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015년 부산그린트러스트는 노거수의 보전을 위한 지역공동체 회복과 녹색거점 활성화 차원에서 부산의 노거수를 조사 한 바 있다. 2014년 행정의 관리가 이루어 지고 있는 보호수를 제외한 마을나무의 조사에 더하여 2015년에는 보호수를 포함하여 추가 조사를 벌인 결과 32종 230그루(팽나무 82그루, 소나무 65그루, 느티나무 20그루, 회화나무 9그루, 은행나무 9그루, 푸조나무 8그루 기타 26종 32그루)를 확인했다. 이중 지정 보호수는 69그루 였다.
수령은 천년 이상 2그루, 500년 이상 8그루, 300년 이상 38그루, 200년 이상 30그루, 100년년 이상 116 그루 순이었으며 100년이 안됐지만 마을터주대감나무로서 기능하고 있거나 그에 준하는 품격을 지닌 나무는 25그루 였다. 한편 16개 구.군을 통틀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어 기재할 수 없었던 나무도 10여 그루 있다.
마을터줏대감나무의 지역별 분포에서는 기장군이 79그루로 가장 많이 존재했고 강서구가 50그루, 그리고 금정구가 17그루, 사상구가 12그루 순이다. 분포 통계만 가지고 볼 때 시가화 발달 정도와 부합하며, 상대적으로 농어촌지역으로 자연마을 분포가 많은 기장과 강서지역이 노거수의 존재가 월등히 많았다. 달리말해 노거수의 존재 여부는 공동체의 유지 또는 와해와 직결된다. 대규모 택지개발과 산업단지, 신규도로의 개설 과정에서 노거수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곳이 많았다. 차선책으로 주민의 요구에 더하여 이식이 이루어 지고 있지만 해당 나무의 생육상태는 현저히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부산그린트러스트는 부산시 산림녹지과와 협의를 통해 보전을 전제로 한 전수조사를 비롯하여 각 개체군의 이력과 스토리 개발을 위한 시민참여 마을터줏대감 보전을 강화할 예정이다. ‘부산지역 마을터줏대감 나무(노거수) 1차 투어’ 부산, 오래된 미래와 만나기의 무대는 동부산권 기장지역을 중심으로 이동하며 시민공감대 형성과 보전을 위한 사전 활동으로 준비한다.
투어목적:
노거수, 마을터줏대감나무에 대한 시민 보전인식 확산
마을터줏대감나무를 통해서 본 지역사 이해
부산 자연 인문자원의 시민공유
노거수와 재미있게 놀기
투어개요
일시: 2016년 7월23일(토) 아침 8시 ~오후 5시
지역: 기장지역
모집인원: 40명 (선착순)
준비물: 도시락, 돗자리 참가비: BGT 회원5,000원 일반 10,000원
문의: 442-3326
주체: 부산그린트러스트. 부산작가회의. 내사랑부산시민운동협의회. 부산일보
투어 중 진행할 프로그램
체험유형 |
내용 |
장소 |
진행 |
이해하기 |
노거수 특강 |
청룡동 |
김동필 부산대 조경학과 |
교감하기 |
1200년 느티나무와 포옹하고 말 걸기 |
장안리 |
참가자 모두 |
400년 곰솔아래 명상 |
죽성리 |
송영경 빛들협동조합 | |
어울리기 |
시낭송과 음악 듣기 |
각장소 |
부산작가회의 |
한솥밥 고시레 놀이 |
죽성리 |
참가자 모두 | |
놀기 |
노거수와 놀기 (혹말타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
웅천리 |
참가자 모두 |
체험하기 |
참가지 노거수 측정해보기 (수고, 수관폭, 가슴넓이 등) |
각장소 |
참가자 모두 |
낮잠자기 |
나무 그늘 아래 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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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웅천리 연밭 및 기장 둘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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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진행 : 이성근 사무처장 |
방문 대상 노거수
청룡동 범어정수장 내 히말라야시다(개잎깔나무) 120살
선두구동 석지못 상수리나무 120살
기장 철마면 백길리 팽나무 350살
기장 철마면 웅천리 소나무 350살
기장 교리 살구나무 150살
기장읍 회화나무 500살
기장 죽성리 곰솔 400살
기장 하장안 느티나무 1200살
기장 정관 예림리 팽나무 340살
금정구와 기장 철마면 일원
