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극한 경제 시나리오 리처드 데이비스 지음 | 고기탁 옮김 | 부키 ||2021.11
원제-Extreme Economies
RICHARD DAVIES-경제학자이자 작가다. 런던정경대학교와 브리스톨대학교 경제학 교수, 영국경제학관측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교, 런던정경대학교,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영국 재무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잉글랜드은행 이코노미스트, 《이코노미스트》 경제 편집장을 지냈다. 대규모 마이크로 데이터를 활용해 인플레이션, 생산성, 임금을 포함한 총체적 퍼즐에 대한 답을 찾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경제에 대한 접근성 개선과 확장을 목표로 하는 여러 자선 프로젝트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브리스톨경제학페스티벌의 공동 책임자, 스피커스포스쿨스의 공립 학교 대상 강연자, 전 세계 대학의 경제학 교수와 학생에게 오픈 액세스 리소스를 제공하는 자선 단체 CORE의 창립 이사 겸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더타임스》 《와이어드》 등에 다양한 글을 기고해 왔으며, 2019년 첫 책 《2030 극한 경제 시나리오》를 출간해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에드워드 스탠퍼드 트래블 라이팅 어워즈, 론리플래닛 올해의 신인 작가상, 인라이튼드 이코노미스트 프라이즈를 수상하고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경제경영서, 《뉴스테이츠먼》 올해의 책, 《뉴욕타임스》 에디터스 초이스에 선정되었다.
목차
추천의 글 _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
한국어판 서문: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극한에서 배운다
1부 미래를 열어젖힌 회복과 성장 이야기
1장 자연이 삶을 유린할 때: 아체
500만 채의 집과 2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재앙 | 지구의 형태가 바뀐 날 | 아체 이야기: 후추의 중심지, 해상 무역의 메카 | 회복탄력성의 비밀: 커피왕 이야기 | 생명을 구한 전통: 금으로 저축과 보험 대신하기 | 자연재해가 경제 성장을 앞당긴다 | GDP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측정한다 | 원조 붐과 그 이후의 미스터리한 성장 | 전보다 더 나아진 것들: 기반 시설, 기술, 그리고 생각 | 내전이라는 만성 질환 치료하기 | 이슬람법과 아체 여성의 힘 | 재키챈빌리지 이야기: 재건 사업의 어두운 단면 | GDP, 회복탄력성, 인적 자본의 중요성
2장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갈 때: 자타리
여우라 불리는 소년 | 자타리의 탄생과 발전 | 어린 밀수꾼들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슈퍼마켓 | 자타리 사람들의 창의성: 전자 카드를 현금으로 바꾸기 | 자타리 경영대학원에서 배우는 현장의 지혜 | 아즈라크, 오아시스에서 난민촌으로 | 세계 최대의 개방형 감옥 | 같은 극한, 다른 경제 |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것들 |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아이들 | 롤스로이스와 이슬람사원 | 전망 좋은 곳
3장 자유를 잃고 세상과 단절될 때: 루이지애나
앙골라로 가는 길 | C-18번 수감자 이야기 | 교도소 경제학 입문 | 교도소 농업: 노예 플랜테이션에서 국영 기업 농장으로 | 일은 고되고 돈은 안 되는 공식 작업 | 경제적 아마겟돈의 경고이자 본보기 | 금지된 물건: 껌, 베이비 오일, 그리고 현금 | 좋은 화폐, 나쁜 화폐 | 세상의 모든 화폐: 딱따구리부터 고등어까지 | 신종 마약, 교도관, 불로소득의 커넥션 | 도트, 눈에 보이지 않는 혁신적 화폐의 출현 |
교도소를 움직이는 2가지 평행 경제 | 교도소 지하 경제의 가치
2부 미래를 잃어버린 실패와 몰락 이야기
4장 천혜의 자연이 무법 지대로 변할 때: 다리엔
이방인을 맞는 원주민의 불안한 시선 | 위험과 기회의 땅 | 해적들의 진기한 모험담과 대단히 훌륭한 항구 | 스코틀랜드의 다리엔 재앙과 영국의 탄생 | 길의 끝에서 만나는 몰락의 흔적 | 중추에서 허드레로 전락한 다리엔의 경제 수도 | 낮은 평판과 고립 탓에 치르는 값비싼 대가 | 자연을 떼어 파는 사람들 | 공유지의 비극: 정글 수탈 경제의 문제점 | 자원을 공동으로 보존하는 마을들 | 협력과 감시 없는 자유 시장은 실패한다 | 선의의 규칙과 제도가 피해를 더 키운다 | 다리엔의 최신 해적들, 무장 혁명군과 불법 이민자 | 또 다른 시장의 실패: 너무나 위험한 다리엔갭 통과하기 | 합리적 경영이란 무엇인가
5장 자원의 보고가 극빈 도시로 전락할 때: 킨샤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가진 도시 | 부패한 도시의 황금률: 우두머리의 아들이 되어라 | 헌법 제15조: 각자도생하라 | 식민지 이야기: 거짓말쟁이 왕의 약탈과 살육 | 콩고 위기에서 구세주의 등장까지 | 독재자의 경제 실책이 부른 재앙 | 훔치려면 적당히 잘 훔쳐라 | 부패와 세금, 그리고 자력구제의 도시 | 가난한 도시를 움직이는 해적 시장 | 위험한 거래, 외환 상인 | 부업 전선에 뛰어든 공무원들 | 자멸적 회복탄력성: 무능한 정부 탓에 치르는 비용 | 현대의 극한 경제 재앙을 대하는 2가지 관점
6장 최고의 산업 도시가 파산할 때: 글래스고
대영제국 두 번째 도시, 현대의 로마 | 모든 분야에서 혁신의 원조였던 도시 | 무역의 힘: 담배부터 조선까지 | 앨프리드 마셜의 집적 경제 3요소 | 사방에 공기처럼 존재했던 산업의 위력 |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 형편없는 정부 대책 | 글래스고의 암울한 미스터리: 죽음과 산업 붕괴의 연관성 | 뒤르켐과 퍼트넘의 통찰: 사회 통합과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 | 공동주택 이야기: 글래스고가 잃어버린 자본 | 신뢰와 호혜의 경제 효과 | 독특한 대출 시스템 전통 | 급진적 공공 주택 정책이 공동체를 파괴하다 | “글래스고 효과”가 던지는 경고
3부 미래를 선도하는 최첨단과 초극한 이야기
7장 고령화의 초극한: 아키타
세계 최고의 실버 도시: 게임이 변한다 | 초고령화 사회가 온다 | 긴 수명이 던진 충격 | 연금 제도와 노소 갈등 | 가정의 평화가 무너지다 | 자살과 외로움의 일상화 | 사라지는 마을들 | 금가루처럼 귀한 젊은 가정 | 마을 합병 정책과 걸림돌 | 지방 자치와 지역 시장의 붕괴 | 실버가 아니라 골드: 인생은 일흔다섯부터 | 나이듦의 이미지 쇄신하기 | 고령 소비자 집단의 잠재력: 캐나다 인구수, 인도네시아 경제 규모 | 카지노처럼 운영하는 주간 보호 시설 | 삶의 마지막 단계를 책임지는 로봇 간병인 | 간병인을 돕는 로봇 동료 | 고령화 경제를 선도하는 산간벽지
8장 디지털화의 최첨단: 탈린
화분 하나와 씨앗 하나뿐인 미친 아저씨 | 대량 실업과 디지털 격차: 과학기술을 둘러싼 두려움과 우려 | 스마트 농장의 꿈: 어디든 텃밭이 된다 | 소련 치하의 비참했던 시절 | 젊은 정부, 과학기술에 깜깜이 베팅하다 | 엑스로드 시스템: 개인 정보를 지키는 안전장치 | 노동의 종말: 배달 로봇이 물류 인력을 대신할 때 | 인간 대 기계, 갈등의 역사 | 로봇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서비스업으로 산업 전환과 인공 지능의 발달 | 에스토니아의 두 번째 세상: 강제 이주가 낳은 유산 |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국적자들 | 첨단 정부의 일자리 대책 | 전 세계 누구나 전자 주민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국가 | 과학기술이 창출하는 새로운 일자리 | 언어와 민족 분열 치유하기: 수학, 컴퓨터 코드, 영어라는 새로운 국제 언어 | 발트 특급 열차에서 배우는 도전과 기회
9장 불평등화의 초극단: 산티아고
가장 급성장한, 그러나 가장 불평등한 경제 기적 | 미국의 대외 정책 변화와 시카고 보이스의 탄생 | 아옌데 정부의 사회주의 경제 실험과 실패 | 시장에서 만난 빈곤 탈출 이야기 | 피노체트와 시카고 보이스, 극단적 자유 시장 경제 모델을 도입하다 | 칠레의 기적 | 기적 뒤에 감춰진 풍경, 샌해튼과 쓰레기장 동네 | 최저 임금을 받는 산티아고의 중산층 | 높은 물가와 비싼 교육비 | 소득에 따라 완벽히 분리되는 거주 지역과 교육 성취도 | 부자와 가난한 자를 위한 교육은 따로 있다 | 대학 설립은 가장 돈 되는 사업이다 |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 펭귄 혁명에서 미래의 대통령감까지 | 산티아고 방식 시장 경제의 실패 이야기 |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사회: 상류층과 하류층은 이용하는 공원마저 다르다 | 칠레의 길이 가리키는 미래
에필로그: 미래를 위한 지침
감사의 글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10년 후, 극한의 미래에 대비하라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팬데믹과 같은 “극한 상황”이 자연재해든 정치적 격변이든 경제 위기든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경제와 삶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도전을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면서 회복탄력성을 키우지 않는다면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극한 전략” 아래 저자는 4대륙, 9개국, 16만 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 대장정에 나선다. 길거리와 시장, 집과 일터를 누비는 여정 속에서 5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 책에서 만나는 극한 경제 여행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성공을 거둔 3곳, 최고의 조건에서 최악의 실패를 겪은 3곳, 미래를 이끄는 추세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3곳이다. 인도네시아 아체, 요르단 자타리난민수용소, 미국 루이지애나주립교도소는 자연재해, 전쟁, 감금이란 비극을 딛고 일어서 극한의 생존을 이루어냈다. 중앙아메리카 다리엔, 콩고 킨샤사, 영국 글래스고는 천혜의 자연과 전략적 요지, 풍요로운 천연자원, 최고의 혁신과 발전에도 극한의 실패를 겪었다. 일본 아키타, 에스토니아 탈린, 칠레 산티아고는 인구, 과학기술, 부의 문제에서 조만간 전 세계가 맞닥뜨릴 극한의 미래를 오롯이 비추어 보인다.
