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상권 침체 극복과 자급자족 공간 구조 위해 필요한 것
지역 혁신도시의 공간 구조
최근 혁신도시 및 지방 신도시의 상가 공실에 대한 뉴스가 자주 보도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도시 세대 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상가 비율, 비싼 임대료로 인한 가게들의 입점 부진, 또는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 있는 의견이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 비슷한 환경과 조건을 가진 다른 신도시에서는 활발한 상업 활동과 높은 상가 입점을 보이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온라인 쇼핑이나 상가 비율의 불균형, 높은 임대료 등이 주된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 신도시의 높은 상가 공실은 도시 전체의 기능과 활력을 떨어트린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야심차게 건설된 지역의 혁신도시들이 막상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완전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지역 활성화와 국토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물론 침체 속에 있던 신도시의 상업 용지가 대규모 대중교통 시설의 개통 이후 새로운 돌파구와 반전을 맞이하는 사례는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사례는 서울로의 출퇴근 인구가 많은 수도권의 신도시일 경우에나 가능하다. 지방에 설치된 혁신도시나 택지지구는 지하철과 같은 대규모 대중교통 수요 발생과 이의 부산물인 상권 활성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서울이라는 대규모 출퇴근 인구를 흡입할 중심축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혁신도시에서 발생하는 교통 패턴은 대중교통에 의한 집적된 이동보다는 자동차로 인한 산발적인 이동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는 일반 상업 용지의 활성화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서울이라는 거대 중심지가 없는 상태에서 대중교통 및 상권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일단 도시 내 대중교통 시스템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높아야 한다. 대중교통 시스템은 단위면적 당 잠재적 이용객의 규모가 클수록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활성화된 대중교통 시스템은 대규모의 보행인구를 유발함으로써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다양한 경제적 기회를 창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이며 혁신도시 공간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 단지는 생각보다 많은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 또한 아파트 단지 중심의 도시 공간은 서울과 같은 중심 도시 없이는 일정 규모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게 한다.
아파트 단지로 가득 채워진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20층 이상의 아파트 빌딩이 즐비한 만큼 높을 것 같은 행복도시의 인구밀도(4078명/㎢, 2022년 기준)는 정작 건물 대부분이 5에서 7층밖에 되지 않는 파리의 인구밀도(2만 544명/㎢, 2019년 기준)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건물을 조밀하게 지을 수 없는 아파트 단지의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파트 단지의 넓은 부지는 전적으로 주민들만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단지 안에 외부인이 보행하는 경우는 드물며 그만큼 넓은 부지 안에는 경제적 기회가 유발될 확률이 제로에 가깝게 된다.
아파트 단지가 외부와 연결되는 지점은 제한적인 단지의 출입구에 한정되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단지 주민들은 자신의 주거지와 완벽하게 분리된 상업지구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애매하게 늘어나는 이동 거리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로 하여금 자가용을 이용하게 만든다. 아파트 단지의 황량함이 주는 가로변과 도시 공간 구조는 효율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림 1).
▲ 그림 1.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의 한 도로: 아파트 단지 중심의 가로변은 그 자체로 보행, 대중교통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 수 없게 한다. ⓒ네이버 지도 갈무리
도보로 '유발된' 소비 수요의 필요성
최근 건설된 지역 혁신도시의 상업 용지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도시 전체의 기능을 떨어트리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아파트 단지 중심의 공간 구조와 이로 인한 대중교통 시스템의 침체에 있다.
