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의 만델라’ 콩데 기니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난 이유는?
사라진 고발사주 의혹, 언론의 프레임 전환 성공했나
생활비 스스로 버는 노인 57.7%…돌봄 필요 노인 112만3천명
3년간 아파트 10채 이상 사들인 다주택자 965명..한 명이 266채 싹쓸이도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0세 배당 부자’ 3년 만에 3.6배 늘어
규제 사각 노린 투기세력…3년간 ‘아파트 10가구 매입’ 965명
왜곡되는 청원 … 시민단체·이익단체 경연장으로 변질
너도 나도 받아쓴 ‘메타버스 시장 300조원’, 출처는 유령 보고서?
대장동 사건, 잘 터졌다
중국인·미국인에겐 사과... 왜 한국인에겐 안 하는데?
오세훈, 민관협치 몰이해…민간·공공 갈등전선 만들어”
"석열이 형" 논란의 본질
미국경찰이 죽인 시민, 1만 7천명 더 있었다
오세훈 공격에 시민사회 일어서나···“민관협치 10년, 만만치 않다”
김만배의 “좋은 형님들”…대장동의 ‘토건-법조 카르텔’
메르켈이 보여준 정치의 품격, 국민들은 왜 열광했나
검찰의 민낯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서아프리카의 만델라’ 콩데 기니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난 이유는?
‘민주화 영웅이자 독재자.’ 지난 5일(현지시간) 군사 쿠데타로 구금된 알파 콩데(83) 기니 대통령을 일컫는 별명이다. 콩데 대통령은 ‘서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로 불렸을 정도로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니 독재정권의 민정 이양 이후 당선된 첫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는 정권을 잡은 뒤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임기를 늘리고,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등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야당과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 세력을 옹호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니에서는 1958년 프랑스 독립 이후 줄곧 장기 독재와 군부 통치가 이어졌다. 1984년 아메드 세쿠 투레 전 대통령이 심장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하자 군인이었던 란사나 콩테가 대통령을 자임해 24년간 독재 정권을 이어갔다. 콩테가 사망하자 이번에는 대위였던 무사 다다스 카마라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임시 대통령이 됐다. 암살 당할뻔한 카마라는 결국 사임했고, 국방장관이던 세쿠바 코나테가 임시 대통령직을 이어 받아 1년간 재임한 후 2010년 민정으로 이양됐다.
콩데 대통령은 이러한 난세 속에서 태어난 민주화 영웅이었다. 기니 서부 보케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그는 흑인아프리카학생연합(FEANF)에 가입하며 기니 독립운동을 펼쳤고, 1977년 민주국민운동(MND)을 창설해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투레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앞장선 그는 1970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 인권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다음 정권이 들어서자 귀국했다.
그는 콩테 정권으로부터 견제를 받으며 1998년 구금됐다가 정계 은퇴를 조건으로 2001년 풀려났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권력이 민정으로 이양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됐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단체들은 수십년간의 부패하고 권위주의적 통치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수차례 암살을 당할 뻔한 콩데 대통령은 권력욕을 갖게 됐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 연임 제한 횟수를 2회에서 3회로 늘리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그가 지난해 10월 59.5%의 득표율로 3선에 당선되자 많은 시민들은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서아프리카 정치를 연구하는 미 정치학자 더글러스 예이츠는 “권력에 대한 견제자가 없어 그가 개헌을 단행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를 통해 권력을 잡은 그는 반정부 시위대를 잔인하게 탄압했다. 2013년 총선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평화시위를 벌이던 시위대에 총을 발포하는 등 폭력 진압을 벌였다. 당시 시위 주도세력이자 제1야당인 기니민주군연합(UFDG)은 경찰의 진압으로 46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2019년부터 개헌 반대 시위가 열리자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시위 참가자 수백명을 체포했다.
콩데 대통령은 집권한 10년간 기니의 빈곤도 해결하지 못했다. 기니에는 보크사이트, 철광석, 금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이 매장돼 있다. 하지만 정부 고위 관리들의 부패,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불안감 등으로 인해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콩데 대통령은 자신이 독재자의 행보를 걷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 24와의 인터뷰에서 3선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세력들을 두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다”며 “45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내가 반민주주의 독재자로 여겨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고 말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기니 군부가 코나크리의 대통령궁에 입성한 지난 6일(현지시간) 기니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군부 세력을 반기고 있다. 코나크리|로이터연합뉴스
결국 마마디 둠부야 사령관을 필두로 한 군부 세력은 지난 5일 콩데 대통령을 구금하고 기존 정부를 해체했다. 둠부야 사령관은 쿠데타 직후 “우리는 더 이상 한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지 않을 것이며 국민에게 정치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군부는 콩데 정권에 의해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들을 석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콩데 대통령의 독재에 질린 일부 시민들과 야당 세력은 쿠데타를 반겼다. 셀로 데일린 디알로 UFDG 대표는 쿠데타를 “우리 국민의 승리이자 독재 정권의 실패”로 규정하고 군부 세력의 과도 정부 구성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쿠데타 소식이 들려오자 일부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군부세력을 환영하기도 했다. 한 기니인은 “쿠데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통령은 민주적 투표로 선출되어야 하는 것도 안다”며 “하지만 권력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는 늙은 대통령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쿠데타 이후 기니의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군부 세력이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기니에서는 콩데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그를 옹호하는 시민들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말리, 니제르, 차드 등 지난 1년여간 쿠데타 시도가 일어난 서아프리카의 정세도 더욱 불안해진 상황이다.
경향 윤기은 기자
사라진 고발사주 의혹, 언론의 프레임 전환 성공했나
‘조선’은 어떻게 ‘고발사주’ 프레임을 무마시켰나
초기 사건 외면하다 제보자 공격, TV조선 보도 이후 ‘박지원 정치공작설’ 꾸준히 주장
여론조사 결과 공작설 찬반 여론 중도층에서도 팽팽, 정치적으론 ‘공작설’ 성공
뉴스버스가 지난 2일부터 보도한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사건이 주요뉴스에서 흔적을 감췄다. 이유는 세 가지다. ‘고발사주’ 의혹 관련 당사자들이 관련 의혹을 부인하면서 언론보도로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어려워 수사기관의 공으로 넘어간 측면이 있고, 새로운 논란인 대장동 개발 관련한 사건이 주목을 끌고 있어서다. 또한 ‘고발사주’ 사건을 ‘제보사주’, ‘박지원 정치공작설’ 등 여권발 공작 프레임으로 전환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고발사주’ 사건은 ‘윤석열 검찰’-손준성 검사-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조성은 당시 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을 거쳐 고발장이 당에 흘러갔고, 해당 고발장 중 일부가 실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고발장에 쓰였다는 의혹이다. 뉴스버스가 ‘윤석열 검찰’로 표기하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주목받긴 했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와 같은 표현이다. 이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직접적인 개입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사건 초기 윤 후보의 모범답안은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관련자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내 관리책임에 대해 사과드린다. 향후 윤석열 정부 수사기관에서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 정도다. 하지만 윤 후보는 뉴스버스를 ‘메이저언론’과 대비되는 ‘인터넷매체’라 폄하하며 흥분한 모습을 보여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 당시 여타 매체와 달리 조선일보는 1면과 사설에서 이 소식을 다루지 않으며 사건을 사실상 외면했다. 그러다 지난 6일 “‘윤석열 고발 의혹’ 최초 제보자 누구였나 논란”이란 기사를 통해 제보자가 누구인지로 논점을 전환하려 했다. 이후 기자들의 추적으로 제보자 조성은씨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만 해도 야권 내부의 일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야권과 여권 사이에 전선을 만들었다. 7일 조선일보는 “윤석열 의혹 규명, 親정권 한동수가? 못믿겠다”란 기사에서 한 현직 검사의 주장을 인용보도했다. 또한 대검이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만든 것에 대해 ‘친정권 인사인 한동수 감찰부장의 야권의 대선주자 공격’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지난 9일 보도했다.
9월10일자 TV조선 보도 화면 갈무리
결정적인 분기점은 ‘조성은씨가 제보 이후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났다’는 내용의 지난 10일자 TV조선 보도였다. 이때부터 고발사주 의혹이 아닌 박 원장이 조씨에게 제보를 사주했으며(제보사주) 결국 여권, 국정원의 정치공작(박지원공작설)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박 원장과 조씨는 각각 둘의 만남이 이번 사건의 제보와 관련 없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등과 야권이 제기한 의혹처럼 만약 박 원장이 조씨에게 언론제보를 사주했다면 박 원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있지만 이 사실이 ‘윤석열 검찰’-손준성-김웅-조성은-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흔들진 못한다. 조씨에 대한 추궁이나 비판 역시 마찬가지다. 조씨가 다른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제기된 의혹이 거짓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TV조선 보도는 금요일 밤이었다. 다음주 월요일 13일자 조간에서 조선일보는 1면에서 “與보좌관 출신 검사가 윤석열 수사”란 기사를 통해 윤 후보에 대한 수사가 정략적이라는 보도를 이어갔다. 윤 후보는 마치 피해자처럼 비쳤다. 이날 정치면에선 박 원장과 조씨, 조씨와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의 연루설에 대해 각각 보도했다.
▲ 조선일보 13일자 정치면
조선일보는 이후에도 고발 사주 의혹이 아니라 박 원장과 조씨에 대한 소식을 꾸준히 전했다. 이는 현재 여권 인사로 분류되는 박 원장이 야권 후보인 윤 후보를 공격한다는 이미지를 강화했다.
오피니언면에서도 이 사건을 여야의 정치공방처럼 만들며 야권의 단결을 주문했다. 지난 13일 류근일 칼럼에선 “국민의힘 각파와 자유 진영 부족들도 이젠 정신 좀 차렸으면 한다”며 “적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칼럼의 부제는 “좌파의 ‘윤석열 죽이기’에 자유주의 진영 정치인들 단결해 맞서 싸워야”였다.
14일 김대중 칼럼 “어떤 매든 꿩 잡으면 된다”에선 ‘고발사주’ 의혹의 진원지가 야당 내부일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렇다면 ‘새 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득권 정치가 다시금 작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다른 야당 후보와 단일화 못하고 내부 단결 못하면 경선은 아무 의미 없는 개싸움이 되고 만다”고 우려했다. 경선 과정에서 윤 후보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파괴적으로 가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의혹 초기에 침묵하던 ‘조선’이 제보자(메신저)에 대한 공격, 박지원 원장의 공작설, 국정원을 포함해 수사기관을 이용한 윤석열 압박 등을 주장하며 시도한 프레임 전환은 야권 지지층에겐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대응논리를 제공했고, 거대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층에는 정략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 14일 조선일보 정치면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4일 전국 만 18세 남녀 1000명에게 실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고발사주 의혹이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에 대해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공감한다”(42.3%)와 “공감하지 않는다”(43.7%)는 응답이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p) 내에서 팽팽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공감 비율, 민주당 지지층에선 비공감 비율이 각각 높았다. 중도층에선 공감(45.9%)과 비공감(41.3%)이 비슷했다.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야권에서 제기한 ‘정치공작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최근 하락하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멈추거나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안이 ‘고발사주’와 ‘공작설’로 맞서면서 이에 대한 판단도 진영별로 나뉘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론 ‘공작설’ 프레임이 성공한 셈이다
이제 공은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은 공공수사1부에 이 사건을 배당해 수사 중이다. 고발장의 작성자는 누구인지, 대검 간부가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넘겼는지, 윤 전 총장이 작성에 관여했는지 등이 관건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를 11월5일 확정하는 가운데 검찰은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 17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사진=윤석열 캠프
조선일보가 고발사주 의혹 관련해 가장 최근에 다룬 사설은 17일자 “野 후보 죽이기 경쟁, 공수처·법무부 이어 대검·중앙지검·경찰 가세”였다. 조선일보는 “윤 전 총장이 고발을 사주한 것이 맞는지, 아니면 반대로 정권 측이 의혹 제보를 사주하는 것이 맞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야당 대선 주자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대한민국 수사기관이 전부 다 나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결정될 때 검찰이나 공수처의 기소여부가 결정되더라도 수사기관의 편파성을 계속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혹 윤 후보가 기소되더라도 재판이 제대로 시작되기 전 대선은 끝이 난다.
