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국민-중앙
재계 대변인' 전경련 위기...4대그룹 탈퇴하고 정부는 '패싱'
"물량 반토막 나서 불안한데 노조 지도부는 꿈쩍안해"
“광고압박 없다”던 삼성, 교묘한 광고 통제
소득격차 확대]① 상위 10%가 싹쓸이…1980년대와 달라진 한국
[소득격차 확대]② 곳간만 쌓아둔 대기업, 나누지 않았다
70%가 자유여행…최저가 내세운 글로벌 앱에 여행사 속수무책
공무원부터 승려까지 "한국 싫다"… 혐한 얼룩진 일본
“학살 뒤 모든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카인럼 마을 학살, 청원 운동 통해 처음 확인돼
일본군 위안부 유엔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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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김학의, 청와대서 뛰어놀던 사이"
제조업 위기설의 실체
교수님들의 ‘우리가 남이가’
문 대통령 “촛불혁명 주역 시민단체, 국정 동반·참여자”
靑 시민단체 간담회 참석 78개 단체…진보·중립 성향 많아
표적이 된 '블룸버그' 기사, 정말 편파적이었을까
'도 넘은' 민주당 논평... 민주주의와 거리 멀었다
'언론 핍박' 한다는 '외신기자클럽' 성명, 박근혜 땐 달랐다
국가부채 1700조 육박…공무원·군인연금이 절반 이상 차지
나라 곳간 두둑한데…국민 1인당 빚부담 1300만원
잔인한 서북청년단, 4.3때 여성들에게 무슨 짓 한 건가
제주4·3, 진압을 거부했던 군인들을 기억하다
4.3항쟁 71주년 기획 : 육지 것은 모르는 제주에 대하여
‘제주 4.3’ 진실 왜곡 단체에 국민혈세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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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5060세대 24명 평균 "월 소득 650만원→129만원"(중앙)
국회의원 1/3 농지 소유…농지법 위반·공문서 위조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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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목 내자”던 의원, 고속도로 인근 농지에다 ‘2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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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퇴직금 과세 후퇴]퇴직금 수입 전체 과세 원칙에도 “2018년 이후 소득에만 과세”
[단독] 단역배우를 ‘1% 고위층’에 알선… 브로커 고씨의 ‘성매매 캐스팅’
퇴직하자마자 닥친 생활고, 50·60 가족까지 파괴된다
어느 신문사가 최고 땅부자일까
‘질 수 없는 선거 졌다’ 얼굴 빨개지는 오보
세운상가 재개발, 땅주인들 3조 5600억 불로소득
다들 5G, 5G 하는데, 5G란 무엇인가
"한국 대학은 죽었다" -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메갈X들 다 강간" 이런 가사도 힙합이니까 괜찮다고?
<노무현과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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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 경향 장도리
'재계 대변인' 전경련 위기...4대그룹 탈퇴하고 정부는 '패싱'
재계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과거 회비의 50%를 내던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대출금 상환마저 어려워졌다.‘전경련 패싱(배제)’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현 정부가 철저히 외면하면서 대표적 경제단체라는 위상도 옛말이 돼 버렸다.
◇ 4대 그룹 탈퇴, 회비 수익 급감…빚내서 지은 회관은 공실률 20%
31일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전경련의 전체 사업수익은 456억원으로 2017년(674억원)보다 32.3%가 줄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하기 전인 2016년(936억원)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경련의 회비 수익은 2016년 408억원에서 2017년 113억원으로 줄어든데 이어, 지난해는 83억원으로 감소했다. 전경련이 600여 회원사로부터 걷는 회비(약 400억원) 중 절반이 4대 그룹 몫이었던 만큼 타격이 큰 상황이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공실률은 20% 수준으로 여의도 사무실 평균 공실률(12%)보다 높다. 임대중인 40개층 중 절반을 사용했던 LG 계열사들이 서울 마곡으로 이사를 간 영향이다.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임대료 수입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전경련의 임대료 수입은 225억원으로 2017년(354억원) 대비 36.4%가 줄었다. 전경련회관은 빚을 내 지은 건물이다. 임대료 수입이 줄면서 대출금 상환마저 불투명해졌다.
전경련이 인건비조차 마련하지 못하자 210명이었던 직원수(산하 한국경제연구원 포함)는 현재 80여명으로 줄었다. 전경련은 한때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국내 경제단체 중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곳다. 4대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봉·복지를 자랑했지만, 급여삭감·복리후생 폐지 등 고강도 쇄신으로 석·박사급 인력의 이탈이 이어졌다.
◇ 정부, 각종 행사에 철저히 배제…허창수 회장, 위상회복 과제
전경련은 과거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현 정부에서 ‘적폐’ 취급을 받았다. 때문에 대통령 해외 순방 경제사절단, 청와대 신년회, 여당 주최 경제단체장 신년간담회 등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올 1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수장이 아니라 GS그룹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전경련 패싱이 해소될지는 묻는 질문에 "전경련과 소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에 대한 인식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전경련에 회비를 내는거조차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위상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지난달 4연임을 결정했다. 하지만 2년 전 한국기업연합회’로 단체명을 바꾸는 등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허 회장은 연임 후 저성장 극복, 지속가능 성장, 일자리 창출, 산업경쟁력 강화, 남북경제협력 기반 조성 등 4대 계획을 밝혔다. 전경련은 이달 20일 3년 만에 대졸 공개 채용에 나서면서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고 인력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
허 회장은 취임사에서 "전경련이 2017년 혁신안을 발표하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국민들이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앞으로 국민들과 회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한동희 기자
"물량 반토막 나서 불안한데 노조 지도부는 꿈쩍안해"
기로에 선 르노삼성, 부산공장 가보니…
27일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르노삼성 부산공장. 이날 공장에선 7개의 차종이 '혼류 생산(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 생산)'되고 있었다. 2대 중 1대꼴로 중형 SUV인 닛산 로그였다. 전날 닛산 측은 르노삼성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로그 물량을 "올해는 전년(10만대) 대비 40% 줄인 6만대만 주문하겠다"고 통보하면서 공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한 팀장은 "노조원 절반은 회사 경영 상황을 불안해하고 있지만, 노조 지도부는 이런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직원은 "우리도 눈과 귀가 있고 머리가 있는데 생산 물량이 줄어들면 당연히 매출이 줄고 임금 인상도 어려울 것을 안다"면서도 "하지만 복지와 임금을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장기간 파업 중인 르노삼성이 생산량의 절반을 위탁 주문했던 닛산으로부터 주문량을 전년보다 40% 감축하겠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적자와 구조조정 위기에 처했다. 27일 부산 신호산단에 있는 르노삼성 공장에서 닛산 로그가 생산되고 있다. /김동환 기자
노조가 역대 최장기간 파업을 벌이고 있는 르노삼성이 기로에 서 있다. 올해 닛산 로그의 생산 물량이 40% 줄고, 내년엔 계약 만료로 이마저도 없어지는 상황에서 후속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내년 부산공장 가동률은 40%대로 떨어져, 2교대를 1교대로 줄이는 등 감원이 불가피하다. 르노삼성이 '한국식 강성 노조의 떼쓰기'에 막혀 한국GM·쌍용차와 함께 '만성 적자 기업'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부산공장 직원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의 경쟁력과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GM 군산공장처럼 공장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노사는 28일부터 집중 교섭에 들어가기로 했다.
◇협력사들 "미칠 지경"
르노삼성 부산 공장 생산 현황 예상 그래프
작년 10월부터 지난 25일까지 노조는 52차례 210시간 파업을 벌였고 2352억원 매출 손실을 냈다. 1차 부품사만 260여개, 인력 5만여명에 달하는 협력사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27일 부산 강서구 과학산단로에 있는 한 부품 공장은 직원 한두 명만 보일 정도로 한산했다. 한 직원은 "르노삼성 파업 때문에 생산 물량이 20~30% 정도 줄었다"면서 "걱정이 크다 보니 서로 르노삼성 얘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품 업체 관계자도 "10여 년간 르노삼성에만 납품하면서 밥벌이를 해왔는데, 이대로 가면 해고를 넘어 폐업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르노삼성 부품사협의회장인 나기원 신흥기공 대표는 "4시간씩 부분파업을 지속하니 미칠 지경"이라며 "직원들은 출근했다가 일도 못하고 퇴근하는데, 월급은 월급대로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직원들도 특근·수당이 사라지니 현대·기아 쪽 이직을 알아보고 있다"며 "이럴 바엔 공장을 '셧다운'(일시 가동중단)해 휴업 급여라도 신청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부품사들이 세 번이나 호소 성명을 냈지만 노조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르노삼성 부산 공장 인근 상권도 침체돼 있다. 한 순대국밥집은 오후 1시쯤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식당 주인 A씨는 "5년간 이곳에서 장사했는데 지금이 최악"이라면서 "파업 전에 비해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금보단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르노삼성은 부산의 최대 규모 기업인데, 신차 물량을 배정받지 못하면 감원 태풍이 불가피할 것이란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식 노조 떼쓰기 안 먹혀
르노삼성은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국내 자동차 회사 중 유일하게 최근 5년여간 견실한 수익을 내왔다. 그러나 올해는 물량을 받지 못하면 적자전환도 우려할 상황이다. 2017년 26만대로 정점을 찍고 작년 21만대까지 떨어진 르노삼성 생산량은 올해 17만대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내년에는 작년의 반 토막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
자동차업계에서 상대적으로 모범적 노사 문화를 자랑했던 르노삼성은 작년 말 강성 노조위원장이 당선되면서 달라졌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박종규 르노삼성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총 가입을 공약 사항으로 두고, 민노총과 공동 성명서를 내는 등 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식 '노조 떼쓰기'는 전쟁터와 같은 글로벌 시장에선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닛산의 올해 물량 40% 감축 통보가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르노 본사는 내년 출시하는 신차(한국명 XM3)의 유럽 수출 물량을 부산 공장에서 생산하려다 부산 공장보다 인건비가 싼 스페인 공장으로 돌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도미니크 시뇨라 르노삼성 사장이 프랑스로 날아가 "아직 확정 짓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확답을 받지 못했다.르노삼성 관계자는 "파업에 관대한 프랑스 기업인 르노 본사조차도 지금 부산 공장 노조에 대해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며 "전 세계 공장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철저히 따져 물량을 배정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자동차 산업 격변기에 시장의 큰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조가 구식 투쟁만 고집하면 '패싱'(외면)당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류정 기자
“광고압박 없다”던 삼성, 교묘한 광고 통제
2017년 5월부터 23개월 동안 삼성 광고… 조선일보 230회 한겨레 60회, 이재용 1심 공판 뒤 본격
“광고를 통해 언론사에 압박을 가하지 않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1차 국회 청문회에 나와 한 발언이다. 당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구시대 유산 하나 더 청산하자. 광고를 통해 언론사에 압력을 가하지 않겠다. 삼성과 이재용에 대한 비판 기사가 있더라도 광고를 통해 압박하지 않겠다. 이 자리에서 약속하라”고 압박했고 이 부회장은 마지못해 “(압박을) 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기 직전인 2017년 5월부터 지난 22일까지 23개월 동안 삼성전자가 주요 일간지에 집행한 광고를 보면 “광고를 통해 언론사에 압박을 가하지 않겠다”는 말은 면피성 발언에 가까웠다. 비판 언론에 차별 대우와 언론 길들이기는 계속됐다.
▲ 지난 2016년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1차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최근 23개월 동안 삼성전자 광고를 가장 많이 받은 신문사는 조선일보(230회)였다. 이어 동아일보(204회), 한국일보(201회), 경향신문(172회), 서울신문(163회), 국민일보(139회), 중앙일보(103회), 한겨레(60회) 순이었다. ‘꼴찌’ 한겨레는 ‘1등’ 조선일보의 4분의 1수준(26.1%)에 불과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차이도 유의미했다. 2017년 5월 집행내역을 비교하면 한겨레는 14회, 경향신문은 8회였다. 그러나 그해 6~12월 한겨레는 4→2→3→2→1→1→1회로 급전직하했는데 경향신문은 4→9→6→10→13→9→14회로 올랐다.
2018년 집행 내역도 한겨레는 27회에 불과했지만 경향은 87회에 달했다. 23개월 전체를 놓고 봐도 경향신문은 172회, 한겨레는 60회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는 경향신문의 35%에 불과했다.
한겨레 관계자는 “한겨레와 경향을 분리시켜 차별 대우하면서 진보 블록 형해화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향신문 기자들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비판하는 기획 보도가 무산되자 편집국장 사퇴를 요구하며 “독립언론 경향신문이 기업과 정부 눈치를 보며 광고를 얻는 것 밖에 상상하지 못하는 곳이 됐느냐”고 반발했다.
조선일보는 이재용 부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등 삼성그룹이 크게 흔들릴 때도 광고 집행에 큰 변화가 없었다. 2017년 6월 한겨레 광고가 급전직하할 때도 조선일보의 월별 삼성 광고는 2017년 6월 14회에서 시작해 10→8→12→14→14→12회(12월)로 변동의 폭이 크지 않았다.
종합하면 삼성 광고와 관련해 조선일보를 필두로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이 ‘1그룹’으로 묶이고 경향신문과 서울신문·국민일보 등이 ‘2그룹’으로 뒤따르고 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가 뒤처지는 가운데 한겨레는 중앙일보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업계는 삼성의 광고 압박이 이 부회장의 뇌물죄 1심 공판이 한창이던 2017년 5월 본격화했다고 본다. 당시 삼성은 총수 일가에 비판적이었던 한겨레, 중앙일보, JTBC, SBS 등에 광고 집행을 크게 줄였다. 특히 삼성 일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중앙일보에 대한 광고 통제는 이례적이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기 직전인 2017년 5월부터 올해 3월22일까지 삼성전자가 주요 일간지에 집행한 광고 내역. 자료=미디어오늘
▲ 2017년 05월01일부터 2019년 03월22일까지 일간지에 실린 삼성 광고 횟수. 디자인=안혜나 기자
한겨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양상우 한겨레 사장은 그해 9월 “현대기아차, SK, CJ, 한화 등 총수가 형사 처벌을 받은 다른 기업의 경우 관련 보도를 이유로 이처럼 폭력적 광고 집행 행태를 보인 적이 없다. 특정 언론에 광고탄압을 가하는 곳은 삼성이 유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신문사 가운데 삼성에 가장 비판적인 한겨레의 삼성 광고가 8개 종합일간지 가운데 ‘꼴찌’라는 점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올들어 지난 22일까지 약 석달치 삼성 광고 집행내역을 보면 한겨레는 이후에도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이 시기 서울신문(19회), 한국일보(18회), 조선일보(17회), 동아일보(15회), 국민일보(14회), 경향신문(12회), 중앙일보(12회), 한겨레(5회) 순이다. 미디어오늘
[소득격차 확대]① 상위 10%가 싹쓸이…1980년대와 달라진 한국
지난 5일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감격한 시민은 거의 없고 대부분 "정말?" "그런데 나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3만 달러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했고 그중 유력한 이유로 소득양극화가 꼽혔다. 소득불평등 문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큰 족쇄가 되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나라는 소득불평등이 악화돼 왔고, 소득불평등은 어떤 이유로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 외환위기 이후 소득상위 10%가 싹쓸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비중으로 돈을 가져가는지를 살펴보자.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최상위 소득 비중에 대한 분석을 통해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이 IMF 체제 이후 급속도로 높아진 점에 주목했다. 2017년 우리나라 최상위 10% 집단의 소득 비중은 50.6%로 전체 계층 소득의 절반 이상을 10% 계층이 가져갔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상위 소득구간은 소득 1%층과 1~5%, 5~10%로 세밀하게 나눠보면 최상위 1%의 소득 비중이 해가 갈수록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월간노동리뷰 2019년 2월호출처: 한국노동연구원 월간노동리뷰 2019년 2월호
소득불평등 악화속도도 우려할만한 대목이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20살 이상 인구 가운데 소득 상위 10% 계층의 소득집중도는 2016년 기준으로 43.3%, 1996년 35%에 비해 크게 올랐다. 또 상위 1%의 소득집중도도 2016년 12.2%로 1996년 7.8%에서 크게 높아졌다. OECD 회원국 소득집중도 1위인 아일랜드의 소득집중도 증가폭인 4.4%p와 같은 수준이다.
■ 외환위기 이전에는 소득분배가 괜찮았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계속 소득분배 상황의 개선 없이 악화일로를 걸어왔을까? 또 다른 지표를 보자. 1958년부터 2012년까지 계층별 임금비중을 보면 1960~70년대 상위 10%의 임금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지다가 1980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외환위기 이전, 그러니까 1980년 이후 1995년까지 소득분배가 제대로 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대에 산업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돈을 덜 벌더라도 상위층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낄 수 있었다. 상위 10%의 임금 비중은 1995년 23.9%까지 감소하지만, 1995년 이후에는 증가해 2012년 기준 34.8%로 오른다. 1995년부터 2012년까지 상위 10% 집단의 임금비중은 45.5% 증가했다. 1995년을 기점으로 U자 모양을 이루며 급격하게 상위권 계층의 임금비중이 높아짐을 알 수 있다.
[상위 10%의 임금 비중 연도별 변화]
출처 : 노동연구원/홍민기-임금 불평등의 장기 추세(1958-2012)출처 : 노동연구원/홍민기-임금 불평등의 장기 추세(1958-2012)
특히, 상위 1% 집단의 임금비중은 1980년 초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U자형을 보이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는 더 심하게 증가한다. 상위계층의 임금비중이 월등히 높고,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이 전체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가계는 재산소득은 가계소득의 1%도 되지 않는다. 노동자 가구의 평균 가계소득 가운데 노동소득, 주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고 재산소득은 3%를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1990년대 중반부터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불평등이 심화된 걸까?/ 박찬형 기자parkchan@kbs.co.kr
[소득격차 확대]② 곳간만 쌓아둔 대기업, 나누지 않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그 출발점엔 기업들이 서 있었다. 무분별한 차입으로 사업을 이끌어오던 기업들은 외국자본이 동남아발 위기로 단기부채 기한 만료와 함께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단기간에 파산하고 부도가 났다. 그나마 믿었던 외환보유고도 바닥이 나 연쇄도산으로 이어졌다. 기업 파산의 고통은 대량 실직과 함께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국민들의 희생과 발 빠른 정부의 대처로 기업들의 경영상황은 2000년대 들어 빠르게 회복됐다.
■ 국민소득 늘어나는 와중에 기업소득 비율만 늘고 가계소득 비율은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가계들의 소득상황은 기업들과 달리 악화됐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비율을 살펴보자. 1990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소득 중 가계소득의 비율을 살펴보면 1990년 70.1%에서 1997년을 기점으로 빠지기 시작해 2014년엔 61.9%로 총 8.2%포인트 감소했다.
기업은 상황이 다르다. 1990년 17%였던 기업소득 비율이 1997년 16.7%(1998년에는 14%)까지 내려갔다가 외환위기 이후에 오히려 올라가 2005년 21.3%, 2010년 25.7%, 2014년 25.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8.1%포인트 증가했는데 가계소득이 줄어든 만큼 기업소득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계는 상황이 좋지 않았고 기업은 좋아진 것이다. 같은 기간 정부의 분배비율은 큰 변동이 없다.
■ 기업소득 증가율은 고공행진…가계소득 증가율은 하락
국민총소득이 기업쪽으로 더 많이 넘어가고 가계는 줄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비교표를 보자. 실질가치 기준으로 기업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을 봤더니 1990년대에는 6.6%였던 것이 2000년~2007년 사이에는 8.1%로 치솟았고, 2008년~2014년에도 5%에 달했다.
반면 가계소득은 같은 기간 5.5%에서 3.6%, 2.4%로 계속 줄어듦을 알 수 있다. 국민총소득 증가율과 비교해봐도 1990년대에는 기업소득이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후에는 국민총소득 증가율보다 기업소득 증가율이 크게 높다. 기업은 상황이 계속 좋아지고, 가계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좋아지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소득 증가율과 가계소득 증가율에 큰 차이가 난다.
그럼 여기서 이해가 쉽게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당연히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가계도 소득이 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기업이 이익이 생기면 그 이익을 이해당사자에게 배분하고 이 이해당사자들은 분배받은 이익이 곧 소득이 된다.
이해당사자란 생산과 판매를 통해서 기업의 이익을 만들어낸 주체를 말한다. 공급자, 주주, 채권자, 정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노동자가 바로 이해당사자이다. 이익이 나면 기업은 노동자들에겐 대가로 임금을 더 주고, 주주에겐 배당을 주고, 정부에겐 세금을, 그리고 분배하지 않고 남은 돈은 기업에 유보금으로 남겨두게 된다.
■ 특히 대기업은 나누지 않고 사내유보금만 쌓았다
앞서 봤듯이 기업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 소득이 늘었기 때문에 당연한 논리로 본다면 노동자들의 임금수준도 좋아져서 가계소득도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노동자들에게 더 주거나 하청기업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기보다는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는데 더 공을 들였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NICE평가정보 자료를 보면 2000년 189조 원이었던 기업 사내유보금은 해마다 늘어나 2016년 1,590조 원에 달했다. 매출액 대비 기업의 사내유보금 비율도 2000년 23.6%에서 2016년 58.1%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주로 대기업이 사내유보금을 늘렸기 때문이다. 2000년 168조 원이었던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해마다 늘어 2016년엔 1,397조 원에 달했다. 2000년 기준 대기업의 매출액 대비 사내유보금 비율도 24%였지만 2016년엔 61.9%까지 늘어났다.
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늘리는 것을 두고 기업가치와 투자여력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정말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늘리는 만큼 투자를 늘려서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앞서 말했듯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고, 하청기업에게 보다 적정한 이윤이 날 수 있도록 대금을 지급하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돌려주면 된다. 하지만 기업들은 돈을 쌓아두는 만큼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70%가 자유여행…최저가 내세운 글로벌 앱에 여행사 속수무책
해외여행 급증하는데 국내 여행사 수익 곤두박질
여행사 수익 최대 70%
패키지 여행서 발생하는데…
"겉핥기식 뻔한 일정 식상"
日·동남아 단체여행 20% ↓
항공·숙박 가격검색 쉬워져
자유여행으로 트렌드 이동
기존 수수료 장사만으론 한계
여행사 변신의 이유는 `생존`이다. 그동안 여행사들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의 물결을 등에 업고 폭발적 여행 수요 증가의 수혜를 누려왔다. 1989년 채 100만명이 안 됐던 우리나라 해외여행객은 30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무려 2800만명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무엇보다 `해외여행`이 익숙지 않던 절대다수 국민은 여행사들이 출국부터 입국까지 전부 책임지는 패키지 상품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을 지웠다. 업계 1위 하나투어의 영업이익은 1998년 6600만원에서 2013년 400억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경제 성장에 따른 여가 시간 확대 기조에 여행사들은 장밋빛 미래가 계속되는 듯했다. 하지만 변화는 급속도로 찾아왔다. 여행사 수익을 책임지던 패키지 상품은 해외가 익숙해진 여행객들에게 더 이상 만능열쇠가 되지 못하고 있다. 주요 관광지에 한 시간씩만 할애하는 획일적인 프로그램 대신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앞으로 더 확대될 전망이다. 하나투어의 패키지 여행객 수는 지난해 1분기 110만명, 2분기 89만명, 3분기 82만명, 4분기 86만명으로 지속 감소 추세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국내 3개 여행업체들의 연간 영업이익의 60~70%가 패키지 상품에서 발생한다. 이중 약 70%가 일본과 동남아 상품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오사카 지진 발생 등 재난효과로 여행 수요가 크게 줄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의 지난해 4분기 일본 패키지 상품 송객 수는 전년 대비 각각 20%, 26% 감소했다. 일본 외 동남아, 미주, 남태평양 상품 등 타 지역 수요도 동시에 줄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실제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소비자 의견이 많다. 세상이 변했는데 트렌드에 부합하는 신상품을 내놓기보다는 기존 영업 형태를 유지하면서 상품 개발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불친절하거나 현지로 여행을 떠나면 옵션이라는 명목으로 가격을 높이는 경우도 많다. 여행사가 예약한 숙소나 식당 상태가 엉망인 경우도 있다.
인도 여행 상품을 취급하는 한 랜드사 대표는 "저가로 각종 상품을 대량으로 매입한 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거나 항공·호텔업계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오는 구조로는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여행 트렌드가 바뀌면서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새로운 상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행 수요 위축 현상이 내수경기 위축으로 자칫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한다. 박성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여행 수요 위축으로 최근 여행 수요가 약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일본발 재난효과가 사라지면 일본 여행 수요가 증가하겠지만, 동남아 등 타 지역 수요까지 함께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실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CSI) 자료를 보면 `여행비 지출 전망 CSI`는 지난해 9월 94에서 10월 92, 11월 89, 12월 88로 꾸준히 하락세였다. CSI 수치가 100 미만일 경우 관련 지출을 줄이겠다는 소비자가 많다는 의미다. `자영업자 CSI`도 지난해 줄곧 85 이상을 상회하다가 올해 초 8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봉급생활자보다 10~15가량 낮아졌다.
새로운 경쟁자도 나타났다. 익스피디아, 트립닷컴, 스카이스캐너 등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들은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 중이다. 막대한 자본력과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글로벌 OTA들은 국내 여행사들이 여전히 웹 기반으로 영업을 하는 때에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모바일 플랫폼 개발에 집중했다. 이들은 방대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여행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고, 다양한 상품군으로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리포트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해외여행객들이 숙박권 구입 시 글로벌 OTA 이용·직접 예약의 비중은 83.6%였다. 국내 여행사는 7.4%에 불과했다.
항공권 구입 시 글로벌 OTA 이용·직접 예약 비중은 66.9%로 여행사(19%)보다 크게 앞섰다.
한편 여행사 줄도산에 의한 소비자 피해는 심해지고 있다. 탑항공, 더좋은여행, 싱글라이프투어 등 많은 여행사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던 때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전체 민원 중 41%가 여행사 부도 관련 상담이었을 정도다. 전년 같은 기간과 대비 시 무려 705%나 증가한 수치다./ 매일경제 차창희 기자
공무원부터 승려까지 "한국 싫다"… 혐한 얼룩진 일본
“(한국인은) 속국 근성의 비겁한 민족.” “재일 (한국인을)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신규 입국 거부해 리셋하자.”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연금기구의 간부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글을 삭제했지만, 국내에선 일본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이슈로 한동안 온라인 커뮤니티가 들끓었다.
일본 내 혐한 정서는 한두 해 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같은 해 12월 한국 구축함 레이더 논란, 지난 2월 문희상 국회의장의 위안부 문제 관련 일왕 사죄 필요성 언급 등 한일관계에 불편한 현안들이 돌출하면서 일본은 잠재돼 있던 선입견을 ‘혐한’이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한일관계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일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우파 단체가 한국에 대한 혐오 감정을 우회적으로 조장하는 피켓과 일장기를 들고 행진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우익 단체가 혐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①“한국과 단교” 도쿄 한복판 혐한 집회
지난해 10월 말 한국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음달 일본 도쿄역 앞에는 욱일기가 단체로 등장했다. 300여명의 사람들 입에선 “죽어라 한국”이라는 원색적인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한국이 한일기본조약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한국과의 단교를 요구했다. 일본의 화해 제스처로 한동안 잠잠하던 일본 우익 단체의 혐한 시위가 강제징용 관련 판결을 계기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같은 자리에서 혐한 집회를 이어갔다.
한편에서는 우익 세력에 맞서는 ‘헤이트 스피치’ 반대파들의 맞불 시위도 진행됐다. 특정 인종 혐오 발언에 반대하는 이들은 ‘차별주의자는 돌아가라’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우익 세력과 반대 세력이 도로에서 마주치면서 양측간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은 지난해 유튜브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일본 원폭 투하 장면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었다가 한일 갈등을 촉발했다. 번 더 스테이지 캡처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지난해 광복절에 입은 티셔츠를 문제 삼아 일본방송 출연 일정이 취소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13일 도쿄의 도쿄돔 앞에서 한 남성이 유인물을 나눠주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유인물 끝에 ‘죽도(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 씌여있다.도쿄=로이터 연합뉴스
② 방탄소년단 ‘원폭 티셔츠’ 논란
남성그룹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11월 ‘원폭 티셔츠’ 때문에 일본 극우 세력으로부터 ‘반일 그룹’이라는 비난을 당했다. BTS 멤버인 지민이 원폭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게 문제였다. 해당 티셔츠는 한 국내 브랜드가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었다. 일본에선 “BTS가 반일 활동으로 한국에서 칭찬받고 있다”는 잘못된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BTS는 아사히TV ‘뮤직스테이션’ 출연이 갑자기 취소되고 일본 공영방송 NHK의 최대 음악축제 ‘홍백가합전’ 초대 추진도 없었던 일이 됐다. 지난해 11월에는 BTS의 공연이 열린 도쿄돔 인근에서 한 우익 인사가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BTS의 인기에는 크게 타격이 없었다는 평이다. 당시 일본 투어 공연은 38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일본 고야산진언종 곤고부지 홈페이지에 게재된 헤이트 스피치에 관한 사죄문. 공식 홈페이지 캡처
③승려도 혐한 발언… “한국인은 최악의 쓰레기”
일본 종교계에도 혐한은 숨어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일본 와카야마현 고야산에 있는 한 대형 사찰인 곤고부지 승려가 1월 SNS를 통해 한국인을 비방했다. 그는 한국인에 대해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 사귀면 기분 좋은 녀석들뿐이지만, 거기에 국가나 조직이 얽히면 귀찮게 된다”며 “한국인 3명이 모이면 최악의 쓰레기인가”라고 주장했다.
