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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지역과 마을

동천재생, 잊혀진 지류, 문현동 물길을 찾아

by 이성근 2014. 1. 9.

 

1872  郡縣地圖  釜山鎭지도(규장각)

내게 있어 동천은  참 오래된 주제다. 허남식 시장이 재임하면서 부터 동천의 문제가 전면 부각되었다. 얼추 10년 전 쯤된다.  온천천을 통해 모아진 시민의 하천살리기 운동이 발화되고 난 이후 서울 양재천을 비롯하여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현장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KNN 부산방송과 복개된 동천을 탐사하기도 했다. 닫혀 있는 물길은 기억이 없다.  물길 스스로도 길을 잃었을 뿐 아니라 언저리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까지 물길의 존재를 망각한다.  다양한 방안이 도모되었고 상당량의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지난해 국제신문이 동천의 재생을 기획했다,   파편화 된 기억들이 모여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이에 더하여 '2030 동천 시민창의 상상지도'가 국제신문과 경성대 강동진 교수팀에 의해 만들어 졌다. 한마디로 중·상류 대부분이 복개되어 지상에서 사라진 동천의 물길을 되살려 서면과 북항 일대를 문화와 경제가 흐르는 황금라인으로 만들자는  희망 지도다.

 

" 상상지도(이하: 국제신문 기사)는 기본적으로 부산시민공원~서면~광무교까지 부전천(동천의 핵심 지류)의 복개를 걷어낸다는 전제 하에 물줄기를 따라 걷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열고, 주요 명소와 거점은 친환경 교통시설인 철도를 놓는 것으로 제안했다. 

상상지도는 서면 일원과 북항을 아우르는 전체 동천 지역을 A B C 세 구역으로 나눠 특화개발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중장기 로드맵을 세워 진행해야 할 부분이다.

 

A구역은 북항재개발 부지와의 통합 연계를 제시한다. 동천과 북항은 강과 바다, 문류(文流)와 물류(物流), 육상생태계와 해양 생태계를 잇는다는 점에서 한 몸이다. 부전천의 복개 부분이 걷히면 북항에서 출발한 유람선이 서면 도심까지 오르내릴 수도 있다. 서면과 북항의 통합 관광이 실현되는 그림이다.

 

미 55보급창과 자성대공원 사이에는 입체보행로가 놓여 섬처럼 갇힌 자성대 공원이 바다와 소통된다. 부산시민회관 주변의 동천에는 야외음악당이 들어서고, 주변은 문화골목으로 개발된다.

 

B구역의 포인트는 문현금융단지와 서면 도심이다. 동천과 문현금융단지 사이에 슈퍼뱅크(덱 형태의 대형 인공 제방)가 설치되고, 주변은 금융거리로 조성된다. 서면에는 카페골목과 먹자 골목이 특화되고, 직할시 승격 기념으로 세워졌던 옛 부산탑이 이전 복원된다. 물길을 따라 형성될 서면의 '문화창의지구'에는 연중 문화공연과 전시회가 이어지고 교량과 덱은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서면 동천로는 대중교통 우선지구로 변하고, 철도차량정비창은 입체 복합도시로 탈바꿈 한다. 범내골~서면교차로 사이엔 옛 전차길이 복원된다.

 

C구역은 동천의 중 상류로, 부산시민공원과 송상현 광장의 연계, 주변 특화개발 및 마을만들기로 특징지워진다. 성지곡과 부산시민공원 사이엔 파크웨이가 놓이고, 부산시민공원과 국립국악원을 연결하는 입체보행로가 만들어져 두 곳이 공간적으로 소통·통합된다. 부전역 일대는 광장과 함께 부전시장 활성화 사업이 진행되고, 송상현광장과 연결되는 우암선 폐선 부지에는 언덕골목길이 형성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통과된 도심재생특별법 등을 활용해 정책과 비전을 만들어가면 2030년쯤에는 우리가 꿈꾸는 '동천 문화·경제의 황금라인'이 현실화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동래부산고지도 -19세기 후반 (국립중잉도서관)

관련하여 동천재생 시민참여단 교육이 지난해 12월부터 부산그린트러스트에서 격주로 열리고 있다.  그런데 동천재생에서  지류의 한 축이던 문현동 물길은 제외되어 있었고, 반영되지 않았다.  호계천 역시 마찮가지이긴 하나, 또 주요 중심축부터 접근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혼자서 물길 찾기에 나섰던 것이다.  아마도  동천재생 시민참여단 활동이 동천으로부터  한동안 비켜 나 있던 나를  자극한 듯 하다.  물론 업무의 영역상 직접적으로 관여할 여지나 여유는 많이 없다. 그럼에도 동천은 공원녹지의 확충과  녹색재생의 측면에서 부산그린트러스트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문현동 물길 찾기는  그 연장선이다.  물길 찾기는 달포만에 90% 정도 찾았다. 그러나  얽힌  사연이나 이바구는 지속적인 업데이터가 필요한 지점이다.  주목받는 장소도 아니었거니와 살았던 사람들도 이주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점은 60대 이후 일대의 변화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작업은 계속적으로 노느니 장독 깬다고 시간에 쫒김없이 진행해 볼 생각이다.  도움을 주실 분이 있다면 bgtkfem@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고맙겠다. 어떤 사연이라도 받겠다.

