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는 탈성장 :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로 가는 안내서>(마티아스 슈멜처·안드레아 베티·아론 반신티안 지음, 김현우·이보아 옮김, 2023)ⓒ나름북스
마티아스 슈멜처(Matthias Schmelzer)
베를린에 기반을 둔 경제사학자이자 사회 이론가, 기후 운동가. 예나 프리드리히실러 대학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회 생태 네트워크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성장의 헤게모니The Hegemony of Growth』, 『운동(들) 속의 탈성장Degrowth in Movement(s)』이 있다.
안드레아 베터(Andrea Vetter)
탈성장, 커먼즈, 비판적 에코 페미니즘을 도구로 활용하는 변형 연구자이자 활동가, 저널리스트. 브라운슈바이크 조형예술대학에서 변형적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잡지 『Oya』의 편집자이며, 동독 지역의 예술, 학습 및 공동 창작을 위한 초지역적 농촌 공간인 ‘하우스 오브 체인지House of Change’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아론 반신티안(Aaron Vansintjan)
몬트리올에 거주하며 음식, 도시, 정치, 생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생태 정치 웹사이트인 Uneven Earth의 공동 창립자이며, 〈가디언〉, 〈브라이어패치 매거진Briarpatch Magazine〉, 〈레드 페퍼Red Pepper〉, 〈오픈 데모크라시Open Democracy〉, 〈더 에콜로지스트The Ecologist〉 등에 기고했다.
옮긴이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매진해왔다. 지금은 〈탈핵신문〉 이사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 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안토니오 그람시』, 『정의로운 전환』,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 다른 에너지』(공저), 『탈핵』(공저), 옮긴 책으로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GDP의 정치학』, 『적을수록 풍요롭다』(공역),『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공역), 『심층적응』(공역),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공역) 등이 있다.
옮긴이 이보아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코디네이터. 민주노총-민주노동당-토지와 도시정책-과학기술정책까지 다소 방만한 관심사를 오가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녹색당 창당에 뛰어들었다. 이후 녹색당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을 통해 밀양송전탑 반대투쟁에 참여했다. 탈원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공부를 시작해 윤석열 정부의 탈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는 현재, 밀양송전탑 반대투쟁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고 있다. 탈성장이 또 다른 골치 아픈 개념이 아니라 다중 실천의 연결고리가 되는 길을 찾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위험한 동거』(공저), 『밀양송전탑 반대투쟁 백서, 2005~2015』(공저),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공저) 등과, 옮긴 책으로 『비재현적 방법론: 연구를 재상상하기』(공역)가 있다.
[목 차]
머리말
1. 도입
2. 경제 성장
2.1. 아이디어로서의 성장
2.2.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성장
2.3. 물질적 과정으로서의 성장
2.4. 성장의 종언?
3. 성장 비판
3.1. 생태적 비판
3.2. 사회경제적 비판
3.3. 문화적 비판
3.4. 자본주의 비판
3.5. 페미니스트 비판
3.6. 산업주의 비판
3.7. 남반구-북반구 비판
3.8. 탈성장 논의 바깥에서의 성장 비판
3.9. 탈성장은 왜 다른가?
4. 탈성장의 비전
4.1. 탈성장의 조류
4.2. 탈성장 정의하기
4.3. 탈성장이 바람직한 이유
5. 탈성장으로 가는 경로
5.1. 민주화, 연대 경제, 커머닝
5.2. 사회보장, 재분배, 소득과 부의 상한 설정
5.3. 공생공락적이고 민주적인 기술
5.4. 노동의 재평가와 재분배
5.5. 사회적 신진대사의 민주화
5.6. 국제 연대
5.7. 탈성장이 실현 가능한 이유
6. 탈성장을 현실로 만들기
6.1. 나우토피아: 좋은 삶을 위한 자율적 공간과 실험실
6.2. 비개혁주의적 개혁: 제도와 정책 변화하기
6.3. 대항 헤게모니: 성장 패러다임에 대항하는 민중의 힘 구축하기
6.4. 위기 대면하기: ‘설계에 의한 탈성장인가, 재난에 의한 탈성장인가’를 넘어
6.5. 탈성장은 달성 가능한가?
7. 탈성장의 미래
7.1. 계급과 인종
7.2. 지정학과 제국주의
7.3. 정보통신기술
7.4. 민주적 계획
7.5. 탈성장: 포스트-자본주의로 향하는 미래지향적 경로
후주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탈성장 운동은 지금 어디에 있나
개념, 연구, 실천, 비판 등 현재진행형 탈성장 논의의 모든 것
기후 재앙, 대량 멸종, 팬데믹의 위협, 성장과 관련한 다양한 위기로 만성적인 비상사태가 전개되면서 탈성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인류의 삶보다 경제 성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현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보다 탈성장이 더 현실적인 제안이라고 여긴다. 이 책은 경제 성장에 대한 의문이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고,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다면서 탈성장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성장에 대한 비판이자 변혁을 위한 제안으로 체계화한다. 이를 위해 먼저 탈성장의 개념을 정의하고 탈성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표한 1972년, 프랑스에서 ‘탈성장’(데크루아상스)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으로 밀려났던 성장 비판은 2000년대 초반 다시 힘을 얻는다. 오늘날 ‘탈성장’은 성장 헤게모니를 비판하기 위해 학자와 활동가들이 점점 더 자주 동원하는 용어다.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었듯이, 이는 산업화된 국가의 추가적 경제 성장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성장이 지구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어느 시점 이후에는 삶의 질 향상에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정의한 탈성장은 “전 지구적 생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의 처리량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모두에게 좋은 삶과 사회 정의를 보장하는 사회로의 민주적 전환”이다.
