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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어떻게 죽을 것인가 外

by 이성근 2021. 9. 11.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05

 

 

저자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는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버드 보건대학에서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건대학 교수,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외과의이며 뉴요커The New Yorker지 전속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첫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Complications은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고,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Better2007년 아마존 10대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체크! 체크리스트The Checklist Manifesto역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저술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최고의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비롯해 내셔널 매거진 어워즈를 2회 수상했고, 사회에 가장 창조적인 기여를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5년 영국 프로스펙트Prospect지가 선정한 세계적인 사상가 50에 선정되었다

 

주제어 #웰다잉 #생명연장 #죽음 #삶과죽음 #노령화

 

목차

서문

추천사

 

1 독립적인 삶 _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2 무너짐 _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3 의존 _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다

4 도움 _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5 더 나은 삶 _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6 내려놓기 _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

7 어려운 대화 _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8 용기 _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세계적인 사상가 아툴 가완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존엄과 의학의 한계를 고백하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인구 구조의 직사각형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50세 인구와 5세 인구가 비슷하며, 30년 후에는 80세 이상 인구와 5세 이하 인구가 맞먹을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65세 이상 인구가 2030년에는 24.3%, 2060년에는 40.1%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툴 가완디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이러한 사회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현대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정작 길어진 노년의 삶과 노환 및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이를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는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에게서 서명을 받은 후 병실 밖으로 나오자 그의 아들이 따라 나오며 나를 잡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임종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저렇게 죽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라자로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그가 원하는 삶을 되찾을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변 능력, 활력 등 병이 악화되기 전에 누렸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추구한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그는 호흡부전이 생겼고, 전신감염에 걸렸으며, 움직이지 못해서 피떡이 고였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혈액 희석제 때문에 출혈을 일으켰다. 우리는 날마다 뒤처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그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14일째 되는 날, 그의 아들은 의료진에게 이 모든 것을 그만 멈춰 달라고 말했다. _ 본문 13~14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잊는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이는 부분적으로 의학과 공중 보건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났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오늘날 우리는 가능한 한 오래 살기를 꿈꾸며, 현대 의학은 바로 그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외과 수술, 화학요법, 방사능 치료 등으로 대변되는 의학적 처치들도 죽음을 미루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과 같은 선상에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종국에는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Being Mortal’이라는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싸움에서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육체가 파괴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지막에는 가족과 작별의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에서 죽어 간다. 그 모든 것을 희생한 대가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개월에서 1~2년 정도의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얻은 약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남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혹독한 치료와 그에 따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노쇠해지거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죽어 갈 때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만,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여긴 집이 아니지 않니,

어서 집에 데려가 줘.”

 

윌슨이 열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 제시가 심한 뇌졸중을 겪었다. 당시 제시의 나이는 쉰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뇌졸중으로 그녀는 몸 한쪽이 완전히 마비돼서 걷거나 서지 못했으며, 팔도 들 수가 없었다. 또한 얼굴 한쪽이 축 처졌고, 말투도 어눌해졌다. 지능과 인지 능력에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돈을 벌러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서는 씻을 수도, 요리를 할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빨래를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던 윌슨은 전혀 수입이 없었고, 좁은 아파트를 룸메이트와 함께 쓰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머니를 돌볼 길이 없었다.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어머니를 맡길 곳은 요양원밖에 없었다. 윌슨은 자기 대학 근처에 있는 곳을 골랐다. 안전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볼 때마다 끊임없이 요구했다. “집에 데려가 줘.” _ 본문 142

 

더 이상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육체와 정신이 점점 쇠락해 가면서 더는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현대 의학과 보건 체계는 이 문제를 두 가지 방향으로 해결하려 해 왔다. 하나는 요양원nursing home’이라는 보호 시설을 만들어 노인들을 안전하게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년에 직면하는 각종 질병들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이 방식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특히 자녀들 입장에서 보면 노년에 이른 부모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질병이라도 의학이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리라는 전망은 꽤 안심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이나 공격적 치료에는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삶의 질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양원의 경우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획일화된 시설에는 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을 빼앗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규칙과 안전에만 집중하는 탓에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시설에 수용된 노인들 상당수가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진다.(본문 113~124) 저자는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다시 가족과 가정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삶의 질을 희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케런 브라운 윌슨이 처음으로 도입한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은 간단히 말해 기존 요양원과 같은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독립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개념의 시설이다. 잠글 수 있는 문과 자기만의 가구가 있고, 실내 온도나 조명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보장된다.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노인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기존 요양원을 변화시키는 실험도 있다. 요양원 내에 동식물을 들이기도 하고, 인근 학교와 연대해 아이들의 생명력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빌 토머스가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에서 한 실험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개, 고양이, , 식물, 아이들을 요양원 내에 들이는 실험을 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본문 141~149)

 

체이스 요양원 주민들은 비교 집단 주민들에 비해 복용하는 처방 약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할돌과 같이 불안 증세에 먹는 향정신성 제재의 처방이 특히 줄어들었다. 약 구입에 들어간 비용은 비교 집단에 비해 38%밖에 되지 않았다. 사망률도 15% 감소했다. _ 본문 193

 

빌 토머스의 실험이 요양원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수치상으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단계에 이른 노인들이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죽음을 유예시키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마무리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의 공격적 치료는 더욱 큰 문제를 가져다준다.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이 모든 걸 그만 멈춰 주세요!”

 

의료진이 새라에게 카테터를 삽입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 돈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얘기했죠.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침대에 소변을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진은 또 혈압과 혈당 측정 등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검사 결과 같은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수간호사에게 가서 이제 모든 걸 그만 멈추라고 말했죠.”

이전 3개월 동안 우리가 새라에게 한 것들?수많은 스캔, 검사, 방사능 치료, 화학요법 치료 등?은 아무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면 새라는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맨 마지막 순간에나마 평화를 찾았다. _ 본문 289

 

인공호흡기, 영양공급관,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오늘날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더 끔찍한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화학요법과 방사능 치료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극심한 통증, 구역질, 섬망 등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렇듯 죽기까지의 과정을 의학적 경험으로 만드는 실험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있는 듯하다고 일갈한다. 실패라고 단언하는 까닭은 우리가 이 싸움을 통해 얻는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극히 짧은 시간을 더 얻기 위해 잔인한 싸움을 계속할 뿐이다. 현대 의학은 사실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싸워 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신체가 결국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 의사이기도 한 저자는 먼저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 소모적인 의학적 싸움을 중단하려면 우선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할 의료계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하나는 노인병학geriatrics’에 대한 관심이다. 관절염, 당뇨병, 심장질환 등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본문 62~65) 둘째, 환자들과의 의사결정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이런저런 정보를 나열하기보다 해석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이를 해석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본문 306~309)

 

해석적 태도가 중요한 까닭은 마지막에 이른 환자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치료에 매달리는 건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고통을 줄이고, 삶의 품위를 유지하고, 다 끝내지 못한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다면 바로 그 일상의 가치들을 실현하고 싶기 때문일 뿐이다. 남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은 것이다. 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위험이 있다면, 어떤 환자도 맹목적인 생명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

 

아툴, 나는 두렵다.

하지만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나.”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 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 간호, 산소 흡입기, 영양 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지. 그냥 죽는 게 낫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 걸 느꼈다. _ 본문 324

 

의료계의 의식 변화 외에 우리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방식으로의 사고 전환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죽음과 마지막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면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어려운 대화가 가져다주는 혜택은 적지 않다. 저자는 악성 종양에 걸린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본문 322~324) 완화치료 전문가 수전 블록의 아버지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미식축구 중계를 볼 수 있는 정도라면 견딜 만할 것 같다고 말한다.(본문 280~281) 결과적으로 이 대화는 중대한 수술에서 임종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환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 준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미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국 위스콘신주 라 크로스 지역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1991년부터 의료진과 환자들로 하여금 삶의 마지막 시기에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이 지역 주민들이 생의 마지막 6주 동안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종말기 의료비용은 전국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기대 수명은 전국 평균에 비해 1년이나 길었다.(본문 273~275)

 

가족 간의 직접적인 대화가 쉽지 않다면 이를 이끌어 줄 호스피스 상담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하면 떠올리는 것은 생을 포기하고 순전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와의 대화를 통해, 호스피스가 단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환자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오래 의식을 유지하며 고통을 최소화하고 존엄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본문 248) 이것이 최근 수십 년 동안 발전해 온 이른바 완화치료분야다.

