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의 가을 제6공화국의 황혼을 살고 있습니다 저자 장석준 산현글방 2022.11
장석준 사회학을 공부하고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활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지금은 출판·연구 집단 산현재 기획 위원으로 일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연구하고 글을 씁니다. 그동안 쓴 어린이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가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의 적록서재》 등을 쓰고 《디그로쓰》,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유럽민중사》, 《도서관과 작업장》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책 소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좌파 정치논객이자 정치사회학자인 장석준의 새로운 사회비평집. 부동산, 교육, 능력주의, 돌봄, 기본소득, 검찰개혁, 재벌개혁, 신자유주의, 그린뉴딜, 탈성장, 기후정의, 생태 전환 등 우리 시대의 뜨거운 현안에 대한 좌파적 시각과 처방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 서술은 두 가지 점에 대한 강조에 의해 즉시 보충되어야만 한다. 첫째, 저자의 시각과 처방은, 해묵었지만 그만큼 강고한 제6공화국의 해체와 극복, 제7공화국으로의 과감한 시대적 대전환이라는 큰 비전 하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 책에서 독자는 1991년 5월 이후 약 30년 넘게 지속된 제6공화국의 실상 그리고 ‘돌진적 근대화’라는 말로 압축 가능한 해방 후 근대사(현대사)에 관한 저자의 역사사회학적 통찰에 부딪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역사적, 정치적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둘째, 정곡을 찌르면서도 창의적인 저자의 정책 처방은 자유, 사회, 결사체, 민주주의와 보나파르트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생태적 이성 등에 관한 저자의 사상의 자장 속에서 제시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저자가 자신의 사상을 뽑아 올리는 원천이 한때 치열했던, 그러나 지금은 역사책 속에 들어가 있는 세계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헤드램프를 이마에 단 채 역사의 갱도를 묵묵히 파고 들어가 뭔가, 빛나는 것을 손에 쥐고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현행 화석(연료) 자본주의가 우리를 이끄는 문명 대재앙이라는 막다른 골목을 인간다운 방식으로 회피하는 유일한 길은,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 하는 생태적 이성의 안내를 받는 생태 민주주의의 길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자유의 확산을 통해 고립과 불평등이 가득한 냉지옥에 갇힌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다. 짧게 말해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사회주의의 길로, 자본주의라는 뜨거운 여름을 넘어선 가을 문명의 길이다. 좋은 소식은, 이 길이 아직 우리에게 닫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좋은 소식은, 우리가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단, 저자에 의하면, 여기에는 하나의 거대한 조건이 있다. 그건 우리가 그 길을 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마르타여, 마리아의 길을 가자
1장. 우리는 지금 제6공화국의 황혼을 살고 있다
조국 대전이 아니라 촛불연합의 와해
우리의 6월을 넘어서자
1991년 5월의 패배가 연 제6공화국 시대
문제는 86세대가 아니라 제6공화국 이데올로기다
우리 시대의 정치,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
2장. 한국 사회 진단서
한국적 경제주의를 넘어서자
‘1 대 99’냐, ‘20 대 80’이냐─신자유주의 동맹에 대하여
중산층 행동주의에 가린 투명인간들의 사회
성공한 후발 주자의 비애
3장. 전환의 좌표─생태 사회주의적 민주 공화국
조국 대전의 한국 사회에서 빠진 것, 사회주의
기후위기 시대에 다시 돌아보는 파리 코뮌
로자 룩셈부르크, 20세기가 우리 시대에 남긴 숙제─민주적 사회주의(1)
또 다른 혁명 100주년, 조지아 혁명─민주적 사회주의(2)
사회주의의 해체인가 재발명인가
생태 사회주의가 필요하다
4장. 사회 전환의 출발지점
사회권력 육성 없이 재벌권력 개혁 없다
‘자본주의’와 ‘산업’은 다르다
노동이 주도하는 플랫폼 산업을 상상하자
농지개혁법 70주년에 제2의 토지개혁을 생각한다
부동산 문제 해결, 부분적 개혁으로는 안 된다
인류의 전향을 촉구하는 《돌봄 선언》
바람직한 기본소득의 전제조건 두 가지
나는 왜 기본소득에서 일자리 보장으로 ‘전향’했는가
5장. 기후위기와 생태 전환
날씨 이야기를 합시다─기후변화 트릴레마
어쩌면 전쟁을 닮은 그린뉴딜
그린뉴딜에 빠진 한 단어, ‘계획’
상상력의 빗장을 여는 탈성장론
비혁명의 시대를 넘어 전환의 시대로
생태 전환,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중요하다
이미 시작된 붕괴, 계급적 적응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와 파시즘
나오며 가을을 산다는 것