 부산고지도 19세기 후반 (동아대박물관)

문현동의 옛 이름은 이 일대의 지형이 집안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기 때문에 찌께골로 불러왔다고 한다. 찌께골은 지게골에서 나온 말로서 지게는 마루나 바깥에서 방으로 드나드는 곳에 문종이로 안밖을 두껍게 싸서 바른 외짝문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순수 우리말 지명을 한문식으로 바꾸면서 지게는 문(門)으로, 고개는 현(峴)으로 바꾸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래군 서면(西面) 문현리(門峴里)였으며, 1946년에 문현동으로 되었다. 법정동인 문현동은 행정동인 문현1~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농막(農幕)·문현(門·峴) 연동(蓮東)·웃농막마을 등이 있다.

 

문현마을은 문현동의 유래가 된 마을이다. 농막마을은 문현초등학교 뒤편 골짜기에 있던 마을로서 막노동꾼이나 가난한 농부들이 움막을 짓고 어렵게 살았었기 때문에 농막이 많이 있었다. 연동마을은 문현4동사무소 부근에 있던 마을인데, 이곳 연못에 있는 연꽃들은 항상 동쪽을 향해 피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며, 연동개(蓮東開)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배정초등학교와 배정중고교가 있는 주변 지역은 신선이 와서 머무는 넓은 터라는 뜻의 광선대(廣仙臺)가 있었다. 그리고 문현4동과 우암동의 경계선인 산꼭대기에는 조선시대의 진(鎭) 터인 장자터가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대공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6·25전쟁 때는 미군의 포부대가 있었고, 지금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문현동 지류의 한축인 지개골 물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아산 현충사 소장 부산포 해저도

 

동천 하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주축이 된 3도 수군이 우리 수군 전사상 가장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가장 큰 전과를 거둔 부산포 해전이 벌어진 곳이었다고 한다. 부산시는 이 부산포 해전을 기려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했다. 

동천은 크게 엄광산의 가야천을 받아들이고, 백양산 동남쪽 지류인 당감천과 합류한다. 또 백야산 초읍동 연지동에서 발원한 부전천 물길을 이어받고, 황령산 전포동 지역에서 전포천과 동구 안창마을 뒷산에서 발원하는 범내의 물길을 포함하여 활여산 갈미봉과 320봉 사이에서 발원한 물길을 데리고 부산만으로 유입한다.

 

이들 "지류와 동천 본류에 사방수로(砂防水路)인 둑을 쌓아 물길을 잡기 시작한 것은 동천의 상류 계곡에 성지곡 수원지가 축조된 1909년부터이다. 성지곡 수원지가 축조되기 이전에는 비가 오면 서면 주위의 산지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길이 낮은 자리로 제멋대로 흘러내려 지금의 서면 일대는 산에서 굴러내린 돌자갈과 흙모래 천지인 하천부지였다" 고 하며 폭우나 여름 우기에 " 폭우가 쏟아지면 주위 산자락의 물길은 산록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와 자갈로 퇴적일 이루었다.

 

일제 강점기 1936년 준설 청원 진정서에 의하면 '동천 운하는 부산항만에 통하는 유일한 수로로서 부선(艀船)은 물론 200∼300톤 정도의 범선(帆船) 및 발동선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어 경제에 있어 극히 유리한 운하임. 그럼에도 매년 여름철에 여러 번의 큰 비로 동천에서 유출되어 하류 운하 및 항내에 퇴적하는 토사는 약 1만 톤 또는 그 이상으로 추측되어 동 운하의 교통두절뿐만 아니라 하구 멀리의 항내마저 매몰케 하는 상태임.' 이라고 진정 하고 있다. 이에 의거 1937년 동천의 유로는 사행천에서 일직선으로 직강화되고 전포쪽 쪽 구릉은 이때 깍여 나간 진 것이라 한다.

 

한편 임진왜란 전황을 기록한 난중일기 임진년(1592)9월1일(양 10월5일) '부산城 동쪽 한 산에서 5리쯤 되는 언덕 밑 세 곳에 왜선이 모두 470 여 척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수운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미군 항공사진 중 문현동 일원과  앞서 1948년 1월6일 지금의 농심 메가마트 근처 미군 제6공병대가 재건축 중인 1연대 2대대 지역 (1948년 사진 출처: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연구 총서 1-미국국립문서관리청 소장 부산 자신 자료집  사진 No 37)

 

1950년 9월30일 좌천동 부산진교회에서 자성대 문현동 방면  사진 ( 출처: 부산시민공원 역사관 연구 총서 1-미국국립문서관리청 소장 부산 자신 자료집  사진 No 145)

 

 

 

 

 

 

 

 

 

 

 

 

 

 

 

 

 

 

 

 

 

 

 

 

 

 

 

 

 

 

 

 

 

 

 

 

 

 

Polonaise brillante for Cello and Piano in C major, Op.3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서Piano, Emanuel Ax
Cello, Yo-Yo 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