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인간성은 자연으로 ‘회귀’가 아니라 ‘탈피’함으로써 발휘된다
① 야생 침팬지와 식용 개
서아프리카 기니에 있는 침팬지보전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암컷 셸리가 나무 위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야생 침팬지 사회에는 위계질서가 있으며 다른 집단과의 전쟁, 암컷 납치, 새끼 살해 같은 잔혹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게티이미지 | 이매진스
이 세상에 잡아먹히려고 태어난 생명은 없다. 모든 생물계는 다른 개체의 자원을 ‘탈취’하며 살아간다
야생 침팬지 연구가 보여주듯, 자연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폭력적으로 진화한다. 인간의 문명 때문이 아니다
이런 약육강식의 자연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는 극단적 생태주의는 결국 ‘낭만적 환상’일 뿐
지난 7일 김건희 여사와 만나 개 식용 문화 종식에 뜻을 같이했다는 제인 구달은 침팬지 행동 연구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주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기에 생물학이나 생태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야생 침팬지에 대한 다양한 관찰 결과를 통해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인 구달
야생의 침팬지가 사람의 얼굴까지 찢을 수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죠
제인 구달과 동료들은 1960년 초반부터 야생 침팬지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 10여년간 그들의 초기 관찰 결과 침팬지 사회는 ‘타락한’ 인간의 문명사회와 대비되는 마치 평화로운 자연 속 낙원이나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집단 간의 계획적인 전쟁과 끔찍한 살육, 다른 집단의 암컷을 납치하고 새끼를 살해하는 등 잔혹 행위가 반복적으로 목격되기 시작했다. 구달은 후에 “침팬지들이 우리의 얼굴을 찢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I didn’t know chimpanzees can rip your face off)”고 고백했다. 실제로 2009년 찰라 내시(Charla Nash)라는 미국 여성이 가족처럼 키우던 침팬지에게 공격당해 얼굴이 갈갈이 찢기는 사건이 있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행동이 생물학적 본능인지 인간과의 접촉으로 인한 영향인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예를 들어 벌목으로 인한 서식지 훼손으로 침팬지를 자극했을 수도 있고, 전염병 유입과 같은 생물학적 영향이 있었을 수 있으며,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경쟁을 심화시켰을 수도 있다는 주장들이 대두된 것이다.
이는 마치 토머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로 대변되는 두 진영 간의 성악설 대 성선설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요약되는 홉스의 관점은 자연 상태의 인간은 난폭하고 무질서했으며 국가를 상징하는 ‘리바이어던’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루소는 이와 반대로 인간은 자연적으로는 선하게 태어나는 ‘고결한 야만인’이지만 문명에 의해 타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가 야생 상태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이런 철학적 관념들에 대한 과학적 증거나 반증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리처드 랭엄
침팬지 간의 살해 인간 영향과 무관 자연에 적응 위한 진화적 전략 결과
결국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인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가 이끄는 30명의 연구팀이 인간과 접촉하고 있는 침팬지 집단 18곳에서 발생한 살해 사건 152건을 분석해 2014년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였다. 대부분 수컷이 다른 집단의 수컷을 대상으로 저지른 이 사건들에 인간과의 교류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살해 행위가 인간의 개입 영향을 가장 덜 받은 아프리카 동부 지역 침팬지 집단들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원시 상태의 서식 환경을 갖고 있는 우간다의 한 침팬지 집단이 가장 폭력적이었다. 결국 폭력성은 자연적인 상태에 적응하려는 침팬지들의 진화적 전략의 결과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2016년 ‘네이처’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도 인간의 폭력성이 생물학적 진화의 양상에 따라 설명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무려 1024종의 포유류와, 구석기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존재한 인간 집단 600개에서 발생한 동종 간의 치명적인 폭력 발생 비율을 조사했다. 유전자 서열의 유사성에 따라 종들의 진화적 관계를 배열하는 것을 계통발생학이라고 부르는데, 이 연구는 수많은 포유류들을 계통발생학에 따라 배치시키고 여기에 폭력에 의한 사망 발생 빈도를 대응시켜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계통발생학적으로 예측된 인간의 폭력에 의한 사망 비율은 정확하게 실제 관측된 값과 일치했다. 다시 말해 폭력성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KAIST의 우리 연구실도 미국 조지아텍의 인간진화 연구실과 함께 인간과 침팬지의 공격성이 유전자 수준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진화유전학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아드레날린 수용체 중 하나인 ADRA2C라는 유전자의 양을 낮게 조절하는 DNA 변이를 인간과 침팬지에서 조사해 본 것이다. 이 유전자의 양이 낮다는 것은 우리가 위협을 당할 때 활성화되는 교감신경이 민감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유전체 정보가 확보된 현대인 2504명과 침팬지 56마리의 DNA 서열을 조사해 보니, 이 유전자의 양을 낮추는 조절 변이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집단유전학적 흔적이 있었으며, 다른 유인원에게는 없던 이 변이가 조사한 모든 현대인과 침팬지에서 나타났다. 과거에 없던 변이가 새로이 생겼는데 거의 대다수 사람이 그 변이를 가지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은 교감신경의 활성이 얼마나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또한 이 동일한 변이가 침팬지 집단에서도 다수가 가지고 있는 변이라는 것은 인간의 문명과 상관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폭력의 위협에 대한 교감신경의 대응이 중요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간의 전쟁 역사에 대한 야심작인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은 방대한 인류학 자료를 통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즉 인간의 분쟁과 싸움은 문명 때문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서로 빼앗으려는 진화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싸움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그들과 친족의 생존 및 번식의 성공을 좌우하는 유무형의 재화를 얻고 잃는 문제가 싸움의 위험성보다 중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이 점에서 인류학 연구들의 결론은 루소가 아닌 홉스의 관점, 즉 성악설을 지지한다고 그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본성은 평화주의자라는 성선설의 믿음을 야생에서 확인하고 싶어 했던 일부 초창기 침팬지 연구자들의 소망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사실 다른 생명체가 애써 만들어 놓은 자원을 탈취하는 것은 침팬지와 인간 사회뿐 아니라 생물계 전체에 퍼져 있는 행위이다. 심지어 바이러스나 세균도 탈취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감염이라고 부른다. 바이러스는 아무런 물질대사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DNA를 복제하고 번식하는 것조차 숙주의 자원과 에너지를 이용할 정도로 극대화된 기생 생활을 한다. 세균들도 바이러스의 감염 대상이다.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은 세균들이 바이러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발달시킨 ‘크리스퍼(CRISPR)’라는 방어기제를 과학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균도 같은 행위를 한다. 동식물을 감염시키는 많은 세균들은 스스로 물질대사를 하고 복제와 번식을 하기는 하지만 숙주의 자원을 탈취하며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다.
감염이 몰래 벌어지는 탈취라고 한다면, 힘으로 이루어지는 강제적인 탈취가 바로 포식이다. 식물을 잡아먹는 초식동물,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동물 모두 포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최초의 포식자는 다름 아닌 세균이었을 것이다.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원인 ATP를 만들 수 있던 호기성 세균이 혐기성 세균에게 포식당한 후 미토콘드리아라는 형태로 공존하게 된 것이 동물, 식물, 균류의 공통 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세균을 포식해 엽록체까지 갖추게 되는데 이것이 식물의 기원이다. 최초의 생명체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나, 머지않아 다른 생명체가 만들어 낸 자원을 목숨째 가로채며 살아가는 행위가 생명의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엽록체를 통해 스스로 유기물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개발된 후에도 많은 생물들은 다른 개체의 자원을 탈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보다 남이 만든 것을 빼앗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가트가 지적했듯이 인간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 세계의 이런 실상을 모르고 여전히 자연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는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많다. 환경보호나 동물복지 향상 등 좋은 취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극단적이고 섬뜩한 인간 혐오 사상을 가지고 있다.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에 굉장한 애견인으로서 최초의 현대적인 동물보호법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이용한 생체실험을 금지했다는 사실은, 나치가 자행한 인체실험을 더욱 끔찍한 범죄로 만든다. 최근 대두하고 있는 극단적 생태주의는 인간을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보다 자연의 생태를 우선시하며 자연과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아예 인간은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보기도 한다. 이들의 눈에 자연은 순수하고 소중한 보호의 대상이며, 인간은 그저 환경을 파괴하고 개를 비롯한 동물을 잡아먹고 자연 질서를 어지럽히는 적대적인 존재,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존재로 비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야생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식중독, 감염, 맹수나 독충의 공격 등으로 며칠도 못 버티고 죽어버릴 나약한 인간들이, 동료 인간들의 노력과 노동으로 제공된 아늑한 문명의 그늘 아래서 살면서 하는 철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철학적으로도 과연 인간이 없는 자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있으나 인간 없는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우주에 대해 사유하고 의미를 부여해 줄 존재 없이 그저 거기에 있는 우주는 하나님에게도 의미가 없는 무한한 공허의 공간일 뿐이다.
경향 : 2023.07.25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간섭과 착취’라는 동물적 본능, 지구상의 ‘공정’을 무너뜨렸다
② 위대한 동물, 호모 이코노미쿠스

국제우주정거장에 파견된 미국 항공우주국 소속 워런 호버그가 지난 6월9일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우주공간에 나가 우주정거장에 부착된 로봇 팔을 조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류는 1966년 우주공간과 천체는 공동의 재산이라고 결의했지만 우주공간과 천체를 선점하려는 각국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햇빛 독차지하려고 높이 자라는 나무처럼…거대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 거두기 유리한 위치 ‘선점’하기 위해 경쟁
동물과 달리 노동이라는 경제활동으로 생산된 잉여가치가 ‘법적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착취’됨으로써 인류 불행 시작
이제 지구를 넘어서 우주를 향하는 인간의 탐욕…몽땅 착취하고 독점하려는, 이 얼마나 강력한 ‘본능’인가
인간은 과연 경제라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일까?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속성은 생산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원의 소비라는 점이다. 간혹 식물을 생산자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식물은 스스로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 외에는 어떠한 부가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으므로 경제학적 생산자로 볼 수 없다. 단지 동물에게 강제로 소비당하는 것뿐이다. 지난 글 ‘야생 침팬지와 식용 개’에서 동물의 이러한 포식 행위는 ‘탈취’에 해당한다고 정의했다. 기본적으로 자원의 탈취는 상대의 몸이나 생활영역에 대한 ‘침범’을 통해 이루어진다.
침범에 대한 방어 기작을 생태학에서는 ‘간섭’이라고 표현한다. 간섭 경쟁이란 주로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이 자신의 영역에 침입하거나 서식지 내의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여 ‘독점’을 유지하고자 할 때 이루어진다. 많은 조류들이 자신의 둥지 주변을 물리적으로 방어하여 다른 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간섭의 예다.
반면 ‘착취’ 경쟁은 이런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없지만 일부 개체들이 제한된 자원을 ‘선점’함으로써 다른 개체들이 자원을 이용할 기회를 간접적으로 빼앗을 때 일어난다. 자연의 자원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착취 경쟁은 자연 곳곳에서 일어난다. 나무들이 높이 자라는 이유는 우리에게 멋진 숲을 제공해주기 위함이 아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보다 높이 자라 위쪽 공간을 선점해야만 이웃들이 만드는 그늘에 가리지 않으면서 더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같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곰들 사이에서도 직접적인 간섭은 일어나지 않지만, 유리한 장소를 차지하고 거기서 과도한 사냥을 하는 곰은 같은 강을 따라 더 아래쪽에 있는 다른 곰들에게 간접적인 손실을 끼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동물이 차지하고자 하는 유리한 위치는 다름아닌 사회적 지위다.
탈취, 간섭, 착취는 모두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탈취의 대표적인 예는 전쟁이다. 간섭과 착취는 오늘의 주제인 경제와 관련된다. 생태계에서의 간섭 경쟁이 인간의 경제에서는 독점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의 미국은 마크 트웨인이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풍자했던 시절로서, 불법적으로 막대한 부를 모은 개츠비라는 한 남자의 성공과 몰락을 그린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기도 하다. 석유재벌 록펠러, 철강재벌 카네기, 금융재벌 JP 모건 등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고 불리던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트러스트’를 만들어 생산, 제조, 유통, 판매 등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각종 리베이트 및 심지어 용역 깡패까지 동원했다.
1990년 후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의 운영체제에 익스플로러를 통합해서 판매하기 시작함으로써 넷스케이프를 제치고 시장을 독차지했으며, 결국 넷스케이프는 매각되어 시장에서 퇴출된다. 사실 이 문제로 마이크로소프트에 가해진 법적 제재 덕분에 정보기술(IT)계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바로 구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에 대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구글이 애플의 스마트폰 등에 자사의 검색 앱을 끼워 넣도록 해 이익을 독점하고 다른 업체들의 경쟁이 불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가 했던 것과 똑같은 행태다.
지대는 지주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소득이며 이에 대한 과세는 경제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
그런데 착취는 독점과 같이 눈에 띄는 물리적 간섭-용역 깡패, 리베이트, 끼워팔기 등-을 통하지 않고 ‘법적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생물들 착취 경쟁의 핵심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땅을 먼저 차지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가치를 ‘지대(地代·rent)’의 형태로 가져가는 행위가 바로 착취에 해당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지대는 지주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소득이며 이에 대한 과세는 경제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지주는 토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나 노동자들이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토지를 이용하려 할 때 사적 소유라는 권리를 통해 수익을 얻을 뿐이다. <진보와 빈곤>에서 헨리 조지는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취급한 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실수였다며, 지대의 대부분을 징수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게 과세하여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개혁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근본적인 개혁이라고 역설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서에는 희년이라는 혁신적인 제도가 등장한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고 50년마다 돌아오는 이해가 되면, 한시적으로 매매되었던 모든 땅은 원래 소유주에게 돌아가야 하므로 토지의 사유화는 금지되며 토지에 대한 투기도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지대 개념은 물리적인 땅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지대는 주택이나 상가건물 임대료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해 주택 월세는 거기에 사는 노동자 월급의 착취다. 자본가들 역시 지대를 추구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공장이나 기계와 같은 생산공간과 수단을 선점한 후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데 이때 노동자들의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부분, 즉 임금으로 지급되는 가치를 넘어서는 잉여가치를 창출하도록 강제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자본을 선점한 채 대출만 해주고 가만히 앉아 이자를 받는 것에서 시작하여 온갖 금융 기법을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착취 방법들도 개발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대란 생산공간(땅, 공장, 상가건물 등), 생산수단(기계, 자본 등), 생산자 거주공간(집)을 선점함으로써, 생산된 가치 중 일부 혹은 대부분을 불로소득의 형태로 착취해가는 것이다. 가치의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 이득만 취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는 손실을 입는다는 것인데, <오징어 게임>에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 손실이 자신의 목숨값을 넘어선다.
지대의 대부분을 징수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게 과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근본적인 개혁이다.

