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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지역과 마을

100년 묵은 비밀의 숲... 가덕도에서 만난 동백

by 이성근 2023. 3. 20.

 

폐허에서 서정호 시인

- 2050년 오늘 여기 가덕에서 피를 토하다

 

슝슝슝 밤낮없이 금속성 굉음과

웅웅웅 인간들의 소음이 바다를 삼키고 있다

 

한때 이곳에는 동백이

있었다

평화로운 고요가

있었다

주인인냥 러일전쟁을 목격한 곰솔과

앞다투어 봄을 재촉하던 노루귀, 현호색, 남산제비꽃

진달래도 주인으로

있었다

키 낮은 겸손한 마을도

있었다

 

이렇게 차가운 풍경이 아니었다

이렇게 딱딱한 직선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태초, 그대로였던 자리

모든 것이 아늑했던 자리

바람이 친구였던 자리

 

드문드문

태풍이 공항을 할퀴고

바다가 회초리를 들어

목숨을 빼앗는 흉흉한 소문을 들었다

 

불에 탄 남대문, 구중궁궐처럼 복원될 수 없는

여기 가덕에서

꽃들도, 물고기도 사라진

이 폐허 위에

패랭이꽃 하나 싹을 틔우려나

 

내 이름을 빼라 이성근 시인

 

대학살이 예고된 섬

더 끔직한 사실은 그 도시 사람 열에 일곱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해도, 납득도 안되는

저 광란의 춤

들여다 보면 무지와 욕망이 뒤엉킨 지옥이다

 

좀 더 편케 다니기 위해

좀 더 풍족해지기 위해

기꺼이 학살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가덕 100년 숲과 바다를 능지처참, 도륙하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극의 주연, 혹은 엑스트라가 되어

 

한 아름 곰솔, 두 아름 졸참나무, 세 아름 고로쇠나무

한낮에도 어둑한 동백숲

그 아래 별처럼 반짝이는 노루귀, 바람꽃들

 

베어내고 뿌리 채 뽑아내어 수장시키거나

활주로 아래 묻어 버릴 생목숨들의 아비규환

거기 당신의 동의가 몰살의 근거가 된다면

 

하늘 아래 죄 짓는 일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폭행,강간,고문하는 일만이 아니다.

 

원통하게 죽어 나갈 저 거목들

단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나는 거부한다.

천벌 받아 마땅한 학살의 대오에서

명단에서 내 이름을 빼라

 

 

해안가에 100년 묵은 비밀의 숲... 가덕도에서 만난 동백

신공항 건설방식에 사라지나 우려... 동식물 쫓기고 사라져

잔인하게 모가지채 떨어지는

동백, 그대 붉은 절망이여

 

김금용의 시 '동백, 그대 붉은 절망 앞에서'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보통 꽃이 질 때 '꽃잎이 진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동백꽃은 꽃잎이 지는 법이 없습니다. 시구처럼 모가지째 뚝 떨어져 버립니다. 마치 동백꽃 하나하나가 참수형을 당한 것 같습니다.

동백꽃잎은 지지 않는다. 마치 참수형 당한 듯 모가지째 뚝뚝 떨구어 낸다.조영재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모가지째 떨구면서도 거꾸로 처박히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구는 붉은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동백은 붉은 입술 사이 노란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어댔고, 모가지째 꽃송이를 떨구면서도 그 얼굴을 우릴 향해 웃어 주었습니다. 곧 벌어질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백꽃은 땅에 거꾸로 박히지 않는다. 땅에서도 빨간 입술 사이 노란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어 준다조영재

 

지난 18일 이날 오전 10시 부산 가덕도 외항포 주차장에는 '가덕본색 2' 참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부산 그린 트러스트 이성근 대표의 인솔로 우리 작은 무리는 가덕도 동백자생군락지로 출발했습니다.

 

부산 가덕도에는 100년 된 숲이 있습니다. 100년 이상 개발의 마수를 피해 갈 수 있었던 건 이 가덕 숲이 일제강점기 때 군사시설이었고, 해방 이후에도 군사시설로 보존된 까닭입니다. DMZ가 한국전쟁 이후 그대로 보존되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지요.