저자는 앞으로 10년 가장 중요한 추세는 “고령화, 디지털화, 불평등화” 3가지라고 전망하면서, 현재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이 추세가 갈수록 심화하리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이 극한 경제가 자유 시장 경제 대 계획 경제, 공식 경제 대 비공식 경제, 전통 대 현대, 물질적 자본 대 인적·사회적 자본, 도시 대 시골, 개인 대 공동체, 인간 대 로봇, 노인 대 청년, 부자 대 빈자 등으로 대변되는 갈등과 분열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과연 이 대격변의 도전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기에는 어떤 위기와 기회가 도사리고 있을까? 어떤 요인이 성공과 실패를 가를까? 어떤 자산이 우리를 생존과 회복, 성장으로 이끌까? 이 책에서 저자는 향후 몇십 년간 진행될 극한 경제 시나리오를 손에 잡힐 듯 그려 보이면서, 거기에 맞설 선명한 생존 지도를 제시한다.
3가지 극한 경제 시나리오 : 초고령화, 초디지털화, 초불평등화
일본 아키타는 평균 연령 53세에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 중 3분의 1이 넘는 “초고령화 사회”다. 세계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2050년이면 한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고령화는 극심한 정부 재정 압박, 세대 간 불평등으로 인한 노소 갈등 심화, 막대한 돌봄과 간병 비용과 인력 등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고령화와 함께 인구 감소 추세도 뚜렷하다.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미 감소 중이며 독일은 2022년, 한국은 2030년대 초부터 줄어들 전망이다. 인구 감소는 마을 소멸, 지방 자치와 지역 시장(특히 주택 시장)의 붕괴로 이어진다. 인구 감소를 동반한 “초고령화”는 세계의 경제 사회 구조를 뿌리째 뒤흔들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과학기술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소련 치하의 가난한 나라에서 “발트해의 호랑이”로 급성장하며 “새로운 디지털 국가”로 거듭났다. 수도 탈린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정부(전자 정부)와 완전한 디지털 시민권(전자 신분증)을 구축한 도시이자, 창업률 세계 최고인 “스타트업 천국”이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세금, 투표, 행정 법률 문서 등 대부분의 공공 업무가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된다. 또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전자 거주증을 발급해 138개국 3만 5000명의 전자 주민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탈린이 선도하는 이런 “초기술화” “초디지털화”에는 우려와 두려움이 공존한다. 자동화(인공 지능 로봇과 기계)로 인한 대량 실업의 가능성, “디지털 격차”(정보 격차)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 개인 정보 보호, 빅 브라더 감시 사회 등이 그것이다.
급속한 성장과 빈곤 퇴치를 이룩한 칠레는 1인당 국민 소득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OECD에 가입해 남아메리카 국가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경제 기적”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기적에는 극심한 불평등이란 오점이 뒤따른다. 칠레에서는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 중 50퍼센트 이상을 가져가고 하위 90퍼센트가 나머지 50퍼센트 미만을 나누어 가진다. 이런 엄청난 빈부 격차 때문에 칠레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평등하다. 더 큰 문제는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를 동반한 빠른 성장”이라는 이 모델이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발전 경로가 되고, 칠레 수준의 불평등이 국제 표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가 선도하는 “초불평등화”는 전 세계 모든 국가와 도시에 사회적 분열과 갈등, 분쟁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아키타, 탈린, 산티아고는 이러한 극한 경제의 도전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우리 모두가 곧 맞이할 미래에 대비해 어떤 교훈과 통찰을 전할까?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
2004년 12월 26일 사상 최악의 지진해일(쓰나미)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서부 아체 지역을 덮쳤다. 진도 9.1의 초거대 지진이 일으킨 27미터 높이 파도에 14개국 약 23만 명이 사망하고 주택 500만 채가 파괴되었다. 아체의 주도 반다아체는 주민의 55퍼센트인 17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 마을인 람푹과 록응아에서는 90퍼센트가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처럼 끔찍한 재앙을 겪고도 아체 사람들은 금방 삶을 재건하고 심지어 더욱 번창하기까지 했다.
요르단의 자타리난민수용소는 시리아내전을 피해 도망친 시리아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2012년 건설되었다. 난민수용소인만큼 경제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으며 제품이나 서비스도 현금이 아닌 전자 카드로 정해진 품목만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타리는 3000개에 가까운 상점 수, 프랑스보다 높은 65퍼센트의 고용률, 1400만 달러의 월 매출, 그리고 미국의 연간 창업률 20~25퍼센트를 크게 웃도는 42퍼센트의 창업률을 달성했다.
루이지애나주는 미국에서 최고의 빈곤율과 비만율과 살인율, 최고의 수감율을 기록 중이며 루이지애나주립교도소는 미국 최대 규모, 평균 92년이라는 최장 형기를 자랑한다. 교도소에서는 당연히 경제 활동이 극도로 통제되며 현금(통화)은 사용 불가다. 그래서 담배를 대신 화폐로 사용해 왔는데 금연 정책으로 이마저 금지 물품이 되었다. 그러자 재소자들은 이에 대응해 “도트”라는 14자리 숫자로 된 경이로운 새 화폐를 발명해 냈다. 좋은 화폐의 모든 요건을 갖춘 동시에 주고받은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아 추적이 아예 불가능한 최첨단 화폐였다.
끔찍한 자연재해, 모든 것을 앗아간 전쟁, 완전한 자유 박탈 속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존하고 회복하고 성장하는 인간 잠재력과 회복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최고의 조건에서 왜 실패하는가
영국의 글래스고는 19세기부터 조선업으로 대표되는 제조업뿐 아니라 미술, 과학, 공학, 문학, 문화에 이르기까지 혁신의 원조로서 “현대의 로마”라 불릴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한 세기 만에 산업이 파탄 나고 실업률이 치솟고 남성 평균 수명이 54세까지 떨어지며 유럽 최고 도시에서 최악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파나마와 콜롬비아에 걸쳐 있는 중앙아메리카의 다리엔은 금부터 값비싼 목재까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천연자원이 원시 열대우림을 가득 채우고 있다. 또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가교로서 탁월한 전략적 위치를 지녔다. 하지만 오늘날 다리엔은 전혀 발전하지 못한 채 잊힌 지역이 되어 버렸다. 기껏해야 원주민 부족, 마약 밀수꾼, 자유의 투사, 도망자가 우글거리는 위험천만한 무법 지대라는 악명만 얻고 있을 뿐이다.
콩고와 이 나라 수도 킨샤사는 사탕수수와 팜유와 담배와 고무나무, 석탄과 구리와 황금과 다이아몬드와 주석,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우림과 두 번째로 수량 많은 강 등 막대한 자원과 강점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잠재력에도 킨샤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다. 1인당 국민 소득은 1997년 360달러 밑으로 떨어졌으며 콩고인 중 77퍼센트가 국제 빈곤선인 하루 1.90달러보다 적은 돈으로 살아간다.
발전과 혁신의 대명사, 천혜의 자연, 자원의 보고라는 최고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글래스고, 다리엔, 킨샤사는 어째서 몰락의 길을 걸었을까? 이러한 실패를 막아 줄 우리의 숨은 자산은 무엇일까?
