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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3.7.17 ~22 이기 나라냐

by 이성근 2023. 7. 17.

국민의힘 시럽급여논란, 보수신문이 불 지피고 힘 보태

자동차·석유·가스‘2년간 34인플레 국면 횡재이익챙긴 기업들

민간개발 저울질한 발도 못 나간 공공개발

NYT “한국, 2050년 세계 두번째 늙은 국가’”

카르텔 향한 어퍼컷, 전 부처의 검찰화?

다목적 가성비 인사 대통령의 차관

도시지역 인구 해마다 늘어...199083.8%202291.9%

대통령 "이권 카르텔 보조금 폐지해 수해 복구에 투입"

'그대가 조국' 관객수 조작? '조선' 보도의 오류들

'망언-사과' 줄타기한 극우파 아베, "평화헌법 바꿀 필요 없다고?“

오늘이 제일 싸다"며 영끌하는 사람들 걱정된다

괜찮을까?가계부채 부담-증가 속도 세계 2

'알려졌다' '전해졌다'또 시작된 검찰발 익명보도 패악

매매가 45그들만의 리그시장과 따로 노는 해운대 아파트

엄마부대, 총리 관저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지지 시위

부동산·주식 하락에가구당 순자산 첫 감소

교사 추모 검은 리본과 조화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어또다른 갈등

극단 치닫는 핵 위협, ‘벼랑 끝’ 1994·1997년과 무엇이 다른가

강간 가해자가 갑자기 '위로금' 주며 '강간' 없던 걸로 해달라면?

GPT 시대, 보이지 않은 미세노동착취 당하고 있다

GPT 시대, 일자리 소멸 위기론의 진실은

노동운동가가 전망한 챗GPT 시대 미래의 노동

 

국민의힘 시럽급여논란, 보수신문이 불 지피고 힘 보태

조선일보, 국민의힘 법 발의 당일 실업급여 하한액 낮춰야

매일경제, ‘시럽급여논란 터지자 본질 안보고 말꼬리 잡기두둔

 

정부·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폐지 방안을 논의하면서 시럽급여라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이 일부 실업급여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시럽급여논란, 나아가 정부의 실업급여 개편 논의를 보면 보수신문의 문제제기와 함께 시작됐다. 또 보수신문은 실업급여 논란이 불거지자 국민의힘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7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업급여 개편에 불을 지핀 것은 조선일보·문화일보 등 보수신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526일 사설 <월급보다 더 주는 실업급여, 누가 일하려 하겠나>를 내고 실업급여 수령자의 28%가 재직 때 받은 세후 급여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실업급여가 구직을 견인하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실업급여 하한액과 최저임금 연동을 끊거나,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60% 정도로 낮춰야 한다. 고용 인센티브와 직업 훈련을 강화하는 등 근로 의욕을 높이는 일하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화일보 역시 525일 사설 <월급보다 많아진 실업급여, 전면 재설계 불가피하다>를 통해 퍼주기식 실업급여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한선 인하, 지급 횟수 제한 등 전면적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525일 문화일보 사설.

 

같은 시기 여당은 실업급여 손보기에 나섰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526일 실업급여 하한액 규정을 폐지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정부·여당은 지난 11일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 검토에 나섰다. 박대출 정책위원장의 시럽급여발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12일 실업급여 관련 공청회를 열었는데 박대출 위원장은 일하는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기형적인 현행 실업급여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시럽급여라는 말을 꺼냈다.

 

고용노동부 차관 역시 일하며 얻는 소득보다 실업급여액이 더 높다는 건 성실히 일하는 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노동시장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713일 파이낸셜뉴스 사설.

 

그러자 보수·경제지들은 시럽급여라는 말에 주목하고 관련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주장에 힘을 보탠 것. 파이낸셜뉴스는 13<달콤한 시럽실업급여 개혁 시급하고 절실하다> 사설에서 실업급여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나랏돈을 빼 먹는 주범이 된 것이다. 실업급여가 달콤한 시럽급여가 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올 정도라며 문재인 정부가 2019년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수급 기간과 기준액을 늘린 게 결정적인 이유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14<쉬면서 더 받는 실업급여, 지급 기준 고쳐라> 사설에서 실업급여가 부정 수급자들 사이에서 달콤한 보너스라는 시럽급여로 불릴 정도로 악용되고 있다니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로서는 부아가 치미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시럽급여라는 말은 실업급여를 받는 구직자, 나아가 실업급여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일부 사례를 가지고 전체 제도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업급여 제도는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실직 전 고용 안정성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 및 재취업 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불안정 노동자들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5.8%에 불과하다. 고용보험을 미가입하거나 근로 시간이 짧아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안정 노동자를 위해선 실업급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지급 조건을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20218월 발표한 실업급여 관련 보도자료.

 

또 고용노동부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8월 한국의 실업급여가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많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지만, 독일은 순임금의 60~67%, 프랑스는 기준임금의 57~75%, 일본은 임금일액의 50~80%.

 

이에 한국일보는 물론 조선일보까지 국민의힘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일보는 14<‘시럽급여논란에 노동계·학계 일부 개선은 필요, 약자 혐오 부적절”> 보도에서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으로 받는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많은 일부 역전 현상은 개선할 필요가 있지만, 고용 안전망 확대 없는 실업급여 개편 논의는 섣부르다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714일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같은날 <“시럽급여할 말인가...선동 맞설 무기가 거친 입뿐인 > 기사를 내고 실업급여 보장이 확대되는 과정에 일부 도덕적 해이가 있어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과정에서 시럽급여라는 거친 말이 나오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하는 역풍이 불었다게다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해 실업의 고통을 만든 정치권에서 이런 발언이 나오자 전문가들은 정치인들이 할 말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매일경제 715일 사설.

 

하지만 매일경제는 시럽급여논란을 말꼬리 잡기로 규정했다. 매일경제는 15일 사설 <실업급여 본질 안보고 시럽급여말꼬리 잡기; 見指忘月>에서 당정이 공개석상에서 거친 표현을 쓴 것은 일부 실업급여 중독자의 모럴해저드를 꼬집기 위한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신중치 못한 처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꼬리를 잡아 실업급여의 본질과 문제점을 어물쩍 덮으려는 민주당의 행태는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우대받고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보호받는 공정한 노동시장이 될 수 있도록 야당도 실업급여 대수술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715일 한겨레 사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15일 사설 <‘해외여행·명품 선글라스청년·여성 실직자 조롱한 집권당>에서 실업급여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납부한 고용보험료를 재원으로 삼는다. 이를 마치 정부·여당이 적선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인가라면서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 이들의 표정과 차림새까지 거론하며 갈라치기한 담당자의 인식도 놀랍지만,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이를 옮기는 여당 정책위의장의 수준이 한심스럽다고 했다. 한겨레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면 구직 안전망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서 집권 여당이 산업 현장의 고질적인 일자리 미스매칭, -중소기업 간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할망정, 힘없는 청년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했다.

715일 경향신문 사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실업급여 덜 주려고 시럽급여조롱한 여당 사과하라> 사설에서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많아 노동 의욕이 꺾인다는 인식인데, 도무지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실업급여를 노동자들이 낭비한다는 정부 시각도 잘못됐다. 한국의 실업급여 부정수급자 비율은 코로나19 이전 1%대로 여타 선진국보다 매우 낮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부정수급이 문제라면 그들만 엄벌하면 될 일이지, 그걸 침소봉대해서 실업급여를 깎자고 덤빌 일이 아니다. 지난해 69시간제로 윤석열 정부가 맞은 역풍과 작금의 시럽급여역풍이 닮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자동차·석유·가스‘2년간 34인플레 국면 횡재이익챙긴 기업들

횡재이익(Windfall Profit)이란?

- 시장의 극단적인 변동이나 다른 운 좋은 상황이 맞물려 기업이나 개인이 예상보다 큰 규모로 벌어들인 이익을 말한다. 주로 특정 재화나 서비스가 일시적인 공급 부족을 겪어 가격이 치솟을 경우 발생한다. 시장 변동이 발생하면 특정 산업군에 속하는 기업 전반이 횡재이익을 얻게 되지만 개별 기업 단위로 횡재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영어 표현 ‘Windfall Profit’바람에 떨어진 과실에서 유래했다.

 

코로나19 위기와 글로벌 물가 급등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2년 동안 30조원이 넘는 횡재이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석유·가스나 기타 원자재 등 인플레이션을 주도한 산업군의 이익이 큰 폭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시장 지배력을 가진 대기업이 물가 상승을 틈타 이윤을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횡재이익은 소비자에게 전가되며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기업 탐욕에 따른 물가상승)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포브스 글로벌 2000’에 속한 45곳의 국내 대기업이 2021~2022년 벌어들인 횡재이익은 288억달러(34조원)에 육박했다. 분석 결과 이들 기업은 지난 2년 동안 2017~2020년 대비 30% 이상 높은 이익을 본 것으로 파악됐다. 포브스 글로벌 2000은 포브스지가 매해 발표하는 세계 상위 2000개 글로벌 대기업 목록을 말한다.

 

앞서 지난 6일 국제구호기구 옥스팜과 액션에이드는 포브스 글로벌 2000에 속한 기업 722곳이 지난 2년 간 매년 1조 달러 이상의 횡재이익을 벌었다고 공개한 바 있는데, 같은 기준에 따라 국내 기업만 추려 분석한 결과 이같이 파악됐다. 옥스팜 등은 2017~2020년 연평균 이익의 10%를 초과한 이익을 횡재이익으로 규정했다.

 

연도별로 보면 국내 45개 대기업은 2021년에는 247억달러(28조원), 2022년에는 41억달러(5조원)의 횡재이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2017~2020년 연평균 총 이익은 713억 달러였는데 2021년과 2022년에는 평균 928억달러를 벌어들이며 이익이 30% 이상 급증했다. 이 기간 37개 회사의 이익이 늘었으며 8개 회사는 이익이 감소했다.

2021~2022 국내 주요 대기업의 횡재이익 규모 및 이익증가율. 장혜영 의원실 제공

 

2년 간 가장 많은 횡재이익을 본 기업은 현대자동차였다. 횡재이익 규모는 70억달러(8조원)에 달했다. 이 외 포스코가 45억달러(51000억원), LG화학이 26억달러(3조원), 에스오일(S-OIL) 25억 달러(29000억원) 등 순이었다. 이익 증가율은 에스오일이 독보적이었는데, 2017~2020년 연평균 7000만달러(800억원) 적자를 보다가 지난 2년 간 연평균 124000만달러(140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산업별로 보면 원자재와 내구 소비재, 은행, 금융업 4개 산업의 횡재이익이 전체 68.5%를 차지했다. 이익 증가율로 보면 석유·가스(108%), 내구재(100%) 등 지난해 물가 상승을 주도한 품목 기업이 두드러졌다. 석유·가스를 제외한 원자재(Materials)의 경우 이익은 세 배 가까이(184%)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가진 대기업이 물가 급등기를 기회 삼아 이윤을 챙기면서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시된다. 장혜영 의원은 물가 상승을 견인했던 산업군에 속한 기업의 횡재이익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대기업이 가격을 높게 책정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그리드플레이션의 근거가 될 수 있다시장지배력을 활용해 더 높은 이윤을 벌어들이는 기업을 대상으로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 이창준 기자

 

민간개발 저울질한 발도 못 나간 공공개발

202125일 국토교통부, 서울시, 용산구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다. 서울역 앞 동자동 일대 쪽방촌은 지난 수십 년간 사업성의 부족으로 재개발이 진행되지 못했다. 국토부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재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공공주택특별법은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구역에 공공임대 35% 이상, 공공분양 25% 이하 등으로 공공주택을 절반 이상 짓도록 규정한다. 국토부는 쪽방 주민의 재정착을 위해 전체 2410호의 입주물량 중 1250호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짓기로 결정했다. ‘2020년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자동 쪽방촌에는 1083명의 세입자가 거주한다. 숫자상으로 쪽방촌 주민 전원이 입주할 수 있는 물량이다.

 

정부는 재개발로 세입자가 쫓겨나지 않고 재정착할 수 있도록 ()이주, ()순환대책도 내놨다. 임대주택이 들어설 지역의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공공주택을 건설해 기존 거주자의 재정착이 완료된 후에 나머지 부지를 정비해 민간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철거되는 지역에 거주 중인 쪽방 주민을 위한 임시거주지는 사업지구 내 게스트하우스나 인근 공원에 모듈러주택 등을 활용해 조성하기로 했다. 쪽방 주민들이 입주할 임대주택은 5.4평 규모로 보증금 183만원, 월평균 37000원의 임대료가 책정됐다. 쪽방촌 주민의 자활, 상담, 무료급식, 진료 등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국토부는 2021년 공공주택지구 지정 완료, 2023년 임시이주 및 공공주택 단지 착공, 2026년 공공주택 입주, 2030년 민간분양 택지 개발 완료를 목표로 제시했다.

 

국토부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공공임대주택을 한창 짓고 있어야 한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그러나 아직 공공주택지구 지정이라는 첫 단계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던 날을 회상하며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저녁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 뉴스마다 동자동 이야기가 나오더라. 아파트 두 동을 짓고, 주민들 그대로 들어가 살라고 하니 얼마나 좋아라며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삽을 떠야 했는데, 이제까지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고 말했다.

 

쪽방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수급비(기초생활수급급여)에 따라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사회적 문제로 지목돼 왔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방이 16개 있으면, 화장실이 하나다. 거기서 씻고 설거지한다라며 한 평도 안 되는 방이 25만원, 30만원이다. 수급비가 올라가면 방값도 덩달아 올라가는 구조다. 평당 가격을 따져보면 강남의 비싸다는 집들보다 사실 더 비싼 셈이다라고 말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선이주 선순환구조는 재개발이 되더라도 내쫓기지 않고 동자동에 살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여기 있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면 힘들다. 외톨이가 된다. 임대주택에 산다고 하면 안 좋게 보고 상대해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여기에는 비슷한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니 친구도 만들 수 있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업에 진척이 없자 쪽방 주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김영국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은 지난해 겨울에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57000억원 삭감을 막기 위해 쪽방 주민들이 국회 앞에서 70일 동안 천막을 치고 집회를 했다. 결국은 그 예산을 그대로 깎아버리더라라며 예산이 삭감되는 걸 보고 올해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용산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노량진 자택까지 공공주택사업을 촉구하는 쪽방 주민 주거권 행진을 벌였다.

 

토지·건물주들의 반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지구지정조차 안 되고 표류 중인 이유는 토지·건물주들이 사유재산 침해를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에 반대하는 토지·건물주들은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주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간개발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20213월 주민대책위원회는 창립총회 보도자료에서 “LH가 동자동 토지를 강제수용하여 알짜 부분을 민간개발 택지로 분양할 경우, 그 시세차익만 최소 조 단위일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정부가 민간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이 사업의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민간개발로 진행이 되더라도 쪽방촌 거주민이 소외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 및 대안책을 마련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충분한 기여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위(특위)’도 주민대책위원회에 힘을 실었다. 특위는 민간개발도 용적률과 고도제한을 공공주도 사업수준으로 완화해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11일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공공주택사업 촉진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해 주민대책위원회는 용적률을 최대 700%까지 완화할 수 있는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을 활용하는 민간개발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국토부에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을 활용해 민간개발을 하게 해달라, 쪽방 주민들도 잘 모실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토부가 안을 만들어보라고 제시했고, 업체를 선정해서 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주민대책위원회의 민간개발 전환 요구에 대해 민간개발의 타당성 및 사업성 부족은 이미 입증됐다는 반박이 나온다.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2015년 민간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민간개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고도제한을 5층에서 18층으로 완화하는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됐다. 20203월이 일몰 시점이었는데, 그때까지도 민간에서 사업제안을 못 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공공주택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부동산가격이 급등했고, 정부가 부동산을 잡기 위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나설 때였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한다며 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들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토지·건물주들이 민간개발을 하면 사업성이 나올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개발로 할 수 있다면 그 전에 이미 했어야 한다. 공공주택사업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민간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며 공공개발을 철회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안 되던 사업이 갑자기 술술 풀려 잘 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주민대책위원회의 주장대로 용적률을 높이면 그럴수록 서울 도심에 있는 땅이기 때문에 개발이익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막대한 개발이익에 대한 공공기여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쪽방 주민들에게는 공공주택사업에서 제시한 수준의 입주물량과 저렴한 임대료를 제공할 수 있다면 민간개발이라고 해서 반대할 이유가 있었을까라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축소되는 쪽방 주민 숫자

홈리스행동 등 주거권 운동 단체에서는 주민대책위원회가 민간개발로 전환하고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쪽방촌 주민 숫자를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민대책위원회 측은 지난해 쪽방 현장조사를 했더니 쪽방촌 거주 세대가 700~900가구로 추정됐다. 아마 700세대가 조금 넘는 정도 아닐까 싶다라며 공공주택개발보다 훨씬 줄어든 규모로 민간개발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성도 좋고 여러 가지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방식으로 가게 되면 평수가 임대주택보다 넓기 때문에 집을 여러 세대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이 3개라면 주방과 화장실은 공유로 쓰고 각각 방을 하나씩 쓰는 형태로도 연구를 해봤다라며 지금 민간개발안()을 조정하고 있는데, 이를 다시 국토부에 보내 보완점이 있으면 보완을 해서 조율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쪽방 주민 중에 막노동하는 분들은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조사하는 시점에 문을 두드렸는데 집에 없으면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겠나. 제대로 된 조사가 됐을 리 없고, 또 주민대책위원회가 조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조사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공공주택사업 이후 주민대책위원회가 전략적으로 세입자들을 내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활동가는 최근만 해도 벌써 두 집이 비었다. 이들은 주민설명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건물주들에게 월세 몇 푼 욕심내지 말고 빨리 사람들 내보내라고 이야기한다라며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넘어오면서 쪽방 주민이 200명 정도 줄었다. 한 해 돌아가시는 인원은 30명 정도이며, 새로 또 유입되기도 해서 매해 비슷한 수준으로 주민 수가 유지된다. 200명이 줄었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내보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는 숫자다라고 말했다. 민간주택으로 전환돼 사업계획을 변경할 경우, 임대주택 물량을 줄이고 세입자들에 대한 개별보상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을 내보낸다는 주장이다.

