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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지역과 마을

6년 전 가덕도 둘러보기

by 이성근 2014. 3. 23.

 

2009년4월12일 기록한 글이다. 이 역시 앞서 운영하던 다음 블로그 '녹나무'에 올렸던 글이다.  부산변호사회 환경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에게 가덕도를 소개하며 올린 글이다.  불과 6년 전이지만 가덕도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부산신항 공사가 본격화 된 이후  발길을 끊다시피 하다 더불어 산행할 일이  있어 녹산에서 합류하였습니다  

녹산 선착장을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창선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거가대교의 공사현장을 만났습니다.

선창 마을 초입에서  부산신항과 거가대교로 인해 발생했거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최근 (밀양 하남과)  부지선정에 따른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남부권 국제공항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분분합니다만  적지가 아니다라는것이 중론이었습니다.

마을로 들어서자  지역주민들의 해묶은 불만이 찢겨진 채 공중에 걸려 있습니다.

눌차에 집이 있는 후배로부터 그 정체에 대해 들은 바 있습니다.

주민들로서는  거가대교며 신항이 달갑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가 물류와 남해안 관광벨트를 빙자한 대규모 개발이 섬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틈바구니 속에서

정작 주민의 삶은 고려되지 못한 채 서푼 보상으로  엉망이 됐다는 것입니다.  

눌차만의 죽도가 평화로이 떠 있습니다.

최근 부산일보(4월8일 1.5면)를 통해 눌차만의 매립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지적들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부산녹색연합과 습지와새들의친구,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부산지역 3개 환경단체들이 참여한 '낙동강하구보존시민행동'은 10일 성명서를 내 "눌차만 매립 계획은 부산시가 보여 온 구시대적 개발행정의 전형으로, 해양도시 부산이 가진 천혜의 자원을 파괴해 개발업자의 배만 불리는 것에 불과하므로 전면 백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행동은 또 "당초 목적과 달리 시가 매립한 해운대구 수영만매립지나 수영구 민락동 매립지가 부동산 투기장이나 난개발의 상징처럼 돼버린 사례에서 보듯, 지금까지 매립 행정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매립계획 재검토를 촉구했다.(4월10일)

  

부산시의회 전일수 의원(건설교통위)은 8일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눌차만 개발 방향의 재검토를 요청한다"며 매립 계획 백지화를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전 의원은 "바다는 한 번 매립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면서 "강서 1천만평도 그린벨트가 해제돼 용지를 추가로 확보할 필요성도 사라진 만큼 부산시의 매립 계획은 당연히 철회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눌차만 매립은 재정적, 기술적, 실행적 측면에서 사업추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추진되고 있으며, 결국 사업성을 명분으로 지역 여건을 배제한 채 고밀도로 난개발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처음 계획할 때와 주변 여건이 달라졌다"면서 "신항만 배후지역에 1천만평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첨단산업물류단지'가 조성될 계획으로, 굳이 매립을 통해 물류용지를 추가 확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4월9일)

 

동감하는 바 입니다.

녹산.진해 안골. 용원.가덕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개발 현장은 눈을 피곤하게 합니다.

수려한 해안선은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 자락에 기대어 사는 마을도 예전같지가 읺았습니다.

얼마나 더 깨어져야 할까?  

 

                                                                                    

 

서둘러 선창마을을 벗어나 연대봉으로 향합니다.

성북마을도  개발로부터 지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마을 뒷편 구곡산과 삼박봉 허리께를 거가대교 접속도로가 만들어 지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내걸린 부동산 간판은 일대의 토지이용 상황을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도 골목길을 지나다 만나는 마당이며, 돌담과  샛골목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정겹습니다.

하지만  이 정겨운 풍경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이 마당에는 마실온  마을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베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 뛰고 노는 소리가 사라진 골목입니다.

성북동 덕문중학교의 교정에 세월정정한 팽나무가 이 마을의 역사를 웅변합니다.

천성고개를 향해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소양원

임도를 따라 오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임도 중간중간 샛길을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시멘트 길을 벗어나 오릅니다.  

두 아름도 넘는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1백년 이상 되어 보입니다.

보통 소나무는 가지를 헤아려 수령을 짐작하는데 나이를 헤아리다 그만둡니다.

문득 안동대 임재해교수의  오래된 나무와 만났을 때 인사하는 법을 떠올렸습니다.

