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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Plutopia

by 이성근 2021. 11. 24.

플루토피아 핵 재난의 지구사 저자 케이트 브라운|역자 우동현|푸른역사 |2021.11

 

KATE BROWN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과학기술사회 프로그램PROGRAM I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학자다. 핵역사, 재난사, 변경사 등을 주제로 환경사와 냉전사 관련 강의와 연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무것도 아닌 곳의 전기: 종족적 변경에서 소비에트의 중심지로A BIOGRAPHY OF NO PLACE: FROM ETHNIC BORDERLAND TO SOVIET HEARTLAND(2004)디스토피아에서 보내온 편지: 아직 잊히지 않은 장소들의 역사DISPATCHES FROM DYSTOPIA: HISTORIES OF PLACES NOT YET FORGOTTEN(2015)가 있고, MANUAL FOR SURVIVAL: A CHERNOBYL GUIDE TO THE FUTURE(2019)는 두 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2020)로 국역됐다. 플루토피아는 미국 역사학계가 수여하는 상 여섯 개를 수상하며 환경사 분야의 명저로 등극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1부 서부 핵변경의 감금된 공간

 

01_마티아스 씨 워싱턴으로 가다

02_달아나는 노동

03_“노동력 부족

04_나라 지키기

05_플루토늄이 지은 도시

06_노동 그리고 플루토늄을 떠맡게 된 여자들

07_위험들

08_먹이 사슬

09_파리와 생쥐와 사람들

 

2부 소비에트 노동계급 원자原子와 미국의 반응

 

10_잡지 체포

11_굴라그와 폭탄

12_원자 시대의 청동기

13_비밀 지키기

14_베리야의 방문

15_임무를 보고하기

16_재난의 제국

17_아메리카의 영구전쟁경제를 추구하는 소수의 좋은 사람들

18_스탈린의 로켓 엔진: 플루토늄 인민에게 보상하기

19_미국 중심부의 빅브라더

20_이웃들

21_보드카 사회

 

3부 플루토늄 재난

 

22_위험 사회 관리하기

23_걸어 다니는 부상자

24_두 차례의 부검

25_왈루케 경사지: 위해危害로의 길

26_테차강은 고요히 흐른다

27_재정착

28_면책 지대

29_사회주의 소비자들의 공화국

30_열린사회 사용법

31_1957년 키시팀의 트림

32_체제 지대 너머의 카라볼카

33_은밀한 부위

34_“게부터 캐비아까지, 우리는 모든 걸 가졌었다

 

4부 플루토늄 장막 해체하기

 

35_투자 증권이 된 플루토늄

36_돌아온 체르노빌

37_1984

38_버림받은 자

39_아픈 사람들

40_전신 작업복의 카산드라

41_핵의 글라스노스트

42_모두가 왕의 부하들

43_미래들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문서고와 약어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새로운 냉전 이야기

냉전은 대결만으로 점철되었을까

관습적으로 냉전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진영 간의 대결로 설명된다. 1945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ㆍ소 동맹관계가 해체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국가들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정권 사이에 냉전 구도가 발생했고,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면서 강화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대결만으로 점철되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미ㆍ소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만든 플루토늄 도시는 거의 모든 부분 동일했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늄 생산 공장 근처 지역사회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바로 워싱턴의 리치랜드Richland와 우랄의 오죠르스크Ozersk이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은 군사ㆍ복지 부문에서 경쟁하면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에 이상향에 가까운 복지 도시 플루토피아Plutopia’를 지었다.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조국을 위해 플루토늄을 만들면서 풍요(소비자적 권리)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건강(생물학적 권리)과 자치(정치적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일상적/저준위 원자력 재난의 연대기

원자력 시설에서의 끔찍한 사고와 인근으로의 방사성 물질 유출,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와 감시의 부재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반면 저준위 방사성 물질의 유출과 그것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었을 경우 발생하는 재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책은 이 같은 일상적/저준위 원자력 재난의 연대기를 비교사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저자는 플루토피아 내부의 시민/인민들이 복지 유토피아를 누리는 대가로 자신들의 시민적ㆍ정치적ㆍ생물학적 권리를 자발적으로내놓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힌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지역 자치와 선거, 국가적 행정 제도상의 편입, 구조적으로 피폭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정부 주택 보조금, 풍부한 재화의 구입, 우수한 치안, 자녀 교육 혜택 등의 편익과 맞바꿨다.

