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한겨레-국민
토지 강제수용 법안만 110개…80대 촌로 “내 땅 4번 뺏겨” 울분
⑥빼앗는 자를 위한 ‘토지보상법’
한국 노인들, 건강 다할 때까지 ‘번아웃 노동’
일 놓지 못하는 노인들…‘근로여력’ 유럽국 절반에도 못미쳐
불평등을 포장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학력 자본에 따른 불평등, 누가 공평하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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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장도리 4.22~26
토지 강제수용 법안만 110개…80대 촌로 “내 땅 4번 뺏겨” 울분
⑥빼앗는 자를 위한 ‘토지보상법’
일생에 4번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이기인씨.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씨는 땅을 5번째 강제수용당할 위기에 놓이자 지난해 3월30일 ‘대통령님, 도와주세요’라는 팻말을 옆에 세워두고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섰다. 토지난민연대 제공
“처음에는 골프장 반대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전국에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국토교통부는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토지 강제수용 등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있지 않아요. 국토부 주무관한테 이 문제를 지적하니까 ‘그럼 나라가 흔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11월30일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자택에서 만난 박성율 목사가 말했다.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30여개 피해 주민 대책위원회 등과 연대해 ‘토지난민연대’를 구성한 박 목사는 회원들과 번갈아 일주일에 서너번 홍천에서 서울로 이동해 청와대 앞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495일째 청와대 앞에 섰다. 박 목사가 거리에 서게 된 계기는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대표이사를 지낸 법인 ‘원하레저’의 골프장 조성 사업이었다. 목회를 잠시 접고 내려간 고향 홍천에서는 2008년부터 골프장 인허가가 이뤄지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이 골프장을 공공·문화체육시설로 규정해 민간 건설업자들도 토지 소유자 80%의 동의를 받으면 나머지 소유자들의 집과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골프장 시행자들은 사업 기간을 단축하려 불법으로 농민들의 조상 묘지를 파헤쳤고,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농민들은 평생 살아온 마을을 떠나야 했다.
박 목사가 이끄는 ‘토지난민연대’ 회원 가운데 일생에 네번의 강제수용을 겪은 할머니도 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기인(85)씨는 1994년, 2001년, 2004년, 2009년 각각 기획재정부, 국방부에 농토를 강제수용당했다. 그런데 2015년 철원군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철원 노동당사’ 인근에 조성된 공원을 확장하기로 결정하면서 논 1700평을 또다시 수용당할 위기에 놓였다. 5번째 강제수용을 거부한 이씨는 “60년간 보유한 내 피와 땀 같은 땅”이라며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억울함을 호소하며 버티고 있다. 이씨의 딸 유경림씨는 “군청 누리집에 공고하는 것으로 사업이 확정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군청에 가서 따지고 버티시니까 군청 공무원이 업무방해로 고소한다고 하더라. ‘그 땅 몇푼이나 (주고) 샀어요?’라고 하면서. 그게 법이라더라. 법 위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 위에 법이 있다”고 토로했다.
토지보상법 말고도 110개의 개별법으로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제도에 반대하며 495일째 1인시위를 하는 박성율 목사. 지난 6일에도 자택인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를 나서 청와대 앞에 섰다. 박성율 목사 제공
■ 9년간 공공기관이 수용한 토지만 1106㎢
‘관광진흥법’ ‘마리나항만의 조성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이 법률들의 공통점은 사업 시행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인허가를 받으면 민간인의 토지를 강제수용해 개발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골프장뿐 아니라 레저시설, 호텔 등 민간사업 시행 과정에서 토지가 강제수용된다.
국토부는 강제수용 면적 등 관련 통계를 제대로 집계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규모도 가늠하기 어렵다. 민간사업자의 수용으로 인한 토지 면적, 수용당하는 인구 등은 아예 제대로 된 통계가 없다. 그나마 한국토지주택공사, 철도공사 등 공공기관이 수용하는 면적만 집계된다. 지난해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8~2016년 공공기관이 수용한 토지는 1106㎢로, 여의도의 132배에 이른다. 보상금액은 132조3297억원으로 지난해 정부 총지출 예산 428조8000억원의 30.8%에 이른다. 이 의원은 “토지 수용으로 영향을 받은 인구는 9년간 288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경험치상 국가 시설 조성으로 수용하는 땅은 대다수 농지나 임야”라고 말했다. 대다수 피해자가 농민인 셈이다.
이기인 할머니의 ‘강제 수용’ 인생
1994년부터 2009년까지
기획재정부에 국방부에…
이번엔 논 1700평 또 수용될 위기
철원군청에 따지니 고소 운운
이씨 딸 “사람 위에 법 있더라”
공익성 검증 부실한 ‘토지수용 법안’
한해 3000건 토지수용 사업 중
국토부 ‘사업 인정’은 7.1건 꼴
폭넓은 예외 인정에 공익성 ‘뒷전’
공공기관 9년간 여의도 132배 수용
최소 49개 법안 ‘민간 강제수용’ 허용
시·군청 공고로 끝… 졸지에 ‘토지난민’
지자체 누리집에 일방적 사업공고
주민들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
이의제기도 못하고 보상금 협상만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명시한 헌법 23조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토지보상법 4조는 “국방·군사시설, 철도, 도로, 공항 등에 관한 사업” 등 강제수용이 가능한 공익사업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다만 4조 8항에서 토지보상법이 아닌 개별법에서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문제는 이런 법률이 110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은 2000년 43개였으나 의원 발의 등으로 점차 증가해 2019년 현재 110개에 이르렀다. 110개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사업자의 토지 수용을 허용한다. 2013년 연구보고서 <우리나라 수용 법제에 대한 법경제학적 검토>를 낸 이호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낸) 당시 개별법이 100개였는데 이 가운데 49개 법률이 공공이 아닌 민간사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을 허용했다”고 분석했다
강제수용에 앞서 공익성 검증 절차 또한 부실하다. 토지보상법은 수용 이전에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한해 이뤄지는 토지 수용 사업 3000여건 가운데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은 건수는 2014~2019년 43건에 그친다. 한해 평균 7.1건에 불과한 이유는 토지보상법이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폭넓게 허용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사업을 공고하거나 관리 계획 또는 사업 계획 승인을 하면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사업 인정 의제’를 허용한 탓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 110개 가운데 91개가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선거 때 남발되는 각종 개발 공약 또한 이런 손쉬운 과정을 통해 민간인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한다. 특히 산업단지 유치 공약의 경우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허가를 쉽게 내준다”고 설명했다.
골프장 조성으로 인한 토지 강제수용이 문제 되자 헌법재판소는 110개 법률 가운데 일부에 대해 두차례 제동을 걸었다. 헌재는 2011년 6월 골프장을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한 국토계획법 제2조 6호 라목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4년에는 옛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제19조 1항이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사업을 위해 공공수용(강제수용) 가능성을 열어둬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사업 시행자가 110개 법률 가운데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지 않은 다른 법률에 근거해서 골프장을 조성하고 토지를 강제수용해도 된다. (헌재 결정이) 근본적 처방은 아니다.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법률도 문제가 되는 조항은 골프장에 국한되기 때문에, (강제수용 조항이) 여전히 110개 법률 안에 살아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대표를 지낸 법인의 골프장 조성 공사는 중단된 상황이다. 그러나 강원도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골프장들이 홍천군 곳곳에 조성되면서 농민들은 터전을 잃었다. 홍천/김명진 기자
■ 주민이 할 수 있는 건 보상금 협의뿐
이런 문제점 때문에 토지 강제수용 이전 공익성 검증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토지보상법이 연이어 개정됐다. 2016년 6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사업에 대해 실시계획 승인을 내기 이전에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심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개정했고, 2018년 12월 ‘의견 청취’보다 강화된 ‘협의 절차’를 거치도록 또다시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국토부의 ‘심의 의견’이나 ‘협의 절차’에 대한 법률적 구속력을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구속력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어서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국토부가 심의 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려도 지자체가 ‘실시계획인가’를 낸 경우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파악은 안 된다”고 말했다.
토지보상법 개정안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110개 개별 법률은 그대로 존치돼 있기 때문이다. 박성율 목사는 “지자체가 사업 결정 고시를 내기 전에 주민 의견이 수렴되지 못하는 과정상의 문제 또한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보상법에 따른 수용 절차를 보면, △국가 또는 지자체의 사업 계획 결정 △보상계획 공고 △보상액 산정 협의 △협의 미성립 시 토지 강제수용에 앞서 국토부의 사업 인정(또는 사업 인정 의제) △수용 재결 등의 단계를 밟게 된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지자체가 누리집 등에 일방적으로 사업 공고를 하는데 주민들은 이조차 모르고 있다가 보상액 산정 협의 때가 돼서야 인지한다. 결정 고시 등이 확정된 뒤라서 주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의 제기가 아니라 오직 보상금 협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토지보상 또한 실거래가로 이뤄지지 않고 대다수 공시지가에서 10~30%를 더해 수용되는 실정이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토지난민연대 2차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토지 강제수용 철폐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다른 나라에서는 민간사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지만, 공익성 검증이 훨씬 엄격하다. 이 연구위원은 “독일의 경우 왜 수용을 해야 하는지, 수용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는지 등 다양한 검토를 한 이후에 수용 근거 법률을 통과시킨다. 미국의 경우도 2005년 토지 수용 패러다임이 변해 정부가 민간의 경제적 이익을 증대시킬 목적의 수용권 행사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한편 수용토지에 대한 공공 모니터링 같은 사후 검증 절차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선거철에 정치적 필요나, 민간기업의 이윤을 위해 농민의 땅을 값싸게 강제수용하는 과정이 토지보상법이 인정한 다양한 우회로를 통해 적법하게 이뤄진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민간사업자의 영리사업을 위해 강제수용하는 경우가 있어서 토지 수용이 가능한 110개 법률을 줄여나가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법률 개정 공고를 점진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끝>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연재를 마치며
한 장의 서류에서 시작되었다. 국회의원 재산 공개 내역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논과 밭이었다. 제보자, 취재원, 조력자 없이 시작한 취재였다. 노트북 한 대를 들고 홀로 전국을 헤맸다. 6차례 이어진 탐사기획의 소재는 농지로 동일하지만, 같은 소재를 두고 다양한 계층과 층위의 현실을 담으려 했다. 1~2회는 농지를 보유한 국회의원들의 이해충돌 실태를 공약 전수조사와 그들의 농지 인근 도로 개설을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3회는 한 마을에서 이뤄지는 농지 투기 실태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어떻게 부동산 왕국을 이루는지, 한 공간을 깊이 들여다봤다. 4회는 법률적 측면이다. 누구나 위반하지만 범법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농지법을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앞장서서 허무는지, 편법으로 취득한 농지취득자격증명과 현장 취재를 대비해 보여줬다. 5회는 개발 예정지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농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12명의 농민 구술로 담아냈다. 6회는 개발로 인해 농민들이 땅을 어떻게 강제수용 당하는지 법률의 문제점을 짚었다. 공직자들에 대한 개별적 고발에 그치지 않고, 비농업인들의 불필요한 농지 소유가 일상화한 한국 사회의 보편적 현실과 이로 인한 피해를 담고자 했다. 의원들의 농지 소유에서 시작된 연재는 마지막에 토지보상법이라는 부조리한 법률에 닿았다. 어쩌면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법이 제정되는 국회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누가 어떤 법을 입법하고 이로 인한 이득을 취하는지 감시의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됐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이 문득 가깝게 느껴진다.
한국 노인들, 건강 다할 때까지 ‘번아웃 노동’
권정현 KDI 연구위원 보고서 입수
노인들 생계 때문에 일 못놓아
65∼69살 중졸 남성 근로여력 ‘0’
70∼74살 -1%p로 한계 넘어 일해
노인 복지 논의 중요한 시사점
우리나라 70살 이상 저학력 노인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최대치를 넘어 과도하게 생계형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후보장제도 부족으로 노인들이 쉬고 싶어도 먹고살기 위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기존의 조사보다 한층 구체적인 분석 방법을 통해 입증됐다.
21일 <한겨레>가 입수한 한국개발연구원(KDI) 권정현 연구위원의 ‘노인의 건강과 은퇴연령 조정연구’ 보고서를 보면, 60살 이상 고령 남성들의 ‘근로여력’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근로여력은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 정도와 건강 상태 특성을 바탕으로 이 연령층이 ‘추가로 더 일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보고서는 정년 이전 연령대인 55~59살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요소는 배제하고 건강 상태가 이 연령대의 근로 여부에 미치는 영향력을 도출한 뒤 이를 고령층에게 똑같이 적용해, 고령층의 건강 수준에 따른 가상의 ‘추정 고용률’을 산출했다. 이를 실제 노인 고용률과 비교해 나타나는 차이가 ‘얼마나 더 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근로여력이다. 근로여력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령 노동자 근로여력
권 연구위원의 분석 결과를 보면, 중졸 이하 고령 남성 가운데 70~74살 연령대의 실제 고용률(40%)은 추정 고용률(39%)보다 오히려 높아 근로여력이 -1%포인트로 나왔다. 이는 건강 수준을 넘어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65~69살 중졸 남성은 실제 고용률과 추정 고용률(각각 52%)이 같아 근로여력이 0%포인트였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일한다는 의미다. 60~64살 중졸 남성의 경우는 실제 고용률(66%)이 추정 고용률(67%)보다 낮았지만 차이는 1%포인트에 불과했다.
전체 고령 남성을 보더라도 근로여력은 낮았다. 60~64살 남성은 2%포인트, 65~69살은 4%포인트, 70~74살은 4%포인트였다. 권 연구위원은 “60살 이상 고령 남성은 현재 건강 수준에서 이미 포화 수준으로 근로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근로여력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노후보장제도의 미성숙 같은 제도적 요인 및 이에 따른 노인빈곤 문제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다만 학력이 높을수록 근로여력도 상대적으로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고졸은 3%포인트(60~64살)~9%포인트(70~74살)였고, 대졸 이상은 8%포인트(60~64살)~23%포인트(70~74살)였다.
권 연구위원은 “고령 남성이 주로 일하는 자리는 임금 수준이 낮고 고용 불안정성이 높다”며 “고령자를 대상으로 사회보험과 복지를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 격차를 보완하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현재 사회적으로 논의 중인 정년 연장 및 연금제 개편 과정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실제 노인의 건강 상태와 근로여력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하려는 취지로 진행됐으며, 조만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근로여력이란?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 정도와 건강상태 특성을 바탕으로 이 연령층이 ‘추가로 더 일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은퇴 이전의 특정 연령대(예를 들어 55∼59살)를 기준으로 삼아, 다른 요소는 배제하고 오로지 건강상태가 이 연령대의 근로 여부에 미치는 영향력을 도출한 뒤 이를 고령층(60∼74살)에게 똑같이 적용해 가상의 ‘추정 고용률’을 산출한다. 이 추정 고용률에서 실제 노인 고용률(노인고용인구/노인인구)을 뺀 수치가 ‘근로여력’이다. 따라서 이 값이 0이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마이너스라면 건강 수준을 넘어서까지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일 놓지 못하는 노인들…‘근로여력’ 유럽국 절반에도 못미쳐
10년 전부터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아무개(72)씨는 최근 계약 갱신 기간이 단축돼 걱정이 커졌다. 그동안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다 올해부터는 갱신 기간이 3개월로 줄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 탓에 회사에서 언제 그만두라고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월급과 기초연금, 국민연금을 합치면 월수입이 200만원을 넘어 현재 생계유지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직장을 잃을 경우 연금만으로는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하다. 김씨는 “혹시라도 잘리면 다른 일을 찾을 생각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소득층을 제외한 대다수 고령 남성은 김씨처럼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려고 한다. 21일 <한겨레>가 입수한 한국개발연구원(KDI) 권정현 연구위원의 ‘노인의 건강과 은퇴연령 조정연구’ 보고서는 이런 노인들의 근로 실태를 ‘근로여력’(더 일할 수 있는 건강 여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고령(60~74살) 남성의 근로여력은 세계 주요 국가와 비교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주요국 노인들에 비해 일을 더 많이 한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국제비교를 위해 외국에서 근로여력 계산의 기준으로 삼은 51~54살을 적용해 분석했다. ‘51~54살 남성의 건강상태가 근로 여부에 미치는 영향력을 도출해 이를 고령층(60~74살)에게 똑같이 적용한 뒤 가상의 ‘추정 고용률’을 냈다. 이를 노인의 실제 고용률과 비교해 나타나는 차이가 근로여력이다. 국내 상황만 파악해보기 위해 활용했던 기준 연령대(55~59살)와 달리 이처럼 기준 연령대(51~54살)를 낮게 설정하면, 고령층의 추정 고용률이 더 높게 산출되고 이에 따라 근로여력도 더 크게 나온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60~64살의 근로여력은 16%포인트, 65~69살은 26%포인트, 70~74살은 34%포인트였다. 이는 독일, 영국, 덴마크 등 유럽 국가 고령층 근로여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고령자의 은퇴연령이 높은 일본과 비교해보면, 60~64살에서는 근로여력이 비슷하지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우리나라 고령 남성의 근로여력이 낮아진다.
연령대별로 분석해보면 눈에 띄는 특징이 나타난다. 다른 나라는 고령 남성 가운데 고학력자일수록 더 늦게까지 경제활동에 참여해 근로여력이 낮은 반면, 한국은 저학력일수록 경제활동 참가를 더 많이 해 근로여력이 낮다는 점이다. 미국과 한국의 교육수준별 근로여력 비교를 보면, 60~64살의 경우 미국은 중졸 이하 근로여력은 17%포인트인데 대졸 이상은 15.8%포인트였다. 반면 한국은 같은 연령대 중졸 이하의 근로여력이 11%포인트이지만 대졸 이상은 27%포인트로 훨씬 더 높았다. 고학력 노인들을 수용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의 노동시장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보고서는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이나 이에 따른 정년제·연금제도 개편 과정에서 이런 교육수준에 따른 근로여력 차이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 연구위원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 격차를 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저학력 고령 남성은 낮은 건강 수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문제로 일하는 비중이 높으므로, 이들의 건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불평등을 포장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민미연 포럼] 학력 자본에 따른 불평등, 누가 공평하다 하나
얼마 전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어째서 '김용균법'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안타까운 사연을 잘 알고 있다. 김용균 씨 어머니의 헌신 덕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법이 통과되었다. '김용균법'이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 법에는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필요한 안전 조치 및 보건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제 63조가 들어가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위험을 외주화하는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김용균법'이 통과되어 다행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21세기에 하청기업 노동자를 이토록 노골적으로 차별해온 그동안의 관행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유럽과 미국의 원·하청 관계는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다. 우리와 비슷할 거라 착각하는 일본의 원·하청 관계는 온정주의적 관계다. 원·하청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외국의 사례를 살펴볼수록 한국의 원·하청 관계의 원인은 자본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원·하청 간의 압도적인 비대칭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별한 관계다. 같은 노동자라도 원청에서 근무하는지, 아니면 하청에서 근무하는지에 따라 받는 보수가 달라진다. 보수에 따라 노동자와 그 가족이 누리는 삶의 질도 달라진다. 자본주의라고 해도 한국만큼 원·하청의 격차가 큰 곳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격차는 우리 내부의 어떤 특정한 문화나 습속에 근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과연 무엇일까.
'능력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역동적 민주주의는 우리 스스로도 자랑하지만, 많은 세계인들도 인정하는 우리의 자랑이다. '6월 민주항쟁' 이후 수십 년간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목청껏 외쳐온 민주주의는 늘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쳤다. 물론 이것만해도 민주적 역량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부족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평등을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등해지기 보다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평등은 이미 나쁜 의미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능력'에 대한 우리의 물신주의 때문에 이런 불평등은 정당화되고 심화되었다.
'능력'에 대한 맹신은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이데올로기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좋은 보수를 받고 더 잘 살고 더 행복해도 된다'는 황당한 생각이 어쩌다 한국인에게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유교 문화로부터 능력주의가 유래되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능력주의는 유교에서 과거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전 세계에서 이토록 빠르게 한 인간의 능력만으로 고위직을 부여하는 제도는 중국과 우리밖에 없었다. 일본의 젊은 학자 요나하 준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과거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물적 기반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에게는 너무나 흔한 종이와 종이로 만든 책의 대규모 생산과 유통이 중국과 고려같이 생산력이 매우 발달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힘들었다고 한다. 영국은 1870년대 미국은 1883년이 되어서야 시험을 통해 관료가 선발되었다. 그만큼 과거제도는 인류 역사에서 드물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Alexander Woodside)는 중국, 한국의 과거제도를 귀족제를 직업적 엘리트 관료로 대체한 세계사적 혁명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만큼 대단했지만 그 대신 그만한 대가도 따랐다.