 

그이를 비롯하여 풍수 전문가들은 항상 가방에다 소주 한병과 북어포를 넣어 다닌답니다.

그래서 노거수를 만나면 예를 올린다고 하더군요. 나무할아버지 처음 뵙겠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어신지요. 등등

마치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안부를 묻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교감을 시도한다더군요.  

 

그 길에 벚꽃이 한창입니다.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눈처럼 날리기도 합니다.

몹시 덥습니다. 봄이 실종됐다고들 합니다.

땀이 등짝을 적시고, 마구 흘러 내리는 땀방울이 눈을 따갑게 합니다.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이 숲에서 만나길 기대했던 풀들을 찾아봅니다.

조금 늦은 걸음이었습니다. 노루귀며 얼레지가 이미 꽃을 피우고 진지 오래입니다.

좌측부터 노랑제비꽃, 광대수염, 제비꽃류(?: 도감을 몇 번이나 뒤적였지만  닮은 꼴을 찾을 수 없어 동정이 어려웠습니다.)

족도리풀,                                                    댓잎현호색,                                                    홀아비꽃대

줄딸기                                                                                쇠물푸레

연대봉 정상부에는 소사나무군락과 때죽나무가 듬성듬성 들어서 있습니다.  그 아래 큰앵초며, 남산제비꽃, 바람꽃,은방울꽃,큰애기나리,솜대,윤판나물 등이 숨어 있습니다. 

드디어 연대봉(459.4m) 정상입니다.  샛바람에 땀이 날아갑니다.  

가덕도는 1989년 의창군에서 부산시로부터 편입되었습니다.  유인도1개와 무인도 11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26km로서 영도의 1.6배 크기입니다.  지형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리면서 동쪽은 가파르고 서쪽은 완만하여 소규모 갑과 드나듦이 많은 만이 발달하여 자연 발생한  마을(장항, 백옥포, 두문, 천성, 대항, 외양포 등) 이름의 유래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 가덕(加德)이란 섬 전체의 명칭에 대해선 아직도 정리된 것이 없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사삼(더덕)이 많아서 유래됐다는 설과 육지와 가직다(가깝다)라는 뜻에서 가덕도가 됐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가덕도의 지명

눌차(訥次同) : 가덕본섬과는 달리 유달리 완만하고 낮아 꼭 누워있는 형태라 해서 눌차라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눌(訥: 말 더듬거릴 눌)은 한자의 표기대로 더듬거린다의 뜻보다는 한군데 오래있어 지리하게 일어나지 않는다의 눌자로 해석해야 바르게 이해된다. 그리고 차(次)자는  -을 할려고 한다의 뜻으로 볼 때 “누울려고 하는 동네” 그래서 눌차라고 불리워졌다는 말이 있다. 한편 또다른 유래로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가덕도 대부분의 지명이 목(  )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에서 눌차의 지명을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 즉 ‘밖목’으로 반모(외눌 外訥)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안모(내눌 內訥) 역시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안목이 안모로 불리워지고 있다.  원래 목(    :목뒤항) 이라는 말의 뜻은 머리와 몸을 이은 잘록한 부분을 말하기도 하고 , 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중요한 길의 좁은 곳을 일컬을 때 목이라 한다.    

     

  동문(동선동 東仙同) : 동선, 가덕진성을 중심으로 ‘동쪽마을에 신선과 같이 선량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하여 동선(東仙)이라 되어 있지만 원래의 지명은 동선이 아니라 성동(城東)이 정확한 지명이다.  가덕진성 축조 이후 성의 동쪽 마을을 의미한다. 여기에 행적편의주의식에서 지명을 한자식으로 표현함을 극복함과 동시에 좀더 마을을 미회시켜 동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목(대항 大項同) : 한이란 크다란 뜻이고 가덕도에서 가장 큰 목의 형태를 취하고있다고 해서 한목, 즉 한자식 표기로 대항이라고 하였다. 한목세바지-대항의 동쪽편 마을을 세바지라고 하는데  세바람이 게세게 부는 곳이라하여 세바지라고 한다. 