상업 용지 침체를 벗어날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특정 공간에서 '장사가 잘되는'기본적인 원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상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자주,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여기에서의 유동 인구는 자동차로 인한 통행이 아닌 보행인구를 뜻한다. 자동차로 인한 통행은 주차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후에야 고객의 지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도보로 인한 통행은 스치기만 해도 손쉬운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명동 골목길의 노점상이나 지하철역 인근의 상점 등 대중교통과 도보 통행이 잘 정착된 공간 구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필자는 이렇듯 도보 이동 중에 물건을 살 마음이 생겨 구매가 이뤄지는 과정을 '유발된 소비 수요’라 부르고자 한다. 이는 처음부터 특별한 방문목적을 가지고 자동차를 몰아 주차를 한 다음에야 소비가 일어나는 대형 쇼핑몰, 마트, 아울렛 등의 '유발되지 않은' 소비와는 차이를 보인다.
전통시장은 도보 통행 인구로 '유발된' 소비 수요가 집적되어 형성된 경제 지리로 볼 수 있다. 최근 보이는 전통시장의 침체는 이러한 도보로 유발된 소비 패턴이 현저히 줄게 된 현대 도시 공간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아파트 단지 중심의 공간 구조는 필연적으로 대형 쇼핑 시설만을 생존시키며 도보 중심의 상권은 설 자리를 잃게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이동이 도보나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뤄질수록 소비의 중심은 마트나 대형 쇼핑몰 등 방문목적이 뚜렷한 대형 시설에 집중되며 일반 상업 지역은 뭔가 특별한 흡입력을 가진 비즈니스가 없다면 침체를 맞을 수밖에 없다.
▲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한강 이남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공간 구조 재편을 통한 상권 활성화와 자급자족 도시 구축
필자는 최근 대만의 타이베이시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 규모에 비해 생각보다 활발한 경제 활동이 도시 곳곳에서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던 중 필자는 거주지와 상업지구의 구분이 없는 도시 공간 구조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타이베이의 도로변 건물은 대부분 1층과 2층을 상업 및 비즈니스 용도로 사용하며 그 이상이 되는 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한다.
주거와 업무가 혼합된 형태로 도시 공간이 채워지면 전반적으로 직장-주거 사이의 이동 거리는 짧아지고 공간은 더 집약된 형태로 사용된다. 집약된 도시 공간은 대중교통과 보행에 의한 이동 환경을 더 활성화시키며 도보로 유발된 소비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도시 내 경제적 기회는 더 풍부해진다.
이러한 도시 공간 구조는 탄소를 줄이는 친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생각해보면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많은 도시는 주거와 비즈니스가 혼합된 형태의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그림 2).
▲ 그림 2. 타이베이(좌, 필자촬영)와 파리(우, 구글 어스 캡처)의 도로변 경관: 저층의 비즈니스와 고층의 주거지가 혼합된 도시 공간 구조는 보다 높은 인구밀도와 그에 따른 활발한 경제적 기회를 유발한다.
하지만 한국 도시의 주거 취향은 어느덧 아파트 단지 선호로 굳어진 지 오래다. 이러한 집단적 취향은 그동안 국내 신도시 건설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송도 국제도시의 경우 그 이름이 무색하게 외국인으로부터 외면받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중심의 도시 공간 구조는 생각보다 '저밀도’인 시가지가 필요 이상으로 '넓게'확산되는 효과를 낳게 하며 이는 도시 공간 발전의 응집력과 활기를 저해시킨다. 기존의 전통적인 중심 시가지를 외면하고 시 외곽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택지지구를 조성하는 과정은 도시 전체의 사회, 문화, 경제적 인프라를 더욱 침체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산업화 시기 서울을 중심으로 제시됐던 아파트 단지 모델은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주거 환경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차원에서 아파트 단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서울만큼의 인구 규모를 갖추지 않은 지방 도시는 택지 조성으로 인해 공간의 응집력을 잃게 되었다.
성공적인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집약적이고 혼합적인 공간 구조를 통해 보다 활기차고 매력적이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역 도시를 육성해야 한다. 지역 청년들은 서울만큼의 인구 규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다운 활동이 이뤄지는 중심지를 원한다.
