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반듯한 소나무와 잣나무는 제자 이상적의 믿음과 의리를 상징하고, 꺾이고 상처 입은 소나무 한 그루는 추사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또한, 낡은 집 한 채와 텅 빈 여백은 추사의 외로운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통유, 그리고 세한도
신동호
눈 쌓인 가지가 무거워 보이네
추사, 언덕을 거닐며 바라보던
푸른 소나무 늙어 가는가
이놈 불호령은 어디서 듣는가
인연의 옷자락 바람에 날린다
세상을 아는 것은 쓸모 없는 일인가
격물치기는 세로쓰기의 한자에서 해서체로나 보이고
유유자적 긴 그림자 끝으로
허송세월의 딱지가 붙어 버렸다
말똥구리와 석류에서의 어떤 외경
흙으로 돌아가려나
너무 오래 토종의 흙을 모르고 살았네 추사
겨울밤 문풍지를 흔들던 바람도
세상을 배우던 세한도의 집 한 채
지조와 의리가 사라진 전문가의 원근법
저 멀리 작은 점으로
역사가 놓인다
이 셰상 그 무엇도 아닌 것
먼 길을 떠나서 닿으려니 눈이 날리네
눈이 날리네 추사
이놈 불호령은 어디에서 다시 듣는가
세한도
도종환
기나긴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가던 길
그대 오만한 손으로 떼어 네었던
편액의 글씨를 끄덕이며 다시 걸었듯
나도 이 버럼받은 세월이 끝나게 되면
내 손으로 떼어내었던 것들을 다시 걸리라
한 계단 내려서니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그대 이름 불러 보리라
이 싸늘한 세월 천지를 덮은 눈 속에서
녹다가 얼업1ᅟᅮᇀ어 빙판이 되어 버린 숲길에서
세한도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지음 |문학동네|2010년 01월 08일 출간
출판사 서평
학예일치의 경지, 조선 예술의 진수
세상 모두 등 돌릴 때 끝까지 신의를 지킨 우선 이상적
그 한 사람에게 바치는 추사 김정희의 연서戀書
<세한도>에 담긴 조선시대 학예일치 문인화의 정수를 추사 김정희의 일생과 함께 보여준다. 추사가 <세한도>를 그리기까지 역관 이상적과 나눈 변함없는 우정, 그리고 그림 속에 녹여낸 학문의 경지를 따라가며 깊이 있는 그림 독법을 제시했다.
◆ 추사 김정희와 우선 이상적이 나눈 가슴 시린 우정
<세한도>가 오늘날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 안에 추사 김정희와 역관 이상적의 가슴 시린 우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집안이 화를 당해 먼 제주도까지 유배됐을 때, 추사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내도, 절친했던 친구도 세상을 떠나고, 권세 있는 자들은 발길을 끊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변함없이 추사에게 먼 곳에서 구해온 책을 가져다주며 우정을 더욱 굳건히 지킨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선?船 이상적이다.