 

이러한 목소리는 냉전기와 탈냉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 안보의 수사修辭를 통한 지역 내 원자력 시설의 유지 강화(리치랜드)와 외부인들의 접근과 거주를 차단하는 폐쇄 도시closed city 선호(오죠르스크)로 나타났다. 그러한 풍경 안에서 원자력 시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영원히 받게 되었다. 하지만 배상이나 지원보다는 오히려 그들에 대한 편견과 무시만이 강화됐다.

 

성별화된, 계급화된, 인종화된 노동

책의 전반부에 특히 잘 드러나듯, 플루토피아의 역사는 성별화된gendered 노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을 막론하고 방사성 용액을 증류하고 채집하는 일의 최전선에는 플루토피아에 거주했던 여자 노동자들이 존재했다. 미국의 거대 기업 중 하나인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소비에트의 원자력 산업 공히 조금 더 피폭의 가능성이 높은 일에 여성을 배치했다. 그러한 노동의 보이지 않는 분업은 젠더에 더해 계급적으로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진행되었다.

 

독자들은 책 전반에 걸쳐 계급적 약자인 비백인, 즉 미국의 경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미국 선주민인 인디언들, 소련의 경우 비슬라브계 소비에트인이나 우랄 지역의 무슬림 선주민들, 그리고 미국과 소련 모두에서 죄수 노동력이 플루토피아를 위해 노동하고 봉사하면서도 복지를 누리지 못하고 피폭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미국 안의 소련, 소련 안의 미국

연구 방법론상의 신기원 개척

이 책은 어느 한 차원의 방법론에 국한되지 않고, 비교사, 도시사, 환경사, 냉전사 등 역사학의 각종 세부 방법론을 절묘하게 배합하며 창의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역사 연구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특히 인간 행위자(설계가, 계획가, 정책결정자 등)가 구획한 인위적인 공간들과 그 사이에 놓인 장벽, 철조망, 관문 등이 얼마나 쉽게 비인간 행위자들(방사성 입자, 피폭된 풀을 먹은 가축의 고기, 공기와 물의 대류 등)에 의해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방법론은 피폭의 범위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편 저선량 피폭의 주된 피해자가 대개 사회적 최약자이자 플루토피아 근처에 사는 아랫바람사람들하류사람들임을 보여주면서 사회사, 재난사, 핵 역사의 통찰도 제공한다. 아울러 폐쇄 도시에 출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법을 통해 그 도시 주민들, 주변 거주민들과 진행한 인터뷰는 문서보관소 자료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역사상을 보충해주며 때때로는 강화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플루토피아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조지아, 아이다호 및 뉴멕시코 등지에서, 소련의 경우 우랄, 카자흐스탄, 시베리아, 유럽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재현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구상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는(재처리하는) 공장이 있는 곳 근처 플루토피아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 또한 제공한다.

 

민중의 과학

이 책의 백미는 시민/인민이 수행하는 자체적 연구의 타당성을 문서보관소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개 과학의 언어를 구사하는 과학자들은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또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 여러 전술들을 구사하며 보수적으로 학술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원자력 재난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한 구조적인 힘에 맞서, 책에 등장하는 여러 행위자들은 미국과 소련을 막론하고 자신과 가족, 친구, 주변인들의 건강 영향(저선량 피폭)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수행하고 기록하고 이를 공개하고 정당한 배상을 받으려고 했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과학의 언어를 쉽사리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민중의 과학을 수행하는 이들이 막대한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원자력 시대의 선구자들의 행동은 원자력 재난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영감과 용기, 지지를 건네주고, 원자력 시설을 운영하는 정부와 전문직 계층을 상대로 한 더 많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위험과 오염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20214,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수(처리수) 해양 방류 공식 결정이 있었다. 2023년부터 100만 톤 이상의 오염수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바다로 방출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출할 경우 환경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경미하다는 내용의 평가를 내놓으면서 그러한 정부의 결정을 뒷받침한다.

