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 -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
레이첼 서스만 (지은이),김승진 (옮긴이)윌북2020-07
레이첼 서스만 (Rachel Sussman)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현대 예술가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에 사진과 글을 기고해왔으며 TED와 롱나우 재단에서 <The Oldest Living Things in the World> 강연으로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맥도웰 콜로니와 뉴욕 필름 아카데미의 석학 회원이며 구겐하임 펠로십을 수상했고 앨 고어의 기후 변화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서스만의 사진은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들과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그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며 세상을 바꿀 예술가로 평가되고 있다
목차
1. 서문: 우리가 아는 세상
2. 에세이 I
3. 에세이 II
4. 생물 위치 지도
5. 들어가는 글
6. 북아메리카
7. 린네의 분류표
8. 남아메리카
9. 유럽
10. ‘심원한 시간’의 연표
11. 아시아
12. 아프리카
13. 호주
14. 남극
15. 생장 전략
16. 아직 가지 않은 길
17. 감사의 말
18. 연구자들, 안내인들, 손님들, 그리고 “조금씩 헤치고 나아가는” 방법
19. 용어 설명
20. 찾아보기
책속에서
존 브록만은 매년 석학들에게 ‘엣지 질문’을 던지는데, 2013년의 엣지 질문은 ‘우리가 마땅히 걱정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였다. 나는 ‘소멸’이라고 대답했다. 세계화로 인한 사회, 문화, 언어 다양성의 소멸처럼 오늘날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소멸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소멸은 현재 생태계가 심각하게 겪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동물종과 식물종의 소멸은 매일, 매시간 일어난다.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의 소멸, 심지어는 인간종 자체의 소멸 가능성도 점점 더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에세이’ 중에서 P. 16
브리슬콘은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온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생존했다. 그런데 고산 지대에 기후 온난화가 미친 영향은 위협적인 생물종들이 극성을 부리게 된 데서 그치지 않았다. 브리슬콘 자체의 성장이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빨라진 것이다. 최근의 나이테 분석에 따르면 성장 속도가 지난 50년 사이 30퍼센트나 빨라졌는데, 이전 3,700년 동안 이런 성장 속도를 보인 적은 없었다. - ‘브리슬콘 파인’ 중에서 P. 57
2006년 미국 우정국이 ‘최고의 것들이 존재하는 땅, 미국의 경이로운 것들’이라는 우표 시리즈를 내놓은 것이다. 가장 빠른 새! 가장 큰 개구리! 가장 긴 지붕 덮인 다리! ...... 여기에서 판도는 ‘가장 큰 식물’이었다. (브리슬콘도 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이 기념 우표는 대상의 중요성에 걸맞는 상상력을 북돋워 주지는 못한 것 같다. 그보다는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체의 발견을 ‘형편없는 티셔츠 기념품’으로 전락시켜버린 느낌다. - ‘판도’ 중에서 P. 105
망망한 곳에 나 혼자인 것이다. 전화를 걸 만한 사람도 없고, 식품이나 생필품도 없으며, 도움을 청하러 누구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고, 노란 집 사람들이 내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으며, 그들이 언제 돌어올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카메라만 빼고 다른 것들은 모두 집 안에 놓고 밖으로 나왔다.
