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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개한테 물리다

by 이성근 2020. 10. 19.

 

 

108일 오후 9:04 ·

어쩌다 보니 병원밥을 먹게 되었다. 응급처치를 하느라 가까운 곳을 찾았는데 낯설다. 하마 깝깝하다. 지난밤 살짝 얼린 전어회에 소주 한잔 다시 먹고 싶은 밤이다. 나는 아니지만 다들 즐거운 연휴 되시라.

사실 뭐라고 말하기도 그래서 두리뭉실하니. 말 했는데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기에 자초지종 ᆢ현장 작업 갔다가 갑자기 달려든 큰개한테 속수무책 당했습니다. 퍼뜩 나사가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위로 말씀들 고맙습니다.

 

109일 오전 9:36 ·

새벽, 오늘의 링거를 새로 단다. 항생제와 수액 두개ᆢ잠이 달아났다. 1층으로 내려가 바람이 지나는 이 신생도시의 거리와 마주했다. 달리 할 기 없다. 폰에 저장된 윤미래의 하루하루 를 꺼내어 들었다. 할말은 많아도 바라볼 수 없는 그대ᆢ 이팝나무 이파리. 하나 떼서 병실로 모셔와 가만히 보았다. 나의 오늘도 이팝나무 한 그루 수많은 가지, 헤아릴수 없는 이파리 중 하나 같다. 이 잎은 기억할까. 사랑과 신뢰, 연대감, 위로와 격려 같은 거ᆢ전화 주시고 문자 남기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흰구름 하늘 즐기시길

 

109일 오후 9:59 ·

내일 입을 수술복을 주며 금식 스티커 붙이고 간다. 겁주냐며 농도 던진다. 하 그놈의 개

 

복수혈전

 

자는 듯 가만히 엎드려 있던 그놈

돌변할줄 몰랐다.

잠결에도 눈 떠 있는 후각

씻지 못한 연의 냄새 맡았나

순식간에 달려 들었고

속수무책 당했다.

야들야들 허벅지 아래

찢겨져 나간 바지처럼

피로 흥근한 내 다리

병원 응급처치 하고서야 알았다

어디로 갔나 내 살점

그놈 삼겹살 한점 받아먹듯

날름 삼키고 입맛 다실까

기겁한 주인 호통에

꼬리 내리고 눈치보던 그놈

물린 자리

전생에 악연 되갚는

외나무 다리였을까

헤아릴 수 없는 세상사

나를 물었던 그놈에게

위로의 말 전한다.

 

1010일 오후 11:18 ·

오늘 나루공원에서 있었던 부산그린트러스트 공원의 친구 가을맞이 국화심기의 결과물 중의 하나다. 농원에서 개한테 물리지 않았다면 저 현장에 국화 심고 있었을 것이다.

대신 봉합수술을 받았다.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에 거친 상처에도 불구하고 수술 결과는 만족할 수준이다. 현재. 통증을 줄이기 위해 우유병처럼 생긴 용기속의 약제를 링겔처럼 맞고 있다. 작아도 이틀 분량이다. 덕분에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사실 통증없다는 것, 하반신 마취로 진행된 수술에서 느낀 그 섬뜩함과 인체에 대한.

야기는 별도로 공유하고 싶다)

병실 창 넘어 한산한 정관 거리를 본다. 얄궂게도 밤이면. 장소 불문하고 그리움은 늘 한결같다. 가을은 이러라고 있는가 보다. 어차피 비워질 일 아니든가. 에나 그의 근심에 내 마음이 기운다. 힘내라고 전 한다.

한편 시방 채우지 못한 부족분은 늘 다른 모습으로 메꾸어 진다. 오늘도 코로나로 인해 병원출입이 통제됨에도 기어코 오신 분들이 있다. 여기까지 오기가, 마음내기가 쉽지 않다. 애초. 치료처를 시내로 옮기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몸둘 바 모를 고마움을 느꼈고 큰 위로 받았다. 이래저래 마음 내어주신 분들게 한번 더 감사와 고마움 전한다.

