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무덤 ‘호위무사’로 지켜온 200여 년 세월
포항 문성리 고인돌 팽나무 노거수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 앞으로 입양이 되었다. 양부가 돌아가시자 졸지에 문중의 종갓집이 되고 아내는 덩달아 종갓집 며느리가 되었다. 일 년에 지내는 제사 만 4대 봉제사와 설 추석 명절 합쳐 매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조상을 정성껏 모셔야 화를 면하고 복을 받는다고 하는 어릴 적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의 말씀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어왔던 터여서 힘들었지만,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나야 피를 받은 조상님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아내는 그런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조상의 묘소 찾아 벌초하고 묘사를 지냈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옛날과는 달리 묘소가 있는 산이 수림으로 우거져 묘소로 가는 길이 없어지고 묘에는 잡풀과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벌초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신문 기사를 통하여 벌초하러 나섰다가 벌에 쏘이거나 뱀 등에 물리어 곤욕을 치렀다는 기사를 종종 보았다. 그러다 보니 벌초도 자손이 아니라 대행을 해주는 업자가 생기기까지 했다. 머지않아 산에 매장을 하고 벌초하며 묘사를 지내는 매장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날 장례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다. 장례를 집에서 행하던 풍습이 장례예식장으로 장소가 변했다. 매장 문화도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거나 수목장 등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유골함을 묻고 봉분 없이 묘비만 세우기도 한다. 유골을 산천에 뿌려 묘 없이 장례를 치르게도 더러 하는 것 같다.
특히 외국의 경우를 보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하게 생각되는 것도 있다. 죽은 사람의 시신에 칼질하여 배를 갈라서 산 위에 갖다 놓으면 독수리가 달려들어 순식간에 살점 하나 없이 다 먹고 뼈만 남는다. 유족들은 기다렸다가 유골을 수습하여 갈아서 주먹밥을 만들어 던져주면 독수리는 그거마저 먹어버린다고 한다.
어떤 지역은 사람이 죽으면 사찰 주변에 시신을 던져 놓으면 수십 마리 개들이 달려들어 시체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이렇게 장례문화가 다양한 것은 기후와 죽음에 대한 민속 신앙이 다르기 때문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청동기 시대 성행하여 철기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의 일종인 고인돌 무덤이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151번지에 팽나무 노거수가 묘비석처럼 함께 있다. 문성리 마을은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룩한 새마을 운동 발상지이기도 하다.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으로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에서는 돌멘(Dolmen)이라 불렀다. 고인돌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지석이 있는 기반식 고인돌로 인근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고인돌 규모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으로 농촌 근대화를 이룬 포항 문성리 마을의 팽나무.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이름, 생몰, 연월일, 행적, 무덤의 좌향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는 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 지석의 크기는 가로 185cm, 세로 35cm, 높이 45cm이며 주변에 여러 기의 무덤이 함께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인돌 무덤도 보기 어렵지만,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것은 더더구나 보기 어렵다.
고인돌 무덤을 팽나무 노거수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다. 팽나무는 소금기와 바닷바람에 강한 수종으로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에 해송과 함께 자생한다. 동남부 해안지방에는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당산나무는 흔히 팽나무인 경우가 많다. 뿌리가 잘 발달 되어 있고 바람과 공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이나 장수목이다.
예로부터 방풍림이나 녹음을 위해 마을 주변이나 정자목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자못 고인돌의 중압감 속에서도 팽나무 노거수의 친근감이 느껴져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팽나무 노거수는 키가 20m 되고 몸 둘레가 3m, 수관 폭은 17m가 넘었다. 1995년 11월 18일에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었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크고 묵중한 고인돌을 감싸고 푸른 이끼는 거대한 팽나무 노거수 몸을 감쌌다. 팽나무 노거수 열매는 가을이 되면 검붉게 익는데 까맣게 익은 것으로 보아 검팽나무인 것 같다. 인공인지 자생인지 모르지만, 팽나무 노거수 나이가 200살이 넘었다고 한다. 고인돌과 노거수에 금줄이 쳐져 있고 지석에는 술과 과일이 놓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팽나무 노거수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제사를 받는 신목(神木)이었다.
포항 노거수회를 창립하여 노거수 보호에 앞장서 오신 이삼우 노거수회 명예회장(현 기청산식물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 민족은 노거수에는 신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어 왔고, 울창한 삼림 속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인식해 왔다. 노거수라는 자연물을 통하여 보다 큰 영감과 안녕을 기원했다. 단군신화 속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나 신수(神樹),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박(朴)은 점을 치는 나무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수목에 대한 선조들의 심원적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에서 활력을 부활시키고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철학으로 자연과 친밀하여 위대한 감화력을 얻으려는 욕구의 발로이다.”
고인돌 무덤만 덩그렇게 있는 것보다 팽나무 노거수와 함께 있는 고인돌 무덤이 더욱 친근감이 들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산림을 훼손하는 매장 문화에서 산림을 보호하는 납골당, 수목장 문화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동해안의 수목장 나무는 여타 나무보다 팽나무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모르지만, 이곳에 묻힌 조상님의 명복을 빌고 팽나무 노거수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고인돌 무덤에 묻힌 조상의 넋이 마을 수호신 팽나무로 화신한 것이 아닐까. 팽나무 노거수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본다. 맑고 파란 하늘의 가을 햇살이 푸른 잎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정겨운 단어 ‘포구나무’
팽나무는 흔히 포구나무, 달주나무, 마태나무, 폭나무, 펑나무이라고도 부른다. 콩알만 한 팽나무 열매를 작은 대나무 대롱의 아래위로 한 알씩 밀어 넣고 꼬챙이를 꽂아 탁하고 치면 공기 압축으로 아래쪽의 열매는 팽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이것을 팽총이라고 한다. 팽총의 총알인 ‘팽’이 열리는 나무란 뜻으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포구나무라고 하는 말이 더 친근하다. 해안가 배가 들락거리는 갯마을의 포구에는 어김없이 포구나무 한두 그루 서 있다. 포구에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를 연상할 수 있는 포구나무란 말이 더 정겹다.
20여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고인돌 주변이 깨끗이 단장되었는데 지금은 잡풀들로 우거져 더 이상 들어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고인돌과 주변 수기의 묘지를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 있는 팽나무 노거수는 아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문성리 마을은 근면, 자조, 협동 새마을정신으로 대한민국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선구적인 마을이다. 역사성과 희귀성, 문화유산을 지키는 보호수인 팽나무를 천연기념물의 반열로 품격을 올려주면 어떨까? : 경북매일/글·사진=장은재 작가
포항 기계면 문성리 팽나무와 고인돌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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