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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한국의 능력주의

by 이성근 2021. 10. 2.

한국의 능력주의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박권일 지음| 이데아 |2021.09.

 

박권일-월간 기자였다. 참여정부 출범과 거의 동시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여러 개악과 노동, 사회 현장을 취재했다. 기자를 그만둔 뒤 2007년 공저한 88만원 세대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에 국정홍보처 주무관으로 채용돼 참여정부 경제정책 5집필에 참여, 당시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 실패에 대해 가감 없이 평가했다.

그 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다문화반대카페’, ‘일간베스트저장소등을 수개월 동안 취재해 한국 넷우익담론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의 일부가 우파의 불만,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등의 책으로 출간됐다. 현재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축제와 탈진, 소수의견, 능력주의와 불평등, 언어 전쟁등이 있다.

 

2000년 초 민주노동당원이 됐다. 안티조선 우리모두’, ‘깨끗한 손’, ‘진보누리필진으로도 활동하며 이때부터 키배에 눈을 떴다. 2002년 월간 공채시험에 응시해 12월부터,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 출범과 거의 동시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많은 노동자가 손배가압류 등 각종 노동탄압으로 죽었다. 반면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등 노무현 정권 핵심 공약들은 빠르게 폐기처리 됐고 비정규직법 개악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나뉘는 사회가 완전히 고착한다. 2003년 늦가을 취재를 위해 노동자 김주익이 목을 매 자살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한동안 머문 뒤부터 폐소공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비행기나 열차의 창 측이나 좁은 공간에 앉으면 호흡이 안 되거나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 복도 측 좌석을 예약하는 습관이 생겼다.

 

기자를 그만두고 쉬던 시기인 2007, 공저한 88만원 세대가 그만 베스트셀러가 되고 말았다. 자의 반 타의 반 저술과 강연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에 국정홍보처 주무관으로 채용돼 참여정부 경제정책 5집필에 참여했다. 그 책에서 노무현 정부 비정규직 정책의 실패에 대해 가감 없이 평가했다. 국정홍보처를 마지막으로 직장경력은 끝이 나고 이후부터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다문화반대카페일간베스트저장소등을 수 개월간 취재해 최초로 한국 넷우익 담론 분석을 시도했다. 그 일부는 우파의 불만,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등의 책으로 출간됐다.

 

오랜 취미인 건프라 조립은 노안이 오며 자동 종료됐다. 로드바이크, 테니스 같은 운동을 좋아한다. 운동을 못 하는 사람일수록 장비가 좋아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로드바이크를 타며 겪은 고생담을 한국일보에 연재한 적이 있다. 마흔 넘어 대학원에 들어가 한국 능력주의의 형성 -고시계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 현재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그건 참아도 이건 못 참지!”·7

 

1부 형성

1장 과거제도, 한국 능력주의의 기원?·27

2장 자연화한 능력주의: 사회진화론·43

3장 입신출세주의와 교양물신주의·59

 

2부 현대 한국

4장 학력주의와 능력주의의 묘한 관계·75

5장 엘리트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95

6장 한국 능력주의의 특징·123

 

3부 가치관과 민주주의

7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물으신다면·143

 

4부 능력주의 비판

8장 불평등 그리고 이데올로기·199

9이상적 능력주의비판·222

 

5부 대안

10장 길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245

 

에필로그 : 최후의 능력주의자·298

 

·305

참고문헌·326

 

출판사 서평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꽤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단연코 공정()’이었다. 많은 한국인은 경험적으로 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말이다. 더군다나 현 정부가 들어서는데 촛불을 붙인 결정적 계기가 공정성의 문제였기도 했다. 전 정부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최서원)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불공정) 입학,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한 분노가 정권을 끌어내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촛불로 탄생한 정부는 약속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 후보 자녀의 입시를 둘러싼 논란, LH 공사의 땅 투기 등을 보며 한국인 다수는 여전히 공정성에 의심하며 더욱 민감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시험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데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일례로 2017년 서울교통공사가 계약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정규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구직자는 외면하고 어중이떠중이 뒷문으로 채용된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이 되고, 이게 적폐 청산인지 적폐 양산인지 도대체 누가 적폐인지.”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 수많은 동의와 응원 댓글이 달렸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였다. 이후로 인국공은 이와 유사한 사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2, 3인국공문제는 계속 등장했고 매번 비슷한 전개로 이어졌다.

