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by 이성근 2017. 10. 1.



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글 호프 자런|그림 신혜우|역자 김희정|알마 |2017


저자 호프 자런Hope Jahren1969년 미네소타 오스틴에서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조지아 공과대학과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했다. 풀프라이트 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로, 2005년에는 젊고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받았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하와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화석삼림 연구를 왕성하게 수행했다. 식물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 랩걸을 통해 작가로서의 재능 또한 인정받았다. 2016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녀는 현재 오슬로 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린이 신혜우는 현재 식물분류학자의 길을 가고 있으며 식물세밀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3년과 2014, 영국 왕립원예협회로부터 식물세밀화 금메달과 최고전시상을 연속 수상했다.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하게 식물세밀화 전시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 과학을 기반으로 그린 세밀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롤로그

1부 뿌리와 이파리

2부 나무와 옹이

3부 꽃과 열매

에필로그

감사의 말

덧붙이는 말

 

 

출판사 서평

 

과학은 차갑고 딱딱한 무기물이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과학, 사랑을 담은 랩걸만의 연구.

 

저자 호프 자런은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조지아 공과대학과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현재는 하와이 대학교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05년에는 가장 뛰어난 지구물리학자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받았으며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더없이 안정된 경력의 그녀에게도 글을 쓰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해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흔히들 생각하는 알파걸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한 번의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백 번 실패하는 모습, 기다림과 끈기로 버티는 평범한 연구실의 24시간을 세밀화처럼 그려냈다. 여성이기에 겪는 편견과 장벽은 또 어떤가. 전문성과 객관성,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세계에서조차 성별을 이유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력의 가치가 폄하되는 장면에 이르면 독자의 마음 또한 타들어간다. 그러나 저자가 그리는 것은 그 속에서 맛보는 달콤한 환희이다.

 

작가는 자신의 실험실을 이렇게 묘사한다. “내 실험실은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 내가 해내고 있는 일들로 대체되는 곳이다. 부모님께 전화하지 않은 것, 아직 납부하지 못한 신용카드 고지서, 씻지 않고 쌓아둔 접시들, 면도하지 않은 다리 같은 것들은 숭고한 발견을 위해 실험실에서 하는 작업들과 비교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이 된다.”(본문 35페이지) 작가에게 실험실은 단순한 연구 장소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담은 이자 교회’, ‘글을 쓰는 곳으로서 소중한 보금자리인 것이다.

 

나무가 가르쳐주는 삶의 과학,

숲이 건네는 연대의 이야기를 듣다.

 

저자가 이토록 실험실에서 열을 올리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식물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다. 처음부터 식물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식물 분야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가 아니던가. 필요한 연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녀는 실험실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살아내는 와중에 식물을 돌본다. “두 시간 작업하면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실험을 완수하는 데 4일이 걸렸고, 완벽하게 완수하는 데는 8일이 걸렸다. 게다가 이 모든 실험실 작업을 날마다 수백 개의 식물에 물과 비료를 주고, 변화를 기록하는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해내야 했다.”(본문 41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몸을 해칠 정도로 무섭게 연구에 몰두한다. 이런 그녀의 열정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 숨을 가쁘게 한다.

 

저자 호프 자런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싹을 틔운 식물은 헤매지 않는다. 싹을 틔우기까지가 식물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황이다. 그다음부터는 시들어 꺾이는 순간까지 꾸준히 나아가는 일뿐이다. 물줄기를 향해 적극적으로 뿌리를 뻗고, 태양을 향해 이파리를 흔들며, 몸을 단단히 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때로는 병충해를 앓고 거센 바람에 몸이 다치면서도 상처를 고스란히 나이테에 간직한 채 식물은 성장을 거듭한다. 숲의 특성상 힘세고 높이 자란 나무가 혜택을 받겠지만, 때로는 호되게 병충해를 앓은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전하기도 하고, 근처의 어린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모아주기도 한다. 호프 자런은 과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씨앗이 한 그루의 성목이 되는 과정은 물론, 나무들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비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실 비밀이라기보다는 눈 밝은 누구나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어떤 신비에 가깝다.


