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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

by 이성근 2017. 2. 9.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 저자 박상표|따비|2017.01.17. 페이지 280

수의사 박상표가 남긴 이야기

 

광우병 파동과 미국 쇠고기 수입 저지, 한미 FTA 반대 등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의 굵직한 이슈 때마다 늘 앞장서서 촛불을 들어올리고 각종 글과 강연, 토론회에서 진실을 밝히는 파수꾼 역할을 자처한 전방위 과학자 박상표의 구부러진 과학에 진실의 망치를 두드리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학의 시대다. 과학은 세상의 중심인 동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마치 20162017년의 조류 독감 사태를 예언이라도 하듯, 박상표는 단적으로 조류 독감‘AI’라는 용어 사용을 들어 이를 비판한다. 결국 지금의 사회는 과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대중을 기만하는 사회임을 박상표는 정확히 꿰뚫어 이야기한다.

 

저자 박상표는 1969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으며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다. 문학 동아리 반도문학회에서 활동하며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한편 문화유산 답사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져서 답사가나 안내자로 전국 곳곳을 다녔는데(하이텔 고적답사 동호회 활동), 항상 사전에 충실한 자료집을 준비하고 답사지에 숨겨진 이면의 역사와 사실까지 탐구하는 학자의 자세로 임했다. 그래서 나중에 전문가 수준의 역사 칼럼과 책을 쓰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수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문화유산 답사를 하며 경실련과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다. ‘미송환 장기수 대책위 활동등을 비롯하여 평화와 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운동가로서의 영역을 넓혀 갔다. 2005년에는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에 합류했는데, 이듬해 초부터 들끓기 시작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미 FTA 정국에서 정부와 주류 전문가들의 주장에 맞서 일반 시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시민 과학자이자 대항 전문가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 촛불 시위를 이끈 이후 2014년 홀연히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외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저서로 고적 답사 이야기(1996, 공저),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2007, 공저), 조선의 과학기술(2008), !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2008, 공저), 불확실한 세상(2010, 공저),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2012)가 있고, 번역서로 빨리요, 송아지가 나오려고 해요(2012, 아내 조미숙과 공역)가 있으며, 박상표 평전(2016, 임은경)이 출간돼 있다.

 

책을 내며_ 오늘 우리가 든 촛불에는 박상표가 들고 있는 촛불도 있다

추모의 글_ ‘자료 대마왕박상표를 그리워하며

추모시_ 박상표에게

 

1장 광우병

누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괴담을 퍼뜨리는가

PD 수첩이 아니라, 허위 사실 유포한 농림수산식품부가 검찰 수사 대상 돼야

미국 캘리포니아 광우병 발생

한미 FTA 협정문 초안이 국회의원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국가 기밀이라고?

 

2장 인플루엔자

조류 독감 재발 방지와 국민 건강 보호 방안

2009년 돼지 독감 대유행의 정치경제학

정부의 소·돼지 살처분, 과연 잘못된 선택이었나

돼지 독감보다 정리해고가 더 무서운 나라

달콤하다고 함부로 먹지 마라벌꿀 속의 독

 

3장 조작

동물용 성장 호르몬의 문제점과 건강 영향

몬산토는 독극물을 판매하는 죽음의 상인인가, 기아로부터 인류를 해방할 구세주인가?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

담배 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

 

그가 알리려던 진실, 바로잡으려던 과학,

아직도 살아 있는 이야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학의 시대다. 과학은 세상의 중심인 동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마치 20162017년의 조류 독감 사태를 예언이라도 하듯, 박상표는 단적으로 조류 독감‘AI’라는 용어 사용을 들어 이를 비판한다.

농림부는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조류 독감(AI: avian influenza)’이라는 용어 대신에 조류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를 쓸 것을 언론에 권장해 왔다. 이것은 미국 기업과 정부가 의도적으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이라는 용어 대신 생명공학 농산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부드럽고 달콤한 용어로 포장하여 식품 안전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희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82, 83)

 

결국 지금의 사회는 과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대중을 기만하는 사회임을 박상표는 정확히 꿰뚫어 이야기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과학이라는 신비한 주문이 유행하고 있다. 이 기괴한 주문은 신자유주의라는 종교를 신봉하는 광신도들에 의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광신도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 못해 안달이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광신도들은 우리가 늘 숨 쉬는 공기며 날마다 마시는 물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가족의 행복, 인간의 가치, 식품의 안전까지도 값을 매겨 상품으로 거래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들에게 세계 각국 민중이나 시민의 건강과 안전은 그저 비관세 장벽에 불과하다. 이들은 과학이라는 신비한 주문을 비관세 장벽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25,26)

