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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극한의 경험, 전쟁

by 이성근 2021. 9. 11.

극한의 경험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전쟁의 재발견 밑에서 본 전쟁의 역사

사람의 전쟁 1 문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전쟁 70, 1950~2020

기억의 전쟁 기억이 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

베트남전쟁 1968212일 베트남 퐁니·퐁녓 학살 그리고 세계

전쟁의 미래 인류는 어떻게 다가올 전쟁을 상상했는가

극한의 경험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 김희주 옮김 | 옥당 | 201707

 

 

목차

책머리에

옮긴이 글

감사의 글

 

1. 극한의 경험, 진리의 문을 열다(1865~2000)

 

1. 전쟁을 경험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자아 발견 | 몸으로 진리를 목격한 사람들

2. 전쟁을 해석하는 두 개의 시선

극한의 경험이 드러내는 진실 | 관념론 vs. 유물론

 

2. 전쟁, 정신이 지배하다(1450~1740)

 

3. 근대 초기 문화에 싹튼 경험적 진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진실의 증언자로 부상하는 육체

4. 전쟁 회고록, 전쟁 경험을 생략하다

전쟁 경험을 외면한 성인 열전 | 종교인의 전쟁 회고록 | 세속인의 전쟁 회고록

5. 정신, 육체를 지배하다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믿음 | 데카르트 철학의 탄생 | 전쟁은 명예로운 삶의 길 | 전쟁은 개인적 수단 | 전쟁은 집단적 수단 | 정신과 육체의 내적 전투

 

3. 전쟁, 육체를 깨우다(1740~1865)

 

6. 육체, 억압하는 정신에 반기를 들다

사고하기 시작한 육체 | 감수성 문화의 도래 | 감수성과 경험이 지식을 만들다 | 육체의 감각이 이끌어낸 낭만적 숭고

7. 생각하는 사병의 탄생

전쟁기계에서 생각하는 군인으로 | 감수성을 받아들인 군대의 교육 혁명 | 전쟁 회고록의 새로운 주인공 | 개인의 성장을 약속하는 군대

 

4.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1740~1865)

 

8. 낭만주의 전쟁 회고록의 특징

낭만주의는 전쟁 경험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었나 | 풍부한 감각 묘사 | 신경학 언어의 일상화 | 고통에 대한 공감 | 자연에 대한 낭만적 묘사

9. 전쟁의 핵심 경험

전쟁 문화의 거대담론을 형성한 경험들 | 군사 기초 훈련 | 불세례 | 전투 전날 밤 | 전투 | 부상과 죽을 고비 | 살인 | 죽음의 목격 | 전투 후 | 전우애 | 귀향

10. 전쟁 경험의 거대서사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 전쟁의 환희 | 전쟁의 환멸 | 용기와 비겁, 애국심과 환멸의 결합 | 과도한 자극이 초래한 무감각화 | 감각주의 공식에 누락된 변수

 

에필로그 너를 깨우친 것들, 1865~2000

 

도판 출처 | 후주 | 참고 자료 |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전쟁문화사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 변화를 추적하다

 

전쟁의 경험은 인간과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전쟁은 인간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 인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며, 세상에 대한 이해도 변화시킨다. 평시에 몇십 년 동안 배워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전투 10분 만에 깨닫게 하기도 한다. 전쟁의 극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깨달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전쟁관이 호모 사피엔스의 고유 특성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인류 문명사에 이런 시각이 등장한 것은 채 300년이 되지 않는다. 근현대에 와서야 생긴 전쟁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는 이후 군사 혁신으로 이어졌고, 전쟁 정치, 일반 사병의 지위, 군사 이론의 원리까지 바꿔놓았다. 이 책은 바로 그 변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전쟁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킨 근현대의 전쟁 문화를 통찰하다!

 

그래도 경험자가 낫지. 경험자의 말을 들어.”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하려 할 때, 경험자의 의견과 판단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리와 교훈이 경험자의 말에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경험자의 발언에 실리는 권위는 그만큼 더 커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죽음. 그리고 죽음의 위협을 가장 치열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이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랜 시간 이 분야의 연구에 매진했다. ‘전쟁은 무엇일까? 인간은 왜 전쟁에 뛰어들며 전쟁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에서 시작된 사유는 그런데 정말 인간이 전쟁을 경험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계시 체험)?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경험자의 권위)? 도대체 인간은 언제부터 전쟁을 진리를 발견하는 계시 경험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을까?’로 발전했다. 이번 책 극한의 경험은 저자가 이 질문들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저자는 전쟁을 체험한 전투원들의 경험담에 나타난 전쟁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에 주목한다. 중세부터 근대 후기까지 전투원들의 전쟁 경험담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계시적 전쟁 해석이 등장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은 무엇인지 살핀다.

이를 위해 저자는 15세기와 21세기를 왔다갔다하며 둘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고 비교하는 방식으로 책을 끌어나간다. 1(극한의 경험, 진리의 문을 열다_18652000)에서는 계시적 전쟁 해석을 개관하고, 2(전쟁, 정신이 지배하다_14501740)에서는 근대초기로 돌아가 20세기와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근대 초기 전쟁 경험담의 특징을 살핀다. 3(전쟁, 육체를 깨우다)4(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에서는 1740년부터 1865년까지 낭만주의 시기에 계시적 전쟁 해석이 형성되는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후기 전쟁 해석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인문주의 혁명, 전쟁의 이해 방식을 바꾸다

 

이 책에서 저자의 가장 중요한 논지는 1740년부터 1865년 사이에 전쟁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세부터 18세기 이전까지는 전쟁을 계시 체험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를 지내는 동안 계몽주의와 감성 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전쟁을 계시의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세 시대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미와 추를 판단하는 주체는 신(초자연적 존재)이었다. 신이 모든 권위와 의미의 원천이었고, 유한한 인간의 의견과 판단은 바람처럼 속절없는 것이었다. 인문주의 혁명 이전에는 거대한 우주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인문주의가 이를 뒤집어, 거대한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인문주의 혁명을 거치며 인간이 절대적인 의미의 원천이 되었고, 인간의 자유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혜와 권위의 기준이 신과 이성에서 인간과 감정으로 옮겨온 것이다이에 하라리는 인문주의 혁명이후 지식을 얻는 공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식 = 성경×논리 지식 = 경험×감수성

 

중세 시대에는 성경과 논리가 지식을 얻는 방법이었다면 인문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경험과 감수성이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긴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하며 전쟁에 대한 해석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18세기까지 전쟁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승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해석되었지만, 그때부터 줄곧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해 20세기가 되자 전쟁은 정신에 대한 육체의 승리를 보여주는 주요 사례가 되었다. 저자는 철학의 무게 중심이 이성과 정신에서 감정과 육체로 기움에 따라 비로소 전쟁을 계시 체험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정신의 우위기(1450~1740) vs 육체의 반란기(1740~1865),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인문주의 혁명을 기점으로 전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는데, 저자는 그 시기를 정신의 우위기(14501740)와 육체의 반란기(17401865)로 나누어 설명한다.

정신의 우위기에 전쟁 경험담은 주로 중간 계급이나 고위급 지휘관으로 복무한 귀족들이 썼다. 이들은 전쟁의 극한 경험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수많은 전투를 묘사하며 살인의 격정과 승리의 환희는 물론 죽음과 부상, 굶주림, 질병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지만, 전투원들이 비범한 감각과 감정을 얻거나 고양된 각성 상태에 도달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전투원의 개종 경험담이나 영적 자서전, 군인 성자의 성인 열전 등도 마찬가지다. 종교인들은 명백히 종교적 측면에서 전쟁을 해석하고, 전쟁이라는 사건에서 신의 메시지를 읽어내려 했다. 패배와 부상을 신이 분노한 조짐으로, 위험을 모면하거나 승리하는 것을 신성한 은총의 징후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늘 전쟁의 외적 사실에서 얻은 교훈들이며, 개인적인 전쟁 경험에서는 신의 메시지나 그 어떤 메시지도 읽어내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 이유가 지식을 얻는 방법의 차이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성경과 논리를 통해서만 지식을 얻었고 경험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육체의 반란기에는 어떨까? 1740~1865, 이 시기에는 전쟁을 계시 경험으로 보았다. 여기에는 1742년 프랑스 근위대의 군의관으로 임명된 뒤 여러 전투에 참여한 라메트리의 역할이 컸다. 라메트리는 전투 중 치료한 수많은 환자와 군인의 육체,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포위작전 당시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며 자기 정신과 육체를 직접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영혼의 자연사Histoire naturelle de l’?me인간 기계론L’Homme-machine을 출간했다. 특히 근대 유물론의 선언이 된 인간기계론에서 라메트리는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파기하는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존재도 부인했으며, 생각과 느낌이 물질의 작용이라고 주장했다. 지적 사색은 근거 없는 이론들만 낳을 뿐 진리는 오직 직접적인 물리적 경험으로 얻을 수 있으며, 적절한 경험적 연구로 얻은 결론은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라메트리의 견해를 이후 수많은 군인 저자가 차용하면서 전쟁 회고록의 판도가 바뀌었다.

 

또 낭만주의의 숭고개념도 이러한 변화에 한몫 했다. 낭만주의는 숭고한경험을 지식과 권위의 특별한 원천으로 강조했고, 낭만주의의 숭고라는 정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 바로 전쟁 경험이었다. 아울러 18세기 중반부터 개인적 전쟁 경험담을 기록하고 출간하는 일반 사병이 늘어난 것도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초가 되자 일반 사병의 전쟁 경험담이 숫자나 대중적 인지도에서 상급 장교들의 전쟁 경험담에 필적하거나 능가할 정도였다.

 

전쟁을 경험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세기 들어 전쟁 계시 경험담은 유례없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전쟁을 긍정적 계시 경험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환멸 경험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현명한 참전용사 이미지와 미친 참전용사 이미지가 대립적으로 부각되었다. 전투원들은 극한의 경험으로 현명해지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경험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무감각해지기도 했지만, 어느 쪽이든 전쟁 전과 전쟁 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보어 전쟁에서 귀환하는 영국 군인들을 그린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귀향The Return>의 시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어디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평범한 아이로 떠났고, 생각하는 남자로 도착했다.”