헨리 조지
구글의 대대적인 투자를 받은 세계 최대의 유전자 검사 회사 23andMe-23이라는 숫자는 23쌍의 염색체를 의미한다-의 최고경영자(CEO)인 앤 워치츠키는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였다. 고객들은 23andMe에 유전자 검사 비용으로 99~199달러를 지불하며 이와 동시에 건강에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이때 연구 목적이라는 명목으로 정보 제공에 대한 동의를 받는다. 어떤 유전자 변이가 어떠한 질병의 위험을 높이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그것을 분석하는 유전학적 방법론은 당연히 수많은 과학자들이 세금과 같은 공적 자금을 기반으로 수행하여 공개한 연구에서 나왔다. 또한 유전자 변이와 질병의 연관성은 자연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발명자들처럼 특허와 같은 형태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23andMe는 이에 대한 어떠한 비용도 치르지 않고 이러한 공공의 정보를 가져다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구글과 같은 IT기업들이 공공 영역에서 개발된 핵심 인터넷 기술들을 공짜로 자신들의 플랫폼에 가져다 쓰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글이 개인 사용자에게서 돈을 받지 않고 기업 고객으로부터 광고비로 주된 수익을 얻는 양면시장 전략을 23andMe도 차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3andMe의 다른 쪽 시장 고객들은 바로 화이자, 제넨텍,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거대 제약사들이며, 이들에게 판매하는 제품은 바로 그동안 수집된 개인 고객들의 유전자와 건강 정보에 대한 독점적인 접근권이다. 예를 들어 23andMe는 2015년에는 제넨텍과 6000만달러에, 2018년에는 글라소스미스클라인과 3억달러에 데이터베이스 사용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엄청난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것은 데이터베이스의 규모 때문인데, 23andMe가 초창기 199달러였던 유전자 검사 비용을 99달러까지 낮춘 것은 바로 구글이 공짜로 사용자를 확보한 것과 똑같은 전략이다.
그런데 이렇게 챙긴 막대한 이득에 비하면 실제로 생산해낸 유의미한 가치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3andMe의 고객들은 이미 공공의 영역에 존재하는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99~199달러와 함께 자신들의 생물학적 정보를 23andMe에 ‘기증’해준다. 이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의 형태로 집적되어 제약회사들에 넘겨지고, 이때 제약회사가 지불했던 어마어마한 비용은 다시 약값으로 소비자들에게 부담되거나 신약 개발을 위해 근무하는 과학자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해 해결된다. 이렇게 착취된 가치로부터 획득한 수익을 23andMe의 자본가들이 즐기는 동안,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그 약값이 부족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23andMe가 유전자 검사 실험을 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등의 생산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행위에 대한 이득은 개인 고객에게서 받는 서비스 비용에서 끝내야 한다. 제약사에 넘긴 데이터의 가치는 유전자 정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것을 단순히 취합하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데이터의 생산은 과학계에서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라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이미 해오던 작업이다. 결론적으로 이 회사는 구글의 막강한 자금력과 명성을 등에 업고 유전자 검사 서비스라는 ‘땅’을 선점한 후, 거기에 쌓인 데이터의 규모라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유전자-질병 정보라는 형태의 지대를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2023.08.22.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아이 울음’이 사라진 미래는 진짜 아프다
③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

겔라다개코원숭이 무리가 숲속 바위에서 뛰어놀고 있다. 야생 겔라다개코원숭이 무리에서는 새로운 수컷이 권력을 잡으면 임신한 암컷들이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새로운 수컷과 살게된 암컷이 임신한 새끼를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브루스 현상’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맞이한 암컷들의 몸이 손익계산에 따라 작동하는 진화적 메커니즘으로 해석된다. 위키피디아 커먼스
‘낳기 싫어서가 아니라 포기’…현대인의 출산 기피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보면 명료하다
줄어드는 아이, 늘어나는 반려동물…똑같이 ‘금쪽같은 새끼’지만 사회 속에서 갖는 의미는 분명 다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다윈은 말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미래가 현재에 가지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고
필자가 종종 이용하는 커피숍은 자립준비청년들을 돕고자 하는 취지로 운영되는데, 그 옆에는 애견카페가 있다. 카페일 뿐 아니라 호텔과 유치원으로도 운영한다고 한다. 어느 날 이곳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듣자 하니 그곳 주인이 커피숍에 부모와 함께 방문 중이던 어린아이들에게 “싸가지가 없다”는 등 심한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커피숍 야외 공간에서 노는 소리 때문에 애견카페 안에 있는 개들이 놀란다며 도 넘은 훈계를 하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곳 상호에 사용된 ‘개린이’라는 말마따나 이제 어린이보다 개린이가 더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구나 하는 한탄이 오고 갔다.
전 지구적인 고령화가 심각하게 치닫고 있는 가운데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2022년 우리나라 여성 한 명당 평균 자녀 수는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2023년 통계에서는 0.7명 선마저 깨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반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이제는 전체 인구의 무려 30%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57%가 분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소음, 배설물과 노상방뇨, 냄새, 목줄이나 입마개 미착용 등의 이유였다. 반려견이 내는 소음이 층간소음과 맞먹는다는 뜻에서 ‘층견소음’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빈번한 물림 사고 또한 심각한 문제다. ‘개통령’ 강형욱씨조차 피해가기 어려운 이 돌발 사고는 매년 2000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우는 당사자들에게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자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진다. 평소 많은 존경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도에게 화를 낸 사연이 밝혀졌는데, 그 이유인즉슨 한 성도가 개 한 마리를 자신에게 데리고 와 “내 아기를 축복해주세요”라고 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교황은 “많은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는데 나에게 개를 축복해달라고 데려왔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견을 기르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과 반려동물의 실제적인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은 이제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

임신한 암컷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인 ‘브루스 효과’를 처음 발견한 영국 동물학자 힐다 브루스(1903~1974).
현대인의 출산 기피는 복합적인 사회 현상이지만 생물학적으로 환원하면 이유는 명료해진다. 영국의 동물학자 힐다 브루스는 실험실에서 새끼를 밴 암컷이 새로운 수컷과 함께 살게 될 경우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을 발견하여 일찍이 ‘네이처’에 보고한 바 있다. 이른바 이 ‘브루스 효과’가 최근에 야생 원숭이들 가운데서도 관찰되어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한 원숭이 집단을 새로운 알파 수컷이 장악하자 놀랍게도 그 수컷이 집권한 당일에 암컷들이 일제히 유산을 했는데, 유산하지 않은 두 마리 가운데 하나는 재빨리 배란의 징후를 보여 임신 상태임에도 새 수컷과 짝짓기를 하였고, 그런 기만 행위를 하지 않은 다른 암컷은 결과적으로 그 수컷에게 아이를 잃고 말았다. 이는 암컷들의 몸에서 손익계산의 결과에 따라 작동하는 진화적 메커니즘이다. 태어나면 어차피 새로운 수컷에게 죽임당할 새끼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음 번식 기회를 찾는 편이 자원과 에너지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들이 의식적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새로 등장한 수컷이 분비하는 페로몬이 암컷의 몸에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켜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어린이는 살해당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이었는데, 그 가해자의 대부분은 다름 아닌 부모였다. 원시적인 수렵채집 혹은 산업화 이전의 농경 사회에서는 특히 여자아이의 살해가 주기적으로 행해졌다. 어차피 모두를 생존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사냥이나 농사일을 할 수 있고 방어 능력이 있는 사내아이가 가족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아 살해는 산업화된 사회를 포함하여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 걸쳐 발생한다. 부부 진화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이 쓴 명저 <살인>은 문명사회에서의 영아 살해 역시 번식 가치에 대한 손익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경제적 여건을 비롯한 주변 상황이 좋지 않거나, 아기가 기형이나 장애 등 결함이 있을 때, 그리고 전반적으로 아이가 어려 아직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와 어머니가 나이가 어려 다음 임신 기회가 많을 때 살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오늘날 많은 가임기 부부들이나 결혼적령기 남녀들은 일종의 ‘사회적 브루스 효과’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과잉된 교육열로 인한 교육비 부담, 과도한 경쟁과 점점 커지는 빈부의 격차,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비롯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마치 암컷 원숭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새로운 알파 수컷이나 우리 인간 선조들의 생존을 늘 위협했던 가혹한 자연환경과 마찬가지로 다가와, 이들이 자녀를 가지는 것 혹은 아예 가정을 만드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태어난 아이들을 죽이는 대신 애초에 생기지 않게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여전히 많은 젊은 남녀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 원하지만, 그중 많은 이들에게 가정을 꾸리고 특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나의 사치로 여겨진다.

마틴 데일리(오른쪽)와 마고 윌슨 부부. 저명한 진화심리학자인 두 사람은 1988년 출간한 공저 <살인>에서 자연 상태나 원시 부족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영아 살해가 경제적 여건을 비롯한 주변 상황, 아기의 건강 상태 등 번식 가치에 대한 손익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는 욕구도 생물학적으로 자명하다. 진화가 고안해낸 사랑이란 사실 유전자가 자신의 번식을 위해 사용하는 속임수다. 다시 말해, 번식에 관련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작동하는 신경기관의 메커니즘이다. 사랑을 가장한 유전자의 책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 속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마약처럼 작동하며, 중독과 같은 이러한 자기만족은 성관계의 쾌락에서 절정을 맞게 된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양육하면서 느끼는 사랑도 같은 맥락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어미 쥐가 새끼를 핥아줄 때마다 어미 쥐의 뇌에서 도파민 분비가 유도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도파민은 뇌의 보상체계에서 작동하는,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즉 어미의 뇌는 자식을 돌보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특히 인간에게는 모든 대상을 의인화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반려동물의 모든 행동을 인간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실제로 개나 고양이를 어루만지기만 해도 사람의 뇌에서는 도파민뿐 아니라 옥시토신과 세로토닌 등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의 유대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많이 분비되어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물질이다. 교황을 화나게 한 그 여인처럼 반려견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라고 하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애 키우기나 개 키우기나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가 심어놓은 자기만족 메커니즘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면에서는 동일할지 몰라도 사회 속에서 가지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반려동물 자식들은 키우는 당신 외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지만, ‘싸가지 없는’ 어린이는 커서 당신이 사용할 상품을 만들거나 유통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 및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며, 당신의 건강과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건강보험과 연금을 제공하는 등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저출산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한 나라의 존폐를 가를 만큼이나 심각하다. 인구구조의 고령화는 복지 수요를 증가시키고, 조세 부담을 유발하며,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안정성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자금을 보유한 은퇴 인구에 비해 생산활동 인구는 부족하므로 투자할 돈은 많으나 투자할 곳이 없다. 이에 따라 이자율은 떨어지며 이는 저축을 해야 하는 생산활동 인구의 재정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이는 다시 투자 감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이 생산성 하락을 상쇄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은 젊은이들의 몫이다.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과 달리,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은 젊은 뇌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늦은 나이까지 수행한 오랜 연구가 축적되어 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대개 젊은 시절에 성취한 혁신적인 연구 업적이 장기간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높게 평가되어 수상하는 것이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40년 동안 발생한 300만개의 특허를 분석하였는데,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가장 활발한 발명이 이루어지고, 특히 근본적인 변화를 유발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젊은 나이에 집중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3.09.19.
이기적 자식 사랑과 교권침해…그 뒤엔 ‘유전자 예속’ 못 벗어난 부모
④ 유전자와 교육열

북아메리카의 온대삼림지대에서 주로 서식하는 아메리카 붉은 다람쥐. 캐나다에서 진행된 야생 붉은 다람쥐의 입양 행위에 대한 연구에서는 고아가 된 다람쥐의 입양 여부가 대리모 다람쥐와 고아 다람쥐 사이의 근연관계, 대리모 다람쥐가 이미 키우고 있는 새끼의 숫자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처 | 위키미디어 코먼스
‘부모는 왜 자식을 돌보는가’라는 문제를 유전학과 수학으로 풀어낸 ‘포괄 적합도’ 이론은 혈연의 근친 관계가 핵심
형편 좋을 땐 아들 선호, 형편 나쁠 땐 딸을 선호하는 진화론적 전략은 아이 생존 가능성 높아지자 ‘올인’ 전략으로 변모
과도한 교육열과 자기 희생적 ‘헬리콥터 맘’ 등은 유전자의 본성…하지만 사회적 삶을 의식한다면 남의 자식을 위한 행위도 중요
지난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 논의한 ‘사회적 브루스 효과’를 유발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과열된 학력 경쟁이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초중반의 87%가 입시 경쟁 및 사교육 부담이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하였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SKY 캐슬>의 입주민 독서 토론회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등장한다. 극중 예서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유전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으로도 저는 제 유전자의 본능, 다시 말해 1등을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기적인 본능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확실히 한국의 교육열은 유별난 것 같다. 하지만 유전자가 한국인에게서만 작동할 리는 없다.
2019년 ‘미국판 SKY 캐슬’로 불리는 대규모 부정입학 사건이 드러나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겼다. 기업체 CEO, 유명 연예인, 변호사 등이 시험 감독관을 매수해 대리시험을 치게 하거나 대학 스포츠 코치를 매수해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하버드대, 예일대를 비롯한 여러 명문대에 자녀들을 입학시켰다가 발각된 것이다. 8년간 오고 간 검은돈의 규모가 무려 2500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싱가포르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이 가장 활발하며, 3학년만 되면 학교와 학부모 모두가 입시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초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의 결과에 따라 어느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고, 그것이 거의 대학까지 결정짓는다. 세계 최대의 학원가는 학원 교육으로 유명한 한국에 있지 않다. 바로 인도에 있는 세계 최대의 입시학원 도시 코타가 그곳이다. 전국 150만여개 고등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몰려들어 인도 최고의 명문 인도공과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1년치 학원비와 기숙사 비용이 한 가족의 1년 소득에 맞먹기에 학원을 보내기 위해 대출을 받는 일도 잦다.