능력에 따른 불평등이 정당화되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능력에 따른 불평등이 아니고 능력을 담보해줄 학력 자본에 따른 불평등이었다. 진짜 능력은 아니었다. 능력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에 기초한 불평등이자 격차였다. 우리는 이것을 학력·문화 자본이라 고상하게 말하곤 하지만, 사실은 학벌 하나로 먹고 들어가는 세상이었다.
이런 능력주의는 개인적 불평등, 개인적 격차를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불합리한 격차와 불평등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한국인의 특성을 '평등'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이런 평등 지향은 토지개혁이라는 세계적인 성공 경험 덕분에 귀족적 지주제를 건너뛰어서라고 배웠다. (물론 자유민주세계에서 한국과 대만만 토지개혁에 성공한 이유는 앞서서 중국 본토와 북한에서의 토지개혁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인의 치열한 평등의식은 특정 지점에서 사그라진다. '능력'이다.
한국의 유교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자신의 논문 '유교적 근대성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2017, <철학연구회 학술발표 논문집>)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에 대한 전국민, 특히 청년들의 분노가 촛불혁명의 결정적인 도화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 사건은 우리 사회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어떤 원초적인 정의감을 건드렸다. 우리 사회의 대중들, 특히 청년들은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아니 돈도 실력이라고 우기는 정유라가 부당한 외압을 통해서 명문대에 입학하고 또 별 다른 노력 없이 학점을 취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냥 가만히 인내하며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정의감은 일정한 실력과 노력만이 특정 성취나 권한을 누릴 자격을 정당화한다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능력주의. 필자)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그 메리토크라시 이념은 지난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였다."
장은주는 문재인 정부가 여기저기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지만,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던 사실을 들추어낸다.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이유는 뭘까?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단체임에도 전교조는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했다. 장은주는 정규직 교사들이 교원 임용고시를 통과했다는 자긍심과 자기 정당화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우리의 권리는 임용고시라는 공적인 절차를 통했기에 정당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OECD 국가 중 15년 차 경력 교사 임금보수통계를 보면, 한국이 1인당 GDP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 대부분의 경우 1인당 GDP에 근접한 보수를 받지만, 한국은 약 2.3배를 받는다. 사학연금을 포함하면 비교 불가 수준으로 격차는 커진다. 한국 교사는 세계적 기준에서 드물게 좋은 직업이다. 그래서 선진국 교사들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려는 직업이지만, 한국에서는 보수에 이끌려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정규직 교사의 능력은 무엇인가? 아이를 잘 가르치는 것인가? 한국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임용고시라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이 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가치로 남는다. 시험성적은 직무 현장에서는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이를 근거로 차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랜 옛날부터 한국인은 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과거나 시험을 통한 인재선발은 세습 귀족을 제어할 필요성이 있던 시절에나 의미가 있었다. 세계가 서로 경쟁하는 시대에 한 번의 시험으로 내부노동자가 되어 편히 살아간다는 것은 공평성의 차원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시험공부 능력은 인간 능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에서 시험은 물신이 되었다.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바뀌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평등한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프레시안
“탈북위장간첩” 1호, 15년 만에 언론 앞에 서다
[인터뷰] 보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국가보안법 없애는 걸 막으려고 나를 이용했다”
“노무현 대통령 계실 때 국가보안법 없애겠다고 하니까 한나라당에서 탈북 위장 간첩이 있는데 이래도 국보법 없앨거냐, 그렇게 탈북자 간첩 1호가 나왔다. 내가 그 1호다.”
19일 만난 이우성씨(가명)의 고향은 북쪽의 개마고원이다. 16살이던 1992년 8월 군에 입대해 군 생활만 7년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당시 ‘남조선이 이 틈을 타 모험을 감행할 수 있으니 경비태세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남쪽에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애도기간인데 우리가 누구와 싸우겠나.” 남쪽 보도는 종종 ‘유언비어’가 되어 북으로 올라왔다. “우리 금강산 댐 폭파시키면 남한이 다 물바다가 되고 우리는 쉽게 이길 수 있다더라”는 유언비어의 시작도 돌이켜보면 남쪽의 ‘평화의 댐’ 보도였다고 했다. 그는 “북쪽 당국도 인민들의 자신감 고취에 필요하니 그런 소문들을 단속없이 놔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임무’를 받고 중국으로 향했다. 그의 임무는 연변 부근에서 남쪽 정보기관의 ‘공화국’ 모략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약 5년 간 체류했다. 그곳에서 쌀을 닭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남조선이 못산다고 했던 것도 거짓말이란 걸 알게 된 후엔 북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강조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중국인들 틈에서 이탈리아-한국 16강전을 봤다. 한국을 응원하는 중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안정환이 마침내 골을 넣을 때, 그는 눈물을 흘렸다. “우스갯소리로, 안정환이 나를 한국에 보냈다.” 2003년 1월27일 한국에 들어와 하나원을 졸업한 뒤 정착했다.
1년 뒤, 그는 가족을 보고 돌아올 생각으로 다시 북으로 갔다. 북·중 국경지대에서 집까지 150km거리를 걸어갈 셈이었다. 하지만 압록강을 넘다 잡혔고, 살아남기 위해 남쪽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렇게 다시 북에서 임무를 받고 그는 다시 남쪽에 내려왔다. 그리고 2004년 5월, 자수했다.
3개월간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간첩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조사받는 기간 동안 일을 못해서 3개월 치 일당도 받았다. 그렇게 사건은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4개월 뒤, 그는 느닷없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등장했다. 그것도 ‘간첩’으로.
중앙일보는 그해 12월2일자 “북한군 보위사 소속 공작원 탈북자로 위장 간첩활동”이란 제목의 1면 기사에서 “(이씨가) 1년3개월간 국내에서 간첩으로 암약해온 사실이 드러났다”며 “간첩 혐의가 드러나 지난 7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보도했다.
▲ 2004년 12월2일자 중앙일보 1면.
그러자 국정원은 “이씨가 지난 4월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거쳐 몰래 입북하던 중 북 경비병에 체포돼 처벌을 모면할 목적으로 보위사 정보요원임을 밝히고 당초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에 들어간 것을 사죄하면서 국내 있을 때 얻은 ‘하나원’ 시설 등에 대한 내용을 북에 제공했다”고 해명하며 중앙일보의 ‘위장탈북’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련 기사는 한 달 간 이어졌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였던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는 당시 미디어오늘에 “간첩활동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간첩이라고 하기 어렵다”며 “이씨 개인은 매우 불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당시 정치권은 국보법 폐지여부가 최대 쟁점이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국보법 폐지안을 국회 법사위에 상정했고 한나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씨는 국보법 유지를 위한 여론몰이에 좋은 소재였다. 언론은 “탈북위장간첩 1호”라며 떠들었다.
이씨는 당시를 가리켜 “한 달 간 내 이야기가 기사에 나갔다. 집에도 못 들어갔다. 누군가 국보법 없애는 걸 막으려고 나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 전여옥씨였다는 것까지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언론으로부터 잊혀진 뒤, 그는 더욱 방황했다. 자신을 간첩으로 만든 그 악의적인 기사를 썼던 기자를 죽일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는 간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제대로 사과한 언론은 없었다.
그가 15년 만에 다시 언론 앞에 섰다. 언젠가 국보법 폐지 논의가 시작되어, 또다시 자신과 같은 보도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씨는 “남한 언론, 특히 조중동에서 누가 북에 가서 확인할 수 없다는 핑계로 마음대로 북쪽 기사를 쓴다”며 오늘날의 북한 관련 보도 또한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사라지지 않는 한 5·18 가짜뉴스도 사라지지 않을 것”
그는 남쪽을 선택했지만 북쪽을 왜곡하는 보도 또한 참기 어렵다고 했다. 예컨대 그는 탈북하면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연좌제로 죽임을 당하거나 수용소로 간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상식적으로, 다 죽이면 남아있을 사람이 없다. 1년에 (남쪽으로) 1000명 정도 넘어온다. 그 가족들 다 없애면 1년에 1000가족씩 없어지는건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가족들 고통 크게 없다. 북쪽 당국에서 탈북자들이 (북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는 걸 안다. 일종의 외화가 들어오는 건데,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이다. 옛날처럼 죽이거나 그런 게 아니다.”
이씨 역시 여전히 북에 가족이 있다. 이씨도 가족에게 송금을 한다. 중국의 브로커에게 돈을 보내면 브로커가 이 돈을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떼어 가는데 한 때는 30%였고 지금은 더 올랐다고 했다.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짧게나마 가족과 통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반영된 기사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언론에 등장하는 탈북자들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고위급 탈북자는 국정원이 먹여 살린다. 이용가치가 없어지는 순간 밥줄이 끊긴다. 인텔리는 금방 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는 언론에 등장하는 일부 탈북자들 발언은 대부분 ‘생계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접했던 가장 황당한 북쪽 보도로 ‘장성택 사망’을 꼽았다. “죽인 건 맞다. 그런데 기관총으로 쐈다? 기자가 그걸 직접 봤나? 그건 우리가 봤을 때 말도 안 된다. 우리가 쏘는 총알 한 발이 북에선 닭 한 마리다. 북쪽 군인들이 1년에 총을 많이 쏘면 20발 쏜다.”
그는 장성택 기관총 총살보도가 “북의 잔혹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보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조선일보의 ‘현송월 숙청’ 보도를 예로 들며 남쪽 언론이 일종의 ‘숙청 기사’를 쓰고 당사자들의 ‘생존 신고’ 이후에도 오보를 인정하지 않고 모른 척 가만히 있다고 비판했다.
▲ 게티이미지.
그는 이처럼 일방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북쪽 보도가 나오는 이유가 “통일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의 5·18 북한군개입설 가짜뉴스의 목적도 이와 같다며 “자유한국당이 사라지지 않는 한 5·18 가짜뉴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은 다양성을 존중하니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세력(자유한국당·보수언론)의 힘이 약해져야 한다”고 말하며 한국의 뉴스수용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말을 가려들어야 하는데 이쪽(남쪽) 사람들은 너무 세뇌되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북쪽을 악마화 하는 게 보수언론”이라며 문재인정부가 보수언론을 가만 놔두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북핵보도에 대해서도 좀 더 복합적인 배경을 언론이 감안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유학을 다녀왔고, 자기 나라가 못 사는 걸 알고 있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있다. 미국 제재 때문에 그게 안 되는데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한다. 북쪽이 사실 중국 러시아 일본을 의식해서 핵무기를 갖고 있는 측면이 더 크다. 이걸 미국이 이해해줘야 한다. 특히 북쪽은 중국을 적국으로 인식한다. 북쪽이 제일 불신하는 게 중국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국 때문에 당한 게 많아서다.”
그는 현재 한 지방에서 월급받는 평범한 가장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북쪽 보도의 문제점과 북쪽의 현실을 알리는 일에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오늘도 그의 소원은 통일이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보수 단체에만 허용된 조선일보식 표현의 자유
[주장] "표현의 자유는 유행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만우절인 지난 4월 1일, 한 보수단체가 '김정은 편지'를 흉내 내는 패러디 기법을 사용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대학교와 국회, 대법원 등에 붙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명칭이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존재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일명 '전대협'과 똑같은 전대협(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체)이라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전대협과 보수단체 전대협을 구분하기 위해서 '전대협'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경찰이 현재 '전대협 대자보' 사건을 내사 중인 가운데 조선일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경찰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조선일보의 침소봉대
4월 2일부터 18일까지 5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지의 지면 보도를 살펴보면, 조선일보는 '전대협 대자보' 사건을 8건 보도했습니다. 이는 1~2건에 그친 타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대협'이 대자보를 붙인 다음 날인 4월 2일에는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이 관련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다음날부터 이 사안을 거의 다루지 않거나 건조하게 보도한 타사와 달리 조선일보는 '전대협' 관계자를 인터뷰한 <우린 평범한 젊은이…김정은 대자보는 시국 풍자한 패러디일 뿐>(4/3 신동흔 기자)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이후 '전대협' 관계자 일부가 경찰이 집안에 무단으로 난입해 자신을 조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김정은 패러디 대자보 붙였다고… 경찰, 가택 무단진입 조사>(4/15 최승현 기자) 을 1면과 12면에 보도했습니다. 다음날에도 1면
<팔면봉/ 경찰 "文 대통령 풍자 만우절 대자보에 모욕죄 검토" 이거야말로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덤벼드는' 꼴>이라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12면에는 <경찰 "문 대통령 풍자 대자보 붙인 청년들 모욕·명예훼손죄 검토">(4/16 곽래건 기자)를 게재하고, <사설/대학생 단체 대자보 수사, 민주화 운동권의 반민주 행태>(4/16)까지 내놨습니다.
▲ △ 보수단체 패러디 대자보 부착 및 경찰 대응 관련 신문 보도량 비교(4/1~18) ⓒ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는 16일 사설을 통해 "경찰의 이 행태 자체가 심각한 범죄다. 이것이 이른바 민주화 운동 했다는 정권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다", "이 정권에선 '사실'을 말해도 정권 귀에 거슬리면 처벌을 받는다", "대학생들이 정권 비판을 하자 입을 막으려 하고, 민간인 사찰을 하고, 무단 침입을 하고 '잡으러 간다'고 한다. 가관인 것은 이런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내세우는 것"이라며 현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비슷한 사건, 다른 논조
조선일보가 쓴 대로, 북한 패러디를 하거나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절대 일어나면 안 됩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경찰의 행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한 조선일보의 '호들갑'은 민망할 지경입니다. 다른 매체라면 몰라도 조선일보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요?
뉴스1은 '대자보의 처벌 가능성'을 분석했습니다. <'김정은 서신' 표방 정부 비판 대자보, 처벌 가능할까>(2019/4/1, 한산 기자)에 따르면 "('전대협'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판례는 패러디나 조롱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배포한 경우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뉴스1이 말한 판례가 대표적으로 적용된 사건은 일명 '리트윗 보안법 사건'입니다.
'리트윗 보안법 사건'이란, 2012년 1월 사진작가 박정근씨가 북한 체제를 조롱할 목적으로 북한이 운영하는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를 리트윗했다가 구속된 사건입니다. 박정근씨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가 2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시 임수경 국회의원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무리한 공안 수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일부러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습니다. 밴드 '밤섬 해적단'은 대한문에서 김정일 전 위원장과 동명이인인 인물들의 업적을 찬양하는 '김정일 만세'라는 곡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CNN <남한의 '농담'은 감옥으로 이어질 수 있다>(2012/6/4, Paula Hancocks 기자)에 보도될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었습니다. 박정근씨가 구속된 2012년 1월부터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2014년 8월까지 경향신문은 16건, 한겨레는 19건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인 2년 6개월 사이 동안 조선일보는 단 1건 보도했습니다.
게다가 조선일보가 보도했다는 단 1건의 기사마저 박정근씨 사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일부러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한 임수경 전 국회의원을 '종북'으로 모는 기사였습니다. 사실 이 기사를 박정근씨 관련 보도라고 포함하기도 어렵습니다. 2012년 당시 조선일보는 <북 대남비방 그대로 전파… 임수경 '종북 트윗'>(2012/6/7, 김경화 기자)에서 "올해 1월 집중적으로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글을 옮겼다. 사진작가 박정근씨가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리트윗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 수사를 받던 시기"라고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짤막한 설명만으로는 박정근씨가 '우리민족끼리' 글을 리트윗해서 잡혔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트윗의 성격과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조선일보는 제목부터 임수경 전 의원의 트위터를 이미 '종북 트윗'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중간 제목은 네티즌의 입을 빌려 "북한 대변인이냐"고 달았습니다. 기사 서두부터 "탈북자들을 향해 '변절자'라는 폭언을 퍼부은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올 초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의 주장을 여과 없이 소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면서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한 것이 "국가보안법을 일부러 위반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국가보안법도 내로남불?
지난해 조선일보는 <사설/국보법 위반자 줄어든 건가, 수사 안 하는 건가>(2018/6/8)를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국가보안법 입건자는 28명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2008~2016년) 9년간 평균 입건자 수(78.9명)에 비하면 1/3 수준"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적 표현물을 소지했던 병무청 직원, 이적 표현물을 판매한 출판사 대표, 북한 대남 선전기구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한 사람 등도 무죄를 받았다"며 최근의 국보법 무죄 사례를 들었습니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병무청 직원'은 북한대학원 진학을 위해 북한 서적을 소지한 경우였으며, '출판사 대표'의 경우는 E.H카의 저서 등 동네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있는 책을 이적표현물이라며 기소한 경우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사람들이 무죄를 받은 것 가지고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악용되었습니다. 전 정권에서는 페이스북에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북한 선전가요를 유머 목적으로 올렸다고 수사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김정은 사진을 걸어놓고 대자보 형식을 빌린 보수단체의 표현물에 대해서 '명예훼손 등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대학생들이 정권 비판을 하자 입을 막으려 하고, 민간인 사찰을 하고, 무단 침입을 하고, '잡으러 간다'고 한다"며 비판한 것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유행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한겨레의 박정근 씨 관련 보도 <"김정일은 영양소가 풍부합니다"… 6년 만에 끝난 '국보법' 수사>(2019/1/13, 이준희 기자)를 보면, "박씨는 수사가 시작된 지 3년 만인 2014년 8월 28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비슷한 이유로 2012년 10월부터 수사를 받은 김정도씨도 2016년 5월께 '내사종결' 처분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권씨가 지난달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리트윗 보안법'이라고 불린 경찰의 국가보안법 수사는 수사 대상자들에게 고통만 남긴 채 마무리됐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 수사를 받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을 때, 조선일보는 침묵했습니다. 김정은 비하 트윗을 올린 사람들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검토'도 아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을 때 모르쇠로 일관하던 조선일보가 이제 와서 "김정은 패러디 대자보 붙였다고 수사한다"며 비판하는 것은 민망한 일입니다.
위에 소개한 조선일보 <사설/국보법 위반자 줄어든 건가 수사 안하는 건가>(2018/6/8)은 "국가 안보는 유행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야말로, "유행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시형(ccdm1984) 오마이뉴스
4차산업혁명, 굳이 자본가에 맡길 이유가 있나?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 미래자동차와 플랫폼
4차 산업혁명, 대체 이건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인사이드 경제>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문서를 읽기도 해봤고 온라인상 글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우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다루는 분야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나라별로도 4차 산업혁명 논자들의 강조점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다양함 속에서도 공통적인 얘기가 2가지 있었다. 첫째 경기침체가 일상화될 정도로 자본가들 이윤율이 바닥을 기고 있다는 점, 둘째 기술혁신을 결합시킨 산업 구조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겉으로 봐서는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논리이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래 기술혁신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구하기 프로젝트
기술혁신 관련한 얘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낮은 이윤율' 얘길 빼먹으면 안 된다.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며 경제가 위기로 치달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최근 반세기 동안만 해도 2~3차례는 있었던 사건이다. 그때마다 부동산 거품이니 주식 거품이니 다양한 경기부양 요인을 만들어 탈출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백약이 무효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폭삭 내려앉은 세계경제와 자본의 이윤율은, 잠시 반등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내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제 버블(bubble, 거품)로는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 입장에선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을 필요로 한다. 증기기관의 발명, 과학기술혁명과 같은 수준의 처방 말이다. 어쩌면 이게 바로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바이자 진짜 실체가 아닐까? 낮은 이윤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재편,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구하기 프로젝트 말이다.
가설은 일단 여기까지로 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파헤쳐 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인사이드 경제>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있는 건 비단 자본가들만이 아니다. 이 문제를 중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정부는 대체 어떤 산업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꼽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가들이 꼽은 새로운 먹거리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했지만 이 위원회가 하는 일은 이런저런 토론에 불과하다. 실제로 일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청와대·기획재정부·산업자원통상부다. 그들은 자신들 프로젝트에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어떤 부문을 꼽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혁신성장’의 8대 선도사업으로 다음과 같은 업종을 선정한 바 있다 : 미래자동차, 드론,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스마트시티, 에너지신산업, 초연결지능화, 핀테크.