 

일찌감치 한국 사회는, 아니 초국적 자본은 목숨과 안전을 담보로 위험한 거래를 하면서 시민을 농락하고 있다.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저지 투쟁 때부터 박상표는 이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에게 쇠고기 문제는 처음부터 카길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자본, 이른바 농식품 초국적 자본의 문제였다. 따라서 그 초국적 농식품 자본의 종자 독점의 근거인 유전자 조작 식품 문제는 일찍부터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만 거의 유일하게 신종 플루라고 불린 돼지 독감의 문제도 그의 비판적인 시야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었고 벗어날 리도 없었다. 그는 신종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이유가 단지 세계화에 따른 이동의 확대만이 아니라, 밀집형 농축산 식품 때문임을 끈기 있게 설명했다.”(10)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박상표는 그 어떠한 편견도 없이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거기서 사람을 생각하는 인문학적인고민과 자본주의적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조류 독감, 구제역 살처분 당시 방역 당국의 대책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있을 때조차 과학적, 현실적 논거들을 총동원하여 윤리적 논란을 배제한다면, 예방적 살처분 정책은 구제역 발생 초기 가장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136)라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동시에

살처분 논란에 관한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만일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 구제역처럼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성 질병에 걸리면 어떻게 대처했을까?”(137,138)

히틀러 같은 괴물이 아닌 다음에야 사람을 대상으로 살처분을 운운하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다. 당연히 사람은 치료약이나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입원 치료를 기본적으로 실시한다. 그런데 왜 가축은 살처분을 시키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소와 돼지는 인간의 식량을 생산할 목적으로 사육되는 산업 동물이기 때문이다.”(139)라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 고민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박상표는 그 어떠한 현실에서도 사람을, 생명을, 세상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의 (돼지 독감) 감염자 수도 1,700명을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감염자 1,700여 명 중에서 사망자는 아직까지 단 1명도 없다. 반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총파업 과정에서 무려 4명이 가슴 아프게 희생됐다. 지난 527일과 611일에 각각 1명씩 조합원 두 명이 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었다. 72일에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노동자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연탄불을 피워 놓은 채 자살했다. 720일에는 옥쇄 농성에 돌입한 노조 간부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노동자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정리해고는 더 많은 살인을 예고하고 있다.’라며 절규했다. 그렇다. 한국은 돼지 독감보다 정리해고가 더 무서운 나라다. 현실적으로 돼지 독감으로 죽을 가능성보다 정리해고로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야만의 땅이다.”(140, 141)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의 신화무상급식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식품 안전·생태·환경·건강을 중심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193), “식품 안전을 위한 투쟁은 반신자유주의 투쟁이며, 경제 위기 시기의 1퍼센트에 맞서는 99퍼센트의 투쟁이다.”(197)라고 세상을 향해 외칠 줄 아는 박상표는

민들레처럼 흔한, 그러나 주변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인 건선을 매우심한 형태로 앓고 있었지만 그의 병은 그의 열정을 손상시키지 못했다. 그는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직도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아주 굳건하고 강인한 소나무 같은 인상의 사람”(14)이었다.

그러한 박상표가 더욱 아쉽고, 그리운 시절, “촛불이 요즈음 다시 한 번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박상표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19)

 

박상표,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나? 14.1.24 프레시안

 

박상표를 추모하며

지난 19일 밤늦게 지인들로부터 급한 문자 혹은 전화 몇 통이 왔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박상표 정책국장 별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년째 박 국장이 일종의 희귀병을 앓으며 고통을 받아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다니.

 

그런데 이어서 전해지는 소식은 더욱더 놀라웠다. 박상표 국장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오후에 숨진 채 발견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연말에 받은 박상표 국장의 답장을 보내지 못한 메일도 생각이 나고, 이제 세 살 정도가 되었을 딸아이 생각도 났다. 도대체 왜?

 

박상표 국장과 <프레시안>과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이른바 '4대 선결 조건'의 하나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추진했었다. 그 때 노무현 정부는 '소의 치아로 나이를 감별해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면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논리를 폈었다.

