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터줏대감 나무 스토리텔링 구축 기초조사를 나섰다. 작가회의 박정애시인과 전다현시인이 조사원으로 동참했다. 이후 5~6차례 부산 전지역을 답사할 예정이다. 이날 일정은 어떻게 보면 두분 시인에게 조사작업 현장교육차원이라 할 수 있다. 조사의 배경과 목적 방법을 공유히고 동구부터 시작했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좌천동 증산공원 옥천사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햇살이 응달에 위치한 옥천사의 마당을 서서히 뎊힐 때 였다. 그러나 방문의 목적이었던 엄나무가 보이지 읺았다.
사라진 것이다.
2년 전 이맘때 이곳을 찾았을 때 반겨주던 엄나무는 베어져 담벼락 한귀퉁이에 쉬고 있었다.
엄나무는 친근한 나무지만 이 정도 굵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엄나무는 엄나무"는 수령 350년, 수고 23m, 나무둘레 4.2m의 충북 보은군 탄지면 성지리 엄나무다. 보은군 보호수 제8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보다 오래된 수령의 엄나무는 경남 창원 사림동 경남문화원 창원의집에 있는 수령 500년의 엄나무다.
음나무( Kalopanax pictus)는 두릅나무과에 속한 낙엽교목으로 가지에 가시가 많아 귀신의 침입을 막아준다는 속설이 있어 주택에서 키우고 있으며, 개두릅이라고 하여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또한 옻을 대신하여 닭백숙 요리에 넣기도 하는데 관절염, 당뇨병, 신장병, 암, 피부병 등에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록색의 꽃은 7~8월경에 새 가지에서 산형꽃차례로 무리져 피고, 10월경에 둥그런 검은색 열매가 달린다. 나무는 다루기가 쉬워 널판을 얻을 수 있어 합판, 가구, 악기를 만드는 재료로 쓰고 있다.
2014년 옥천사 엄나무는 발견 당시 추정 수령 150년 수고 9m 흉고 (둘레) 2m 였다. 주지스님은 나무의 보호를 위해 관할 구청에 보호수 신청을 했지만 엄나무는 보호대상종이 아니라고 해서 수용되지 못했고, 작은사찰에서 지속적 관리할 수 있는 여력이 적었다고 했다. 나무의 고사는 앞서 있었던 모스님이 소각을 하며 불길이 나무로 번졌고 그로인해 상처를 입은 엄나무가 병이 들었고, 이후 외고수술을 시도했지만 더는 연명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편 옥천사에는 독립운동가 소천 최천택의 묘가 있다. 화장 후 이곳으로 모신것이라 했고 사찰은 일제 때 중건했다고 했다. 최천택 (1886~1962)
(蘇庭) 최천택 (1886~1962) 부산지역 항일 독립투쟁사에 거의 매번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 구금과 구속 기록만 무려 54회에 이르고 늘 일제 경찰의 미행이 따라붙던 '부산의 요시찰 인물 1호.'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부산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운의 독립투사'.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 모순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의 생애가 천만 관객 돌파를 눈 앞에 둔 영화 '암살'의 흥행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최천택은 평생의 지음(知音)이었던 의열단원 박재혁과 함께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된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천택은 1886년 6월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이 일제에 의해 '위험 인물 1호'로 지목된 것은 1920년 의열단원 박재혁과 함께 모의한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 때문이다. 부산공립상업학교 동기동창으로 선생과 의형제 결의를 맺은 박재혁은 그해 9월 6일 상해에서 의열단 단백(團伯) 김원봉으로부터 비밀 지령을 받는다.
선생의 장남 최철(76·부산 해운대구 중동) 씨는 "선친께서 '대륙 침탈의 첨병기지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일제의 통치 근간인 부산경찰서를 거사 대상으로 삼자'고 제안하셨다"며 "일제에게 발각될 것을 우려해 폭탄은 당시 수영에 살던 당숙모 할머니께 맡겼고, 할머니는 일본인들이 한국의 장 냄새를 유독 싫어한다는 것에 착안, 된장 독 깊숙이 폭탄을 숨기셨다"고 말했다.