새로운 사실관계가 나오지 않는 이상, 고발사주 의혹의 정치적 역할은 수명을 다했다.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르면 이날 조성은씨를 불러 조사한다는 동아일보 기사 외엔 보수성향 신문에서 ‘고발사주’ 관련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미디어오늘
생활비 스스로 버는 노인 57.7%…돌봄 필요 노인 112만3천명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하는 60살 이상 노인의 비중이 57.7%로 절반을 넘었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남자 비중도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고 모든 연령대에서 비혼 인구 비중이 증가했다.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 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인구·가구 기본항목’(2020년 11월1일 기준)을 보면, 60살 이상 고령자 인구 1203만4천명 가운데 694만3천명이 본인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중으로 치면 2010년 44.6%→2015년 49.7%→2020년 57.7%로 지난 10년 사이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본인이 스스로 마련하는 생활비 원천에는 본인·배우자의 일, 금융자산, 공적연금, 개인연금, 부동산 등 실물자산 등이 포함된다. 한국은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인 동시에 노인빈곤율(43.4%·2018년 기준)이 가장 높은 나라다.
자녀의 도움이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보조로 생활하는 고령자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타인에게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비중은 2010년에는 41.1%에 이르렀으나 10년 만에 11.2%포인트 떨어진 29.9%로 나타났다. ‘본인과 타인’에게서 동시에 생활비를 충당하는 고령자 비중도 2010년 14.3%에서 2020년 12.4%로 줄었다.
나이가 늘어날수록 ‘본인과 배우자의 일·직업’으로 생활비를 버는 비중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여전히 일을 놓을 수 없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60살 이상 노인 가운데 본인과 배우자의 일·직업으로 생활비를 버는 비중은 2010년 20.9%→2015년 23.4%→2020년 26.8%로 점차 늘어왔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70∼74살 노인의 17.3%가 본인이나 배우자의 일을 통해 생활비를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75∼79살은 8.7%, 80∼84살은 3.9%, 85살 이상은 1.7%가 생활비를 본인 또는 배우자의 일과 직업을 통해 벌었다.
노인 소득만큼이나 ‘노인 돌봄’도 개인의 몫이었다. 걷거나 계단 오르기, 옷 입기, 목욕하기 등에서 활동 제약을 겪는 60살 이상 고령자 인구 223만명 가운데 112만3천명은 돌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63만1천명은 요양보호사와 주간보호시설에서 돌보고 있지만, 33만2천명은 배우자·자녀·자녀의 배우자·친인척 등 가족 내에서 돌보고 있다. 돌봄이 필요하지만 돌볼 사람이 없는 노인도 11만1천명에 이른다.
한편 비혼 인구와 이혼 인구가 함께 늘어나는 등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도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15살 이상 인구 4395만8천명 가운데 이혼은 254만5천명으로 전체의 5.8%를 차지했는데, 5년 전과 비교하면 0.7%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배우자있음은 55.9%로 5년 전과 같았고, 사별은 0.4%포인트 감소한 7.2%였다. 비혼은 15∼19살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구성비가 2015년 31.3%에서 2020년 31.1%로 0.2%포인트 감소했다.
실제 비혼 추세를 볼 수 있는 연령별 비혼인구 비중은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했다. 특히 30대 비혼 인구 비중은 42.5%로 5년 전보다 6.2%포인트 증가해 오름폭이 가장 컸다. 30대를 성별로 나누어 보면, 남성은 비혼 비중이 50.8%로 처음으로 과반을 넘었고 여성은 비혼 비중이 33.6%로 나타났다. 40대도 비혼 비중이 17.9%로 5년 전보다 4.3%포인트 늘었고, 50대는 7.4%로 5년 전보다 2.5%포인트 증가했다.
여성의 경우 교육 수준이 비혼 비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 30살 이상 여성 가운데 비혼 인구 비율은 10.4%로 5년 전보다 1%포인트 늘었는데,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비혼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여성은 7.4%만 비혼인데, 2·3년제 대학교 졸업자는 16.5%, 4년제 이상 대학교 졸업자는 20%가 비혼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여성의 비혼율이 22.1%로 가장 높았다.
남성은 2·3년제 대학교 졸업자까지는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비혼율이 늘었지만, 4년제 이상 대학교 졸업자 이상으로는 비혼율이 줄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성은 19%가 비혼이었고, 2·3년제 대학교 졸업자의 비혼율이 27.3%로 가장 높았다. 4년제 이상 대학교 졸업자는 23.1%, 대학원 졸업자는 11.8%였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3년간 아파트 10채 이상 사들인 다주택자 965명..한 명이 266채 싹쓸이도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강화에도 최근 3년 동안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다주택자가 96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한 명이 3년 동안 266가구를 매입한 ‘싹쓸이 매수’ 사례도 있었다.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아파트 10가구 이상 매입한 개인 및 법인현황(2018년 7월~2021년 7월)’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에 걸쳐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은 965명으로 총 1만6932가구를 매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법인의 경우 938개 법인이 아파트 3만5790가구를 사들였다.
사례별로 보면 최근 3년 동안 가장 많은 주택을 사들인 개인의 매수 건수는 266가구에 달했다. 10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은 5명, 20가구 이상 매입한 개인은 217명으로 집계됐다. 법인의 경우 최다 매수 건수는 6588가구였다. 100가구 이상 사들인 법인은 총 45개였다.
3년 동안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의 매수 건수를 연도별로 나눠보면 2019년 5109건, 2020년 4696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5047건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매수된 건수보다 많다. 정부가 지난해 ‘7·10 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강화 등 다주택자 규제에 집중했지만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수 건수는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지방이나 저가 아파트로 투기 수요가 쏠린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한다. 정부가 지난해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자 취득세 중과 등에서 제외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로 매수세가 집중됐다. 특히 지방의 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외지인의 갭투자가 늘어나며 가격불안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규제지역으로 집중되다보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비규제 지역이나 중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투기 수요가 이동할 ‘틈새’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임대 목적인 주택 매수가 늘어났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 의원은 “최근 집값 상승에 기대 시세차익을 노리고 단기간에 아파트를 집중 매입하는 개인과 법인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는 다주택자와 법인의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경향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0세 배당 부자’ 3년 만에 3.6배 늘어
미성년 자녀에게 자산소득을 증여하는 ‘부의 대물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 활황을 틈 탄 조기 증여는 계층간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을 키우기 때문에, 과세당국이 ‘부자 절세’로 포장한 탈루와 편법증여 등에 대해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주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6~2019년 미성년자 배당소득 및 부동산 임대소득 현황’을 보면, 2019년 귀속 기준 배당소득을 신고한 0~18세는 총 17만2942명으로, 이들이 신고한 배당소득은 모두 2889억32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연간 기준 역대 최대로, 1인당 평균으로는 167만원이다. 특히 태어나자마자 배당소득을 벌어들인 0세는 427명으로, 2016년 118명에 비해 3.62배에 달했다.
부동산 임대소득의 경우 2019년 귀속 기준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미성년 임대소득자는 2842명으로, 연간 기준 역대 가장 많았다. 이들이 벌어들인 임대소득은 총 558억81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1966만원에 달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세정책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김 의원은 “조부모가 손주에게 증여하는 ‘세대생략 증여’ 또한 건수와 금액이 최근 5년간 2배 가까이 늘어났다”며 “이는 자산 가치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산세를 내더라도 조기증여를 하면서 증여 절차를 한 번 줄이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양극화가 확대된 만큼 지난해와 올해 ‘부자 절세’를 가장한 미성년 자녀의 배당·임대 소득 증여 규모는 과거보다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탈루와 편법 증여를 더욱 철저히 검증하고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 안광호 기자
규제 사각 노린 투기세력…3년간 ‘아파트 10가구 매입’ 965명
올해 1~7월, 지난해 총 수치 추월
266가구 ‘싹쓸이 매수’한 사람도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강화에도 최근 3년 동안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다주택자가 96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한 명이 3년 동안 266가구를 매입한 ‘싹쓸이 매수’ 사례도 있었다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아파트 10가구 이상 매입한 개인 및 법인현황(2018년 7월~2021년 7월)’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에 걸쳐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은 965명으로 총 1만6932가구를 매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법인의 경우 938개 법인이 아파트 3만5790가구를 사들였다.
최근 3년 동안 가장 많은 주택을 사들인 개인의 매수 건수는 266가구에 달했다. 10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은 5명, 20가구 이상 매입한 개인은 217명으로 집계됐다. 법인의 경우 최다 매수 건수는 6588가구였다.
3년 동안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의 매수 건수를 연도별로 나눠보면 2019년 5109건, 2020년 4696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5047건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매수된 건수보다 많다. 정부가 지난해 ‘7·10 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강화 등 다주택자 규제에 집중했지만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수 건수는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지방이나 저가 아파트로 투기 수요가 쏠린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한다. 정부가 지난해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자 취득세 중과 등에서 제외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로 매수세가 집중됐다. 특히 지방의 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외지인의 갭투자가 늘어나며 가격불안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규제지역으로 집중되다보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비규제 지역이나 중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투기 수요가 이동할 ‘틈새’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임대 목적인 주택 매수가 늘어났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박 의원은 “정부는 다주택자와 법인의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 김희진 기자
왜곡되는 청원 … 시민단체·이익단체 경연장으로 변질
의원이 청원 … 자신 법안 조속 통과 요구하는 청원 소개
높은 문턱·심사 후순위 … 국회 외면, 국민 등 돌리나
일반 국민들에게 폭넓게 열려야 하는 국회 청원이 조직력을 갖춘 시민단체나 이익단체의 전유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낸 법안을 통과하도록 요구하는 청원을 소개하기도 하고 국회의원이 직접 청원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반 국민들의 입법 참여라는 취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국회에 제출하는 청원 문턱이 높게 유지돼 있는 데다 어렵게 제출된 청원이 제대로 심사가 안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10만 명 동의로 상임위에 상정'되는 전자 청원인 국민동의청원 역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면서 조직력 과시용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당, 플랫폼 반독점 운동본부 현판식│정의당 여영국 대표(왼쪽 세번째 부터), 배진교 원내대표 등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플랫폼 반독점 운동본부 현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2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이달 23일까지 1년 4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들어온 청원은 모두 65건으로 이중 9건만 처리됐으며 56건이 계류 중이다.
청원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0년5월말부터 시작한 16대 국회에서는 같은 기간 315건의 청원이 들어왔지만 17대엔 207건, 18대엔 101건으로 줄었고 19대와 20대엔 각각 97건, 95건으로 위축됐다.
청원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원을 찾아가 서명(소개)을 받아야 청원 접수가 가능하다. 인터넷으로 국민동의를 받는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안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내야 상임위에 접수된다.
이를 넘어서더라도 장기간 제대로 심사되지 않고 폐기돼 '청원 효용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청원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생략되기 일쑤다.
상정도 안되고 논의 한번 이뤄지지 않은 청원이 수두룩하다. 이연국씨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에 관한 청원은 국민동의청원으로 지난해 7월 7일에 10만 명의 지지를 받아 법사위에 제출됐지만 1년 2개월이상 지나도록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8일 문진석 의원 소개로 접수된 함석인씨의 '군 휴가 중 폭행사건 관련 보훈혜택 부여에 관한 청원'은 같은 해 9월 21일에 소위에 넘겨졌지만 단 한 차례의 논의도 없었다.
21대 국회 들어 청원소위는 회의록이 공개되는 15개 상임위에서 단 2번만 열렸다. 13개 상임위는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고 교육위(2020년11월4일)와 환노위(2021년2월4일)가 한 차례씩 청원을 안건에 올렸다. 물론 국회법에 따라 청원소위가 아닌 법안소위로 넘겨 논의하기도 하지만 이는 청원소위를 별도로 둔 취지에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일부 단체들이 자신들의 요구나 의견을 표출하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참여연대는 15건을 제출했고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위 법률지원단 홍세욱 변호사도 3건을 제출했다.
종교성 짙은 단체의 대표, 민주노총, 전교조에서도 단체의 힘을 활용해 의원소개를 받거나 10만 명 넘는 동의자를 얻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청원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국회청원 댓글부대를 모집하는 모 단체의 공지사항을 보게 됐다"면서 청원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에서는 유상범 의원을 통해 '김명수 대법원장 탄핵 소추에 관한 청원'과 '제헌절 공휴일 지정에 관한 청원'을 내놓았다.