책 속으로
프롤로그: 극한에서 배운다
“삶에서 극한 상황에 직면할 때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p.37
세계 대다수 국가는 3가지 추세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고령화, 과학기술로 촉발된 끊임없는 변화, 불평등 증가다. 이 추세는 일반적으로 피할 수 없으며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회복탄력성을 검증하는 시험이 되어 일부 경제를 실패로 몰아갈 것이다. 나는 케인스의 조언에 따라 최고로 고령화되고, 최고로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최고로 불평등한 지역을 물색했다. 일본 북부에 위치한 아키타秋田는 고령화의 첨단에 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linn은 과학기술의 첨단을 보여 준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Santiago는 불평등의 첨단을 걷는다.
머지않아 세계 인구 대다수는 오늘날 이 세 도시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압박과 기회가 공존하는 지역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는 이 세 경제가 속한 “전위대”의 삶이 우리의 잠재적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문임을 의미한다.--- p.42
1장 자연이 삶을 유린할 때: 아체
아체 연안에서 시작된 파열은 음속보다 9배 빠른 거의 시속 1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북쪽을 향해 400킬로미터까지 뻗어 나갔다.
이 진동은 “메가스러스트 지진megathrust earthquake”(해구형 지진)으로 알려진 진도 9.1의 이른바 초거대 지진을 낳았다. 이 지진으로 40제타줄(1제타는 10의 21제곱이다-옮긴이)의 에너지가 방출되었는데 이는 80년 치의 세계 에너지 소비량 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5억 개와 맞먹는 규모였다. 아체 해변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된 충격은 지축이 흔들리고 지구의 형태가 바뀌었을 만큼 거대했다(이제 지구는 더 완벽한 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그 결과 자전이 빨라지면서 하루의 길이가 조금 짧아졌다). 그야말로 500년에 한 번 일어날 만한 사건이었다. (…)
아체가 가장 먼저 가장 심한 타격을 입었지만 파도는 14개 나라에서 22만 7898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록응아와 람푹에서는 90퍼센트가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7500명이었던 인구가 불과 400명으로 줄어들었다. 아체 해변에서 온전하게 남은 건물은 라흐마툴라이슬람사원Rahmatullah mosque이 유일했고 나머지 모든 집과 호스텔, 식당이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아체 사람들은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들의 삶과 경제를 재건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회복했다.--- p.52~54
아체 사례에서 드러난 두 번째 측면은 진정한 인간 회복탄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1848년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전쟁이나 재앙으로 경제가 “초토화”된 이후 공동체가 다시 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를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벽, 다리, 창고와 같은 물리적 자본보다 한 나라나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 기술,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예상치 못한 회복탄력성의 원천이 존재한다고 밀은 생각했다. 어쨌거나 잃은 것을 재건해야 할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1662년 윌리엄 페티 역시 징역형 남발을 비난하는 논쟁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한 지역의 부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그러므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면 나라가 가난해진다고 주장했다.
아체는 밀과 페티의 요지를 증명하는 현대판 재앙이다. 아체 사람들은 모든 물리적 자산을 잃었다. 하지만 기술과 지식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고 덕분에 지진해일 이후 빠르게 재건에 성공했다. 아체는 경제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인적 자본human capital” 자체 그리고 인적 자본이 얼마나 많이 훼손되거나 보호받는지가 성공을 결정하는 열쇠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p.87
2장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갈 때: 자타리
난민수용소가 생긴 지 불과 2년 만인 2014년에는 이런 가게들이 1400개가 넘었다. 성인 6명 중 1명꼴로 사업체를 운영한 까닭에 자타리에서는 영국보다 흔하게 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매점은 계속해서 놀라운 속도로 늘어났다. 오늘날에는 3000개에 가까울 정도다. 물론 다른 난민수용소에도 가게들은 존재한다. 예컨대 자타리와 크기가 비슷한 케냐의 다가할리Dagahaley 정착지에는 1000개의 상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정착지는 생긴 지 20년이나 된 곳이다. 자타리의 창업 규모와 속도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하나의 경제 주체로서 자타리는 잘해 나가고 있다. 혼란했던 초기에도 프랑스보다 높은 65퍼센트의 고용률을 달성했다. 유엔난민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들이 연 이 무허가 가게들은 2015년 초에 이르러 매달 1000만 디나르(1400만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당연하지만 이 같은 결과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외부인들이 도움을 준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난민수용소 내 사업가들을 수시로 방해했다. 이 모든 것은 자타리가 경제적으로 풀어 볼 가치가 있는 퍼즐임을 의미한다. 한밤중에 등에 업은 아이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없이 난민수용소에 온 사람들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또한 자타리는 우리 생활에서 경제의 중요성과 관련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국가는 도움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p.98~99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도구나 “분배 메커니즘allocation mechanism”으로, 즉 소비자가 공급자로부터 적정 가격에 재화나 서비스를 얻는 수단이라고 흔히 설명한다. 바꾸어 말하면 시장은 의식주에 관련된 우리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실패하거나 변하면 우리의 기본 욕구, 특히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에서 아래쪽에 위치하는 더 기본적인 욕구들이 위협받는다.
상거래나 물물 교환을 바라보는 이런 피상적인 관점은 위험하다. 아즈라크의 시장 같은 인위적인 시장을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뿐더러, 경제와 시장의 변화를 유발하는 흐름을 쫓는 데 뒤따르는 진정한 비용을 잘못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즈라크의 중앙 통제 방식은 중요한 재원의 공정한 분배를 보장해 공평한 결과를 보증한다. 그럼에도 아즈라크 난민들은 더 이상 추위에 떨거나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을 뿐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그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하나같이 더 상위 단계의 욕구다. 이런 욕구는 상거래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개인의 선택에 따라 상점이 들어서고,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구매가 이루어질 때 충족될 수 있다. 따라서 더 깊은 의미에서 시장은 단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주성과 직업과 삶의 만족을 제공하는 목적 그 자체다.
두 난민수용소 사례에서 보듯이 이런 관점은 자주 무시된다. 예컨대 자타리난민수용소는 전혀 완벽하지 않지만 활기가 넘친다. 반면에 아즈라크난민수용소는 대재앙 이후에 등장한 악몽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요르단의 시리아난민사무국이나 유엔난민기구처럼 난민수용소들을 바꿀 권한을 가진 같은 공식 기관들은 통제되지 않고 무질서한 자타리의 출현을 이례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자타리의 실수를 교훈 삼아 아즈라크난민수용소를 아주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난민수용소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난민수용소들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매슬로가 제시한 인간의 욕구라는 측면에서 그들을 관찰한 결과는 그들의 공식 결론이 잘못되었음을 암시한다. 두 난민수용소는 이 책 2부에서 소개할 세 지역의 경제적 실패를 관통하는 중심 화두를 미리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즉 아무리 호의적인 정책 입안자라도 지극히 잘못된 경제 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 p.138~139
3장 자유를 잃고 세상과 단절될 때: 루이지애나
루이지애나주 수감자는 거의 3만 4000명에 달하는데 그들 중 94퍼센트가 남성이다. 그래서 인구 10만 명당 1387명이라는 전국 평균의 2배가 넘는 놀라운 남성 수감률을 보여 준다. 수감률만 놓고 보면 미국의 수도나 마찬가지인 루이지애나주에서 앙골라교도소는 유일한 최고 보안 시설 교도소다. 또한 부지가 맨해튼보다 넓은 1만 8000에이커로 미국에서 가장 큰 교도소다. 이곳에는 항상 5200명 수준의 남성 재소자들이 수감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영원히 이곳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앙골라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은 형기가 평균 92년이다. 즉 그들 중 7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다시는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p.144~145
엄청난 숫자의 재소자와 이례적으로 긴 형기는 아마 미국에서 가장 뒤숭숭한 주일 루이지애나주가 극한 지역임을 말해 준다. 루이지애나주는 가난하다. 평균 소득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반면 빈곤율과 비만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교육 제도 또한 실패해 전체 학생 중 26퍼센트(전체 흑인 학생 중 34퍼센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 루이지애나주의 삶은 폭력적이다. FBI(미국연방수사국)가 가장 최근에 자료를 공개한 2014년을 기준으로 살인 사건이 477건이나 발생했다. 인구 10만 명당 10명이 넘어서 미국 평균보다 2배 높은 살인율은 루이지애나주를 미국의 살인 수도로 만들었고 1989년 이래로 루이지애나주는 단 한 번도 이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p.151
디지털 금융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많은 정책 입안자들은 온라인 뱅킹을 늘리는 것이 불법 거래와 돈세탁을 막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론대로라면 디지털 경제가 현금 중심 경제보다 단속하기 더 쉬워야 할 것이다. 심지어 몇몇 나라는 모든 금융 업무를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해 경제를 정화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종이 화폐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화폐 발명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면 이런 희망은 순진해 보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외딴 섬부터 최고 보안 시설 교도소에 이르기까지 화폐 발명은 비공식적인 동시에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며, 루이지애나 교도소들에서 보듯이 이제는 추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국경 지대에서는 이미 새로운 디지털 “도트” 화폐가 실제로 돈세탁에 이용되고 있다.--- p.178
4장 천혜의 자연이 무법 지대로 변할 때: 다리엔
다리엔과 킨샤사, 글래스고는 이론상 세계를 선도하거나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번영했어야 할 지역들이다. 다리엔은 천연자원과 관련한 잠재력이 상당하다. 땅 밑에 있는 금부터 자단紫檀을 포함한 희귀하고 값비싼 각종 목재까지 천연자원이 원시 열대우림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다리엔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자산은 북아메리카대륙과 남아메리카대륙을 잇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가교로서 위치다. 이런 전략적 위치 때문에 다리엔은 수백 년 전부터 알려졌다. 초기 모험가들은 이곳에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무역 중심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면서 이 땅을 “세계를 여는 열쇠”로 만들기만 하면 확실한 경제적 성공이 뒤따를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다리엔은 오늘날 경제적으로 미개발된 채 사람들에게 잊힌 지역이다. 기껏해야 그들이 처한 위기와 위험성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다리엔의 대부분 지역은 규칙과 법규, 정부의 감시가 최소한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그 결과 원주민 부족에 더해 마약 밀수꾼이나 자유의 투사를 비롯한 도망자들이 사는 무법 지대다. 그들이 이곳에 머무는 이유는 진입하기가 불가능하고 금전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열대우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p.193~194
일자리가 없는 도시 야비사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런 일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주변 환경에서 가치를 뽑아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큰 항구에서는 2명씩 짝을 이룬 젊은 남성들이 그들의 유일한 장비인 노와 플라스틱 통을 챙겨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통나무배를 타고 강으로 나간다. 그들은 강바닥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 비탈진 강둑으로 운반한다. 강가에서는 다양한 등급의 모래와 자갈 무더기가 지역 건설업자들에게 플라스틱 통 하나당 20센트에 판매된다. 어떤 사람들은 몰래 숲으로 들어가 비싼 자단나무를 찾아 벌목한다. 자단나무는 보호종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마을에 있는 중국인 무역상이 그들에게서 자단나무를 구매해 수출할 것임을 안다. 국유지를 돌아다니면서 소에게 풀을 먹이고 새로운 초원으로 떠나기 전 도축한 고기를 판매하는 유목민 ‘캄페시노campesino’도 있다. 다리엔갭의 깊숙한 강 상류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무리를 이루어 물과 수은을 강둑에 쏟아부어 퇴적물에서 귀한 사금 조각을 채취하고 있다.
