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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지역과 마을

문현동 재개발 -마지막 남은 근대의 흔적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졌다.

by 이성근 2016. 3. 21.

 

문현동 남아 있는 근대의 마지막 흔적이 결국 사라졌다.   적산가옥인 일본식 2층 목조건물이었다.   여러 모로 살릴 방법을 생각했지만 시간적으로 무리였나 보다.

1917년 범일동에 조선방직(朝鮮紡織)이 설립도었고 본격적 가동은 1922년부터였다. 1969년 부산직할시가 법인 청산 절차를 밟아 조선방직을 공식 해산시키기까지 47년간 그리고 이후 8만평의 부지가 불하되어 자유시장, 평화시장, 시민회관과 한양아파트가 들어서는 세월이 있었다.   한국 노동운동사의 역사적 공간에 더하여 한국 면직물 산업에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던 장소지만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문현동 사택 역시 똑 같은 전철을 밟았다.   

당시로서는  대공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방직에 관계된 일을 했다.  그들의 의식주가 이루어 진 공간은  벙일동, 좌천동, 전포동 등에 더하여 문현동이다. 그증 문현동은  사택(社宅)과 관영주택이 계획적으로 조성되었던 곳이다. 아래 지도(1946 미육군 25,000: 1)에서 보듯 사택은  다양한 규모로 건설됐는데, 단독주택부터 집을 여러 채 붙여 기다랗게 지어진 연립주택, 공동 숙박을 위한 합숙소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관련한 자료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일대의 재개발을 확인 한 때가 2월경이었고, 이를 안타까이 여겨 3월 언론사와 접촉을 시도하며 근대사료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의 자문을 구했지만  앞서 언급했듯  중.동.서구 영도를 넘어선 남구의 이 지역에 대해선 다들 어두웠다.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던 터, 그 사연을 기억하고 있을 법 했던 마지막 건축물이 철거된 것이다. 

 달리 할 말이 없다. 

철거되기 수일 전의 모습이나마 기록으로 남긴다.

 

 

 

 

 

 

 

 

 

 

 

 

 

 

 

 

 

4월부터 분양이라거 했다  마을에 이런 것을 전문으로 하는 전담 창구도 생겼다.  조합원의 입주율은 얼마나 될까

지하3층 지상30층 6개동에 총 734세대가 들어 설 계획이다.

철거된 자리에 들어설 30층 높이의 건물 6개동, 저기서 쏟아져 나올 자가용들을 생각자니 벌써부터 답답하다. 정말 이 도시가 싫다.  

그리고 줄줄이 이어 진다. 문현3구역 주택재개발지역과 문현1구역 도시환경정구역의 조감도다. 지역 하나가 송두리째 바뀐다.  왠지 끔찍한 생각이다 .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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