20213월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건물 외벽에 공공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현재 민간개발이 진행 중인 남대문 인근 양동 쪽방촌의 경우도 재개발을 앞두고 강제퇴거가 이어졌다. 주민 중에서는 재개발 소식조차 전해 듣지 못한 채 이주에 필요한 적정 금액의 보상도 받지 못한 사례가 있어 논란이 됐다. 박종만 양동쪽방주민위원장은 “500명 정도의 쪽방 주민이 있었는데, 민간개발을 앞두고 세입자들을 미리 내보내라고 하더라. 지금은 150세대 정도가 남았다. 그때 쫓겨난 분들은 동자동 창신동 돈의동 쪽방촌으로 이사하거나 서울역 뒤 서부역 쪽에서 텐트를 치고 살고 있다.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후 쪽방 주민들과 주거권 단체는 영구임대주택 건설을 요구했고, 182세대의 영구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활동가는 공공주택사업이 진행될 거라고 본다면 건물주들이 계속해서 세입자를 받겠지만, 민간개발을 전망하는 건물주라면 세입자를 안 받을 것이다라며 거기다가 장기전세주택을 공유주택처럼 만들겠다는 검토안은 사실상 시설에 들여보내겠다는 발상과 같다. 아주 폭력적인 시각으로 쪽방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대책위원회가 주장하는 민간개발로의 전환은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는 걸까. 동자동 쪽방촌 일대 토지·건물주들 중에는 공공주택사업에 찬성하는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택 주민대책위원회(공공주택 주민대책위)’도 있다. 공공주택주민대책위의 의견은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주민대책위와 또 다르다. 조재형 공공주택주민대책위 총괄본부장은 국토부나 서울시에서도 공공개발이 더 타당성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 공공이냐 민간이냐로 흔들릴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라며 토지주 입장에서 공공개발이 더 실익이 있다. 도시계획 엔지니어링 회사, 감정평가사, 시공사 등과 시뮬레이션을 해봤을 때 민간보다 공공개발의 수지가 더 좋게 나왔다라고 말했다.

 

국토부의 저울질

사업의 주체인 국토부는 민간개발 전환 논란에 대해 서울역 쪽방촌은 공공주택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 등이 다른 방식의 개발안을 제출했고, 서울시와 용산구 등과 함께 해당 개발안이 공공개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인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반발하는 건물주들을 달래기 위해 소유주들에게 현물보상(분양권)을 할 수 있게 특례 조항을 신설한 공공주택특별법개정안을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 중이다. 해당 법안은 국토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한편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의 승인권자인 서울시는 민간개발안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는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해당 지역이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의 조건에 부합하는지 검토해보지 않았다. 국토부가 공공주택사업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국토부가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서울시가 따로 추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 해명, 특별법 개정 등은 공공주택사업을 가리키고 있지만, 정작 공공주택사업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민간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상황을 저울질하면서 사업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현 활동가는 국토부와 서울시에서 주민대책위원회의 민간개발 요구를 계속해서 수용하고 있다. 민간개발안은 세입자 보장방안이 약하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주민대책위원회에 수정해서 제출하라고 하기 때문에 주민대책위원회 측에서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이다라며 이렇게 되면 결국은 시간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세입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리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저울질에서 쪽방촌 주민들은 배제되고 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글항아리)에서 지구지정이 하염없이 미뤄지는 동안 사업 시행자와의 소통은 가용할 자원과 능력을 확보한 소유주 집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이 과정에서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는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유야무야 시간만 끌면서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점점 더 지쳐가고 있다. 백광헌 부위원장은 사업이 지연되면서 국토부가 있는 세종시에도 가고,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면담을 했다. 그때만 해도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실 많이 지친 상태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NYT “한국, 2050년 세계 두번째 늙은 국가’”

2050년 한국, 세계서 고령화된 국가 2위 예상

생산가능인구 3600만명20502400만명

노인 수가 생산가능인구와 거의 비슷해질 것

동아시아서 65세 이상 인구 40% 차지할 듯

전문가 연금·이민 정책 재고해 변화 대비해야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열린 방한용품세트 나눔 행사에서 어르신들이 방한용품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한국이 2050년에 늙은 국가’ 2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16(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유엔의 세계 인구 추계를 인용해 2050년 한국이 홍콩을 이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령화 정도는 생산가능인구(working-age·15~64) 대비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로 추산했다. 한국은 2050년 생산가능인구 4명당 65세 이상 노인 수가 3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 이어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대만, 그리스, 싱가포르, 슬로베니아, 태국, 독일, 중국,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순으로 늙은 국가상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NYT나이 든 국가의 대부분이 아시아와 유럽에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2050년 노인 수, 생산가능인구와 비슷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올해 3600만명에서 20502400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은 950만명에서 1800만명으로 급증하고, 젊은이(15세 미만)580만명에서 380만명으로 줄어들 곳으로 전망된다. NYT한국은 2050년 노인 수가 생산가능인구와 거의 비슷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가장 고령화된 국가인 일본은 올해 기준 생산가능인구 2명당 65세 이상 노인 수가 1명 이상이다. 일본의 노인 수는 올해 3700만명에서 20503900만명으로 증가하고, 생산가능인구는 7200만명에서 5300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인도에 최대 인구 대국 자리를 넘긴 중국은 2050년까지 생산가능인구가 2억명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NYT일본, 한국,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지만, 중국은 미국 소득 수준의 20%에서 노동 인구가 정점에 도달했다며 일부 아시아 국가는 부자가 되기 전에 늙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50년까지 동아시아와 유럽 일부 지역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거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며 엄청난 수의 은퇴자들이 감소하는 생산가능인구의 부양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시아 국가, 고령화 속도 빨라

세계은행은 고령화 속도가 유독 빠른 아시아 국가들이 더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에서 100년 이상, 미국에서 60년 이상 걸린 인구 구조 변화가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는 20년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부유한 국가들이 노동 인구 감소에 대비하지 못하면 지금의 복지와 경제력을 유지하지 못해 쇠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부유한 국가들이 연금·이민 정책 등을 재고해 인구 구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상당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난 3월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났다. 주요 노조의 파업이 이어지며 프랑스철도공사는 테제베(TGV) 5대 중 3, 지역간고속열차(TER) 2대 중 1대가 운영을 중단했다. 파리교통공사는 지하철 일부 노선 운행을 축소했고, 파리 오를리 등 지방 공항은 항공편 20%를 줄이기도 했다. 아울러 초등학교 교사 30%가 파업에 동참하며 수업이 단축됐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민 규제를 주장하는 우파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이 연금·이민 정책 변경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 시민이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설치된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반면 가난한 나라 중 생산가능인구가 증가하는 국가는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높아지고 부양 부담이 적어지면서 경제성장 가능성이 커지는 인구배당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NYT는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도 경제 성장의 약 3분의 1을 이러한 생산가능인구 증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인구배당효과 역시 정책적인 지원이 없다면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일자리가 없는데 생산가능인구만 많아지면 성장이 아닌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며 청년들이 직업이나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하면 범죄집단이나 무장단체에 의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신문 윤예림 인턴기자·신진호 기자

 

 

카르텔 향한 어퍼컷, 전 부처의 검찰화?

자칭 반카르텔 정부가 탄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각 부처에다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책과 정치의 자리를 감사와 수사로 채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새 이름을 얻었다. 73일 윤석열 대통령은 차관 임명식에서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라고 말했다. 문민정부(1993~1998년 김영삼 대통령), 국민의 정부(1998~2003년 김대중 대통령), 참여정부(2003~2008년 노무현 대통령)는 지향하는 바를 담았다. 이후부터 각 정부명은 대통령 이름에서 따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행정수반으로서 이끄는 정부의 성격을 카르텔에 반대한다는 뜻을 담아 소개했다. 집권 2년 차 사실상 첫 개각을 하며 꺼내든 단어다.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차관들에게 헌법 정신을 무너뜨리는 이권 카르텔과 가차없이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사정 기능 강화를 주문하는 말이다. 이 자리에 주로 사정 역할을 맡아왔던 감사원·검찰·경찰·국세청·국가정보원 인사는 없었다.

 

공직사회에 전하는 의미는 명확하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조직이든 기업 조직이든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라며 산하단체와 공직자들의 업무 능력 평가를 늘 정확히 해달라고 신임 차관들에게 당부했다라고 밝혔다. 628일 대통령실 출신 차관 내정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윤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조금 버티다 보면 (정부가) 바뀌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정부가 아닌 국회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카르텔 혁파라는 국정 기조를 제시하며,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임을 천명했다.

 

이러한 지시를 맞닥뜨린 공직사회가 첫 번째로 부딪힌 문제는 무엇이 카르텔이냐는 것이다. 미션 수행을 위해서는 대상 파악이 먼저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카르텔은 경제용어다.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해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라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업무가 떠오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전 부처에 관련 지시를 내렸다. 그렇기에 카르텔의 의미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행정부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의 말과 글은 고위직부터 말단까지 모든 공무원의 준거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사이트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문을 보자. 2022510일 취임부터 202375일 현재까지 모두 연설 247건이 올라와 있다. 1.7일에 한 번씩 공식 발언을 남겼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생각과 관심사를 알 수 있는 사료다. 취임사부터 국무회의 모두발언, 해외 순방 당시 연설, 그리고 유소년 야구대회 격려사 등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다양한 분야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담겼다.

 

전체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문 247건 중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나온 연설문은 6건이었다. 집권 초 국정 어젠다를 가장 세게 밀고나가는 2022년 내내 윤석열 대통령 연설문에서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나온 적은 딱 한 번이었다. 지난해 621일 국무회의에서다. 그는 이권 카르텔, 부당한 지대추구의 폐습을 단호하게 없애는 것이 바로 규제 혁신이고 우리 경제를 키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언급하며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카르텔뜻은?

게다가 검사 윤석열에서 정치인 윤석열로 변신을 공식화한 2021629정치 참여 선언문에 처음 등장했던 카르텔의 용례와는 다소 달랐다.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하며 카르텔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절실함으로 나섰다. 거대 의석과 이권 카르텔의 호위를 받고 있는 이 정권은 막강하다.”

 

그러고는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연설에서 더 이상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20237월 현재 윤석열 정부를 대표하는 말로 자리 잡은 양상과는 대조되는 모양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검색 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2021629(윤석열 정치 참여 선언)부터 75일 현재까지 카르텔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의 연관 분석어는 1위가 윤석열 대통령, 2위가 사교육 업체, 3위가 국정 운영 방향이다(아래 그림참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검색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뉴스(2021629~202375)의 연관 키워드를 분석했다. 1위는 윤석열 대통령, 2위는 사교육 업체, 3위는 국정 운영 방향이 차지했다.

2023년 들어서는 지금까지(75일 기준) 다섯 번 연설문에서 9차례 언급됐다. 227일 연세대 학위수여식에서 윤 대통령은 축사를 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는 혁신을 강조하며 기득권 카르텔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3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축사에서는, 신년사에서 언급한 3대 개혁을 카르텔과 연결했다.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은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청년 세대를 위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516일 국무회의에서는 노동조합(노조)을 직격했다. “고용세습 등 불법적인 단체협약은 시정 조치하고, 세습 기득권 철폐를 위한 공정채용법 개정안을 낼 것이다. 개혁은 언제나 이권 카르텔의 저항에 직면하지만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이어 613일 국무회의에서도 부정과 부패의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부수어야 한다라면서 시민단체를 겨냥했다.

 

74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서는 한 연설 안에서 카르텔을 세 번이나 언급했다. “특정 산업의 독과점 구조, 정부 보조금 나눠 먹기 등 이권 카르텔의 부당이득을 우리 예산에서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직접 특정 분야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실은 금융·통신 산업의 과점 체계, 과학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 R&D 나눠 먹기를 말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사업을 겨눴다는 해석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연설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교육에 대한 카르텔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616일 윤 대통령이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이란 말인가'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소위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에 대해 언급하며 한 말이라고 한다. ‘한편이라는 말에 대통령실은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첨언해서 공개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가리키는 카르텔이 뭔지 여전히 뿌옇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야당, 시민단체, 노조를 넘어 사교육 시장까지 카르텔로 지목되면서 카르텔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카르텔 인플레이션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공방이 뒤따른다. 법조 카르텔, 검찰 카르텔, 처가 카르텔 등은 왜 그냥 두느냐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시장의 이권 카르텔을 문제 삼자, 국세청과 교육부가 조사에 나섰다. 시사IN 박미소

 

이번 지시가 공직사회에는 어떻게 다가갈까. 전직 고위공무원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공무원 입장에선 명확해진 게 있다.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왜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했을까? 정권이 바뀌면 수사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솔직히 윤석열 정부가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 상이 없지 않나. 하라고 안 하면, 안 하는 게 공무원이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해졌다. 각 부처들에게 검찰 역할을 하라는 것 아닌가. 각종 산하기관 등을 점검해서 성과를 내면 된다. 부정수급, 담합 등을 자체 감사로 잡아내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전 부처의 검찰화가 가속화되리라는 전망이다.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우려를 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대 개혁을 꺼내들었을 때, 인기도 없고 잘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관련 부서인 교육부(교육개혁)에도, 국민연금(연금개혁)에도 검사 출신이 가 있다.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처단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퍼컷 날리듯이 카르텔을 때려잡겠다는 심산이다. 검사 마인드로 정부 부처를 장악하겠다는 건데, 일시적 효과는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일이 되게 하는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부정부패 때문만은 아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각종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되게 하는 게 정책이다.”

 

검사 마인드로 부처 장악하겠다는 뜻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이와 같은 검찰주의적 통치의 모습을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지난 323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대선 1, 검찰공화국을 말하다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검찰 권력은 기본적으로 모든 정책과 행정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일소하는 방향으로 사고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부정수급의 가능성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 복지정책 등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노동개혁이나 교육개혁과 같은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정책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부정한 사례에 대한 수사와 기소, 이를 적극 홍보하는 방식이 재현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정 전반에서 소극적 행태가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카르텔' 남용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74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서 이렇게 비판했다. “대통령이 최근 카르텔이라는 말에 꽂혀서 막 오용 남용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경찰 검찰 국세청 온갖 동원해서 5년 내내 적폐 청산하느라고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대통령이 기여를 못하는 걸 보고 굉장히 답답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하고 윤석열 정부의 카르텔 청산하고 비슷해지는 것 같다.”

 

상대를 청산·혁파 대상으로 내몬다는 점에서 적폐카르텔이 닮았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가 정책과 정치의 자리를 감사와 수사로 채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사인 김은지 기자

 

다목적 가성비 인사 대통령의 차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개각을 단행했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국정 전면에 배치됐다. 부처들이 사실상 대통령 직할 체제로 운영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개각이 단행됐다. 장차관급 인사 15명이 교체됐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명했고,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에 김홍일 전 부산고검장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에 김채환 전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를 임명했다. 나머지 12명은 차관이다. 19개 정부 부처 중 11개 부처 차관이 새로 임명됐다.

 

흔히 개각이라고 하면 대규모 국무위원(장관) 교체가 먼저 떠오르지만, 바뀐 국무위원은 통일부 장관 한 명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실도, 정치권도 이번 인사가 개각이라는 점에는 이견을 내지 않는다. 이번 인사를 전후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낸 메시지를 종합하면 충분히 개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73일 신임 차관급 인사 13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통상 차관급은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받지만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번 인사의 핵심은 차관 교체다. 특히 교체된 차관 12명 가운데 5명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윤석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대통령실 비서관들이다. 김오진 관리비서관과 백원국 국토교통비서관은 각각 국토교통부(국토부) 1·2차관으로, 박성훈 국정기획비서관은 해양수산부(해수부) 차관, 임상준 국정과제비서관은 환경부 차관, 조성경 과학기술비서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새로 임명된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들은 인사 발표 전 내정자 신분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628), 간담회(629)를 연달아 가졌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공직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73일에는 신임 장차관급 인사들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을 제외하면 이날 임명장을 받은 인사는 모두 차관급(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포함)이다.

 

통상 차관급은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받는다.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이 직접 임명장을 수여하고 오찬까지 함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새로운 차관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대통령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인사 발표 전에 만찬(628)과 간담회(629), 임명장 수여(73) 일정 및 이 자리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모두 공개한 사실을 두고, 이번에 임명된 차관들이 대통령의 차관임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책임 장관 대신 실세 차관투하

대통령실 안팎에선 이번 인사를 무게추가 용산(대통령실)에 쏠린 다목적 가성비 인사라고 평가한다. 2024년 총선을 고려하면 대통령실로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입혀 선명한 성과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 비서관들을 정부 부처에 내려보내 국정 장악력을 극대화한 뒤 속도감 있게 국정과제를 달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들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고, 정부 부처 내에는 대통령 의중과 국정 철학이 빠르게 전파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상 대통령의 차관을 통한 대통령실 직할 체제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차관으로 옮긴 부처에는 굵직한 국정 현안들이 걸려 있다. 해수부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환경부는 4대강, 태양광 사업과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소관 부처다. 국토부는 부동산 문제, 전세 사기 현안과 화물연대, 건설노조 대처 등의 이슈를 안고 있다. 과기부는 윤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한 우주·과학기술, 에너지 등의 연구개발 등 숙원 사업과 함께 환경부·해수부와 협조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과학적 대응을 다뤄야 한다. 현안 모두 정치적 쟁점과 얽혀 있고, 민생과도 밀접하게 연결됐다.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관급 인선과 달리 차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정부·여당 처지에선 가성비높은 인사다. 청문회가 열리면 대통령실은 물론 후보자도 예상치 못한 각종 의혹과 논란 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이 경우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뺏길 가능성이 있다. 장관급 인선을 최소화하고 차관 배치로 우회하면,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올해 하반기를 청문회 방어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대통령실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차관으로 발탁된 비서관 대부분은 총선 출마가 거론되기도 했다. 선거 출마 명분을 위한 영전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통령의 차관공식화가 정부 부처들에 전하는 경고 메시지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 코드에 맞춘 각 부처의 변화 속도가 더디다고 판단한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 부처들이 부진한 성과를 낸 것은 지금까지 한 지붕 두 가족형태였기 때문이다. 일부 정부 부처들이 전 정부 사람, 현 정부 사람으로 나뉘어 내부 알력을 벌이는가 하면, 국정 기조에 발맞추지 않고 복지부동하기도 했다. 공직사회 분위기 자체를 바꾸고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겠다는 게 이번 인사의 또 다른 취지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차관 중심 인사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 장관제약속이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장관에게 전권을 부여하되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책임 장관제를 강조해왔다. 장관은 그대로 두고 차관만 바꾼 만큼 결과에 책임질 사람은 누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각 부처에서 장관의 영() 자체가 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가 안팎의 비판도 있다. 공무원들이 책임 장관의 말보다 실세 차관 뒤에 있는 대통령실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전문성 지적도 나온다. 차관은 부처의 정책 조율과 조직관리 등을 총괄한다. 그 역할이 크기에 업무 전문성과 함께 부처 안팎 사정을 잘 아는 내부 출신이 주로 맡아왔다. 그러나 대통령실에서 차관으로 옮긴 비서관 대부분은 관련 업무 경험이 없다. 국토부에서 주택 및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 등을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된 김오진 1차관은 정치권 출신이다. 국회 보좌관을 거쳐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상근부대변인, 이명박 정부 청와대 총무1비서관 등을 지냈다. 박성훈 해수부 차관도 해양수산 업무와 접점이 없다. 행정고시 37회로 기획예산처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재부 기획조정과 세제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을 거쳤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국무총리실에서만 30년 가까이 근무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환경 관련 경력은 없다. 국정 장악력에 치중한 나머지 업무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 차관 인사 발표 한 달 전부터 인사 대상 부처와 명단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막판까지 명단 교체 작업이 이뤄진 정황이 있고 이에 따른 국제적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통계청장이었던 한훈 신임 농림부 차관은 인사 발표 전날(628), 아시아 국가 통계청장 중 유일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정책위원회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의장단 위원에 선정됐다. 의장단 위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출된 개인이 통계청장에 재임하고 있어야 하지만, 차관 임명으로 통계청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선출 하루 만에 국제기구 의장단에서 사퇴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새 청장이 부임하면 다시 의장단 선거에 나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 밖에 과기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전임 차관이 해외 출장 중인 상태에서 명단 교체를 통보받았다.