책 속으로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았다. 남들은 어떻게 살아왔나? 저들은 자본주의의 초석을 놓는 데 한 세대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랬기에 노동계급의 첫 세대에게 성장의 과실 따위는 완전히 남의 이야기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이들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세상에 대한 꿈에서 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것은 여전히 꿈일 뿐이었지만, 자본가들에 맞서 그들을 ‘사람’으로 서게 해줄 존엄의 표지였다.--- p. 14
뜻밖에도 ‘민주’정부 10년 뒤에 남은 것은 정반대 광경이었다. 87년의 여진을 이어받은 ‘민주’세력과 민주노조운동만으로는 민주화 다음의 과제에 착수조차 하기 힘들다는 게 드러났다. 아니, 역전 불가능하리라 믿어온 민주화 성과조차 흔들릴 수 있음이 드러났고, 2016-17년 촛불항쟁은 이런 역사의 퇴행을 막아보려는 몸부림이었다. 87년의 성취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과감한 시도가 아니라 말이다. 그리고 이들 뒤에서 좌절과 환멸로 무장한 채 사회에 나서는 또 다른 이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교리를 따르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확신을 주입받은 첫 세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무렵 신자유주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함께 불안과 격동의 시기에 돌입했다. 투기를 통한 기회의 문이 닫혔고, 불안정 고용의 정글만이 이들을 맞았다.--- pp.15~16
첫째, 5월 투쟁을 거치며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전개될 민주화의 폭과 깊이가 확정됐다. 군부독재가 만들어놓은 체제와 완전히 단절하는 민주화의 길은 닫혔다. 오히려 기존 체제에 ‘적응’하는 길만이 당장은 민주화의 유일한 경로로 남았다.--- p.38
이런 ‘추격의식’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어느 자본주의 사회보다 빠르고 깊게 경제주의가 뿌리내렸다. 상층 계급을 추격 대상으로 보는 한, 계급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질 수 없다. 본래 계급이란 거리두기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우리는 ‘노동계급’을 말할 수 있다. 이 거리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계급의식’이 형성된다. 그러나 추격 상황에서 거리란 좁혀야 할 무엇일 뿐이다. 중산층에게 부유층은 미래의 자기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중산층이 그렇다. 그럴수록 상층 계급의 사고 · 행동양식은 쉽게 아래로 퍼져나간다. 이게 압축 성장 시기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p.67
중산층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의 한국적 형태인 ‘고시’주의를 취한다는 점, 구명선 의식과 이중 노동시장이 만나서 정규직 · 비정규직 격차가 극심해졌다는 점,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관료형 조직에서 서구와는 다른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등 때문에 한국 사회가 좀 별나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서구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탱했던 사회세력 간 구도와 한국 내 사회세력 간 구도가 크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중산층을 그 아래와 단절시키고 위와 결합시키는 동맹의 정치가 다만 ‘한국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뿐이다.--- p.79
사회주의란 이렇게 사회적 자유를 통해 자유, 평등, 우애라는 근대의 약속을 하나로 꿰뚫으며 실현하려는 이념이자 운동이다. 사회주의가 역사 속의 숱한 실패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재발명돼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의 진짜 목표인 사회적 자유야말로 개인적 자유의 복고 운동(이름 하여 ‘신자유주의’)이 세상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고개를 돌릴(성서의 메타노이아, 즉 회심) 방향이 어디인지 가리켜주기 때문이다.--- pp.148~149
재벌권력을 대체할 사회권력을 육성하려면 ‘새로 재구성된’ 공공이 필요하다. 새 공공이란 광장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공공이다. 예컨대 이런 구상을 해볼 수 있다. 정부 안에 국유 부문을 관리할 새로운 기구를 설립한다. 이 기구는 기존 경제부처로부터 독립해 시민사회 내 다양한 집단의 대표자로 구성되며, 국회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이 기구는 산업은행 지분, 국민연금 지분을 통합 관리하면서 이에 따른 경영 개입을 지휘한다. 사회이사 중 중앙정부 대표자는 바로 이 기구에서 파견된다. 이런 기구가 설치된다면, 국민연금이 청와대와 삼성 재벌의 밀실 거래에 동원되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p.172