거사 당일인 9월 14일 고서를 파는 중국인으로 가장한 박재혁은 헌 궤짝에다 폭탄을 넣고 그 위에 중국 고서적을 덮어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橋本秀平)와 대면했다. 최천택은 경찰서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 경찰서가 있던 광복동 일대가 흔들릴 만큼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폭파 충격으로 경찰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고 하시모토 서장은 중상을 입었다. 박재혁도 중상을 입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의열단이 최초로 성공시킨 거사로 기록된 이 사건에 일제는 마치 자신들의 심장부에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혼비백산했다.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혹독한 고문과 상처로 고통을 겪던 박재혁은 "왜놈의 손에 욕보지 않고 차라리 내손으로 죽겠다"며 단식에 들어갔고, 9일 후 옥사해 순국했다. 박재혁의 '단독 거사' 주장으로 풀려난 선생은 이후 부산청년연맹 위원과 신간회 부산지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과 구금, 구속 생활을 이어가다 경찰서 안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좌익계로 분류돼 육군 특무대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1961년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육군형무소에서 수 개월간 복역하고 풀려났다. 형무소에서의 후유증 때문인지 선생은 1962년 11월 67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선생은 2003년이 돼서야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을 받았다.
최 씨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 비통해하던 선친은 휴전선에 남·북한 주민이 함께 장을 볼 수 있는 시장을 개설하자고 주장하신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셨다"며 "통일 없이는 제대로된 해방이 아니라고 설파하신 선친의 유훈대로 어서 빨리 남북 통일의 염원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부산일보 15.8.14)
부산민주공원 들머리에 있는 선생의 기념비 2009.3.5건립
부산 동구 좌천동 옥성사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독립운동가 최천택 선생의 묘비를 절 관계자가 둘러보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13.8.13
해양대 김승 교수는 일제강점기 부산이 민족운동 주요 거점으 하나로 자리잡은 데에는 타 지역에서 유입된 이주 활동가와 지역 토박이 토착활동가의 연대가 잘 이루어진 덕분이었다. 이 시기 부산지역 민족운동의 지도자로서 비타협 민족주의 운동을 상징하는 두 인물이 백산 안희제와 소정 최천택라고 한다. 이주 활동가인 백산 안희제가 선진적인 사상과 운동을 부산에 접목하며 전국적인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부산에 접속시켰다면, 부산에서 자생적으로 생장한 민족운동을 대변하는 토박이 활동가 최천택은 부산 지역 안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결집하고 나아가 이주활동가들과 결합하여 민족운동을 넓고 깊게 착근하는 역할을 하였다 고
이바구길 지도에는 그의 묘소가 있는 옥천사는 없다. 누락일까 그나마 최천택의 길은 명명되어 있어 섭섭함은 지우겠다. 소정의 묘가 이곳에 있는 배경이 공유되기를 희망해 본다.
옥천사를 기억하는 일은 독립운동가 최천택을 통해 다시 연결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없다. 다만 엄나무와 이웃하여 지내던 사철나무의 건강함에 위안을 받았다.
두번째로 향한 곳은 수정5동 수성초등학교 옆 팽나무다. 이 팽나무는 볼 때마다 안스럽다.
추정수령 80~100 수고 8m 흉고 2.4m
악착같이 살아내고 있었다. 열악한 생육조건이지만 나 반드시 살아 남겠어 기필코 성공하겠어 라며 해마다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나무와 더불어 사는 주민들도 이래저래 고통이 많다.
열정이 많은 분들이라 앞 서 옥천사 상황에 이어 노거수의 처한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 보니 조사자가 아니고 그만 노거수의 식구가 되어 이래서는 안되니 저래서는 안되니 로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무와 더불어 사는 주민이 공감하던 문제이기에 ...
그나저나 양단간에 판단이 서야 한다. 팽나무는 살아 있고 그래서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데, 이웃하여 사는 사람들은 이해는 다르다. 다행이라고 한 것은 문 두드려 동거중인 주민의 이야기를 듣자니 해결 방법이 전무한 것도 아니었다,
초량2동 당산 팽나무 준보호수 대열에 드는 나무다.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지만 생육조건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다
복병산 팽나무를 만나러 간다
일제 식민지배, 참 그늘이 넓다. 혼과 얼 조차 빼앗긴 세월 지금은 뭔가 비교 된다. 나는 곧잘 이 전 시대의 흔적에 대해 막무가내로 지우고자 하는 것에 대해 그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편이다. 역사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에 대해서는 엄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복병산 상수시설 마찬가지다. 우리가 뒤돌아 볼 수 있는 역사는 이런 시설물이 남아 있음으로서 명료해진다.