철마면 지역은 고촌리 고분군 100기 등이 존재해 선사 시대부터의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현재의 철마면 지역은 조선 전기 기장현 상서면[기장 읍내 서쪽에 있어 붙여진 명칭]에 속하였다가, 1599년(선조 32) 기장현이 폐지되면서 동래군에 예속되었으며, 1617년(광해군 9) 다시 기장현으로 환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동래부(東萊府) 기장군이 되었다가, 1914년 기장군이 폐지되면서 상서면의 운동동[동래로 편입]을 제외한 전부와 하서면의 입석동·임기동 2개 동을 합쳐 동래군 철마면이 되었다. 이때 입석동이 송정리(送亭里)로 개칭되었다.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에 병합되면서 양산군 철마면에 속하였다가,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95년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기장군이 다시 설치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백길리의 옛 이름은 박길리(朴吉里)다. 박(朴)은 박실[朴谷]·배미산·배산·바리산 등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밝다’의 옛말이고, 길(吉)은 ‘길 영(永)’의 뜻을 받아 ‘밝은 고개의 긴 안쪽’, 즉 양지의 안쪽 마을이란 의미가 된다고 본다. 실제 백길리는 와여리에서 웅천리로 통하는 긴 협곡의 안쪽에 위치한 양달 골짜기에 자리한다. ‘밝다’의 옛말을 음차 표기하는 과정에서 박(朴)이 백(栢)으로 변한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설로는 마을 입구에 잣나무가 있어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 잣나무가 마을을 융성하게 할 것이라 하여 잣 백(栢), 길할 길(吉)로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잣나무가 없어졌다.
2015년 12월 현재 면적은 1.71㎢이며, 인구는 43가구에 총 88명으로 남자가 49명, 여자가 39명이다. 자연 마을로 백길 마을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봉 김씨(牛峰金氏)의 동성촌이었다. 마을 안에는 수령 약 450년 된 팽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암나무와 숫나무라 부른다.
당산제는 매해 음력 정월 대보름날 오전 10~11시에 마을 수호신인 고당 할매와 당산 할배에게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낸다. 당산 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옛날 뒷산 제당에서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갈 때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제주가 제물을 가져가면 산신이 불을 비추어 길을 밝혀 주며, 그렇지 않고 부정한 제주가 제물을 가져가면 산신이 길을 막기 위해 모래를 뿌린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 제주는 다시 집으로 내려와 목욕재계하여 정갈하게 한 후 다시 제물을 가져갔다 한다. 또한 고당 할매는 처녀이기에 총각이 헌관을 하면 좋아해 그해 마을의 운수가 길하게 된다고 한다.
마을 입구의 수나무와 암나무 고당할매와 당산할배로 불리워 지고 있다.
마을앞 팽나무는 태풍으로 인해 우측 가지가 꺽여져 나갔다. 사진 아래 좌측 2007년 우측 2016년
웅천리 소나무
웅천리(熊川里)의 옛 이름은 ‘웅계’이다. 우리말로 곰내라고도 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거문산 계곡에 곰이 살고 있어서 웅계(熊溪) 또는 곰내라 하였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한다.
웅천리 북쪽에 문래봉[507m]과 함박산[457m]을 잇는 산지가 뻗어 있고, 리의 동쪽 경계부에 함박산에서 아홉산[360m]으로 연결된 산줄기가 있다. 서쪽 경계부에는 거문산[543m]이 자리한다. 거문산과 문래봉 사이에서 발원한 소하천과 문래봉과 함박산 사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남쪽으로 흐르며 합류하여 철마천의 상류를 이룬다. 북서쪽에서 발원한 소하천 중류에 홍연 폭포가 있으며, 홍류동 소류지와 도덕곡 소류지가 축조되어 있다. 소하천이 철마천에 합류하는 주변은 비교적 넓은 평지를 이루어 농경지와 취락이 발달하였다.
마을[웅천리]은 임진왜란 이후 옥씨(玉氏)·정씨(丁氏)를 비롯하여 김해 김씨(金海金氏), 남평 문씨(南平文氏), 동래 정씨(東萊鄭氏)가 집단으로 정착,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소나무 노거수로부터 마을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곰내길을 따라 내려가면 만나게 된다.