윌리엄 해밀턴, 로버트 트리버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주어진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자연선택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유전자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모가 왜 자식을 돌보는지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 문제를 유전학과 수학으로 풀어낸 것이 1964년 발표된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이었다. 포괄 적합도란 개체 자신뿐 아니라 그 개체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들의 적합도를 근친도만큼의 비율로 합한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자신을 1이라고 할 때 자식이나 형제들의 경우 각각 2분의 1씩의 비율로 계산한 적합도의 총합이며, 모든 개체는 이 값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존 메이너드 스미스는 이 개념을 ‘혈연선택’이라고 불렀다.
존 홀데인은 “형제 한 명을 위해서는 안 되지만 두 명 이상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사촌이면 여덟 명 이상이어야 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 자식은 부모와 유전자의 50%를 공유하므로 다윈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부모의 자식을 돌보는 행위가 이로써 설명 가능하게 된 것이다.
생물들이 의식적으로 포괄 적합도를 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식물도 이 원리를 따른다. 두 번째 글 <위대한 동물,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착취의 대표적인 예로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이 자라는 나무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변에 친족이 있으면 식물들은 잎과 줄기의 성장 방향을 조정함으로써 서로를 가리지 않으려 한다. 인간의 경우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정도를 통계적으로 계산해보면 자신도 모르게 진화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민망한 사실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보자.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의 경우 함께 살고 있는 자식들이 자신의 친자식이라는 보장이 없다. 모든 사회에서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실은 산모와 자식의 관계였다. 따라서 외할머니는 자신의 유전자가 손주에게도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데 반해, 외할아버지의 경우 일단 자신의 딸에 대한 확신이 없다. 친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그 아들이 데리고 있는 손주들의 진짜 아버지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결국 평균적으로 친조부모에 비해 외조부모가 손주들에게 더 많은 돈을 쓰는데, 특히 외할머니가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모와 외삼촌 등 어머니의 형제가 고모 등 아버지의 형제보다 조카에게 더 많은 돈을 쓴다.
우리가 흔히 신성시하는 부모의 자식 사랑도 까놓고 보면 진화적 전략에 따른 냉정한 계산이 들어 있다. 일찍이 로버트 트리버스와 댄 윌러드가 ‘사이언스’에 발표한 가설에 따르면 부모는 형편이 좋을 때 아들을 선호하고 형편이 좋지 못할 때는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유는 분명하다. 짝짓기에 있어 남자의 능력이 보다 중요한 세상에서, 부유한 아들은 다른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가난한 경우는 아들보다 차라리 딸이 결혼하여 자손을 가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데이터로 입증되었다. 캐나다인들이 남긴 1000개의 유언장을 분석한 결과,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는 아들이 딸보다 2배나 많은 유산을 받은 반면 가난한 가정에서는 반대의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온라인 구매 실태를 조사해보니, 부유한 부모는 아들의 선물에 더 많은 돈을 쓴 반면 그렇지 못한 부모는 오히려 딸에게 더 많은 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의 성별에 대한 선호가 온전히 자기의 의식 영역에 속한다고 자신한다면 다음 사실을 생각해보자. 미국에서 5000만건에 육박하는 출생기록을 조사해본 결과,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여성이나, 흑인여성이 아들을 낳을 확률이 낮았으며, 어린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경우 남아의 사망률이 여아에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모유의 유지방 함량은 아들보다 딸에게 높고 부유한 가정에서는 그 반대다. 트리버스의 이론대로 불리한 환경의 어머니들일수록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데, 그것이 태아 혹은 영·유아 시절의 영양 공급 등 생리적인 차원에서 딸의 경우 투자를 늘리고 아들의 경우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을 뛰어넘어 작동하는 유전자의 양육 전략은 문명의 발전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원시시대에는 일단 많은 자식을 낳고 생존에 적합한 아이만 살림으로써 포괄 적합도를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아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지자 이제는 ‘양 대신 질’, 즉 한두 명의 자녀에게 ‘올인(all in)’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양육 본능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던 원시시대와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 당연한 결과가 교육열이다. 현대의 부모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 교육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이는 다른 부모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고, 결국은 모두가 지지 않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세계 여러 나라들이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끝없이 군사력을 확장하는 군비경쟁과 같다. 즉 오늘날 인간 집단에 퍼져 있는 유전자들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얼굴을 한 채 자신들의 전달체인 자녀들에게 교육이라는 군비경쟁의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과잉보호하는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들이다. 자녀의 일에 일일이 참견하다 못해 학교나 교사에게도 간섭을 하는데 이것이 심각한 교권침해로 이어진다.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8월 서울 영등포구 초등학교 교사에 이어 9월에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담한 비극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공개된 그동안의 학부모 만행을 보면, “아이에게 매일 모닝콜을 해달라” “집에 와서 보충지도를 해달라”는 등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내 세금 먹는 벌레”라는 등의 폭언과 욕설, “무릎 꿇고 빌어라”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유전자의 노예들이 어떤 모습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 인간 아이를 키우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이런 부모들의 애 키우기는 되레 개 키우기보다도 못한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부디 이 아이들이 부모와 달리 인간답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포괄 적합도와 혈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남의 자식을 입양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장려되지 않는 행동이다. 캐나다의 야생 붉은다람쥐에 대한 한 연구에서는 무려 19년 동안 2230개 한배새끼군의 6793마리 새끼를 관찰하였다. 특히 이들의 입양 행동을 조사했는데, 고아가 된 다람쥐가 입양되는 것은 항상 대리모 다람쥐와 근연관계에 있는 경우였으며 근연관계가 없는 경우는 양자로 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입양이 일어나기 위한 고아 다람쥐와 대리모의 근연도는 대리모가 이미 키우고 있는 한배새끼들의 숫자에 따라 달라졌다. 즉 한배새끼를 한 마리 늘렸을 때 전체 새끼의 생존 가능성 감소분을 입양 비용으로 계산하고, 양자로 들여온 고아의 생존 가능성 증가분을 입양의 이익으로 계산할 때, 그 손익계산에 따른 입양 결정은 결국 포괄 적합도 공식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2023.10.17.
이제는 제대로 알자…똥은, 무서워서 피한다
⑤ 똥과 두려움의 상관관계

인간의 장은 박테리아를 비롯한 다양한 미생물로 가득 차 있다. 장내 미생물은 인간의 건강 유지에 기여하며, 여러 질병에 대한 민감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됐다. 출처 미국 국립보건원·Donny Bliss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병원균을 더 잘 번식시키는 대변, 더러운 게 아니라 유전자가 두려워하는 것일 뿐
커다란 벌레를 보면 빨라지는 심장박동, 코로나19 상황에서 드러난 아시아인 기피 현상…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활동하는 유전자의 ‘두려움’이 우리에게는 ‘혐오’라는 감정으로 발현된 것
집단 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왜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갖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피하고 싶은 사람이나 대상이 있을 때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말이다. 심정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말일 수 있으나, 사실 똥은 음식이 소화되고 난 찌꺼기로서 그 자체로는 딱히 더러울 이유가 없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도 있는데, 개똥은 몰라도 낙타 똥은 약효가 있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프리카를 침략한 독일인들이 이질로 고생할 때, 현지인들이 이질에 걸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낙타의 똥을 먹는 것을 목격했다. 낙타 똥 안에 있는 고초균이 이질균을 억제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람의 똥은 실제 약으로 사용된다. 염증성 장질환 등으로 장기간 항생제를 복용하면 장내 세균계가 망가짐에 따라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 균의 증식으로 심각한 장염을 앓을 수 있다.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다른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대변이식의 성공률은 90%로 보고될 정도로 치료 효과가 크고 안전하다. 최신 항암치료에서도 대변이식이 시도되고 있다. 면역항암제에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인 환자의 대변을 면역항암제 내성 환자에게 이식함으로써, 암에 대한 면역력을 유발하는 전략이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 생태계를 살아있는 상태로 옮겨 이식받은 사람의 장 건강과 면역력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 사용하면 약이 될 수도 있건만, 왜 우리는 그토록 똥을 싫어하는 걸까? 진화론적으로 설명해보자.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절체절명의 화두는 생존과 번식인데, 특히 생존을 유지해야만 번식도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왔고 문명의 보호를 받지 못한 우리의 조상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능력 중 하나는 위험한 대상을 재빠르게 알아채고 대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복잡하고 정교한 이성적 판단이 아닌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 위험한 것에 대해 안전하다고 잘못 판단하여 생을 마감하기보다는, 사실은 안전한 것에 대해 위험한 것으로 과잉 대응하여 살아남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는 잘못된 대응으로 손해를 보거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일단 안전한 쪽이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비롯된 정서적 기제가 혐오다. 예를 들어 우리가 뱀, 쥐, 거미, 말벌, 바퀴벌레 등을 보면 발생하는 강력한 기피 심리가 이것인데, 의학적 도움이 없던 과거에는 이들의 독이나 병원균이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인류의 조상들이 살던 시대에는 뱀과 비슷해 보이는 무엇이든지 발견되면 재빠르게 피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가까이 다가가 탐색하고 확인하게 만드는 유전자보다 훨씬 많이 살아 남았던 것이다. 물론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관찰하고 분석하는 자세가 훌륭한 자질이지만, 이러한 자질이 생존과 번식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지 않을뿐더러 자연선택으로 선택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있지 않았다. 자연선택이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학적 자질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점차적으로 다른 변이들을 제치고 퍼져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조상들의 생존을 도왔던 유전자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은 당장 내 생명에 지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커다란 벌레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게 된다.
생명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분비물이나 배설물 역시 본능적 기피 대상이다. 최근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생성되는 호흡기 비말이 주된 감염 경로라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지만, 누가 침을 뱉는 모습이나 혹은 누군가가 먹다 남긴 음식을 보고 생기는 거부감은 이런 과학적 지식과 상관없이 발생한다. 대변의 냄새나 모습에 대한 혐오가 더욱 강력한 이유는, 침이나 다른 배설물에 비해 야생 상태에 방치되어 있으면 병원균이나 기생충이 번식하기에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피 기작이 병원균에 의한 오염에서 비롯되는 각종 질병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 메커니즘이 자연선택되어온 것이다. 한마디로 똥이 실제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두려워하는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더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전자의 의도가 어떻게 인간의 감정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지 보게 된다. 아무리 똥이 실제로 더럽지 않다는 것과 유전자의 의도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어도, 우리의 똥에 대한 혐오감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우리를 관할하는 유전자의 활동을 우리의 감각기관은 감지해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몸 안의 유전자들이 생존하고 번식하고자 하는 욕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행위를 추동하는 것은 유전자가 가진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감정적 만족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도 ‘내 유전자를 번식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결혼하고 양육을 하지 않는다. 결혼과 양육은 이성에 대한 성적 이끌림과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현대인들은 피임이라는 방법으로 유전자의 목표와 감정적인 만족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을 기피하고자 하는 유전자의 두려움은 혐오라는 감정으로 발현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상 가지는 두려움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는 말이 와닿지 않는 것이다.
똥을 혐오하는 건 대변이식을 받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빼면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건 이러한 기피성의 혐오가 손쉽게 사람으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과 수없이 마주치는 오늘날의 익명 사회와 달리 인류 역사의 거의 대부분에서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소규모의 혈연, 지역 집단 밖에 있는 모든 이방인을 미지의 경계 대상으로 간주해야 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상대가 병을 옮길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안전 최우선의 진화적 전략, 즉 일단 병을 옮길 가능성을 전제하고 무조건 기피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동실험에서 세균, 전염병, 질병 등을 연상케 하는 사진을 보고 나면 이민자나 이민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으로 변한다. 행동실험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미국이나 유럽 곳곳에서 발생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사건들이다.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차별적 태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으로 ‘암묵적 연합검사(implicit association test)’라는 것이 있다. 이 검사에서는 좋아하는 대상과 긍정적인 단어가 연합되고 싫어하는 대상과 부정적인 단어가 연합되는 정도를 테스트를 통해 측정한다. 인종차별과 관련된 암묵적 연합검사에서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를 분류하는 자판을 누르는 것과 흑인과 타 인종을 분류하는 자판을 누르는 반응속도를 측정하여 비교해보면, 평소 인종차별적 태도를 의식적으로 가지지 않은 참가자들이라도 흑인과 부정적인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결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더구나 이 실험은 타 인종에 대한 노출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 인종에 대한 경험이 많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더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런 편견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험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에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인종을 구별할 때 다른 특성들보다 특별히 피부와 머리카락의 색, 생김새, 체형과 같이 ‘곧바로 눈에 띄는’ 표지자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인종차별이 진화적 본능에 의해 생성된 혐오와 기피 기제의 여러 결과 중 하나라는 것을 말해준다.