결국 죽음이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한 과정이다. 삶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일인 것이다. 죽음 자체에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죽음이 특별하고 중대한 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안에 우리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오후 610분쯤 결국 마지막 순간이 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손주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에 없었고, 나는 대신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을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모든 사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아버지는 다시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호흡이 한 번에 20~30초씩 멈추는 일이 반복됐다. 이제 끝인가 하면 호흡이 다시 시작되곤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 곁을 지키며 어머니와 여동생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오후 610분쯤 결국 마지막 순간이 왔다. 나는 아버지의 호흡이 이전보다 더 오래 멈춰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가 멈춘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_ 본문 393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고 가슴 깊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이자 학자로서 일반 대중들에게 가르침과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세계 유력지에서 꼽은 세계적인 사상가라는 사실도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혹은 우리 가족과 비슷한 이들이다. 젊은 시절 공장 직공이었던 사람, 간호사였던 사람, 가게를 운영했던 사람, 한두 명의 자녀를 키우며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 왔고, 이러저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에 만족해 온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원하는 것 역시 너무나 소박한 것들이다. 가족 및 친구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주말에 있을 친구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서고 싶어 하고,(본문 359) 사랑하는 제자에게 한 번이라도 더 피아노 레슨을 하고 싶어 한다.(본문 378) 그리고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도 담겨 있다. 저자 자신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의사였지만, 그들에게도 생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저자는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끝까지 질병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며 치료에 매달리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 있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희망이다. 죽음이 결국 삶의 이야기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책 속으로

라자로프는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에게서 서명을 받은 후 병실 밖으로 나오자 그의 아들이 따라 나오며 나를 잡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임종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저렇게 죽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라자로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그가 원하는 삶을 되찾을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변 능력, 활력 등 병이 악화되기 전에 누렸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추구한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_ 본문 13, ‘서문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더 자주 넘어졌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짐은 오늘날의 모든 가족들이 그러듯이 자연스러운 조치를 취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할머니의 뼈가 약해졌다고 진단하고 칼슘 복용을 권했다. 또한 그는 할머니가 평소에 먹는 약들의 복용량을 조정하고, 몇 가지 새로운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사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의사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 할머니는 균형을 잘 잡지 못했고, 기억이 가끔씩 가물가물했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게 분명했다. 할머니가 독립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의사로서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었다._ 본문 45~46, ‘독립적인 삶중에서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 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다. 또한 직원들이 정해 주는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할머니의 생각과 관계없이 선택된 룸메이트들이 여러 명 거쳐 갔다. 모두 인지 능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조용했고,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_ 본문 119, ‘의존중에서

 

루 할아버지는 애원하는 눈길로 셸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일을 그만두고 내 옆에 있을 수는 없는 거니?’ 그 생각이 셸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셸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아버지를 충분히 잘 돌보는 게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루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셸리를 따라 몇 군데 시설을 둘러보겠다고 승낙했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 같았다._ 본문 140, ‘도움중에서

 

의학은 아주 작은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의료 전문가들은 마음과 영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바로 이 부분이 고통스러운 역설을 만들어 내는데?삶이 기울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맡겨 버렸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질병, 노화, 죽음에 따르는 여러 가지 시련은 의학적인 관심사로 다뤄져 왔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 기술적인 전문성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는, 일종의 사회공학적 실험이었다. 그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_ 본문 200, ‘더 나은 삶중에서

 

나는 마르쿠 박사에게 폐암 말기 환자들을 처음 만날 때 그들을 위해 무얼 해내길 바라는지 물었다. “1~2년 정도 그럭저럭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그가 말했다. “그게 내가 갖고 있는 기대치입니다. 새라 같은 환자의 경우 운이 아주 좋아야 3~4년 정도예요.” 하지만 이는 환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환자들은 10~20년을 생각하고 와요. 어떤 환자를 만나도 같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사실 내가 그들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_ 본문 257, ‘내려놓기중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pl**tree | 2020-08-18

의학의 발전으로 사고사가 아닌 경우 자연스럽게 죽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과거 자연사의 경우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죽는 것이 많은 경우였지만 현재 대부분의 경우 병원에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을 지키다 죽게 됐다.당사자의 의견은 중요치 않고 의사, 가족들에 의해 고달픈 병원 생활을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서 가족과 당사자는 지쳐가게 된다.이 책에서는 당사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남은 날에 대한 계획을 세워 치료 등 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도 정보만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닌 환자의 상태와 환자와의 소통을 검토하여 삶의 기간이 아닌 질을 고려한 당사자에게 적합한 조치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만약 고칠 수 없는 환자라면 고통스러워 하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 보다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최소한의 치료만으로 남은 삶을 행복하게 지내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P.43 노인들은 자신이 누렸던 통제력과 지위를 일부 나눠 주었지만 완전히 잃은 게 아니었다. 현대화가 강등시킨 것은 노인들의 지위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였다. 현대화는 사람들에게-젊은이와 노인 모두에게-더 많은 자유와 통제력을 누리는 삶의 방식을 제공했다. 거기에는 다른 세대에게 덜 묶여 살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노인들에 대한 존중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젊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존중으로 대체된 것이다.P.49 몸의 쇠락은 넝쿨이 자라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루하루 지내면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대로 적응해 가며 산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P.58 학계에서는 노화가 일어나는 원인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전적인 견해에 따르면 노화란 신체가 무작위로 마모됨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최근에 나온 견해에서는 노화가 보다 질서 있게 진행되는 유전적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한다.P.75 노화는 우리의 운명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P.240 말기 질환으로 생의 마지막 날들을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일종의 실패로 간주한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몸의 각 기관이 하나씩 멈추고, 정신은 오락가락하며, 형광등이 켜진 이 낯선 방을 절대 살아서 떠날 수 없으리라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누워 지낸다. "괜찮아" "미안해" 혹은 "사랑해" 같은 말로 작별의 인사를 할 기회조차 없이 마지막을 맞는 것이다. /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것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의료 복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P.241 삶의 종말에 관해 연구하는 조앤 린 박사의 연구 결과처럼 사람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란 대개 나쁜 날씨를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별 경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겨 내거나 무릎을 꿇거나 둘 중 하나였다.P.243 의학은 죽음에 관해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경험과 전통, 표현들을 더 이상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고, 인류에게 새로운 문제를 안겨 주었다.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어떻게 남은 날들을 보낼것인지... uw**u | 2017-05-09 |

간혹, 책의 원제목보다 번역제목이 더 좋은 경우가 있다. 헨리 마시가 쓴 책 Do No Harm'참 괜찮은 죽음'으로 폴 칼라니티가 쓴 책 When Breath Becomes air'숨결이 바람이 될 때'와 같이 보다 멋지게 화장을 했다.

 

아툴 가완디가 쓴 책 Being Mortal'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얼굴을 바꾸었다. 저자의 의도를 가장 직설적으로 번역한 책으로 생각된다. 저자의 의도! 사실, 우리는 어떻게 살까 혹은 살릴까에 관심을 두어왔는지 모른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거나 준비해야하는지를 모르고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너무 쉽게 인생의 마지막 정차장과 같은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일부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일부는 그 방법이 최선이기에 그게 다인 줄 알면서 지내오는 것은 아닌지. 대부분 죽어가는 사람들의 입장보다는 죽어가는 사람의 주변 사람의 관점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이책은 어떻게 하면 잘 죽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마지막 생의 순간을 놓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말이다. 연명치료로 조금이라도 생의 순간들을 연장하려는 우리 살아가는 자의 노력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의 위안으로 이런 시도들을 해온 것은 아닌지. 멋지게 삶의 마지막 장을 써내려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러면에서 이책은 차라리 원제목인 Being Mortal이 더 책의 내용에 어울릴 것으로 생각된다.

 

부모님 연세가 두분다 80대 중반이기 때문인지, 어느 덧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50대라는 무게감때문인지 지속적으로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당분간 그분들을 떠나보내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지만, 좀 더 그분들보다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써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보내드리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제도적으로 부족하고 인식도 엷은 우리내 일상속에서 보다 본질적이고 직접적으로 떠날날들을 준비해야겠다. 어떻게 남은 날들을 살 것이고 무엇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 이순간을 어떻게 소화해야하는지 말이다. 그리 많지 않은 날들을 보다 가치있고 바람직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 찾아야 할 때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나답게 lj**202 | 2016-12-20 |

아직까지 죽음은 두렵다. 두렵다는 표현보다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 솔직히 전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이를 먹어 큰 병에 걸리면 굳이 연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그 병을 갖고 살겠다고. 향후 의료기술이 발달해 항암치료같은 걸 안 받아도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살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남은 생을 준비하며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런 시기가 최소한 70살은 넘고 80살은 되었을 때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죽음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느끼게 된다. 어릴 때 죽음이란 나와 상관없는 사건이었다면 점점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듣거나 목격하며 피부로 와 닿게 된다. 여전히 그때뿐이고 잠시후면 금방 잊고 현실을 살아갈 뿐이다. 죽음은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삶을 산다. 가족과 더 가깝게 살아가고 주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표현은 참 좋은 말이지만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날이 많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때뿐이다.

