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조효제 지음 l 창비 l : 2022년 03월
조효제-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옥스퍼드대에서 비교사회학 석사학위를,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사회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인권학회장, 하버드대 로스쿨 인권 펠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베를린자유대와 코스타리카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 유엔본부학술대회 기조강연자로 나선 바 있다. 저서로 『탄소 사회의 종말』 『인권의 최전선』 『인권 오디세이』 『인권의 지평』 『인권의 문법』 등이 있고, 역서로 『거대한 역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세계인권사상사』 『인권사회학의 도전』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말
서문
들어가며
1장 야누스의 비극은 어떻게 벌어지는가?
―환경파괴와 인권파괴의 연계
2장 지구, 인류를 법정에 세우다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
3장 자연에게 권리를 주자
―인류세의 새로운 권리
4장 공존을 위한 지도 그리기
―사회-생태 전환의 길
나오며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소개
환경을 파괴하는 범죄 ‘에코사이드’와 인간을 말살하는 범죄 ‘제노사이드’의 연계
이 뫼비우스의 고리를 끊을 사회-생태 전환의 길
세계가 들끓고 있다. 한쪽에 기후-생태 위기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불평등-인권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으로 맞물린 환경위기와 인권위기의 연계성을 탐색하고 이 악순환을 끊어낼 사회-생태 전환의 길을 제시하는 인권학자 조효제의 신간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가 출간되었다. 우리는 인권과 환경을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로 다루는 칸막이식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하지만 인류의 풍족한 삶을 위한 지구행성의 총체적 파괴(에코사이드)는 자연의 역습으로 인한 인간 말살(제노사이드)을 낳고 있다. 저자는 이제 환경과 인권의 심층적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구행성의 정의’라는 큰 틀에서 인권·사회 정의, 기후·환경·생태 정의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작 『탄소 사회의 종말』(2020)이 인권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분석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신간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한발 더 나아가 기후-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전환의 아이디어를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인권 개념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제안은 특히 이목을 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인간의 권리를 과감하게 축소하되 비인간 존재까지 포괄하도록 자연의 권리는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위기 해소는 개별 제도를 손보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불가능하고, 사회경제 시스템의 대전환과 이후의 전망을 일관된 서사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대전환의 결단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생태-사회 전환뿐이다. 사회·인권·정의 담론과 생태·환경·녹색 담론을 연결할 든든한 가교가 되어줄 이 책은 환경과 인권 문제를 함께 놓고 고민하는 독자들을 거대한 대화의 장으로 초대할 것이다.
환경파괴와 인권파괴의 연계,이 야누스의 비극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지구행성 전체는 하나의 단위로 작동되고 있기에 국경선에 한정해서는 환경위기나 인권침해의 문제를 온전히 돌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환경파괴와 인권파괴는 한 몸에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서로 연계된 비극으로 나타난다. 1장에서는 역사적 이해와 세계적인 조망 속에서 환경-인권 위기의 사례를 소개한다. 발전지향적인 기업활동과 경제활동은 언제 어디에서 환경-인권 파괴를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는 시한폭탄이다.(28면) 1991년 구미의 한 공장에서 몰래 배출한 페놀 원액이 수백만 주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태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전쟁은 또 어떤가.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이 전개한 ‘초토화작전’은 적을 절멸시키기 위해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환경파괴도 불사했다.(61면)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쉽게 ‘환경전쟁’ ‘환경폭력’으로 이어진다. 저자 조효제는 환경악화가 공동체의 회복을 방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며, 이것이 촉발한 새로운 갈등과 폭력이 또다시 대규모의 인명 손실을 낳는 연쇄반응에 주목한다. 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여성과 어린이, 난민 등 사회적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시민의 힘으로 에코사이드에 강력한 제동을 걸자
저자는 어렸을 때 우연히 접한 사진 한 장의 기억을 떠올린다. 미군의 공중폭격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알몸으로 뛰어가는 베트남 소녀의 사진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저자는 이 사진이 환경파괴와 인권파괴를 함께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91면)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논쟁은 미군의 고엽제 살포로 인해 극심한 환경파괴와 인명피해를 동시에 겪은 베트남전쟁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베트남전쟁을 경유해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논쟁의 역사적 전개를 풀어내고 오늘날 두 개념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소개한다. 확장된 개념의 에코사이드는 자연파괴를 넘어 자연의 다양성을 없애는 행위고, 확장된 개념의 제노사이드는 인간학살을 넘어 인간집단의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일소하는 행위다. 이렇게 인간과 비인간의 다양성을 말끔히 정리하여 일원성의 세상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 현상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이 폭력적 연계 현상이 인권운동·연구, 환경운동·연구를 한자리에서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고 말한다.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범죄를 제대로 금지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저자는 에코사이드를 국제 범죄로 격상하려는 시도와, 환경을 파괴한 기업 또는 정부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처벌하려는 움직임을 자세히 소개한다. 에코사이드 방지를 위해 세계시민들이 힘을 모아 기업과 정부를 감시한다면 단단히 결속된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이중 범죄’의 매듭을 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한다.
