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마을과 도시의 정원사 양성 교육의 일환으로 실행된 개금2동 행복마을 기부정원 조성이 실패했다. 조성지와 가장 가까운 곳의 주민 몇 사람이 반대하고 시비를 걸었다. 협의를 했던 마을지기가 당혹해 했고 부담스러워 했다. 때마침 근처에 갈 일이 있다던 심규락 진구청 창조도시국장에게까지 협조를 구했지만 현장을 다녀 온 그의 표현은 철거하는 게 좋겠고 했다. 결국 기초공사 하루를 넘기고 이튿날 철거해야 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기부정원 조성은 1기와 2기 성적이 좋았다. 사후 관리도 양호했다. 개금2동 행복마을을 대상지로 삼기 전에 후보지 선정 작업이 있었다. 두달 전이었다. 보수동을 비롯하여 명지 등 서 너곳의 후보지가 있었지만 개금으로 선정한 것은 이곳에 출입하며 직간접적으로 네트워크 되는 그룹들과 연계에 주목했고 나아가 조성 사후 영도 영선2동의 흰여울 마을처럼 녹색골목을 끌고 들어 옴으로서 일회적 기부정원의 조성이 아닌 마을의 녹색진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마을 내부는 이런 변화가 있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건너편 개금3동이나 당감동같은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현재의 낡은 집에 대한 보수를 기대했고, 나아가 마을이 재개발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슨 쓸데없는 짓 하냐며 못마땅해 했다.
답사는 세차례에 걸쳐 있었고 일대의 산복도로 르네상스와 연관하여 활동 중인 동의대 신병륜교수가 동행했고, 마을지기의 동의하에 장소 선정이 이루어 졌다
복지로 115 사거리에 해당하는 옹벽 옆 5~7m 였다. 옹벽 위 주택 담벼락은 배부름 현상이 발생하여 무너질 수 있어 조성시 만일의 안전망 역할도 가능해 보였다, 앞서 주민들이 블록 한장 높이로 화단을 꾸몃고 물을 끊임없이 주고 있었다. 관리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거리에 해당하는 대상지에 조성 할 경우 시각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일거 양덕인 셈이었다. 다시 말해 크게 문제될 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개금2동 행복마을은 2011년 부산시 행복마을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마을의 변화가 시작된 곳이다.
개금2동은 백병원을 기점으로 40년 이상된 국민주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위동네 토박이 세대와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랫동네 세대로 이루어 져 있다. 지역 내 경제적 문화적 환경 격차가 크고 주민 소통이 없었다고 했다. 여기에 노년층의 증가, 청 장년층 인구의 감소, 빈집의 증가로 슬럼화가 진행중이었는데 행복마을 사업이 그 고리를 끊었다 고 이야기 한다. 2012년 행복마을사업 마을회관 '와요-행복나눔 사랑방 을 준공하고 8통 옹벽 행복테마거리 벽화조성 등 현재까지 35개구간 3,350m를 조성했었다. 또 초기부터 마을 자립을 강구하여 쿠키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같은 사례가 외부로 알려지기도 했고 선진사례지로도 방문이 이루어 지고 있는 곳이다.
마을의 이런 과정에 대해 신뢰했다. 이 정도의 역량이면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조성 기법은 종래와는 다른 형태로 어찌보면 벽돌 조형물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하여 주민의 주목을 받도록 하는 한편 정원의 기능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그림을 보여준 사람 치고 거부하는 사람이 없었다.
조적을 위해 먹줄로 높이를 설정하고 면적을 구분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뭐 하는 거냐며 입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문한 벽돌이 공수되고
3기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조성 기법과 일정에 대해 브리핑이 있었다.
수군 거리던 몇 명의 마을 주민들 가운데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핵심인물이 나타났다.
기초공사 전후의 비교사진이다. 민원인은 설치전 있는 둥 마는 둥했던 화단으로 인해 피해가 막심했다고 주장했다. 하물며 새로 만드는 화단은 피해를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예컨데 BGT가 조성할 기부정원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그 이유는 비가 많이 올때 문제가 생기며 주차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현장을 살펴보건데 현재 도로면은 복개된 하천이었다. 많은 비가 내릴 경우 빗물은 도로를 따라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구조였고 집중된 물 에너지는 분산이 되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화단으로 향하는 물길이 화단 때문에 유로를 바꾸어 압이 세어진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막무가내였고 결국에는 주민센터에 민원을 넣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왔고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누가 이기나 한번 갋아 보겠다는 심사를 노골화 했다.