환경이 하나의 재산이라면 야비사 사람들이 어떻게든 삶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마치 재산을 야금야금 처분하듯 환경을 조금씩 떼어 파는 수밖에 없다.--- p.209~210
돈을 지불하고 안전하게 다리엔갭을 통과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없다는 사실은 또 다른 시장의 실패다. 네팔에서 러시아와 스페인, 볼리비아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들어가는 노정은 확실히 지구상에서 가장 긴 경제 이민 경로다. 그 여정 한중간에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다리엔 횡단)이 도사리고 있다.
젊은 불법 이민자들은 사명 완수에 헌신적이고 거기에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다. 엠베라족이든 또는 전직 콜롬비아혁명군이든 상관없이 지역 주민들은 돈은 없지만 정글을 잘 안다. 만일 비공식 시장이 꽃을 피울 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다. 정글을 잘 아는 현지인 전문가들이 가이드로서 그들의 서비스를 판매하는 시장 말이다.
하지만 유동 인구가 많은 이 지역에서 평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따라서 모든 상호 작용이 일회성으로 끝난다. 다리엔에는 기회주의,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행동, 불신 등 엘리너 오스트럼이 우려를 표한 부정적인 경제 문화가 팽배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불법 이민자들을 다리엔의 반대편으로 데려다주고 돈을 벌기보다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을 선호한다.--- p.235
5장 자원의 보고가 극빈 도시로 전락할 때: 킨샤사
100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킨샤사는 직업이 없다면 살고 싶지 않을 도시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콩고인 중 77퍼센트는 국제 빈곤선인 하루에 1.90달러보다 적은 돈으로 살아간다. 이곳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사람이 극한의 빈곤에 시달리며 빈곤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
다리엔이 어쩌면 육상 무역과 해상 무역이 만나는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면, 킨샤사는 어쩌면 그런 무역에서 세계 전역에 식량과 제조품과 자원을 공급하는 원산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잉글랜드 도싯에서 태어난 탐험가 버니 러벳 캐머런Verney Lovett Cameron이 1870년대에 중앙아프리카를 횡단한 이래로 사람들은 콩고가 독보적인 잠재력을 가진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캐머런은 사탕수수와 팜유, “품질이 매우 뛰어난” 담배에 대해 이야기했고 “거의 사방에 널려 있다시피 한” 고무나무를 기본으로 석탄과 구리, 황금이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콩고는 다이아몬드와 주석, 그 밖의 희귀 금속을 비롯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우림과 아마존강에 이어 두 번째로 수량이 많은 콩고강을 보유한 나라다. 킨샤사는 이런 천연자원에 더해 현대 경제가 번창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많은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이 도시는 파리와 표준 시간대를 공유하고, 이곳 사람들은 대표적인 유럽 언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인구는 젊은 층이 많고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킨샤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가진 도시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p.242~243
“킨샤사 경제의 첫 번째 규칙은 부패입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세금이고 이는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비슷했다. 소규모 가게부터 슈퍼마켓을 소유한 거물까지 또는 육체노동자부터 대학교수까지 킨샤사의 모든 사람이 세금 제도에 강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공식적으로 콩고의 사업체들은 한 달에 1번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킨샤사에서는 사실상 하루에 최소한 1번 이상 세금을 내야 하며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2번씩 세금을 내는 곳이 수두룩하다. 높은 세율(공식적으로 이익의 54퍼센트)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아무런 근거 없이 부과되는 온갖 추가 납입금이다. 카페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요식업자에 따르면 이렇다. “나는 매일 세금을 내고 방금 낸 세금의 영수증을 받는 대가로 또 뇌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세금 징수원에게 ‘염가’로 점심을 제공해야 하죠.” 그는 하루에 3번씩 1년에 1000번 넘게 세금을 내는 셈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두머리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라면서 크리스티앙이 자신의 대처법을 소개한다. (…)
이런 이야기는 문젯거리다. 오늘날 킨샤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종의 안전망으로 그들의 지역 경제에, 주로 비공식 경제에 의존하고 있음이 곧 명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 사람들의 자력구제self-reliance(거래와 물물 교환, 교역을 통한 회복탄력성) 철학은 너무 유명해 이런 특징을 가리키는 별도의 표현이 존재할 정도다. 바로 “헌법 제15조”로, 콩고 헌법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조항을 풍자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이런 문화를 대변하는 구호도 존재한다. “각자도생하라derouillez-vous pour vivre”라는 말로, 보통은 줄여서 “각자도생derouillez-vous” 또는 “시스템 DSysteme D”라고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 국가는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수십 년 전 대중화된 이 같은 사고방식은 여전히 킨샤사를 규정하는 풍조다.--- p.246~248
6장 최고의 산업 도시가 몰락할 때: 글래스고
이력 면에서 페어필드조선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클라이드강변에서 증기 동력을 이용하는 철선鐵船을 발명한 까닭이다. 19세기 말까지 전장이 107미터가 넘는 최첨단 증기선을 비롯해 세계 모든 선박의 5분의 1이 이곳에서 건조된 터였다. 게다가 이곳에서 건조된 거대한 선박들은 1870년에서 1910년 사이에 무역의 세계화를 주도했다. 현대 경제에 끼친 영향력의 지속성 측면에서도 글래스고와 경쟁할 수 있는 도시는 거의 없다. 예컨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이 수송 혁명을 이끌었을지 모르지만 글래스고의 선박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로 연결된 세상을 열었다. (…)
글래스고는 20세기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극심한 몰락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극한 경제를 보여 준다. 이 도시를 알기 위해서는 가장 좋았을 때와 나빴을 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에 이르자 글래스고는 “제국의 두 번째 도시”로 여겨졌다. 미술과 디자인과 건축에 더해 공학과 기술 혁신과 무역에서 런던을 앞서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영국의 수도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글래스고를 “현대의 로마”라고 부르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한 세기 만에 배는 사라졌고,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글래스고의 주택 지역 캘턴Calton에서는 남성의 평균 수명이 54세까지 떨어졌다(하물며 성인 인구 중 27퍼센트가 에이즈에 걸린 스와질란드의 평균 수명이 57세다). 글래스고는 현대의 로마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못한 곳으로, 유럽 최고의 도시에서 최악의 도시로 전락했다.--- p.294~295
아울러 글래스고가 모든 현대 도시에 전하는 경고는 “사방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경제 효과가 마셜의 설명처럼 정말 골치 아픈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다리엔갭의 부정적인 외부 효과는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지만 콕 집어서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따라서 관련 문제들을 근절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외부 효과가 긍정적인 경우에 논리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즉 도시의 모든 사람이 노동력, 기술, 공급망의 혜택을 누리지만 딱히 누구에게도 이런 혜택을 유지하고 관리할 책임이 없다. 글래스고의 잠재된 위험은 기존에 누리는 혜택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전혀 없다는 데 있었다.--- p.305
이 모든 사실로부터 퍼트넘이 내린 결론은 한 지역 사회의 행복과 민주주의와 경제는 그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르는 것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각종 클럽과 모임, 공동체는 신뢰의 규범과 호의를 주고받는 문화, 시민 생활에 참여하는 전통을 가져왔고 구현했다. 이런 전통과 비공식 기구와 문화 규범(북부의 사회적 자본)이 모두 합쳐져 무역과 정치 발전에 도움을 주었으며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긴급 대출 같은 특별한 지원 계획을 가능하게 했다. 반면에 남부에는 사회적 자본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웃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가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하라고 말하는 행동 강령인 이른바 “도덕관념 없는 가족주의amoral familism”라는 유해한 문화 규범이 만연했다. 사회 통합에 반하는 현상이었다. 남부 사람들은 그들이 착취당하고, 무력하고, 자신들의 삶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방향성을 잃은 느낌, 사회 통합의 부재, 더 큰 집단이나 프로젝트에 소속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는 무력감과 외로움. 뒤르켐과 퍼트넘이 지적한 이런 문제는 많은 글래스고 사람들이 도시의 몰락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 이야기하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p.319~320
7장 고령화의 초극한: 아키타