박대출 의원은 김한나씨의 '박대출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조속 통과 요청에 관한 청원'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주현 외 99명은 김윤덕 의원의 소개로 김 의원이 제출한 장애인보청기 사용환경 개선을 위한 관련법을 개정해달라는 청원을 제출했다. 곽상열씨는 서영교 의원의 소개로 재외국민들의 우편투표를 허용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를 담은 청원을 제출했다. 서 의원을 비롯해 여야 다수의 의원들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송언석 의원 등 2만2953명은 윤두현 등 60명의 의원 소개로 송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 김천시에서 코로나19를 치료하다 사망한 고 허영구 원장에 대해 의사자 지정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했다. 사단법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는 이낙연 의원의 소개로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을 낼 수 있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국민동의청원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청원을 할 수 있게 됐지만 10만 명의 동의를 받는 것은 조직적인 움직임이 절실해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는 시민단체나 이익단체들이나 가능하며 일반인들이 30일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민동의청원이 의미있는 참여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국회의 충실한 심의와 입법에 대한 반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너도 나도 받아쓴 ‘메타버스 시장 300조원’, 출처는 유령 보고서?
[포털 팩트체크]
출처 확인이나 정확한 수치 검증 없이 받아쓰고 보는 메타버스 전망 기사들
2021년 9월, 지구의 가장 뜨거운 지점은 디지털 지구, ‘메타버스’일 것이다. 개인부터 학교, 관공서와 기업까지 저마다 ‘현실의 확장판’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어느 유명 래퍼는 메타버스 공연으로 단 3일 동안 1년치 수입의 3분의 1을 벌었다고 하고, 비대면 시대를 맞아 졸업식과 입학식을 메타버스에서 열기도 한다.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 ‘마인크래프트’를 모르면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 취급받는다. 당장이라도 네이버Z ‘제페토’나 SK텔레콤 ‘이프랜드’에 사무실 하나쯤은 만들어둬야 할 기세다.
메타버스는 뜨거운 화제인 동시에 새로운 금맥이다. 게임 공간부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같은 혼합현실(XR)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게임을 아우르는 거대한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언론 보도도 연일 쏟아진다. 국내 기사에서 메타버스 시장을 얘기할 때 단골처럼 인용하는 자료는 두 곳이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컨설팅(PwC)이다. 기사에 소개된 주요 대목을 발췌해 보자.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올해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를 460억 달러(약 53조원), 2025년에는 2800억 달러(약 322조원)로 전망했다.”
“PwC는 메타버스 핵심 기술인 가상융합기술(XR) 시장이 2025년 4764억 달러(약 548조원)로 성장한다고 내다봤다.”
원화로 환산한 금액은 조금씩 다르지만, ‘2025년 2800억 달러’(SA), ‘2025년 4764억 달러(PwC)’란 수치는 모든 기사가 동일하다. 두 시장조사업체의 보고서 원문에서 발췌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지목된 시장조사업체, “그런 보고서 없다”
문제는, 국내 주요 기사들이 ‘메타버스 시장 규모'의 근거로 내세운 SA의 원본 보고서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SA 자료를 근거로 ‘메타버스 시장은 2025년 28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보도한 기사는 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한국경제 등 주요 일간지를 비롯해 KBS·한국경제TV 등 방송사, 국내 및 글로벌 기업 블로그와 경제경영서적에 이르기까지 100건이 넘는다(구글 검색 기준). 이 자료는 때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된다. 그렇지만 이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 원본 보고서를 밝히거나 링크로 연결해둔 기사는 한 건도 없다. 영문 웹문서를 검색해도 관련 수치가 제시된 보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메타버스 시장을 ‘2025년 2800억 달러’로 보도한 주요 기사들(구글 검색 기준).
출처로 지목된 SA도 보고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SA 한국사무소 박수진 이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들로부터 비슷한 문의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어떤 자료를 인용했는지 우리도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박수진 이사는 “메타버스를 다룬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보고서는 아직까지 없었다”라며 “기자들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블로그나 페이스북 포스트, 뉴스룸을 보고 인용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해당 기사에 인용된 수치는 아직까지 우리도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따로 언론사에 보고서를 공유하지는 않고 있으며, 숫자에 대한 확인 요청이 들어오면 보충 자료를 제공하는 경우는 있다”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SA 쪽에서 공식 채널을 통해 언론사에 공유한 메타버스 시장 관련 자료는 없다는 해명이다.
엉뚱한 보고서 ‘뻥튀기·복붙’으로 유령 시장 만들어
그렇다면 ‘메타버스 시장=2025년 2800억 달러’란 등식은 어디서 나왔을까. 짐작할 만한 자료는 있다. SA가 지난해 6월 발행한 ‘Short and Long Term Impacts of COVID-19 on the AR and VR Market(코로나19가 AR과 VR 시장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보고서를 보자. 비즈니스와이어는 이 자료를 근거로 AR과 VR 헤드셋을 포함한 XR 하드웨어 시장이 2025년엔 280억(28B)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수치가 국내 기사에 인용되며 ‘메타버스 시장’으로 바뀌고 예측 규모도 10배인 ‘2800억 달러’로 뻥튀기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볼 수 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코로나19가 AR과 VR 시장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보고서 속 XR 시장 예측 그래프(출처 :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XR 헤드셋’과 ‘메타버스 시장’은 엄연히 다른 범주다. 우리가 메타버스를 얘기할 때 흔히 드는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제페토나 이프랜드 같은 플랫폼은 XR와는 무관하다. 단순히 ‘XR 헤드셋’과 등치하기엔 범위도 넓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장이다. 페이스북이나 스페이셜 같은 기업이 VR나 AR 기반의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이는 메타버스란 큰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SA와 함께 등장하는 PwC 자료는 그나마 수치는 정확히 인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메타버스 시장’으로 치환하기엔 무리가 있다. 국내 기사가 단골로 소개하는 시장 전망 수치는 2019년 발간한 ‘Seeing is Believing(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AR와 VR는 비즈니스와 경제를 어떻게 바꾸는가’란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보고서는 엄밀히 말해 메타버스가 아니라 ‘AR·VR 시장’을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세계 AR·VR 시장 규모는 4764억 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AR가 3381억 달러, VR는 1383억 달러 규모를 차지할 전망이다. 보고서는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8개국별 시장 전망과 전체 시장 규모를 미국 달러와 영국 파운드화 기준으로 분석해 놓았다. 제조 및 서비스업, 유통업, 헬스케어 등 산업 분야별 전망치도 제시돼 있다.
▲PwC가 2019년 발간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보고서 일부. (출처 : PwC)
하지만 이 역시 AR와 VR 기반 산업 전망일 뿐, 메타버스 시장이라고 부르기엔 영역이 다르다. 해당 자료를 인용한다면 ‘메타버스 시장’이 아니라 ‘AR·VR 시장 전망치’라고 정확히 표기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보고서 외에 국내 주요 기사들이 소개하는 ‘메타버스 시장’ 자료는 아직까지 PwC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시장 범위에 대한 합의 선행돼야
애당초 메타버스 시장을 전망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란 지적도 있다. ‘메타버스’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엔 그 범위조차 아직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메타버스가 만드는 가상경제 시대가 온다’를 쓴 최형욱 라이프스퀘어 대표는 “메타버스라고 부르는 현상 안에는 AR, VR, 클라우드, 디지털트윈,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다양한 기술들과의 관계가 존재하며 영향을 미치는 산업의 스펙트럼 또한 매우 넓다”라며 “메타버스 관련 산업의 시장규모는 어떻게 범위를 정의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고 너무 광범위하기에 사실상 이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최형욱 대표는 또한 “해외 시장조사기관에서는 ‘AR·VR 관련 하드웨어 시장’이나 ‘가상현실 콘텐츠 시장 규모’ 등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국내 언론에서 이를 맥락 없이 가져다가 메타버스 시장 규모라고 소개하는 식으로 책임 없는 시장 예측을 남발하고 있다”라며 “메타버스가 잠재성과 기회가 큰 시장 트렌드임은 분명하기에, 더욱 근거와 논리를 기준으로 이 변화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희욱 기자 asadal@mediatoday.co.kr
대장동 사건, 잘 터졌다
[주장] 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 대장동 이익 9500억은 어디서 왔을까
▲ 2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일대 모습. 대장지구 개발 사업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이희훈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나라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이 사건이 잘 터졌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 진정한 토지공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사건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현재 1등을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 제기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어느새 그동안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개발사업의 비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이익을 누가 독차지했는지를 온 국민이 학습하는 기회가 됐다.
대장동 사건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2005년부터 LH의 공영개발로 진행되고 있었던 대장동 개발사업은 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수상한 발언과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신영수 국회의원의 개입으로 2010년 6월에 민간개발로 전환된다. 그러던 이 사업이 같은 해 성남시장이 된 이재명 지사에 의해서 공영개발로 재전환되지만, 당시 1조 원이 넘는 막대한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고 대규모개발 경험도 없었던 성남시는 결국 위험 부담 없이 상당한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민관공동개발 방식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5503억 원의 개발이익을 회수한다. 물론 여기에 참여했던 민간사업자들도 4040억 원의 개발이익을 얻게 된다.
민간사업자가 40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의 개발사업에서만 이렇게 많은 이익이 생겼다면, 그동안 숱하게 진행되었던 '대장동들'에서 발생한 이익의 규모는 대관절 얼마였고 그걸 대체 누가 가져갔는지 생각하면서, 절망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열심히 직장을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며 일했던 평범한 사람들은 삶을 영위할 맛이 뚝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 개발사업과 관련된 법조인들·정치인들·기업인들·언론인들의 부패 카르텔을 낱낱이 파헤쳐 범법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도대체 왜 토지개발사업은 천문학적인 이익이 날 뿐만 아니라 부패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이익을 누구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정당한지를 되물어야 한다.
사건의 본질 : PFV? AMC? 우선주와 보통주?... 생소한 단어에 속지 말아야
▲ 2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에 위치한 "화천대유" 사무실이 A4용지로 가려져 있다.ⓒ 이희훈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대체 대장동 사업에서 만들어진 이익 9500억 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토지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이다. 곽상도의 아들이 퇴직금으로 받았다는 50억 원도 토지에서 발생한 불로소득이다. '화천대유'가 가져간 500억 원이 넘는 배당금 이익도 토지 불로소득이다.
농지나 그린벨트 지역이었던 대장동 땅을 주택과 상가를 지을 수 있는 택지로 전환하면, 그리고 그곳이 교통의 요충지로 변모하면 땅값은 수직 상승한다. 더구나 부동산 투기 바람이 거세게 불면 택지로 전환된 토지의 가격은 더 크게 상승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바로 대장동 개발사업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땅값 상승에 개발사업자가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땅값 상승의 원인은 정부가 토지 용도를 전환해준 것과 도로와 기반 시설을 통해 만든 위치 변화다. 그런 까닭에 개발이익을 토지 불로소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평소에 듣지 못했던 PFV(Project Financing Vehicle,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AMC(Asset Management Company, 자산관리회사), 컨소시엄, 자본금과 투자금, 우선협상대상자, 우선주와 보통주 등과 같은 금융조달방법과 개발회사의 의사결정 방식 등을 통해 엄청난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본질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다. 개발사업에 참여한 정체불명의 회사들과 거기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이 누린 천문학적 이익은 전부 토지에서 나온 것임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민간 토지를 수용해서 진행하는 개발사업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불로소득 환수형 공영개발'로 전환하면 된다.
개발로 인한 토지 가치 상승분, 즉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용·조성한 택지를 최대한 시장가격에 가깝게 붙여서 파는 방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택지를 공공이 보유하면서 임대료를 적정하게 받고 임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첫 번째 방식은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을 한꺼번에 환수할 수는 있지만, 일단 택지를 건설사든 개인이든 민간에 팔게 되면 그 땅은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개인이 사유화할 수 있는 길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두 번째 방식을 제대로 실행하면 토지 불로소득을 지속적으로 환수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투기도 사라진다. 개발에 필요한 자금 조달과 회수를 걱정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해결 가능하다. 왜냐하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발행한 채권과 같은 투자금의 이자보다 토지임대료가 높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상승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운영하면 원금 상환은 시간 문제고 나중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개발을 둘러싼 부패와 비리가 끼어들 여지도 사라진다.