이렇게만 보면 그저 ‘떠오르는 신산업’ 정도로만 보인다. 이걸 좀 이해하기 쉽게 범주화 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정부가 지난해 8월에 발표한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 중 전략투자 분야를 살펴보면 8대 선도사업 개념과 함께 ‘플랫폼 경제 구현을 위한 3대 분야’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년 8월 13일, 정부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
대체에너지, 인공지능(AI), 플랫폼
정부가 선정한 ▵8대 선도사업과 ▵플랫폼 경제 3대 분야를 함께 분석해 보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인사이드 경제>는 8대 사업과 3대 분야를 아래와 같이 플랫폼 △AI(인공지능) △대체에너지 3개의 범주로 나누어 보았다. (파란색 글씨는 플랫폼 경제 3대 분야, 까만 글씨는 8대 선도사업에 포함된 영역들임)
이렇게 범주화를 시도해보니 4차 산업혁명이 눈에 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 자본가들이 낮은 이윤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먹거리로 선택한 게 바로 저 3가지로구나! 실제로 자본가들은 △대체에너지 △AI △플랫폼, 3개 부문을 새로운 먹거리로 선택하고 기술혁신을 집중시키고 있는 상황 아닌가.
석유·석탄·원자력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낸다면 대박이 난다는 건 상식이다. 인간처럼 사고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낸다면 노동력 대체가 가능해 인건비 절감이 가능하며, 소비자와 노동력을 직접 연결시키는 플랫폼을 장악한다면 특별 이윤을 노려볼 수 있다. 너도 나도 '플랫폼' 선점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면 바이오 의료 같은 것도 포함되지 않나요?"
앞으로 이런 질문들이 던져지면 앞의 3가지 범주를 적용해보면 된다. 의료 산업에서 자본가들이 찾아낸 새로운 먹거리는 ‘원격 의료’이다. 기존 병원 시장은 포화 상태이니 차라리 환자와 의사를 원격으로 연결시키는 플랫폼을 장악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오 의료는 ‘플랫폼’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상용화되고 있는 건 플랫폼과 미래자동차
자본가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3가지 분야이긴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은 ‘플랫폼’ 뿐이다. 인공지능(AI)의 중요성이야 모든 자본가들이 칭송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까진 멀었다. 가끔 광고에서 “◯◯야, 조용한 음악 좀 틀어줘~”라며 마케팅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까진 ‘딥 러닝(Deep Learning)’ 단계이다.
올해 구글(웨이모)과 GM(크루즈)이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지만 <인사이드 경제> 입장에선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현 시점의 기술 수준으로 운전자를 완전히 대체할 자율주행차가 과연 가능할까? 매우 부분적이거나 다른 보완책을 전제로 해서만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합법적인 살인기계가 도로 위를 달리게 될 테니 말이다.
대체에너지 부문도 마찬가지다. 전기자동차가 상용화 단계에 올라오긴 했지만 저게 과연 ‘대체에너지’라고 볼 수 있을까?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는 전기의 압도적 부분은 석탄·석유·원자력으로부터 얻는다. 수소차의 수소를 얻는 방식 또한 화석연료를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전기차·수소차는 사이비 대체에너지 수준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수력·풍력·태양열과 같은 자연적인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친환경 대체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래자동차는 비록 ‘사이비’이고 ‘부분적’일 뿐이라 할지라도 4차 산업혁명 먹거리 3가지 분야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공장을 돌릴 만한 전기 배터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자동차를 구동시킬 수준의 배터리는 개발되어 있고, 아직은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거의 모든 완성차 업계와 IT 업계가 달려들어 자율주행이라는 미래의 꿈을 팔고 있다.
게다가 카쉐어링·카헤일링 부문에서 이미 상용화된 플랫폼은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든 상태이다. 과거에 미래자동차라고 하면 전기차·수소차나 자율주행차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누구나 모빌리티 관련 스마트폰 앱을 쉽게 떠올린다.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으로 플랫폼과 미래자동차가 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에게 중요한 건 '필요'가 아니라 '수요'
4차 산업혁명이 모종의 ‘혁명’이라면 현재 이 혁명의 유력한 주체는 자본가들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하였으나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건 필요가 아니라 ‘수요’다. 산간벽지와 낙도에도 전기와 가스가 ‘필요’하지만, 그리고 그곳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할 기술도 개발되어 있지만, 이윤이 남을 만큼의 ‘수요’가 없다면 자본가들은 절대로 이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와 현대차 자본은 수소차가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고 엄청 선전해댄다. 수소 연료전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기 중의 산소를 순도 높게 공급해야 해서 고성능 필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연료전지 효율과 이윤율 제고라는 목적을 추구하다 얻어진 부산물일 뿐이다. 더 효율적인 다른 방법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버려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이윤율이 바닥을 헤매는 자본주의 위기 시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찾는 새로운 수요들은 어쨌건 ‘필요’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어야만 수요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다만 그것이 유효한 수요가 되기 위해서는 이 상품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충분한 소비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산업혁명을 자본가들에게 맡겨놓을 이유가 있을까?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 중에 충분한 수요가 발생하는 곳만 자본가들이 노리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오히려 이 문제를 공공의 영역으로 옮겨놓으면 충분한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상용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4차 산업혁명의 주체를 바꿔보자
‘카카오 모빌리티'와 같은 것을 예로 들어보자. 카카오는 콜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며 빅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모빌리티 영역으로 치고 들어오며 택시 부문과 충돌이 벌어진다. 그런데 정말로 모빌리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라면 이걸 공공 영역이 수행하는 게 정상 아닐까?
이를테면 택시 승차 거부의 주요 원인이 되는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완전월급제 실시를 유도할 수 있는 실력을 서울시가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저런 모빌리티 서비스와 플랫폼을 운영하면 되는 일이다. 택시업계가 서울시 보조금으로 살아가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고, 서울시민의 택시 사용에 대한 빅 데이터 역시 공공의 용도로 사용됨이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수소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기차와 달리 수소차는 비교적 덩지가 큰 차량에 적용하는 게 적합하다. 그렇다면 시내버스·광역버스·고속버스 등에 수소차를 적용하고, 여기에 투입되는 수소는 풍력·수력·태양열 등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면 연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연비 절감은 교통요금 인하로 직결되고 이는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을 늘려 교통체증 문제도 잡을 수 있다.
특히 이런 대중교통 버스의 경우 노선이 일정하기에 특정 거점에만 수소 충전소를 갖추면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충전소 하나 건설에 수십억이 들어가는 수소 충전 인프라의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 역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등 공공의 영역에서 수행한다면 훨씬 친환경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을 자본가들에게 맡겨둘 이유가 더더욱 없지 않은가.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프레시안
숙명여고 쌍둥이 "공부해서 1등, 아빠 교사란 이유로 모함"
“증인은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린 건데 아버지가 같은학교 교무부장이었단 이유만으로 다른 학생들로부터 시기어린 모함을 받는다는 건가요? (검찰 측)”
“그렇습니다. (쌍둥이 언니)”
시험 문제 유출 의혹을 받는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현모씨의 쌍둥이 자매가 아버지 재판의 증인으로 나섰다. 자매는 “다른 학생들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올랐을 뿐 시험 문제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23일 오후 현씨의 업무방해 혐의 공판을 열었다. 이 판사는 이들이 아직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해 어머니가 증인석에 함께 앉은 상태로 신문을 진행하도록 했다.
쌍둥이 언니 “다른 학생보다 노력해…모함받은 것”
먼저 증언대에 선 언니 A양은 “아버지로부터 교내 정기고사 답을 사전에 전달받고 이를 이용해 시험을 치른 사실이 전혀 없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결코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다. 변호인이 “만일 허위로 답변한다면 인생에 큰 잘못이 될 수 있고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A양은 사전 유출 문제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일축했다.
쌍둥이가 시험지에 깨알같이 적은 정답. 자매는 "원래 글씨가 작다"거나 "시험 종료 후 반장이 불러주는 정답을 적은 것" 등의 반박을 폈다. [연합뉴스] [사진 수서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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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이 단기간에 내신 성적이 크게 오른 이유를 묻자 “교사의 성향을 터득하고 맞춤형 방식으로 교과서를 철저히 암기했다”고 답했다. 자신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꼼꼼하고 교사의 출제 성향을 더 철저히 분석해 내신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도 강조했다. 시험지에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정답을 적은 것에 대해선 “시험 종료 후 반장이 불러준 답을 적은 것”, “더 잘 암기하기 위해 적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사가 '그럼 다른 학생들이 시기어린 모함을 한 것이냐 '고 묻자 A양은 맞다고 답변했다. 동생 “특정 세력들이 나와 아버지 억울하게 몰아갔다” 뒤이어 증언대에 오른 동생 B양도 단기간에 성적이 오른 것과 관련, “특별한 비결이 없고 선생님 말씀을 충실히 들은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시험 점수가 급격히 오른 점을 검사가 추궁하자 “요지를 정확히 말해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B양이 검찰 조사 당시 자신들의 혐의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 측은 “아버지와 두 딸이 조사와 재판 받게된 이유를 두고 모 사이트 회원들과 학부모 등 특정 세력이 이 상황을 조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한 게 맞냐”고 물었다. B양이 “정확히 말해달라”고 하자 재판부는 “자신들에 대한 사이트 비판글을 보고 언니나 아버지를 몰아갔다고 투서한 적이 있느냐”고 재차 물었고, 검찰 측이 “그런 사이트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냈지 않느냐”고 부연하자 B양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이밖에 B양은 경찰 수사를 받을 당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변호인이 “B양이 설명을 해도 경찰관이 잘 못알아듣지 않았느냐”, “알아들으려는 노력도 안했다”고 묻자 B양은 맞다고 동의했다.
현씨는 2017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2018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5차례 교내 정기고사에서 시험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알아낸 답안을 재학생인 두 딸에게 알려주고 시험을 치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1학년 1학기 때 각각 문과 121등, 이과 59등이었던 쌍둥이 자매는 2학기에는 문과 5등, 이과 2등으로 성적이 크게 올랐다. 2학년 1학기에는 문과와 이과에서 각각 1등을 차지해 의혹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경찰 수사가 발표된 지난해 12월 퇴학 처분됐다.
박사라ㆍ이수정 기자 park.sara@joongang.co.kr
8m 파도 아래 1300명 태운 대형 크루즈선 조난
거센 파도로 헬기 동원해 한명씩 구조작업 진행
사고 발생 15시간만에 엔진 가동돼 인근 항구에 정박
23일 노르웨이 서부 해안에서 조난 신고를 한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스카이’의 모습. 거센 파도로 구조선 접근이 불가능해 헬기를 통해 구조가 이뤄지고 있다. 후스타드비카/EPA 연합뉴스
노르웨이 서부 해안을 지나던 대형 크루즈선이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면서 이 안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1300명이 불안에 떨었다. 거센 파도로 대형 구조선의 접근이 어려워 헬기를 이용한 구조 작업이 12시간 넘게 진행됐다.
노르웨이 현지 언론과 <시엔엔>(CNN) 등 보도를 모아 보면,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스카이’는 23일 노르웨이 서해안 후스타드비카 인근에서 “악천후 속에서 엔진 고장이 발생했다”며 남노르웨이 합동구조센터에 조난 신고를 했다. 이 해역은 거센 파도와 암초로 악명 높은 지역이어서 배가 표류하면 좌초될 위험이 있다. 노르웨이 구조당국은 구조선을 현지에 급파했지만, “6~8m나 되는 큰 파도”로 인해 구조선 접근이 제한돼 5대의 “헬기로 승객을 한명씩 끌어 올리는 힘겨운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시엔엔> 등이 공개한 현장 영상을 보면, 크루즈선이 거센 파도에 이리 저리 휘청이는 가운데 헬기가 배 위에 맴돌며 구조작업을 벌이는 급박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이 넘는 구조작업 끝에 승객 340여명이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에 부상으로 병원에 후송된 승객은 20여명이다. 이후 사고 발생 15시간여만에 엔진 4개 중 3개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해 크루즈선은 인근 항구 몰데에 정박했다.
크루즈에 탑승한 승객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인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인 재닛 제이컵은 헬기로 구조된 뒤 노르웨이 현지 언론과 만나 “지금껏 이렇게 무서운 경험을 해본 적 없다”며 헬리콥터로 이동할 때 바람이 “토네이도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승객 존 커리도 배가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며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사고를 일으킨 배는 2017년에 건조돼 ‘바이킹 오션 크루즈’에 인도된 총 배수량 4만7800t짜리 대형 선박이다. 14일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출발해 12일 동안 항해한 뒤 런던 틸버리 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임대주택 17만 6000호 공급… 금융지원까지 확대
정부 주거지원계획 발표, 주거급여 소득기준 상향 110만 가구 혜택… 공공분양 2만 9000호 착공
정부가 올해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지난해보다 공적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제공한다. 공공임대주택과 주거급여 지원, 전월세자금 등 금융지원까지 총 153만6000여 가구가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23일 국토교통부는 이같은 내용의 '2019 주거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먼저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13만6000호와 공공지원임대주택 4만호 등 공적임대주택 17만6000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준공과 입주, 공공지원 임대주택은 부지확보 기준이다.
지난해 국토부는 공공임대주택 13만2000호, 공공지원임대주택 4만호를 계획해 각각 14만8000호, 4만6000호 준공 및 부지확보 실적을 달성한 바 있다. 아울러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공공분양 주택도 2만9000호 규모를 착공할 계획이다.
주거급여는 소득기준을 상향한다. 지난해 중위소득 기준 43%였으나 올해는 44%로 늘리고 지난해보다 수혜가구를 약 17% 가량 늘릴 계획이다. 이로 인해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는 가구는 약 110만 가구로 추정된다. 이 밖에 주거급여 지급 상한도 현행보다 5.0~9.4% 가량 인상할 계획이다. 구입·전세자금 지원도 지난해 비슷한 규모로 계획됐다. 올해 주택구입자금 10만호, 전·월세자금 16만호 등 총 26만호를 지원한다.
수요자별로는 먼저 무주택 서민을 대상으로 구입자금(디딤돌) 및 전세자금(버팀목) 대출을 지원한다. 또 신혼부부를 대상으로는 신혼부부 전용 구입과 전세자금대출, 디딤돌 상품 이용시 신혼부부 우대금리 적용, 신혼희망타운 공유형 모기지 등을 선보인다.
청년층에게는 만 19~25세를 대상으로 전용 전세자금 대출 및 보증부 월세대출상품, 중소기업 취업청년 임차보증금 대출, 청년우대형 청약통장 가입조건 등을 완화하고 무주택세대주 외 무주택세대 새대원과 3년 내 무주택세대주 예정자까지 가입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 밖에 저소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도 주거급여 수급자 주거안정 월세대출을 허용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 안정적 관리를 공고히 하면서, 임차인 보호 및 주거환경 개선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현기자 ishsy@dt.co.kr
경제 민주화 선봉장에서 보수 잔다르크로…이언주의 변신은 어디까지?
‘경제 민주화 아이콘’으로 정치 무대 등장
19대 총선 선거 운동 첫날인 지난 2012년 3월 29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경기도 광명시에서 수도권 첫 지원 유세를 펼쳤습니다. 당 대표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하기 무섭게 두 팔 걷어붙이고 지원에 나선 후보, 바로 광명을 선거구에 출마한 이언주 후보였습니다.
한 대표는 이언주 후보를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 이언주 후보는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젊고, 패기 있고, 실물 경제를 잘 아는 CEO이자 변호사입니다. 젊은 여성지도자 이언주가 광명의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합니다. 무너진 서민 경제를 살린다고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미래의 지도자, 광명의 경제를 살릴 사람, 기호 2번 민주통합당 이언주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주기 바랍니다." - 2012.3.29 광명역 지원 유세
그리고 총선 결과, 이언주 후보는 3선 중진 전재희 의원을 꺾고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이언주 의원의 당선 일성도 '경제 민주화'였습니다.
"제가 항상, 평소에 경제 민주화를 외쳐왔는데요, 경제 민주화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희망 사다리를 복원하고 또 이 지역 주민들과도 소통하는 정치인, 지역 현안에 대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그런 열린 정치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2012.4.12 당선 소감 인터뷰
‘운동권보다 더 운동권 같았던’ 민주당 시절
기업인 출신 여성 변호사, 3선 중진을 꺾고 등장한 정치 신인.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습니다.
이 의원은 386 운동권과 노동·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이 주류인 민주당에선 꽤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의원 임기 초반부터 원내대변인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주요 당직을 맡았습니다.
민주당 당직자는 "이 의원의 이질적 정체성이 당시에는 오히려 참신성과 희소성을 돋보이게 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당시 이 의원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최근 "이 의원이 운동권을 욕하는데, 내가 원내대표할 때 이 의원은 우리 당에서 경제민주화를 가장 세게 이야기한 좌파였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극복할 수 없었던 ‘비주류의 한계’…탈당으로 이어져
그렇다면 이 의원의 변신은 언제부터, 왜 시작된 걸까요. 민주당 인사들은 대체로 2015년 말, 2016년 20대 총선 즈음이 변곡점이 됐다고 얘기합니다. 2015년 당시 민주당은 친문, 비문계간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당시 이언주 의원은 비문계에 가까왔습니다.
문재인 대표 체제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서자 이 의원은 빠른 속도로 김종인 위원장과 가까워졌습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당의 핵심 보직인 조직본부장에 선임됐고, 김종인 전 위원장이 소속된 의원 연구단체 '경제민주화정책포럼 조화로운 사회'의 대표 의원도 맡았습니다. 여세를 몰아 그해 8월엔 경기도당 위원장에 출마했지만,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습니다. 김종인 위원장 체제에서 승승장구하다 친문계에 의해 정치적 꿈이 한번 접힌 셈인데, 이 의원은 여기서 큰 소외감과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신이 느꼈던 소외감을 이렇게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에 있을 때, 친노도, 친문도, 참여정부에서 일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냥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출신 성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결코 지도부가 될 수는 없다, 당권에 가까이 갈 수는 없다'라는 말을 우리끼리 했었다. 극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 2017. 6.13 국민의당 의원-지역위원장 워크숍
경제 민주화 선봉장에서 보수 잔다르크로…거침 없는 우클릭
민주당에서 5년을 머물렀던 이언주 의원은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에서 2년을 보내며 거침 없는 우클릭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지난해 7월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시장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기업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시장경제살리기연대'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시절 '경제 민주화'의 선봉장으로 법인세율 인상과 소득 분배 개선을 주장해온 이 의원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과 자영업자를 힘들게 한다며 '시장 경제 지킴이'로 180도 변신한 겁니다.
한달 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 의원은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현안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이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천재였다, 이런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굉장히 행운이었다"고 발언한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단숨에 유튜브 구독자 19만 명을 모으며 '보수의 잔다르크'라는 칭호까지 얻었습니다.
이런 이 의원이 2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좌파 운동권 정부가 들어선 이래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근간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문재인 정권의 광기 어린 좌파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 단기필마로나마 신보수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의원은 그러나 한국당 입당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입당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없다"면서 "한국당이 변화되고 보수 세력을 위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때 그때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우클릭에 우클릭을 거듭해온 7년의 정치 역정, 이 의원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요. / 최형원 기자roediec@kbs.co.kr
부자들이 가장 많이 이민간 국가…상속세 없어서?
지난해 얼마나 많은 부자들이 다른 국가로 이주를 선택했을까? 순자산 백만 달러 이상의 부자들의 국제 이주 현황을 추적해온 AfrAsia 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자국을 떠나 이민을 간 부자들은 10만 8,000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에는 95,000명이었지만 1년 사이에 14%나 증가했다.
호주, 부자 이민 선호국
상속세 없고 안전한 국가
그렇다면 가장 많은 부자들이 새로운 정착지로 선택한 국가는 어디일까? AfrAsia의 글로벌 자산이동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부자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국가는 호주로 나타났다. 호주로 이민을 떠난 부자들은 지난해에만 12,000명에 달했다. 이들이 선호하는 도시는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과 같은 대도시로 나타났다.
