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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쌀 재난 국가

by 이성근 2021. 2. 7.

 

쌀 재난 국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저자 이철승|문학과지성사 |2021.01

 

저자 : 이철승-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복지국가, 노동시장 및 자산 불평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복지국가와 불평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2005). 유타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를 거쳐 시카고 대학교 종신교수로 2017년까지 근무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2011년과 2012년 전미사회학협회 불평등과 사회이동, 정치사회학, 발전사회학, 노동사회학 분야에서 최우수 및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SOCIAL FORCES, SOCIOLOGICAL THEORY, WORLD POLITICS,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한국사회학』 『경제와사회』 『동향과전망』 『한국정치학회보』 『비판사회정책등에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증대」 「한국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기초」 「한국 노동운동과 복지국가의 미래 전략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9년 번역ㆍ출간된 WHEN SOLIDARITY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6(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 박광호 옮김, 후마니타스)으로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저술 부문)을 수상했고, 같은 해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세대, 계급, 위계-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2020년 한국사회학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목차

들어가며

프롤로그

이 책의 퍼즐들 | 이 책의 주요 주장들 | 벼농사 체제의 일곱 가지 유산

 

1장 동아시아 국가의 기원벼농사 체제의 출현과 재난의 정치

우리는 누구인가쌀 이론의 수립

쌀에 갇힌 동아시아, 벼농사에 집착한 한국인

쌀과 밀의 대비

한반도 정주민의 쌀 사랑

쌀밥과 빵의 정치경제학

고대국가의 재난 정치

홍수, 물벼락의 정치

가뭄, 물 확보의 정치

고대 및 전근대 국가 최악의 재난가뭄

조선왕조의 가뭄 대비책

복합재난정치 변동의 촉매제

나가며, 재난, 동아시아의 국가

 

2장 벼농사 생산체제와 협업-관계 자본의 탄생

벼농사와 평등한 협업 시스템의 출현

벼농사의 공동노동 시스템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

벼농사 문화의 지속

벼농사 마을의 비교, 질시, 행복

협업과 불신이 공존하는 벼농사 마을의 신뢰 구조

표준화와 평준화벼농사 마을의 보이지 않는 손

벼농사 체제의 현대로의 이식연공에 따른 숙련 상승 가설과 표준화 가설

동아시아 마을, 협업의 장인들

나가며오리엔탈리즘을 넘어

 

3장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

동아시아인들의 문화적 디엔에이사회적 조율 시스템

동아시아 농촌의 성공 함수협업-관계 자본

코로나 팬데믹의 국가별 양상

벼농사 체제와 코로나 팬데믹

밀농사의 개인주의와 벼농사의 집단주의

나가며팬데믹과 불평등의 확대

 

4장 벼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왜 한국인들은 불평등에 민감한가

벼농사 사회와 밀농사 사회의 불평등 구조

쌀 경작 사회의 불평등 기제국가로의 접속

벼농사 체제와 과거제도는 어떻게 얽혔나

벼슬과 벼농사의 상호작용

평등화와 차별화를 향한 욕망의 공존

한반도 남단 정주민의 심리 구조평등화와 차별화의 공존

밀 문화권과 쌀 문화권의 불평등 치유 노력

불평등 치유 노력의 역사적 기원

벼농사 체제의 유산복지국가의 저발전

현대 한국인의 복지 태도부동산과 복지국가

나가며국가를 통한 불평등의 생산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

청년 실업과 노동시장 이중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제도(연공)-주체(세대)-구조(인구)의 착종

연공 문화의 제도화연공제

세대 네트워크와 한국형 패턴 교섭

인구구조의 변동에 따른 기업의 인구 구성 변화

연공-세대-인구 착종과 기업의 비용 위기

연공-세대-인구 착종과 청년 고용 위기 연공제와 노동운동

연공제와 여성

나가며불평등, 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6장 벼농사 체제의 극복

재난 대비 구휼국가에서 보편적 사회안전망 국가로

표준화를 위한 조율에서 다양성의 조율로

벼농사 체제와 청년 세대의 충돌

동료로서의 여성

직무평가 시스템의 도입시험에서 숙련으로

연공급 대 직무급어느 불평등을 택할 것인가

한국형 위계 구조의 개혁연공제를 넘어서

 

나가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한반도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시기부터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한국 사회는 불평등해졌는가

 

, 재난, 국가는 전작의 뒤를 이은 불평등 프로젝트의 두번째 책으로, ‘’ ‘재난’ ‘국가가 서로 조응하며 만들어낸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이 어떤 제도들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 삶에서 발현되고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수백, 수천 년을 지속해오며 한국인들의 삶의 양태를 결정짓고 현대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체제의 유산을 드리워온 어떤 제도와 문화가 오늘날 우리 삶을 규정하는가?

 

저자 이철승은 이 책에서 이러한 벼농사 체제의 긍정적·부정적 유산들을 일곱 가지로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재난 대비 구휼국가의 발전, 협력과 경쟁의 이중주 시스템인 공동노동 조직, 그리고 표준화와 평준화의 기술 튜닝 시스템이 벼농사 체제의 긍정적 유산들이라면, 나이에 따른 연공서열 문화와 그것이 기업 조직에서 발현된 연공급 위주의 노동시장, 여성 배제의 사회구조, 시험(과거제)을 통한 선발 및 신분 유지와 숙련의 무시, 마지막으로 땅과 자산에 대한 집착 및 씨족 계보로의 상속이 이루어지는 사적 복지체제의 구조가 벼농사 체제의 부정적 유산들이다.

 

’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도 공장과 회사로 이식되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세계적 성공을 이끄는가 하면, 코로나 사태에 각 문명권이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분석해 보여주는 책의 3장에서 확인하듯 재난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사회적 조율 시스템을 작동하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글로벌 모범국가로 등극시켰다. 코로나 팬데믹에 효율적으로, 기민하게 대처하는 국가는, 동아시아인들의 오래된 미래인 것이다. 이러한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진화하여 오늘날 현대자본주의하의 동아시아적혹은 한국적제도로서 그 명맥을 유지 혹은 강화하고 있지만, 벼농사 체제의 강고한 지속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위기에 처해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이미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유산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약화시키고 또 어떤 것들을 강화시켜야 할까?

 

나이 많은 자가 세상을 리드하고 지배하는 룰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은 세상이 도래했다

청년 세대를 위한 벼농사 체제의 구조 개혁 플랜

 

이 책은 ’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반도의 고대국가에서부터 현대 지구촌 사회의 코로나 팬데믹과 복지국가의 역할까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드리운 벼농사 체제의 현존을 흥미롭게 분석해 보여준다. 동아시아인들이, 한반도 정주민들이 삶의 준거로 삼는 여러 가지 원리가 있지만, 그중 가장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연공 문화. 경험 많고 나이 든 농부에게 중요한 의사 결정을 맡기는 벼농사 체제의 위계 구조가 현대 기업 조직의 연공 문화와 임금제도로 정착한 것이다.

 

저자 이철승은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 이어 이 책에서도 연공서열의 위계에 대한 비판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연공제가 세대 네트워크인구구조와 착종·조응하여 오늘날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여성 배제의 구조를 초래하는지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이 책은, 이 연공제 문제가 핵심적인 구체제의 유산임을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이 연공제가 자리하고 있고, 따라서 저자 이철승은 이 책의 긴 여정을 통해 이 연공제 철폐가 구조 개혁 과제들 중 가장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비롯해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프롤로그에서는 벼농사 체제의 긍정적·부정적 유산들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며 책의 큰 그림을 소개한다. 1동아시아 국가의 기원은 한반도의 고대 및 전근대 국가 2천 년 동안 벼농사 체제하에서 재난 극복 및 구휼 시스템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나름의 통계자료를 통해 분석한다. 2벼농사 생산체제와 협업-관계 자본의 탄생은 벼농사 체제의 협업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심리(경쟁과 질시) 구조가 탄생하는지를 다룬다. 3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는 재난 시기 이 협업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여 재난을 극복하는지에 관한 사례 연구로, 현재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국가별 대응 시스템을 분석한다. 이어서 4벼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은 벼농사와 밀농사 체제하에서 불평등은 어떻게 형성되고, 불평등에 대한 인식 구조는 어떻게 다른지, 그에 따른 불평등의 결과가 서로 어떤 차이를 빚어내는지를 비교·분석한다. 5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는 벼농사 체제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유산인 연공제를 분석하되, 이것이 어떻게 세대 네트워크인구구조와 착종·조응하여 오늘날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여성 배제의 구조를 초래하는지를 이야기한다. 6벼농사 체제의 극복은연공제를 통해 청년 일자리 위기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안으로 마무리된다.