이 책은 근대 시대의 다양한 전쟁 경험담과 그것이 변화시킨 인간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이런 경험담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올바른 전쟁관을 숙고하며, 오늘날의 전쟁 문화를 헤쳐 나갈 길을 찾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책 속으로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비추어 이전 세기의 전쟁 회고록들을 살펴본다. 이 질문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계속 염두에 둔 대상은 전형적인 대학생들이다. 대학생들은 500년 전의 전쟁이 전술이나 전략 등에서 오늘날의 전쟁과 다르다는 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도 달랐을까? 그들의 생각은 정말 우리와 달랐을까? 역사학자들은 다르다는 대답이 나올 것으로 당연히 기대하겠지만, 내가 강의실에서 얻은 경험으로는 명석한 학생들에게 사실 정말 다르다고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10년에 걸쳐 중세와 근대 초기의 회고록을 읽은 나 자신도 생물학적 구조가 나와 똑같은 인간들이 정말 그토록 묘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_ <책머리에>(12)

 

150년 전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첫 전투를 앞둔 사람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와 같은 저 선을 한 발자국만 넘어서면 미지의 고통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도대체 전쟁의 무엇이 진리를 계시한다는 것일까? 대부분의 참전용사는 전쟁의 극한 육체적 상황을 꼽는다. 배고픔과 추위, 탈진, 부상, 눈앞의 죽음, 그리고 때로는 살인의 전율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투의 흥분 등을 꼽는다. 참전용사들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합리주의의 권위와 눈으로 목격하는 객관적인 과학의 권위를 포기하고 몸으로 목격한본능적 권위를 주장한다. _ <1. 전쟁을 경험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38)

 

진영이나 생각은 서로 달라도 20세기 회고록 저자들은 모두 전쟁에서 깨닫고 경험한 최고의 것으로 전우애를 꼽는다. 반전사상이 투철한 회고록 저자들도 대체로 전장에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품는 심오한 사랑을 깨달은 덕분에 어느 정도 전쟁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전우애는 중세와 근대 초기에도 분명 존재했다. 사실 전우애는 이 당시가 근대 후기보다 더 중요했다. 근대 초기의 군대는 훗날 군에서 책임진 많은 것들을 전우애로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근대 후기 일부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근대 초기 회고록에서는 전우애가 중요하게 취급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각별하던 동료들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 저자가 대부분이다. 페리 드 기용(Fery de Guyon)1541년 알제 원정 당시 전우들과 매우 돈독한 유대 관계를 맺었음에도 그들과의 유대 관계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중 한 동료의 죽음에 관해서도 그 소규모 전투에서 내 친한 친구이자 전우인 사냥꾼이 전사했다는 설명이 전부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기용의 무심함은 전형적인 것이다. _ <4. 전쟁 회고록, 전쟁 경험을 생략하다>(124~125)

 

전쟁의 재발견 밑에서 본 전쟁의 역사

마이클 스티븐슨 지음 | 조행복 옮김 | 교양인 | 201

 

영국의 군사사가, 저술가. 군사사 분야의 다양한 책을 집필했으며 밀리터리북클럽(Military Book Club)’을 비롯하여 25년 넘게 군사 전문 잡지 편집자로 일했다. 전쟁의 재발견(2012)으로 군사학·전쟁사 분야 전문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이밖에 주요 저서로 3D로 보는 미국 내전(2014), 애국 전쟁: 미국 독립전쟁은 어떻게 싸웠는가?(2008) 등이 있으며,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발간한 전쟁터: 지리학과 전쟁술(2003)의 엮은이로 참여했다.

 

목차

머리말 / 병사들은 전장에서 어떻게 죽어갔는가?

 

1장 최초의 유혈: 고대 전투의 죽음과 호메로스의 영웅들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최초의 무기

포로들의 운명, 먹히거나 산 채로 묻히거나

청동기 시대 전차부대와 기마궁수의 등장

호메로스 영웅들의 대결

일리아스영웅들의 죽음 분석

고대 그리스 전사 호플리테스와 팔랑크스 전술

킬러들의 지휘관알렉산드로스 대왕

양날 검을 든 검투사 부대, 로마 군단

 

2장 중세 기사도의 탄생: 명예롭게 죽는다는 것

중세 기사, 명예를 걸고 싸우다

갑주와 창으로 무장한 기사

쇠뇌와 장궁은 전쟁터를 어떻게 바꿨을까

십자군전쟁, 기마궁수와 중기병의 대결

 

3장 흑색 화약의 시대: 치솟는 치사율

총포를 거부한 중세 기사들

창기병, 보병들을 덮치다

신무기 머스킷총의 시대

일제 사격과 총검 전투

치명적 살상 무기 대포

귀족 장교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4장 미국 남북전쟁: 영광과 지옥

최악의 살상률을 기록한 남북전쟁

대규모 총격전 시대의 개막

죽음을 향하여 정면 돌격

포격전의 실험실, 게티즈버그 전투

중세 기사와 전쟁 사업가의 대결?

영웅적인 죽음 대 버려진 죽음

 

5장 식민지전쟁: 야만과 문명의 대결?

도덕적전술과 비겁한전술

도덕의 탈을 쓴 정복 전쟁

라이플총과 기관총, 식민지를 토벌하다

 

6장 제1차 세계대전: 영웅적 전투의 몰락

기관총을 든 신참 병사들

고성능 폭탄과 집중 포격의 등장

독가스, 더러운 전쟁

갱도 전투와 참호 습격

총검, 영웅적 결투의 흔적

참호 속에서 시신과 함께

 

7장 제2차 세계대전: 1600만 명의 죽음

태평양 전선을 점령한 인종주의

육해공 합동전의 치명적 위험

현대판 중세 기사낙하산병

포탄, 보병을 박살 내다

기계화 전쟁을 이끈 무기들: 기관총, 박격포, 지뢰

말 탄 기사와 전차의 공통점

특수 임무병들: 척탄병, 척후병, 의무병, 보충병

전쟁터 밖 어처구니없는 죽음들

평온을 주는 체념과 숙명론

살인의 기억들

 

8장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 현대 전투의 죽음과 영웅시

부도덕한 전쟁 속의 병사들

우리의 적은 베트콩이 아니라 지뢰였다

현대전에서 표출된 고대의 살인 본능

 

감사의 말

부록1 전장 의학의 역사

부록2 전쟁과 전투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추천사

 

출판사 서평

선사 시대부터 21세기까지 수많은 전투들에서 재발견하는 전쟁의 민낯

 

전쟁의 재발견은 전쟁의 연대기이다. 선사 시대의 부족 전투부터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쟁, 중세의 십자군전쟁, 유럽의 왕위 계승 전쟁,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 현대의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까지 다양한 전쟁과 전투를 만날 수 있다. 전쟁의 재발견은 전쟁의 시대적 양상에 주목한다. 병사들은 시대의 방식대로 죽기에, 죽음의 실체를 규명하는 과정은 전쟁의 시대적 특성을 드러낸다. 더불어 우리가 지닌 잘못된 선입견도 깨부순다. 고대의 전사들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처럼 영웅적인 일대일 전투를 선호했을까? 중세의 기사들은 말 위에서 적군과 싸웠을까? 죽은 병사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야만적인 행위는 원주민만의 전유물인가? 전쟁의 재발견은 시대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연결 고리를 포착한다. 중세의 기사와 현대의 공수부대원들의 공통점, 시대마다 달라지는 영웅적 행위의 의미, 병사들이 미신과 우정과 허무주의를 이용하는 방식까지. 그렇게 이 책은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으나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죽음 앞에 선 병사들의 눈으로 되살려낸 전쟁의 진실

전쟁의 재발견의 저자 마이클 스티븐슨은 전쟁과 관련된 객관적인 통계 자료와 연구서를 비롯해 참전 용사들의 회고록과 호메로스, 존 스타인벡의 문학 작품까지 샅샅이 섭렵하여 전쟁의 실제 광경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독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보병이 되어 팔랑크스를 이루며 전진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중세의 기사가 되어 갑옷의 무거움을 토로하기도 할 것이다. 나폴레옹전쟁과 미국 남북전쟁에서는 대포의 굉음을 들을 것이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는 신무기들의 반동을 느끼거나 황록색 독가스에 기겁할 것이다. 미군이 되어 베트콩과 탈레반과 싸우며 영웅적 전투의 소멸과 비정규전이라는 새로운 전통의 확립을 목격할 것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전쟁의 박제된 이미지를 넘어, 피비린내 나는 수렁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병사들을 만날 것이다.

 

우리는 전쟁에 관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기억하는가?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 독재자 임모탄 조는 물과 기름을 차지하고서 사람들을 지배한다. 임모탄 곁에는 그를 신처럼 따르며 숭배하는 전사, 워보이들이 있다. 어느 날 한 워보이가 임모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기꺼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 당당하게 죽음에 임하며 외치는 최후의 말. 기억해줘!(Witness Me!) 이에 동료 워보이들은 입을 모아 엄숙하게 대답한다. 기억할게!(Witness You!) 그러나 기억했을까? 기억됐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살아남은 다른 워보이들은 희생한 전사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기억이 우리를 망각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관념은 역사가의 교묘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위는 인류만큼이나 오래된 마법을 불러낸다.” (머리말)

 

전쟁의 재발견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전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가 기록하는 전쟁의 원인과 결과, 전쟁의 승패, 전쟁의 전략과 전술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너무나 차분하며 너무나 깨끗하다. 피가 낭자한 참혹함이나 진창의 더러움이나 살육에서 오는 쾌락과 체념과 죄책감은 사라진다. 우리는 전쟁을 너무 낭만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뛰어난 전쟁사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Victor Davis Hanson)은 전쟁을 기관총의 총탄이 사춘기 청년의 이마에 박히는”, “이름 없는 갈리아인의 복부를 갈라 동맥과 장기를 도려내는일이라 고백한 바 있다. 이 표현은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과 결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전쟁의 재발견은 바로 이 진실을 단도직입적이고 솔직하게 기록한다.

 

전쟁 안에는 많은 것이 있지만, 그 핵심은 남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것이다.”

전쟁의 재발견은 원시 시대 최초의 전투부터 현대의 게릴라 전투까지 인류의 문명과 함께 변모해 온 전쟁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1장은 고대, 2장은 중세, 3장은 흑색 화약의 시대, 4장은 미국 남북전쟁 시대, 5장은 식민지전쟁 시대, 6장과 7장은 각각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다루고, 8장은 현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외에도 독자의 이해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두 편의 부록이 실려 있다. 첫 번째 부록은 저자가 전장 의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 글이다. 살육이 목적인 전쟁터에서 역설적으로 살리려고 애쓴 구원의 역사를 다룬다. 두 번째 부록은 본문에 등장하는 주요 전쟁과 전투를 정리한 것인데, 싸움의 원인과 승패의 결과가 주 내용이며 한국어판에 추가한 것이다.

 

책 속으로

영웅화와 익명성의 조화 _ 1장 최초의 유혈: 고대 전투의 죽음과 호메로스의 영웅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영웅들의 화려한 대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팔랑크스(밀집 대형)에 절대적으로 복종한 익명의 병사들의 전설이 담겨 있다. 고대 그리스 전사 호플리테스는 오른손에는 긴 창을 쥐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자신의 왼쪽과 동료의 오른쪽을 보호했다.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며 자신의 개성을 집단에 종속시켜 승리를 쟁취했다.

