만 하고 아직 에어컨을 달지 못했습니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이 집 바로 앞에는 비닐하우스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사장님이 노동자들이 따온 깻잎을 상자에 담는 포장작업을 합니다. 이곳에는 하루 종일 에어컨이 돌아가고, 이 시원한 바람은 깻잎이 더위에 상품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줍니다. 니몰(가명) 씨가 저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사장님은 우리보다 깻잎을 더 사랑하나 봐요.”
<13> 고향음식을 함께 만들어먹으며 외로움과 고단함을 달래다. (촬영: 우춘희)
13. 가끔은 주변에 사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모두 모여서 자신들의 고향음식을 같이 해먹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아시아 마트” 혹은 대형 마트 안에 “아시아음식” 코너가 생깁니다.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타지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기도 합니다. (5인 미만 집합금지 이전의 모습입니다.)
<14> 한국에서 만난 연인의 조촐한 결혼식. (촬영: 우춘희)
14.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가족 이주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이곳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거나, 혹은 캄보디아 식당에서 소개팅도 하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5인 미만 집합금지 이전에 한 행사입니다.)
<15> 고용허가 기간이 끝나면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 (촬영: 우춘희)
15. 한국에서 4년 10개월 동안 일을 하면,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6> 체불임금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는 미나 씨. 2020년 메이데이 행사에서, 한국은 이주민에게 어떻게 이렇게 차별적이고 잔인할 수 있냐고 항의했다. (촬영: 우춘희)
16. 일다 기사 “한국은 돈만 중시하고, 우릴 사람으로 보지 않아”(2021년 03월 22일자 https://ildaro.com/8998)에 소개된 미나 씨의 모습입니다. 사업주가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근로감독관의 조사를 통해 초과근무 때 받지 못한 체불임금과 연차수당을 포함해 3천3백만원이 체불되었다는 “체불임금 확인원”을 받았지만, 사업주는 끝내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미나씨는 체불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2020년 6월에 출국했습니다.
<17> 고향으로 돌아와, 집에서 옷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킴 레이 씨. (촬영: 우춘희)
17. 강원도 한 농장에서 4년 10개월 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킴 레이 씨입니다. 남편도 한국의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고 캄보디아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4개월 된 아들이 있죠. 집 마당 앞에서 옷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레이 씨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18> 시골에서 도시의 공장으로,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다시 공장으로. 쏘콤 씨의 여정. (촬영: 우춘희)
18. 쏘콤 씨가 자신의 삶의 여정을 쭉 적어보고 있습니다. 18살 때 프놈펜에 와서 거의 10년 동안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에 한국에 와서 4년 10개월 동안 전라도의 몇몇 농장에서 일했죠. 캄보디아에 돌아가서 한국어 특별 시험을 보고 다시 한국에 오려고, 겨울 옷과 이불을 사장님 집에 맡기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해에는 한국어 특별 시험 계획이 없었고 결국 한국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프놈펜 외곽의 의류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19> 한국의 농한기에 잠시 돌아온 고향, 어머니의 생일 잔치. (촬영: 우춘희)
19. 겨울에는 농장의 일이 많지가 않습니다. 이 때,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돌아가서 1-2달 지내고 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캄보디아에서 약혼식과 결혼식을 하기도 하며, 어머니 생일 잔치를 마을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성대하게 치르기도 합니다. 사진에서처럼 생일을 맞이한 어머니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 또한 빌기도 합니다.
<20> 이주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무지개가 펼쳐지길. (촬영: 우춘희)
20. 이주노동자들 모두는 자신만의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조금 더 나은 곳이 있을까 하여 까치발을 딛고 기웃기웃 해봅니다. 우리 모두 그렇듯이. 이들의 머리 위에 고운 무지개가 드리우길 바랍니다.
※이 기사는 필자가 서울시 청년허브 공모연구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이동의 제한이 이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또한, 마크장학금(Dr. Charles Mark Scholarship) 덕분에 캄보디아에서 현장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춘희 | 2021/05/31 ⓒ 일다
한국사회 구성원인 이주농업노동자들의 얼굴과 목소리
임금 안 주고 협박 “너 불법 만들어 버린다”
≪일다≫ 임금 안 주고 협박 “너 불법 만들어 버린다”
2015년 6월, 쓰레이응(가명, 20대 여성)씨는 22살에 한국에 왔고, 경기도 이천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했다. 2020년 4월, 캄보디아 출국을 앞두고 그녀의 발걸음
www.ildaro.com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한국 사회'의 사회적 약자다
"취약성의 윤리로 이주민을 억압하는 구조적 부정의에 맞서자"
지난 8일 수도권 집중폭우로 발생한 '반지하 참사'는 우리 사회에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서울시가 졸속으로 발표한 '반지하 주택 근절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더해지면서 지난 2주 간 사회적 시선은 반지하 주택에 집중되었다. 이 과정에서 반지하 거주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화될 우려가 커졌다.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단지 '열악한' 주거환경만이 아니다. 반지하 거주자라고 하는 부정적 사회정체성 역시 '낙인효과(Stigma effect)'를 통해 이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악화시킨다. 이는 많은 보건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이들에 대한 '표적화'된 정책 대응방식은 필시 낙인을 유발하고 고착화한다. 근시안적 대책 마련에 매몰되기보다 불평등 구조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대안 모색이 더 바람직한 접근인 이유다.