 

관가에 불어닥칠 칼바람

신임 차관이 배치된 부처를 시작으로 관가 전체에 대규모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차관급 이하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 사실상 수시 인사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국정과제 이행 의지나 성과가 부진할 경우 아무 때나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취지다. 수시 인사는 고위직에 대한 업무평가 강화를 바탕으로 하기로 했다. 평가 강화 역할은 신임 차관들이 맡는다. 윤 대통령은 앞서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업무능력 평가를 정확히 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현 정부 들어 사실상 민정수석실 역할을 하고 있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각 부처 차관들이 보낸 업무평가를 참고하게 된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대통령실의 부처 장악력도 강해지리라 관측된다.

 

다만 윤석열 정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과거 민정수석실과 달리 사정 기능이 약화됐다. 이 때문에 관가에서는 감사원발 칼바람을 우려한다. 최근 감사원과 기재부가 감사원 직원 50명 이상 증원을 추진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이후 7년 만이다. 감사원 인력 증원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이권 카르텔문제와 정권 교체 이후에도 복지부동한 부처를 지적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의 공개 지적 및 고위급 인사 단행에 이어 감찰로 행정부 압박과 장악력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실제 증원되는 감사관들은 공직사회 부조리, 세금과 보조금 부정 수급·사용 등 공직사회 전반을 집중 감사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6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효과 분석 없이 추진된 예산, 돈을 썼는데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 왜 썼는지 모르는 그런 예산들은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재점검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발언 직후 감사원 재정경제2과는 국가연구개발사업 과제선정 및 관리실태감사에 착수했다. 과기부와 산하기관 등 10여 곳이 감사 대상에 올랐다. 오는 10월까지 감사를 받는다. 과기부는 이번 인사로 차관도 교체됐다.

시사인 문상현 기자

굿모닝충청 서라백] 유래없는 집중호우가 한반도 중부지역을 할퀴었다. 자다가 파묻히고, 운전하다 휩쓸리고,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일상을 이어가던 지극히 평범한 국민들이 또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태원 골목에서 황망하게 떠난 젊은이들 또한 그랬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야 했을 대통령은 어쩐 일인지 스케줄을 늘렸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까지 날아가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고 다녔다.

 

동북아 국가의 대통령이 난데없이 나토의 바람잡이가 되어 오늘도 열심히 '러시아 타도'를 외쳤다. 우크라에 대한 지극적성으로 "생즉사 사즉생"이라는 수사까지 동원했다. 왜적을 물리치며 다졌던 마음가짐을 엉뚱한 곳에서 써먹고 있으니 이순신 장군이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날 일이다. 강제징용 3자배상을 결정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허용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말인지 귀가 의심스럽다.

 

도중 들린 리투아니아에서 우리 아름다운 영부인께서는 '명품 쇼핑' 논란을 일으켰다. 살리라는 국민은 안 살리고 자신의 스타일 살리느라 잠시 정신을 놓은 모양이다. 일국의 영부인이 많고 많은 거리 중에 하필이면 명품거리를 걷다가 '호객'에 휩쓸려 가게에 빨려들어가다니, 그것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아니야, 아닐꺼야, 우리 고매하신 영부인께서는 노심초사 오로지 국민 걱정일 뿐 패션 따윈 신경 쓸 겨를 없어. 땅이라면 몰라도(그리고 주식도).

 

곳곳에서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데 대통령은 없었다. 재난 대책을 총괄해야 하는 부처 수장들은 하나마나 한 지시와 당부로만 일관할 뿐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 이태원 참사 때 탄핵까지 몰렸던 이상민 행정부 장관은 놀랍게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불음주'로도 부족해 '기꺼이 친일파'가 된 김영환 충북지사도, 그날 터진 나라의 대소사를 아침에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는 한덕수 총리도, 죄다 어흠 어흠 거드름만 피고 있다.

 

할 거 다 하고 귀국한 대통령은 이제 민방위복을 입고 관료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뽀록' 나면 안 되니까 이번엔 백지가 아닌 제대로 인쇄된 종이를 앞에 펼쳐놔야 한다. 사건은 터지게 돼 있고 노래는 반복되니 정해진 매뉴얼만 끄집어 내면 된다. 비오고 눈오고 무너지고 불날 때면 누르게 돼 있는 바로 그 번호 '18', 바로 "인평피해 최소화, 피해수습 총력"라는 노랫말을 읊어댈 것이다. 누군가는 옆에서 박수를 칠 것이고 누군가는 탬버린을 두들길 것이다. 그리고 차디찬 글라스에는 찰랑찰랑 술이 넘친다. 얼씨구 절씨구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돼지는 짖어라 나는 마시리.

 

도시지역 인구 해마다 늘어...199083.8%202291.9%

도시지역 인구비율 추이(그래프=국토교통부 제공)

 

우리나라 국민의 91.9%가 전체 국토 면적의 16.7%에 불과한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국토정보공사가 발표한 '2022년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민등록상 총인구 5144만명 중 91.9%에 해당하는 4729만명이 도시 지역에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도시 지역 인구 비율은 지난 196039.7%를 기록한 이래 197053.7% 198075.1% 199083.8% 200088.3% 200590.1% 201090.9% 201291.0% 201491.7%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특히 지난 202091.78%, 202191.80% 등 수년 간 91.8%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에는 91.94%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기준 도시 지역의 면적은 17792, 우리나라 국토 면적 106232(용도 지역 지정 기준)16.7%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 면적의 16.7%인 도시지역에 인구 91.9%가 몰려 살고 있는 셈이다.

 

도시지역 외에 농림지역이 전체면적의 46.4%(49244)를 차지했다. 관리지역과 자연환경보전지역은 각각 27304(25.7%), 11871(11.2%)로 집계됐다.

 

도시 지역은 세부적으로 주거지역 2753(15.5%) 상업지역 343(1.9%) 공업지역 1253(7.0%) 녹지지역 12581(70.7%) 미지정 지역 862(4.8%)로 나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인구는 전년 5164만명 대비 20만명 감소(0.38%)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108000명 감소(0.2%)했고, 비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92000명 감소(2.1%)했다.

 

작년 건축물 건축, 토지 형질변경·분할, 공작물 설치, 토석채취 등 개발행위 허가는 243605건으로 전년 대비 11.5% 감소했다. 개발행위 면적으로는 20109.9% 감소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토지거래 감소와 건축행위 감소 영향이라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10년간 추이를 살펴보면 개발행위허가 건수는 2013~2016년에 높은 증가율(21.3%)을 보였으나, 2016~2018년 정점(30만건) 이후 코로나19와 부동산 경기(토지거래)의 영향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개발행위허가 건수를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가 65750(26.9%)으로 최다였고, 면적 기준으로는 경상북도가 476.4(23.7%)로 최대를 기록했다.

 

경기도에서도 특히 화성시 12813(32.8), 양평군 6744(7.9), 강화군 6141(5.6) 순으로 건수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연합뉴스

 

 

대통령 "이권 카르텔 보조금 폐지해 수해 복구에 투입"

"국민 안전 비상상황모든 인적자원 총동원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18"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민 혈세는 재난으로 인한 국민 눈물을 닦아드리는 데에 적극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서도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의 정치 보조금을 전부 삭감하고, 농작물 피해 농가와 산 붕괴 마을 100% 보전에 투입하라"고 주문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데에 돈 쓰려고 긴축재정 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정부는 모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구조와 복구 작업, 그리고 피해자 지원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 인력, 재난 관련 재원, 정부의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거듭 "국민의 안전이 경각에 놓여있는 비상 상황"이라며 "자치단체, 경찰, 소방, 산림청 기관장들은 각기관 모든 부서의 인적자원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방문했던 경북 예천 산사태 현장을 언급하며 "그동안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산사태였다. 저 역시 이런 산의 붕괴는 처음 봤다"면서 "재난관리 체계와 대응 방식을 근본적으로 확 바꿔야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양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전례 없는 이상기후에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천재지변이니 어쩔 수 없다는 이런 인식을 버려야 된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평소에도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범정부 차원에서 협업하고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호우 정보와 밀물·썰물 주기를 연동한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지난해 홍수 때부터 강조해 왔다""정부의 모든 부처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선제적인 안전조치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집중호우로 침수위험이 있는 저지대 출입 통제와 선제적 대피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임경구 기자 | 프레시안

 

 

'그대가 조국' 관객수 조작? '조선' 보도의 오류들

저예산 다큐와 천만 상업영화 야간 매진 비율 단순 비교...티켓수와 관객수 계산 방식 차이, 무시

 

지난 17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영화관 박스오피스 순위 조작 의혹 수사 대상을 최근 5년간 상영된 영화 462편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경찰은 지난 613일 멀티플렉스 3사와 주요 배급사 3곳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 수사가 주목 받는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다수 언론 보도에서 수사 대상에 오른 영화들을 언급하는 가운데 <조선일보> 등 일부는 특정 영화를 짚어서 관객 수 조작 혐의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과연 이 보도는 사실에 근거한 것일까?

 

<조선일보> 710일 온라인판 ''순위 조작 혐의' 조국 영화, 심야·새벽 199차례나 전석 매진' 기사가 대표적이다. 20225월 개봉해 총 33만 명의 관객을 모은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과 올해 531일 개봉한 <범죄도시3>의 심야상영 및 새벽 상영 횟수와 그 매진 비율을 비교했다. 전자가 심야·새벽 상영 회차의 매진 비율이 주간상영보다 월등히 높고, <범죄도시3>와 비교했을 때도 이례적으로 많은 것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자료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제공한 총 상영횟수와 심야상영횟수, 그리고 심야상영의 매진횟수다. <그대가 조국>의 전체 상영 횟수는 1605회고, 이중 심야·새벽 시간 상영 횟수는 총 577회인데 심야·새벽 상영 회차 중 199회가 매진이라 약 34%, 일반 시간 매진된 비율이 약 3.8%로 비정상적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3> 사례를 가져왔다. 지난 76일까지 <범죄도시3> 심야·새벽 상영 횟수는 3471회였고, 단 세 차례만 매진이었다는 내용이다.

 

쟁점1. 저예산 영화와 상업 영화 단순 비교, 맞나

<조선일보>는 지난 710일 온라인판 '‘순위 조작 혐의조국 영화, 심야·새벽 199차례나 전석 매진'이라는 기사를 통해 관객 수 조작 혐의를 지적했다. 조선일보

 

우선 <조선일보>는 해당 자료를 취사 선택해 왜곡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33만 관객을 돌파한 저예산 다큐멘터리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상업영화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특성상 좌석배정과 시간 배정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심야 매진 사례만 가져와서 비교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것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그대가 조국> 등 저예산 영화나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다큐멘터리 등은 "심야·새벽 상영 회차가 상업영화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좌석점유율이나 예매율을 따져서 극장별로 프로그램팀이 시간을 배정하는데, 아무래도 노쇼(No- Show) 비중이 높은 비상업영화는 배급사가 좋은 시간을 달라고 강하게 요구해도 조조나 심야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2023712일 현재까지 <그대가 조국>의 총 상영횟수는 11222회다. 여기에 심야상영이 599회니 전체 상영 중 5.33%의 비중이다. <범죄도시3>은 총 3041회에 심야상영 총 3471회로 1.15% 비중이다. 오히려 <그대가 조국>이 시간 배정만 놓고 보면 5배나 심야상영 횟수 비율이 높기에 상영회차나 시간 배정에 있어서 일종의 피해를 보았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쟁점2. 티켓 판매 수는 실제 관객 수가 아니다

<조선일보><그대가 조국> 심야상영 199회 매진을 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는 국내 극장 전산망 집계 시스템의 몰이해에서 나온 해석이다.

 

박스오피스 공식집계 기준인 영진위 통합전산망 시스템은 발권된 티켓 수를 관객 수로 표기하고 있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박스오피스를 계산하는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한국만 좌석 수로 박스오피스 순위를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모션 티켓이든, 관객의 자발적인 영혼 보내기(극장에 가지 않고 티켓만 구매하는 방식), 모두 관객 수로 계산된다. 따라서 관객 수와 팔린 좌석 수는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대와 조국>과 함께 수사 대상에 오른 <비상선언> <뜨거운 피> 등은 어떨까. 현재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대기업 영화관 및 일부 영화들에 적용한 혐의는 영진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 그러나 실제 좌석 수와 관객 수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관객 수 부풀리기에 고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 영화 관계자는 "좌석 수와 실제 관객 수가 맞아야 한다는 게 경찰 논리인데, 한국 영화 현실에서 사실상 그런 시스템이 없다""경찰의 논리대로라면 극장이나 배급사 직원들이 상영관마다 실제 관객을 일일이 세야 하거나 후불제로 영화를 보거나 해야 하는데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흥행분석전문가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영진위 전산망 데이터 자체에 허수가 낄 수밖에 없어서 회차별로 좌석 수를 집계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면서 "작은 영화들의 경우 영진위에서 배급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티켓 프로모션으로 쓸 수 있게 해놓고 실제 관객 수를 내놓으라는 건 과도한 일이다. 예매율이나 관객 수에 영향을 주려고 해도 큰 상업영화 정도의 돈을 투입해야 가능한 일인데, 독립영화의 경우는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쟁점3. 펀딩 영화의 특수성

특히 <그대가 조국> 경우 일반적인 투자 유치가 아닌 팬덤과 잠정 관객으로부터 약 26억 원의 펀딩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이런 경우 통상 배급사와 제작사는 해당 금액을 관객에게 환원하는 방식으로 대관 혹은 예매권 배포 등의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VIP 시사회, 가족 시사회 등 여러 방식의 대관이 실제로 발생했고, 대관 상영관은 좌석이 모두 차지 않아도, 심지어 관객이 없어도 매진 처리되기도 한다.

 

예매권 배포 또한 실제로 관객이 들지 않더라도 극장과 조율 과정에서 특정 시간대에 몰아서 소진하기도 한다. 영화계 관계자는 "펀딩이라고 해서 배급사에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리워드로 굿즈 상품(Goods)을 주거나 예매권을 제공하는 등 받은 돈은 온전히 영화에 써야 한다""<그대가 조국>이 코로나19 팬데믹 때 개봉해서 관객도 활발하게 들지 않을 때였고, 극장도 실제론 상영 시간의 제한도 있던 때였다. 그래서 극장이든 배급사든 예매권 일부를 소진하기 위해 심야상영을 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 관계자는 "펀딩 금액에 따라 어떤 혜택이 있는지 그 계약 조건을 봐야 한다. 언론 보도대로 199회 매진이 있었기에 관객수 조작인지는 경찰에서 판단할 문제지만, 펀딩 조건에 만약 관객들이 비록 실제로 극장엔 안 가더라도 영화 관람권을 사는 형태에 동의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오마이뉴스 이선필(thebasis3)

 

'망언-사과' 줄타기한 극우파 아베, "평화헌법 바꿀 필요 없다고?"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 망언을 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자들은 선거 때 낙선은커녕 당선돼 으스대곤 한다. 망언이 오히려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는 것이 일본의 정치현실이다. 일찍이 동양통신 주일특파원을 지냈던 언론인 김용범의 글을 보자.

 

[(망언이 그치지 않는) 요인은 먼저 일본의 과거사를 정당화하려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망언을 내뱉는 사람은 그런 세력의 대변자이자 조장자이다. 그들은 망언으로 정치적 득을 보았으면 보았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이는 망언 발설자들이 선거 때마다 고스란히 당선되어 나카타초(永田町)의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는 데서 잘 알 수 있다](김용범, <일본주의자의 꿈> 푸른역사, 1999, 225).

 

망언으로 정치적 입지 다진다

'망언 발설자'들이 소속 정당에서 공천을 못 받는 등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을까. 이원덕(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 교수는 오히려 그 망언을 발판 삼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선거철이 오면 극우집단의 지원을 받아 무난히 당선된다고 풀이한다.

 

[망언에도 불구하고 소속정당에서의 이들의 입지는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우파 원로들의 묵시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게 됨으로써, 정치적인 지위를 보장받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정치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의 득표력이다. 망언의 주인공들이 차기선거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 조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이원덕,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망언'과 일본정계<한국사 시민강좌> 19, 19968).

 

그런 유권자 조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야스쿠니 신사를 성지로 여기는 일본유족회다. 또한 극우 성향이 강한 일부 언론사와 사회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옹호·지지한다. 언론사로는 <산케이신문>과 자매월간지인 <세이론>(正論), 보수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와 자매 월간지 <쇼군>(諸君), 그리고 <하나다>(HANADA), <>(WILL), <사피오>(SAPIO), <보이스>(VOICE) 같은 보수우익 언론사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에게 한국의 '신친일파' 필진들은 대환영이다. 이를테면, 2019년 강의실에서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 궁금하면 해볼래요?'라는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류석춘(전 연세대교수, 사회학)<하나다>(HANADA) 20208월호에 자신의 '위안부' 망언 파문이 일어나게 된 전후사정을 소개했다. '완전독점수기'란 부제 아래 '한국교수의 목숨을 건 호소, 날조된 위안부사건'이란 제목을 단 기고문은 자신의 '위안부' 망언을 변명하면서, 지난날 강제징용이나 공출 등에 대한 한국 쪽 비판이 잘못됐다고 그 특유의 궤변을 되풀이했다. 그런 글을 읽는 일본인들 사이에, 특히 '넷우익'이라 일컬어지는 극우 유튜버들에게 혐한(嫌韓) 감정을 불러일으킬 먹거리를 차려준 모양새다.