도래한 인류세, 자연에게 권리를 주자
산업문명이 익숙한 우리는 이런 생각에 젖어 있다. “자연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인간부터 살고 봐야지.”(221면) 과연 그럴까? 저자는 우리가 인류세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극단적으로 환경에 개입한 결과 기록적 폭염이나 폭우, 코로나19 팬데믹 등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3장에서 저자는 자연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가 칼로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인류세의 특징이라고 설명하며, 우리 시대의 인권을 새롭게 상상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의 권리가 존중될 때 인권도 보호될 수 있고, 인권을 지켜야만 자연의 권리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인권문제와 환경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건강한 환경을 누릴 인간의 권리, 즉 ‘건강한 환경권’이 인권의 핵심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다.(187면) 그러나 저자는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는다. 이제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권리체계, 즉 ‘자연의 권리’ 개념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가?” “미래세대와 자연을 위해 자기 욕구를 어떻게 절제할 수 있을 것인가?”(222면) 저자는 인권의 자기 제한 문제가 인류세의 힘든 도전이 되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당면한 위기 해소가 시급한 만큼, 인권 개념의 재조정 및 비인간 생명체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자연의 권리’ 확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이 논의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생명’으로 연결된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 3장의 결론이다.
남은 선택은 사회-생태 전환뿐,공존을 위한 지도를 그리는 법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4장은 생명의 공존을 위해 현재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대전환하기 위한 복안을 담고 있다. 한계에 부딪힌 사회경제 시스템의 물질대사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대안 시스템으로 나아가려는 사회-생태 전환은 아직 인류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어떤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고 우리 세대에서 완수할 수도 없는 기획이다. 저자는 사회-생태 전환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성화해 시민들의 활발한 대화를 촉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전환의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는 것이 현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유산이라는 생각에서다.(23, 317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저자가 제시한 전환의 스케치북을 펼쳐보자. 여기에는 석장의 그림이 들어 있다. 구조와 패러다임을 다루는 ‘전환의 거시적 방향성’, 제도와 정책을 다루는 ‘전환의 중간 범위’, 개인과 집단의 역할을 다루는 ‘전환의 미시적 실천’이 그것이다.(253면) 저자는 인권사회학의 관점에서 각 단계마다 인권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전환을 위해 어떤 가치관이 필요한지 언급한다. 기존의 관점을 바꾸어 충족의 경제와 공존의 세상을 지향하자고 마음을 모은다면 사회-생태 전환의 길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음을 설득하고자 했다. 광범위한 여론의 압력으로 압핀의 머리를 힘 있게 눌러줄 때, 뾰족한 압핀의 침이 기존의 패러다임과 제도를 정확히 찔러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254면)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인권을 말할 때 자연을 배제하고, 자연을 말할 때 인간을 뒤에 놓게 되는 익숙한 딜레마를 명쾌하게 해소하는 책이다. 인권연구에 평생을 몰두한 저자는 침착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우리가 소수자에게 관심을 가질 때 환경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평등과 다양성을 추구해야만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인권은 자연 착취로 얻어낸 성장의 풍요가 아니라 멈추어 주변을 돌아보는 시민의 힘, 그리고 ‘자연에게도 권리가 있다면…’ 하고 끊임없이 가정 이후의 세계를 그려보는 시민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다. 그 힘으로 환경위기에 맞서자는 저자 조효제의 세심하고도 결연한 메시지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환경위기 앞에서 갈 길을 잃은 독자들에게 그 어떤 연설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 하나씩 무등 태우고 인류세를 건너야 한다
기후-생태위기와 인권 악화는 밀접히 연계
‘자연의 권리’ 인정하고 인간 권리 축소해야
시스템 전면 바꾸는 ‘사회-생태 전환’ 시급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봄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 난다데비산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상류 쪽에서 붕괴된 빙하가 계곡으로 부서져 내린 것이다. 기후위기로 빙하가 녹은 것이 한 원인이었다면, 수력발전소·댐 등을 난개발한 것이 또 다른 원인이었다. 이 홍수로 30여명이 희생되고 200여명이 실종됐다. 납 생산·처리의 중심지인 중국 안후이성의 제서우시는 환경과 건강에 해로운 중금속으로 토양과 강물이 극심하게 오염돼 있다. 인근에 사는 아이들은 납중독으로 지적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
환경과 인권. 얼핏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기후-생태위기가 한쪽에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인권 악화와 불평등이 있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인권 문제에 천착해온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환경위기와 인권위기의 연계성을 고찰하고 두 위기를 극복할 사회-생태 전환의 길을 제시한 책이다. 전작인 <탄소 사회의 종말>이 주로 기후위기를 인권의 관점에서 다뤘다면, 이번 책은 문제의식을 넓혀 기후위기와 함께 생태위기 전반을 분석한다.