혐한 발언을 올린 승려는 이 절의 홍보를 담당하는 20대 남성으로 알려졌다. 해당 내용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 등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비판이 쏟아지자 곤고부지 측은 같은 달 30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사죄 말씀 드린다”며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19일 김포공항에서 만취상태로 공항직원을 폭행해 입건된 다케다 고스케 일본후생노동성 임금과장.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캡처
④ “한국인이 싫다” 김포공항 ‘만취 난동’
일본 후생노동성 관계자들의 혐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후생노동성 다케다 고스케 과장은 지난 19일 만취 상태로 김포공항에서 난동을 부리다 불구속 입건됐다. 여행 차 한국에 왔던 그는 일본 하네다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하려다가 직원에게 제지당하자 소란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국인이 싫다”며 폭언을 하고 직원을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다케다 과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지만 이날 오후 석방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일본의 한 매체를 통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술에 취했다며 탑승을 거부해 문제가 발생했다”며 “폭행은 하지 않았고,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상대에게 사과했다”고 주장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후생노동성은 다케다 과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명기한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검정을 승인했다고 26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부당한 주장을 담은 교과서”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번 검정은 전문적·학술적인 심의에 따라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이뤄졌다”며 버티고 있다. 일본이 한일관계에 또 하나의 악재를 터뜨리면서 양국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학살 뒤 모든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카인럼 마을 학살, 청원 운동 통해 처음 확인돼
베트남의 대동맥인 1번 국도 허리쯤,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이 도로변에 꼭 붙어 있습니다. 거기서 동쪽으로 차로 20분쯤 달리면 하미 마을이, 서쪽으로 15분쯤 달리면 투이보 마을이 나옵니다. 꽝남성을 떠나 차를 타고 3시간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꽝응아이성의 안프억·꺼우·지엔니엔·프억빈·토떠이 마을이 국도를 끼고 동서로 15분 거리에 퍼져 있습니다. 반꾸엇·선비엔·투언찌·짱쩜·5촌·라토·하떠이·카인럼·떠이선떠이 마을 역시 1번 국도를 두고 동서로 1시간 거리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17개 마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번 국도 주변의 너른 평야 지대거나 낮은 산자락을 낀 평범한 농촌 마을로 오래전부터 많은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극이 되었습니다. 1966~72년 한국에서 파병된 전투부대인 청룡부대는 남쪽 꽝응아이성에서 북쪽 꽝남성으로 이동하며 마을을 차례로 파괴했습니다. 1번 국도 사수가 주요 임무였던 청룡부대는 남베트남인민해방전선 인민해방군 수색을 쉽게 하기 위한 ‘주민 소개’ 작전을 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무참히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한국군 파병 기간(1964~73년) 민간인 학살 희생자 9천 명 중 4천 명이 꽝남성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원서는 4월4일 두 명의 청원인이 직접 청와대에 전달합니다. 청와대는 최대 150일 안에 청원인에게 대답을 줘야 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증언은 지난 20년간 <한겨레21>과 한베평화재단 등 시민사회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으로 한국 사회에 조금씩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직접 한국 정부를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진상 규명과 공식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구합니다. 그 시작이 청와대 청원입니다. 이 17개 마을의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 103명이 청원서에 서명했습니다
할머니 후인티찌(당시 약 65살), 어머니 응우옌티따오(약 40살), 남동생 응오못(5살), 여섯째 고모 응오티리엔(약 30살), 고모부 즈엉반본, 고종사촌 즈엉티비엣, 즈엉티놈, 즈엉티푸, 그리고 고모의 배 속에 있던 아기.
한국 사람 앞에서 이 이름들을 꺼낼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하루에 9명의 가족을 살해한 것은 한국 군인입니다. 머나먼 나라에서 베트남 꽝응아이성 선띤현 띤티엔사 카인럼 마을까지 들어와 우리 가족을 몰살하다시피 한 겁니다. 그날 이후 50년 넘게 날마다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한국군이 우리 가족을 학살한 걸까.’ 묻고 또 물었지만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죽기 전에는 꼭 답을 들어야겠습니다.
얼마 전 작은 기대를 품게 됐습니다. 3월10일, 우리 마을로 한국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구수정(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이라고 했습니다. 20년 동안 베트남에 와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마을을 취재하고 피해자들을 만났지만 우리 마을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다가 위령비 표지석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1년 뒤 충격받은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정말 화가 납니다. 우리를 50년 넘게 지옥에서 살게 한 한국 사람들이 정작 우리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니요. 우리 마을처럼 한국에 피해조차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제라도 한국 사람들이 똑똑히 알았으면 합니다. 나 응오티럼(71)의 가족 이야기를요.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온 날을 기억합니다. 1966년 9월26일. 18살이던 나는 결혼했지만 남편은 군대에 있었습니다. 한국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마을 남성들은 모두 도망쳤고 노인, 여성, 아이들만 남았습니다. 나도 주민들과 다른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첫날은 한국군이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틀 뒤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가족과 주민들이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한국군에 발각됐습니다. 한국군은 주민들을 방공호 밖으로 나오게 한 뒤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아 살해했습니다. 집과 가재도구들은 불태웠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그곳에 있던 남동생 응오반끼엣(10살)과 아직 이름도 없는 막냇동생(1개월 8일)은 어른들 틈에 끼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주민들이 주검을 수습하러 갔을 때 막냇동생은 어머니 젖을 빨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동생처럼 참혹한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젖먹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엄마들이 죽어가면서도 품에 있는 자식은 살리려고 온몸으로 감싸니까요.
이틀 뒤 마을로 돌아온 나는 당고모부가 가족들의 주검을 묻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나는 남편 집에 머물면서 동생들을 키웠습니다. 넷째 고모가 막냇동생을 고모 집으로 데려갔지만 젖먹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남베트남군 대위에게 돈을 받고 보냈습니다. 나중에 마을로 돌아온 아버지는 9명의 가족이 죽고 겨우 살아남은 막냇자식까지 여동생이 팔아버렸다는 충격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가 1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고아가 된 형제자매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오빠 응오반머우는 항미 투쟁에 나섰다 감옥에 가고, 동생 끼엣은 어린 나이에 혼자 이곳저곳을 떠돌며 얼음과자 따위를 팔아 연명하는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오빠는 끝내 청원하지 않아
구수정이 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 우리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한국 정부에 진상 조사와 공식 사과, 피해 회복 조치를 요구하겠다고. 그래서 청원서에 서명했습니다. 끼엣도 함께요. 그러나 머우 오빠는 청원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피해자가 한국 정부에 왜 구걸해야 하느냐”면서요.
나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학살한 이유를 정확히 알려줘야 합니다. 끼엣은 “어머니와 가족의 무덤을 정성스레 단장해드리는 것”이 마지막 염원입니다.
대한민국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이 피해를 당한 베트남 꽝남성, 꽝응아이성 내 17개 마을의 위치다. 위령비·공동묘·가족묘 좌표 또는 위령비 주변 마을의 좌표를 지도에 표시했다. 한베평화재단 누리집(kovietpeace.org)에서 더 많은 장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일본군 위안부 유엔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우리가 몰랐던 ‘위안부’의 끈질긴 역사에 대해
①부산 1951년 6월. 이경모 촬영(<격동기의 현장>, 121쪽). 강성현 제공
2월25일부터 3월20일까지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이란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2014년 여름 미미하게 시작했던 일이 큰 성과를 내며 창대하게 끝난 셈이다. 공문서·사진·영상 등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수집, 연구자를 위한 학술 자료집과 일반 시민을 위한 대중서 발간, 그리고 전시회와 디지털 아카이브(기록 보관) 구축 준비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으니 말이다.
‘위안부’ 문제를 지난하지만 고통스럽게 대면하고 응답하는 데 제법 긴 시간과 온 열의·열정을 쏟았다. 자료에 말 걸고, 자료가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피해 여성들이 남긴 증언과 교차하며 전쟁에 성적으로 동원된 여성들의 여러 이야기를 길어올리려 했다. 그 이야기들은 결코 ‘강제연행’의 증거나 민족 피해의 여성적 재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난 특별 도슨트(전문 안내인)로 몇 차례 관람객에게 전시를 설명하면서 일본 오키나와로 끌려가고 버려졌던 배봉기의 삶과 이야기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살아남았으니 살고자 했다” “일상이 전쟁이었으니, 전쟁 또한 삶이었다”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던 일상이 이미 전쟁 같았다”는 말은 전쟁의 일상과 일상의 전쟁에 동원돼 살아야 했던 여성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전쟁이 끝나도 전쟁처럼 살아야 했던
잘 알려졌듯, 배봉기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건 배봉기의 선택이었지만, 가난과 ‘정조’ 등의 이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계급적·가부장제적 구조의 구속이 내면화된 결과로 나온 선택이었다. 사실상 강제로 남은 거로 봐야 한다. 배봉기는 민간인을 억류했던 수용소를 빠져나와 절망적으로 오키나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전전하며 술집에서 접대하고 식모로 일하는 등 그의 삶은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평생 겪으며 트라우마적 삶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전쟁 때 총알 한 발로 죽었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내뱉은 말은 전쟁이 끝났어도 전쟁 같은 삶의 고통과 고단함을 웅변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말의 다층적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한국으로 ‘귀환’한 ‘위안부’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고향에, 집에 돌아가 이제는 전쟁 없는 일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을까? 오키나와에 잔류한 배봉기의 삶과 완전히 달랐을까? 미국과 소련의 38선 분할(분단)점령과 군정, 정부 수립 전후의 내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과 일상에서 ‘귀환’ 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겪었던 일을 가족, 친지, 공동체에게 함구해야 했다. ‘정조’를 지키지 못한 죄와 수치심을 내면화해 자기를 부정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배봉기처럼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키나와 군사기지는 한국전쟁의 전장과 연결돼 있었다. 오키나와에 남은 배봉기와 한국으로 귀환한 ‘위안부’의 전쟁 일상도 연결돼 있었다.
전쟁을 치르는 국가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그게 일제든 한국이든, 변함없이 위안·위무·위문이었다. 각종 오락과 유흥은 물론 성의 제공을 포함했다. 여성사의 시각과 방법으로 한국전쟁을 연구한 이임하(‘한국전쟁과 여성성의 동원’, 2007)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남성 국민을 ‘병사형 주체’로, 여성 국민을 ‘위안형 주체’로 젠더화했다. 위안·위무·위문은 위안하는 주체의 계급에 따라 민간 외교 활동으로 치장된 오락·유흥·성의 제공인지, 유엔군 위안소에서 은혜로운 미군의 노고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유흥과 성의 제공인지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김활란·모윤숙·임영신·박마리아 같은 여성 지도자들은 여학생이나 대한여자청년단, 대한부인회의 젊은 여성들을 동원해 병사들을 위무·위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주로 ‘파티대행업’에 나서 유엔군 장교와 외교관 등 영향력 있는 남성들을 위안했다.
②‘청소 및 접객영업 위생사무 취급요령 추가 지시에 관한 건’ 표지. 한국 국가기록원 소장
빅토리아하우스의 용도
1951년 계속되는 필승각(빅토리아하우스) 파티에는 이화여대 학생·졸업생들이 동원됐다. 노래와 무용이 곁들여지거나 여러 유형의 시중이 더해졌다. 낙랑클럽은 더 갔다. “낙랑 걸”들은 유엔군 고위급과 외교관들을 상대로 ‘국부’(國父) 이승만을 위한 로비와 정보 수집을 했고, “밤에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불빛을 받으며 접대”했다. 이임하는 “성을 매개로 하여 열리는 파티,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중을 드는 여학생들, 노래와 무용 등은 전형적인 이승만식 외교”였다고 평한다.
사진❶은 이경모가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 문관을 그만두고 한국사진신문사 사진부장으로 활동할 때 찍은 것이다. 정통 르포르타주 형식이 두드러지는 이경모 사진답게 사진 속 구도와 피사체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속삭이듯 말을 걸고 있다. 이기붕 국방장관 취임 축하를 위해 박마리아가 초대한 주한 미국대사와 미8군 수뇌부, 그리고 문 밖에서 노래하는 여학생들을 포착하고 있다. 적산가옥을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국방장관 관사 안방에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가 흰저고리 검정치마 차림으로 앉아 있고, 그 옆에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와 콜트 미8군 부사령관이 앉아 있다. 화각이 넓지 않아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사진 왼쪽에는 이기붕 장관(시계를 찬 손목)과 양옆으로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과 김활란이 앉아 있었다. 군과 외교의 최고위층 인사들이다. 안방에 신발을 신고, 게다가 발(군화)을 쭉 뻗은 자세를 보고 종속적인 한-미 관계를 절묘하게 포착했다는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난 적산가옥이 자아내는 (탈)식민주의적 장소성과 “여흥을 돋우기 위해” 문 밖에 서서 “팝송”을 부르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모습에 더 눈이 간다. 이를 두고 한-미 관계를 촉진한 민간 외교로 보고 넘어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김활란·모윤숙·박마리아 등 여성 지도자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또는 스스로 청원해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에 당시에도 사회적 시선과 여론이 곱지 않았다는 거다. 직접적인 성적 유흥을 제공했든 안 했든 말이다.
그래도 이건 약과였다. 이승만 정부는 ‘공창제도 등 폐지령’(과도정부 법률 제7호, 1947년 11월14일 공포, 1948년 2월14일 시행)에 반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아예 업자를 두고 유엔군 전용 위안소를 설치·운영하는 데 개입했다. 단지 유엔군의 노고에 감사 보답하기 위해서였겠는가? 박정미의 연구에 따르면, 여러 의도를 가지고 불법이지만 “묵인 관리”하는 방식으로 개입했다(‘한국전쟁기 성매매 정책에 관한 연구: 위안소와 위안부를 중심으로’, 2011). 정부가 내세운 건 전선 이동이 미미하고 주둔군 병사들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군이 저지르는 성범죄(강간 등)로부터 “일반 여성의 정조를 보호하기 위한 방파제”로 삼기 위해 유엔군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거다. 미군이 요청해서 한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논의도 있다. 전쟁으로 생계 수단을 이어가기 위해 많은 여성이 성을 팔았고, 돈과 물자가 있는 미군 주둔지 주변으로 여성들이 몰렸는데, 이에 현실적으로 성병 점염을 통제하고 “제5열(내부의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 미군이 한국 정부에 유엔군 전용 위안소 설치와 관리를 요청했다는 거다.
공창제 폐지해놓고 위안소 설치
미군 등 유엔군 주둔 지역 주변 거리에 위안소가 들어섰다. 군부대 막사, 야산, 들판 가리지 않고 이동형 위안소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 9~10월 등장해 1951년 6월 전후 전선이 38선 부근에 고착화하면서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1953년이 되면 ‘필요악’이라 주장될 정도로 상설화됐고, 전국적으로 분포하면서 특정 지역의 격리 설치도 논의되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건 이승만 정부가 불법임을 의식하고도 전쟁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내세워 위안소를 설치하고 관리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행정명령을 지시했다는 거다. 하위 명령이 상위 법률을 위반하는 성매매에 대한 “묵인 관리”였다. 박정미가 처음 밝힌 바에 따르면, 첫 사례는 1951년 10월10일 보건부가 결재한 ‘청소 및 접객영업 위생사무 취급요령 추가 지시에 관한 건’(보건부 방역국 1726호)이다. 이 지시에서 ‘위안부’는 “위안소에서 외군을 상대로 위안접객을 업으로 하는 부녀자”로 정의됐다.
이 지시는 위안소 신설과 영업 허가, 위안부 건강 진단, 위안소와 위안부의 격리 등을 규정한다. 기타 준수 사항에 “이 영업은 6·25 동란을 계기로 전쟁 수행에 수반된 특수영업태이며 의법적 공무사업이 안이(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여 취급할 것”이라고 명기한 것으로 보아, 정부 스스로도 법에 반하는 지시를 내렸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표지에 이 지시의 “영문자료(를) CACK(미8군 하부 조직인 UNCACK 부대 지칭)에게 제시할 것”이라고 쓰인 것으로 볼 때, 그리고 지시 사항 중 “허가 신설은 주둔군 당국의 요청에 의할 것”과 “건강진단을 취체(단속)하기 위하야 외군헌병대에도 연락”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미군이 군 전용 위안소를 승인하고 성병 관리 차원에서 한국인 여성의 몸을 위생·경찰의 시각과 방법으로 통제했음을 알 수 있다.
전후에 기지촌 성매매 집결지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성병에 걸린 미군 병사가 “컨택”(성병을 감염시켰을 것으로 의심되는 여성을 찍는 것을 의미)하면 “낙검자 수용소”로 끌려가 성병이 치료돼 나오거나 죽어서 나왔다는, 이를 두고 “토벌당한다”고 표현했던 미군 ‘위안부’의 말은 그 자체로 국가폭력, 국가범죄가 여성의 몸에 자행됐음을 드러내준다(‘[토요판] 인신매매 당한 뒤 매일 밤 울면서 미군을 받았다’, <한겨레> 2014년 7월5일치).
사진❸은 사진병 크리잭(Kryzak)이 찍은 것으로, 한국인 의사가 성병 치료를 위해 미 제3보병사단에서 운영하는 민사구호소로 데리고 온 성매매 여성들을 진료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구호소 막사 안 화사해 보이는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검진을 기다리는 여성들의 표정은 어둡다. 이 사진은 당시 “대외비”로 분류돼 이용이 제한됐다.
③미 제3보병사단 민사구호소의 한국인 의사가 성매매 여성들을 진료하고 있다. 1952년 5월11일. 강성현 제공
일본군 경력자들의 발상
1952년 유엔 당국과 UNCACK(“주한유엔민사처”)의 지시로 한국 정부는 전국에 성병진료소를 설치해 건강진단서를 발급하고 성병 예방과 치료에 나섰다. 2월20일 한 보도에 따르면, 보건장관은 전국에 약 40개의 성병진료소를 설치했고, 더 증설 중이라고 했다(<경향신문> 1952년 2월23일치). 당시 보건 통계에 따르면, 1952년부터 성병 검진 연인원이 비약적으로 늘었고 건강을 회복한 “연인원”이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성병 예방과 치료 대책이 성과를 거두었다는 말이다. 이승만 정부가 성병 관리를 거부하는 대상을 강력히 단속하고 처벌한 효과도 작용했을까? ‘위안부’들은 “밀정”이나 “제5열 분자”로 의심받고 단속되기도 했다. 인도주의적 의료구호로 보이는 성병 예방 조치에는 사실 성병을 유발하고 옮기는 존재, 즉 위생적 차원의 ‘불순분자’가 있고, 이들을 위생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었다. 성병으로부터 미군과 유엔군의 신체를 보호하는 보건위생 조치가 제5열 침투를 통한 공산주의 전염을 차단하고 유엔군과 자유세계를 수호한다는 담론과 연결돼 있었다.
이 정도 얘기했으니 한국군이 군 위안소를 설치, 운영했다는 항간의 이야기가 생뚱맞다고 치부하지 말길 바란다. 김귀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육군본부가 1956년 출간한 <6·25사변 후방전사>에서 관련 내용을 발견했고, 참전 장군과 병사 등의 회고와 증언을 종합해 한국군 위안부와 특수위안대의 존재를 주장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병사의 사기를 진작하고 전시 집단강간을 방지하며, 성병을 예방하고 군사기밀 누설을 미연에 방지할 목적으로 과거 일본군 경력이 있는 일부 간부들의 발상으로 특수위안대를 직영으로 설치, 운영했다. 유엔군 위안소가 업자를 내세운 군 전용 위안소로 한국 정부와 미군은 설치 요청, 허가·취소, 성병 관리와 처벌의 방식으로 개입했다면, 한국군 특수위안소는 군이 직접 설치해 운영하고 ‘5종 보급품’으로 ‘위안부’를 ‘조달’(동원)한 것이다. 부대마다 ‘조달’ 방식은 달랐지만, 종삼(서울 종로3가) 등 사창가에서 여성들을 동원하거나 일부는 ‘빨갱이’ 여성 등의 강간과 납치를 통해 강제 동원했다. 그 수가, 빈약한 자료와 회고를 종합하면 최소 79명에서 최대 240명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위안소를 이용한 병사가 1952년에만 연인원 20만 명이 넘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누가 포주인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소생했다. 그 제도를 떠올린 “발상”, 그 발상을 어떤 제지도 없이 실행한 한국군 수뇌부, 법 위반임을 의식하면서도 “묵인 관리”하겠다고 조처를 하고 나선 이승만 정부,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전쟁, 일본 오키나와와 한국 점령에 이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위안부’ 제도의 관리 방식에 동화된 미군, 그들은 전쟁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포주’의 위치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전쟁의 일상, 일상의 전쟁에서 살아남아 살고자 한 인생 전체가 국가가 관여한 성폭력으로 얼룩진 ‘위안부’ 여성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대면하고 기록 기억하며, 응답해야 할까?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한겨레21 제1255호 3.27
전국 대학가에 나붙은 ‘김정은 서신’ 누가 왜 붙였나
31일 오후 부산지역 대학에 붙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대자보.|부산경찰청 제공
‘김정은 서신’이라고 쓰인 정부 비판 대자보가 전국 각지 대학에 붙었다는 112신고가 잇따르자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1일 “지난달 30일부터 오늘까지 전국 대학가 게시판 등에 부착된 정부 비방 대자보와 관련한 112신고가 다수 접수돼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30일 전남지역 대학가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것처럼 작성된 대자보가 잇따라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8시48분쯤 목포의 한 대학에 김 국무위원장 명의의 대자보가 붙어있다는 시민 신고를 받고 이를 확인했다. 대자보는 가로 55㎝, 세로 80㎝ 크기로 2장 분량이며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제목으로 붙어 있었다. 또 ‘김 위원장 명의의 3대 강령’도 소개됐으며 ‘소득주도 성장으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이윤추구 박살냈다’는 내용 등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자보의 마지막은 ‘전·대·협’이라는 이름으로 촛불집회 동참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작성됐다.
대자보는 이날 목포지역 3개 대학에서 발견된데 이어 순천지역 대학 2곳과 광양·영암 지역 대학 등 모두 7개 대학에서 발견됐다.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도 이런 대자보가 잇따라 발견됐다. 대구·경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쯤 대구 북구 경북대 북문 대구은행 앞 건물 기둥에 ‘김정은 서신’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부착돼 있는 것을 학교 관계자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된 대자보는 모두 3장이며, 2장에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나머지 1장에는 오는 6일 서울 집회 소식을 알리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이날 오후 6시쯤에는 경북 칠곡 대구예술대에서도 같은 내용이 적힌 대자보가 발견됐다.
부산지역 대학 2곳에서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것처럼 작성된 대자보가 발견됐다. 부경대학교 학내 게시판에 ‘남조선의 체제를 전복하자’,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제목 대자보 2장이 부착됐다. 같은 날 오후 11시 15분쯤 부산 신라대학교에도 같은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는 전대협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로 작성돼 있다.
이미 해체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약칭인 ‘전대협’을 사용하는 단체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국 450여개 대학에 대자보를 붙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대학 주변에서 발견된 대자보와 동일한 것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 배명재·권기정·백경열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박근혜·김학의, 청와대서 뛰어놀던 사이"
김학의 차관 임명에 박근혜와 '친분' 작용
부친끼리 각별했던 인연, 朴·金까지 이어져
"金 6촌 누나와 朴, 같이 목욕탕 가는 사이"
朴 정권 차원 수사 '무마·은폐' 정황 시사
"2013년 정권 초기, 朴·金 관계 조사 몸사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김학의 전 차관 (사진=자료사진)
지난 2013년 1월 당시 대전고검장이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검찰총장 후보군에 올랐을 때 서초동은 술렁거렸다. 검찰의 여러 '통'들 사이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 전 차관이었다.
최초 15명 안팎 후보군에서 8명으로 압축될 때까지 김 전 차관이 명단에 들자 "뒤에서 누가 봐주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검찰총장에서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자 궁금증은 더욱 증폭됐다.
31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김 전 차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확인됐다. 지난 2013년 사정당국이 박 전 대통령과 김학의 전 차관의 두터운 친분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다수 확보한 것이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수사당국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차관이 어릴 적 청와대 동산에서 함께 뛰어놀던 사이란 진술이 여러번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며 "그만큼 가깝고 또 오래된 관계였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의 임명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명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던 김 전 차관의 과거 해명과 정반대의 내용이다. 그동안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일 것이란 추측은 막연한 의심으로만 전해져왔다.
두 사람의 친분은 선대(先代)인 부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차관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육군 대령으로 월남전에 참전하며 무공훈장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관인 김 전 차관의 아버지를 각별히 아꼈고, 이때의 인연이 자녀들로까지 대를 이어왔다고 알려졌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김 전 차관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분 그리고 차관 임명 강행까지 모든 건 여기서(부친들 사이 관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도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중 1명으로부터 김 전 차관을 음해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들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김 전 차관과 특별한 사이일 것으로 추측했다"고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전 차관의 6촌 누나와 박 전 대통령의 친분도 만만찮게 가깝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정치권 인사는 "김 전 차관의 6촌 누나와 박 전 대통령은 목욕탕도 같이 다니고, 취임식에 어떤 옷을 입을지 의논할 정도로 친하다"며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김 전 차관을 '진짜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의 임명 강행은 물론 그가 검찰의 1·2차 수사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배경에도 두 사람의 이같은 각별한 친분이 작용했다고 전해졌다. 정권 차원의 수사 무마·은폐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2013년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집권 초기 서슬이 퍼렇던 시기라 그 부분(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차관 관계)에 대한 조사에는 다들 몸을 사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검찰청은 29일 특별수사단을 출범하고 김 전 차관에 대한 3번째 수사에 들어갔다. 앞서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수사외압 의혹도 조사대상에 포함했다.
국정농단,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이어 김 전 차관의 3차 수사에서도 검찰의 칼끝이 또 한번 박 전 대통령을 겨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CBS노컷뉴스 윤준호 기자
제조업 위기설의 실체
한국에서 제조업 위기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추격형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지금은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 성격을 제대로 파악해야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2018 블룸버그 혁신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다. 지난해뿐 아니라 최근 5년 동안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1인당 특허 건수도 가장 많다. 한국은 2000~2013년, OECD 국가 가운데 노동생산성과 총요소생산성 상승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이런 지표를 보면 한국 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업 붕괴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여러 언론에서는 지속적으로 ‘현대자동차 위기설’을 보도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총산출에서 8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철강 산업과 기계 산업도 상황이 좋지 않다. 혁신지표 1등인 국가에서 제조업 위기설이 꾸준히 흘러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명확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무역의 성장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불황으로 주요 국가들에서 수요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심지어 뒷걸음을 치면서, 해외 상품에 대한 수입 규모도 성장하기 힘들었다. 그 결과, 한국 제조업의 산출 증가 역시 멈추게 된다.
오른쪽 위 그림 둘을 비교해보면, 이런 상황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림 1>을 보면, 글로벌 차원의 총소득 가운데 무역의 비중이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하다가 2008년 이후 뚝 떨어지고 만다. <그림 2>는, 한국 제조업들이 2010년에 산출한 가치를 기준으로 각 연도별 산출을 나타낸 그래프다.
예컨대, 2013년 ‘자동차’의 값이 120이라면, 자동차 산업의 2013년 산출이 2010년의 1.2배라는 의미다. 전자를 제외한 다른 수출산업의 성장이 2011년에 정점을 찍은 뒤 정체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무역의 정체에 가장 민감한 조선 산업은 2017년의 산출이 2008년의 60%밖에 안 될 정도로 무너졌다.
한국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세계 2위 국가다. 제조업의 주력은 자동차·전자·철강·석유화학 등 수출 주도 산업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경제는 붕괴되었고, 중국의 성장률은 6%대로 하락했다. 자연스럽게 주요국의 수입 수요가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 역시 예전만큼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팔지 못하게 된 것이다. 조선업은 ‘붕괴되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할 정도이고 기계와 철강, 석유화학 부문에서도 적자 기업이 속출했다. 전자와 자동차 부문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2015년 이후 자동차 산업의 산출도 크게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제 전자 업종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주력 제조업의 ‘매출액 성장률(매출액이 늘어나는 속도)’이 대폭 하락했다. 심지어 주요 기업 매출액이 줄어든 경우도 많다. 수출 주도 대기업의 매출액 성장률 하락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기업들의 매출액 감소로 이어졌다. 매출액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영업이익률(매출액에 대한 영업이익의 비율로, 기업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도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2008년 이후 해외 수요 감소로 수익률 악화
오른쪽 <그림 3>을 보면, 선도기업(대기업)의 매출액 성장률이 2010년을 기점으로 그야말로 폭락한다. 2015년 이후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단지 매출액의 성장 속도가 늦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매출액이 아예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미다. 2015년은 한국 제조업이 역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해다. 선도기업 이외에 협력기업(대기업 납품업체)과 독립기업(대기업에 납품하지 않는 업체)의 매출액 추이도 비슷하다.
<그림 4>는 2006~2016년의 영업이익률 추이다. 2011년 이후 선도기업의 영업이익률이 협력기업이나 독립기업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선도기업은 협력업체들로부터 납품받은 부품으로 최종재를 생산해 판매하는 업체다. 글로벌 불황의 충격을 직접 감당할 수밖에 없다. 선도기업에 비해 협력기업의 영업이익률은 큰 변화가 없다. 이는 선도기업이, 협력기업들이 납품하는 중간재 단가를 호황기보다는 덜 후려치거나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선도기업이 협력업체들에게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함으로써 경기변동에 따른 위험을 일부 감당해주는 관행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주력은 제조업이다. 제조업 산출에서 수출의 비중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그리고 2008년 이후 해외 수요의 감소가 한국 주력 제조업의 산출 및 수익률을 악화시켰는데, 이는 투자율 감소로 이어진다. 투자율 감소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낮추고 생산성 상승을 정체시키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 부문 대기업들의 장점 가운데 하나였던 ‘공격적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제조업의 여러 지표들이 나빠졌다고 해서 한국 기업만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정체 상황은 세계자본주의의 저성장 국면에서 모든 나라의 모든 기업이 직면하게 된 현상이다. 주요 선진국의 지표들은 더 나쁘다. 다만 한국 제조업은 지금까지 매우 빠르게 성장해왔기에 2010년대 이후의 저성장 국면이 더욱 민감하게 느껴질 뿐이다.