대외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든 육상자위대 장병들. 일본은 전쟁범죄에 대한 진정성 담긴 사과와 배상 없이 평화헌법 9조를 사문화시켜 해외 군사개입이 가능한 군사대국화를 꾀해왔다. 위키미디어

 

'21세기 망언제조기' 아소 다로

20089월부터 1년 동안 총리를 지낸 아소 다로(麻生太郎, 1940~)는 일본 정치인 가운데 '21세기 망언제조기'라 일컬어질 만하다. 아소의 부친 아소 타카키치는 일제 강점기 시절 후쿠오카에서 '아소 탄광'을 운영했던 전범기업가다. 강제동원된 1만 명 넘는 조선인들을 '노예노동'으로 착취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아소 다로는 '아소 탄광'의 후신인 '아소 시멘트'의 실소유주다.

 

아소의 주요 경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무대신과 외무대신을 지냈고,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와도 사이가 좋아서 아베 내각에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재무상 겸 부총리 등을 지냈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외손자이고,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가 그의 장인이다. '정계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기에, 능력에 비해 관운이 좋은 편이란 소릴 들었다.

 

아소의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는 한일회담을 앞두고 재일 한국인을 가리켜 '뱃속의 벌레'라는 망언을 했다(본 연재 26 참조).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쿠데타 뒤인 19622월 한일회담이 다시 열리게 되자, 그 무렵 정계은퇴를 앞두고 있던 요시다는 이런 망언을 내뱉었다. "우리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길을 따라 다시 한 번 조선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윤대원, <21세기 한중일 역사전쟁> 서해문집, 2009, 53).

 

아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망언이다. 20179월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져 일본으로 난민이 몰려온다면, 대응방책의 하나로 '사살'을 꼽아 듣는 일본인들조차 놀랐다. 20185월 전 재무성 사무차관의 성희롱 사건이 터지자 "성희롱은 죄가 아니다"라는 망언으로 여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망언제조기'라는 별명답게 망언 목록은 길지만, 되도록 짧게 간추려본다.

 

(20035월 도쿄대학 강연) "창씨개명(創氏改名)은 조선인들이 (일본)성씨를 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한글은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가르친 것이며 의무교육 제도도 일본이 시작했다. 옳은 것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20055월 영국 옥스포드대학 강연) "운 좋게도, 정말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옳고 앞으로도 계속하겠다. 야스쿠니 신사의 군인들을 A급 전범이라고 결정한 것은 일본이 아니다. 미군 점령군이 결정한 것이다."

(2006128) "야스쿠니 신사의 영령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지 '총리 만세'를 외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신사 참배는 총리보다 천황이 하는 것이 최고다"

(20062월 일본 식민지였던 타이완을 언급하면서) "타이완은 일본이 실시한 강제교육 때문에 교육수준과 읽고 쓰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 덕분에 타이완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됐다. 일본은 좋은 일을 했다."

(20075월 독일 포츠담 G8 외무장관회담 무렵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에게)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전승국이 되었을 것이다."

 

아소의 망언을 모아보면, 그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반성하는 역사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국왕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바라는 극우적 사고의 틀 속에 갇혀 있고, '한국과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 덕을 봤다'고 여긴다. 한마디로 아소의 망언들은 이즈음 한국의 신친일파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내거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맥락을 같이한다.

 

아베, 사과-망언 사이를 줄타기

1년 전인 202278일 유세장에서 사제총에 맞아 죽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1954-2022) 전 총리도 위의 아소 다로처럼 '정치적 금수저' 출신이다. 1950년대 후반부에 일본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외할아버지다. 기시는 일제 말기의 도조 히데키 전시내각에서 군수성 차관과 상공대신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이바지했다. 1945년 패전 뒤 '주요전범자'로 감옥에 갇혀 2차 도쿄전범재판을 기다리다가 194812월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풀려난 뒤 외무대신과 총리를 지냈다(본 연재 7 참조). 그런 외할아버지를 존경한다면서 정치판에 뛰어든 아베는 강제동원, '위안부' 성노예,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등에서 한국에 맞서 날을 세웠다.

 

아베는 극우 성향을 지닌 데다 총리 재임기간이 긴만큼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문제성 발언을 남겼다. 두 차례에 걸쳐 9년 동안 일본 총리(1기는 20069-20079, 2기는 20121-20209)를 지낸 아베는 사과와 망언을 되풀이했다.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문제에 대해 사과성 발언을 했다가, 얼마 뒤 "위안부 강제연행과 강압의 증거가 없다"며 뒤집는 망언을 하곤 했다.

 

한국 외무부가 작성한 <2018 일본개황>에 실린 아베의 발언록을 보면 도대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본 연재 27에서 살펴본) '고노 담화''무라야마 담화'를 부인했다가 '계승'한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아베가 사과와 망언 사이를 어떻게 줄타기했는지를 주제별로 들여다보자(외무부 홈페이지 검색란에서 <2018 일본 개황> 치면, 과거사 반성은 247-257, 역사왜곡 망언은 258-283).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관련]

200731일 기자단 질의의 답변: "()이나 관헌이 집에 들어가 강제로 끌고 간 '위안부 사냥'과 같은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 당시의 경제사정 등을 감안한 광의의 강제성은 있을 수 있으며, '고노 담화'의 계승은 이러한 강제성의 정의가 바뀐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한국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아래처럼 달라진다).

2007326일 참의원 예산위 발언: "위안부 피해자들이 쓰라린 경험을 한 데 대해 동정의 마음과 더불어, 그러한 처지에 놓인 것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 지금 제가 총리로서 사죄의 마음을 전하며, '고노 담화'에서 말하고 있는 그대로다."

 

[무라야마 담화 거부와 계승]

2013422-23일 참의원 예산위 발언: "아베 내각으로서 소위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한다는 것은 아니다. '침략'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의가 제대로 내려져 있지 않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문제가 있다."

20131022일 중의원 예산위 발언: "아베 내각으로서 '침략''식민지 지배'를 부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베 내각도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20141215<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위안부 강제연행과 강압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그릇된 이유로 일본의 명예가 훼손되면 이를 시정해야 한다"

2015128일 참의원 본회의 발언: "지금까지 말씀드렸다시피 아베 정권으로서는 '무라야마 담화'로 시작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위안부' 성노예를 둘러싼 아베의 역사인식은 '일본 정부의 자료 안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나타내는 기술은 없었다'는 것이다. 밤에 자고 있는데 일본 군경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와 끌고 가는 따위의 (아베의 용어로는 '좁은 의미의') 강제연행이 없었으니 일본정부엔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위안부 동원에서 일본군이나 관헌의 강제성 개입'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고노 담화'(199384)'무라야마 담화'(1995815)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망언 제조기' 아소 다로와 마찬가지로, 아베는 이런 담화들이 이른바 '자학사관'(自虐史觀)에 빠져 있다고 여긴 극우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민중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야스마루 요시오(전 교토대 교수, 일본사상, 2016년 타계)는 일본 극우세력이 '좁은 의미의 강제'를 들먹이며 과거사를 지우려 하는 교활한 행태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속아서든 강제로든 그 지옥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위안부' 여성들이 끝내 체념하고 상황에 적응해간 것도 강제나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감언, 인신매매, 유괴와 현지에서의 일상적 관리 등은 '강제'가 아니냐"고 되물었다(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 2011, 83. 본 연재 13 참조).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왼쪽)와 외손자인 아소 다로 전 총리(오른쪽). 두 사람의 공통점은 망언 제조기라는 점이다.

 

", 기다리면 한국 쪽에서 접근해 온다고"

아베의 교활함은 한일 위안부 최종 합의(20151228)로 이어지는 협상 과정에서도 엿보인다. 아베는 총리 관저를 드나드는 기자들 가운데 선임기자들이 모이는 '오프더레코드(off-the-record) 친목회'(이른바 '오프콘')에서 술기운 탓일까, 가볍게 입을 놀리며 속내를 드러냈다.

 

", 기다리면 한국 쪽에서 접근해 온다고 (두고 봐라). 종군위안부 문제는 3억 엔이면 해결된다. 그래도 돈의 문제가 아니니까"(2015629일자 일본 주간지 <슈칸겐다이>週刊現代).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합의는 일본이 10억 엔을 한국에 건넴으로써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했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온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했기에 파행으로 끝났다. '위안부' 성노예 졸속합의(201512)로 한일 사이에 갈등의 골은 깊이 패였고, 8년 뒤 강제동원 노예노동의 제3자 변제안(20233)으로 불신의 벽이 더 높아졌다. 이 두 개의 사안은 '외교 참사'라는 비판 속에 지금도 한일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기시다, 녹음기처럼 '계승' 말하는 이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아베와 다를까. 202357일 한일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과거사 문제를 묻자, 그는 "당시 혹독한 환경 아래 다수의 분들께서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얼핏 들으면 사과나 반성의 뜻을 담은 듯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총리로서가 아닌 개인적 의견을 말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나온 기시다 총리의 답변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직접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주어 또는 목적어가 생략돼 누구에게 말을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세종대 독도연구소장)"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는 일본인들도 고생했기 때문에, 일본인을 포함한 발언으로도 생각될 수가 있다"고 비판했다. '교묘한 말투로 (사과의 대상인) 목적어를 애매하게 한 표현'이란 지적이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것은 두 번에 걸쳐 9년 동안 총리를 지낸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입장을 넘어서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또한 여기서 '역대 내각의 입장'이란 '무라야마 담화'(1995)를 가리킨다.

 

지난주 글에서 살펴봤듯이, '무라야마 담화'엔 숨은 노림수가 있다. 총리실이 아니라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이 작성한 '담화'에는 식민지 지배와 피해에 대해 '포괄적인 사과'만 할 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실제적인 배상을 일본 정부가 외면하겠다는 내부 방침이 감춰져 있다. 정상회담이나 8.15 등 특정한 날에 공식석상에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간다는 것이 외무성의 장기 전략이다. 따라서 한국 시민들은 오는 815일 기시다 총리가 상투적인 '계승' 발언을 듣게 될 것이 뻔하다.

 

리영희의 비판, "일본의 망언만 탓할 게 아니다"

비판적인 지식인의 표상이라 할 리영희(1929-2010)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본 연재 24에 살펴봤듯이,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총리는 일본 국회 중의원에서 "일본이 김 양식법을 가르쳤고 의무교육제도를 실시했다"며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미화하는 망언을 했었다. 당시 한양대 신방과 교수로 있던 리영희는 월간지 <세대>에 쓴 글에서 다나카 망언을 비판하면서도, 그런 망언이 나오는 까닭이 무엇인지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것을 열등한 것으로 부정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식민지 통치시대에 우리에게 실시한 교육을 자랑하고, 그것이 한국인에게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방된 순간부터 독립민족으로서 스스로를 되찾는 과정에서 꼭 해야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우리 민족의 존립 이유를 부정한 식민지 교육이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는 해가 될지언정, 결코 이로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실증해 보이는 데 있었을 것이다"(리영희,다나카 망언을 생각한다<세대> 19745월호).

 

이 글은 같은 해 9월 일본 시사월간지 <세카이>(世界)에 실려, 일본인들 사이에 널리 읽혔다. 리영희는 같은 글에서 한국의 교육이 '일본의 식민지 교육'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이렇게 묻는다. "8.15 뒤 한국의 교육이 일본의 식민지 교육에 젖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현실에서, 일본의 식민지 교육이 한국에 유익했다는 다나카의 말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리영희는 일본의 망언만 탓할 게 아니라 '같은 정도의 잘못이 한국인에게도 있다'고 지적했다. 글을 읽다보면, 8.15 뒤 한국이 친일파 숙정 등 일제 잔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위의 글을 쓴지 꼭 20년 뒤 '나가노 망언'이 나오자, 리영희는 또 다른 비판 글을 썼다. 1994년 일본 법무장관 나가노 시게토(永野茂門)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날 일본의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니었고, 난징학살(1937)'날조'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나가노 망언'은 그동안 일본 극우들이 늘 해오던 것이라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비자민 연립내각의 하타 쓰토무(신생당)가 일본 총리에 오른 지 열흘 밖에 안 된 시점에서 터져 나온 망언이었기에 파장이 컸다. 당시 유럽순방 중이었던 하타 총리는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나가노를 만났고, 그가 내민 사표를 수리했다.

 

리영희는 '나가노 망언' 뒤 월간지 <>에 기고한 글에서, 20년 전 '다나카 망언' 때 펼쳤던 주장처럼 한국인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한국()의 항의의 목소리는 이틀을 가지 못하고 분노의 감정은 사흘을 넘지 못한다." 지난 40년간 일본의 망언이 나올 때마다 규탄 목소리를 내다가 금세 수그러들곤 했던 '남한 정부와 개인들의 반응의 역사'로 미뤄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왼쪽)와 외손자인 아베 신조 전 총리(오른쪽). 외할아버지 기시는 군국주의에 봉사했던 전범자였고, 외손자 아베는 극우파로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사실상 폐기했다.

 

"친일 잔재 청산 못한 게 망언의 배경"

리영희는 보다 근본적으로 망언이 그치지 않는 배경을 '친일 잔재 미청산'에 연결시킨다. 그가 20년 전 <세대>에서 폈던 논리와 마찬가지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 통치가 한국(남한)에 유익했다'는 망언이 그치지 않는 까닭은 '과거 식민지 통치에 충성을 했던 부역자 집단'이 통치세력이 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면, 일본 망언자들이 그만큼 한국을 쉽고 만만한 상대로 보기 마련이다(21세기 '신친일파'들이 리영희의 이 지적을 다시 듣는다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다).

 

리영희에 따르면, 일본 망언자들은 공통점을 지녔다. "조선 시민통치를 미화하는 일본인은 예외 없이 반공주의자, 강경 보수주의자, 극우적 국수주의자들이다." 그러면서 '이런 망언들의 최종 노림수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일본의 재무장과 대외 팽창'이라 못 박았다.

 

"나가노의 망발은 단순히 우발적 망언이 아니다. 일본의 '신보수' 정권과 지배세력의 위험한 의도가 노출된 사건이다. 그는 '대일본제국군대'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중국침략전쟁에 참여했었다. 그의 망언이 웅변으로 증명하듯이, 그는 왕년의 '대동아공영권' 복구와 일본군국 같은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우익 주도세력의 하나이다. 이런 인물을 다른 직책도 아닌 '법무대신'에 앉힌 동기부터 앞날의 일본을 두렵게 만든다."(리영희,일본인 망언 규탄 전에 국민 총반성이 필요하다월간 <>, 19946월호).

 

일본은 UN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고, 그런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군사대국이 되려는 염원을 지니고 있다. 리영희에 따르면, 군사대국이 되려면, 군대의 보유와 전쟁권을 부정하고 있는 일본헌법의 핵심인 제9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헌법 개정으로 일본이 전쟁권 행사와 함께 세계 제1의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을 길을 트는 것이 일본 우익의 목표라는 것이다.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망언은 그런 염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일본 극우의 염원은 '평화헌법 9조 폐기'

리영희가 이 글을 쓴지도 30년 가까이 지났다. 그가 걱정한대로, 일본 평화헌법이 개정되진 않았지만, 사실상 핵심인 헌법 9조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됐다. 이를 가리켜 '평화헌법의 개변(改變)'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 과정을 짧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5년 패전 뒤 구 일본제국헌법을 바꿔 만든 평화헌법(194611월 공포, 19475월 시행) 9조는 일본 극우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조항이다. 91항은 '전쟁과 무력에 의한 파괴 또는 무력행사''영구히 포기'하기로 돼있다. 92항은 '··공군과 그 외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교전권 포기(1)와 군대 미보유(2)를 못 박은 제9조는 지난날의 '군국주의 침략국가 일본'에서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여선 안 되는 '평화국가 일본'으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9조를 바꾸길 바라는 일본 극우들에게 한국전쟁(1950)은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1954년 육상·해상·항공 자위대 결성은 일본 재무장의 출발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 '자위대가 헌법 위반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보수우파는 '스스로를 지킬 최소의 무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이른바 '전수(專守) 방위론' 논리로 맞섰다.

 

미국의 강력한 개헌 요구

자위대 결성 배후엔 미국이 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뒤 일본의 재무장을 통해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비용 지출을 덜려는 계산에서였다. 평화헌법을 사실상 무효화시키는 과정에서 미국은 줄곧 일본의 극우들과 이해를 같이 했다. 이를테면, 리처드 아미티지(21세기 초 미국 부시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를 비롯한 미국의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자)들은 '일본 평화헌법 9조는 미일동맹을 가로막는 요소'라며 '개헌론'을 부추겼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벌어졌던 1차 걸프전쟁(1990)을 계기로 1993년 국제분쟁지역에서의 평화유지활동(PKO) 명분으로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PKO협력법'으로 평화헌법 9조는 사실상 사()문서가 됐다. '전수방위론'에다 이름도 그럴듯한 '국제공헌론'이란 명분이 더해졌다.

 

1990년대 후반 일본군의 해외파병 길이 더욱 탄탄하게 닦여졌다. 1996년 미일 양국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미일 신안보공동성명'(1996)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일어나는 사태(이른바 '주변사태')에 자위대가 미군 후방을 지원하는 '신미일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 1997) 이를 법적으로 받쳐주는 '주변사태법'(1999)이 만들어졌다. '유사시'라는 꼬리표가 달리긴 했지만, 해외 군사개입 길이 열렸다.

 

위의 모든 과정이 평화헌법 9조에서 못 박은 '군대 미보유, 교전권 불허' 규정을 어기는 것이다. 일본 극우는 아예 제9조 폐기를 바란다. 아베 총리의 주도 아래 2007년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다. 우경화 흐름 속에 극우파들이 득실대는 일본 정치권은 언제라도 헌법개정안을 놓고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여러 여론조사로는 아직까진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평화헌법 개정에 부정적이다).

 

아베, "개헌할 필요가 없어졌다"

끝으로, 중요 사항을 하나. 일본 극우파들은 굳이 시끄럽게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여긴다. 사실상 제9조가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20147월 국회가 폐회중일 때 아베 내각은 각의(閣議)결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20159월 안보관련법(안보법제)이 제정됐다. 그전까지 내각법제국(한국의 법제처)'현행 헌법상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헌법위반'이라 봤다. 아베는 내각법제국 장관을 바꾸고 법안을 밀어붙였다. 20168월 아베는 한 언론인과 얘기를 나누다 그만 속내를 드러냈다.

