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큰 아들이 군입대를 했다. 달포전서부터 친가 외가 신고식을 했다. 다들 바쁘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조카의 군입대를 격려하고 격려금을 보냈다. 그리고 입대 전날 어머니, 당신의 큰 손주 속 든든히 해서 보내야 한다며 봉투를 준비하셨다.
사실 어미와는 한 정거장 거리에 떨어져 살지만, 생각만큼 걸음이 잘 안된다. 어머니 두 손주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버지는 일하러 갔다 피곤해서 주무시고 어머니 빗길 마다 않고 오셨다. 먹을 거 한 보따리 힘겹게 들고
큰놈과 작은 놈 8살 차이다. 큰놈은 늘 작은 아이를 종처럼 부려 먹었다. 군입대를 앞두고는 좀 달라지긴 했다만 시나브로 이렇게 컸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손주 군입대 격려금 아마도 약주 한잔 하고 봉투에 글을 입힌 것 같다.
아들과 먹는 입대 전 마지막 아침밥, 아내가 평소에 엄두를 내지 않던 한우 불고기를 연신 구워 내던 아침식탁 .
아들을 훈련소로 데려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우리집에서 차량 좌석 배치는 운전하는 아내 옆에 두 아들이 번갈아 앉고 나는 늘 뒷자석이다 . 훈련소로 가는 날도 큰 아들은 앞 자석에 앉아 모자 지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은 지 어미를 위해 밤새 선곡한 노래를 틀어 주었다.
쉬지 않고 세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임실
시간이 남아 군청 뒷편 시장통 밥집을 찾다 임실향교 은행나무를 만나기도 했다. 서쪽 용요산 자락에 자리잡은 임실향교< 임실읍 봉황7길 23 (이도리 812번지)는 현재의 자리에 세워진것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 이다. 명륜당 옆 1982년 9월 20일 (전라남도)도나무로 지정된 둘레 4m, 수고25m,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는 못했다. 멀리서도 보일만큼 수형이 크다.문득 아비로서 아들에게 큰 나무로서 그늘이 되어 주었든가 되물었지만 자신이 없다.
향교 옆 어느 민가를 보며 이제부터라도 아들이 오면 반겨주는 집 자체가 되고 싶다.
아들이 군 부대로 들어가고 있다. 제35향토보병사단 신병 훈련소 16-6기다. 입대 장병들보다 가족들이 더 많았다. 대분분 전라도에서 왔다. 부산서 왔다니 다들 의외라는 눈치였다. 행정병의 안내에 대응하는 아들의 모습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더욱이 대부분의 장병과 입소자들이 사용하는 억양이 아들과는 달랐다. 아들이 입대 전에 경계했던 지점을 비로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회고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35사 입대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구축이고 계기라 할 수 있다. 아들이 가진 사교성리라든지 활동성을 미루어 볼 때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기 위해선 동기들을 비롯하여 선임, 상관들과의 관계맺기가 중요하다. 이제 낯선 곳에서의 살아 남기와 주인되기가 필요한 것이다.
입영식 직전의 모자
입영식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자식을 군에 보내고 난 뒤 걱정하는 부모들을 위한 혼련입소와 자재배치 까지의 과정에 대한 설명과 동영상 상영이 있었다.
얼추 300명 정도가 이번에 입대한 것 같다. 이들이 훈련을 받게 되는 35사단은 향토보병사단이다. 1955년 4월 20일 강원도 화천군에서 창설되어 같은 해 6월에 전라북도 전주시로 사단 전체를 이전하였다. 58년 후인 2013년 12월에 사단 사령부를 전라북도 임실군로 다시 이전하였다. 제2작전사령부 예하 사단으로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향토사단이다. 본래는 제62동원보병사단 등과 함께 전라북도 완주군에 군단사령부가 위치한 제9군단을 구성하는 사단이었으나 국방개혁 2020의 일환으로 제9군단과 제62보병사단이 폐지되면서 제2작전사령부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2013년 12월까지는 전주에 사단 직할대 및 본부가 있었으며, 입영부대 본인선택 제도로 전라북도 출신 입영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별칭은 충경(忠敬)부대 로서 위수구역은 전라북도이다.
향토사단이지만 지역특성상 해안가를 끼고 있어 예하부대 중에는 해안경계부대가 있다. 예하부대로는 제103보병연대(남원시, 무주군, 순창군, 임실군, 장수군, 진안군) 제105보병연대(김제시, 정읍시, 고창군, 부안군) 제106보병연대(군산시, 익산시, 전주시, 완주군) 기타 직할 부대가 있다. 아마도 아들은 열거한 연대 중에 하나로 가지 않을까 싶다.
부사단장이 들어오고 입영식은 진행됐다.
내가 훈련받을 때와는 천지차이다. 어떻게 그 시간들이 흘러갔는지
그리고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에 앞서 신고 경례
가족들과의 만남은 10분 남짓, 훌쩍이는 소리 곳곳에서 들렸다.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 "갔다오께" 아들이 우리에게 남긴 말이었다.
가족들과 분리되어 지는 순간
가족들은 그들을 한번이라도 더 볼려고 먼 발치로 멀어지는 아들, 손주를 바라 본다. 그들도 가족들을 바라 보았다. 저 훈련병 중에 아들도 들어 있다.
아내의 옆 자리 조수석이 올 때와는 달리 빈자리다. 언제 저 자리에 아들이 앉을지는 미지수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받고 휴가를 나온다고 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남원을 지나 산청 함양을 지나면서 무수히 많은 터널을 지난다. 산동면의 고남산 자락이다.
그렇게 오가는 길이 반나절이다. 갈때 3시간 올때 4시간 반
아들은 입대 첫날 밤을 어떻게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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