 

책속으로

왜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을 불평등의 기원으로 삼았는가? 그것은 반복되는 재난에 맞서 먹거리를 유지하는 활동이, 불평등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의 맨 앞에 놓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불평등 구조의 진화 과정을 한반도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시기부터,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까지 훑어 내려온다. [……] 나는 동아시아인들이, 한반도 정주민들이 어떻게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 구조가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과정이 어떤 제도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 삶에서 발현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을 들여다봄으로써 협업, 위계,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고안해내고, 결국에는 오늘날의 연공제 비판으로 이어질 것이다. ‘쌀 이론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위계와 불평등 구조협업과 경쟁의 구조, 교육열 그리고 노동시장의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차별 구조를 파헤치려는 것이다. --- p.9~10, 들어가며중에서

 

한국인에게 이 위계란 일상 자체다. 한국인만큼 협업을 잘하는 종족도 드물지만, 한국인만큼 위계를 따지는 종족도 드물다. 그 위계의 구조는 엄격할뿐더러 세밀하고 촘촘하다. 인간관계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이 위계의 구조는 깊이 드리워져 있고, 우리의 아이들은 이 위계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법부터 배운다. [……] 우리는 왜 이 위계 구조를 그토록 오래 강고히 지속시켜왔고, 얼마나 더 오래 이 위계 구조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평등과 정의와 형평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위계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가? 왜 평등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뒤로는 학벌과 직업, 연공서열 위계에 집착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책이 모든 질문에 다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건드릴 것이다, 때로는 다소 도발적으로. --- p.23, 프롤로그중에서

 

이 연공 문화는 동아시아 기업 조직의 뼈대연공제로 재탄생한다. 동아시아 기업들은 입직에서부터 퇴직에 이르는 개인의 생애를, 동일한 임금 상승 테이블을 공유하는 세대들로 쪼개어 위계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세대 단위 협업 시스템을 창출했다. 동아시아 마을 공동체의 수직-수평 기술 튜닝 시스템은 동아시아 기업 조직에서 연공제를 매개로 재탄생하게 된다. ‘가족 같은 기업안에서 부장님은 부모의 역할을, 선배는 이웃 어른들과 같은 역할을 했다. 입사 동기는 동년배 사촌들 및 동네 친구들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동아시아 마을 기업처럼 긴밀하게 엮인 공식·비공식 네트워크 안에서 협력과 경쟁의 쳇바퀴를 탔으며, 동아시아 마을 공동체의 협력 기제인 표준화를 생산공정과 관료제에 도입하여 기민하고 긴밀하게 작동하는 동아시아 기업 조직을 만들어냈다. --- p.35, 프롤로그중에서

 

(과 식물들), 기후와 지형이라는 주어진 환경, 벼농사 경작의 주체와 제도라는 세 가지 요소는 이렇게 (진화적) 상호작용을 거치며 동아시아의 초기 농경국가 체제를 주조했다. ‘왜 하필이면 동아시아인들은 쌀을 먹게 되었는가라는 질문과 도대체 왜 동아시아의 국가는 다른 지역에서 발견할 수 없는 강력한 관료제(서비스)를 그토록 일찍부터 만들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상 같은 연쇄 고리의 답을 가진, 같은 질문인 것이다. 벼와 동아시아인 그리고 그들의 강한 국가는, 다윈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진화한 것이다. 쌀밥과 강하고 효율적인 국가는 서로 다른 두 차원의 것이지만 상호 친화적이다. 단순화해 이야기하면 우리는 쌀밥을 먹으며 더 크고 강한 국가를 건설했고, 그러한 국가를 만들었기에 쌀밥을 계속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다소 어색하더라도 동아시아 국가는 쌀 국가rice state라고 불릴 만하다.

--- p.68~69, 1장 동아시아 국가의 기원중에서

 

동아시아 기업의 연공제는, 두 가지 가정을 농촌 공동체로부터 이식했다. [……] 이 두 가정은 현장에서 실제로 실현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에 대한 직무평가를 건너뛰는 것을 가능케 했다. 개인 간의 숙련도가 평준화될 것이라는 가정과 개인들의 숙련도가 동일한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이 결합하면, 같은 연차의 인력에게 동일한 보상을 주는 것이 가능해진다(정당화된다). 함께 일하며 조직의 목표를 함께 이루었으니 연차 그룹에 따라 보상을불평등하게나눈 후, 같은 연차 내에서는평등하게n분의 1 하는 것이다(고로 밥과 술은 연차 높은 사람이 산다). 따라서 연공제는 연차를 공유하는 노동자들 간에 연대 의식을 고양시켰고, 생산성이 집합적으로 향상되는 데 디딤돌이 되었다. ‘왜 같이 일 해놓고 나이 많다고 더 가져가라는 불만은, ‘너도 기다리면 나처럼 보상받아라는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덮였다. 이렇게 지연된 보상은 나이 많은 충분히 기다린 세대로부터 아직 기다릴 날이 20, 30년 남은 세대에게 강제되었다. 연공제는 어찌 보면 기다리고자 하는 자, 혹은 기다릴 수 있는 자들(정규직)끼리의 공모. --- p.149~50, 2장 벼농사 체제의 협업-관계 자본의 탄생중에서

 

결국 동아시아인들이 발전시킨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축은 서로 간섭하고 싫은 소리를 해야 서로가 사는, 협업과 조율 시스템이다. 우리는, 동아시아인은 오랜 세월 동안 이 협업 시스템을 발전시켜왔고, 근대화 과정에서 이 시스템을 공장으로, 사무실로 이식시켰다. 부장님이 사사건건 일과 삶에 간섭하는 것에 숨이 막히는가. 집 안에서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간섭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 동아시아 사회다. 추석에 집안 어른들로부터 듣는 싫은 소리에 넌덜머리가 나는가. 추석이란 무엇이냐고? 바로 씨족사회의 간섭 권력의 위계가 당신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집안 전체에 드러내고 평가하는 자리다. 동아시아는 개인주의자가 남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자유롭게 살기에 이상적인 곳이 아니다. 서로가 촘촘하게 엮여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고 감시하며 베끼고 잔소리하고 보폭을 맞춰가면서 서로 엇비슷해져가는 사회인 것이다. --- p.173~74, 3장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중에서

 

어쩌면 나의 일탈 행위 때문에 발생할지 모를 바이러스의 확산 못지않게, 그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과 체면의 손상이 더 걱정되는 것이다. 바로 사회적 조율 시스템에 조응하지 않아서 (마을)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진 판정 없이도 이들을 집에 머물도록 이끄는, 궁극적인 행위의 동기다. 따라서 절대다수가 마스크를 쓰고, 대다수가 자가 격리의 원칙을 지키는 상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사회적 조율 시스템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이러한 평판 저하를 고려하는 남 눈치 보기의 문화는 어디서 왔을까? 국가가 가르쳐준 것인가? 관료가 디자인한 것인가? 목화씨를 숨겨 가져오듯 다른 나라에서 배워온 것인가? 아니다. 나는 이 사회적 조율의 기예가 수천, 적어도 수백 년 동안 마을 단위로 경영해온 공동노동 시스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껏 이야기했던 벼농사 체제로부터 말이다. --- p.177, 3장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중에서

