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AK 2020.07.
저 : 요시미 슌야 (Shunya Yoshimi,よしみ しゅんや,吉見 俊哉) 도쿄대학 정보학환(情報學環) 교수로 사회학, 문화연구의 전공을 토대로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도쿄대학 교양학과 상관사회과학분과를 졸업했다. 1987년 도쿄대학 대학원 사회학 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미디어시대의 문화사회학』(1994), 『목소리의 자본주의』(1995), 『문화연구(カルチュラル スタディ─ズとの?話)』(1999),『드라마투르기』, 『기록, 천황의 죽음』, 『미디어로서의 전화』, 『고도정보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강좌, 20세기의 예술』, 『도시사회학의 프론티어』, 『방법으로서의 경계』, 『영의 수사학』, 『현대 사회학의 명저』, 『인간학』, 『에도도쿄』, 『1930년대 미디어와 신체』 등이 있다.
목차
머리글 '헤이세이'라는 실패――'잃어버린 30년'이란 무엇인가
실패의 박물관 / '헤이세이'라는 실패 / 정치의 좌절, 회복없는 소자화(小子化) / '쇼와'의 반전 / 네 가지 쇼크 /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제1장 몰락하는 기업국가――은행의 실패, 가전의 실패
벼랑 앞에서 우쭐거리던 일본 / 2년 반 지연된 금리인상 / 일본호, 모로 쓰러지다 / 야마이치증권 '자진폐업'의 충격 / 야마이치증권 파탄을 잉태한 쇼와사 / 반도체시장에서의 일본의 참패 / '가전'의 저주와 신화의 종말 / 도시바의 실패를 검증한다 / 카를로스 곤 신화에 취한 일본 사회
제2장 포스트 전후정치의 환멸――'개혁'이라는 포퓰리즘
버블 속의 액상화――리쿠르트 사건 / 정치극장의 시스템을 바꾸다――소선거구제 도입 / 일본신당 붐이 남긴 것 / 선거제도 개혁의 전말――개혁파와 수구파 / 노조의 변절 사회당의 곤경 / 자멸로 치닫는 사회당의 혼란 / 자민당을 때려부순다――고이즈미 극장의 작동방식 /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정치주도' / 국가전략국 구상의 오류와 전말 / 아베 정권――액상화하는 정 · 관계와 '관저(官邸)주도'
제3장 쇼크 속에서 변모하는 일본――사회의 연속과 불연속
'실패'와 '쇼크' 사이 / 두 차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 옴진리교 사건과 미디어의 허구 / 헤이세이 첫해에 상실한 자아 / 확대되는 격차――미래에 절망하는 청년들 / 격차의 제도화, 계급사회로 가는 헤이세이 일본 / 멈출 줄 모르는 초소자고령화 / 소멸하는 지방――일본의 지속불가능성
제4장 허구화하는 아이덴티티――'아메리카닛폰'의 행방
'종말'의 예감 / '부해(腐海)'와 '초능력' / '미국'이라는 타자=자아 / 허구로서의 '일본' / 아무로 나미에와 여성들, 그리고 오키나와 / 절정 속의 주역교체――두명의 여성 스타 / 10년 후의 절정과 붕괴――1989년과 1998년 / 코스프레하는 자아 퍼포먼스 / 1990년대 말의 전환――환경화하는 인터넷 세계 / 자폐하는 넷사회
마침글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시대'――잃어버린 반세기의 서곡
'헤이세이'를 시대로서 생각한다 / 다시, 올림픽으로 향하다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가 / 후텐마기지 이전과 오키나와의 분노 / 오키나와에서 헤이세이 일본을 바라보다 / 발흥하는 아시아 홀로
뒤처진 일본 / '잃어버린 30년'의 인구학적 필연
후기
역자 후기
연표
주요 인용·참고 문헌
출판사 서평
일본의 헤이세이(1989~2019) 시대는 두 차례의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대참사 외에도 정치개혁 실험이 좌절하고 샤프, 도시바 등 기업들도 글로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속속 무너지던 '잃어버린 30년'이었다. 1989년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개사 중 32개사를 차지했던 일본 기업은 2018년에는 도요타(35위) 외엔 전멸했다.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 증가, 인구감소, 지방 소멸위기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고,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같은 엽기적인 사건들도 충격을 가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는 전후(戰後)에 구축돼 쇼와 시대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작동되던 일본형 시스템의 한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연약한 지반이 수분을 머금어 액체 같은 상태로 변하는 '액상화'가 일본 사회의 각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 헤이세이 말기다.