 

시험 그리고 무임승차, 역차별

개인의 능력 차이는 명백하다. 따라서 불평등은 당연하다.’라는 논리, 능력주의는 무엇이 문제일까? 책은 능력주의가 오랫동안 한국인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였다는 데 주목한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며 불평등의 문제를 은폐하고 불공정의 문제로 시선을 가둔다. 과정에서 공정하다면,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교통공사나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공사 공채시험’(공정)에 합격한(능력) 이들과 달리, 그렇지 않은(무능) 사람들이 겪게 되는 차별(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를 거스르면 불공정하며, ‘무임승차이자 역차별이다.

 

그렇다면 과연 능력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책은 현실에서 능력, 노력, 일의 사회적 가치, 경제성장에 대한 개인의 기여 등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 실제 기여가 아닌 합격 당시의 성적에 따라 특권을 부여받는 시험주의testocracy’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책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에서 고시, 공시, 공채 등 여러 평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회·역사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논증한다.

 

불편한 진실, “우리는 불평등에 찬성합니다

한편, 유독 심한 한국의 능력주의는 때때로 혐오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책은 “‘멸시하는 능력주의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벌레투성이라고 묘사한다. 월수입 200만 원 이하이면 이백충’, 지역균형전형으로 대학에 가면 지균충’, 임대아파트에 살면 임대충식이다. 한국에서도 익히 알려진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라고 책은 전한다.

 

한국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1981년부터 2020년까지 40년간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참여하고, 4~5년마다 결과를 발표, 7차까지 진행된 세계가치관조사에서 그 이유 중 하나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박권일이 다른 나라와 너무 차이가 커서 데이터 세트 원본을 몇 번이나 확인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평등에 찬성한 비율은 23.5%였고, 불평등에 찬성한 비율은 58.7%”(2010~2014년 조사, 중국의 경우 평등 52.7%/불평등 25.8%, 독일의 경우 평등 57.7%/불평등 14.6%)였으며, 최근 7차 조사(2017~2020)에서는 한국인의 64.8%가 불평등에 찬성했고, 12.4%만 평등에 찬성했다.

 

저자는 이 결과에 대해 한국인은 대체로 불평등한 분배 원리를 선호하며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등 분배로서, 이른바 능력주의 원칙과 사실상 동일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 개개인이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럽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강조한다. 책에서는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로서 이 주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이에 대한 대안과 선행 모델을 꼼꼼히 비교하고 살펴본다.

 

1%개천 용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존 투쟁에 시달린다. 이 결사적 전쟁에서 잡아먹히는 쪽이 아니라 잡아먹는 쪽으로 가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과도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스펙과 인맥을 쌓는다. 이 격렬한 생존 본능 혹은 투쟁심,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지위 상승 욕구, ‘빨리빨리문화 같은 현대 한국인의 집단 심성 극소수 에게 특권을 몰아주면서 이 되지 못한 이들의 열패감과 억울함을 동력으로 삼는 체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1%도 되지 않는 개천의 용을 향한 질주 때문에 99%의 삶이 피폐해지는 사회는 정당하지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용이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능력주의의 대안은 곧 불평등의 대안이다. 그것은 불공정이 아닌 불평등 자체를 새삼 환기하여 시민적 관심사로 돌려놓는 일이다. 이는 정치, 민주주의의 문제로 수렴한다. 불평등이라는 문제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질량을 생각하면 그 대안 역시 거대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어떤 대안은 황당무계한 몽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몽상은 포기되는 대신 구체화되어야 한다. 격차와 불평등을 동력삼아 모두가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행복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런 가망 없는 짓은 이제 그만두자. 그리고 진정 정의로운 사회,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자.” 이 책이 일관되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책속으로