◆ 고문헌연구가가 ‘읽은’ <세한도>
지금까지 <세한도>를 이야기한 책은 많았다. 주로 미술사학계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조선시대 학예일치의 경지가 구현된 하나의 정신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고문헌연구가 박철상 선생이 쓴 <세한도>는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이 책은 박철상 선생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추사 김정희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2003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책 『완당평전』에서 200여 군데에 이르는 오류를 발견한 바 있는 박철상 선생은 『세한도』에서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새 자료를 공개하며 기존의 연구를 바로잡고, 새로운 연구 성과를 더했다. 김정희가 편지 한 통 한 통을 보낸 날짜까지 치밀하게 고증했으며,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되기까지 어떻게 심문을 받았는지, 그날의 현장까지 모두 되살려냈다. 이런 고증이 바탕이 되어 기존의 연구 중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고,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한도>의 내용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훌쩍 뛰어넘는다. 특히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청대 문사들의 제영이 모두 완역돼 실렸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추사가 청나라 문인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습득하고 그들과 깊은 친분을 나눴다는 점을 보여줄 뿐 아니라, 추사의 글씨와 그림이 한국 뿐 아니라 청나라에서까지 널리 인정받고 회자됐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세한도>로 보는 조선 문인화 학예일치의 경지
지금까지 수많은 저술과 논문 주제로 다뤄진 <세한도>는 당연히 미술사학도들 사이에서 인기 소재였지만, 저자는 단지 그림을 그린 기법이나 그림 속 사물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세한도>가 지닌 문화사적 의미를 파헤치는 데 중점을 뒀다. <세한도>를 단순한 그림이 아닌 문화로 본 것이다. 추사는 <세한도>에서 물기 없는 붓으로 겹쳐 칠하는 묵법을 통해 쓸쓸한 마음을 표현했고, 당시 조선 화가들이 추앙하던 청대 화가들의 기법을 모두 펼쳐 보였다. 뿐만 아니라,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을 지닌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 염량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음을 지키는 선비의 지조를 그려냈다. 추위가 매서운 새해,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는 우선 이상적처럼 변치 않는 친구가 있는가? 슬프구나, 비부!
책 속으로
이상적은 추사가 유배를 떠나기 전 이미 5차에 걸친 연행을 했었다. 그는 연행할 때마다 추사를 위해 청나라 학계의 최신 정보를 전해주었고, 진귀한 서적들을 구해다주었다. 평소에 교분이 있던 사람들도 바다 밖 멀리 유배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우선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 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가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우선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선에게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바다 멀리 유배객 신세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적의 뒤를 봐줄 수도 없었고, 그에게 돈을 줄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붓을 든 추사는 자신의 처지와 우선의 절개를 비유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창문 하나 그려진 조그만 집 하나, 앙상한 고목의 가지에 듬성듬성 잎이 매달린 소나무 하나, 그리고 나무 몇 그루를 그렸다. 눈이 내린 흔적도 없지만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쓸쓸하고 썰렁했다. 집 안에는 누가 있을까. 추사 자신만이 혼자 남아 있을 것이다. 저 앙상한 나무들마저 없다면 그 쓸쓸함을 저 집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추사는 또 다른 종이 위에 칸을 치고 글씨를 써내려갔다. 자신의 심정을 우선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고맙네. 우선! _본문에서
태사공太史公은 ‘권세나 이권 때문에 어울리게 된 사람들은 권세나 이권이 떨어지면 만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대 역시 세상의 이런 풍조 속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권세나 이권의 테두리를 벗어나 권세나 이권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단 말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린 것인가?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 겨울이 되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겨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겨울이 된 뒤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는 곧고 굳센 정절 때문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자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아! 서한시대처럼 풍속이 순박한 시절에 살았던 급암汲?이나 정당시鄭當時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권세에 따라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였다. 하비下? 사람 적공翟公이 문에 방문을 써서 붙인 일은 절박함의 극치라 할 것이다. 슬프구나! 완당노인이 쓴다. _본문에서
목차
1. 역관 이상적, 운명을 만나다
2. 끝없는 고난, 유배객이 되다
3. <세한도>의 탄생
4. <세한도>, 그 황량함의 정체
5. <세한도> 감상하기
6. <세한도>를 그린 사연
7. 오디세이 <세한도>
8. <세한도> 이야기를 마치며
부록 세한도 제영
음악출처: 다음 블로그음악과 여행
Belle - Sergei Trofanov 外
'세상과 어울리기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물의 인문학 -숲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0) | 2014.12.02 |
---|---|
자본의 17가지 모순 (0) | 2014.11.21 |
중국을 낳은 뽕나무- 사치와 애욕의 동아시아적 기원 (0) | 2014.10.11 |
출처 없는 지식의 공허함과 과잉 사회를 비판한 '노력중독' (0) | 2014.09.27 |
세상을 바꾼 나무 (0) | 2014.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