저자는 헤이세이의 액상화는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쇼와 시대에 진행된 지반약화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사적 대전환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지만, 일본은 오일쇼크를 무난히 극복한 데 따른 안도감에 사로잡혀 변화를 직시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런 안도감이 1980년대 경제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가져왔고, 1990년대 이후 전개된 글로벌화의 다양한 위험과 도전에 대한 응전에서 실패를 초래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 결과 헤이세이 일본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쇼크(버블경제의 붕괴,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2001년 미국 동시다발테러와 이후 국제정세의 불안정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와 동시병행적으로 전개된 글로벌화와 넷사회화, 저출산고령화 등 충격 속에서 일본은 좌절해갔고, 이를 타개하려는 시도들이 실패했다. 쇼와의 빛나는 성공신화가 헤이세이 일본의 태세전환을 어렵게 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 전기·전자산업의 어이없는 몰락은 그 단적인 예다.
동아시아 중심에서 밀려난 일본의 앞날은?
헤이세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위상에 종막을 고한 시대이기도 하다. 150여 년 전 메이지유신을 달성한 일본은, 서양의 기술, 제도, 지식을 전력으로 도입해 불과 30년에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미국과의 일체화를 통해 중심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냉전 후의 헤이세이 시대, 동아시아의 중심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갔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일본은 점점 늙어가는 사회가 되고, 성장은 환상으로 끝났지만 정부는 리스크를 각오한 채 어떻게든 경제를 부양하려고 필사적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그러므로, 제2, 제3의 버블 붕괴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 침체 타개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한층 더 취해지고, 감세조치와 규제완화로 공공영역은 점점 축소돼 경제가 일시 부양하더라도 격차는 확대되는 만큼, 사회전체의 열화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잃어버린 30년'이 '잃어버린 반세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감추지 않는다. 저자는 위기의 실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모두가 위기를 위기로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헤이세이 시대의 사회 분야에서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초저출산과 격차확대다. 제도와 시스템 미비가 저출산을 가속화시켰지만 가장 큰 원인은 '빈곤화'이다. 버블붕괴 이후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대거 늘림으로써 노동자들의 생활기반을 붕괴시켰고, 그들이 인생설계를 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국이 더 심각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2018년 0.98명, 2019년에는 0.92명까지 떨어지며 2년째 '0명대 출산율'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0명대인 유일한 나라다. 합계출산율 1.4명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저출산 현상의 구조적 배경은 일견 흡사하지만, 한국은 교육비·주거비의 과중한 부담이 출산은 물론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추가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체제인 일본의 가장 최신 경향을 담은 현대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일본이 겪는 위기를 한국은 피해갈 수 있을까.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일본을 만들어간 다양한 인물들
이 책은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 교주,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 대중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고무로 데쓰야,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안노 히데아키, 오토모 가쓰히로 등 각 방면의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이 헤이세이 일본을 어떻게 직조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말' 서사가 헤이세이 시대와 어떻게 조응했는지도 흥미를 더해준다.