 

"큰 소리로 얘기할 순 없지만, 개헌할 필요가 없어졌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미일동맹이 잘 굴러가지 않는다고 미국이 불만을 나타내왔는데, 2015919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보관련법이 제정됨으로써 미국은 말이 없어졌다. 만족한 것이다"(우치다 마사토시,아베 개헌을 독려한 아미티지 리포트<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메디치, 2022, 534).

 

자위대의 해외 군사개입 길을 튼 '집단적 자위권'이 확보된 만큼, 개헌이 아니라 개변(改變)으로도 만족한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전수방위'에 머물던 일본 자위대는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워 유사시 해외 파병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래서 이즈음 일본 극우들은 말한다.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의 망언 발설자들이 서슴없이 목청을 높였던 것도 (글 위에서 아소 다로의 외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가 했던 말처럼)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 따라 다시 한 번 조선 땅에 뿌리를 박는' 날이 온다는 자신감에서였을까. 어느 날 아침, 요란한 군홧발 소리에 잠이 깨 밖을 내다보면, 지난날 군국주의 침략과 전쟁범죄의 기억을 떠올리는 욱일기를 높이 쳐들고 거리를 떼 지어 지나가는 일본군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프레시안

 

오늘이 제일 싸다"며 영끌하는 사람들 걱정된다

코픽스 금리 바닥찍고 계속 상승 중

사라졌던 4%대 예금 상품의 등장

주담대 금리도 상단기준 6%대로

레거시미디어 혹세무민에 넘어가지 말기를

13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한 가운데 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4개월 연속 늘었다. 은행 가계대출 역시 3개월 연속 증가하며 잔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2023.7.13. 연합뉴스

 

코픽스 금리가 계속 상승 중이고, ·대금리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4회 연속 동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통화 긴축의 조짐은 찾기 어려우며, 시장금리는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마당에 영끌을 해 집을 사는 건 위험천만하다.

 

4월에 바닥을 찍고 상승 중인 코픽스 금리

17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6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5(3.56%)보다 0.14%p 높은 3.70%로 집계됐다. 지난 4(3.44%) 기준금리(3.50%) 아래로 추락한 코픽스는 5월 반등한 뒤 6월에도 상승했다. 잔액 기준 코픽스도 3.76%에서 3.80%0.04%p 상승했으며, 신잔액기준 코픽스도 3.14%에서 3.18%0.04%p 상승했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다. 코픽스 금리가 상승하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에 대출금리가 상승할 수밖에 없고, 코픽스 금리가 하락하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에 대출금리를 낮출 여력이 생긴다. 신규 취급액 코픽스와 잔액 기준 코픽스는 정기예금, 정기적금, 상호부금, 주택부금,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채권매도, 표지어음매출, 금융채(후순위채 및 전환사채 제외) 수신상품의 금리 등을 바탕으로 산정된다. 신잔액 코픽스에는 기타 예수금과 차입금, 결제성자금 등이 추가로 고려된다.

주담대 변동금리 기준 코픽스 추이

 

한편 시중 은행들은 18일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에 이날 공개된 코픽스 금리를 반영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주담대 신규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가 4.215.61%에서 4.355.75%, 신규취급액 코픽스 기준 전세자금대출(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 금리도 3.865.26%에서 4.005.40%로 코픽스 상승 폭(0.14%p)만큼 각각 오른다. 또한 신잔액 코픽스 기준 주택담보대출와 전세자금대출 변동금리는 각 4.135.53%, 3.695.09%에서 4.175.57%, 3.735.13%로 오른다.

 

우리은행의 주담대 신규취급액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 역시 4.335.53%에서 4.475.67%0.14%p 인상되고, 신잔액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도 0.04%p(4.355.55%4.395.59%) 높아진다.

 

4%대 예금상품과 6%대 주담대 상품들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다

코픽스 금리의 움직임만 심상치 않은 것이 아니다. 이미 예·대금리는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

은행권 가중평균금리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SC제일, SH수협, BNK부산은행은 연 4%대의 정기예금 상품(만기 12개월)을 판매 중이다. SH수협은행의 '헤이(Hey) 정기예금'은 별도의 우대 조건 없이 모든 고객에게 연 4%의 이자를 지급하며, SC제일은행의 'e-그린세이브예금'(4.2%), BNK부산은행의 '(The)특판정기예금'(4.0%) 등도 정해진 우대 조건을 충족하면 4% 이상의 금리를 주기로 약정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시중은행에서 금리 4%가 넘는 예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이른바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도 예금금리를 올리는 중이다. 14일 기준 5대 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금리는 3.723.90%로 지난달 1(3.473.73%)에 비해 0.2%p 안팎으로 크게 올랐다. 일부 은행이 4%대의 정기예금 상품을 판매 중인데다, 이른바 5대 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금리 상단이 4%에 육박하고 있는 건 예사롭지 않다.

 

코픽스와 예금금리가 오르는데 대출금리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다. 14일 기준 4대 은행의 평균 주담대 금리(신규 코픽스 잔액 기준)4.726.08% 수준이다. 주담대 금리도 예금금리와 마찬가지로 4월에 바닥을 찍은 후 계속 상승 중이다. 그러다보니 상단기준 6%대 주담대 상품이 시장에 출회되고 있다.

 

최근 시장금리가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까닭은 뱅크런에 대응하기 위한 새마을금고의 채권 대량 매도에 따른 채권수익률 상승, 예금자 이탈을 우려한 새마을금고와 저축은행 등의 예금금리상향 및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시중은행들의 예금금리 인상, 미국 등 글로벌 긴축 지속에 대한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영끌러들의 무모해 보이는 돌격

시장금리가 일제히 상승 중인 마당인데 부동산 시장에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영끌러들의 귀환이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의 매입자 연령대별 아파트 매매거래 현황을 살펴보면 올해 1~5월 전국 아파트 거래 신고 건수는 총 163815건으로, 이 가운데 30대 비중은 26.6%(43590)를 차지했다. 이는 2019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1~5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다. 영끌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기 시작한 201923.5%였던 30대의 주택구입 비중은 202022.9%, 202125.2%, 202222.9%을 거쳐 올해 역대 최고치를 찍은 것이다. 심지어 30대는 주택구입시장의 절대강자인 40대를 눌렀다. 매년 1~5월 기준으로 40대 비중은 201928.1%, 202027.4%, 202125.8%, 202224.2%, 올해 25.9%로 확인됐다.

주택 매매가격지수 변동률 추이

 

대한민국 주택시장의 바로미터인 서울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1~5월 서울 아파트 30대 매입 비중은 32.9%(전체 13373건 중 4397)를 기록한 반면, 40대는 27.8%(3716)에 머물렀다. 충격적인 건 5월 서울 아파트 거래 총 3711건 가운데 무려 34.7%1286건을 30대가 매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극에 달했던 202191505건 이후 20개월 만에 최대치로 30대의 매수강도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30대를 포함한 영끌러들은 '지금이 부동산 시장의 바닥이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승리로 막을 내렸으며, 금리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경기는 호전될 것이다'는 확신을 갖고 영끌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주택시장은 2014년부터 시작해 장장 9년에 걸친 대세상승을 마치고 이제 1차 하락을 마쳤을 따름이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Price to Income Ratio) 기준으로 봐도 그렇고 주택구입부담지수로 봐도 특히 서울 등의 주택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산이 높으며 골이 깊다는 말은 언제나 옳다. 또한 여전히 철옹성처럼 버티는 근원인플레이션이 의미하듯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 보이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급락은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의 급락으로 인한 착시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글로벌 긴축이 조기 종료될 것이라는 신호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시장금리는 바닥을 찍고 상승 중이다. 끝으로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무역수지 적자, 임계점을 돌파한 가계부채, 부동산PF등을 위시한 온갖 복병 등을 생각해 보면 경기상승에 대한 확신이 좀체 들지 않는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몇몇 지역의 가격 반등과 레거시 미디어들의 혹세무민에 현혹돼 '오늘이 제일 싸다'며 영끌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으로 근심스럽다. 영끌러들의 판단이 옳았는지 여부는 시간이 알려 줄 것이다.

이태경 편집위원 시민언론민들레

 

괜찮을까?가계부채 부담-증가 속도 세계 2

작년 BIS기준 DSR 13.6%호주 이어 둘째

코로나19 이후 상승 폭은 한국이 가장 높아

소득 증가보다 대출금 원리금 부담 더 늘어

기준금리 인상 멈췄지만 가계부채 증가 전환

금리 재상승 땐 가계부채 상환부담 불안불안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부담 정도와 증가 속도가 전 세계 주요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소득 증가 속도보다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일단 멈췄지만,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해 가계의 빚 부담은 더 커질 공산이 크다.

 

17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가계 부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Debt service ratios)13.6%로 집계됐다. BIS의 조사 대상인 전 세계 주요 17개국 가운데 호주(14.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세계 주요국 DSR

 

DSR은 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로, DSR이 높으면 소득에 비해 빚 상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BIS는 국민계정을 활용해 산출한 17개국의 DSR을 분기별로 발표한다.

 

호주와 한국에 이어 캐나다(13.3%)와 네덜란드(13.1%), 노르웨이(12.8%), 덴마크(12.6%), 스웨덴(12.2%) 등도 지난해 기준 DSR10%가 넘었다. 영국(8.5%)과 미국(7.6%), 일본(7.5%), 핀란드(7.5%), 벨기에(7.3%), 프랑스(6.5%), 포르투갈(6.2%), 독일(6.0%), 스페인(5.8%), 이탈리아(4.3%) 등은 10%를 밑돌았다.

 

한국은 소득 대비 빚 상환 부담 정도뿐만 아니라 증가 속도도 주요국 중 두 번째로 빨랐다.

한국의 지난해 DSR은 전년인 2021(12.8%)과 비교하면 0.8%p 상승했다. 증가 속도도 호주의 1.2%p(13.514.7%)에 이어 두 번째다.

 

이밖에 1년 전보다 DSR이 상승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 나라는 캐나다 0.7%p(12.613.3%), 미국 0.4%p(7.27.6%), 핀란드 0.3%p(7.27.5%), 일본 0.1%p(7.47.5%), 스웨덴 0.1%p(12.112.2%), 포르투갈 0.1%p(6.16.2%) 등이다.

 

반면 조사 대상 17개국 중 9개국은 지난해 DSR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만 해도 노르웨이(14.5%), 덴마크(14.2%), 네덜란드(13.8%), 호주(13.5%) 등의 DSR이 한국(12.8%) 보다 높았지만, 1년 새 한국의 DSR이 호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보다 높아졌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주요국 DSR

 

특히 DSR 추이 변화를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확대해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DSR 상승 폭(2019년 말 대비)1.4%p로 조사 대상 중 가장 크게 상승했다.

 

BIS가 작성하는 DSR는 분모인 소득에 금융부채 미보유 가계가 포함되고, 분자인 원리금 상환액 산정 시 대출 만기를 일괄 적용(18)하고 있어 실제보다 과소 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 속도, 국제적 비교에는 유용하다.

 

실제 한국은행이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2021년 소득·지출 대상) 기준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평균 DSR을 산출한 결과 29.4%,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토대로 가계대출 차주 기준으로 평균 DSR을 산출한 결과 지난해 4분기 40.6%BIS 기준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한국의 DSR 수준이나 증가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은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금리가 인상되면 전체 가계부채 증가세는 소폭 꺾일 수밖에 없다.

실제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규모는 202112614859억 원에서 지난해 124811억원으로 1.1% 줄어 관련 통계가 제공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예금은행 가계대출 금리(잔액 기준)2021년 연 3.01%에서 지난해 연 4.66%로 크게 상승했다.

 

기존 대출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할 처지에서는 갚아야 할 이자가 늘어나게 돼 부담이 커지게 된 셈이다.

 

더구나 그동안 주춤하던 가계대출이 최근 증가세로 전환, DSR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0623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다가 4월 이후 석 달 연속 증가했고, 특히 6월 가계대출 증가 폭은 20219월 이후 19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은행 가계대출 증감 추이

 

은행권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달 35000억 원 늘어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예금은행 가계대출금리(잔액 기준)는 지난해 1분기 3.25%에서 2분기 3.52%, 3분기 3.98%, 4분기 4.66%에 이어 올해 1분기 5.01%까지 상승했다.

 

신규취급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3분기 4.81%에서 4분기 5.52%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1분기 5.22%로 내려왔지만, 최근 시장금리 상승으로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 등이 다시 오르고 있어 2분기 이후 추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가계대출 규모 자체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데다, 금리까지 상승할 경우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은 더 커지게 돼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가계대출이 다시 급격히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중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이는 거시적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예상 밖으로 급격히 늘어날 경우 금리나 거시건전성 규제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언론 민들레

 

'알려졌다' '전해졌다'또 시작된 검찰발 익명보도 패악

조선·중앙, 출처불명 '이화영 진술' 받아쓰기 보도

언론윤리와 피의사실 공표금지 어긴 악의적 기사

노무현·한명숙·노회찬·윤미향·조국 등 낙인찍기로

정치검찰·언론 합작해 '유죄추정 여론몰이'에 악용

한국 언론의 고질병인 이른바 ‘~알려졌다’ ‘~전해졌다보도가 또 등장했다. 법원에서 아직 확정되지 않고 검찰·경찰이 수사중인 범죄혐의와 관련한 사실을, ‘익명취재원의 말을 받아쓰기 식으로 전달해 기사화하는 것이다. 이른바 ·전 보도.

 

·전 기사의 특징은 검찰 관계자’ ‘법조계 소식통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취재원으로부터 나오는,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지고 전해진것으로 포장해 보도한다는 점이다. 검찰과 언론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합작해 만들어낸 기사로, 언론의 신뢰를 깎아먹는 대표적인 비윤리적 기사, 저질 기사다.

 

조선일보가 19일자 1면에 보도한 ‘(단독)이재명에 쌍방울의 방북비 대납보고-이해찬·연결고리 이화영 검찰에 300만달러 송금진술기사와 같은 날 중앙일보 1면의 이화영 쌍방울 대북 송금, 이재명에 보고검찰진술기사가 이런 기사다.

 

조선일보는 19일자 1면과 12면으로 이어진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사건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최근 검찰에서 쌍방울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기로 한 것을 당시 이 지사에게 사전에 보고했고 이후 대북 송금이 진행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18일 전해졌다.”

 

이 기사에는 취재원이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 12면에 이어진 기사의 중간 쯤에 법조계와 정치권에 대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이라고 썼다. 기사의 핵심인 이화영 전 부지사의 진술을 도대체 누가전해준 것인지 알 수 없다.

 

핵심내용을 제시한 앞부분 8개 문장 서술어 중 6개는 ‘~전해졌다’ ‘~했다는 것이다’ ‘~라는 관측이 나온다로 되어있다. 기자가 사실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누군지 알 수 없는 익명의 취재원으로부터 전해듣고 쓴 문장, 누군가의 관측을 받아쓴 기사다.

 

중앙일보 같은 날 1면 기사도 비슷한 구성이다. 취재원인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수원지검 형사6부는 죄근 조사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에게서 쌍방울 측이 북한에 이재명 대표의 방북비용을 낼 것이라고 이 대표에게 구두로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아냈다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이런 알려졌다, 전해졌다식 보도는 그동안 언론계 안팎에서 심각한 문제로 비판받아왔다. 익명 보도를 자제하고 확인된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취재보도준칙을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기사화한 내용이 피의사실 사전공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형법 126)는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과정에서 알게된 피의 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것으로 헌법상 명시된 피의자의 무죄추정 원칙(헌법 제27)을 위배하는 것이다.

 

수사 내용은 검찰이나 경찰만이 알 수 있으므로 이 내용을 처음 흘린 것은 검찰·경찰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다. 불법적으로 누설된 이런 수사 내용을 언론은 진위를 확인하지도 않고 특종’ ‘단독을 붙여 받아쓰기해 온 것이다.

 

검찰·경찰이 언론에 수사내용을 흘리고, 언론은 받아쓰기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오로지 기소와 유죄판결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당국과 이에 동조하는 정치 언론의 여론몰이.

 

검찰·경찰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피의자의 혐의가 언론에 보도되면 여론은 재판에서 확정되기 전에 이미 피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게 된다. 과거 정치인, 기업인들이 검찰과 언론이 만들어낸 여론몰이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입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한명숙 총리, 노회찬 대표, 조국 장관, 윤미향 의원 등이 검찰-언론이 공조한 ·전 보도여론몰이로 기소도 되기 전에 여론재판에 끌려갔고,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대표의 비극 이후에 언론은 이런 비윤리적 보도를 자제하는 듯했으나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언론과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실상 사문화한 법률이라는 점을 이용해 이런 ·전 기사를 이용한 악의적 보도와 여론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정치검찰의 의도에 넘어가 검찰이 흘려준 사실을 받아쓰기 하는 것인지, 언론과 검찰이 공모해 여론몰이를 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어떤 경우든,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심지어 법을 위반하면서 여론을 조작하는 출처 불명 받아쓰기 보도는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나마 이번 ·전 기사여론몰이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두 군데에 그쳐 다행이다. 이 두 신문은 올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한국인이 가장 믿지 못하는 신문으로 뽑힌 곳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매매가 45그들만의 리그시장과 따로 노는 해운대 아파트

엘시티 249455000만 원

아이파크 24345억에 거래

부산 주택 가격 하락세와 달리

바다 전망 내세워 초고가 거래

부산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현재 소폭의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해운대에서 매매가격이 45억 원이 넘는 초고가 아파트 거래가 잇따라 체결돼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마린시티 전경. 정종회 기자 jjh@

 

부산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소폭 하락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해운대구에서 45억 원을 넘는 초고가 거래가 잇따라 체결됐다. 해운대구 마린시티 해운대아이파크와 엘시티 아파트 거래인데, 부산 전체 주택가격의 상승·하락과 무관하게 고급주택 지역이라는 특성과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전망 때문에 자산가들이 잇달아 지갑을 연 것으로 보인다.

 

19일 국토교통부와 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엘시티 아파트 249(75평형) 30층 매매 거래가 455000만 원에 체결됐다. 엘시티에서는 같은 동 49층이 2022848억 원에 거래된 적이 있어 이번이 최고가 거래는 아니다. 하지만 49층과 30층의 선호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두 거래를 동일하게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거래된 엘시티 75평형은 광안대교와 해운대 바닷가가 파노라마처럼 다 보이는 곳이어서 엘시티를 찾는 사람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해운대에서도 새 아파트를 찾는 사람은 엘시티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엔 마린시티 해운대아이파크 전용 24345층 아파트가 45억 원에 거래됐다. 같은 평수에서는 과거 거래 기록이 없어 이번이 사실상 최고가 거래다. 20219월에는 같은 동의 같은 층 아파트 전세 계약이 17억 원에 체결됐다.