세상에는 1루를 밟지 못한 사람, 아예 야구 경기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불우한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교 입학은 꿈도 꾸지 못한다. 심지어 사회적 성취를 위한 노력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p.14

 

한국인들 대다수는 추천제나 기부금 입학제도를 혐오하며, 같은 문제를 풀어 전국 1등부터 꼴찌까지분명히 가려져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제도와 문화 역시 그렇게 형성되어왔다.--- p.79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많은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열패감과 좌절감에 시달린다. 능력이 있음에도 그만큼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능력이 없어서 좋은 대학, 좋은 과를 가지 못했기에 열악한 처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기도 한다.--- p.82

 

한국의 고시제도 하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평범한 국민들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냉소하는 엘리트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고시는 과소한 민주주의 교육이 과도한 능력주의 신화와 결합할 때 어떤 괴물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사회 실험이었다.--- p.121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좋은 대학 출신이 아니란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한국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향해 차별, 비하, 멸시적 발언을 내뱉는다. 환경미화원,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은 본인 눈앞에서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며 제 자식을 훈계하는 주민들을 수시로 마주친다.--- p.135

 

한국은 근대화 이후 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서열화하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였고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런 서열체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타인이 그 서열체계를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획일적인 기준으로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줄 세우는 서열체계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논리 앞에 약자들에게는 대항논리가 없었다.--- p.175

 

결론만 말하면, 한국은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소득 불평등에 대한 압도적 찬성이다. 다른 나라와 너무 차이가 커서 데이터 세트 원본을 몇 번이나 확인했을 정도다. 6차 세계가치관조사(2010~2014) 결과 중에서, 한국을 포함한 6개국을 살펴보자. 중국은 평등 52.7%, 불평등 25.8%로 평등이 높았다. 일본은 평등 28.6%, 불평등 25.1%로 양이 비슷했으나 평등이 조금 더 높았다.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대표주자인 독일은 평등 57.7%, 불평등 14.6%였다.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의 상징 스웨덴은 평등 42.7%, 불평등 30.6%였다. 미국은 능력주의와 아메리칸드림의 나라답게 평등에 찬성한 비율보다 불평등에 찬성한 비율이 높게 나왔다. 평등 29.6%, 불평등은 36.2%. 그럼 한국은? 한국의 경우 평등에 찬성한 비율은 23.5%였고 불평등에 찬성한 비율은 58.7%였다. 최근 조사인 7차 자료(2017~2020)는 더 경이로운 수치를 보여준다. 한국인의 64.8%가 불평등에 찬성했고, 12.4%만 평등에 찬성했다.--- p.176

 

조국 사태, 미국 입시 비리,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통해 알수 있는 사실은 특권이 강할수록 부패가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특권과 부패는 정비례하며 특권이 클수록 능력주의도 강해진다. 요컨대 특권, 부패, 능력주의는 붙어 다닌다. 특권을 그대로 둔 채 특권을 둘러싼 부패와 불공정에 분노하는 것은, 음식을 한곳에 쌓아두고 벌레가 꼬인다고 역정 내는 짓이나 다름없다.--- p.208

 

비유컨대 능력주의는 화석연료. 한때 그것은 성장의 필수 연료로 각광받았지만, 오늘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족쇄가 되었다. 현장 역량보다 학업 성적 위주인 각종 공채시험 제도, 소선거구제 등 승자독식적인 정치제도, 제왕적 대통령제, 엘리트의 부정부패와 선민의식, ‘재벌에 대한 특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극단적으로 분절된 노동 및 고용체제 등 사회 전 영역에 격차와 특권을 당연시하는 제도와 문화가 만연해있다.--- p.302

 