 

이 결정은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 시설이 운영되는 한 생겨날 수 있는 재난(가장 대표적으로 체르노빌, 후쿠시마)과 그 영향이 우리와 얼마나 가깝게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아울러 이 책은 그러한 자연 환경으로의 방사성 물질 방류 결정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축소화/안심시키기가 이미 1940년대부터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시작됐고, 방류의 참혹한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원자력 유산이 가진 진실이 알려져야 한다

문서고를 뒤져 과거 기밀로 분류된 문서들을 폭로하고 해당 도시에 살았던 거주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바람을 피력한다. “미래의 언젠가 지구 도처에 존재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핵 생산 현장 근처에서 이러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바라건대 여러 나라가 원자력에서 (아울러 핵무기에서) 탈피하여 그것들의 유산이 가진 진실이 알려졌으면 한다.”(11) 저자의 바람이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기밀주의에도 가 닿기를 바라본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무기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중국, 일본)의 재무장이라는 관습적인 서사 앞에, 깨끗한에너지원이라는 원자력의 서사 앞에 사회적 부의 재분배나 인권, 노동, 탄소 절감을 통한 기후 변화 대응 등과 같은 첨예한 각종 사안들이 좀처럼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냉전적분위기에서 저자의 통찰은 원자력이라는 최첨단 고위험 기술의 존재론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해준다.

 

책속으로

이 책은 미국과 소비에트의 지도자들이 엄청난 규모의 핵탄두와 그 중핵인 플루토늄 구를 비축하기 위해 근로 대중,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구성원들(죄수들, 병사들, 종족적 및 인종적 소수자들)을 어떻게 희생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그 모든 비용을 치르면서도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 및 풍경이 어떻게 핵무기의 생산에 맞게 재조정되었는지를 기록한다.--- p.5

 

이 책은 공포와 모방, 그리고 맹렬한 플루토늄의 생산으로 단합된 두 공동체의 수용에 관한 이야기다. 워싱턴주 동부의 리치랜드Richland와 러시아 우랄 남부의 오죠르스크Ozersk(“호수 골짜기Lakedale”를 의미한다)는 냉전의 적수였으나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 도시였다. 핵무기 복합체는 탄두와 미사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산했다. 핵무기 복합체는 새로운 핵가족의 안식처가 된, 수상 경력이 있는 모델 주택단지에서 행복한 유년기의 기억들, 저렴한 주택, 그리고 우수한 학교들을 만들어냈다.--- p.17

 

나는 노동자들을 플루토늄 생산과 관련된 위험과 희생에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미국과 소비에트의 원자력 지도자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플루토피아plutopia. 플루토피아 특유의 접근이 제한된, 열망으로 가득한 공동체들은 전후戰後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의 욕구 대부분을 충족시켰다. 플루토피아의 질서정연한 번영은 대다수 목격자들이 그들 주변에 쌓여 있는 방사성 폐기물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 p.20

 

냉전 기간 동안 선전가와 전문가들은 미국과 소련을 비교하면서 한쪽 혹은 다른 쪽의 부당함이나 과오를 덮어주곤 했다. 대신 나는 플루토늄 공동체를 서로 나란히 배치하여, 플루토늄이 어떻게 냉전의 분열을 가로질러 플루토늄 공동체의 삶을 묶었는지 보여준다. 나는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도시들이 정치 이념과 민족 문화를 초월하고 핵 안보, 원자력 첩보, 방사능 위험에서 파생된 공통의 특징을 공유했다고 주장한다.--- p.27~28

 

플루토피아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원자력 르네상스에 관해 논의하는 동안에도 핵 보유국의 많은 시민들이 아직 직면하지 않았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유산에 관한 책이다. 고립된 군사 지대에서 일어난 핵 재난은 은폐하기 쉽다. 이는 체르노빌과 오늘날 후쿠시마가 자주 회자되는 단어인 반편, 핸퍼드와 마야크에서 일어나 플루토늄 재난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방사성이 강한 두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이 핵 과거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고무되었으면 한다.--- p.30~31

 

마티아스는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공장 부지를 워싱턴의 핸퍼드로 결정했다. 이곳이 그가 찾던 특징들, 즉 컬럼비아강Columbia River의 풍부하고 깨끗한 용수 공급, 확실한 전력 공급원, 높은 비율의 정부 소유 토지, 그리고 확실한 실패의 기운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p.40