 

올 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에게는 커다란 사건은 솔직히 아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또한 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나도 모르게 잊혀졌었다. 워낙 오랜 시간 요양원에 있으셨기에 가는 것도 점차 뜸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고 나를 보며 다른 사람을 이야기할 때 내 마음은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할머니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하며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 식구들은 전부 우울해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떠들정도였다.

 

그래도 할머니 발인할 때 찬송을 부르며 걸으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화장 후 그곳에서 화장된 가루를 뿌리는 데 무척 따뜻했다. 그 촉각은 무척 낯설었다. 당연히 따뜻할텐데 아마도 차가울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현실과 생각은 조금 다른가보다. 사실 어느 순간 문득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죽음과 관련된 꽤 다양한 책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읽었다. 어떤 책을 읽어도 단지 머리로만 받아들일 뿐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 아주 가까운 사람이 먼저 간 적은 없다.

 

거의 유일하게 아버지가 10년 전에 머리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을 때가 근접했다. 모든 가족이 별 의심도 고민도 없이 수술해야한다는 의사 말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지금와서보니 참으로 생각없이 쉽게 결정했다고 본다.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리라는 그 어려운 곳을 수술하는데 더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니 말이다. 오래도록 뇌종양에 있던 걸 조금씩 증상이 있다 찾아왔기에 내린 결정이긴 했다. 수술 후 응급실에 있는 아버지와 그 후에 완치되는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걸 보며 여러 사람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아쉽게도 그 후에 아버지는 왼쪽 발가락이 마비가 되었다. 의사는 좋아질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 전까지 함께 일요일에 20~30대 친구들과 축구를 했는데 이제는 도저히 못한다. 마지막으로 축구를 다시 해 보는 게 꿈이라고 하셨다. 여전히 등산도 하시고 출퇴근시에 자전거를 타신다. 그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계속 움직여줘야 하기에 활발하게 움직이셔야 한다는 점이 아버지 성격과 다행히 잘 맞아 열심히 돌아다니신다.

 

 

어느 덧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졌다. 여전히 정정하시고 내가 볼 때 최소 10년은 더 거뜬하실 것이라고 믿지만 - 그렇게 보이시기에 - 해가 갈수록 예전과 달리 확실히 나이가 드셨다는 걸 눈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은 내 자신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같다. 양가 부모님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식구들에게도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건 꼭 금전적뿐만 아니라 심정적은 물론이고 어떤 식으로 케어할 것인지 문제도 대두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크게 두 부분을 나뉜다. 전반부는 노인 분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어떤 식으로 이를 풀어낼 것인지 부분이다. 후반부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여부다. 최종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죽음과 관련된 책을 독서모임에서 택한 적이 있었다. 다들 이런 책인지 몰랐다고 했다. <죽음학 수업>이다. 이 책은 죽은 사람들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야기다.

 

뜻하지 않게 죽은 지인이나 식구가 자꾸 떠오르며 트라우마에 빠진 내용을 치유하는 내용이다. 워낙 그 내용이 처절하고 끔찍한 것들도 있어 너무 가슴이 아펐다고했다. 이처럼 죽음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죽음을 대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의료행의로 생명을 연장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이 남은 생을 자발적으로 행복하게 맞이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더 늘어났다고 알지만 그보다는 청결과 수질덕분이다. 과거에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신 것과 청결치 못한 생활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질병에 쉽게 노출되었다. 두 부분이 개선되며 수명이 늘었다. 여기에 페니실린을 통한 항생제덕분에 의료기술은 발달할 수 있었다. 죽을뻔한 생명을 구한 것도 많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갖고 있는 수명만큼 뜻하지 않은 사고가 아닌 다음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의사분들의 노력은 분명히 귀하고 인간에게는 축복이 되었다.

 

아직까지 암을 비롯한 다수의 질병은 정복되지 않았다. 언젠가 인간은 죽는다. 젊을 때는 큰 질병에 걸려도 체력이 받쳐주기에 금방 회복할 수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쉽지 않다. 이 책을 읽어보니 몰랐는데 연세가 드신 분들이 그렇게 많이 제대로 걷지 못해 넘어지고 쓰러져 큰 문제가 생기는지 몰랐다.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기는 했는데 이 책 저자가 외과라 그런 것인지 몰라도 엄청 많다. 큰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노화되며 점점 신체기능이 저하되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일로 인해 외부적인 충격이 2, 3차 고통을 겪게 만든다.

 

가족이 함께 돌보면 가장 좋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가족들이 지친다. 생활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데 계속 부모님 옆에 있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이니 다들 요양원을 택한다. 요양원은 분명히 환자를 위한 곳이지만 갈수록 규격화되고 체계화되며 정작 환자가 아닌 그 곳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각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고 생활패턴이 있는데 이걸 개별적으로 케어해주지 못한다. 요양원에 들어간 대부분 노인분들이 싫어한다. 내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그리워하지만 그곳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 버린다. 미국에서는 현재 홈 호스피스 제도를 통해 집에서 평소처럼 거주하며 케어받기도 한다.

 

내가 70이 넘었을 때 큰 병이 걸리면 굳이 연명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는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막상 그때가면 더 살고싶다며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그런 생각을 미리 해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의사는 몇 년 정도를 더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수술같은 의료처방을 권하고 환자들은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고. 이 간극이 바로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 저자는 스토리텔링에 무척 능하다. 의사가 이 정도 스토리텔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한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자세히 묘사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버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피부로 팍팍 와 닿는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내가 생각했던 죽음에 대한 마지막 삶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듯하다. 꼭 내 의지로 정하고 실천할 수 없고 식구들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며 변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시야가 좁아지며 주변을 돌아보고 살 날이 많아진다고 생각되면 다시 시야가 넓어지며 더 진취적인 일을 하려 노력한다. 책에 나온 이야기나 실제 사례를 읽을 때 100% 맞는 말같다. 우리는 내일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오늘을 이렇게 살고 원대한 계획을 갖는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는 모른다. 그 때는 누구도 모르지만 그 때가 왔을 때 여전히 나인 상태로 나답게 죽고 싶다. 내가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는 의외로 많이 있어 다행이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죽음을 피하진 말자.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누구나 언젠간 죽는다.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저자 셸리 케이건|역자 박세연|엘도라도 |2012.11

셸리 케이건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철학 교수(사회사상/윤리학 전공).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피츠버그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와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에서 강의했다.

그의 철학은 도덕철학과 규범윤리학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삶과 죽음의 문제, 행복, 도덕적 가치, 공공의 선, 인간의 본성 등에 관한 논문과 저작 및 칼럼을 발표하면서,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결과주의 윤리학과 칸트주의로 대표되는 의무론적 윤리학 사이의 논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대표 저작인 도덕의 한계(The Limits of Morality)규범윤리학(Normative Ethics)은 전세계 유수 대학에서 철학 교재로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의와 도덕의 불모지를 사막에 비유해 인간의 도덕성을 재고하는 사막의 기하학(The Geometry of Desert)을 출간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_삶과 죽음 그리고 영생에 관하여

1_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죽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던져야 할 질문들/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인간-이원론/육체만으로 이뤄진 인간-물리주의

2_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의 존재 증명/최선의 설명으로서의 추론/육체는 누가 조종하는가/영혼은 체험할 수 있는가

3_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육체와 정신은 다르다-데카르트/개밥바라기별과 샛별

4_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소크라테스의 죽음/플라톤의 완벽한 왕국/불멸의 영혼-형상의 본질/소멸하지 않는 존재-영혼의 단순성/정신, 육체가 만들어내는 화음

5_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의심스러운 영혼의 존재/인간의 정체성과 시공간 벌레/영혼 관점에서의 정체성/육체 관점에서의 정체성/인격 관점에서의 정체성

6_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같은 문제 다른 대답/또 한 명의 나폴레옹-복제 문제/영혼은 나뉠 수 있는가-분열 문제/정말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7_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죽음이란 무엇인가/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8_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