이렇게 조성한 택지에 엄청난 빚을 지지 않아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과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적은 돈으로도 자기 건물을 소유할 수 있는 토지임대부 분양상가를 공급하면 된다.
헌법정신 : 민간에게서 수용·조성한 택지를 팔지 말라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난 3월 9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LH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유성호
무엇보다 수용·조성한 택지를 매각하지 않고 임대해야 하는 이유는 매각이 헌법 정신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서 '수용'이지 수용의 본질은 민간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개발예정지구에 속한 토지는 재산권의 3종 세트인 사용권과 수익권과 처분권에 제약이 가해진다. 건물을 짓는 생산 활동을 하기 어렵고, 처분 시기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으며, 공공에 팔아도 원하는 만큼의 값을 받지 못한다. 이와 같은 재산권 제한의 근거는 헌법 제23조 3항에 나오는 '공공의 필요'다. 토지수용에 있어서 '공공의 필요'란 무엇인가? 국민 전체가 이용하는 도로·학교·공원 등과 같은 공공시설 설치와 국민의 주거안정이 공공의 필요라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헌법은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이다.
그런데 수용해서 조성한 택지를 팔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공공의 필요'의 취지는 그 즉시 상실된다. 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사가 그 위에 집을 지어 팔든, 상가를 지어 팔든 간에 일단 그 토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고 그 이익을 국민 일반이 아니라 건설사와 최초 분양자와 그 이후에 소유자만 누리게 된다. 이런 과정을 잘 아는 토지 피수용자에게는, 이 개발사업이 공공이 자신의 땅을 싼값에 사서 결국 건설사와 최초 분양자만 떼돈을 벌게 해주는 사업으로 보일 뿐이다.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개발회사와 건설사는 뭘 먹고 사냐고. 답은 간단하다. 다른 일반회사처럼 부가가치 창출 기여분을 누리면 된다. 택지 조성에 참여한 회사는 조성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고 적정한 이익을 누리면 된다. 만약 개발회사가 공공을 대신해서 '수용' 작업을 하면 업무추진 비용을 회수하고 적정한 이익을 누리면 된다. 건설사는 지은 건물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면 된다. 자동차회사가 자동차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처럼 말이다. 건설사가 땅을 꼭 소유해야만 택지 조성을 하거나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오히려 건설사가 토지를 소유하지 않으면 건물로만 이익을 누려야 하므로 건물 잘 짓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건물의 질은 올라가고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아파트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
▲ 국민의힘 김은혜, 송석준 등 "이재명 대장동 게이트 진상조사 TF" 의원들이 1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현장을 찾아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장동 사건은 이 땅에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 형성되고 완성된 부동산 공화국을 타파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게다가 민간사업자가 가져간 개발이익도 공공이 환수해야 한다는 데에 모든 국민이 동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온갖 금융기법이 동원되고 다양한 회사들이 참여해서 헛갈릴수 있는데, 어마어마한 이익은 토지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건물이 아니라 토지다. 건물은 낡아지고 시간이 지나가면 가치가 하락한다. 개발한 토지를 팔지 않고 임대하면 대장동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민간의 재산권까지 제한해서 수용한 땅을 팔지 말고 임대를 통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자.
이런 사업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도 할 수 있도록 금융조달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때로는 자금도 지원하자. 그리고 환수한 토지 불로소득은 전 국민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하자.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민간이 보유한 토지, 즉 주택과 건물이 깔고 있는 땅과 그 이외의 토지에서도 불로소득을 가장 잘 환수할 수 있는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고 세수 순증분을 전 국민에게 배당하자. 이런 세제 정책과, 개발사업에서 발생한 토지 불로소득을 온전히 환수해서 전 국민을 위해서 사용하는 불로소득 환수형 공영개발이 토지공개념의 길이자 부동산 공화국 혁파의 길이다.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남기업(namgiup)/ 오마이뉴스
중국인·미국인에겐 사과... 왜 한국인에겐 안 하는데?
[김종성의 히,스토리] 피해자의 국적에 좌우되는 미쓰비시 그룹
27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선고된 상표권 및 특허권 매각명령에 대해 미쓰비시중공업은 불복하고 있다. 이 법원 민사28단독 김용찬 부장판사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강제징용과 관련해 선고한 이 명령에 대해 미쓰비시는 '즉시 항고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발행하는 <에프엔엔 프라임(FNN Frime)> 온라인판 28일 자 기사인 "징용공 관련해 재판소가 처음으로 자산매각명령, 미쓰비시중공업 '즉시 항고한다'(徴用工"で裁判所が初の資産売却命令 三菱重工 即時抗告する)"는 "한국 최고재판소는 2018년에 미쓰비시중공업에 배상 지불을 명령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1965년 일한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며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 뒤 이렇게 보도했다.
이번 명령과 관련해 미쓰비시중공업은 '매우 유감이며 즉시 항고하는 외에 정부와 연락을 취해 적절한 대응을 하겠다'는 코멘트를 내놓았다.
강제 노역
이번 사건 당사자인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지난달 21일 자 기사 "'한국어는 적국의 언어'...일본의 향후 대응 시나리오"(http://omn.kr/1uwik)에서 소개했듯이 만 15세 때인 1944년 5월 '중학교에 진학시켜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유인에 넘어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해방 2개월 뒤인 1945년 10월 미쓰비시 측이 "고향집 주소를 알고 있으니, 틀림없이 월급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다른 원고인 김성주 할머니는 양금덕 할머니와 같은 해인 1929년 출생했다. 일제강점기 막판인 태평양전쟁(1941~1945년) 때 김성주 할머니 집안에는 불행이 연이어 찾아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942년에는 아버지가 경남 진해 비행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다. 뒤이어 어머니가 병을 앓고 세상을 떠났다.
15세 때인 1944년 5월에는 그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상황으로 내몰렸다. 동생의 일본인 교사인 오가끼가 부른다기에 가보았더니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며 '네가 원하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에 넘어가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에서 비행기 동체 철판을 절단하는 강제노역에 종사했다. 그해 12월 발생한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 때 그는 왼쪽 무릎뼈를 다쳐 평생을 고생했다.
▲ 1944년 6월경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10대 소녀들이 일본인 인솔에 따라 신사참배에 동원된 모습. 이들은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소녀 김성주가 일본에서 강제노역 하는 동안, 고향에서는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문제의 오가끼 교사가 1945년 2월 동생 김정주를 불러 '일본에 가면 언니도 만나게 해주고 중학교도 보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소녀 김정주는 일본 서해안 중간쯤인 도야마현의 '후지코시강재공업'으로 끌려가 비행기 부품을 제작했다.
두 자매는 이때의 한이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 법원을 찾았다. 언니는 1999년에, 동생은 2003년에 각각 미쓰비시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다. 하지만 외면당했다. 그래서 두 자매는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한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김성주 할머니는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해 그동안 미쓰비시의 국내 재산을 찾아 법적 수단을 강구해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번 매각명령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
미쓰비시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 협정에서 다뤄진 것이 무엇인가와 관련해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 제2조에 의해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하려면 이 협정을 통해 제공된 자금이 식민지배 해결에 투입됐어야 하지만, 그 자금이 그렇게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구권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대가관계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을 대법원은 거론했다.
청구권협정으로 불법적 식민지배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려면 '불법행위를 저질렀지만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는 양해가 이뤄지는 게 논리적이다. 가해자는 불법행위의 존재를 인정하고 피해자는 그 인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법원은 일본이 불법행위를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불법행위 채권이 양국 합의에 의해 소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일본 정부 당국자들 역시 1965년 11월 5일, 1993년 4월 6일, 1994년 3월 25일, 1995년 8월 27일 국회에 출석해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 포기는 본국의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다는 뜻이지 개인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공식 표명했다. 법적 책임이 없다는 미쓰비시의 태도는 이처럼 한국 대법원 판례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과거 발언과도 배치된다.
중국인에게 사과하고
그런데 미쓰비시가 모든 경우에 법적 책임을 회피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국적의 피해자들에게는 태도를 달리했다. 2007년에 일본 최고재판소가 '중국 정부가 청구권을 포기했으므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는데도 미쓰비시는 2016년 6월 중국인 피해자 및 유족 3765명에게 1인당 10만 위안(현재 환율로는 약 1800만 원)을 지급하는 데에 합의했다.
2007년 최고재판소 판결이 나온 뒤에 중국인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소송을 제기하자, 재판 도중에 위와 같은 합의를 했던 것이다. 금액이 형편없이 적기는 했지만, 미쓰비시가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미쓰비시가 주기로 한 돈은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배상금'은 아니었다. 보상금 명목으로 주는 돈이었다. 이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미쓰비시는 자사의 인권침해를 인정했다. 그에 더해 '깊은 반성'과 '심심한 사과' 등의 표현까지 사용했다.
1972년 9월 29일 중국과 일본은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 제5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위해서 일본국에 대한 전쟁 배상의 요구를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를 빌미로 2007년 판결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이런 것들에 관계없이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반성과 사과를 표하면서 소액이나마 보상금을 지급했다.
미국인에게도 사과했건만
▲ "미군포로 강제노역 진심 사과"… 머리 숙인 미쓰비시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19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동에 징용된 미군 포로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기무라 히카루(木村光) 미쓰비시 머티리얼 상무를 비롯한 회사 대표단은 이날 오후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 위치한 미국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 비젠탈 센터에서 징용 피해자인 제임스 머피(94)씨를 만나 머리를 숙였다. 2015.07.19 ⓒ 연합뉴스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 1년 전인 2015년 7월,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간 미쓰비시 그룹 관계자들이 고개를 숙이는 사건이 있었다. 미쓰비시 그룹 대표자들이 제임스 머피를 비롯한 미군 포로 출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표명했던 것이다.
미쓰비시는 "우리는 전쟁포로를 가장 심하게 착취한 기업 중 하나"라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90대가 된 머피는 "70여 년 동안 갈망해온 영광스러운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미쓰비시가 미국·중국 피해자들에게 보여준 태도 역시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는 그나마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국적을 봐가며 태도를 달리하는 악덕 기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세훈, 민관협치 몰이해…민간·공공 갈등전선 만들어”
희망제작소, 서울시 민관협치 좌담회
기존 협치제도 문제 있지만 일방적 매도는 문제
1일 희망제작소에서 ‘서울시 민관협치 이대로 좋은가’라는 긴급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송창석 희망제작소 이사,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 유창족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 등을 보이는 이는 사회자인 정창기 희망제작소 부소장. 김양진 기자
“사기업이 하면 ‘사업’이고, 시민단체나 지역공동체가 하면 ‘지원’인가?”
1일 희망제작소가 마련한 ‘서울시 민관협치 이대로 좋은가’ 긴급좌담회에서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이 한 말이다. 지난달 13·16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 민간위탁 사업을 두고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현금인출기(ATM)로 전락했다”며 비난하고 시민단체 위탁 사업들을 대폭 조정하겠다고 밝힌 데 따라 열린 이날 좌담회에는 김 소장을 비롯해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송창석 희망제작소 이사, 유창복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이 토론자로 나섞디. 이들은 기존 협치제도의 문제점이 일부 있지만 협치 자체를 부정하는 오 시장의 일방적 매도는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 시민사회 ‘지원’을 ‘시혜적인 지원’으로 포장”
김병권 소장은 오 시장의 ‘ATM기 비판’은 주민참여나 민관협치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나 교수 등 일부 엘리트 전문가들이 서울시가 직접 못하는 일들을 해오던 걸 (협치를 통해) 시민사회가 맡은 것인데, 이를 ‘사업수행계약’이 아니라 ‘지원’이라고 말한 건 사회에 국가와 시장만 존재하고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식 발상이며 매우 관료적이거나 엘리트주의적인 위험한 발상”이라며 “오 시장은 시민사회 ‘지원’을 마치 ‘시혜적 지원’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 시장이 마을공동체 사업을 비판하면서 인건비가 사업비에서 ‘절반씩이나 되는 건 비정상’이라고 했는데, ‘절반밖에 안되는 것’이 비정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김 소장은 이어 “서울시의 협치·혁신 정책이 잘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협치제도가 기존 부서의 자문기구나 의견 청취공간이라는 제약을 벗어하지 못했던 대목이 있고, 시민체감도도 기대만큼 높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오시장의 방향은 이런 비판을 뛰어넘는 명백한 후퇴”라고 지적했다.