 

아틀라틀은 창과 비슷한 짧은 다트를 세게 내던질 수 있는 목제 무기 발사기로, …… 투창의 사거리를 약 네 배 늘렸고(22미터에서 91미터까지 늘었으며, 27미터까지는 꽤 예측 가능한 정확도를 보였다), 타격 무기를 잘 쓰는 강건한 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적에게 심한 부상을 입힐 수 있는 결정적인 이점을 주었다. 이는 아틀라틀을 휘두르는 무리가 곤봉과 던지는 창만으로 무장한 적보다 더 먼저 공격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 그리고 약 2만 년 전 활과 화살이 출현하자,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다. - 26

 

팔랑크스 두 진이 맞붙으면, 전투는 오티스모스, 즉 방패 밀치기로 귀착되며, …… 말하자면 필사적이고 두려움에 질식할 것만 같고 낚아채고 난도질하는 잔인한 살육전으로, 영웅적인 전투와는 전혀 달랐다. 압사와 질식사는 설 자리를 잃은 자들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전투 중에는 영웅적 기운을 유지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으며, 집단 전투는 고대 그리스의 화병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았다. 장려해야 했던 이미지는 영웅적인 개인들 간의 싸움이었다. 전쟁의 엔진은 신화에 담긴 중독성 있는 환상으로 움직인다. - 6465

 

로마 군대는 전투를 위해 만들어졌고, 그 전술의 목표는 맞붙어 싸워 죽이고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 군단의 규율과 단결력과 결의는 로마 군대의 야전 규범을 따르지 않는 적을 만나면 때때로 무력해졌다. 이들은 멀리 떨어져 궁수부대가 쏜 사거리가 긴 화살로 적을 죽임으로써 로마 군대가 전술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그들의 가장 귀중한 자산을 빼앗았다. - 7980

 

말에서 내려와 싸운 기사들 _ 2장 중세 기사도의 탄생: 명예롭게 죽는다는 것

우리가 그리는 중세 전장의 모습은 어떠한가? 늠름한 기사가 날렵하게 말 위로 올라 창을 휘두르며 나약한 보병들을 쓰러뜨리는 것? 아니면 다른 기사와 일대일 결투를 벌여 전투의 승기를 결정짓는 것? 이미지가 아닌 실제 전장의 모습을 보라!

 

우리가 말 탄 기사에 매혹된 나머지 중세 전투에서 기사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다소 왜곡되었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보병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보병이 사실상 주요소였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중세의 주요 기간(500년 무렵부터 전장에서 총의 위력이 처음으로 인지된 1400년 무렵까지) 보병은 숫자상으로 기병을 적어도 다섯 배압도했다. - 93

 

기사가 말에서 내려 싸우는 일은 흔했는데 그렇게 하면 쉽게 지쳤고(갑옷 안에 가득한 열기만으로도 틀림없이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진흙투성이 땅이나 울퉁불퉁한 땅에서 싸우면 큰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 105106

 

왜 기사들은 머스킷총을 버리고 다시 창을 들었을까 _ 3장 흑색 화약의 시대: 치솟는 치사율

18세기에도 머스킷총은 상당히 부적절한 무기였다. 재장전할 때 고장이 빈번했고, 장전 시간이 길어 반격당할 위험이 컸으며, 먼 거리에서는 정확도가 확 떨어졌다. 기사들은 총을 버리고 다시 창이나 검을 들었고, 보병들은 총구에 낄 수 있는 검을 소지했다. 화약이 화기 안에서 안전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꽤 잦은 실수가 동반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가 지나면서, 그리고 권총과 카빈총이 전혀 전장의 주역이 아님이 입증되면서, 유럽의 기병은 이전의 전술적 역할로 돌아가 보병의 도전에 대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말을 타격 무기로 쓰고 검이나 사브르로 무장한 채 보병 대형을 깨뜨리려 했던 것이다. - 127

 

부싯돌식 소총은 약 45미터를 넘는 거리에서는 무엇을 겨냥하든 부정확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18세기의 어느 장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병사의 머스킷총은, 총강이 지나치게 나쁘지만 않다면(나쁜 경우가 허다하다), 73미터 밖의 사람을 타격할 것이다. …… 그러나 약 140미터 밖에서 발사한 일반적인 머스킷총에 부상을 입은 병사가 있다면 매우 불운한 자가 틀림없다. 그리고 약 180미터 밖에서 사격한다면 차라리 달을 보고 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 141

 

누가 야만적인가? 누가 도덕적인가? _ 5장 식민지전쟁: 야만과 문명의 대결?

식민지전쟁의 명분은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 자들을 문명화한다는 것이었다. 백인들은 총과 도덕을 들고 원주민의 땅을 침략했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자들을 잔인하게 살육했고 결국에는 정복했다.

 

신체 절단과 포로 고문이 명백히 식민지전쟁에만 한정된 특징은 아니지만, 그러한 이미지 부여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각별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식민국들은 그러한 행위를 적인 원주민이 문명화한 전쟁 규범의 경계 너머 야만의 영역에 산다는 확실한 증거로 삼았다. 원주민 전사들은 곧 지극히 무서운 존재이자 매우 비열한 존재가 되었다. 원주민은 노략질하는 짐승에 불과했고, 정복 전쟁은 도덕적으로 필요한 전쟁으로 바뀔 수 있었다. 정복군은 야만의 잔인하고 사악한 심장을 겨냥한 빛과 이성의 십자군이었던 셈이다. - 248249

 

미군 장교들에게는 병사들이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리 가죽을 벗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때로 성가신 일이었다. …… 스미스는 1904년에 사이러스 브래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를 전부 데려가는 인디언들에 관해 말하자면, 당신은 이 문제 역시 잘못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병사들도 다수가 죽은 인디언의 시신에서 머리 가죽 따위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 - 255

 

아군을 희생하여 적군을 소모시키다 _ 6장 제1차 세계대전: 영웅적 전투의 몰락

대규모 살상률, 거대한 전선, 전면적인 기계화 전쟁, 독가스의 살포, 전차전의 시작 …… 1차 세계대전은 여러모로 전쟁사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는 추축국과 연합국 모두가 소모전을 벌이기로 결정한 탓이었다. 그러나 소모전의 진실은 다음과 같았다. “적에게 피를 흘리게 하려면 나도 피를 흘려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의 주된 전략적, 전술적 진실[] …… 보통은 방어 능력이 공격의 패기에 승리했고, 비교적 성공한 공격조차도 아주 큰 희생을 치렀다는 점이다. 돌파 가능성의 유혹, 돌격과 용기와 규율의 승리, 병력 집중, 예비 포격에 대한 믿음. 이 모든 것이 공격전을 유혹하는 위험한 신호였다. 적군이 방어진지 안에 안전하게 자리 잡고 있을수록, 전략가들은 더욱 광포하게 공격의 열쇠를 찾아내려 했다. - 276

 

그러나 독가스의 효과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독가스는 다른 무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죽음을 초래했지만(대략 영국군 6000, 독일군 9000, 프랑스군 8000명이 사망했고, 러시아군은 주로 방독면이 부족한 탓에 56000명을 잃었다) 정당하지 못한 더러운 전쟁 수행 방식으로서 공포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 302

 

변동성이 큰 전투가 끝나고 참호전이 시들해지기 시작하면서, 창의적인 인간들은 이른바 야전의 축소판인 참호 습격으로 관심을 돌렸다. 목적은 대개 적군 병사를 포로로 잡아 신문하거나 그저 적군의 사상을 초래하여 사기를 꺾는 것이었다. 또한 전면적인 전투가 없을 때, 참호 습격은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에게 피 맛을 보여주고그들의 전투 기질을 증명하는 데 쓰였고, 경험은 많지만 무기력한 병사들에게는 방심하지 않게 하는 데 쓰였다. - 310

부도덕한 전쟁 속의 전사들 _ 8장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 현대 전투의 죽음과 영웅시

현대의 전투는 영웅적이지 않다. 병사들이 따라야 할 대의는 조작되었고, 국민적 헌신은 자취를 감췄다. 서구의 월등한 화력이 정면 대결을 무모하게 만들었기에 민간인과 구별되지 않는 전사들이 등장했다. 반군 병사들은 반칙적(?) 전술로 맞섰으나 보통은 미군보다 훨씬 더 많이 죽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볼 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벌인 전쟁은 각국의 사회에 크고 결정적인 분열을 낳았다.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전쟁을 두고 이른바 영웅적 정신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벌어졌고, 때때로 정부는 정당한 대의와 강력한 도덕적 맥락을 만들어내기 위해 약간의 창조적인 고쳐 쓰기를 해야 했다(베트남전쟁의 통킹만 사건과 이라크 대량 살상 무기의 잠재적인 버섯구름은 그중에서도 가장 터무니없는 사례이다). - 493494

 

이라크인은 미군의 방식대로 싸우려 하지 않았다. 미군이 대면한 적은 대체로 정형이 없었고 군복을 입지 않았으며 조직된 군대의 일부인 경우가 드물었다.” 이라크인은 민간인의 차량을 이용했고 민간인의 주택을 거점으로 썼으며 민간인을 방패로 삼았다. 어느 미군 병사는 베트남전쟁에서 느꼈던 당혹감을 이렇게 기록한다. “전차도 없고 BMP(소련제 전투장갑차)도 없으며 군복도 없다. 이것은 우리가 싸우려던 전쟁이 아니다. 말하자면, 저들은 검은색 파자마 차림으로 뛰어다닌다.” - 498

 

가장 치명적인 무기 중 하나는 베트남에 있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있든 일종의 지뢰였다. 베트남에서는 포격에 죽은 병사가 약 18500명이었는데, 지뢰와 부비트랩과 기타 폭발물이 터져 다중 파편에 부상을 입은 후에 사망한 병사가 약 16000명이었다. - 511

 

죽이고 살리는 구원의 역사 _ 부록1 전장 의학의 역사

기술(무기)의 발전은 인간을 잔혹하게 죽이기도 하지만, 죽어가는 인간을 살리기도 한다. 의료 체계의 빛나는 성공과 숱한 실패 사이에서 병사들이 처한 잔혹한 운명을 이해하려면, ‘전장 의학의 역사를 놓쳐서는 안 된다.

 

로마 제국은 전장의 구조 작업에 자신들의 관료주의적 재능을 발휘했다. 군대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세금을 부과했다. 치열한 전투 중에 상근 의무 인력이 활동했다. 외상 전문 군의관과 정교한 병원 체계가(모든 주둔지에는 야전병원이 있었다) 감염 방지를 위한 청결의 필요성을 놀랍도록 잘 인식한 채 부상병들을 돌보았다. 의료 조직의 측면에서 보면, 로마의 병사는 19세기까지는 그 어떤 것에도 뒤지지 않을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 543

 

이따금 역설적이게도 불결한 상황이 괴저에 걸린 자들을 살렸다. 채터누가의 북부 연방 수용소에 포로로 수용된 남부 연합의 군의관들은 의료품을 공급받지 못했다. 많은 병사의 상처가 그대로 노출되어 파리가 몰려들었고 불가피하게 구더기가 들끓는 결과를 초래했다. …… 그러나 구더기가 앉은 남부 연합군을 돌보았던 의사들은 크게 놀랐다. 구더기가 괴사한 조직만 먹어치우는 지극히 중요한 청소 역할을 수행하고, 통상적인 방법으로 상처를 씻은 병사들보다 이들의 회복 비율이 더 좋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554

 

사람의 전쟁 1 문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전쟁 70, 1950~2020 저자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걷는사람 |2020.6

 

출판사 서평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하는 이즈음 비극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고 어제의 기억을 되살려 통일시대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여러 예술가들이 협업한 기록물 사람의 전쟁1·2가 출간되었다. 책에는 문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전쟁 70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지난 70년은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었으며, 분단의 암울한 현실을 기억하고 통일시대로 가기 위해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은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창작을 통해 분단현실을 표현해 왔다.