9_죽음은 나쁜 것인가

죽음이 앗아가는 것들-박탈 이론/죽음은 언제나쁜가-에피쿠로스의 입장/내가 없던과거, 내가 없을미래-루크레티우스의 경우

10_영원한 삶에 관하여

영생이라는 형벌/영원히 살고 싶은가

11_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본질적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경험 기계에 연결된 삶/그릇과 같은 삶-그릇 이론

12_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반드시 죽는다-죽음의 필연성/얼마나 살지 모른다-죽음의 가변성/언제 죽을지 모른다-죽음의 예측불가능성/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죽음의 편재성/삶과 죽음의 상호효과

13_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죽음에 대한 태도-부정·인정·무시/죽음은 두려운 대상인가/단 한 번뿐인 삶/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삶의 전략

14_자살에 관하여: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자살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에필로그_다시 삶을 향하여

더 읽어볼 만한 것들

찾아보기

 

 

가장 끔찍한 주제, 가장 매혹적인 강의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역설

 

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나는 언젠가 반드시죽는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는가?” 이런 철학적 질문은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연결된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생은 좋은 것인가?”,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 “우리는 왜 경험하지도 못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이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살아야 하는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죽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무섭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낳았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셸리 케이건 교수의 강의는 시작된다. 죽음에 관한 모든 문제는 바로 죽은 다음에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선 케이건 교수는 이 질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육체가 죽어도 육체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 같은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사후의 삶은 영혼의 존재를 상정한 개념이라고 정리한다. 그런 다음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의 실체에 관한 두 가지 거대한 관점을 살핀다. 첫 번째 관점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고, 두 번째 관점은 인간이 육체로만 이뤄져 있다는 물리주의(物理主義, physicalism)’.

 

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으로 알려진 일련의 논의들을 살펴본다. 이 추론은 우리의 오감(五感)으로 확인할 수 없는 존재를 증명코자 할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설명들 중 최고의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그 가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논증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정할 때 일어나는 다른 현상들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면 그 존재는 실재한다는 것이다. 케이건 교수는 플라톤(Platon)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Socrates)의 죽음과 영혼의 불멸을 다룬 파이돈(Phaidon)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영혼의 존재에 대한 갖가지 옹호적인 주장들에 관해 설명하고 하나씩 반박한다. 최선의 설명으로서의 추론 중 가장 강력한 사례는 인간에게 있는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케이건 교수는 영혼이라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자유의지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철학적 논증을 제시함으로써, 영혼이 존재한다는 이원론자들의 (현재까지 제기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육체 없이도 정신(영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은 각각 다른 존재라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주장을 자세히 살피고, 그 주장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금성(金星)의 각기 다른 이름인 개밥바라기별과 샛별 및 둥근 사각형 등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케이건 교수는 영혼이나 정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사변적(思辨的) 논증을 같은 사변적 논증으로 반박하면서, 이성(理性)으로 증명하기 매우 까다로운 존재 앞에서 쉽게 심리적 믿음을 택하게 되는 현상을 비판한다.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육체적 죽음 뒤에도 영혼은 살아남는가?”를 의미하므로, 이 장에서는 질문의 핵심인 영혼의 불멸성에 관해 논의한다. 영혼불멸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논증은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개별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실재(實在), 이데아(idea)’를 제시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원하고 완벽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實體), 예컨대 절대적인 정의(正義)나 선(), 아름다움()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이데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현상계의 물질적 대상으로부터 인식한다.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으므로 이성은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다. 이성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은 곧 영혼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영혼불멸 논증 중 형상(形相)의 본질에 관한 주장이다. 이 논증은 영혼은 파괴되지 않는 순수하고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영혼의 단순성(單純性)’ 주장으로 이어지는데, 케이건 교수는 플라톤의 이 같은 논증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는 결국 논리적 모순으로 이뤄진 치명적 오류를 찾아내 정확히 끄집어내는 대반전을 펼쳐 보인다.

 

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영혼의 존재와 불멸성에 관해 살폈지만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직 논의할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이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나를 나로서 인식할 수 있는가? 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케이건 교수는 영혼 관점’, ‘육체 관점’, ‘인격 관점이라는 인간 정체성에 관한 세 가지 주장을 살펴보면서 이 질문의 답을 찾는다. 우선 영혼 관점은 영혼이 같으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육체 관점인격 관점도 서로 동일한 육체 및 인격이 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라고 본다. 얼핏 간단한 논증 같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케이건 교수는 시공간 벌레(space-time worm)’ 개념에서부터 시계 수리공의 비유와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들어 이 형이상학적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케이건 교수는 앞의 세 가지 관점 중 우리가 어떤 관점에 서 있는지 테스트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미친 과학자의 뇌 교환 실험, 뉴욕에 나타난 나폴레옹의 비유, ‘복제 인간의 사례 등을 통해 그 선택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만약 현재의 내가 죽고 나서도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다른 객체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면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그 빛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나의 정체성 논의는 자연스럽게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다. 정체성 문제가 해결되면 살아남는 데 있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었는데도 살아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즉 죽음의 순간을 결정짓는 육체적·정신적 기능은 무엇일까? 케이건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짚고 넘어가는 장이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주장과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명제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당연히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시 말해 죽어있는 상태자체를 떠올릴 수 없다. 이는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얼토당토 않는 믿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케이건 교수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을 예로 들어 죽음에 임박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부인하고자 하는 인간 심리의 이중성을 살펴보고, 죽음 직전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삶이 어떤 식으로 맞닿아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편적 주장인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라는 명제를 분석하면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등의 비유를 통해 이 속에는 그 어떤 심오한 진리도 담겨 있지 않으며 진실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여기서부터 케이건 교수는 본격적으로 죽음의 본질로부터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논의한다. 그 첫 번째로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대표적 시각인 죽음은 나쁜 것인가?”라는 의문을 파헤친다. 죽음이 나쁘다면 무엇 때문에 나쁜지 그동안 이어져왔던 여러 철학적 주장들을 살핀 다음 삶이 가져다주는 좋은 것들을 앗아가기 때문에 나쁘다박탈 이론(deprivation account)’을 죽음이 나쁜 유일한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나쁘다는 것은 존재하는 대상에게만 가능한 평가인데, 죽고 나면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게 아니다라는 에피쿠로스(Epicurus)의 입장과, “죽음이 나쁘려면 마찬가지로 비존재 상태인 태어나기도 전의 상태도 나빠야 한다는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비판을 통해 박탈 이론을 확고히 한다. 이 밖에 토머스 네이글(Tomas Nagle), 프레드 펠드먼(Fred Feldman), 데렉 파피트(Derek Parfit) 등 현대 철학자들의 핵심 견해도 소개한다.

 

영원한 삶은 좋은 것인가

죽음이 나쁘다면 그 반대인 영생(永生)’, 즉 영원한 삶은 좋은 것일까? 케이건 교수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반문하면서, 그러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만으로도 결코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소위 천국이나 극락과 같은 영원히 행복한 삶도 막연히 좋은 것으로만 주입됐을 뿐, 세부적으로 묘사하게 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 매력을 잃어버리게 되며, 무한한 삶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가혹한 형벌임을 강조하고, 모든 좋은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케이건 교수는 유한한 삶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 다시 말해 행복의 본질에 관한 주제로 논의를 전환한다. 무엇이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가? 삶에서 본질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무엇인가? 그는 우선 이와 관련한 대표적 철학 이론인 쾌락주의(hedonism)’의 입장을 소개한 뒤,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의 사고 실험인 경험 기계(experience machine)’를 예로 들어 쾌락(快樂)’이 본질적인 행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삶의 가치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contents)’에 달려 있다고 설명하면서 삶은 그릇(container)’이며 그 속에 채워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합을 통해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그릇 이론(container theory)’에 관해 살핀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죽음을 나쁜 것으로 보게 만드는 죽음의 네 가지 특성에 대해 알아본다. “반드시 죽는다는 죽음의 필연성(必然性, inevitability)’,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죽음의 가변성(可變性, variability)’,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예측불가능성(豫測不可能性, unpredictability)’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편재성(遍在性, ubiquity)’을 설명한다. 케이건 교수는 이러한 죽음의 특성을 이해할 때, 유한한 삶을 인정하지 않고 죽는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삶에서 적절한 태도인지 묻는다. 또한 죽음은 반드시 삶이 끝난 다음, 즉 삶을 영위하고 그 다음에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삶 자체나 죽음 자체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아울러 삶과 죽음은 긍정적·부정적 상호효과를 모두 갖고 있으며 우리가 부정적 상호효과만을 받아들일 때 삶은 나쁜 것이 돼버린다고 지적한다.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우리는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인정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더불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정당한 감정인지, 다시 말해 죽음이 공포의 대상인지 논의한다. 케이건 교수는 공포라는 감정이 성립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분석함으로써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므로 공포가 죽음에 대한 정당한 감정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적절치 못한 감정으로 인생을 허비할 까닭이 없다고 꼬집으면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삶을 가능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서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즉 행복지수가 높은 삶을 위한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설명한다.