윤지환 한국외국어대 HK연구교수 프레시안
딸 수 있다-훌륭한 분석자료입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신도시계획상 세대수당 상가수의 비율을 지금보다 1/3 이하로 대폭 줄여야 합니다. 왜 입주자들이 자기 아파트근처 상가에서 수입의 상당부분을 소비할거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상당수 1세대 2자동차에요. 다들 더 좋은 조건, 다양한 상권으로 이동이 편해요. 그런 근본적인 상가수가 줄여지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상가수가 줄면 세대당분양가가 올라가지요. 어쩔 수 없지요. 상가쪽에 부담시키는 신도시개발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유두고-우리나라는 무조건 돈, 첫번째도 돈, 두번째도 돈, 세번째도 돈이다. 단지를 만들어놓고 쓸데없는 공간 자기들위해 비워두고 차타고 밖에 돌아다녀 교통체증 유발하고 걸어서 다닐 이유가 없다. 일반 주민은 단지를 돌아서 다니느라 시간 소비하고
개발사업자와 시행사, 조합이 벌이는 돈잔치
건강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인가
지역 건강 수준 향상 위해 의료-보건-복지-지역 활동 연계 강화돼야
양호민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강사/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020216592626409
지방 소멸 대책, 일본 정책 베껴다 쓰면 해결 되나
일본의 지방소멸 대응, 성공 여부 불확실한 정책
박경 지역재단 이사장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011216100716886
'핫플'이 되려면? '공간'보다 '내용'이 핵심
장소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채지민 상화연구소 대표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112508465327395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함께 할 수 있나
수평적 조정제도와 같은 균형친화적 분권전략 필요
박경 목원대 금융경제학과 명예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91515442532190
코로나 19 이후 국내관광, 위기에서 기회로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역기반관광의 질적 성장을 다시 생각할 때
최서희 경희대 이과대학 지리학과 조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81910100271140
'○리단길'의 범람, 그 신드롬과 양면성
무장소성의 지리학을 경계해야
채지민 상화연구소 대표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72115274634979
지역 간 격차, 지역 회복력이 우선돼야
성장과 포용, 환경을 동시에 고려해야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33015001646478
지방 고용대책, '각자 도생'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방 소멸 위기, 해결 시간 많지 않아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31715380403223
지방 쇠퇴를 맞이하는 자세
지방 소멸은 위기인가?
윤지환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30316325880512
초광역 메가시티, '메가 토건 프로젝트' 구상인가?
메가 토건프로젝트 보다 혁신생태계 구축이 핵심
박경 목원대 금융경제학과 명예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20408380292633
균형발전과 혁신의 만남 필요한 때
불평등, 균형발전, 혁신, 디지털 전환을 위한 공간경제 연구 필요
이원호 한국경제지리학회장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10510083469553
'산학연' 협력, 잘 되고 있나
산학연 협력의 실제와 개선 방향
김명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책임연구원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12511180031603
인구 감소, 지방 소멸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지방 중소도시부터 재편해야
이성호 경상국립대 지리교육과 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2817261862378
100년 뒤 인구 1500만 명 시대,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지역소멸에 대한 경제지리적 내러티브 : 항아리와 팽이 사이
정성훈 강원대 지리교육과 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91711033424979
작은 도시들의 되치기, 행복한 도시 조건은 규모 아닌 비전
큰 꿈을 키우는 작은 도시들
이병민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82912080425791
장소의 빈곤' 해결이 복지다
장소기반 복지,이제는 플랫폼 접근이 필요
이원호 성신여대 교수, 한국경제지리학회장
https://www.pressian.com/pages/serials/392?page=5
열린 플랫폼 경제와 그 적들
지역산업 플랫폼 '딜'(협약)을 향하여
정성훈 한국경제지리학회장, 강원대 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serials/392?page=7
기후 변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경제지리학
이철우 경북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장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32614193128942
수도권에만 사람 살고 비수도권은 국립공원 된다?
수도권 인구 50% 돌파와 지역 균형 발전
서민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80612
인구 줄어들면 사회 붕괴된다?