탈성장 지지자들은 자연 파괴 없는 경제 성장은 환상이며, 산업국들이 생산과 소비를 공평하게 줄여야 한다고 본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성장, 자본주의, 산업주의에 비판적이라는 기본적인 합의가 있고 탈성장에 관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사회과학과 인문학 중심의 분석을 포함해 전면 탐구한 문헌은 그리 많지 않다. 탈성장 운동이 진보적이고 대체로 반자본주의적이라 해도 자본주의에 대한 명백한 비판적 관점에서 탈성장을 탐구하며 좌파의 더 광범위한 논쟁에 개입한 책은 더더욱 드물다. 이 책은 가부장제, 식민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지배 체제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직시한 독보적 저작이며, 수백 건의 탈성장 문헌을 인용해 탈성장이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미래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탈성장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는 탈성장이 경기 침체나 긴축을 강요하거나 필연적으로 경제 붕괴와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경기 침체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고 탈성장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다. 경기 침체는 불평등을 악화시키지만, 탈성장은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아마존을 집어삼킨 화재, 과거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원주민 학살과 같은 위기는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이미 재앙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충족, 돌봄, 정의에 기반한 다차원적 변혁의 조합인 탈성장이냐, 아니면 야만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즉 우리 앞에 다가와 있고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인 현실이 된 재앙을 피하기 위해 탈성장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탈성장이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위기다.”(p.35)
이외에도 저자들은 “현대성과 진보에 반한다”, “덜 가져야 한다며 좋은 것을 빼앗고 허리띠를 졸라매게 할 것이다”, “모든 유형의 생산과 소비를 전반적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지속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려면 성장이 필요하다”, “가난한 국가에서 탈성장은 불합리하다”, “탈성장은 사회적으로 쇠퇴한 후기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경향이다”라는 등의 탈성장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세밀하게 반박한다. 경제학자들이 침체를 문제로 여기는 이유는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오히려 끊임없는 경제 성장을 고수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를 저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장 이데올로기가 무너뜨린 오늘의 세계를 직시하기
자본주의의 기둥이자 기후 위기의 근원인 ‘성장’ 개념을 해체하다
탈성장을 알기 위해 다음으로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으로서의 성장을 분석한다. 이 책은 성장을 단순한 GDP의 증가가 아닌 사상이자 관념이고 사회 과정이며 물질 과정으로 서술했다. 점점 더 빠르게 우리를 낭떠러지로 몰아가며 수많은 자원을 폐기물과 배출물로 남기는, 자연에 대해 팽창하는 사회적 신진대사이자 가속, 확대, 강화의 힘을 서로 키우고 동적으로 안정화하는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성장을 다뤘다. 아울러 성장 이데올로기가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어 헤게모니를 쥐게 된 과정을 탐구하며, 성장이라는 가치가 어떻게 임노동을 비롯한 생산관계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 권력과 위계를 정당화하고 강요하게 되었는지 논의한다. 경제가 안정되려면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지배적 관념이 사회 갈등을 무마할 모종의 약속이 된 것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면 사상과 관념으로서의 성장 해체는 물론 광범위한 사회 동학의 측면에서 성장의 역할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탈성장 관점을 구성하는 여러 프레임워크를 한데 모아 성장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7가지 주요 형태로 정리해 제시한다. 이는 생태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반자본주의적, 페미니스트적, 반산업주의적, 남반구-북반구 비판이다. 각 입장에서 본 경제 성장으로 인한 해악들, 즉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 삶을 임의로 측정하고 평등을 저해하는 점, 일과 삶과 자연과 맺는 관계를 깨뜨리는 점, 착취와 축적을 가속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점, 재생산 노동을 폄하하고 여성, 특히 유색인종 여성과 토착민 여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점, 권위적인 생산력과 기술 발달로 다수를 소외시키는 점, 중심부와 변방 사이의 지배, 추출, 착취 관계에 의존하고 이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여러 문헌을 인용해 설명했다. 탈성장 논의 바깥에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는 성장 비판-보수주의자들, 녹색 파시즘, 반현대주의, 부자들의 환경주의도 덧붙여 소개했다.
탈성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식인 자본주의의 엔진을 멈출 구체적인 대안 경로
책의 후반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탈성장의 비전과 실현 방안을 탐구한다. 탈성장 스펙트럼 내에 존재하는 그룹을 제도 지향적 조류, 충족성 지향 조류, 커머닝 및 대안 경제의 조류, 페미니스트 조류, 포스트 자본주의와 대안 세계화의 조류로 분류한 후 탈성장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이는 1) 지구적 생태 정의를 가능하게 하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물질적 신진대사를 변화시켜 생산과 소비를 감소시킬 것 2) 사회 정의와 자기 결정을 강화하고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할 것 3) 제도와 인프라를 재설계하여 그것들의 작동이 성장과 끊임없는 확장에 의존하지 않게 할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1) 경제 민주화, 커먼즈 강화, 연대 기반 경제 및 경제 민주주의 2) 사회보장, 재분배, 소득과 부의 상한선 설정, 3) 공생공락적이고 민주적인 기술 4) 노동의 재분배와 재평가 5) 생산의 공평한 해체와 재구성 6) 국제 연대의 6대 변혁으로 나누어 정책들을 제안한다. 요약하면 탈성장 경제민주주의는 현재 소수에 집중돼 있는 경제력을 해체하고, 거시적 미시적 차원에서 국민이 경제적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적 대안을 평가한 에릭 올린 라이트의 기준에 따라 탈성장이 ‘바람직한가’, ‘현실성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면, 다음으로 ‘달성 가능한가’를 검토한다. 성장과 대결한다는 것은 현대의 주류 경제와 관련해 대부분을 재발명, 재창조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들 역시 이를 ‘어마어마한 도전’이자 ‘관계적 혁명’, ‘역사적인 세계 체제 전환’으로 보고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숙고한다.
첫 번째 전략은 ‘나우토피아’로 명명한 틈새 전략이다. 카탈루냐 통합 협동조합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제도, 인프라, 조직 형태의 실험을 소개하고 좋은 삶을 위한 자율적 공간에서 ‘탈성장 주체성’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두 번째 전략은 공생 전략인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킬 구체적인 개혁과 개선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사회 세력의 협력 형태를 만들고자 하며, 이는 전통적인 정치 시스템 안에서 이뤄진다. 기존의 구조와 규제에서 시작하지만, 목표는 자본주의적이고 성장 지향적인 생산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회 변혁을 체제 내부에서 시작해 체제와 함께 이행하려는 것은 구조적 한계에 끊임없이 직면하며 급진적 변화에 따른 파국의 공포를 키우는 대신 토론과 참여를 통해 제도를 바꾸고 이로써 사회의 동학을 크게 바꿔낼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체제를 만들어 가려면 세 번째 전략이자 단절 전략인 ‘대항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이는 성장 패러다임에 대항하는 민중의 힘을 구축하는 것이며, 급진적 변혁을 추동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수준에서 국가를 근본적으로 민주화하고 전유하는 조직화된 저항이다. 이 운동은 이민자, 노동자, 기후 및 인종적 정의뿐 아니라 반제국주의, 페미니즘, 반자본주의 운동과 긴밀한 동맹 맺기, 파업과 봉쇄 등 자본과 국가의 요구를 차단하거나 요구할 역량 구축하기, 연대와 협력, 운동 내 민주적 구조 수립으로 스스로 권력의 원천 만들기 등을 구성 요소로 삼는다. 탈성장 사회를 향한 변혁에는 이 세 전략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세 전략의 공통된 특징은 탈성장 지지자들이 ‘혁명 이후’의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변화를 꾀한다는 점이다.