책 속으로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헤이세이’라는 실패에 관한 일종의 박물관을, 한 권의 책 속에 구현하는 작업이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헤이세이’ 30년간은 한마디로 ‘실패의 시대’였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실패’가 되풀이됐다. 하지만, ‘실패’들을 열거하기는 쉬워도 그들 전체가 어떻게 연결돼 있었고, 우리들은 왜 30년씩이나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가를 드러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헤이세이의 ‘실패’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필연이었던가.--- p.10
이미 1980년대 말, 아시아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미일을 축으로 발전해온 일본의 전후 산업체제를, 아시아와의 관계를 축으로 하는 쪽으로 재편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얼마 안 가 일본기업은 아시아에 대거 공장을 짓게 되지만, 수요면에서도 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상대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19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유도돼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구조전환은 뒤로 미뤄지고, 금리인하에 의한 대응이 우선시되면서 효과는 약하면서 부작용이 터무니없이 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은 아닌가.--- p.51
실패의 제1요인은, 일본의 주요 전기산업이 TV시대의 종언과 모바일형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점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1990년대부터 글로벌한 규모로 전개된 수평 분업구조에 일본기업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체제는 ‘계열’ ‘하청’이라는 종래의 일본적 발상을 무의미하게 했다. 즉 일본 기업들은 오랜 기간 익숙해진 조직원리의 근본적인 변경을 요구받게 됐다. 이것이 전통적인 일본 대기업에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p.67
헤이세이 전기의 정치사는, 선거제도 개혁, 특히 소선거구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점철됐다. 이 점에서 자민당도 사회당도 ‘수구파’와 ‘개혁파’로 두동강 났다. ‘수구파’로 불린 것은 중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보수’ ‘혁신’ 간대립구도라는 55년 체제 속에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한 정치가들이었다. ‘개혁파’란 그런 자민당 내 파벌정치와 자민·사회 양당의 보완관계를 뒷받침해온 선거제도를 파괴함으로써 자신들의 새로운 권력기반이 구축될 것을 기대한 정치인들이었다. (중략)
총평을 중심으로 한 관공노 계열 노동조합이 내부붕괴로 치달은 것은 사회당의 조직적 기반을 두드러지게 약화시켰다. 확고한 조직적 기반을 상실한 사회당은, 1990년대 들어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그 얼마 전 사회당에는 총평계 노동조합에 의존하는 좌파정당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처럼 풀뿌리적인 저변을 가진 리버럴 정당으로 전환할 최후의 찬스가 있었다.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전환할 무렵 일었던 도이 붐이 기회였다. (중략)
도이가 이 무렵 시도한 것은 사회당의 중심을 ‘계급’에서 ‘젠더’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 전환 이후에는 ‘지역’과 ‘세대’ 즉, 지방과 고령화 문제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당의 전략이 부상할 참이었다.--- p.103
아베 정권은 민주당이 내건 래디컬한 정치주도를 부정하고, 이를 교활한 관저주도로 대체했다. 관저가 성청의 관료들을 뜻대로 움직이고, 예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각인사국과 경제재정자문회의로 충분했다. 관방장관은 성청의 국장급 인사를 관리함으로써 성청 전체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고이즈미 정권처럼 포퓰리즘과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인 활용을 솜씨있게 조합하면 여론에 ‘정치주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p.147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1995년 한신·아와지대지진은 고도성장기 일본식 개발주의의 위험성을 근저에서 지적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진은 원전이나 고속도로, 인공섬 같은 기술의 한계를 드러내 보였을 뿐 아니라 전후 흔들림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의 기반이 의외로 무르고, 불안정함을 일깨웠다.--- p.167
결국, 헤이세이 일본 사회가 향한 것은 비정규고용의 청년과 여성, 외국인 노동자를 사회 전체가 착취하는 체제의 고착화였다. 이를 정당화한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고, 여기에 동원된 것이 ‘구조개혁’이라는 캐치플레이즈였다. 이런 체제가 침투하면서 등장한 것은 ‘전후’의 총중류화를 뒤엎은 ‘포스트 헤이세이’의 계급사회이다.--- p.195