웅천리의 중심인 중리마을에는 생각보다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마을 입구 삼거리에 의정(毅政) ‘김활경 공적비(金活更功績碑)’ 뒤로 조그마한 체육공원이 있고, 그 옆에 1974년 3월 산수회(山水會)에서 건립한 수리정(愁離亭) 표지석과 1977년 동지공(同知公) 후손 문성운(文盛運)·문덕수(文德守)가 건립한 정헌대부 동지중추부사 ‘문공 휘세명 집승유허비(文公諱世鳴集勝遺墟碑)’가 서 있다.
마을에는 또한 기장의 유명한 수리정(愁離亭)이 있다. 수리정의 본래 이름은 집승정(集勝亭)으로, 이 지역에서 대대로 세거해 온 남평 문씨 집안에서 처음 세웠다. 1689년(숙종 15) 이선(李選)이 이곳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이 정자에 오르면 온갖 근심과 시름을 떨쳐 버릴 수 있다 하여 수리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선은 이곳에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가사 등을 재정리하여 「송강 가사 이선본」을 집대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리정은 기장 지역 정자 문화의 효시이며, 17세기 영남 유학과 기호 유학의 만남의 장으로 기장의 선비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홍류동 계곡에 있는 문연정(文淵亭)은 남평 문씨 부사공파(府事公派) 파조 문여욱(文汝郁)의 학덕을 기리려고 1632년(인조 10)에 건립하였다. 그 후 1927년 후손인 문용호를 비롯한 지역 유림이 처음 수계를 한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근래에는 기장군 한시 연구회에서 해마다 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정관면은 기장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으로 장안읍, 서쪽으로 철마면과 양산시 동면(東面), 남쪽으로 일광면, 북쪽으로 양산시 웅상읍에 접한다. 북쪽에는 용천산(湧川山), 서쪽에는 백운산(白雲山), 남쪽에는 문래봉(文來峰)·달음산[月陰山]·천마산(天馬山) 등의 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들 산지 사이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소지류들이 면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좌광천으로 흘러들며, 하천연안에는 소규모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농공단지가 있으며 정관 신도시가 조성되어 있다.
예전부터 정관면과 철마면 일대를 소두방이라고 불렀는데 산지지형이 솥두껑을 엎어둔 모양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당시 소두방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정관면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1914년 기장군이 폐지되면서 하서면 월평·임곡 등 4개 리를 병합하고 정관면이라 한 뒤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동래군이 폐지됨에 따라 양산군이 되었다가 1986년에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동부출장소가 기장군으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면 소재지는 방곡리로 관내에 방곡(芳谷)·예림(禮林)·달산(達山)리 등 10개 법정리 지명이 있다.
예림리는 정관읍의 동쪽에 위치하여 북동쪽은 장안면 덕선리, 남동쪽은 일광면 원리, 서쪽은 달산리·방곡리와 접한다. 북쪽에 함박산[479m]을 중심으로 산지가 있고, 이곳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산간 분지에 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중류에 예림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소하천이 좌광천에 유입하는 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발달하여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농경지 일부는 정관 일반 산업 단지에 편입되어 농경지와 주거지, 공업 용지가 혼재되어 있다.
큰골과 범매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이던 김일개(金一介)·김일덕(金一德)·김일성(金一誠) 형제의 본향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조선 후기 기장현 하북면 예림방에 속하였으며,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는 지명을 확인할 수 없으나, 기장현 하북면에 예동리와 예서리가 있어 관내 자연 마을인 예림 마을과 서편 마을[예림 마을의 서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지명 유래는 명확하게 전하는 바가 없다. 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예절바르고 근면하여 송림이 울창한 곳이라 하여 지명을 예림이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팽나무가 있는 곳에는 할배 제당이 있고, 보호수 안내판과 예림 마을 할배 제당, 나무 지주, 편의 시설인 평상과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팽나무 머리 위로 신정관로가 지나며 예림 1교 교각 아래 위치 해 있다.
마을입구 대숲에도 큰 팽나무가 있다.
장안리로 가는 길, 부울고속도로 못미쳐 덕선마을 앞 지점이다.
하장안(下長安) 마을은 마을 북동쪽의 장안천 상류에 673년(문무왕 13) 창건된 장안사(長安寺)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안사로 가는 길 위쪽에 있는 마을은 상장안,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하장안으로 불렀다. 장안사가 있기 이전부터 장안이라는 명칭이 쓰였다고도 하나 기록상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확인 가능한 시기는 임진왜란 때이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14대조 김대현(金大鉉)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며, 묘와 비석이 남아 있다.