사실 그 전부터 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동화와 백일몽, 광고 영상 같은 인류의 상징 세계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두 초거대 재벌,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다. 이 둘은 모두 더럽혀지고 쓸모없게 된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거주 행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개척자를 자처한다. 지구를 망치고 나면 이곳을 떠나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더 나은 삶을 열 수 있다는 야망의 상징이다. 그런 삶을 향해 떠날 자들이 얼마나 소수일지, 아니 아예 그런 여행이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달리 말하면, 이 둘은 정확히 돌봄의 반대를 표상한다. 또한 자본주의 역사의 정점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지저분하고 힘들고 고뇌 어린 돌봄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p.218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합은 기후변화 대응에 무력하고, 자본주의 틀 안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려 하면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진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 즉 민주주의와 기후변화 대응의 조합을 성사시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는 적어도 논리상으로는 명확하다. 그것은 인간사회가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조건이다.--- pp.244~245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작년 말 한 유럽 매체와 진행한 대담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전시 동원 상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www.euronews.com. 2019. 11. 18). 전시 총동원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해야만 기온 상승 속도를 늦출 정도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가 “전시”라 말할 때 염두에 둘 만한 전쟁은 십중팔구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때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 두 전선에서 싸우면서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연합군 진영의 병기창 역할을 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에 미국이 매년 GDP의 1/3을 전쟁 수행에 쏟아부었다고 평가한다.--- p.250
같은 이야기를 도시를 놓고도 할 수 있다. ‘15분 도시’ 같은 구상을 추진해왔기에 도보나 자전거, 대중교통이 이미 중심 이동 수단이 된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 둘 다 최악의 기후위기가 닥치면 예외 없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 그러나 전력난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 시민의 품격을 최대한 유지하며 버틸 수 있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는 확연히 구별될 것이다. 어느 쪽이 전자이고 어느 쪽이 후자일지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빤하다.--- p.286
영국에서 산업자본주의가 탄생해 유럽, 북미 등 세계 곳곳으로 퍼지던 19세기는 자본주의 문명의 봄이었다. 이 무렵 산업사회는 마치 꽃봉오리들이 처음 피어올라 막 세상을 향해 열리려 할 때처럼 수많은 미지의 가능성을 내포한 것처럼 보였다. 인생에 비유한다면, 청년기라고나 할까. 뒤이은 시대, 즉 장마철의 모진 비바람과도 같았던 20세기 초의 대혼란을 뚫고 등장한 한 세월은 자본주의 문명의 여름이었다. 여름은 봄에 싹을 틔운 생명이 한창 끝없이 뻗어나가는 계절이다. 이 시기 자본주의가 꼭 그러했다. 한때 나락에 빠지는 줄만 알았던 산업자본주의는 전례 없는 성장의 질주를 벌였다. 자원의 소비와 총산출량 그리고 그것이 인간과 자연에 끼치는 영향 모두 확장 속도를 배로 높였다.--- pp.306~307
바로 이 여름의 끝자락에 한국은 번영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극히 예외적인 성공 사례였다. 자본주의적 권력 독점의 가장 벌거벗은 형태에다 국가사회주의의 일부 요소들까지 버무린 돌진적 실험을 통해 이뤄낸 성공담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실험을 주도한 정권을 신화의 주인공마냥 떠받드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이런 종류의 실험이 낳을 수밖에 없었던 심각한 후유증에 항거하고 있다. 아무튼 한국은 대단히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한여름의 열기에 함께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여름은 이제 끝나버린 것 같다. 나름 짧지 않은 시간을 명멸했던 이 여름의 여진도 이제는 생명력을 다해간다.--- p.308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나도록 한국 사회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제6공화국’의 한계와 개혁 과제
성장과 압축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하나로 묶어내는 한국 사회의 시간에 대한 감각이며 몸의 습관이다. 개인과 국가 제도 모두를 아우르며 한국의 근대현사를 총괄한 몸이자 습관으로서의 6공화국 체제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붕괴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사회적 참사에 정치가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참담함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 대한 인간의 책임, 그리고 민주주의와 평등, 자유를 위해 보다 정의롭과 성숙한 인간의 결속을 발명해 내어야 한다.