돌이켜보면 찬스는 있었다. ‘소자화’라는 말이 정부백서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92년이지만 이 무렵이라면 아직 단카이 주니어는 출산적령기 이전이었던 만큼 꽤 효과적인 수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사회는 버블붕괴의 뒤처리에 필사적이었고, 동시에 정치는 ‘정치주도’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회복지 정책이 의제화되더라도 고령화 대책이 많았고, 소자화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고령자는 표가 되지만, 청년도 유아도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p.208
아무로 나미에는 1990년대 음악 신에서 ‘아이돌’로서 도약한 것이 아니다. 그의 도약을 가능케 한 것은 동시대 남성들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멋짐’에 대한 선호, 그것도 남자들이 아니라 여성들이 바라는 멋짐에 대한 욕망의 실현이었다. 아무로의 돌연한 결혼과 출산, 1년간의 육아휴직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그를 수용하는 중심층이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p.241
헤이세이의 일본이 불운했던 것은, 이 글로벌화와 넷사회화에 의한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용이, 때마침 경제와 인구구조의 쇠퇴기와 일치했다는 점이다. 중국 등 신흥국처럼 경제, 인구 확장기와 이런 변화가 일치할 경우에는 변화를 발전의 기초로 삼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 정치경제의 골격이 확립됐고, 버블로 정점을 찍었던 일본사회는, 버블붕괴와 인구감소, 글로벌화, 넷사회화가 한꺼번에 덮친 헤이세이 시대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p.271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헤이세이 일본의 미국에 대한 종속은 갈수록 깊어졌다. 자신을 잃어가니 강한 미국에 갈수록 의지함으로써 중심성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격차를 확대하고 분열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에 미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으로는 이미 그 패권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미국에 계속 의존하면서 아시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려 하지 않는 일본에도 미래는 없다.--- p.307
일본의 헤이세이라 하면 80년대 후반에 시작하여 작년까지 일본의 시대이다. 공교롭게도 이시기 일본은 버블경제의 최고조에서 꺼지며 몰락하기 시작하고 그 여파가 지속되었던 시대이다. 이 책은 이시기 일본의 침몰과정을 되짚어본다. 경제계뿐 아니라 일본사회 곳곳에 그 침몰의 힌트가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우경화가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는 일본은 어째서 그런것일까?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는 '실패의 박물관'이라 부르는 바사호 박물관이 있습니다. 17세기 초 유럽 최대 최강을 목표로 건조한 군함 바사호는 출항하자마자 침몰하며 참사를 불러일으켰고, 이 박물관은 역사적 실패를 성찰하려는 취지로 세워졌습니다. 부분은 오류가 없었지만, 계획 전체로 불 때 큰 오류가 있음을 냉정히 판단하지 못한 실패를 겪은 바사호. 이는 일본의 헤이세이 시대 30년과도 닮았습니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 헤이세이 30년은 실패의 시대이자 잃어버린 30년이 되었습니다. 사회가 위기에 빠지고 대응에 실패하면서 침체하던 시대로 모두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 사회학자 요시미 슌야 저자는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실패 박물관'에 빗댄 헤이세이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경까지 금융업계의 도산과 애플, 삼성에 밀린 전기산업 쇠퇴를 시작으로 헤이세이 시대 경제, 정치, 사회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들려줍니다.
일본의 단계적인 쇠퇴 과정을 잘 보여주는 헤이세이 30년. 버블경제 붕괴,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국제정세 불안정화,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등 국내외 쇼크와 대응에서 일본은 다수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습니다.
세계경제에서 일본 대기업은 괴멸되었습니다. 추억의 브랜드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일본 기업 체질상 글로벌화와 인터넷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미래의 변화에 대한 장기적이고 깊은 비전이 없었기에 문제를 실감하게 된 다음에야 대책 세우며 결국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상황이었습니다.
버블 속의 액상화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에 도움될 사람들에게 미공개주식을 대량 건넨 리쿠르트 사건을 계기로 이후 일본 정치는 혼란기에 빠집니다. 고이즈미 정권에 접어들면서는 철저한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간신히 버팁니다.