 

벼농사 체제에서 발흥한 동아시아의, 한국의 개발국가는 소농 출신 도시민들에게 부동산을 통한 개인화된(사적) 안전 자산을 확보하도록 부추김으로써, 복지국가 안전망의 의무를 방기하고 생산의 조직국가로서의 전통적 의무에 충실했다. 시민사회의 개인들은 각자 일을 그만두는 시점까지 집 한 채 혹은 여러 채를 장만하는 것을 목표로 자산 취득 경쟁에 몰입했고, 이는 벼농사 체제하 소농들의 개간지 경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 경쟁의 산물은 세 개의 층으로 분할된 자산 계급의 출현이다. 자산을 기반으로 소득을 창출할 여력이 있는 상층 20퍼센트의 자산 소유 계급, 자산을 노후 소득으로 소비해야만 하는 자산 소비 계급(다수의 중산층), 그리고 노후 소비를 감당하기에 불충분한 자산으로 국가와 자식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하층의 자산 빈곤 계급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 분할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노인 빈곤율이다. 노인을 공경하고 위계를 강조하는 벼농사 체제가 21세기 후기산업사회에 만들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수립이 지연된 2020, 2030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러한 자산에 의한 사적 복지의 전통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일하는 자들 간의 불평등은 노년의 불평등으로 유지·확장될 것이다.

--- p.274~75, 4장 벼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중에서

 

오늘날 한국의 세대 내 불평등과 세대 간 불평등은 모두 이 연공제에 응축되어 있다. 연공제로 인해 세대 간, 연령 간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향유할 수 있는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정규직화를 위한 핵심 요구 사항은 연공제의 적용이다. 젊은 청년들은 연공제 혜택으로 안정적인 임금상승을 60세 혹은 65세까지 누릴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에 20대를 소비한다. 이쯤 되면 연공제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 p.316~17,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중에서

 

 

 

한국의 유례없는 성공도, 세대불평등도 벼농사체제에서 기인한다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50)의 신간 <쌀 재난 국가>의 부제다. 묵직한 질문이다.

 

386 기득권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 2019, 때마침 출간된 이 교수의 전작 <불평등의 세대>가 주목받았다.

 

기존의 세대논의가 주로 정치권 386의 기회독점을 두고 벌어졌다면, 이 교수의 저작은 이 세대기득권 문제가 한국사회의 경제발전에도 착종돼 있다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이 교수는 이 세대네트워크의 뿌리엔 동아시아적 발전을 가능케 했던 벼농사협업시스템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엽의 한국의 압축적 성장과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 열쇳말이다.마냥 긍정적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10여년간 한국사회의 진영분화, 노동시장 불평등을 악화시킨 주범이기도 했다. 체제의 시효가 다한 것이다.이 교수의 신작은 이 한국적 발전과 불평등의 기원을 추적한 책이다. 22일 서울 서강대에서 이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인문사회과학자가 신간을 내 기자간담회를 한 것은 적어도 최근 20여년간은 없었던 일인 것 같은데요.

그래요? 출판사에서 하자고 해서 한 것이긴 한데 기자들이 많이 오긴 했더라고요. 약간 어색하긴 했습니다. 학자가 책 한권 냈다고 이렇게까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여러 매체에 실린 ‘2021년에 발간될 기대되는 신간기사의 맨 앞자리에 이 교수의 책을 올려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사를 체크하나요.

제 책과 관련된 보도는 저도 읽어보죠. 제 입장에서는 잘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기대했던 책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이게 워낙 긴 역사에 대한 황당한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오랫동안 생각한 프로젝트이긴 합니다. 원래 세대론보다 먼저 작업하고 있었는데, <불평등의 세대>가 먼저 나와 공론화되는 바람에 이게 나중에 나온 셈이 되었죠.”

 

-불평등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큰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회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회학 3대 고전의 하나로 이야기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안티테제를 담고 있으니 저자의 야심작이라고나 할까요.

사회학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읽힐 수 있겠네요. 나름대로 막스 베버 테제에 대한 비판이라고 쓴 것이니까요. 역사학 쪽에서는 브로델을 수용하면서 이를 비판한 것이고, 인류학에서는 레비스트로스를 가져오면서 동시에 그 구조를 뛰어넘어보자는 논의를 담았습니다.”

 

-전작 <불평등의 세대>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왜일까요.

책이 진영 사이의 갈등 근거로 소비되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분단 기득권세력의 앞잡이로 세대론이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한 반면, 다른 쪽에서는 거봐라, 586이 다 해 먹는다는 식으로 소비되고 끝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노동시장에서 저를 포함한 50대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잖아요. 우리가 너무 많고 많이 태어나, 또 너무 잘 싸워 많이 올려놓은 임금테이블을 다 같이 공유하며 50대에 진입하면서 초래되는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 비정규직 청년실업, 기업의 구조적 효율성 저하 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볼까 같이 고민하자는 것인데, 막상 그 문제는 별로 해결을 하지도 못하고 넘어가 버리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386 기득권 문제는 뜨거운 감자인 것 같습니다. 당장 논란 과정에서 제기된 공정문제에 대해 세대 간의, 그리고 세대 내의 시각차도 워낙 벌어져 있어서요. 최근 한겨레신문 기자 41명이 자사 보도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시각차를 보면 이른바 똥팔육을 비판하는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공정이란 무엇일까 고민이 되던데요.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공정이라는 키워드엔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불평등은 시장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지는데, 사회학자 오찬호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젊은 친구들이 차별에 찬성한다는 것인데, 차별을 어떻게 정당화하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자신들은 정당화하고 싶지만 정당화가 안 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공정하지 않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거든요. 특히 90년대 생들, 젊은 세대들의 내부 불평등이 공정한 시장경쟁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죠. 물론 이 공정의 기준이 우리 세대와 같냐는 것이 한가지고.”

 

-전형적인 386의 반응은 우리가 교육을 못 시켰다는 것인데.

윗세대는 젊은 세대의 경쟁체제에 노출된 적이 없어요. 실제 젊은 세대들, 학생들을 학교에서 가르쳐보면 정말 뛰어납니다. 우리가 교육을 잘 시켰어요. 굉장히 똑똑하고 능력이 있고 스펙까지 빠지는 것이 없어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고. 문제는 잡(job·일자리)을 잡기 어렵고,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잡았을 경우도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에 따라 처우가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여기에 집을 장만하거나 결혼할 때 또다시 겪는 극복할 수 없는 부모 수준의 차별이 계속 켜켜이 쌓인 것이죠. 젊은 친구들하고 이야기해보면 <불평등의 세대>에서 이야기하는 세대 간 불평등에 찬성하지 않는다기보다, 그게 근원인 것은 이해하겠는데, 자신들은 솔직히 말해 자신들 내부의 차별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차별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가 오히려 큰 관심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전작을 낸 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코로나19 발발입니다. 원래도 재난은 주요키워드로 다룰 예정이었죠.

벼농사체제 자체가 재난과의 싸움이고 재난극복 과정입니다. 전통적인 벼농사체제에서는 가뭄, 홍수, 역병이 바로 그 재난인데, 코로나19 시기이니 그 문제를 들여다본 것이지요.”