“탈성장은 다양한 원칙과 아이디어가 담긴 하나의 초대장이며, 아직 우여곡절을 겪어보지 않은 길이다. 이 여정을 시작하려면, 생명을 위하고 자본주의적 성장에 반대하는 광범위하지만 통일된 ‘운동들의 운동’이 필요하며, 그래야 자신 있게 변혁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우리는 탈성장에 대한 비판과 제안의 핵심 관심사가 점점 더 많은 투쟁과 변혁적 실천으로 통합되기를 희망한다. 이 길을 따라가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의 궤적은 다르지 않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p.326-327)
책속으로
배를 흔들지 않는다면(성장과 축적의 힘이 꾸준히 전개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성장의 밀물이 모든 배를 들어 올릴 것이라고 들어왔다. 그러나 ‘존재와 관련된’ 수준의 생태적 위기에 직면해서는 그 반대가 더 정확해 보인다. 우리가 성장의 배를 흔들지 않고 비상 레버를 당기지 않는다면, 모든 하부 갑판이 곧 물에 잠길 것이다. 지금 당장 궤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장 자체가 사회를 자신의 궤도에서 격렬하게 내던질 때까지 계속해서 위기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55-56
본질적으로 GDP는 유급 고용을 통해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화폐적 가치만을 측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품과 서비스가 사회의 안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구분하지 못하고, 지불되지 않는 모든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또한 GDP 측정은 누가 어떤 일에 대해 급여를 받는지, 이것이 사회에서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는 가사노동과 돌봄, 자기 충족과 자급, 자원봉사, 토지 관리 등과 같은 무급 활동은 포함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가 증가하면 의료적 조치, 자동차 수리 등으로 인해 GDP가 증가할 수 있으며, 이것이 유급 노동으로 이어진다면 환경 파괴도 증가할 수 있다. 낭비성 포장재, 폐기되는 전자제품, 손상되어 수리 불가능한 장비의 생산 증가, 차량 공유와 같이 이전에는 돈으로 규제되지 않았던 사회 전체 영역의 화폐화도 모두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59
1970년대 이후 동시대의 성장은 사회적 수익의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경제적 산출은 웰빙의 비례적 증가로 해석되지 못한다. 성장의 과실이 대부분 소수의 글로벌 엘리트에게 집중되는 탓에 이러한 성장은 (아시아 일부를 제외하고) 더 많은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성장과 소비 지향적 라이프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훨씬 더 확연하게 파괴적인 생태적, 사회적 영향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끊임없는 성장이 이익이 발생하는 중심부에서 사회적 조건을 안정화하고 생산과 잉여의 재분배를 통해 자본과 노동 간의 모순을 중재할 능력이 있더라도, 이것이 중심부에서조차 많은 사람의 경제적 조건 악화와 함께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77
성장에 대한 생태적 비판은 이제 점점 더 일상적인 의식의 일부가 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다른 성장 비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즉 인간 삶의 생태적 기반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으려면 향후 몇 년 동안 경제의 물질적 흐름이 매우 빠르게 느려지고 감소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 성장과 함께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효율성과 일관성 외에 원료, 에너지, 토지 소비를 줄이면서도 웰빙의 기반을 제공하는 충족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 점을 더 강조하자면, 생태적 논의는 단지 한계와 포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정치 체제에서 사회-생태적 상호작용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물질적 요구와 행성적 경계, 즉 한계 내에서의 웰빙을 충족시키는 모두를 위한 충족성의 세계를 구축할 잠재력을 제공한다. 117
좋은 삶은 노동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서 소외를 극복하고 근절하는 것과 관련된다.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는 것은 여가 시간을 늘리고 유급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주로 남성에게만 해당하는데, 대다수 여성, 특히 돌봐야 할 자녀나 노인이 있는 여성은 어차피 ‘여가’ 시간 대부분을 돌봄 노동에 소비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일한다는 것은 돌봄 노동부터 물질적 기반 시설의 유지 관리, 식량 생산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종류의 일을 동등하게 분담하는 것이다. 169
최근 몇 년 사이 탈성장과 관련된 분석은 북반구 국가들의 생산과 생활 양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정의에 관한 논쟁은 산업화된 국가가 남반구 국가에 상당한 ‘기후 부채’를 지고 있다는 주장을 통해, 그리고 불균등 발전을 ‘생태적으로 불평등한 교환’이라는 틀로 재인식함으로써 불균등 발전에 대한 비판을 생태적 접근과 통합했다. 후자의 이론은 먼저 산업화된 경제가 가난한 나라로부터 생산 과정에서 오염을 유발하는 상품과 천연자원을 수입함으로써 생태적으로 유해한 산업의 영향을 피한 것이 불균등 발전의 조건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199
탈성장은 일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탈성장은 노동시간 단축을 강조하는 동시에 돌봄 활동을 재평가하며, 소외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자기 결정적이며 존엄한 일을 인간 삶의 중심 요소로 옹호하고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경제적 삶의 여러 측면에서 장인적 역량을 재숙련하는 것은 사회적, 생태적 이점이 많을 뿐 아니라 탈성장의 핵심 이슈가 된다. 275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라는 전통적인 문구는 지구의 생물물리학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다. “이미 세계를 잃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탈성장은 지금까지 실현된 적 없는 사회 변혁의 비전이다. 그것은 비상 브레이크를 밟아 자본주의와 성장 주도의 거대 기계에서 벗어남으로써,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사회를 변혁하는 의식적이고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과정이다. 이 도전의 엄청난 규모를 고려하면, 탈성장 전환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291-292
급진적인 개혁이 실제로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이고 필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좌파에서는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 모두 사회를 민주화하고 국가를 탈집중화하며 민중의 손에 권력이 쥐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다수의 사회주의자는 국가가 소멸하기 전에 먼저 국가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아나키스트는 국가 해체 없이는 필요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거시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국가에 의존하는 것이 일견 방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국가 자체가 위계질서, 권력 구조, 폭력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조치의 규모를 위해서는 강력한 행위자가 필요하고, 국가는 현재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행위자이며, 기후정의, 노동, 페미니즘, 탈식민 운동 모두를 위한 투쟁의 핵심 전장 중 하나다. 305
팬데믹으로 드러난 경찰 폭력, 구조적 인종차별, 인종주의적 ‘일회용품의 정치’에 반대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촉발되어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반인종주의 봉기가 일어났다. 팬데믹과 같은 위기의 순간은 우리에게 닥쳐오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며, 사회운동과 억압 세력의 신속한 동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분기점이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의 정치 프로젝트와 이를 확장하거나 축소함으로써 가능한 것의 지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계에 의한 탈성장인가, 재난에 의한 탈성장인가”는 탈성장 전환을 가져오는 데 있어 위기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는 주요 슬로건 중 하나가 되었다. 이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규모의 축소가 일어날 것임을 시사한다. 그것은 계획적이고 대체로 평화로울 수도 있고, 계획되지 않고 폭력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독자들은 탈성장이 의미하는 바가 전면적인 붕괴가 아님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319
'탈성장'과 '민주적 계획경제', 가능하며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의 책 <미래는 탈성장>을 중심으로
연말이면 으레 반복되는 행사 중 하나로, 여러 매체가 '올해의 책'을 뽑곤 한다. 이런 선정 목록을 볼 때마다 덩달아 나도 한 해 동안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신간을 꼽아보곤 하는데, 올해 번역서 가운데는 이 책을 맨 위로 올리고 싶다. 바로, 사회과학자이자 생태운동가들인 마티아스 슈멜처, 안드레아 베터, 아론 반신티안이 공저한 <미래는 탈성장: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로 가는 안내서>(김현우, 이보아 옮김, 나름북스, 2023)다.