사회의 쇼크와 실패도 이어집니다. 고베 시가지를 괴멸시킨 대지진, 도쿄 도심 옴진리교 신도에 의한 지하철 사린 사건,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사회불안의 심화와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구조개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비정규직 고용의 청년, 여성, 외국인 노동자를 사회 전체가 착취하는 체제가 고착화됩니다.
청년들의 미래 불신도 심각해집니다. 문화적으로는 종말 서사가 유행합니다. 『일본침몰』, 『AKIRA』, 『우주전함 야마토』 등 문화 쇼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다양한 쇼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버블 붕괴 후 일본은 장기적 하락에 빠졌고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고 합니다. 쇼크를 구조전환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변화를 직시하지 못한 일본이었습니다. 레이와 시대에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읽을수록 일본의 이야기로만 들리질 않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자 앞으로 닥칠 일들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글로벌화,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일본 사회에 좌절해간 헤이세이 시대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21세기 말까지는 겪을 문제들입니다. 한국의 저출산화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본은 '성장의 한계'를 좀 더 일찍 겪었을 뿐입니다.
2020 도쿄 올림픽으로 포스트 헤이세이 시대를 열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19로 답보상태입니다. 저자는 이 올림픽조차도 재해부흥을 목적으로 세계의 공감을 얻었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지 의문이라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헤이세이 시대의 일은 갑작스레 닥친 것은 아니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쇼와 시대에서부터 이어진 지반약화를 짚어줍니다. 실패와 쇼크의 시대를 겪은 일본의 이야기를 통해 불안 가득한 우리나라의 미래도 걱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캣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담, 오늘 한국의 이야기다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여러모로 30여 년 전 일본과 비교되는 요즘의 한국이다.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한 후 빠른 속도로 시장이 경착륙 중이다. 장기간 이어진 부동산 투기로 인해 가계부채가 막대하게 늘어난 모습도 지금 한국과 과거 일본이 닮은꼴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는, 한국이 옛 일본보다 무지막지하게 심각할 뿐, 역시 두 나라가 닮았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일본의 출산율은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한 1989년 1.57을 기록했다. 훗날 일본 사회가 이를 '1.57 쇼크'로 기억했다. 일본에서 인구절벽 문제가 본격적으로 심화한 시기다.
메이지 유신 이후 시작된 일본 현대사는 천황의 연호를 기준으로 메이지-다이쇼-쇼와-헤이세이(平成)를 이어 오늘날 레이와(令和)에 이른다. 서력을 사용하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여전히 연호를 고집하는 일본의 감각은 낯설지만, 일본인들은 연호를 기준으로 시대상을 구분하는 데 익숙하다. 이 중 특히 눈여겨 볼 시기가 쇼와(1926~1989)와 헤이세이(1989~2019)다. 쇼와 시기 일본사는 역동의 시대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굵직한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도쿄올림픽-오사카 만국박람회-부동산 버블이다. 일본이 폐허를 딛고 일어나 부흥에 성공했고, 이후 세계 제일의 나라로 성장했다는 신화적 스토리가 쓰여진다.