환경-인권 파괴는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개발과 산업활동이 환경을 훼손하고 그것이 다시 인권을 유린하는 패턴이다. 인도 난다데비산의 홍수, 중국 제서우시의 납중독 등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전쟁 역시 대규모 환경파괴와 인권파괴를 동반한다. 한국전쟁도 한 사례다. 한국전쟁은 미 공군의 폭격으로 인명피해와 환경피해가 조직적으로 발생했다. 적어도 38만6000톤 이상의 폭탄이 투여됐고 북한 지역의 경작지 약 3700㎢가 황무지로 변했다. 기후위기는 환경파괴와 인권파괴의 종합판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태풍, 폭염, 가뭄, 감염질환 등으로 인명손실이 발생한다. 토착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공동체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여성, 소수민족, 어린이, 난민, 작은 섬나라 주민, 장애인, 야외 노동자, 홀몸 노인, 저소득층, 노숙인, 만성질환자 등은 기후위기 때문에 인권이 특히 침해되는 집단이다.
환경-인권 파괴가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에코사이드’(생태살해·ecocide)와 인간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genocide)가 나타난다.
베트남전쟁은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전쟁 당시 미군은 베트남의 논과 숲과 동식물에 제초제인 고엽제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했다. 숲이 사라지고 논과 밭이 반영구적으로 훼손됐다. 고엽제 때문에 약 40만명이 단기간에 사망했고, 약 300만명이 만성장애에 시달리며 약 15만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생명윤리학자 아서 갤스턴은 베트남에서 벌어진 자연환경 파괴행위를 ‘에코사이드’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에코사이드 개념은 이제 전쟁 시의 고의적 환경파괴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평상시 경제활동에 의한 대규모 환경파괴로까지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제노사이드 역시 최근에는 “어떤 집단의 통합적 일체성이 해체되는 문화·환경 조건의 파괴, 즉 사회적 죽음”까지 지칭하는 개념으로 넓혀지고 있다.
지은이는 “기후-생태위기를 맞아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얽히면서 인간과 지구행성에 가하는 폭력’이 인권과 환경의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며 이것을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라고 부른다. 브라질에서 이뤄지고 있는 열대우림 파괴와 이로 인한 토착민들의 강제이주와 공동체의 파괴는 이 연계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를 막으려면 돈벌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문제적 기업들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또한 에코사이드를 ‘국제적 범죄’로 규정하고 단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인권 개념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것도 검토돼야 한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말은 권리의 범위를 비인간 실체로까지 확대하고 인간의 권리 중 일부를 과감하게 축소·조정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고 번성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자연의 권리가 인정된다면 도롱뇽과 강물이 인간의 법정에서 인간을 상대로―물론 인간 대리인을 통해야 하지만―법리 공방을 벌이는 일이 가능해진다. 자연이 ‘법인격’을 가진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대해 “그래도 우선 인간부터 살고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지은이는 “인류세에는 자연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가 칼로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 자연이 어찌되든 인간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은―과거에도 없었지만―인류세에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과 환경보호의 수렴’ 그리고 ‘자연 자체의 권리 인정’이라는 이중 명제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지은이는 기후-생태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 시스템의 대전환, 즉 ‘사회-생태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생태 전환의 목표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지 않는 ‘이중적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거시적 구조 차원에서는 사회계의 경우 불평등 해소와 녹색미래 보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생태계를 위해서는 경제성장, 소비지상주의, 인간중심의 자연지배, 전문적 지식 등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미시적 실천의 차원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인식변화, 다양한 아이디어 실험, 집단적·정치적 행동이 중요하다. 중간범위 차원에서는 법과 규정을 바꾸고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은이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 하나씩을 무등 태워 인류세를 건너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며 “새로운 시대와 달라진 조건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삶의 양식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짚어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동료 시민들에게 당부한다./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육식이 아마존 인권침해와 관계가 있다고?
