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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by 이성근 2023. 3. 5.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202301

 

: 벨 훅스 (bell hooks,본명 Gloria Watkins) 문화평론가이자 페미니즘 작가. 1952년 미국 중남부의 흑인 격리 지역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글로리아 진 왓킨스이나 할머니의 이름을 딴 필명 벨 훅스로 활동했다. 십대 때부터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해 사유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누가 그 글을 썼는지보다 글의 내용 자체에 독자가 집중하게끔 필명을 소문자로 사용했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학위를, 위스콘신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UC산타크루즈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교수가 되었다. 19세에 쓴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가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가장 훌륭한 여성 작가의 책 20에 든 것을 시작으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 『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사랑은 사치일까?』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등 페미니즘뿐 아니라 계급, 인종, 자본주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썼다. 미국도서상, 콜럼버스 재단상 등을 받았고, 대안언론 유튼 리더가 선정한 당신의 삶을 바꿀 100명의 지성으로 꼽혔다. 오벌린대학 영문학과 교수, 뉴욕시립대 영문학과 특별 교수 등을 역임했다.

 

20211215, 69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다. 그의 부고를 들은 마거릿 애트우드는 벨 훅스는 자신의 언어와 힘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다고 했으며, 록산 게이는 그를 잃은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목차

머리말.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서문. 계급이 중요하다

1. 개인을 정치적으로 만들기: 가족 안에서의 계급

2. 계급에 눈뜨기

3. 계급과 단순하게 살기의 정치

4. 돈에 굶주리다

5. 탐욕의 정치

6. 부자 되기

7. ‘나부터계급: 젊은층과 무자비한 사람들

8. 계급과 인종: 새로운 흑인 엘리트

9. 페미니즘과 계급 권력

10. 백인 빈곤: 보이지 않는 정치

11. 빈곤층과의 연대

12. 계급을 핑계대다: 부동산 인종차별

13. 계급의 경계를 넘어

14. 계급제도 없는 삶

해제.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_권김현영

 

 

출판사 책소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벨 훅스가 제안하는

인종과 젠더를 지우지 않고 계급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법

미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운동가 벨 훅스의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는 제대로 해소된 적 없으나 담론의 자리에서 사라져버린 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간 벨 훅스는 불평등과 인종차별 철폐, 젠더, 계급 착취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썼으나 계급 문제에 온전히 집중한 건 이 책이 유일하다.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라 교육으로 계급 사다리를 타고 중산층으로 올라선 저자의 증언은 계급 문제의 안팎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이 심화함에도 이에 눈감는 시대상을 지적하며 국가와 개인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계급 문제를 다룬다.

 

계급 문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금수저흙수저로 대표되는 부의 대물림, 그에 따르는 주거, 교육, 건강 문제 등 부익부빈익빈의 굴레에 우리는 갇혀 있지만 놀랍게도 이를 이야기하는 자는 드물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부터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벨 훅스는 지금 우리 각자가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 왜 계급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지상주의와 부를 향한 욕망은 탐욕의 정치를 만들어냈고, 계급차별은 페미니즘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는 한편 빈곤층과의 연대를 통해 어떻게 하면 모두가 부와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회로 나아갈지 해법 또한 제안한다.

 

이 책은 2008년 국내에서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출간됐다. 문학동네에서 15년 만에 새롭게 펴내며 시대에 맞춘 번역으로 전면 개정했다. 또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해제를 새로 덧붙였다. 권김현영은 가난한 사람을 경멸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며 세대론 이슈에만 지나치게 매몰된 한국 사회에서 왜 여전히 이 책의 메시지가 유효한지 역설한다.

 

가난이 무능인 시대는 정당한가

많은 이가 오늘날 사회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라도 정상에 설 수 있는 계급 없는 사회라고 믿는다. 하지만 신분제대신 으로 계급이 구축되면서 계급은 어디서든 감지될지언정 제대로 보이지는 않게 됐다. 가난을 사회 구조보다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 탓으로 돌리는 시대 속에서 가난한 이들은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다. 많은 시민이 자신의 계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인종을, 젠더를, 세대를 탓하며 엉뚱한 곳에 돌을 던졌다.