 

-사실 지난 총선 과정을 지금에 와서 평가해보면 여당에 180석을 몰아준 것은 결국 코로나19 극복과정에 대한 평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건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것이 아닌가, 양가적입니다. 잘해도 임금, 못해도 임금 탓이니까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거든요. 동아시아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 재난의 극복과 구휼로 최소화돼 있었고, 핵심은 마을단위의 협업생산과 결과의 개인적 소유라는 분석틀이 인상적입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김영민 기자

 

사실 두레나 품앗이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과 민속학 연구에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계급이나 신분 이야기는 많이 안 했어요. 기존의 민족주의 역사학과 식민지근대화론이 기존의 좌와 우는 꼭 아닌데, 하나는 민족주의 사관이고 또 하나는 엘리트 사관입니다. 엘리트 사관은 외부효과, 그러니까 일제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시각입니다. 이 두 조류 모두에 거리를 유지하고 한국의 경제발전 성과를 설명하는 제3의 길은 없을까 하는 모색입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산업화세대의 성과를 박정희와 분리하는 그런 포부 내지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 엘리트들이 아니었더라도, 심지어 장면 정권이 남아 있더라도 한국의 경제발전은 어쨌든 이뤄졌을 것이라고 본 겁니다. ? 전근대 시대부터 우리가 발전시켜온 협업의 기술 때문이에요. 국사책에서 봤던 두레·품앗이가 사실 간단한 게 아닙니다. 두레·품앗이 내부에서 강력하게 협동을 만들어내는 제도적 기재가 있었고, 노동의 표준화와 숙련을 증진시키는 내부 통제기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세대를 몇백년 건너뛴 것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아버지 세대죠.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산업화세대들이 농촌에서 배웠던 몸에 배어 있는 아비투스, 이들이 대거 도시에 상경해 공장과 사무실을 디자인할 때 이들의 협업의 원리도 정착된 겁니다. 연공제는 하나의 에피소드 같은 산물인데, 지금의 노동시장을 규정하는 강력한 것이 됐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오원철, 아웅산에서 사망한 김재익 같은 관료들의 시대에 앞선 선구안 내지는 역할이 중요했다고 산업사나 경제사하는 분들이 주장합니다.

물론 발전국가론에서 이건희나 정주영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실패를 설명하는이 막스 베버나 소위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이었다면 이전 세대의 서구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예외적인 성공을 설명할 때 여러 버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정희가 잘했다, 재경부 관리들이 금융제도를 잘 세팅해 선별지원하면서 세계시장에서 승자들만을 잘 키워내는 지원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버전의 발전주의 국가논의가 있습니다. 뭐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사무실과 공장에서 라디오, TV, , 자동차를 만든 사람들의 스킬(skill), 이 사람들의 협업을 통한 기술은 누가 가르쳤나, 그 질문은 왜 안 하냐는 겁니다. 그걸 정주영이나 이건희가 가르쳤을까요, 아니면 박정희나 기술관료들이 가르쳤을까요. 그 부분이 블랙박스로 남아 있거든요. 아무도 이 질문을 안 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최근에 이뤄진 공장작업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보면 한국은 숙련을 동반하지 않은, 일본식 장인 모델이 아니라 숙련을 향상시키지 않은 엔지니어가 주도한 모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엔지니어의 숙련은 또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추적해보면 다 외국에 가서 거꾸로 리버스엔지니어링한 다음에 다시 조립하면서 자기들끼리 습득했다고 하거든요. 위에서 오더가 내려왔다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스스로 유물론자라고 생각하는데, 마르크스주의적 생산양식과 계급갈등의 길도 아니고, 베버주의적으로 프로테스탄트나 유교적인 윤리로 무장한 그런 신과의 계약으로 노동의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는 그런 길도 아닌 제3의 길이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벼농사 협업체제에서 그 시스템이 기원했다는 거죠.

기업현장의 작업장 시스템을 깔면서, 이 전통적인 도덕 내지는 제도, 법적·정치적 제도가 아니라 몸에 배어 있는 인간관계상의 제도를 어떻게 이용했느냐의 문제이죠. 반도체도 그렇지만, 동아시아가 특화하는 산업은 협업의 기회를 극단화시킨 경우가 많죠.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극도의 긴밀한 협업의 과정, 그게 어디서 왔느냐. 그게 벼농사체제에서 유래한다는 것이죠. 물론 협업의 기술을 잘 픽업해 이용하는 것이 엘리트의 몫이긴 합니다. 이 부분이 이야기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발전은 뛰어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잘된 것이라는 식의 발전주의 국가론을 계속 되풀이해온 겁니다. 시진핑이나 박정희가 잘한 것일까요. 일본 메이지 지도자들이?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산업화세대 자신들이잖아요. 본인들의 능력 내지는 본인들이 이룰 수 있던 저변을, 우리 부모세대잖아요? 그분들에게 온전히 돌려주고 싶은 그런 뜻도 있고요. 어떻게 말하면 이 책은 부모세대에 대한 전상서입니다. 박정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지고 그렇게 싸웠는데 사실 그렇게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지 않나요. 사실 방역을 잘한 것은 국민이었는데.

그렇죠. 정부가 그렇게 해달라고 하니 지금도 국민이 알아서 자제를 해주잖아요. 놀러갈 것 안 가고 집에 있어 주잖아요. 서로 눈치 보면서. 물론 앞에서 적절한 시그널을 적시에 보내는 것은 중요한데 서구에서 그거 안 하나요. 다 합니다. 공동체가 상호조율능력이 깔려 있지 않으면 정부의 협조요청이나 시그널이 먹혀들질 않습니다. 서구를 보면 잘 드러나잖아요. 서구의 개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지.”

 

-알겠습니다. 이 체제에 특유한 질시의 문화를 이야기했어요. 전작에서도.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게 자기의 노동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거기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들이 뭘 가지고 뭘 만드는지 몰라야 관심을 안 가지는데, 여기서는 그게 안 되죠.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18년을 살아봤잖아요(편집자 주: 그는 서강대에 오기 전에 시카고대학교에서 테뉴어를 받아 교수로 재직했다). ‘저 사람은 노벨상을 받았으니 100만달러를 받겠구나하고 마는 거예요. 서로 신경을 안 써요. 우리는 월급을 다 얼마를 받는지 서로 묻습니다. 다 까잖아요. 자기가 받는 돈이 더 적으면 부글부글 끓습니다. 이전에 한 유수의 재벌이 호봉제를 하다가 능력급·성과급을 도입해 개인별 차등을 처음 뒀을 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장·부장·대리할 것 없이 우르르 인사부에 몰려와 항의하더라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점심시간에 너 얼마냐, 서로 다 까봤던 거예요. 우리는 그런 문화였던 것입니다. 성과급이나 직무급이라고 해도 무늬만 실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죠.”

 

-연공제 시스템이 최근년간 한국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 연공제를 지탱하기 위해 나머지 세대를 희생시키는 시스템입니다. 이게 생산성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진짜 생산성을 위해서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제 포인트는 연공급제가 바뀌지 않는 것이, 가장 상위에 있는 계층이 예전에는 노동귀족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한시적 자본가라고 불러야 한다고 봐요.”

 

-왜 그렇죠.

주인이 없잖아요. 주인이 없는 조직에서 잠깐 연공급 최상위에 머무르면서 이 모든 시스템을 돌아가도록 주도한 다음에 연공제 상위에서 5, 10년 있으면서 수혜를 누리고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넘기는, 한시적 자본가 역할을 하는 거죠. 대학도 공기업도, 공기업의 돈줄은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독립채산제이고 감사만 하니. 설령 사주가 있는 회사도 노조가 강력하면 컨트롤하지 못합니다.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는 노조라기보다 임금상승투쟁기구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래 노동조합은 총노동을 대변해 위와 아래 간격 레벨을 축소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노조의 역할은 위를 끝없이 올려 더 많이 받아가게 하고, 밑은 그로 인해서 더 고통스럽게 살도록 만드는 시스템이거든요. 원래 노동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것이 노조인데 그 역할을 못 하는 거죠.”

 

-이다음에 쓸 책은 불평등의 극복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논의를 담은 거죠.