인구 통계 측면에서 보면 아키타는 벽지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최첨단을 달리며 미래의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다. 세계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많은 나라가 아키타가 선도하는 유행을 뒤따르고 있다. 예컨대 한국은 아직 일본만큼 고령화된 사회는 아니지만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2050년에 이르면 이 두 나라 모두 오늘날의 아키타와 비슷한 모습이 될 것이다. 즉 평균 연령이 53세에 인구 중 3분의 1 이상이 65세를 넘길 것이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인 중국은 같은 기간에 평균 연령이 35세에서 거의 50세로 늘어날 것이다. 서구에서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선두를 달리는 중이며 마찬가지로 30년 이내에 모두 아키타와 같은 인구 통계를 보이게 될 것이다(고령화가 더 느리게 진행되는 영국과 미국도 모두 고령 경제로 나아가는 추세가 뚜렷하다). 브라질과 태국, 터키 역시 모두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보이지 않는 몇 안 되는 곳은 콩고를 포함한 최빈국뿐이다. 오늘날 76억 명에 달하는 세계 인구 중 85퍼센트는 평균 연령이 상승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p.343
문제는 일본의 연금 액수가 너무 적은 동시에 너무 많다는 점이다. 아키타의 고령자들이 궁핍한 생활을 절약과 경작으로 메우며 은퇴 기간을 근근이 헤쳐 나가고 있다면 일본 정부의 재정은 장수 문제로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1975년 국가 세수에서 사회 보장과 의료 서비스 항목에 대한 지출은 22퍼센트였다. 이 비율은 노인 돌봄과 연금 등이 더해지면서 2017년 55퍼센트로 상승했다. 2020년대 초에 이르면 60퍼센트에 이를 예정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1975년 세수의 거의 80퍼센트가 투입되던 교육, 교통, 사회 기반 시설, 방위, 환경, 예술과 같은 다른 모든 공공 서비스에 이제는 세수의 40퍼센트 정도만 할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 예산 차원에서 고령화는 일본을 갉아먹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일본의 뒤를 이어 초고령화 경제로 나아가는 모든 나라가 직면하게 될 보편적 문제다. 고령화는 준비가 되지 않은 노인 세대 전체에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들은 더 많은 연금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젊은이들이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고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p.351~352
세계적인 저출산 추세는 대부분의 나라가 몸집이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령화와 달리 저출산 추세는 모든 곳에서 목격되지는 않지만(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약간 높은 출생률과 이민자 유입으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많은 국가의 구조를 바꿀 것이다. 이 부문에서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일본은 2010년 1억 280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로 10년째 인구가 감소하면서 2019년에는 1억 2600만 명을 기록했다. 특히 남부 유럽이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데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미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독일은 2022년, 한국은 2030년 초반부터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고령화 경제의 최첨단에서 25년 넘게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아키타는 미래를 보는 귀중한 창을 제공한다.--- p.361
인구가 감소한다는 사실은 일본 전역에서 아름다운 마을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앞으로 21년 뒤에는 전체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869개 지방 소도시가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p.365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정치 경제 구조 또한 실패하기 시작했다.
먼저 지방 정치를 예로 들어 보자. 후지사토의 정장이 제시한 야심 찬 아이디어들은 어떤 면에서 타당하다. 중앙 정부가 지방 분권화를 추진하면서 지방 정부에 과세와 지출 결정권(예컨대 교사 급여 결정 등) 일부를 넘겨주면서 일본 각 지방 당국은 지난 40년 동안 많은 자치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이런 아이디어들은 그저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마을이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라면 그 마을을 개혁하기 위한 원대한 비전은 당연히 무의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시가 축소되는 마당에 정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발상도 지역 민주주의를 고사시키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치러진 2015년 지방 선거는 의석 중 5분의 1이 후보자 부족으로 무경쟁 선거가 되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력 이양은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실과 별개로 이제 많은 곳에서는 적극적인 정치인이 너무 부족해 지역 민주주의를 아예 포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나아가 소멸을 앞둔 지역들에서는 필수 시장들이 작동을 멈춘다. 대표적인 예는 아마 주택일 것이다. 아키타의 텅 빈 마을들은 이 지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일본은 “아키야明家, 空家”(빈집)가 800만 채에 달하고 버려진 땅이 4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한 연구는 2040년에 이르면 이런 버려진 땅이 2배로 늘어나 오스트리아 면적과 비슷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한때 시골에만 나타나던 현상인 빈집은 이제 주요 도시들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향후 15년 안에 전체 주택의 35퍼센트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결과는 10년 전 영국과 미국에서 목격된 주택 경기 침체나 하락과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주택 가격은 추락한 것이 아니다. 거주할 사람이 없기에 아무리 가격을 낮추어 봤자 집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거래가 전혀 없으므로 “가격”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일본의 주택 시장은 곳곳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p.368~369
노년층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따른 세대 간 불평등과 불공평을 둘러싼 온갖 우려가 존재한다. 그런 반면에 노인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막대한 경제 활동을 창출한다. 일본은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1300만 명으로 스웨덴(900만 명), 포르투갈(1000만 명), 그리스(1100만 명)의 전체 인구보다 많다. 여기에 더 젊은 전기 고령자(65세부터 75세 사이 노인)까지 더하면 캐나다 전체 인구에 육박하는 3300만 명으로 늘어난다. 거의 120조 엔(약 1조 달러)에 가까운 일본의 노인 소비자 지출은 멕시코나 인도네시아의 경제 규모와 맞먹는다. 만약 일본 노인들이 그들만의 나라를 세운다면 세계 경제가 운영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들의 모임인 G20에 당당히 한 자리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p.378
일본이든 어디든 삶은 결국 마지막 단계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주간 보호 시설에 다니기가 불가능하며 대신에 상시 개인 간병과 관찰이 필요해진다. 여기서 일본은 또 다른 중대 상황에 직면한다. 말기 단계의 간병은 대체로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거나 그들을 침대에서 욕조로 옮기는 것 같은 일대일 업무다. 이 또한 채용 담당자들이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3K” 직업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일에 필요한 인력의 숫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알기는 어렵다. 일본 의사들은 2040년까지 개인 간병인 수를 4배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을 통틀어 생각하면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에 65세 이상 인구는 320만 명이 증가할 것이다. 현재 해당 연령 집단의 약 20퍼센트는 전적인 또는 부분적인 보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64만 명의 새로운 돌봄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면에 이 세 나라의 노동 연령 인구는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말기 단계에 딱 맞춘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매우 부족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 전역에서 발명가, 의사, 간병인이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개인 간병을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하는가? 로봇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가?--- p.385~386
8장 디지털화의 최첨단: 탈린
렙과 같은 과학기술 낙관론자들과 내가 일본에서 만났던 간병 로봇 발명가들은 그들의 발명품이 미래 경제가 직면하게 될 도전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또한 전 세계에서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킨다. 선거와 사생활, 윤리 문제를 둘러싼 우려와 정치적 두려움 외에도 2가지의 깊은 경제적 우려 때문이다.
첫 번째는 대량 실업의 가능성이다. 소프트웨어나 기계 같은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한 기술이 인간 노동자를 정리 해고할 것이라는 우려다. 자동화가 불러올 일자리 손실을 둘러싼 추산은 다양하지만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약 25퍼센트와 영국 노동자의 약 30퍼센트가 기계로 대체될 위험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들이 몰려오고 있으며 우리 일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이유다.