 

가난한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라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벨 훅스는 그곳에서 특권계급의 가치관을 처음 접한다.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한 친구를 멸시하고 증오하는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노동계급에 속한 사람에겐 가치관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며 벨 훅스는 자신의 자리와 계급 문제를 각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 인식을 인간의 탐욕과 연결짓는다. ‘내 것만이 중요한 나르시시즘 문화, 쾌락을 추구하는 사치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가난을 두려워하게 됐고 계급차별을 문제삼았다가 되려 자신이 몰락할까봐 겁먹었다. 그렇게 정의와 사회복지에 관한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개인의 책임과 이기적인 물질만능주의를 좇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여기에 언론의 사회화까지 더해져 중산층뿐 아니라 대다수의 빈곤층과 노동계급도 물질적 풍요를 추종하고 부자를 동경하며 복지 정책의 수혜자는 놀고먹으려는 게으름뱅이라고 폄훼하게 됐다. 부와 권력에 동조해야만 앞서갈 수 있다는 인식이 끊임없이 주입된 결과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믿을 지경이다. 벨 훅스는 이렇게 탐욕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계급 문제에 눈을 떠야 한다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각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페미니스트로서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기

벨 훅스는 페미니즘 운동 이후, 특권계급 백인 여성과 계급 상승에 성공한 다른 인종의 여성에게 끊임없이 착취당한 수많은 노동계급 여성의 삶에 주목한다. 벨 훅스의 어머니는 두 딸이 딸린 십대 이혼녀였으나 자신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 결혼을 택했다. 특권계급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곧 여성의 해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하층계급 여성들에게 결혼은 억압이 아니라 탈출구이기도 했다. 벨 훅스의 어머니는 결혼으로 자기 자리를 벗어났지만 딸들은 자기 직업을 가져 제 힘으로 서도록 돕는다. 벨 훅스가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한 목표로 부자 되기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내세웠듯이 말이다.

 

페미니스트도 노동계급, 중산층, 특권계급 등 각자 입장이 다르다. 가부장제 타파라는 공통의 목표로 나아가려면 먼저 자신의 계급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계급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야만 모든 여성이 힘을 모으고 단합된 자매애도 이룰 수 있다면서 벨 훅스는 노동계급 출신 페미니스트로서 자기 고백을 이어간다. 자신 또한 결혼 시절 남편의 수입에 어느 정도 의존했고, 남편과 갈라선 뒤에도 3만 달러 넘는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고군분투했노라고 터놓는다. 옷을 사느라 감당도 못할 빚에 깔려서 마음고생을 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돈 때문에 잠시나마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워졌던 한때를 반성한다. 이렇듯 자기 경험을 배치하고 서사화하는 방식을 통해서 벨 훅스는 여성이라는 계급을 드러낸다. 진솔한 고백을 통해 우리 각자의 계급에서 겪은 모순적인 문제를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

 

가난의 얼굴은 검은색이 아니다

백인과 흑인 혹은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부자는 백인, 거지는 흑인 같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식해서는 인종차별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에 계급이 앞선다. 부유한 흑인과 가난한 백인처럼 미국 사회가 애써 눈 감아온 모습을 지적하며 인종을 넘어선 계급 문제를 논의한다. 벨 훅스는 대학 시절에는 기숙사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으로 자연히 멸시의 대상이 되었고, 쇼핑하러 간 고급 백화점에서 직원 취급도 받았고, 부유한 자기 동네에서 보모 취급받았다.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주저없이 드러내면서 그를 멸시한 건 특권계급 백인만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흑인 엘리트도 다를 바 없었다. 자기네 계급 권력을 동원해 자신과 반대되는 흑인을 검열하고 침묵시키는 흑인 앞에서 그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중산층에 완전히 수용되지 못한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벨 훅스는 인종 연대를 통해 계급 엘리트주의 종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한편 흑인 빈곤층과 백인 빈곤층의 인종을 넘어선 화합을 강조한다.

 

모두를 위한 연대를 꿈꾸다

노동계급과 특권계급을 모두 겪어본 벨 훅스는 계급 타파 수단으로 연대 의식 회복을 내세운다.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듯 일시적으로 돕는 식으로는 우리 공동체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어떻게 돈을 벌며 가진 것을 나눌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만 계급 억압과 착취가 벌어지는 현실을 뒤엎을 수 있다. 계급을 초월해 모두가 연대해야 한다. 벨 훅스는 계급을 불문하고 노동하는 사람과, 돈은 우리의 행복을 강화해주는 만큼만 쓸모가 있다고 믿는 사람과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직면하는 계급이라는 벽 앞에서 막막해하고, 탐욕을 내려놓는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프고 빈곤해졌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미래가 전혀 없었다. 아프고 빈곤해졌을 때 그 삶도 살 만한 삶일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늘 지금보다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고 믿자고, 용기를 내서 맞서 싸우자고 해왔지만, 진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한 번도 타인의 선의를, 비판적 공유지의 풍요로움을 진심으로 믿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있는 미래가 살 만한 삶일 수도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계급에 대해 말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로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빈곤층과 연대하기 위해. 그리고 미래를 살 만한 삶으로 만들기 위해._‘해제중에서