 

대전 충남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작가 집단인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에서는 올해 초부터 한국전쟁 70년을 짚어보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대전문화재단의 협업형예술생태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진 이번 작업의 주제는 대전의 기억을 소환하는 한국전쟁 70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융복합예술창작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번 작업은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소속 작가들을 비롯해 대전에서 활동하는 극단의 배우, 영상작업을 하는 지역 프로덕션, 화가 등이 참여했으며, 최종 결과물은 전쟁을 주제로 한 시, 소설, 희곡, 동화, 구술, 문화비평 등의 내용이 담긴 두 권의 책으로 동시에 출간됐다.

 

1권은 작가들이 직접 창작하고 취재한 내용을 담았으며, 2권은 멀티미디어북의 형식을 갖추어 1권에 실린 작품을 영상과 낭독 등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2권 멀티미디어북을 펼치면 시인이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현장에서 직접 시낭송을 하고, 그 모습을 책자에 실린 QR코드를 통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희곡 작품은 대전지역 중견 연극배우들이 참여하는 낭독공연형식으로 제작되어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또한 전쟁 당시 유행했던 트로트 가요의 흐름을 다룬 문화세평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당시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두 명의 대학교수가 쓴 르포는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학도병의 육성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낸 민간 여성들의 육성을 담았으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과학동화는 그림으로, 대전의 전쟁 공간은 사진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책속으로

우리는 아직도 둘로 나뉘어 있다. 같은 피를 가진 형제들이, 자매들이 만나지 못한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밥상머리에 앉을 수 없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는 서로를 죽이는 전쟁으로 맞섰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아니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모든 전쟁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광견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처럼 그저 미친 짓일 뿐이다. 그렇게 70년이 흘렀다. 시간은 온전히 한 생의 길이가 되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남았던 사람도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이렇게 상처의 뿌리는 그대로인 상태이지만 전쟁이라는 직접적인 기억은 많이 흐릿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오늘의 기억을 살펴야 할 때이다.--- 여는 글중에서

 

그 사이 뗏장은 푸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어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함부로 구겨지고 부서진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위로

향이 스며 흐르고

 

쇠꼬챙이에 긁힌 검은 표지석

뼛조각을 모아둔 가건물 하나

 

뒤섞여 떠도는 불안한 눈빛들

가시덤불 무성한 골짜기

 

(중략)

 

이건 정말 내가 꿈꾸는 오늘이 아니다

내일은 더더욱 아니지!

 

지독한 여름이었다

여름인데도 살을 파고드는 한기

 

총성이 연이어 골짜기를 흔들어댔다

---골령골중에서

 

6·25 참전했던 사람들 중 십육만 명이 살아 있는데, 국가에서는 이들에게 월 십팔만 원 준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젊어서 청춘을 바쳤는데 십팔만 원을 준다. 당연히 십팔만 원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 어떤 노인들은 무료급식, 공짜로 먹는 데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대전역이나 서울역, 파고다공원 같은 곳의 무료급식하는 곳만 찾아다니는 참전용사들이 많다. 그는 이런 게 억울하고 분하다.

경제 10위권이고 국민소득 3만 불인 국가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이렇다. 자치단체에 따라서 조금씩 주는 게 있긴 하다. 대전시는 오만 원, 충남은 십만 원씩 준다. 또 자식들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지금 팔십 고령인데 직업도 없으니, 막막한 신세다. 그 당시 학도병들은 돈을 바라고 전쟁에 갔던 것은 아니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고 국민이 다 죽게 생겼으니 간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중에서

 

인민재판은 한국전쟁이 준 또 다른 큰 상처였다. 곡식이 있어도 먹을 수 없었다. 맨날 인민군이 와서 퍼갔다. 그래서 마구간을 다 치우고 그 속에다 여섯 가마니를 묻어 놨다. 이걸 방앗간에 가서 쪄야 먹는데 인민군 패거리들 때문에 방앗간에서 안 쪄 주었다. 그들은 인민군 패거리라기보다 동네 사람들이었다. 촌사람한테 완장 하나씩 차주니까 너무 뛰어노는 거였다. 그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손바닥을 봐서 손이 고운 사람은 다 잡아갔다. 손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은 고생했다고 안 잡아가고, 손이 고운 사람은 고생을 안 하고 남의 피 빨아 먹었다고 잡아갔다. 가게를 하던 옆집 아저씨는 네 귀퉁이 나무에 묶여 사지가 찢겨진 채 불에 타서 죽었다.--- 그녀의 목소리중에서

 

아침나절부터 도락꾸가 연신 사람덜을 실어 나르는 겨. 내가 저짝 나무 타고는 몰래 봤다니께. 짐칸에 꼬쟁이맹키로 꽂아서 대가리를 처박고 앉았는디 사람덜이드라니께. 후딱 봐두 사십 명은 족혀, 한 대에. 해질 때까정 도락꾸가 왔다 뺐다 허는디, 그런 공사가 웂어. 쪼매 있으면 콩을 볶는 겨. 총소리여. 도락꾸 들어오고 쪼매 있으면 그랴, 콩 볶는 겨. 그라구 나믄 탕, , 한 발씩 쏘는 총소리가 있어. 혹시 살았는개비 다시 확인으루다가 쏘는 겨. 대개 군인들이 그라고, 갱찰노무 새끼덜두 있었어. 청년방위댄지 뭔지 시퍼렇게 젊은 놈덜두 있었는디, 그놈덜은 삽질을 혔어. 지대루 죽었는지 보덜 않구 걍 묻는 겨. 그날이 초나흘이었을 틴디 열댓 번인가, 도락꾸가 들락거린 것이. 요즘 여그 동네 사람덜, 개를 다 묶어놨다니께. 개덜이 하두 산으로만 올라갈라 혀서 단속이 여간 대간혀.” --- 사람의 전쟁중에서

 

기억의 전쟁 기억이 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

이길보라, 곽소진, 서새롬, 조소나 저 | 북하우스 | 202102

 

: 이길보라-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 사람. 농인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아시아 8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밖 공동체에서 글쓰기, 여행, 영상 제작 등을 통해 자기만의 학습을 이어나갔다.

홈스쿨러’, ‘탈학교 청소년같은 말이 거리에서 삶을 배우는 자신과 같은 청소년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해 로드스쿨러라는 말을 제안했고, 그 과정을 2008년 자신이 제작하고 연출한 첫 영화 로드스쿨러에 담았다. 2014년에는 농인 부모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은 장편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2018년에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둘러싼 서로 다른 기억을 담은 영화 기억의 전쟁을 만들었다.

지은 책으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길은 학교다, 기억의 전쟁(공저),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등이 있다.

2021년 네덜란드 정부가 전 세계 여성 리더에게 수여하는 젠더 챔피언 상을 받았다.

 

출판사 리뷰

할아버지는 참전군인이었다

1968년 그날, 베트남의 기억에 다가가다

할아버지의 침묵에서부터 시작된

영화 기억의 전쟁제작진의 5년여의 여정

 

참전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해 베트남 중부의 수많은 증오비와 위령비를 지나 비석 너머의 이야기에 닿기까지, 그리고 50년 넘게 그 이야기를 품어온 사람을 만나기까지 영화 기억의 전쟁제작팀이 걸어온 5년여의 여정을 책에 담았다. 영화 기억의 전쟁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베트남 중부 마을의 따이한(đ?i Han, 大韓) 제사와 한국의 베트남전쟁 전몰장병 위령제, 베트남 전쟁증적박물관과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내가 똑똑히 봤어. 한국군이었어라는 피해자의 증언과 양민 학살은 없었다고 외치는 참전군인의 증언을 오가며 서로 충돌하는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기억의 전쟁은 그 충돌 지점에서 카메라를 든 이들이 매순간 직면해야 했던 고민들을 보여준다.

 

이길보라 감독이 기억의 전쟁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서로 다른 침묵을 이해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도, ‘이혼비를 벌기 위해 베트남에 간 남편 대신 전장에서 보내온 돈으로 가족을 건사한 할머니로부터도 전쟁에 대해 들을 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길보라 감독은 스스로 베트남의 기억에 다가서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한강의 기적으로, 가족들에게는 초콜렛과 산요 카세트로, ‘풍요와 발전의 서사 안에 매끄럽게 통합되는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1968년에 일어났던 학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궁리했던 과정은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건너오며 부딪쳤던 부조리와 불합리를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는 이길보라 감독의 고백은 개인의 서사에서부터 출발해 전쟁과 학살, 국가 폭력의 문제에 다가서려는 이 긴 여정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고엽제 후유증은 할아버지에게 암과 함께 상패도 남겼다. 할아버지는 후유증을 인정받아 받은 상패를 대통령 표창장과 나란히 집 한가운데에 진열했다. 먼지가 앉을 새라 수건으로 정성껏 닦곤 했는데 할머니는 그래도 나라에서 상이군인으로 인정해주어 수당도 나오고 보훈병원에 다닐 수 있는 거라며, 그게 혜택이라며 병원에 갈 짐을 쌌다.”(12)

 

카메라를 내려놓은 곳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되었다

베트남 중부의 증오비와 위령비를 지나

비석 너머의 이야기에 가닿기까지

 

2015년 겨울, 평화기행과 빈안 학살 49주기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베트남에 도착한 제작진이 마주한 것은 베트남 중부 마을 곳곳에 자리한 위령비와 증오비였다. 그곳에서 증오가 형상을 가지고 있는듯한 비석과 그 위에 적힌 비문, 그리고 학살 희생자들의 이름 혹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보자인(Vo Danh, ‘무명이라는 뜻의 베트남어)’을 눈에 새긴다. 제작진은 먼저 카메라를 내려놓기를 택한다. 대신 꽃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마을 사람들이 나눠주는 독한 술을 받아 마신다. 촬영감독인 곽소진은 이러한 결정이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이기 이전에 학살지 앞에 선 한 사람으로서 내 마음이 완전히 손상되지 않을 수 있도록해준 배려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 고통의 내부에 있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직도 하미 마을에 가면 학살 당시 희생된 마을 주민 135명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의 비문이 연꽃 문양 대리석 아래 감춰져 있다. 한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가 학살 당시 상황을 묘사한 비문의 내용을 문제 삼자 마을 주민들이 비문을 삭제하는 대신 덧씌우기를 택한 것이다. 제작진은 보고 싶지 않은, 그래서 보이지 않도록 가려두는 마음이 여전히 한쪽의 기억을 지배하는 기억의 전쟁한복판에서, 촬영을 한다는 건 카메라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용서받고 싶은 사람과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잊고 살 수 있는 사람과 잊을 수 없는 사람, 일상을 비집고 들어간 사람과 그들이 떠난 뒤에도 일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재현하려는의도를 조심스럽게 실현해나가는 제작진의 행보는 전쟁과 학살이라는 무거운 사건 앞에서 피해자 역시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는 아주 평범한 진실을 간과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영화 기억의 전쟁을 만든 동력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작팀은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카메라를 가지고 갔지만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다. 대신 꽃과 향을 올리고, 절을 하고, 위령비에 새겨진 읽을 수 없는 이름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 들판에 부는 바람을 찍었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63)