한편 이번 기후재난이 보여주듯 우리는 취약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 위기 앞에 취약한 존재이고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은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침수된 주택에 갇힌 이웃을 구조하는 이들의 모습은 “위기는 인간을 윤리적으로 만든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사실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가장 취약한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떠올리면 '취약성의 윤리'에 섣불리 희망을 걸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만든 법과 제도로 인해 극도로 취약해진 존재들이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다.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여러 차별적 형태의 제도들로 인해 이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속에 내몰려 있다. 직장 내 임금체불과 신체적, 언어적 학대, 성폭력이 만연해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은 더딘 실정이다. 이들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다.
건강권 보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주민의 의료보장률은 2020년 기준 77.1%로 거의 100%에 가까운 선주민들에 비해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바로 가기 : 국가인권위원회 7월 8일 자 실태조사보고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또한, 선주민보다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지역가입자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는 선주민 지역가입자들에 비하여 월등히 많다. 이주민들은 직장가입자가 되기 어려운 임시직·일용직의 불안정 고용노동자나 농·축산·어업 사업장에 고용된 이들이 많은데다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선주민의 평균 보험료 또는 그 이상을 부과하는 불합리한 보험료 산정 방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험료가 한번만 체납돼도 바로 급여를 중지하고 이후 완납해도 소급 적용하지 않는 점, 피부양자와 세대원 등록을 엄격히 제한하는 점,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경감·면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점 등 이주민 의료보장제도를 살펴보면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요소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4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체류 이주노동자들이 공적 의료안전망 바깥에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이 있지만, 지원대상자 선정 문제나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의 제한, 사업예산 부족 등으로 한계가 뚜렷한 실정이다. 민간 영역의 지원 사업만으로는 이 공백을 메우는 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등록 즉, '불법' 체류상태에서는 의료를 포함한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지원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만큼 더 크게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1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광복절 대통령 특별사면에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바로 가기 : 이주민센터친구 8월 2일 자 '[공동성명서] 미등록외국인 사면과 합법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하지만 서민생계형 형사범이나 장애인, 중증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면조치는 이뤄졌지만, 이들은 별다른 언급 없이 사면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사회적 약자이기는 매한가지라는 점에서 이주민들은 국가가 포용해야 할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도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관련 기사 : <주간경향> 1490호 '미등록 이주노동자 대사면 이뤄질까') 이들의 노동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제조업과 농업 분야의 현실을 외면한 채 계속 불법 체류자 단속을 고집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필요를 위해 데려 온 이들을 합법화하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가 배제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사회의 건강보장제도 역시 배제된 이들의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건강보장제도는 결코 정의롭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하긴 우리 사회 전체가 이들에게 인간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인간적인 제도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에 따르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선주민과 이주민의 관계는 억압과 지배의 관계로 정의될 수 있다. 우리는 이주민을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주변화,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억압하고 있다. 또 이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이고 불합리한 제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인 지배와 억압의 체계를 종식해야 한다.
사람중심 관점은 편협한 국민의 경계를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정의롭고 평등한 건강사회를 만들어 갈 것을 요구한다. 강조하건대 국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이를 위해 먼저 정치적 대표 불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주민들에게 '정치적 성원권(political membership)'을 부여할 것을 주장하자. 아울러 이들에 대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하는 인종주의에 맞서자.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없애고 이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으려면 우리 각자 마음속에 이들을 열등하고 위험한 존재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상호 성찰도 필수적이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폭로한 <깻잎 투쟁기>(우춘희 지금, 교양인 펴냄)의 책 소개글은 "그 많은 깻잎은 누가 다 키웠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참고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만 즐겨 먹는 깻잎을 하루 1만 5000장 따기 위해 1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 스스로에게 "그 많은 깻잎은 누가 다 먹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우리의 풍족한 일상은 그들의 노동의 대가로 유지되고 있다. 선주민과 이주민으로서 우리와 그들은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는 인식이 심화되고 확산될 때 '취약성의 윤리', 그리고 '취약성의 정치'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시민건강연구소/ 프레시안 2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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