중구 중구청 옆 복병산 숲은 사람의 간섭에 100% 노춝돤 숲이다. 그 역사는 오래됐다. 그 숲이 스스로 치유하고 있음을 본다
그히 작은 면적이자만 인공과 자연 호복이 이루어ㅏ지고 있는 현장 중에 하나가 복병산이다
상수리나무 한 구루 충실하게 살고 있다
박정애 시인과 전다형 시인 두분다 한국 작가회의 소속 시인으로 내공이 있는 분들이다. 흔케이 조사원으로 동참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 바정애 시인의 경우 인연맺은지가 이래저래 오래 된다 절친의 누나 친구였고 전시인은 고향 까마귀 임을 최근 확인했다,. 앞으로 두 시인과 더불어 스토리 조사를 할 것이다
두 시인에게 보여주고자 한 현장 중이 하나가 복병산 팽나무다. 원래 동남구 영도러 이어지는 동선이었는대 중구로 오게 되었다.
중구에는 노거수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뮤방하다 존재하던 노거수 조차 개발집단 또는 어떤 성과주의 치적을 바라는 부류에 의해 뿌리자체를 옮겨야 했다. 안타깝다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그 중 한 그루만 살아 남아 해운대 석대로 이식되었다. '개발집단 또는 어떤 성과주의 치적을 바라는 '이라는 부류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하겠다. 좀더 사실 관계 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복병산 팽나무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 정도의 팽나무가 보여주는 외형 치고는 다소 외소하다. 상대적적일까 앞서 수정동 팽나무와 처지를 비교하면 훨씬 나은 조건임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 분서할 일이다
복병산 산책로를 돌아 나오니 미쳐 보지 못했던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중구청 담벼락에 키를 올리고 있는 멀구슬나무였다.
마침 구골나무와 흰 애기동백, 팔손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계절 꽃을 피우는 나무들의 꽃이 붉고 노란 색이 있지만 유난히 흰 색이 많은 것은
일반적으로 꽃의 색깔과 향기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이다.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곤충의 도움을 받아 번식해야 하는데 곤충마다 좋아하는 색깔과 향기가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꽃은 자기가 원하는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색깔과 향기를 만들었다는것이 살식인데 겨울에는 계절적 차이가 있다. 다시말해 겨울철에 화동하는 곤충은 거의 없다. 적어도 합반도 기후를 고려하지면
남구로 동선을 바꾼다 첫 방문지 용당동 신선대 주유소 공용주차장 내 팽나무
없다
저렇게 있어야 하는데 ... 주변 사람들은 왜 사라졌는지 묻는말에 말끝을 흐렸다.
용당 팽나무는 장소성의 특수성을 꼽을 수있다. 주변에 맨흙이 있을리 없는 컨테이너 적치장에다 시내버스들의 차고지 한 귀퉁이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보호의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어 팽나무는 사라졌을까
2014년 위성지도에도 팽나무는 뚜렷히 포착되고 있다.
문득 이런 광경을 또 얼마나 목도해야 할까 두려워 진다.
유엔기념공원 내 수양버들, 공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추정한다. 선택의 이유는 죽은 병사들의 사연과 일대의 변화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경대 해송 군락
백경동산이라 부르는 곳이다
일전에 발견했던 나무들이다.
A 나무 근원부 3.0 흉고 2.3 기부 2 수관 7.5/ 14
B 나무 3.15 2.7 1.5 18.7/ 20.5
B해송의 경우 침식과 답압 등에 의해 근원부의 뿌리근이 심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일대의 큰 해송들이 가지는 평균 흉고는 2m 대였다 학교담장 넘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용소 소나무와 같은 계열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부경대 최고의 산증인이다. 그렇지만 이 역사를 부경대는 외면해왔던 것 같다.
그 옆 해송과 팽나무의 연리지, 살아 남는다는 것
Anna German - Stenka Raz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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