 

노무현 정부의 선동에 "그건 아냐"를 외치며 등장한 전문가가 바로 박상표 국장이었다. 수의사였던 박 국장은 꼼꼼한 자료 검토와 치밀한 논리 전개로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통상 관료의 혹세무민을 폭로했다. 고백하건대, 그가 없었다면 <프레시안>을 비롯한 일부 언론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개방 움직임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촛불이 ''이 되었다

수년간 박상표 국장이 여론을 환기해온 덕분에, 결국 수많은 시민이 2008년 촛불을 들고서 거리로 나섰다. 그 여름, 그는 거리에서 방송에서 시민들과 만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이 왜 심각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외치고 또 외쳤다. 시민들이 그에게 붙여준 '촛불 의인'이라는 별명은 참으로 적절했다.

 

돌이켜 보면, 그 여름의 촛불은 박상표 국장에게는 심각한 독이었다. 우선 그 때 그의 몸 상태가 엉망이 되었다. 희귀병을 치료하느라 요양을 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을 막느라 동분서주했으니 그럴 만했다. 그 즈음부터 그가 보낸 메일에서는 항상 다음과 같은 호소가 빠지지 않았다. "심신이 지쳐서 쉬고 싶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여름 촛불 덕분에 서울시 금호동에 개원한 작은 동물 병원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기회도 놓쳤다. 만사를 제치고 동물 병원에만 매달려도 형편이 빠듯한 상황에서, 오히려 제 돈을 쓰면서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운동에 쏟아부었으니. 동물병원 운영이 엉망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재주가 많았던 박상표 국장은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을 타개하고자 바쁜 시간을 쪼개서 번역과 집필에 나섰다. 캐나다 수의사 데이비드 페린의 <빨리요, 송아지가 나오려고 해요>(고려원북스 펴냄)<조선의 과학기술>(현암사 펴냄) 같은 책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랬다! 그는 수의사면서도 과학사, 의학사, 지역사 등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하나 같이 경제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자기보다는 타인을 걱정했다. 박상표 국장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중간 정리한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개마고원 펴냄)를 펴내고 나서, 주고받은 메일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책이 안 팔려서 출판사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프레시안(손문상)

 

회의하는 과학자

2008년 촛불 집회 와중에 박상표 국장이 보였던 강경한 모습 때문에, 그를 고집불통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는 뚝심 있는 사회 운동가였다. 그는 2008년 촛불의 열기가 꺼진 뒤에도, 광우병을 둘러싼 과학 연구나 규제 정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회운동도 유행을 좇는 어떤 이들과도 달랐던 것이다.

 

그 와중에 박상표 국장은 가끔씩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광우병의 위험이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년간 자기 활동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이런 질문을 서슴지 않고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의 정체성은 바로 끊임없이 회의하는 과학자였다.

 

사실 박상표 국장이 적당히 타협했더라면 대학에 자리를 잡는 것도 가능했다. 실제로 수의과대학의 몇몇 교수들이 그에게 공동 연구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주류로 편입되는 대신에 끝까지 시민에 편에서 '대항 전문가(counter expert)'로 남았다. 양심뿐만 아니라 (그가 그토록 옹호했던) 과학까지 배신하는 주류 전문가의 모습을 그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 박상표 국장의 관심이 이른바 '청부 과학자' 비판으로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담배 회사 내부 문건 2042건을 분석한 '담배 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 등의 논문을 통해서 담배 회사의 '컨설턴트'로 활동한 한국인 과학자를 폭로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항 전문가' 박상표는 영원하다

박상표 국장은 떠났다. 한국 사회는 그에게 받은 것의 100분의 1도 보답하지 못하고 그를 보냈다. 정작 그를 보내는 한국 사회의 마지막 대접은 고작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 따위의 기사 몇 건뿐이었다. (그에게 큰 신세를 졌던 진보 언론을 자처하는 일부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제일 속상하다.

 

하지만 박상표 국장은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주류 전문가에 맞서 시민의 이익을 옹호한 대항 전문가의 한 전범을 보여줬다. 한국 사회에서 대항 전문가로 나설 용기를 내는 후배에게 박 국장은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항 전문가를 격려하는 상이 제정된다면, 그 상의 이름은 당연히 '박상표 상'이 되어야 한다.

 

차일피일 미루다 연말에 받은 안부 메일의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그 때 따뜻한 격려의 인사를 전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양구 기자

 

I can`t stop lov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