다음주초까지 병원밥은 더 먹어야 할듯 하다.(맨 아래 사진은 지리산에서 보내온 것으로 제목이 운봉삼불)

 

1012일 오전 9:59

·

덴마크 무궁화다. 그리고 그 옆에 석류 벌어지는 하늘.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

마주한 세상의 일부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내 이웃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1012일 오후 11:11 ·

누군가는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한다. 맞다. 더이상 걱정 안 끼칠라면 어서 나사야 한다. 그럼에도 급히 몸만 오다보니 링겔 맞고 먼산 보거나 시 쓰는게 일상이다. 오늘도 그중 잡히는게 있어 옮겨 보았다.

 

-마지막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2016년 오늘을 기억하라고 올려준 장면이다. 그러니까 에콰도르 키토에서 개최된 UN 헤비타드 3 회의 출국 하루전 회의장에서 펼칠 현수막과 그 내용을 소개한 글이다. 새삼스럽다. 귀국하니 최순실 정국에서 박근혜 퇴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고개 넘는 핵 송전탑

 

정관 일신기독병원 옥상 쉼터에서 보면

달음산 허리 지나는 송전선로 있다.

불과 10km 안짝

네이브 카카오맵 위성지도에는 녹지로 위장된

고리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

장안천 건너

좌광천 건너

달음산 중턱 기어 올라

거치없이 곰내재 넘는다.

속성상 어디 저장도 안되고

오로지 소비함으로써 존재하는

핵발전소 비싼 전기

부산,양산 그너머 마창진으로

송전선로 웅웅 그리며 지나간다

한번 터지면 영원히 불모지역될

장안,일광,철마지역

안전 볼모로 가동되는 핵발전소

돈이면 다 되는 불야성의 도시

넘쳐나는 풍요로운 생활, 욕망의 충족을 위해

핵발전소 전기, 거대철탑 타고

산 넘고 들을 가로 지른다.

혹은 기수를 돌려

밀양 할매들 쓸어 뜨리고

이 나라 블랙홀같은 서울로 달리는

저 무지막지한 것들

 

1013일 오후 4:22 ·

 

곰내재

 

고개를 넘어 오는 바람처럼

보고 싶은

당신이 왔으면 좋겠다.

소리 소문없이

이팝나무만 아는 저 바람처럼

아무도 모르게

말이 없어도 좋으리

그냥 웃기만 해도 괜찮아

그래 이쯤에서

당신이 왔으면 참 좋겠다.

퇴원 전날 부산환경운동연합 정상래 공동대표가 시를 보고 보내온 그림이다. 놀랐다

1014일 오전 8:22 ·

올리는 글이 누군가에겐 영 혹은 좀 마뜩찮은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랴 내 부족분인 걸. 미안하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럴땐 어떻게 위로하지. 젠장 다시 하늘 본다.

 

1014일 오후 11:30 ·

오늘의 마지막 항생제를 맞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여러 분들이 다녀 갔고. 책도 한가방이나 던져 놓고 갔다. 심지어 담배 한 보루에 내일 춥다고 입고 온 바람막이 옷까지 벗어 주고 갔다.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손님은 산청 소녀였다. 애 둘의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ᆢ어쨋거나 나는 산청소녀라 명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을 기약했다. 그녀가 그리는 삶의. 설계에 뭐든 보탬이 되겠다고 했다.

이제 잠들기 전까지 책을 뒤적인다. 소화하기 쉬운 말랑말랑한 것 부터ᆢ날이 차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란다.

 

1015일 오후 11:34 ·

나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옥상 와서 담배 한대 피운다

보다시피 멀쩡하다. (한군데 빼고 ) 그런 나를 남겨 본다.