헤이세이 30년은 그와 대비된다. 버블 붕괴(1990년대)-한신·아와지 대지진/옴진리교 테러 사건(1995년)-9.11. 미국 테러(2001)-2011 동일본대지진이 일본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네 가지 쇼크'다. 줄곧 내리막의 이야기로 일본인에게 기억되는 시기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오늘의 한국을 복기하고 미래의 한국을 대비하려면 일본의 헤이세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이 시기를 조명하는 책이 헤이세이를 떠나보낸 일본에서 나오고 있고, 한국에도 빠른 속도로 번역돼 출간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여겨 볼 책은 <헤이세이사 1989-2019: 어제의 세계, 모든 것>(요나하 준 지음, 이충원 옮김, 마르코폴로)다. 마침 이 책을 읽던 중 장석준 신현재 기획위원이 <프레시안> 지면에 직접 이 책을 소개했다. (☞관련기사: 일본 표류하게 만든 '근대의 가을', 한국은 더 혹독하다)
함께 볼 책으로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AK)가 있다. 두 책은 헤이세이사를 다뤘다는 점 말고도 공통점을 갖는다. 두 책을 국내에 소개한 옮긴이가 모두 도쿄 특파원을 지낸 한국 기자다. 일본의 헤이세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살펴본 이들의 작업물이다. 두 책은 차이점도 있다. <헤이세이사>가 에세이라면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리포트다. 일본의 현대 사상가 이름을 줄줄이 꿰는 이가 아니라면 저자의 감상과 해석이 깊이 들어간 <헤이세이사>보다는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읽기 편할 수 있다. 책은 2020년 국내에 발간됐지만 지금이야말로 국내에서 갖는 의미가 뚜렷하다.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헤이세이 30년의 일본이 앞서 언급한 4대 쇼크(버블 붕괴-대지진/옴진리교 테러-9.11 테러-동일본대지진)로 인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붕괴했다고 기억한다. 그 각각의 기억을 저자는 크게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4대 차원으로 나눠 세밀하게 살핀다.
'헤이세이 실패'는 무엇보다 일본 경제의 실패담이다. 부동산 버블이 절정일 당시 일본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1989년 세계 기업 시가총액 상위 10개 중 7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상위 50개사 중 32개사가 일본 기업이었다. NTT(1위), 일본흥업은행(2위), 스미토모은행(3위), 후지은행(4위), 제일권업은행(5위) 등 상위 5개 기업이 모두 일본 기업이었다. 미국 기업은 IBM(6위), 엑슨(9위) 단 둘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알 듯, 언급된 당시 일본기업 중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기업은 없다. 2018년 상위 50개사에 들어간 일본 기업은 토요타 자동차(35위)뿐이다. 과거 전 세계를 호령한 마쓰시타, 도시바, 샤프 등의 이름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잊힌 지 오래다. 가전제품의 대명사는 어제의 소니에서 오늘의 삼성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지연된 기준금리 인상, 재편된 글로벌 공급망에의 적응 실패, 시장예측 실패 등을 중요 원인으로 꼽는다. 도시바, 닛산, 샤프 등의 실패담이 과거 세계 언론을 장식한 뉴스를 되새김하며 거론된다.
일본 정치도 실패했다. 일본의 오랜 문제였던 정경유착이 1989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인해 사회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일본은 정치 개혁을 위해 기존의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로 바꿨다. 계파 정치의 주요인으로 꼽힌 중선거구제를 개혁해야만 깨끗한 정치가 가능하리라고 당시 일본 사회는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사회당의 몰락과 고이즈미식 포퓰리즘 정치의 득세였다. 사회당을 이은 제1야당 민주당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무너졌다. 유일하게 성공 사례로 남은 고이즈미식 포퓰리즘은 이후 아베 정권을 통해 복기됐다. 그 사이 지역 유권자와 유착한 정치인들의 건설자금 끌어오기 정치가 극에 달해 일본 전역을 토건공사 현장으로 만들었다. 남은 건 유바리시 사태에서 보듯 과도한 토목공사로 인한 지방재정의 붕괴일뿐, 어떤 정치도 지방소멸과 고령화(초소자화)를 막지 못했다.
저자는 헤이세이 일본이 입은 가장 큰 쇼크로 동일본대지진을 꼽는다. 이는 헤이세이 일본의 완전한 실패를 상징했다. 일본이 자랑한 안전 신화가 무너졌다. 원자력의 위험을 세계 누구보다 알고도 이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일본의 기술 신화도 붕괴했다. 이로써 저자의 말대로 "1970년대에 확립된 도시개발과 에너지 공급체계 전체에 심각한 물음표가 붙게 됐다."