 

그런데 가덕의 숲은 더 오래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습니다. 그린 트러스트의 이성근 대표는 "100년이나 해안가 숲이 보존된 곳은 우리나라에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숲은 지금도 군사시설로 묶여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여전히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일제강점기 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넘게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덕분에 100년 숲, 그리고 동백자생군락지가 보존될 수 있었다조영재

 

100년 묵은 숲, 그 가운데 동백 자생군락지에 이르는 길은 말 그대로 비밀의 숲이었습니다. 안내 표지판은커녕 가지에 매단 그 흔한 산악회 리본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밀의 숲에 이르는 길.. 아니 과정은 계절마다 표정이 달라집니다. 갈 때마다 새롭습니다. 능숙한 인솔자 이성근 대표 덕에 원시림을 헤치고 무사히 100년 동백 자생군락지에 안착했습니다. 어른 허벅지 굵기의 동백나무들이 빽빽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100년 넘은 동백자생군락지는 가덕이 유일하다조영재

 

하늘을 덮은 무수한 가지 사이로 햇빛이 겨우 새어 나왔습니다. 서늘한 기운에 절로 옷깃을 여미었습니다. 동백나무가 즐겁게 잡아주고 있는 행사 플래카드가 바닷바람과도 어울리며 배를 실룩거렸습니다. 그 주변에 서른 명 남짓한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동백나무가 잡아주고 있는 가덕본색 행사 플래카드조영재

 

행사주최자 김상화님의 여는 말. 부산대 홍석환 교수의 가덕 100년 숲과 동백군락지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곧 아이씨밴드의 노래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밴드명 '아이씨'는 경상도 방언 '아저씨'의 의미, '나는 당신을 본다'는 의미, 불평할 때의 감탄사의 의미까지 여러 뜻이 중첩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심이 묻어나는 노래에 절로 집중이 되었습니다. 가덕도신공항반대 시민행동 김현욱님의 열변과 서정호 시인의 시 '폐허에서' 와 이성근 대표의 시 '내 이름을 빼라' 낭독. 그리고 우소락청 김현일 대표의 대금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김현일 대표는 관객을 향하지 않고 작별을 고하듯 동백나무와 바다를 보면서 대금을 울렸는데, 도중 본인이 우는 바람에 연주를 잇지 못했습니다. 곧 우리 모두도 지는 동백처럼 목을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씨밴드가 예정에 없던, 앵콜송 '일어나' 노래를 불러주어 힘찬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흔한듯 하지만 동백나무는 대한민국에는 남해안만 서식한다고 합니다. 부산에 평생 살아온 덕에 너무나 쉽게 동백나무를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동백이 이렇게 굵고 크게 자라는 나무인지는 100년 가덕숲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100년 넘게 개발의 마수를 피해 굵고 단단하게 뿌리 내린 가덕의 동백이들조영재

 

100년 넘게 가덕숲의 일원이자 주인으로 굳건하게 뿌리내린 동백이들. 그런데 이 동백이들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가덕신공항의 건설방식이 최근에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동백 자생군락지만이라도 살아남을 수있을까?'하는 바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동백이가 자리 잡은 국수봉 일대를 전부 깎고 그 토사를 바다 매립에 쏟아부을 모양입니다.

 

사람은, 만약 살던 터전을 한순간에 잃게 되면 어떤 액션이라도 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이외의 동식물은 군소리 없이 쫓겨나거나 사라집니다. 누군가는 말 못 하는 이들의 대변인이 되어야 합니다. 쫓기고, 사라지더라도 여기에 100년 넘게 살아오고 있는 터줏대감이 있다고, 이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기 지금 한 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함께 한 동백이 지킴이들, 비록 한 줌 정도의 사람이지만 가장 낮은 존재들과 공감하며 이들이 행복할 때, 우리 역시 더 행복할 수 있음을 믿는다조영재

 

하지만 이들이 동백이들의 대변인 입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존재가 자기 명대로 살만한 세상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년에도 가덕본색 3가 이어진다면 꼭 다시 동백이들의 튼튼하고 굵은 팔과 다리를 잡아주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가덕 동백이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조영재

 

어쩌면 이 봄이 동백이의 마지막 봄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았으면 합니다. 필시 세상은 더 살만해질 겁니다.

조영재(chofree)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