 

이번에 거래된 아파트는 펜트하우스로 층고가 4m에 이른다. 복층은 아니다. 이 아파트에서는 통상 상층 10개 층을 펜트하우스라고 하고, 그중에서도 맨 위 2개 층은 슈퍼펜트라고 부른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해운대아이파크의 경우 작은 평수 거래는 좀 있지만, 대형평수는 거래하려고 내놓은 물건도 거의 없는 데다 잘 거래되지도 않는다이번 거래의 경우 법인이 아닌 개인이 사들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에 거래된 두 아파트 모두 직거래가 아니라 중개업소가 계약을 중개한 중개거래다.

 

앞서 지난 4월엔 해운대아이파크 전용 21946층이 70억 원에 매매된 적이 있다. 하지만 45억 원에 이르는 매매 거래는 해운대구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만한 매매 거래는 해운대구에서도 엘시티나 해운대아이파크, 두산위브더제니스, 경동제이드 등 소수의 아파트에서만 이뤄지는 편이다.

 

이달 들어 부산의 아파트 매매계약 중에서는 지난 1일 수영구 남천동 삼익비치 전용 148아파트가 23억 원에 거래된 것이 최고가 거래다. 삼익비치는 부산의 재건축 아파트 대장주라서 매매 거래 역시 적지 않은 금액에 체결되고 있다. 지난 61~718일 삼익비치에서는 매매 거래 17건이 체결됐는데 이번 거래 금액이 가장 높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자산가들이 투자 가치를 노리기보다는 고급 주거단지에 거주하려는 성향이 강해 고금리 시장 상황과는 반대로 가는 계약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부산에서 신축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상승하지만, 구축 아파트 가격은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다해운대구에서는 일부 대형 고급주택에 바다 전망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져 이러한 흐름과는 관계없이 매매 거래가 체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엄마부대, 총리 관저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지지 시위

보수단체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관저 앞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 계획을 지지하는 시위를 했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20일 보도했다.

엄마부대의 지지시위를 보도한 산케이신문의 홈페이지 © 제공: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씨는 지난 19일 한국인 약 30명과 함께 총리 관저 앞에서 연 집회에서 "방류에 반대하는 세력은 한국 내 일부에 불과하다""처리수에는 문제가 없고 더 위험한 것은 북한의 핵"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국회 의원들이 일본에 와 심한 짓을 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정부 '오염수 방류' 최종 검토보고서 내일 발표..."에 제안도 담겨" / YTN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10명으로 구성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국회의원단'은 지난 10일 기시다 총리 관저 앞에서 방류 반대 집회를 연 바 있다.

 

주옥순 대표는 그동안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활동 등으로 국내외에서 적잖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작년에는 독일 베를린 소녀상 앞에서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원정 시위를 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 위안부 사기 청산 연대 소속 4명이 작년 626일 베를린 소녀상 앞에서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부동산·주식 하락에가구당 순자산 첫 감소

통계청, 2022년 국민대차대조표

52071만원전년비 4.1% 줄어

국민순자산도 증가율 역대 최저

지난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이 하락하면서 가구당 순자산이 사상 처음으로 줄었다. 기업과 정부, 가계 등 경제 주체들이 보유한 전체 순자산도 2.2% 늘어나는 데 그쳐 관련 집계 시작 이래 증가율이 가장 낮았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22년 국민대차대조표(잠정)’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구당 순자산은 52071만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2021년 말(54301만원)보다 4.1% 줄어든 수치다. 국민대차대조표 통계에서는 가계 부문만을 따로 추계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가구당 순자산 추정액은 가계 및 비영리단체전체 순자산(11237조원)을 추계 가구 수로 나눈 값이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전체 순자산은 전년보다 2.8%(3178000억원) 감소했다. 가구당 가계 및 비영리단체 순자산이 감소한 것은 제도 부문별 순자산 편제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자산 종류별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주택자산을 중심으로 비금융자산이 1년 새 3027000억원 감소했고, 금융순자산도 151000억원 줄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경우 가격이 급락한 주거용 건물·주거용 건물 부속토지 비중이 높아 기업과 정부·가계 가운데 유일하게 비금융자산이 감소했다.

 

금융자산은 현금·예금이 1514000억원 증가했으나 주가 하락 등으로 지분증권·투자펀드가 1518000억원 감소하며 줄었다.

 

금융법인과 비금융법인은 지난해 비금융·순금융 자산 모두 증가하며 순자산이 603조원 늘었다. 일반정부는 비금융자산은 늘고 순금융자산은 줄며 134조원의 순자산 순증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가계 및 비영리단체와 금융·비금융 법인, 일반정부의 순자산을 모두 더한 국민순자산은 지난해 말 2380조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2021년 말)보다 4415000억원(2.2%) 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증가율(2.2%)2008년 통계 편제 이후 가장 낮았다.

 

국민순자산 증가폭이 둔화한 데는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비금융자산의 명목보유손익이 감소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보유자산 가치의 변동을 나타내는 명목보유손익은 2021년 전년 대비 1375조원 증가했지만, 2022년에는 오히려 1년 전보다 743000억원 줄어들었다. 2021년 부동산 가격 급등에 이은 2022년 급락이 자산가격을 크게 요동시킨 영향이다. 명목보유손익이 줄어든 것은 1998(-1402000억원) 이후 처음이다.

 

김민수 한은 경제통계국 국민대차대조표(B/S) 팀장은 지난해 거래 요인에 해당하는 자산순취득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주택자산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이 하락하면서 명목보유손익이 큰 폭의 이익에서 손실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부동산 자산(14710조원)1년 전보다 349000억원 감소하면서, 전체 비금융자산에서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177.1%에서 지난해 75.8%로 줄었다. 비금융자산에서 부동산 자산 비중이 줄어든 것은 2012년 이후 11년 만이다.

경향 이호준 기자

 

 

교사 추모 검은 리본과 조화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어또다른 갈등

블라인드 캡처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이초등학교 1학년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교사들이 검은 리본 등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고 있다. 서이초교 앞에는 조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추모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학부모의 항의가 나오면서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20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이게 학부모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카톡 프로필 사진 바꿨는데 바로 (학부모한테) 문자 왔다"며 프로필 사진과 함께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프로필 사진에는 검은색 리본과 함께 ‘23.07.18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생님께 마은 깊이 애도를 표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글쓴이가 같이 올린 문자 메시지에는 "이른 아침에 죄송하다. 다름 아니고 선생님의 프로필 사진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 어린데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큰 영향을 준다는 거 아시죠?"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직 사실관계도 판명 나지 않은 일로 이렇게 추모한다는 걸 드러내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연락드린다""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니 언급 자제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추모하는 마음도 표시하면 안 되냐. (아이들한테) 언급할 생각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해당 글 아래에는 문자를 보낸 학부모라면서 "학부모 회의에 올리겠다"는 댓글도 달렸다.

 

블라이드에 글을 올린 이 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이 카카오톡 등의 프로필 사진을 검은 리본이나 국화 등으로 바꿔 숨진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학교 앞에 조화를 보내지 말아 달라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 평범한 학부모라고 소개한 A 씨는 한 맘카페에 부디 화환과 꽃다발을 멈춰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 씨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고 저 역시 진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저는 학교로부터 어떤 사실도 통보받지 못했고 제 자녀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이 아침 이미 길가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는 기자 양반들, 유명한 유튜버분들 그리고 아름답지만 너무 슬픈 근조 화환을 뚫고 제 아이를 어떻게 등교시켜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A 씨는 "국화꽃을 놓는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라면서 "이 학교는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슬픈 일이 생긴 곳인 동시에 또한 어떤 어린이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저희에게 부디 조금의 시간을 달라. 어른들의 급한 슬픔으로 어린이들의 생활공간을 덮지 말아 달라. 제발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를 가득 덮고 있는 근조 화환의 크기가 우리가 느끼는 슬픔의 크기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근조 화환을 멈춰달라는 것이 애도를 멈추라는 뜻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글을 본 맘카페 회원들 다수는 A 씨가 자기 아이만 생각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들은 "죄송하지만 지금은 아이보다 돌아가신 선생님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라고 보인다", "학교에서 죽지 않으면 억울함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던 23살 사회 초년생 교사분에게 이 정도 예의는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과정 또한 아이들이 배워야 하고 지나가야 하는 문제여서 추모는 필요하다고 본다" 등 댓글을 남겼다.

 

논란이 일자 글쓴이는 해당 글을 삭제했다.

조성진 기자 문화일보

 

 

 

 

극단 치닫는 핵 위협, ‘벼랑 끝’ 1994·1997년과 무엇이 다른가

위기 완화할 안전판은 없어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이 입항해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미와 북이 서로를 향해 내뱉는 핵 위협의 수준이 한반도가 전쟁의 벼랑 끝까지 갔던 1994년과 2017년의 수준을 넘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쪽에서 상대의 핵을 견제하려 핵근육을 자랑하자, 저쪽에서도 핵 위협 수준을 끌어올리며 맞서는 핵 위협의 딜레마에 한반도 전체가 포위된 모습이다.

 

북은 최근 남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미 핵협의그룹(NCG)18일 첫 회의를 앞두고 핵 위협 수위를 높였다. 13일엔 고체연료를 사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8을 쏘아 올렸고, 14·17일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거듭 담화를 공개하며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강하게 견제했다. 실제 미국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18일 부산에 기항하자 이튿날 동해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발을 쏘아 올렸다. 북이 미사일을 쏜 평양 순안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미사일의 비행거리와 똑같은 550였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핵으로 응징하겠다는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북의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강순남 국방상은 20일 담화를 내어 미국이 “40여년 만에 처음 조선반도에 전략핵무기를 전개하는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 핵 위협을 감행했다며 이는 우리 국가 핵무력 정책 법령에 밝혀진 핵무기 사용조건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북이 한·미를 상대로 서울 불바다발언이나 늙다리 미치광이를 불로 다스릴 것”(김정은 국무위원장, 20179) 등 도발적 발언을 한 적은 많지만, 자신들의 핵 독트린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핵 위협을 가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한반도는 1993년 북핵 위기가 시작된 뒤 핵 위협에 가장 취약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전 이후 한반도가 전쟁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1994년 여름은 북한이 핵무기를 본격 보유하기 전이었고, 무모한 충돌을 막으려는 이성이 살아 있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그해 616일 북을 방문해 김일성(1912~1994) 주석과 만나며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두번째 위기는 북·미가 서로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핵 단추를 언급하며 강하게 충돌했던 2017년이었다.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워싱턴 국립대성당에 들어가 홀로 기도했다. 일본 자위대도 한반도에서 유사사태(전쟁)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자신들의 대응 방안을 고민했다. 이 상황에서 빛을 발한 것은 전쟁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는 한국 정부의 일관된 자세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8·15 경축사에서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에 반응하며 이듬해인 20181월부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당시 위기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핵 위기가 제도화됐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제정한 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에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륙무기 공격 국가 지도부 등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 국가 중요전략적 대상에 대한 치명적 군사적 공격 등이 감행됐을 때뿐 아니라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핵을 쓸 수 있게 했다. 강순남 국방상은 미국 전략자산이 너무도 위험한 수역에 들어왔음을 깨달아야 한다며 이 법에 따라 핵으로 예방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는 북의 핵 위협을 일축했지만, 위기를 완화할 해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21일 입장을 내어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부산 기항은 -미 동맹의 정당한 방어적 대응조치라고 밝혔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도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레토릭은 도움이 되지 않고 극히 위험한 것이라면서 이번 기항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관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강간 가해자가 갑자기 '위로금' 주며 '강간' 없던 걸로 해달라면?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인류 역사에서 '명예로운 전쟁' 또는 '정의로운 전쟁'이 있었을까.

 

대부분의 전쟁연구자들은 '조국방어전쟁이나 민족해방전쟁 말고는' 그런 전쟁은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런 전쟁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는 논쟁사항이다. 거꾸로, '부끄러운 전쟁' 또는 '더러운 전쟁'(dirty war)들이 자주 벌어졌다는 데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더러운 전쟁'의 대표적인 보기가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1840, 1856)이다.

 

아편전쟁 뒤 더 많은 중국인들이 아편 중독자로 삶이 황폐해졌다. 흔히 '신사의 나라'라 일컫는 영국은 아편전쟁으로 중국인들에게 해를 끼쳤고 홍콩을 빼앗은 것을 사과하지 않았다. 이른바 '문명국가'임을 자부하는 프랑스, 그리고 콩고를 '지옥의 땅'으로 만들었던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이 과거사를 사과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오히려 이들은 유럽문명을 미개한 지역에 전했다는 '문명 전파론'을 편다.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아편무역까지 정당화할 생각은 없지만, 도대체 무엇을 사죄하라는 것인가. 이 미래지향적인 도시에서 19세기 이야기를 하다니 놀랄 일이다"(오누마 야스아키,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섬앤섬, 2018, 201).

 

1997년 홍콩의 마지막 영국총독 크리스터퍼 패튼이 홍콩 반환식에 즈음한 기자회견장에서 짜증이 섞인 말투로 했던 말이다. '아편전쟁의 비도덕성, 그리고 그 전쟁 뒤 1세기 반에 걸쳤던 영국의 홍콩 점령에 대해 사죄를 할 생각이 없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자, 패튼 총독은 사과는커녕 '영국은 홍콩의 민주제도를 발전시켰다'고 자화자찬했다. 한국의 '신친일파'들이 말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맥락을 같이하는 말이다.

 

오누마 야스아키(도쿄대 명예교수, 국제법)는 패튼 총독의 말을 옮기면서, 영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도 '일본을 비판하기 전에 자국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스아키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피해자 의식에 책임이 가장 큰 나라는 일본이고, 그 다음이 영국이다. 다만 일본과의 문제가 워낙 크기 때문에 영국은 뒤에 가려 있을 뿐이다.

 

중국, 덕으로 원수 갚겠다며 배상 청구 포기?

"반성이나 사죄 요구는 이제 좀 그만하자." 일본의 극우파들이 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 들리는 소리다. 이들이 덧붙이는 말들이 있다. "중국은 덕()으로 원수를 갚겠다며 배상 청구를 포기했다."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는가?" 자료를 뒤져보면, 부분적으론 맞는 말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위해서 일본국에 대한 전쟁 배상의 요구를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 1972년 중국과 일본이 오랜 협상 끝에 내놓은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 5항의 문구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배상청구를 포기했다는 말은 맞는다. 하지만 중국 인민들은 청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만주침략(1931)에서 중일전쟁(1937)으로 이어져 1945년 패전으로 끝난 이른바 '15년 전쟁' 동안 숱한 중국인들이 희생됐다. 피해 회복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런 요구다. 하지만 일본은 '공동성명 5' 때문에 중국 피해자들은 배상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마치 한일협정(1965)으로 한국인들의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과 판박이다.

 

많은 국제법 전문가들은 한국은 물론 중국도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다고 본다. 국가가 배상 청구를 포기했더라도 개인이 포기하지 않는 한,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중국 피해자들은 일본 현지 소송을 걸었고, 오랜 법정투쟁 끝에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냈다. 미쓰비시(三菱) 계열사인 미쓰비시광업을 계승한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20166월 중국인 피해자(유가족 포함) 3765명에게 '윤리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과와 함께 1인당 10만 위안(1800만 원)의 배상금을 건넸다.

 

배상 액수가 많다고 보긴 어렵지만, 중국인 피해자들의 눈으로 보면 오랜 법정투쟁 끝에 이룬 값진 승리였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020년 미쓰비시 중공업은 중국인 피해자 30명에게 1인당 10만 위안을 건넸다. 중국인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사례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만 '악을 쓰며' 배상 요구를 이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중국은 되고 한국은 안 된다'는 일본의 '선택적 배상' 태도 탓이 크다.

 

일본과 너무 다른 독일

전후 처리를 합당하게 매듭지으려면 전범자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피해 당사자들, 또는 남은 가족들에게 합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 국가로 낙인 찍혔지만, 전쟁범죄 피해자에 대한 배상에서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 독일은 197012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을 찾아가 비에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 모습이 상징하듯이, 독일은 일찍부터 나치 히틀러 정권의 가혹행위에 대해 나름 진정성 담은 사과와 배상을 해왔다. 홍성필(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관련 글을 보자.

 

[서독은 1차적으로 1952년 이스라엘과의 룩셈부르크 협정을 통하여 345천만 마르크(DM)을 지불하고, 이어 1956년 연방보상법을 통해 나치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박해받은 이들에게 약 679DM을 추가적으로 지불하였다. 결과적으로 전체 배상규모는 2000년도 말 DM 102billion(US $66billion)에 이르게 되었다](홍성필,일본의 전후책임인식과 이행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충남대 법학연구, 23권 제1, 20126, 412).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항. 독일은 유대인 희생자 배상엔 적극적이었지만, 강제노동에 동원 됐던 외국인 노동자 배상엔 오랫동안 모른 체 했다. 독일 정부와 사법부는 물론 나치 독일 당시의 전범기업들도 냉담했다. 유대인 희생자들과는 달리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핑계를 댔다. 여기엔 동서냉전이라는 국제정치의 대결구도가 한 몫 했다. 서독 정부가 폴란드나 체코, 헝가리 같은 동구권 국가들의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방안이 얘기될 때마다 미국이 반대했다고 알려진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 그동안 억눌려 왔던 비유대인 피해 소송이 줄을 이었다. 광산, 공장, 농장 등에서 나치 침략정책을 따랐던 독일 기업들은 1998년까지 50여 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1999년 말 독일 정부와 기업들은 반반씩 부담하여 피해자 보상을 위한 100억 마르크(52억 달러)의 기금을 모은 뒤 배상이 이뤄졌다. 2001년 오스트리아 정부와 기업들도 외국인 강제동원 및 재산 몰수 피해에 대하여 11억 달러를 내기로 했다(홍성필, 413).

 

2023년 현재 독일이 나치 시절의 강제노동 피해자 160만 명에게 배상한 액수는 44억 유로(62조원)에 이른다. 독일은 이를 '1회성 지급이행'이라 부른다. 1회의 지급으로는 회복될 수 없는 피해이므로, 앞으로도 꾸준히 배상을 해나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1952년부터 2022년까지 70년 동안 나치 전쟁범죄 희생자들에게 지급한 배상금은 800억 유로(112조 원)에 이른다.

 

그게 끝이 아니다. 20229월 독일 정부는 전세계에 생존해 있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13억 유로(17400억 원)를 추가 배상하기로 했다. 2022년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에서 열린 룩셈부르크 협약 70주년 행사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회민주당)는 그런 추가 배상 방침을 밝히면서, '이 협약이 독일인이 자초한 무거운 책임을 청산할 수 없지만, 그 도덕적 책임을 지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돈도 돈이지만, '진정성 담긴 사과'가 듣는 이들의 마음에 와 닿기 마련이다.