최근까지 한국 경제는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급속히 성장해왔다. 이제는 그런 확장의 시기가 지나가고 말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 ‘추격형 산업화’로 성공한 나라지만, 지금은 선두주자가 되어버린 상태다. 역엔지니어링(개도국이 선진국의 제품을 분해하는 방법으로 설계 방법을 이해한 뒤 복제하는 공학)으로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며 급속히 성장해왔지만, 일단 선두주자의 지위에 오른 이상 다른 나라의 상품을 베끼는 게 불가능하다.
한국은 스스로 혁신적이어야 하는 단계까지 왔다. 혁신 능력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제조업은 시행착오를 견디며 느릿느릿 전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어떤 나라는 한국이 점유한 지점을 찬탈해갈 것이고, 다른 나라는 더 멀리 도망갈지도 모른다.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다. 한국 제조업은 실패를 통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성공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 성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시사인 제602호
교수님들의 ‘우리가 남이가’
교수들의 일탈, 범죄, 비리 등이 근절되지 않는 데는 솜방망이 징계도 한몫한다. 징계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은 ‘언젠가 서로 반대 처지에 설 수도 있다’ ‘안 볼 사이도 아닌데’라는 동료의식 탓에 강력한 처벌을 하지 못한다.
상습 폭행, 성추행, 공금횡령, 금품 수수. 주어를 감추면 강력범죄자들의 죄명 같지만, 모두 대학교수들의 범죄이거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그들의 비위 행위다. 논문 표절, 연구비 유용, 규정을 위반한 겸직, 제자를 상대로 한 각종 갑질 등 직종 특성이 반영된 일탈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가릴 것 없이 교수들의 비위와 징계 문제는 많은 대학의 골칫거리다. 한 교수가 제자 성추행, 논문 무임승차, 표절 등 여러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대 인문대에서는 학생들이 파면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제주대에서는 직원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은 의대 교수가 중징계를 받았다. 성균관대에서는 다른 대학에 다니는 자녀의 논문을 위해 대학원생 제자들을 실험에 동원한 교수, 현직 검사의 논문을 제자에게 대필하도록 시켰다는 로스쿨 교수가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몇 년 전에는 연구비 문제로 교수들이 한 달 사이에 연이어 해임된 경우도 있었다.
캠퍼스 안팎에서 교수의 비위 의혹이 제기되면 통상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위원회가 소집된다. 안타깝게도 조사와 징계 과정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학내 규정을 위반해 문제가 되면 “규정을 잘 몰랐다”라는 식의 ‘바보 전략’을, 고발이나 고소를 당한 경우에는 “사법적 판단 이전이므로 징계 심의가 미뤄져야 한다”라며 ‘지연 작전’을 펼치고, 형사적으로 무혐의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면 “죄가 없는데 징계가 웬 말이냐”라고 항변한다. 누구나 과도한 처벌을 피하고 싶고 방어권은 모두에게 보장되어야겠지만, 변명이나 핑계가 아닌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종합대학의 경우 2만명 안팎의 구성원이 한 울타리 안에서 생활한다. 지방의 읍·면 규모다. 자연히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건·사고, 범죄, 비리 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솜방망이 징계다. 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동료 교수들은 웬만하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는 ‘그 정도 일로 문제 삼느냐’는 불필요한 공감 능력, ‘언젠가 서로 반대 처지에 설 수 있다’는 쓸데없는 역지사지, ‘영원히 안 볼 사이도 아닌데’라는 전에 없던 동료의식이 작동한다. 공고하던 학과 간 장벽과 이기주의는 잠시 사라지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요구된다는 학제 간 융합이 성공하는 몇 안 되는 순간이랄까.
학과장이 비리 교수 두둔하고 민원 넣기도
심지어 징계 대상 교수의 소속 학과장이 해당자를 두둔하며 교수 인사업무를 총괄하는 교무처장(징계위원회 당연직 위원인 경우가 많다)에게 민원을 넣거나, 징계 대상자 면담 때 동석해 병풍이 되어준다. 의혹이 불거진 특정 교수를 대상으로 외부 감사나 수사가 진행되는 경우 ‘학교 측에서 교수를 도와주지는 않고 왜 수수방관하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솜방망이는 사용할수록 부드러워진다. 잘못된 전례가 다음번 다른 징계 수위 결정에 참고가 되고, 징계 대상자에게는 징계에 불복하는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징계 여부와 수위의 적절성을 다투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징계 수위가 낮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중대하고 심각한 비위 행위에 대해서는 징계위원들과 학교의 엄벌 의지와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물론 박사 학위까지 받은 지성인이자 교육자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의 행태가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더욱 좋겠지만. / 이대진 (필명·대학교 교직원) 시사인 제602호
문 대통령 “촛불혁명 주역 시민단체, 국정 동반·참여자”
문재인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를 향해 "매서운 감시자인 동시에 사회를 함께 이끌어가는 동료가 돼 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1일) 청와대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과 가진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우리 정부는 촛불의 염원을 안고 탄생했고, 촛불 혁명의 주역인 시민사회는 국정의 동반자이자 참여자"라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이어 "전 지구적으로 함께 풀어야 할 문제들이 우리 앞에 있고, 우리 사회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정부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시민사회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부 국정과제를 열거하며 시민사회의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한반도 평화는 정치·외교적으로 해결할 부분이 크지만, 적대·대결구도가 오랫동안 지속해 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평화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며 "일상에서의 평화가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도록 시민사회가 함께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중요한 것은 갈등의 소지가 매우 큰 중대한 현안 과제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주 52시간 근로제 안착을 위한 제도개선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선,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노후소득 보장제도 개선 등의 문제에 관해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가 도모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변화 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 없이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서도 "전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지만, 발전소의 경영과 에너지 수급, 일자리, 서민들의 생계까지 연계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전문가와 시민,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범국가기구를 조속히 설립해 대응하겠다"고 소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저도 지역에서 꽤 오랫동안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 동지의식을 갖고 있다"며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지금은 관계가 좋다고 믿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느냐"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우리 정부는 '시민사회 성장기반 마련'을 국정 과제로 선정했다"며 "시민사회와 국정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 비서실에도 시민사회 수석실을 뒀고, 청와대와 정부, 국회, 그리고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많은 시민사회 인사들이 진출했다"며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력적 국가운영 체계)를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에서는 시민의 성장이 곧 국가의 성장이 될 것"이라며 "그 길에서 여러분은 단순한 비판자가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이자, 변화하는 사회의 주류"라고 말했습니다. news1@kbs.co.kr
靑 시민단체 간담회 참석 78개 단체…진보·중립 성향 많아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회 간담회를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참석한 단체를 보면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진보·중립 성향 단체가 많고, 보수 성향 단체는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었다. 청와대가 '간담회 참석 단체 중에는 보수성향 단체도 있다'는 근거로 든 단체는 범시민사회단체연합, 환경과사람들, 나라살리는헌법개정국민주권, 여성단체협의회의 4개 단체였다. 한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에서는 공동대표와 사무처 책임자 2인이 참석하기도 했다.
아래는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참석자 명단.
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사무총장)
2.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신철영 공동대표)
3.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
4. 참여연대 (정강자 공동대표)
5. 참여연대 (박정은 사무처장)
6.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 사무총장)
7.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신준영 사무국장)
8.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이기범 회장)
9.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양한웅 집행위원장)
1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박영락 정의평화부장)
11. 전태일재단 (박계현 사무총장)
12. 민생경제연구소 (안진걸 소장)
13. 빈곤사회연대 (윤애숙 활동가)
14. 한국투명성기구 (이상학 상임이사)
15. 한국협동조합연대 (임헌조 이사)
16.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이갑산 상임대표)
17.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시민사회아카데미 (권용우 원장)
18. 환경과사람들 (최병환 대표)
19. 나라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장영수 공동대표)
20.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이기우 상임의장)
21.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호철 회장)
22. 생명안전 시민넷 (박순철 사무처장)
23. 소비자시민모임 (백대용 부회장)
24.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장인태 공동대표)
25.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
26.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태호 운영위원장)
27.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염형철 대표)
28.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임현진 위원장)
29.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김지훈 센터장)
30. 광주사회적경제연대포럼 (최이성 공동대표)
31. 대구시민센터 (윤종화 상임이사)
32.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
33. 한국여성민우회 (김민문정 상임대표)
34. 한국여성단체연합 (백미순 상임대표)
35.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
36.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김정수 상임대표)
37.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최금숙 회장)
38. 한국YWCA연합회 (한영수 회장)
39.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40. 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
41.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김민선 참여활동가)
42.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종걸 집행위원장)
43.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여준민 사무국장)
44.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대표)
45.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옥순 사무총장)
46.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권미영 센터장)
47.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안승화 회장)
48.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손인웅 상임대표)
49. 한국자원봉사문화 (정희선 사무총장)
50. 자원봉사이음 (박윤애 대표)
51.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 (구자인 이사장)
52. 도봉구 방학3동 주민자치회 (이춘길 회장)
53. 미친서각마을영농조합법인 (정지완 대표)
54. 흥사단 (류종렬 이사장)
55. 창원물생명시민연대 (공명탁 공동대표)
56.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임성재 상임대표)
57. 청주YWCA (이혜정 사무총장)
58.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박재만 상임대표)
59. 청렴사회실천부산네트워크 (김해몽 공동대표)
60.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우희창 대표)
61. 행정수도완성세종시민대책위 (홍석하 집행위원장)
62. 경북전례문화보존회 (이우원 상임고문)
63. 경북희망연대 (최대삼 공동대표)
64. 광주평화재단 (정영재 대표)
65. 충남시민재단 (이상선 이사장)
66. 여수YMCA (이상훈 사무총장)
67.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처장)
68.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김영기 대표)
69. 대구여성회 (남은주 공동대표)
70. 춘천녹색시민협동조합 (허태수 이사장)
71. 원주시민연대 (이선경 대표)
72. 전국청년정책 네트워크 (엄창환 대표)
73.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신윤정 실행위원)
74.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사무처장)
75. 환경운동연합 (권태선 공동대표)
76. 자연의벗연구소 (오창길 소장)
77. 녹색교통운동 (민만기 공동대표)
78. 생태지평연구소 (명 호 부소장)
79.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이준경 운영위원장)
80.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이사장)
표적이 된 '블룸버그' 기사, 정말 편파적이었을까
[블룸버그 논란이 남긴 것 ①] 기사 평가: 예외성, 편파성, 사실성
지난 3월 12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블룸버그통신 기사 제목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에 대한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학교 교수의 기고문을 싣습니다. 장부승 교수는 연속 기고문을 통해 '은연 중에 드러난 사대주의, 인종차별, 애국주의 그리고 권위주의'를 꼬집습니다.[편집자말]
▲ 교섭단체 대표연설 나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비유해, 사과를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 남소연
논란의 자초지종
사건은 3월 12일 시작됐다. 자유한국당이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발했다. 알고 보니 "수석대변인"은 외신 기사 제목을 인용한 것이었다. 지난해 9월 블룸버그통신 기사였다. 제목은 "한국의 문, 유엔에서 김정은의 최고 대변인 되다"(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
여당의 비판은 해당 기사와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로 옮겨 갔다. 3월 13일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지난해 9월 … 블룸버그 통신의 OOO 기자가 쓴 바로 그 악명 높은 기사다"라면서 기자의 실명을 거론했다.
그러더니 "이 기자는 국내 언론사에 근무하다 블룸버그통신 리포터로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문제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라고 언급했다. 다음날에는 <뉴욕타임스> 기자를 지목하며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민주당의 논평에 국내외적으로 여러 비판이 있었다. 서울외신기자클럽과 아시아계 미국인 언론인협회(Asian American Journalists Association)가 민주당을 비판했다. 민주당이 기자 개인에게 인신공격을 가하고, 머리카락 색깔과 국적을 거론하며 "국가원수 모독"이니 "매국" 운운한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미디어오늘>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언론이 민주당 논평을 비판했으며,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다른 야당들도 가세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민주당의 논평에 대해 "언론의 자유가 있는 우리 헌법 정신을 모독하고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민주당은 "기자는 비판받지 말아야 할 대상인가" "기자의 사생활이나 개인정보를 언급했거나 인신 공격을 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결국 3월 19일 사과 논평을 발표하고 문제가 된 표현 중 "검은 머리 외국인"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매국에 가까운" 등 표현 일부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이 사건은 현재 우리 민주주의 및 언론 자유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위기와 문제점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통해 제기된 여러 쟁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부(이 기사)에서는 해당 블룸버그 기사를 평가하고, 2부에서는 블룸버그 기사에 대한 민주당 논평이 갖는 문제점을 짚어 보겠다.
첫째, 블룸버그 기사는 악의적 왜곡 의도를 가진 예외적 기사인가?
▲ 논란이 된 작년 9월 블룸버그 기사 원문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방문 당시의 발언들을 "김정은의 최고 대변인"(Kim Jong Un"s Top Spokesman)이라고 묘사한 블룸버그 기사. 이 기사 제목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인용하면서 이 기사는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 Bloomberg
지난해 9월을 전후해서 트럼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우려를 표하거나 비판하는 외신 보도는 한둘이 아니었다.
서방에서는 김정은을 여전히 독재자로 본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했다는 징후도 없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번에는 다르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라고 하니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의 기사는 이런 맥락 속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 와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 "김정은이 이번에는 다르다"라고 말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북한 외무상이 유엔에 와 있으니 할 말이 있으면 자기들 입으로 하면 되는데, 한국의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북한의 생각이 이렇다'는 식으로 북한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런 측면을 "Top Spokesman"(최고의 대변인)이라는 표현으로 꼬집은 것이다.
이러한 논평은 사실 "Top Spokesman"(최고의 대변인)이라는 표현만 쓰지 않았을 뿐 다른 외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2018년 9월 17일 파이낸셜 타임즈 외교 담당 수석 칼럼니스트 기디온 라크만의 칼럼 이 칼럼에서 라크만은 워싱턴과 서울의 회의론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해 위험하리만치 순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 Financial Times
지난해 9월 17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FT)의 외교 담당 수석 칼럼니스트인 기디온 라크만(Gideon Rachman)은 "김정은에 대한 핵 도박"(A nuclear gamble on Chairman Kim)이라는 칼럼에서 "한국의 정책은 김정은에 대한 매우 위험한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라면서 "워싱턴과 서울의 회의론자들은 문 대통령이 위험할 정도로 순진하다고 우려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같은해 7월 23일 <보스턴 글로브>의 조앤 베노치(Joan Vennochi) 기자는 "김정은의 미화"(The beautification of Kim Jong Un)라는 기사에서, 현재 한국에서는 "김정은 미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북한 독재자가 모호하게 자꾸 말을 바꿔 가면서 하고 있는 비핵화 의사 표시를 수용해 주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결의에 찬 캠페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수용이 "남북관계 정상화로 이어질 것으로 희망"하고 있으나, "세계 다른 모든 곳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매우 위험할 정도로 희망섞인 사고(wishful thinking)로 보일지 모른다"라고 평가했다.
▲ 2018년 7월 23일자 보스턴 글로브 기사 이 기사에서 조앤 베노치 기자는 한국에서 "김정은 미화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보도했다. ⓒ Boston Globe
작년 9월 6일 미국에서 발간되는 일간지인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사설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더 이상 북핵위협은 없다"라고 선언했지만, 이것은 과장이라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간 긴장 완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별달리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외신의 비판은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방문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8년 10월 23일 <파이낸셜타임즈>는 "대북전략 둘러싼 갈등, 동맹 위협"(Split over North Korea strategy threatens alliance)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대북정책 관련 한미간 갈등을 보도했다. 한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승인없이 그들은 아무 것도 못해"(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라고 발언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 2019년 3월 15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 이 기사에서 사이먼 디나이어 워싱턴 포스트 도쿄 지국장은 하노이 북미 회담의 붕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신뢰성이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 The Washington Post
올해 들어서도 비판과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3월 15일 "하노이 붕괴후 북미간 중재자로서의 문 대통령의 신뢰도가 위태롭다"(After Hanoi breakdown, Moon's credibility as U.S.-Korean intermediary is on the line)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는 도쿄 지국장 사이먼 디나이어(Simon Denyer) 기자 이름으로 보도된 기사였다. 이 매체는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인 대북 화해 정책이 "넝마가 됐다"(in tatters)라고 했다. "중립적 중재자로서의 문 대통령의 신뢰도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의심받고 있다"라고도 언급했다.
물론 몇 개의 기사가 외신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외신'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신문사는 없다. '외신'은 사실 수천 개의 해외 언론사들로 구성돼 있다. 거기에서 어떤 한 가지 경향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민주당의 비판 대상이 된 블룸버그통신의 기사가 악의적 의도를 갖고 사실을 왜곡한, 유달리 튀는 기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제목에 '최고의 대변인'(Top Spokesman)이라는 표현만 안 썼지 그보다 높은 강도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외신 기사는 여럿 있었다.
둘째, 블룸버그 기사는 편파적이었나?
실제 블룸버그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면 중립성을 유지하려고 애쓴 흔적이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해당 기사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지만 동시에 다른 견해들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소속 스콧 스나이더 박사의 견해를 인용한다. 스나이더 박사는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 중에서도 비교적 온건하고 중도적인 견해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기사는 또한 코리아 소사이어티 부회장인 스티븐 노퍼의 견해도 여러 문장에 걸쳐 길게 인용하고 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1950년대 대미 공공외교 강화 차원에서 미국내 지한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체이고, 현재도 한국 정부의 일정한 영향 하에 있다. 스티븐 노퍼는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전문가이다. 그럼에도 그를 인터뷰하여 길게 인용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 입장을 일정 부분 반영함으로써 보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기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해 9월을 전후해 한국의 대북정책을 다룬 다른 통상적인 외신 기사들과 전반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블룸버그통신 기사는 특별히 어느 한 쪽으로 더 치우친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독일 공영 방송국ARD의 기자인 안톤 숄츠는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해당 기사에 대해 비교적 "잘 쓴 기사"라고 평가했다.
셋째, '최고의 대변인' 표현은 기자의 상상력인가?
일각에서는 블룸버그통신 기사의 본문에서 어느 외국 전문가도 "최고의 대변인"(Top Spokesman)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제목에 그런 표현이 등장하니 이것은 기자의 '창작물'이고 따라서 월권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기자가 하는 일은 인용이 전부가 아니다. 때로 기자는 광범위한 취재를 통해 파악된 내용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요약해 표현할 수도 있다. 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그러한 언급들이 "대변인"이라는 표현으로 잘 요약된다고 판단한다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사를 보면 "비판가들"(critics)을 주어로 하여 인용하고 있는 문장이 보인다. 왜 실명을 인용하지 않고 "비판가들"이라고 했을까?
현재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불과 수십 명도 되지 않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한국 정부의 연구비 보조를 받거나 연구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한국의 현직 대통령의 핵심 정책에 대해 실명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취재원은 오프더레코드(비인용 요청) 내지 딥백(취재 내용 사용하되 취재원 비공개) 혹은 백그라운드(인용하되 취재원의 이름은 비공개) 조건을 전제로 해서 언급을 하게 된다. 그러면 기자는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청취한 내용을 뭉뚱그려서 전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비판 내용의 요약이나 비슷한 표현으로의 대체(paraphrase)가 불가피하다.
더욱이 모든 신문기사는 데스킹(desking)이라고 해서 편집진의 퇴고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용의 중심이 이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욱이 제목의 경우에는 일선 기자보다 편집진의 권한이 더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18년 3월 22일 돈 커크 기자의 코리아타임스 기고문 이 기고문에서 40년 경력의 베테랑 외신기자인 돈 커크는 블룸버그 통신 기사에 대한 민주당의 과도한 대응을 비판하고 있다. ⓒ 코리아타임스
블룸버그통신 기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민주당의 논평을 비판하는 칼럼을 <코리아타임스>에 기고한 베테랑 외신 기자 도널드 커크도 자신의 칼럼에서 그 블룸버그통신 기사의 제목은 "아마도 해당 기자가 작성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블룸버그통신은 서울에 꽤 큰 지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모든 기사가 복수의 편집자에 의해 데스킹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스킹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기사는 편집진 전체의 공동 책임이 된다. 그래서인지 블룸버그통신은 3월 18일 공식적으로 "해당 기사와 기자를 지지한다"(We stand by our reporting and reporter)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 기사 자체를 면밀히 분석해 보고, 또 다른 외신 기사들과 비교해 본 결과, 해당 기사가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이 별로 없다. 그리 편파적이지도 않고, 더욱이 없는 사실을 기자의 상상력을 이용해서 지어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이 기사에 대해 그리도 강하게 대응했던 것일까? 민주당의 논평을 2부(다음 기사)에서 평가해 본다./ 글: 장부승(jangboo)
'도 넘은' 민주당 논평... 민주주의와 거리 멀었다
[블룸버그 논란이 남긴 것 ②] 민주당 논평의 문제점 다섯 가지
논란의 초점이 사실이든 해석이든, 언론보도 역시 비판의 성역에 있는 건 아니다. 민주당이 블룸버그통신 기사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얼마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3월 13일 그리고 그 다음날 발표된 민주당의 논평은 세계 10위권 규모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민주국가 집권여당의 논평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전히 우리 정치권이 세계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 엿보였다.
부정확한 사실 관계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으로 지칭하자, 그 다음날 더불어민주당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판하는 동시에 나 대표가 인용한 블룸버그통신 기사와 작성 기자를 실명까지 언급하며 비판했다. 사진은 지난 1월 17일 현안 브리핑을 하는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의 모습.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1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우선 해당 논평은 사실관계가 부정확했다. 블룸버그통신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연합뉴스>에 있다가 블룸버그통신으로 옮긴 통신원(리포터)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문장의 배후에는 해당 기자를 낮잡아 보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기자는 <연합뉴스>에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약 6년간 세계 최대 통신사인 AP통신에서 일했다. 그후 다시 블룸버그통신으로 옮겼다. AP와 블룸버그통신 모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규모 언론사다. 유능한 언론인들을 채용하고 또 언론인들을 잘 훈련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사대주의적 언론관
둘째, 민주당의 논평은 사대주의적이다.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검은 머리 외국인" 등의 표현은 기사의 작성자가 외국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다는 놀라움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같은 내용을 검은 머리가 아니고 금발 머리 외국인이 썼다면 민주당은 그냥 승복할 것인가? 진짜 외국인이 쓴 것이면 괜찮지만, 외국인인 줄만 알았던 한국인이 쓴 글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은 외국과 외국인에 대한 사대주의에 다름 아니다.
인종 차별 의식
셋째, 언론인의 머리카락 색깔이나 피부 색깔을 문제삼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며, 인종적 감수성의 결여를 드러낸 것이다. 만약 이런 언급을 미국, 일본, 유럽의 집권여당 대변인이 했다면 아마 그 대변인은 물론 당 대표마저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머리카락이나 피부 색깔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기사 내용에 이견이 있으면 내용을 비판하면 된다. 이미 농촌에만 가도 다문화 가정이 부지기수고, 머리카락·눈·피부 색깔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무역과 투자가 가장 개방돼 있는 국가 중 하나인 대한민국 정치권의 인종과 민족 감수성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과도한 애국주의
넷째, 민주당 논평은 과도한 애국주의를 보여준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표현의 배후에는 '한국인이 왜 외국 언론사나 기업에서 일하느냐'는 못마땅한 시선이 묻어 있다. 그리고 사실은 한국인인데 왜 외국인인 척하느냐는 시각도 보인다.
그러나 애국만을 우선한다면 어떤 한국인이 외국 기업에 취직할 수 있나? 외국 기업이 한국인을 채용할 때는 그 능력을 보는 것이지 한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애국하는 사람은 외국 기업에 취직하면 안 되는 것인가?
반대로 우리가 외국인을 고용할 때는 어떤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칭찬만 늘어 놓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관찰과 양심에 근거해 한국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을 말해주길 원하는가?
이미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취업해 있고, 한국인의 외국 취업도 정부에서 장려까지 하는 요즘 세상에 이런 식의 과도한 애국주의는 시대착오적이다.
철지난 권위주의의 그림자
▲ 2019년 3월 19일자 민주당 대변인 논평 논란 6일째인 3월 19일 민주당은 3월 13일의 논평에 대해 사과하고 해당 논평중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표현들을 삭제하였다. ⓒ 더불어민주당
마지막으로 민주당 논평에는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면 "매국"이고 "모독"이라는 생각의 배후에는 대통령이 곧 국가이고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전근대 권위주의적 사고가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왕이 아니다. 그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우리의 여왕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공화정에서 대통령은 국민주권을 일정 기간 위임받은 우리의 대표자에 불과하며, 실제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민은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언론인은 얼마든지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질문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이미 민주화된지 한 세대가 넘었다. 게다가 현 정부는 '촛불'이라는 국민의 여망을 받아 안고 출범한 정부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그런 정부의 집권여당이 특정 외신의 보도에 대해 특정 기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과잉 반응하고, 더욱이 그 과정에서 사대주의, 인종차별에 과도한 애국주의와 철지난 권위주의를 보여주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작고한 진보 언론인 리영희 선생이 말했듯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애국"이다. 진실에 앞서 애국을 강요하려 해선 안 된다.
기계적 중립으로 박근혜 정부-문재인 정부 비교하는 것은 '촛불' 의미 망각
덧붙여 금번 사건 관련 일부 논자들이 보여준 '기계적 중립'에 근거한 비판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논자는 금번 블룸버그통신 사건 관련 서울외신기자클럽의 성명서와 4년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기소 사건 당시 서울외신기자클럽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의 문구를 대조·비교하면서 마치 외신 언론인들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게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4년 전에는 해당 지국장이 이미 기소된 상황 하에서 기소 철회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다. 이번에는 기자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상황 속에서 공개 성명을 낸 것이다. 서한의 문구와 성명의 문구에 표현상 차이가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서울외신기자클럽 이사회는 계속해서 바뀐다. 4년 전의 이사들과 지금의 이사들이 같은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의 상황 판단과 대응 역시 차이가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이러한 대응이 사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동렬에 놓는 '기계적 중립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혁명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언론인들이 언론 자유 보장 관련 더 높은 기대감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에서 시대착오적인 대응이 나올 경우 이에 대해 강한 톤으로 비판하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산케이신문> 사건 당시 국내외 많은 시민, 언론인, 지식인들이 한국의 언론 자유 후퇴와 대외 이미지 악화에 대해 우려했다. 결국 <산케이신문> 지국장은 1심 무죄가 나왔고 검찰은 항소조차 못했다. 지난해에 그 지국장은 700만 원의 형사보상금까지 수령했다.
촛불혁명 이후에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과제는 산적
▲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3월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 아래서 4년 전과 유사한 언론 자유 침해가 재연될 조짐이 보였다는 것은 우려스런 대목이다. 촛불혁명으로 이제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완성됐고, 문재인 정부의 민주적 권위는 신성불가침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번 블룸버그통신 사건은 여전히 우리 민주주의 발전의 길은 멀고, 사대주의, 인종차별, 과도한 애국주의와 권위주의 등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보루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대통령이, 집권여당이 알아서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이번 블룸버그통신 사건이 언론인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 민주주의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깊이 음미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언론 핍박' 한다는 '외신기자클럽' 성명, 박근혜 땐 달랐다
정부에 따라 달라진 서울외신기자클럽의 태도
외신기자들의 모임인 '서울외신기자클럽' 이사회가 <블룸버그통신> 이유경 기자에게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에 대해 민주당이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블룸버그통신의 이유경 기자가 쓴 악명 높은 기사"라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한 내용이 원인입니다.
'서울외신기자클럽'의 의견은 과거에도 몇 차례 나왔습니다. 가장 유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 것은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의혹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위한 편지입니다.
당시 가토 전 지국장은 8개월 동안 출국 금지를 당해 일본으로 출국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서울외신기자클럽' 이사회는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우편으로 발송했습니다. 두 사건에 대해 서울외신기자클럽의 태도는 어떻게 달랐는지 살펴봤습니다.
서울외신기자클럽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vs. 성명서'
▲ 2015년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지국장이 출국금지에 대해 서울외신기자클럽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좌) 2019년<블룸버그통신> 이유경 기자가 쓴 기사에 대한 서울외신기자클럽 성명서 ⓒ 임병도
'서울외신기자클럽'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편지'와 '성명서'로 형태부터 차이가 많이 납니다. 편지는 부탁이고, 성명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나타내는 표현 방식입니다.
첫 문장부터 비교해보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출국금지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했지만, 성명에는 '개인의 신변안전에 큰 위협이 가해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자 한다'라며 강한 어조로 시작됩니다.
편지의 두 번째 문단을 보면 '팔순이 넘는 어머니와 장모가 귀국할 거라 믿고 있다'라며 애절한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습니다. 또한, '서울외신기자클럽'이 그동안 많은 기여를 했다며 선처를 부탁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성명은 '언론 통제의 한 형태이고 언론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라며 언론을 핍박하고 있다는 식으로 강하게 비난합니다. 편지의 세 번째 문단에 있는 '나쁜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표현과 비교하면 마치 문재인 정부의 언론 환경이 박근혜 정권보다 더 나쁘게 보입니다.
마지막을 보면 편지는 끝까지 박근혜 대통령에게 관심을 보여 달라며 부탁을 하는 어조입니다. 그러나 성명은 '즉시 철회'를 요구하는 명령조입니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납니다.
박근혜 때는 왜?
▲ 2018년 9월 26일 이유경 기자가 쓴 블룸버그 기사 ⓒ 블룸버그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언론을 신뢰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부 외신의 날카로운 보도를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외신이 박근혜 정권을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 정권 초창기 일부 외신들은 박 대통령이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박근혜 정권과 국내 언론은 외신의 이런 보도를 인용해 포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이 기소된 뒤 일부 외신들은 '언론 탄압'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고, 취재하기 가장 어려운 정부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부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권이 언론을 억압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외신기자클럽'이 민주당 대변인 논평 하나만을 가지고 언론 통제를 운운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경향이 보입니다.