“민간자리 관료에 돌려 민간-공공 사이 갈등전선”
송창석 이사도 “전임 박원순 시장의 혁신·협치정책이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도 “최근 오 시장은 사회혁신과 협치정책을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비난하고 있다. 객관적 평가와 점검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민간개방형 직위 대부분을 기존 관료들의 자리로 바꿔놓아 시 공무원을 ‘우군’으로 만든 뒤 시민단체를 ‘공격’하는 전선을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송 이사는 “서울시 관료집단의 자리보전을 위한 집단적 이해·욕구를 바탕으로 민간·공공 간에 새로운 갈등전선이 형성됐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달 16일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은 “나라와 시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을 뽑아 놓고도 시정을 직접 시민이 하게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고, 오 시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오 시장도 지난 13일 민간위탁 사업 감사 방침을 발표하기 직전 모든 직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담당 공무원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공무원 달래기에 정성을 들였다.
송 이사는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서로의 위치·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각자의 입장만을 고집한다면 협력을 바탕으로 한 협력의 민관 협치는 이룰 수 없고, 다가오는 재정위기와 고령화 사회 등에 대응할 수 없다. 상호 격려하고 더 협력하고 소통해 나가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시대의제인 협치는 진영 문제 아냐…더 강화를”
문석진 구청장은 “오 시장이 처음엔 협치를 해보려고 하더니 결국에 와서는 정치보복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민관 협치의 분배·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협치를 부정할 순 없다. 이미 주민들은 협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협치는 시대의제이고,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간 중앙·지방정부의 공공서비스에 불평·불만이 있으면 자판기를 흔들어 대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민영화·외주화로 공공서비스 체계가 전환됐고, 국가·시장이 해결 못하는 복잡·다양한 시민문제 풀고자 2010년 서울시를 중심으로 ‘시민이 행정에 참여하는 협치·혁신’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됐다”며 민관 협치가 태동하게 된 역사적인 과정을 설명했다.
문 구청장은 “물론 ‘소수만의 참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지방정부가 주민의 참여와 활동을 강화하도록 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대표성을 갖춘 시민참여 활동이 공신력을 갖추도록 지방자치법에 주민자치회 설치 등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 전 자문관은 향후 서울시 협치 정책이 ‘문제 해결형’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협치는 행정과 시민이 협력해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시민들이 참여해서 공동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며 “지역사회에 주민들이 좀더 공통으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많은 주민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과제를 스스로 성취해야 비로소 주민들이 품과 마음을 내서 앞으로 (협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석열이 형" 논란의 본질
[조성식의 통찰] 화천대유와 검찰패밀리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고색창연한 검사 선서문의 한 구절이다. 읽으면서 불편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검찰개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왜 이분법으로 재단하느냐고 화내지는 마시라. 그간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데 그 나름 이바지해온 검찰의 긍정적 기능조차 깔아뭉개려는 반검찰주의자의 논리는 아니니까. 이 논쟁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요즘 화제인 화천대유 문제를 들여다보자.
화천대유와 검찰권력
▲ 2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에 위치한 "화천대유" 사무실.ⓒ 이희훈
이 사태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검찰권력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형 비리 사건의 중심부에 종종 검사 출신들이 눈에 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검사 출신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조직에 있을 때 '명성'을 떨친 소수 인사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니까.
검찰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검사는 전체의 2% 남짓이다. 정원이 2200명이니 50명 안쪽이다. 이들은 주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법무부를 오가면서 특수, 공안, 기획 등 노른자위 보직을 차지한다. 재직 중 요직과 고위직에 오르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개업해서도 권력과 부를 누리며 평범한 변호사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과 관련해 '법조 카르텔'이라는 용어가 오르내린다. 사업 주체인 화천대유의 자문·고문 변호사로 활동한 법조인이 8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하나같이 검찰과 법원의 고위직 출신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대선주자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썩어 문드러진 대한민국 법조 부패 카르텔은 특검이 아니고는 밝힐 수 없다"고 일갈했다. 유승민 캠프 이수희 대변인은 윤석열 후보를 겨냥해 "화천대유 김만배 법조 카르텔의 동조자가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말이 법조 카르텔이지, 거론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검찰 카르텔'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을 빼고는 모두 검사 출신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검찰 카르텔은 내가 자주 쓰는 '검찰 패밀리'와 통하는 단어다.
검찰 패밀리는 검사 출신 변호사,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 등 검찰과 끈끈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정치권력의 정점인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 정부기관, 대기업, 대형 법무법인 등 이른바 힘쓰는 자리에 포진한 이들은 검찰권력을 공유하고 향유한다. 검찰의 든든한 우군으로서 유사시 '친정'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조국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내밀한 수사내용이 이들을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언론에 전달되기도 한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피의사실이나 예민한 개인정보 등을 흘리거나 공표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부분 검사 출신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도 기자 시절 그랬지만, 언론이 검찰 패밀리를 통해 수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일부 언론인은 단순히 수사내용을 받아쓰는 차원을 넘어 검찰 논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전파한다. 대체로 법조 출입 경력을 가진 기자들로, 범검찰 패밀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전‧현직 검사들과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면서 정치부나 논설위원실로 옮겨가서도 친검 논리를 펴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데도 한몫했다.
화천대유와 인연을 맺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모두 7명. 박영수 전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 김수남 전 검찰총장,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최순실 변호인으로 활약한 이경재 변호사,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김기동 전 부산고검장,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 하나같이 쟁쟁한 이력을 가진 검찰 패밀리다.
직원 10여 명의 작은 회사가 거액의 급여를 주면서 이 거물급 변호사들을 영입한 이유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한마디로, 해결사 노릇이다. 우리 사회의 실질적 지배권력인 검찰을 움직이는 힘과 인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 회사로부터 아들이 받은 '50억 퇴직금'으로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를 맞은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역시 검사 출신이다. 그것도 박근혜 정부 때 검찰을 뒤에서 조종하던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 성골 검찰 패밀리다.
'석열이 형' 논란의 본질
화천대유 설립자 김만배씨는 경찰에 출석하면서 이들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형님들로 대가성은 없었다"고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조언해주는 분들"이라면서 친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반은 틀리고 반은 맞는 말인 듯싶다. 전형적인 언론인 검찰 패밀리의 말투다.
▲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특혜를 받은 의혹이 제기된 화천대유자산관리의 최대 주주 김만배씨가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유성호
김씨는 머니투데이라는 언론사에서 오랫동안 법조 출입기자로 활약했다. 타 언론사 기자들이 연차를 떠나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알 정도로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법조 경력이 있는 모 언론사 중견기자는 김씨에 대해 "많이 설친 편이라 기자들 사이에서 종종 논란이 됐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김씨가 법조기자로 일할 때 윤석열 후보를 '형'으로 불렀다는 얘기는 그 진위와 별개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기자 출신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폭로'에 대해 윤 후보는 강하게 부인했다. 알고는 있지만 가깝지 않았고 외려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주장이다.
여권 지지자들이야 윤 후보와 김씨의 남다른 친분 여부에 관심이 쏠리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윤석열'이 아니다. 그런 의혹이 제기될 만큼 일부 법조 출입기자들과 검사들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석열이 형'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부 잘나가는 검사들과 관록 있는 기자들이 형-동생 사이로 지냈다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예방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일종의 정보공동체인 그들의 관계에서는 권력 냄새가 풍긴다. 검찰권력과 언론권력의 결합 말이다. 이는 오랫동안 검찰을 취재했던 내 경험으로도 확인되는 일이다. 검사들이 연루된 어떤 사건을 취재할 때 모 언론사 간부의 요청으로 검찰 간부와 회동한 자리에서였다. 주선자는 법조를 오랫동안 출입한 기자였다. 그는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화천대유 게이트는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 권력을 누리고 이권을 취하는 검찰 패밀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화천대유와 관련된 변호사들 중 일부도 해당하지만, 재직 중 재벌기업 비리를 수사했던 특수통 검사들이 옷 벗고 나와 재벌을 변호하면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부조리한 법조시장을 바꾸려면 검찰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정권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정치적 기획·표적수사로 생사람 잡거나 무리한 별건 수사로 실적을 올려 출세했던 검사들이 검찰 패밀리로 변신해 부와 권력을 누리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바꾸려면 검찰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결론은 검찰개혁
영화 <내부자들>이 현실이 되는 법조-언론 카르텔을 해체하려면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관건은 과도한 권한을 줄이고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검찰 힘이 약해지면 정권도 검찰의 칼을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멀어질 것이고, 정권에 잘 보여 출세하려는 정치검사 시비도 잦아들 것이다. 정보에 목마른 언론도 굳이 검찰과 유착할 필요가 없어질 테고.
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수사-기소 분리 추진에 반발해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윤석열 후보는 사직의 변에서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외쳤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지적으로부터 검찰은 자유로울까? 내가 보기에는 검찰의 유별난 조직이기주의와 지독한 제 식구 감싸기 탓에 헌법정신이 훼손되고 법치가 무너지고 정의와 공정이 왜곡되는데 말이다.
이건 검사 개인이 아닌, 검찰 조직의 문제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힘이 넘치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6대 주요 범죄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기소재량권 등이 말해주듯 검찰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구속영장을 칠지 말지를 결정하고, 큰 범죄로 실적을 올리려 작은 범죄를 덮어주고, 판사의 양형에 영향을 끼치는 구형량을 조절하고, 보석 결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형집행정지를 결정한다. 가장 큰 권한은 흔히 하는 말로, 죄를 덮어주는 것, 즉 기소하지 않는 권한이다. 화천대유 사건이 아니더라도,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의 몸값이 왜 그리 비싼지를 곱씹어봐야 할 때다.
▲ 언론소비자주권행동과 민생경제연구소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과 관련해 곽상도 의원과 아들 곽병채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업무방해죄,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곽 의원을 고발하고,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죄, 뇌물죄 등으로 윤 전 검찰총장을 고발했다.ⓒ 유성호
끝으로 언론에 의해 왜곡된 프레임 하나를 지적하고 싶다. 수사와 기소 분리는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는 게 아니라 시대정신에 맞게 더 적절한 수사기관으로 옮기려는 것이다. 검찰은 전문 기소기관으로 거듭나서 수사기관과 서로 견제하게 된다. 다만 추진과정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그야말로 국민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국민의힘 유력 대선후보 두 사람이 다 스타검사 출신이다. 이들이 친정인 검찰을 어떻게 바꿀 생각인지 궁금하다. 정권교체 열망과 검찰권력 비판 여론은 별개다./ 오마이뉴스
미국경찰이 죽인 시민, 1만 7천명 더 있었다
1980-2018 기간 미국의 NVSS에서 잘못 분류한 인종, 민족, 주별 경찰 폭력 사망자 비율. 랜싯연구소
미국에서 지난 40년간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미국인들이 정부통계보다 1만 7천명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1일(현지시간) 워싱턴대 연구팀이 미국 국가인구통계시스템(NVSS) 분석을 통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NVSS는 미국 연방정부가 전국 각지에서 발급되는 사망증명서의 정보를 취합하는 통계시스템이다.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팀은 1980년부터 2018년 사이의 NVSS 통계와 경찰에 의한 사망 사건을 추적하는 단체 및 언론 보도 사이를 비교했다. 그 결과 전자(NVSS)는 이 기간 경찰에 의한 사망자를 1만 4천명으로 집계했지만, 후자에서는 그 보다 1만 7천명이 많은 3만 1천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국가 통계에서는 경찰에 의한 전체 사망자의 55%인 1만7천명이 누락된 셈이다.
연구자 가운데 한명인 워싱턴대 그리스 머레이는 "대부분의 사망 원인에서, 의사가 작성한 사망 진단서는 일종의 황금률이다"며 "그러나 이 분야에서 자격증이 부족해 경찰의 폭력에 의한 사망자 수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누락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사망증명서를 작성하는 검시관과 경찰과의 밀접한 관계가 이 같은 통계 누락의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업무상으로 꾸준하게 접촉하는 관계인데다가 검시관이 경찰에 직접 고용된 지역도 있다는 것이다. 검시관 입장에선 경찰 폭력을 사망 원인으로 적시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고, 경찰로부터 사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 자체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사인을 숨기려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경찰 폭력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의 경우 해당 지역 경찰과 검시관이 마약과 기저질환을 사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이번 조사에서는 흑인이 경찰 폭력으로 사망할 확률이 백인보다 3.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오세훈 공격에 시민사회 일어서나···“민관협치 10년, 만만치 않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월16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바로세우기 가로막는 대못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문건을 흔들고 있다. 서울시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9월 시민사회에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3일 간격을 두고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시민사회를 비난했다.