랩걸에서 호프 자런은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아는 것을 전하는 데에 집중한다. 저마다의 생존 방식에 대해, 떡갈나무에게는 떡갈나무의 방법이 있고, 칡과 쇠뜨기에게는 그들만의 삶이 있다고 다정다감하고도 발랄하게 이야기한다. 다른 이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살고, 숲을 이루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무감각하게 자연을 소비하고 파괴하며 잊었던 생명성을 일깨운다. 호프 자런은 자신의 아픈 이야기마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녀를 괴롭혀온 조울증과,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실험실에서 쫓겨났을 때의 절망,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으리라는 불안.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고 다시 실험실로 향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과 가족 및 동료와의 신뢰, 아이와의 조심스러운 교감이었다.

 

저자 호프 자런은 랩걸을 통해 전문 분야에서 여성이 경력을 이어갈 때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유리천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코 과장하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일과 여성 과학자로서 견뎌야 하는 시선에 대해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녀는 여러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여성이 겪어야 하는 편견과 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며,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 다른 나무를 돕는 든든한 큰 나무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하고 있다.

 

 

책속으로

시간은 나, 내 나무에 대한 나의 눈, 그리고 내 나무가 자신을 보는 눈에 대한 나의 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 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 p.49

 

인간의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이 작은 씨앗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작은 식물의 열망이 어느 실험실 안에서 활짝 피었다. 그 연꽃은 지금 어디 있을까.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 p.52

 

나는 여자 교수들과 과에서 일하는 여성 비서들은 학계의 천적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거들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정말 큰일 날 일이지만 적어도 또다른 여자 교수 한 명보다는 나은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그렇게 24시간 일만 해서는 출산 후에 빼야 할 살을 절대 못 뺄 절박한 운명에 처해 있었다. --- p.185

 

모두의 얼굴에는 이제 내게 익숙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 여자가? 그럴 리가. 뭔가 실수가 있었겠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 p.262

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꽃가루 단 한 톨이다. 씨 하나가 나무 한 그루로 자랄 수 있다. 나무 하나는 매년 수십만 송이의 꽃을 피운다. 꽃 한 송이는 수십만 개의 꽃가루를 만들어낸다. 성공적인 식물의 생식은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한번 일어나면 초신성에 버금가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 p.290

 

과학은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또 하루가 밝고, 이번 주가 다음 주가 되고, 이번 달이 다음 달이 되는 동안 내내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숲과 푸르른 세상 위에 빛나는 어제와 같은 밝은 태양의 따사로움을 느끼지만 마음속 깊이에서는 내가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오히려 개미에 가깝다. 단 한 개의 죽은 침엽수 이파리를 하나하나 찾아서 등에 지고 숲을 건너 거대한 더미에 보태는 개미 말이다. 그 더미는 너무도 커서 내가 상상력을 아무리 펼쳐도 작은 한구석밖에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 --- p.397

 

우주에서 본 지구는 해마다 조금씩 녹색이 줄어가고 있다. 컨디션이 나쁜 날이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전 지구적인 문제들이 악화되고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 즉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손들을 황폐한 폐허에 남겨두고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더 병들고, 굶주리고, 전쟁에 시달리고, 심지어 녹색이 주는 소박한 위안마저도 박탈당한 채 사는 세상을 남기고 떠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이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 p.400



사람의 눈으로 식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슬프고 괴로울 때마다 나는 우주를 생각했다. 머나먼 우주로 나를 보내버려서 이 넓고 광활한 우주에서 나와 내 마음이 얼마나 티끌 같은지 생각하다 보면 조금씩 감정이 무뎌졌다.

 

그것만으로 부족할 땐, 처절한 심정을 세포 단위로 쪼개어 내 몸과 마음은 모두 세포들의 작용일 뿐이라고 되뇌기도 했다. 날마다 죽고 태어나는 수만 개의 세포가 나를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이 감정 역시 결국 수만의 세포들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외로움도 절망도 사그러지는 것 같았다.

우주나 세포 같은 세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해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매일 만나고 대화하는 인간관계의 총체가 아니라, 내가 가진 한 줌의 사회적 지위나 통장 잔액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의 세계가 있다는 것 말이다.