종전에는 불평등의 극복을 이야기한다면 노동이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가져올 것인가, 이게 전통적인 패러다임인데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노동이 어떻게 스스로 자본이 될 수 있을까를 모색해보려고 해요. 일차적으로는 무기계약직이 되자는 것이고. 창업생태계에 대한 책이 될 겁니다. 각자가 스스로 자기 노동을 통제하면서 자기의 생산물과 생산과정을 타인에 의해서 점유되지 않는. 그러려면 교육시스템이 잘 깔려야 하고 시장의 전횡에 맞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하죠. 너무 이상적인 건가요.”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386 상층의 자기희생 없이 세대불평등 해소 불가능" 이철승 서강대 교수 인터뷰 2019.09.21.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신간 <불평등의 세대>에 붙은 부제다. 이 교수가 불평등 분석에서 잣대로 본 것은 불평등과 짝을 이뤄 제시되는 계급이 아닌 세대였다. 이 교수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계급은 이미 불평등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세대와 한국적 위계의 착종이 이 교수가 밝히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비밀이다.

 

, 다시 세대인가. 우석훈 박사의 <88만원세대> 이래 세대론적 시각에 대한 흔한 비판은 실재하는 계급모순을 감추는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기된 흔한 반론은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가치로 성공한 엘리트 386이 있는 반면, ‘80년대 학번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못한 70%1960년대생들을 386이 대표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이 교수가 제기하는 세대론, 정확히 말해 한국형 위계와 세대 불평등의 착종 문제는 다르다. 여러 데이터로 세대 간 불평등의 실재를 입증한다. 그리고 세대 간 불평등이 다시 세대 내 불평등의 원인이 되어 구조적 위기를 켜켜이 쌓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8월 초 책 출간 이후 언론이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 교수는 침묵했다. 기자는 책이 출판되기 전인 지난 3, 책의 모티브가 되었던 이 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386세대의 장기독점이 비난받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인터뷰했다. 다시 이 교수를 만나 책을 쓴 문제의식을 들어봤다. 반년 만의 인터뷰는 지난 918일 서강대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책 출간 후 지난 한 달간 여러 정치 논란에 이 교수의 책이 소환되었다. 소회는.

책은 세대와 계급, 그리고 위계의 착종 문제를 다룬 것이다.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이나 위계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가 책을 쓴 이유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쏙 빠지고 진영논리에 소비된 느낌이다. 한쪽에서는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 쓰고 반대편에서는 책을 읽지도 않은 채 세대론은 위험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책이 최근 정치 사안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대립에서 논란의 매개가 될 것이라는 건 예견됐던 일 아닌가.

이해한다. 출판사도 그렇게 광고를 내보냈다. 책에서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 열쇠로 제시하는 것은 계급이 아닌 세대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을 이야기한다면 보통 기존 운동권 용어로 자본 대 노동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본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후 1%99%의 대결을 갈등으로 이해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결합노동시장지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고용형태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또한 노조의 존재 여부에 따라 노동자의 처지가 달라진다. 199의 문제가 아니라 2080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적으로는 계급이라기보다 계층에 가까운 문제다. 여기에 특정세대가 과대 대표되고 장기 지속하는 경향이 한국 사회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계급은 물론 중요한 틀이다. 노동 안의 분화, 불평등을 주요하게 보고 싶은 것이다.”

 

-2080의 문제는 마침 이 교수의 책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리처드 리브스의 <20vs80의 사회>에서도 중요한 틀거리로 제시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계급이 신분제화된 유럽과 달리, 계급 이동이 자유로울 것으로 인식되던 미국 사회에서 상위 20%를 차지하는 중·상위층이 하위 80%와 자신들 사이에 유리바닥을 치고 기회 사재기를 통해 계층 재생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맞다.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본다. 나도 기회의 세습 문제는 아직 본격적으로 작업하진 않았다. 향후 유심히 지켜볼 주제다.”

 

-인상적인 것은 책에서 논의하는 세대와 착종해 있는 한국 사회 위계구조의 독특성이다. 동아시아적 벼농사 시스템에서 기원하는 협업질서, 나이에 기반한 연공시스템이 그동안의 압축성장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외국의 연구자들에게 이 독특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쉬운가.

당연히 힘들다. 나이에 따라 우선순위, 서열이 결정되는 그런 구조가 외국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이게 경제가 좋고 잘 돌아갈 때는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계급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불평등한 계급사회에서 적당히 먹고살 수 있는 것이 주어지면 대부분 불평하지 않고 산다.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 분노하는 것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다. 대학까지 다 들어갔는데 잡(job)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완전고용시대, 대학 나오면 먹고살 수 있었던 시대에는 그런 불만이 없었다. 386, 소위 586에서 74~75년생까지 이 광의의 386’들이 상층 노동시장을 꽉 껴안고 있으니까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이것은 계급 불평등이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으니까 공정성이나 기회의 불평등 문제가 같이 연계된 것이다.”

 

-구조개혁을 하려면 상층을 점유한 세대집단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쉬울까.

물론 쉽지 않다. 연공제라는 임금구조가 성장기에는 문제가 안 된다. 인구구조와 맞물리면서 위기가 오는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경제상황에선 상층을 장악하고 있는 세대집단, 386세대 상층의 자기희생 없이 불평등 해소는 불가능하다. 세대 네트워크가 과잉화된 조직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 굳이 찾지 않아도 쉽게 사례가 발견된다. KBS 부채가 지난해 6000억 원이 넘었는데 구성원의 52%가 연봉 1억원 이상이다. 그게 다 국민 세금이다. 공조직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역삼각형 조직이다. 민간영역에서도 대기업이 만든 패턴이다. 연공제와 세대 네트워크가 결합한 구조적 위기다. 이것을 다 같이 풀어야 한다. 위부터 바꿔야 한다. 예컨대 대통령 연봉이 24000만원이다. 그것부터 줄이고 전체적으로 다 같이 줄이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임금피크제를 하기 싫다면 전체 기울기를 다 같이 낮추면 된다. 연공제를 다시 디자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최상층과 상층 20%가 조금 덜 받고 그 아랫사람들을 고용하는 사회를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생산성에 비해 노동소득분배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거꾸로 뒤집혀야 한다. 비정규직은 내 회사가 아니니 시킨 일만 하고 만다. 위로 올라갈 수 없는데 뭐하러 일을 열심히 하나. 그러니 소확행이 무서운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해서 이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하고 말자는 것이다. 반면 정규직은 어차피 이만큼만 일해도 연공임금이 딱딱 나오고 60세까지 보장되어 있는데 뭐하러 목숨 걸고 일을 하겠는가.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뉜 노동시장이 생산성이 안 올라가는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시장 권력의 ‘386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세대로 리더십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386들이 다 쥐려 하지 말고 밑의 세대에게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386들은 밑의 세대들은 모르니, 우리만 고생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만나본 바로는 그렇지 않다. 밑의 세대, 지금 크는 세대가 우리 세대보다 어떤 사안이나 스킬을 더 빨리 이해한다. 그 세대가 클 수 있는 통로나 공간을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세대 자녀들만큼 외국여행을 많이 간 경우가 없다. 삶의 기대치는 이렇게 올라가 있는데, 자기는 자기 아버지만큼은 죽어도 못산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인식이다.”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불평등이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보다 쉬운 것이 자산을 통한 세습이고, 이제 현역에서 은퇴한 산업화 세대들의 자산 세습이 흙수저·금수저라는 세습 불평등을 만들어냈다는 것인데.

세습은 피케티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세계적 문제다. 엘리트가 자기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놓으면 어느 순간부터 중세로 회귀하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깨지 않으면 생산성이 퇴화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계급 불평등이 신분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부동산을 매개로 자산 축적을 한 세대가 산업화 세대다. 지표를 보면 386은 현금이 많다. 아직도 벌어들이고 있다. 산업화 세대의 패턴을 보면 퇴직을 전후로 자산투자를 하고 퇴직 직후 자식들이 출가할 때 아파트 한 채씩 사주면서 자산을 줄인다. 인생의 마감이 예측되는 80대 정도에 이르면 그때부터 증여를 시작한다. 다시 말해 ‘60대에 자산 정리, 80대에 자산 처분식으로 밑으로 내려보낸다. 산업화 세대는 연금이 많지 않으니 부모가 자산을 처분하는 식으로 대처한다. 물론 산업화 세대 중 상위 10~20%는 물려줄 것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어떻게 내려보낼까를 고민한다. 보통은 팔고 다른 싼 데로 가서 현금화해서 물려주려고 한다. 자식에게 펀드를 들어줘서 펀드를 불리는 식으로 증여투자 방식이 있을 텐데,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이 동향이 잘 안 잡히는 것이 아쉽다. 투명하게 신고되는 것은 아니니까.”