 

노동력 부족은 현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속되었다. …… 노동자 유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풍경이었다.--- p.46

 

버벤저 경찰서장은 캠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무언가 우울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거의 교도소에 있는 것 같았지요. 철조망이 쳐져 있고 ……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외로움과 우울함 그 자체였고, 그들은 술을 지독하리만치 마셔댔습니다.” 황량함의 결과로 노동자들은 일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갔다.--- p.56

 

핸퍼드 사업의 울타리들은 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나누어 각각의 생산 구역 및 집결 구역을 분리했다. 울타리들은 핸퍼드 캠프를 둘러싼 장벽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캠프 내부에는 더 많은 울타리들이 여성과 남성을, 백인과 흑인을, 막사의 독신 노동자와 이동식 주택 주차 구역에 사는 가족을 분리시켰다. …… 차별적 관행은 노동력 부족을 유발하여 공장 건설을 지연시켰다.--- p.68

 

듀폰 경영진은 계급과 인종의 (보이지 않는) 구역을 풍경에 넣어 도표로 작성하고 군사 보안과 함께 재정적인 보안을 제공함으로써, 리치랜드가 고등 유형의 백인 남성 노동자들을 위한 폐쇄적 원자력 구역이 라는 인상을 만들지 않고, 다른 맨해튼 프로젝트 시설에서처럼 경비 초소와 신분증과 울타리 없이 여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p.90

 

듀폰 채용 담당자들은 21세에서 40세 사이의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 중 건강하고 성격이 좋고 기민하고 총명한여성을 찾고 있었다. …… 듀폰 경영자들은 공장 제품의 위험성을 직원들에게 공개해야 할 도덕적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그로브스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p.95

 

방사성 무기에 관한 해밀턴의 탐구는 또한 대량살상이 이뤄지는 전쟁의 한가운데 자리한 맨해튼 프로젝트 의학 프로그램의 본질에 대해 알려준다. 죽음과 파괴에 대한 냉정한 평가, 적국 대중이 “24시간 내에 메스꺼워하고 구토하고 무력화되는것에 관한 상상의 과잉, 맨해튼 프로젝트 공장 인근의 미국인들에게도 똑같은 각본대로 전개될 것이라는 상상의 결핍이 바로 그것이다.--- p.113

 

1945년 초에 이르러 맨해튼 프로젝트 지도자들은 최초 몇 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사성 동위원소에 피폭되어 손상되는 한도와 그러한 동위원소가 체내로 유입되는 경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반감기가 긴 방사성 동위원소들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과 그것들이 일단 토양과 살아 있는 생명체 내부에 들어가면 감지하거나 제거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그러한 동위원소들이 일단 체내로 들어갔을 경우, 방사능이 세포를 파괴하고 암을 유발하며 면역체계, 소화계, 순환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노화와 사망을 가속화하는데 이는 모두 무작위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p.128

 

1945년 봄까지 마티아스, 그린왈트, 그리고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배정된 다른 임원들과 기업 관리자들은 많은 일을 해냈다. 2년 동안 그들은 몇몇 공장과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산업용 원자로를 건설했다. 그들은 소도시 세 개를 허물고 그 자리에 두 개의 새로운 도시와 노동캠프를 지었다. 더 큰 도시인 핸퍼드 캠프는 1945년 중반까지 이미 불도저로 철거되었다. 그들은 연방 재원의 지원을 받는 새로운 종류의 백인 핵가족 공동체인 리치랜드를 설립했다. 리치랜드는 연방 재원에 의해 보조되고, 계획경제와 세심하게 통제된 접근권을 가진 기업 변호사들에 의해 관리되었다. 그들은 또한 우려스럽지만 비밀스러운 연구를 생성하는 의료 및 환경 감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편 공공 부문에서는 공중 보건 및 대민 홍보 프로그램이 불안해하는 노동자들을 성공적으로 진정시켰다.