인구정책 뒤집어보기
이현욱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연구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70580
왜 다시 그린뉴딜인가?
녹색 '성장' 아닌 삶의 '질' 개선으로
이병민 건국대학교 교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68533
지역 균형발전, 말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주도 혁신성장 위한 지자체 플랫폼 구축해야
이여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책임연구원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64571
김해 신공항이 최선인가?
국가균형발전과 남부권 관문공항
국가균형발전을 국책 어젠다로 채택했던 노무현 정권(2003~2008) 하반기에 기존의 지자체 단위로 추진되었던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광역경제권 설정과 함께 광역경제권의 핵심 인프라로 제2관문공항(남부권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당시 건설교통부는 2007년 11월 '제2 관문공항(남부권 신공항) 건설여건 검토 연구'라는 연구보고서를 간행했다.
이 보고서는 남부권 신공항의 건설을 전제로 하면서도 검토대상의 공간적 범위를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그리고 경상남도로 한정했다. 바꿔 말하면 '영남권 관문공항' 건설 타당성을 분석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영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화와 백지화 및 기존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정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전용됨으로서 영남지역을 포함한 남부권 주민들의 열망을 야멸차게 무시했다.
영남권 신공항입지의 선정용역업체인 ADPi(파리공항공단)도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최종안은 정치적인 이유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공약을 내세운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후보가 당선되면서 "영남권 5개 광역시·도의 합의"로 가닥을 잡았던 영남신공항은 다시 정치 이슈가 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2월13일 동남권 신공항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착공도 못한 김해신공항계획은 흔들리고 있다. 그 후폭풍으로 아직 입지도 정하지 못한 대구신공항 건설계획도 덩달아 표류하면서 이제는 '영남권 관문공항'건설을 둘러싼 지역 간, 여야 간 나아서 정부와 여당 간의 논쟁과 갈등은 도를 넘어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의 얽히고설킨 갈등은 지난해 10월부터 '부울경 동남권관문공항검증단(부울경 검증단)'이 김해신공항 추진 백지화와 영남권이 아닌 부울경만의 동남권 신공항 카드를 제시하면서 촉발됐다고 하겠다. 더욱이 부울경 검증단은 '동남권 신공항=가덕도'라고 점을 기정사실화 하기도 했다.
현재 계획의 김해 신공항으로는 '제2의 중추공항'을 의미하는 남부권 혹은 영남권 관문공항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그동안 수차례 검증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덕도를 전제로 한 동남권 신공항이 아니라 영남권 전체 혹은 남부권을 아우르는 관문공항 건설이야 말로 노무현 정권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을 계승함과 동시에 부울경을 포함한 남부권의 국제적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검증단은 가덕도 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이 아니라 부울권만의 관문공항이니 대구경북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당초 국가균형발전과 남부권의 발전을 위한 추진되었던 핵심 국책사업을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행위이다.
남부권 관문공항을 둘러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입지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추진 과정과 절차에 있어서 합리성과 정당성 면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입지대상 시설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이에 대한 법적근거와 예산확보가 전제되지 않은 채 입지부터 결정한다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인구 1300만 명과 20여 개의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집적지를 형성하고 있는 영남권은 산업구조와 가치사슬 상으로 하나의 경제권이다. 이 정도의 경제권라면 단일 관문공항 배후지 규모로서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따라서 관문공항의 배후지는 당연히 영남권 경제권 전체가 되어야하고, 그 입지는 경제권의 주요 도시와 산업단지로부터의 접근성은 공항입지 선정의 최우선 요소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셋째, 입지 선정은 그 과정과 절차상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결과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넷째, 입지선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선호요인이 아니라 배제요인이다. 특정 시설의 입지평가 대상지역의 각 요인별 점수의 총합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경우에도 결정적 배제요인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그 지역은 후보지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입지론의 관점에서, 이번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부(영남)권 관문공항에 대한 대안적 해결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당초 수도권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부(영남)권 관문공항 건설의 핵심 가치는 국가균형발전이었다.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기본단위는 광역지자체가 아닌 광역경제권이었다. 왜냐하면 각 지자체 규모로는 국제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역경권의 핵심 인프라인 관문공항의 배후지, 즉 이용권역의 기본단위는 광역경제권이 되어야 한다.