이 책은 탈성장 논의에 관한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관련된 거의 모든 쟁점을 다 짚는데, 단지 얄팍하게 소개하는 수준이 아니다. 깊이 있게, 더구나 저자들의 독창적 시각까지 담아 정리한다. 그렇다고 여러 주제를 단순 나열하거나 번잡한 논의에 빠지지는 않는다. 결코 지루할 틈 없는 독서를 통해 독자가 자기도 모르게 탈성장 논의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든다. 그래서 탈성장에 이미 관심 있는 이들로 하여금 생각을 더 깊이 가다듬을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탈성장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경우는 오해와 편견을 불식하도록 돕는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건만, 그만큼 널리 알려지거나 회자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탈성장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기피 혹은 공포다. 어떤 언론사는 노골적으로 이 책을 신간 소개란에 다루길 거부했다는 후문은 이런 정황을 잘 말해준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기적적인 '성장'에 성공했다는 신화가 국교(國敎) 역할을 하는 사회에서 '탈성장'은 충분히 금기어가 될 만하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탈성장'은 과거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오늘날의 '페미니즘'에 이어 또 다른 마녀사냥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나 역시 탈성장의 충실한 신도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미래는 탈성장>을 읽었다면 '신도' 따위 표현은 쓰지 않을 것이다. 탈성장은 그런 식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확신에 가득 찬 탈성장론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녹색성장'론처럼 생태전환을 위해서도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에는 점점 더 동의하기 힘들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대로 경제성장 비판 논리에는 더욱더 마음을 열게 된다.
지금은 이런 고민과 회심(回心)이 집단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때다. 그러나 <미래는 탈성장>이 받는 대접에서도 얼핏 드러나듯이, 경제성장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의 일체에 대한 한국 사회의 거부감은 사뭇 완강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현 대한민국 헌법에서 그 단단한 뿌리를 발견한다.
현 헌법 119조보다 더 21세기에 어울리는 제헌헌법 84조
현행 헌법에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경제 질서의 기본 가치와 지향을 규정한 제119조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119조 2항에는 "경제의 민주화"라는 문구가 선명히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한다거나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는 '경제 민주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조항을 경제 민주주의를 추진할 유력한 근거로 들곤 하며, 많은 이들이 현 헌법에서 대표적인 '진보'적 내용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경제의 민주화"만큼이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인상적 단어가 있다. 바로 "성장"이다. 비록 "균형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는 있지만, 아무튼 "국민경제의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다. 국가는 무엇보다 먼저 성장을 추구해야 하며, 만약 성장과는 반대 방향에서 경제가 움직인다면 이는 헌법이 요구하는 바에 위배되는 셈이다. 좀 강하게 해석하면, 성장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이념 중 가장 우선적인 내용이다.
헌법이 아예 이렇게 되어 있으니, 한국 사회가 탈성장 같은 논의에 유독 거리를 두거나 귀를 닫는 것도 이해가 간다. 물론 헌법 안에 '성장'이 명기됐다고 하여 '탈성장'을 논의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제6공화국 질서의 근간이 되는 정신이 성장주의 비판론과 긴장을 빚거나 충돌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통해 군부독재 시기를 청산했다고 하나, 그때 비롯된 성장 숭배는 민주화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진다. 우리는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본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앞에 인용한 현 헌법 199조 2항은 실은 1987년 헌법 개정 과정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문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이전 헌법, 무엇보다도 그 첫 헌법인 제헌헌법에 '경제 민주화' 조항의 원형이 이미 담겨 있었다. 제헌헌법 제84조가 그것이다.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실은 '경제 민주주의'에 더 어울리는 것은 현 헌법 119조 2항이 아니라 이 제헌헌법 84조다. 이 조항은 대한민국 경제 질서의 근간이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에 대한 "존중"(현 헌법 119조 1항)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라 규정한다. 경쟁의 승리자 혹은 승리가 유력한 자들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사회정의가 경제 이념임을 못 박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야깃거리이지만, 일단은 '성장'에 더 주목해 보자. 제헌헌법 84조에는 '성장'이란 말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단지 '발전'이 있을 뿐이다. 현 헌법 119조 2항의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이라는 문구 대신 제헌헌법 84조에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 등장한다.
아마도 시대 배경 탓일 것이다. 제헌헌법을 제정하던 1940년대 말에는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에도 아직 '성장'이라는 용어가 정착되기 전이다. 제헌헌법 84조에 담긴 '발전'은 사회 발전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관념이 20세기 중반 이후 성장 신화에 완전히 종속되기 전 상황을 반영한다. 반면에 제6공화국 헌법 작성자들에게 사회 발전이란 이미 경제의 양적 성장 외에 다른 무엇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에 처음으로 ('경제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성장'을 새겨 넣었다.
'발전'은 양적 성장 일변도의 경제 질서나 관념을 비판한 뒤에도 중요하게 다뤄야 할 가치이자 지향이다.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성장주의 비판은 자본주의의 무한 성장과 지구라는 한계가 빚는 모순을 처음 발견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주목한 것은 경제의 양적 성장과 인간-사회 발전 목표 사이의 불일치였다. 그래서 GDP를 대체하려는 다양한 인간-사회 발전 지표들이 개발되었으며,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요소가 부상한 현재도 이런 대안적 발전 목표의 달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21세기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에 더 어울리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1987년에 제정된 현 헌법보다는 오히려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 쪽이다. 현 헌법 119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경제 질서의 근간을 규정했던 제헌헌법 84조는 지금 우리가 신자유주의 이후의 경제 대안을 모색하면서 반드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과거 속의 미래'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 – 사회발전과 탄소제로 목표를 통해 교정되는 시장경제 회계
이것은 결코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다. <미래는 탈성장>은 "탈성장의 미래"라는 제목이 붙은 마지막 장에서 탈성장론이 더 고민해야 할 쟁점들이 무엇인지 밝힌다. 그 가운데에는 '민주적 계획'도 있다. 시장만능주의가 지배하던 신자유주의 시기를 겪어온 우리에게 '계획'이란 말은 너무 낯설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통해 성장 신화를 실현한 나라인데도 그러하다. 그래서 지구 한계에 맞게 경제 활동을 조절하려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타진해 봐야 한다는 <미래는 탈성장>의 신중한 제안조차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제헌헌법 84조가 제시하는 가치와 지향에다, 기후위기에 따라 급박하게 제기되는 탈탄소 목표를 더해 생각을 굴려보면, '계획'이 의외로 낯설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우선은, 계획과 시장을 대립시키고 계획을 '시장의 폐지'와 등치시킨 20세기의 특정한 경제계획관을 떨쳐버려야 한다. 목표는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 경우에 계획은 시장의 대립물이기는커녕 특정한 시장경제를 조성하기 위한 일련의 제도들이다.