--- p.139~140

 

극소량의 우라늄, 소수의 과학자, 제한된 자금만으로 소비에트 폭탄은 헛된 꿈이었다. 오직 미국처럼 지구적 산업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고, 노동력과 원료가 풍부하고, 자국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나라만이 핵무기 제조를 생각할 수 있었다. 자급자족 경제에 갇혀 있고 경화가 부족하고 추축국 군대에 둘러싸인 소비에트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전후 핵강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소비에트 지도자들의 열망이 깊어진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p.159

 

사실 소비에트 지도자들은 전후 잔해 속에서 핵무기 복합체를 지을 능력이 없었다. 황폐화라는 측면에서 추축국은 소비에트 경제를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 굴라그는 자유로운 소비에트 기업체들보다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굴라그에 노동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 굴라그는 수백만 명의 육체노동자뿐만 아니라 특수 화이트칼라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물리학자, 화학자, 기술자 및 설계자 등 국가의 지적 자본을 가진 보고이기도 했다. 스탈린과 베리야가 원자로, 화학처리공장, 실험실을 건설하기 위해 굴라그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합리적인 모습이었다.--- p.167~168

 

누가 소비에트 폭탄을 만들 것인지 결정한 후, 반니코프와 베리야는 어디에서 그것을 만들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 정찰대는 희박한 인구, 자유롭게 흐르는 강들, 정부의 상당한 존재감으로 인해 우랄에 매혹되었다. …… 바로 이곳이 정찰대가 모스크바에 보고한 장소였다. 이것이 바로 소비에트 원자의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는 모습이었다.--- p.169~170

 

이 최초의 소비에트 플루토늄 정착지는 리치랜드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기본 계획도, 믿을 수 없는 죄수와 병사를 국가 기밀을 위임받은 강직하고 훈련된 직원과 분리시키려는 계획도 없었다. …… 당대의 증언에 따르면, 플루토늄 현장은 보안상의 재난이었다. 요컨대 굴라그는 소비에트 핵개발 계획을 불복종, 폭력, 절도, 비효율성을 지닌 초라하고 전염성 있는 무질서로 낙인찍었다.--- p.187

 

당 회의를 엿보면 봉쇄된 체제 지대, 민감하지 않은 작업에서 죄수와 유형수들의 분리, 잠금장치가 설치된 사무실과 실험실, 노동자들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작업이 1948년 초에는 환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이 왔다 갔다 했다. 직원들은 급여를 받기 위해 비밀 실험실 밖에 줄을 섰고, 노동자들은 친구 및 가족과의 전화통화에서 엿들은 비밀을 누설했다. …… 의심스러운 죄수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1947년 여름에만 16만 명의 기결수들이 도착했다. 금지된 범주의 죄수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민감한 산업 현장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물질적 풍요와 맞바꾼 건강권·자치권·'플루토피아'

태아도 코로나 감염'백신공백' 우려 현실화하나

미국,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만 공식 초청... 美中 갈등 또 격화할 듯

 

냉전시대 플루토늄 도시 다룬 케이트 브라운 교수 저서 출간

 

원자력은 인간에게 전력, 핵무기 재료 등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찮다. 방사선 피폭에 의한 질병,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엄청난 후유증은 원자력이 정말로 저렴하고 안전한 평화적 기술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2022년 대선후보의 원전 정책도 서로 엇갈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는 반면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탈원전 포퓰리즘' 정책을 폐기하고 스마트 미래형 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외친다.

 

핵역사, 재난사 등을 주제로 환경사와 냉전사 강의·연구에 전념하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케이트 브라운 교수가 쓴 '플루토피아'가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원자력 재난의 비교사를 통해 반핵과 찬핵의 이분법을 넘어 원자력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효용이 특정인들에게 개인화하고 비용은 사회화되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원전 문제는 이제 특정 국가나 지역만의 일이 결코 아니다. 지난 4, 일본 정부는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공식 결정했다. 2023년부터 100만 톤 이상의 오염수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바다로 방출하겠다는 것이다. 원전 재난과 그 피해가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일깨워주는 사례다.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책은 자연 환경으로의 방사성 물질 방류 결정과 인체에 미치는 그 영향에 대한 축소화·안심시키기가 이미 1940년대부터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시작됐고, 방류의 참혹한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재진행형 역사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제목 '플루토피아(Plutopia)''플루토늄(plutonium)''장소(topia)' 또는 '이상향(utopia)'의 합성어로, 저자가 창안했다. 이 책은 미·소 양국 지도자들이 핵탄두의 양산·비축을 위해 어떻게 비용을 최소화했는지, 그리고 비판을 어떻게 반박하며 핵가족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웠는지 꼼꼼히 살핀다.