 

  천성동(天城同) : 가덕도의 대개의 지명이 해안의 굴곡 즉 목의 형태에 연유하였고 성의 위치로 보아 지어진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천성이란 지명은 성(城) 그 자체를 두고 불리워 졌다. 천성이란 지명은 오래전 옛날부터 지어진 지명이 아니라 천성진성(天城鎭城)이 축성됨으로써 불리워졌다. 천성의 지리적 위치로 보아 왜구의 노략질이 횡행하던 당시 군사적 요충지로써 진해라는 천연의 요새와 깊은 연관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역적인 중요성은 난중일기에도 나타나 있다.

 

  머거리(두문 斗文) : 가덕동의 지명 중 가장 재미 있는 지명을 가진 마을이다. 현재 두문을 지역주민들은 머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머거리란 귀머거리에서 유래하는데 이곳의 지세가 다른 지역과는 떨어진 곳에 있을 뿐 아니라 동뫼산이 가로막혀 왕래가 잦은 곳이 못되었고 타지역의 소식을 전하기도 듣기도 다른 지역보다 어려웠던 곳이다.

 

 

노일전쟁의 잔재가 남아 있는 외항포(外洋浦)

외양포는 러일 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일본군 사령부가 최초로 주둔한 곳으로 지금 강서구 천가동 대항부락 서쪽만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이곳을 방문하면 당시 일본군이 설치한 화약고와 사단막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대륙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필요했던 일본으로써는  그 적격지를  외양포로 삼고 화약고, 무기고, 포대, 사령부 막사 등을 구축하였다.  해안선 자갈밭에는 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화약을 깔아서 점화선을 만들고 유사시는 이 해안선의 화약에 불을 붙여 상륙하는 적을 저지하고자 했다. 이때가 1905년 (일본 명치 38년) 5월로서 그때 사용했던 화약이 지금도 자갈밭을 뒤지면 나온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1905년 5월 18일 러시아 발트함대가 월남의 캄란만을 출발하여 가덕도 쪽으로 항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 진영에서는 비상상태에 돌입하였다. 5월27일 새벽  초계선으로 가장한 순양함 시나노마루호가 러시아의 발트함대를 발견한지 11시간 후인 동일 새벽 1시 일본함대와 발트함대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 걸쳐 진행된 이날 해전에서 러시아는 침몰 19척, 탈취15척, 병원선 억류 2척 전사자 5천 사령관을 포함한 포로 6천여명이라는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고, 전투에 참가한 48척의 발트함대 가운데 우라지보스토크에 도착한 것은 순양함 1척,구축함 2척 뿐이었다.  반면 일본군측 손해는 수뢰정 3척과 700명 가까운 사상자만 내었을 뿐이다. 해전이 끝난 뒤 일본군은 군사령부를 진해로 옮기고 1개 연대 병력을 외항포에 주둔시키다가 다시 마산을 점령한 후 이곳에 있던 연대를 마산으로 옮기고 해방전까지 1개 대대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이성근  그곳에 가고 싶다 에서 '가덕도 가는 길' 중

 

동쪽편의 유일한 마을인 새바지 넘어에는  거제도가  있습니다. 

가덕도의 토양은 적황색의 점토질로서 구성되어 있어 배수가 좋으며, 약산성에 염기서을 띠고 있어 식양질 토양이 대부분입니다.

개발전 주민의 대부분은 반농반어로 생활했고, 주 생산물은 보리,마늘,양파 등이었습니다. 

지금은 ?  잘모르겠습니다.  어업권은 보상받은지 오래고, 농지는 외지인이 매입했고... 한때는 주민들도 개발을 갈구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다리(연육교)가 생기면 무난하게 오갈 수 있겠지만 그 섬에 가기 위해서는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가까운 눌차나 선창까지는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지만 백옥포를 돌아 두문이나 천성, 대항, 외항포에 내리기 위해서는 바다위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야 한다. 현재 가덕도로 가는 뱃길은 섬의 서편에 집중되어 있다. 섬의 동쪽과 남쪽은 열려 있는 바다로써 일반 도선이나 유람선이 다니기에는 좀 험하다.