하장안 마을은 서쪽으로 장안천이 있으며, 북동쪽으로 해발 고도 약 425m의 삼각산이 있다. 삼각산을 삼신산으로 여겨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렸다고 한다. 마을의 서쪽 산기슭에는 철을 제련하던 곳으로 알려진 흙무더기가 있는데, 지금도 쇳물 찌꺼기가 나온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대룡 마을로 넘어가는 사기 고개가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과거 채봉을 하던 장소인 채봉골이 북으로 뻗어 좁은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
수령이 1,300년으로 추정되는 장안읍 느티나무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이다. 1978년 8월 12일 기장군에서는 장안읍 느티나무를 가장 먼저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1999년 12월 28일 산림청에서 '밀레니엄나무'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장안읍지』에 따르면 통일 신라 시대 원효(元曉)가 장안사 위쪽에 척판암을 지을 때 문무왕이 근처를 지나가다 심었다고 전한다.
또한 애장왕이 여기서 쉬어 갔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장안읍 느티나무는 하장안 마을의 당산 나무로 매해 음력 정월 14일 밤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자정[12시]과 음력 6월 14일 밤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제를 올린다. 현재 하장안 마을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순번제로 장안리 하장안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 당산제에 소요되는 경비는 달리 ‘제만돈’이라 칭하는데, 이는 마을의 각 가정으로부터 추렴하여 충당한다.마을의 이장과 부녀회장이 제를 주도하고 있다.
할매 제당은 1972년도 새마을 사업 때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고, 2011년 나무 주변에 데크를 설치하였다. 주변 논 일부에 연꽃 밭이 조성하였다가 최근 다시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용소리는 북동쪽으로 삼각산이 남동쪽으로 산줄기를 뻗고 있으며, 서쪽으로 뻗어 남서쪽 경계부에 있는 석은덤[544m]과 연결되며, 석은덤은 다시 남쪽으로 뻗은 줄기와 남동으로 뻗은 산줄기로 나뉜다. 이에 용소리는 높은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서쪽의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용소천을 이루며 남동쪽으로 흘러 남동쪽으로만 트여 있는 형태이다. 용소천이 흐르며 형성한 분지 곳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용소천은 기장군 기장읍 반룡리 일대에서 장안천에 합류한다.
마을입구에 1982년 11월 10일 기장군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가 있다. 이 팽나무[나무 둘레 4.6m, 높이 20m]는 수령이 340여 년으로 추정된다. 나무 옆에 할배당산이 있는데 년에 한번 마을 수호신인 당산 할배와 갓집 할매에게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한편 용소리 63번지 소재 팽나무는 특별한 신앙 대상이 없으며 독특한 명칭도 없는 없지만 이 또한 1982년 11월 10일 면 보호수 제2-16-2-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 다만 접근성이 쫗지 않고 차량의 교행이 어렵다. 큰차가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많다.
보호수 이래 두개의 소가 있는데 최근 익사 사고가 발생하여 군청에서 관리인을 파견하여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었다.
죽성리(竹城里)란 이름은 이곳에 신라시대의 토성이 있고, 그 아래에는 두모포 만호영의 성이 있는데다 또 임진왜란 때의 왜성이 있어 성(城)자를 붙이고, 대나무가 많아 죽(竹)을 붙여 지어진 이름이다. 해송이 자리한 두호마을은 과거에 둠뫼, 두매, 두모, 드매 등으로 불리었고, 송정 앞바다를 송호라고 부르던 것이 합하여 두호가 되었다. 마을 북쪽에는 원죽 마을, 남쪽에는 월전 마을이 있다 마을의 북서쪽으로는 기장 죽성리 왜성과 두모포진성이 있다. 마을 해안가에는 기장 오대(機張五臺)의 하나인 황학대(黃鶴臺)[원래는 송도(松島)였는데, 물량장 등의 건설로 주변 바다가 매립되며 육지가 되었다]와 어사암이 있다.