 

-흥미로운 것은 이제 386세대도 이 자산 세습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표가 보여주는 것은 386들이 저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현금이 많다. 이제 막 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다. 386세대를 놓고 보면 자산 축적에서 두 번의 기회가 왔다. 2000년대 중반과 그리고 현재다. 둘 다 진보정권 시기였다는 공통점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한국 사회의 위계를 다룬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계획도 있는

한국 사회 위계를 다룬 책은 절반 정도 썼다. 그 다음은 창업의 사회학을 써보고 싶다. 같은 문제의식이다.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제도를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 네트워크를 통해 벤처캐피털을 끌어모으는 지금까지의 한국식 IT 창업 모델 말고, 진짜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기반한 모델이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그런 데 있다. 학계나 국가의 역할도 새로운 세대의 창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교육의 내용도 그런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연공제는 심각한 불평등의 원인이다. 사회적 압력을 통해 노조가 이것을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50대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좀 나눠야 한다.

 

이철승은 논쟁적 지식인이다. 이른바 ‘386 세대가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그 희생자는 청년 세대라고 비판한 논문 세대, 계급, 위계:386 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20192월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 논문을 확장해 같은 해에 펴낸 불평등의 세대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 그의 대표작은 따로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16년 영어로 쓴 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When Solidarity Works)가 그것이다. 책은 브라질·타이완·아르헨티나·한국에서 복지국가가 어떻게 발전하고 후퇴하는지 분석하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의 건강보험 통합에 주목한다. 지역별·직장별로 쪼개져 있던 의료보험을 하나로 통합해 지금의 건강보험을 만든 것은 김대중 정부 때였고, 그 변화를 이끈 주체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였다. 그는 이런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추적하기 위해 한국을 오가며 한국 노동운동가와 시민운동가 5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2013년 시카고 대학 종신교수로 임명됐지만, 이 연구를 계기로 18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1년생으로 올해 나이 50인 정규직 남자 교수다. 그런 그가 현 체제의 희생자로 청년, 여성, 비정규직을 호명하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 논쟁에 불을 붙인다. 무기는 데이터다. 이철승의 책에는 ‘100대 기업 세대별 이사진 비율과 자본수익률’ ‘대기업·정규직·유노조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월평균 실질임금 추이같은 그래프가 빼곡하다. 세대론에는 으레 그렇듯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니지만, 그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철승은 적어도 반증 가능한 방법으로 불평등이라는 이슈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드문 학자다. 20211, 이번에는 벼농사에 천착한 새 책 쌀 재난 국가를 들고 돌아온 이철승 교수를 만났다.

 

한국 사회 불평등의 기원을 벼농사 체제에서 찾았다. 동시대 한국인으로서 벼농사와 지금의 우리는 단절되어 있다고 느낀다.

 

좀 무리하긴 했다(웃음). 그러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라고 본다. 한국전쟁 때까지 한국인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았다. 1930~1940년대에 태어나, 1950~1960년대까지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1960~1970년대에 도시에 올라온 농민공(농민 출신 도시노동자)’들이 각각 다른 주체가 아니다.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 산업화 세대. 이들이 공장과 사무실에 취직해 일이 돌아가게 만들고 사람을 훈련시켰다. 이 과정에서 농촌 마을공동체의 경험을 이전시켰다.

 

연합뉴스

 

이철승 교수는 벼농사 체제가 남긴 연공제가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벼농사에 주목한 계기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다. 사실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이라는 게 전부 서구의 학문이다. 서구인이 자신이나 남을 분석하려고 만든 틀이다. 이걸로 한국 사회를 열심히 분석하면 어느 정도는 된다. 10, 20년 하다 보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계속 보인다. 서구의 시각에서, 한국은 서구처럼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과학에 기초한 합리적 경험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뒤떨어진 존재가 된다. 그래서 사회과학자들이 50대 중반쯤 되면 외국 서적을 다 치워버리고 공자와 맹자를 공부한다.

 

나는 인생 절반 가까이를 미국에서 살았다. 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며 이론을 만드는지 가까이서 봤다. 그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 살면서 동료들과 밥도 같이 먹고 아이도 키워보니 점점 우리와 다른 게 보였다. 예컨대 미국에 온 한국 유학생끼리는 이사철에 서로 도와주는 품앗이가 당연하다. 그런데 가만히 봤더니 동아시아만 그러고 있더라. 중국인들도 그걸 하거든. 우리 동아시아인에게는 협업의 정체성이 있고, 이건 벼농사에서 왔다는 게 내 주장이다.

 

협력은 인간의 본성 아닌가?

그렇다. 인간은 어디에서나 협력을 하는데, 그 정도를 어디까지 밀고 가느냐의 문제다. 벼농사는 협력 수준을 극단까지 밀어올린다. ? (재배 과정에서 물이 별로 필요하지 않고, 각 가구가 뿌린 대로 거두면 되는 밀농사와 달리) 공동노동을 해야 하니까. 김매기나 모내기를 하려면 대규모 노동을 한꺼번에 투입해야 한다. 이때 서로의 기술을 표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를 심거나 잡초를 뽑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하면 공동노동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뤄지겠나. 이 과정에서 숙련을 전수해주는 존재가 농사를 많이 지어본 윗사람이다. 여기서 나이에 따른 위계가 생긴다. 오늘날 공동노동을 가장 잘하는 게 한··, 타이완, 베트남 등 모두 동아시아 국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벼농사와 밀농사를 비교하면 사람들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된 편견을 의미하는)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린다. 브로델이란 학자는 쌀은 완전체이고 밀은 불완전체여서 밀 문화권인 서양에서 교역이 발달한 반면 쌀 문화권인 동양에선 그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브로델의 틀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극복하려는 것이다. 벼농사 체제에서 강력한 마을 단위 협업 시스템이 출현했고, 이러한 공동노동이 서구와는 다른 동아시아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벼농사 체제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어떤 협업을 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민족주의도, 식민지근대화론이나 발전국가론도 아닌) ‘3의 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박정희로부터 산업화 세대를 구하고 싶었다. 박정희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똑같이 여기까지 왔을 거다. 물론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데려다놓은 이들이 박정희나 정주영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거기서 노동을 한 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이다. 본인들이 해놓고 모른다. 그들이 내 책을 읽으면 운다. 자기 이야기니까. 80대인 아버지가 책을 읽고 우셨다고, 고맙다고 전화 왔다.

 

책은 벼농사 체제의 긍·부정적 유산을 여럿 지목한다. 이를테면 태풍과 장마, 가뭄에 취약한 벼농사 문화권에서 재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국가체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쌀 생산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코로나19 확진자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적다는 놀라운 그래프가 등장한다. 서로의 논에 손발을 담그며 공동생산을 하면서도 수확물은 개인이나 가구가 개별소유한 결과,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극도로 경쟁적인 사회 특성이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철승 교수가 벼농사 체제의 핵심적 유산으로 꼽는 것은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제다. 그는 이렇게 쓴다. “나에게 벼농사 체제가 남긴, 우리 삶의 패턴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원리와 구조를 이야기하라면 그것은 나이에 따라, 연차에 따라 일에 대한 보상-임금구조-을 결정짓는 연공 시스템이다.”

연합뉴스 2018415일 서울 단대부고에서 열린 삼성 대졸 신입사원 공채를 위한 직무적성검사를 마친 응시생들이 고사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공제는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유산인가?