리처드 르원틴

데이비드 라이크
이렇게 인종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인간의 의식 안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최근 사회과학에서는 인종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근거가 없는 사회적 개념일 뿐이라는 믿음이 정설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 시발점이자 이를 직접 뒷받침하는 거의 유일한 연구결과는 1972년 리처드 르원틴이 발표한 논문인데, 그 내용인즉슨, 7개 인종에 대한 유전자 변이를 분석한 결과 인종 내에서의 차이가 85%를 설명하며 인종 간의 차이는 15%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리처드 르원틴은 저명한 유전학자로서, 특히 과학이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많은 목소리를 냈던 혁명적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의 동기는 정의로웠겠으나 1972년 연구는 과학적으로는 잘못된 것이었다. 최근의 DNA 분석 기술과 분류 기법을 이용하면 100%에 가까운 정확도로 인종을 분류할 수 있다. 세계적인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크 하버드대 교수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논한 바와 같이, 비록 선한 의도라고 할지라도 집단 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과학적 발견이 인종주의자들에 의해 이용될 근거만 제공해줄 뿐이다. 우리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별을 해결해나가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종 문제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11.15.
당신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뇌 속 ‘편도체’는 안다
⑥ 모태 보수, 모태 진보<1>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것으로 알려진 직후인 지난해 5월4일 워싱턴 연방대법원에 몰려온 임신중지권 옹호론자와 반대론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전적으로 진보는 현재의 체제와 제도의 변화와 개혁, 보수는 현재 제도의 보전을 주로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지난해 미 대법원에서 임신중지권을 폐지하는 변화를 주도한 것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유시장 주장하면서 임신중지 자유는 반대하는 보수의 역설…진보와 보수를 생물학적으로 정의해본다면 해답은 ‘뇌’에 있어
다양한 연구 결과 보수 성향일수록 편도체 부피가 크고 더 많이 사용돼…편도체가 클수록 기성 체제 옹호하고 더 쉽게 혐오 반응
교감신경 활성화 통해 공포·불안을 주관하면서 생존 투쟁에 관여하는 편도체…확증편향이 보수주의자에 많은 것도 그 때문
정치적 신념 혹은 성향은 분열에 가까운 심각한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된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3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서조차 정치적 분열이 더 첨예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소셜플랫폼이나 알고리즘 등으로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술적 접근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실상 들여다보면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를 정확히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전적 의미로만 볼 때 보수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현재의 체제, 제도, 관습을 보존함으로써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며, 진보는 변화를 지향하며 현재의 체제, 제도, 관습을 개혁하고 혁신함으로써 발전을 추구하는 가치관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계속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디까지가 전통인지 선을 그을 수도 없으며, 보수가 변화를 거부한다고 볼 수도 없다. 2022년 미국 사회를 뒤흔든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에 관한 판결은 1973년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50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 번복 판결로 미국에서는 이제 개별 주의 결정에 따라 임신중지를 금지할 수도 있게 되었다. 과거에 내려진 대법원 판례를 이렇게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서,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려는 보수가 아니라 급진적인 개혁을 원하는 진보의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판결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내린 것이며 이는 보수주의가 취하는 임신중지 반대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다른 예를 경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보수가 지지하는 자유시장과 민영화, 기업·자본 친화적 입장은 전통적 가치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현재 진보 경제의 이념이 노동 가치설을 내세우고 지주에 비판적이었던 고전학파와 유사하며, 이러한 고전학파의 전통을 깨고 나타난 신고전학파의 철학이 현재의 보수적인 경제사상과 가깝다. 현재의 보수 경제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20세기 후반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 정부 시절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새로이 등장했다. 이 2가지 사례만 보아도 보수와 진보가 변화를 거부하거나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선재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경제(자유시장 vs 사회복지), 교육(엘리트주의 vs 평준화), 국방(국가안보 vs 평화주의), 임신중지 허용(반대 vs 찬성), 동성애 및 동성혼(반대 vs 지지), 이민정책(폐쇄 vs 개방), 총기 소지(찬성 vs 반대), 과학기술(불신 vs 옹호), 종교(종교적 vs 무신론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서 보수와 진보는 각기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개인에 따라 특정 사안에 관한 입장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주제에 걸쳐 나타나는 이러한 일관성은 놀라울 정도다. 서로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주제를 두고 입장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둘로 나뉘며, 각 진영 내 많은 사람의 의견이 일치된다는 것은 두 이념 안에 내재된 궁극적인 가치가 있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 신념에 따라 사안별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가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 혹은 가치관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외치는 ‘자유’가 보수 이념의 가치일까? 경제 영역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보수주의자들이 개인의 임신중지 자유나 성적인 취향의 자유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미국에서 프로 초이스(pro-choice), 즉 임신중지할 선택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다. 그리고 국가안보와 강한 군사력을 중시하는 태도나 이민자들에 대한 배타성, 과학에 대한 불신, 종교적인 성향 등은 자유라는 가치를 옹호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우리나라 보수가 반공을 외치는 동시에 개신교적이며 친일, 친미 성향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안별로 진보의 입장을 살펴봐도 정확한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과학기술에 우호적인 진보 진영 사람들은 왜 총기를 규제하자고 주장하며, 사회복지와 교육 평준화를 외치고, 임신중지나 동성결혼을 지지하는가? 현재 진보로 지칭되는 사상적 조류에는 공산주의를 포함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해방신학 등이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의 신조를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만일 사회과학으로 규정하기가 어렵다면 항상 확실한 정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연과학의 관점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인간의 모든 인지 기능이 사실상 진화의 산물임을 고려할 때, 정치 성향 역시 ‘모태에서 타고나는’ 생물학적 속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전학자와 뇌신경과학자들은 이미 정치 성향에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데, 그 결과들을 종합하여 생물학적으로 보수와 진보 이념을 정의하는 것이 3번에 걸친 ‘모태 보수, 모태 진보’ 시리즈의 목표다.
진보와 보수 간 생물학적 특성의 차이를 실제로 측정한 최초의 연구들 중 주목할 만한 것들이 2007년 ‘네이처 신경과학’ 저널과 2008년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2007년 연구에서는 평상시와 다른, 즉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을 때 진보와 보수로 분류된 사람들의 뇌가 일으키는 반응이 실제로 뇌전도 측정 결과에서 차이를 띤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8년 연구에서는 근전도 및 피부전도 검사를 사용, 갑작스러운 소음이나 위협적인 시각 자극이 주어졌을 때 근육과 피부에서 측정되는 교감신경 반응이 여러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는데, 즉 보수적 입장인 사람들에게서 교감신경 활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교감신경 중추는 편도체라는 뇌 기관이므로, 정치적 성향에 따라 편도체의 크기나 활성을 실제로 비교측정한 연구들이 이어졌다. 먼저 2011년 연구에서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뇌 구조를 살펴본 결과, 진보적 성향이 강할수록 전측대상피질의 회색질 부피가 큰 반면에 보수적 성향이 강할수록 편도체의 회색질 부피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2013년 연구에서는 위험이 동반된 의사결정 과제를 수행하는 참가자들의 뇌를 기능성 MRI(fMRI)로 검사한 결과 보수 성향이 강할수록 편도체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2년에는 fMRI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사람의 정치 성향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는데, 역시 편도체가 예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편도체는 공포 및 불안의 감정을 주관하며 생존 투쟁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우리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편도체로 전달되고 위험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 신호는 시상하부를 통해 부신을 자극하여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아드레날린은 그 유명한 싸움-도주 반응을 주관하는 교감신경을 활성화한다. 싸움-도주 반응이란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갈 것을 준비하는 생리적 과정을 일컫는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숨이 가빠지며 심장은 쿵쾅거리고, 더 많은 포도당이 근육에 공급되며, 근육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수축되고, 동공은 확장되고 청각은 더 예민해져 위급한 상황을 잘 포착하게끔 도와주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소화기능은 정지되며, 침이 적게 나와 입속은 바싹 마르고, 필요 없는 물질을 방출하기 위해 대변이나 소변을 보고 싶어진다. 과거 죽음의 공포와 위협에 대처하고자 개발된 전략이지만, 현대인들은 각종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동일한 생리적 현상을 겪게 된다. 청중 앞에서의 발표나 공연, 중요한 면접 등을 앞두고 자꾸 물을 찾게 되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다.

존 조스트, 마자린 바나지
중요한 것은, 바로 지난 회 ‘똥과 두려움의 상관관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존을 위해 발달된 진화적 전략으로서의 공포는 결국 혐오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편도체와 교감신경이 더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 더 쉽게 혐오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실제로 2만5588명 미국인과 121개국 54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보면, 혐오 자극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보수정당 후보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이민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나 동성애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이렇게 설명된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또한 혐오는 편견이나 고정관념과 결합하여 경계 대상에 대한 재빠른 분류와 판단을 하게끔 만든다. 신속한 판단을 내릴 때는 자신의 생각을 반추하고 검토하는 행위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필요하다. 과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저널리스트인 크리스 무니는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진보 성향 사람들에 비하여 보수주의자들에게서 확증편향에 기반한 사고방식이 더 자주,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실제로 입증한 연구가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발표되었다. 연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장 활발히 공유된 5000개 기사를 통해 참과 거짓으로 구분된 20개 정치적 진술을 도출해낸 후, 미국인 1204명을 대상으로 각 진술을 참이라고 믿는 경향을 측정하여 여러 가지 변수와 함께 분석하는 통계 모델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보수 성향 사람들이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에 따라 보수 진영 입장을 대변하는 거짓 정보가 더 많이 유통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사회과학으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보수와 진보를 생물학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로서 편도체와 교감신경에 관해 살펴보았다. 미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으로서 새로운 기술이나 정책 혹은 외부 영역에 있는 사람들, 즉 이민자, 외국인,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경계심과 혐오, 그리고 확증편향은 교감신경 중추인 편도체에 의해 매개된다.: 2023.12.12
값비싼 신호로 변질된 번식 경쟁…화려한 뽐내기만 남았다
⑦ 유한계급이 된 호모 루덴스

수컷 공작이 꼬리를 펼쳐 화려한 무늬를 과시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은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 비해 크고 화려한데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번식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진화의 결과이다. 위키피디아 코먼스
수사자 갈기, 공작 꼬리, 남성들 ‘큰 동물 사냥’은 모두 자신이 건강하다는 걸 알리기 위한 과시 행동
암컷이 위장 신호에 속아 짝짓기 하면 자식들 생존율 낮아지고 도태할 수밖에 없어
번식도 않으면서 경쟁심리에 쫓겨 발버둥치는 현대인들, 차라리 진짜 번식을 하는 편이 승리하는 길은 아닐까
본 연재의 세번째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 소개한 ‘브루스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강한 수컷이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이고 암컷을 차지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랑구르원숭이의 유아 살해 행동이 처음 보고되어 학계에 충격을 준 이후로 다양한 포유류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것이 광범위한 현상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예를 들어 떠돌이 수사자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무리를 지배하고 있는 수컷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면 새끼 사자들을 전부 몰살한 후 빼앗은 암컷들과 하루에 수십회씩 교미를 한다. 유아 살해를 하지는 않지만 코끼리물범의 경우 암컷의 5배가 넘는 체중을 지닌 수컷들은 짝짓기 철이 되면 한쪽이 피를 흘리거나 쓰러질 때까지 몇 시간씩 격렬하게 싸우며 승자는 50마리 넘는 암컷을 거의 혼자 차지한다.