 

자살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인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자살에 관해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첫째는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가이며, 둘째는 자살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인가. 합리성은 와 관련이 있으며 도덕성은 과 관련이 있다. 케이건 교수는 우선 자살이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으려면 죽는 게 더 나은 삶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삶과 죽음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둘 중 어느 것이 나은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이론을 동원해 그것이 가능한지 살펴본다. 그리고 자살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는지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의무론(義務論, deontology)’의 관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한다. 엄청난 빚 때문에 이혼한 뒤 아내와 자식을 두고 자살하는 행위, 흉악범의 자살, 한 사람이 희생해 그의 장기를 이식해서 다섯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 전쟁터에서 전우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으로 수류탄을 덮는 행위 등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자살의 도덕성을 말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본다.

 

 

이 책은 죽음을 테마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세상에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에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주제,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강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예일대 학생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죽음 강의 ‘DEATH’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책속으로

이 책은 내가 예일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진행해온 죽음에 대한 강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강의는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모두 녹화됐다. 이 강의에서 내가 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pp.6-7

 

일요일 새벽 3시에 갑자기 신이 나타나 내 영혼을 다른 영혼으로 바꿔놓았다. 신이 내 몸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고, 그 새로운 영혼에 나의 모든 기억, 믿음, 욕망, 의지를 심었다. 다음날 아침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침대에서 누군가가 깨어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은 아침이네.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한 날이야(실제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이렇게 혼잣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 사람이 나일까? 사실 그는 셸리 케이건이 아니다. 영혼 관점에 따르면 그는 다른 사람이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영혼 이론을 기반으로 셸리 케이건이 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 속에서 그는 다른 영혼을 갖고 있다. 내 영혼은 일요일 새벽 3시에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 새로운 영혼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는 내가 아니다. 내 침대에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금방 태어났고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셸리 케이건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영혼이 다르기 때문이다. pp.169-170

 

경험 기계에 연결돼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상상해보자. 우리가 원하는 최고의 경험들을 데이터파일로 다운로드해 마음대로 경험해볼 수 있다고 하자. 가령 위대한 소설을 쓰는 경험을 선택했다면 여러분은 이제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줄거리를 고치고, 원고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초고 파일을 컴퓨터에서 몽땅 지워버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최고의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여러분은 생생하게 체험할 것이다. 또는 암을 정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경험을 선택했다고 해보자.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단백질 억제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아니면 환상적인 석양을 감상하거나 이국적인 곳을 여행하는 경험을 선택했다면, 정말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경험 기계 속 인생이다. pp.361-362

 

죽음학 수업 우리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에리카 하야사키 저 / 이은주 역 | 청림출판 | 201410| 원서 : THE DEATH CLAS

 

에리카 하야사키 Erika Hayasaki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문학 저널리즘 프로그램 조교수. 교수가 되기 전에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os Angeles Times 대도시부Metro Desk 기자, 교육 부문 전문기자, 뉴욕 주재 특파원으로 활약하며 9년간 900편이 넘는 기사를 썼다.

2004년에는 라틴계 고등학교에서의 문화적 분열, 신규 교사의 역경, 위험한 등굣길에 관한 기사로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최우수 저술상the Los Angeles Times Best Writing Award’ 을 수상했다. 미국신문편집인협회에서 주는 브레이킹 뉴스상Breaking News Award’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7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매거진에 딸The Daughter을 게재하여 일요특집편집인협회상the Association of Sunday Feature Editors Award’을 받았다. 프랑스어 수업 중 벌어진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을 재구성하여, 35세 미만 저널리스트들에게 수여하는리빙스턴 어워드Livingston Award’2년 연속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목차

Prologue 작별 편지

 

Part One

죽음의 비밀

Chapter 1. 교수

Chapter 2. 노마 린의 인생 이야기

Chapter 3. 되감기 버튼

Chapter 4. 어린 소년

Chapter 5. 이상한 행동

Chapter 6. 구조 작업

Chapter 7. 방아쇠

Chapter 8. 절망

Chapter 9. 형제들

 

Part Two

삶의 교훈

Chapter 10. 교화

Chapter 11. 조나단

Chapter 12. 케이틀린

Chapter 13. 도움

Chapter 14. 장애물

Chapter 15. 헤어지는 법

Chapter 16. 통찰

 

Part Three

마지막 시험

Chapter 17. 장거리 자동차 여행

Chapter 18. 뿌리줄기식물

Chapter 19. 생애주기

Chapter 20. 생일

Epilogue

부록 : 에릭슨의 단계 이론

집필 노트

출처와 주석

참고문헌과 추천도서

 

3년을 기다려야 들을 수 있는 킨 대학교 죽음학 수업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보도 후 혼란을 느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전직 기자 에리카 하야사키(현재 UC 어바인 문학 저널리즘 조교수)죽음의 무자비함과 의미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킨 대학교 죽음학 수업을 취재하기로 한다. 노마 보위 교수가 진행하는 이 수업의 이름은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죽음으로 3년 치 대기자 명단이 붙어 있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수업이다. 무려 4년간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노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이 수업을 취재한 저자는, 노마가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도록 이끌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그려낸다.

이 책 죽음학 수업(The Death Class)은 독특한 방식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노마 교수의 이야기이자 수업을 통해 마음을 회복해나가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며,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죽음의 수업 내용이기도 하다.

 

노마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 수업을 이끌어가는데, 유언, 임종 등의 주제로 토론을 하는가 하면 본인의 추도사 쓰기와 생애 유서를 작성하는 과제 등을 통해 학생들이 죽음의 비밀과 마주하도록 인도한다. 그러나 이 수업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현장 학습이다. 노마는 공동묘지, 시체 안치소, 장례식장의 방부 처리실 등 여전히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현장으로 학생들을 데려가 그 현장에서 삶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

 

검시소에 들어간 케이틀린의 눈에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숨져 테이블에 놓인 사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부풀어 오른 장기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약을 끊지 않으면 그녀의 시신이 바로 저렇게 되리라. 하지만 케이틀린은 토하지 않았다.

거 봐. 괜찮지?”

노마가 말했다. 케이틀린은 살균제 없이 최악의 두려움과 마주 할 수 있었고, 그래도 괜찮았다.

살아 있는 건 좋은 거예요, 그렇죠?”

교수는 부검 후 울면서 뛰쳐나갔던 학생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알겠던가요? 우리에겐 삶을 당연하게 여길 권리가 없어요.”(본문 86)

 

소설 같은 이야기,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실화다

 

저자는 기존의 단순한 사실만 전달하는 기사 작성법에서 벗어나 소설 문장처럼 이야기하듯구성하는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연구하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내러티브 논픽션(narrative nonfiction)에 해당한다.

죽음학 수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어 밝혀나가는 죽음과 삶의 의미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진행되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흥미와 감동을 주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어떤 사건도 조작되거나 다른 책에서 인용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저자는 녹음기를 들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주변을 맴돌며 수 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한편 심리학부터 철학에 이르기까지 죽음, 임종,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책과 논문을 백여 권 넘게 읽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학자들의 연구보다는 일반인들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최대한 이론적인 설명을 배제하고 인물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책을 구성했지만 학문적 연구는 대부분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에 녹여냈다. 저자의 전문적 취재와 문학적인 글 솜씨는 킨 대학교의 죽음학 수업이 전하는 감동과 지혜를 강의실 밖으로 옮기기에 충분하다.

 

가장 힘들고 지칠 때, 죽음학 수업

노마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삶의 문제로 많이 지쳐있다는 것이다. 노마는 이런 학생들에게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이론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다시 자신의 삶을 긍정하도록 이끈다. 이를 테면 노마는 반복되는 엄마의 자살 시도로 강박증에 걸린 케이틀린을 집중 상담하며, 자신의 삶조차 엄마에게 송두리째 뺏기는 케이틀린이 가족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한다. 노마는 그녀에게 한 발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해결하게 놔둘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케이틀린은 노마의 조언으로 부모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자신의 삶에 집중한다. 노마의 조언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 진정한 둘도 가능하다는 에릭슨의 조언과도 흡사하다.