옴진리교 사건을 비롯해 일본 매스미디어를 열광에 빠뜨린 엽기 사건이 일본 사회에 남긴 상처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동산 버블은 '1억 총중류(一億総中流, 1억 인구 모두 중산층)' 신화를 자랑한 일본을 본격적인 양극화의 늪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바람이 고이즈미 정권을 지나면서 일본에도 상륙했다. 사회는 점차 분열됐다. 불안한 조짐은 옴진리교 사건을 비롯해 1989년 미야자키 쓰토무 유아연속 유괴살인사건, 1997년 고베 중학생 연속 살상사건, 2008년 아키하바라 도오리마 사건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청년 실업 문제, 히키코모리 문제, 사토리 세대 문제가 양극화의 그늘이었음이 확실해졌다. 저자를 인용하자면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생활기반이 안정돼 있고 예측가능성이 높고, 생활목표가 뚜렷하고,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이 목표에 도달가능'"했다. 그러나 이후 사회, 곧 헤이세이 시대 일본에서 사람들은 "장래의 생활파탄이나 생활수준 저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이는 상시 디플레에 빠진 경제상과 맞물리며 사회의 활력을 앗아가고, 절망을 키우고, 분노를 끓어오르게끔 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런 절망은 1990년대 특히 찬연하게 빛난 일본의 대중문화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저자는 <아키라>, <공각기동대>, 아무로 나미에, 고무로 데쓰야 등의 이름을 통해 불안에 빠진 일본이 어떻게 예술을 통해 세상과 조우했는지를 드러낸다. 책에는 거론되지 않았으나 많은 이들이 1990년대~2000년대에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링>, <주온>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공포영화가 불안에 빠진 일본의 당시를 보여줬음을 기억한다. 후루야 미노루, 오노 후유미, 이토 준지, 마나베 쇼헤이 등의 작가가 만화와 소설을 통해 일본의 민낯을 직시하는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책은 일본의 어제를 다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남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일본과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한가. 버블 절정기 일본의 실업률은 낮았다. 일본의 경제력은 미국을 위협했다. 일본 사회 전체가 자신감에 넘쳤다. 부동산 절정기 한국의 오늘이 과연 당시 일본보다 낙관적인가. 한국이 2000년대에 성장하는 데는 신자유주의적 공급망 재편이 있었다. 한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자 생산기지인 중국을 타고 신자유주의 파고를 넘었다. 이제 한국의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한 글로벌 공급망이 닫히고 있다. 1년째 이어지는 무역적자가 경종을 울리는 가운데 부동산 버블은 여전히 과도하고, 그 사이 가계부채 잔액은 1600조 원대로 불어났다. 한국의 청년들은 이미 자녀 갖기를 포기했다. 한국의 출산율은 엽기적인 수준으로 낮지만, 이 엽기가 일상이 되면서 어느새 체념의 정서가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다. 일본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국이 공부해야 할 것은 많지만, 그럴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두의 의문이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
오래된 미래, 일본
태권브이는 왜 마징가제트랑 비슷할까. 그야 베꼈으니 그렇다. 물론 법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이 있지만, 일본 마징가제트를 따라 만들었다는 점은 판결 이유에서도 인정했다.
일본 생활상을 보도하는 TV화면을 보다 보면 ‘어 한국 지하철과 똑같다!’라는 탄성이 나온다. 일본 전동차설계를 그대로 들여와 지하철을 건설했으니 똑같은 건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근대화 선발주자인 일본의 성취를 따라 전진한 데다, 한국은 근대화 이후 일본의 성장과정을 후발주자로서 추격해 왔다. 그러므로 “30년 뒤의 한국”을 그려 보자면 30년 전 일본 모습을 살펴보면 매우 유사하다.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은 아직도 소위 ‘천황’을 형식상 모시고 있어 천황이 재위기간 선포하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아키히토 천황은 1989년은 재위에 올랐다. 2019년까지 30년을 일본에서는 ‘헤이세이(平成)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여러 모로 일본에게 있어 각별한 시기다. 우선 1989년 상황을 보자. 그 때 일본은 지금 중국과 같은 지위로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경제를 좌우할 존재로 각광받고 있었다. 1989년 세계 기업의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보면, 상위50개 기업 중에 32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1위 NTT, 2위 일본 흥업은행, 3위 스미모토은행, 4위 후지은행, 5위 제일권업은행을 지나야 비로서 6위로 미국의 IBM이 이름을 내밀 정도였다. 상위 20개 기업 중 15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1위 NTT의 시가 총액만 그 무렵 한국 GNP(국민총생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즉, 당시 한국의 경제 수준은 일본 기업 1개의 시가 총액수준에 불과했다.