 

관습적으로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간의 대결로 설명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소 동맹관계가 해체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국가들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정권 사이에 냉전 구도가 생겼고,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면서 이런 구도가 강화됐다는 식이다.

 

하지만 모든 부문이 대결만으로 점철되진 않았다. 특히 미·소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만든 플루토늄 도시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동일했다. 플루토늄 생산 공장 근처의 지역사회들이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아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 워싱턴의 리치랜드와 소련 우랄의 오조르스크가 바로 그렇다.

 

냉전기에 양국은 군사·복지 부문에서 경쟁하면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에 이상향에 가까운 복지 도지 '플루토피아'를 건설했다. 이곳 주민들은 조국을 위해 플루토늄을 만들면서 '소비자적 권리'인 풍요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생물학적 권리'인 건강과 '정치적 권리'인 자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 시설에서의 끔찍한 사고와 인근으로의 방사성 물질 유출그리고 그 대비와 감시의 부재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준위 방사성 물질의 유출과 그에 일상적으로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재난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원자로 공장에서 좋은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소련 오조르스크의 노동자들이 숲에서 단체 도보를 하고 있다. 푸른역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제공: 연합뉴스

 

이번 책은 그 같은 일상적 저준위 원자력 재난의 연대기를 비교사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플루토피아 내부의 시민과 인민들이 복지 유토피아를 누리는 대가로 자신들의 시민적·생물학적·정치적 권리를 '자발적으로' 내놓았음을 새롭게 밝힌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지역 자치와 선거, 국가적 행정 제도상의 편입, 구조적으로 피폭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정부의 주택 보조금, 풍부한 재화의 구입, 우수한 치안, 자녀 교육의 혜택 등의 편익과 맞바꿨다. 이런 목소리는 냉전과 탈냉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 안보의 수사를 통한 지역 내 원자력 시설의 유지 강화(미국 리치랜드)와 외부인의 접근과 거주를 차단하는 폐쇄 도시 선호(소련 오조르스크)로 나타났다. 이런 '혜택' 속에서 원자력 시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받게 됐다.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것이다.

 

저자는 책의 서론에서 "나는 노동자들을 플루토늄 생산과 관련된 위험과 희생에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미국과 소비에트의 원자력 지도자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플루토피아다""플루토피아 특유의 접근이 제한된, 열망으로 가득한 공동체들은 전후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의 욕구 대부분을 충족시켰다. 플루토피아의 질서정연한 번영은 대다수 목격자들이 그들 주변에 쌓여 있는 방사성 폐기물을 간과하게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한다. ido@yna.co.kr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저자 고이데 히로아키|역자 김원식, 고노 다이스케|녹색평론사 |2011.12. される原子力.眞實 原子力專門家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

 

제공]

목차

책머리에

 

1장 피폭의 영향과 공포

방사능은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다 | 방사선의 발견과 그 피해의 역사

도카이무라 사고로 인한 비참한 죽음 | 방사선 에너지는 분자결합을 절단한다

적은 피폭에도 나쁜 영향이 | 적은 피폭은 안전하다는 거짓말

 

2장 핵의 본질은 환경파괴와 생명에 대한 위협

전쟁과 서민의 역사 | 나치독일 치하에서 발견된 우라늄 핵분열반응

원자탄의 막강한 파괴력 | 연쇄반응

일본이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오류 | 우라늄원자탄과 플루토늄원자탄

열화우라늄과 그 독성 | 사용되고 있는 열화우라늄탄

 

3장 원자력과 플루토늄에 건 꿈

원폭에 대한 공포가 에너지원에 대한 기대로 바뀌다 | 석유는 언제 고갈되는가

빈약한 우라늄자원

 