'서울외신기자클럽'은 성명에서 "기사와 관련된 의문이나 불만은 언론사에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제기되어야 하고 결코 한 개인을 공개적으로 겨냥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I don't think of Moon as Kim's spokesperson, but rather a leader who realizes he needs both Kim and Trump amenable to agreement," said Noerper. Moon's approach "risks accusations of compromise, but in reality is geared toward effectively managing two outsized egos."
노에르퍼는 "나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대변인이라기보다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 모두가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문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타협한다는 비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두 명의 초대형 인물의 자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했다. (번역: 뉴스프로)
<블룸버그통신> 이유경 기자의 기사는 전형적인 '낚시 기사'(내용과 전혀 다른 제목으로 클릭수를 높이려는 기사)입니다. 본문에는 분명 '대변인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결론을 내릴 만한 근거가 희박하거니와 억지스럽습니다.
이유경 기자와 <블룸버그통신>은 <미디어오늘>이 공식 요청한 '김정은 수석대변인' 기사에 관한 물음에 "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왜 기자가 자신의 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하지 않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취재한 외신 기자라면 한국의 언론 상황이나 '기레기'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겁니다. 이유경 기자의 기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과연 언론 탄압인지 '서울외신기자클럽'이 스스로 반문해봤으면 합니다./ 임병도(impeter
국가부채 1700조 육박…공무원·군인연금이 절반 이상 차지
정부,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 의결
작년 국가부채 1683조…1년새 127조 늘어나
공무원·군인연금충당부채 940조…11.1% 증가
"이자율 낮아져 할인율 하락한 영향 가장 커"
당장 갚지 않아도 될 미래의 빚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국가부채 규모가 지난해 17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과 군인에게 미래에 연금으로 지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이 100조원 가까이 늘어나 연금충당부채의 증가 폭이 컸던 탓이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지출과 비용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발생주의'에 입각한 정부 재무제표상 지난해 국가자산은 2123조7000억원, 국가부채는 1682조7000억원이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은 441조원으로 1년 전(506조7000억원)보다 65조7000억원(-13.0%) 감소했다. 1년 새 자산은 61조2000억원 늘어났지만, 부채는 이의 2배가 넘는 126조9000억원 규모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공무원·군인 연금에 대한 충당부채가 전체 부채의 55.9%를 차지하는 939조9000억원이다. 이 부채는 2014년 643조6000억원에서 2015년 659조9000억원, 2016년 752조6000억원, 2017년 845조8000억원 규모로 매년 증가해왔다. 공무원연금충당부채가 753조9000억원, 군인연금충당부채가 186조원으로 이뤄져 있다.
증가분으로 따지면 94조1000억원(11.1%)으로 전체 국가부채 증가분의 74.2%를 차지한다. 증가율은 2016년(14.0%)과 2017년(12.4%)에 비해선 다소 둔화했다. 공무원연금충당부채가 753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8조6000억원(11.6%) 불어났으며 군인연금충당부채는 186조원으로 같은 기간 15조5000억원(9.1%) 늘었다.
연금충당부채의 규모는 결산일 기준 재직자와 연금 수급자에게 장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추정해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계산된다. 실제 부채는 아니지만, 조성액이 장차 지급해야 할 금액보다 부족할 경우엔 정부의 일반 재원으로 매워야 하는 돈이다.
지급 시기나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확실한 미래 예측에 기반한 것이기에 국채나 차입금 등 국가채무와는 다른 개념이다. 추정부채지급액은 국채수익률의 최근 10년 평균치를 할인율로 적용해 계산하며 이러한 재무적 가정에 따라 추정액이 큰 폭으로 변동될 수 있다.
실제 정부는 최근 낮은 금리 수준으로 할인율이 3%대로 떨어져 연금충당부채가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승철 기힉재정부 재정관리관(차관보)은 "할인율이 0.1%포인트(p) 떨어지면 연금충당부채는 20조원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부에 따르면 할인율 인하, 즉 재무적 요인으로 인한 연금충당부채 증가액이 79조9000억원으로 전체 증가액의 84.9%를 차지한다. 이 비중은 1년 전(61.2%)보다 늘었다.
이외의 증가분인 14조2000억원(15.1%)은 재직 공무원의 근무기간 증가(30조7000억원), 수급자에 대한 연금 지급(-16조5000억원) 등 실질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정부는 밝히고 있다. 연금충당부채는 매년 공무원 수가 증가한 만큼 늘어나고 수급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면 감소하는 구조다.
이 차관보는 "연금충당부채는 재무제표상 미확정 부채로 실제 확정된 국가채무와는 다르다"고 강조하며 "수입에 대한 고려 없이 지출 측면에서 추정한 금액이기에 실제 연금 지급 시에는 공무원·군인의 재직자 기여금과 국가 부담금 등 미래 수입으로 우선 충당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공무원 연금 수입은 11조4000억원 규모로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무원 규모가 증원된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이 차관보는 "공무원은 입사 후 1년이 지나야 연금을 쌓기 시작하기 때문에 지난해 결산에는 2017년 입사자에 대한 연금충당부채가 반영된 것"이라며 "이 기간 채용 규모가 2만8000명으로 부채 규모는 750억원에 그친다"고 밝혔다.
연금충당부채 외에는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648조4000억원) 등 확정 부채와 주택도시기금의 청약 저축 등이 증가하면서 생긴 부채(68조2000억원) 등 비확정부채가 총 742조8000억원으로 1년 새 32조8000억원(4.6%) 늘어났다.
정부는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국가재정법에 따라 감사원 결산 검사를 거쳐 다음달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결산 결과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 반영해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정책적으로 사용된다. suwu@newsis.com
나라 곳간 두둑한데…국민 1인당 빚부담 1300만원
정부,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 의결
중앙·지방정부 부채 680조7천억원 역대 최대
1인당 나랏빚 1319만원…"증가 속도는 둔화"
관리재정수지 개선돼…"예상보다 덜 확장적"
우리나라 정부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의 규모가 지난해 680조원을 넘겼다. 인구수를 고려하면 국민 1명이 1300만원이 넘는 빚을 떠안고 있는 꼴이다.
다만 나라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규모는 10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축소돼 한층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이제껏 확장 재정정책을 강조해왔음에도 세금을 걷은 만큼 쓰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지난해 현금이 실제 오간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현금주의에 입각한 중앙·지방정부 채무(D1)는 680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1년 전(660조2000억원) 대비 증가 폭은 20조5000억원으로 2009년 이후 가장 낮았다. 전년 대비 증가 폭은 2009년 50조6000억원, 2010년 32조6000억원, 2011년 28조3000억원, 2012년 22조6000억원, 2013년 46조7000억원, 2014년 43조4000억원, 2015년 58조3000억원, 2016년 35조4000억원, 2017년 33조3000억원을 각각 기록했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는 출산율 등 인구 변동이 중간 수준일 것으로 가정(중위 추계)했을 때 5160만7000명이다. 국가부채 규모를 인구수로 나눠 계산해보면 1인당 약 1319만원이 나온다. 국민 1명이 1300만원이 넘는 부채 부담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1년 전(1289만원)보다 부담 규모가 커졌다.
국가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8.2%로 1년 전과 같은 수준이었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국가 간 비교 기준으로 활용되는 발생주의 기준 일반정부 부채(D2, D1+비영리 공공기관)는 735조2000억원이었다.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42.5%로 OECD 국가 평균 수준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17년 기준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의 평균은 110.9%에 이른다. 일본(224.2%), 프랑스(124.3%), 영국(117.0%), 프랑스(124.3%) 등에 견줘보면 한국은 월등히 낮은 수준이다.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차관보)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재정건전성은) 양호하다"며 "증가 추세도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세종=뉴시스】전년 대비 국가채무 증가 및 국가총생산(GDP) 대비 증가 폭. (자료 = 기획재정부 제공)
한편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31조20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1년 전(24조원 흑자)보다 흑자 폭이 7조1000억원 커졌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산업재해보상보험및예방, 고용보험기금 등을 뺀 관리재정수지는 10조6000억원 적자였다. 적자 폭은 1년 전(18조5000억원 적자)보다 7조9000억원 개선됐다.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는 각각 예산 대비해 16조1000억원, 20조9000억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GDP 대비 비율도 각각 0.4%p, 0.5%p 개선됐다. 특히 통합재정수지의 경우 GDP대비 비율이 2016년 1.0%, 2017년 1.4%, 2018년 1.7%를 기록하며 최근 3년 간 크게 개선되는 추세를 보였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법인 실적이 개선되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호조를 보임에 따라 세수 실적이 증가한 영향이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이 차관보는 "당초 예산 편성 때보다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며 "관리재정수지가 적자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고수해 온 것은 맞지만, 지난해 초과 세수가 25조4000억원 규모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예상보다는 정부 정책이 덜 확장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국가재정법에 따라 감사원 결산 검사를 거쳐 다음달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결산 결과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 반영해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정책적으로 사용된다
잔인한 서북청년단, 4.3때 여성들에게 무슨 짓 한 건가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북에서 내려와 4·3 제주로 향한 서북청년단, 그들은 누구인가
▲ 국회 앞에서 시위하는 서북청년단. ⓒ 위키백과
해방정국 때 갑작스레 출현해 '학살 전위대'로 활약한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 1946년 11월 발족해 1949년 10월 법적으로 소멸한 이 단체는 '북에서 내려와 제주 4·3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서북청년단 대다수가 제주도로 갔다는 의미가 아니다. 북에서 내려온 그들의 폭력적 에너지가 제주 4·3항쟁 진압 과정에서 극명하게 표출됐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미군과 경찰의 명령을 받은 서북청년단이 4·3 때 무고한 양민들을 악랄하게 학살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단순히 인명을 살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성 인권까지도 무참하게 짓밟았다.
오금숙 제주 4·3연구소 연구원이 1998년 '제주 4·3 제50주년 기념 제2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4·3을 통해 바라본 여성인권 피해 사례'에 정아무개 교사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인명과 여성 인권에 대한 서북청년단의 이중적 악행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정씨는 진보 진영과는 무관했다. 그런데도 1948년 4·3항쟁 때 서북청년단에 붙들렸다. 실질적인 체포 사유는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약혼자인 홍경토도 붙들렸다. 초등학교 교사인 홍경토 역시 진보 진영과 무관했다. 체포된 홍경토는 공장 창고에 갇혔다. 거기서는 청년단원들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구타하고 있었다.
청년단원들은 여성과 남성을 불러낸 뒤, 공개적인 데서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다가 쇠꼬챙이를 불에 달군 다음, 여성의 몸을 쑤셔댔다. 여성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홍경토는 조만간 죽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홍경토가 약혼녀 도움으로 살아난 것이다. 홍경토가 죽을 위기에 처한 그 시각, 정씨가 약혼자를 구하기 위해 약혼자 아닌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정씨를 납치한 청년단 간부는 그 살벌한 상황에서 청혼을 했다. 정씨는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대신, 조건을 내걸었다. 약혼자를 살려주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홍경토는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정씨는 학살자와 결혼했다. 그 뒤, 정씨가 불행하게 산다는 소문이 제주 시내에 퍼졌다.
4·3 당시 제주도에서는 서북청년단원들이 피해자 여성과 강제 결혼하는 일이 많았다. 이남에서 생활기반이 취약했던 이들 중에는 그런 식으로 제주도 정착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부잣집 딸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가족을 학살한 원수와 한 이불을 덮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는 정씨처럼 냉랭하게 사는 부부들이 많았다고 한다. 평생 가도 부부동반 외출을 안 하는 여성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은 남쪽 제주도에서 이처럼 입에 담기 힘든 악행들을 저지른 뒤 역사 속으로 숨어들었다.
1946년 11월 30일 결성된 서북청년단은 이북청년단
▲ 제주 4·3 당시 처형을 기다리는 사람들. ⓒ 위키백과
현대 한국인들한테는 서북(西北)이란 방위가 평안도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평안도·함경도·황해도를 통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됐다. <삼봉집>에 따르면, 비운의 재야인사인 삼봉 정도전은 1383년 이성계한테 자기소개할 목적으로 강원도 북부와 함경도를 잇는 철령 고개를 지나면서 "철령은 산이 높아 칼끝 같고"라는 시의 한 대목을 남겼다.
바로 그 칼끝 같은 철령이란 관문을 기준으로 북동쪽은 관북, 북서쪽은 관서, 동쪽은 관동으로 분류됐다. 개경 북쪽인 평양이 북경이 아닌 서경으로 불린 것도, 철령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위 관념에 따르면, 서북은 한반도 북부를 통칭하는 표현이었다.
그런 관념이 해방 직후까지도 통용됐다는 점은 1946년 11월 3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실린 "지금 서울 시내에서 서북 청년들로 조직되어 있는 청년단체는 서북청년단, 대한혁신청년회, 북선(北鮮)청년회, 함북청년회, 평안청년회, 황해청년회, 양호단의 일곱 단체"라는 문장에서도 알 수 있다.
위 기사에 따르면, 북조선이란 의미가 담긴 북선청년회, 함경도 출신들이 모인 함북청년회도 '서북 청년들'의 범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런 서북 청년들의 모임이 1946년 11월 30일 결성된 서북청년단이었다. 이 단체는 요즘 말로 바꾸면 이북청년단이 된다.
1986년 12월 1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서북청년단 특집 기사 제7편에는 "서청은 맨 처음 1천여 명의 회원으로 출발했으나, 마침내는 20만 회원(선우기성 위원장의 증언)으로 확장"됐다고 쓰여있다. 이북 청년들이 객지인 남쪽에서 이처럼 신속한 조직 확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해방 직후의 대규모 인구이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 이용기·김영미의 '주한미군 정보보고서(G-2 보고서)에 나타난 미 군정기 귀환·월남민의 인구이동 규모와 추세'에 따르면, 1945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43만 2600명, 12월엔 7만 8884명이 38도선을 통해 남하했다. 1946년 1월부터 1948년 12월까지는 매월 수천에서 수만이 남하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본래 남쪽에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이런 인구이동 흐름을 타고 이북 출신들이 대거 남하한 것도 사실이다. 서북청년단의 등장과 확산은 이런 흐름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들이 남하한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북한의 친일청산과 토지개혁이다. 이 외에, 자본가 계급을 대변하는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이 공산당한테 밀린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는 조선민주당 지지층이 북쪽을 떠나도록 유도하는 원인이 됐다.
서북청년단 영향력 배후는 미 군정과 친일세력의 정치적 수요
노동자와 빈농의 급격한 지위 향상도 원인이 됐다. 해방 2년 전인 1943년 현재, 전국 사립학교 중 264개가 북쪽에, 80개가 남쪽에 있었다. 북쪽 사립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지주 등을 포함한 상류층이었다.
이 같은 교육 양극화는 해방과 함께 극적으로 역전됐다. 해방 뒤 북쪽에서는 노동자·농민의 취학률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학생 정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이는 기존 상류층을 불안케 하는 원인이 됐다. 역사학자 김평선의 논문 '서북청년단의 폭력 동기 분석'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해방 이후, 식민시기에 교육적으로 소외되었던 노동자와 빈농들이 교육적 혜택을 받게 되면서 점차 사회·경제적으로 그 지위가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1946년 9월 평남 지역 중등 이상 입학생의 출신성분을 보면, 노동자와 농민이 각각 18.5%와 60.7%를 차지하였다. 이들의 교육적 수혜 증가는 소련 당국의 입장에서 간부 양성의 필요성 때문에 추진되었다. 점차 이들은 이북 지역에서 정치·경제·치안 영역에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제주 4·3연구소가 2010년에 발행한 <4·3과 역사> 제9호·제10호 합본호.
이런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상류층과 기존 식자층이 38도선을 넘어 대거 남하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가 서북청년단을 결성해 남한 정치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같은 한반도 안이라고 해도, 고향 떠난 사람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객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1천으로 시작했던 타향인들의 조직이 얼마 안 가 20만으로 급증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타향인들의 조직이 그렇게 팽창하는 것을 토착민들이 그냥 지켜보지도 않는다. 서북청년단이 조직과 영향력을 급속히 팽창한 것은 상당히 경이적인 일이다.
그런 경이적 현상의 배후에는 일차적으로 미 군정과 친일세력의 정치적 수요가 있었다. 중도 성향과 진보적 성향을 함께 띠었던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해방 직후 전국적 지지를 받은 사실, 미 군정이 여운형 세력을 억누른 뒤인 1946년에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일시적이나마 여운형의 입지를 살려준 사실에서도 나타나듯이, 해방 공간에서도 지금처럼 진보 진영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북 청년들이 서북청년단에 가담해 학살 청부업자로 살길 모색
▲ 4·3 유해 발굴 현장. ⓒ 제주 4·3 아카이브
그런 상황에서 미 군정이 오로지 군사력만으로 진보 진영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는 통치의 정통성을 획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 군정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민중 속에도 좌파에 맞설 대중 조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주목한 대상이 이북 출신 청년들이었다. 언론인 리영희는 <대화>에서 "이북에서 도피해온 그런 부류의 청년들이 서북청년단이란 것을 결성해 미 군정과 경찰의 비호하에 온갖 테러와 불법행위·폭력을 자행"했다고 말한다.
미 군정이 서북청년단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 점은 위 김평선 논문에 소개된 청년단원 박아무개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미 군정은 박아무개를 서귀포시 표선면사무소에 취업시켜주었다가, 거기서 해고되자 이번에는 미 육군 제24사단 첩보부대인 CIC 성산포 사무소 직원으로 채용해주었다. 이런 식으로 미 군정이 '살뜰히' 챙겨주지 않았다면, 이북 청년들이 그 짧은 시간에 객지에서 정치적 기반을 굳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북청년단이 급속히 팽창한 데는 경제위기도 한몫했다. 해방 뒤 남한에서 가중된 극도의 청년실업이 이북 청년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한편, 미 군정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됐다. 미 군정은 청년실업을 해소하고자 단기 일자리 창출 방안 등을 모색했지만, 해방 직후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북 출신들은 이남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경제적 조건에 놓이지 않을 수 없었다. 김평선 논문에 따르면, 1947년에 월남민 12만 766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만 8248명이 실업 상태에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런 경제위기는 이북 출신들이 정치무대에서 일자리를 찾도록 유인하는 요인이 됐다. "남한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월남민들은 실업난과 식량난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김일성 정권을 피해 남으로 내려왔더니, 남쪽에는 굶주림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 군정과 친일세력이 독자적으로 남한 민중을 상대할 수 없고 남한에서 경제위기가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이북 청년들이 서북청년단에 가담해 학살 청부업자로 살 길을 모색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분출된 그들의 폭력적 에너지가 제주 4·3항쟁에 대한 진압을 통해 극명하게 표출됐던 것이다./ 김종성(qqqkim2000) 오마이뉴스
제주4·3, 진압을 거부했던 군인들을 기억하다
1948년 당시 언론 ‘여순반란’ 규정, 빨갱이·국가보안법 낳은 학살사건으로
8년 만에 재심결정, 특별법은 16대 국회부터 발의했으나 여전히 계류 중
4·3은 아직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누구는 ‘제주 4·3 (폭동)사태’로 부르고 누군 ‘4·3 민중항쟁’으로 부른다. 제주4·3 특별법은 4·3을 ‘1947년 3월1일부터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 사태와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다. 다수가 몰랐던 국가의 민간인 학살이다. 그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직접 사과하고 박근혜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조금씩 알려졌다.
4·3 진압을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알려지지 않았다. 공식 이름이 없을 뿐 아니라 희생자 수 통계조차 없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들이 ‘빨갱이’로 몰렸는데 역사학계에선 이때부터 ‘빨갱이’라는 낙인이 생겼다고 본다. 61년이 지나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지만 비석엔 아무 내용이 없다. 이 비극은 제주 진압이 한창이던 1948년 10월15일 육군 총사령부가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육군 제14연대에 제주 출동 명령을 내리면서 벌어졌다.
▲ 빨갱이란 말은 1948년 4.3 진압을 거부한 군인들 사건 이후 '정권 눈밖에 난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빨갱이라는 용어 자체는 일제강점기에도 사용했지만 이땐 실제 좌익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48년 이후엔 소위 빨갱이가 아닌 이들까지 빨갱이로 모는 일이 벌어졌다.
동족상잔을 거부한 ‘빨갱이’
14연대 군인 2000여명은 19일 밤 제주로 출병하는 대신 여수일대 경찰을 제압했다.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란 이름의 군인들 성명을 보면 동족상잔 결사반대·미군 즉시 철퇴·분단 비판 등을 주장했다. 분단을 기정사실화한 미군정-이승만정권이 친일경찰로 권력을 휘둘러 당시 군과 경찰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해방 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동족상잔’을 지시하자 한꺼번에 폭발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언론을 완전히 통제했다.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 후 정부를 모략하는 기사·공산당과 이북 북괴정권을 인정하는 기사 등을 금지한다는 ‘언론에 대한 7개 조항 지침’을 제정했다. 분단과 좌우대립을 빌미로 만든 ‘보도지침’이다. 경향신문은 10월22일 “관계당국의 (기사)게재 보류의 시달로 인해 일절 함구돼 오던 바 21일 드디어 보류가 해금되는 동시에 이범석 국무총리(국방장관)가 진상을 발표했다”며 3일이나 지나 보도한 이유를 밝혔다.
▲ 1948년 10월22일 경향신문 1면. 빨간박스는 '반란'
언론은 이승만 정권 시각을 담아 ‘반란’으로 규정했다. 22일 동아일보는 “일부육군부대 반란소요 공산계열과 극우분자도 책동”, 경향신문은 “응시하자! 민족골육상잔의 이 참극을, 여수국군 일부 반란야기” 등의 기사에서 소식을 전했다. 이는 이날 이범석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공산계열과 극우 폭도들의 반란”으로 규정한대로다. 여기서 ‘극우’는 김구를 가리키는데 김구는 이를 부인하는 입장을 냈고, 김구 개입의 근거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싸움이 길어지자 ‘반란’주동자를 오동기(광복군 출신, 김구 노선)-송욱 여수여중 교장(민족주의 우파)-김지회 중위-지창수 상사 등으로 바꿨다. 사건의 성격도 ‘군의 정당한 항명’이 아닌 ‘민간의 반란’으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모략’으로 변해갔다. 언론은 이를 견제하지 않았고 평화일보와 같은 극우언론은 오히려 이를 부추겼다.
한 예로 평화일보는 10월30일 ‘순천반란지구 인민재판에 국회의원 황두연이 배석판사로 활약’했다는 기사를 냈다. 황 의원은 구타를 당하며 취조까지 받았으나 해당 기사는 오보였다. 기사를 지시한 양우정 평화일보 사장은 이승만과 가까운 인사였다.
‘빨갱이’면 죄 없는 국회의원을 때리거나 재판 없이 민간인을 죽여도 됐다. 언론은 ‘그래도 괜찮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형 12명에 무기도 9명”(48년 11월16일 경향신문), “사형 또 102명”(11월18일 경향신문) 등 학살이 이어졌고 심지어 “반란 중학생 등 제2차 89명 사형”(11월2일 동아일보)에서 보듯 학생들을 “반란폭도”라며 총살했다.
정부가 ‘여순반란’으로 이 사건을 몰아간 1948년 10월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패전국인 일본을 대신해 남북으로 찢겨 남한만의 정부를 세운지 두 달, 4·3과 여수의 사건은 미국 입장에서는 이승만 정부를 유지할지를 판단할 시금석이었다. 한편 국내에선 분단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10월23일 구성하면서 친일파 청산 요구가 거셌다. 이승만은 조선총독부-미군정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 여순항쟁 당시 정부반군 동조자로 의심받아 진압군에 구금된 어린 학생들. 사진=칼 마이던스
이승만은 ‘여순반란’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강행했다. 그는 11월5일 “남녀아동까지 일일이 조사해 불순불자는 다 제거하고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리니 앞으로 어떠한 법령이 발포되더라도 전 민중이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악독극악한 잔인행동의 하수자 중에 남녀중등학도가 다수”라며 국가보안법 제정에 힘을 보탰다. 조선일보가 11월14일 “국가보안법을 배격함”이란 사설에서 “광범하게 정치범·사상범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했지만 결국 12월1일 국보법이 탄생했다.
박정희와 여순사건
14연대의 행동을 남로당 지령을 받은 반란으로 보긴 어렵다. 14연대는 여수·순천에서 보성벌교(서쪽), 광양(동쪽) 등 사방으로 뻗어갔는데 반란이었다면 수도를 향하고, 남로당이 이를 계획했다면 수도권에서 했어야 한다. ‘반란’이란 딱지를 뗀 건 박정희였다.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있던 박정희는 여순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군 내 남로당 명단을 넘기고 풀려난 박정희를 ‘빨갱이’라고 공격한 건 1963년 대선 당시 윤보선 후보 측이었다.
▲ 1963년 10월5일 동아일보 1면 박정희 후보가 낸 광고. 박정희는 윤보선 후보를 "시커먼 새우(자신)를 매카시즘이라는 후라이판에 달달 볶아 새빨간 빨갱이로 만들려는 수법을 즐기고 있다"고 비판하며 "차제에 한국적 매카시즘 신봉자를 사회에서 일소시키기 위해 분연히 궐기해 과감히 투쟁하자"고 했다.
박정희 후보(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는 신원조사와 연좌제 폐지, 정치사상범 사면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선거는 역대 최저표차였던 선거로 박정희는 윤보선을 15만표 차로 이겼는데 호남에서만 35만표 차로 이겼다. 여순사건 이후 빨갱이로 차별받던 호남인들이 박정희에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박정희는 집권 후 자신이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내용의 과거 기사를 도서관 등에서 다 없애도록 지시했고, 여순반란사건을 여순사건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반공’을 내걸며 호남 차별과 빨갱이 낙인을 버리지 않았다. 박정희만 빠져나온 셈이다.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되돌린 건 2001년이었다. 월간조선은 그해 10월호에서 여순사건을 다룬 영화 ‘애기섬’을 평하며 여순반란사건으로 적었다. 이영일 전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당시 “국정교과서에도 ‘여수순천 10·19사건’으로 기록됐는데 월간조선이 ‘여순반란사건’으로 만들었다”며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고 개탄했다. 여순연구자인 주철희 박사는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는 저서에서 잘못된 명령에 저항해 출동을 거부한 정의로운 군인들이니 ‘반란’이 아니라 ‘여순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국가폭력, 국가의 방해
지난달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당한 장환봉씨 등의 3인의 유족(장경자씨 등)이 제기한 재심신청을 8년 만에 받아들였다. 유족들은 2011년 10월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했고 2013년 1심 재판부는 재심신청이 타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불법 연행 구금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항고했다. 2015년 2심 재판부도 유족 손을 들어줬지만 검찰은 재항고했다. 4년이나 방치하던 대법원은 사법농단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이후 재심을 확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검찰이나 대법원만 문제는 아니다. 2009년 법무부 통계를 보면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1997년까지 사형당한 사람 수는 919명이다. 이 중 여순항쟁 군법회의 사형선고만 691명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이미 10만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여순항쟁 희생자 등 ‘빨갱이’는 국민취급도 하지 않으며 통계에서 제외했다.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희생자 규모를 추산하지 않았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추산으로 여순항쟁 희생자는 1만명이 넘는다.
▲ 희생자 이름을 채우지 못한 위령비. 원래 넣으려던 문구는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군인들을 중심으로 발발하여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수를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지역 일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학살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분단과 갈등, 혼란의 시대에 억울하게 희생된 여순사건 영령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영면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위령비를 세운다.”이다. 사진=노컷뉴스
여수시 역시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무려 61년만인 2009년 여수에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다. 위령비에는 항쟁날짜인 ‘1948년 10월19일’과 위령비를 세운 ‘2009년 10월19일’ 이외엔 “……”(말줄임표)만 새겼다. ‘학살’을 주장한 유족 측과 이에 동의하지 않은 여수시의 의견이 갈려서다. 한국정부와 사회가 진상규명을 외면한 채 60년을 흘려보내 벌어진 참극이다. 여수시는 지난해 9월 한 오페라에 ‘여순항쟁’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8년 전 재심을 청구한 유족 3인 중 2명(고 신희중씨, 고 이기화씨)는 세상을 떠났다. 주철희 박사는 지난달 24일 여수신문 기고에서 “재심개시 결정은 특정 단체나 지방자치단체·유족회·정치권·언론 등의 도움·협조·지원도 없이 오로지 유족 3인의 힘든 투쟁의 결과물”이라며 “이제라도 유족 3인의 개인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16대 국회부터 발의했던 ‘여순사건 특별법’은 20대 국회(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 대표발의)에서도 계류 중이다.
[관련기사 : 한국 언론의 불행한 출발은 제주 4·3 보도였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2067
[관련기사 : 진실화해위 "군·경, 순천에서만 439명 집단학살" 규명]
※ 참고문헌
정지환, ‘여순사건 왜곡보도의 과거와 현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여수 14연대 반란’
4.3항쟁 71주년 기획 : 육지 것은 모르는 제주에 대하여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 제주특별자치도.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는 제주를 어떤 존재로 기억하고 있었나? 1980년대부터 대표적인 신혼여행지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올레길이 인기를 끌면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휴식의 공간이 됐다. 최근에는 ‘한 달 살이’나 ‘제주 이민’ 같은 삶의 거처를 잠시 옮겨 제주를 새롭게 경험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유채꽃밭 관광객들
제주관광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제주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내국인 방문 관광객의 89.8%가 여가, 위락, 휴식을 위해 제주를 찾는다고 답했다. 제주는 힐링과 치유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육지 것’들은 제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오랜 세월, 변방의 섬 제주가 겪어온 차별과 폭력의 시간. 대를 이어 체화된 제주 사람들의 조심스러움과 켜켜이 쌓인 피해 의식은 외지인들 눈에 텃세로 보이기도 하고, 배타적인 적대감으로 비치기도 한다.
