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7000년 삼나무와 원령공주 함께 사는 ‘생명과 치유의 섬’
일본 가고시마현에 야쿠시마라는 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20년 전인 2004년 이와사키호텔그룹에 입사해 서울사무소장을 맡은 이후였다. 입사 교육의 하나로 야쿠시마의 이와사키호텔을 견학하기 위해 가고시마시에서 고속선을 탄 게 섬에 첫발을 디딘 계기였다. 나는 첫눈에 인생의 사랑을 찾은 젊은이처럼 한눈에 야쿠시마의 매력에 반해버렸다. 이후 한국인 관광객을 인솔하거나,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 촬영차 그곳에 가는 촬영감독, 배우를 안내하기 위해 섬을 방문한 게 수십 차례에 이르렀다.
일본 가고시마현 야쿠시마 섬을 상징하는 수령 7000년 삼나무 조몬스기 전경.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의 매력은 오감을 활용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다 사용해야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먼저 초록의 이끼와 나뭇잎을 눈으로 보고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는다. 숲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솟아나는 샘물의 맛을 본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삼나무를 만져본다. 나는 거기에 상상력을 추가한다. 그루터기를 보고 잘리기 전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쓰러진 삼나무를 보고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나면 야쿠시마의 숲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야쿠시마를 ‘생명의 섬’이라고 부른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치유의 섬’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곳에 가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치유를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진 속 조몬스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인 10명이 손을 맞잡아야 둘레를 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30주년을 맞은 야쿠시마가 유명해진 계기는 두 가지다. 먼저 추정 수령 7200년의 삼나무 조몬스기다. 야쿠시마 사람들은 원래 섬의 깊은 숲을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끔 사냥꾼이 거대한 나무를 봤다며 놀라워했을 뿐 그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무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은밀히 숨어 있던 조몬스기가 발견된 것은 1966년이었다. 섬 주민이 카메라 풀샷으로도 찍을 수 없는 거대한 원시목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남일본신문’이 보도한 것이었다. 신문은 ‘신석기 시대에 싹을 피웠다’는 뜻에서 이 삼나무에 조몬스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몬은 BC 1만 4000년 무렵 일본의 선사시대를 의미하고 스기는 삼나무를 뜻한다. 신문 보도를 기점으로 야쿠시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야쿠시마를 더 유명하게 만든 두 번째 계기는 1997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였다. 작품 제작의 배경이 야쿠시마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 제작진을 데리고 야쿠시마에 들어가 5박 6일간 지내기도 했다. 3년 뒤인 2027년이면 개봉 30주년을 맞는 영화 덕분에 야쿠시마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야쿠시마뿐 아니라 일본 규슈에서 최고봉인 미야로노우라다케.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 삼나무 중 수령 1000년 이상인 나무를 야쿠스기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1000년 이하는 그냥 이름이 없는 ‘어린 나무’다. 삼나무 수명은 대개 500년인데, 야쿠시마에 유독 수령 1000년을 넘는 야쿠스기가 많은 것은 섬의 지질 때문이다. 영양이 빈약한 토양이어서 나무가 자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나이테가 치밀하고 단단하다. 그래서 삼나무는 벌레와 부패에 강한 특성을 갖게 됐다.
성인 10명 이상이 팔을 잡아야 둘레를 잴 수 있다는 조몬스기는 많은 일본의 삼나무 중에서 가장 몸통이 굵다. 굵기에 비해 키가 작은데, 태풍이 상습적으로 통과하는 야쿠시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키가 큰 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야쿠시마의 많은 삼나무가 에도시대에 벌채됐지만 조몬스기는 표면이 울퉁불퉁해 이용가치가 낮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은 뿌리 손상을 막기 위해 나무 전망대가 만들어져 등산객은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계곡 깊숙이 들어가면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나무의 정령 고다마와 사슴 신 시시가미가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모노노케 히메’의 주무대인 ‘고게무스모리(이끼 무성한 숲)’에 도착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연신 사진을 찍게 된다. 영화와 흡사한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의 이끼가 낀 바위와 나무 사이로 하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의 농부시인이며 구도자로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는 ‘신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야쿠시마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조몬스기를 볼 때마다, 야마히메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야마오가 생각한 신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다.
조현제 이와사키호텔 서울사무소장/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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