서울시 일부 사업을 협동조합·비영리단체 등 민간에 맡기고, 서울시와 이들 사이에서 관리 역할을 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있는 구조를 두고 오 시장은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라고 말했다. 또 “서울시의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해갔다”라고 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8월26일 유튜브 계정 ‘서울시장 오세훈TV(현재 오세훈TV로 개명)’에 게시한 사회주택 비판 영상의 제목은 ‘나랏돈으로 분탕질 쳐놓고 스~을쩍 넘어가시려고?’였다. 서울시는 현재 사회주택·마을공동체 등 여러 사업을 두고 대대적 감사를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 역시 그들이 ‘민관협치 10년’이라고 부르는 시간에 일부 폐단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협치의 시든 잎을 골라내야지, 아예 뿌리를 뽑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며 오 시장에게 토론을 요구한다. 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희망제작소’에서 열린 ‘서울시 민관협치 이대로 좋은가’ 긴급좌담회는 그 논쟁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작은 정부+큰 공동체’를 지향한 민관협치
좌담회 참석자들은 우선 이 협치 체제에 대한 오 시장의 시각을 비판했다.
송창석 희망제작소 이사는 “2000년대 들어 유럽·북미 등 세계적으로 행정의 여러 한계와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지 논의하는 ‘소셜 이노베이션’ 흐름이 나타났다”라며 “영국 보수당 출신 수상 데이비드 캐머런이 2010년 주창한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정책의 취지는 정부 실패, 시장 실패의 대안으로서 사회를 부각시킨다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문제를 공동체 스스로 해결한다는 취지 아래 국가 영역을 사회로 이양해 ‘작은 정부’와 ‘큰 공동체’를 기대했다”라고 했다.
송 이사는 “그 틀에서 벌어진 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공유경제·도시재생 등 다양한 정책을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도입해 10년 정도를 지내온 것”이라며 “서울시가 선도적으로 해왔던 정책들이 일부는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제도화되기도 했고, 국민의힘의 대표적인 지역 기반인 대구광역시 같은 곳에서도 이런 협치 정책, 사회혁신 정책과 다를 바 없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라고 말했다.그러면서 “모든 정책은 당초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문제가 늘 나타나기 마련인데, (현재 오 시장은) 이를 진단하고 평가해서 수정·보완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반까지 허물어버리려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은 “보수·진보를 떠나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사회적 전진과 관련된 기조가 있고, 선출직 대표가 누구냐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달라 그것이 구현되는 방법에 다른 점이 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할 것”이라며 “하지만 오 시장은 이 두 가지 문제를 좀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 “오 시장은 마을공동체 사업에서 인건비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는데, 저는 ‘절반밖에 안된다’라고 비판하겠다”라며 “사람 간의 관계를 엮는데 인건비가 투입되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적 자본을 확대하는 일에 대한 개념이 헷갈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이 시장이다’ 내세워 주민자치회 시대로
참석자들은 오 시장이 지난 시정 체제에 대해 간과한 것을 ‘풀뿌리’, ‘참여’, ‘관계망’ 같은 열쇳말로 설명했다.
김 소장은 “한국사회엔 대단히 오랫동안 행정이 ‘탑다운(Top-Down)’으로 내려온 역사가 있었고, 누구나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지만 지방자치가 구체화된 지 30년이 되도록 실제 구현했던 사례가 거의 없었다”라며 “지난 10년 서울시정은 마을공동체 같은 것을 말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검증하고, 그것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효용성을 주민이 체감하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좌담회 발제문 ‘분기점에 선 협치와 혁신, 그리고 오세훈 시정’에서는 “주민생활의 인접공간에서는 마을공동체 운동, 청년운동, 사회적경제운동, 에너지자립마을, 도시재생 운동 등 공동체 기반 주민참여가 활성화됐다. 그 정점에 주민자치회 전환과 운영이 있다”라며 “주민자치회는 과거처럼 단순히 426개 동의 주민협의모임을 넘어 일정한 예산까지 지원하면서 주민총회를 통해 결정한 사안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왔다”라고 했다.
유창복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현 로컬연구소 대표)은 “지난 10년의 핵심 고민은 시민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쉽게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라며 “결과적으로 보면 성과를 거뒀는데, 이웃들이 동네에서, 골목에서, 동에서, 구에서, 심지어 서울시의 문제까지 각 단위의 현장에서 이웃들이 만나고 토론하는 관계망이 형성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자문관은 “내 문제가 이웃의 문제가 되고, 이웃의 문제가 동네의 문제가 되면서 공동성에 대한 감각을 깊게 갖는 계기가 됐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시민이 시장이다’란 슬로건으로 등장해서 집행한 지난 시정 10년 동안 공공성, 민주성, 자치성을 동네에서, 골목에서, 이웃과의 일상적 관계에서 싹틔운 게 협치 정책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현직 행정가 입장에서 구체적 정책 사례를 열거했다. 문 구청장은 “이미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지역주민들은 협치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라며 “저를 지지하지 않는 분들도 협치 분야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자신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데 그것을 왜 마다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적 사례로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을 활용한 주차공유서비스를 꼽았다. 협치 과정에서 공유경제 발상을 도입해 시도한 정책이란 것이다.
오 시장이 정면 비판한 사회주택도 혁신 사례로 들었다. 문 구청장은 “서대문구가 해온 것만 봐도 청년주택, 반려동물이 있는 공동체주택, 홀몸 어르신들을 위한 주택 등 성격이 다 다른데 (오 시장처럼)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일괄적으로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건 근본적인 성격을 모르는 것”이라며 “서대문구가 산 땅에 포스코가 지은 16가구 셰어하우스(공유주택) 관리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 위탁했는데, 그것은 이 청년단체가 청년의 수요를 훨씬 잘 알고 관리를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평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 유튜브 ‘은평구 주민자치회 의제발굴 과정 현장영상’ 갈무리.
■“오세훈이 아닌 주민들이 협치를 포기 못해”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달 16일 발표한 논평에서 “마땅히 공무원이 해야 할 일들을 협치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무분별하게 민간에 넘기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오 시장을 옹호했다. 시민사회가 말하는 협치는 오 시장 개인이 아닌 공무원 조직의 전면적 반발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들은 전망을 어둡게 보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협치의 토대가 아직은 탄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 구청장은 “진영논리나 정치적 계산에 의해 협치를 부정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며 “주민들이 이미 협치의 효능을 굉장히 잘 알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민사회가) 회계 투명성 장치를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올가미에 걸려들 수 있다”라며 “(지자체가) 민간위탁 업체에 회계감사 비용을 주는 등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사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보강이 좀 더 필요하다”라고 했다.
김 소장은 “‘시민이 시장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이런 것은 사실 정치적인 컬러(색채)에 따라서 바뀔 수 없는 문제”라며 “지난 10년 동안 기존 시장과 달리 뭔가 그랜드한 마크, 상징이 되는 업적이 딱히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3선을 한 것은 작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시도들을 서울시민이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 전 자문관은 “우리가 10년 동안 했던 게 만만치 않다”라며 “수많은 시민들에게 참여의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던 혁신주체들이 동네마다 많다”라고 말했다
김만배의 “좋은 형님들”…대장동의 ‘토건-법조 카르텔’
대장동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소수 민간사업자들이 부동산 개발로 수천억원의 불로소득을 얻은 데 대해 국민들이 심한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의 주인이 누구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이런 일확천금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확천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이미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정한 돈의 ‘종착역’을 보면 그 주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천대유가 대장동 개발사업의 주체라는 점을 알면서 그 수익을 나눠 먹은 사람들이야말로 부동산 개발 일확천금 구조의 ‘공범’인 셈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드러난 ‘수혜자’들은 국민의힘과 연결되는 인사들이 많습니다. 이번 일로 국민의힘을 탈당한 곽상도 의원은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근무하다 50억원을 받고 퇴직했습니다. 곽 의원과 아들은 여전히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대표를 맡았던 원유철 전 의원은 화천대유 고문을 맡았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도 같은 고문입니다.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의 대표로 이번 의혹의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는 변호사가 된 직후인 2008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는 이듬해 대장동 개발을 공영에서 민간으로 바꾸기 위한 로비 관련 혐의로 구속기소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인물로, 대장동 사업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와 화천대유의 ‘연결 고리’로 지목되는 정민용 변호사(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 투자사업팀장)가 있는데, 그 또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여러 국회의원실에서 보좌진으로 일했습니다.
‘화천대유’에 얽힌 전관 법조인들 계속 늘어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등장인물에 법조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앞에 언급한 사람들 이외에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화천대유 고문을 지냈습니다. 그 딸도 화천대유 직원으로 현재 퇴직 절차를 밟고 있는데, 지난 6월 화천대유가 소유한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아 8억원가량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권순일 전 대법관도 고문을 맡았습니다. 그는 대법관 퇴임 뒤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채 고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현재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또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던 김수남 전 검찰총장,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도 등장합니다. 여기에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이 추가됐습니다. 곽상도 의원을 비롯해 박영수·김수남·강찬우·김기동·이동열 모두 검찰에서 이른바 ‘특수통’으로 유명한 검사들이었습니다. 정말로 화려한 면면입니다. 인물 구성만 놓고 보면 ‘거대 로펌’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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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앞서 이번 의혹의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가 대장동을 민간 개발할 수 있도록 로비를 하다 구속기소됐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사건을 수사한 게 강찬우 검사장이 지휘하는 수원지검이었고 당시 변호인이 박영수 전 특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건의 피고인, 검찰, 변호인 이렇게 3자가 이후 하나의 이익공동체에 몸담은 것입니다. 더구나 남 변호사는 검찰 특수부의 수사를 받아 구속기소까지 됐지만, 이후 1·2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검찰은 상고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되도록 놔뒀습니다. 이례적인 일입니다. 또 박영수 전 특검과 이경재 변호사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던 검사-변호인 관계였습니다. 이들 역시 화천대유에서 나란히 이득을 챙겼습니다. 이권 앞에서는 내남이 없는 셈입니다. 아니, 원래부터 한 식구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일부 인사들의 화천대유 고문료는 한달에 1500만원가량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이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고문료도 한달에 500만원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화천대유에는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고문료를 주며 고위직 출신 법조인들을 자문·고문단에 포진시킨 것일까요?
“좋아하는 형님들”이라는 해명, ‘일확천금 돈잔치’ 시인
우선 우리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과 법원에서 고위직으로 권력을 누리다가 퇴임 뒤에는 그 영향력을 이용해 변호사로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게 여전히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전관예우가 나쁜 이유는 그만큼 수사나 재판이 왜곡될 소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정도 경영’을 하기보다 법의 빈틈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기업들은 비리가 발각될 경우 비싼 수임료를 주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아예 평소부터 고문·자문 변호사로 두어 관리합니다. 이런 공생 관계가 화천대유에서 극명히 드러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민·형사적 법률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업의 수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화천대유도 든든한 방패막이로 고위 전관 법조인들을 영입한 것이겠지요. 실제로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은 이 사건이 불거진 뒤 수사를 받게 된 김만배씨의 변호인으로도 선임됐습니다. 이동열 전 서부지검장도 김씨 변호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에서 함께 변호를 맡은 바 했습니다.
그런데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의 해명은 놀랍습니다. 오랜 법조기자 경력을 가진 김씨는 지난 27일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형님들로 대가성은 없었다. 정신적으로 좋은 귀감이 되고 심리적으로 조언하는 멘토 같은 분들이라 모셨다.”
전관의 위세를 이용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평소의 친분과 심리적인 조언 정도의 대가로 그런 거액을 지급했다는 말이 됩니다. 대장동 사업으로 벌어들인 일확천금을 가지고 지인들과 ‘돈잔치’를 했다고 대놓고 말하는 꼴입니다.