 

그런가 하면 노마는 동생의 자살을 막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조나단이 자신의 사연을 소리 내어 말함으로써 아픔을 치유하도록 한다. 평소에도 노마는 학생들에게 줄곳 사연에 소리를 입히라고 말해왔는데 이는 아무리 끔찍한 사연이라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행위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마의 말처럼 조나단은 학생들 앞에서 동생의 죽음을 소리 내어 말하던 날 죽음학 수업의 본질을 깨닫는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인 것이다.

 

한때는 죽을 때까지 동생을 돌보겠다. 무슨 대가를 치르든,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없다. 어떤 일이 닥쳐도 동생을 보살필 거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저에겐 동생이 가장 중요했으니까요. 그랬는데 그 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러자 제 삶이 돌아오더군요. 참 이상한 일이죠. 만일 앞으로 제가 살아가면서 제 삶을 내팽개친다면, 늘 우울해하면서 되는 대로 살아간다면 그 애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본문 256)

 

우리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저는 우리가 죽음을 외면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질 않아요.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운이 좋은 경우에 직장과 학교에서 3일 휴가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살아가게 돼 있습니다. 저는 이게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면 그런 마음의 짐을 짊어지는 것 때문에 몸에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슬픔이 우리를 어떻게 가로막는지, 어떻게 한자리에 머물게 만드는지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2014.1.1.19 NPR - 노마 보위 교수 인터뷰 중에서)

 

인간의 생애주기를 여덟 단계로 나눈 에릭 에릭슨의 단계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겐 위기를 극복하며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 위기는 여덟 단계에서 두루 나타나는데,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각 단계의 덕목을 계발할 수도, 한 단계에 발이 묶일 수도 있다.

 

에릭슨은 진실성 있게 죽음과 마주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선 먼저 앞의 일곱 단계에 속한 구체적 덕목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계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노마의 경험으로 보자면,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모든 단계를 거쳤고 난관을 만족스럽게 극복한 사람들은 두려움이나 불만이 덜한 상태로 죽음과 마주할 수 있다. 결국 긴 안목으로 죽음을 바라볼 때, 삶의 난관을 바람직하게 헤쳐 나가는 것은 후회 없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노마는 자신의 수업에서 이 점을 강조한다.

 

노마와 학생들의 흥미로운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죽음학 수업은 한 학기가 마무리 되는데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많은 변화를 보여준다. 엄마와의 거리 두기가 필요했던 케이틀린은 심리상담가가 되어 활동 준비를 서두르고 자살한 동생의 사연을 소리 내어 말했던 조나단은 동생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에 시작한다. 이들의 변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죽음에 관한 흥미로운 탐색을 통해 삶의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그리하여 죽음학 수업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권할 만한 책이다

 

책 속으로

1. 교수

이번 장에서 저자는 노마 보위 교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마 교수는 맑고 평온한 성품을 지닌 학자로 마법과도 같은 신비한 에너지와 긍정적 기운이 감도는 사람이다. 탁월한 친화력으로 학생들과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내며, “교수님!”보다는 노마!”라고 이름을 불러주길 부탁한다. 노마 교수는 죽음에 관한 한 인명 구조요원처럼 대담무쌍하다. 모두가 죽음으로부터 달아나려 뒷걸음칠 때 오히려 그 속으로 돌진한다. 이 세상 어떤 위협도 노마 교수를 뒷걸음치게 만들지 못할 것 같다. 특히 죽음에 대한 그녀의 열정적인 관심과 연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노마 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공원묘지를 둘러보며, 묘지 위에 싹을 틔운 꽃과 식물, 비석에 낀 이끼를 관찰하거나 그곳에서 책을 읽고 사진을 찍는다. 때로는 학생들을 앉혀놓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는 어김없이 해당지역의 공동묘지를 방문한다. 묘지가 역사책에는 기록할 수 없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음의 종류(자살, 타살, 질병으로 인한 죽음, 사고사 등)와 신체의 반응(심장박동, 혈류량, 호르몬, 체온, 피부색 등)에 대해 알아가며, 삶이 중단된 현장인 묘지에서 죽음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사유하는 노마 교수의 수업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 노마 린의 인생 이야기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그 당시 누가 당신을 도왔는가? 그 일이 당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가? 이번 장에서는 노마 린Norma Lynn(노마 보위 교수의 결혼 전 이름)의 인생사를 이야기하며, 그녀가 어떻게 탁월한 이야기꾼이 되어 죽음을 테마로 대학에서 최고 인기 강의을 이끌어갈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이를 위해 노마 교수가 탄생 전부터 겪었던 사건들, 할머니에게 임신 사실을 감추고 열일곱에 자신을 낳은 엄마, 원치 않은 아이였다는 낙인과 자책, 엄마의 잦은 구타와 무관심, 부모의 불화, 방탕한 생활의 아버지, 장녀로서의 책임감, 동생의 죽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학한 대학, 박사학위 취득 등 노마 교수의 성장과정을 담담히 들려준다. 그리고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인간발달단계, 즉 아동기에서 노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개인적 변화과정(사회 심리적 발달의 연속적인 8단계)을 언급하며 삶과 죽음의 관계, 탄생의 의미와 가치를 밝힌다.

 

3. 되감기 버튼

이번 장에서는 케이틀린Catilin의 삶과 죽음의 인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만일 되감기 버튼이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케이틀린은 약물에 취해 거품을 물고 뒤뜰에 쓰러져있던 엄마의 모습을 처음 맞닥뜨렸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케이틀린은 오랫동안 강박장애를 앓고 있던 환자였다. 2007년 가을, 자신에게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케이틀린은 노마 교수의 정신건강 수업을 신청하고 나서야 강박장애라는 증세를 안다. 집안의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그것도 각을 맞춰 진열되어 있어야만 하고 욕실의 샴푸나 샤워용품이 가지런해야 마음이 편하다. 우연이라도 그렇지 못할 경우,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샴푸 통은 재앙을 예견하는 징표이다. 어느 날 노마 교수에게 자신이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고백한다. 부모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며, 한밤중에라도 부모의 집을 찾아가 잠자는 모습을 보고 이상은 없는지 숨은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특히 아버지에게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케이틀린이 이렇게 된 이유는, 약물 중독자였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던 아버지 사이에서 언제나 두려움이 그녀와 함께했고, 초등학생 시절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들로부터 심하게 들었던 꾸중과 질책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였던 케이틀린에게 두려움과 수치심, 부끄러움은 옷장 속에 숨은 괴물처럼 자신을 옥죄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것을 이기지 못해 욕실로 달려가 자주 토했다. 그리고 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욕실 구석구석을 극도로 말끔하게 정리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욕실 물품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웠고, 극기야 욕실은 그녀만의 신성한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4. 어린 소년

어린 시절의 당신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은가? 이번 장의 주인공은 조나단 슈타인그래버Jonathan Steingraber이다. 1996, 당시 11살이었던 조나단은 여느 아이들처럼 잠옷 바람에 침대에서 형제들과 베개싸움이나 레슬링을 하고, TV 앞에서 과자 먹는 걸 좋아하는 어린 꼬마였다. 조나단은 삼형제 중 둘째다. 부모의 이혼으로 처음에는 엄마와 살다가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부터 아버지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엄마의 남자친구가 조나단 형제들에게 손을 댔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는 삼형제를 데려왔고, 낯선 남자에게 매 맞던 형제들은 따뜻한 아버지와의 생활이 꿈만 같았다. 주말이면 낚시를 가고, 땀을 흘리며 농구와 축구를 했다. 그러던 19963월 어느 날, 그날따라 쉽게 잠들지 못했던 조나단은 새벽녘에 거실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따라나선다. 고함의 진원지는 주방이었다. 조나단이 목격한 장면은, 극도로 상기된 아버지와 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머리카락이 검붉은 피로 범벅되어 주방바닥에 쓰러져있는 한 여자였다. 그 여자는 엄마였다. 조나단은 혼란스러웠다. 왜 엄마가 피를 흘리며 거기에 쓰러져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엄마를 구해야한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려고 시도하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힘에 무너지고 만다. 아버지는 조나단을 방에 가두고 쓰러져있는 엄마에게 돌아가 열두 번을 더 찔렀다. 일을 끝낸 아버지는 삼형제를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도 매지 않은 채 미친 듯 밤길을 달렸다. 끝내 사고가 났고 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 후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법정에서 만났다.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날 밤 엄마의 죽음을 진술해야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조나단은 너무 어렸다. 살인죄로 받은 구형은 30. 그러나 20062, 아버지는 감옥에서 면도칼로 목을 그어 자살했다. 언론은 아버지를 정신이상자로, 엄마의 죽음을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보도했지만 조나단은 믿지 않았다. 아버지가 엄마를 살해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8년 여름, 비명소리에 잠을 깬 조나단은 소리를 따라 주방으로 간다. 순간,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 동생 조시Josh를 발견한다.