- 엄기호 (사회학자,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단속사회》 저자)
'제6공화국'과 '중산층 행동주의'에 갇힌 한국, 이 계절을 넘어서려면
<근대의 가을 - 제6공화국의 황혼을 살고 있습니다>
1, 2부에서 저자는 한국인들의 정치·사회·문화적 의식과 행동에 대한 진단을 내놓는다. 3, 4, 5부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대안에 대한 좌파적·생태적 관점의 모색이 담겨있다.
5편의 글로 구성된 1부에서 저자는 지금의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힘을 '제6공화국 이데올로기'와 '보나파르트주의'로 특징짓는다.
'제6공화국 이데올로기'란 "1987년에 만들어진 권력 질서 안에 민주주의의 상상력"을 가둔 채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을 민주주의 거의 전부"로 여기고,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전제 아래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 개혁의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 생태계 위기 같은 새로운 과제들을 계속 관심과 고민의 사각지대 속에 가둬 놓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87년 체제 하의 '제6공화국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한국 정치의 또 다른 특징은 '보나파르트주의'로 귀결됐다. 칼 마르크스의 <프랑스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유래한 '보나파르트주의'는 "시민사회 안의 어떤 계급도 확고하게 정치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권력이 1인 통치자에게 집중되는 양상"을 뜻한다.
최근의 대선에서 이는 "양대 정당이 각각 내세운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를 향한 기대 혹은 적대라는 정념"이 정치적 담론을 지배하고 "이른바 '분석'이라 제시되는 것들도 이 정념의 정제된 표현 정도"에 그치는 상황으로 발현됐다.
4편의 글로 구성된 2부에서 저자는 한국인들의 사회·문화적 의식과 행동을 '추격의식', '중산층 행동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그려낸다.
"경제적 이익 추구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태도"를 일컫는 '경제주의'에 바탕을 둔 '추격의식'은 경제적 상층 계급을 따라잡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의식을 뜻한다. 언젠가 자신이 되어야 하는 이상향을 부정할 수는 없기에 '추격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계급의식'이 자리 잡기는 어렵다.
'계급 운동'의 빈자리는 '중산층 행동주의'가 채웠다. 흔히 '20 대 80'의 사회에서 20으로 여겨지는 중산층은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동자",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상당한 자산 가치를 지닌 주택을 한 채 이상 보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입학 경쟁에 뛰어드는 가정" 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조직화와 동원, 여론 형성의 강력한 자원"을 가진 이들이다.
이때문에 승자독식 선거제도 하에서 거대 양당도 "중산층 끌어안기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둘 중 누가 권력의 주인이 되든지 중산층 행동주의는 불패 신화"를 이어왔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나머지 22편의 글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대안을 모색한다. 변화의 사상적 기초를 다룬다고 볼 수 있는 3부에서 저자가 중심으로 삼은 말 중 하나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생태'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만은 일상어의 지위를 잃은 '사회주의'다.