 

아무리 자세히 듣는다 해도

나는 그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남성의 시선으로

전쟁과 학살을 마주한다는 것

 

프로덕션 기간 내내 제작진은 음력설이면 베트남을 찾았다. 1968구정 대공세라고 불린 대규모 군사 작전이 있었고, 이 시기에 특히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서 민간인 학살이 많이 벌어졌다. 설 연휴를 전후로 학살을 당한 이들을 기리는 위령제와 제사가 연이어 열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로듀서 서새롬은 제사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향과 절을 올리고, 제삿밥을 나눠먹고, 그 사이사이 증언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를 기억을 함께하는 일, 프로덕션의 중요한 과정으로 설명한다. 딘껌, 응우옌럽, 응우옌티탄 세 명 증언자들의 학살 당시 경험에 주목하지만, 그들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거나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영화의 미덕은 어쩌면 그런 노력 덕분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통역사 응우옌응옥뚜옌이 이 책의 부록에서 지적한 것처럼 등장인물들은 슬픈 기억을 되짚으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듯 증언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에 실린 영화에 대한 해제 글에서 영화의 영어 제목인 언톨드Untold’를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 정체성을 가진 감독의 세계와 말을 빼앗긴 여성화된 타자의 세계가 만나는 이중의 의미로 읽는다. 책에는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세 명의 주인공들을 섭외하게 된 과정과 사연이 상세히 담겨 있다. 학살 당시 다낭에 있어 가까스로 학살은 면했으나 고향으로 돌아와 땅을 개간하다 불발탄이 터져 시각장애인이 된 응우옌럽, 퐁니?퐁넛 학살에서 오빠를 제외한 온 가족을 잃고 고아로 살아온 응우옌티탄, 하미 학살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다낭으로 도망 가 한국군의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온 농인 딘껌, 제작진은 공식 언어가 포착하지 못한, 혹은 포착하지 않은 이들의 기억에 다가서며 우리의 기억이 배제해온 다른 기억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끈질기게 묻는다.

 

책에는 영화에서는 방한 장면에 아주 잠시 등장하는 빈안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떤런의 목소리도 생생히 담겨 있다. 빈안(Binh An, 平安)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지명으로, 학살 이후 평안한 마을이라는 뜻의 원래 지명을 쓸 수 없다는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마을 이름을 폐허 위에 마을을 재건했다는 의미를 담은 떠이빈(Tay Vinh, 西榮)으로 바꾸었다. 런 아저씨를 만나 그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서 전쟁 이전이나 이후나 변함없이 흐르는 꼰 강의 물줄기를 훑으며 촬영감독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풍경의 의미가 뒤집어지는 상황에 대해 자문한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자들은 있는데 죽인 자들은 없으니 누구를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용서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던 런은 지난 2020년 향년 69세의 나이로 작고한다. 제작진은 그가 생전에 쓴, 용서할 대상을 찾을 길 없어 수취인이 불명확한 채로 남은 편지 두 통을 책에 수록했다.

 

문서 속에서 런 아저씨의 젊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몸에 얼마나 많은 수류탄 파편이 박혀 있는지, 자신과 여동생을 끌어안았던 어머니의 몸이 얼마나 끔찍하게 훼손되었는지, 여동생과 어머니가 차례로 숨진 그날 밤 그가 몇 번을 기절했는지에 대해 아무리 자세히 듣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93)

 

아버지가 한 일을 아이가 갚을 순 없잖아?

누가 그 죗값을 치를 수 있겠어

기억과 용서에 관한

가장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다큐멘터리

 

우리는 진즉 이 전쟁을 끝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들도 여러분 마음속의 전쟁을 빨리 끝내길 기원합니다.”(119, 응우옌떤런의 편지 가운데)

 

2015년 베트남 중부 증오비와 위령비 앞에서 시작해 3년에 걸쳐 진행된 촬영은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인물의 변화를 뒤쫓아야 한다는 조소나 프로듀서의 물리칠 수 없는 제안으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추가 촬영까지 감행해 4년 만에 끝을 맺는다.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기도 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응우옌티탄은 한국어로 진행된 재판 내내 자리를 지키며 최후변론에서 객석의 참전군인으로 보이는 이들을 향해 학살에 가담한 사람이 있다면 올라와 자신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단편 신짜오 신짜오에서 같은 기억과 상처를 어루만진 적 있는 최은영 소설가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이미 종료된 일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봉합될 수 없는 상처를 계속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제작진의 여정 속에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제작진과 기억의 전쟁의 행보는 지난 20202월 영화를 개봉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비록 하루 확진자가 코로나19 국내 감염이 시작되고 최고치를 기록한 날에 개봉하는 불운을 맛보았지만, 그래서 응우옌티탄을 초청하려던 계획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십여 차례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고, 개봉 당시 영화관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공동체 상영을 열기도 했다.

 

작년 4월 영화 개봉 이후, 응우옌티탄은 베트남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한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접수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첫 번째 소송이었다. 이길보라 감독의 말처럼 영화 제작은 끝나도 증언자들의 여정이 계속되는 한, 이 영화가 들려줄 이야기도 계속될 것이다. 영화 기억의 전쟁은 올 225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의 제작 과정을 면밀한 시선으로 되짚고 있는 책 기억의 전쟁은 단순한 제작노트를 넘어 독자들로 하여금 타인의 고통에 다가설 때 필요한 태도와 기억을 함께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희의 죄가 아니라고 한 그의 말은 현장에서 나를 구원했다. 그 말로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말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어쩌면 당신은 너희들이 무엇을 해도 시간을 돌릴 수는 없을 거라고, 과거를 바꿀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던 건 아닐까.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일어났던 학살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다고.”(151)

 

책 속으로

1968년에 일어났던 학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궁리했던 과정은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건너오며 부딪쳤던 부조리와 불합리를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 답을 찾는 과정을 영화에 담았고, 미처 영화에 담지 못했던 어떤 마주침을 책으로 엮었다.--- p.7

 

고엽제 후유증은 할아버지에게 암과 함께 상패도 남겼다. 할아버지는 후유증을 인정받아 받은 상패를 대통령 표창장과 나란히 집 한가운데에 진열했다. 먼지가 앉을 새라 수건으로 정성껏 닦곤 했는데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픈데, 그래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뭐가 그렇게 자랑스럽지?--- p.12

 

왜 할머니는 베트남에 대해, 베트남전쟁에 대해, 아니, 전쟁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걸까. 당신의 몸으로 한국전쟁을 횡단했으면서, 남하하다 낙동강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으면서, 왜 당신은 전쟁에 대해 모른다고, 전쟁을 이야기하는 건 남자들의 몫이라고 말하는 걸까.--- p.15

 

1968구정 대공세라고 불린 대규모 군사 작전이 있었고, 당시 청룡부대가 막 주둔을 시작한 꽝남성에서는 민간인 학살이 많이 벌어졌다. 다낭과 호이안이 위치한 베트남 중부 꽝남성의 한국군 피해 마을에서는, 그래서 설 연휴를 전후로 마을 단위의 위령제와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제사라는 뜻의 따이한 제사가 연이어 열린다.--- p.41

 

2015년 겨울, 프리 프로덕션을 위해 평화기행에 참여해 처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베트남 중부 마을을 방문했을 때 나는 증오가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p.72

 

이들은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이기 이전에 학살지 앞에 선 한 사람으로서 내 마음이 완전히 손상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 고통의 내부에 있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p.77

 

1966년 런 아저씨는 이곳에서 가족을 잃었지만 50년이 흐른 뒤 나의 눈에 비치는 꼰 강은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풍경의 의미가 뒤집어지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본다. 학살 이후 마을 이름을 바꾼 사람들의 결정이 어떤 의미였을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빈안 마을을 흐르는 꼰 강과 떠이빈 마을의 꼰 강은 다른 강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p.88

 

기자들은 서로 밀치며 그림을 찍으려고 안달이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졌는데 나조차도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소진과 나는 크고 무거운 카메라들 사이에서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줬다. 잔뜩 긴장한 탄 아주머니의 얼굴로 카메라 플래시가 계속해서 쏟아졌고 나는 반대로 그런 아주머니의 얼굴을 찍는 이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p.116

 

그제야 얼굴들이 보였다. 둔탁한 소리를 내는 무거운 군화를 신고 온갖 배지가 주렁주렁 달린 군복을 입은, 육십 대에서 칠십 대 사이로 보이는 노령의 군인.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니 유니폼과 배지로 스스로를 증명해내려는 노력. 국가로부터 받은 표창장과 훈장을 자랑스럽게 전시해놓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p.127, 128

 

껌 아저씨와 소통하는 일은 친숙했다. 엄마, 아빠와 대화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아저씨가 끅, , 하고 내는 소리들이 좋았다. 데프 보이스(Deaf Voice), 농인이 내는 목소리, ‘음성 언어가 아니지만 심경과 감정을 탁월하게 전달하는 요소. 내게는 너무나 친숙한 소리, 다른 사람은 장애인이 내는 소리라 듣기 불편하다고 할 소리를 이곳 베트남에서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p.140

 

아버지가 한 일을 아이가 갚을 순 없잖아? 그러면 할아버지가 한 일을 손주가 갚아야 하나? 그럴 수는 없지. 누가 그 죗값을 치를 수 있겠어. 젊은 세대는 아무것도 몰라. 내가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했어. 그러니 됐어. 사실대로 말했고, 그저 이야기했을 뿐이야. 네가 듣기를 원하니 말해주는 수밖에.