경제권은 정치나 행정 논리가 아니라 경제주체 간의 네트워크, 특히 산업 내, 산업 간의 가치사슬에 기반하여 설정되어야 한다. 부울경지역이나 대구경북지역은 지구적 차원의 경쟁에 대처하기에는 우선 개별 경제권으로는 규모면에서 한계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영남권은 가치사슬 상으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영남광역경제권의 핵심 인프라로서의 관문공항 건설에 있어서 최우선 과제는 입지선정이 아니라 공항의 배후지역인 영남권 광역경제권의 여객뿐만 하니라 화물을 포함한 항공수요 잠재력과 향후 항공기술의 발전 등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공항의 기능, 배후지의 공간적 범위, 시설규모, 운영체계 그리고 법적근거와 예산을 포함하는 영남권 관문공항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이러한 실체에 입각하여 입지 기준과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실제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 합리적 과정이다.
셋째, 입지 선정은 결과만큼이나 과정과 절차상의 합리성과 정당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현재 영남권신공항이 정쟁의 핵심이 된 원인은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에서 찾을 수 있다.
2016년 6월김해공항 확장이라는 결과에 TK와 PK 모두 크게 반발하였다. 그럼에도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10년이 넘은 논란과 갈등의 매듭을 풀 수 있었던 것은 ①입지선정 기관이 중립적인 세계적 전문기업이라는 것과 ②최종 결정에 다섯 단체장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불복의 명분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을 파기한 부울경 단체장과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정부의 처신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의 갈등과 정쟁의 실타래를 풀고 당초 목표로 했던 제대로 된 남부권 혹은 영남권 관문공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익과 갈등조정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정부가 '절차적 합리성'을 복원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은 남부권 관문공항의 완공이다. 영남권 전체의 번영과 삶의 질을 제고하고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추진되었던 남부권 관문공항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였던 지난 정권들의 전철을 현 정부는 답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남부권 관문공항과 핵심 국책사업을 총선과 대선 관리차원으로 전략화하는 것도 뿌리 깊은 적폐다. 이러한 적폐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정부는 적폐청산을 최우선 정책 아젠다의 하나로 채택하였고 또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절차상 요건을 갖춰 김해신공항에 대한 재검증을 하겠다고 국회 대정부질의를 통해 국민에게 약속했다. 지금부터라도 재검증 결과에 대비해서 모든 관련 주체들이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제대로 된 남부권 관문공항 건설을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지역 간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울경'과 '대구경북'은 둘이 아닌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할 필요성을 함께 인정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철우 경북대학교 교수 2019.07.19.
지역 균형발전, 공공기관 분산이 능사 아냐
국가혁신클러스터, 혁신·포용 담긴 제3의 공간 창출
정성훈 강원대학교 교수, 한국경제지리학회장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47825
위기의 산업도시, 재도약하려면
지역경제의 '회복력'이 필요하다
전지혜 경북대 지리학과 연구원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46902
지역 불균형 발전은 국가 존립을 배반하는 것
우리나라 지역격차 추이와 지역 균형 과제
서민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43177
한국, 20년 전 영국의 실수 반복할 것인가
산업위기지역의 회복력 증진을 위하여
경제지리학자들은 '땅'을 바라보는 그들만의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지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인간들의 다양한 경제활동이 '땅'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조직되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지리학자인 필자는 나의 시선을 현재 우리나라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산업위기지역에 두고자 한다.