부자들이 호주를 새로운 정착지로 선택한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호주 경제가 꾸준하게 발전했고 치안이 안전하며 교육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또 기후도 좋고 인구 밀도도 낮아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여기에 더해 호주에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에 자식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 줄 수 있고 이민 2세들이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할 수 있어 부자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출처 : AfrAsia Global Wealth Migration Review출처 : AfrAsia Global Wealth Migration Review
부자들이 두 번째로 많이 선택한 국가는 미국으로 10,000명이 이민을 통해 정착했고 전통적으로 부자들이 선호하는 국가인 캐나다와 스위스 그리고 뉴질랜드는 각각 3위, 4위 그리고 7위를 기록했다. 자산가들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국가는 싱가포르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도 역시 범죄율이 낮아 치안이 좋고 상속세가 없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이미 1970년대에 상속세를 폐지했고 스위스, 뉴질랜드 그리고 싱가포르도 상속세가 없어 부의 대물림이 가능하다.
중국, 백만장자 15,000명 해외로 이주
정치적 억압, 대기오염 등이 주원인
반대로 부자들이 가장 많이 떠난 국가는 중국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지난 20년 동안 7% 안팎의 경제성장을 이어오면서 세계에서 새로운 부자들이 가장 많이 탄생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지난해 15,000명의 백만장자들이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집계돼 백만장자 해외이주 국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백만장자들은 정치적 억압, 심각한 대기오염, 보건과 식품 안전에 관한 우려, 무역 분쟁으로 인한 불안감 등을 해외 이민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또 중국 정부의 엄격한 자본 통제로 부유층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따라 보고서는 점점 더 많은 자산가들이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해외 이주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출처 : AfrAsia Global Wealth Migration Review출처 : AfrAsia Global Wealth Migration Review
러시아도 무려 7,000명의 자산가들이 해외로 이민을 갔고 세계 2위 인구 대국인 인도 역시 5,000명이 가족을 데리고 다른 국가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터키는 지난해 4,000명 이상의 백만장자들이 이민을 떠나 백만장자가 해외로 가장 많이 나간 국가 4위에 올랐다. 터키는 지난 3년 동안 연속으로 4,000명 이상의 부자들이 이민을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큰 원인은 테러에 따른 치안 불안, 대규모 시위 그리고 높은 물가 상승률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역에 따른 이주 현황을 보면 아시아에서는 주로 부자들이 해외로 이민을 많이 가는 국가들이 많다. 중국, 인도, 터키, 인도네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부자들의 해외 이주가 가장 활발한 국가들이다.
출처 : AfrAsia Global Wealth Migration Review & www.visualcapitalist.com
유럽 국가들 가운데는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백만장자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는 국가에 속했고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는 백만장자들이 이민을 오는 국가들에 속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카리브해 국가들로 부호들이 이민을 왔고 남미의 브라질은 자산가들이 해외로 떠나는 국가로 분류 됐다.
미국의 경우 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로 지난해에만 각각 1,000명 이상의 백만장자들이 새롭게 정착한 것으로 조사됐다.
출처 : AfrAsia Global Wealth Migration Review & www.visualcapitalist.com출처 : AfrAsia Global Wealth Migration Review & www.visualcapitalist.com
AfrAsiaBank는 지난 10년 동은 개별 국가들의 투자와 이민 비자 통계자료와 해외 이주 컨설팅 기관 등과 인터뷰를 통해 해외 자산가들의 이주 현황을 집계해 분석했다고 밝혔다. 은행측의 조사 대상이 된 자산가들은 모든 부채를 제외한 개인 1명의 재산이 100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로 현금과 주식 그리고 기업에 대한 투자 지분을 모두 합친 것이라고 밝혔다. /고영태 기자kevin@kbs.co.kr
‘일본해’ 지도 쓴 美 방송사, 소신 발언한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이 출연한 미국 CBS 뉴스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 CBS 유튜브 캡처
그룹 방탄소년단이 출연한 미국 CBS 방송에서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 지도가 나와 논란이 됐다. 방탄소년단은 21일(현지시간) 오전 방송된 미국 CBS 뉴스프로그램 ‘선데이 모닝’에 출연했다. 출연 당일 선데이 모닝은 방탄소년단이 등장하는 약 8분20초 분량의 방송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방탄소년단, 케이팝 돌풍(BTS, the Korean pop sensation)’이라는 제목으로 게시했다.
이 영상 속에서 선데이 모닝 측은 방탄소년단과의 인터뷰 앞에 케이팝의 등장과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열풍 현상에 관해 소개했다. 이때 케이팝이 등장한 한국과 서울의 위치를 나타내는 화면이 배경에 깔렸는데 이 때 사용된 지도가 문제였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출연한 미국 CBS '선데이 모닝'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를 사용한 화면. CBS 유튜브 캡처
방송 이후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CBS 선데이 모닝 트위터 계정과 유튜브 채널에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다. 굉장한 정치적 이슈다. 최소한 두 단어를 함께 적었어야 한다”며 잘못된 지도 표기에 정정 요구를 했다.
선데이 모닝 진행자 세스 돈 CBS 특파원은 방탄소년단에게 군입대 관련 질문을 던졌다. 이에 멤버 진은 “군 입대는 한국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언젠가 올 국가의 부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또 진행자가 ‘멤버 7명이 해체되거나 갈라질 수 있는 상황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리더 알엠(RM)은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금의 활동을 즐기고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진한 우정도 확인됐다. 그들은 “우리는 가족보다 서로를 더 잘 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건 멤버들”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김다영 인턴기자 /국민일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보도엔 없었던 통계
국회입법조사처, 1998~2017년 총국민소득 대비 가계 및 기업소득 비중 공개
기업↑ 가계↓ “3만 달러 체감 위해 임금, 자영업 영업이익 등 증가시켜야”
지난 3월 한국은행이 201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1349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살기 힘들다. 이를 두고 김흥수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3월6일자 칼럼에서 “숫자의 함정”을 언급했다.
김흥수 논설위원은 “국민소득에는 가계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소득도 포함돼 있다. 이걸 인구로 나눈 값이 1인당 국민소득”이라며 “우리가 체감하는 1인당 국민소득을 따지려면 기업·정부 몫을 뺀 ‘1인당 가계 총처분 가능 소득’(PGDI)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2017년 PGDI는 1만6573달러였다. 4인 가구 소득은 12만 달러가 아니라 6만6000달러쯤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3만1349달러 시대에 1만6573달러의 삶을 살고 있을까.
국회입법조사처가 22일 “우리나라 1인당 총국민소득이 2018년 3만 달러를 넘어섰으나 일반 국민들은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며 최근 20년간 총국민소득 대비 가계 및 기업소득 비중 추이와 현황을 공개했다. 그 결과 최근 20년간 대한민국의 총국민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 72.8%에서 2017년 61.3%로 11.5%p 줄어든 반면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13.9%에서 2017년 24.5%로 10.6%p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입법조사처는 “20년간 가계소득의 증가보다 기업소득의 증가가 더 빨랐다”고 분석했다. 기간별로 보면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이던 1998년~2007년 총국민소득이 연평균 8.1% 성장했으나 2008년~2017년 5.1%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1998년~2007년에는 연평균 가계소득이 6.5% 성장하고 기업소득이 13.6% 성장을 나타낸 반면 2008년~2017년에는 연평균 가계소득이 4.8% 성장하고 기업소득이 5.8% 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 대한민국 총 국민소득에서 각 경제주체의 소득 비중. 디자인=이우림 기자.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998년 한국의 가계소득 비중은 72.8%로 OECD 24개국 평균(68.8%)보다 높았지만 2017년에는 61.3%로 OECD 평균(64.6%)보다 낮게 나타났다. 반면 한국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13.9%로 OECD 평균(17.7%)보다 낮았지만 2017년에는 24.5%로 OECD 평균(19.1%)보다 높게 나타났다. 20년 간 세계적 추세에 비해 가계는 덜 가져가고, 기업은 더 많이 가져갔다는 의미다.
국가단위의 경제주체는 크게 가계·기업·정부로 나뉘는데, 해당 지표에선 국가에서 1년간 발생한 ‘부가가치’가 어떤 경제주체에게 얼마나 배분되느냐를 볼 수 있다. 한국은 가계와 기업 간 소득비중에 있어서 OECD에 비춰봤을 때 과도하게 기업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이 임금을 올리지 않고 사내유보금을 쌓는 방식으로 부의 재분배를 가로막은 결과로 해석 가능하다. 지난해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는 “30대 재벌 그룹 사내유보금이 약 883조원”이라고 주장했다.
입법조사처는 “1인당 총국민소득 3만 달러 체감을 위해선 가계 소득을 구성하는 임금, 자영업자의 영업이익, 재산소득 등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으며, 기업소득의 가계환류와 가계의 안정적 소득 증대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및 고용상황 개선, 영세자영업자의 이익개선 등을 위해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교육 및 의료서비스의 복지제도 확충도 ‘3만 달러 체감’을 위한 실질적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 가지 해당 통계의 시사점은 OECD에 비해 낮은 정부소득비중이다. 2017년 기준 OECD에서 정부소득비중은 평균 16.3%인 반면 한국은 14.2%다. 고소득층과 재벌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많이 걷어 정부소득비중을 늘린 뒤 이를 복지정책예산으로 바꿔 가계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해법이나 분석은 보수언론에서 찾기 어렵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10년 역주행…노무현의 균형발전, 도루묵 될 위기
균형발전 정책의 중심 세종시 전경. 세종시 제공
다시 균형발전이다
1부 ①균형발전 정책의 성과와 한계
지방으로 내려가던 인구 다시 수도권으로
수도권 인구 비중 줄다가 50% 돌파 눈앞
수도권총생산 비중도 줄어들다 50% 돌파
이명박·박근혜 10년 역주행이 주요 원인
지방의 주요 제조업 도시들의 쇠퇴도 이유
전문가들 “2차 균형 발전 정책 필요” 주문
공공기관·관련 기업·대학 이전도 요구
혁신도시가 복합단지로 발전해야 효과 커져
노무현 정부의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 건설에 따라 한때 주춤했던 인구와 생산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해 2012년 이후 본격화한 수도권-지방 사이 균형발전 정책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균형발전 정책이 중단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공공기관 2차 이전 등 균형발전 정책에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3일 <한겨레>가 국가통계포털에서 인구 통계를 분석해보니, 2018년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인구 이동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5만9797명이 순유출됐다. 2017년 1만6006명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지방 인구가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것이고, 순유출 규모는 2017년의 3.7배에 이르렀다. 2018년 수도권으로의 인구 순유출 규모는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8만2318명)~2008년(5만2022명)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특히 2011년과 2013~2016년 등 5년 동안 오히려 지방으로의 순유출이 더 많았고, 2004년 이후 10년 이상 수도권으로의 인구 순유출 규모가 줄었던 흐름이 뒤집힌 것이다.
과거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인구 이동은 공식 통계가 잡힌 1970년부터 2010년까지 41년 동안 오로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만 인구가 순유출됐다. 실제로는 6·25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계속 인구가 수도권으로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1970년부터 1994년까지 25년 동안은 매년 10만명 이상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됐고, 1975년에 무려 64만1129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출됐다.
2017년 5월17일 경북 혁신도시가 있는 김천시 율곡동. 경북도 제공
그러나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4년 이후 매년 수도권으로의 순유출 규모가 줄어들고, 2011년과 2013~2016년 등 5년 동안 오히려 지방으로 수도권 인구가 순유출됐다.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은 세종시에 41개 중앙행정기관 및 소속기관 1만2천여명, 전국 10개 혁신도시와 세종시 등에 152개 공공기관 5만1천여명을 옮긴 일이다.
인구 이동 흐름이 뒤집어짐에 따라 한때 정체했던 수도권 인구의 비율도 다시 커져 50%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에 시동을 건 2004년 47.8%였던 수도권 인구의 비율은 2010년까지 해마다 0.1~0.3%포인트씩 늘어났다. 2005년 48.1%, 2006년 48.4%, 2007년 48.6%, 2008년 48.8%, 2009년 49.0%, 2010년 49.2%, 2011년엔 49.3%였다. 그러나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로 기관과 인원 이전이 시작된 2012년엔 49.3%로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고, 2013년에 다시 49.4%로 0.1%포인트 늘어났으나, 2014~2015년에도 49.4%는 그대로 유지됐다. 수도권 인구 비율이 일시 정체한 2012~2015년은 세종시와 혁신도시로의 이전이 가장 활발한 때였다. 그러나 2016년 49.5%, 2017년 49.6%로 다시 0.1%포인트씩 늘어났고, 2018년엔 49.8%로 다시 증가폭이 0.2%포인트로 커졌다. 이 흐름이라면 이제 수도권 인구 비율이 50%를 돌파하는 일은 시간문제다.
지역내 총생산(GRDP)도 인구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역내 총생산 중 수도권 비중은 계속 증가해 2002년 49.5%를 기록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 줄어들기 시작해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1~2012년엔 48.2%까지 내려갔다. 2003~2012년은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에 따른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 사업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때다. 그러나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이 마무리되고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한 2013년 48.7%로 돌아선 뒤 2014년 49.0%, 2015년 49.4%, 2016년 49.6%로 급상승했다. 결국 2017년엔 50.3%(잠정치)를 기록해 역사상 처음으로 50%를 돌파했다.
부산혁신도시 문현지구. 부산시 제공
이렇듯 노무현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균형발전 정책의 효과가 뒤집어진 데는 다음 정부에서 이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 정책을 입안한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인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균형발전 정책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유지·발전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행정도시로서의 세종시를 취소하려 했다. 수도권 규제도 풀어 지방으로 가야 할 기업들이 수도권에 머물렀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행정도시 건설을 취소하려고 시도했다. 이로 인해 세종시 건설이 2년가량 늦춰지고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 건설을 양대 축으로 삼았던 균형발전 정책은 사실상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본격 추진한 판교 테크노밸리 사업도 균형발전 정책에 상당한 악영향을 줬다. 2011년 입주가 시작된 판교 테크노밸리는 2017년까지 1270개 기업이 입주했고, 매출도 79조3천억원에 이르렀다.
지난달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세종/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또 균형발전이 악화한 데는 지방에 있는 전통적인 제조업 사업장들이 쇠퇴하거나 문을 닫는 상황도 영향을 줬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국내에서만 6개 지역이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됐는데, 모두 지방에 위치한 도시들이다. 전북 군산, 울산 동구, 경남 거제, 통영·고성, 창원 진해, 전남 영암·목포·해남 등이다. 모두 지방의 경제를 이끌었던 산업 거점들이다.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방의 주요 산업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는데, 앞으로 이 문제를 고려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이은 새로운 2차 균형발전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2대 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이민원 전국혁신도시포럼 대표(광주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를 이은 문재인 정부에서 지난 10년의 공백을 메울 강도 높은 2단계 균형발전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방안으로 “2차 공공기관 이전과 첨단 산업의 지방 유치, 지방 공항 국제화, 국공립대 통합과 지방 거점대학 육성”을 제시했다.
광주전남혁신도시. 한전 제공
정부도 지난해 10월 혁신도시의 발전을 위해 2022년까지 4조3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29일 혁신도시를 지원하기 위해 국가균형발전지원단과 국가균형발전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균형발전에 대해 노무현 정부만큼의 관심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가 균형발전을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했지만,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용인으로 갔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진하겠다고 한 공공기관 2차 이전은 아무 소식이 없다. 균형발전은 중대하고도 어려운 일이어서 대통령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추진되기 어렵다. 앞으로도 대통령이 의지가 없다면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송재호 균형발전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 정책은 아직 공공기관 1차 이전만 끝난 상태다. 여기에 관련 기업들이 가야 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해야 하고, 연구소들도 결합해 ‘클러스터’(복합단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큰 과제다. 특히 2차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다면 1차 때보다도 더 높은 국민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일우 김규원 이정하 기자 cooly@hani.co.kr
혁신도시 명암…“일자리 늘고 쾌적” “주말엔 사람이 없다”
다시 균형발전이다
나주·부산·진천 가보니
112개 공공기관 10곳 혁신도시로 이전
지역인재 의무채용 정책으로 경제 활성화
타 지역 직원 62%가 혁신도시에 정착
나주·진천 등 혁신도시 소재 인구 증가
병원·학교 등 필수시설 부족하다는 불만
‘인구 적으니 수요가 적어 시설 적고
시설 없으니 불편해 사람 안 오는’ 악순환
“기관·기업 더 들어오면 인구 늘 것” 기대도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일반 도로 모습.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배밭은 빌딩 숲으로 탈바꿈했다. 넓게 닦인 왕복 10차선 도로는 도시의 동서를 관통했고, 도시 한가운데는 서울 여의도공원의 2배가 넘는 호수공원이 뻥 뚫린 하늘을 이고 있었다.
“아이들 키우기 좋아요. 깨끗하고 공원도 가깝고요.” 지난 2월25일 광주전남혁신도시(나주혁신도시)에서 만난 양아무개(38)씨가 아이와 함께 병원 등이 있는 상가로 들어가며 말했다. 양씨는 한국전력공사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지난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오기 전에는 새로 조성되는 도시여서 기반시설 등이 부족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와보니 공원과 도로, 아파트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생활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나주혁신도시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한 한 중소기업에 취직한 뒤 이곳으로 삶터를 옮긴 정아무개(23)씨도 “도시가 깨끗하고 번잡하지 않다”며 “회사도 가까워서 살기 좋다”고 말했다.
나주혁신도시가 들어선 전남 나주 금천면, 산포면은 12년 전만 해도 온통 배밭이던 곳이다. 2005년 정부가 광역시·도별로 1개씩 혁신도시를 건설하려고 계획했지만 광주와 전남은 협의해 두곳을 한곳으로 모아서 만들기로 했다. 광주에 가까운 전남 지역인 나주 금천·산포면에 혁신도시가 들어선 이유다. 광주시와 전남도의 협력으로 나주혁신도시는 전국 10곳의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계획됐다. 2007년 도시 건설이 착공됐고 2014년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혁신도시 건설에 따라 땅 이름도 금천·산포면에서 ‘빛가람동’으로 바뀌었다.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전경 맨 오른쪽이 한전 본사.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153개 기관 이전으로 지역 일자리 늘어 혁신도시의 역사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균형발전을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고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가운데 대통령이 정하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7년 수도권을 뺀 전국 광역시·도에 모두 10곳의 혁신도시를 지정했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고, 지역 경제를 활성시키겠다는 목표였다. 1차 목표는 2012년까지 모두 153개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23일 현재, 이들 공공기관 가운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만 뺀 나머지 152개 기관이 이전을 마무리한 상황이다. 구체적으로는 19개가 세종시에, 112개가 혁신도시에, 21개는 기타 지역으로 옮겼다.
혁신도시의 가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는 지역 일자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혁신도시 문현금융지구 한국남부발전에서 근무하는 부산 출신 ㄱ씨는 “지난해 우리 회사에 입사한 사람 가운데 30% 이상이 부산 출신이다. 공공기관, 공기업에 취업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혁신도시가 생긴 이후 부산 사람들에게 취업 기회가 넓어져 지역에선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도 이직을 하지 않고 오래 일할 것이란 기대에 지역 인재를 선호한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 공공기관 임직원 62% 이주로 인구 증가 정현진(60)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살다가 2017년 부산 영도로 이주했다. 일터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부산혁신도시 동삼지구로 이전하면서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부인과 함께 내려왔다. 그는 부인과 둘이 살기에 혁신도시가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걸어서 다닐 거리에 직장도 있고, 차로 5분이면 영도 번화가인 나항동, 봉래동에 닿을 수 있고, 20분이면 부산 시내로도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혁신도시별 사업추진 현황’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이전 기관 직원 3만9593명 가운데 62%의 직원이 직장을 따라 혁신도시에 정착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도권에 있던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소속 직원과 그 가족들이 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결과다.
혁신도시 건설에 따른 이동으로 인구가 뚜렷하게 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은 나주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2010년 7만8679명이던 나주 인구는 혁신도시 개발을 마친 2015년 9만2582명으로 뛴 뒤, 지난해에는 11만3839명을 기록했다. 8년 새 인구가 44.7%나 증가한 것이다. 이는 전국 10곳의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많은 공공기관(16개)과 기업(224개)이 들어서면서 3만819명이 정착한 나주혁신도시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진천·음성혁신도시가 위치한 충북 진천도 기관 이전이 한창이던 2015년 6만7천여명이던 인구가 지난해 7만7천여명으로 늘었다. 3년 만에 인구가 약 15%나 증가한 것이다.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비어있는 상가들.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아직은 ‘미완성’…주말엔 ‘유령도시’ 그러나 나주와 충북 진천 등을 빼면 혁신도시의 직접적인 혜택을 본 지역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남 진주, 경북 김천처럼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인구가 1천여명 증가하는 데 그친 곳도 있고, 전북 전주·완주, 대구처럼 인구가 되레 줄어든 지역도 있다.
