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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비안개속 두미도 둘레길 2

by 이성근 2020. 8. 10.

 

섬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889. 당시 2년간에 걸친 흉년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면서 남해에 살던 사람들이 나무를 엮어 만든 떼배를 타고 섬에 들어왔다. 그러나 북구마을 회관 앞에는 두미 개척 백년비석이 1996년에 세워져 있으나, 이 또한 분명하지 않다.

 

처음 섬에 들어온 사람들은 밭을 개간하면서 무더기로 나오는 인골을 보고 무서움을 느꼈다는 얘기가 전한다. 40~50년 전만 해도 섬 곳곳에 혼불이 날라 다녔다는 경험담도 있다. 개척 전 두미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근의 매물도에도 흉년과 괴질로 인해 초기 정착민들이 한꺼번에 꼬돌아졌다’(꼬꾸라지다의 사투리)고 해서 꼬돌개로 불리는 곳이 있다. 남해의 섬들은 그 아름다움 속에 저마다 크나큰 슬픔을 숨겨두고 있다.

 

남구마을의 옛 이름은 굴밭기미다. 어른 머리만한 벚굴이 지천으로 나고, 그 굴껍질이 산더기처럼 쌓여서 이뤄진 마을이라는 뜻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류에서 난다는 벚굴이 남해 바다 한가운데서 아직까지 채취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둘레길 중간에는 폐허가 된 옛 마을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남해군과 가까운 천황산 아래의 순천 마을에서는 일제 시대 절구통과 맷돌을 만들던 채석장이 있었다. 여기에서 만든 절구통과 맷돌은 경남은 물론 부산까지 팔려 나갔다. 지금도 섬 주민들은 그 당시 만들어진 절구통을 집집마다 하나씩은 지니고 있다.

 

천황산 아래의 감로봉에서는 1937년에 30높이의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이 나무꾼에 의해 발견됐다. 불상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회수돼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두미도를 포함한 통영의 섬들은 신라시대 때부터 불국토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이상향의 섬이었던 것이다.

 

두미도의 최대 비경은 청석기미 쪽에서 바라보는 동뫼섬이다. 코발트 빛의 바다를 배경으로 멀리 노대도, 욕지도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가히 환상적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 유명, 설영 장군 전설도

두미도의 자랑거리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섬이지만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있어 물 걱정은 안하고 산다.

 

굴밭기미와 절개 쪽에 큰 샘이 하나씩 있고, 청석기미 뒤에도 샘이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샘물이 사시사철 솟아 나온다. 절개의 샘은 장군수라고 하는데 아기장군 설영이 마신 물이라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통영지역 전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기장군 이름은 두미도, 사량도, 수우도 등 지역에 따라 설영, 설운, 설능 등으로 다르다. 시대 배경도 삼한시대, 고려 말, 조선 시대 등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내용은 비슷하다.

 

자식이 없는 부부가 치성 끝에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아가미가 있어 돌이 지나자 바다에서 수영하고 고기들과 헤엄치며 함께 놀았다. 남해안에 왜구의 노략질이 잦아지자 설영은 바다로 뛰어들어 왜구를 무찔렀으며, 양곡을 다시 빼앗아 인근 섬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왜구들이 욕지도 밖 큰 바다로 빠져나가자 그는 커다란 부채로 바람과 파도를 일으켜 배를 침몰시키는 도술도 발휘했다. 어느덧 청년 설운은 남해 바다를 지켜주는 설영 장군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정은 반인반어의 해괴한 괴물이 나타나 어민들을 괴롭힌다는 헛소문을 믿고, 관군을 파견해 설 장군을 죽였다. 이후 섬 사람들은 설영 장군을 바다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그의 혼백을 달래는 한편,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제사를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는 얘기다.

 

두미도에는 장군샘 외에도 천황산 아래에 설영 장군의 발자국이라는 장군바위가 있고, 바로 앞 수우도에는 설영 장군의 사당에서 해마다 동제를 지낸다.

 

절개의 장군샘은 그러나 특별한 표지석이 없이 방치되다시피 해 동네 주민이 아니면 찾기조차 어렵다. 두미도가 좋아 3년 전에 부산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신현국(58) 씨는 찾고 싶은 섬, 돌아오는 섬을 만들려면 이 같은 문화 자원을 잘 정비하고 스토리텔링을 더해 섬이라는 전통문화를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가나

두미도는 거리상으로 통영보다 남해나 삼천포가 가깝다. 행정구역은 통영이지만 면 소재지인 욕지도 보다 남해군의 미조항이 더 가깝다. 생활권은 삼천포에 속해 장은 삼천포에 가서 봐 오고, 잡은 수산물도 삼천포에 가서 판매한다. 아이들 교육도 삼천포에서 시킨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한솔해운이 오전, 오후 한 차례씩 하루 두 차례 차도선을 운항한다. 차도선은 오전에는 두미도 북구, 남구~상노대도, 하노대도~욕지 순으로 운항하고, 오후에는 반대 방향으로 배를 띄운다.

 

통영에서 북구 마을까지 운항시간은 1시간 15분이지만, 오후 배로 들어가면 2시간이 소요되고 요금도 그만큼 더 부담해야 된다. 삼천포 장날(4, 9)의 경우 오전 배는 통영에서 출발해 욕지~노대~두미를 거쳐 삼천포로, 오후 배는 삼천포를 출발해 반대 방향으로 통영에 도착한다. 삼천포 장날에는 오전에는 통영행 배가, 오후에는 두미도행 배가 없는 셈이므로 잘 확인해야 한다.

 

배에 실을 수 있는 차는 승용차 기준으로 6대고 이 중에서도 2대는 섬 주민에게 할당되므로 차량은 통영 여객선터미널에 주차해두고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자칫 차를 못 실어 며칠씩 섬에 더 묵어야 하는 상황까지 생길 수 있다.

·사진=부산일보 정상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