세계 인권학계는 환경과 인권의 심층적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에코사이드(생태살해)와 인간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가 그물망처럼 연계돼 나타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공장에서 유독 물질이 누출돼 인근 주민들이 숨졌다는 소식이 간혹 외신으로 전해지지만 그것은 특수한 상황, 국지적 문제가 아닐까. 법이나 규제가 미비하거나 그것을 어겨서 발생하는 ‘사고’가 아닌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으로 활동했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는 최근 출간한 저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에서 이러한 질문에 답한다.
저자는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일으킨 환경 파괴가 인간의 생명과 문화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이야기다. 대표적 사례가 화석연료 사용이 초래한 기후위기다. 기상 이변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한편, 유럽과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수백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에서 기상 재난으로 발생한 재산 피해가 1,700억 달러가 넘는다는 자료도 있다.
보팔 참사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환경 재난이다.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시에 위치한 미국계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공장에서 살충제 원료로 쓰이는 유독가스가 새어나오면서 인근 주민 3,8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누출 이후 며칠 이내로 최소 1만 명이 더 숨졌다. 그후 20년 동안 1만5,000명에서 2만 명이 사고의 영향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2세대와 3세대에서는 다양한 심신장애가 나타났다. 인간뿐만 아니라 물소와 황소, 개, 새들도 폐사했다. 사진은 1984년 12월 4일 촬영된 사망자들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물질적 풍요를 으뜸가는 과제로 삼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체계)은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개발 도상국 지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공단 주변 주민들이 중금속에 중독되는 전형적인 환경 재난뿐만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 원자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숲이 불타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전쟁까지 벌어진다. 예컨대 휴대폰에 들어가는 광물인 ‘콜탄’은 생산량의 80%가 콩고민주공화국의 키부에서 채굴되는데, 이 지역을 점령한 무장집단은 콜탄 판매금으로 신무기를 구입하고 병력을 충원한다. 저자는 “내전으로 수백만의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으며 많은 사람이 고향 땅에서 쫓겨났다”면서 “지역민이 생계수단으로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정도를 넘어 그것을 철저히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대량으로 착취하는 행위는 필경 사회 갈등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인의 육류소비도 아마존의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와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브라질에서는 열대우림을 개척해 대두와 옥수수 등 환금작물을 재배하는 작업이 오랫동안 진행돼 왔다. 현재 세계 설탕의 절반, 커피의 3분의 1, 가축사료의 3분의 1이 브라질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한때 800만 명이 넘었던 아마존의 토착민은 현재 150만 명 정도로 줄었다. 숲이 줄면서 수렵에 의존하던 토착민들은 생계가 어려워졌고, 그들이 타지로 떠나면서 지역 공동체가 와해되고 고유의 문화가 사라졌다.
저자는 2017년 한국이 브라질에서 수입한 물품의 총액은 37억100만 달러(약 4조3,700억 원)에 달했다면서 여기에 포함된 대두는 “대표적 사료용 작물”이며 “한국에서 연간 2000만 톤의 배합사료를 생산하는데 그중 원료의 95%를 해외에서 수입한다”고 설명한다. H&M, 나이키, 랄프로렌, 아디다스 등 세계적 기업들도 산림파괴에 연루된 가죽을 사용한다는 의심을 받는다고 덧붙인다. 범죄나 전쟁, 대형 사고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일상을 지탱하는 경제 체제가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인간을 위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긴 ‘환경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은 학계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제기구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논의를 소개한다. 동물과 식물을 비롯해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생명체에게 각자의 종족 생존에 적합한 권리를 보장하자는 이야기다. 예컨대 ‘자연의 권리’는 환경권의 대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꿈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는 “미국에서는 모든 종에게 생존권, 서식지 유지 권리, 건강한 개체수 유지 권리를 부여한다”면서 “이러한 절멸위기종 보호법이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어 나가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구상이 경제 체제는 물론,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탄소중립과 탄소세 역시 한때는 공상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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