 

5. 이상한 행동

지구에서 영원히 없애고 싶은 질병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3장에서 소개한 케이틀린과 4장에서 소개한 조나단은 캠퍼스 커플이다. 2008년 여름, 조나단은 대학 졸업식을 기념하고자 케이틀린을 위해 멋진 파티를 계획했다. 연회장을 빌리고, 뷔페를 예약하고, 친구와 가족들을 초대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멋진 옷을 입고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케이틀린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모두가 대화를 나누고 웃고 있는 가운데 조나단의 동생 조시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던 것. 그저 구석에 덩그러니 앉아 무심하게 사람들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케이틀린은 얼마 전부터 조시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의심해왔다. 하버드대를 갈만큼 뛰어나게 명석하기는 했지만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언제나 부정적이며 가끔 이상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었다. 조나단에게 사실을 말하면 화를 낼까봐 노르만 교수에게만 한두 번 상담했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후 조시의 이상행동은 극에 달했고, 집을 뛰쳐나가 노숙자처럼 생활했으며, 가끔 전화해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해댔다. 조시는 FBI, CIA, 심지어 외계인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시 말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정신질환이 유전된다. 케이틀린은 조시의 이상행동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의 아버지로부터 정신질환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떨쳐낼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조나단에게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조나단은 오히려 화를 내며 무시했다. 그러나 며칠 후 조시는 형 조나단을 칼로 찌르고 경찰에 잡힌다. 아버지와 동생의 이상증세를 경험한 조나단은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여자 친구 케이틀린의 인생을 위해 이별을 통보한다.---본문 중에서

50이후, 더 재미있게 나이드는 법 슬기로운 인생 후반을 위한 7가지 공식 저자 스벤 뵐펠|역자 유영미|갈매나무 |2021.09

SVEN VOELPEL

 

독일 브레멘의 야콥스 대학 경영학 교수로, 사회 경제 분야와 연계해 선구적으로 노화 연구를 개척해온 학자다. 1999년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서 경제학, 사회학, 경영학 석사학위를, 2003년 스위스 세인트갈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시작해, 2008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2009년과 2012년에 독일 유력 언론인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지에서 선정한 40세 미만 학자 탑(TOP)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경영 및 건강과 노화에 관련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특히 이 책 ?50 이후, 더 재미있게 나이 드는 법(DIE JUNGBRUNNEN-FORMEL)?은 출간 후 오랫동안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머물며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마음가짐, 식사, 운동, 수면, 호흡, 이완과 휴식, 사회관계 등을 통해 늙어서까지 건강하고 생기 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유용한 배경지식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팁을 종합 정리하고 있다.

 

들어가며

 

1. 그 사람은 왜 또래보다 늙지 않는가?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도 늙는다

50세 이후 질병이 빈발하는 이유

늙지 않는 일곱 가지 공식이 있다

 

{ 첫 번째 공식 : 마음가짐 }

 

2. 건강은 머릿속에서 생겨난다

알아차림이 왜 중요한가?

나쁜 신호와 나쁜 습관을 알아차리는 훈련

[연습해보기] 일상에서 더 많은 알아차림으로 나아가는 연습

삶의 어떤 측면에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연습해보기]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연습

 

{ 두 번째 공식 : 식사 }

 

3. 먹는 것이 당신을 말해준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지 마라

좋다는 음식이 나에게도 무조건 이로울까?

[연습해보기] 건강한 식사를 위해 기억해야 할 것들

설탕과 소금은 적은 것이 많은 것

어느 정도 먹는 양이 적당할까?

간헐적 단식이 염증을 줄여준다

[연습해보기] 음식 궁합을 따져보는 연습

치매를 막기 위해 먹어두면 좋은 것

우유와 고기는 내 몸에 좋을까 해로울까?

 

{ 세 번째 공식 : 운동 }

 

4. 움직이면 복이 온다

노화를 늦추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

운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든 한 발짝이라도 더 움직여라

가장 좋은 헬스기구는 자신의 몸이다

[연습해보기] 맨몸운동 활용 프로젝트

손과 다리의 힘이 장수의 척도

일어서라! 앉은 자세는 위험하다

[연습해보기] 늘 습관처럼 몸을 움직이며 사는 연습

 

{네 번째 공식 : 수면 }

 

5. 나이 들수록 잠이 중요하다

푹 자면 더 건강해지고 더 젊어진다

얼마나 자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

잠을 제대로 못 잘 때는 어떻게 할까?

[연습해보기] 건강한 수면을 위한 체크포인트

 

{ 다섯 번째 공식 : 호흡 }

 

6. 호흡은 젊음의 샘이다

공기에 생명이 있다

어떻게 하면 호흡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연습해보기] 건강한 호흡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 여섯 번째 공식 : 이완과 휴식 }

 

7. 힘은 쉼에서 나온다

번아웃에서 워라밸로 가는 길

휩쓸려 사는 대신 평온하고 의연하게

휴식은 왜, 어떻게 도움이 될까

[연습해보기] 쓰러질 때까지 달리지 말 것

 

{ 일곱 번째 공식 : 사회관계 }

 

8. 외롭지 않아야 아프지 않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젊음을 유지하기

여럿이 하는 운동이 즐겁다

[연습해보기] 오래 함께할 친구를 만드는 법

 

나오며

 

하마터면 어영부영 늙어버릴 뻔했다!”

노화를 막는 과학적 일상 루틴 가이드

 

지식이 기적을 일으킨다 : 건강에 대한 건강한 정의가 필요하다

백세 팔팔을 꿈꾸는 오늘날, ‘골골 팔십은 이제 더는 건강을 함축하는 말이 아니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시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닌 노년 건강의 질이 무엇보다 삶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각종 미디어에서 건강에 대한 온갖 정보가 넘치지만, 막상 건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음을 지적하며 서두를 연다. 건강이란 질병의 반대쪽 극단에 존재하는 상태라는 관점에서 질병의 원인과 발생과 치료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저울추를 질병이 아닌 건강 쪽으로 옮겨오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강은 정신적인 면과 신체적인 면이 맞물린 상호작용이다. 노화 또한 아주 복합적인 과정이라 그 전모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과학의 진보 덕분에 인류는 수많은 지식을 축적해왔다. 저자는 말한다. “심신 건강에 관한 최신 과학 연구 결과는 너무나도 많다.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들 가운데 정말로 유용한 내용을 식별하려면 기본적인 의학 지식은 물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을 썼다. 많은 문헌을 읽고, 진짜 도움이 되는 것과 속설들을 분별해 정리했다.”(35) 실로 저자는 긍정심리학부터 후성유전학까지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건강 공식을 7가지로 압축했다. 더불어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방법들 또한 제안하는데, 이유는 명확하다. 지식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도 늙는다

7가지 공식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의식의 변화알아차림이다. 저자는 심리학자 엘렌 랑거의 유명한 현장 연구를 인용하면서 긍정심리학을 소개한다. 나이 든 실험 대상자들에게 젊음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에서 젊어진 것처럼 행동하도록 유도했더니,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주관적으로 더 젊어졌다고 느낄뿐더러 걷기 자세가 개선되고 걸음도 더 빨라지는 등 건강 상태도 긍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나이가 들었으니 관절염 등 작은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그것을 당연히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사람들이 좀 더 젊게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알아차림이 중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대체로 몸이 치명적인 경고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실천을 미룬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심신이 더 건강하고 질병을 앓을 확률이 현저히 낮다. 의식하는 태도가 건강에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더 많은 알아차림을 나아가는 연습’(56)에서 저자는 “1)틈틈이 휴식 시간을 내라 2)규칙적으로 자신의 자세를 점검하라 3)신체의 피드백에 민감하라고 제안하는데, 이러한 사소한 습관이 긴요한 이유 또한 한마디로 정리한다. “건강에 들일 시간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질병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고 말이다.