나주혁신도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나일수(66)씨는 “젊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혼자 나주에 내려와 주중에는 혁신도시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수도권으로 올라간다”며 “상가 2개 가운데 하나는 비어 있다. 상가는 엄청 지어놨지만 인구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나주혁신도시의 상가단지에는 수십개의 ‘임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평일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붐비던 빛가람동의 상업지구는 주말 밤에는 사람을 거의 찾기 힘들 정도로 조용했다. 상업지구에서 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조정미(47)씨는 “주말에도 장사를 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이제 주말 장사를 접으려 한다”며 “최근 장사를 접는 상가가 많아, 2~3년 전에 비해 상가 임대료가 7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19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호수공원.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부족한 기반시설과 낮은 가족동반 이주율 혁신도시에 자리를 잡지 않고 평일에 잠시 머무는 이들이 많다 보니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의료·교육시설부터 문화·여가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나주혁신도시에 있는 한 공기업에 다니는 김아무개(28)씨는 “이곳에는 영화관이 하나밖에 없고, 대형 병원도 없어서 걱정”이라며 “주말에는 보통 충청 지역의 본가로 간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음성 혁신도시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성훈(36)씨도 “아이가 한번 아픈 적이 있어서 청주의 한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만약 혁신도시에 살았다면 30~40분은 차로 달려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에서 수도권 출신 직원들이 대부분 청주나 서울에서 출퇴근한다. 나도 청주에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천·음성 혁신도시는 전국 혁신도시 가운데 가족 동반 이주율이 38.7%로 가장 낮다.
교육·보육 여건도 부족하다. 남편을 따라 진천·음성 혁신도시로 이주한 박한나(36)씨는 “이곳에는 아이들을 보낼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하나뿐”이라며 “어린이집은 국공립이 아니라 대부분 가정어린이집이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산혁신도시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근무하는 ㄴ씨는 “부산에서 사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이 수도권에 있는 학교, 학원에 다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혼자만 부산에 내려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토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혁신도시별 정주여건 만족도 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 혁신도시 거주자의 정주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2.4점에 불과했다. 특히 교육(50.9점), 편의·의료서비스(49.9점), 교통(45.2점), 여가(45.2점) 등의 만족도가 낮았다.
19일 전남 나주 구 도심 중앙동 거리 모습. 나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인근 구도심 빨아들이는 ‘인구 블랙홀’ 혁신도시는 주변 지역에도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가 늘고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오히려 혁신도시 주변 구도심이 쇠퇴하는 ‘블랙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혁신도시 가운데 성공한 곳이란 평가를 받는 나주혁신도시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나주 구도심에선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곰탕집에만 손님이 드나들었고, 다른 상점들은 ‘썰렁’했다. 구도심 주민 이성훈(58)씨는 “혁신도시가 생기고 이곳 주민들이 혁신도시로 이사를 많이 갔다. 혁신도시에 살고 돈도 거기서 쓴다”며 “이 동네는 쇠퇴했다. 길거리에 아무도 없지 않으냐”고 토로했다. 주민 정범주(69)씨는 “10년 전보다 젊은 사람이 확 줄었다.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훨씬 살기 좋은 혁신도시가 있는데 유치원도, 병원도 부족한 구도심에 왜 살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나주혁신도시가 자리잡은 빛가람동은 출범 첫해인 2014년 인구가 3895명이었으나 이듬해에는 1만2452명으로 주민수가 급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3만819명까지 인구가 늘어났다. 그러나 빛가람동을 뺀 나주시 인구는 2014년 8만6774명에서 이듬해 8만5730명으로 줄어든 뒤 지난해 12월에는 8만3020명까지 쪼그라들었다.
■ ‘미완성·구도심 인구 블랙홀’ 대안은? 이에 따라 인구와 산업을 광역시 등 지방 대도시에 집중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지방 대도시 도심을 활용해 혁신도시를 만들어야 했다. 대도시 밖에 혁신도시를 만들다 보니 대중교통과 기반시설이 미흡해 아직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와함께 혁신도시를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그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한다면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좀 더 집중적인 방안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도시 도심으로 공공기관을 추가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실행 과정에서 기존 대도시 외곽이나 주변 도시에 세종시와 혁신도시를 건설한 문제점이 있었다”며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한다면 기존 혁신도시가 아니라 기존 대도시 도심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나주 진천 부산/채윤태 기자, 김일우 기자 chai@hani.co.kr
혁신도시로 지방세수·인재 채용·이전 기업 늘었다
나주혁신도시 한해 지방세 962억원
광역지방정부들 재정 자립도 상승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비율도
부산 31.7%, 대구 26.1%까지 솟아
입주기업도 매년 200~300곳 늘어
광주전남·부산·경남 이전 많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균형발전의 효과가 나타난 대표적 분야는 지방 재정과 지역인재 채용, 기업 이전이다.
먼저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로 지방 재정은 형편이 나아졌다. 2018년에만 혁신도시 10곳에서 3813억원의 지방세가 걷혔다. 1개 혁신도시 평균 381억원이다. 혁신도시의 지방세는 그 이전에는 없었던 지방정부의 수입이다. 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한 2014년 2128억원을 시작으로 2015년 4193억원, 2016년 4552억원, 2017년 3843억원 등 매년 2천억~4천억원이 걷히고 있다. 광주전남혁신도시(나주혁신도시)의 경우 2016년 한해에만 962억원의 지방세를 걷었다.
이런 지방세 수입 등의 덕으로 전국 광역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도 2013년 51.1%에서 지난해 53.4%로 2.3%포인트 늘었다. 전국 광역지방정부 가운데 재정자립도 1~3위를 차지했던 서울, 경기, 인천의 재정자립도는 이 기간 대부분 하락세였지만, 비수도권에서는 대전과 울산 정도를 빼고 12개 광역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 비율도 갈수록 늘고 있다. 2012년 이전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률은 2.8%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6년 13.3%, 지난해에는 14.0%로 뛰어 2012년의 5배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에만 2011명의 지역인재가 공공기관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지역별 차이는 커서 부산은 31.7%, 대구는 26.1%, 20.3%로 이미 20%를 넘겼으나, 세종(3.2%), 울산(6.9%) 등은 아직 10%에도 이르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이전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단계적으로 30%까지 높일 계획이다.
혁신도시 입주 기업 수는 2012년 10곳에 그쳤으나, 2018년 758곳(누적)으로 75배나 늘어났다. 초기엔 2013년 22곳, 2014년 66곳, 2014년 81곳으로 증가 폭이 작았으나 2016년엔 271곳, 2017년엔 469곳, 2018년엔 758곳으로 매년 200~300곳씩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남이 224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남이 170곳, 부산이 126곳, 대구가 110곳으로 그다음이었다. 그러나 제주나 세종은 입주 기업이 하나도 없었으며, 전북도 4곳에 불과해 지역별 편차가 컸다. 김규원 김일우 기자 che@hani.co.kr
혁신도시 기업 828개, 올해만 135개 신규 입주
국토부, 지난달 말 기준 분양 및 입주 현황 조사 결과
“꾸준한 증가세…발전재단 설립·투자유치 강화 계획”
혁신도시 입주기업 수 추이(단위: 개) 자료: 국토교통부
전국 10개 혁신도시에 입주하는 기업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전국 혁신도시의 지난달 말 기준 산업집적지(클러스터) 분양 및 입주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입주기업이 828개로 집계됐다”고 23일 밝혔다.
국토부는 특히 올해 1분기에만 135개사가 새로 입주하는 등 “지난해 2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혁신도시 시즌2’ 사업 발표와 8월 ‘혁신도시 기업입주 활성화 방안’ 발표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도별 혁신도시 입주기업 수를 보면 2014년 67개에서 2015년 93개로 26개가 늘었고, 다시 2016년엔 249개로 156개가 늘었다. 이어 2017년 412개로 163개가 늘었고 지난해 말 693개로 281개 늘었다. 올해에는 더 큰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올 1분기 입주기업 수를 혁신도시별로 보면 경남이 48개, 광주·전남이 32개, 부산이 22개, 대구 20개 순으로 많았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9개사가 광주·전남, 경북 등의 혁신도시로 이전했는데, 지식산업센터 등의 준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박진열 국토부 혁신도시산업과장은 “앞으로 혁신도시가 지역의 성장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유치 등 혁신도시 육성 전반을 관장하는 구심점 조직으로 발전재단을 설립하고,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기업들의 창업 활성화를 위한 투자유치 활동 강화에도 더욱 힘을 쓰겠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팩트체크] 한국당, '스스로 왕따' 당했다?
한국당의 선거제 개편 논의, 어느 지점에서 스텝이 꼬였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추인에 반발해 긴급 의원총회를 가진 뒤 로텐더홀 계단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23일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 개편안 등에 대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상정을 각각 당론으로 추인했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장외집회 등 원외투쟁을 선언하며 국회 안팎으로 '결사 항전'을 예고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한국당이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의원정수를 270석으로 줄이는 안을 내놨는데 왜 논의를 하지 않느냐"며 선거제 패스트트랙 상정에 대해 비판 강도를 높였다. 한국당의 극렬한 반대에 여야 4당은 "패씽을 자초한 것은 한국당 본인"이라는 반응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한국당에서 선거법을 비롯해 공수처법을 반대했기 때문에 협상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그렇다보니 불가피하게 국회법 85조 2항의 신속처리 조항을 토대로 합의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 또한 "한국당은 선거제도 논의과정에서 배제된 적이 없다"며 "스스로 선거제도 개혁을 원천 봉쇄하고 스스로를 배제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한국당이 지난 12월 약속한 선거제 합의를 휴지조각 만들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왕따'와 '패싱'을 자처한 것은 한국당 스스로"라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정말 지난 선거제 개편 논의에서 스스로 왕따를 자처했을까?
◇ 선거제 개편, 한국당도 정개특위에서 논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당엔 지난해 11월부터 선거제 개편 논의에 참여할 통로가 충분히 열려있었다. 먼저 국회에선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내 제1소위원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해왔다.
원내에서 선거제 개혁을 위한 정당 간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였다. 한국당에서도 정유섭, 장제원, 김재원 의원 등이 정개특위 제1소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 12월 15일엔 여야 5당 원내대표 간 선거제 개혁 합의문이 마련되면서 정개특위에서의 논의도 본격화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등 여야 5당 원내대표는 합의문을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18일 오후 국회에서 최근 여야 5당이 선거제 개혁에 원칙적 합의한 뒤 처음으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제1소위원회에서 김종민 소위원장이 선거제도 관련 주요 쟁점 사항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이후 정개특위 제1소위에선 여야 5당의 합의문을 중심으로 논의 쟁점을 정리하고 의원 정수, 석패율제 도입 등을 논의했다.
정개특위에서 한국당 또한 선거제 개혁을 논의해왔다는 것은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의 발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장 의원은 지난 1월 8일 정개특위 제1소위 회의에서 정개특위에 대해 "지금까지 간사를 맡고 진행해 온 가운데 의원정수 문제, 지역구 선출방식 문제, 석패율 문제 등 전부 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연동된 중요한 사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난해만 보더라도 한국당은 원내대표 간 합의는 물론 국회 정개특위에서 충분히 선거제도를 논의할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정개특위에서 선거제 개편 논의에서 한국당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한국당이었다.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한국당은 다른 당과 달리 아무런 협상안도 내놓지 않아 수수방관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협상안도 없이 선거제 개편에 반대 입장만을 밝힌다는 것이었다.
이에 1월 24일 장제원 의원이 도농복합선거구제 등을 담은 '협상안 가안'을 제시했지만, 같은 당 정개특위 위원들이 먼저 나서서 해당 가안을 문제 삼았다. 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우리 당이 도농복합선거구제 의견을 모아 확정한 바 없다"고, 최교일 의원은 "도농복합선거구제는 한국당 당론이 아니며 현재 한국당 안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정개특위는 1월 24일 한국당이 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뒤로 지금까지 공식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당시 한국당은 조해주 중앙선관위원 임명 강행에 반발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했다.
◇ 좌파독재 반대한다면서 '권력구조 개편 제안'은 무시
정개특위 중단을 가져왔던 한국당은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을 논의하자 되려 의회민주주의 파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1여당인 한국당의 합의 없이 선거제 개편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도 한국당을 배제했다고 보긴 어렵다. 한국당 스스로 협상 테이블조차 앉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현재 여야 4당에선 패스트트랙 지정 논의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한국당과의 합의를 열어두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3월 13일 심상정 의원은 한국당에 대통령 분권을 위한 '원포인트 권력구조' 논의를 제안했다. 3월 10일 한국당이 비례대표를 없애는 개편안을 내놓으며 선거제 개편과 함께 대통령 분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통령 분권을 위한 내각제 개헌이 아니고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할 수 없다"며 선거제 개편에 앞서 또는 동시에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심 의원은 "한국당이 (선거제 개혁) 합의에 임한다면 (한국당이 주장하는) '원포인트 권력구조' 논의에 책임을 다하겠다"며 "하지만 합의에는 선후가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 개편이 진행될 수 있도록 나경원 원내대표가 우선 선거제 개혁에 협조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심 의원의 제안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당이 좌파독재 운운하고 있지만, 중요 국사를 협의하는 민주적인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한국당 자신인 셈이다.
한편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에도 한국당과의 협의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오고 있다. 22일 여야 4당은 선거제‧개혁법안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마련하며 한국당과의 합의 또한 명시했다. 여야 4당은 합의안에서 "(선거제 개편안 등) 이들 법안들의 신속처리안건 지정 후 4당은 즉시 한국당과 성실히 협상에 임하고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합의처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한국당은 여야 4당의 제안은 무시한 채 패스트트랙을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며 "패스트트랙 지정 시 20대 국회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종합하자면, 한국당은 지난해 11월 정개특위에서부터 선거제 개편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패스트트랙 지정이 된다고 해서 한국당이 앞으로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한국당이 선거제 개편 논의에서 배제된 적 없다는 심상정 의원의 말은 '사실'이다. / onlysongyee@cbs.co.kr
언론이 감시·비판 안하니 공대교수가 했다
[인터뷰] ‘언론계 표절’ 공론화한 감동근 교수 “언제까지 구조 탓? 언론계 스스로 나서야”
2800자 중 2500자. 지난해 3월26일 김성탁 중앙일보 런던 특파원 기사 중 외신과 겹치는 부분이다. 얼개가 아니라 내용 대부분이 문장 단위로 유사하다. 인터뷰이 7명 모두 외신 취재원이다.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 관련 기사를 일부분 떼왔다.
지난 12일 게재됐다 삭제된 심재우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칼럼‘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는 6문단 중 5문단, 글 60% 가량이 4월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설과 흡사했다. 출처는 없었다. 무단 외신 인용 칼럼은 중앙일보에서만 2개가 더 나왔다.
중앙일보 논란이 연이어 터지며 표절이 언론계 화두가 됐다. 기사 표절·짜깁기 관행은 한국 언론의 오랜 문제지만 누가 먼저 공론화시킨 적은 없다. 이 침묵을 ‘공대 교수’가 깨뜨렸다. 감동근(41)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심 특파원 칼럼 표절을 처음 발견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알렸고 ‘외신 짜깁기’ 기사를 3건 더 찾았다. 관련 블로그 글은 공유 횟수만 1100회로 웬만한 기사보다 널리 읽혔다. 미디어오늘은 감 교수를 서면 인터뷰해 언론계 표절 관행에 대한 그의 비판을 들었다.
▲ 감동근 교수가 지난해 3월26일자 김성탁 중앙일보 특파원 기사를 영국 가디언·이코노미스트·블룸버그 관련 기사와 비교한 결과 상당부분이 짜깁기한 내용으로 드러났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국 언론 표절 관행 ‘심각 수준’
감 교수가 지적한 기사 중 스트레이트(일반적 사실보도 기사)는 없다. 모두 칼럼과 해설기사다. 기자 고유의 분석·관점이 반영되는 글이다. ‘보도는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특성상 유사할 수밖에 없다’는 반박이 불가능하다. 감 교수는 이마저도 “가장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외신을 나란히 펴 놓고 한 문장씩 베꼈다고 확신이 드는 경우만” 지적했다.
표절기사 4건을 찾는 덴 1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는 밤에 아픈 아이를 재우다 우연히 국내 기사를 읽게 됐고 5일 전 읽은 WSJ 사설을 붙여넣은 듯한 칼럼을 봤다. 그는 “사설을 통째 베낄 정도면 다른 칼럼은 멀쩡할까”란 생각에 손 가는 대로 한 번 찾아봤다. 김성탁 특파원의 칼럼과 기사, 심 특파원의 또 다른 칼럼은 그렇게 확인됐다. 그때쯤 “표절이 이미 일상화된 패턴”이라 확신해 검색을 그만뒀다. 감 교수가 계속 찾았다면 표절 의심 기사는 더 나왔을 수 있다.
감 교수는 김 특파원 해설기사를 두고 “중앙일보의 롱폼(long-form) 저널리즘은 wrong-form인가”라 물었다. 표절 수준이 과도할뿐더러 롱폼 저널리즘 취지에 반해서다. 그의 확인대로 외신과 겹치는 부분에 줄을 그어봤다. 11%만 깨끗하게 남았다. 문장 성분과 순서가 똑같은, 즉 순수 번역문도 있었다. 7명 인터뷰이 모두 외신 3곳에서 인용했지만 출처표시는 2명에게만 했다.
롱폼 저널리즘은 피상적 보도를 지양하는 일반 기사와 단편 소설 사이 분량의 심층 보도다. 취재 없는 외신 인용은 취지에 반한다. 그는 “이 기사는 도입 문장과 맨 마지막 문장을 빼면 모두 베낀 것이고 출처를 슬쩍 밝혔지만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어디부터가 기자 생각인지를 통 알 수 없다”며 “‘이코노미스트’ 기사 본문 70%와 그래프를 그대로 베꼈다. 전재료는 지불했는 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구조만 탓하면 모두가 망한다”
표절은 당장 윤리에 반하지만 독자에게도 폐해다. 좋은 보도는 언론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데 표절은 남의 것을 훔쳐 과거의 것을 반복할 뿐이며 오보도 재생산된다. 한국 언론은 뉴스룸 내 실적 압박을 이유로 베껴쓰기 관행을 유지하지만 윤리의식이 무뎌지며 표절까지 관행이 됐다. 감 교수는 “언론의 문제가 바로 우리 사회의 폐해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계속 잔소리를 한다”며 “아직 우리 언론에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이라 밝혔다.
감 교수가 언론을 강도 높게 비판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11월28일 중앙일보 ‘女과학자 조선영, 세계 1% 오르고도 교수 10번 떨어진 사연’ 보도를 두고 감 교수는 기자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기사는 ‘세계 1% 수학자로 뽑힌 여성학자가 경력단절, 지방대 출신 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아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았다’고 썼다. 기자는 논문 피인용지수를 핵심 근거로 삼았지만 부족한 설명이었다. 감 교수는 “수학계에선 ‘피인용지수’로 학자 순위를 매기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고 논문이 실린 저널은 검증이 필요한 저널이며, 그 학자가 속한 연구팀은 이와 관련된 상습적인 윤리 위반으로 학계에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팩트체크가 허술했단 지적이다.
감 교수는 당시를 ‘부조리’로 기억했다. 기자와 매체의 태도에 큰 실망을 하면서다. 기자는 교수에게 “어설픈 논리로 중앙일보와 취재원을 모욕했다”며 명예훼손죄와 ‘감방’을 거론했다. 논리적 재반박이 아니었다. 브런치에 올린 감 교수 글은 4400회 가량 공유되며 호응을 얻었다. 그러던 중 기자는 기사의 인터뷰이가 ‘딸이 상처를 받았다’고 쓴 포스팅을 공유했다. 감 교수는 “취재원 뒤로 숨는, 가장 실망스러운 장면이었다”며 “우리 언론의 온갖 문제가 집약된 부조리극을 보는 듯 했다”고 밝혔다.
‘서로 감싸주는 언론계’ 지적도 나왔다. 언론은 언론의 잘못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논란과 이번 표절 논란 모두 보도량은 극히 드물었다. 감 교수는 “주류 언론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다”며 “‘허친스’ 보고서가 언론 구성원 간 활기찬 상호비판을 권고한 지 70년도 더 지났지만, 우리 언론은 여전히 상호 비판을 절대적으로 금기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허친스 보고서는 1947년 마국 언론자유위원회 발간물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다.