나폴레옹 샤농 | 아모츠 자하비 | 소스타인 베를런 | 요한 하위징아(왼쪽부터)
인간 사회에서도 번식 경쟁이 분쟁과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 알려진 데는 저명한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뇽의 영향이 컸다. 그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 사는 야노마모 족과 지내며 기록한 내용에 의하면, 이 부족에게 여성은 하나의 비싼 상품이며 여자를 살 수 있는 자원이 되는 열매 하나를 놓고도 폭력이 동반되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탓에 40세쯤 되면 부족의 3분의 2가 살인으로 가까운 친척을 잃는다. 마을끼리 전쟁이 벌어지면 여자들은 어김없이 강간을 당하거나 결혼을 위해 납치를 당했으며, 마을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분쟁의 원인은 주로 간통이었다.
샤뇽은 진화론적 관점을 인류학 연구에 도입한 최초의 인류학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문명과 전쟁>이라는 방대한 저서에서 아자 가트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샤뇽의 관점을 지지한다. 특히 다른 여러 수렵채집 사회의 자료를 제시하며 일부다처와 같은 사회적 제도나 여아 살해로 인한 남녀 성비의 불균형과 같은 상황이 남자들 간의 이러한 번식 경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이러한 직접적인 무력 경쟁 말고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동물의 세계에서 거의 예외없이 수컷은 크고 화려하며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새들의 지저귐, 수사자의 갈기, 길고 화려한 수컷 공작의 꼬리, 사슴의 크고 아름다운 뿔, 마치 화장이라도 한 듯 적색·청색·백색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맨드릴의 얼굴 등이 그런 예들이다. 특히 새들의 돋보이는 화려한 색,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공작의 꼬리나 사슴의 뿔, 그리고 포식자를 만나도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는 톰슨가젤의 대담한 행동 등은 생존에 불리한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광고하는 과시 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의 동물생태학자 아모츠 자하비 교수가 제안한 ‘핸디캡 이론’에 기반해서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라고 불리는데, 이는 진화생물학에서 널리 입증되어 있다. 과도한 과시 경쟁으로 3.5m나 되는 큰 뿔을 가지게 된 아이리시 엘크는 생활환경이 숲으로 덮여가면서 생존에 심각한 문제를 겪다 결국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 신호들은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정직한 신호’다. 만약 이 신호가 거짓이며 암컷이 이 위장 신호에 속아 짝짓기를 하게 된다면 거기서 태어난 자식들의 생존율은 낮을 것이고 결국 이러한 거짓 신호는 진화 과정에서 도태된다. 수컷 공작의 경우 꼬리에 많은 무늬를 가지고 있고 과시 행위를 많이 하는 수컷들이 혈액 수치로 볼 때 면역학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감염과 비슷한 염증 반응을 유도해보면 전체적으로 과시 행위가 줄어드는데, 이때도 꼬리의 무늬 개수가 많은 수컷들은 이러한 감염 반응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의 과시 행위를 유지한다. 수컷 공작의 꼬리는 그야말로 ‘정직한’ 신호로 작용하는 것이다.
번식 경쟁 속 인간의 과시적 행동의 한 가지 좋은 예가 남자들의 사냥이다.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수렵채집 사회는 인류의 조상들 행동 양식을 알 수 있는 좋은 모델인데, 인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이런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양상 중 하나는 남성들이 큰 짐승을 사냥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렇게 큰 사냥감을 얻게 되면 자기 가족들뿐 아니라 집단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통계치를 보면 훌륭한 사냥꾼의 가족들이 다른 가족들보다 고기를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이들 사냥꾼의 죽음이나 이혼이 아이들의 생존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인류학자들은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큰 동물을 사냥하여 나누어 주는 남자들의 행동을 바로 ‘값비싼 신호’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파라과이의 아체 족과 탄자니아의 하드자 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뛰어난 사냥꾼이라는 평판이 있을수록 더 인기 많은 여성과 결혼한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생식 성공률도 높게 나타난다. 또한 훌륭한 사냥꾼일수록 여자들이 아기를 임신했던 시점에 남편 외에 관계를 가졌던 상대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나이든 남자들의 경우 젊은 여자와 결혼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두 번째 가정을 꾸렸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남자들 스스로도 사냥 기술이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포식자를 만났을 때 팔짝팔짝 뛰는 톰슨가젤.
농경사회로 접어든 이후로는 자연적으로 가용한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제학적 노동과 생산이 이루어지고 거기서 비롯된 잉여가치의 착취를 통해 본격적인 과시와 신분 향상의 추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권력자들이 누렸던 온갖 장식물과 사치스러운 생활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왕이나 귀족들이 입었던 휘황찬란하고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입고 벗고 세탁하는 데에도 많은 하인이나 신하가 필요했을 터인데 이는 공작의 꼬리나 사슴의 뿔과 같은 ‘값비싼 신호’를 연상케 한다. 권력자들은 실제로 많은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 다양한 인구 집단의 유전체에서 X 염색체와 상염색체에서 나타나는 유전 변이의 다양성을 조사해보면 X 염색체에서의 변이가 상대적으로 높게 일어난다는 것을 통해 인류의 역사에서 일부다처가 지배적인 생식 형태였임을 알 수 있다. 아시아나 유럽 현대인들의 Y 염색체를 조사하여 칭기즈칸, 청나라 태조, 아일랜드 왕조의 혈통 등 권력자들이 남긴 유전학적 발자취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밝힌 연구들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을 수백명 낳았다고 알려진 칭기즈칸의 DNA는 불과 1000여년, 즉 30여세대 만에 무려 1600만명의 남성에게 전해진 것으로 파악된다.
근대사회로 내려와보면 1899년 출간된 고전 <유한계급론>에서 소스타인 베블런이 낱낱이 파헤친 미국 사회에서의 소비 행태가 있다. 유한계급의 원어 표현은 ‘leisure class’로서, 여가 및 유흥을 즐길 수 있는 한가로움이 있다는 의미로 ‘유한(有閑)’이라 번역되었다.
베블런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여가를 즐기는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소비와 유흥의 궁극적인 동기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이를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불렀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모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의 집 근처에 저택을 지어 매일 떠들썩한 파티를 벌이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었다. 개츠비의 부도덕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바로 이 로맨틱한 사랑인데 그 생물학적 본질은 다름아닌 번식욕이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요즘 사람들이 자동차를 선택할 때 승차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차에서 내릴 때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 즉 하차감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비교의식과 경쟁심리가 따른다. 코넬 대학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 경제행동의 근본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상대성이다. 예를 들어 옆 사람들이 연 5억원을 벌 때 2억원을 버는 곳보다 주변에서 평균 5000만원을 벌 때 1억원을 버는 환경이 더 만족스럽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정서적 반응을 연구해보면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금메달과 비교하여 실망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동메달리스트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과 비교하여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프랭크 교수의 비유대로 우리는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일 때보다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일 때 더 행복하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에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올리는 현대인들을 보면, 어느 유명한 맛집이나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느 휴양지에서 어떤 옷을 입고 휴가를 즐기며,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서 살며, 어떤 성공한 사람이나 유명인을 만나고, 어떻게 몸매를 과시해야 나의 재력과 성취와 사회적 지위와 훌륭한 유전적 자질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유전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경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행동들을 부추기는 우리 몸 안 유전자들의 번식 욕구를 우리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유전자의 아바타가 되어 그 의도는 모른 채 감정적 만족이라는 당근으로 조종을 받을 뿐이다. 일부 노골적인 젊은 남성들을 제외하면 비싼 차를 몰면서 실제로 짝짓기 기회를 엿보지는 않는다. 다만 값비싼 자동차 자체로 뿌듯한 하차감을 누리며 사회적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놀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수하게 자유로운 행위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의 치열한 번식 경쟁은 놀이조차 ‘값비싼 신호’로 변질시켰다. 잘 놀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부와 능력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 것이다. 심지어 잘 노는 것을 과시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것이 오늘날 프로스포츠와 연예, 대중예술의 세계다. 이렇게 호모 루덴스는 자신의 번식 경쟁력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유희를 즐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유한계급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게다가 많은 호모 루덴스들은 오직 자기 인생을 최대한 즐기는 것만을 지상과제로 삼아 자식도 낳지 않는다.
이들의 과시적 여가와 소비 행위는 실은 번식을 위한 유전자들 욕구의 발현인데, 실제로 번식은 하지도 않으면서 번식을 목표로 발동되는 가열찬 경쟁 심리에 쫓겨 발버둥치는 괴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의 유혹에 저항할 수 없어 이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겠다면, 가진 돈을 낭비해가며 변죽만 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진짜 번식을 하는 편이 승리하는 길은 아닐까. : 2024.01.25.
충성심 높고 복종적인 개, 권위에 저항하는 과학…과학은 개가 아니다
⑧ 정치적 인간의 진화와 과학
2022년 5월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는 사진(왼쪽). 지난 16일 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경호원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적 영장류학자 랭엄이 역설한 인간 도덕 이중성은 진화 과정서 나와…사람은 언어를 통해 정치집단을 구성하고 사회적 규범 형성
야생 공격성 거세되고 권위에 복종 체화한 이들 업고 탄생한 근현대 ‘폭군’ 지도자들…스탈린·히틀러 모범적이며 동물애호가 면모 보여
대통령 한마디에 잘려나간 R&D 예산, 항의한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퇴장’…대통령 곁엔 심기 살피는 ‘우익 권위주의’형 인간들뿐인가
본 연재의 첫번째 글에서 소개했던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가 쓴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은 인간 도덕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책이다. 랭엄 교수가 펼친 “인간은 가장 악하기도 하고 가장 선한 동물이기도 하다”라는 역설적인 주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두 가지 공격성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반응적 공격성은 상대의 위협이나 공격에 대한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대응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야생의 동물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이다. 그러나 개, 소, 돼지, 닭같이 소위 가축화된 동물들은 유순하게 진화되어 반응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의한 가축화 과정에서 공격성이 높은 개체들이 선별되어 버려졌기 때문이다. 즉 자연선택이 아닌 인위적 선택에 의한 진화를 통해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이다. 한 예로, 카이스트의 우리 연구실에서 공격성에 관하여 연구했던 ADRA2C라는 유전자는, ‘네이처’에 발표된 스웨덴 웁살라 대학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닭이 가축화되는 과정에서 강한 진화적 압력을 받은 유전자 중 하나였다.
반면 주도적 공격은 사전에 모의되고 냉정하게 계획되어 이루어진다. 유인원 중에서는 주로 인간과 침팬지가 연합을 이루어 주도적 공격을 상습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랭엄의 연구에 따르면, 수렵채집 시대의 인간사회에서는-동물의 세계에서 소위 ‘알파 수컷’과 비슷한-강력한 공격성을 가진 지배적인 ‘알파 남성’에 대항하여 ‘베타 남성’들이 힘을 합해 이러한 형태의 공격을 가하곤 했다. 이렇게 알파 남성을 처단하는 과정이 오랜 진화 과정에서 반복되면서 반응적 공격성의 유전자는 점차 인간집단 내에서 사라져갔다.
이러한 연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마도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랭엄은 인간이 충분히 복잡한 언어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 상호 간에 믿을 수 있는 연합을 결성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정치집단의 탄생을 이루어냈고, 이들에 의해 반사회적 행동으로 규정된 행위에는 사형이나 추방과 같은 처벌이 내려졌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사회적 제도가 발전해왔다. 알파 남성이 지녔던 제한적인 권력이 이제는 정치집단의 무제한적인 권력으로 대체되었고, 전쟁, 학살, 탄압, 착취, 억압 등 집단 외부와 내부를 향한 권력의 남용이 본격적으로 자행되기 시작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은 가축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길들여 정치와 제도에 복종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인간의 근현대 역사에 등장한 폭군과 같은 정치 지도자들도 알파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정치집단을 등에 업고 주도적 공격성을 발휘한 이들이었다.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던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교도소에 있는 동안 상당한 모범수였다고 전해진다. 항상 조용히 규칙을 따랐으며, 화를 내고 소리 지르거나 욕을 하는 법도 없었다고 한다. ‘킬링 필드’로 악명 높은 캄보디아의 독재자 폴 포트 역시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기억된다. 유대인 수백만명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그의 비서 트라우들 융게에게는 쾌활하고 친절한 마치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굉장한 애견인이자 동물 학대를 혐오하는 채식주의자로서, 최초의 현대적인 동물보호법까지 만든 사람이 바로 히틀러다. 개를 특별히 좋아하는 정치 지도자로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개 식용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 결국 임기 중에 개 식용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흥미롭게도, 반려동물로서 개를 선호하는 것에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을 중심으로 많이 보고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10개 주 중 7개 주(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오클라호마, 아칸소, 네브래스카, 아이다호, 미시시피)는 미국에서 반려견 소유 비율이 높은 주에 속한다. 반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이 가장 낮은 10개 주 중 8개 주(버몬트,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뉴욕, 일리노이,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뉴저지)가 미국에서 반려견 소유 비율이 낮은 곳이었다.
캐나다 요크대학 연구진은 ‘암묵적 연합검사’라는 심리검사 기법을 이용하여 정치적 성향과 반려동물 선호에 대한 더욱 상세하고 정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 결과, ‘우익 권위주의(Right Wing Authoritarianism)’라는 성향이 반려동물로서 개를 선호하는 것과 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심리와 연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우익 권위주의’란 정치심리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주로 권위에 대한 복종,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특히 이 성향의 사람들은 권위 있는 지도자나 기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지지를 강조하는데, 이러한 권위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성향이 충성심 높고 복종적인 개에 대한 선호와 독립적이고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에 대한 비호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좌우를 떠나 권위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행복을 저해한다. 권위주의가 강한 국가들이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유복하면서도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이 권위주의가 없는 나라라는 사실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지도자가 계속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를 집어삼킨 사건 하나가 바로 필자 주변에서 벌어졌다. 2024년 2월16일 카이스트의 학위 수여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 연설 중 한 졸업생이 일어나 “생색만 내지 말고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외치자, 비슷한 졸업식 복장을 한 다른 남성들이 곧장 달려들었다. 졸업생으로 위장한 경호원들이었다. 이들은 그 학생을 밀어서 넘어뜨린 뒤 팔다리를 들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든 탓에 학생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했고, 입마저 틀어막히고 말았다. 이 학생은 올해 수조원이 삭감된 R&D 예산에 항의하기 위해 손팻말만 들고 조용히 시위를 할 생각이었으나 팻말을 강탈당하자 할 수 없이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졸업생이 끌려나간 같은 시각, 카이스트 출신의 진보당 후보 또한 선거운동을 하다 대통령 이동 동선 근처라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진압당했다.
윤 대통령은 이 행사에 나타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고 말했지만, 정체도 없는 ‘R&D 카르텔’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예산을 삭감한 그 칼날은 다른 누구 못지않게 바로 이 학생들에게 향했다.
지난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도 지적했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저출산으로 겪게 될 생산성의 저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방편이다. 이번 R&D 예산 대규모 삭감은 외환위기 사태 때에도 연구비를 증가시켰던 대한민국의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로서, 결국 젊은 과학기술 인력의 이탈과 젊은층의 이공계 기피 등 되돌릴 수 없는 장기적 폐해를 유발할 것이다. 과학기술로 자원의 부재를 극복하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던 대한민국의 미래가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간 것이다.
카이스트 강동재 학부 총학생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R&D 예산은 연구를 위한 정부의 투자이자 약속이다. 그런데 이 예산을 줄인다는 건 결국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구나’ ‘이 학문에 대한 중요도를 높게 평가하지 않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는 사회 발전을 위해 연구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인데 (충분한 소통 없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 길에 남아있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많이 든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필자도 참여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의 포상 행사에서 이종호 장관을 대신한 축하 인사말도 가관이었다. 우리 모두가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으나 어려움 뒤에 밝은 미래가 있을 거라며, 젊은이들은 일부러라도 어려움을 찾아나서라는 격려 아닌 격려에 그곳에 있던 학생들이 피식거리며 비웃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통령의 근거도 없는 R&D 카르텔 한마디에 이렇게 졸속으로 대책을 내놓는 행정부나 민주사회에서의 평화적인 의견 피력조차 수용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과잉 강경 진압을 지휘하는 대통령실을 보노라면, 마치 가축화된 개와 같이 정치에 길들여진 인간 군상의 모습이 겹쳐진다. 평소에 개를 좋아하는 만큼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고 질서를 중시하는 ‘우익 권위주의’형 사람들만을 곁에 두는 탓일까.
그러나 과학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오늘날 자연과학과 공학이 다른 어떠한 학문보다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의 이러한 성공은 바로 권위에 길들여지지 않는 학문 체계에 기인한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으며 인간으로서의 과학자를 신뢰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도 절대적으로 신봉되지 않는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뒤집고 상대성 이론을 제시한, 전 세계 물리학계의 슈퍼스타였던 아인슈타인조차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고 말았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의 기념비적인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머스 쿤은 과학적 진보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 2024.02.21.
여전히 취약한 ‘출산선택권’…여성들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⑨ 철옹성 같은 4인 가족