 

노화를 막는 과학적 일상 루틴이 있다 : 숨 쉬고 먹고 놀고 자는 생활습관의 비밀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푹 자고 편히 쉬라는 이야기는 누누이 들어왔을 터라, 7가지 공식이 다소 평범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가 밝혔듯 최신 연구 자료를 망라하면서 기존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책을 꼼꼼히 살펴보는 만큼 건강 관련 과학 지식을 업데이트할 수 있다. 우리 몸이 지금껏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는 사례 보고나(102), 다이어트 요법 정도로 알려진 간헐적 단식이 체내 염증 유발을 막아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108) 등이 그러하다.

 

지방이 적은 식사를 한 사람들이 잠을 더 잘 자고 낮 동안 에너지가 충만했다는 연구 결과(207)도 식습관이 수면 필요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규명한 점에서 흥미롭다. 또한 낮잠의 유용성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커피 트릭을 추천하는데, 낮잠을 자기 직전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의 작용이 나타나기까기 30분 정도가 소요되어 30분만 자고 반짝 눈을 뜨기가 쉽다는 꿀팁이다.(212)

 

이렇듯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는 각 공식마다 노화를 막는 일상 루틴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평소에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숨쉬기도 뜯어보면, 신경 쓸 요소가 제법 많다. ‘건강한 호흡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235)에서 저자는 복식호흡이나 심호흡의 효과를 설명하며, 스트레칭을 통해 기도와 폐를 훈련할 수 있고 호흡을 통해 정신 건강도 챙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명 ‘4711’(4초간 숨을 들이마시고 7초에 걸쳐 내쉬는 것을 11분 동안 하기)처럼 단순하고도 유용한 팁은 덤이다. 이렇듯 연습해보기 항목들을 통해 독자들은 건강한 생활을 위해 일상 속에서 시도해보고 점검해볼 만한 요소들을 한눈에 정리해볼 수 있다.

 

코로나 시대 가성비 만렙 프로젝트 : 맨몸운동 사용 설명서

저자는 노화를 촉진하는 가장 주된 메커니즘인 염증노화에 주목하면서,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두 가지, 즉 운동과 음식을 주요하게 다룬다. 특히 노화를 늦추는 데 운동이 얼마나 효과적인 무기인가를 심혈관계, 림프계, 면역계, 뼈와 관절, 근막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걸쳐 증명하고, 운동이 뇌세포를 자극해 인지 능력과 정신 안정에도 기여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 부담스럽다면 걸어 다니는 것 대신 가볍게 뛰는 것, 아니 걸음을 빨리하는 것만으로도 운동 효과가 난다. 이렇게 습관처럼 몸을 움직이며 사는 연습이 곧 근육과 근막을 늘려주는 훈련을 지속하는 효과를 낸다.(184) 저자의 당부처럼, 활력 있게 나이 드는 방법들을 독자들이 꼭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길 바란다.

 

외롭지 않아야 아프지 않다 : 오래 함께할 친구를 만드는 법

공동체에 편입되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예로부터 중요한 가치였다. 사실 젊어서는 사회관계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의식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노화로 인해 활동성까지 줄어들면, 고립감은 걷잡을 수 없이 사람을 압도한다. 여러 사람과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는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 증명되었다. 갈수록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있는 오늘날 만나고 만지고 교류하라는 저자의 말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만큼 더더욱 절실하기도 하다.

 

저자는 될수록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이 웃는 일에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당부한다. 나아가 어울려 하는 함께하는 운동을 찾아보기를 권하는데, 특히 의 효능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파킨슨 환자의 경우 보행 안정, 균형감과 유연성 강화 등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신체뿐 아니라 감성까지 아우르는 효험이 탁월한 때문이다.

우리는 신체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50 이후, 더 재미있게 나이 드는 법을 통해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방향키를 찾아낸 독자들이 질병과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더 재미있는 인생 후반을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속으로

그 사람은 왜 또래보다 늙지 않는가

우리는 건강을 은행 계좌처럼 생각할 수 있다. 건강에 좋은 행동은 계좌에 돈을 입금하는 것으로, 건강에 해로운 행동은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것으로 생각해 보라.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먹고, 잠자고, 호흡하고, 쉬고, 사회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계좌가 넉넉히 찰 수도 또 빌 수도 있다. 행동하는, 혹은 행동하지 않는 모든 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건강은 개별 요소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건강 계좌가 플러스상태라면 조금 지출을 해도 신체가 금방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고 조금쯤 여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러니 평소 건강 자산을 넉넉히 저축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p.21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장기적인 심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선 최신 학문 지식을 알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신 건강에 관한 최신 연구 결과는 너무나도 많다. 매년 새로운 인터뷰와 논문과 기사, 텔레비전 방송, 서적 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들 가운데 정말로 유용한 내용을 식별하려면 기본적인 의학 지식은 물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독자들의 수고를 줄여주기 위해 많은 문헌을 읽었고, 진짜 도움이 되는 것과 속설들을 분별해 정리했다.--- p.35

 

첫 번째 공식: 마음가짐

건강을 위해서는 자신의 상태에 늘 관심을 두고, 건강에 좋은 루틴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좋으니까 말이다. 언제 어떤 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지를 조기에 알아챈다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려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적절히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체가 별 무리 없이 돌아가서 특별한 불편이 없을 때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도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을 내부에 집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아차림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알아차림은 잡념에 빠지거나 지각한 것을 판단하지 않고, 환경, 신체, 감정을 주의 깊고 분명하게 인지하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 p.51

 

두 번째 공식: 식사

이런 연구 결과들은 하루에 에너지 필요량을 약간 더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필요 칼로리의 양은 개인마다 다르다. 나이, , 체격, 몸무게, 신진대사, 건강 상태, 활동량, 심적 부담 등이 필요한 에너지의 양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고려할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통 우리가 칼로리 필요량을 너무 높게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영양협회는 보통 체중에 신체 활동을 적게 하는 51세에서 64세 사이의 성인 남성은 하루 약 2200칼로리, 여성은 1700칼로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65세부터는 남성의 하루 필요량이 100칼로리 가량 줄어든다. 보통 한 사람이 먹는 1인용 냉동 피자 한 판으로 너끈히 1300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빨리 필요량을 초과하여 섭취할 수 있을지 감이 올 것이다. 칼로리 표를 한번 훑어보는 것만 해도 전체를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종종 몸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내가 아직도 배가 고픈가? 아니면 접시에 아직 음식이 남아있기에 계속 먹는 것인가?--- p.106

 

세 번째 공식: 운동

운동할 때는 세 가지 기본 요소가 중요하다. 첫째는 지구력, 둘째는 근력, 셋째가 활동성, 즉 탄력 더하기 장력이다. 운동이나 훈련의 종류에 따라 이들 중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가장 좋은 경우 세 가지 모두를 훈련할 수 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혼합이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다양성은 중요한 요소다. 신체에 계속 같은 형태의 하중을 가하는 것은 마모 현상을 부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선수들에게서 마모가 곧잘 관찰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다고 이제, ‘아 그러면 집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것이 장땡이로구나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유감스럽지만 그건 아니다. 소위 카우치 포테이토족은 운동선수 다음으로 심한 마모 현상을 겪는 사람들이다. ‘정상적으로자주 몸을 움직여 주는 사람들의 관절과 뼈가 카우치 포테이토족과는 비교 불가능하게 마모가 적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p.163

 

네 번째 공식: 수면

건강하고 젊게 살기 위해 수면에서 무엇을 유의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일괄적으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잠이 얼마나 필요하고, 언제 자는 것이 좋을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런 질문과 관련하여, 최신 수면 연구 결과로부터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수면을 통해 건강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물론 수면만으로는 안 되지만, ‘올바른 수면이 생각보다 건강에 많은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p.196

 

다섯 번째 공식: 호흡

올바른 호흡은 우리를 이중으로 이롭게 한다. 즉 질병을 예방해 주고, 건강상의 문제를 호전시켜 준다. 감정과 호흡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입증된 이래, 병원에서도 호흡 연습을 치료로서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우울증이나 공포 장애와 같은 특정 심리 질환에 보조 요법으로 사용되어 효과를 거두고 있다.--- p.234

 

여섯 번째 공식: 이완과 휴식

재충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제프 베이조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일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충전, 성찰, 독서에 시간을 우선적으로 안배한다. 이런 생활 습관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할 뿐 아니라, 예일 대학교 연구자들이 3600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실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도 낮추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p.246

 

일곱 번째 공식: 사회관계

능동적인 생활방식을 성공적인 노년을 보내기 위한 필수 조건에 속한다. 운동과학적 시각에서 능동적인 삶은 일차적으로 몸을 자주 움직여 주고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와 동일한 비중을 갖는 것이 바로 정신적 생동감이다.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는 이 두 가지 면에서 자극와 도움을 준다.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