▲ 제주 4.3사건 (제공 : 4.3 평화재단)
1948년 4월 3일 이후 제주는 차별과 국가폭력의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4.3 사건을 통해 제주는 빨갱이 섬이 되어야 했고 제주 사람들은 ‘반공국가’의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다. 국가 공동체의 안보 이익을 위해서라면 강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희생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 국제관함식에 반대하는 제주 사람들
“서울과 제주라고 하는 지리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대단히 다양한 차이들이 있는데 그 차이가 뭘 만들었냐면 폭력을 만들어 내더라. 우리 (제주)의 문제를 우리가 결정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 그 극단에 4.3이 있고 그 이후에 벌어진 개발에 대한 문제들이 있었다.
-김동현 박사/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자본의 끝없는 욕망 앞에 제주는 한없이 무력했다. ‘육지 것’들의 무자비한 부동산 투기에 노출됐고, 각종 개발사업이 진행될 때 제주 사람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2017년 말 기준 제주특별자치도의 토지 소유 현황을 보면, 개인 토지의 1/3 이상이 외지인 소유인 것으로 파악된다.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
언제쯤 제주는 겪어온 차별과 폭력의 시간을 온전히 치유할 수 있을까? 제주도청 앞 한 현수막에는 이런 글귀가 담겨 있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그의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은 ‘육지 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제주를 그의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새로 쓰는 제주사
지금껏 ‘육지 것’들은 제주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었나? 누군가 되묻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이 기억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제주 4.3항쟁 71년을 맞아 지난 70여 년 동안 때론 국가의 이름으로 때론 자본으로 이름으로 제주에 가해진 폭력의 실체와 그 상처의 현장을 취재했다. -뉴스타파
‘제주 4.3’ 진실 왜곡 단체에 국민혈세 지원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는 단체에 국민의 혈세가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행정부는 비영리민간단체의 공익사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예비역영관장교연합회라는 민간단체에 지난 2011년 3600만원을 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7000만원, 올해는 450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연합회는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역사를 날조해 군인을 학살자로 몰아 군에 대한 증오감을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단체다. 연합회는 또 제주 4.3사건이 폭도들에 대한 정당한 토벌이며, 군의 초토화작전은 없었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활동이 과거 역사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며 올해도 예산을 지원했다. 연합회는 소속 회원 40명으로 방문단을 조직, 지난 13일부터 3박4일의 일정으로 제주 일대를 돌려 제주도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제주 4.3사건 역사 바로 알리기’ 유인물 4000부를 배포했다. 이들은 또 4.3 사건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를 추모하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시위를 벌였다.
4.3 때 군인과 경찰은 강경 진압 작전을 펼쳐 제주도 중산간지역 마을 10개중 9개를 초토화시켰다. 당시 미군은 제주도민 10명중 한 명꼴인 3만여 명이 희생됐다고 추산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무총리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서 모두 확인됐다.
제주 4.3 유족회 관계자는 “희생자의 고통과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기는커녕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업에 국민의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제주공항. 붉은색 조끼에 어깨띠를 두른 노인 40명이 줄을 지어 공항을 빠져나옵니다. 호텔에서 여장을 푼 이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제주 4.3 사건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접고, 상생과 화합을 위해 건설됐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이 이곳에 나타나면서 이날은 갈등과 반목의 장이 됐습니다.
“날조된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는 즉시 시정하라. 왜곡 과장 편향된 전시물은 즉시 제거하라.”
4.3 평화공원의 전시물이 왜곡되고 편향됐다고 외치는 이들은 단순한 단체 관광객들이 아닙니다. 이른바 예비역영관급장교연합회 소속 회원들입니다. 4.3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4.3은 폭도들에 대한 정당한 토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권오강 예비역영관장교연합회장]
“제주도의 잔당, 반도, 폭도, 토색, 강도, 요런 사람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탄압해서 법의 존엄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돼 있어.”
이들은 또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역사를 날조해 군인을 학살자로 몰아부쳐 군에 대한 증오감을 초래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당시 군은 통행이 필요한 제주도민들에게는 통행증을 줘 안전을 보장했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4.3 사건을 조사한 전문가들의 말을 다릅니다.
[박찬식 제주 4.3 조사단장]
“통행증 교부로 안전을 보장한다고 돼 있는데 이게 제대로 키져지지 않았어요. 군 당국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상당시 그 당시 과오다 잘못됐다. 소개령이라고 했지만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거의 초토화로 가버린거죠.”
하지만 이 단체 회원들은 4.3 사건 당시 군의 초토화 작전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권오강 예비역영관장교연합회장]
“이것도 작전 쓰면 안 돼. 초토화됐다. 초토화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 하지만 군에서 초토화 작전이란 군에서 초토화 세우는 게획을 세우고 작전명령을 하달해야 이게 작전이야.”
작전 당시 군이 ‘초토화’라는 말을 붙이지 않은 만큼 ‘초토화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4.3 때 군인과 경찰은 강경 진압 작전을 펼쳐 제주도 중산간지역 마을 10개중 9개를 초토화시켰습니다. 당시 미군은 제주도민 10명중 한명꼴인 3만여 명이 희생됐다고 추산했습니다.
유족들은 이 단체의 선전 활동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입니다.
[강동균 제주 강정마을 회장]
“영남동이라고 있어요. 강정에서 한라산 쪽으로 한 5킬로 떨어진 그 마을 전체가 없어졌어요. 군인과 경찰들이 와서 전부 초토화작전을 한거죠. 전부 불 태워버린거죠.”
다랑쉬굴. 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마을 근처 굴에 숨어있던 양민들이 안타깝게 떼죽음을 당한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곳의 희생자들도 순수한 양민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권오강 예비역영관장교연합회장]
“굴 안에 있는 사람을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오니까 질식사시켰다.”
(아홉 살난 어린이도 있고?)
“그건 맞아, 부녀자나 어린이들도.”
(양민이 죽은 것은 맞겠네요?)
“모르겠어. 그건 나도 모르겠고. 유골 옆에는 철모 대검 등이 있었다. 그 당시 무장대가 장비하던 물품이다. 그런 것은 여기에 싹 빠졌어 없어.”
이 단체 회원들은 4.3 사건의 역사를 바로 알리겠다며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줍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주는 대로 받습니다.
[전현수 / 서울 송파중]
“참 나쁘죠 이 사람들.”
(어떤 사람이 나쁘죠?)
“북한사람들요. 4.3사건이 북한사람들 아니야.”
“4.3사건이 뭔데?”
“제주도 와서 사람들을 다 죽였잖아.”
“제주도까지 어떻게 내려와.”
하지만 제주에는 4.3 당시 군경의 양민학살이 얼마나 무자비했는가를 보여주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검은 돌로 둘러싸여 잡초가 무성한 이것은 무덤입니다. 변변한 봉분도 없이 초라합니다. 65년 전 제주 4.3 사건 당시 국군에게 학살당한 아이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애기무덤이라고 부릅니다.
4.3때 제주도민이 겪은 통한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제주시 조천읍 너븐숭이 4.3 기념관.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 사망장소를 적은 검은 두루마리가 걸려있습니다. 400여 명의 희생자 중에는 서너 살에 불과했던 어린이들도 여럿 있습니다.
[고태선 문화관광해설사]
“그 애기들을 부모들과 함께 전부 총으로 쏴서 이렇게 총살한 겁니다.”
국무총리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이런 양민학살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예비역영관급 장교연합회 회원들은 제주 전역을 돌며 그들의 주장이 담긴 유인물을 배포했습니다. 주요 관광지를 지날 때면 버스에서 내려 관광도 즐깁니다.
이들이 뭘 주장하든 그건 표현의 자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선전활동과 관광에 정부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안전행정부는 이들의 활동이 공익사업이라며 지난 2년간 1억 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을 지원했습니다.
이 단체가 역사를 바로 알리겠다며 지난해 국가보조금 7000만 원을 타낸 뒤 작성한 사업결과 보고서입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방문해 시민을 대상으로 홍보물을 배포하고, 이승복 기념관을 찾아가 캠페인을 벌이는데 예산을 사용했다는 내용입니다. 정부는 이들의 활동이 과거 역사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올해도 군인과 경찰이 4.3 때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오명을 벗도록 여론을 조성하라며 4500만 원의 세금을 또 지원했습니다.
[이소민 제주대 음악학과]
“우리가 낸 세금인데 정부 멋대로 그렇게 쓰면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박찬식 제주 4.3사건 조사단장]
“유족들 가슴에 다시 한 번 못을 박아버리는 경우가 되는 건데, 유족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진짜 또다시 분노 이전에 슬픔이 오지 않을까...”
하얀 눈밭에 발자국이 선명합니다. 군인들을 피해 도망가다 총에 맞아 죽은 변병생 모녀를 형상화한 동상입니다.깔깔거리고 웃던 학생들도 이내 엄숙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처럼 제주 곳곳에 엄연히 남아있는 학살의 흔적을 부인하고, 오히려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업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주 4.3 학살은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것임이 이미 밝혀진 바 있습니다. 희생자의 고통과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기는커녕 이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업에 예산 지원을 지속한다면 정부가 앞장서 역사를 거스른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입니다.
뉴스타파 황일송 13.5.17
단톡방 몰래 떠나는 50·60···그들은 경조사비가 겁났다
추락하는 중산층 <상>
택시 기사 홍모(63)씨에게 친척이나 친구 경조사가 있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경조사에 참석하느라 택시 일을 못 한다. 친한 친구 경조사일 때는 최소한 20만원이 나간다. 이중손실이다.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도봉구 LPG 주유소에 홍씨가 택시에 가스를 넣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60대 “소득 3분의 1로 줄었는데
축의·부의 월 70만원까지 나가”
재취업 힘든데 부양의무 그대로
중산층 줄어들고 하층은 늘어
"퇴직하면서 소득이 3분의 1로 줄었는데 매달 경조사비로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70만원까지 나가요. 너무 부담돼서 힘듭니다. 한국 사회에서 경조사에 빠지면 무리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어요. 못 가더라도 봉투는 보냅니다. (경조사) 끊고 산다거나 안 챙긴다는 소문이 나면 고립돼요. 그러면 외롭고 힘들지 않나요. 경조사 같은 게 힘들어서 빠지는 친구도 있어요. 카톡방에서 조용히 탈퇴하더라고요."
홍씨 가계 지출 항목에서 경조사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때가 많다. 한 달에 평균 5~6건, 30만원가량 나간다. 홍씨는 "퇴직해서 5~6년 지나니까 중산층에서 하층이 됐다. 하층 중에서도 하하(下下)층이다. 이렇게 되니 경조사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홍씨는 2012년 말 33년 다닌 보험회사를 퇴직했다. 당시 연봉을 1억원 가까이 받았다. 보통 한 달에 10건 50만원 정도 경조사비를 지출했다. 회사를 그만두니 부장·본부장 명함이 소용없었다. 경조사 지출을 줄였는데도 30만원 이상 나간다. 홍씨는 퇴직 후 정원원예사·산림관리사 교육을 6개월 받았지만 도움이 안 됐다. 택시를 몰았다. 한 달 수입이 9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퇴직금으로 개인택시를 샀다. 수입이 좀 올랐고 국민연금이 나왔다. 아내가 보험회사에 나가서 조금 번다. 이렇게 해도 월 수입이 200만~300만원이다.
친척이나 아주 가까이 지내는 동창(50여 명)의 경조사가 있는 달은 더욱 힘들다.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이 문제다. 친척은 50만~100만원, 동창은 20만~50만원 나간다. 전 직장동료는 대개 5만원 받고 5만원 한다. 현직에 있을 때와 비슷한 금액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추락한 5060 중산층' 2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고용센터·새일센터·편의점 등에서 만났다. 추락한 중산층은 증가한다. 건보공단이 건보료 기준으로 10분위로 나눠 분석했더니 2001년 하층(1~3분위)이 18.3%에서 지난해 23.5% 늘고, 중산층(4~7분위)은 41.6%에서 36.7%로 줄었다. 24명은 대부분 하층이었고 이 중 11명은 경조사비 부담을 호소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택시 기사 홍씨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서울 종로에서 일산까지 1시간가량 동승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중산층에서 떨어진 소회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젊을 때는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살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 60대 들어서 소득이 끊기거나 줄어들면 중산층을 유지할 수 없죠. 퇴직 전에 부조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몇 년 전 아이 결혼식장에 온 사람이 청첩장 돌린 사람의 10%도 안 되더라고요. 상실감이 컸고 '이게 인생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한 중년층은 "부조를 안 할 수는 없고, 줄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청 사회조사(2017)는 이런 애로점을 보여준다. 가구주에게 '먼저 줄일 지출 항목이 뭐냐'고 물었더니 외식비·식료품비가 앞섰고 경조사비가 일곱 번째였다. 그만큼 줄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전직 은행원 서종남(58)씨는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용케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회사가 일감을 못 찾아 쫓겨났다. 서씨는 "경조사비가 한 달 용돈의 70~80%를 차지한다. 최소 5만원을 하는데, 한 달에 많을 때는 80만원까지 나간 적이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만혼과 기대수명 연장은 부조금 부담 시기를 늦춘다. 정모(62·서울 강동구)씨는 26세에 결혼하고 이듬해 첫 아이를 낳았고, 세 살 터울로 둘째를 낳았다. 하지만 그의 아들(35)·딸(32)은 아직 미혼이다. 이들이 '결혼 적령기'로 불린다. 정씨는 “예전 같으면 친구 자녀 결혼은 벌써 끝났을 나이인데 요즘에서야 청첩장이 밀려온다. 하루에 결혼식 네 건에 40만원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60대 중후반까지 청첩장이 쇄도하는 이유는 만혼 추세 때문이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1990년의 초혼 평균 연령은 남자 27.8세, 여자 24.8세였다. 당시 초산 연령은 약 26세. 지금 5060 세대는 20대 중반에 결혼하고 후반에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자녀 세대의 삶이 달라졌다. 지난해 기준 초혼 연령은 남자 33.1세, 여자 30..4세로 28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5.3년, 5.6년 늦다. 초산 연령도 31.6세(2017년 기준)로 5.6년 늦다. 그만큼 부모 세대의 부담이 늦춰진 셈이다.
기대수명이 82세로 증가하면서 5060세대의 부모 부고도 점점 늦어진다. 예전 같으면 5060세대가 경제활동을 할 때 부고가 올 때가 많았다. 이때는 크게 부담되지 않지만 소득이 준 뒤에는 부담이 다르다. 김근홍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전 한국노년학회장)는 “상부상조 의식에 기반을 둔 경조사 전통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뿌리가 깊어 5060세대로선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도 내야 하는 분위기에 내몰려 있다”며 “아주 가까운 사이만 챙기도록 관행을 바꾸고, 경조사비 줄이기 범국민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이에스더·이승호·김태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은퇴한 5060세대 24명 평균 "월 소득 650만원→129만원"
추락한 5060 중산층은 중앙일보 취재진이 골라서 인터뷰한 게 아니다. 고용노동센터·새일센터 등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온 사람들이었고, 이들 대부분이 중산층 추락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창 일할 때보다 소득이 최고 80% 줄었다. 평균 20~30%로 떨어졌다. 사업을 할 때, 직장에 다닐 때 중산층이었고 지금은 하층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인터뷰에 응한 24명이 가장 잘 벌 때 월평균 소득은 650만원이다. 지금은 한 달에 129만원을 번다. 이마저도 국민연금·기초연금 같은 공적 지원금을 포함해서다. 주로 사업에 실패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면서 추락했다. 사업 실패라고 답한 사람은 8명이다. 실직·명예퇴직이 원인인 사람이 7명이다. 회사를 정년퇴직하면서 계층이 떨어진 사람은 5명이다. 허리디스크·알코올중독·만성신부전증 등 질병 때문에 떨어진 사람이 4명이다.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지원이 무엇일까. 압도적으로 '일자리 지원'을 꼽았다. 17명이 그렇게 답했다. 이 밖에 진료 지원(2명), 복지·교육 정보 제공(2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회의원 1/3 농지 소유…농지법 위반·공문서 위조 판친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한겨레>가 지난해 3월 공개된 국회의원, 정무직 공무원 등 공직자 재산 등록 내용을 분석한 결과, 국회의원 1인당(배우자 소유 포함) 평균 1만4908.67㎡(4518평)의 토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 1인당 소유 토지(300.6평)의 15배, 행정·사법부 공직자(2093평)의 2.1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의원 298명이 소유한 토지 면적은 444만2784.6㎡로 여의도 면적의 1.5배다.
의원별로 보면,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26만3291평으로 최대 면적의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농지를 가장 많이 가진 의원은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4만568평이다. 시·군 단위로 분석했을 때 3곳 이상의 지역에 토지를 보유한 의원은 16명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철민·변재일·유동수·이학영·전해철 의원, 자유한국당 강석호·박덕흠·이완영·이채익·장석춘·정우택·조훈현·최교일 의원,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 무소속 이정현 의원 등이다.
국민 1인당 소유 토지는 통계청이 2017년 공표한 ‘토지소유현황 통계’를 이용해 국공유지와 법인 토지 등을 제외한 민유지 면적 5만1517㎢를 주민등록 인구로 나눈 수치다. 행정·사법부 공직자 1인당 평균 보유 토지는 지난해 재산 공개 대상자 가운데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을 제외한 854명의 토지를 분석한 결과다.
■ 농지법 위반, 공문서 위조 다수 확인
<한겨레>가 집계한 의원 1인당 보유 토지 4518평을 지목별로 구분해보면, 임야가 3608평으로 가장 많고 농지 658평, 목장용지 117평, 잡종지 59평, 대지 38평 순으로 분석됐다. 두번째 가장 많이 소유한 지목이 농지다. 농지를 보유한 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 가운데 53명이 매입을 통해 소유했고 46명이 상속 또는 증여 받았다.
주목할 점은 전체 의원의 17.7%인 53명이 농지를 매입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지목과 달리 농지는 경자유전 원칙과 식량 주권을 위해 헌법에서 보호하는 토지다. 헌법 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농업 생산성 제고와 합리적 이용을 위해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인정된다”고 규정한다. 스스로 농업을 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농지를 취득하기 위해선 농업경영계획서를 포함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야 하고, 농지를 매입하면 휴경을 할 수 없고 스스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무가 부과된다. 정부가 매년 농지 이용 실태 조사를 통해 휴경 여부를 단속하는 이유도 농업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겨레>는 수많은 의원들의 농지가 개발을 기다리며 휴경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농지법에 따라 공직 취임 이후에 소작농을 둘 수는 있지만, 의원 당선 이전부터 불법 소작농을 통해 관리한 농지도 있었다. “다른 목적 때문에 농지를 매입했는데 다들 나무를 심길래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나무 심으면 문제없지 않으냐”고 떳떳하게 말하는 의원도 있었다. 과실수 등을 심어 놓으면 휴경은 아니기 때문에 농지법 위반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의원들의 농지취득자격증명은 농사를 스스로 짓겠다는 허위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실수요가 아닌 농지 매입이 증가할수록 땅값은 오른다. <한겨레>가 만난 많은 농민들이 자녀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지를 팔고 소작농이 되거나 농지가 개발되면서 땅이 국가에 수용됐다. 개발 예정지 인근 농지는 시세 차익을 노리는 ‘가짜 농부들’이 땅을 사들이는 바람에 가격이 올라 사기 어려워졌다. 개발이 집중되는 경기도·인천시와, 농지가 골프장과 레저시설로 바뀌는 강원도에서 밀려난 진짜 농부들은 더 값싼 농지를 찾아 충청도, 경상도로 떠나거나 농업을 포기했다. 법안을 만들고 심사하는 의원들의 농지 소유 행태는 농지법 위반, 공문서 위조 등 불법으로 가득했다.
■ 부동산 관련 이해충돌 방지 제도 필요
국민 1인당 평균 소유 토지와 비교하면 국회의원의 경우 15배, 행정·사법부 공직자는 6.9배에 이를 만큼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공직자들의 이해충돌 방지 제도나 법안은 전혀 없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하는 ‘주식 백지신탁’ 제도가 운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주식을 중심으로 이해충돌 방지 제도가 발전해온 미국과 캐나다에서 영향을 받은 탓이다.
부동산이 재산 증식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한국 상황을 고려해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이해충돌 방지 제도가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5년 부동산 백지신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자윤리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고위 공직자가 재산등록 때 부동산 실수요 목적인지 설명하게 하고, 해명을 못하면 백지신탁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은 지나치게 사유재산권을 제한한다는 지적과 함께 폐기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워낙 땅이 좁고 수도권 집중이 심해 한국만의 부동산 관련 규정은 필요하지만, 전국적 단위로 개발과 부동산 정책이 집행되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업무에서 배제할지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무조건 백지신탁해서는 현실성 없는 정책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괄적 부동산 백지신탁보다는 특정 사업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투입되기 시작하면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가 연관 부동산을 신규 매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구체적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의원이 이해관계가 있는 예산안이나 법안을 심사할 때 제척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위원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제척 사유로는 △위원 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이 해당 예산안·법안에 관해 당사자이거나 공동 권리자, 공동 의무자인 경우 △위원이 해당 예산안·법안의 신청인과 친족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경우 등을 열거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자신의 토지와 관련한 각종 규제를 스스로 완화하거나 각종 개발 예산을 확보하는 행위는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 있거나 직무에서 배제된다.
재산 공개 제도가 이해충돌과 관련해 유기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국회의원,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정무직 공무원, 일반직 1급 이상 공무원 등은 매년 재산 변동 사항을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공직자 재산 형성 과정을 검증한다는 목적으로 신고한 내용이 관보에 공개되는 데 그치고 있어, 공직자의 재산과 업무 관련성을 유기적으로 분석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국회의원 재산이 현재 국회 홈페이지와 관보에 공개될 뿐이어서 이해충돌과 관련해 감시할 수 없다. 상임위원회 등에 상시로 재산 내용을 공개하면 추진 법안과 재산의 관련성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재산 공개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1676억 도로 노선이 의원 땅 옆으로 바뀌었다
완공 앞둔 여수 덕양 국지도 22호선
애초 노선은 산 통과하려 했는데
주승용 “기존 도로 확장” 주장 뒤
소유지 많은 마을 통과로 바뀌어
보상비 치솟아 전남 예산 악영향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인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마을. 주승용(바른미래당) 국회부의장은 확장되는 도로변에 11개 필지의 농지, 대지를 소유하고 있다. 여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내가 보상받으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기자분이) 아까 다른 데로 (도로가) 날 것을 여기(덕양리 시가지) 오게 했다고 하셨는데 그때 주민들이 민란이 날 수준이었어요. 왜 지금까지 30, 40년 (여수시가 도로 확장하겠다고 도시계획시설로) 묶어 놨다가 이제 뭐 좀 하려고 하니까 (도로가 다른 곳으로) 돌아가 버리냐, 그래서 제가 앞장서서 했어요. 여기 해 줘라(고).”
주승용(바른미래당) 국회부의장은 지난 1월19일 자신의 땅으로 도로 노선이 변경된 적이 있느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질문이 이어지자 “덕양리 마을로 통과하도록 노선 변경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주 의원 부부가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보유한 토지 면적은 1만9556㎡이다. 당시 국회 건설교통위원이던 주 의원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설계 노선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주민 간담회에 참석해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나진-소라 구간이 기존 덕양리 도로를 확장하지 않고 뒷산으로 새 길을 내면 국가 예산 낭비”라고 지적했다. 익산국토관리청은 이후 노선 변경을 결정했다. 애초 예비타당성조사에 준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검증과 기본설계 1차 단계에서 이 마을 뒷산을 통과하려던 노선이 덕양리 마을 통과로 바뀐 것이다.
노선을 변경하면서 익산국토관리청이 잠정 집계한 토지 보상비는 당시 설계와 보상가 산정을 담당한 용역업체도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인정할 만큼 과소평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비와 전남도 예산 1676억원이 투입된 도로가 보상가 산정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변경된 것이다. 노선 변경으로 실제 보상비는 395억원 증가해 전남도 예산에 악영향을 끼쳤고, 공사는 예산 부족으로 6년 지연됐다. 그러나 도로 확장이 결정되면서, 덕양리 일대 토지 중 도로를 낀 땅의 시세는 10년간 최대 3~4배 상승했다. <한겨레>는 13년 전 익산국토관리청이 관계 기관과 주고받은 공문, 자문위원회 회의록 등을 입수해 기본설계 과정에서 노선이 바뀐 상황을 들여다봤다. 도로는 올해 6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15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주민이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의 마을 통과 부분을 지나고 있다. 기존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인 도로는 오는 6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여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오류였거나 오타”…보상비 산정 업체도 결함 인정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주 의원이 반대 의견을 낸 주민설명회 이후 애초 노선을 폐기하고 3개의 대안 노선과 사업비를 각각 비교했다. 덕양리 시가지 기존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 통과하는 1, 3안과 덕양리 뒷산을 통과하는 2안 등 총 세개 안이다. 사업비를 추산한 ‘비교노선 검토안’을 보면, 덕양리 시가지를 통과하는 1안 사업비는 1250억6천만원(보상비 280억1천만원, 공사비 970억5천만원), 뒷산을 통과하는 2안은 1769억9천만원(보상비 273억8천만원, 공사비 1496억1천만원)이다. 익산국토관리청은 덕양리 시가지를 통과하는 “1안의 총사업비가 적절하다”며 설계안을 바꿨다.
주민 설명회 이후 국토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제시한 3개 노선 사업비와 실제 사업비
특이한 점은, 덕양리 마을을 통과하는 1안과 마을 뒷산을 통과하는 2안의 보상가 차이가 6억3천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도로가 마을을 관통하면 보상 종류가 증가한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도로를 확장해야 하므로 토지를 비롯해 상가, 주택, 이사비, 영업손실금 등의 비용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장거리 수송 도로는 되도록 시가지를 피하도록 설계 노선을 잡는다.
전라남도청이 2009년 발간한 ‘국가지원지방도로 22호선 나진-소라 도로확장공사 종합 보고서’를 보면 “현재 통과 교통량이 다소 낮으나, 국도 17호선과 국도 77호선을 연결하고 남해안 국제관광권 개발에 기여하는 보조간선도로”라고 도로 기능을 설명한다. 국가지원지방도로는 마을 주민의 이용보다는 산업단지, 공항 등 주요 시설과 도로망을 서로 연결하는 ‘교통 동맥’ 구실을 한다. 당시 설계안 결정 등 전체 사업 진행은 익산국토관리청, 기본설계 및 보상비 산정 용역은 바우컨설턴트가 맡았다.
바우컨설턴트 양아무개 상무에게 보상가 산정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보상비 차이가 6억3천만원에 불과한) 이런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오타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보상가 산정 등) 실무를 맡았던 직원은 퇴사했다.” 명백히 오류가 분명해 보이는 보상비 추산을 익산국토관리청은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1676억원이 투입된 국가지원지방도 노선 변경이 “오타인지, 오류인지”도 모를 보상비 추산을 바탕으로 결정된 것이다. 설계 당시 보상자문위원회 안경호 위원 또한 “보상가 산정 근거를 제시”하라며 “덕양리 마을을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요구한 내용이 자문회의록에 기록돼 있다. 익산국토관리청은 “예비타당성(한국개발연구원 검증) 당시 보상가 산정을 근거로 잡았다”고 답하는 데 그친다.
■ 노선 변경으로 보상비 395억원 증가
이 도로의 공사비는 국비, 토지 보상비는 전남도청 예산으로 조달된다. 설계 당시 280억원으로 추산된 토지 보상비는 공사 과정에서 395억원 증가해 총 675억원이 들었다. 전남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공시지가가 상승했고, 가구 수가 많은 덕양리 시가지를 지나가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덕양리 시가지 통과 구간은 전체 공사 구간 11.67㎞ 가운데 2.17㎞다. 길이로는 18%에 불과하지만, 보상비는 총액의 35%(236억원)를 차지한다.
설계안이 바뀌면서 전남도 예산에 악영향을 미쳤다. 전남도의 국가지원지방도 토지 보상비 예산은 한해 약 200억원. 한정된 예산으로 한해 8~10개의 국가지원지방도 사업에 배분해야 하므로 한 구간이 증가하면 다른 구간은 줄어드는 구조다. 현재 전남도가 보상을 진행하는 국가지원지방도 8개 사업 가운데 4개 사업이 보상비 증가로 기획재정부에 총사업비 조정 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나진-소라 구간이 393억원 보상비 증액 신청으로 가장 크다. 보상비 증액으로 총사업비 조정을 신청한 나머지 노선을 보면, 북하-도계 19억8천만원, 일로-몽탄 92억8천만원, 남평화선 194억원 증액에 그쳤다. 전남도 관계자는 “보상비 증액 4개 노선 가운데 시가지를 완전히 관통하는 구간은 국지도 22호선 나진-소라 구간뿐”이라고 설명했다.
■ “국토관리청 직원에게 얘기하면 설계안에 반영해줄 것”
익산국토관리청이 개최한 주민설명회 외에 건설교통부 관계자를 따로 만나 설계안 변경을 요구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주 의원은 “1, 2년 전이면 기억하겠는데 10년이 넘었다”며 대답을 피했다. 재차 질문하자 “따로 만난 바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주 의원이 “익산국토청 관계자를 만나면 도로 노선 변경을 도와줄 것”이라고 조언했다는 내용이 여수시의회 회의록에 나온다. 2006년 9월20일 여수시 건설교통위 회의록을 보면 정한태 시의원은 국도 17호선이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쪽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시의원: “지금 국도 17호선 일부 구간을 변경하고 신설 구간이 몇 새로 도로 확장이 됩니까?”
도시건설국장 명성안: “기존 도로 선형이 안 좋은 데는 선형도 피고(펴고) 지금.”