내 평생 그렇게 완전하게 홀로 존재해본 적은 없었다. - ‘지도 이끼’ 중에서 P. 120
나무가 몸통이나 뿌리나 가지에 손상을 입으면 우리는 나무가 ‘상처 입었다’고 말한다. 4년마다 우리는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를 기리기 위해 아노 보우베 올리브 나무의 어린 가지를 꺾는다. 나무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그 부분을 분절적으로 구획지어서 다른 것이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것이 최선의 전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무와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상처가 너무 깊지만 않다면 치유될 수 있으며 실제로 치유된다는 점이다. - ‘올리브 나무’ 중에서 P. 186
섀클턴 이야기가 소설이었다면 장애와 고난이 이렇게 많을 수는 없다며 비현실적이라고 평하는 평론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험난한 여정에서 살아 돌아온 지 5년 뒤에 사우스조지아 섬에 다시 왔다. 그리고 남은 인생은 덤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긴다는 듯, 그날 밤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자신이 지구상 최고령 생명체 중 하나와 엘리펀트 섬에 같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사우스조지아 섬에서 또 다른 고령 생명체의 지척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리라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심원한 시간,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자연의 힘, 그리고 자연의 손아귀에서 생명이 처할 수 있는 위태로움을 말해주는 풍경 속 겸손한 이끼들이 보여주는 조용한 인내를 섀클턴이 높이 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우스조지아 섬의 이끼’ 중에서 P. 321
나무 나이가 8만 살... 아주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
레이첼 서스만이 쓴 <나무의 말>을 읽고 떠올린 단상
▲ 세월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수령이 400년 된 느티나무. 성주군 동포리.ⓒ 성낙선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수령이 제법 오래돼 보이는 나무들을 볼 때가 있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마을 어귀 길가나 공터에 그런 나무들이 많다. 그런 나무들을 보게 되면, 가슴이 벅차다. 그 나무들에게서 묵은 세월을 읽는다. 세파에 시달리느라 상처뿐인 세월. 늙어서 몸통에 울퉁불퉁 온통 주름이 진 나무들을 보면, 마치 세월이 나무라는 형태를 빌려 그 자리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나무들에서 나와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생명체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 나무들의 경우, 수령이 보통 수백 년이다. 수백 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지 않다. 그 세월을 사는 동안 나무가 겪었을 온갖 풍상을 생각하면,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그 나무들 밑에서 수없이 울고 웃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 나무이지만,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나무들의 수령이 대체로 1천 년을 넘지 못한다. 수령이 1천 년을 넘는 나무가 흔치 않다. 평창 발왕산의 주목이 수령이 1800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가 대한민국 최고 수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서울 신림동의 굴참나무, 구례 산수유마을의 산수유 시목, 해남 대흥사와 부안 내소사의 느티나무, 울주군 운흥사지의 갈참나무, 제주시 상가리의 팽나무 등의 수령이 대략 1천 년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등 1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1천 년 이상을 산 나무들로 유명하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1천 년을 넘어 2천 년 이상을 살았다는 나무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사실 1천 년을 생존했다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나무가 2천 년 이상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들 고령의 나무들이 기후 변화로 생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적어도 이 책, <나무의 말>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2천 살도 그냥 '어린아이'에 불과해
알고 보니, 나무가 1천 년을 넘어 2천 년 이상을 사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해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나무의 말>은 놀랍게도 나무가 2천 년이 아니라 1만 년 이상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킹스캐니언국립공원의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2150~2890살이다. 어마어마한 나이다. 그런데 이것도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2000살 이상의 장수 생물종 5개 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리다"고 한다.
이게 정말 사실인가 싶은데, 자이언트 세쿼이아의 나이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화이트 산맥의 '브리슬콘 파인' 등에 비하면,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다. 브리슬콘 파인은 나이가 약 5000살이다. 특히 "브리슬콘 파인은 (무성 번식 군락이 아닌) 단일 단위 생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종"이다. 타즈마니아(태즈메이니아) 리드 산의 휴언 파인은 1만 500살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유칼립투스는 무려 1만 3000살이다.
이쯤 되면, 나무가 아니라 무슨 화석을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미국 유타 주 피시호에 서식하는 판도는 나이가 무려 8만 살이란다. 농담이 아니다. 판도는 '사시나무 무성 생식 군락'으로, 총 4만 7천여 그루의 '나무'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줄기들이다. 그렇게 형성된 군락지가 13만 평이다.
서식 환경이 얼마나 좋으면 나무들이 그렇게까지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나무들은 적대적인 환경에서 더 오래 살아남았다. 브리슬콘 파인은 고산 지대에, 크레오소토 관목은 사막 지대에 서식한다. 극단적인 환경이 오히려 그들을 더욱더 강하게, 그래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때릴수록 강해지는 게 강철만은 아니다.