발전국가 시기엔 잘 맞았다. 지금은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연공제가 뭔가. 벼농사 체제에서 나이가 많으면 숙련이 쌓이더라는 경험칙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같은 연차면 같은 임금을 주는 시스템이다. 나이 50이면 숙련이 비슷하다는 가정인데, 뭐가 비슷한가? 20년 동안 개발자로 일해도 기초 코딩밖에 못하는 프로그래머와 인공지능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는 전혀 다르다. 각 직무에 필요한 숙련을 평가하지 않고 나이로 퉁치는연공제로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 기적에 가깝다. 앞으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거다. 이미 삼성, SK 등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에서 연공제는 약화되어 있다.

 

한국에서 숙련 측정을 대신하는 게 하나는 나이고 다른 하나는 시험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공정하다는 착각)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라는 건 좀 코미디다. 샌델이 비판하는 미국식 능력주의와 한국의 능력주의는 다르다. 미국에선 사람을 시험으로 뽑지 않는다. 노동시장의 높은 이동성을 바탕으로, 거미줄처럼 발달한 평판 조회 시스템으로 사람을 채용하며 보상의 격차도 엄청나게 벌린다. 한 대학에서 10만 달러를 받는 교수와 100만 달러를 받는 교수가 같이 학생을 가르치는 식이다. 반면 한국은 시험 한 번으로 인생 나머지 노동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 거대한 도박판에서 이긴 자들이 사회의 상층을 장악하며 평생 연공급을 누린다. 공공부문 정규직화에서 공정논란이 벌어졌다. 이 도박판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자와, 여기에 끼지 못한 자 사이의 갈등이었다. 그런데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곧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 시험 보는 기술은 암기력으로 남이 만든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일 뿐, 노동 현장에서 발휘해야 하는 수많은 능력 중 극히 일부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험을 잘 본다는 한 차원의 능력이 대인관계, 리더십까지 다 결정한다고 가정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에 연공제가 있다고 썼다.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심각한 불평등의 원인이다. 나는 착종이라고 표현하는데, 연공제라는 제도, 세대, 인구구조라는 세 요인이 뒤섞여 엉클어진(착종된) 결과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난다. KBS가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최근 KBS가 자사 직원 중 46.4%가 연봉 1억원 이상을 받고 있고 (국장, 부장 등 직책이 없는) 무보직자가 1500여 명이라고 공개했다(KBS 직원 수는 약 4800명이다). 한국은 2차 오일쇼크가 풀린 1981년부터 1997년 말 외환위기까지 17년간 장기 호황이었다. 이때 (인구가 많은) 나나 내 윗세대가 우르르 입사했다. 학점이 4점 만점에 2점이어도 기업들이 와달라고 대학에 진을 치고 원서를 들이밀던 시기다. 얼마나 많이 들어왔겠나. 이 사람들이 다 고연차로 올라왔는데 어떻게 보직을 다 주나.

 

물론 보직이 없다고 일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고연봉 직원이 많아지면 결과적으로) 신입을 못 뽑는다. KBS라는 조직이 살 길은 뭔가? 빨리 젊은 사람을 뽑아서 유튜브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로 새 트렌드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젊은 층의 관심을 끌어야 사람들이 KBS를 보고, 광고가 들어온다. 그런데도 신입을 못 뽑고, 필요한 인력은 아웃소싱으로 돌리면서 수신료를 올린다.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기업이 정말 많다.

 

노동조합들은 연공제가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윗세대 진보는 모든 것을 자본과 노동, 재벌 대 나머지의 대결로 해석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특히 공기업이나 대학처럼 주인 없는 조직에서 50대 후반 상층 정규직은, 심하게 표현하면 한시적 자본가라 불러도 된다. 자본가가 뭔가? 그 조직의 지분을 많이 보유함으로써 노동을 통제하는 존재다. 공기업 노조나 대학교수를 보라. 50대부터 약 10년 동안 집단으로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자신들에게 모든 자원과 유리한 특권을 몰아주고 은퇴한다. 똑같은 권한을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다. 여기서 주인은 누구인가? 연공서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냉정하게 볼 때 한국의 노조는 임금인상 투쟁 기구라고 봐야 한다. 외국에서 노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격차 축소다. 예컨대 독일 금속노조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맨 위와 맨 아래의 임금이 너무 차이 나지 않도록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한다. 한국은 맨 위가 받는 임금을 끝없이 밀어 올리는 역할을 노조가 했다. 그걸 제일 잘하는 게 완성차 노조다. 완성차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해 관철하면 다른 노조들도 쳐다보고 있다가 다 같이 임금을 올린다. (노조 간부들이) 동문 네트워크로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50대 이상 상층 정규직 연봉은 대략 8000만원에서 12000만원으로 통일되어 있다. 자신들의 연공과 연봉을 올리면서 밑으로는 비정규직에게 비용을 떠넘긴다. 나아가 청년 고용을 축소시킨다. 나는 이걸 데이터로 보여줬다.

 

이철승 교수가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 사업체 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55세 이상 노동자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높은 연공급 테이블의 기울기가 35세 이하 청년 고용 비율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는 여성은 승진에서 밀려나거나 근속연수가 짧은 등의 이유로 연공제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서울 아파트값 폭등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고, 배후에는 상층 정규직 부모가 있다. 연공제가 여러 측면에서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노조가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압력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연공제의 대안은?

한국의 정서상 연공급 요소를 아예 없애긴 힘들다. 연공급 기울기를 낮추는 건 가능하다. 여기에 직무급 요소를 섞어서 차차 대체해나가야 한다. 처음엔 이게 연공급인지 직무급인지 알 수도 없게. 예를 들면 직무 등급을 1~15등급까지 만들어놓고 3~4년마다 직무를 평가해서 큰 문제가 없으면 올려주는 식이다. 정말 문제 있는 10명 중 한 명 정도만 낮은 등급에 머물게. 이런 얘기를 하면 노조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분할통치라고 비판한다. ‘그 한 명이 우리가 될 수도 있다이러면서. 평가받는 게 싫은 거다. 근데 우리, 평가받아야 하지 않나?

 

최소한의 평가를 받지 않으면 인간은 무임승차하게 되어 있다. 내가 있는 교수 사회를 보자. 정규직 교수는 연공급을 받는다. ‘시간강사라 불리는 비정규직 교수는 시간당 5~1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똑같이 한 학기에 두 과목을 가르친다고 할 때, 비정규직 교수가 1년에 약 1000만원을 받는 동안 50대에 진입한 정교수는 1억원을 받는다. 10배나 되는 봉급 차이를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강의평가 때문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강의평가가 좋지 않은 시간강사는 자르는 반면 정교수는 그럴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정교수들이 학교 행정 일을 하고 논문을 많이 쓴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안 해도 정교수이면 기본급으로 1억원이 나오는 구조다. 사실은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동일한 강의에 대해선 동일한 임금을 받고, 정규직 교수가 학교 행정이나 논문 등 따로 더 일한 부분은 해당 직무의 숙련도를 평가받아 추가로 임금을 받으면 된다. 그게 직무급이다. 지금은 아무런 근거 없이 (정교수라는 이유로) 10배를 받는다. 학자가 학자를 착취하는 시스템이다. 사실상 신분제다.

한국에는 직무의 성격이나 난이도를 평가할 도구가 없는데?

한국형 숙련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 한국의 근속연수가 외국에 비해 극도로 짧은 이유 중 하나는 숙련도가 낮기 때문이다. 숙련공이 없어도 되니 더 젊은 저임금 인력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현대차가 이런 시스템이다. 단기간만 교육시켜도 일할 수 있게 만들어놓으니 숙련이 쌓이지 않는다(물론 이렇게 해도 정규직은 정년을 보장받는다. 대신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과 사실상 같은 업무를 하며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숙련을 깊이 축적했을 때 뭐가 좋으냐면, 그 사람이 없으면 조직이 안 돌아간다. 이러면 조직이 사람을 자를 수가 없다. 고용 보장을 외칠 필요가 없어진다.