4장 일본이 추진하는 핵개발

플루토늄 이용을 위한 핵연료 사이클 | 엉터리 학자는 범죄자다

고속증식로는 핵무기 재료를 만든다 | 성가신 것을 처리하기 위한 플루서멀

안전여유를 저하시키는 플루서멀 | MOX 원전 오오마원전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플루서멀 | 플루서멀의 현 상황

계속 쌓여가는 MOX 사용후핵연료

 

5장 원자력발전 그 자체가 위험하다

원전은 기계이고, 인간은 신이 아니다 | 원전사고에 대한 국가의 법적 보호

도회지에는 세울 수 없는 원전 | 원자력발전은 물 끓이는 장치

원전이 만들어내는 방대한 방사능 | 체르노빌 사고 | 지구피폭

 

6장 원자력에 악용된 이산화탄소 지구온난화설

지구온난화와 이산화탄소의 관계 | 교토의정서와 이산화탄소 배출권

실패한 ‘COP15 코펜하겐 합의’ | 왜곡된 주장

 

7장 죽음의 재를 계속 만들어내는 원전

원자력발전도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 일본광고심사기구의 판정

원자력 추진파의 라이프사이클 분석 |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시나리오

방대한 온배수로 생태계에 악영향 | 원자력은 항시 방사능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우라늄 잔토도 처리할 수 없었던 일본 | 잔토 철거를 요구하는 가타모지구

원자력으로 오염된 공해의 수출’ |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 대책이 없는 사용후핵연료

온배수를 다시 생각한다 | 효율도 나쁜 원전

 

8장 지구온난화와 이산화탄소의 인과관계

온난화는 19세기 초부터 | 생명환경 파괴의 진짜 원인은 에너지 낭비

자연요인도 온도에 영향을 미쳤다

 

9장 원자력을 그만두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망 없는 원자력을 고집하는 이유 | 원자력에서 손을 떼는 핵 선진국들

원자력산업의 세계적 재편 | 원자력에서 즉각 손을 떼어도 곤란하지 않다

 

10장 핵을 둘러싼 불공정한 세계

핵개발과 원자력개발 | 일본의 헌법과 현실 | 핵 폐기에 NPT는 도움이

공정한 세계를 지향하여

 

11장 재처리공장이 안고 있는 엄청난 위험

재처리공장이 취급하는 방대한 양의 방사능 | 봉인을 뜯고 질산에 용해하는 작업

영국 윈즈케일 재처리공장의 사례 | 재처리공장은 농도규제를 받지 않는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서 나온 계산 | 평상시 피폭의 영향에 대한 평가

피폭평가 시나리오 자체의 결함 | 포착할 수 있는 방사능도 붙잡지 않고 내보낸다

포착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비용 때문 | ‘충분한 희석·확산이란 광범위하게 오염을 확산시키는 것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현황 |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의 피폭을 막아야 한다

오염식품에 어떻게 대처할까

 

12장 에너지와 불평등사회

에너지와 수명 | 생명환경 파괴의 진짜 원인은 에너지 낭비

산업혁명 이후의 생물의 멸종 | 에너지소비의 격차 | 세계 각국의 평균수명

환경파괴의 책임은 극히 일부 선진국에 있다

위기적 상황에 처한 일본의 환경 | 사회구조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각이다

위기는 어디에서 표면화되는가 | 소욕지족

 

후기

 

출판사 서평

원자력 전문가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구자로서의 불이익을 감수해가며 반핵(反核)운동의 최전선에 일생을 바쳐온 양심적인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 선생의 생생한 육성으로 원자력발전의 실체를 듣는다.

 