정 시의원: “됐습니다. 저거 옛날부터 (주민) 숙원 사업입니다. 주승용 의원이 (국회) 건설위원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친밀해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랬더니 잘됐다고, 지금 익산국토관리청이 측량하고 있으니까 그분들 만나 얘기하면 반영이 될 거라고 해서 국장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게 반영이 안 되고 (중간 생략) 17호선이 둔전에서 죽포로 넘어가는 작곡재를 통과해야 합니다.”
정 시의원이 국도 17호선 문제로 주 의원을 만나 조언을 들었다고 한 때는,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나진-소라 구간이 애초 노선에서 덕양리 시가지로 변경 검토되던 시기와 겹친다. 주 의원은 정 시의원에게 이런 조언을 했느냐는 질문에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국도 17호선 쪽은 엄밀히 말하면 내 지역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3~2014년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을 지낸 주 의원은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예산 확보에도 힘썼다. 2011년 공사비 314억원, 2012년 284억원, 2014년 265억원 예산을 확보했다. 2015년 <중앙일보>가 주 의원이 예산 확보를 한 도로가 자신의 땅 옆으로 났다는 기사를 냈다. 도로 노선이 변경된 과정은 보도에 포함되지 않았다. 주 의원은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확장 사업은 1977년부터 계획된 사업”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며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을 통해 반론보도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주 의원의 반박 내용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의 주장대로, 여수시는 1977년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덕양리 일대를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했지만 착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여수시 자체 계획으로, 장거리 수송을 담당하는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나진-소라 구간(길이 11.67㎞)과는 성격이 다른 사업이다. 국토부(당시 건설교통부)가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등을 포함해 ‘제2차 국도 및 국가지원지방도 5개년 계획’을 발표한 시점은 2005년이다. 과거 해명한 부분이 사실과 멀다고 지적하자 주 의원은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인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마을. 저녁이면 상가마다 불이 꺼진 동네가 국지도 22호선 완공을 앞두고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여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도로 확장 공사로 10년간 토지 시세 최대 3~4배 상승
주 의원은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일부 토지(570.9㎡)가 국가에 수용돼 5억2천만원을 보상받았다. 평당 300만원 선이다. 주 의원 부부가 덕양리에 보유한 토지는 32개 필지(1만9556㎡)로, 상속 또는 1973~2017년 매입한 땅이다. 이 가운데 농지와 대지 등 11개 필지(9103㎡)는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도로를 끼거나 도로로부터 70m 거리로 인접해 있다. 11개 필지의 공시지가 변동률은 위치마다 다른데, 2008년부터 2018년까지 33~86% 상승했다.
지난 1월24~26일 3차례 찾아간 소라면 덕양리 마을은 도로 확장 공사와 함께 활기를 띠었다. 여수시 시내에서 소라면 덕양리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는 이 마을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녁만 되면 도로변에 자리한 상가마다 불이 꺼질 만큼 침체한 동네였다. 시세라는 걸 말하기 어려울 만큼 땅 거래 자체가 안 됐다.” 택시에서 내리자 기존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길가에 자리한 ㅇ식당에 들어갔더니 주민 5명이 밥을 먹으며 부동산 얘기를 나눴다. “10년 전에 여기 도로 인근 대지를 평당 75만원에 팔았는데, 지금은 땅값이고 집값이고 오를 대로 다 올라버렸으니께. 괜히 팔았어.” 한 주민은 후회했다. 소라면사무소 인근 건물 2층에 자리한 ㅅ부동산 관계자는 이 일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가 발전이 안 돼 있었어. 낙후된 동네였지. 3, 4년 전만 해도 도로변에 붙은 땅이 평당 150만원 선이었는데 지금은 평당 300만~400만원 준대도 땅이 없어. (오를 거라 생각해서 땅 주인들이) 안 내놔.” ㅌ여행사라고 상호가 적힌 가게에 들어가서 노인 4명과 대화를 나눴다. 건축업을 했다는 노인은 “토지 보상 단가가 상당히 세게 나오면서 땅값이 더 올랐다. 여기 일대에 아파트 지으려고 건축업자가 들어오려다가 땅값이 오르자 타산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주민들 말을 종합하면 도로변에 자리한 토지의 시세는 10년간 최대 3~4배 상승했다. 이 길가에는 주 의원 땅뿐만 아니라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미 회사 화성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화성산업은 주 의원 아내가 등기부등본상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고, 화성산업의 토지와 건물은 주 의원 소유다.
주승용 국회부의장의 아내가 대표이사로 등기된 화성산업의 토지와 건물은 주 부의장 소유다. 여수/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도로는 땅값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지방자치단체나 국토부가 도로 개설 사업을 할 때마다 노선을 놓고 지역 간, 주민 간에 갈등이 일어난다. 어떤 지역은 노선을 가져오고, 어떤 지역은 실패한다. 지방자치단체 등이 도로를 개설하려고 도시·군 계획시설로 지정해도 수많은 도로가 예산 부족으로 착공하지 못한다. 2017년 말 기준 전체 도시·군 계획시설 가운데 예산이 없어 착공하지 못한 도로는 323.7㎢로, 이 가운데 71.3%(230.9㎢)가 10년 이상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장기 미집행 도로’다. 덕양리 시가지의 기존 2차선 도로도 여수시의 장기 미집행 도로 중 하나였다. 2005년 익산국토관리청이 마련한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설계·보상비 산정 용역업체 바우컨설턴트 양아무개 상무는 “일부 주민들이 (마을 뒷산으로 가려는) 애초 노선에 반대했지만 반대가 극심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노선을 마을로 내주든가, 덕양리 시가지의 기존 2차선 도로 인근 토지를 여수시의 도시계획시설에서 풀어달라고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도로를 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토지는 재산권이 일부 제한되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으로 노선을 잡을지, 어떤 도로가 예산을 먼저 확보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주민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가운데, 수많은 목소리 중에 누가 우위를 점할까.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이 지역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직무상 범위에 속하지만, 자신의 토지와 소유 회사가 자리한 마을로 노선을 바꿔달라고 주민과 함께 국토부에 목소리를 높인 결과는 전남도청 예산에 악영향을 미쳤다. 주 의원실 관계자는 “주민 의견을 반영해서 지역구 의원으로서 당연히 (노선 변경에 대해) 의견 제시할 수 있다. 압력 행사가 아니다. 노선은 주민 공청회를 통해 결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4년 전 <중앙일보> 보도에는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 사업은 40여년 전부터 계획된 사업으로, 지역 의원이 사업 추진이나 노선을 정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가 해명이 또다시 변경된 것이다. 공직자윤리법 제2조는 “직무가 공직자의 재산상 이해와 관련돼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스스로 이해충돌에서 회피할 것을 권고한다.
“나들목 내자”던 의원, 고속도로 인근 농지에다 ‘2층집’
고삼 수변 개발사업 공약 내건 김학용
당선 이듬해 농지·임야 산 뒤 집 지어
농지는 주변 땅의 반값에 매입
4개월 만에 미실현 차익 2억3천여만원
환경부 생태 훼손 우려했지만
나들목·휴게소도 들어설 예정
김 의원 “거주하려고 샀으며 이사할 것”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에 자리한 김학용 의원의 2층집. 안성/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 촬영지인 경기도 안성시 고삼 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2층 주택에선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고삼 저수지 수변 개발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듬해 7월과 12월 저수지 하류 쪽인 고삼면 월향리에 농지 836㎡와 임야 692㎡를 3억8382만원에 매입해 이 집을 지었다. 저수지 상류를 교량으로 통과하는 서울-세종 고속도로가 2022년 완공되면 서울까지 거리는 40분대로 단축된다. 저수지 상류에 나들목과 휴게소도 세워진다. 김 의원은 “도로공사 의견도 그렇고 나도 적극 찬동했다. 고속도로는 주민이 이용하게 진출입로가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26일 한국도로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고삼 나들목과 휴게소 설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고삼 저수지 인근이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철새 개체 수를 조사하는 ‘조류 동시 센서스’ 지역이어서 교량과 휴게소를 최대한 우회 또는 이격해달라고 도로공사에 기관 협의 의견을 냈으나, 최종적으로 휴게소 면적 500㎡를 줄이고 교량은 저수지를 근접 통과해 조망권이 확보되는 방안으로 결정됐다. 김 의원은 지난해 7월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 고속도로 휴게소에 친환경 농민 시름…4개월 만에 미실현 시세 차 2억3000여만원
20대 총선에서 고삼저수지 수변 개발 사업을 공약으로 낸 이듬해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농지와 임야를 매입해 지은 2층집에서 저수지가 한눈에 보인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과 달리 저수지는 고인 물인데 휴게소에 정차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차량에서 나오는 타이어 분진 등이 수질을 오염시키겠죠. 농민들은 반대하다 체념 한 것 같아요. 당장 오염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10년 지나면 친환경 농사짓겠습니까?”
고삼면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김사욱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삼면은 1994년 국내에서 최초로 친환경 농사를 시작한 지역 중 한 곳으로 경기도 학교 급식과 친환경 농산품 협동조합 ‘한살림’에 연근과 쌀 등을 납품한다. 고삼농협 관계자는 “고삼면 일대 농지 300㏊ 가운데 150㏊가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고 설명했다. 고삼면은 농업과 저수지를 찾는 낚시꾼 접객으로 생계를 잇는 어업인이 많다. 어업계장 유성재씨는 “휴게소 불빛 공해도 그렇고 교량이 하류가 아닌 어류들이 산란하는 상류를 지나는데 물고기가 폐사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초안과 본안, 보완 1·2차 협의 단계에서 줄곧 우려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저수지 및 하천 등 수변을 교량으로 통과하는 구간은 수생환경 및 조류 등 생물 다양성에 직간접적 영향이 예상되므로 경계선으로부터 최대한 이격하거나 우회해야 함. 특히 고삼 저수지는 환경적 측면에서 보전의 필요성이 높은 지역으로 휴게소 설치는 변경 방안을 재검토해 보완 제시”(전략환경영향평가), “생태 자연도 1등급지가 훼손되는 구간은 터널 출입구, 교각 설치 등에 따른 훼손을 최소화 또는 제척할 수 있는 방안을….”(환경영향평가 본안 이후 1차 보완 의견)
그러나 교량은 저수지를 통과해 생태자연도 1등급지 산을 지나는 쪽으로 설계됐다. 교량 높이에 맞추어 생태자연도 1등급지인 산악 지역을 깎아야 한다. 한국도로공사 품질환경처 관계자는 “휴게소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에 환경부 의견을 따라 저수지에서 휴게소를 좀 이격시키고 면적을 줄였다. 산을 깎기 때문에 (야생 동물을 위한) 생태통로를 만드는 대안으로 환경부와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성-성남 구간에 대해 최종적으로 ‘조건부 동의’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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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김 의원이 평당 107만여원에 농지를 취득한 지 4개월 만에 바로 옆에 자리한 같은 조건의 농지가 두 배에 가까운 평당 199만여원에 팔렸다. 4개월 만에 2억3272만원의 미실현 차익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고삼저수지 월향리 일대 땅은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정아무개(87)씨 가족이 대다수 보유하고 있다. 정씨 가족이 2017년 월향리 일대에서 매매한 농지와 대지 등 5개 필지를 보면, 177만~199만원에 거래됐다. 전 소유주로부터 땅을 반값에 매입한 경위를 묻자 김 의원은 “팔리지 않아 땅 주인이 7년 전부터 사달라고 했던 토지를 제값을 주고 샀다. 가격이 높아 지인들이 만류했으나 거주 목적으로 샀으며 고등학생인 자녀 학업이 끝나면 그 집에 이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이 일대에서 집을 지을 경우 농지와 대지 건폐율이 20%로 동일하기 때문에 가격 차이는 10%밖에 나지 않는다. 농지에 집을 지으면 지목이 대지로 변경되기 때문이다. 김 의원과 전 소유주는 서로 아는 사인데 정치인이고 하니 싸게 준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취재 과정에서 <한겨레>에 내용증명을 보내 “고삼 스마트 나들목(IC)은 토지 매입 이전인 2016년 11월 안성시와 도로공사가 협의를 거쳐 관련 정보를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공약으로 내놓은 고삼저수지 수변 개발은 안성시와 한국농어촌공사가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아직 사업이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김 의원은 지난해 3월 박성진 한국농어촌공사 안성지사장과 만나 고삼저수지 수변 개발 사업 진척 사항 등을 놓고 논의하기도 했다.
■ 의원 아내의 땅 일대를 산업단지와 연결해준 2억7800만원짜리 도로
경남 밀양시 부북면 사포산업단지 방음벽 밖으로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의 농지 등 일대 토지가 가로 막혀 있었으나 삼흥열처리 공장 옆으로 신규 도로가 개설되면서 양쪽 지역이 서로 연결됐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매입한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밭에는 잡풀만 무성히 우겨져 있었다. 2097㎡ 면적의 밭은 허리까지 풀이 자라서 걸을 때마다 다리에 도깨비 풀이 들러붙었다. 밀양시는 2014년 3월21일 이 농지에서 직선거리 85m 거리에 2억7800만원을 들여 1차선 도로를 내기로 결정하고 시장 결재를 받았다. 당시 엄용수 밀양시장 임기 종료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이 도로는 인근 사포산업단지에서 소규모 사찰 대성사를 지나 예림서원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 252m의 도로다. 엄 의원 농지는 예림서원 옆에 있다.
밀양시청 건설과 관계자는 “산업단지 주변 농지 소유자가 불편하니 해결해달라는 민원이 있어서 도로를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시청 건설과 서류상 기록된 민원 제기자는 한 명으로 인근 사포산업단지 기업체 협의회장 주아무개씨였다. 주민 한 명의 민원에 도로를 개설하냐는 질문에 시청 관계자는 “비법정 도로를 놓는데 정확한 기준은 없다”고 답했다. 엄 의원은 “인근 사찰과 산업단지 사이에 방음벽을 설치하려는데 스님이 방음벽으로 인해 사찰 손님이 줄어든다고 1인 시위를 했다. 민원 해결을 위해 도로를 놓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농지와 관련 없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엄 의원 아내가 농지를 사들인 2004년 5월은 밀양시가 사포산업단지 조성을 준비하던 때다. 인근 ㅅ부동산 관계자는 “그때만 해도 밀양 시내와 이 일대 사포리 지역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도시 기본구상이 발표되고 산업단지도 들어설 예정이어서 인기 있는 땅이었다”고 말했다. 밀양시는 당시 건설교통부와 협의를 거쳐 그해 12월 사포산업단지 지구지정을 승인받았는데, 결과적으로 엄 의원 농지는 산업단지 방음벽 밖에 놓이면서 토지 수용도 안 되고 매매도 어려워졌다. 2억7800만원을 투입한 신규 도로는 산업단지 방음벽 밖에 놓인 절과 엄 의원 땅을 포함한 농지, 그리고 산업단지 내부를 이어준다. 엄 의원은 “농사지으려고 해당 농지를 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후사포리 땅 외에 그의 아내가 2014년 1억3100만원에 매입한 밀양시 용평동 밭(790㎡)도 잡풀만 우거진 채 방치돼 있었다. 몇 가지 예외 사항은 있지만, 농지법 제6조는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원칙상 농지 소유를 제한한다.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보유한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농지에 잡풀이 무성히 우겨져 있다. 밀양/박유리 기자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소유한 밀양시 용평동 밭에서도 작물을 찾을 수 없었다. 밀양/박유리 기자
■ 교통정체 해소 위해 의원 땅에서 멀어진 울산 도로
“현재 이 지역이 화봉 경찰청 운전면허장인데, 당초 이쪽으로 도시 계획이 돼 있었는데 면허시험장 전체를 다 옮기려면 문제가 많다. 그래서 저희가 선형을 강길부 의원님께 보고했고 이 개설은 전액 국비로 합니다.”(2008년 2월14일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회의록)
회의록에 기록된 김상채 울산시 투자지원단장의 발언이다.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면서 통상적으로 지방자치단체나 도로공사로부터 노선 설계를 보고받는다. 건설교통부 차관 출신 강길부 자유한국당 의원은 울산 길천산업단지 진입도로 예산을 정부 안보다 증액해 2008~2010년 375억원을 확보했다. 강 의원이 1955년 증여받은 농지는 3필지(4016㎡)로 해당 도로에서 직선거리 1.1㎞ 떨어져 있다. 원래 강 의원 토지와 가까운 태화강 오른쪽 직선으로 나려던 도로는 태화강 왼편으로 둘러서 나게 됐다. 김 단장의 시의회 발언처럼, 면허시험장 전체를 옮겨야 하는 문제에다, 차량 정체 해소를 위해 인근 언양 시가지를 피해 가야 한다는 주민 탄원서가 반영된 것이다. 강 의원은 “처음에 태화강 강변으로 직선으로 길이 나야 비용도 적게 들고 농지 잠식도 적어서 그렇게 주장했지만, 울산시가 바꿨다. 결과적으로 현재 도로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 토지 공시지가는 4억8755만원으로 2008년 도로 착공 이후 63.1%증가했다. 밀양·울산·안성=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부산의 연평균 기온은 1966년 13.4도에서 2015년 15도로 1.6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여름(평균기온 25도 이상)은 101일에서 119일로 18일 길어진 반면 겨울(5도 이하)은 68일에서 47일로 21일 짧아졌다. 도심 기온이 지속해서 높아지는 열섬 현상이 심각해진 것이다.
부산시가 열섬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나무 1000만 그루 심기를 비롯한 16개 중점 사업을 시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전체 예산 3726억 원 가운데 내년에 924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핵심은 도심에 녹지를 더욱 확보하고 많은 물이 흐르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우선 도심 내 유휴공간과 각종 사업장에 생태 비오톱(Biotope·동식물 중심의 공간)을 조성한다. 당장 17억 원을 투입해 2019년까지 시청 녹음광장(3만2900㎡)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저영향 개발(LID·Low Impact Develoment)기법을 활용한 비오톱과 도랑·투수블록을 설치한다.
옥상·수직 비오톱과 인공습지 조성을 위해 내년에 38억 원을 투입한다. 부전천·대연천·감전천에 이어 중구 보수동 보수천(3.03㎞)의 생태하천 복원사업도 추진한다.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위해 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부산시민공원의 숲이 더 울창하게 우거지게 하려고 1.5㎞ 구간에 나무를 심는 사업(15억 원)도 벌인다.송상현 광장에는 쿨링포그(Cooling fog·미세한 물입자 분출 시스템)도 설치한다. 김화영 기자 2017-08-30
“장관님 생수 공장 어때요?”…알고보니 인근 수십만㎡ 땅 소유
②부동산 이해충돌 현장을 가다-공약
지역구 농지 보유 36명 전수조사
안상수·염동열·주광덕 등 10명
소유지와 개발 수혜지 겹쳐
전문가 “잠재적 이해충돌 상황”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농지에 컨테이너 3대가 올려져 있다. 농작물이 소량 심어진 안 의원의 컨테이너 주위로 잘 정리된 주변 경작지들이 보인다. 인근 주민들은 “고구마 심어놓고 그냥 내버려두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회의원 공약 안에 자신의 땅이 있었다. 지역구에 농지를 보유한 의원 36명 가운데 10명이 자신의 땅과 가까운 곳에 개발 또는 각종 규제 해제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한겨레>가 농지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 가운데 지역구와 농지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 의원과 비례대표를 제외한 36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10명(27.8%)의 토지가 개발 공약 수혜지와 인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매입으로 이해충돌이 우리 사회 쟁점으로 제기됐으나 여야 간 의견이 갈리면서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했다. 국회에 이해충돌 상황이 얼마나 빈번한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토지를 중심으로 공약과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원의 포괄적 업무 범위 가운데 중심축인 공약과 각종 개발 정책이 값싼 농지와 임야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그 연관성을 분석한 것이다.
대다수 개발 공약은 지방자치단체나 국토교통부가 이미 추진 중인 사업으로, 의원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예산 확보와 법안 개정, 대정부 질문 등 직무를 수행할수록 개발 시기가 당겨지거나 자산 가치도 증가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일대 휴먼메디시티 조성 공약을 제시한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선 5개월 뒤인 9월 길상면 온수리 농지 2필지를 샀다.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3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자신의 땅과 가까운 특정 목장을 거론하며 수목원과 연계된 사업을 산림청장에게 권유하고, 강원도 산지 관광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에 앞장섰다. 변호사 신분이었을 당시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개발제한구역 농지를 매입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이 소유 토지 인근에 개발 공약을 제시하는 행위가 ‘잠재적 이해충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약도 실현되고 자신의 이익도 챙기는 잠재적 충돌 상황”이라며 “이해충돌 관련 입법이 미비한 상태에서 토지와 공약의 연관성을 들여다본 자료는 이해충돌 방지를 입법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회의원의 경우 일반 공직자보다 포괄적인 업무를 하는데 공약 안에 토지가 있다면 잠재적 이해충돌의 요소가 있다. 다만 규제의 목적과 범위, 방식을 생각해봤을 때 어느 정도까지 행위를 규제해야 규제 비용보다 효과가 높을지 정책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잠시 끓어올랐다 사그라진 이해충돌 관련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한겨레>는 ‘잠재적 이해충돌’이 벌어지는 현장을 직접 찾았다. 의원들의 공약과 함께 국회 상임위원회 발언, 국회에서 개최한 공청회 또는 토론회, 의원 요구로 추진된 정책 등을 종합 분석해 참고자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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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보좌관이 참여한 개발 사업이 공약으로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자리한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농지에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컨테이너 밖으로 빨랫줄이 걸려 있고 냉장고 1대가 놓여 있다. 인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인천 강화 ‘밭’ 매입한 안상수
동생 관여한 개발 사업 총선 공약
당선 뒤 위장전입해 밭 2필지 매입
2년 뒤 인천시장 바뀌며 무산됐지만
공약 나오자 인근 농지 거래 들썩
안 의원 “공약 냈지만 예산 안 받아”
자신의 땅 인근 개발 외치는 염동열
산지 활용·규제 완화 공약
갖가지 규제 허물기에 공들여
자기 땅 근처 산악 관광개발 앞장서
산림청장에겐 “수목원 사업 어떤가”
염 의원 “강원 땅, 80% 규제…해결 필요”
지난 2월26일 찾아간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 소유 밭에서 농작물을 찾기는 어려웠다. 텅 빈 땅에 컨테이너 3대가 띄엄띄엄 설치돼 있었다. 검은 천으로 덮인 한 컨테이너 옆으로 고구마가 소량 심겨 있었다. 주민 김아무개씨는 “고구마 좀 심었는데, 심고 그냥 기다리는 수준이다. 이것도 (안 의원) 투자라면 투자지. 한 달에 한두 번 안 의원이 들른다”고 말했다. 안 의원의 땅 옆으로는 집을 짓다 만 공사 현장과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지나가던 또 다른 주민은 공사 현장 옆에 놓인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외지인이 사놓은 땅을 여기 사람이 소작해준다”고 말했다.
안상수 의원이 이 농지를 사들인 시점은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지 다섯 달 뒤인 2016년 9월5일이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밭 2필지(772㎡)를 9360만원에 매입하면서 6천만원을 대출받았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안 의원은 해당 농지 전 소유자의 주소지로 위장전입한 뒤 밭을 사들였다. 인근 땅에 도로 등을 낼 수 있는 ‘승역지’ 설정을 한 뒤 땅을 등기했다. 자신의 농지 옆으로 도로가 나야 주택 건설 등 각종 개발 행위가 가능하다.
안 의원은 총선 당시 강화도 남단에 최고 수준 병원과 주거단지를 건설하겠다는 휴먼메디시티 공약을 내세웠다. 안 의원 동생이 투자유치본부장, 안 의원 보좌관 출신의 장아무개씨가 사업본부장, 서희건설 김아무개 부사장 등이 사내이사를 맡은 특수목적법인 강화경제자유구역프로젝트매니지먼트가 진행하던 사업을 공약으로 삼은 것이다. 총선을 5개월 앞두고 설립된 이 법인은 강화군 길상면 등 일원에 904만3천㎡를 메디시티로 조성하고 개발이익금으로 영종도와 강화도를 잇는 14.6㎞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메디시티 공약이 나와서 우리 부동산만 해도 농지를 수십 필지 팔았다. 메디시티가 건설될 예상 용지를 매입하면 나중에 땅이 싼값에 강제 수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인근 땅을 사야 효과가 더 낫다”고 귀띔했다. 그는 “총선에서 강화도 주민은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안 의원에게 거의 몰표를 던졌다”고 덧붙였다. 공약이 이행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거나 중앙정부의 개발 계획에 반영돼 국비를 확보하면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당 사업은 진전되지 못했다. 해당 법인이 미국 투자자 파나핀토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무효가 됐다. 유정복 당시 인천시장이 2017년 11월 미국을 방문해 투자자를 만나는 등 해당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유정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사업은 사실상 무산됐다. 안 의원은 “강화도에 그런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안했지만 정부 예산을 탄 것도 아니고 이해충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주소지를 농지 전 소유주 쪽으로 옮긴 뒤 땅을 매입한 이유는 딱히 주소지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행정상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농지를 산 이유를 묻자 “거기 살고 있다”고 답했다가 취재진이 해당 농지를 확인했다고 하자 “잠깐잠깐씩 들르는 곳”이라고 말을 바꿨다.
■ 그린벨트 땅 보유한 의원, 그린벨트 풀자고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철조망 너머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소유 농지다. 철조망 옆으로 각종 공장 땅 광고가 붙어 있었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남양주시 고문 변호사 신분이던 1999년 7월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밭 2185㎡를 매입했다.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밭은 한강 변에서 직선거리 580m, 당시 분양을 1년 앞둔 토평택지개발지구에서 1㎞ 떨어진 지역이다. 강동대교를 지나면 서울 강동구 고덕동과 연결된다. 주 의원은 “부모님께서 자녀 교육을 위해 논밭을 파셨던 기억이 있다. 상징적 의미로 농지를 매입해 배나무를 심고 농사를 지어왔다”고 매입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구리시 전체 면적의 64.9%가 그린벨트 개발제한 지역”이라며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 위원이던 2010년 2월10일 국회 대강당에서 3D 입체영상산업 발전 전략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주 의원은 “서울 중심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영상산업과의 접근성과 남양주 영화촬영소와의 연계 가능성을 보면 구리시 토평지구가 3D 입체영상산업 집적단지 조성지로 매우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 장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김철민 문화부 문화산업정책과장 등이 참석했다. 문화부는 3개월 뒤인 그해 5월19일 “2015년까지 콘텐츠 기반 구축 등 4100억원을 투입하겠다. 이를 위해 집적화된 3D산업 클러스터 등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지방선거 유세 기간이던 2010년 5월29일 구리시를 방문해 “그린벨트를 풀어 100만평 정도의 3D 영상산업 단지를 조성해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3D 영상산업 단지는 실제로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토평지구는 지리적 이점으로 다양한 사업 대상지로 거론됐다. 토평지구는 구리시가 2007년부터 구상해온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사업이 구체화하면서 2015년 ‘개발제한구역 조건부 해제’ 결정을 받았다. 일대 농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됐으나 구리시가 2016년 사업을 철회하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됐다. 주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소유 농지를 개발하고자 (그린벨트 해제) 공약을 내지 않았다. 3D 영상산업 토론회에서 거론한 토평지구는 (내 땅에서 떨어진 아천동) 워커힐호텔 쪽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농지는 공시지가 기준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7.3배 상승했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소유 농지를 바라보는 기자의 뒷모습. 주 의원은 취재 과정에서 “배나무를 심었으나 캐어냈고 대추나무를 심기 위해 택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구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국토부 장관에게 생수공장, 산림청장에 삼양목장과 연계 사업 제안
“산악, 해양을 아우르는 올림픽 배후관광도시를 추진해야 합니다.”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 오찬 자리에서 염동열 의원이 건의하자 박 대통령이 “긍정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의원 당선 전 민간인 신분이었을 때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를 주장해온 염 의원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일대에 토지 23만791㎡를 보유하고 있다. 지목별로 보면 농지 9303㎡, 임야 10만7849㎡, 목장용지 11만3639㎡ 등이다.
염 의원은 특히 산지 규제 완화를 통해 산악 관광이 조성될 수 있도록 앞장섰다. ‘산지 활용 및 이용에 관한 규제 완화’를 2016년 20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염 의원은 백두대간보호법·국유림법·초지법 등 대관령 일대 산지와 관련된 규제를 풀기 위해 민간단체 등과 함께 각종 세미나를 개최해왔다.
규제 해제에 힘쓰는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이 진행하는 각종 산지관광 추진 활동에 도움을 줬다. 염 의원은 2015년 7월16일, 전경련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활용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승철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장(전경련 부회장)은 “범국민 산악관광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규제 완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경련이 국회와 정부에 건의한 산악관광 정책 과제 중 하나인 한국판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열차’의 사업 예정지가 염 의원 소유 임야와 목장용지에서 2.2~4.5㎞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대관령 삼양목장과 하늘목장 일원에 산악열차, 곤돌라, 청정 산악 테마 빌리지, 산악 승마 클러스터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인데, 이 계획이 성사되면 인근 부지도 산지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산악열차 주변으로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전경련 등의 제안에 정부도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정부가 2016년 7월7일 열린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규제프리존특별법’을 통해 대관령 일대 백두대간보호법·국유림법·초지법 등 규제를 일괄 완화해준다고 밝히자 염 의원은 “특히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산악철도를 비롯해 관광사업 활성화로 지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반색했다. 2016년 7월29일 염 의원은 유일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과 함께 평창군 알펜시아 스타디움에서 산악관광 간담회를 하고 대관령 하늘목장을 둘러보았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사업은 추진 동력을 잃었다. 지난해 9월20일 규제자유특구 및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관한 규제특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관령 산악관광 규제 특례는 빠졌다.
염 의원은 또한 자신의 소유 토지와 인접한 삼양목장 주변으로 각종 개발 사업을 정부 부처에 제안했다. 2013년 11월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서 산림청장에게 삼양목장과 공동 운영하는 수목원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는 삼양목장 인근에 조성 중인 상수원에 생수 공장을 제안한 것이다.