 

책 속으로

이 책에 실린 계급에 관한 글은 계급 문제를 국가와 개인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다룬다. 내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계급 문제는 물론이고, 책임 있게 행동하기 위해 애쓰고 정의를 믿으며 이 땅에 꿋꿋이 뿌리를 내리려는 수많은 사람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 책은 노동계급으로서 계급의식을 갖게 되고 여기까지 도달한 나의 기나긴 여정이자 계급차별은 어떻게 페미니즘의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빈곤층과의 연대는 무엇인지, 부자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이기도 하다. 그 외에 소비지상주의와 부를 향한 욕망이 탐욕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모든 인종의 여성들 그리고 흑인 남성들이 급속도로 최극빈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침묵을 깬다는 것, 그러니까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본다는 것은 부와 풍요로움을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고, 정의가 개인의 삶과 공공의 삶 모두에게 실현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모두 자기 자리에 그대로 갇혀서 우리의 계급이나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불가능해지기 전에, 바로 지금, 계급에 대해 말하고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pp.8~9

 

돈을 더 벌고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일수록 자비의 정신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더 탐욕스러워지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탐욕의 목소리는 당신의 귓전에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빚진 것 하나 없다고. 당신이 열심히 일해서 이것을 샀으니 남들도 갖고 싶으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당신이 번 돈이니 어디든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난한 노동계급에서 좀더 특권을 지닌 계급으로 출세한 수많은 사람이 빠지는 함정에 나도 걸려든 것 같았다. ()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수입 이상으로 소비하는 바람에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쾌락을 추구하는 소비가 낳은 쾌락문화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그릇된 논리를 가졌기에 이들은 정말 궁핍해서 고통받는 사람을 못 알아본다.--- p.116

 

오늘날의 빈곤은 젠더와 인종의 문제를 모두 안고 있다. 인종과 젠더의 정치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국의 계급 문제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그 어떤 운동보다 가난을 퇴치하려는 노력이 가장 폭넓게 지지받는 시민권 운동의 이슈가 될 것이다. 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모두가 각자의 욕구에 맞춰 삶의 기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공통된 희망을 지지하기 위해 지금껏 한 번도 단결해본 적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노력이므로.--- p.221

 

불평등과 인종차별 철폐, 젠더, 계급 착취에 관해 책을 여러 권 썼지만, 계급 문제에 온전히 집중한 건 이 책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책을 쓰면서 이번만큼 극심한 고통을 사무치게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책을 쓰다가 그대로 엎드려 아픈 가슴을 안고 흐느껴 울기도 했다. 지금은 특권계급에 속해 있지만 내 인생의 대부분을 빈곤층과 노동계급의 일원으로서 보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제적 사다리를 오르는 내내, 내가 태어난 가족은 물론 가난한 시민들, 분투하는 사람들과 계급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들과 하나라는 느낌을 잃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의 계급으로 인한 고통과 열망은 물론이고 가난하고 노동계급인 수많은 사람이 충분히 벌지 못해서, 더 많이 벌지 못해서, 경제적 삶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없어서 느끼는 계급적 패배감으로 인한 깊은 슬픔에 항상 깨어 있을 수 있었다.--- p.286

 

 

 

계급은 돈 이상의 것"

계급'은 불편한 이슈다. 그러나 문화비평가이자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Bell Hooks)'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계급과 계급 사회에 침묵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는 문학동네가 해제를 추가하고 번역을 새롭게 해 출간한 책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Where we stand : Class matters)>2008년 초판 번역본 제목이다.

 

"늦기전에,우리가모두자기자리에그대로갇혀서우리의계급이나나라의운명을바꾸는일이불가능해지기전에,바로지금,계급에대해말하고우리가어디에있는지이해해야한다."(위의,9)

 

노동계급·흑인·여성· 페미니스트

당신의자리는,우리의계급은어디인가. 벨 훅스는 노동계급이자 흑인 여성이라는 자신의 계급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952년생인 그는 "석유탐사 인부들이 묵는 임시 주택"에서,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 특히 "인종차별 폐지를 법제화했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 "흑인은 아무리 돈을 벌어도 흑인 구역을 벗어날 수 없""계급이 아니라 인종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는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으로 멸시의 대상이었다. 쇼핑을 하러 간 고급 백화점에서 직원 취급을 받고, 작가로 성공한 이후 부유한 동네에 살면서는 보모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자신을 멸시한 건 특권계급 백인뿐 아니라 흑인 엘리트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말했다.