30년이 지난 2019년 시가 총액 세계 랭킹 1위는 애플, 2위 아마존, 3위 알파벳(구글), 4위 마이크로소프트, 5위 페이스북이 차지했다. 아니 일본기업은? 35위 도요타자동차 뿐이다. 삼성전자는 16위다. 이 몰락의 30년 과정을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헤이세이시대 직전, 그러니까 1980년대 일본은 계속되는 경제 성장으로 국민 간 차이가 가장 적었던 시대였다. 1984년 일본 경제기획청 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64.2%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80%가 넘었다. 그런데 이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방아쇠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었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말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금과 규제를 풀었다. 산업으로 자금이 재유입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미 경제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던 일본 국민은 이 돈으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다. 그 결과 ‘버블경제’가 형성됐다.
버블경제의 붕괴 결과, 자산을 이미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가 확대됐다. 1989년 무렵 까지는 경제적인 격차가 있다고 해도 미래에 작아질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버블붕괴 이후 사람들은 미래에도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확대될 것 같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버블이 붕괴하고, 정보화나 세계화의 진행에 의한 경제구조 변동 속에서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비교적 높은 지위나 전문직에 해당한 직종은 여전히 보호를 받았다. 반면, 그 악영향은 청년층이나 주변적인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생활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한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같은 떠도는 직업에 만족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며 자신을 기만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일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현실 사회관계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하지 못해 인터넷상에서 최후의 안식처를 구한 것이다. 이른바 "언더클래스"의 출현이다.
이들은 전통적 의미의 하층계급, 노동자계급, 빈민이나 프롤레타리아와 다른 존재들이다. 세계화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고도화된 정보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새로운 ‘주변적 계급’이다. 이들의 평균 개인 연수입은 1769만원(월급 147만원). 남성은 약 3분의 2가 미혼이다.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13.8%에 불과했다. 즉, 이들 ‘언더클래스’ 남성들은 자신의 처지에 매우 불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 이 같은 경제적 불평등 확산으로, 30대 전반에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고도성장기에 흔했던 핵가족 모델은 1990년대 들어 파탄했다. 25~29세 남성 중 정규직은 31.7%가 결혼하지만 비정규직은 13%만 결혼했다. 30~34세가 되면 정규직은 57.8%가 결혼했지만 비정규직은 23.3%만 결혼했다. 이렇게 일본의 출산율은 2005년 1.26이라는 ‘파멸적인’ 수준에 이르렀다.(이상, 책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중)
한국의 2021년 출산율은 0.81이다. 위 책을 썼던 저자가 “파멸적인”수준이라고 표현했던 수치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이며, 이미 인구 정책적으로 파탄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G10가입과 경제성장이라는 성취에 취해 국내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수립에 실패 한다면, 30년 뒤 한국의 미래는 바로 옆 나라에서 진행된 ‘보통국가로의 전락’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7세 입학을 추진해 국민이 빨리 학업을 마치고 1년이라도 빨리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식의 정부 정책 입안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지금 정부에서 이 중요한 시기를 헤쳐나 갈 정책을 기대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심히 불안하다. 늘, 한국에선 정부가 안하고 있어 국민이 피곤하게 일을 해야 했다.
인천투데이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여의도‧송도) 대표 변호사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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