원자력은 어떤 의미에서도, 최악의 선택이다

원자력발전이란 우라늄을 태워서 그 에너지로 물을 끓여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라늄을 연소시키면 에너지뿐만 아니라 핵분열생성물’, 즉 생물의 서식환경에서 완전히 격리시켜야 하는 죽음의 재가 반드시 발생한다. 지금까지 일본 원자력발전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생산된 죽음의 재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히로시마 핵폭탄으로 환산해서 약 120만개, 방사능의 감쇠를 고려해도 80만개에 이른다. 즉 히로시마를 궤멸시킨 양의 80만배나 되는 죽음의 재가 현재 일본 국토에 쌓여있는 것이다(201010월 기준 일본 원자력발전소 54기 가동으로 매년 히로시마원폭 5만발분의 죽음의 재를 생산).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방출된 것은 그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원자력발전 그 자체가 몹시 위험하여, 그 위험성은 어마어마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는 불필요한 언설일 것이다. 실감하기 위해 비교해보면, 1945년 히로시마 거리를 괴멸시키며 단기간에 약 14만명의 목숨을 빼앗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여생을 고통 속에 살게 한 히로시마 핵폭탄의 우라늄의 양은 800그램이다. 오늘날 표준인 100만킬로와트급 원자력발전소 하나가 해마다 약 100만그램, 히로시마 원자탄의 1,000배가 넘는 양의 우라늄을 연소시킨다. 그리고 당연히, 그만큼의 죽음의 재를 발생시킨다. 바로 이러한 방사성물질들이 사고 때와 시간적·양적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일상적(혹은 계획적)으로 환경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원자력

핵무기’, ‘원자력발전으로 표현을 달리하며 핵개발은 평화적이라고 원자력 추진론자들은 선전한다. 그러나 애초에 과학·기술에 군사용과 평화용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있다면 오직 전시의 이용과 평상시의 이용이라는 차이밖에 없을 것이다. 전세계 원자력개발을 위해 봉사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핵무기 보유국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NPT(핵확산금지조약)는 핵무기의 폐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핵의 폐기에 최대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진단은 양심적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지역 핵무기금지 조약(토라테로르코조약 1968), 남태평양 비핵지대 조약(라로통가조약 1986), 동남아시아 비핵지대 조약(방콕조약 1987) 등 스스로 핵을 포기함으로써 공존과 평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핵발전도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원자력만이 인류가 취할 길이라는 선전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 가공할 위험성을 안고서라도 핵발전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원자력은 과연 실제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일까?

 

2008, 일본정부와 전력회사들의 원자력이 깨끗하다’, ‘친환경적이라는 선전에 위화감을 느낀 한 청년이 JARO(일본광고심사기구)에 이러한 광고의 타당성(부당성)에 대한 심사를 의뢰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꾸려져 검토한 결과는, 원자력발전 혹은 방사성강하물 등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안전성에 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또한 오직 발전(發電)할 때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만을 가지고 청정에너지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선 연료(우라늄)의 채굴 단계에서부터 핵발전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며, 연료 운송, 원자로 건설, 사용후핵연료의 저장(보관)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로지 발전(發電), 즉 핵분열 반응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을 뿐이다.

 

핵의 본질은 한마디로 생물·환경에 대한 위협

고이데 선생은 자신의 은사의 표현을 빌려 원자력발전소는 바다 데우기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표준 원자력발전소의 발전량은 100만킬로와트인데 실은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는 300만킬로와트라고 한다. 생산 에너지의 2/3가 냉각수에 의해 바다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1초 동안 바닷물 70톤이 섭씨 7도 온도가 상승하여 버려진다(54기 일본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되는 온배수의 총량은 연간 1,000억톤). 이러한 단적인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원전이 생물환경에 미치는 어마어마한 파괴적 영향을 독자들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류에게 허락되는 대안은 우선 원자력발전을 멈추는 것 단지 이것뿐이다. 반핵을 말하면 그럼 전기를 쓰지 마라, 대안 없이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지만, 그러나 이것은 침몰하고 있는 배에 타고서 대안 없이는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전기, 풍요로운 생활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원자력발전은 전기가 부족하든 부족하지 않든 즉각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 전기의 약 30퍼센트가 원자력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령 화력발전소만 해도 현재 절반 이상을 가동중단하고 놀리고 있기 때문에 원자력을 멈추어도 전력량 공급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보여진다.)

 

편리한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는 안이한 생각에 사로잡혀 원자력발전이라는, 인간의 능력으로 처리할 수 없는 기술을 추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서운 짓인지를 후쿠시마 사고는 또한번 인류에게 똑똑하게 보여주었다. 전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지구 한편의 사람들이나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또 다른 생물종, 지구에게 이른바 선진국들에 살고 있는 현세대가 부당하게 부과하고 있는 ()의 유산에 대해, 지금이 우리 하나하나가 책임을 질 마지막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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