계획이 개입되지 않은 시장경제에서는 오직 하나의 회계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가격과, 이로부터 파생된 수입과 지출, 수익과 저축 같은 요소들로 이뤄진 회계다. 이 회계에 따라 개인과 기업이 벌이는 활동이 측정되고 평가받으며, 국가의 예결산과 정책 평가 역시 이에 종속된다. 이 세계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의 이야기들은 드러나지만(이것조차 정말 그런지는 재검토되어야 하지만),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의 이야기들은 알아채기 힘들다. 더구나 오염 물질 배출을 필사적으로 줄여가는 이야기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계획이란, 이러한 시장경제 회계를 그 바깥의 두 측정-평가 체계와 대조함으로써 시장경제 회계에 드러나는 이야기들만이 아닌 다양한 다른 이야기들에 따라 경제 활동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간-사회 발전을 기준으로 한 측정-평가 체계와, 탄소 배출량을 비롯한 지구 한계에 대한 영향을 기준으로 한 측정-평가 체계에 따라 시장경제 회계에서 수익과 성과로 기록된 것들을 재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시장경제 회로에서 벗어나 이 재평가 결과에 따라 보상과 책임, 자원 투입과 새로운 투자를 재조정해야 한다.
만약 인간-사회 발전 지표와 지구 한계에 대한 영향 지표가 시장 가격 지표만큼이나 복잡하게 진화해 있다면, 개인과 여러 집단이 제출한 정보를 슈퍼컴퓨터의 연산 과정에 투입하기만 하면 계획이 순조롭게 입안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그 정도로 성숙한 대안 지표가 아직 없다. 오랫동안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경험하면서 가격 체계에 맞춰 사회가 진화해온 것과 마찬가지로(비록 그 시간은 더 짧아질 수 있더라도), 대안 지표들이 발전하려면 일정한 진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계획의 중심 원리로서 민주주의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부터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모두 활용한 참여와 숙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인간-사회 발전의 다양한 기준을 잡고 지구 한계에 대한 영향의 허용치를 정해야 한다. 한 차례 토론하고 합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새롭게 반응하고, 인간 활동에 대한 지구의 반작용 또한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한다.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시민들은 이런 변동에 맞춰 끊임없이 각각의 측정-평가 과정을 다시 설계하고 기준을 새로 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진화해 가는 대안적 측정-평가 체계에 따라 시장경제의 성공과 실패를 재평가함으로써 시장경제 역시 특정한 방향으로 진화해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복합위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민주적 계획'의 골간이다. 이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을 처음 만들 때에 합의한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목표와, 앞으로 헌법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할 "기후위기에 맞선 생태적 전환"이라는 목표에 현 경제 질서를 대면시키려는 노력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험난한 격동의 시대에 이것보다 더 "경제의 민주화"에 부합하는 집단적 생존 방책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기적의 나라 한국, 경기침체냐? 계획된 탈성장이냐의 갈림길
[초록發光] 경제 성장할수록 기후위기와 불평등 심각?
1990년대까지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2021년,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선진국 대열에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당시 외교부는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된 사례는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57년 역사상 한국이 처음이라며 "우리나라는 '무역은 경제발전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명시한 UNCTAD 설립문서의 비전을 몸소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라고 자찬했다.
한국은 경제지표만 보면 기적의 나라라 할 만하다.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연평균 4%대)은 줄었지만, 경제규모(GDP)는 20여 년 동안 2.6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코로나19 시기를 겪었던 최근 5년간 GDP 연평균 증가율은 2.3%로 감소했다.
한국 경제 양적 성장…국민 삶의 질은?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한 만큼 국민 삶의 질은 나아졌을까. 국가 간 삶의 질을 측정해 비교할 수 있는 국제 지표로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 개발 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4개(기대수명과 기대교육년수, 평균교육년수, 1인당 국민총소득) 지표로 작성된 인간 개발 지수 측면에서는 세계 188개 국가 중 18위, OECD 38개 국가 중 1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의 지수는 OECD 41개 국가 중 32위로 하위권인데, 11개 영역 중 시민참여(2위), 주거(7위), 교육(11위)은 상위권이나, 건강(37위), 공동체(38위), 환경(38위) 등의 영역은 지극히 낮은 편이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의 삶의 만족도 순위는 147개 국가 중 59위, OECD 38개 국가 중에서는 36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도 통계청 통계개발원에서 매년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국민 삶의 질 지표는 국내적 상황과 국제적인 웰빙 측정 동향을 고려해 구축되었다. 보고서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 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 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며,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출산율과 급속한 노령화, 높은 자살률 등 사회전반의 활력이 약화되고 있고, 이념적 갈등, 상대적 빈곤, 노사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기존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에서 삶의 질 제고로의 정책적 관심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제언했다.
출산율 꼴찌, 고령화 속도·자살률 1위
한국의 출산율은 2004년부터 16년째 OECD 국가 중 꼴찌를 유지하고 있고,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 수준이며 독거노인 비율은 2000년 16%에서 2022년에는 20.8%로 늘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자살률은 10만 명당 25.4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국가 중 5번째로 길고, 저임금노동자(중위소득의 3분의 2 미달)의 비율은 매우 큰 편에 속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16.0%로, 미국(23.8%), 캐나다(18.7%), 영국(18.0%)보다 낮은 편이나 일본(10.9%)보다 높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의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10% 미만으로 낮다.
국민의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누어 산출하는 1인당 실질국민총소득은 2000년 이후 지속 증가했지만, 최근 2018년 이후 증가율이 낮아져서 2020년에는 전년 대비 0.1% 증가에 그쳤다. 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2008년 138.5%에서 2021년 206.5%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에 해당하는 가구의 비율)은 15.3%로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이다.
미세먼지 농도 1위, 탄소배출 10위, 재생E 꼴찌
환경 측면에서는 2020년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25㎍/㎥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1차에너지 공급량은 세계 9위인데 석유(4위)와 천연가스(6위), 석탄(4위)을 수입하면서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5%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10위, 누적배출량은 16위를 기록 중이다.
반면에 2021년 전체 에너지 대비 재생에너지 공급량 비중은 2.1%,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6.3%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주요 선진국(수력 비중 높은 국가 제외)의 재생에너지 공급량과 발전량 비중은 미국(8.0%, 20.3%), 일본(7.1%, 21.1%), 영국(12.6%, 41.1%), 독일(15.6%, 40.5%), 이탈리아(18.5%, 41.1%), 스페인(16.7%, 46.6%)으로 한국과의 격차가 상당하다.
2023년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은 8월 2일이었다. 이날은 해당 연도의 생태자원 및 서비스에 대한 인류의 수요가 그 해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는 날을 뜻한다. 1년 동안 사용할 자원을 8월 2일에 모두 써버렸다는 의미다. 한국의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4월 2일로 10번째로 빨랐다. 한국은 1년 동안 사용할 자원을 91일 만에 다 써버린 셈이다. 모든 인류가 한국처럼 자원을 사용하면 지구가 3.85개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5도 제한 위한 탄소예산 6년치 남아…기후행동 '태부족'
인류가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 상승으로 제한하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탄소예산)이 올해를 포함해 6년 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1.5도 목표를 지키려면 지금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 2035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의 2차 저지선인 '2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의 기후행동은 태부족인 상태다. 최근 발표된 '기후 행동 현황 2023(State of Climate Action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데 필요한 42개 지표 중 41개 지표는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궤도에 올라서지 못했고, 기후 행동 속도가 태부족인 지표는 24개, 역주행한 지표는 6개에 달했다.