지난해 어린이날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한 가족이 우의를 입고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전통적 가정상 강요하는 사회 압력이 여성들 출산과 양육을 당연한 희생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그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 여성은 결코 진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과 불굴의 의지, 용기로 얻어지는 것이며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온전하지 않은 이 세계에 완벽한 균형이란 없다. 암컷과 수컷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자연선택의 역사는 힘이라는 그 균형의 추를 수컷에게로 기울여놓았다.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진화생물학적 편견과 싸워온 페미니스트이자 저명한 인류학자 사라 블래퍼 허디는 자신의 책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이 인간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몹시 싫어한다. 그 결과가 여성에게 불리할 것을 짐작하여 알기 때문이다.” 이어 허디는 인류 역사에 모권사회가 지배적인 시기가 있었다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믿음은 인류학과 고고학의 증거들로 뒷받침되지 않는 환상일 뿐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폭로한다. 여성 우월의 모권사회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힘의 불균형. 인간과 동물의 보편적인 짝짓기의 비극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이 갈등의 근본 원인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암컷이나 수컷 한쪽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이 상대의 이익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태어난 자식이 생존하는 데 부모 중 어느 한쪽의 기여가 필수적인 경우, 결국 아비와 어미 중 누가 먼저 양육의 책임을 저버리고 더 많은 자손을 만들 기회를 찾아 다른 상대를 찾아나설지에 대한 싸움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많은 종의 경우 결국 수컷이 아예 떠나버리거나 혹은 최소한의 투자로 여러 살림을 꾸리는 것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총, 균, 쇠>의 저자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실은 생리학을 전공한 진화생물학자다. 그는 번식과 양육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이렇게 수컷의 승리로 종결된 이유, 즉 암컷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첫째,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수정란에 그동안 투자한 정도가 암컷이 월등히 높다는 점. 둘째, 암컷은 임신 및 수유 기간 동안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더라도 임신이 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짝을 통해 얻게 되는 이득이 없다는 점. 셋째, 암컷의 몸 안에 있는 새끼가 자신의 것인지 수컷으로서는 암컷과 동등한 수준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책 <섹스의 진화>에서 다이아몬드는 도덕적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간 대신에 널리 연구된 알락딱새를 예로 들면서, 어떻게 수컷들이 교활한 방식으로 암컷을 속여가며 일부다처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묘사한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떠안은 만큼 암컷은 ‘권리’라는 무기로 그나마 대항할 수 있었다. 자연세계에서 암컷에게 주어진 권리는 바로 짝짓기 선택권이다. 지난 글 ‘유한계급이 된 호모 루덴스’에서 설명했듯이 수컷은 생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값비싼 신호’를 발달시켜 암컷에게 절박한 구애를 한다. 그리고 어느 수컷을 선택할 것인가는 암컷의 몫이다. 번식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암컷이 수동적인 경우는 거의 없고 암컷의 선호도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식활동은 사실 암컷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볼 수도 있다.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 리처드 프럼은 그의 책 <아름다움의 진화>에서 수컷 새들의 세계에 넘쳐나는 아름다움은 바로 미적 감각을 활용한 암컷의 짝짓기 선택권에 의해 진화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물론 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42㎝의 거대한 페니스를 자랑하는 수컷 오리들은 이미 짝이 있는 다른 암컷과 강제 교미를 감행하고 때때로 윤간도 시도한다. 그러나 그런 오리조차도 어떻게든 암컷의 선택권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는 암컷의 질 구조는 반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는 수컷 페니스의 반대다. 수컷이 강제 삽입하더라도 수정이 될 만큼 깊이 진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암컷이 편한 자세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수컷의 정자는 난자 가까이 도달하기 힘들다. 실제로 다수 오리 종을 대상으로 한 친자확인 검사 결과, 강제 교미를 통해 탄생한 새끼는 2~5%에 불과했다. 암컷 오리가 하는 전체 교미 중 40%가 강제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원치 않는 임신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사라 블래퍼 허디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은 사회와 문화를 형성해가면서 남녀의 진화적 줄다리기에 인위적인 제도를 개입시키기 시작했다.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결혼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계약을 넘어 이들 주변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작동하는 남자들 간의 거래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을 상품화하고 그 상품의 주인인 다른 남성에게 값을 지불하여 여성을 사오기 시작함으로써, 남자들은 자존심 상하는(!) 구애 행위를, 당당한(!) 거래 행위로 바꾼 것이다. 이것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인간만의 특징이다. 지금도 현대사회의 결혼식을 보면 아버지가 딸을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는 풍습이 남아있듯이, 대다수의 과거 인간 사회에서 남자들은 아내를 사기 위해 직접 돈을 지불하거나 노동을 했다. 게다가 여자가 임신을 못하여 자녀를 생산해주지 못하는 경우, 즉 그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환불을 요구하거나 여동생이라는 새 상품과의 교환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딸이 있는 집안에서는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딸의 평판과 자질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특히 신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베일을 사용하고 외부와 철저히 격리시키는 등 극도로 엄격한 윤리제도를 만들어 순종을 강요했다. 결혼과 함께 집을 떠나 남자의 고향으로 가야 했던 관습 역시 여성들이 가까운 도움에서 단절된 채 시댁식구의 감시 속에 극단적으로 제한된 자유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 여성의 정절을 지키게 하기 위한 남성들의 노력은 이런 차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남성의 할례와 달리 클리토리스의 제거는 성적인 쾌락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 충격적인 관습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여성의 미라를 보면 당시 클리토리스 제거와 음순봉합이 모두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현대화된 혹은 문명화된 사회들에서는 최소한 여성의 짝짓기 선택권은 남성과 동등하게 확보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문제는 결혼 제도와 사회적 관습에 있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무리 지어 다니는 여자들보다 4인 가족이 더 꼴 보기 싫어. 그 철옹성.” 철옹성 같은 4인 가족.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가장 모범적인 혈연 가족의 형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통적인 가정상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이 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마땅하고 당연한 희생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따라서 그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7월 기사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결혼 풍조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유교적 전통하에서 여전히 결혼은 지배적인 남성과 순종적인 여성의 결합으로 이해되고 있다며, 한국에서 기혼 여성을 집사람(home person), 남편을 바깥양반(man outside)이라고 칭하는 풍토를 꼬집기도 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전통적 가치관이 직장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여성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큰 남녀 간 임금 격차를 감내하고 있다. 고임금의 전문직 여성들조차, 남편이나 그의 가족 구성원들 혹은 문화적 억압으로 인해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주익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아내가 남편보다 더 많이 벌게 되는 시점부터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아내가 남편보다 소득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 전통적 가치관을 벗어나는 일종의 일탈로 받아들여진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고소득 여성들이 더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할애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러한 유교 전통 국가들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전통적인 혈연 가족 외에 다른 형태의 가정이나 그 안에서의 출산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각국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행보는 그것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저출산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윤석열 정부는 비혼모를 포함하는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려 했던 이전 정부의 노력을 중단시켜버렸고, 시진핑 통치하의 중국은 유교 문화의 부흥을 외치며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있으며, 일본의 자유민주당은 동성 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등 결혼제도 개혁에 제동을 걸고 있다.
결국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의 대가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여성들의 싸움은 오랜 진화의 역사, 고대사회의 반인륜적인 관습을 거쳐, 일부 현대사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은 짝짓기 선택권만큼은 확보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사회적 지지와 지원 속에 출산에 대한 선택권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출산이나 혹은 아예 결혼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으며, 이것은 지난 글들에서 이야기한 과열된 경쟁과 교육열의 문제와 함께 인류 역사상 초유의 저출산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생물학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편이 아니다. 임신이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억력 감퇴와 인지기능의 문제가 뒤따른다는 보고도 많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임신 중에 사회인지를 담당하는 뇌 부위의 크기가 줄어드는데 이러한 뇌 구조의 변화가 출산 2년 후까지 지속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뇌세포 연결망의 가지치기를 통해 어머니의 뇌가 아이의 양육에만 특화되도록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즉 직업의 세계에서 볼 때, 출산을 거치는 여성들은 신체적으로뿐 아니라 인지기능과 사회성의 측면에서도 남성에 비해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생물학적 변화를 자연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군말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 오히려 생물학적 취약성에 대항하여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야말로 문명의 존재 목적이며 오늘날 우리가 자연이 아닌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니던가? 그동안 여성들이 사회적 관습에 의해 빼앗겼던 짝짓기 선택권을 쟁취해낸 것도 자연이 부여한 권리를 되찾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저 그것이 부당하기 때문이었다. 허디는 이렇게 말한다.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 여성은 결코 진화되지 않았다. 그것은 진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과 불굴의 의지, 용기로 얻어지는 것이며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문명사회라면 더 이상 이것이 여성들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4.03.20
성공한 이들의 ‘재능’은 축하로 충분…추앙하지는 말자
⑪ 복권당첨자 숭배하는 세상