독일은 일본과는 달리 전쟁범죄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배상을 해왔다. 197012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은 진정성 담은 사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본이 전쟁 피해국?

이렇듯 전쟁범죄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은 독일과 너무나 다른 태도를 보여 왔다. 독일인들에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잔혹함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본인들에게 난징 학살이나 '위안부' 성노예를 비롯한 전쟁범죄의 기억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일까.

 

많은 일본인들이 독일과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두 가지다. 첫째, 일본은 독일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과 같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둘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은 전쟁 피해국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전쟁 피해국?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일본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의 어마어마한 기록들을 떠올리면, 가해국 쪽이 무게가 훨씬 무겁다. 이런 사실을 좀체 받아들이지 않는 게 문제다. 전쟁범죄의 가해기억은 흐릿하고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기억은 생생하다. 아시아·태평양에서 일본이 일으켰던 침략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적어도 2000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기억의 창고에서 빼내 지운지 오래인 듯한 모습이다.

 

타이완 여성들의 분노

1995년 일본 정부는 진상 규명과 진정성 담긴 사과를 건너뛴 채 '아시아기금'이란 이름으로 동아시아의 '위안부' 여성 희생자들에게 건네주려 했었다. 제시된 배상금은 피해자 1인당 200만 엔(2000만 원). 문제는 일본이 피해 당사자들과 피해국 정부와의 사전 협의 없이 내놓은 일방적 제안이었던 데다,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국제사회에다 요란하게 홍보하고 나섰기에 논란을 불렀다. 지난날 전쟁범죄의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수단으로 일본이 '아시아기금'을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따랐다.

 

한국은 물론 타이완에서도 분노의 목소리가 커졌다. 타이베이 부녀구원복리사업기금회(약칭 부원회)는 한국의 정의기억연대와 같은 성격의 단체다. 당시 타이완에는 42명의 '위안부'가 살아있었다. 부원회는 '아시아기금'을 거부하면서 일본의 태도를 비판했다. 2017년에 타계한 일본의 양심적인 역사학자 아라이 신이치(전 이바라키대 명예교수)의 글을 보자.

 

[(아시아기금은)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서 활동을 알리고 배상금을 신청할 것을 옛 '위안부'들에게 호소했다. 타이완 사회는 이런 행동에 대해 불쾌해했다. 부원회의 스언메이즈언 회장은 "이 방식은 강간 범인이 배상 책임에서 도망가기 위해 급히 자선가로부터 돈을 모아 피해자에게 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아라이 신이치, <역사화해는 가능한가> 미래M&B, 2006, 90).

 

타이완은 입법원(한국의 국회)에서의 결의안을 통해 타이완 정부가 피해자 1인당 50만 타이완 달러(일본이 주기로 한 200만 엔과 같은 액수)를 줌으로써, 피해자들이 일본 쪽 돈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또한 한 독지가가 내놓은 기부 물품들이 경매에 붙여졌다. 이렇게 돈이 모아지자, 타이완 정부는 1997년 피해자 1인당 50만 타이완 달러를 건넸다.

 

"강간은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그때 한국에서도 일본 돈을 받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컸다. 정신대대책협의회(지금의 정의기억연대)'일본 정부가 사실 규명 없이 피해 당사자들에게 진정성 담긴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주는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몇몇 할머니들은 돈을 받았고, 이를 둘러싸고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입씨름이 오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인 19984, 시민단체들과 뜻을 같이 한 한국 정부는 정신대대책협의회의 모금을 더해 '위안부' 할머니 186명에게 1인당 38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러면서 정부 성명을 냈다. '일본정부는 아시아기금 활동을 중지하고,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이었다. IMF 사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금 정부와는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1998108일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통절한 반성과 진심의 사죄'를 나타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 속에 일본의 '아시아기금'20025월 활동을 멈추었다. 기금의 실무자는 그해 연말 참의원 공청회에서 생존중인 피해자의 40%(364)만이 기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 대부분은 필리핀 할머니들이었다. 364명 가운데 네델란드 할머니 79명은 돈이 아닌 '의료 복지사업' 명목으로 '배상'을 받았다(아라이 신이치, 93).

 

진상 규명과 피해자의 동의 없는 일본의 일방적 돈 공세는 혼란과 불신을 부른 채 막을 내렸다. 스즈키 유코(전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의 여성사, 사회운동사 연구자다. '한일 여성과 역사를 생각하는 모임' 대표로 있으면서 1990년대 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스즈키 대표는 일본 정부가 '아시아기금'으로 전쟁범죄를 입막음하려는 태도를 이렇게 비판했다.

 

[처음부터 '위안부' 범죄는 명백한 성범죄, 전쟁범죄, 국가범죄이다. (진정한 사죄와 진상규명 없이, 국가는 팔짱을 낀 채) 민간기금을 자원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본질을 벗어나도 심하게 벗어났다. 마치 강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갑자기 '지원금'이니 '위로금'이니 하는 명목으로 돈을 들이대면서 '강간'은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스즈키 유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젠더> 나남, 2010, 117).

201210월 가수 김장훈과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가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빌보드 광고판에 당신은 기억하는가?’라고 물으며 일본의 전쟁범죄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광고를 실었다. 서경덕 교수 트위터

 

2015년과 2023년 외교참사의 공통점

지난 20151228, 한일 외교 장관(윤병세, 기시다 후미오)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밝힌 일본군 '위안부' 합의도 '아시아기금'과 마찬가지로 많은 논란을 불렀다. 합의의 핵심은 일본이 10억 엔의 자금을 내고, 한국은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세워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이 합의의 성격은 10년 전 '아시아기금'보다 더 좋지 못했다. 일본이 전쟁범죄에 대한 진상규명과 진정성 담긴 사과 없이,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생략한 채, 관련 합의문서도 공개하지 않고 공동기자회견이라는 '외교적 꼼수'를 부렸다는 점에서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술책에 넘어갔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는 파기됐다. 이로써 한일 갈등과 불신은 더 깊어진 상황이다. 일본은 '우리도 할 만큼 했다. 약속을 어긴 건 한국'이라는 명분을 챙겼다. 후세의 역사가는 이를 두고 한마디로 '무능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 참사(慘事)'로 기록할 것이다. 장혜원(이화여대 법학연구소 국제인권법연구센터) 연구원의 글을 보자.

 

['위안부합의'는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그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의라고 말하기 어렵다. 더욱이 합의를 수용하는 국민의 대중적 여론은 더더욱 냉담하기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합의'는 다수의 한국인 피해자들에 의해 거부된 1995년의 '아시아 여성기금'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측면을 보이며, 오히려 더 후퇴한 것이기도 하다. 합의 과정에 피해자의 의사가 배제된 정부 간 타협에 의한 합의는 진정한 의미의 합의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장혜원,2015 '위안부합의'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국제법적 의미이화젠더법학 제10, 2, 20188).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활용 못했다"

 

2015'위안부' 합의에 이어, 2023년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해법'은 또 다른 외교참사를 기록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둘 다 피해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정부 주도 아래 이뤄진 밀실 해법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세종대 독도연구소장)의 비판.

 

"결론적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 그러므로 일본정부는 그 범죄성을 우선 인정해야 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에서는 일본 정부가 이런 범죄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10억 엔이란 돈으로 유야무야 사건을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뿐이다. 한국(정부) 측은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을 무시해 일본 측과 밀실로 합의안을 만들어 합의를 강행했다"(세종대·호사카유지,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1> 황금알, 2018, 369).

 

호사카 교수는 2023년 한국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함에도 피해자의 동의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일본의 사전 동의도 없었다.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 일본에 알린 것이며 이에 일본은 '높이 평가한다'고만 응답했을 뿐 합의서도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을 상대로 한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고 호사카 교수가 지적한 대목은 귀 기울일 만하다. 한국의 연구자들, 그리고 일본의 자성사관(自省史觀)을 지닌 양심적 연구자들은 '위안부'를 비롯한 여러 유형의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관련된 실증적 조사를 벌여왔다. 이미 그 노력의 성과물로 상당히 많은 학술논문·보고서·책들이 나와 있다.

 

그 속에는 일본의 전쟁범죄 기록과 의미, 평가들이 담겨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을 배려하는 바람직한 해결책까지 제시돼 있다. 한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힘써 이뤄낸 연구 성과물들을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을 덜어주고 전범기업들을 편안하게 해준 셈이 됐다.

 

"과거사 반성에 '본심'이 없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는 이제 끝난 문제라고 여긴다. '위안부' 합의 다음해인 201610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 편지를 쓸 것인가에 대한 질의를 받자, "합의한 내용 외의 것은 우리 측으로서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매몰차게 답했다. 과거사를 둘러싼 아베의 역사인식은 딱 그 수준까지였다. 지금의 일본 총리이자 2015년 외무장관으로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냈던 기시다 후미오도 아베와 다를 바 없다.

 

<妄言原形>을 쓴 역사학자 다카사키 소지(쓰다주크대교수, 한일근대사)는 일본인들의 과거사 '반성'(사과)이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까닭은 그 '반성''본심'(진심)이 담겨 있지 못하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풀이한다(그러면서 다카사키 교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일제 강점기 기간에 벌어진 피해와 전쟁범죄를 포함한 식민지배를 사죄한다는 결의안이 일본 국회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일관계에서 조선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인의 '반성'이 거듭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 측의 '반성'이 본심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일 양국의 정부 지도자들이 잘 알고 있고, 한일 양국 국민도 많든 적든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다카사키 소지, <일본 망언의 계보>, 한울, 2010, 244).

 

슐링크, "피해자가 용서의 주체다"

'일본의 침략전쟁과 그 전쟁으로 비롯된 범죄를 이제는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말들이 들린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제는 털고 넘어가자는 뜻이다. 좋은 얘기다. 화해를 하려면 용서를 먼저 하는 게 순서다. 그렇다면 용서를 누가 할 것인가. 가해자가 아닌 제3자가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나서서 '반성이나 사죄 요구는 이제 좀 그만하자'고 나설 수 있을까.

 

이와 관련, 2009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1995)를 쓴 베른하르트 슐링크(전 훔볼트대교수, 법학)'용서'에 대한 분석은 참조할 만하다. 1944년생인 슐링크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지식인이다. 한국 최초의 국제문학상으로 전세계 소설가를 대상으로 하는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뽑혀 2014년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

 

슐링크는 소설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전공은 법학이다. 대학교수와 헌법재판소 판사를 지냈다. 지난날 나치의 전쟁범죄를 겪은 독일 출신답게 국가가 저지른 범죄와 과거사 청산에 관심을 쏟았다. 그의 책 <과거의 죄>(2007)는 국가범죄를 주제로 삼아, 특히 나치 히틀러 정권과 옛동독 시절에 저질러졌던 범죄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다루었다. 여기서 슐링크는 죄를 저지른 자들의 용서 문제와 관련, '용서를 누가 하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 하나. 나치 강제수용소에 배치됐던 친위대 소속 군인의 손자와 강제수용소 희생자의 손자(유대인)가 만나는 장면이다. 친위대 군인의 손자는 할아버지의 과거를 알고난 뒤 속죄를 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집단농장인 키부츠에서 일을 한다. 그곳에서 강제수용소 희생자의 손자인 한 유대인 소년을 만나지만,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유대인 소년도 할아버지의 희생을 알고 나서 겪게 된 트라우마를 그 독일 소년 탓으로 돌릴 수 없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두 소년 모두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거나 용서할 입장이 아니다. 슐링크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피해자만이 용서를 할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기에는, 용서를 요구하기에는, 보상을 둘러싼 협의와 협정에서 전략적·전술적 이점으로 용서를 사용하기에는, 용서는 너무 실존적이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도, 용서할 권리도, 범죄자와의 관계에서 오직 피해자가 갖는 권리이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범죄자 가족들도, 후손들도, 친구들도, 더군다나 정치가들이 용서를 구할 수는 없다. 용서 받지 못하는 범죄자와 범죄자를 대신해서 용서를 구할 수 없는, 그의 죄에 연루된 사람들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세상은 용서되지 않고, 용서될 수 없는 죄로 가득 차 있다. 하느님의 세상을 제외하면] (베른하르트 슐링크, <과거의 죄> 시공사, 2015, 200).

2016년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은 중국인 피해자 3765명에게 윤리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과와 함께 1인당 10만 위안(1800만 원)의 배상금을 건넸다. 중국 베이징에서 피해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채 울고 있다. AP 연합뉴스

 

용서란 말이 공허하게 들릴 때

슐링크는 거듭 '용서가 너무 실존적'이라 말한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일본의 정치인들이 '무라야마 담화'를 들먹이며 '계승하겠다'고 말하듯) '정치적 의례가 되어 버리기엔' 용서가 너무 실존적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1970년 폴란드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듯이) '정치가들이 대중에게 자신들의 인간적이고 고뇌에 찬 모습을 보이는 기회로 사용'하기에도, 용서는 너무 실존적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잦다는 게 문제다.

 

[내무부장관은 외국에서 자국의 축구팬(훌리건)들이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추기경은 자기 밑에 있는 사제들이 아이들에게 입힌 고통(성추행)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경찰서장은 경찰관들이 업무 수행중 보인 만행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말하는 용서가 공허하게 들린다](베른하르트 슐링크, 199).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용서를 구한다고 말할 때, 슐링크는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분명히 감독이나 관리를 잘못한 죄가 있는데도, 마치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듯이 가볍게 말하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가 '사죄'라는 보다 직설적인 용어 대신에 '담화의 계승'이란 편리한 용어를 밥 먹듯이 남발할 때마다 우리 귀에 공허하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글을 매듭지어야겠다. ··3국의 역사학자들이 '역사 화해'를 모색하며 공동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2005)를 내는 등 동아시아에서 '화해' 얘기가 나온지도 제법 됐다. ·일 두 나라의 화해, 좀 더 범위를 넓혀 동아시아의 화해를 위해선 '용서'라는 길목을 지나야 한다. 용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진상규명, 그에 합당한 배상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다. 피해자(또는 그 유가족)가 아닌 제3자가 이래라 저래라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 없다. 슐링크도 지적했듯이,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데 정치가들이 용서를 말할 수는 없다. 용서를 할 권리, 또는 용서 안 할 권리는 피해자의 몫이다.

 

일본은 지난날 저질렀던 전쟁범죄를 '과거사'란 애매한 이름표를 붙여 진공 포장한 채로 21세기 오늘에까지 시간을 끌어왔다. '용서' 절차를 건너뛴 일본이 맨입으로 '화해'를 말하는 사이에 '용서'를 못한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눈을 감았다. 한국의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이제 9명뿐이다. 일본이 전쟁범죄의 피해 당사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기회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일본 극우파들은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자들을 제신(祭神)으로 모신 야스쿠니 신사 안팎을 들락거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패전 뒤 도쿄재판은 정치재판이었어. 우리가 이겼다면 법정 피고석엔 다른 자들이 섰을 거야." 곰곰 따져보면,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도쿄 공습(19453)이나 원자폭탄 두 방으로 많은 비무장 민간인을 죽였던 미국 지도자들은 전범재판을 받지 않았다. 드레스덴 공습(19452)을 비롯, 독일 주거지역을 파괴했던 영국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전범재판은 '승자의 재판'일 수밖에 없는가.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 프레시안

GPT 시대, 보이지 않은 미세노동착취 당하고 있다

혁신커튼 뒤에 가려진 열악한 미세노동문제

인공지능 발전? 미세노동 형태가 대세 될 수 있어

 

최첨단의 이면에 낡은 방식의 노동 착취가 있다. GPT의 놀라운 기능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때인 지난 1월 타임지는 케냐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해 주목 받았다.

 

케냐 노동자들은 챗GPT 개발 과정에서 아동학대, 폭력, 증오, 편견 등 발언과 단어를 분류하는 업무를 했다. GPT가 문제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학습한 데이터 중 문제가 되는 내용을 걸러내는 수작업이 필요했다. 케냐 노동자들은 시간당 1.32~2달러 수준의 저임금을 받고 일했다. 타임지 인터뷰에 응한 케냐 노동자 4명은 혐오표현 관련 단어를 직접 읽고 분류하면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상담원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상담 기회는 없었다. 케냐 노동자 사례가 언론 보도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지게 됐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타임지의 기사 갈무리. ‘오픈AI가 챗GPT의 유해성을 완화하기 위해 케냐 노동자들을 시간당 2달러 미만에 활용했다기사.

 

연일 언론의 ‘IT’ ‘테크뉴스에 빠지지 않는 기업과 서비스들이 있다. GPT 개발사 오픈AI, 유튜브와 구글 검색엔진에 이어 챗GPT 대항마 바드를 내놓은 구글, 그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이어 트위터 킬러로 불리는 스레드를 출시한 메타,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업체 테슬라와 트위터까지. 이들 업체는 우리의 삶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어준다고 강조하며 연일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

 

영국의 대안적 싱크탱크 오토노미’(Autonomy)의 선임연구원 필 존스의 저서 <노동자 없는 노동>은 인공지능 등 기술 개발 과정에서 남반구 국가, 3세계, 빈민 등의 수작업이 요구되는 초단기 임시직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미세노동’(microwork)이라 했다. 이는 관련 업체들이 실제로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메리 그레이와 컴퓨터 과학자인 시다스 수리는 사람들이 자동화됐다고 생각하는 기계 뒤에서 투명인간처럼 일하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유령 노동’(ghost work)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는 오픈AI만의 문제는 아니고, 케냐에서만 벌어진 일도 아니다. GPT 대항마 구글 바드 역시 비슷한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12(현지시간) 블룸버그는 구글이 바드가 내놓은 답변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지 검증하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관련 업무를 호주에 기반을 둔 데이터업체 아펜과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 등에 외주를 맡겼다.

 

이들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하는 노동자들은 특정 문장이 제시될 때마다 3분 내에 검토를 마쳐야 했다. 제시된 정보가 독특한지’ ‘새로운 내용인지’ ‘일관적인지6가지 요소를 살펴보며 검토하고 답변이 선정적이거나 부정확하거나, 공격적인지도 확인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과로와 저임금에 시달렸다.

사진=Gettyimagesbank

 

베네수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MIT테크놀로지리뷰에 따르면 테슬라 등 자율주행자동차 기업들은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에게 평균 시급 90센트를 지불하고 자율주행시스템 라벨링작업을 맡겼다. 차가 이동 중 장애물을 발견했을 때 사람인지 기물인지 등 어떤 대상인지 하나하나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구글은 인공지능 검색 결과를 평가하는 채점자를 고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주로 필리핀 노동자들이 이 업무를 맡았다. 이 역시 저임금 체계로 구성돼 있다.