 

  이처럼 다니기 불편한 길이기에 가덕도는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은 가덕도의 얼굴이 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 변화는 곧 시작될 것이다. 많은 외지인들이 섬의 곳곳을 사들였다. 89년 의창군에서 부산시로 편입될 때부터 이 지역은 개발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었다.  땅값이 올랐고 섬 주민들은 꿈에 부풀었다. 한동안의 잠복기간이 있었지만 가덕신항만 건설사업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되고서부터 꿈은 현실화돠고 있는 것이다. 한때 주민들은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개발에 대한 아무런 비젼도 없자  쓰레기매립장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시에 건의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곳의 주민들이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성근  그곳에 가고 싶다 에서 '가덕도 가는 길' 중

 

 

천성으로 하산하다 뒤돌아 본 연대봉입니다.

연대봉을 다녀간 수많은 산악모임의 비표가 철책에 즐비합니다. 

아쉽게도 이 비표들은 가덕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지막지한 개발에 어떤 영향력도 주지 못한 채

무력한 존재의 흔적으로 나부끼고 있는듯 하여 씁쓸한 마음 지우지 못했습니다.  

거가대교 접속도로 공사 현장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 아니 다리를 만들면서 공짜로 다니게 하지는 않을터 필시 램프를 두어 이용료를 징수할 게 분명한데 ...

물론 육로를 이용하여 거제로 가는 시간이며, 에너지야  현격이 줄겠지만, 글쎄 ?

 

어쨌든 이 풍경은 이제 볼 수가 없겠지요.

흙먼지를 일으키며 잡석을 실어 나르고 있는 덤프트럭의 행열을 뒤로 하고 다시 선창행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뭍으로 향합니다.

마을 마을을 거치며 사람들을  밀어 넣은 버스에는 자그마치 4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차창 넘어 스치고 지나는 가덕의 해안자락은 만신창이가 되어 내팽겨져 있었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한 풍경 입니다.  

녹산으로 가는 뱃전에서 개발 이전의 가덕도를 떠올립니다.

아래의 정경은  2005년 4월 헬기를 이용하여 낙동강 하구를 조사할 때 기록해두었던  가덕 일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가덕도를 기억할 것입니다.

많이들 그리워할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1998년 제가 있던 단체에서 '그곳에 가고 싶다'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덕도 생태문화기행을 실시하며 자료집에 남긴 글이 있어 오늘에 비추어 옮겨 봅니다.  격세지감에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배는 외항포를 돌아 다시 대항에 닿는다. 마지막 종착지인 셈이다. 승선인원 90명인 배에 선장을 포함해도 승선인원이 10명이 못되는 주중 운행, 6척의 도선으로는 도저히 실어 나를 방법이 없는 휴일의 운행과는 천지 차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승객들을 토해 놓고 배는 귀항 손님들을 싣기 위해 접안을 하고 엔진을 끈다. 엔진소리가 꺼지자 섬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도선이 없다면 가덕도 역시 섬의 크기와 관계없이 절해고도가 되는 순간이었다.

 

비오면 뭍이나 물이나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선창 가까운 가계집에는 일없는 사내들의 얼굴이 소일 삼아 마신 소주에 바다처럼 붉어 있었다. 그 얼굴 너머로 바다와 뭍의 경계가 구분없이 뜨 있다. 불과 두시간 남짓한 지척이 뭍이지만 연결시켜주는 도선이 사라지자 나도 그 섬의 일원이 되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소주나 들이킬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듯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구나 라고 싶게 수긍되는 까닭은 섬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문득 해직기자 였던 최성민이 썼던 “섬, 오메 환장하것네”란 책이 떠올랐다. 그는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섬에 가보기는 커녕 그 섬의 이름 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이 땅을 뜬다. 이 꿈같은 섬들을 곁에 두고도 또 많은 사람들은 바캉스 갈 곳을 고민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동차와 사람과 바가지가 바글대는 유명 해수욕장을 찾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을 탈출해 보고 싶어 하면서도 이 고적감 넘치는 우리 섬들을 지나 괌으로 하와이로 날아간다” 과연 우리는 우리네 섬을 얼마나들 알고 있을까 ?   아무튼 섬에 와서 뭍을 바라본다는 것, 떠나가는 배를 하염없이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만 할 때 섬은 수평선과 대비되는 하나의 지독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이성근  그곳에 가고 싶다 에서 '가덕도 가는 길' 중

 배는 이전의 가덕도와 오늘의 가덕도에 대한 뒤엉킨 상을 한꺼번에 실어다 놓고는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 앉습니다,

 

 

 

12 Etudes Op.25
(12 피아노 연습곡 작품25/Chop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