--- p.151

 

가족이나 친척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나는 한국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여기 온 사람들은 미국의 용병이었으니 한국을 원망하지 않아요라고 했어. 그런데 내 경우는 아니었어. 나는 벌떡 일어서서 말했어. “아니야 ! 나는 그 사람들이 증오스러워! 우리 가족을 죽인 그 사람들 말이야. 증오스러워.”--- p.157

 

기억의 전쟁작업을 시작한 뒤로 매년 음력설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설을 기점으로 베트남 중부 마을에 연이어 위령제가 열리고, 위령제의 시기가 돌아오면 각 마을과 가정에서 크고 작게 제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p.164

 

유가족이자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 그의 시선에서 누구도 죗값을 치르지 못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아무리 되뇌어 봐도 글자 그대로 죄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p.186

 

그날 밤 보라 감독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촬영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감독은 적잖이 당황했다. 촬영이 종료되었고 편집만 새로 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하고 있던 때였다. 시민평화법정을 담는다고 할 때, 무엇이 새로울 수 있는지가 가장 큰 화두였다.--- p.195

 

이윽고 정부 측 변호인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갑자기 장내에 있던 참전군인 한 명이 단상에 뛰어들었다. 법정 내내 경비를 서고 있던 주최 측이 참전군인을 제지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는 탄 아주머니가 있는 쪽으로 가지 않고 최후 변론을 준비하던 정부 측 변호인을 향해 호소했다. “제발 우리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p.208

 

이 영화의 관객은 누구일까?” 프로듀서는 이 영화를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싶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백 번 묻는다. 기억의 전쟁을 제작하며 나는 으레 젊은 세대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막연하게 새로운 세대가 역사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는 교과서적인 생각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베트남전쟁에 대한 논의들이 상대적으로 심리적 거리가 먼 세대에게는 다르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p.251

 

누군가는 말했다. 이 영화는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지 않을 때 여러 부대 행사를 안전하게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극장을 지켰던 영화라고. 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함께한 제작진, 배급사, 극장, 관객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장기 휴관을 마치고 개관하는 몇몇 극장은 몇 개월 전에 개봉한 이 영화를 개봉작으로 결정하여 상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p.254, 255

 

규정에 따르면 청원을 접수한 후 90일 이내에 답변을 내놓아야 하지만 청와대는 90일을 훨씬 넘겨 미온적 답변을 내놓았다. 국방부 보유 자료에서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따라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베트남 당국과의 공동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p.262

 

베트남전쟁 1968212일 베트남 퐁니·퐁녓 학살 그리고 세계 고경태 저 | 한겨레출판 | 202102

 

저자 고경태 원주에서 태어났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납활자의 향기를 맡으며 학보를 만든 일이 이후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한겨레21창간팀에 합류한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편집자/편집장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 쉼 없이 새로운 기획을 시도했고 매체 창간과 리뉴얼 작업에 참여했다. 유혹하는 에디터부터 1968212까지 5권의 책을 썼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편집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한베평화재단 이사로 있으며 한마을 이야기 퐁니·퐁넛기록전시회를 5개 도시에서 열었다. 201911월 현재 블록체인 미디어 코인데스크코리아를 발행하는 22세기미디어대표로 일한다. 시니컬하면서 뜨겁다.

 

목차

베트남전쟁 통계와 표

퐁니·퐁녓 마을, 1968212일 상황 지도

주요 등장인물

개정판 머리말 : 20, 어떤 상처와 호기심

초판 머리말 : 그날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프롤로그 고노이와 하미 사이 : 한 사람이 죽은 1만 개의 역사

 

1부 두 개의 전선

비열한 거리 : 로안의 권총

로안, 인과응보의 시간

청와대 습격, 투이보 습격 : 북한과 북베트남은 짠 것 같았다

김신조와 대한민국 : 병영국가의 탄생

용수의 돌림빵 : 평양에 나타난 형 안학수

베트남전 첫 포로의 탄생

 

2부 따이한의 군화

불멸의 아성, 무덤이 된 섬 : 고노이에 가다

, 산 채로 우물에…… : 고노이의 또 다른 이야기들

꽝탄 언덕의 비명 : 너의 전설, 짜빈동 신화

꽝응아이의 마지막 대학살 : 밀라이 사건의 아이러니

야유나무는 보았다 : 퐁니·퐁녓의 어떤 역사

 

3부 야유나무 학살

총성의 소용돌이 : 1968212

소년과 소녀의 전쟁 : 응우옌티탄과 쩐지옙

응우옌티탄, 한국에 오다

저기 사람 있어요 : 남베트남군 응우옌싸의 비애

아기는 꿈나라 : 엄마 품에서 살아난 레딘먼

물소가 바꾼 운명 : 쩐티드억과 판르엉 가족

귀신이 된 쌔 : 퐁룩 마을 흉가의 비밀

퐁니·퐁녓·퐁룩 사건

라토 학살 유일한 생존자, 타이브이

다낭박물관 사진 한 장 : 귀여운 꼬마들의 안부를 물어달라

 

4부 복수의 꿈

가장 잔혹한 공격 : fg로 명명된 응우옌티탄

원수를 갚자, 산으로 가자 : 응우옌쑤와 쩐반타의 충격

미군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 마을 원로 응우옌쑤

지뢰를 밟고 숨을 헐떡이던 동지 : 쩐반타의 산 생활

나는 스나이퍼다 : 베트콩이 된 탈영병 쩐반남

말로 싸운 쩐뜨우 228

사진, 찍은 자와 찍힌 자 : 미군 상병 본과 소녀 쩐티드억

까인의 발가락 : 마지막 사진 한 장의 픽션

 

5부 해병의 나날

패싸움의 머나먼 추억: 최영언 중위, 호이안에 가다

병신 새끼들아” : 1966년 잡지 아리랑에 실린 어느 부상 참전군인의 절규

하얀 정글 : 죽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알랭 들롱의 사인처럼 : 전투보다 중요한 어떤 작전

양키, 쩐의 전쟁 : 12시간 내에 군표를 수거하라

중앙정보부에서의 하루 : , 누가 쏘았습니까?

 

6부 조작과 특명

전쟁범죄 사실이오? : 웨스트몰랜드가 채명신에게

베트콩의 사악한 음모 : 채명신이 웨스트몰랜드에게

우리가 곤충인가요? : 탄원서, 티에우, 밀라이

절대로, 절대로 언론에는…… : 사이밍턴 청문회라는 먹구름

그 부대 일원이었다는 게 오명이지” : 1소대장으로 퐁니·퐁녓에 간 최영언 씨

중대장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 : 2소대원으로 퐁니·퐁녓에 간 류진성 씨

 

7부 체 게바라처럼

쏘지 마, 피곤해 : 박정희를 말리러 온 밴

벌레 편에서 싸우다 : 베헤이렌 오다 마코토의 투쟁

전후 일본 평화운동의 대부 : 오다 마코토의 삶

새장을 뚫고 스웨덴으로 : 김진수의 탈출과 망명

여권 위조 007 작전 : 자테크와 다카하시 다케토모

80대에도 시민운동가로 살다

게바라에서 호찌민까지 : 거대한 횃불, 68운동

 

에필로그 201421220212월 코로나19 : 위령비, 74개의 이름 앞에서

 

연표

퐁니·퐁녓의 사망자 명단

베트남전 당시 해병 제2여단 이동 경로

시민평화법정 구두 판결문

 

 

책소개

1968, 한 사람이 죽은 1만 개의 역사

한겨레신문 기자 고경태가 20여 년 동안 취재한 베트남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모든 역사. 대한민국은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했다. 최대 5만여 명의 군인이 베트남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한국군은 베트남 130개 마을에서 민간인 1만여 명을 학살했다.

베트남전쟁 19682121968212의 전면개정판으로 1968212일에 일어난 퐁니ㆍ퐁녓 마을 학살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1968212일의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세밀화처럼 그려내려고 한 저자의 시도는, 피해자의 증언을 꼼꼼히 담는 인터뷰 작업에 그치지 않고 1968212일을 통과한 세계사의 주요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19681월에는 북한 무장특수부대원 31명이 서울에 침투했고, 일본의 평화운동가들이 도쿄 앞 바다에서 미군 병사들을 향해 탈영을 선동했으며, 2월에 미국 정부의 특사가 방한해 화가 난 한국 대통령을 달랬다.

 

20여 년의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1968년의 세계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은 물론, 생존자의 현재 모습까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낸다. 1968212일의 현장 지도, 1960년부터 2020년까지 주요 사건을 기록한 연표, 사진 도판 152점을 수록해 신뢰성과 현장감을 더한다.

 

퐁니.퐁녓 사건에 관한 대한민국 군 당국의 공식 결론은 위장용 군복을 입은 베트콩의 소행이다. 규모와 최고 책임자의 연루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4월 폴란드 카틴숲에서 폴란드군 장교 등 25천여 명을 학살하고 이를 나치의 소행으로 몬 소련 비밀경찰을 연상시킨다. () 한국군이 개입된 전체 사건들의 규모와 잔인성은 소련의 카틴숲 학살을 못 따라갈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영원히 이 문제를 뭉갤 수 있을까.” _개정판 머리말 중에서

 

그날 퐁니퐁녓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 책은 총 7부로 구성되며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과 사건을 모아 1968212일의 사건을 추적한다. ‘1부 두 개의 시선에서는 베트남전쟁 현장, 남과 북이 삼엄한 경계 태세를 높이던 보이지 않는 전쟁의 현장을 오간다. ‘2부 따이한의 군화에서는 초판에서 다루지 않은 다른 학살 현장들을 찾아 생존자들의 사연과 목소리를 담았다. ‘3부 야유나무 학살에서는 1968212일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응우옌티탄과 쩐지예읍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생존자의 입장에서 투명하게 전한다. ‘4부 복수의 꿈에서는 서로 죽여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베트남 사람들의 복수에 찬 이야기를 담았고, ‘5부 해병의 나날에서는 1968212일의 학살을 만들어낸 한국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6부 조작과 특명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미국과 베트남, 한국군의 관계 속에서 1968212일 학살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끝으로 ‘7부 체 게바라처럼에서는 그날의 학살 이후 변명하는 자와 묻는 자, 도망치는 자와 추적하는 자, 다시 일어서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저자는 통계에 가려진 삶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파병된 8년 동안 베트남 민간인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통계를,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문장을 인용해 이렇게 말해본다. ‘1만 명이 죽었다는 걸 1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1만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책은 1968년의 한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죽은 1만 개의 역사를 되살려낸다.

 

피해자이자 가해자를 위한 지독한 선물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발자국이 찍힌 학살지는 중부 다섯 개 성 130개 마을에 이른다. 130건의 학살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그 학살의 그림자는 20세기를 넘어 2021년에도 한국과 베트남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_프롤로그 중에서

 

한반도가 아닌 베트남에서 일어난 50년 전의 사건을, 그것도 한국군의 부끄러운 만행으로 드러난 그 사건을 우리가 왜 기억해야 할까? 이 사건이 우리를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자리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올바르게 사과 받지 못한 피해자의 나라이지만, 민간인을 학살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은 가해자의 나라가 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가? 사과하지 않으면서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가?

 

이 책은 1968212일 베트남에서 일어난 사건이 1968년의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사이공 거리 한복판에서 베트남 포로의 머리에 리볼버 방아쇠를 당긴 응우옌응옥로안, 북한 무장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코앞까지 진출한 김신조 사건, 보복을 벼르는 박정희를 달래기 위해 방한한 사이런스 밴스 미국 특사, 베트남에서 탈영한 미군의 밀항과 망명을 도왔던 오다 마코토와 다카하시 다케토모, 일본 내 미군 기지에서 탈영한 최초의 미군 김진수, 평양에 나타난 베트남전 실종군인 안학수와 빨갱이 가족이라는 올가미를 썼던 안용수 등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람과 사건이 퐁니퐁녓 사건과 촘촘히 엮인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기록하는 자가 역사를 만든다.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으로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에서 의혹으로 남아 있던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영원한 진실로 못박아버렸다. 퐁니퐁녓은 베트남전쟁 1968212로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되었다.