 

그 세계 속에 나와 다르게, 또는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다는 건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일이다. <랩걸>이 들려주는 식물과 식물학자의 이야기가 딱 그렇다.

 

<랩걸>은 식물학자 호프 자런이 쓴 에세이로, 그녀와 그녀의 동료 ''이 함께 식물을 연구하며 지나온 20년의 삶의 자취를 담고 있다.

 

제목은 '랩걸'이지만 이 두 사람의 연구는 대학 건물의 오래된 골방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미국 전역, 아일랜드, 때로는 지구 반대편에까지 확장된다. 흙을 삽으로 퍼내고 이끼의 표본을 채취하면서 식물의 생존 방식과 성장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 호프 자런의 일이다.

 

기초 학문에 야박한 연구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전쟁에 쓰일 폭발물을 연구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폭발물 실험으로 타낸 연구 지원금으로 그녀는 '일주일에 40시간은 폭발물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또 다른 40시간은 곁가지로 진행하는 식물학 실험에 바치겠다는 기만적인 계획'(40)을 세운다.

 

식물학만으로는 지원금을 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면서도 그녀는 이 연구실과 그녀의 동료 빌의 월급을 위해 계속 연구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연인도, 친구도 아닌 그 이상의 대안적 관계

빌과 호프의 관계는 상당히 독특하다. 이 두 사람은 연인도 아니고 일반적인 친구 관계도 아니다. 명시적으로는 빌이 호프의 연구를 돕는 연구실 조수지만 그건 순전히 돈이 얽힌 계약에서만 그렇고, 빌과 호프는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가치와 학문, 그 이상의 경험을 공유하는 삶의 동반자다.

 

정말 위험했던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빌이 우울에 찌든 목소리로 '함께 일하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하자 호프는 빌에게 '우리는 친구잖아, 아니야?'라고 묻는다. 빌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야 (..) 너랑 나랑은 어딘지도 모르는 데서 길을 잃은 불쌍한 바보들이야. (...) 그러니 입 닥치고 잠이나 자."

 

이 둘의 관계는 그들이 연구하는 식물과 빼다 닮았다. 다음 문장은 빌과 호프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어떤 말벌은 무화과나무 꽃 밖에서는 번식하지 못한다. 이 무화과꽃은 또 말벌의 도움이 없이는 수정하지 못한다. (...) 이 두 유기체들(말벌과 무화과)은 이런 관계를 거의 9천만 년 동안 유지해오면서 (...) 함께 진화해왔다."(289)

 

출산, 육아 그리고 과학계에 만연한 성차별에도 호프가 지치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것, 그러면서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던 배경에는 빌이 있다. 빌은 호프에게 성별 잣대를 들이대며 그녀의 연구 성과를 축소하지 않고, 단지 상사일 뿐이라며 자본의 관계로 선 긋지도 않는다.

 

호프 역시 빌을 밴에 사는 괴상한 히피라고 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빌의 능력과 성품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구천만 년까진 아니더라도, 이십 년이 넘도록 이들은 말벌과 무화과처럼 함께 하며 서로의 진화를 돕는 관계를 이어 나간다. 빌과 호프는 자본이나 성, 인맥의 영역이 아닌 그 이상의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세상의 끝에서 그는 끝이 없는 대낮에 춤을 췄고, 나는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였다."(287)

 

이들이 하는 연구와 이들의 사랑은 다르지 않다. 식물이 그렇듯이 이들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서로 다른 생명체의 이야기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책

원래 나는 식물 서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씨앗이 발아하여 나무가 되는 이야기는 너무 고리타분한 성장 서사 같았다. 역경을 견뎌라, 갈대처럼 흔들려라,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서 있는 나무처럼... 사람들이 식물을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혁명이 아니라 끈질긴 인내와 희생이었다.