우리나라 지역 위기는 2000년대 이후 가시화된 인구 감소 문제와 함께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어 왔다. 이는 지방 소멸부터 시작하여 주력 산업의 침체, 초국적 기업의 퇴출로 인한 지역경제 붕괴 등 국가 및 지역 발전에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지역 간 균형발전, 지방 분권이라는 주요 쟁점과 더불어 위기에 처한 지역의 회복력 증진도 더욱 더 강조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이미 이러한 위기를 경험해 오고 있는 영국의 북동부 지역을 사례로, 이 지역의 위기 심화가 가속화되었던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영국 정부의 대응 방안을 검토해 보면서 우리나라 산업위기지역의 회복력 증진 위한 방향성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영국 북동부 지역의 중심 도시인 뉴캐슬(Newcastle)과 그 주변의 도시들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영국 중화공업의 전진기지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이후 주력산업인 석탄, 철강, 조선 산업의 쇠퇴로 심각한 지역 경제 침체를 경험했다.
이에 1970년대 영국 정부는 이 지역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대기업들의 생산 공장을 유치하여 지역 고용을 창출하는 '분공장 경제' 정책을 실시했다. 1980년대 이후 영국정부는 우리나라 군산의 GM 공장처럼, 그 대상을 다국적 기업으로 확대시키면서 이 정책을 약 20년 동안 시행하였다. 또한 기업에게 유연한 노동시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영국은 유럽연합의 최저 임금제에 합의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강력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도 병행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이 지역은 활력을 되찾는 듯 했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저임금 노동력에 기초한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함에 따라서 이 지역에 입지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생산 공장을 임금이 저렴한 동유럽 국가들로 이전시키게 되었다.
결국 이 지역의 회복은 지연되기 시작했고, 쇠퇴가 시작된 1960년대 말 이후 지금까지 지난 50년 동안 수도권인 런던권과의 지역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국 북동부 지역은 반세기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 회복력이 왜 이렇게 약하고, 회복이 더딘 것인가? 과연 과거의 성장기와 같은 완전한 회복 자체는 가능한 것인가? 필자는 이와 같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먼저, 영국 정부는 1970년대에 '생산 공장 유치=고용 창출=지역 경제 성장 회복'이라는 등식에 매몰되어 다양한 영역에서 위기를 진단하지 못했다.
둘째, 주력 산업 쇠퇴 이후 지역 노동시장의 성격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고임금‧고숙련에서 저임금‧저숙련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기존 조선, 철강 산업의 남성 숙련 노동자들의 실업 상태가 약 20년 이상 장기화될 줄도 몰랐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이 노동자들은 장기적인 실업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숙련도를 지속적으로 상실해 갔으며, 결국 20여 년 후 고령화 인구에 속하게 되면서 노동시장 통계에서 마저 퇴출되는 비운을 맞이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국가적 차원에서의 정부 재정난과 지역적 차원에서의 장기적 실업 상태는 가계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지원이 취약해 졌다. 더욱 처참한 것은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자식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무렵에는 취업 자체도 어려웠지만, 취업하더라도 아버지 세대와 같은 높은 숙련도를 지니지 못하고 저숙련 업무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영국 북동부 지역을 연구한 시점인 1997년 이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하게 되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의 경험을 교훈삼아서 향후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 지역산업 위기는 구조적이고, 장기 지속적이어서 정부 정책을 단기, 중기, 장기로 설정하여 그 수단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와 같은 위기의 지속은 최소 2세대에 걸쳐서 진행된다는 점을 인식하여 단기적인 실업 해소나 고용 창출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이러한 지원이 도덕적 해이로 귀결되지 않도록 기획부터 집행, 성과 도출 과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감독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지역 산업 위기로 인한 산업위기지역의 현실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위기는 이미 다양한 지역들과 기업들로 번지면서 그 파동이 확대되고 있다. 이 점이 경제지리학자인 필자의 '근심으로 가득 찬' 시선이다.
정성훈 강원대학교 교수, 한국경제지리학회장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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