남서쪽으로는 봉대산[229m]이 있고, 봉대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마을의 서쪽으로 이어져 있다. 두호 마을의 북쪽으로는 죽성천이 동해로 유입하는 만입부이며, 동쪽은 바다 쪽으로 돌출된 만으로 큰거무섬, 작은거무섬, 큰연끝 등의 기암괴석이 발달한 암석 해안이다. 마을은 봉대산 꼭대기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산 능성이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부분에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두호 마을에는 당산 할배 제당[국수당, 또는 국시당이라고도 함], 골매기 할매 제당, 거릿대당의 세 제당이 있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죽성리 두호 당산제라 한다. 당산제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골매기 할매는 나씨(羅氏)로 추정되며, 이 분이 마을의 시조로 추앙되어 제만을 베풀었는데, 그 뒤 국수당을 지어 할아버지를 모시게 되었고, 70~80년 전에 마을 사람들의 합의 아래 거릿대당을 지어 거릿대장군을 모시게 되었다. 현존하는 제당들의 건립 연대는 당산 할배 제당과 거릿대당은 1933년, 골매기 할매 제당은 1989년이다. 당산 할배 제당은 마을에서 서쪽 뒷산의 산꼭대기에 있고, 골매기 할매 제당은 마을의 동북쪽 바닷가에 있으며, 거릿대당은 마을의 남쪽 월전으로 가는 길 위쪽에 있다
제의 날짜는 음력 정월 14일 밤 자정과 10월 14일 밤 자정으로 연 2회 제의를 지냈으나, 현재는 연 1회로 정월 보름날 정오에 제의를 지내고 있다. 제물의 종류와 진설 및 제의 절차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으나, 제물로 육고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제의는 골매기 할매제를 지낸 뒤 당산 할배제를 지내고, 이어서 거릿대제를 지내며, 마지막으로 어사암제를 지내는 순으로 진행한다. 어사암은 마을 앞 수중 바위로, 조선 시대에 활약한 이도재(李道宰)라는 암행어사가 이곳에서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이 바위에 깃든 「기장 죽성의 어사암」이라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사암에서의 제의가 끝나면 물밥을 하여 바다에 던져 넣는다. 골매기 할매에게는 제의 때 반드시 돈 1,000원을 제단에 얹고 제만을 지내며, 5년에 한 번씩 별신굿을 음력 정월 3일에 거행한다고 한다.
죽성리해송은 5그루의 나무가 모여 마치 한 그루의 큰 나무처럼 보이는 노거수로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해송 종류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빼어난 수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서낭당을 품고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더욱 신성하고 특별하게 여겨져 이곳에 오면 꼭 한 번씩 절을 한다고 한다. 실제 이곳은 400여 년 전 국가 기원제를 지내기 위해 세워진 국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국수대는 서해안과 이곳에만 있었던 것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던 곳이다. 해방이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날 당제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국수대는 국수당으로 불렸다.
국수대는 처음에는 돌무덤을 쌓고 그 주위에 여섯 그루의 곰솔을 심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5그루의 곰솔만이 남아 있고 돌무덤은 사라졌으며 대신에 당집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풍어제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서낭신을 모신 국수당이 있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국수당은 몇 차례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당산과 다른 점이 있는데, 매년 당제를 올릴 때마다 제당에 돈을 넣는다. 이러한 풍습에 대해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일대에서는 금정구와 이곳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라고 한다. 1997년 2월 4일 군 보호수로 지정받고, 2001년 5월 16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6그루였는데 태풍으로 1그루가 죽었다고 한다
효암리 살구나무
효암리(孝岩里)는 기장군 상북면 영역이던 차암동(車岩洞)과 울산군 외남효암리는 장안읍의 동쪽 끝에 위치해 북으로는 서생면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길천리, 남쪽으로는 고리와 접한다.면의 효열동(孝烈洞)을 병합한 리로 효열동의 효(孝)와 차암동의 암(岩) 자를 합친 지명이다. 2005년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1·2호기 공사가 착공되면서 주민이 이주하여 지명만 남아 있다.
1967년 고리-효암 항공사진
마을회관 앞에 살구나무 세그루가 있었다. 그 중 한 그루를 기장향교 옆 흙시루 음식점 사장이 이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고리 5.6호기가 지난 6월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위원장 김용환)는 23일 제57회 전체회의를 열고 2012년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출한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로서 고리일원 효암 서생지역에는 총 10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된다. 현재 신고리 3.4호기가 가동을 앞두고 있다. 세계최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 된 것이다. 1977년 고리1호기가 들어서고 지금까지 총 10기가 승인되는 과정에서 일대의 주민들은 소개되었다. 기장 교리 살구나무는 그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Hamabe no Uta -Song of the Sea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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