미국 언론계는 어떨까. 감 교수는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NCSU)에 방문교수로 있다. 그는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두 가지 예를 들었다. 2017년 뉴욕타임스는 WSJ 기자들의 제보로 WSJ가 트럼프 대통령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아 내부 반발에 부딪힌 상황을 전했다. 기자끼리도 당당히 상호 비판한다. 감 교수는 “대통령 기자회견 때 기자 질문은 단골 품평 대상”이라며 “‘NBC 뉴스’ 척 토드 기자가 ‘에드워드 스노든이 애국자라고 생각하느냐’고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한 질문에 ‘디애틀랜틱’의 필립 범프 기자는 ‘what the fuck’이라는 비속어까지 써가며 혹독히 비판했다”고 했다.
감 교수도 언론 비판이 마냥 편하지 않다. 그의 지인들도 유력 언론사를 정면 비판한 그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명백한 표절 사건을 고발하는 데에도 눈치를 본다면, 훨씬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께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며 “대학 교수의 신분 보장 특권에는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데 눈치 보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분야의 전문가라도 자기 분야 벗어나면 동네 아저씨에 불과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 교수, 그것도 전자공학을 전공한 교수가 무식을 드러낼 위험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높였다”며 “멍석이 깔렸으니, 이제는 기자들을 비롯한 언론 전문가들이 전면에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유명 통계학자이자 저술가인 나심 탈레브의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온갖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만, 나심 탈레브가 말했듯 구조적인 문제만 탓하고 있으면 망하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세상은 '거대한 일본'이 된다
'몰딘이코노믹스'
아직까지 주요국 경제는 좋다. 하지만 2020년 경제침체가 닥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물론 1~2년 연기될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현재의 성장국면은 결국 막을 내릴 것이다. 경제침체든 아니면 성장이 멈춘 상태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온라인 경제전문매체 '몰딘이코노믹스' 대표인 존 몰딘은 17일 "'그레이트 리셋'(거대한 초기화)으로 불리는 글로벌 신용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 세계는 일본이 1990년 이후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전 세계의 '일본화'(Japanification)다.
물론 그런 상황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일본이 굼뜨나마 성장하는 건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일본과 같은 상황에 진입한다면 수출주도 전략도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게 몰딘의 전망이다.
전 세계의 일본화에 대해 일본은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어울리는 용어를 찾긴 힘들다. 몰딘은 "좋은 소식은 일본화가 서서히 퍼질 것이라는 점이고, 나쁜 소식은 일본화에서 탈피하는 것도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시간들
몰딘은 세계가 왜 일본처럼 변하는지에 앞서 일본의 현재를 만든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길고도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서서히 끓는 물에 담긴 개구리처럼, 당시에는 누구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미국과 서유럽이 일본 경제 재건에 도움을 줬다. 물론 자선을 베푼 것은 아니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을 막는 서구의 방파제로서 일본의 활용가치는 컸다.
일본의 경제는 급속하게 확장됐다. 1980년대 일본의 자산 거품이 정점을 찍었다. 결국 90년대 초 거품이 꺼졌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과정이 뒤따랐다. 사실 10년을 훨씬 넘었다. 2000년대 초 반짝 경제회복세가 있었지만 이후 또 다시 기나긴 불황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은 줄어들고, 임금은 하락하고, 자산가격은 반토막나거나 기껏해야 횡보였다.
잃어버린 10년은 통화정책과 관련이 깊었다. 이른바 1985년 '플라자합의'다. 엔화가치가 올랐고, 자산거품을 더욱 부추겼다. 일본중앙은행은 1989년 초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며 자산거품을 꺼뜨리려 했다.
일본중앙은행은 1992년 기준금리를 6%까지 올렸다가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몇년 뒤 제로수준까지 내렸다. 그 이후 2000년대 들어 2차례 짧은 긴축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이를 감내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후 더 이상 금리인상은 없었다.
일본중앙은행은 20년 동안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양적완화 비슷한 통화정책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 역시 효과는 거의 없다.
반면 일본 정부는 각종 재정정책을 시도했다.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와 탈규제, 세금감면 등이다. 이 역시 효과가 거의 없었다. GDP 성장은 제로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실질적 도움이 된 유일한 방법은 엔화가치를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역대 행정부와 중앙은행 총재들이 환율에 매달린 이유다. 몰딘은 "가진 도구가 해머뿐이라면 다룰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못"이라고 지적했다. 말인즉슨, 통화정책으로 안되는 건 적게든 많게든 사들였다. 주식ETF와 기타 민간자산을 포함해서다.
몰딘은 "일본은 '가짜 자본주의'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모든 자본이 기업으로 가지만 그 이유는 기업이 혁신적이고 이익을 내는 사업구상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거기에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이 즐비한 이유다.
최소한 현재까지 그 결과는 경제호황도 침체도 아닌 애매한 상황의 지속이다. 일본 경제는 거대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굶주린 국민들이 배식표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는 나라는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이 현재 상황을 무한정 지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눈에 띄는 출구도 없다.
일본중앙은행은 살 수 있는 모든 채권을 사들이면서 엔화를 금융시스템에 주입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높이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효과가 없다. 일본과 유럽에 이어 조만간 미국도 맞닥뜨릴 상황이다.
미국 CNBC 선정 최고의 온라인 경제금융 블로그 7위에 선정된 '오브투마인드'(Of Two Minds) 발행자 찰스 휴 스미스는 "좀비화 또는 일본화를 만드는 또 다른 동력은 과거의 성공이 지배엘리트에게 족쇄가 돼 실패한 모델에 집착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파워엘리트들은 이전에 실패한 방법에 더 극단적인 처방을 보태게 된다. 만약 기준금리를 낮추는 게 장기적 성장정체를 불렀다면, 파워엘리트들은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낮춘다. 그것 역시 실패하면, 마이너스로 금리를 낮춘다. 이 역시 실패하면, 통계를 조작해 상황이 괜찮아 보이도록 한다. 올해 초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일본 정부가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스미스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인 장클로드 융커는 '상황이 심각해지면 거짓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상기시켰다.
일본뿐 아니다. 실패한 모델에 더 극단적인 방법을 보태는 것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한 것이다. 제로금리는 효과를 거의 못 냈다. 연준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성공은 제한적이었고 부작용은 많았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마찬가지였다. 연준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주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몰딘은 "이제 미국과 유럽이 해야 할 일은 일본이 걸어간 길을 뒤따라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준은 2017~18년 경제부양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적 통화정책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다. 기준금리를 올렸고 양적긴축(QT)에 돌입했다. 몰딘은 "두 처방 모두 더 일찍 시행돼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시행되면 안됐다"고 지적했다.
연준의 자산 축소는 실질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효과를 낸다. 자산축소를 포함한 연준의 통화긴축 정책은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의 공세적인 기준금리 인상만큼 강력한 효과를 냈다. 그러자 시장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월가는 불만에 가득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발목을 잡은 진짜 이벤트는 2018년 말 시장의 긴축발작이었다. 빌리는 이나 빌려주는 이나 모두 연준에 불평불만을 터뜨렸다. 수익률 곡선이 평탄해지더니 곧 역전될 기미를 보였다. 그러더니 해가 바뀐 올해 수차례 역전됐다. 경제지표 약화와 맞물렸다. 인내심의 한계를 넘는 상황이었다. 연준이 아직 통화완화정책으로 완전히 돌아서지 않았지만, 올해 하반기 입장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반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잠깐이나마 긴축정책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대서양 양측의 미국과 유럽은 비전통적인 통화완화정책을 중단하려 계획했지만 멈춰섰다. 2000년대 들어 일본중앙은행이 두 차례 긴축을 시도하다 포기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재정정책 경로도 따라가고 있다. 급속히 늘어나는 재정적자 때문이다. 올해 미국은 일본의 적자 수준을 추월할 전망이다. GDP 대비 일본 적자는 4% 밑이다. 반면 미국은 5%에 근접하고 있다. 점차 누적되는 '미적립 채무'(unfunded liabilities : 연금, 의료보험, 학자금 대출, 연방주택자금 등)를 고려하면 미국의 적자는 향후 더욱 커질 것이다. 미국은 점차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연준 자산 10조달러까지 늘어날 수도
주요 선진국의 경제성장은 이미 둔화되기 시작했다. 올해말 글로벌 경제침체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연준이 현재 성장사이클을 연장하기 위해 재빨리 통화완화정책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미국도 다른 나라들처럼 경제침체로 끌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다른 중앙은행들은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대응할 것이다. 현재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총자산은 20조달러를 넘는다. 10년 전에 이같은 상황을 예견한 사람이 있다면 모두들 '미친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또는 '그같은 일이 생긴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이미 파탄나 있을 것'이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실제 그렇게 변했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연준이 제로금리를 시행할지, 전 세계 11조달러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 주저앉을지, ECB와 스위스중앙은행이 마이너스금리를 시행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과 양적완화, 제로금리 등 연준의 통화정책은 시행 몇달 전까지도 아무도 내다보지 못했다.
다음 위기가 오면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무언가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중앙은행들은 다시 한 번 자산매입에 몰두할 것이다. 몰딘은 "하지만 지난 10년보다 효과는 더욱 떨어질 것"이라며 "중앙은행들이 시스템에 주입한 돈은 은행 자산에 쌓이게 될 것이고, 은행들은 그 자산을 다시 연준의 자산에 쌓아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전 세계적 경제침체가 오면 믿을 만한 채무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기업들의 신용은 '투자'등급에서 '정크'등급으로 대거 하락하면서 유동성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이라며 "하지만 안정적 수익을 찾아 헤매는 연기금과 보험사 등은 회사채를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준의 자산이 4조5000억달러까지 부풀어 올랐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하지만 한 번 놀라지 두 번 놀라지는 않는다. 전 세계는 '중앙은행의 마구잡이 자산 매입'이라는 새로운 통화정책을 지켜봤다.
몰딘은 "앞으로 연준은 자산과 관련해 현 수준인 4조달러를 유지할 것이고 미국이 경제침체에 돌입한다면 또 다시 돈을 찍어내 자산을 늘릴 것"이라며 "2020년대 중반엔 연준 자산이 10조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연준은 어떤 자산을 매입할까. 현행법상 연준은 국채와 정부가 보증하는 모기지채권 등을 매입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이란 바뀔 수 있다. 다음 위기가 닥치면 이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연준 자산이 10조달러까지 부풀어오를 것이라는 예상의 또 다른 근거는 미국 공적부채가 30조달러를 향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향후 5년 동안 회사채 롤오버(만기연장)에 필요한 금액만 5조달러다. 여기에 기업이 새로 발행하는 회사채, 주정부와 기초단체가 발행하는 지방채가 덧붙여질 것이다. 이를 받아줄 수요는 미국 밖에서 나오기 힘들다. 오직 은행과 거대 연기금, 개인이 사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연준이 또 다시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리는 치솟이고 경제위기는 더 악화될 것이다. 연준은 또 한번 시장에 개입해 막무가내로 국채를 사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끝나야만 한다. 하지만 언제 끝날 것인가. 오히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끝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 분석은 다름 아닌 골드만삭스에서 나왔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인 단 스트루이벤과 데이빗 메리클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인 세계 3대 경제국이 부채위기를 겪지 않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한다. 2017년말 기준 일본 정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36%였다. 이는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 108%보다 2배나 높았다.
일본중앙은행은 GDP 정도 규모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자국 기업 회사채와 글로벌 회사채도 보유하고 있다. 연준은 대략 미 국채 총량의 35%를 보유하고 있다. 몰딘은 "연준이 미래 어느 시점에 미 국채 20조달러어치를 보유할 것이라 상상하는 게 지나친 것일까"라며 "일본 역시 20년 전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펼쳐질 것"이라며 "그럼에도 세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4.18
한국당 '묻지마 반대'의 민낯 드러나
민생 외면, 보이콧 일상화
의장실 점거·여성 비하
과거 반성 없이 남 비판만
나경원, 협상과정 일방공개
자유한국당의 여당에 대한 '무조건 반대'가 연이은 악수로 이어지고 있다. 민생은 어려운데도 '반대', '비판'만 앞세워 장외로 나와 버렸다. 문재인정부의 경제, 탈원전 등 국정과제를 전방위로 비난하면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지도부가 미국에 직접 가서 '문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하자 곧바로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고 장외로 뛰쳐 나갔다. 주말 장외집회를 주도하고 황교안 당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하는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점점 높아만 가던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비판수위는 25일 여당과 야 3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패스트트랙'(신속안건 지정) 시도에 관련해 '묻지마 비판' 수위가 최고조로 올라섰다.
한국당은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전날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 안건을 추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할 것을 공개하면서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사보임시키려고 하자 '사보임 최종권한'을 갖고 있는 문희상 의장에게 몰려갔다. 한국당은 이미 '50% 연동제'를 포함한 공직선거법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면 '20대 국회는 없다'고 선전포고한 상태였다.
국회의장실은 입장문을 통해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의장 집무실에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문 의장에게 고성을 지르고 겁박을 자행했다"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 의장을 에워싸고 가로막아 사실상 감금상태가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잠잠했던 '동물국회'가 되살아난 셈이다.
한국당은 또 2017년에 당론에 따르지 않는 김현아 의원을 사보임시켜려는 것을 국회의장이 막았다는 논리로 문 의장이 당 투표와 다른 의견을 내려는 오 의원의 사보임을 승인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강조했다. 권성동 의원은 "생각이 다르다고 강제로 사임시키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의원으로 바꾼다는 것은 헌법 위반에 국회법 위반"이라고 단정했다. 2017년 비례대표인 김현아 의원이 바른정당과 손을 잡고 움직이자 국토교통위원 사보임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은 거부했다. 이와 관련 국회사무처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결의 당시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강제사보임 하려 했다"며 "탄핵이라는 합법적 결정에 대한 사후보복을 당시 국회의장이 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여야 원내대표간 비공개 협상내용을 상대방의 용인없이 공개한 것도 '신뢰' 문제에서 어긋난 '무리수'로 보는 시각이 많다. 나 원내대표는 전날 비상 의총에서 "김관영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회담에서 '(바른미래당이) 끝까지 가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이 민주당 갈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 소신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공작정치"라며 "왜곡해서 이간질 도구로 사용하는 나 원내대표에 분노(를 느낀다)"라고 반박했다.
문 의장이 한국당 임이자 의원의 볼을 만진 것을 놓고 한국당 의원들은 성추행이라며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같은당 이채익 의원은 비상의총에서 "키 작은 사람은 항상 자기 나름대로 열등감이 있다. (임이자 의원은) 결혼도 포기하면서 오늘 이곳까지 온 올드미스"라며 "'못난' 임이자 의원같은 사람은 모멸감을 주고 조롱하고 수치심을 극대화하고 성추행해도 되느냐"고 말했다.
모 여당 의원은 "황교안 당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누가 더 강도높게 행동하고 말하느냐는 경쟁에 들어간 듯 하다"면서 "한국당이 장외집회이후 여당과 청와대에 대한 강도를 높여가는데 출구전략이 있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행 일변도'의 폐해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일촉즉발’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영화 상영회
황교안 대표 ‘퍼스트스텝’ 상영회에서 “북한 참상 알려야”…박인숙 문체위 한국당 간사 “우파 영화 늘어야”
선거제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문희상 국회의장과 충돌·행안위 점거 등 국회가 일촉즉발의 상황을 계속하던 24일 오후 2시 황교안 당 대표가 찾은 곳이 있다.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영화 ‘퍼스트스텝’ 상영회다.
다큐멘터리 ‘퍼스트스텝’은 2015년 미국에서 열린 12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참가한 24명의 탈북자 이야기를 담았다.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등이 주최한 이날 상영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영화 제작 이후 (감독 등이) 끊임없는 테러와 공격에 시달린다고 들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북한의 인권지옥 참상을 절실하게 호소하면서 북한의 자유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는 분들께 격려의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는 “북한 동포는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 우리가 그들을 저버린다면 민족적 관점에서도 옳지 않은 일이다. 북한 독재 권력의 인권유린에 침묵하면 범죄 방조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황 대표는 “북한 인권을 말하면 남북화해가 깨진다는 것은 좌파세력의 치졸한 자기변명일 뿐이다. 북한 동포에게 자유와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역사적 책무”라고 주장했다.
탈북자 출신의 김규민 ‘퍼스트스텝’ 감독은 “문화는 적의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적을 죽일 유일한 무기다. 요즘 드라마 볼 때, 나쁜 사람 나올 때 뒤에 태극기가 나온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게 문화”라고 주장하며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지금 나가서 싸워 달라”고 했다. 박인숙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는 “지금 한국에 좌파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우파영화가 드물다”며 “연평해전·국제시장·출국 정도인데 그런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부역자들’을 연출한 최공재 감독은 “영화 ‘판도라’ 한 편으로 탈원전하는 미개한 시대”라고 주장한 뒤 “영화를 비롯한 문화콘텐츠에 자식들이 세뇌당하는 동안 자유한국당은 문화를 도외시했다”며 “지금은 문화전쟁을 함께할 전우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탈북자 출신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황 대표를 향해 “더불어민주당이 김정은과 친하게 지내려 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태생적으로 자유한국당 지지자다. 그런데 (탈북자들을) 끌어주는 사람이 (한국당에) 없다. 제대로 된 통일분과위원회를 가동시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북한인권 개선운동을 활발히 하면 좋을 텐데 지금 당장 남쪽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한국당에 감금된 채이배, 창문 틈으로 "창문 뜯어서라도 나가야"
"사개특위 공수처법 전혀 논의 못해"…경찰·소방 출동까지 출동
한국당, 오전 내내 채이배 의원실 머물러…사실상 '국회 등원 차단'
한국당에 감금된 채이배, 창문 틈으로 "창문 뜯어서라도 나가야"
자유한국당은 25일 여야 4당의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저지하기 위해 바른미래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으로 교체된 채이배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점거했다.한국당 의원 11명은 이날 오전 9시께부터 5시간 가까이 채 의원의 사무실에 머물면서 채 의원의 국회 사개특위 전체회의 출석을 막았다.
채 의원은 지속적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한국당 엄용수·이종배·김정재·민경욱·박성중·백승주·송언석·이양수 의원 등이 문 앞을 막아서며 저지했다. 정갑윤 의원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여상규 의원 등은 채 의원실 소파 한쪽에 앉아 있다가 소파를 문 앞으로 옮기며 채 의원의 '탈출'을 방해하기도 했다.
채 의원은 급기야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무실 밖에는 경찰차와 소방차 4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했다. 채 의원은 창문 틈으로 겨우 얼굴만 내보인 채 사무실에서 2m가량 떨어져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4시간 넘게 감금상태"라고 호소했다. 채 의원은 "오전 9시부터 4시간 넘게 한국당 의원들이 오셔서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있다. 소파로 완전히 (막아놔서) 문을 열 수도 없고, 밖에서도 밀고 있어서 문을 열 수도 없이 감금된 상태"라고 말했다.
채 의원은 "경찰과 소방을 불러 감금을 풀어주고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창문을 뜯어서라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가 사개특위 공수처법안 논의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서 (사개특위 전체회의) 소집이 어렵다"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이렇게 회의 참석을 방해하는 것을 중단하고 한국당 의원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주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국회에서 이런 무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선진화법을 만들었고, 국회 문화도 나아지고 있었는데 오늘은 과거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 굉장히 우려스럽고 안타깝게 본다"며 "지금 등 뒤에서 한국당 의원들이 제 말을 듣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감금을 해제해달라"고 촉구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또 이런다. 무리하지 마시라", "회의 시작하시면 나가시라"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는 채 의원을 계속 가로막았다.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법안이 각각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개혁특위 회의실과 사개특위 회의실을 이날 오전부터 점거한 상태다.
공수처 법안에 반대하는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 대신 투입된 채 의원이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질 경우 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은 패스트트랙에 오른다.(연합뉴스)
문희상 의장 성추행 여부, 민주당 여성의원들에게 물었더니
“한국당의 ‘여성 도구화’ 선 넘었다” 부글부글
송희경 의원과 신보라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여성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백장미를 들고 '문희상 국회의장 사퇴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임이자 국회의원을 성추행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우한 기자
“국회가 아무리 난장판이어도 이런 적은 없었다. 의사당 안에서 여성 의원을 방패막이로 삼아 의장에게 성추행 모함을 뒤집어 씌우는 행태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함부로 ‘성추행’ 운운하지 말고 자당 여성 의원을 비하한 송희경, 이채익 의원에게 분노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여성 의원들은 자유한국당이 제기한 ‘문희상 의장 성추행 의혹’을 어떻게 봤을까. 25일 전화 인터뷰한 결과 다수 여성 의원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볼을 만진 행위에 대해 한국당 여성의원들이 성추행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성추행 의혹이 나온 과정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성추행을 빌미로 여성 의원을 이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성의 도구화’라는 비판을 쏟아낸 것이다.