 

미세노동은 대부분 외주구조 하에서 움직인다. 미국에는 미세노동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들이 활성화돼 있다. 외주를 담당하는 업체가 일감을 올리면 노동자들이 지원해 일하는 방식이다. 주로 단기 계약, 혹은 건당으로 이뤄지는 초단기 계약으로 이뤄지고 있다.

 

필 존스는 책을 통해 노동자들은 의뢰받은 작업을 수행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 고용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취업과 실업 상태를 오가면서 하루 동안 많으면 수십에서 수백개 회사를 위해 일하기도 한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고용 계약 방식이라는 한 미세노동 업체의 주장에 관해 필 존스는 이 계약의 진짜 수혜자는 표준적인 고용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의뢰인들로, 주로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IT대기업이라고 비판했다.

 

미세 노동의 문제는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점이다. 식당에 소속된 배달 기사가 사라지고 배달앱 노동자로 전환된 것처럼 인공지능 개발 과정에서 업무를 맡는 인력들이 기업의 바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철저히 외주화되다 보니 노동자는 자신이 어떤 업체가 무엇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세노동을 하는지 알기 힘든 경우도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미세노동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노동자에게 새로운 소득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노동 여건이 완벽함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실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급여는 너무 낮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모르는 상태라며 이러한 공포에 휩싸인 문화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업무의 질을 높이는 것이나 팀워크를 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미세노동이 주로 후진국이나 경제가 붕괴된 국가, 난민과 빈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임지에 언급된 케냐 노동자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데이터 처리 회사 사마(SAMA)의 일감을 맡은 노동자들이었다. 테슬라 등의 라벨링업무를 다른 국가가 아닌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이 맡게 된 점은 경제가 붕괴돼 저임금 계약이 가능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서구 국가들이 훌륭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하는 이면에 데이터셋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주로 난민촌에서 생계가 막막한 분들, 케냐에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는데 옛날 인형에 눈알 붙이는 식의 노동과 다르지 않다. 규제가 완화된 시장에 진출해 일종의 노동 착취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필 존스는 눈 앞에 펼쳐진 현상은 점점 더 많은 서비스직 일자리가 긱 노동, 미세노동, 크라우드 노동으로 변질되고 자동화가 주로 노동자와 알고리즘의 협업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라며 미세노동의 경우에는 그 일자리란 것들이 거의 다 실직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많은 노동이 인공지능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딸린 심부름꾼이 되는 유령 노동, 미세 노동의 형태로 하향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미래 노동은 미세노동과 같은 형태가 대세가 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광석 교수는 정부는 산업을 강조하고, 사람들은 디지털이 가진 측면에 환상을 갖게 된다“(노동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우리와 무관하다고 느끼며 살아오게 되는데, 불편하더라도 이런 것들을 자꾸 드러냄으로써 균형을 잡아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 연구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동화라고 부르지만 노동 없이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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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시대, 일자리 소멸 위기론의 진실은

일자리 감소 우려 이어지지만 새 일자리 무시 못해

OECD최저임금단체교섭강조

 

미국에서 인공지능 기술로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로 노동자 해고가 잇따르면서 인공지능발 일자리 위협 공포가 커지고 있다. 기존 기술 혁신과 달리 사무직 노동자 일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도 적지 않을 전망이기에 일자리 소멸공포는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사무직에 위협이 된 인공지능

GPT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불안했는데, 실제로 내가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올리비아 립킨은 카피라이터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일이 급격히 줄었고 지난 4월 해고됐다. 회사는 명시적인 해고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후 관리자들이 카피라이터를 쓰는 것보다 챗GPT를 쓰는 것이 저렴하다는 글을 올린 사실을 알게 돼 해고 사유를 추측할 수 있게 됐다. 이 사례는 지난 62(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된 내용이다.

사진=Gettyimagesbank

 

지난 3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펜실베니아 대학교 연구진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피해를 보는 직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인공지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직업으로 수학자, 세무사, 회계사, 작가, 웹디자이너, 기자, 통번역사 등이 꼽혔다. 반면 인공지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직업군은 설거지 담당 직원, 오토바이 수리공, 즉석요리 조리사 등으로 나타났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5월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2023' 보고서는 비서, 은행 텔러, 우편 서비스, 계산원과 매표원, 데이터 입력원 등을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는 직군으로 꼽았다.

 

일자리 소멸? 오히려 늘어난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량실업은 물론 일자리가 소멸 위기론까지 커지고 있다. OECD가 제조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는 일부 회원국 노동자 5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동자 10명 중 6명은 향후 10년간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에서도 우려는 크다. 한국리서치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반적으로 볼 때,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8%에 그친 반면 전반적으로 볼 때, 줄어드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고 우려한 응답자는 80%에 달했다.

 

미국 인사관리 컨설팅회사인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에서 8만 명이 정리 해고를 당했는데, 이 가운데 3900명은 인공지능 기술에 따른 정리해고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이 조사를 언급하며 인공지능으로 인한 인력 감축이 이제 막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드롭박스, 체그 등 미국 기업이 인공지능 기술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빈드 크리슈나 IBM CEO는 향후 5년 내에 인사 분야 등 7800명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리서치 조사 갈무리

 

실제 일자리 감소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1(현지시간) 공개한 ‘2023년 고용 전망보고서를 통해 “38개 회원국 전체 고용의 약 27%를 차지하는 숙련된 직종이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로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다고 전망했다.

 

여러 분석을 종합하면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다는 전망도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새롭게 일자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도 무시하기 어렵다. 세계경제포럼(WEF)45개국 8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발표한 미래 직업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까지 69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는 반면 83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사라지는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2% 가량이다.

 

오히려 일자리가 전보다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3월 골드만삭스는 인공지능이 전세계적으로 3억개에 달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공지능연구소가 발간한 글로벌 AI 인덱스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 게시된 인공지능 일자리 공시는 전년(40만 건)대비 2배에 달하는 79만 건으로 나타났다. 미국 IT매체 와이어드는 2010년대 딥러닝과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 바람이 불면서 사무직 대량실업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정작 사무직 고용이 5% 늘어났다고 밝혔다.

 

영국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7(현지시간) ‘당신의 일자리는 (아마도) 안전할 것이다제목의 기사를 내고 대량 실업 위기론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소멸이 급작스럽게 닥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을 담았다. 실제 자동전화 교환시스템이 1892년 발명됐지만 미국 전화 교환원 수는 20세기 중반에 가장 많았다. 또한 이코노미스트는 노동조합이 방파제 역할을 하기에 실제 일자리 감소 규모는 예상보다 작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비 위한 국가의 역할? ‘친노동정책 필요

조사 주체나 방식에 따라 전망에는 차이가 있다. 지나친 공포감 조성이나 낙관론이 교차하는 가운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샘 올트만 오픈AI CEO는 미 의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일자리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티아스 코만 OECD 사무총장은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직장 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혜택이 위험보다 더 클지는 우리가 취하는 정책에 달려 있다정부가 노동자들이 변화에 대비하고 인공지능이 가져올 기회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저임금 제도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보장은 인공지능이 임금에 가할 수 있는 압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정부와 규제 당국은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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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가 전망한 챗GPT 시대 미래의 노동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

일자리 증감 일시적, 총고용량 감소한다고 보긴 어려워

“AI로 인한 실직자, 정부·기업이 재교육해야

노조 활동, 변화하는 노동자 정서에 조응하는 노력 필요

 

하종강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인데 청년 시절 통닭구이 집에서 일하면서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GPT하종강에 대해 물었더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맞는 문장일까? 하종강 교수는 통닭구이 집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과거에 통닭구이, 비녀꽂기 고문을 당했다. 과거 이런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한 적 있는데, GPT가 저렇게 엮어대더라. 팩트와 거짓을 섞어서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고 했다.

 

하종강 교수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전망이 과장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정 분야가 더는 발전하지 않고 정체된다면 그 분야가 다 실직하게 되겠지만, 어느 직종이든 계속 변화하고 새로운 기능이 요구된다. 일정한 패턴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업이 요구된다. 노동은 계속 조응하고 변화한다고 말했다.

 

하종강 교수는 1·2·3차 산업혁명 초기마다 특정 일자리의 증감이 있었지만, 일시적이었고 총고용량이 감소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일례로 한 생명보험업체가 AI 광고모델을 발탁했는데, 이로 인해 모델 한 명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AI 모델을 만든 업체는 고용 인원을 3배 이상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생겨날 경우를 대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 기업은 실직 인력에 대해 재교육을 빨리 시켜서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미래사회가 될지라도 노동의 중요성은 희석되지 않는다. 여전히 노동자들이 필요할 것이고, 더욱 정교하게 착취당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를 지키는 노동운동의 중요성이 희석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노동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하종강 성공회대 주임교수를 지난 17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에서 만났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사회적 공포감이 커졌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할 순 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만큼 크게 줄어들진 않을 거다. 부풀려지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 향후 10~20년 동안 9~47%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인해 위협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총고용량은 유지될 거라는 연구 성과들도 만만찮다. 기계가 투입되기 시작할 때를 1차 산업혁명, 전기동력이 도입될 때를 2차 산업혁명, 컴퓨터가 도입될 때부터를 3차 산업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매번 초기에는 실업률이 발생했다. 결국 일자리 총량은 늘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총량을 줄일 거라는 건 성급한 결론이다. 사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을 3차 후반부 정도로 본다. 1, 2, 3차는 100년 정도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 기업들은 고용을 유지하자는 노동계의 요구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사고라고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있다. 기업의 이런 요구와 그걸 홍보하는 지식 장사꾼의 마케팅이 맞아떨어져 위기가 증폭돼 나타나는 거다.”

하종강 성공회대 주임교수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주로 어떤 일자리가 타격을 받을 것 같나. 예를 들어 막내 작가의 일은 챗GPT가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GPT는 그야말로 ‘Chat’이다. 대화하기 적당한 인공지능이라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챗을 계속 만들어내는 거다. 제가 과거에 통닭구이, 비녀꽂기 고문을 당했다. 과거 이런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한 적 있는데, GPT하종강은 대한민국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인데 청년 시절에 통닭구이 집에서 일하면서 노동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엮어대더라. 예술 분야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정체된다면 그쪽 분야가 다 실직하게 되겠지만, 새로운 기능이 요구되면서 각 분야도 변화한다. 어느 직종이 사라질 거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예전에는 소설이나 희곡 등이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지금은 패턴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업이 요구된다. 계속 조응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인공지능 도입을 이유로 한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관련 보도를 보면 인공지능으로 인한 해고가 심각한 것처럼 다루는데 (5월 기준) 미국에서 8만 명이 해고됐다. 이 가운데 인공지능으로 인한 해고는 4000명이다. 5%에 그친다. 그렇게 공포스러운 건 아니다. 어느 생명보험 회사가 로지 AI를 가상 모델로 세웠다. 가상 모델이 실제 모델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로지를 개발한 회사의 대표가 고용인원을 3배 늘렸다고 밝혔다. 가상 모델이 실제 한사람 모델의 일자리를 빼앗은 건 맞다. 하지만 로지를 만들기 위해 수십 명이 고용됐다. 다만 초기에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초기에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일자리로 대체가 된다.”

(5월 기준) 미국에서 8만 명이 해고됐는데, 이중 5%4000명 가량은 AI 때문에 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고 사유로 AI가 보고서에 기재된 건 처음이다. 사진=지난 62KBS 보도화면 갈무리.

 

-정부와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나 기업은 실직한 인력에 재교육을 빨리 시켜야 한다. 유럽에서는 상식적인 거다. 해고는 곧 재교육을 의미한다. 이 방식을 도입한 한국 기업이 유한킴벌리다. 2009년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당시 쌍용자동차에서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2000명을 해고하지 않고 7000명의 근로 시간을 단축하라고 했다. 실제 유한킴벌리는 불황이 와서 조업이 단축되면 전체 직원의 일을 줄였다. 해고하지 않고, 전체 직원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유지했다. 2교대, 3교대 하면서 남은 인력을 계속 재교육에 투입했다. 한국은 이런 이야기 나오면 유한킴벌리가 중소기업이라 가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요타도 사용했던 방식이다. 유럽은 국가 차원에서 이렇게 한다.”

민주당 등 야 4당 대표가 200989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열린 야당대표 회동에서 쌍용차 사태와 관련, 경찰의 과잉진압 등을 비판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대표, 강기갑 당시 민노당 대표,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 문국현 당시 창조한국당 대표. 연합뉴스

 

-업무와 고용 방식에도 변화가 도래할 것 같다. 이미 한국에는 배달 분야에 플랫폼 노동이 자리를 잡았는데, 이런 방식의 노동이 더욱 확산하지 않을까.

당연히 확산된다. 확산되는 이유는 인류 사회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타다를 규제하려고 했을 때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혁신 분야를 정부가 낡은 규제 방식으로 억제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기존의 사업 형태를 기업이 노동법상 의무를 줄이는 방식으로 바꾼 것뿐이다. 플랫폼 산업은 거대한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이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을 통해 통제한다. ‘배달의민족은 노동자를 알고리즘을 통해 초 단위로 계산해 평가한다. 성실한 사람에게는 좋은 배달을 많이 배당하고, 불성실한 사람은 원거리의 나쁜 일거리를 준다. 노동 통제는 더 세밀해지고, 노동자의 권리가 더 침해된다. 개인사업자로 분류하고, 시혜적 보험 혜택을 준다.”

 

-해외는 어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운전·배달기사 등 플랫폼 종사자를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재분류) 법안은 우버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분류하려면 회사가 굉장히 힘든 3단계를 거치도록 했다. 노동자들이 회사의 지휘통제로부터 자유롭고, 그 회사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이외 업무를 해야 하며,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이 있어야 독립사업자에 해당한다. 20201AB5 법안을 제정해 우버 노동자로 인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1년 시행되다가 부결됐다. 선진적으로 법안을 마련했으나, 과반 이상의 주민이 반대표를 던져 거부당했다.”

우버 택시. 연합뉴스.

 

-결국 실패한 것 아닌가.

미국의 플랫폼 사업자인 아마존, 우버 등이 그 법안을 부결시키려고 2억 달러를 썼다. 이 돈의 대부분은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데 투입됐다. AB5 법안이 만들어졌다가 없어지긴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버 노동자의 노동 조건이 굉장히 향상됐다. 프랑스, 독일, 영국 법원에서 우버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플랫폼 노동자도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야 하고, 그게 곧 사회 전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단기적인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AB5 법안을 도입할 때 내세운 논리 역시 플랫폼 산업을 통해 이윤을 가져가는 기업이 노동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시민의 세금으로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노동착취 문제가 있다. GPT 개발 과정에서 케냐 노동자들이 혐오·차별 발언을 골라내는 업무(성적 아동 학대, 살인, 고문, 자살)를 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문제가 논란이 됐다.

미래 사회가 되더라도 노동의 중요성이 희석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그 노동을 통제하는 기술이 세밀하게 착취당하게 할 거다. 노동을 보호하는 활동은 더 많이 요구된다. 미래 신기술이 노동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만든다? 아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책을 제목만 보고 노동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노동을 적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마지막 모습은 노동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거다. 그때가 되면 기계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기에 이를 줄일 수 있는 각종 조치를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게 핵심이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몇 가지 방식을 이 책에서 제시한다. 그게 공유와 분배다. 로봇이 도입되면 일자리가 상실된다. 노동자는 실직하지만 생산력이 향상돼 더 많은 생산품이 나온다. 이걸 나누면 된다는 거다. 제레미 리프킨은 공공의 목적과 기업의 이윤추구가 결합될 수 있다고 본다. ‘캐시워크라는 앱을 이용하면 걸을 때마다 1020원 준다. 이걸 보고 폐지 줍는 노인들이 떠올랐다. 리어카에 한가득 담아 가져가야 2000원 받는다. 기업의 광고 효과와 접목하면 그게 제레미 리프킨이 이야기하는 공공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무궁무진하게 생겨날 수 있을 거다. 미래 사회가 될지라도 노동의 중요성은 희석되지 않는다. 여전히 노동자들이 필요할 것이고, 더욱 정교하게 착취당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를 지키는 노동운동의 중요성이 희석되지 않을 거다. 인공지능 분야라고 노동의 중요성이 희석되지 않는다. 한국에 IT기업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노동의 질에는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기자들은 노트북과 인터넷 덕에 전보다 쉽고 빠르게 기사를 쓸 수 있게 됐지만, 써야 하는 기사의 양은 늘고 속보 경쟁도 심화했다.

문명에는 양면이 있다. 노동 강도를 저하시키면서 동시에 노동 강도를 높인다. 사무자동화가 되면서 노동 강도는 더 심해졌다. 20년 전쯤 화이트 칼라의 위기라는 책을 소개했다. 문명의 이기가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집에서도, 이동 중에도, 출퇴근 시에도, 휴가지에 가서도 노동을 계속한다. 그래서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하고 부정적 측면을 최대화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프랑스의 한 기업은 회사가 모든 직원에게 노트북을 무상으로 지원한다고 했는데, 그걸 거부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동계에도 변화가 부는 것 같다. 해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IT 분야 노조가 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변화가 생긴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자연스러운 변화다. 노동조합은 어떤 시대가 되어도 조응하면서 변화할 뿐이지 몰락하지 않는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생산과정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최초의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우려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2차 산업혁명 때는 제조업 금속 노동자가 중요해졌고 금속노조가 출범했다. 3차 산업혁명 때는 지식 노동자가 중요해졌고 전교조, 공무원노조, 공공 부문 노조가 확대됐다. 4차 산업혁명 때는 IT 계열 노조가 더 강해질 거다.”

 

-노조가 앞으로 새롭게 해야 할 역할이 있을까.

기존에 했던 걸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노동자 정서에 조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5개 대학 학생들이 모인 적 있다. 앞에 평화나비 활동을 하더라. 그 해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출간 100주년이었다. 그래서 데미안읽어본 학생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150명이 아무도 손 안 들었다. 헤르만 헤세가 누군지 아냐고 했는데 모르더라. ‘요즘 대학생 책 안 읽는다고 해봤자 꼰대가 되는 거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30년 전 노동자의 철학을 강조하면 동화가 안 된다. 네이버에서 노조를 만들 때 조끼를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후드티를 만들었다. 변화하는 노동자 정서에 적응한 거다. 조직 사업 계속하는 등 예전 덕목은 지키되 새롭게 변화하는 정서에 따라 노조도 변화해 가야 한다.”

프레시안 금준경, 박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