프랑스 출신으로 세계 각국 팬들의 사랑을 받는 축구선수 킬리안 음바페(앞줄 가운데)와 한국 출신 이강인 등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이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툴루즈와의 경기가 끝난 뒤 프랑스 프로축구 1부 리그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유명한 스포츠스타와 가수 등이 벌어들이는 돈은 작은 나라 1년치 예산에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파리 | AFP연합뉴스
스타가 상상 초월 수입 얻는 건 그들 재능에 열광하는 군중 때문
돈·기회 ‘선점’한 스타급에 밀려 잠재력에도 기회 놓친 선수 많지만이런 박탈·착취는 쉽게 포착 안 돼
‘값비싼 신호’ 향한 욕망의 세상 ‘복권당첨자’ 의심 없이 숭배해 이를 ‘능력주의’로 정당화
땀·노력 대가 인정해야 하지만사회에 기여한 실질 가치 보상을
한국의 스포츠스타에 대한 기사를 보니, 해외로 진출한 어느 투수는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884만원을 받았고, 어느 축구선수는 1분을 뛸 때마다 313만원을 벌었다는 계산이 얻어졌다고 한다. 광고나 기타 수입 말고 연봉만 따진 것이다. 팬들은 아마도 그들의 빛나는 재능과 엄청난 양의 노력에 대한 찬사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많은 훈련을 소화한다. 다른 선수들의 수십~수백배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는 것이 수십~수백배의 훈련을 했기 때문일 수 없다.
스포츠스타뿐 아니라 유명 영화배우, 가수 등이 얻는 수입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노벨상 상금이 공동수상자 전체에게 10억원 남짓이라는 점이나 위대한 사상가들의 책값이 얼마인지를 생각한다면, 이들이 관중에게 제공하는 쾌감의 가격은 엄청난 사치로 여겨진다. 그에 비하면 구급대원, 식료품과 필수품의 생산과 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중교통이나 택배 기사, 탁아, 양로, 보육시설 등의 종사자들이 맡고 있는 이 사회에 필수적인 일들은 거의 공짜로 제공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의사들의 필수성을 생각할 때, 최근 정부의 졸속 행정으로 불거진 의정갈등에서 보인 의사들의 연봉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반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극단적인 예로, 가사 노동은 인간의 생존과 사회의 재생산에 갖는 필수성에도 불구하고 아예 무보수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에서 매겨진 가격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보는 자유시장 경제의 결과다.
이렇게 무분별한 시장가격을 매기는 이들은 다름 아니라 바로 성공한 이들의 재능에 열광하는 군중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포츠나 연예계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는 진화적인 이유가 있다.
환호의 대상이 되는 육체적 능력, 외모, 예술성은 지난 글 ‘유한계급이 된 호모 루덴스’에서 예로 든 동물의 세계나 원시 인간사회의 ‘값비싼 신호’를 연상케 한다. 새들의 지저귐과 화려한 색, 수사자의 갈기, 길고 화려한 수컷 공작의 꼬리, 사슴의 크고 아름다운 뿔, 화려한 맨드릴의 얼굴, 톰슨가젤의 대담한 행동, 수렵채집인의 사냥 기술 같은 것들 말이다. 결국 짐승이나 원시인들과 아무 다를 바 없이 현대인들도 비슷한 종류의 ‘값비싼 신호’에 열광하며 기괴한 시장 수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스포츠나 예술에는 특출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많은 부모들은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과거에는 없었으나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값비싼 신호’ 중 하나는 바로 학력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업 역시 예술이나 스포츠 못지않게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다.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유전인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는 유수 국제학술지들에 여러 편의 논문으로 발표되는 등 유전학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등이 주도한 한국인에 대한 연구에서도 유전자의 영향력이 밝혀져 2023년 ‘네이처 인간행동’에 발표되었다. 이러한 연구의 선구자 중 하나인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캐스린 하든 교수는 한 인간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학력이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있다는 사실을 빗대어 ‘유전자 복권(genetic lottery)’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물론 성공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재능만이 아니다. 소위 집념, 끈기, 열정 등으로 번역되는 ‘그릿(grit)’이나 지적 호기심, 성장하고자 하는 동기 혹은 좋은 성적을 얻고자 하는 욕심과 같은 ‘비인지적(noncognitive)’ 자질도 중요하다. 그러면 이런 자질들은 유전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순수한 후천적 노력의 영역일까? 하든 교수는 인지능력에서는 비슷한 점수를 보이지만 교육성취도에서 차이가 났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질문을 다루었다. 결론적으로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유전학적 변이의 57%가 비인지적 자질들에 의해 설명된다.
본 연재의 두번째 글 ‘위대한 동물,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생태학적 착취와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경제학적 착취 역시 제한된 자원과 기회를 단지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선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스타급 선수들은 가장 먼저 연봉협상에 나서 구단이 줄 수 있는 돈의 가장 큰 부분을 선점하게 된다. 이들에게 밀려 어쩌면 더 많은 훈련을 수행하고 더 높은 잠재력을 지니고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을 것이다. 인기 배우들에게는 좋은 작품의 주연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이 돌아가며, 인기 가수들은 훌륭한 곡을 받고 뛰어난 음반제작사들과 작업할 기회를 차지할 수 있다. 2021년 국세청 자료를 보면 상위 1% 가수들의 1인당 소득은 38억원으로서 나머지 99%의 1인당 소득 1100만원의 345배에 달했다. 운동선수의 경우도 상위 1%의 1인당 소득이 하위 99%의 100배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회 박탈 과정이나 경제학적인 착취와 같은 것이 인간의 인식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당장의 이익이나 손실은 쉽게 눈에 띄지만 그것이 집단 내 다른 누군가의 손실이나 이익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잘 인지되지 않는다. 어째서 착취를 행하는 자나 당하는 자들마저 이 과정을 이토록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우리 모두는 가치를 생산해낸다는 경제학적 관념 없이, 오직 자연에 존재하는 자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해왔다. 따라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집단 전체 가치의 양과 거기에서 내가 취해가는 부분의 양에 대한 균형을 맞추는 도덕적 판단 기제와 그에 상응하여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자기조절 행동을 진화시키지 못했다.
영국의 동물학자 윈 에드워즈는 집단 전체를 위해 스스로의 번식률을 감소시키는 등 동물 개체의 자기조절 능력이 있고, 이것은 집단 수준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의 결과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이타적인 개체들이 많은 집단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논리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집단선택설을 대변하는 것인데, 가장 흥미롭게 사용된 예시는 레밍이라고도 불리는 나그네쥐들의 소위 집단자살 현상이었다. 엄청난 번식력을 가진 이 쥐들은 몇년에 한 번씩 수천 마리가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는데, 집단선택론을 지지하던 학자들은 개체군의 밀도가 너무 높아지거나 먹이가 부족하게 되면 늙은 쥐들이 후손들을 위해 스스로 떨어진다는 추론을 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 떼죽음의 이유는 먹이를 찾아 우르르 몰려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벼랑 끝에서 멈추지 못하는 데다 뒤에서 따라오는 다른 쥐들에게 밀려서 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만화가 게리 라슨이 풍자한 그림을 보면 함께 죽으러 가는 쥐들 사이에 구명 튜브를 하고 있는 쥐 한 마리가 있다. 결국 몇세대만 지나면 이 나그네쥐 집단은 구명 튜브 모습을 한 이기적 유전자가 지배하고 있을 것이고 집단자살이라는 현상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금세 사라지게 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전체 자원의 양과 집단 내 개체의 수를 인지하여 자기조절을 하는 유전자라는 것은 아예 없었거나 나타났어도 한두 세대 만에 소멸했을 것이므로, 애초에 생명의 역사에 집단자살과 같은 희생적인 현상 따위는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집단선택론의 모순은 이렇게 만화 한 컷으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벌이나 개미와 같은 소위 사회적 동물들이 예외적으로 보이는 이타적인 행동마저 유전학적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네번째 글 ‘유전자와 교육열’에서 소개한 ‘포괄적 적합도’ 및 혈연선택 이론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일개미의 경우 스스로 자식을 낳지 않으며 여왕개미와 다른 일개미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나누고 심지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미의 성 결정 시스템으로 너무나 잘 설명되는데, 한 여왕개미가 낳는 모든 암컷 자매들은 서로 유전자를 공유하는 정도가 무려 75%나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모와 자식 간의 근친도가 50%인데, 75%의 근연도라고 하면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보다 더 지극 정성으로 돌볼 수 있다. 즉 개미는 자신이 자식을 낳아 50%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후대를 기르는 것보다 어머니인 여왕개미를 도와 75% 근친도를 가진 자매를 계속 낳도록 돕는 것이 훨씬 이득인 셈이다. 불행히도 집단선택이란 일어날 수 없으며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조차 실은 혈연 이기주의일 뿐이다.
집단선택의 부재 속에 ‘값비싼 신호’를 향한 욕망이 낳은 세상에서 복권당첨자들은 숭배받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며 또한 숭배의 과정을 통해 착취해가는 가치의 정당성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이를 ‘능력주의(meritocracy)’라 불렀으며,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예일 대학의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는 <엘리트 세습>에서 이런 세태를 비판한다. 반면 소위 명문대라고 자부하는 K대와 Y대의 가을 축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부 젊은이들의 공정에 대한 관점은 기계처럼 공부만 해온 머리에서 나온 딱 그만큼이다. 서울캠퍼스 학생들은 본인들이 더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캠퍼스 학생들과 ‘명문대생’이라는 사회적 타이틀을 함께 누리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이들을 아예 다른 학교 학생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짝퉁’이나 ‘저능아’ 등 조롱과 멸시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런던 대학교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높은 교육 수준이 한 국가의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스위스 패러독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산업화된 나라인 스위스의 대학 진학률이 다른 잘사는 나라들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데, 이는 교육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하준 교수는 고등교육의 주된 목표가 생산성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의 전수보다는 피교육자들을 고용 시장에서 순위를 매기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등교육을 받고 높은 연봉을 받는 인력들이 많다고 해서 나라 전체의 생산성이 높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명문대생’들이 가치의 생산보다는 착취에 특화된 일들에 몰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노력할 수 있는 자세마저 유전자의 영역이라고 해서 좋은 위치로 가는 데 성공한 이들이 실제로 땀 흘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의 대가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경제학적으로’ 보상해야 할 것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자 달려간 노력이 아니라, 그 위치에서 노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한 가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복권당첨자들을 축하해주자. 그러나 숭배하지는 말자. : 2024.05.15.
보수는 세로토닌, 진보는 도파민…정치 성향 가르는 ‘유전자 변이’
⑫ 모태 보수, 모태 진보 <2>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야생하는 버벳 원숭이 가족.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이 보수적 성향의 기저에 있을 것이란 연구 결과가 있는데 실제로 버벳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계급이 높을수록 세로토닌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지배 계급 원숭이를 서열이 낮은 원숭이와 분리하면 세로토닌 농도가 낮아졌다가 복귀시키면 다시 높아지는 현상도 관찰됐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세로토닌이 활성화될수록 편도체 크기·기능 강화…동물실험서 사회서열과 높은 상관성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가 높을 때 동물들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행동 보여
페로몬과 연관돼 짝짓기 행동 정하는 유전인자도 주목…대체로 보수가 자녀 수 더 많아
‘모태보수, 모태진보’ 시리즈 첫번째 글에서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요인 중 하나로서 편도체의 역할을 지목한 바 있다. 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위험을 회피함으로써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진화적 본능에 충실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진화란 유전자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경우에만 작동할 수 있는데, 그 연구들은 뇌 구조나 신경생리학적 특성을 조사한 것으로서 직접적으로 유전자를 살펴보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편도체의 기능이 후천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은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않으므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편도체의 활성을 결정하는 유전 인자를 발굴한 ‘사이언스’ 논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연구에서 주목한 유전자 5-HTT는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에 분비되어 있는 세로토닌을 재흡수하여 세로토닌에 의한 신경 자극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해당 연구진이 발굴한 유전 변이는 5-HTT의 양, 그리고 세로토닌의 활성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요했던 결과는, 기능성 MRI(fMRI)로 측정한 편도체의 공포 반응이 해당 변이의 종류에 따라 다른 강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후 편도체의 반응성뿐 아니라 구조적인 크기 자체도 5-HTT 유전자 변이의 영향을 받는다는 보고도 뒤따랐다. 즉 편도체의 크기와 기능은 유전 변이의 영향을 받는데, 특히 세로토닌 활성을 높이는 변이가 편도체의 크기와 기능도 강화시킨다.