당사자인 법조인들은 한결같이 대장동 개발사업과는 관련이 없다거나 몰랐다고 해명합니다. 통상적인 자문·고문 계약을 맺고 활동했다고 합니다. 일부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소속 법무법인이 계약을 체결했고 자신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자격으로 활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법률적·도덕적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법률가다운 해명들입니다.
사회적 책임 망각한 ‘천박한 법조 윤리’ 드러나
하지만 김만배씨의 해명을 통해서도 분명해지는 것은 화천대유에 발을 담근 법조인들이 김씨의 사업에 대해 알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신이 고문·자문을 맡은 업체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 업체가 불법이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지 살피고 이를 짚어주는 게 법률가인 고문이나 자문의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사태는 금전적 이익 앞에서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는 ‘천박한 법조 윤리’를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29일 논평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법조기자 출신인 김만배를 중심으로 현직 변호사인 남욱 등 몇몇의 인사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개발이익으로 돈잔치를 벌이고, 고위 전관들은 이들을 비호하는 대가로 억대의 자문료들을 챙겼다. 이들은 대부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거나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혹은 법무법인이 자문계약을 맺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법을 무색하게 하는 우리 법조계의 민낯이다.”
결국 화천대유는 ‘토건 이권세력’과 ‘법조 기득권세력’이 결탁한 ‘토건-법조 카르텔’의 실체를 보여준 것입니다. 전관 법조인들은 부동산 일확천금의 부조리한 구조에 기여하거나 기생한 ‘공범’들인 셈입니다. 도덕적 지탄을 받아 마땅할 뿐 아니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위법행위가 있다면 엄히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야당에서도 ‘법조 비리 게이트’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29일 화천대유 의혹에 대해 “서민들의 피를 빠는 거머리떼들이다. 관련된 사람이 전직 검찰총장, 관할 수원지검장, 대법원 판사도 있다”며 “부동산 비리 주범들의 방패막이를 하려고 전직 법조 고관들이 거기에 파리떼처럼 몰려 가지고 서민들 피를 빨아먹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지난 26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박영수 특검이 화천대유 게이트에 연루된 걸 보니까 우리나라 판검사들이 이렇게 더럽게 썩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태도는 온도차가 큽니다. 그는 유승민 전 의원의 지적에 “일반적으로 판검사를 지칭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묵묵하게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에게 하실 말이 아니다”라고 반발했습니다. 28일 토론회에서도 유 전 의원이 윤 전 총장과 친분이 두터운 박영수 전 특검의 비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자, 윤 전 총장은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 왜 비판에 나서지 않나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 6월 대선 출마 선언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 ‘소수 이권 카르텔이 공정과 법치를 짓밟고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판은 지금 화천대유에서 부동산 개발 불로소득을 나눠 먹고 있는 판검사 출신 법조인들에게 딱 들어맞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곽상도·박영수·김수남·강찬우·김기동·이동열 등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무더기로 화천대유와 연루된 것을 비판하지 않는 윤 전 총장의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혹시 이들이 대부분 검찰 시절부터 자신과 가까운 사이라서 그런 걸까요? 윤 전 총장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화천대유와 윤석열 전 총장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화천대유 실소유주 김만배씨 누나가 윤 전 총장 부친 소유의 서울 연희동 단독주택을 검찰총장 임명 즈음인 2년여 전에 매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윤 전 총장은 법조기자 출신인 김만배씨를 알기는 하지만 개인적 친분은 없으며 집을 산 게 김씨 누나인 것도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스런 거래라고 보기에는 너무 기막힌 우연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우연은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야 우연찮게 가능한 일이지 아닐까 싶다”(김영배 최고위원)며 뇌물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국민의힘에서도 홍준표 의원은 “대장동 비리 주범들이 검찰에 두터운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박영수 특검을 통해 현직 최고위 검찰 간부에게도 손을 뻗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고, 유승민 전 의원 캠프는 “화천대유 의혹에 대한 윤 후보의 발언이 적은 이유가 법조 카르텔의 동조자이기 때문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논썰] “좋은 형님들”…대장동에 둥지 튼 ‘토건-법조 카르텔’
윤 전 총장은 주택 매매 계약서와 통장 내역 등을 공개하며 반박에 나섰지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주택 거래를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한겨레>에 “집을 산 김씨는 2019년 초부터 개를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연희동 주택을 염두에 두고 집을 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tv조선>은 김씨가 “시세대로 매입해 바로 월세를 줬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개를 키우기 위해 일부러 고가의 단독주택을 산 뒤 월세를 줬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또 ‘부친의 건강 문제로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급매로 싸게 팔았다’는 윤 전 총장 쪽의 해명과 ‘시세대로 샀다’는 김씨의 말도 어긋납니다. 이 또한 분명하게 밝혀내야 할 의혹입니다.
막대한 개발이익의 ‘종착점’ 철저히 규명해야
마무리하겠습니다. 대장동 개발 과정의 불법 여부와 함께 그 과실인 개발이익이 결국 누구에게로 귀속됐고 여기에 불법은 없었는지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익의 귀착점이야말로 ‘이권 카르텔’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핵심 열쇠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토건-법조 카르텔’의 요지경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메르켈이 보여준 정치의 품격, 국민들은 왜 열광했나
▲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장벽 주변에 밀집해 있는 동독주민들 ⓒ 화면캡처
분단 독일과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1989년 11월 9일. 대부분의 혁명적 사건이 그렇듯 긴 배경에도 불구하고 직접적 단초는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오랜 시간 쌓인 배경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때 가장 약한 간극이 순간적으로 터지면서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꾼다. 역사는 늘 그렇게 변해왔다.
패전이 갈라놓은 땅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중간 지대 없이 도심 한복판을 뚝 자른 철책너머로 보이는 두 삶의 차이는 너무나 적나라했다. 동독의 젊은이들은 불과 몇 미터 앞 철책 너머에 펼쳐진 자유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동독 젊은이들의 목숨을 건 월경(越境)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공권력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급기야 1961년 동독 정부는 서쪽이 보이지 않도록 모든 철책을 콘크리트로 교체하기에 이르렀지만 국민들의 이성의 눈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한 동독인들의 탈출이 이어졌고 민주화 시위도 점점 거세졌다.
때마침 1985년 이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변화를 추구하던 소련은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에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었다. 동독 정부는 자유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했고 1989년 11월 9일 제한된 자유를 허용하겠다는 발표를 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지금 바로"... 역사를 바꾼 그날
동독에 생중계되는 회견 자리에서 정부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베를린 장벽 지역을 포함 모든 국경 통과지점에서 국민들의 출국을 허용한다는 정부의 방침을 밝혔다. 이때 한 외신 기자가 묻는다. "법령이 언제부터 발효됩니까?(Wann tritt das in Kraft?)" 20세기 100년의 몇 손가락에 꼽힐 순간이었지만 질문 내용은 통상적이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독 정부 내 소통은 원활하지 않았고 대변인조차 정확한 사정을 인지하지 못했다. 기자의 질문에 큰 의미 없이 자료를 뒤적이던 샤보프스키 대변인이 내뱉은 말은 "제가 아는 한 이 법령은 즉시 발효됩니다(Das tritt nach meiner Kenntnis ist das sofort)".
그 순간만큼은 대변인도, 현장의 기자들도, 그 누구도 이 말이 앞으로 초래할 결과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심지어 대변인은 건조한 톤으로 한 마디 더 보탠다. "지금 바로(unverzüglich)". 표정도 무미건조했다. 아마도 대변인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기자들은 발언 내용을 전 세계로 긴급 타전했다.
'즉시'라는 부사로 하고 싶은 말이 '머지않은 시간 후'였을 수 있지만, 뒤따라온 '지금 바로'의 무게는 달랐다. 이 말을 들은 동독 시민들은 숨도 쉬지 않고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고, 감격에 겨워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통일을 향한 봇물은 그렇게 터졌다. 그리고 1년이 조금 못 되는 준비 기간 후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단 하나의 헌법만을 가지게 됐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오늘, 통일 후 출생한 독일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한다. 분단의 원인이었던 전쟁을 겪은 독일인은 10% 남짓, 그리고 전쟁을 모른 채 분단의 비극을 살았던 60%가 현재 독일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통일 독일이 삶에 미친 영향을 직접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일본과 반대로... 아데나워부터 슈뢰더까지
▲ 독일 역대 총리들. 윗줄 왼쪽부터 초대 아데나워, 2대 에르하르트, 3대 키징거, 4대 브란트. 아랫줄 왼쪽부터 5대 헬무트 슈미트, 6대 헬무트 콜, 7대 슈뢰더, 8대 현 메르켈 총리. ⓒ .
아데나워 총리 세대로 불리는 전후 1세대는 전쟁 잿더미에서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사명과 함께 전범 국가라는 오명을 씻어내야 했다. 흔히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이면서 전후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독일과 일본의 전후 행보가 비교된다. 독일이 일본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점은 재건을 위해 그들이 서야 할 국제적 위치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아데나워 총리는 지속적 평화란 국제적 연대에서 오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이미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이러한 생각을 구체화 했고, 그 구상은 히틀러의 집권을 보면서 더 확고해졌다. 총통이 되자마자 1차 대전 패배 설욕을 다짐하던 히틀러와 달리 2차 대전 패전 후 첫 총리 아데나워는 제일 먼저 이웃 유럽 국가들과의 연대에 전력을 다 했다.
집권 14년 가운데 초기 6년 동안 유럽평의회(1951년), 유럽연합 전신 유럽석탄철강공동체(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1955년)에 차례로 가입했다. 1963년에는 역사 속 앙숙이던 프랑스와 영구평화조약(엘리제 조약)을 맺었다. 당시 아데나워 총리의 나이는 87세. 프랑스와 영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드골 대통령과 15번을 만나고 4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침략국이자 패전국 독일이 다시 유럽의 중심,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영구적 평화(ewigen Frieden)에 대한 집요한 신념, 자신들의 '세계 내 존재(In der Welt Sein)'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칸트(I. Kant)의 나라, 하이데거(M. Heidegger)의 나라 독일은 그렇게 전쟁을 딛고 영구적 평화를 위한 국제 연대에 힘썼으며 전후 반세기만에 독일을 평화의 나라로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후 70년이 넘도록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과 대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자면 일본은 전후 70년이 넘게 주변국들을 공동존재(Mitsein)로 인정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대상화(對象化)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분법적 사고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일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유럽 안에 있어야 하며 유럽도 독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정파를 초월해 독일 정치의 뿌리로 이어졌다. 보수 정당 기민련(CDU)의 오랜 집권 후 1969년 진보 정당 사민당(SPD)의 빌리 브란트가 총리에 취임한 후에도 독일의 친 유럽 기조는 이어졌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나치 희생자 위령탑에 무릎 꿇은 브란트 총리의 모습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 이후에도 독일의 모든 총리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나치 만행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이에 대해 독일 국민은 '도대체 언제까지 용서를 빌어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한 인류의 비극을 자신들의 역사에서 영원히 지우지 않기 위한 다짐인지 모른다.
▲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지난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게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었다. ⓒ 다큐 영상 캡처
전후 2세대로 불리는 헬무트 콜의 시대는 그런 배경 속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었고 프랑스와의 깊은 연대 속에서 독일을 유럽통합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게 했다. 콜 총리는 동독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재무 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서 마르크 환율을 1:1로 관철시켰다. 당시에는 이 정책이 서독의 기업들에 손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았지만 통일과 화합을 위한 비용으로 간주했다.
콜 총리 체제의 독일은 심지어 통일과 유럽 화합을 위해 폴란드와 영토 분쟁 소지가 있는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의 영토마저 권리 포기를 선언했다. 그의 유럽 동반자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아데나워에게 드골이 있었다면 콜에게는 미테랑이 있었다. 그렇게 과거의 앙숙 독일과 프랑스는 깊은 신뢰 속에서 새로운 유럽을 만들어갔다.
20세기 최장 집권 총리 헬무트 콜이 물러나고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집권기를 시작했지만 친 유럽 대외정책과 통합을 향한 장기 비전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그 사이 독일이 지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0년 넘게 이어지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은 경제 대국 독일의 지반을 서서히 침식하고 있었다.