성추행 논란은 전날 한국당 의원들이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에 반발해 국회의장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의원들이 집단으로 의장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임이자 한국당 의원이 문 의장의 앞을 가로막으며 “손대면 성추행”이라고 말했고, 문 의장은 임 의원의 양 볼을 손으로 감쌌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문 의장이 임 의원을 성추행해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을 줬다”며 의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당시 문 의장이 한국당 의원들이 벗어나려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신체 접촉이 일어났을 뿐 성추행이 아니라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그보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한국당이 일부러 여성 의원을 불러와 방패막이로 이용했다는 점에 당혹스러운 심경을 드러냈다. 민주당의 3선 여성 의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영상을 보면 30분간 의장을 막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여성 의원을 불러 왔고, 여성 의원 스스로도 ‘다가오면 성추행이다’는 발언을 한 것이 포착됐다”면서 “막아서면 신체접촉이 될 것 같으니 다분히 의도적으로 여성 의원을 앞세워 성추행 프레임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국회의장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느냐”고 오히려 문 의장을 걱정했다.
민주당 비례대표 출신 여성의원도 같은 장면을 보고 참담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자당 여성을 도구화하면서까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서 분노를 느꼈다”면서 “문 의장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여성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집단적으로 규탄회견을 연 한국당 여성의원들을 향해서도 “여성 스스로 문제를 호도하며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라며 “마치 예견한 듯 논란이 발생한 직후 플래카드까지 준비했는데 같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선에 대해 반문했으면 한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오히려 한국당 내부에서 나온 ‘미혼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이란 발언이 비뚤어진 성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는 입장이다. 문 의장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임 의원의 결혼 여부와 신체를 언급한 것이 성차별적 의식을 그대로 내비쳤다는 설명이다. 전날 송희경 한국당 의원은 의장실 점거 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임 의원이) 아직 결혼을 안 한 상황인데 더더구나 그 수치감과 성적 모멸감이 어떨지”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민주당의 초선 여성 의원은 “기혼 여성은 성추행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냐”면서 “결혼 여부에 따라 성추행의 경중을 따지는 명백한 성차별적 시각”이라고 했다.
전날 한국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나온 이채익 의원의 발언에 대해선 훨씬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이 의원은 의총에서 “저도 키가 작지만 키 작은 사람은 나름의 트라우마와 열등감이 있다”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임 의원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결혼도 포기한 올드 미스”라고 했다. 이어 “승승장구한 문 의장은 ‘못난’ 임이자 의원 같은 사람을 모멸하고 조롱하고 성추행해도 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다른 초선 여성의원은 “이렇게까지 같은 당 여성 의원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젠더 감수성이 전무한 이들이 성추행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먹고 살기 바쁜’ 저소득층…‘여행가는’ 고소득층
지난해 우리 가계가 어디에 돈을 많이 썼는지 봤더니, 소득 수준별로 차이가 있었는데요. 저소득층은 먹고 사는데 들어가는 비용처럼 꼭 써야만 하는데 돈을 많이 썼는데, 고소득층은 외식비와 여행 등 여가비에 많이 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기가 안 좋았던 영향으로 전체적인 소비는 줄었습니다.
[리포트]다달이 목돈이 나가는 월세, 마음대로 줄일 수도 없어 저소득층 가구에는 가장 큰 부담입니다.
[저소득층 가구/음성변조 : "두 식구니까 생활에는 그렇게 많이는 안 들어가고. 제일 큰돈 들어가는 건 집세에요."]
지난해 월세가 크게 오르면서 저소득층은 주거비에 돈을 가장 많이 썼습니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한 달 평균 지출 115만 원 가운데, 주거비가 전체 지출의 20%를 넘었습니다. 다음으로 많은 식료품 구입비를 합하면 먹고 사는 데 쓴 비용이 지출의 40%가 넘습니다.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는 주로 자동차 구입 등 교통비와 외식비, 숙박비 등 여가 활동에 지출이 컸습니다. 수치로만 보면, 소득 하위 20%의 지출이 늘어 상위 20% 가구와의 소비 격차는 1년 전보다 소폭 줄었습니다.
하지만 필수 지출 항목의 가격이 올라 저소득층은 허리띠를 더 졸라야 합니다. 가계 전체로 보면, 한 달 평균 지출은 254만 원 정도로 1년 전보다 0.8% 감소했습니다. 고용 사정 악화 등으로 당장 쓸 수 있는 소득이 줄어든 영향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박상영/통계청 복지통계과장 : "가구소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근로소득이기 때문에 근로소득이 고용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소득 100만 원 미만 가구의 경우, 교육비로 단 2만 5천 원을 써, 700만 원 이상 가구와의 격차는 17배가 넘었습니다. / KBS 뉴스 김수연
알기 쉽게 정리한 한국당 주장 '임이자 성추행' 사건의 전말
'오신환 사보임' 때문에 국회의장실 점거... 선거제 개혁-공수처 막으려다 무리수 둬
문희상 국회의장이 의장실을 항의 방문한 자유한국당 의원을 피해 빠져 나가려는 과정에서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과 신체 접촉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임 의원이 성추행을 주장했고, 자유한국당 여성 의원들은 "문희상 국회의장 사퇴하라"며 기자회견까지 열었습니다.
도대체 이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그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시작은 바른미래당 오신환 사보임
▲ 국회 상임위원회 공지사항. 매주 수정된 명단이 올라오고 있다. ⓒ 국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번 사건이 시작된 계기는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사보임 때문입니다. '사보임'(辭補任)은 국회의원이 소속된 상임위원회를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국회의원은 4년의 임기 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2년 단위로 상임위를 이동합니다. 그러나 당의 전략 또는 징벌적인 사안에 따라 원내대표가 의원을 특정 상임위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의장에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를 사보임이라고 합니다.
24일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오신환 의원을 '사개특위'에서 빼고 대신 채이배 의원을 넣기로 했습니다. 국회의원의 사보임은 그다지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에 사보임을 통해 법조계 출신 위원들을 배치했습니다.
상임위원회 공지사항을 보면 거의 매주 수정된 위윈명단이 올라옵니다. 그만큼 당의 방침에 따라 얼마든지 사보임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저지하기 위해 나선 한국당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의 사보임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승인을 해야 합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관계자 90여명은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의 사보임을 허가하지 말라며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의장을 에워싸고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왜 바른미래당 의원의 사보임을 자유한국당이 막으려고 했을까요? 이유는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합의한 '선거제도 개편안'과 '고위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내용 때문입니다.
▲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관련 위원회 현황, 사개특위 오신환 위원이 반대하면 패스트트랙이 무산될 상황이었다. ⓒ 임병도
선거법 개편과 공수처 신설을 패스트트랙으로 하기 위해서는 '정개특위'와 '사개특위'를 통과해야 합니다. 재적위원 5분의 3인 11명이 찬성해야 합니다. '정개특위'는 자유한국당 6명을 제외한 12명이 찬성이라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개특위'는 자유한국당이 7명이라 1명이라도 반대를 하면 통과가 어렵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패스트트랙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설득이 실패하자 채이배 의원으로 사개특위 위원을 교체한 것입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오신환 의원의 사보임을 허가하면 선거제도 개편안과 공수처 신설이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고 처리가 될 수 있으니, 자유한국당이 결사 반대하며 나선 셈입니다.
임이자 성추행? ... 당시 상황 정리해보니
▲ 문희상 국회의장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추정) ‘여성의원들이 막아야 돼’라고 외치고 임이자 의원이 등장한다. ⓒ MBC화면 캡처
자유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임이자 의원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MBC 뉴스데스크를 비롯해 각 언론사가 촬영한 영상을 종합적으로 살펴 본 기자의 눈에는 거의 자해공갈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영상을 토대로 이번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이를 빠져나가려고 함
② 한국당 여성 의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여성 의원들이 막아야 돼"라고 말함
③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 임이자 의원 등장 (그전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음)
④ 임이자 의원이 양팔을 벌리고 문 의장을 막아섬
⑤ 임이자 의원 "의장님 손대면 이거 성희롱이에요"라고 말함
⑥ 문희상 의장 "이렇게 하면 성추행이냐"라며 임 의원의 양볼을 두 손으로 감쌈
⑦ 이후 자유한국당 "문희상 의장이 임이자 의원을 성추행했다"라며 고소하겠다고 입장 밝히고 기자회견 진행
지금 상황을 보면 국회의 본래 기능이었던 선거제도 개편안과 공수처 신설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그저 국회의장이 여성 국회의원을 성추행했다는 얘기만 나옵니다.
왜 자유한국당이 다른 정당의 사보임을 가지고 문희상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난장판을 만들었는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본질은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안과 공수처 신설을 막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당당하게 국회의원으로 입법 활동을 해야지,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집단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을 벌이는 국회의원과 정당이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 오마이뉴스 임병도(impeter)
“부산 금련산 80조원대 매장 추정”… 구리 관련주 상한가
부산 도심 금련산에 80조원대의 가치를 가진 구리(Cu)가 대규모 매장된 것으로 확인됐다(국민일보 2019년 4월 26일자 14면 보도). 관련주가 급등하고 있다.
구리 가공업체 이구산업은 26일 오전 9시45분 현재 코스피 시장에서 전 거래일 종가(1855원)보다 555원(29.92%) 오른 2410원에 거래되고 있다. 상한가를 찍었다. 같은 업종의 대창은 같은 시간 전 거래일 종가(1050원)보다 285원(27.14%) 상승한 1335원을 가리켰다. 상한가(1365원) 목전까지 다가갔다. 두 업체는 구리를 압연·압출하는 기업이다. 금련산에서 구리 매장 소식이 전해진 이날 주가를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부산국제관광개발(대표 강호성)은 광업등록사무소에 채굴권 허가를 신청, 수영구 금련산 81광구의 가로 20m·세로 40m·깊이 20m에 대한 표본조사를 실시해 구리 3600t이 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구리는 t당 700만원. 표본조사를 실시한 800㎡에서만 시가 253억원어치가 발견된 셈이다. 81광구 전체면적 80만평(264만㎡)에 매장된 구리의 가치는 8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산국제관광개발은 전문기관을 통해 81광구에 대한 구리 매장량 조사를 끝내는 대로 채굴과 저변시설 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자유한국당과 10년전 언론인들의 ‘국회 투쟁’
국회서 종편탄생법 반대했던 언론인들 5년 재판 끝에 유죄… 형사처벌 규정 국회선진화법
선거제·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물리력으로 저지하려 한 자유한국당이 고발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오후 한국당 의원 18명과 보좌진 2명을 국회 회의를 방해한 혐의(국회법 위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언론계에서는 2009년 종합편성채널 출범의 근거가 된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에 진입했다가 유죄를 받은 언론인들이 회자된다.
노종면 YTN ‘더 뉴스’ 앵커는 26일 페이스북에 “2009년 7월22일 국회 로텐더홀을 거쳐 본회의장 방청석에 들어갔다. 당시 언론은 ‘난입’이라고 했다. 종편 태생법인 미디어악법 날치기를 막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었다. 고발을 당했고 오랜 수사를 받았다”고 썼다.
▲ 2009년 7월22일 당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가운데),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장, 심석태 언론노조 SBS본부장 등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회의장에 들어가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투표에 참여하지 말 것을 설득하기 위해 앉아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때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은 국회에서 농성을 벌였다. 당시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현 SBS 특임이사), 노종면 전 언론노조 YTN지부장 등 현역 언론인 30~40명은 국회 창문을 통해 본청에 진입했다.
최 위원장이 “언론노조가 마지막 파업 지침을 내린다.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마지막 파업 지침”이라고 선언하며 ‘결사 항전’을 주문했으나 집권 여당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법안 처리를 막아내진 못했다.
당시 언론노조 조합원으로 ‘국회 투쟁’에 참여했던 김보협 한겨레 기자는 지난 2017년 6월 칼럼(노종면·박성제를 방송에서 보고 싶다)에서 “숨겨왔던 얘기 한 토막 이제 털어놔도 되겠다”며 2009년 국회 현장을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장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KBS 앵커 출신인 이윤성 당시 국회부의장(한나라당)이 언론 악법들을 상정하자마자 행동에 들어갔다. 우리의 언어로는 투쟁이었고, 그들에게는 난동으로 비칠 일이었다. 최상재 위원장은 국회 바깥 집회에서 언론노조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막 상정했고 김보협 동지 혼자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 우리도 뚫고 들어가자.’ 국회 본회의장이 있는 건물 출입구는 이미 막혀 있어서 어떤 이들은 창문을 넘고 어떤 이들은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다. 본회의장 앞 중앙홀에서 기자회견을 한 사진이 다음날 한 신문에 실렸다. 그대로 증거가 돼 대부분 검찰에 불려다녔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서 수백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YTN 노종면은 200만원, MBC 박성제는 400만원이었다.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혼자 난동을 피우던 나는 문제의 사진에 등장하지 않아 무사했다. 생방송까지 나간 탓에 검사들의 질문 공세가 집요했으나, 기소된 동지들은 ‘난 모르는 사람’이라고 버텼다.”
언론 노동자들에겐 ‘투쟁’이었던 그날 국회 진입에 혹독한 대가가 뒤따랐다. 국회에 진입했던 언론인들은 ‘국회 내 불법 집회’, ‘국회 본관 공동주거침입’, ‘회의 방해’ 등 각종 사유로 재판에 불려 다녔다.
▲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2009년 7월22일 종합편성채널 출범의 근거가 된 방송법 개정안을 재투표에 부친 뒤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가운데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에 진입하고 3차례의 언론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상재 전 위원장은 2014년 8월20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됐다.
최 전 위원장은 ‘국회 투쟁’ 5일 뒤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도 2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대법원까지 5년 걸린 재판이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피고인(최상재·노종면)은 언론노조 조합원 30여명과 공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려던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유기준과 그를 경호하는 국회 경위들을 몸으로 밀치거나 국회 경위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국회 입장을 저지해 유 의원의 입법 활동에 관한 정당한 직무집행과 국회 경위의 국회의원 경호에 관한 정당한 집무집행을 방해했다.”
“피고인들은 출입이 금지된 국회 본관에 창문을 통해 침입한 후 언론 관련 법안에 대한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안 심의가 진행 중이던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연설하고, 그곳과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집단적으로 구호를 외치며 야유를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소동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유죄라고 판단한 원심의 조처는 정당하다.”
▲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국당 의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2012년 도입된 ‘몸싸움 방지법’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행사하는 물리력을 금지한다. 처벌 수위가 높다.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며 국회를 점거한 한국당 의원들이 이번 민주당 고발로 입건되면 이 법에 따라 형사 판단을 받는 첫 사례로 기록된다.
국회법 제166조(국회 회의 방해죄) 1항은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 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법 제166조 2항은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사람을 상해하거나, 폭행으로 상해에 이르게 하거나,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사람을 폭행 또는 재물을 손괴하거나,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그 밖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노종면 앵커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신에 따라 더 큰 가치를 지키려고 실정법을 위반한 책임을 지고 전과를 안은 것에 한치의 후회도 없다”면서도 “이번에 나선 이들도 분명하게 법적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혀내두른 국회 직원들…"의안과 점거는 상상 이상"
한국당 국회 의안과 점거 후 팩스 떼고 컴퓨터 사용도 막아
명백한 법 위반이지만 오히려 "헌법 수호한 것" 큰소리
한국당 탓에 법안 잘못 기재됐음에도 곽상도 "코메디" 비꼬아
국회 직원들 "국회 직원 행정 막은 것은 상상조차 못한 일"
현행법 위반행위에 대한 법원의 처벌 수위 주목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26일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열리는 국회 회의실 앞을 점거하고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 등 특위 위원들의 입장을 막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자유한국당의 국회 역사상 전례 없는 국회 직원에 대한 감금 등 폭력 행위와 사무실 기물 파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추진이 위헌이자 불법행위라며 물리력 행사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느닷없이 사무실에 감금당하고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됐던 국회 직원들은 허탈함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의 의안과 강제 점거는 지난 25일부터 26일 오후까지 꼬박 하루 동안 이어졌다. 한국당은 자신들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 발의할 법안들이 팩스로 의안과로 접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의안과로 달려왔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팩스로 의안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한국당은 "불법 접수"라며 곧바로 무력을 사용해 접수 저지에 나섰다.
법안 내용을 의안정보시스템에 기입하고 있던 의안과 소속의 한 여성 직원은 느닷없는 한국당 인사들의 방해에 제대로 업무를 마칠 수 없었다. 때문에 이 법안은 민주당 백혜련 의원인 대표 발의자가 표창원 의원으로 잘못 기입되는가 하면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위원회 심사 정보 등 필수 기재사항도 작성되지 않은 채 한동안 의안정보시스템에 떠 있었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자당의 불법 행위로 발생한 일임에도 "대표발의한 사람이 표 의원으로 돼 있는 것은 정말 한 편의 코메디"라며 비웃기까지 했다.
의안과 직원들은 이 후에도 한국당 측이 팩스 기계를 파손하고 컴퓨터 사용을 막으면서 한동안 업무를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없었다.
한국당의 불법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 등 여야 4당 의원들이 법안을 인편으로 의안과에 접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예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고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아예 출입문 봉쇄에 나섰다. 직원 일부가 사무실에 갇히면서 의안과 업무는 사실상 마비됐다. 그럼에도 한국당 인사들은 복도에서 "헌법 수호"와 "독재 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유례없는 국회 사무실 내에서 발생한 폭력과 업무 방해에 좀처럼 국회의원들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국회 직원들도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권영진 국회 의사국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치인들끼리 회의장에서 하는 행위(몸싸움) 보다 이번 일이 더 큰 죄"라며 "회의에서 의원들끼리 하는 것은 정치지만 공무원들의 행정을 막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고 상상조차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법안접수를 위한 경호권을 발동한 가운데 25일 저녁 국회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 당직자들이 헌법수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특히 이같은 의회 내 물리력 충돌을 막고자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 마련됐음에도 점거 사태가 벌어지자 향후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국 관계자는 "과거 선진화법을 주도해 가결시킨 정당마저 필요에 따라 '위헌'이니 '자신들은 정당하다'느니 하는 핑계를 들어 행정업무를 마비시켰다"며 "국회의원들이 사무실 점거, 업무 방해 등을 하더라도 사실상 이를 막을 수 없는 국회 직원들로서는 이번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 해도 계속해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민주당은 26일 팩스 접수 등 국회 직원들의 공무 집행을 가로 막은 혐의와 팩스로 법안을 파손한 혐의, 회의 진행을 육탄으로 막은 혐의 등을 사유로 한국당 의원 18명과 보좌진 2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번 행위에 대해 법원이 처벌을 하지 않거나 처벌을 하더라도 그 수위가 솜방망이에 그친다면 국회 직원들의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findlove@cbs.co.kr
일베 9년 만에 ‘몰락’ 마침표 찍나
일베 운영진이 직접 개설한 유튜브 채널. 일베 운영진 ‘유지’가 하는 방송이다./유튜브 캡처
운영진 고인 모독 영상 직접 유튜브 올려… 노무현재단 등 대응 주목
“놀자TV가 일베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일베가 놀자TV를 인수한 것이다.”
지난 4월 2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대표운영자 ‘나새’가 ‘통문회 답변한다’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다. 커뮤니티의 한계를 넘어 동영상 플랫폼으로 확장하기 위해 ‘놀자TV’라는 인터넷방송 사이트를 인수했다는 것이다.
이 해명 글은 일베의 일부 회원들이 놀자TV를 운영하는 회사(잭앤콕)의 등기부등본 등을 제시하며 일베를 운영하는 회사(당시 이슬네트웍스)의 임원과 주소지 등이 겹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일베 측은 “(놀자TV 회사와) 무관함을 주장했던 것은 당시 사업의 시작 단계에서 방향성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해서”라고 해명했다. 운영진은 의혹을 제기하던 회원들의 글을 삭제하고 ‘3000일 접근 금지’ 조치를 취했다.