보고서를 보면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비중이 2030년까지 57~78%까지 높아져야 하고 탈석탄(7배)과 전력 생산 탄소집약도(9배), 건물 운영 탄소 집약도(4배), 대중교통 인프라(6배) 등의 속도가 대폭 빨라져야 한다. 반면에 개인승용차로 이동하는 비율과 세계 철강 생산의 집약도,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역주행하는 지표들을 빠르게 줄여야 한다.
경제위기 앞에 기후위기와 삶의 질 문제는 뒷전?
전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갔고 한국 경제도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건전재정이 문제이고 경제가 아닌 재정위기라고 평가하면서 경제성장률을 "최소 3%로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경제위기 앞에 기후 위기와 불평등, 삶의 질 문제는 다시 뒷전이 되는 모양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기후 위기와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삶의 질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2018년 정책입안자와 연구자, 과학자 238명은 유럽의회에 GDP 성장을 포기하는 대신 인간의 행복과 생태적 안정성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2019년에는 153개 국가의 1만 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세계 각국 정부에 "GDP 성장과 과잉에서 벗어나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하고 좋은 삶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의회는 올해 5월 '성장을 넘어(Beyond Growth) 2023 콘퍼런스'를 열었다. 콘퍼런스에서는 인류가 계속 번영하려면 성장 이외의 방식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로 제시됐고. 인류 존속을 위한 탈성장(degrowth)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한국에서도 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위한 논의 필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인 한국에서 성장 너머(탈성장)의 다양한 대안을 찾는 논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인 탈성장 논의를 다룬 논문과 서적의 번역서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고 최근엔 한 신문사가 '성장을 넘어-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국제 포럼을 개최해 탈성장을 다루기도 했다.
탈성장은 에너지와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줄이고 경제 규모를 축소하면서도 더 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고, 이 과정은 지속 가능하고 평등해야 한다. 정부 예산을 논의하듯이 늘려야 하는 부분(재생에너지, 대중교통, 공공 제로에너지 주택 등)과 줄여야 하는 것들(화석연료, 내연기관차 SUV, 호화주택 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자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번역된 <미래는 탈성장-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로 가는 안내서>는 탈성장의 비전을 넘어 탈성장으로 가는 경로, 탈성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탐구하고 있다. 탈성장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는 탈성장이 경기 침체나 긴축을 강요하거나 필연적으로 경제 붕괴와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경기 침체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고 탈성장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다. 경기 침체는 불평등을 악화시키지만, 탈성장은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
탈성장이 무엇인지, 바람직한지, 현실적인지, 달성 가능한지를 논의할 수 있게 해주는 친절한 안내서이며 초대장인 이 책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 프레시안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에릭 올린 라이트 저/유강은 역 | 이매진 | 2020년 07월
원제 : How to Be an Anticapitalist in the 21st Century(2019)
에릭 올린 라이트 (Erik Olin Wright)-사회학자. 마르크스주의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위스콘신 주립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서 22년 동안 사회학을 가르쳤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았고, 2012년에 미국사회학회 회장을 맡았다. 분석마르크스주의 세미나 그룹과 《뉴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에서 활동하면서 계급 분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현실적 유토피아 프로젝트(Real Utopia Project)’를 이끌며 대안적 정치경제 체제를 연구했다. 2019년 1월 13일, 열 달 동안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맞서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낙관주의자이자 현실적인 유토피아주의자였다.
목차
서문
1장 왜 반자본주의자인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근거
규범적 토대
평등/공정|민주주의/자유|공동체/연대
2장 자본주의, 진단과 비판
평등/공정
계급과 착취|경쟁과 위험성|파괴적인 경제 성장
민주주의/자유
공동체/연대
회의론
3장 반자본주의의 갈래들
전략적 논리
자본주의 분쇄하기|자본주의 해체하기|자본주의 길들이기|자본주의에 저항하기|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전략적 지형
자본주의 잠식하기
4장 자본주의를 넘어선 종착지 ― 경제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권력 중심 사회주의 개념
민주사회주의 경제의 구성 요소
조건 없는 기본 소득|협동적 시장 경제|사회/연대 경제|자본주의 기업의 민주화|공익사업이 된 은행
비시장 경제 조직
재화와 서비스의 국가 공급|피투피 방식 협력 생산|지식 공유재
다시 전략 문제로
5장 반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 국가의 문제
국가의 내적 모순|모순적이고 경합하는 기능성
전망
국가의 민주화
민주적 권한을 통한 탈집중화|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민주적 대표를 위한 새로운 기관|선거에 적용되는 게임 규칙의 민주화
6장 변혁의 주체들
자본주의를 잠식하기 위한 집합적 행위자들
집합적 행위의 문제
‘행위’ 개념|정체성|이해관계|가치
정체성과 이해관계, 가치에서 집합적 행위자로
사유화된 삶의 극복|파편화된 계급 구조|경쟁하는 정체성의 원천들
현실 정치
마이클 부라보이가 쓴 후기
출판사 리뷰
현실적 유토피아 ―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들의 구체적 환상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의 대안은 없다고 선언될 때, 라이트는 자본주의의 틈새에 자리잡은 제도적 형태 중에서 자본주의하고 불화하는 요소들을 바탕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경제 프로그램을 기획해 현실적 유토피아를 실현하려 한다. 라이트는 자동 붕괴와 국가 계획에 기대는 ‘파괴적 단절 변혁’ 대신에 ‘공생적 변혁’과 ‘틈새 변혁’을 선호한다. 공생적 변혁은 자본주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 양보를 통해 사회주의의 씨앗을 뿌리는 개혁주의의 길을 가리키는데, 스웨덴식 계급 타협, 보편적 기본 소득, 참여 예산, 일터 민주주의 등을 포함한다. 틈새 변혁은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 협동조합이나 피투피 협력, 도서관과 위키피디아 같은 대안적 제도를 발전시키는 길을 말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는 간결하고 예리한 언어를 사용해 ‘유토피아 없는 계급 분석’에서 ‘계급 분석 없는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길을 정리하고, 다른 세상의 구성 요소들이 지금 여기 자본주의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반자본주의의 전략적 논리를 제시한다. 역효과가 많고 실행 불가능한 ‘자본주의 분쇄하기’를 거부하는 한편, 좌파 정당이 집권해 사회주의 요소들을 도입하는 ‘자본주의 해체하기’, 자본주의의 폐해를 중화하는 ‘자본주의 길들이기’, 국가 외부의 사회운동들이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체계 바깥에서 소규모 대안 공동체를 꾸리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모두 결합한 ‘자본주의 잠식하기’는 민주적 숙의와 참여적 실험을 통합해 민주사회주의를 향한 민주적 이행을 시작하는 전략이다. 라이트에게 사회주의의 본질은 민주주의인 셈이다.