 

책 속으로

진부한 표현을 뜻하는 클리셰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군인들이 집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불러 한곳에 모은 뒤 총을 발사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옷을 찢어 성폭행을 하고 대검으로 찔렀다. ……주민들을 산 채로 우물에 집어던졌다. ……갓난아이가 죽은 엄마의 몸에 올라가 젖을 빨았다. ……산산이 조각난 살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수습했다. ……목이 달아난 주검,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주검, 불에 탄 주검을 목격했다.” 베트남의 마을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증언들의 패턴이다. 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클리셰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몸서리쳐지는가. 하나의 우주가 소멸하는 그 어떤 개별적인 죽음도 진부할 수 없다.---프롤로그-고노이와 하미 사이중에서

 

사람들은 이 나무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해에서 불어온 바람이 야유나무를 한 번 휘감고 퐁니를 거쳐 퐁녓으로 달아났다. 폭풍 전야의 미풍이었다. 1968212일 아침. 그날도 야유나무는 거기 있었다. () 야유나무는 다 보았다. 퐁니·퐁녓의 민가로 진입하던 군인들을, 총탄에 쓰러지던 노인과 부녀자들을, 불타는 초가집에서 나와 울며 달리던 소녀들을, 환자들을 긴급히 수송하던 미군 헬기를. 언제부턴가 퐁니·퐁녓 사람들은 그 피바람을 이렇게 불렀다. ‘야유나무 학살.’---2-따이한의 군화중에서

 

쩐반타의 아버지도 주검을 수습하는 자리에 있었다. 남베트남 군인들은 어린 쩐반타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식사를 챙겨주고 보살펴줬다. 고마움을 느꼈지만, 마음속으로 남베트남 군인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인 미군과 한통속인 남베트남 군대였다. 그들은 자신의 집 동굴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을 쏜 한국군과 연합했다. 원수를 갚아야 했다. 4년 뒤, 15살이 되던 1972. 그는 유격대를 자원했고 산으로 들어갔다.

---4-복수의 꿈중에서

 

중앙정보부는 왜 갑자기 1968212일 퐁니·퐁녓에 진입했던 해병제2여단 1중대 장교와 사병들을, 19개월이 지난 시점에 불러모아 조사했을까. 이미 19684월 해병제2여단 헌병대가 한 차례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한 적 있는데 말이다. 최 중위는 수사관이 내뱉은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대통령 각하께서 진실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한특명수사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건의 진상이 몹시 궁금했던 것이다. ?

---5_해병의 나날중에서

 

가장 궁금한 건 사건 당일의 미스터리였다. 퐁니·퐁녓에 들어간 1소대장 최영언은 주민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뒤 마을 서쪽으로 빠져나갔다. 작은 물웅덩이 앞에서 구렁이 사체를 발견한 순간 콩볶는 듯한 총소리를 들었다. () 나는 만날 때마다 묻고 또 물었다. “도대체 어느 소대에서 그랬을까요.” 인터뷰 만남이 후반에 이를 쯤 그가 살짝 입을 열었다. “3소대 3분대에서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향도 하사와 몇몇 분대원들이 쏴버렸다는.” 그럼 왜 쏘았을까. “알 수 없지. 어찌 생각하면 미친놈들이지. 포로도 아니고, 무장도 안 했고. 어린애와 부녀자들뿐인데. 난 이해가 안 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어.”

---6_조작과 특명중에서

 

세계가 에로스에 물들던 체와 호 아저씨 사이의 1968,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인 38선의 강파른 철덩어리”(시인 김수영) 아래 있었다. 그해 212, 대한민국 군대는 베트남 퐁니·퐁녓촌이라는 농촌 마을을 공격했다. 늙은 농부들과 그의 아들, , 손자, 손녀까지 74명이 죽었다. 그중 4명인 쩐티안 과 쩐반만, 응우옌딘다오, 도안테민의 나이는 모두 1살도 되지 않았다.---7_체 게바라처럼중에서

전쟁의 미래 인류는 어떻게 다가올 전쟁을 상상했는가

로렌스 프리드먼 지음 | 조행복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007

Lawrence Freedman

전쟁학 및 군사전략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맨체스터 대학교와 요크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이후 세계적인 싱크탱크인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와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킹스칼리지 런던의 전쟁연구학부의 교수와 부학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뛰어난 지성과 식견을 인정받아 1995년 영국학술원(British Academy) 특별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96년 대영제국훈장(CBE)을 받았으며 1997년에는 포클랜드 전쟁의 공식 역사기록관으로 임명되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외교정책 자문관을 지내기도 한 그는 2003년에 영국 연방과 외국과의 관계에서 뛰어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인트마이클앤드세인트조지 훈장을 받았다. 2009년부터는 이라크 전쟁의 공식 조사단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군사전략과 정치에 관한 수많은 글을 집필한 저자는 지금도 현대 안보 문제에 관한 글을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핵 전략의 발전, 전쟁 억지력, 걸프전, 전략 연구의 변화, 냉전외 다수가 있다. 적들의 선택: 미국이 직면한 중동 세계2009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논픽션 작품에 주는 라이오넬 겔버상을 수상했으며 군사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인 저작물에 수여하는 웨스트민스터 공작 메달을 받았다. 전략의 역사2013파이낸셜타임스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14년 영국정치학회가 주는 매켄지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의 주제어 #세계사 #전쟁사 #승패 #전략 #오판 #원인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부 전쟁의 기술 : 19세기 중반~냉전 종식

1장 결정적 전투

두려움이 만들어낸 전쟁관 / 고전적인 전쟁 모델 / 19세기 전쟁 이론

 

2장 결말을 보지 못한 전투

근대 전쟁에서의 의지력 / 대중봉기의 중요성 / 허버트 조지 웰스의 전쟁론 / 무시된 대중심리

 

3장 싸움의 집

헤이그 평화회의 / 제네바 협약 / 전쟁 규범과 군사적 필요성

 

4장 잔인함으로 얻은 승리

강국의 정복 전쟁 / 새로운 전쟁 방식 / 실패한 신속전

 

5장 실패한 평화 계획

윌슨의 14개조 평화 원칙 / 충돌의 전조 / 평화를 위한 군축회의 / 나치의 부상 / 실패한 이상주의 계획

 

6장 총력전

제공권의 중요성 / 공습의 야만성 / 히틀러의 전격전 / 일본의 진주만 습격 / 전체주의의 몰락

 

7장 공포의 균형

원자폭탄의 위력 / 지구 종말을 가져올 무기 / 실수로 인한 위험한 재앙

 

8장 핵무기 시대에 빠지다

초강대국 체제에서의 군축 문제 / 선제타격에 대한 환상 / 냉전 시대 우주 선점 / 핵 억지력 이론

 

9장 갑자기 찾아온 평화

톰 클랜시와 레이건 대통령 / 와해되는 공산권 /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2부 전쟁의 원인 : 냉전 종식~21세기 초반

10장 전쟁학

격변하는 국제 정세 / 불명확한 전쟁 수치 / 전쟁의 상관현상 프로젝트 / 분쟁의 범주화 / 국가 간 무력 분쟁 데이터베이스 / 미래 예측의 불확실성

 

11장 사망자의 집계

집계되지 않는 죽음 / 잊혀진 개인의 비극

 

12장 민주주의와 전쟁

민주주의적 평화 이론 / 자본주의적 평화의 문제

 

13장 새로운 전쟁과 실패한 국가들

새로운 형태의 무력 충돌 / 무용한 내전 연구 / 내전의 요인들 / 아프리카 내전

 

14장 오래된 증오와 광물의 저주

문명의 충돌 / 공멸하는 아프리카 / 끝나지 않는 내전

 

15장 개입

평화유지군을 통한 인도주의적 개입 / 평화유지활동의 문제점

 

16장 대반군 활동에서 대테러 활동으로

미국의 개입 / 911이 바꾼 전쟁 담론 / 미래의 가장 강력한 적

 

17장 대테러 활동에서 대반군 활동으로

정보 시대와 장밋빛 미래 / 신기술로 가능해진 군사혁명 / 잘못된 전쟁 시나리오 / 베트남 전쟁의 교훈

 

18장 만행의 역할

전쟁 종결의 한 방법 / 스리랑카 내전 / 복수의 순환고리

 

19장 예방이 아니라 치유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 기준 / 지원의 양면성 / 전쟁의 효용 / 증가하는 아프리카 분쟁

 

3부 전쟁의 미래 : 과거와 미래의 혼종

20장 하이브리드 전쟁

현대전의 특별한 조건 / 정보전

 

21장 사이버 전쟁

로봇이 지배하는 사이버 전쟁 / 정보 시스템의 취약성 / 네트워크 전쟁의 효과

 

22장 로봇과 드론

드론의 등장 / 신기술이 가져오는 새로운 위험 / 과학소설이 보내는 경고

 

23장 거대도시와 기후 변화

거대도시의 문제 / 에너지 전쟁 / 기후변화가 초래한 분쟁

 

24장 다가오는 전쟁

새로운 적의 등장 /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 / 미국의 역할

 

25장 미래 전쟁의 미래

뱀파이어의 오류 / 아시아, 새로운 전쟁의 무대 / 외부의 개입 형태 / 뜨뜻미지근한 전쟁

 

감사의 말

미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략역사학자가 내놓은 전쟁사

1891년 영국의 한 잡지에는 다음번 전쟁에 대한 글이 게재되었다. 조만간 틀림없이 대전이 일어날 것이며, 발칸반도에서 페르디난트 대공을 겨냥한 암살 시도로 촉발될 이 전쟁은 작은 나라들 간의 충돌로 시작되지만 대국들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23년 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이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앞으로 전쟁이 어디서, , 어떻게 일어날까?” 전쟁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이 문제에 관해 전쟁의 미래에서 충격적인 결과와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저자는 핵전략과 냉전, 중동 분쟁 등 20세기 이후의 전쟁과 전략에서 그의 분석과 조언이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학자와 정치가, 군 관계자 모두에게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또한 라이오넬 겔버상, 매켄지상 및 웨스트민스터 메달 등 주요 상을 받은 군사전략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프리드먼은 전쟁학 교수로서 연구 인생 50년 내내 골몰하였던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그 해답을 함께 찾아 나간다. 광범위한 문헌을 통해 과거의 지도자, 학자, 소설가들이 미래의 전쟁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예측이 얼마나 맞았는지 살펴보려는 시도는 예측의 부정확성을 확인하고 오판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데서 그치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미래를 예측한 대부분의 글이 예언하려는 의도보다는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전쟁을 막기 위해 이러저러한 군사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정부에 촉구하는 목적으로 쓰였듯이, 저자 또한 이 책을 통해 실제 전쟁 수행의 어려움에 대해 경고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에 덧붙여 일반적인 역사학자들처럼 갈등과 전략을 분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쟁의 전략적 사고에 어떤 개념이 깔려 있는지, 정치적 의제가 어떻게 일어나고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함으로써 전쟁의 역사에 정치사회학적 문제를 능숙하게 결합한다. 연대순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현대에 이르러 어떤 분쟁은 전쟁으로 분류하고 어떤 것은 왜 사소한 갈등으로 치부하는지 등 전쟁의 정의를 다시 묻는 데까지 이른다. 지난 40년간 분쟁의 대부분은 전쟁이 아닌 내전이나 반란이었다. 우리는 주권 국가 간의 싸움만 전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5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르완다 학살 사건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멕시코에서 마약 갱단 간의 폭력으로 죽은 12만 명 또한 전쟁 사망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전쟁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밀려난 갈등을 언급하면서 전쟁의 정의 자체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독자는 미래 전쟁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의 원인부터 전개, 전략, 국제관계, 전쟁의 정의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관한 사고가 한 단계 더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폭격기, 독가스, 원자폭탄, 드론, 사이버 전쟁

지난 150년간 전쟁에 대한 예측은 얼마나 적중했는가?