 

마스크 낀 세상 1

 

병원 엘리베이트 안

마스크 끼고 소아병동 가는 아이들

구석에 비켜선 나도 마스크

눈길 마주치고 미소를 보내지만

보이지 않는다

재잘거리는 저 어린 것들

품에 안긴 유아 조차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족쇄

어떻게 왔는지

누구도 미안해 하지 않았다

(- 9)

 

내일이면 4인실을 혼자. 쓰게 된다. 그나마 말귀가 통하던 병실 동료마저 퇴원하기 때문이다. 오늘 퇴원한 최고참은. 강제퇴원이나 다름없었다. 외과치료 보다 우울증 치료가 먼저 라고 여긴 의사의 판단 때문이다. 적절한 조치라 여긴다. 그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런데 내일은 뭘 할까.

 

1017일 오전 12:26 ·

잠시 빗방울 스쳤다. 그 바람에 옥상정원 난간 대리석에 어리는 건너편 달음산 언저리 야경이 새롭다. 마치 정관땅에 큰강이 생긴 것 같다.

오늘 장시는 마무리 짓지 못했다. 완성된 것이 없지 않으나 올리지 않는다. 입원 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곰내재 너머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고 사무실 팀장은 내 공백 메꾸느라 야근까지 했다고 한다. 미안타.

전화로 처리할수 있는 것은 하지만 문건을 작성해서 문서로 교환 공유해야 하는 일은 미루어 질수 밖에 없다. 빨리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여의치 못하다. 아무래도 주말은 넘겨야 할듯하다.

마음의 평화를 구한다.

재 너머 그에게도

 

1017일 오후 2:00 ·

다 맞았다. 링겔. 속이 시원하다. 여섯 시 까지는 홀가분하다. 사실 이기 있어 공기밥에도 견디는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 책도 접고 시도 접고 ᆢ해보라는 멍 때리기나 할까보다

 

 

이성근님이 추억을 공유했습니다.

 

공유 대상: 전체 공개

지난 10년을 기준으로 내게 있어 2019년은 정말 최고의 해였다. 손에 잡힐듯 행복했던 해였다. 시집은 그중 하나다.

반면 다살아 내지는 않았지만 2020년은 명암이 비교될 정도로 최악의. 해로 기록될 듯하다. 여기에는 코로나19같은 공통분모도 있지만 혼자 감당할수 밖에 없는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 반전의 여지는 있다.

 

20191018·

마지막 교정을 보고 넘겼다. 어줍잖은 시집이다. 내 생에 예정에 없던 이벤트로 선후배들이 만들어 주는 거다.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 기쁨을 26일 나누기로 했다. 도움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바람이 되는 이유

 

흐린날 바다에 서면

늘상 바다를 헤메이던 그것들

일제히 달려와 바람되는 이유

알 것 같다

, 억눌린 날의 생애여

체념처럼 아문 상처 되살아나

다시 이글거리는 저 분노

떨쳐 일어서 나아가는

해방의 함성이여

흐린날 바다에 서면

저 바다 아우성치는 말발굽소리

흰갈기 천만갈래 나부끼며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의 몸짓

바람이 되는 이유

내 비로소 알 것 같다

 

1018일 오후 2:56 ·

멍 때리기의 진수

링겔 걸이대에 거미가 집을 짓다.ᆢ 문교수와 구선생 보시오. 하마 석류도 지 혼자 저리 벌어 졌구만. 더불어 일광욕하는 발가락들 ᆢ처음으로 수고 했다고 고맙다고 해본다.

 

 

1019일 오후 5:02

 

2주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한다. 달음산을 비롯하여 곰내재, 이팝나무가 말벗이었다. 때로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하늘까지도 ,,한편 터무니없는 기다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안의 일이기에 섭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쾌유를 빌어준 분들의 격려와 먼거리 마다않고 찾아와 몸걱정 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와 고마움을 전한다. 한동안 통원치료를 해야 하지만 담당 의사의 말로는(5주 진단) 회복 속도가 빠르다 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 또한 내안에 있는 어떤 힘 같다. 가끔 병원 신세질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그 힘이 나를 움직이는 것 같다. 굳이 표현허자면 긍정마인드랄까 ^^

조만간 뵙도록 하겠다. 퇴원하고 바로 중국집까서 짜장면 먹었다.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암튼 다시금 감사드린다. 힘찬 한주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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