평등, 민주주의, 연대 ― 실행 가능한 반자본주의의 기획의 토대들
특유의 낙관주의와 두려움 없는 현실주의는 라이트의 전매특허다. 라이트는 민주사회주의로 가는 길에서 특정한 주체를 확정하는 대신 투쟁의 조건을 분석한다. 사유화된 삶, 파편화된 계급 구조, 경쟁하는 정체성에 갇힌 계급은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싸움을 추동하는 도덕적 전망은 평등/공정, 민주주의/자유, 공동체/연대라는 가치로 구성된다. 그래야 연대를 벼릴 수 있는 정체성들, 현실적 목표로 이어지는 이해관계, 다양한 정체성을 가로지르는 정치적 통일을 창출해 정당부터 풀뿌리 공동체까지 포괄하는 다원적이고 실행 가능한 반자본주의를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기본 생존을 보장받고, 행복한 삶에 필요한 수단에 다가갈 ‘동등한 접근권’을 갖고, 자기 삶을 좌우하는 결정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마거릿 대처는 1980년대 초에 대안은 없다고 공언한 일로 유명하다. 20년 뒤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근본적인 쟁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첫째, 다른 세상은 정말로 가능하다. 둘째, 다른 세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간 행복(human flourishing)의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다. 셋째, 이 새로운 세상의 요소들은 오늘날의 세상에서 이미 창조되는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는 길이 있다. 반자본주의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해악과 불의를 바라보는 도덕적 관점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또한 인간 행복을 증진시키는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현실적인 관점으로 가능하다.
--- p.21~22
자본주의는 반자본주의자를 낳는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때라면 언제나 이런저런 형태의 불만과 저항이 생겨난다. 24
계급의식은 당신이 울타리 어느 쪽에 있는지를 아는 것, 계급 분석은 당신 옆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 25
세계가 울타리 양쪽 편에 자리한 두 계급만으로 구성된다면, 반자본주의를 오로지 계급적 이해관계 측면에만 고정시키는 정도로 충분하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기본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봤다. 계급 구조 내부에 복잡성이 자리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장기적 동학은 자본주의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쪽으로 이해관계를 뚜렷하게 양분하는 경향을 띠게 돼 있었다. 이런 세계에서 계급 의식은 주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일부 계급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희생시키면서 다른 계급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지를 이해하는 문제였다. 일단 노동자들이 이 현상을 이해하면 자본주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적 부정의와 도덕적 결함의 측면에서 자본주의를 향한 체계적 비판을 발전시킬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26
계급적 이해의 복잡성 때문에 언제나 울타리의 어느 한쪽 편에 분명하게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이들이 기꺼이 반자본주의 구상을 지지할지 말지는 문제가 되는 다른 종류의 가치에 어느 정도 좌우된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전략이 실행 가능하려면 그런 이들이 보내는 지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계급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여러 가치를 중심으로 연합을 형성하는 문제가 관건이 된다. 27
행복한 삶이란 사람이 능력과 재능을 발전시켜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삶이며, 따라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기의 잠재력과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삶이다. 어떤 사람의 건강과 신체 상태를 생각하면,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행복한 삶이란 단순히 병이 없다는 의미를 넘어서며, 세상에서 정력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신체적 활력이라는 긍정적인 의미 또한 담겨 있다. 32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사회적 수단은 물질적 수단보다 복잡하며, 이런 사회적 수단의 목록을 작성하면 논쟁적인 항목들이 거의 확실하게 포함될 듯하다. 나는 적어도 다음 같은 항목을 포함시키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부르는 일에 연결된 의미 있고 성취감을 주는 활동, 친밀성과 사회적 연결, 자기 삶을 의미 있게 통제한다는 뜻을 지닌 자율성, 사회적 존중이나 몇몇 철학자가 말하는 사회적 인정.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외모, 종교, 언어, 종족, 그 밖의 개인의 두드러진 속성에 연결된 사회적 낙인은 행복을 위한 물질적 수단에 다가갈 접근권을 여러 모로 가로막을 뿐 아니라 인간 행복 자체를 방해한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에 필요한 이런 사회적 조건에 다가갈 동등한 접근권을 누린다. 34
문제가 되는 결정이 내게, 오직 나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다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자유 또는 자유권이라고 부른다. 누구의 허가도 받을 필요 없이,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지만 문제가 되는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 사람들 또한 그 결정의 당사자가 되거나 또는 적어도 자기가 참여하지 않은 채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동의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고 강제적인 규칙을 부과하는 결정이 특히 중요하다. 국가가 내리는 결정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그런 결정에는 규칙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결정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38
실제로 한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결정과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결정의 참가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사회가 이렇게 포괄적인 민주적 참여로 나아가려 한다면 엄청난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유의 맥락과 민주주의의 맥락 사이에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경계를 규정하는 일련의 규칙이 필요하다. 이 규칙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경계다. 사적 영역에서는 개인이 자기가 한 행동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민주적 참여를 수반할 필요 없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는 반면, 공적 영역에서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결정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참여를 권유받는다. 39
사람들이 동료 시민의 안녕에는 상대적으로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정치가 전적으로 이익 집단만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사회 세계에서도 확실히 정치적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민주주의의 질은 상당히 얇을 가능성이 높고, 공공선과 폭넓은 합의의 모색에 관해 진지한 공적 숙의를 진행할 공간도 적게 마련이다. 43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자유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부유한 사람은 거리낌없이 임금 노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 반면 독립적인 생계 수단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은 그렇게 쉽게 고용을 거부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의 가치로서 자유는 단순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보다 깊이 나아간다. 자유는 또한 자기의 인생 계획에 따라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에게서 진정한 자유를 박탈한다. 풍요 한가운데에 있는 가난은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 향하는 동등한 접근권을 사람들에게서 앗아갈 뿐 아니라 자결권에 필요한 자원에 다가갈 접근권도 앗아간다. 58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자본주의의 반민주적 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를테면 공과 사의 경직된 경계를 잠식하기 위해 갖가지 방식으로 사적 투자에 공적 제약을 부과할 수 있고, 강력한 공공 부문과 적극적인 공적 투자로 자본 이동의 위협을 누그러트릴 수 있으며, 선거에서 개인 재산을 사용하는 범위를 제한하고 정치 캠페인에 다양한 형태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부유층이 정치 권력에 특권적으로 접근하는 폐해를 줄일 수 있고, 노동법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집합적 권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일터의 지배 구조에서 일정한 구실을 부여받는 노동자 협의회를 의무화하는 등 일터 안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으며, 폭넓은 복지국가 정책을 통해 사적 재산에 다가갈 접근권이 없는 사람들의 진정한 자유를 증대할 수 있다. 정치적 조건이 제대로 갖춰진다면, 반민주적이고 자유에 방해가 되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길들일 수는 있다. 59
사유화된 소비주의는 공공재와 집단적 소비를 개인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과 삶의 질에서 중요한 구성 요소로 보기보다는 개인적 소비의 축소로 간주한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사적인 소비에 몰두하면 경쟁적 개인주의에 연결된 요소인 타인의 안녕에 관한 상대적 무관심이 더욱 강해진다. 63
자본주의를 향한 도덕적 비판은 평등/공정, 민주주의/자유, 공동체/연대 등 세 가지 가치군에 바탕을 둔다. 자본주의는 특정한 면에서 제한된 형태더라도 이런 가치들을 장려한다고 간주될 수 있지만, 이 가치들이 최대한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하게 체계적으로 방해한다. 자본주의는 부정의한 형태의 경제적 불평등을 창출하고 영속화하며, 일부의 자유를 거대하게 향상시키는 한편 다수의 자유를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폭을 줄이며, 집합적 복지보다 개인의 경쟁적 성공을 지지하는 문화적 이상을 조성한다.