일베를 넘어 여러 커뮤니티에 ‘일베 드디어 망함’이라는 게시글이 퍼진 것은 직후다. 일베 측의 주장은 사실일까. 과거 일베를 운영하던 회사는 ‘유비에이치’라는 회사다. 이 회사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2017년 11월 15일 주식회사 아이비라는 이름으로 변경 등기됐다. 과거 서울 역삼동 황화빌딩의 사무실공유회사에 적을 뒀던 유비에이치의 등기는 폐쇄됐고, 대구로 옮긴 아이비의 등기는 아직 살아있다. 역삼동 시절 대표로 명기되었던 2대 운영자 이성덕씨는 사내이사를 거쳐 지난해 4월 26일 사임했고, 같은 날 장희도 대표가 이어받았다. 3대째 운영자다.
그러나 현재 일베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는 ‘아이비씨’다. ‘아이비씨’와 장희도 대표가 사내이사로 돼 있는 ‘아이비’의 관계는 등기부상으론 드러나지 않는다. 등기가 살아있는 주식회사 아이비는 대구 수성구 범어동 킹덤오피스텔 7호에 본점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난 4월 23일 기자가 방문한 이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바로 옆 6호에서 인장업을 하고 있는 업주에 따르면 이 사무실은 자신이 입점한 올해 1월 이후 ‘내내 비어 있었다’.
■ “놀자TV 인수” 일베 주장 사실일까
이슬네트웍스가 ‘아이비씨’로 상호를 바꾼 것은 지난 4월 4일. 이날 ‘아이비씨’는 대구 서문로1가에 있는 3층 건물의 2층 202호로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회사의 대표·사내이사 등 임원은 주식회사 ‘아이비’와 중복되지 않는다.
일베의 해명을 믿는다면 실소유자는 등기부 상에 기재되지 않은 제3자라는 뜻이 된다. 일베가 인수했다고 하는 ‘놀자TV’ 측에 연락했다. 대표번호로는 연락되지 않는다. 다시 고객센터로 문의를 하니 서울 강남에 있는 팝콘고객센터라고 답한다.
“우리는 80여개 벗라이브 사이트(성인사이트)를 관리한다. 고객센터의 역할은 무통장 입금을 하면 사이버머니를 충전해주는 것이다.”
다시 놀자TV의 네트워크 관리자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왔다.
일베운영자라고 밝힌 그는 “일베가 회원 수로 보나 규모로 보나 그쪽(경향)보다 인지도가 큰데 굳이 우리가 인터뷰에 응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기자가) 조·중·동으로 소속사를 바꿔 온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슬네트웍스가 아이비씨로 바뀌기 전 주소는 대구 수성구 사월동의 대구국제교회 건물 2층 211호였다.
해당 주소지를 조회해본 누리꾼들 사이에선 “교회와 관계가 수상하다”는 말이 나오던 참이었다. 이 교회 김동섭 목사는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교회는 일베와 전혀 관계 없고 일베 운영회사는 현재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가 방문한 4월 23일, 건물 2층엔 ‘놀자TV’를 운영하는 잭앤콕은 그대로 있었다.
즉, 일베사이트를 운영하는 ‘아이비씨’만 이사를 간 것이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교회는 이 건물의 지하층과 3·4층만 소유하고 있었다. 1층과 잭앤콕이 입주해 있는 2층의 소유자는 1966년생 서모씨다. 서씨는 일베를 운영하는 아이비씨의 사내이사였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서씨는 4월 4일 사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이날 이모씨도 사내이사직에서 사임한 걸로 나와 있다. 이씨는 앞서 기자에게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어온 인사다.
이씨의 이름은 놀자TV와 관계된 여러 회사에서 발견된다. 남자TV, 아재TV, 팝스타TV 등의 대표이사다. 소위 ‘벗방 사업’을 하는 팝콘TV 계열 인터넷 성인방송 회사들이다. 앞서 사월동 2층에는 그가 관련된 컴퓨터 액세서리 쇼핑몰도 입점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서씨와 이씨는 인척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이라는 서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둘은 동행인 듯했다. 서씨의 휴대폰으로 이씨와 통화했다.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잭앤콕 대표이사 이○○다. 왜 남의 회사에 가서 상관없는 일베에 대해 묻는가.”
-잭앤콕이 놀자TV를 운영하는 회사가 아닌가. 그 부분에 대해 명확히 해달라.
“우리 회사가 돈 받을 것이 있어 돈을 받기 위해 (일베) 이사에 등기했다. 워낙 문제가 되어서 이사를 한 것이다. 등기부등본 확인해봐라. 현재 우리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회사다.”
-확인했다. 일베에서는 놀자TV를 인수했다고 주장했는데, 놀자TV 대표 아닌가.
“나는 일베와 관련 없는 사람이다. 서류상으로도 관련 없고 업무상으로도 관련 없다.”
-4월 3일 나와 통화할 때는 본인이 일베 운영자라고 하지 않았나.
“….”
기자와 통화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이씨는 “자신은 민주당 당원이고 노사모 회원을 한 적도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권리당원을 포함, 적어도 대구시당 당원 명부엔 이○○씨는 없는 것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큰 변화가 없다면 이대로 망해버릴 것이라는 결론을 냈고 여러 고민 끝에 방송 플랫폼으로 확장을 꾀했다. 이것이 놀자TV의 인수로 이어진 셈이다.”
앞서 ‘통문회’ 글에서 일베 운영진이 밝힌 앞으로의 계획이다. 이 계획은 실현 가능할까. 막장 패륜 글을 쏟아내면서도 일베가 폐쇄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어 오면서 지난 보수정권 9년간 일베가 정권 차원의 비호를 받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당시 관련 권한을 갖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측은 ‘70%룰’을 거론했다. 즉, 유해·위법 콘텐츠가 전체의 70% 이상을 넘어서야 심의대상으로 삼겠다는 내부방침을 세웠다는 것이다.
기자는 방심위에 2013년부터 현재까지 일베 관련 불법·유해정보 시정요구 통계를 요청했다. 추세는 2013년 이후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감소경향을 보이고 있다.(아래 표 참조)
하루에 등록되는 게시글 수에 비하면 지난 7년간 제재받은 건수 누계 6561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정작용이 작동하고 있는 걸까. 과거 안산 단원고 교복을 사서 입은 일베 사용자가 어묵을 먹으며 ‘친구 먹었다’고 올려 물의를 빚었던 이른바 ‘일베 오뎅 사건’ 등 몇몇 건과 관련, 기자와 통화한 당시 방심위 관계자는 “일베 운영자에게 게시물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면 비교적 착실히 조치를 이행하는 편”이라며 “운영자가 사용자들이 올린 콘텐츠 전체를 사전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일베 운영진 직접 올린 유튜브 영상 보니…
그런데 양상이 달라졌다. 현재 운영을 맡은 4대째 운영진은 그동안 ‘노잼화’(재미가 없어졌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정치게시판을 없애고 대신 ‘IB튜브’라는 게시판을 신설했다. ‘유지’라는 이름의 일베 운영진이 유튜브에 올리는 개인방송을 중계하는 게시판이다.
그가 올린 4월 14일자 ‘낙태죄 폐지 개꿀각?’이라는 영상을 보자.
“두부 터진 무현이나 할 소리라는 거지.”(영상 2분6초)
이어 2분36초엔 낙태를 둘러싼 논란 상황을 쉽게 설명한다며 ‘전라동화(표기는 IB동화)’라는 것을 들고 있다. ‘유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사진을 제시하며 이렇게 발언한다.
“먼저 무현이가 무엇 하는지 볼까요? 아! 무현이가 스스로를 위하고 있네요.”(편집된 사진의 전후 맥락상 스스로를 위한다는 발언은 자위행위를 한다는 말이다.) “대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홍어놀이 중이었네요.” 4월 17일 게시한 ‘(단독보도) 노무현-문재인 비밀 녹취록!’이라는 영상 시작부분엔 영어로 문재인·노무현 ‘byeongshin(병신)’ 녹취록이라고 적혀 있다.
과거 일베가 모욕죄나 사자 명예훼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용자 핑계를 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운영진이 직접 올리고 있다. 법무법인 한가람의 권세헌 변호사는 “낙태 논란과 관련된 영상은 가정(~이라면)을 썼기 때문에 저쪽에서 다퉈볼 만한 여지가 있지만 비밀녹취록이라고 주장하는 후자의 경우 100%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고재순 노무현재단 사무총장은 “과거 노 전 대통령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식사 사진을 합성해 배포한 일부 일베 사용자들을 허위사실 유포로 형사고발한 적은 있다”며 “운영진이 직접 고인 모독성 글을 올리는 것은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재단 자문 법조인들과 신중히 상의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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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대구 서문로1가 일베 사무소의 문은 잠겨 있었다. 과거 대구 범어동 킹덤오피스텔에 있을 때도, 서울 역삼동 황화빌딩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기자가 방문한 서울 역삼동 황화빌딩 사무실 운영 관계자도 “이따금씩 앞으로 배달되는 소송 관련 서류 등을 수령하러 방문할 뿐, 여기에 출근해 일베 사이트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 일베 측과 명예훼손·모욕죄 소송을 진행했던 전 신문고뉴스 기자 이계덕씨는 “소송을 진행했지만 법정에 대표는 출석하지 않고 직원만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왔었다”며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실제 운영은 재택근무로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 ‘일베 몰락’ 이후엔?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것은 기본권 제한의 한계 원리인 과잉금지 원칙을 근간으로 해서 최소규제의 원칙, 공정성·객관성 등 심의 기본원칙을 유지하면서 사이트 개설 목적 및 운영형태, 내용과 주제, 전체 맥락, 양적·질적 정도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할 사항으로 보고 있다.”
사이트 폐쇄조치에 대한 공식입장 요청에 4월 25일 방심위가 회신한 내용이다.
실제 방심위 결정으로 폐쇄된 사이트가 있다. 전라도 혐오를 주장하던 네이버 카페 ‘라도코드’다. 기자는 2012년 6월 ‘잉여들은 어떻게 보수우파를 동경하게 되었나’라는 기사를 쓰면서 일베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2010년 4월 최대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삭제 글 등을 모아 보여주던 사이트에서 출발한 일베는 2011년 12월 라도코드 폐쇄 후 ‘지역혐오’ 사용자들이 대거 몰리며 현재의 정체성이 정립되었다.
일베의 쇠퇴현상은 이미 2~3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베의 현재 동시접속자 수는 7000~1만4000여명 수준으로, 2014~15년의 3만~4만여명에서 반토막 난 상황이다. 일베가 진짜로 몰락한다면?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베발 혐오표현이 인터넷에 퍼져 만연하게 되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쓰레기통’ 내지는 ‘해우소’ 개념으로 일베 같은 사이트가 존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분명 혐오정서가 모이면 모일수록 더 커지는 역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 가진 다른 정서처럼 혐오자체를 없앨 순 없다.”
과거 ‘인터넷 내 혐오표현’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던 서울대 로스쿨 김호씨의 말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장을 담은 ‘헤이트스피치’에 기반한 비주류 루저 정서가 주류가 되는 역설적인 동학(動學)이 인터넷에서는 종종 작동한다”며 “일베가 없어지더라도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인터넷 공간에서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럼에도 일베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과거에는 혐오표현이 지역이나 정치를 매개로 했다면 최근 2~3년간 젠더나 문화적 갈등으로 중심축이 옮겨졌다는 점을 들었다. 자기표현의 중심축이 게시판에서 소셜미디어(SNS)나 유튜브 ‘영상’으로 옮겨간 점도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일베를 설명하는 여러 요인 중엔 일종의 하위문화를 형성한 유희적인 성격이 있었다. 그러다가 소위 ‘네다홍 홍무새’(반대의견에 토론을 배격하고 ‘무조건 전라도 출신이라고 딱지 붙이는 행위’를 뜻하는 일베 용어)가 나오면서 노잼화되고, 또한 일베가 광장(오프라인)으로 나오면서 유희가 힘을 잃어버린 것도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일베 이후’ 또 다른 막장 사이트가 나타나 그 역할을 대체할 수도 있지만 현재와는 다른 양상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감금·폭행·거짓말, 4부작 ‘국회 막장 드라마’를 요약해봤습니다
패스트트랙 두고 여야 극한의 대치
국회의원 주연, 여의도 국회의사당 배경의 ‘막장 드라마’가 이번주 내내 방영됐습니다. 범여권과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난장을 벌인 겁니다. 상대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난무했고, 배신감을 호소하는 인물들이 속출했습니다. 고성과 욕설, 셀 수 없이 많은 육탄전 속에 의원들이 동료 의원을 감금하는 촌극까지 빚어졌습니다. 국회의장을 둘러싼 성추행 논란과 잇따른 고소·고발은 드라마의 ‘막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이 선거제도 개편안과 검찰 개혁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데 실패하면서 국회발 막장 드라마는 다음주 시즌2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액기스’를 놓친 시청자들을 위해 국민일보가 이번주 국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요약해봤습니다.
◆프롤로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2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신설·검경 수사권 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검찰 개혁법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한국당은 노숙 농성을 감행하며 반발했고 찬성·반대파가 뒤섞인 바른미래당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여야 4당이 처리 시한으로 못 박은 날짜는 25일. 4일간의 막장드라마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1화 : 사·보임을 둘러싼 거짓말과 배신 논란
첫 화의 주인공은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계 의원들입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여야 4당은 23일 일제히 의원총회를 열고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하는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일사천리로 추인을 마무리한 다른 당과 달리 바른미래당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진통 끝에 표결을 한 결과 찬성 12표 반대 11표가 나왔습니다. 추인에는 성공했지만 당론 채택은 불발된 반쪽짜리 표결이었습니다. 결국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소속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당의 추인 결과와 상관없이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을 반대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공수처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은 사개특위 위원 5분의 3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오 의원의 반대하면 여야 합의가 무위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사·보임’을 둘러싼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되는데요. 김관영 원내대표와 지도부는 24일 오 의원을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임시키고, 찬성표를 던질 채이배 의원을 보임하는 사·보임을 단행하겠고 밝혔습니다. 이에 유 의원은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했고, 김 원내대표는 “그런 적 없다”고 반박하면서 양측 간에 진실공방이 벌어졌습니다.
급기야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배신감을 호소하며 집단 행동에 돌입합니다. 지도부의 사·보임 요청서 제출을 막기 위해 접수처인 국회 의사과를 점거한 겁니다. 지도부 비판을 자제해온 유 의원도 “손학규 당 대표, 김 원내대표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2화 : 한국당 등판, 이상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이런 가운데 한국당의 등판으로 이야기는 잠시 샛길로 빠지게 됩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신설에 모두 부정적이었던 한국당은 사·보임 저지를 위해 허가권자인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방문합니다. 문 의장이 바른미래당의 사보임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십여명의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로 물려가 문 의장을 둘러쌌습니다. 국회법에 따라 바른미래당의 사·보임은 위법이라는 한국당과 할 수 있다는 문희상 국회의장 간에 설전이 오고갔습니다.
이은재 의원이 문 의장을 향해 “사퇴하세요”를 외치면서 분위기는 한층 험악해졌고, 문 의장은 “이게 대한민국 국회냐”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사퇴 논쟁은 자리를 피하려는 문 의장과 이를 막으려는 한국당 의원들 간에 물리적 충돌로 비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 의장을 막아선 임이자 의원과 문 의장 간에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 초유의 ‘성추행’ 논란까지 빚어집니다. 한국당 여성 의원들과 여성 당직자·여성 보좌진들은 백장미를 들고 문 의장의 성추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임 의원은 문 의장을 성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충격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한 문 의장은 병세가 악화돼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3화 : 감금당한 채이배
사보임을 둘러싼 진실공방에서 성추행 논란까지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이어온 드라마는 이제 범죄물·액션물로 장르 변환을 시도합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25일 사·보임 요청서를 팩스를 통해 의사과에 제출합니다. 허를 찔린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병상에 있는 문 의장을 설득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문 의장은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사·보임 요청서를 손에 쥔 국회 의사국장은 의원들을 피해 문 의장과 접선했습니다. 문 의장은 바른미래당의 사·보임 요청서에 사인하며 ‘병상결재’를 강행했고, 의사국장은 뒷문을 통해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갔습니다.
이제 갈등의 주 무대는 오 의원 대신 사개특위 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 의원의 의원실로 바뀝니다.
사보임이 허용될 것에 대비해 한국당 의원들은 오전 9시부터 채 의원실을 점거했습니다. 채 의원이 사개특위 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열명이 넘는 한국당 의원들이 소파와 의자를 문 앞에 놓고 채 의원 나가는 것을 막아섰습니다.
바깥쪽 창문으로 고개를 빼곰히 내민 채 의원은 감금 상태라고 기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채 의원의 신고로 경찰과 소방 인력까지 충돌해 현장은 흡사 ‘인질극 현장’과도 같은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결국 채 의원이 “창문을 깨서라도 나가겠다”고 배수진을 치면서 한국당 의원들이 물러섰습니다. 무려 6시간에 걸친 감금 끝에 채 의원은 사개특위 회의장으로 향했습니다.
◆4화 : 또 한 번의 사보임, 전쟁터 된 국회 7층
이번 화에서 국회는 육탄전을 벌이며 막장의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채 의원이 의원실에 감금당하는 동안, 양당(민주당․바른미래당)의 사개특위 위원들과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검찰 개혁법안의 최종 조율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탈출한 채 의원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채 의원에 앞서 회의장에 들어가 있었던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사개특위 위원에서 빠지고, 임재훈 의원이 보임되는 두 번째 사보임이 이뤄졌습니다. 권 의원이 여야 4당이 합의한 검찰 개혁법안에 이견을 나타내자 지도부가 초강수를 둔 겁니다. 수개월 동안 검찰 개혁 법안을 논의했던 의원들은 빠지고, 처음으로 회의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최종 조율작업과 표결에 참여하게 되는 우수꽝스러운 상황이 됐습니다.
한국당은 '날치기'라며 즉각 반발했습니다. 이어 발의된 법안이 국회에 접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접수처인 국회 7층 ‘의안과’에 모든 당력을 집중시켰습니다.
네 명의 한국당 의원들이 일찍이 의안과 안에 들어가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복사기·TV·책장 등 집기를 동원해 출입문을 봉쇄했습니다. 한국당은 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직자와 보좌진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의안과 앞에 인간 바리케이드를 구축했습니다.
법안을 접수하려는 민주당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당 세력 간에 몸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충돌이 계속되자 국회 의안과에는 경호권까지 발동됐습니다. 국회의장의 경호권 행사는 전두환 정권 이후 33년 만에 있는 일입니다. 여야 싸움에 국회 방호인력까지 가세하며 현장은 그야말로 ‘무법 지대’가 됐습니다.
대치는 밤새 이어졌습니다. 이날 오후 11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회의가 진행될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는 의원들 간에 말싸움도 있었습니다.다음은 회의장을 막아선 한국당 측과 회의를 강행하려는 여권 사이에 오간 말들입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 “(한국당 관계자들 향해 여기 가담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하면 한국은 다시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돌아간다. 박 전 대통령 DNA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철저하게 해증해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 : 당신들이 만든 김정은 시대 막으려고 하는 거야. 부끄러운줄 아세요.
이정미 정의당 원내대표 “대꾸하지마”
전희경 의원 “대꾸를 못하겠죠. 연좌하는 모습이 비장해보입니까?”
기동민 민주당 의원 “2011년도에 국회에서 막아섰다가 벌금 400만 원 받았어. (벌금형 받을 때)깨닫게 될 거다”
◆시즌2 결정된 국회 막장 드라마
26일 법안 접수에 성공한 민주당이 한국당의 총력전 속에서 가까스로 사개특위 회의를 열었지만, 정족수가 부족해 표결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논의할 정개특위 전체회의는 한국당의 저지 속에 열리지도 못했습니다.
고소·고발전도 잇따랐습니다. 민주당은 나경원 원내대표와 이주영 국회부의장를 포함해 18명의 한국당 의원을 국회선진화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한국당은 문 의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도 당 지도부의 사보임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핸쟁의심판청구와 효력정치 가처분청구서를 냈습니다.
여야가 주말동안 휴전에 들어간 가운데 ‘몸빵’을 불사하는 한국당과 이를 뚫고 패스트트랙을 강행하려는 범여권의 막장극은 다음주에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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