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터치] 생물다양성이 높은 도시
지난 주말 제7차 생물다양성 과학기구(IPBES) 총회가 파리에서 열렸다. 회의 결과물인 요약보고서가 각 나라의 신문과 방송에 소개됐다. “생물 100만 종이 멸종위기에 처했고 이를 극복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모든 지역의 변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보고서는 생물다양성 감소의 직접적 원인으로 토지이용, 남획, 기후변화, 오염, 침입외래종을 지적했다.
이익에 급급해 마구잡이 개발한 결과
외래종에 의해 장악된 낙동강 하구역
그곳서 영문 모르고 인증샷 찍는 현실
환경 재앙 막으려면 ‘지역의 변혁’부터
침입외래종의 문제는 당장 문을 열고 나가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도처에 널렸다. 가장 적나라한 현장은 대저, 삼락 등 낙동강 하구 둔치 생태공원이다. 창궐했던 양미역취며 단풍잎돼지풀 등의 생태 교란 귀화식물 제거를 주장했지만, 행정은 책임 전가와 예산 타령뿐이다. 이제 낙동강 하구역 터줏대감 식물은 갈대가 아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사람들은 거대한 군락으로 떼 지어 핀 양미역취밭에서 다투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난 가을이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낙동강 하구역이 몇 종의 특정 외래식물에 의해 장악된 현실은 4대강 공사 이후다. 멀쩡한 하구 둔치를 포클레인으로 파고 불도저로 밀어버린 후 하구역 둔치의 풍경은 급속도로 변질됐다. 갈대와 억새 중심의 고유 경관 대신 낯선 꽃물결 흐드러진 이질적인 장소가 됐다. 지금 낙동강 하구 둔치를 예전의 풍경으로 되돌리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 인력이 투입되어야만 가능하다. 망가진 것을 복원하고 재생시키는 데는 망칠 때보다 더 큰 비용이 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눈앞의 하찮은 이익과 소수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자산은 늘 헐값에 거래된다. 이를테면 광안 앞바다 케이블카 추진단체의 ‘고무장갑 시민청원운동’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주최 측의 일방적 홍보와 감언에 더해 고무장갑 한 켤레 때문에 별다른 의심 없이 기꺼이 서명한다. 과거 자유당 시절 고무신 한 켤레와 다르지 않다. 그때는 주권을 넘겼지만, 지금은 지역의 공공자산과 미래세대의 환경권이 도매금로 넘어가는 거다. 이런 행위에 누군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서명의 결과는 시민 여론으로 둔갑해 개발의 명분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된다. 요즘 개발론자들이 흔히 쓰는 전략이다. 문제는 인공구조물이 그들의 배를 불려줄지는 몰라도 세대를 아우르는 모두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지역 내 생태환경적 균형의 균열과 경관의 파편화를 넘어 줄줄이 사탕처럼 지역의 총체적 생물다양성 감소와 잘못된 토지 이용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토지 이용의 오남용은 한 지역의 생태환경이 내장한 다양한 기회요인을 왜곡된 형태로 고착화하기 일쑤다. 그것은 도시계획의 오류이기도 하다. 늘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그 법과 제도가 악용되는 일 또한 종종 발생한다. 문제가 생기고 원성이 높아지면 그제야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거나 수정된다. 부산시 건축물 높이 제한이 그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상당 부분 ‘엎질러진 물’이다. 늦었지만 그나마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더 이상의 악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에서 생물권의 보전과 공존은 시대적 화두요 지구적 과제다. 그런 점에서 산과 강, 바다를 도시 자원으로 가진 부산은 축복받은 곳이다. 그러나 그 축복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했다. 선진도시, 해양수도를 주창하며 곳곳에 마천루를 세우고 아스팔트로 단장했지만 정작 시민의 삶 속에 체감되는 환경친화적 도시는 아니다. 산자락과 해안가에 즐비한 고층아파트 단지로 인해 바람은 길을 잃었다. 도시 내부의 온도는 증가하고 에어컨 이용이 폭증했다. 한두 집도 아니고 도대체 그 비용은 누가 내는가. 변화가 필요하다. 숲을 확충하고 물길이 도시 곳곳을 누비도록 해야 한다. 바람길을 위해 일본 도쿄에서는 건물 두 동을 해체하기까지 했다. 바람이 강물처럼 흘러 도시를 적실 때 도시 내부의 생명체도 산다. 생물다양성 과학기구가 특별히 ‘지역의 변혁’을 주문한 것은 미래를 기약하기 위한 공존의 의미 때문이다. 국제환경기구들이 일관되게 제기했던 경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부산시정 속에 그 경고는 얼마나 용해되었는가. 환경이 여전히 부차적이라면 이 도시의 미래는 없다.
부산일보 2019. 5. 10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 여유를 가지고 쓰지 못했다. 이번 칼럼은 스크랩해서 여기저기 퍼나르지 않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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