염 위원: 산림청장님 계십니까? 수목원 아시지요? 지금 대관령수목원 하시려는 것?
산림청장 신원섭: 예, 알고 있습니다.
염 위원: 그러니까 수목원 제가 여러 차례 만났고요. 또 삼양목장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합하면 세계에서 제일 큰 수목원이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기업이지만, 기업과 산림청도 융합을 해서 세계적인 수목원을 만들어줄 수 있으시겠지요? (…) 국토교통부 장관님, 어디 계시지요? 역세권 관광도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대관령에 상수원을 600억 들이는데 이것도 지방자치단체나 민간기업하고 연결해서 생수 공장도 한번 해보세요.
자신의 토지와 가까운 곳에 각종 사업을 제안한 행위가 특정 기업과 자신의 토지 가치 상승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이에 대해 염 의원은 “산림청이 삼양 땅을 환원받아 수목원을 조성하려는데 삼양이 땅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아 중재한 것이다. 생수와 관련된 발언도 나라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삼다수 같은 물을 팔라고 한 것이다. 강원도 땅의 80% 이상이 규제에 매여 있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지 규제 해제 공약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염 의원이 보유한 토지 중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봉평면 덕거리 농지 1만9531㎡는 1996~2008년 매입한 땅이다. 의원 당선 이전 지역에서 건설업 등을 하던 염 의원에게 농지를 매입한 경위를 묻자 “관광농원 등을 하려고 샀었다. 내가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고 공동 매입자가 농사를 지어왔다”고 설명했다. 이들 농지는 매입 당시 공시지가 1억4043만원에서 지난해 9억1143만원으로 6배 이상 상승했다. 통상적으로 공시지가는 시세의 3분의 1 수준이다.
■ 공약 제시할 때 관련 재산도 함께 공개해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이해충돌 방지 가이드라인은 이해충돌을 ‘잠재적 이해충돌’과 ‘실제적 이해충돌’로 구분한다. 뇌물, 횡령 등 명백한 형법 위반은 아니지만 의원 활동에 이해관계가 스며들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직한 부패’가 만연한다고 보고 잠재적 충돌 상황을 사전에 관리한다는 취지다. 캐나다 공직자는 정부 결정, 정책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자산 가치가 달라지는 ‘통제 재산’을 신고하고, 영국 하원의원은 토지와 가족, 고용 등 12개 항목을 작성하는 ‘이해관계 등록제’에 따라 변동 사항이 생길 때마다 갱신해야 한다. 미국 의회는 지난 1962년 제정한 이해충돌방지법을 20세기 가장 위대한 법률로 꼽는다. 적지 않은 미국 공직자들이 비용을 들여가며 굳이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인 백지위임신탁 제도를 이용해 신탁회사에 자산을 맡기는 이유도 개인적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정책상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과 오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이 2015년 입법 과정에서 ‘청탁금지법’으로 축소된 이유는 공직자의 업무 범위로 인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해충돌을 법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자신의 소유 토지 인근에 도로 확장 등 각종 개발 공약을 제시한 대다수 의원들도 “땅값을 올리려는 의도로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공약 대상지) 근처에 소유 땅이 있다고 해서 문제라면 지역구에 땅이 있는 의원은 지역 발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가 되지 않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의원 활동 범위가 넓은 만큼, 지역 발전과 정책적 필요에 따라 공약과 자신의 소유 토지가 겹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충돌 관련 제도가 마련되거나 법제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우연성이 누적되면 공적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최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제도 입법을 위한 공개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여했던 이유봉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면 관련 공약을 제시할 때 재산을 함께 ‘공개’하는 수준에서 잠재적 충돌 상황을 사전 관리하는 방안도 있다”며 “공약을 추진하되 부동산을 사전에 공개하면 사적 이해관계 반영을 제어하고 모니터링도 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국회윤리법 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원에 대한 사후적 감사, 징계보다 사전적 예방과 상담을 하는 것이 (이해충돌) 독립기구의 더 큰 목적이다. 본의 아니게 지탄받지 않도록 미리 자문을 요청해서 회신받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해충돌 방지법안을 대표 발의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해충돌을 잠재적 상태부터 실질적 이해충돌까지 폭넓게 관리하는 이유가 있다”며 “이해충돌 방지 제도가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는 공직자가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신뢰’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이해충돌 독립기구 구성과 관련 법 제정은 공직자 개인의 도덕성을 공적 제도를 통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초석이자 공적 신뢰를 높이는 최선의 방안이다./ 평창 강화 구리/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암 사망률도 ‘소득 격차’ 저소득층일수록 높아
ㆍ한화생명, 30만명 발병 자료 분석
고소득층일수록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낮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저소득층의 암 사망률이 고소득층의 3배를 웃돌았다.
한화생명은 2000~2012년 자사 고객 30만명의 암발병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3일 밝혔다. 분석에 따르면 2012년까지 암 진단을 받고 5년 내 사망한 비율은 평균 22.6%다. 암의 완치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통상 수술 후 5년이다. 이 중 가구당 연소득이 1억원 이상인 경우 사망률이 12.0%로 평균 대비 10%포인트나 낮았다. 소득 5000만~1억원은 15.5%, 3000만~5000만원은 16.1%, 3000만원 미만은 39.0%의 사망률을 각각 보였다.
직업별로는 무직(41.3%), 1차산업 종사자(41.0%), 단순노무직(39.6%), 운전직(33.7%) 등의 사망률이 평균을 웃돌았다. 반면 의료직 종사자의 사망률은 11.3%, 교육관련직 사망률은 10.6%로 평균의 절반 이하다.
5년 내 사망하는 비율은 췌장암(79.4%), 간암(61.7%), 폐암(59.5%) 순이다. 이들 암에서도 사망률이 소득구간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폐암의 경우 평균 사망률은 59.5%지만 소득 1억원 이상은 40.6%로 평균에 비해 낮았다. 반면 소득 3000만원 미만은 사망률이 68.8%로 높았다. 췌장암은 연소득 3000만원 미만의 사망률이 83.0%, 소득 1억원 이상의 사망률은 73.6%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소득에 따라 암을 조기에 발견할 확률과 충분한 치료를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종교인 퇴직금 과세 후퇴]퇴직금 수입 전체 과세 원칙에도 “2018년 이후 소득에만 과세”
내일 ‘소득세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통과 가능성
종교인들의 퇴직소득(퇴직금)에 대한 과세기간을 좁혀 과세를 완화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두고 ‘종교인 특혜’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소득세법 원칙과 다른 예외를 두면서까지 일반 납세자들과의 과세형평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3일 경향신문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회의록 등을 살펴본 결과, 국회는 “소급과세의 문제”를 들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반 납세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퇴직소득 수입 전체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와 다른 국회 개정안에 동의했다.
올해 초 퇴직자는 1년치만…기재부는 국회 개정안 동의
10억 퇴직금 과세…종교인 506만원·직장인 1억4700만원
시민사회단체 “종교인 과세 무력화 시도…형평성 문제”
국회 기재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종교인의 퇴직금에 대해 2018년 1월1일 이후 근무분에 한해서만 과세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소득세법에 따라 퇴직금 전체에 대해 세금이 매겨졌다. 아울러 종교인 퇴직금 관련 규정을 소득세법 시행령에서 소득세법으로 옮겨두자는 내용도 담겼다.
2018년 1월1일을 기준으로 한 것은 종교인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과세하기로 2015년에 개정된 소득세법이 이때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와 관련해 “소급과세문제”를 언급하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들었다. 박상인 국회 기재위 전문위원은 조세소위 회의에서 “종교인 소득 과세가 시행된 2018년 1월1일 전의 (퇴직금) 해당분에도 과세하는 것으로 운용돼왔다”며 “이를 두고 소급과세와 과세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종교인 퇴직금에 대한 과세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국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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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세무업계 등에서는 이런 국회의 주장에 대해 “종교인 과세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2018년 1월1일 이전 근무분의 퇴직금에 대한 과세가 ‘소급과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소급과세로 보려면 2018년 1월1일 이전에 종교인 소득이 ‘비과세’였어야 하는데, 과거에 세법상 비과세 항목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부 종교인들은 실제 퇴직소득세를 내왔다고 강조한다. 2018년 1월1일부터 시행된 내용은 법령에 과세를 명시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과거 종교인 소득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세무행정상 징수를 안 해왔던 것일 뿐”이라며 “과세하지 않은 시기까지 이후에 과세한다는 소급과세 주장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소급과세 주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종교인 과세를 완화해주려는 핑계”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공적연금 관련법에 따라 받은 일시금의 과세범위를 과세가 시행된 2002년 이후의 적립분으로만 규정한 입법 사례도 들었다.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개정안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맞다”고 주장했다. 구재이 세무법인 굿택스 대표세무사는 “원래 퇴직소득이 아닌 공적연금 일시금과 애초 퇴직소득의 성격을 가진 종교인 퇴직금을 동일한 사례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이러한 종교인 퇴직금 과세 완화가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박 전문위원은 “종교인 소득과 일반 납세자 소득 간 과세체계 차이로 발생할 형평성 문제를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세소위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개정안에 적극 찬성한다” “갑시다, 시간도 없는데”라며 신속한 의결을 강조했다.
정부는 소득세법상 퇴직소득 전체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밝히면서도 이와 배치되는 국회 개정안에 찬성했다.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2015년 정부의 소득세법 개정안에 종교인 퇴직금 과세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민주당 강병원 의원 등의 질문에 “당시에는 문제제기가 없었다”며 “과거의 언제든 간에 (퇴직수입) 총액에 대해 과세한다는 원칙으로 그대로 갔던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소득세법 개정안으로) 새롭게 시행된 부분을 사실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시행령에 규정된 종교인 퇴직금 관련 규정을 법률로 옮기며 ‘예외규정’으로 둬야 한다고도 했다. 김 실장은 “퇴직소득 전액을 과세하는 원칙이 소득세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예외규정도 법에 두는 것이 조세법률주의상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주도하고 정부가 따르는 이번 소득세법 개정안이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5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일반 납세자와의 과세형평성만 저해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1989년 1월1일부터 2018년 12월31일까지 일해 퇴직금으로 10억원을 받은 종교인에게 부과되는 퇴직소득세는 506만여원이다. 동일한 조건의 근로소득자가 내야 할 퇴직소득세 1억4700여만원의 약 29분의 1에 불과하다. 납세자연맹은 이날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국회 법사위 의원 전원에게 전달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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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법원과 검찰을 통해 확보한 성매매 여성의 자술서. 드라마 제작사 실장이라고 밝힌 고씨에게서 성매매 제안을 받았다고 돼 있다.
인터넷 쇼핑몰 모델 출신 차지영(가명)씨는 ‘고○○’이라는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목소리를 떨었다. 금세 울음이라도 터트릴 듯했다. 그는 고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질문을 받고 잠시 곱씹었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되게 안 좋은 기억이 있어 가지고…. 저를 (고씨가) 어떤 영화에 캐스팅 해주신다고 하면서 이상한 것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연락을 차단한지 꽤 됐어요. (전화번호를 차단한) 그 뒤에도 다른 번호로 자꾸 연락을 해 협박 아닌 협박을 했어요.” 차씨가 말한 ‘이상한 것’은 다름 아닌 성매매를 의미한다. 그가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치를 떨었던 고씨는 40대로 추정되는 여성으로 이름이 본명인지도 불분명하다.
한국일보는 클럽 버닝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나아가 지난달 7일 10주기를 맞이한 고 장자연씨 죽음을 에워쌌던 대한민국 고위층 성범죄 시스템의 외연을 취재하던 중 주로 단역이나 신인 배우 출신 여성을 고위층 성 매수자들에게 공급하는 조직에 대한 증언 다수를 확보했다. 이들의 인터뷰와 증언을 담은 각종 진술서에 따르면, 조직의 정점에는 성매매 여성 ‘캐스팅’을 전담하는 고씨가 서있다. 본보는 지난 2개월 동안 고씨를 추적했고, 그와 인연을 맺은 차씨, 연예계 관계자 등에 대한 취재를 통해 고위층 성매매의 기상천외한 시스템에 관한 대략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일부나마 고씨의 ‘고객’들이 누구인지 증언하는 구체적인 단서들에 도달했다. 고씨와 그가 주도하는 고위층 성매매 조직의 존재는 경찰과 검찰도 인지하고 있지만, 수사의 움직임은 없다. 베일에 둘러싸인 고씨로 축약되는 대한민국 고위층 성매매 생태계를 공개한다.
◇기업인, PD, 재벌가 인물 고객리스트 올라
고씨를 아는 사람마다 그의 직업과 이력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연예인 매니저 출신, 드라마 제작사 실장 출신, 모델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사람, 프리랜서 단역 캐스팅 디렉터 등이다. 그를 통해 여성과 성매매를 하거나 접대를 받는 이들은 기업인, 투자자, 방송사PD나 영화감독 등이라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고, 심지어 재벌가 인물도 고씨의 고객리스트에 올라있다는 성 매매 여성의 자술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씨는 여배우나 모델 출신들을 확보하기 힘들어지면,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단역으로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시켜 배우로 둔갑시키는 방식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달면 몸값이 올라 성매매 건당 200만~500만원을 받게 되며, 30% 가량을 수수료로 고씨가 챙겨가는 식이다.
고씨의 행위를 알고 있다는 연예계 관계자 장민식(가명)씨는 “고씨 때문에 열심히 하는 신인들이 오해 받는다”라며 “배우를 꿈꾸는 애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성매매를) 안 하는데, 포기하는 애들 중 탈선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의 알선으로 성매매에 나섰던 한 여성은 소속 기획사 대표와 소송에 나선 과정에서 고씨의 성매매 알선 혐의를 상세히 기술한 자술서를 지난해 경찰과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고씨에 대한 수사는 1년 가량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씨의 지인들은 고씨의 성매매 알선 대상이 고위층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에서 보여준 수사당국의 무기력한 모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 박구원 기자
◇화대 올리려 유흥업소 여성 단역배우로 둔갑
장민식씨는 “고씨는 2011년부터 이런 일을 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하면 보조 출연자, 단역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프리랜서로 온다”라며 “고씨는 여자들에게 아주 작은 배역을 만들어주고 프로필을 개선해 준 다음에 몸값, 즉 화대를 올린다”고 했다. 룸살롱에서 혹은 연예계를 기웃거리다 돈이나 벌기로 작정한 여성들을 고르고, 유흥업소 마담들한테 공수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장씨에 따르면 고씨는 성매수자한테 마치 레스토랑 메뉴판을 내밀듯 해당 여성들의 신상을 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보여준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성매매 단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촬영 현장에서 자기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도록 하고 이를 성매수 고객에게 보여주는 식이다. 배우 경력이 없으면 성매매 건당 100만원 정도, 단역이라도 출연 경력이 있으면 200만~500만원 정도가 대략적인 화대이다. 이른바 프로필 세탁이 이뤄지는 배경이다. 스폰서 개념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고정적으로 성매수 남자를 만날 경우 배우 출신이라면 한 달 2,000만~3,000만원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성매매에 투신한 여성들은 고씨의 제안에 동의 후 가담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강제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차지영씨의 증언 등을 들어보면, 고씨는 배우ㆍ모델 지망 여성들의 취약한 환경과 불안한 심리상태를 이용해 사실상 협박에 가까울 정도로 강요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차씨가 기억하기로 고씨는 모델 에이전시 소속이라며 자신에게 접근했다. 차씨는 “영화 해주는 PD님이랑 저녁만 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처음에 말하더라”며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니까 제가 가정이 조금 힘들었는데, 가정 환경을 언급하며 ‘너는 그거 생각을 안 하냐’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차씨는 이후 고씨가 다시 연락을 해 “방송 쪽 일을 해보라고 말하며 ‘그런데 너는 나이가 있으니까’ 이러면서 (접대 등을) 제안했다”라며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고씨는 ‘너 모르지, 다른 연예인 누구누구도 다 (스폰서를) 만났다, 너 멍청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씨가 성매매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성매매 제안이었음을 인정했다. 차씨가 고씨 전화번호를 차단한 후에도 고씨는 다른 번호로 전화해 화풀이했다. 차씨는 무서웠다고 했다. 그는 고씨와의 일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검경에도 접수된 고씨의 성매매 알선 첩보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 등에 따르면, 일반 성매매알선은 공소시효 5년, 영업으로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성을 파는 행위를 할 사람을 모집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은 사람은 공소시효가 7년이다. 또 폭행이나 협박으로 성을 팔게 하는 사람은 공소시효가 10년이다. 고씨는 공소시효 7년에 해당하는 범죄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1년부터 성매매 알선에 나선 게 사실이라면 거의 모든 범죄 상당 부분이 수사 여부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 성매매 자체의 공소시효는 5년이며, 성매매처벌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이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자수한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게 돼 있다.
한국일보가 법원ㆍ검찰 등을 취재한 결과, 검찰과 경찰은 고씨에게서 성매매 제안을 받고 실제 성매매에 나섰던 A씨가 성매매 사실을 자필로 적은 자술서를 지난해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역 배우였던 A씨가 2015년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속사 대표 B씨는 A씨에게 “소속사에 피해를 줬다”며 다그치는 과정에서 A씨에게 관련 자술서를 작성하게 한 것이다. 이후 A씨는 B씨에게 협박 당하고 금품을 빼앗겼다며 2017년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4월에는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했다. 고소 과정에서 경찰에 A씨가 작성한 자술서도 제출됐으며,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이 사건을 넘겨받아 지난해 10월 B씨를 공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B씨는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과 법원 등을 통해 확인한 A씨의 자술서에는 재벌가 성매매를 제안 받았지만 자신은 재벌가 성매매는 하지 않았다고 언급돼 있다. A씨는 “너무 유명한 분이라서 하지 않았다”고 주변에 이야기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고씨가 해당 재벌가에 다른 여성들의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A씨는 자술서에서 “드라마제작사 실장으로 있던 고씨가 제 프로필을 보고 연락해 왔다”라며 “배우로 키우고 싶다는 말에 미팅을 가졌고, 며칠 후 그가 성매매를 제안했으며 연기 생활에 돈이 필요했던 저는 시키는 대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이 만났던 남성들은 신분을 거의 숨겼고 서울 강남이나 청담동 쪽 카페에서 처음 만난 후에 결정이 나면 호텔로 갈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고 자술서에 썼다. 돈은 고씨가 먼저 받고 자신에게 입금해줬다. A씨는 “고씨와 연관된 분들도 계셨는데 모두 가명을 썼다”라며, “(고씨가 말하기를)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사는 김모씨가 다른 사람(성매매 여성)에게 돈을 많이 썼다며 저에게도 돈을 많이 쓰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서울 유엔빌리지는 재력 면에서 국내 최상위 계층이 주로 사는 대표적인 부촌이다.
A씨 사건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동신 임상철 변호사에게 자술서의 진위를 거듭 확인한 결과 “그런 자술서를 경찰과 검찰에 제출한 것이 맞다”라며 “고씨의 성매매 알선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수사가 진행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 알선이 아니라,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알선이기 때문에 수사 당국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 자술서는 피고인이 작성하도록 했고 피해자가 쓰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었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조사해서 기소한 것으로 그 부분(고씨의 성매매 알선)에 대해 조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A씨의 성매매 사실을 알고 B씨가 A씨를 협박했고 그 상황에서 자술서가 작성된 것은 맞지만, 공소장에도 자술서가 허위라는 부분은 없고 변호인 쪽에서도 허위라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고씨를 불러 조사한 적도 없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취재를 마치고 고씨의 해명을 듣기 위해 3일 그에게 전화했다. 성매매알선에 대해 묻자 “엿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이거 실례 아니냐, 경찰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여성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고씨는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시고요, 나를 신문하시네? 댁이 혹시 기자인지 경찰인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오늘 전화번호 바꿀 거다,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전화번호는 통화한 지 두 시간 후부터 해지된 번호로 나왔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퇴직하자마자 닥친 생활고, 50·60 가족까지 파괴된다
추락하는 중산층 <중>
집이 파탄 나고 꼴이 말이 아니게 됐지.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노모(62)씨는 지난 20여 년의 세월에 회한(悔恨)이 많았다. 노씨는 지난달 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하던 중이었다. 그는 혼자라고 했다. 왜 그리됐을까. 첫 직장이 군 부사관, 다음이 서울시 공무원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었다.
1998년 공직을 그만두면서 인생에 어려움이 드리워졌다. 2년간은 특별한 직업 없이 지냈다. 2000년 트럭을 사 용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침 6시에 나와 자정에 귀가했다. 일요일만 쉬고 월 25일 일했다. 그래도 매출은 하루 10만원, 한 달 250만원에 그쳤다. 기름값 등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공무원 때 월급 300만원을 벌 길이 없었다. 일 마치고 술로 지새우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아내와 멀어진 것도 이때쯤이다. 노씨의 퇴직 직후 가계를 책임진 건 아내였다. 재봉 기술을 활용해 옷감을 제작했다. 노씨가 일을 시작해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자 부부간 대화가 더 줄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언성만 높였다. 2003년 크게 다툰 후 아내가 딸(당시 10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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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없는 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다. 장사는 더 힘들어졌다. 차와 집을 팔았고 몸도 상했다. 퇴직연금 대신 선택한 일시금도 사라졌다. 2008년 노숙자가 됐다. 아내가 2011년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과로가 원인이었다. 당시 고등학생 딸은 정부의 긴급지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겨우 졸업했다. 노씨는 “건강히 제 밥벌이하며 지내는 게 고맙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딸과는 연락만 가끔 한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심층 인터뷰한 ‘추락한 5060 중산층’ 24명은 가장 큰 어려움의 하나로 ‘관계 단절’을 토로했다. 퇴직이나 실직, 사업 실패 후 어려워지자 가족과 헤어지고, 종전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점점 고립됐다.
"처지 비교돼 동기 모임 안 나가"
“동기들은 다 잘 됐더라고요. 나도 공무원 녹을 계속 먹었으면 인생이 평탄했을 텐데….”
노씨는 우연히 군 동기와 연락이 닿아 2017년 송년 모임에 나갔다. 동료들의 상황은 노씨와 달랐다. 상당수가 원사·준위로 전역했고 장교 시험을 봐 여단장(대령)까지 된 사람도 있었다. 모두 연금을 받고 있다. 일부는 군에서 딴 자격증으로 지금도 직장생활을 한다. 노씨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다. 지난 2월 말 5년 가까이 일한 빌딩 경비직(월급 200만원)에서 해고돼 실업급여를 신청한 상태다. 노씨는 “동기들과 처지가 비교돼 모임에 나가지 않고 피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래도 노씨는 만족한다. “난 취직(경비직)을 해 2014년 노숙인 쉼터에서 나왔어요. 이건 기적적인 일이야. 나이 든 마당에 몸 건강히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이모(68)씨는 외환위기 이후 사업 실패로 2008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는 가끔 안부만 주고 받는다.[강정현 기자]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모(68)씨는 외환위기 당시 경영하던 건어물 유통업체가 부도나고 동업자 빚보증 등으로 인해 약 20억원의 재산을 날렸다. 부동산 중개업에 손댔다가 실패했고, 2008년에 기초수급자가 됐다. 이 과정에 이혼했다. 이씨는 “어려울 때는 빚을 갚기 바빴지 가족의 소중함 같은 걸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숨을 돌렸을 땐 이미 아내·딸과 멀어져 있었다. 서른이 넘은 딸은 아내와 지내지만, 가끔 안부만 주고받는다.
생활비가 쪼들리면 예전의 취미생활은 엄두를 못 낸다. 택시기사 홍모(62)씨는 계단 걷기가 현재 유일한 취미다. 30년 활동한 야구 동호회는 나갈 생각을 못 한다. “직장을 그만두니 돈이 들어가는 취미생활은 엄두가 나지 않더라”며 “이 나이에 돈 쓰지 않고 건강을 챙길 방법은 계단 걷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직 은행원 서종남(58)씨도 “회사 다닐 땐 영화·연극·콘서트를 틈만 나면 봤지만 이젠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게 문화생활의 전부”라고 말했다.
김근홍(전 한국노년학회장)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5060세대는 급작스러운 사회변화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후를 맞은 낀 세대”라며 “관계 단절은 우울증이나 치매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5060세대의 삶은 결국 현재 2030세대 노후생활의 바로미터”라며 “노년 중산층을 지원해 국가가 내 미래를 최소한은 보장해 준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젊은 세대의 사회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신성식·이에스더·이승호·김태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어느 신문사가 최고 땅부자일까
조선일보 공시지가 3195억원 1위… 장부가액 기준 동아, 한경, 매경, 조선, 중앙 순
광고·협찬으로 연명하는 신문사들이 열악한 미디어 환경에서 생존하는 비법은 부동산이다.
미디어오늘이 공시를 통해 확인한 주요 일간·경제지와 통신사 토지 보유 현황(2017~2018년)을 살펴본 결과 토지 공시지가가 가장 높은 신문사는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경제, 세계일보, 매일경제, 중앙일보, 연합뉴스, 경향신문, 한겨레, 내일신문, 머니투데이, 문화일보, 한국일보 등 주요 종합 일간·경제지와 통신사가 조사대상이었다.
지난해 기준 조선일보가 보유한 토지의 공시지가는 3195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책정한 토지장부 가액은 826억원으로 공시지가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 주요 언론사 토지 보유 현황. 2017~2018기준. (단위 : 천원)
공시지가 기준으로 조선일보에 이어 동아일보(2299억원·2017년 기준), 서울신문(1651억원), 한국경제(1184억원·2017년), 세계일보(820억원·2017년), 매일경제(736억원), 중앙일보(575억원), 연합뉴스(542억원·2017년), 경향신문(499억원), 한겨레(159억원), 내일신문(117억원), 머니투데이(16억원) 순이었다.
기업들이 직접 내놓은 자료에 기반한 장부가액을 보면 순위가 바뀐다. 1위는 1103억원의 동아일보(2017년)였다. 2위는 966억원의 한국경제(2017년)였다. 다만 작년 공시 수치라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3위는 매일경제로 토지 장부가액은 847억원이었다. 이어 조선일보(826억원), 중앙일보(812억원), 서울신문(739억원), 문화일보(269억원), 연합뉴스(251억원·2017년), 내일신문(187억원), 경향신문(139억원), 한겨레(67억원), 머니투데이(37억원), 세계일보(24억원·2017년), 한국일보(7억원) 등이었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질 수 없는 선거 졌다’ 얼굴 빨개지는 오보
동별 투표 성향 고려치 않고 전체 표 차이 따라가다 한겨레 성급하게 보도했다가 삭제
창원 성산 재보궐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후보가 강기윤 한국당 후보를 504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개표 막판에 가서야 결과가 뒤집히면서 언론 보도도 혼란스러웠다. 엄밀히 따지면 오보가 나왔다. ‘강 후보가 여 후보를 이겼다’라고 쓴 오보가 나온 게 중앙언론과 지역언론의 차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3일 밤 10시45분께 강 후보가 여 후보에 900여표 앞선 상황에서 여영국 후보의 낙선 인사 내용이 도는 등 패색이 짙었다. 이는 공식 낙선인사는 아니었다. 이에 언론은 강기윤 후보 당선을 점쳤다. 연합뉴스는 “4·3 보선… 한국당, 통영고성 ‘당선 확실’ 창원성산 ‘우세’”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보도는 한겨레였다. 한겨레는 “‘져선 안 되는 선거를 졌다’… 창원성산에서 정의당 충격패”라는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여영국 후보의 패배를 확정짓는 보도였다. 그 시간 여영국 캠프와 정의당에선 개표현장 소식을 근거로 여 후보가 승리했다라는 내용이 SNS를 중심으로 확산됐고, 밤 11시께 캠프에서 1000표 이내로 승리를 확실시했다. 성급했던 한겨레 기사는 밤 10시50분 이후 삭제됐다. 관련 기사를 링크하면 “언론사의 요청으로 삭제된 기사”라는 공지가 뜨고 원문 기사를 볼 수 없다. 사실상 오보를 낸 셈이다.
한겨레는 밤 10시36분 “고 노회찬 지역구, 자유한국당 가져갈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KBS는 밤 10시20분께 경남 창원성산 지역구(개표율 56.5%)에서 강기윤 한국당 후보가 48.1%를 얻어 당선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면서 여영국 후보의 패인을 분석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한겨레는 “진보진영에서는 고 노회찬 의원과 같은 압도적 ‘대중성’을 지닌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불안 요인’으로 꼽아왔다”면서 “정의당 관계자는 ‘민주당과 단일화가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했고, 진보진영 단일화가 완전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표가 분산됐다’는 점을 패인으로 꼽았다”고 보도했다.
여영국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제 상황을 보면 10시30분경 중앙 언론이 패배를 예상해 캠프를 빠져나갔다가 밤 11시경 역전됐다는 말이 돌아 다시 돌아왔다. 반면 지역 기자들은 캠프에서 확인 과정을 거치면서 흐름을 보면서 지키고 있었다”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 것은 맞지만 중앙언론은 지역의 특성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오보를 냈던 것이고, 지역 언론은 막판까지도 오보를 내지 않고 막판 뒤집기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한겨레가 정의당 관계자를 인용한 것도 캠프 인사가 아닌 지역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중앙 당직자로 보인다”고 전했다.
▲ 한겨레 “‘져선 안 되는 선거를 졌다’…창원성산에서 정의당 충격패” 제목의 기사가 포털에 노출된 모습.
창원 성산 재보궐선거 사전투표 첫 개표 지역은 창원시 반송동이었다. 해당 지역은 강기윤 후보의 표밭으로 분류된다. 예상대로 강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강 후보의 당선 유력이라고 보도된 시점도 반송동 지역 사전투표 결과가 나올 때였다. 하지만 여 후보 캠프에서는 당황하지 않았다. 여영국 후보의 강세지역인 창원시 사파동이 남았기 때문이다. 캠프에서는 밤 10시40분 경 현장 집계를 통해 당선을 확신했다. 사파동에서 2천표 가까운 차이가 난 것으로 분석했다.