두 번째 두려움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불공평하게 이루어져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정보 격차)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우려의 핵심은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혜택이 다른 이들의 희생 위에서 젊은이와 도시인, 교육받은 사람, 부자와 같은 일부 집단에게만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과학기술이 끼칠 영향을 둘러싼 우려는 탈린을 흥미로운 실험장으로 만든다. 아키타가 조만간 우리가 경험하게 될 고령화 경제를 엿볼 기회를 제공하듯이, 탈린은 디지털 경제의 극한 미래를 보여 주는 창이다. 탈린은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걷고 있으며 우리 경제에서 이제 겨우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과학기술을 진작부터 채택해 왔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에 근거해 스카이프 본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이 도시를 “스타트업 천국start-up paradise”으로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탈린은 인구 대비 새로 설립되는 기업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과학기술의 역할은 에스토니아를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유형의 선도 지역으로 부각시킨다. 탈린은 세계 어느 곳보다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정부가 들어선 곳이며 가장 먼저 완전한 디지털 시민권을 구축한 도시다.--- p.399~400
1990년대 말 에스토니아는 전체 학교의 97퍼센트가 인터넷에 연결되고, 초등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쳤으며, 디지털 기반 시설에 상당한 예산을 투자하고,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법안이 채택된 상태였다. 에스토니아는 소련 지배에서 벗어난 첫 10년 안에 경제가 성장한(14퍼센트나 성장했다)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발트해의 호랑이로서 계속 상승세를 이어 가는 중이다. 1987년 200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GDP가 2018년에는 2만 2000달러로 늘어나 그들이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핀란드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에스토니아의 도박과 이 도박이 경제에 끼친 영향을 돌아보며 프로젝트의 초기 설계자 중 하나인 비크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과학기술은 단지 가속 장치에 불과하며, 따라서 낡은 업무 방식에 과학기술을 적용할 경우에는 비효율성을 증폭시킬 뿐이죠.” 정치적?경제적 힘으로서 경제 디지털화는 미묘하고 복잡하다. “과학기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죠. 그렇다고 절대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라고 비크는 말한다.--- p.409
엄청나게 진보한 인공 지능이 다가오고 있으며 조만간 우리의 근로 생활에서 목격될 것이다. 인공 지능이 제어하는 기계들은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며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그 이상을 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최첨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제공한다. 기계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p.425
오늘날 에스토니아는 138개국에 3만 5000명의 전자 주민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정부의 홍보 안내문에서 “새로운 디지털 국가New Digital Nation”라고 부르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에스토니아의 전자 주민이 되기는 쉽다. 웹사이트에 기본 정보를 입력하고 사진 한 장과 여권 스캔 파일을 업로드한 다음 수수료 100유로를 지불하고 마지막으로 신분증을 수령하고 싶은 에스토니아 대사관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5분 이내에 모든 과정이 끝난다. (…)
〈아유야트〉 대회 운영을 돕는 지역 사업가 하리 탈린Harry Tallinn은 혁신을 장려하는 정책을 둘러싼 에스토니아의 급진적 실험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는 최근 5년간의 우승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추적했다. 그 결과 이미 그들이 다 합쳐 25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2017년 상반기에만 100만 유로의 세금을 납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 수치들은 틀림없이 계속 상승할 터였다. 〈아유야트〉와 관련 있는 스타트업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투자자들로부터 3000만 유로가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 돈이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하면 공급자의 수입과 직원 월급, 정부가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모두 증가할 것이다.
에스토니아가 새로 도입한 범주의 시민들 또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7년 말까지 해외 전자 주민들은 에스토니아에 거의 3000개에 달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에 따라 향후 4년 안에 GDP를 3000만 유로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p.436~437
과학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에스토니아는 특유의 방식으로 과학기술에서 어디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지 상기시킨다. 직장의 자동화나 중요한 직무의 자동화는 인간의 직책을 바꾼다. 아울러 인간의 본질적인 역할과 사회적인 지위에 변화를 가져온다. 역사의 교훈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대량 실업을 유발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인간이 담당하는 직무에 대규모 전환(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서비스업으로)을 초래했다.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걷는 에스토니아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즉 일자리가 부족해지기보다 일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p.449
9장 불평등화의 초극단: 산티아고
오늘날에는 1인당 국민 소득이 거의 1만 4000달러로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고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이 같은 이례적인 성과에 힘입어 칠레는 2010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고, 공식적으로 “신흥국” 지위를 졸업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최초의 남아메리카 국가가 되었다. 이즈음 급속한 성장과 빈곤 퇴치를 이룩한 칠레는 “경제 기적”으로 간주되었다. 유력한 국제기구들은 앞다투어 모범적인 발전 사례로 꼽으면서 “칠레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을 다른 나라들에 강력하게 권유했다.
이 성공 이야기에서 한 가지 오점은 칠레의 기적 같은 성공이 극심한 불평등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칠레는 가장 신입이자 가장 성과가 높은 OECD 회원국인 동시에 거대한 빈부 격차 때문에 이 부자 클럽 내에서 가장 불평등한 경제를 가진 나라다.--- p.457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를 동반한 빠른 성장이라는 산티아고가 앞서 걸은 길은 오늘날 발전으로 나아가는 가장 보편적인 경로가 되고 있으며 칠레 수준의 불평등은 빠르게 국제 표준이 되어 가고 있다. 합쳐서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인도와 중국 역시 지난 30년간 경제 규모가 확대되면서 모두 이전보다 더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칠레와 이웃한 페루의 리마부터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커지는 도시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곳이 되어 가고 있다.
미래 경제는 아키타처럼 고령화되고, 탈린처럼 디지털화되고, 산티아고처럼 불평등해질 것이다.--- p.459
사회 곳곳에서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곤란한 문제일 뿐 본질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녹음이 우거진 라스콘데스에서 롤프 루데르스가 말한다. “상대 소득과 절대 소득,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른바 “칠레의 기적” 시기는 불평등을 둘러싼 논쟁에서 핵심인 이런 평가 기준이 경제가 더 윤택해질수록 어떻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1973년부터 1980년대 말 사이에 칠레에서 가장 가난한 하위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근로자의 소득이 증가했고 따라서 “절대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상황은 더 나아졌다. 이는 빈곤율이 인상적으로 감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소득층의 수입은 같은 기간에 훨씬 더 빠르게 상승해 상위 10분의 1 소득자의 급여가 칠레 국민 평균보다 적게는 7배에서 많게는 거의 35배까지 치솟았다. 칠레의 소득 총액은 더 늘어났지만 가장 부유한 10분의 1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더 줄어든 것이다. “상대적인” 측면에서 소득이 더 낮은 사람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 셈이다.--- p.475
이곳 부부들은 대체로 비슷한 수입 구조를 보인다. 핑크 플로이드 티셔츠를 입은 에르넬 고메스Ernel Gomez는 알루미늄과 유리를 재생하는 일을 하면서 한 달에 42만 페소를 벌고 그의 아내 마르게리테Marguerite는 미용사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베르타처럼 최저 임금을 받는다. 이곳 주민들의 부부 합산 소득은 한 달에 대략 70만 페소로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칠레 가정의 빈곤선은 한 달 60만 페소로 정해져 있다. 세르히오와 베르타 부부를 비롯해 이곳의 다른 부부들은 전부 그 이상을 벌기 때문에 공식 기준에서 가난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소득은 산티아고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뚜렷한 예다. 만약 칠레의 국민 소득이 공평하게 분배된다면 평균 가정은 쓰레기장 주민들이 버는 돈보다 4배가 많은 280만 페소를 받을 것이다.--- p.481
“산티아고의 교육 시장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케이크와 같아요”라고 와이스블루트가 말한다.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고, 반쯤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으며, 덜 부유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중산층 아이들이 다니는 수많은 학교,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죠.”--- p.489