 

나는 숙련에 베팅하자고 제안한다. 이제는 보직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보직이 정말 힘든 일을 하는 직책일까? 많은 경우 아니라고 본다. 더 무거운 걸 나르는 사람,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한다. 숙련 측정 도구를 가져올 곳은 많다. 국내 다국적 기업이나 경쟁국 기업의 직무급 운영 자료를 모아서 산업·직군·직무별로 임금의 평균과 분산 표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와 노조가 할 일이 이런 거다.

 

현재로선 노조가 나설 유인이 없어 보인다.

연공제는 조직 내부를 단합시키기에 가장 좋은 기제이고, 한국 모든 조직의 의사결정권자는 나이 먹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룰을 깨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무조건 호봉제를 방어하는 전략 외엔 없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노조는 386 세대가 은퇴하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기업도 안다. 이들이 너무 잘 싸우고 잘 조직화되어 있어서 건드릴 수 없다는 걸. 현대차 경영진의 전략은 이렇다. ‘은퇴할 때까지 기다리자. 그리고 한국에 현대차 이름으로 더 이상 공장을 세우지 않는다.’ 현대차 정규직은 지금의 노동조건과 힘을 가진 채로 우르르 은퇴하고 공장은 문을 닫는 길로 가고 있다. 이게 전체 산업을 볼 때 바람직한 방향인가? 노조의 마지막 목표가 정년 연장이다. 연공급을 그대로 둔 채로 65, 70세까지 최대한 오래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불가능하다.

 

조건부로는 가능하다. ‘정년 연장해줄게, 대신 직무급이랑 바터(교환)하자고 하면 된다. 직무급으로 연봉이 좀 낮아지더라도 고용은 더 오래 보장받을 수 있다. ‘많이 받고 조금 다닐래, 조금 받고 오래 다닐래?’ 선택하게 하는 거다. 다 같이 조금 덜 받고 더 오래 다니는 걸 노조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안 하면, 386 세대가 다 은퇴한 다음에는 자본과 국가의 목소리가 반영된 임금체계가 쫙 깔릴 거다. 그러기 전에, 노동이 여기에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반영시킬 수 있을지 치열하게 논의하고 공부해야 한다.

 

노동이 기업, 국가와 협상을 벌여 자신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절차가 사회적 대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 한국에서도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이뤄졌다. 노동조합은 전교조 합법화와 건강보험 통합을 얻는 대신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내주었다. 그 이후로 유의미한 사회적 대화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1998930일 서울 마포에서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한국 노동조합도 건강보험 통합이라는 연대의 경험이 있다. 그런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건강보험 통합은 노조의 희생이었다(이미 양질의 직장의료보험을 누리고 있던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들은 건강보험 통합에 큰 이해관계가 없었는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냈다). 거대한 딜이 노동을 영원히 공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1998년에 머물러 있다. 당시 어떻게 중앙 노조가 정리해고제를 타협해줄 수 있느냐며 지방에서 활동가들이 쇠파이프 들고 서울에 올라와서 (노사정 합의를) 뒤엎어버렸다. 김대중 정부는 노조가 이미 사인한 걸 가지고 밀어붙였다. 노동운동에서 중앙의 의미는 그때 이후로 회복이 안 된다. 그 이후로 대공장 노조들이 사회개혁 노선에 다시 협조를 안 한다.

 

국가와 자본에게 뭔가를 받으려면 노동도 뭔가를 내주어야 한다. 두 가지밖에 없다. 고용 아니면 임금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고용을 내줄 수는 없다. 그러면 임금인데, 임금을 내준다는 건 연공제의 고임금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그 얘길 입 밖으로 못 꺼낸다. 도장을 찍는 순간에 선거에서 위원장을 바꿔버리거든. 연공제는 그만큼 현장에서 민감한 문제다. 50대들의 밥그릇, 기득권을 건드리니까. 그럼 누가 얘길 꺼내야 하나? 나 같은, 이런 얘길 해도 욕은 먹지만 목이 날아가지 않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비정규직 운동의 마지막 요구가 연공제 도입이다. 나는 이걸 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다 같이 무기계약직으로 가자. 한국과 함께 연공제 나라로 꼽힌 일본도 직무급 요소를 상당 부분 도입했고, 중국과 타이완도 이미 직무급 성격이 강하다. 최초 입직 노동자의 30년 후 임금 배율이 서유럽 1.7, 일본 2.5배인 반면 한국이 3.3배다(한국노동연구원, 2015). 연공제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안 한다.

현대자동차 제공 20155월 현대차 울산공장. 이철승 교수는 현대차 정규직은 지금의 노동조건과 힘을 가진 채로 우르르 은퇴하고 공장은 문을 닫는 길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거래의 무대는?

개별 기업 안에서 밀고 당기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진보는 그동안 엉뚱한 데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다. 산업별 노조다. 내가 보기엔 절대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산별노조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초기업적인 연대체라는 이념이 벼농사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현장은 전형적인 마을 기업, 소농 연합체에 가깝다. 다른 마을(기업) 사람들을 협력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간 임금 차이를 직무급으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관이 아니라 현실이다.

 

동일사업장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도 해야 한다. 울타리 안과 밖의 경계가 확실한 동아시아에서는 이게 더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다. 적어도 같은 사업장 안에서 똑같이 바퀴를 끼우고 있다면 동일한 임금을 주자는 얘기다. 이건 법제화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 같은 사업장이 아닌 사외 하청업체와는 어떻게 격차를 축소할까? 이익공유제를 검토해볼 수 있다. , 조건이 있다. 화투 칠 때 개평(남이 가지게 된 몫에서 조금 얻어 가지는 공것)’을 주게 하려면 판이 벌어지기 전에 합의를 봐야 한다. 게임이 끝난 뒤에 네가 많이 먹었으니 좀 내놓으라고 하면, 다음 판이 안 선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이익공유제가 정확히 이런 형태다. 그게 아니라 이익이 발생하기 전에그 일부를 사외 하청업체와 공유하기로 예컨대 삼성이 약속하면, 삼성의 법인세를 깎아주는 건 어떨까? 기업 입장에서 국가에 법인세를 내고 싶겠나, 내 하청업체에 더 주고 싶겠나? 기업이 이익을 하청업체와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룰을 국가가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하게.

 

불평등의 세대출간 뒤 논쟁이 거셌다. 논쟁을 만드는 지식인이란 인상이 있다.

특별히 의도하진 않았다. 나는 커리어를 미국에서 쌓았다. 거기선 당연한 일이다. 논문을 쓰든 뭘 하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논쟁을 만들 줄 알아야 연봉도 많이 주고 보직도 올려준다. 불평등의 세대가 공교롭게도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날 나왔다. 386 세대의 정치권 과잉 점유를 다룬 장이 주목받으면서 한쪽에선 조국 비판에 이용되고, 다른 쪽에선 기득권 세력의 세대 갈등 노림수라고 읽혔다. 사실은 노동시장 비판이 주요 목적이었다. 50대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니 좀 나누자고 말하고 싶었다.

 

불평등의 세대를 내고 나선 진보 학계에서 잘 안 불러준다(웃음). 나는 (공론장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키우는 게 한국 사회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하는 건 일종의 자유주의 프로젝트다. 누구와도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주로 남들이 안 보는 데이터를 찾아서 돌리는 건, ‘구라치면 안 된다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웃음). 양적 방법론을 쓰는 국내 학자 중에 일부가 데이터를 먼저 보고 질문을 만들더라. 거꾸로다. 질문이 먼저고, 그다음에 구할 수 있는 데이터를 뒤져서 분석해야 한다. 인터뷰는 책 내고 한 달 동안만 하고, 다시 책 쓰러 가야 한다. 도자기 굽는 게 내 일이니까./시사인 전혜원 기자 2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