어떤 대안은 황당무계한 몽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몽상은 포기되는 대신 구체화되어야 한다. 격차와 불평등을 동력삼아 모두가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행복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런 가망 없는 짓은 이제 그만두자. --- p.303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K-능력주의

 

과정 공정하다 생각하면 불평등 수용

능력주의에 경도된 한국 사회의 특징

현실에선 부모 지원 등에 출발선 달라져

구조문제, 개인으로 환원불평등 재생산

불평등은 최근 몇년 사이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다. 많은 사람이 불평등이 큰 문제라고 우려를 표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과 사뭇 다른 조사 결과가 있다. 1981년부터 2020년까지 40년간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참여하고 4~5년마다 결과를 발표해온 세계가치관조사는 문항 중 하나로 소득이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노력 등에 따라) 더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물었다. 6차 조사(2010~2014) 결과를 보면 한국의 경우 평등 쪽에 찬성한 비율은 23.5%였고, 불평등 쪽은 58.7%였다. 독일은 각각 57.7%, 14.6%, 미국은 29.6%, 36.2%, 중국은 52.7%, 25.8%였다. 한국인의 불평등 찬성 비율이 두드러진다. 최근 7차 조사(2017~2020)에서는 한국인의 64.8%가 불평등에 찬성해 그 비율이 더 높아졌다. 평등에 찬성한 이들은 12.4%에 그쳤다.

 

<한국의 능력주의>의 지은이는 이런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자신의 책을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보고서라고 소개한다. 그는 한국에서 벌어진 공정성 시비의 절대다수는 결과가 불평등해서가 아니라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보상에 접근할 기회가 공평했는지, 그 보상이 능력에 따라 제대로 분배됐는지만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과정이 공정했다고 간주되면 결과의 불평등은 수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지은이에 따르면 이런 심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국 사회의 공고한 능력주의다. 문자 그대로는 능력에 따른 지배를 의미하는 능력주의는, 현실에서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응분의 보상체계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능력주의의 관점에서는 능력이 더 뛰어나고 노력을 더 많이 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것,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더 적은 몫이 주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개인 간 능력의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하기에 그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다. 이런 능력주의는 오랫동안 한국인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였고, “한국은 자본주의-능력주의 체제의 최첨단에 선 사회. 한국인의 과도할 정도의 교육열, ‘스펙과 인맥에 대한 집착, ‘억울하면 출세하라식의 지위 상승 욕구 등은 모두 능력주의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한국에서 능력주의는 과거제도, 사회진화론, 입신출세주의, 고시제도, 학력주의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자리잡고 강화돼왔다. 이른바 케이(K)-능력주의라고 할 만한 한국의 능력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학력(학벌)주의를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겉으로는 학력이나 학벌이 진정한 능력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학력을 능력의 지표로명백하게 인정하고 있다. 학력은 한 사람의 능력의 산물로 여겨지고, 개인에게는 지위 상승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 학력주의는 케이-능력주의의 또 다른 얼굴인 시험주의와 맞닿아 있다. 시험은 그 병폐가 계속 지적되면서도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능력 평가의 가장 주요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문제는 시험을 통한 지대추구의 정당화다. 지대추구란 아무런 생산성 향상 없이 소유권만 이용해서 이익을 꾀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부 시험은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 자체로 불합격자는 따라잡을 수 없는 보상이 주어진다. 승자독식 피라미드 속에서 시험은 특권의 자격자를 선별하는과정이 된다.

 

지은이는 케이-능력주의의 특징을 살펴본 뒤 능력주의라는 이념 자체의 한계를 비판한다. ‘현실적 능력주의’, 즉 현실에서 실제 나타나고 있는 능력주의는 일종의 위장된 신분제의 모습을 띤다. 대학 입시나 기업 공채, 고시, 로스쿨 등의 기회는 형식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하지만 부모의 지원 여부, 사회경제적 조건 등에 따라 출발선은 크게 차이가 난다. “능력을 계발하고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삶의 실질적 여건을 보정해주는 진정한 의미의 기회균등은 이뤄지지 않는다. 특정한 사람에게 기회를 더 많이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진입 장벽을 높이는 사회적 봉쇄’(막스 베버), ‘기회 비축’(찰스 틸리)이 능력주의의 포장하에 더 정교하게 지속될 뿐이다.