 

"계급에 관한 대화는 늘 인종 문제와 결부되었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노동계급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스스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먼저 노동의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는 결국 인종과 계급에 부닥쳐야 함을 의미했다.(위의 책, 51)

 

벨 훅스는특히 특권계급백인여성들의전유물이되다시피페미니즘의 본래 자리에대한환기도 잊지 않았다. "혁명적이거나 급진적인 페미니즘 사상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훨씬 일찍부터 고민하고 맞섰던 레즈비언들의 경험의 소산"이라는 것.

 

"인종과 계급을 떠나 레즈비언들이 가부장제에 대한 현대 여성들의 저항을 급진적으로 바꾸는 선봉에 섰다. 이는 성적 선호 때문에 이들이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이미 이성애자가 특권을 누리는 영역 밖으로 내몰려서이기도 했다. 어떤 계급이건 이들은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학대와 경멸을 받는 대상이었다. 게다가 여성과 달리 이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남자에게 기대지 않았다. 그들은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원했고 그것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훅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두 딸이 딸린 10대 이혼녀였으나 자신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 결혼을 택했다면서 특권계급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곧 '여성의 해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하층계급 여성들에게 결혼은 억압이 아니라 탈출구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반자본 급진주의자·특권계급 흑인

반자본주의를 부르짖던 계급이 어느 순간 개인의 이익에 천착한 '재정 보수주의자'가 됐다고도훅스는 지적했다.

 

그는 "억압적인 자본주의를 타파하려고 노력했던 특권계급 출신의 급진적인 신진 정치꾼들은 기존 경제체제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려고 열을 올리는 기성세대가 되었다"면서 "이 체제로 미국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세상으로 양분된다면 이들은 특권계급에 남고 싶어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판 강남좌파에 관한 지적인 셈이다. 이에 더해 "이들은 다른 인종이나 젠더에 지속적으로 충성하기보다는 더 많은 이윤을 계속 창출하려는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고 그는 비난했다.

 

벨 훅스는 백인 남자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특권계급 흑인을 향해서도 펀치를 날렸다.

그는 "상류계급에 편입된 흑인들은 자기 이익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가난한 흑인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서 "계급 권력에서 밀려난 경계인 집단 출신의 사람이 입신출세해 높은 계급으로 편입하면 이미 그 계급에 속한 '전형적인 백인 남자들'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훅스는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 흑인 가운데 엘리트 수준으로 교육받는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다며 "지원 받은 몇몇 학생들도 부유한 상대방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계했다.

 

'빈곤층=기생충'이라는 인식

벨 훅스는 나날이 심화하는 계급화의 원인으로 언론을 지목했다.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왜곡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빈곤층을 일자리보단 지원금을 좋아하는 존재로, 약탈자로 묘사"하고 "빈곤층은 나태하고 비생산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유복한 사람의 자원을 쓰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훅스는주장했다.

 

"1970년대 초에는 언론을 통해 빈곤층은 기생충이자 포식자이기에 이들의 지속적인 욕구를 채우느라 정작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특권계급은 자신이 생존하려면 빈곤층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위의 책, 235)

 

관련해 벨 훅스는 "이 나라는 가난을 만들어내는 조건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나 기본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저항 전략을 세우는 한편, 빈곤층의 인간성 상실에 저항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계급은 돈 이상의 것"

그렇다면 계급은, 타파할 수 있는 것인가? 계급이라는 제도가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벨 훅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 가진 것을 나누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계급 억압과 착취가 벌어지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음은 자명하다. 계급은 돈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할 때까지,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특히 빈곤층과 가난한 사람이 겪는 문제가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계속해서 약탈적인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쥐지 않은 그외 우리는 계급을 초월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위의 책, 287)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

 

<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휴머니스트

 

장으로 간 성폭력

미투 운동이 새 세상을 여는가 했더니, 이상한 시장이 생겼다. 성범죄 가해자가 역고소로 보복하고 터무니없이 적은 형량을 받고 풀려난다. 피해에 대해 용기 있게 입을 여는 사람이 늘자, 가해자를 위한 법적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 ‘반성문 2, 탄원서 2, 서약서 1, 심리교육수료증, 상담사의견서감형 패키지가 등장했고, 성폭력 가해자 보호 카페가 운영 중이다. 반면 대부분 피해자는 국선변호사나 무료법률서비스의 도움을 받는 데 그친다. 그마저도 예산 삭감으로 서비스의 질이 더 나빠지고 있다. 저자는 법이 가해자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나 관련 자료가 되레 가해자 관련 시장을 키우는 역설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