작업이 순탄치 못했다. 벽돌 미장하는 인부도 부담스러 워졌는지 투덜거렸다. 실습을 하러 왔던 수료생들에게는 상황을 설명하고 마을 둘러 보기로 대신했다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기부정원 조성은 연기되었다.
수강생들이 돌아가고 작업 진행상 조적공사만 하기로 했다. 블록을 쌓아 식물을 식재하기에는 양생이 안되면 무게중심이 안잡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불만을 표한 주민 몇이 이죽거리기까지 했다. 가계에서 낮술을 마시는 동조꾼은 마시던 돈이 남아도냐 ,돈 갖다 버리는 짓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뱉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 주민은 그들과는 뜻이 달랐다. 이를 딱하게 여긴 어떤 주민은 마을의 고약한 심보나 이기적 행태를 비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두 손 두 발 다 들어다고 했다. 정나미 떨어진다며 속히 떠나고 싶어 했다. 허나 이런 표현들이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다시 반대 주민을 설득해 볼까 그래서 기어코 여기에다 조성해야만 할 것 같기도 했지만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첫날 작업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철수했다
조금의 피해도 주지 않기 위해 벽돌을 죄다 안쪽에다 옮겨 놓았다. 실은 그 보다는 그냥 길가에 방치할 경우 가져간다고 했다. 와중에 한 주민의 자신의 화단에서 누군가 화초를 캐어 갔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가 보니 정원을 잘 꾸며 놨다고 구경하고 싶다하여 돌아 보고 나오는 길에 누군가 접시꽃을 뽑아 간 것이다. 마침 그 꽃을 뽑아 온 사람을 누구인지 목도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을 끝 숲 가장자리에서 캐어 온 것이려니 그런데 그 꽃이 그집에서 뽑아 온 것이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사무실로 돌아 온 다음 작업 일정에 대한 수정이 몇 차례 있었지만 심국장과의 전화 통화 후 철거를 결정했다.
토요일 오전 마을로 가기 위해 서면 롯데백화점 건너편에서 67번 버스로 환승했다.
67번 버스 종점 가까이 도로변 주택가 옹벽화단이다
신선했다. 주인장의 정성을 한 눈에 읽을 수 있었다, 옹벽의 변신 치고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겨울에는 어떤 모습일까
현장으로 이동하며 다시 마을의 곳곳을 눈여겨 보았다
이런 옹벽은 좀만 신경써준다면 멋진 녹색 옹벽으로 변화할 수 있겠다 싶었다.
틈틈히 초롱꽃도 피었다.
마을 내부 주택 공동화단
참 잘꾸몄고 그래서 박수를 보냈다
현장에 도착해서 철거될 설치물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착찹했다. 조성과 관련 무엇이 부족했든가. 철저하지 못한 안일함과 소통부족 ?
결과적으로 돈이 남아 버린 꼴이 되었다. 어처구니 없었다. 이대로 물러 설 것인가 재도전 할 것인가 아님 무시하고 강행하고 나중에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그 때 수습한다 를 놓고 각각의 상황에 대해 시나리오를 그려 보기도 했지만 , 이런 상황에 오기까지 내 부족한 것들을 짚어 보았다. 나름 수고하신 분들에게는 미안함을 전하며 그 원인을 추스려 보긴 했지만 결과가 이 따위인 것은 용납 할수 없다. 소통부족, 공유부족이 대두되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거부했다. 오히려 하기 싫음 놔둬라 식이었다. 실제 그랬다. 우리 마을에 조성해 달라는 요청도 꽤나 된다 에이 씨 바
철거는 순전히 혼자 몫이었다. 자랑할 일도 아니기에 특별히 사람을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3기 천유근 시인이 일손을 도우다 정오 전에 갔다.
그리고 원상태 보다 더 말끔히 치운뒤 다시 사무실로 가는 길. 각자의 이해가 다름을 시인해야 했다. 더욱이 그들은 이곳에 오래도록 살아 왔던 사람들 아니든가
Rainbow -Rainbow Eyes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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