 

하지만 <랩걸>에 쓰여진 식물은 이와 판이하다. 곤충이 누르면 튕기는 이파리(책에서는 이를 벌레에게 꿀을 먹이고 엉덩이를 툭 쳐서 날려보낸다고 표현한다), 스스로 팔을 휘두르는 식물(비록 아주 아주 느린 속도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완전히 같은 나무... 인간이 식물을 성장의 대명사로 쓰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 없이, 식물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그들만의 법칙을 개발하면서 생존하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훨씬 더 좋았다. 모두가 공유하는 자연 원리란 없으며 그러니 모두가 하나의 '옳은' 방식으로 살아가지는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렸다. 이 책을 다룬 한 기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식물은 우리와 달라요. 저는 수십 년 동안 식물을 연구한 뒤 깨달았어요. 식물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과) 공통점이 있긴 합니다. 빛을 향해 자란다는 거죠."

 

<랩걸>은 사람과 식물이 '함께' 빛을 향하는 책이다. 식물 이야기와 호프의 삶이 서로의 서사를 지탱하되 섣불리 어느 한 쪽의 메타포로 흡수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생명체의 이야기가 서로 '직권 남용'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 <랩걸>만이 선사하는 독특한 평화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17.8.9 오마이뉴스 조경숙

 

나무의 비밀을 밝힌 여성 과학자

도서관에서 <랩걸>을 빌리려고 보니 대출 예약자가 2명이나 있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유명한 저자도 아닌데 과학책이 이렇게 인기가 있다면 품질은 보증된 셈, 당장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에 마음이 맑아진다. 글쓴이는 나무 연구로 일가를 이룬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 사랑하면 닮는다고, 그녀의 글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쓰임이 많은 나무처럼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잘 읽히는 문장이지만 천천히 읽는다. ‘랩걸(Lab Girl)’이라는 짧은 제목에서도 여러 의미가 읽힐 만큼 담긴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도 많아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빠의 실험실을 동경하던 소녀가 자신의 실험실을 가진 과학자로 커가는 랩걸 성장 스토리다. 여성 과학자에 대해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녀가 가난과 불안, 불면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자기 이름을 단 실험실을 이루는 이야기는 뿌듯하면서도 아프다. 용도는 다르지만 나도 자기만의 방을 꿈꾸었기에 그녀가 내 실험실은 창문이 필요 없는 하나의 우주라며 그곳에선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 해내고 있는 일들로 대체된다고 말할 때 깊이 공감했고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질투는 아니다. 이 우주를 위해 자런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불이 꺼지지 않는 실험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셋이다. 자런과 그녀를 돕는 남자 주인공 빌, 신비에 싸인 미스터리한 주인공 나무.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무를 연구하는 일이 수십m의 땅을 파고, 수천를 운전하고, 수십의 장비를 나르는 막노동인 줄은 미처 몰랐거니와, 더욱 놀라운 건 그렇게 온몸을 바쳐 알아낸 나무의 비밀이다. 나무에 달린 수많은 이파리가 다 다르다는 것도, 거기서 만들어진 당이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도, 팽나무 씨앗 속에 보석이 숨어 있다는 것도, 발 달린 사람이 공간을 여행할 때 한 자리에 붙박인 나무는 시간을 여행한다는 것도 모두 처음 알았다. 더구나 직접 당을 생산해 자급자족하고 상처가 나면 소독약을 만들어 자가치료를 할 뿐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곤충은 병들게 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능력까지 가졌다니,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 이 과묵한 존재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하랴.

 

그러나 나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대신 식물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폄하한다. 남성 과학자들이 눈에 선 여성 과학자를 두고 저 여자애가 과학자라고?” 하며 무시하는 것처럼. 자런은 자신을 동료 과학자가 아니라 랩걸로 보는 그들의 시선에 상처받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과 마찬가지로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쉼 없이 나아가 식물이 세계를 바꿨듯 과학계를 변화시킬 따름이다. 비록 크고 강대한 그 세계에 비하면 아주 작은 변화지만 희망은 또한 사소함에서 시작하는 법. 해서 그녀는 조용히 무너져내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1년에 나무 한 그루를 심자고 말한다. 너무 사소하다고? 우리 발밑에서 떡잎이 하는 일을 보라. 지금은 떡잎에게 배울 때다. 17.6.13 주간경향 1230<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리스트>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 임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