시장 경쟁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때 기업 간 경쟁은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인다. 자유 시장이라는 이상 위에 만들어진 칠레의 교육 제도에서 대학 학위 취득에 드는 평균 비용 대 평균 소득의 비율은 41퍼센트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는 학위를 마친 학생들이 막대한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의미다(평균적인 졸업생이 15년 동안 소득의 18퍼센트를 빚 갚는 데 써야 하는 형편이다). 대학의 이윤 추구는 교육비 가격은 높이고 학생 복지를 비롯한 비용은 줄이도록 요구한다. 칠레는 대학을 자퇴하는 비율이 50퍼센트에 이른다. 이 거북한 통계에서 칠레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산티아고에는 에마누엘처럼 빚만 잔뜩 진 채 불완전한 학위를 가진 사람들로 넘쳐난다.--- p.494
비싼 닭고기와 비싼 버스 요금, 제 가치보다 값이 부풀려진 두루마리 화장지는 칠레 저소득 가정의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더불어 국가 구조에서 지나치게 심대한 역할을 하는 시장에도 문제가 있다. 칠레에는 단 2개 기업이 신문 시장의 85퍼센트와 온라인 뉴스의 85퍼센트, 광고 수익의 8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 역시 특정 기업에 집중되어 소수의 건강 보험 회사가 시장을 지배한다. 겨우 3개의 제약 회사가 의약품 구매 시장의 90퍼센트를 좌우하고 있으며 이들 회사는 모두 최근의 공모 사건에 연루되었다.--- p.502
산티아고의 불평등 문제는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곳의 사회 계층은 절대로 섞이지 않아요”라면서 한 외국인이 사무실 야유회를 겸해 여름 소풍을 계획했다가 무산된 일을 회상한다. 문제는 장소와 활동을 “쿠이코cuico”인지 아닌지로 구분하는 관습적인 분열이다(막연하게 “상류층”을 의미하는 “쿠이코”라는 단어는 노동자 계층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부유한 계층에서는 흔히 애정이 담긴 표현으로 사용된다). “쿠이코 공원과 비쿠이코 공원이 따로 있고, 이쪽에 속한 사람은 저쪽에 속한 사람을 방문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을 벗어나면 서로 만날 일이 없죠.” 공식적으로 산티아고의 공원들은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장소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불평등 문제는 공원을 소득에 따라 이용권이 주어지는 사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p.506~507
극단적인 불평등을 동반한 빠른 성장이라는 칠레의 길은 많은 신흥국과 그 속에서 계속 확장되는 중인 도시들이 뒤따르는 길이다. 그리고 같은 길을 가려는 추종자들에게 산티아고는 한 가지 사실을 경고한다. 바로 자유 시장이 항상 가치를 창출하지는 않듯이, 강력한 성장 또한 그것이 약속하는 듯 보이는 발전을 항상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산티아고는 매슬로의 피라미드를 아래위로 길게 잡아 늘린 도시가 되었다. 다양한 기본 욕구를 충족하기는 더 쉬워진 반면, 교육이나 자주성 등과 관련된 자아실현 욕구는 아예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졌다. 칠레는 남아메리카대륙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나라다. 하지만 선진국 집단인 OECD 내에서 가장 빠르게 상승하는 비만율과 가장 낮은 학업 성취도, 가장 높은 대학 비용과 가장 높은 자퇴율을 보인다. 내가 산티아고에서 보낸 시간은 이 모든 것이 불평등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p.509
에필로그: 미래를 위한 지침
세계에서 가장 극한 상황에 놓인 경제는 2030년이 주는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대해 무슨 말을 들려줄까?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가 찾아가는 곳에 대해 우리가 잘 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도시화가 한 예다. 195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시골 지역에서 살았다. 대다수 사람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은 시골에서 겪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다가 수십 년에 걸친 이주로 도시는 팽창하고 시골 마을은 오그라들었다. 결국 기념비적인 해인 2007년을 기점으로 세계 도시 인구가 처음으로 시골 인구를 추월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020년부터 2030년까지 도시 인구는 거의 7억 9000만 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이 자체로 미국 인구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는 43개로 늘어날 것이다. 2050년에 이르면 1세기 전과 정반대로 뒤바뀌어 세계 인구의 70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있을 것이다.--- p.512
출판사 서평단
향후 10년 중 가장 중요한 추세는 이 책 3부에서 설명한 “고령화, 디지털화, 불평등화” 3가지일 것이다. 이 추세들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현재도 엄청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2030년이 되면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네 나라는 50세 이상 시민이 그 이하 연령대를 합친 수보다 많아지면서 오늘날의 아키타와 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첨단 기술(로봇과 자동화된 소프트웨어)은 더 많은 작업장에 영향을 끼칠 것이며, 디지털화는 에스토니아 정부가 탈린에서 취한 것과 같은 조치를 모방하며 비용 절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공 부문을 통해 갈수록 확산될 것이다. 여러 신흥국에서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이 전체의 50퍼센트에 가까워지면서 산티아고식 도시 불평등화는 더욱 보편화될 것이다.
지구상 대다수 사람에게 2030년은 이 세 도시의 종합 세트가 될 것이다. 즉 인구통계학적으로 고령화되고,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도시 사회가 될 것이다.--- p.513
조류의 배설물이 굳어져 만들어진 구아노는 과거부터 비료로 많이 이용되었다. 잉카 제국의 영토나 페루 등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구아노는 인공 비료가 없던 대항해시대에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착취했던 자원 전쟁의 대상이었다. 덕분에 지천에 널려 있는 "새똥"을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남미 국가들은 심지어 구아노 채취 외에는 국민들이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수십 만 년 동안 쌓여 생성된 구아노가 바닥을 보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프란츠 하버의 질소 고정 연구가 인공 비료의 대량 생산까지 이어지자 기존의 구아노 수입국들은 더 이상 구아노가 필요없어졌다. 지역의 모든 경제가 구아노 생산으로 이루어졌던 일부 도시는 결국 파멸의 길을 걷고 만다.
풍부한 자원, 전 세계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 자연스레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환경 등 영광스러운 과거를 지녔던 도시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도시에 살던 인류는 현재의 영광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며 자연적으로 주어진 환경을 갈고 닦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외려 한계까지 착취하고, 노동력을 갈취했다. 그렇게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만에 명운이 갈린 도시들은 21세기 초거대 도시의 조건을 충족하는 메트로시티를 시기하며 과거만을 떠올릴 뿐이다.
<2030 극한 경제 시나리오>는 찬란한 과거를 지녔지만 다양한 이유로 몰락과 쇠퇴의 길을 걷게 된 10여 개의 도시를 통해 경제 순환의 주기를 설명하고 미래에 대한 조심스런 예측을 전하는 책이다. 천혜의 자원 환경을 통해 수백 년 동안 거대한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던 도시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원이 나무이든, 무기질이든, 광석이든 인류의 탐욕 앞에서 한계는 명백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상당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여타 이유로 발달한 도시들 또한 오랜 시간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허나 마찬가지로 대다수는 새로이 바뀌어 가는 경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져 갔다.
10여 개의 도시들이 지니고 있는 서사는 상당히 장구하고 복잡한 편이다. 독자들은 글래스고, 다리엔, 산티아고 등의 도시를 통해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고, 경제 순환의 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라는 복잡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통해 세계 여러 도시가 만들어내는 정교한 화학작용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서울과 뉴욕이 왜 거대한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함께 추정할 수 있고, 상하이와 도쿄가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성장해야 할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여러 도시와 국가는 바로 2~3년 전에 비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토록 참담한 전염병은 예측할 수 없었지만 대응은 오롯이 현재의 몫이다. 유례 없는 변화를 맞이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을 위해서는 역사 속 도시의 흥망성쇠를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이다. 그속에 모든 답이 있다.
- http://blog.yes24.com/document/15514857
현재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한 상황에 처해있다. 백신의 강제 도입이 전세계에서 하나 둘씩 이뤄지고 있고, 팬데믹을 이유로한 방역은 수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보게 된 이 책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극한의 여러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나름의 어떤 규칙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상황을 변화시켜 나가고 또 그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극한의 생존을 경험한 인도네시아 아체, 요르단 자타리난민수용소, 미국의 루이지애나주립교도소, 극한의 실패를 경험한 파나마의 다리엔, 콩고의 킨샤사, 영국의 글래스고, 미래를 선도하는 극한의 일본의 아키타, 에스토니아의 탈린, 칠레의 산티아고 이 9개의 도시의 사례를 통해 성공, 또는 실패의 토대가 된 경제 요인들을 찾아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서 현재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극한 상황에 처한 곳을 방문하여 이들의 삶을 통해 경제적 회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겠다는 발상이 매우 신선했다. "삶에서 극한 상황에 직면할 때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는 견해를 최초로 정립한 해부학자 윌리엄 하비 박사의 주장은 공학 분야에서도 받아들여져 데이비드 커칼디라는 공학자도 극한의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견해는 잠재력의 한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부서진 파편을 수집해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1부에서는 미래를 열어젖힌 회복과 성장 이야기로 쓰나미로 완전히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의 아체,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의 집 자타리난민수용소, 자유를 잃고 세상과 단절된 루이지애나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어떤 경제 활동을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지 보여준다.