서구 선진국들의 저성장 시대가 독일의 통일 시기와 겹치면서 모든 걸 통일 탓으로 돌리는 경향도 없지 않았지만 어떻든 조치는 필요한 상황. 2002년 2기 임기를 시작한 슈뢰더 총리는 근본적 개혁을 위한 정치권 대타협을 시도했다. 이른바 '하르츠 법안'이라 불리는 노동시장정책 개혁 법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기본 목표로 하는 개혁은 전통적 진보세력의 이탈을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장 눈에 띄는 성과도 적어 중도의 신뢰도 얻지 못했다. 전통적 진보세력의 이탈이 슈뢰더 총리에게는 뼈아픈 결과였고 그렇게 그는 총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다.
'무티 메르켈'이 보여준 것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9월 10일(현지시간) 베를린 북부에 있는 고향 템플린의 육아센터 건설 현장을 방문해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 연합뉴스
2005년 슈뢰더 총리와 연정협상 줄다리기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메르켈 신임 총리는 어떤 의미에서 슈뢰더 총리와 거울 뒤 모습처럼 정반대의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파 기민련(CDU) 출신으로 총리에 오른 메르켈이지만 전통 우파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슈뢰더 총리는 이른바 '제3의 길'을 내세우며 영국의 블레어 총리, 프랑스의 조스팽 총리와 함께 서유럽의 중도 좌파 트로이카를 이뤘다. 새로운 길을 걸었던 그는 중도의 확장성을 다소 얻었지만 왼쪽의 충실한 좌파 유권자를 더 잃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반해 메르켈 총리는 그와 정반대였다.
메르켈 총리의 최대 치적으로 중도정치를 꼽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만큼 일부 오른쪽 지지자들의 이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콜 총리에 이어 20세기 들어 두 번째로 긴 임기를 이어가는 메르켈 총리의 장수 비결은 현재의 독일 정치 지형에서 그가 오른쪽과 왼쪽 지지자들에 대한 가감 셈법을 노련하게 구사한 데 있다(만약 현재 연정 구성이 12월까지 장기화되면 콜 총리의 최장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그의 임기 동안 불만을 품은 일부 세력이 극우 정당을 만들었고 이들의 포퓰리즘 정책들은 특히 구동독 주민들의 불만을 흡수하는데 성공했다. 메르켈 총리를 향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이처럼 극우 세력이 확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다수의 독일 국민은 극단세력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택한 메르켈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난민정책이 대표적이다. 2015년 시리아 사태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두 팔 벌려 맞았다. 가짜뉴스와 극우세력의 집요한 공격으로 한때 지지율이 주춤했지만 메르켈은 성과로 맞섰다. 난민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세계 최저수준인 3%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치안이 불안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2020년 독일의 '세계행복보고서' 순위는 G7 국가 가운데 제일 높다.
그의 중도 정치는 환경정책에서도 빛을 발했다. 야당시절 재생 에너지에 반대하던 메르켈은 총리가 된 후 오히려 탈 원전을 부르짖고 있다. 얼핏 생각할 수 있는 정치인의 변신과는 반대 방향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그의 생각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이제는 핵을 없애고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을 둔 미래로 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의 집권 기간 진보 정당이 설 땅이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주요 진보 아젠다를 선점 또는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녹색당도 기꺼이 그의 연정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사민당마저 품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처럼 극단을 배제한 모든 합리적 정책을 수용할 줄 아는 그에게 독일 국민들은 '무티 메르켈'(Mutti Merkel 메르켈 엄마)이라는 애칭을 선물했다.
▲ 독일 총선을 하루 앞둔 9월 25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왼쪽) 총리가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오른쪽)의 지역구 아헨에서 지원 유세를 벌이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 총선을 끝으로 16년간의 집권을 마치고 정계를 은퇴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분명 메르켈은 현실 정치인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나 윤리적 선명성으로 보나 그의 선택은 성공했고 독일은 그의 집권기간 동안 '유럽의 환자' 오명을 벗고 또 다른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슈뢰더 총리 당시 이뤄놓은 개혁이 메르켈 집권 중에 빛을 본 측면도 있다. 어떻든 열매를 놓치지 않는 것도 정치인의 능력이다.
메르켈 총리는 스스로 물러나는 첫 번째 총리의 기록도 보유하게 됐다. 현재 연정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신승한 야당 사민당(SPD)이 약간 유리한 입장이다. 75%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가지고 퇴임하는데 정권을 내준다는 것이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독일 정치 환경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일 국민이 그의 16년 집권 기간 동안 지지했던 것은 우익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선시키는 진영 논리의 결과도 아니었다. 극단을 배제한 합리적 타협의 정치, 진보 아젠다까지 포용하는 융합의 정치, 그것이 독일 국민들이 열광한 메르켈 정치였다. 그러한 융합의 정치는 전후 70년, 평화와 화합을 향한 일관된 길을 걸어준 독일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오마이뉴스 임상훈
검찰의 민낯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고발 사주 의혹’ 현직 검사 연루 확인돼 공수처 이첩 수사·기소권 선택적 행사 하던 기존의 ‘정치 검찰’ 행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
2021년 9월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들은 공익의 대표자다.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로 시작한다. 현실에선 ‘정치 검사’란 오명을 쓴 지 오래다. 전국 검사 약 2천 명 중 극소수 엘리트 집단 얘기다. 그들은 진실과 공익보다는 정치권력이나 검찰 조직 이익에 복무한다. 그 대가로 검찰 기득권과 보은 인사(승진)를 얻는다. 검찰이 권력을 오·남용해온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는 ‘정치 검사’는 아직 나온 적이 없다.
“이번처럼 구체적인 고발 사주 의혹은 처음”
최근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은 그동안 ‘정치 검사’들이 보여준 검찰권 오·남용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수사·기소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하는 걸 넘어, 정치권에 고발장을 작성·전달하는 방식으로 검찰이 수사할 사건을 직접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검찰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최창민)는 2021년 9월30일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사건에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검사 비위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 이전까지 서울중앙지검과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같은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손 검사는 이날 “관여한 사실이 전혀 없다. 공정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확신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권 오·남용을 감시·견제해온 법학자와 활동가들은 검찰의 뿌리 깊은 악습의 연장선에서 이번 의혹을 바라본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그동안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단체나 정당과 암묵적으로 공모해 고발을 사주하고 수사에 착수한다는 의심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인 의혹이 제기된 건 처음”이라며 “현직 검사들이 직접 고소·고발이 가능하도록 법리적인 쟁점을 발굴하고 논리를 작성해 친절하게 고발장을 작성해 넘겼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
오병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홍익대 법학부 교수)은 “검찰 스스로 인지수사 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모양새를 취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통상적인 직권남용 선을 넘은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역시 “국민이 부여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한 극단적인 사례”라며 “검찰은 여전히 총장과 가족, 검찰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주문 고발’이든 뭐든 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궁지에 몰리자 등장한 고발장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내용은 2020년 4월15일 총선을 12일 앞두고 대검 참모가 야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범여권 인사 등의 범죄 혐의를 적은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2020년 4월3일과 4월8일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텔레그램으로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 고발장 2건과 관련 기사 링크, 페이스북 화면 캡처본 등을 전달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4월3일 전송한 고발장은 황희석·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언론인, 제보자 등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 가족, 측근을 비방’하는 허위 사실을 제보, 보도, 논평함으로써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예훼손 피해자는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 등’이라고 적시했다.
고발장이 언급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 가족, 측근을 비방’하는 보도는 2020년 2~3월 보도된 윤 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불법 주가조작 의혹, 윤 총장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기자와 공모해 유시민 이사장 비리를 캐내려 했다는 의혹이다. 4월8일 전송한 고발장은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이다. 최 후보가 2020년 4월2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자신의 법무법인에서 인턴 활동을 했다는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이유다. 최 후보는 고발장 전송 하루 전인 4월7일 서울중앙지검에 김건희씨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당시 검찰은 사면초가였다.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 비리 수사에 착수했는데, 검찰의 ‘과잉 수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셌다. 그 와중에 2020년 2~3월 김건희씨의 ‘주가조작’ 의혹 보도, 윤 총장 장모 최아무개씨가 2013년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작성한 혐의에 대한 의정부지검의 수사 착수,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당시 부산고검 차장)의 ‘검언 유착’(채널A 사건) 의혹 보도 등이 이어졌다. 2020년 4월2일엔 법무부가 대검 감찰부에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
정연주 KBS 전 사장이 2008년 8월12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검찰 수사관들에게 전격 체포돼 검찰로 향하며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KBS 화면 갈무리
“무죄 나와도 괜찮으니 기소하라”
지난 10여 년간 ‘정치 검사’들은 독점적인 수사·기소권과 기소 재량이라는 양날의 칼로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표적 수사’와 ‘봐주기 수사’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검찰은 ‘표적 수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08년 8월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당시 부장 박은석)는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긴급체포해 불구속 기소했다. KBS가 국세청을 상대로 낸 세금 소송 1심에서 승소하고도, 정 사장이 항소심 재판부의 조정에 응해 “회사에 1892억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였다.(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기소 9일 전 이명박 대통령은 정 사장을 해임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에 발맞춰 검찰이 무리한 수사·기소에 나섰다는 논란이 일었다. 정 사장은 1·2심 무죄 판결에 이어 2012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1월 정 사장 기소에 대해 “유죄 판결의 가능성이 없음에도 공소가 제기돼 적법한 공소권 행사의 범위를 일탈했다”며 검찰총장 사과를 권고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보도한 MBC 시사 프로그램 <피디수첩> 제작진을 기소한 사건도 ‘표적 수사’ 사례로 꼽힌다. 2009년 6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전현준)는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판매업자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명예훼손·업무방해)로 피디수첩 제작진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2008년 4월 방송한 피디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문제 삼은 것이다. 피디수첩 제작진은 1·2심 무죄 판결을 받고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1월 피디수첩 수사·기소 과정에서 ‘기소와 무관하게 체포하라’ ‘무죄가 나와도 좋으니 기소하라’는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밝혔다.
‘봐주기 수사’는 ‘부실 수사’나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말과 함께 다닌다. 2010년 6월 처음 제기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가 대표적이다. 김종익 전 케이비(KB)한마음 대표가 2008년 7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판한 ‘쥐코’ 동영상을 올린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이었던 김 전 대표를 사찰한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은 사찰 ‘몸통’으로 의심받은 청와대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국무총리실과 청와대 연결고리로 지목된 최종석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서울 시내 한 호텔에 불러 조사하는 데 그쳤다. 결국 2010년 8월 수사 한 달여 만에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공직윤리지원관실 간부와 직원 3명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부실 수사, 꼬리 자르기 수사였음은 이후 검찰 스스로 증명했다. 2012년 3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수사 당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최종석 전 행정관과 직속 상급자인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박영준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을 민간인 사찰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기소했다. 이들은 2013년 9월 대법원에서 모두 징역형이 확정됐다.
검찰은 수사·기소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해 정국을 정치권력에 유리하게 이끌기도 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권력의 핵심을 ‘사회적 사건의 공식적·법적 실체를 규정짓는 것’으로 지적했다.(‘담론권력으로서 검찰’, 2009년) 검찰의 수사 대상과 방향 설정에 따라 사건 성격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사건의 실체 규정짓는 검찰의 권력
2014~2015년 ‘정윤회 국정 개입 보고서’ 수사를 봐도 그렇다.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동향감찰 보고서를 입수해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2014년 1월6일 작성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등을 통해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수사 가이드라인을 언급했다. 2015년 1월12일 신년 담화에서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해 “나라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강을 무너뜨린 일은 어떤 말로도 용서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문건 유출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검찰 수사도 ‘국정 농단’보다 ‘문건 유출’에 방점을 찍었다. 결국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2015년 1월 청와대 문건 작성·유출에 관여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 등)로 박관천 전 행정관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는 비선 실세 의혹은 풍문을 짜깁기한 내용이라고 결론 냈다. 그 뒤 상황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2016년 11월20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구속기소됐고,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다.
최근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은 검찰이 수사·기소권 틀 안에서 검찰권을 오·남용한 사례들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그동안 드러난 ‘정치 검사의 민낯’이 전부가 아니었단 얘기다. 서보학 교수는 “공수처는 본래 존재 이유가 검찰권 남용 견제인 만큼 이번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며 “21세기 대한민국에 검찰이란 조직이 왜 필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왔다”고 지적했다./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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