저자는 조국 사태 당시 "엘리트 계층의 특권 세습"에 대한 반발이 "현실을 뒤집는 진짜 개혁"이 아니라 "사다리 위쪽으로 올라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조"를 그대로 두는 "경쟁의 공정성"에 머물렀다는 점을 짚는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에 "보편적 평등을 요구하는 거대한 이념-운동"이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채울만한 "이념-운동"으로 저자가 택한 것이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86세대에 속하는 한 무리의 지식인-운동가"들이 내다 버린 '사회주의'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정전위 정당 같은 낡은 개념을 다시 시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정확장을 통해 기초연금을 지금 당장 최소한 50만원은 넘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 "입시제도나 끝없이 뜯어고칠 일이 아니라 대학 평준화를 단행해야 한다는 것", "학력과 성별,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에 따른 임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아낼 만한 표지를 지금 당장 마련할 수 없다면 이미 있는 표지로라도 "평등 사회 실현"이라는 목소리를 대변할 "이름", "깃발"을 내걸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과 달리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지난 200여 년 간 '사회주의'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프랑트푸르크 학파의 제3세대 철학자·사회학자인 악셀 호네트의 논의를 빌려 '국유화'나 '중앙집권 계획경제'가 아닌 '사회적 자유'를 사회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로 제시한다. '사회적 자유'는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는 생각을 담은 말로 '개인적 자유'와 구별된다. 이런 자각을 가진 사람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흔히 "동지애", "연대"로 표현되는 벅찬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적 자유'는 이렇게 "자유, 평등, 우애"라는 "근대의 약속"도 하나로 묶어낸다.
이어지는 4부에서 저자는 재벌권력 개혁, 산업구조 개혁, 플랫폼 산업, 부동산, 돌봄사회로의 전환, 기본소득과 일자리 보장제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저자가 제시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본 해법을 제시한다.
5부의 주제는 기후위기와 생태 전환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뉴딜이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넘어 '전시동원'에 준하는 특단의 대책과 실현 계획이 필요하다는 제안, '경제적 이성'을 '생태적 이성'으로 대체하자는 제안, 불평등한 기후위기에 대한 '계급적 적응'이 필요하다는 제안 등과 함께 생태 전환이 우리 삶에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 담겨있다.
그간 써온 글을 모아 다듬은 것만으로도 좌파적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날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짜임새 있는 책이 나온 배경에는 저자가 지나온 삶의 이력이 있다. 장 위원은 진보신당 부대표,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 등을 지내며 진보정당의 정책·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 사회, 생태 전환 등의 문제에 천착해왔으며 해외 진보정당의 역사와 현재에도 조예가 깊다.
프레시안 최용락 기자 |
우리 시대의 대표적 좌파 정치논객이자 정치사회학자인 장석준의 새로운 사회비평집. 부동산, 교육, 능력주의, 돌봄, 기본소득, 검찰개혁, 재벌개혁, 신자유주의, 그린뉴딜, 탈성장, 기후정의, 생태 전환 등 우리 시대의 뜨거운 현안에 대한 좌파적 시각과 처방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 서술은 두 가지 점에 대한 강조에 의해 즉시 보충되어야만 한다.
첫째, 저자의 시각과 처방은, 해묵었지만 그만큼 강고한 제6공화국의 해체와 극복, 제7공화국으로의 과감한 시대적 대전환이라는 큰 비전 하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 책에서 독자는 1991년 5월 이후 약 30년 넘게 지속된 제6공화국의 실상 그리고 ‘돌진적 근대화’라는 말로 압축 가능한 해방 후 근대사(현대사)에 관한 저자의 역사사회학적 통찰에 부딪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역사적, 정치적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둘째, 정곡을 찌르면서도 창의적인 저자의 정책 처방은 자유, 사회, 결사체, 민주주의와 보나파르트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생태적 이성 등에 관한 저자의 사상의 자장 속에서 제시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저자가 자신의 사상을 뽑아 올리는 원천이 한때 치열했던, 그러나 지금은 역사책 속에 들어가 있는 세계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헤드램프를 이마에 단 채 역사의 갱도를 묵묵히 파고 들어가 뭔가, 빛나는 것을 손에 쥐고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현행 화석(연료) 자본주의가 우리를 이끄는 문명 대재앙이라는 막다른 골목을 인간다운 방식으로 회피하는 유일한 길은,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 하는 생태적 이성의 안내를 받는 생태 민주주의의 길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자유의 확산을 통해 고립과 불평등이 가득한 냉지옥에 갇힌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다. 짧게 말해 민주적이고 생태적인 사회주의의 길로, 자본주의라는 뜨거운 여름을 넘어선 가을 문명의 길이다.
좋은 소식은, 이 길이 아직 우리에게 닫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좋은 소식은, 우리가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단, 저자에 의하면, 여기에는 하나의 거대한 조건이 있다. 그건 우리가 그 길을 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레디앙 2022년 12월 02일 사회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