이상적 능력주의는 어떨까? 세습이나 상속 같은 요소가 배제된 상태라면 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자원을 배분해도 되지 않을까? 지은이는 이를 비판하기 위해 존 롤스 등 사회철학자들의 이론을 빌려온다. “이미 주어진 재능은 개인에게 속한 것이지만 각자의 재능이 차이 나는 상황자체는 단지 우연적인 사건이므로 개인이 그 재능의 배분 상황에 대한 자격까지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롤스의 주장이다. 노력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성격은 대체로 자신의 공로라고 주장할 수 없는 훌륭한 가정이나 사회적 여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노력은 객관적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난점도 가지고 있다. 또한 현대 경제학에서 확산되고 있는 부의 주된 원천은 공동자산으로서의 지식이라는 이론을 수용할 경우, 개인의 기여는 거의 미미한 것으로 계산돼 능력주의가 설 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능력주의의 핵심 문제는 불평등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모순은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돌려지고, “불평등으로 가야 할 문제의식은 모두 불공정 논란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지은이는 격차와 불평등을 동력 삼아 모두가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의롭지도, 행복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불공정이 아닌 불평등 자체를 새삼 환기하여 시민적 관심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한국 주류의 적대감, 차라리 업신여김에 가까웠던 그 적대감은 한국의 현대 정치를 원한의 비극 쪽으로 꼬아놓은 치명적 덫 중 하나일 것이다. 그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 가운데 하나가 상고 출신으로 대학을 못 나와서 균형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저질스러운 비판은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모교가 당시에는 얼마나 명문고였는지, 다 합쳐 서른 명만 뽑던 시절, 사법고시 합격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였는지 등등. 바로 내가 그랬다. 고향 집이 그의 지역구라 더 그랬던 것도 같다. 그의 본심이 어땠는가와는 별개로, 한국의 진보좌파 또한 능력주의 신화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 중 하나가 바로 잡지 고시계의 합격 수기를 분석한 ‘5장 엘리트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부분이다. 고시는 한국인이 믿는 능력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제도다. 우선 자격요건에 제한이 거의 없어서 기회 평등이 보장된다.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합격하는 이들의 능력도 믿을 수 있다. 그만큼 일단 합격만 하면 보상도 무척 크다. 합격자들은 고시를 공인된 우승열패의 쟁취장으로 여기고, “철저히 시험이 요구하는 바에 나 자신을 맞추어나가야 한다라고 믿는다. 이 치열한 무한경쟁을 통해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믿음, 공정세계 신념이 형성된다.

 

이 공정세계 신념이 지금 한국 사회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절차만 공정하다면 결과의 불평등은 클수록 좋다는 믿음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시험만이 기회의 평등을 제대로 보장하는 장치이며, 매우 큰 보상의 차이도 시험에서의 승패를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여성이나 지방대 출신에 대한 고용할당제 같은 조치들이 불공정한 특혜라며 정규직과 청년세대가 반발하는 이유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낼 수 있는 경멸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공정세계 신념과 결합한 능력주의가 오늘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축에 속하는 한국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강력한 도구, 즉 불평등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 능력주의의 역사적 궤적, 현대적 특징, 능력주의 신념을 배태하고 있는 한국인의 물질 지향적·경쟁 지향적 심성, 능력주의에 대한 이론적·실제적 비판 그리고 대안까지 다루고 있다. 번역서를 제외하면 대개 저널리즘이나 단편적 논문 수준에 그치던 한국 능력주의 비판의 수준을 제 궤도로 끌어올린 역작이다. 하나하나가 불씨를 품은 주제들이다. 저자 덕분에 논쟁의 터가 깔렸다. 이제 제대로 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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