고령 생물들도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
놀라운 일이다. 고령 생물들은 하루하루 기적적인 삶을 살고 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태라면, 이들 고령 생물들의 미래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이들 고령 생물들 앞에 닥친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아남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다.
<나무의 말>은 '아주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를 찾아 나서는 작업을 기록한 책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인 레이첼 서스만은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을 목도한다. 그동안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생존이 가능했던 고령 생물 중 일부가 현재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극단적인 환경 변화 앞에서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온난화가 고령 생물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2천 년 이상을 살아온 생물들이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그래서 서스만은 서문에서 "이들은 마땅히 우리의 존중과 관심을 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며 "아직 싸울 기회가 남아 있을 때,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고령 생물들을 보호할 것을 역설한다.
서스만에 따르면, 타즈마니아(태즈메이니아) 사우스웨스트의 4만 3600살 된 타즈마니아 로마티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1만 3000살 된 유칼립투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1만 3000살 된 파머 참나무, 스웨덴 달라나(달라르나)의 9550살 된 가문비나무 등이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 위기를 맞고 있다. 다른 나무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서스만이 말하는 것처럼 "기후 변화는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전 지구적 위협"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국내에 생존하고 있는 고령의 나무들도 결코 이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산림청은 2016년 멸종위기 고산 침엽수종으로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눈잣나무, 눈측백, 눈향나무 등 7개 수종을 지정했다. 그 후 8년여가 지났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왕산의 1800년 된 주목이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고산 지대에 뿌리를 내린 고령의 침엽수종들이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지금은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나무의 말>은 제목과는 다르게 '나무'에 국한해 서술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oldest living things in the world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들)'이다. 오래 산 생물들로, 나무 이외에 산호, 이끼, 방선균, 해초 등이 포함됐다. 여러 종의 생물들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저자가 가장 많이 찾아 나선 생명체들은 나무다. 나무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산 생물들을 대표한 셈이다.
책 제목이 <나무의 말>이어서 나무가 무슨 말을 들려주려나 싶었는데 책 속에 실제 나무가 하는 말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역시 나무가 무슨 말을 하겠어'라고 말할 순 없다. 사실은 나무도 '말'을 한다. 단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을 뿐이다. 나무들은 바람 속으로 특정 화학물질을 내뿜거나, 땅속으로 미세한 전기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이웃 나무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위험한 상황이 다가올 때 '신호'는 더 강해진다. 나무가 가진 지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말하는 방식이 다를 뿐, 같은 생물종끼리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는 건 인간과 다를 게 없다. 나무는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살아왔다. 그리고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아남아 지구를 지킬 게 분명하다. 고령의 나무들은 인간들이 겪어보지 못한 위기를 이미 여러 차례 겪었다. 지금이 그 모든 위기를 넘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나무들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제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
<나무의 말> 저자인 레이첼 서스만은 사진작가로, 어느 날 2천 년 이상 산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조몬 삼나무를 보고 나서 '고령의 생물체'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로 지난 10년간 남극에서 그린란드까지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2천 년 이상을 산 생명체들을 카메라에 담는 고단한 작업을 끈기 있게 이어왔다. 그 작업이 결코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호주에서는 거머리에 물리고, 토바고에서는 산호에 쏘이는 등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었다. 스리랑카 오지에서는 손목이 부러지고, 그린란드에서는 길을 잃는 일도 있었다. 고령 생물들이 오지나 극한 환경에 서식하는 경우가 많아 그에 걸맞은 모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보는 사진과 글들은 저자가 이처럼 갖은 시련을 겪은 끝에 얻은 소중한 결과물들이다.
저자는 <나무의 말>을 출간하면서, 책 말미에 그때까지의 작업을 1단계로 정하고, 2단계로 계속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고령의 생물들을 찾아갈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 작업에 "남은 인생이 다 걸릴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앞으로 지구상에서 또 얼마나 많은 고령의 생물들이 사라질까? 더 늦기 전에, 인간들이 그 고령의 생물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날이 와야 한다. '남은 인생'을 건 서스만의 다음 작업이 그런 날의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낙선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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