 

3부로 구성된 내용은 19세기 중반부터 현대까지 연대순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냉전 종식까지 사람들이 앞으로의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상상한 내용을 다루고, 2부에서는 냉전 이후에 일어난 내전과 외부의 개입, 새롭게 부상한 갈등을 분석한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사이버 전쟁, 로봇공학, 드론, 인공지능과 같이 오늘날의 미래학자와 군사전략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19458, 히로시마에서 폭발한 리틀 보이’ / 나가사키에서 폭발한 팻 맨

원자폭탄 '핏 맨' 투하 후의 일본 나가사키의 모습

 

1부에서 저자는 소설, 영화, 군사 교본 등 다양한 출처를 바탕으로 미래 전쟁에 대한 상상을 추적하던 중 대부분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경향을 발견했다. 첫째는 속전속결에 관한 과도한 낙관주의다. 수많은 지도자가 개전 초기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 단기에 적을 패퇴시키기 위한 결정적 첫 타격, 선제공격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이러한 시도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의 유대인 몰살, 유럽 주요 도시에 대한 공중 폭격에 이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로 이어졌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격전이나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전술적으로 성공했으나 소련의 대반격이나 미국의 참전을 불러오는 등 궁극적으로는 치명적인 패배를 가져왔다. 이런 결정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기습공격은 한 세기가 넘게 지도자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저자는 이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첨단무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꼽는다. 라이플총, 대포, 탱크, 폭격기 등 첨단무기와 신기술이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긴 하지만,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압도적 전력에도 베트남전에서 패배하였고 소총으로 무장한 아프가니스탄 반군에 지금도 고전하고 있다. 적국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외세의 개입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내부의 정치 지형이 변하거나, 의용대가 출현할 정도로 적국의 거센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리는 등 기술 외적인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패착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195431, 미 핵폭탄 실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 브라보실험

 

2부에서 다루는 1990년 이후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공산권 와해와 함께 갑자기 평화의 시기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줄어든 반면 아프리카와 발칸반도 등 내전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고 이는 서구의 개입을 증가시켰다. 또한 테러라는 새로운 주제가 대두되었다. 1945년 핵무기가 출현한 후 미래 전쟁에 대한 예측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압도적 파괴력에 충격을 받은 전 세계가 핵무기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려 했기에 핵 재앙을 피하면서도 적국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무력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내전과 핵무기, 테러라는 복잡한 배경이 뒤섞인 시기의 상황은 전쟁의 본질과 특성을 이해하면 할수록 전쟁이 더 복잡하고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3부에서는 강국 간 충돌이 되살아나는 21세기의 모습을 다룬다. 테러의 등장으로 예전처럼 전통적인 군사작전으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사이버 공격과 더불어 드론과 같은 원격살해 방식이 전술의 최전선에 올랐다. 이제 우리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반란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게 되었으며, 군인들은 버튼 하나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를 죽인 뒤 수업이 끝난 자녀를 데리러 갈 수도 있다. 앞으로 전쟁은 전면전으로 수행되기보다는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혼재되어 있고 거짓정보, 가짜뉴스, 해킹 등 사이버 테러리즘이 가미된 소위 하이브리드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프리드먼은 책 전반에 걸쳐 미래 예측과 관련된 많은 함정과 편견, 착각을 매우 냉담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전쟁의 불변성에 대한 주장을 펼친다. 문명화 과정을 거쳐 인류가 폭력에서 점차 벗어났다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과 반대로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작은 폭력과 범죄는 언제든지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신기술로 많은 것이 이전과 다르게 펼쳐질지라도 전쟁이 벌어지면 여전히 수많은 희생을 낳을 것이다. 평화를 꿈꾸는 낙관론자든 전쟁을 준비하는 비관론자든 간에 전쟁의 미래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치가, 군지휘관, 전략가들이라면 우리가 간과했던 전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로렌스 프리드먼의 지혜를 빌려 미래 전쟁의 해결책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순진한 낙관주의든,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무서운 현실주의든, 핵전쟁의 완전히 무서운 전망을 받아들이는 것이든 간에 이러한 문헌은 소중하다. 이전 시대의 가정에 관해 무엇이 왜 두려웠는지, 어떤 치유책이 제시되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문헌들을 통해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분쟁의 종류와 진정으로 중요한 대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결정적인 능력에 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지난 과거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을 때 그것이 어떻게 보였는지 말함으로써 왜 사건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개개인이 어떻게 자기 경험의 포로가 되고 후세대에는 너무도 명백해 보였던 것을 왜 놓쳤는지, 이따금 카산드라처럼 분명하게 다가올 일을 알아보았으면서도 어떻게 동시대인들 이 이를 무시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전쟁의 미래는 독특하고 계시적인 과거를 갖는다._ 서문에서

 

셜록 홈스 이야기로 유명한 아서 코넌 도일이 1914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독일 잠수함 8척이 영국민을 굶겨 항복을 받아내려고 상선들을 침몰시키는 이야기를 발표했을 때, 장군들은 이를 무시했다. 기술적 결함을 들어 무시한 것이 아니라 민간 선박의 파괴를 포함하는 전쟁 수행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명국이 방어능력 없는 비무장 상선을 어뢰로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 19148월 벨기에를 침공한 순간부터 독일군은 마치 민간인의 저항에 부딪힐 것을 확신했다는 듯이 민간인을 체포하여 처형했다. 전투 능력이 없지만 싸움에 참여할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예방적 보복이었다. 1871년 이후 남아 있는, 유격병에게 저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독일군은 징집 연령대 남자들을 아무 일 하지 않았는데도 처형했다. 5,500명이 살해되었고, 많은 주택이 불탔으며, 상당수의 벨기에 주민이 도주했다._ 4잔인함으로 얻은 승리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클랜시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그는 붉은 10월호를 완벽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그는 붉은 폭풍에는 한층 더 열광했다. 그 책이 자신의 편견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 지도부가 클랜시가 묘사한 것과 같은 속임수를 완벽하게 쓸 수 있다고 의심했다. 그러한 속임수에는 미국에 군축을 제안하면서 전쟁을 계획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 1986년 그는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을 하러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로 가는 길에 참모들과 그 책에 관해 토론했다. 그곳에서 두 정상은 이틀이나 회담 일정을 늘려가며 핵무기의 급격한 축소에 거의 합의할 뻔했다._ 9갑자기 찾아온 평화에서

 

정보전의 다른 형태는 현대의 군대와 민간 사회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하이브리드 전쟁만큼이나 사이버 전쟁의 모습이기도 했다. 사이버 전쟁이라는 관념은 디지털 혁명에서 자연스럽게 추론된 것이다. 어느 한편이 갑자기 모니터 화면이 텅 비거나 잘못된 정보로 가득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면, 현지 지휘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거나 이 명령들이 그릇된 지시로 바뀐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런 상황이 되면 최고로 강력한 군대도 무기력하고 불운해질 것이다. 이 분석을 한 단계 더 끌고가 군사활동의 배후를 살펴보자. 그러면 한층 더 놀라운 생각이 나타날 것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주요 기능이, 그리고 에너지와 운송, 금융, 보건, 교육이 이러한 정보의 흐름에 의존한다면 총 한 발 쏘지 않고 한 나라의 무릎을 꿇릴 수 있지 않을까? 그 흐름을 차단하면 거대한 플러그를 뽑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이 암흑이 되고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멈추고 덜커덕 소리 또는 쿵 소리 와 함께 무너질 것이다. 경제는 엉망이 되고 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느라 고투할 것이다._ 21사이버 전쟁에서

 

스타워즈시리즈에서 모든 무기 가운데 가장 막강한 것은 은하제국이 건설한 달 크기만 한 전투기지 데스스타(Death Star)였다. 데스스타에는 하나의 무기,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슈퍼레이저가 있었다. 그 목적은 불가항력으로써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었는데 알데란 행성이 파괴되었을 때 시범을 보였다. 그러나 반란군은 데스스타의 계획을 파악했고 거기에 한 가지 약점이 있음을 알아챘다. 그것은 주 원자로에 연결된 작은 열 배출구였다. 필사적인 공격을 이끌던 젊은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는 배출구 안으로 간신히 공중 어뢰를 발사하는 데 성공해 모든 시스템을 파괴했다. 2012년 백악관 웹사이트에 경제를 부양하고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실제로 데스스타를 건조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청원을 거절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건조 비용이 85경 달러에 이를 것이다. 둘째, 행성을 날려버리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셋째, “1인용 우주선도 활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결함을 지닌 데스스타에 납세자들의 세금을 허비해야 하는가?”_ 22로봇과 드론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고고도 정찰용 드론 MQ-1 '프레더터'(Predator)‘

강국 간 핵무기 사용 분쟁과 별개의 시나리오가 있다. 예를 들면 인도와 파키스탄이 연루된 분쟁이다. 게다가 금세기 수많은 큰 위기는 핵무기 차원이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미래 핵 프로그램을 방해하기 위해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고,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위협과 제재를 가했으며 결국에는 이란과 농축 우라늄을 확보해 핵무기를 자체 제조하는 일이 없도록 협정을 체결했고, 2017년에는 핵무기 보복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이미 진전된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북한을 저지하려고 조치를 시작했다. 핵무기가 다시 분노에 휩싸여 쓰일지, 쓰인다면 언제일지, 이는 전쟁에 관한 이후 모든 논의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핵무기 사용이 두려움의 대상인 만큼 나쁘기도 하고 어느 한편을 우위에 올라서도록 도왔기 때문일 것이다._ 25미래 전쟁의 미래에서

핵분열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 - ‘리제 마이트너는 본래 오스트리아 국적이었지만 독일-오스트리아 합병 당시 유대인이란 이유로 망명하고 스웨덴으로 건너가 연구를 이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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