임종금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역 득표구조를 모른 채 그저 표차만 세다가 큰 오보를 냈다”면서 “큰 선거,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도지사 선거는 단위가 커서 개표 중반 이후 5% 이상 벌어지면 따라잡기 힘들다. 하지만 선거단위가 작은 곳은 지역에 따라 몰표가 나오면 확 뒤집히기도 한다.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다니 안타깝다”라고 썼다
임 전 기자는 통화에서 “지난 경남도지사 선거 때도 김경수 후보가 10% 지고 있을 때 중앙 모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출구조사 결과와 달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는데 아직 김해 지역 등 개표하지 않은 지역이 많다고 했다. 10% 내외로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 “적어도 작은 단위의 선거 취재를 할 때 캠프 조직자나 현장 투개표 관계자를 실시간으로 크로스 체크를 했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선도 아니고 단일 선거에서 충분히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선거 결과가 나오고 난 뒤 작성한 기사에서 “정의당은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했다. KBS가 3일 밤 10시20분께 ‘한국당 강기윤 후보 당선이 유력하다’고 보도할 정도로 한때 승부의 추가 기울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지만 ‘여영국 후보가 졌다’는 자사의 기사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세운상가 재개발, 땅주인들 3조 5600억 불로소득
경실련, 세운 재개발 계획 공시지가 조사 결과 발표..."상인 내쫓고, 전형적인 도심 난개발"
서울 중구 옛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으로 땅 주인들은 땅값 상승으로만 3조 5600억 원의 이득을 거뒀고, 향후에도 막대한 개발 이익을 챙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4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세운 재개발지역 개발계획 수립 전후인 2002년~2016년 공시지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세운 재개발사업은 종로구 세운상가부터 중구 진양상가까지 주변 일대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지구 면적은 43만 9456.4㎡이고 총 6개 구역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경실련 조사 결과 세운 재개발 지역의 땅값은 사업이 진행하면서 급상승해왔다. 사업이 시작된 2002년 기준 공시지가는 평균 3.3㎡당 1670만 원이다. 그런데 지구지정이 이루어진 2006년에는 3.3㎡당 3110만원까지 상승했다. 불과 4년 사이 두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세운재개발구역 공시지가 변화 추이
▲ 세운재개발구역 공시지가 변화 추이 ⓒ 경실련
가격 상승은 멈추지 않았다. 주거 중심의 복합용도 개발이 가능해진 2010년에는 3.3㎡당 4710만원, 사업시행계획 수립 전인 2016년에는 3.3㎡당 5100만원으로 3배 이상 올랐다. 2016년 기준 사업지구 전체 공시지가는 5조 6600억 원으로 2002년 대비 상승률은 305%에 달한다. 2002년 2조 7670억 원이었던 사업지구 전체 공시지가는 2016년 5조 6600억 원 늘어난 8조 4320억 원으로 추산됐다.
남은경 경실련 국장은 "중구지역 평균 지가 상승률에 따른 상승분을 빼더라도 토지 상승 차액은 무려 3조 5600억 원"이라며 "이 개발이익은 사업시행 인가 전 발생했기 때문에, 모두 토지주가 가져가고, 향후 개발이익까지 고려하면 더 막대한 개발이익이 사유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막대한 토지 가격 상승에는 서울시의 특혜성 정책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서울시는 세운구역에 재개발구역지정요건 완화와 용적률 층고 완화, 건축기준 완화 등을 허용해줬다.
당초 세운 구역 일대는 건물 높이 3층 미만, 용적률 150% 내외로 제한돼 왔다.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을 하면서, 이 규정을 대폭 완화해줬다. 건물 높이는 30층 내외, 용적률은 900%까지 지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2010년 서울시는 도시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변경해, 세운 구역을 '도심복합용도 지역'으로 바꿔줬다. 이에 따라 세운 구역은 상가가 아닌 아파트와 오피스텔도 지을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세운 3-1, 3-4,5 구역에 주거비율을 90%까지 허용하는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을 승인해주기도 했다. 재개발 사업 이후 도심특화산업을 위한 공간 확보율은 1.7%에 불과하다. 이러다보니 세운상가 세입자들이 이곳에 재정착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세운 구역(3-1, 3-4.5, 6-3-1,2)의 임차인 우선 분양임차권 신청 현황을 보면 총 263개 사업장 가운데 47개 사업장(18%)만 신청했다. 원래 100개 상가가 있었다면, 재개발 이후에도 남아있을 상가는 18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남 국장은 "신청 비율이 낮은 이유는 주거 비율이 높은 주상 복합 아파트가 공급되면서, 도심특화산업 면적의 확보율이 낮기 때문"이라며 "막대한 불로소득은 토지주에게 돌아가고, 도심산업생태계는 붕괴되는 도심 난개발 사업이 세운재개발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운재개발 사업에 따라 막대한 개발이익이 토지주에게 귀속된다고 비판했다. ⓒ 신상호 오마이뉴스
다들 5G, 5G 하는데, 5G란 무엇인가
최근 TV 광고와 언론지상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를 꼽으라면 ‘5G(Generation·세대)’를 꼽을 수 있다. SKT,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의 광고는 모두 5G로 ‘도배’되어 있다. ‘5G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개통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사, 삼성전자 등은 ‘5G’폰 출시일을 열흘 가량 앞당겼고, 3일 밤 11시 ‘5G’ 1호 가입자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리서치앤리서치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5G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른다고 했다. 5G란 무엇인가.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사진 : 21세기 폭스)
영화 ‘킹스맨’에는 원탁회의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등장인물이 회의장에 앉아있는 게 아니다.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해 홀로그램 형태로 회의장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제 그 자리에 없지만 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구현줄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바로 5G 네트워크다.
1세대 통신은 음성만 주고 받을 수 있었다. 2세대 통신은 음성통화에 문자메시지를, 3세대 통신은 동영상 전송까지 가능했다. 지금 보편화된 4세대 통신은 LTE(롱텀에볼루션) 기술을 바탕으로 음성, 문자, 영상 데이터를 3G 시대보다 10배 빠르게 주고받게 됐다.
(자료: 한국정보화진흥원)
5G 통신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설명은 ‘1차선 도로가 10차선 고속도로로 변신했다’는 표현이다. ‘도로’가 넓어졌으니 지금보다 10배 이상 더 빠르게 음성, 영상 등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2시간 짜리 영화 한편을 다운 받는데 1초면 가능하다. 한 이동통신사 광고처럼 이제 연예인이 AR와 VR 기술을 응용해 가상의 형태로 내 방까지 찾아오게 할 수도 있다. 이때문에 ‘초고속’, ‘초저지연성’, ‘초연결성’ 등이 5G의 특징으로 꼽힌다.
‘빠른 다운로드’를 이야기하면 대다수 소비자들은 지금도 충분히 빠른데 더 빨라서 무엇하느냐는 말도 한다. 가상현실이 가능하더라도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아닌 이상 무엇이 달라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많다. 당장 서비스 지역이 서울 시내 중심가 정도로 한정돼 5G가 대중화 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생활에서 변화는 조금씩 찾아오고 있다. 미국의 안경 구독 서비스 ‘와비 파커’는 앱에서 안경을 선택하면 셀프 카메라가 작동해 화면에 안경 낀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케아도 가구가 자신의 집에 어떻게 어울릴지 직접 놓아보는 AR 기술을 개발했고, 로레알과 세포라 등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도 화장품을 바른 모습을 가상현실로 보여주는 앱을 내놓았다. 5G 기반에서는 이같은 서비스가 더 ‘진짜’ 같아질 수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앞으로는 직접 가게에 물건을 진열해놓지 않고 VR로 대체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산업적 관점으로 보면 더 넓다. 4G 시대에서야 영상을 다운로드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보는 유튜브가 탄생했듯이 전문가들은 5G 시대에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할 것이라고 본다.
4G가 ‘스마트폰’만이 주인공인 시대였다면 5G는 자율주행차, 로봇,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연결돼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아직 한계가 많다. 도로의 변화 등을 데이터로 주고 받을 때, 혹시라도 연결이 지연되면 바로 눈 앞에서 사고가 날 수 있지만 5G 통신 인프라가 깔리면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어 원만한 자율주행차 운행이 가능해진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신동형 팀장은 보고서에서 “5G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전망”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통신산업, 스마트폰 산업, 반도체 산업, 디스플레이 산업 등의 성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까지 변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료:KT경제경영연구소)
한국이 ‘세계 최초의 5G 개통’에 만족할 게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응용 서비스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국가적 차원에서 5G 서비스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세계 최초로 만든 5G 인프라가 외국 기업들에만 좋은 ‘남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한국 대학은 죽었다"
[인터뷰]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문화/과학>. 1992년 창간한 이 독특한 이름의 매체를 기억하는지. 그 직전인 1991년 말, 소련이 해체됐다. 같은 해 4월 말에는 강경대 폭행치사 사건이 있었다. 범민주 진영과 노태우 정권이 맞붙었지만,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그리고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 밀가루 세례 사건 등을 거치면서, 정국의 균형추는 오른쪽으로 확 쏠렸다. 민주진보 진영 전체가 우울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한 편에선 문화 담론이 번져갔다. 옛 소련 철학 교과서 등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저술에선, 문화는 상부구조로 분류된다. 물질/경제적 토대가 결정한다는 뜻이다. <문화/과학>은, 독특한 시도로 읽혔다. 유물론과 과학적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으면서, 문화 활동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길. 당연히 몹시 좁은 길이다. 그래도 1990년대 내내 꽤 많은 이들이 발을 들였고, 낯선 프랑스 철학자들의 이름 속에서 길을 잃었다.
<문화/과학>의 간판 역할을 한 사람이 강내희 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 그는 정원식 총리 서리가 밀가루를 뒤집어 쓴 사진 한 장으로 1991년 정세가 바뀐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문화적 수단(밀가루 뒤집어 쓴 사진)에 의해 정세가 뒤바뀐다는 것을 깨닫고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문화 부문의 대응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문화/과학>이 세상에 나왔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안적인 학문전략
다시 27년이 지났다. 많은 이들에게 <문화/과학>은 여전히 낯선데, 문화산업은 아주 익숙하다. 문화는 자본의 논리가 더욱 적나라하게 반영되는 영역이 됐다. 하지만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꾸준히 책을 내왔다. 최근에는 <문화/과학> 2019년 봄호(97호)가 출간됐다. 강 전 교수 역시 제 자리를 지켰다. 대학, 인문학, 문화 영역을 옥죄는 자본의 논리를 줄기차게 비판했다. 이는 다양한 학문과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전략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1998년에 <지식생산 학문전략 대학개혁>을 통해 밑작업을 했다. 2003년에는 <교육개혁의 학문전략>을 냈다. 대학이 기업을 위한 훈련소 역할을 한다는, 흔한 비판에 그치지 않았다. 인간과 사회, 자연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여는, 대학과 학문, 문화의 고유 역할에 충실하려는 시도였다. 요컨대 교육과정 자체를 대안적으로 구성하려 했다. 그러자면, 기존 대학의 분과 학문 체계를 깨야 했다. 문과와 이과를 기계적으로 나눠서 반(反)지성주의를 체계적으로 조장하는 분과 학문 체계는 결국 자본과 권력의 이익에 복무한다. 신자유주의를 격렬히 비판했던 그가 '문화공학' 등 독특한 개념을 아주 일찍부터 제안했던 배경이다. 그러나 또 상황이 바뀌었다. 어느 순간, 학문간 통섭 등의 표현이 자본의 구호가 됐다. 대학은 더 황량해졌고, 학자들은 전공의 좁은 울타리 안에 더 깊이 몸을 파묻었다.
"대학교육은 살아 있는데 취업만 안 된다?…교육까지 죽었다!"
그리고 그는 정년을 맞아 대학을 떠났다. 오랫동안 품었던 새로운 대학에 대한 꿈을 대학 밖에서 실현하기로 했다. 그는 2015년 출범한 '지식순환협동조합(지순협) 대안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2년제 비인가 대안대학이다. 졸업논문까지 써도 정규 학위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배우고 가르치는 열정은 더 진지하다.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지순협 대안대학에서 지난달 말에 그를 만났다. 강내희 학장의 첫 마디는 "대학의 죽음"이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도 대학의 존재 조건은 아주 위태롭다.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나온 학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대학의 위기다. 하지만 대학 교육까지 죽은 건 아니다. 취업과 무관한 분야 역시 교육은 제대로 이뤄진다. 한국은 다르다. 대학 졸업자가 단지 취업이 안 되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학생에겐 졸업장만 의미가 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지친 몸으로 그저 버틸 뿐이다. 교육 내용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교수들은 논문 실적을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다. 한국에선 대학과 대학 교육이 다 죽었다."
인문학 등 기초학문 전공자가 취업이 안 된다. 이는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학에서 인문학을 치열하게 익혔는데 다만 취업이 안 되는 것, 그리고 이들 분야 학위만 있을 뿐 스스로도 의미를 못 찾고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것.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는 설명이다.
전자는 대학교육은 살아 있는 경우다.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대충 배우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반면 후자는 대학교육까지 죽은 경우다. 한국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는 게 강내희 학장의 설명이다.
"다른 교수의 강의 계획, 비판할 수 있어야 '학문 공동체'"
"정말 다양한 학생들이 들어왔다. 17세 소년부터 68세 노인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다 무사히 마친 것은 아니다. 중간에서 접은 이들도 많다. 그러나 과정을 마치고, 논문까지 쓴 이들은 종종 놀라운 성취를 한다. 방금 이야기한 17세 소년이 대표적이다. 어쩌면 '젊음의 힘'일 수 있다. 2년 동안 배운 내용으로 논문을 썼는데, 아주 다양한 지식을 잘 엮어냈다. 정규 학위를 주는 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는 달리 말하면, 새로운 가능성이다. 대학이 교육과정을 잘 구성하면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순협 대안대학은 통섭 교육을 강조한다.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 정신과 물질의 상투적인 구분을 넘어서려 한다. 지적호기심이 왕성한 시기, 한국 학교는 학생들에게 한 쪽 눈을 가리게 한다. 인문학을 택하면, 자연과학에 무지한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예컨대 역사를 공부하는 이는 인문대학 테두리 안에만 갇힌다. 세상과 자연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막는 구조다.
"(지순협 대안대학에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문화예술 등을 엮어서 가르친다. 역사와 진화론, 정치경제학을 함께 공부한다. 분과학문 테두리 안에 갇혀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된다. 요즘 부상하는 '빅 히스토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통섭은 꼭 대안교육 영역에서만 강조하지 않는다. 경직된 분과학문 체계를 부수자거나, 문과-이과 구분을 깨자는 이야기는 제도권에서도 자주 나온다. 하지만 기존 대학의 시도는 한계가 분명했다. 다양한 지식이 시장의 요구에 맞춰 수렴하는 방식, 혹은 여러 전공을 물리적으로만 합치는 방식이다. 통섭교육을 강조하는 목소리 가운데 일부는 주로 기업에서 나온 탓도 있다. 예컨대 공학과 경영학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와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다. 영문학 교수가 자기 시야를 넓히기 위해 물리학과 신입생 수업을 듣는 풍경은, 한국에서 거의 볼 수 없다. 다른 분야에 대한 편견을 교정할 기회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 '통섭', '융합' 등을 이야기하면, 결국 편견의 재생산에 그치기 십상이다. 반면, 자기 분야에선 봉건 영주나 다름없어서, 비판을 견디지 못한다. 대안대학은 이런 문화를 바꾸려 한다.
"일반 대학에선 강의 계획서를 교수끼리 공유하면서 토론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같은 학과 안에서도 그렇다. '학문 공동체'가 될 수 없는 구조다. 우리는 다르다. 가르치는 이들이 서로의 강의 계획서에 대해 의견을 낸다. 전공이 다른 교수가 내 강의 계획서에 대해 수정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우리 학교에선 교수가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 일도 종종 있다. 제대로 된 '통섭', '학문 공동체'는 그래야 가능하다."
"시간강사 숙청, 대학은 왜 존재하나"
대안적인 학문 공동체는 강내희 학장이 기존 대학에 있을 때도 늘 꿈꿨던 것이다. <문화/과학> 지면 등을 통해서도 자주 드러난 생각이다. 하지만 대학 교육은 그의 바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질주한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시행된 강사법은 대학의 썩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학들은 비정규직 교수의 처우를 개선하기보다, 그들을 내쫓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른바 시간강사, 비정규직이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구조에서 이는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대학만큼 기득권 구조를 깨기 힘든 곳도 드물다. 개혁을 하려고 하면, 대학 재단 및 교육부가 가로막는다. 하지만 그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대학 안에도 구조적 문제가 있다. 각자 챙기는 밥그릇이 있고, 그걸 건드릴 수 없다. 그렇게 형성된 관행이 강력하다. 그 속에서 서로 간섭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나. 30대 나이 젊은 교수가 없어졌다. 기초학문 분야에선 그 나이에 교수가 못 된다. 새로운 자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40대 교수들은 어떤가. 논문 실적 채우기에 급급하다. 다른 분야를 돌아보거나 총체적인 고민을 할 여유가 전혀 없다. 이는 교수의 학벌이나 역량과는 관계없는 문제다. 그렇게 형식적으로 실적을 채우고 나서, 50대가 된 교수들은 어떤가. 그들은 이제 소진된 상태다.
연구가 아닌 교육은 어떤가. 제대로 가르치려면, 한 학기에 6학점 이상 강의할 수 없다. 교육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일주일에 고작 6시간 일하고 월급 받느냐고 한다. 그렇지 않다. 6학점이 한계다. 하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에서 6학점 강의하도록 요구한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전제해야 가능한 요구다.
게다가 강사법이 시행되면서, 곳곳에서 '시간강사 숙청'이 벌어졌다. 상당수 시간강사들은 자기 소득은 미미하고, 집안의 후원 혹은 배우자 소득으로 버틴다. 학문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없어서 그렇게 지내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라도 강단에 설 기회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직업적으로 학문을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대학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프레시안(최형락)
"비슷한 열정을 공유하는 이들이 만나면…"
지순협 대안대학은 기존 대학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한계와 답답함도 있다. 대안교육은 가르치는 내용뿐 아니라 방식까지 대안적이어야 한다.
까다로운 개념을 소화하는 일은 누구나 피곤하다. 기존 학교 교육 역시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예컨대 중요한 수학 개념을 공 들여 이해하려 하지 않고, 딱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에서 넘어가는 학생을 양산했다. 인식과 비판은 맞물려 있으므로, 적당히 외우거나 아는 척하고 넘어가는 구조에선 비판적 능력이 자라지 않는다. 비판과 민주주의 역시 맞물려 있으므로, 이는 보다 큰 차원의 위기다.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실천하기보다, 다수에 휩쓸리고 소수를 조롱하는 이들이 자란다. 까다로운 개념과 싸우는 피곤한 훈련을, 자율적으로 하게 할 방법이 있을까. 기존 교육처럼 강요나 서열 경쟁 등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어떤 길이 있을까. 그게 어렵다. 강내희 학장도 인정했다.
"공부하는 버릇이 들지 않은 학생들이 있다. 일종의 자기 규율인데, 참 어렵다. 어떤 학생들은 그저 자기 요구만 쏟아내는 것이 진보적인, 혹은 대안적인 실천이라고 여긴다. 분명히 이런 문제가 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신, 자발적인 열정을 지닌 학생들에겐 정말 좋은 환경이다. 그 역시 사실이다. 지순협 대안대학을 마치고, 일반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있다. 탁월한 지적 역량을 지닌 학생이다. 그런데 입학 일주일 만에 내게 전화했다. '학교 못 다니겠다'고 했다. 기존 대학의 교육과정이 지식에 대한 열정이나 창의적인 에너지를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안적인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물론 교육내용뿐 아니라 방식까지 대안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어려움도 있다. 대안교육 역시 인프라가 중요하다. 좋은 교수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보다는 학생이 늘어나야 한다.
"기존대학의 절반 수준 등록금인데, 그래도 학생 모집이 어렵다. 비인가 대학이라서 갖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순협 대안대학을 마친 이들은 만족도가 높다. 문화기획 실무자가 우리 학교에서 이론 공부를 더하고 나서 기획 역량을 키운 사례도 있다. 반대로 우리 학교에서 실무를 배운 이들도 있다. 문화기획 실무 경험 있는 교수들이 있다.
비슷한 열정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모여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은 독립연구저널 <삼합>을 발간했다. 자유로운 연구 모임인 '삼색 불광파'를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삼(3)'은 적(마르크스주의, 노동), 녹(생태주의, 환경), 보라(페미니즘, 다양성)을 뜻한다. 학생들이 자율적인 연구 모임을 꾸리고 독립적인 매체를 내는 풍경은, 다른 대학에선 거의 사라졌다. 지순협 대안대학에 지원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성현석 기자 프레시안 4.5
"메갈X들 다 강간" 이런 가사도 힙합이니까 괜찮다고?
[주장] 폭력 정당화하는 한국 힙합, 변화하는 미국 힙합... 혐오표현 돌아볼 때
나는 9년차 힙합 '리스너'다. 주로 한국힙합을 듣고, 때로는 미국의 유수한 래퍼들의 곡을 들으면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어떤 방식으로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9년 전의 한국 힙합이라는 것은 욕이 난무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던, 그야말로 '혐오의 결정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변 지인들한테서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가사 때문에 듣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듣는다.
최근 힙합 가사에서의 '여성혐오' 논란이 또 한 차례 있었다. 그 주인공은 브래디스트릿(Bradystreet)이다. 브래디스트릿은 2018년부터 활발하게 활동하는 신예 래퍼로, 많은 래퍼들의 곡에 참여하면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 3월 30일에 래퍼 김효은의 싱글 트랙 '머니 로드(Money Road)'가 문제가 된 것. "메갈X들 다 강간 / 난 부처님과 갱뱅 / (중략) 내 이름 언급하다간 니 가족들 다 칼빵"이라는 가사는 뭐가 문제라고 짚어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다.
굳이 특정 종교를 언급해서 불필요하게 성적으로 소비한 것도 문젠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응징하는 수단이 '강간'이 될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사실 곡의 주인인 김효은이 아닌 브래디스트릿의 가사가 문제가 된 것이지만, 자신의 작업물을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내놓는 과정에서 당연히 내부 논의가 되었어야 마땅했다. 논란이 되자 4월 1일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의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 브래디스트릿은 사과문에서 "어휘 선택이 지나치게 과격했던 점을 반성"한다고 했다. 핵심은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문제였던 것인데, 그것을 과격하지 않고 덜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문제가 없는 걸까? 현재 해당 싱글은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간 상태다.
사과한 릭 로스와 에미넴, 그리고 폭력에 무감각한 한국힙합
이런 일이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꽤 자주 일어난다. 미국 래퍼들도 여성혐오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2013년 미국의 유명 래퍼 릭 로스(Rick Ross)는 "그녀의 샴페인 안에 약을 넣어라 / 나는 그녀를 집에 데려가서 즐겼고 / 그녀는 그것을 알지도 못한다"라는 가사가 포함된 곡을 발매했고, 약물강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비판받은 바 있다.
이후 거듭 사과하고 해당 가사가 삭제되는 등의 일이 있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그가 광고모델로 있었던 스포츠 브랜드인 리복(Reebok)은 릭 로스와의 광고계약을 해지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근래의 미국은 혐오발언을 서슴지 않던 힙합 문화를 적극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유명 래퍼 에미넴(Eminem)은 2018년 다른 래퍼를 디스하면서 그를 '호모'(faggot)라고 칭한 것에 대해 사과한 바 있으며, 제이지(Jay-Z) 또한 여성을 잘못된 방식으로 성적 대상화 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거물급 래퍼들이 점차 변해가는 중이다.
매번 한국에서 래퍼들이 소수자 혐오적인 가사를 쓸 때마다 팬들이 옹호하며 '미국도 이렇다', '힙합은 원래 그런 문화다'라고 말하지만, 원래 그래도 되는 것은 없으며, 그랬던 미국도 점차 바뀌어 가는 중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브래디스트릿의 가사 논란은 여태껏 있어왔던 일들의 연장선일 뿐이다. 대표적으로 소수자를 폭력적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키는 래퍼 블랙넛이 있다.
그는 2016년 발매된 싱글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에서 세월호, 노인, 아동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해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 바 있다. 문제는, 더 나아가 실재하는 인물인 여성 래퍼 키디비를 성희롱하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에 키디비는 2018년 6월 정식으로 블랙넛을 모욕죄로 기소했으며, 블랙넛에게는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문제는 이후의 행동이다. 블랙넛은 올해 2월 발매된 싱글 'IMJMWDP'에서 가사에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내 힙합은 진짜라서 징역 6개월 / (중략) 법이고 윤리고 시끄러 비켜 / 블랙넛은 랩 할 땐 라임만 지켜 / 그까짓 공권력 안 쫄려"
물론 권력을 조롱하고 비트는 일은 힙합이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린 개인을 규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집행유예는 결코 아무 죄가 없다는 처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처분을 비웃는 것은 결국 피해자를 조롱하는 일에 다름없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와 '남성성'이 만나면
힙합에서의 혐오 발언을 지적하면 많은 이들이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옹호한다. 실제로 이번 브래디스트릿의 가사 논란과 관련하여 힙합 커뮤니티의 일부 누리꾼들은 "음악은 그냥 음악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하면 안 들으면 그만이다"라거나 "이래가지고 한국에서 힙합할 수 있겠느냐"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결과물을 대중에게 내놓을 기회가 주어졌을 때부터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후에 부적절한 내용이 있다면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고, 또 비판받아야 한다. 힙합이 예외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 힙합이라고 강간과 성희롱 등을 부적절하게 언급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없다. 앞서 말한 릭 로스의 과거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 여성의 성을 유린하고 소비하는 것이 용인되는 일종의 '강간 문화'(rape culture)와 잘못된 형태의 남성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는 저서 <지금 여기 힙합>(2017)에서 "상업화된 힙합음악은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강화하고, 여성의 성 상품화를 당연시하고, 여성을 열등한 것으로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여성혐오적인 문화를 자연스럽게 향유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한 힙합은 남성성의 문화로 인식되면서 그러한 지배적인 남성성을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에 도달하기 위해 소수자를 짓밟는 일이 용인되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힙알못(힙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취급받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하지만, '원래 그래도 되는 것'은 없으며, 힙합이라는 장르 또한 한 사회의 여러 가지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래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에 무감각한 한국 힙합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다. 언제까지 비뚤어진 남성성을 찬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힙알못’ 취급하며 눈과 귀를 가릴 것인가?ⓒ 오마이뉴스
결국 한국 힙합은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윤리적 수준에 대해 통렬하게 고민해야 한다. 브래디스트릿의 가사 논란은 래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에 무감각한 한국 힙합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다. 언제까지 비뚤어진 남성성을 찬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힙알못' 취급하며 눈과 귀를 가릴 것인가?/오마이뉴스 김민준(coolboy95)
<노무현과 바보들>
영화는 노 전 대통령(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인터뷰 중심의 영화다. 부림사건, 국민참여경선, 대통령 당선의 순간, 거듭되는 정치적 위기와 서거 그리고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야기한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름 모를 한 정치인이 낡은 정치와 싸우겠다며 '동서화합'과 '지역주의 극복'을 외친다. 그는 4번 낙선의 쓴맛을 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를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그 '바보' 주변에 '바보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노무현과 바보들'이 만났다.
주로 평범한 소시민들이 정치인 노무현에게 빠져들었다. 시종일관 진정성 있고 진솔한 모습으로 소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노무현은 학연, 혈연, 지연의 덕은 못 봤지만 타고난 인덕이 있었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연예인 팬클럽처럼 하나둘 모여든다. 그러다가 이중 한 명은 노사모 웹사이트를 개설하게 된다.
일반 회사원, 학원 강사, 건설업자, 방송작가, 자영업자 등 다양한 시민들이 노사모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예인 팬클럽처럼 시작한 노사모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실제로 만나 본 적 없었던 그들은 정모를 통해 오프라인으로 만나면서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의 선거운동에도 앞장선다.
"그분의 말처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돈도 조직도 없었지만 여러분들은 저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노무현)
영화는 노무현 지지자들이 본격적인 정치 참여를 하는 계기와 과정을 보여준다. 2000년도 노무현이 대선에 도전하자 노사모는 본격적으로 그를 돕기 시작한다
궁극적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시민의 정치 참여다. 이 대목에서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은 인터뷰를 통한 증명보단 당시 자료 화면을 통해 설명한다.
"그분과 함께했던 내 젊은 날들이 가장 빛나는 날이었다"
지지자 중에서는 글을 잘 쓰는 사람,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등 각자의 특기가 있었다. 그들은 이런 자신들의 특기를 내세워 그의 선거를 돕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은 목청 크게 응원을 지휘하며 이끌어 나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로써 노무현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상대 후보 진영보다 적은 인원일 땐 발을 굴러가며 소리를 키웠다.
대통령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강했던 지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바꿔 줄 것이라 믿었다. 지지자들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찾아왔다고 굳게 믿었다.
영화는 대통령 당선 이후 노무현이 겪은 고충도 담았다. 당선 후 15일째 처음으로 탄핵이라는 말이 한나라당에서 나왔다. 여러 언론사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지지자들은 어리둥절했다.
결국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의 주도하에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리고 그 후 64일이 지나 헌재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되면서 그는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한다.
노무현은 대통령 퇴임 이후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간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사저 뒷산에서 투신, 서거한다. <노무현과 바보들>에는 탄핵 사건과 그의 서거에 대한 의혹도 담았다. 영화 속 인터뷰에도 이러한 시선이 담겨 있다. 정치인으로서 그를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지지자들의 진심 어린 고백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서거 1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영화인 만큼 <노무현과 바보들>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영화는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지지자들의 시선에서 어떤 정치인을 지지해야 하는지와 이상적인 정치 철학도 <노무현과 바보들>은 보여준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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