--- p.64~65
자본주의의 세계화 때문에 자볹주의 기업들은 규제가 덜하고 노동력이 값싼 세계 여러 곳으로 투자를 이동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기술과 인구에서 일어난 다양한 변화에 나란히 이런 자본 이동의 위협 때문에 노동 운동이 파편화되고 약해졌으며, 그 결과 저항과 정치적 동원 능력이 떨어졌다. 자본의 금융화도 세계화와 결합하면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엄청나게 커지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런 불평등은 다시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반대하는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자본주의는 길들여지기는커녕 점점 속박에서 풀려나고 있다.85
자본주의에 저항하기는 이 체제의 폐해를 누그러트리려 하면서도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기 보다는 시위를 비롯해 국가 외부에서 벌이는 여러 형태의 저항을 통해 자본가들과 정치 엘리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변혁하지는 못하더라도 문제를 일으키고 시위를 벌이고 엘리트들이 자기가 한 행동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을 높임으로써 자본주의의 폐해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는 있다. 이 전략은 독성 폐기물과 환경을 파괴하는 발전 산업에 항의하는 환경론자들, 약탈적 대기업에 맞서 불매 운동을 조직하는 소비자 운동, 이민자, 빈민, 성 소수자의 권리를 지키는 운동권 변호사 등 다양한 부류의 많은 풀뿌리 활동가들이 추구한다. 또한 임금을 올리고 노동 조건을 고치려 파업을 조직하는 노동조합이 기본적으로 구사하는 전략적 논리이기도 하다. 88
일반적으로 볼 때 자발적이고 소박한 '라이프 스타일'은 자본주의 내부의 소비주의와 경제 성장을 향한 집착을 거부하는 폭넓은 흐름에 기여하기도 한다. 92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 복잡한 체제 내부의 여러 공간과 틈새에서 가능한 곳마다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참여적인 경제 관계를 건설하는 길이다. 자본주의 잠식하기라는 개념은 이 대안들이 장기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충분히 두드러지게 돼 결국 이 체제에서 자본주의의 지배적 구실을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상상한다. 101
하나의 전략적 전망으로서 자본주의 잠식하기는 매혹적이면서도 억지스럽다. 이 전략이 매혹적인 이유는 국가가 사회 정의와 해방적 사회 변화의 진전에 아주 적합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낡은 세계의 잿더미 위가 아니라 그 세계의 틈새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 또한 내가 '현실적 유토피아'라고 이름 붙인 장소들, 곧 여전히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해방적 종착지의 조각들을 건설할 수 있다. 이 전략이 억지스러운 이유는 자본주의자가 지배하는 경제 안에서 아무리 해방적 경제 공간을 축적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대기업이 거대한 권력과 부를 갖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본주의 시장의 순조로운 기능에 생계를 의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자본주의를 정말로 잠식하고 대체하기란 참으로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 비자본주의적인 해방적 형태의 경제 활동과 관계가 자본주의의 지배력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증대하지 않는다면, 이런 활동과 관계는 분쇄되고 만다. 105
시장은 자본주의 경제뿐 아니라 실행 가능한 어떤 국가주의나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일정한 구실을 한다. 문제는 시장이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권력들이 어떻게 시장 내부에서 탈집중화된 교환의 작동을 실현하는지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시장에 순응하는 민주주의를 호소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에 순응하는 시장, 곧 사실상 민주적 권력의 행사에 종속되는 시장 경제가 필요하다. 117
협동조합은 지리적으로 뿌리를 두기 때문에 협동조합에 투자된 자본도 이동성이 한결 적은 만큼 국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움직일 가능성이 적다. 시장 지향적 기업이 모두 그렇듯이 협동조합도 이윤에 영향을 주는 몇몇 규제에 반대할 수 있지만, 국각 관할권을 벗어나겠다고 위협하면서 그런 규제를 봉쇄할 가능성은 덜하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국가를 통해 정식화되는 민주적 우선 과제에 한결 쉽게 종속된다.125
민주사회주의 경제는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 생산과 다양한 형태의 비시장 생산의 상대적 범위, 또는 협동조합과 그 밖의 시장 지향적 기업 형태의 상대적 비중에 관련해 다양한 모습을 띨 수 있다.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이 소득 재분배의 핵심 기제일 수 있지만, 또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일자리’가 노동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생계를 보장하는 기본적인 방법이 되는 한편으로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필요에 근거한 소득 이전 프로그램으로 생계를 제공하는 사회적 지형을 상상할 수 있다.--- p.145
자본주의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은 세 가지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첫째, 주변화 때문에 생겨나는 불평등과 빈곤이 가져오는 최악의 효과를 완화함으로써 사회안정에 기여한다. 둘째,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재량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일자리의 자기 창조라는 또 다른 소득 창출 노동의 모델을 뒷받침한다. 167
하나의 생산 체제로서 자본주의 기업들의 자동화는 본질적으로 생산되는 제품을 살 만한 사람들을 충분히 고용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은 폭넓게 분산된 기본적인 소비재 수요를 제공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은 자본가 엘리트들에게도 매력적인 정책 선택지가 될 수 있다. 168
정체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한 가지 방식은 사회적 투쟁이 발휘하는 효과를 거치는 경험이다. 사회운동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집합 행동에 참여하는 생생한 경험은 자기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생각하는 개인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 196
자본주의를 잠식하려면 국가를 활용해서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누적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 경제 관계의 핵심 측면들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외부에서 벌이는 항의 시위와 동원은 몇몇 국가 정책을 막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게임 규칙을 진보적인 방식으로 확실히 바꾸는 데는 그것 자체로 효과적이지 않다. 이런 변화를 달성하려면 필요한 입법을 통과시키고 새로운 게임 규칙을 실행할 수 있는 정당과 외부의 항의 시위를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선거 정치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 p.211~212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모든 사회 공간이 자본주의에 지배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에는 틈새와 균열이 존재하며, 사회주의의 맹아가 자리한다.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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