뇌 신호를 읽거나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인 브레인칩 위에 재구성된 도파민 생성 신경세포들(하얀색). 보수 성향을 상징하는 세로토닌과 반대로 도파민은 진보적인 성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국립보건원 제공
실제로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많은 연구결과들을 종합하여 세로토닌이 보수적 성향의 기저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즉 세로토닌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을 따르고 위험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이론적이고 복잡한 것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을 선호하며, 질서와 권위를 중요시하고 종교적 성향이 강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대로 피셔는 진보 성향을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로는 도파민을 지목했다. 도파민은 보상 회로를 주관하는 신경전달물질로서, 도파민의 분비가 높을 때 동물들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행동을 보인다.
여러 동물실험 결과 세로토닌은 특히 사회적 위계질서와 높은 연관성을 보였다. 예를 들어 수컷 버벳 원숭이들은 사회적 서열에 따라 세로토닌 수치가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지배 계급의 원숭이를 낮은 서열의 원숭이들에게서 분리해두면 세로토닌 농도가 금세 낮아지다 원래 있던 곳으로 복귀시키면 세로토닌도 다시 증가한다. 그리고 낮은 서열의 원숭이가 높은 계급으로 상승하는 경우 그에 상응하여 세로토닌 수치도 높아진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사회적 서열이 세로토닌 농도에 영향을 주는 것인지, 세로토닌이 지배적 행동을 유도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이어진 연구에서는 인위적으로 세로토닌의 양을 조절해 보았다. 즉 위에 설명한 5-HTT 유전자의 기능을 방해하여 시냅스상의 세로토닌 수치를 올리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낮은 계급의 원숭이가 지배적인 행동 양상을 보였다. 이 상태에서 반대로 세로토닌의 작용을 저해하는 약물을 투여하면 원숭이들은 더 이상 지배 행동을 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바뀐다.
사람의 경우도 세로토닌의 전구체인 트립토판을 식사와 함께 복용하면 지배적인 행동 양상이 증가한다는 것이 관찰되었고, 마카크 원숭이의 경우는 세로토닌을 분비하는 솔기핵의 크기가 사회적 서열이 높은 수컷들에서 더 크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나아가 세로토닌이 편도체의 기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사회적 서열과 관련해 편도체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네이처 인간행동’에 소개된 연구들에 의하면, 서열 게임에 임한 참가자들의 fMRI 분석 결과 사회적 서열을 학습하고 높은 서열을 획득하려는 동기가 부여되는 상황에서 편도체가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세로토닌의 활성이 높을수록 지배적이고 과시적인 행동을 보이며 이것이 사회적 서열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런 개체들은 번식과 자원획득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글 ‘유한계급이 된 호모 루덴스’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동물과 인간의 세계에서 과시 행동과 번식 경쟁은 매우 치열하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로토닌 유전자의 활성이 높은 것이 진화적으로 더 유리했을까? 어떠한 특성이 진화적으로 유리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불리했는지는 집단유전학의 방법들을 활용하여 추정할 수 있다.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변이라면 자연선택에 의해 계속 인구집단 내에 퍼져 나가는데 이럴 때 우리는 양의 방향으로 선택압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불리한 변이였다면 자연선택의 압력은 음의 방향으로 작용하여 이런 변이는 점점 사라져갔을 것이다. 어떤 유전자 변이는 상황에 따라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유리한 상황에서는 해당 변이가 점점 많아지다 상황이 바뀌면 반대로 다시 줄어들기도 한다. 이런 양상을 균형 선택이라고 부르며, 균형 선택을 받는 변이는 계속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빈도를 유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교감신경을 강화하는 변이는 어떠했을까? 교감신경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작동하므로, 교감신경의 활성이 강한 사람은, 스트레스는 받을지언정, 위험한 환경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변이는 양의 선택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본 연재의 첫번째 글 ‘야생 침팬지와 식용 개’에서 언급했던 교감신경을 강화시키는 ADRA2C 유전자 변이는 진화과정에서 양의 선택을 받은 예다. 카이스트의 우리 연구실에서 집단유전학 방법으로 수천명의 인간 유전체를 분석하여 얻은 결과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균형 선택을 받는 변이들이 기존에 보고된 것보다 인간 유전체상에 훨씬 많다는 것도 밝힌 바 있다. 균형 선택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MHC 유전자였다. MHC는 우리 몸에 침투한 다양한 병원균의 항원들과 결합하여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MHC는 그 변이의 종류에 따라 잘 대응할 수 있는 병원균의 종류가 다르고 때마다 유행하는 병원균이 다르므로, 어느 특정 변이가 항상 우세할 수 없다. 이런 경우 병원균의 유행 상황에 따라 해당 MHC 변이들은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면서 균형을 이루며 유지된다.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세로토닌 활성이 실제로 번식에서 유리했다면 세로토닌을 강화하는 변이는 집단유전학 분석에서 양의 방향의 선택압을 보여야 한다. 매우 흥미롭게도, 실제로 신경전달물질 유전자들을 집단유전학으로 분석한 결과, 세로토닌 전달체인 5-HTT가 일관성 있게 양의 선택을 받은 대표적인 유전자로 나타났다. 즉 높은 세로토닌 활성이 진화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집단유전학으로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관찰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양상은 도파민 수용체에서 보이는 균형 선택의 흔적이었다. 세로토닌 전달체인 5-HTT의 변이가 세로토닌의 활성에 중요한 것처럼, 도파민도 그 수용체의 변이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같은 양의 도파민이 있더라도 수용체가 도파민을 잘 감지하면 마치 도파민 분비가 높을 때처럼 그 활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네이처 유전학’에 출판된 2편의 논문에 따르면, 도파민 수용체 중 7R이라는 변이가 바로 그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경향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세로토닌 활성이 양의 선택을 받는 것과 달리 도파민의 활성이 균형 선택을 받는 이유는, 탐색하는 성향에는 늘 위험이 따르므로 개체의 생존에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 유전학 연구들에 따르면, 7R 변이는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최근에 발생했는데,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성향의 장점과 위험성의 공존으로 인해 균형 선택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정치 성향과 유전자 변이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해보니, 실제로 도파민 수용체의 7R 변이가 있는 경우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나열한 편도체, 세로토닌, 도파민에 대한 연구들은 인간의 정치 성향을 직접적인 뇌 기능에 기반하여 설명하기에 적합하였다. 사실 어떤 연구들은 이들의 정치 성향과의 연관성을 가설로 놓고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치 성향과 유전자 간의 관계를 아무런 가정 없이 순수히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접근하는 연구도 진행된 바 있다. 이러한 연구에서 편도체, 세로토닌, 도파민 등 뇌 기능과 직접 연관된 것들 외에 새롭게 발견된 유전 변이들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다양한 리포칼린과 후각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리포칼린은 몸에서 배출되는 화학 신호인 페로몬 그 자체로서 작용하거나 혹은 페로몬과 결합하여 작용하며, 후각수용체는 다른 개체에서 방출된 페로몬을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 논한 ‘브루스 효과’, 즉 자발적 유산은 새로 등장한 알파 수컷이 분비하는 페로몬에 대한 암컷의 생리학적 반응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 실험 결과 페로몬이 짝짓기 및 그와 관련된 경쟁 행동에 있어서 매우 광범위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보고된 연구들을 보면, 생쥐들의 후각수용체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경우 동성의 쥐를 대상으로 짝짓기를 시도하거나 암컷이 원래 수컷들이 하는 구애 행위를 하는 등의 이상행동을 하며, 수컷이 원래 보이는 경쟁 행위들, 즉 자신의 영역 표시나 다른 수컷에 대한 공격, 사회적 서열의 인지, 지배적 행동 등이 사라지게 된다. 특히 다른 수컷에 대한 공격 행동의 경우, 그 유발 인자가 바로 소변에 들어있는 리포칼린들이라는 결과가 네이처에 보고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짝짓기 행동을 결정하는 유전인자들이 정치적 성향과 연관이 있다면, 보수와 진보층 사이에서 실제로 번식률에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평생 가지게 되는 자손의 수를 측정하는 ‘생애 번식 성공률’이라는 지표는 특히 사망률이 낮은 현대인 집단에서 진화적 적합도에 대한 근사치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100개 국가의 15만2400여명, 유럽인 6만5900여명, 미국인 6200여명을 조사한 대규모의 연구에 따르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인 가정들이 진보적인 사람들에 비하여 유의하게 더 많은 자녀를 낳는 것으로 확인된다. 물론 현대인들의 자녀 수에는 가치관이 작용하겠지만, 두 진영 간의 이러한 극명한 차이에 위에서 발견한 유전학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로써 보수와 진보의 생물학적 차이를 설명하는 3가지 열쇠, 즉 편도체-교감신경, 세로토닌-도파민, 그리고 리포칼린-후각수용체를 모두 살펴보았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에서는 이 결과들을 종합하여 왜 진보와 보수가 여러 사회적 사안들에 관하여 그렇게 일관된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 2024.06.13.
공공성보다 사적인 번식에 집착하는 사회, ‘저출생 세대’를 낳는다
(13) 진짜 멋진 신세계

부모도, 자식도 행복하지 않은 한국식 ‘가족 사랑’은 아이 낳기 싫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유전자 기술과 인공자궁 기술을 감안하면 생물학적 생식과 가족이 없는 세상은 더 이상 가능성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은 인공자궁인 ‘팟’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공상한 영화 <팟 제너레이션>의 한 장면이다. 왓챠 제공
인간 유전자의 투자 전략은 부모·자식 사이에서 첨예…때론 번식 욕구가 사적 영역 넘어 공적 활동 잠식
공교육 삼키는 사교육 바탕에는 사적 번식 집착·과도한 자식 사랑…너도나도 ‘부의 축적’에 매몰
이런 사회를 반면교사 삼는 2세들은 출산 기피…헉슬리가 풍자한 ‘멋진 신세계’가 현실화할 수도
우리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무엇일까? 혹자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지배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기후위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종종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더 이상 자식을 낳고 싶어하지 않으며, 앞으로 더더욱 그럴 것이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출생률이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인 2.1명을 밑도는 나라의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여 현재 100여개에 이르고, 2100년까지 200개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에 따르면 소득, 교육, 노동력 참여 수준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출생률은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출생률 감소는 본 저자가 최근 출간한 <유전자 지배 사회>에서 상세히 묘사한 바와 같이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출산과 양육 역시 유전자의 냉철한 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누군가는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며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세계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 개념은 애당초 없기 때문에, 인간은 누군가 혹은 어떤 대의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다. 즉 번식 욕구와 배치되지만 않는다면, 특히 자식을 위해서라면, 유전자는 당신이 죽는 것을 말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유전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자원의 투자와 배분이다. 진화생물학자 존 홀데인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정도가 중요하다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형제 한 명을 위해서는 안 되지만 두 명 이상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사촌이면 여덟 명 이상이어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오해의 여지가 있다. 유전자의 세계에서 더 현실적인 표현은 “형제 한 명을 위해서 쓸 돈이 있다면, 사촌에게는 그중 4분의 1만 쓸 수 있다”일 것이다.
유전자의 투자 전략은 부모 자식 간에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다. 어머니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겠지만, 본인의 몸은 임신 중에 배 속의 자식과 포도당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으며, 부유한 환경이었다면 아들에게, 어려운 형편이었다면 딸에게 더 좋은 모유를 제공했다. 유전자의 조종은 생리학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의식에까지 미친다.
예를 들어, 부유한 가정에서는 아들이 딸보다, 가난한 가정에서는 딸이 아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받는다는 것이 통계로 드러난다. 그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가 결혼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고, 어려운 형편이라면 차라리 딸을 낳아 남자의 선택을 받게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자식 살해(filicide)’는 산업화된 사회를 포함하여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 걸쳐 발생한다. 특히 경제적 여건을 비롯한 주변 상황이 좋지 않거나, 아기가 기형이나 장애 등 결함이 있을 때, 그리고 아이가 어려 아직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나 어머니가 젊어 다음 임신 기회가 많을 때 살해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전학적으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아이들이 애지중지 키워지는 이유는 그들의 투자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한 가정의 아이 수를 10명 가까이로 늘리거나 어린이의 생존율이 매우 낮은 사회로 이주해서 살게 된다면 당장 이 말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 유전자의 번식욕은 문화에 의해 뒷받침되기도 한다. 한나 아렌트는 생물학적 생명 자체가 근대 정치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인간의 조건>에서 분석한 바 있다. 아렌트는 인간 사회에는 생물학적 욕구와 필요가 충족되는 사적 영역과,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인 공론 영역이 있다고 보았다. 사적 영역의 중심은 생계를 유지하고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가정이며, 공론 영역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 공간이었던 ‘폴리스(polis)’가 있었다. 그런데 정치 행위에 비해 자연 생명의 유지가 중요성에 있어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공적 영역은 쇠퇴를 거듭하게 되었다. 즉 모든 공적 활동이 생물학적 필연성을 충족하는 사적인 가정 영역으로 흡수되어, 결국 국가의 경제라는 것이 각 가족의 생계 유지와 ‘부의 축적’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미셸 푸코
이것은 근대의 ‘생명관리정치’ 혹은 ‘생체정치’로 이어진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1권 - 지식의 의지> 마지막 부분에서, 과거 전제군주의 권력이 백성을 죽임으로써, 즉 생살여탈권으로서 발휘되었다면, 근대에 이르러 이제는 생물학적인 생명과 국민의 건강이 권력의 핵심 문제로 부상했다는 통찰을 제시했다. 즉 근대적 인간은 생명 자체가 정치에 의해 문제시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의에서 푸코는 노동자로서의 생체 그 자체가 자본이 된다는 인적자본론을 생명관리정치의 맥락에 도입한다. 당연히도, 유전이라는 선천적인 요소와 교육이라는 후천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인적자본의 육성은 생명관리정치의 주된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는 개개의 가정에 맡겨져 자유경쟁 체제하에 이루어진다. 자연 상태에서의 가열찬 번식 경쟁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아렌트가 지적했던 부의 축적이 유전학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갖게 된다. 개체의 수명을 넘어서려는 유전자의 번식 욕구가 후대의 인적자본인 자식에 대한 무한정의 투자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적 영역이 모든 공적 활동을 잠식해버린 적나라한 사례 중 하나가 사교육의 그늘 속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공교육이다. 학부모의 교권침해 속에 지난해 교사 여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안겼지만, 자기 자식 털끝 하나라도 다칠까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달려들 태세를 갖춘 학부모들의 유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교란, 부자 많은 동네에서는 고소·고발, 학벌 좋은 지역에서는 학부모 간 싸움, 공무원 많은 곳에서는 민원폭탄의 현장이라고 한다. 어떤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비눗방울 안에 들어 있어요.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터져버릴 수 있으니 서로 각별히 주의하도록 해요.” 일부 교사들은 인성 교육이라는 사명조차 포기한 채 학부모들의 대리인으로 스스로를 전락시켰다. 아이들 간의 갈등을 교육의 기회로 삼는 대신 피해 아동 학부모의 신고를 받고 가해 아동 학부모에게 훈계를 당부하는 식이다. 결국 사교육으로 무장된 아이들의 줄세우기만이 공교육의 책무로 남았다.
대한민국으로 대표되는, 공공성이 쇠퇴하고 사적인 생명 번식에만 집착하는 생체정치 사회에서, 인간 부모들은 직업의 사명 따위는 내동댕이치고 시뻘게진 눈으로 돈을 좇아 동분서주한다. 자신이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살고도 넘치도록 남을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아등바등 바쁘게 살아간다. 그들이 쌓아 올리는 부의 대부분은 교육열의 불구덩이 속에 시커멓게 타버린다. 공부에서 실패할지도 모를 자식들을 위한 금융자산과 부동산 확보는 보험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역설적으로, 과도한 자식 사랑으로 뭉친 가족 중심의 사회가 오히려 애 낳기 싫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아직 아이가 없는 젊은 세대들의 눈에 기성세대의 이런 삶은 결코 따르고 싶지 않은 반면교사와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현명한 선택이다. 자식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키우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민족이 보이는 독보적인 출생률 0.7명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결국 애지중지 키워지고 있는 기성세대의 자식들은 후에 수많은 노인들을 힘겹게 부양해야 할 이 사회의 마지막 인적자본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인간 유전자의 번식욕은 문화적 환경에 의해 약화되기도 한다. 2016년 학술지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된 연구는 초산의 나이와 평생 낳는 아이의 수를 결정짓는 유전자들로서 CADM2와 ESR1 등을 지목했다. 그런데 2023년 ‘네이처 인간행동’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유전자 변이들은 진화적으로 항상 유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환경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지는 균형선택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CADM2는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나 충동성과 같은 행동 양상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로서, 이런 성향이 때로는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대인의 번식 역시 생물학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같은 나이대 남성의 남성호르몬은 1년에 1% 비율로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40세 남성의 혈중 테스토스테론은 1980년대 40세 남성보다 무려 20%나 적게 나타났다. 정자 수의 감소도 주목할 만하다. 연구결과마다 차이가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그동안의 데이터를 종합한 2022년과 2023년의 대규모 메타분석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정자 수는 지난 50년간 무려 50%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호르몬의 감소와 일치하는 비율이다. :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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