2부에서는 미래를 잃어버린 실패와 몰락 이야기로 천혜의 자연이 무법지대로 변한 파나마의 다리엔, 자원의 보고가 풍부했지만 극빈 도시가 되어버린 콩고의 킨샤사, 파산한 최고의 산업 도시 영국의 글래스고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으며,
3부에서는 고령화의 초극한 도시인 일본의 아키타, 디지털화의 최첨단 도시인 에스토니아의 탈린, 불평등화의 초극단인 칠레의 산티아고를 통해 미래에 우리가 직면할 '고령화, 디지털화, 불평등화'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이미 경험 중인 도시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리처드 데이비스는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경제와 관련하여 설명하는데, 인터뷰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 위주의 여행기같은 책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체>
2004년 12월 26일 아침에 밀어닥친 쓰나미로 인도네시아 아체는 그야말로 초토화 되었다. 500만 채의 주택이 파괴되었으며 2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파괴된 아체에서 남은 사람들은 또 다시 일어나 그들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경제는 성장하고 이전보다 더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저자는 금이 지역 경제의 화폐이자 중심이었던 아체의 전통적인 자금 조달 방식과 국제 원조 단체들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초기에는 이 비공식 상거래와 교역, 비공식 화폐 시스템이 그들이 빠르게 재건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이후까지 지속된 회복탄력성은 국제 원조 단체 사람들의 기술과 안목을 채용한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쓰나미로 인한 아체의 파괴와 재건의 과정을 보며 1950년 북한의 침공에 의한 6.25 남침 전쟁을 돌아보게 되었다. 전쟁으로 완전히 황폐화되었지만, 국제 사회의 도움과 훌륭한 리더의 리더십 아래 사람들의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이후 전세계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가져오고,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 하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 오버랩되었다. 경제의 회복탄력성에 있어서 물리적 자본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 기술,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존 스튜어트 밀은 생각했다는데, 완전 동감한다. 직접 경험한 나라에 살고 있고, 그 유산들을 우리가 누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타리난민수용소>
요르단 자타리 난민 수용소는 시리아 난민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난민 수용소는 이 곳 말고도 한 곳 더 있는데, 이곳 주민들은 그 두 곳을 완전히 반대로 평가하고 있다. 자타리 난민 수용소는 시리아 내전 초기에 시리아 남부 도시 다라가 전쟁의 중심지가 되면서 2012년 7월에 건설되었다. 다라에 거주하던 10만 명의 시민은 피난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거주지가 된 자타리난민수용소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난민수용소가 되었다. 이 곳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활기찬 난민수용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비공식 경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북한의 장마당이 떠올랐다. 북한 당국이 배급을 한다면서 장마당을 단속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굶어죽고 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차라리 배급을 하지 말고 장마당 단속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바람이라는 말이었다. 계획 경제가 시장 경제를 이길 수 없는 당연한 진리를 자타리난민수용소에서도 본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수용소인 아즈라크난민수용소의 사례로도 깨닫게 된다.
칼레드라는 어린 밀수꾼은 비공식 공급망의 저력을 보여준다. 밀수꾼들이 자타리에서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외부에서 들여오는 재화가 자타리 내의 수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
이 곳 사람들은 지원받는 전자 화폐를 이용하여 필요없는 물건을 구입하고 이를 현금으로 바꾸어 밀수꾼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사는 식으로 자신들만의 경제 시스템을 성장시키고 있는데 매우 똑똑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경제는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이 곳에서 사업을 하는 많은 사례들도 인상깊었는데 난민촌에서도 사람들은 아름다움, 개성,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을 원하고 있었고, 사업가들은 고객 수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여 만족시키기 위한 사업체를 운영중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든, 그곳이 난민수용소라 하더라도 사람들 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단계에 의하면 사람들은 생리적 욕구-안전 욕구-애정/소속 욕구-존중 욕구-자아실현 욕구가 있고 이 순서로 욕구를 충족시켜 나간다고 보았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 욕구들 모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매슬로우는 1908년 브루클린에서 키예프 이민 가정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런 욕구 단계를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것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빅터 프랭클 박사도 그렇고, 홉스, 로크, 루소 등 여러 학자들의 사상이나 아이디어들을 보면 결국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배경 지식을 가졌기에 매슬로우는 생리적 욕구-안전 욕구 처럼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욕구를 그렇다고 여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경험이든 부모의 경험이든 말이다.
아체와 마찬가지로 자타리에서도 번영하는 시장 경제의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자연에 의해 폐허가 됐든, 전쟁에 의해 폐허가 됐든 다시 일어나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사람들이 필요한 것들을 자유롭게 사고 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직업이 생겨나고 시장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가 활기를 찾는 것이었다. 결국, 그것이었다.
<아키타>
평균 연령이 53세가 넘는 아키타는 일본 최초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50세가 넘고 3분의 1 이상이 65세를 넘긴 현이다. 빠르게 고령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아키타는 고령화의 최첨단을 달리며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해지고 있는데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아키타 현과 비슷한 모습이 될거라고 한다. 몇몇 연구자들이 초고령화 사회가 되어 간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첫째, 인간의 수명 증가, 둘째, 낮은 출생률이다. 아키타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지역 사회의 모습도 다른 도시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인터뷰한 노인 이시이가 이렇게 말한 부분을 보며 이게 곧 우리에게 닥칠 일이구나 싶었다. "우린 이렇게 오래 사는 것에 대비되어 있지 않았어요. 우리 부모님 세대 중 대다수는 더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 나라도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나라이고 많은 노인들이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채 살고 계시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령화는 여러 문제를 가져오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외로움과 자살이라고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국가, 지역사회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
아키타는 고령화 사회지만 비공식 경제가 매우 활성화된 도시다. 이 곳에 사는 많은 고령 부부들은 자급자족을 넘어 자신들이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한 과일과 채소를 지역의 도로 휴게소로 가져가 거래를 한다. 일본의 고령 소비자 집단은 캐나다의 인구수, 인도네시아의 경제 규모와 맞먹는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늘어난 노년층의 요구를 해결하거나,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막대한 경제 활동을 창출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해주면 돈은 따라온다는 진리를 당연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극한의 상황에서 맞딱드리는 여러 문제들이 '비공식 경제'와 '회복탄력성'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반복하여 제시한다. 이를 통해 인류가 어떤 극한의 경험을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http://blog.yes24.com/document/15515879
고령화·불평등화·디지털화의 저 너머…‘극한 경제’를 보러 가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선진국과 저개발국,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 전 인류를 ‘극한’으로 몰아넣으며 경제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전 지구적 위기가 언제든 또다시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뒤, 인류의 일터와 일상을 위협하고 파괴할 수 있는 어떤 극한의 도전이 찾아올까? 극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떤 지혜와 역량을 갖춰야 실패를 피하고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영국 런던정경대학 경제학 교수 리처드 데이비스는 그 답을 찾아 극한 경제 여행에 나선다. 4대륙 16만㎞를 가로지르는 여정에서 저자는 최선의 성공을 거둔 곳(아체·자타리·루이지애나), 최악의 실패를 겪은 곳(다리엔·킨샤사·글래스고), 최첨단 미래를 달리는 곳(아키타·탈린·산티아고)을 방문한다. 이 극한의 여행지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교훈과 통찰을 얻기 위해서다.
초고령화 , 초디지털화 , 초불평등화
저자는 앞으로 몇십 년간 경제를 좌우할 중요한 추세로 ‘고령화’ ‘디지털화’ ‘불평등화’ 세 가지를 꼽는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추세는 불평등화일 것이다. 197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악명 높은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극단적인 자유시장 경제를 도입해 모든 공공부문과 산업의 민영화, 각종 규제 철폐, 정부 축소를 단행한다. 그 결과 칠레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경제 기적”으로 칭송하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입을 모아 본받으라고 권하는 나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자 ‘선진국’으로 올라선다.
그러나 급성장 신화의 이면에는 상위 10%가 국가 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하위 90%가 50% 미만을 나눠 가지는 초불평등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화장지부터 닭고기, 버스, 신문, 의료 등까지 각종 재화와 서비스 시장을 소수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기회균등을 보장한다는 교육은 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질은 형편없다. 받을 수 있는 교육과 학업 성취도가 소득수준에 따라 엄격히 나뉘는 계층 서열화된 시장을 이룬다. 나아가 부자와 빈자는 공원 등 이용하는 공공시설마저 구별된다. 더 큰 문제는 극심한 불평등화를 동반한 성장이라는 칠레 방식이 빠르게 국제 표준이 돼간다는 사실이다.
이 밖에 전자정부와 인공지능 등 기술 발전으로 ‘초디지털화’를 선도하는 에스토니아의 탈린은 대량 실업의 우려, 디지털 격차(정보 격차)로 인한 불평등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50살 이상이 인구 절반을 넘어 ‘초고령화’의 극한인 일본의 아티카는 정부 재정 압박, 노소 갈등, 마을 소멸, 지역 시장과 민주주의 붕괴 등의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는 조만간 맞닥뜨릴 이런 추세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극한의 성공과 실패 속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다.
결국 사람이 답이다
인도네시아의 아체는 2014년 끔찍한 지진해일로 초토화됐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재건에 나서 생존하고 회복하고 심지어 경제가 성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비록 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물질적 자산은 모두 잃었지만 사람들의 기술과 지식, 생각과 노력은 온전히 남았기 때문이다. ‘인적 자본’이야말로 극한의 위기에 맞서는 인간 회복탄력성의 비밀임을 아체는 입증해 보였다.
영국의 글래스고는 한때 “현대의 로마”로 불리며 세계를 주도하던 혁신 도시였지만 한순간에 산업이 파탄 나면서 최악의 실업률과 조기 사망률을 기록하는 도시로 전락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사회적 자본’의 상실이 한 요인이었다. 에밀 뒤르켐은 “사회 통합” “정신적 상호 지원”의 부재가 자살을 낳는다고 통찰했으며, 로버트 퍼트넘은 이탈리아 연구에서 “사회적 자본” 유무가 북부 이탈리아의 발전과 남부 이탈리아의 쇠퇴를 갈랐음을 밝혀냈다.
공식 경제는 흔히 물질적 자본과 금융자본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극한 사례들에서 보듯 앞으로 닥칠 도전에 대비하려면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 등 비공식 경제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든 계획경제든 경제란 결국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한경 부키 편집자 sunghk@book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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